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겐키(元亀) 3년 결전(決戦), 미카타가하라(三方ヶ原) 전투
096 1572년 12월 하순
12월 22일. 후세에 '전국시대의 종언(終焉)' 단서(端緒)로 불리게 되는 역사적 변곡점의 아침.
시즈코는 목욕재계(禊)를 하고 있었다. 냉수로 몸을 깨끗하게 씻은 후 흰 옷(白装束)으로 몸을 감쌌다.
흰 옷은 다른 이름으로 '수의(死に装束)'라고도 하며, 옛날에는 산실(産室)에서 착용했고, 후에 할복(切腹) 등의 흉사(凶事)에 입는 옷으로 정착되었다.
다테 마사무네(伊達政宗)가 히데요시(秀吉)에 대해 오다와라 성(小田原城) 공격에 지각한 것에 대한 해명을 할 때 입고 죽음을 각오한 상태에서 해명하여 할복을 면했다는 일화도 있다.
어느 쪽이든, 흰 옷은 결사의 각오를 나타낸다. 따라서 시즈코 스스로 흰 옷을 입는다는 것은 누구의 눈에도 명확한 결의표명이 되었다.
"오늘이라는 날이 언젠가는 올 것이다. 저는 전부터 그런 예감이 들었어요"
흰 옷을 입은 시즈코는 병사들 앞에 섰다. 그녀는 복장은 달랐지만 그 태도에는 아무 변화가 없었다. 태연자약한 태도는 병사들에게 안도감을 주고 있었다.
"이제 곧 타케다(武田)가 하마마츠 성(浜松城)으로 들이닥치겠죠. 그렇다면 우리들의 사명은 단 하나. 누구에게 이빨을 드러낸 것인지 그들에게 뼈저리게 알게 해주어, 두번다시 우쭐하지 못하도록 쳐부술 뿐!"
가상(仮想)의 적을 쳐 쓰러뜨리는 듯한 손동작을 하며 시즈코는 호령했다.
"이곳은 도쿠가와(徳川) 영토이지만, 놈들은 반드시 오다 영토에도 침공할 것이다! 우리들의 본토(本土)인 오다 영토에 놈들의 침입을 허용하면, 곳곳에서 약탈, 살육, 악독한 짓거리(乱妨取り)를 자행하겠지. 결코 그런 행패를 용납해서는 안 된다! 지금부터 우리들은 불퇴전(不退転). 설령 이 몸이 썩어문드러지더라도, 죽어서 호국(護国)의 귀신이 되리라!"
"오오!"
"우리들은 물러서지 않는다! 우리들의 부모를! 처자를! 미래를 지키기 위해 싸우는 것이다! 제 분수를 모르고, 우리들이 유유낙낙(唯々諾々) 따를 거라 생각하는 그 헛된 자만심(増上慢)! 결코 용납해서는 안 된다! 타케다의 위광을 휘두르면 뭐든지 뜻대로 될 거라 생각하는 산골 원숭이(山猿) 따위, 사지(死地)를 기고, 흙탕물을 마시고, 돌을 씹으면서도 견뎌낸 강병들에게는 두려워할 것이 못 된다! 승리는 이미… 우리 손에 있다! 다들! 함성을 질러라! 놈들에게 본때를 보여주자!"
"우오오오오오오오오오!!"
시즈코가 포효하며 병사들을 고무했다. 마지막 말에 화답하듯, 땅을 울릴 듯한 함성이 터져나왔다.
이른 아침부터 대대적으로 동원했기에 무슨 일인가 하고 지켜보고 있던 도쿠가와 가문 가신들도 그 대호령에 경악했다.
침묵을 찢는 거대한 목소리도 그렇지만, 뭣보다 병사들의 표정이 달리 보였다. 연회에서의 느슨한 표정이 아니라, 세차게 날뛰는 무사의 표정이 되어 있었다.
"전원에게 2호 장비(弐号装備)를 명합니다. 그리고 겐로(玄朗) 할아버지, 사격 정밀도가 높은 사람을 200명 모아주세요. 별도의 임무를 하달합니다"
"옛!"
2호 장비란 중무장이 아니라 기동력에 중점을 둔 장비이다. 숫자는 형식번호에 지나지 않아, 1호 장비(壱号装備) 쪽이 뛰어나다는 것은 아니다.
"당신들을 필요로 하는 때는 금방 옵니다. 그 때까지 각자 예기를 돋구어 주세요"
기염을 토하는 병사들에게서 등을 돌려 시즈코는 부대장인 겐로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시즈코로부터 명령을 받은 그들은, 각자의 사명을 수행하러 달려나갔다.
병사들의 사기나, 정연히 행동하는 높은 통솔력에 도쿠가와 가문 가신들은 시종 압도되어 있었다.
농성전은 수비적이 되어, 전황의 악화에 따라 사기는 떨어져간다. 무장들은 어떻게 사기를 유지할지에 부심해온 것이다.
그런데 시즈코 군은 참전 직후라는 점을 감안해도 압도적으로 사기가 높았다. 자군과의 차이는 무엇이냐는 의문이 가로놓였다.
"당신은 무언가를 꾸미고 있군요"
시즈코의 연설을 멀리서 보고 있던 야스마사(康政)는 확신에 가까운 예감을 받았다.
타케다 군은 하마마츠 성을 목표로 진군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공성전을 벌일 생각 따윈 조금도 없었다. 하마마츠 성은 견고한 성이다. 신겐은 오다와의 결전을 앞두고 쓸데없이 병력을 소모시키고 싶지 않았다.
책략을 써서 도쿠가와를 성에서 끌어내어 미카타가하라(三方ヶ原方)에서 야전(野戦)으로 끌어들여 조기 결전으로 박살내버리는 것이 타케다에게는 상책(上策).
굳게 문을 걸어잠그고 농성하고 있는 적이 스스로 치고나오게 한다. 보통은 쉽지 않지만, 이번에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대답은 단순했다. 하마마츠 성을 우회해서 다음 성을 노린다.
타케다의 진군을 성에 틀어박혀서 멀거니 보고만 있으면, 원군을 받아놓고 오다를 저버린 배신자라고 후대(末代)에까지 전해지리라.
그런 상대와 손을 잡을 사람은 없고, 또 가신들도 내일은 자기가 그렇게 당할 것이라며 떠나간다.
결과적으로 이에야스(家康)는 불리한 것을 잘 알면서도 치고 나올 수밖에 없어, 타케다는 전장을 스스로 설정할 수 있다는 우위를 얻는다.
신겐(信玄)은 하마마츠 성을 목표로 하지 않고 미카타가하라로 향하여, 호우다(祝田) 언덕(坂) 바로 앞에 진을 치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호우다 언덕은 출구로 갈수록 좁아진다.
대군을 상대로 습격하기에는 안성맞춤인 지형이며, 이에야스가 적은 병력(寡兵)의 불리함을 메꾸어 작은 승리를 거두러 움직일 것으로 신겐은 내다보고 있었다.
이에야스의 선택지를 좁히기 위해, 신겐은 또 하나의 계책을 추가했다.
"오야마다(小山田)를 불러라"
신겐에게 호출된 인물은 오야마다 노부시게(小山田信茂)였다. 그는 후다이카로우슈(譜代家老衆, ※역주: 대대로 섬겨온 가신 가문 출신의 가신들) 중 한 명으로, 신겐의 종조카(従甥, 사촌의 아들)이다.
"가까이 와라. 네게 한 가지 일을 맡기겠다"
신겐의 곁으로 다가가 오야마다는 귀를 기울였다. 신겐은 그에게 뭔가를 속삭였는데, 곁에 대기하고 있던 소성(小姓)에게조차 들리지 않는 작은 목소리였다.
신겐의 지시를 다 듣자, 오야마다는 대담한 미소를 떠올리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한 수로 도쿠가와는 외통수에 몰린다. 우리들의 수(手番)를 놓도록 하자"
오야마다에게 계책을 내린 후, 신겐은 정지시켜놓았던 군을 다시 진군하게 했다.
한편, 하마마츠 성에 있는 이에야스는 신겐의 행동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타케다가 하마마츠 성을 목표로 한 것 까지는 예상한 대로다. 하지만, 미카타가하라 부근에서 행군을 멈추었다. 여기에서 성을 공격할지, 아니면 병력을 나누어 길을 재촉할지, 상대가 어떻게 나올지를 볼 필요가 있다"
이에야스는 아침부터 작전회의를 열어, 신겐의 행동에 과민해져 있었다. 뭐라 해도 이건 일생일대의 무대(大一番). 나라가 멸망하느냐 살아남느냐의 기로에 서 있는 것이다.
사소한 정보라도 놓치지 않겠다고 혈안이 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 긴장은 가신들에게도 전염되어, 진 안은 묘한 긴장감에 휩싸여 있었다.
그런 와중에 시즈코만큼은 부채를 부치며 느긋한 태도였다. 분위기에 휩싸여 긴장해서 시야가 좁아지면 이길 수 있는 싸움도 이기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오다와 도쿠가와의 협공을 피해 타케타가 철수할지도 모릅니다"
"지나치게 낙관적이오. 만약 철수한다면 지금까지 항복시킨 영지는 반기를 들겠지. 뭔가의 계책을 부려 우리들을 칠 거라 생각하는 게 이치에 맞소"
도쿠가와 가문 가신들은 결론이 나지 않는 의논을 반복하고 있었다. 뭔가를 하지 않으면 불안에 깔려죽어버리겠지라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그들의 야단법석을 신경쓰지 않고 시즈코는 가만히 시간이 되기를 기다렸다. 조금 후면 타케다 군이 공격해온다. 그 때부터 시즈코의 타케다 전투의 계책이 시작된다.
"주군(ご注進)! 타케다 군이 진군을 개시! 그 때 병력을 나누었다고 합니다!"
"두 번째 도박도 우리들의 승리다!"
보고를 들은 이에야스는 자기도 모르게 무릎을 쳤다. 이에야스에게 타케다 군의 분할은 문제가 아니었다. 대단히 신중한 계책을 취하는 타케다가, 하마마츠 성을 공격하지 않고 철수하는 쪽이 더 불리했다.
애초에 결과만 놓고 보면, 이에야스는 후타마타 성(二俣城)을 저버리기만 한 것이 되기 떄문이다. 물론 신겐에게도 철수는 손해를 보겠지만 이에야스 만큼은 아니다. 철수를 선택할 가능성은 적지 않았다.
"지금부터 농성전이 된다. 다들, 긴장하도록!"
갑주로 몸을 감싼 이에야스가 휘하의 무장들에게 호령했다. 이 때 그는 대망의 승기(勝機)에 눈이 멀어, 척후의 보고 후에 시즈코의 모습이 사라진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다른 사람들도 타케다 전군을 상대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 떄문에 눈앞의 준비로 주의가 소홀해져, 타다카츠(忠勝)조차 시즈코의 존재에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음? 시즈코 님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군)
처음으로 깨달은 것은 한조(半蔵)였다. 그는 신뢰할 수 있는 부하 한 명을 불러서 시즈코를 찾도록 가만히 명했다.
이제와서 도망쳤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모습을 감출 이유도 떠오르지 않았던 한조는, 시즈코의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 부하에게 조사를 명했다.
"아ー, 슬슬 시작되려나"
작전회의에서 무단으로 모습을 감춘 시즈코는, 겐로(玄朗)와 정예 총병(銃兵) 200을 이끌고 어떤 장소에 진을 치고 있었다. 시즈코 이외에는 진을 친 장소의 이점을 알지 못해 곤혹스러워하면서도 따르고 있었다.
감시와 호위를 맡은 도쿠가와 병사들도 마찬가지였으나, 시즈코는 생긋 웃을 뿐 그들에게도 설명은 하지 않았다.
그렇게 잠시 기다리고 있자니 누군가가 타케다 군을 발견했다고 외쳤다. 자신도 모르게 뛰쳐나갈 뻔한 겐로였으나, 시즈코의 가냘픈 손(繊手)이 그의 어깨에 얹혀져 제지하고 있었다.
"아직이에요. 당신들이 나갈 차례는 좀 더 뒤에요"
"하, 하지만 적을 앞에 두고 싸우지 않으면, 여기에 잠복하고 있는 의미가 없습니다"
그런 문답을 하고 있을 때, 타케다 군의 공성부대가 하마마츠 성에 투석(投石)을 개시했다. 방패에 등을 맡기고, 시즈코는 투석의 간격을 재고 있었다.
"나갈 차례는 있어요. 하지만, 아직 안 돼요. 투석은 위력을 무시할 수 없으니까요. 탄이나 체력을 좀 더 소모했을 때가 호기(好機)에요"
옜부터 투석은 검이나 창, 활과 어꺠를 나란히 하는 훌륭한 병기였다. 그냥 던지기만 하는 것뿐이라면 기술도 필요없고, 값싸면서 나름대로 위력도 있으며, 탄은 어디든지 굴러다니고 있다.
숙련자가 다루면 활보다도 멀리 돌을 던지는 경우도 있었다.
일본에서는 투석을 인지(印地)라고 부르며, 손으로 던지거나 투석기를 사용하거나 수건으로 던지는 등, 다양한 형태의 투석 기술이 있었다.
미카타가하라 전투에서 오야마다 노부시게가 투석병들(投石衆)을 이끌고 하마마츠 성을 공격했다고 한다.
그러나, 신장공기(信長公記)나 미카와 이야기(三河物語)에서는 '수역지자(水役之者)' 등의 투석부대에 관한 기재는 있으나, 오야마다 노부시게가 투석부대를 이끌고 하마마츠 성을 공격했다는 기재는 없다.
에도(江戸) 시대에 오독(誤読)된 것은 계기로, 오늘날까지 오야마다 노부시게가 투석부대를 이끌었다는 명확한 증가가 없었기에, 지금에 와서는 속설(俗説)로 정착되었다고 생각되고 있다.
"오호, 이런 돌을 쓰고 있구나"
던져진 돌을 몇 개 주워들어 시즈코는 방패에 숨어 확인했다. 돌이 방패를 때리는 격렬한 소리가 들려왔으나, 방패에는 특별한 가공을 해 두었기에 꿈쩍도 하지 않았다.
"주군! 느긋하게 관찰하고 있을 상황이 아닙니다. 슬슬 도쿠가와 군도 수상하게 생각할 것입니다"
"그래요? 그럼 시작할까요. 나는 좀 더 상대를 '띄워주고' 싶었지만요"
돌을 한 곳에 모은 후, 시즈코는 지휘채(采配) 대신 큰 나기나타(長刀)처럼 보이기도 하는 쿠제(kuse)를 들었다.
"점점 투석 간격이 길어지고 있어요. 상대의 탄이 줄어들고 있으니, 다음 투석을 기다려 투석병을 저격해 주세요"
"예, 옛. 알겠습니다"
"우선 100명이 일제히 사격(斉射)하고, 즉시 교대해서 다음 100명이 쏘는 거에요. 그 동안 처음의 100명은 장전하고 대기. 이걸 반복해서, 마지막에는 전원이 일제히 사격하는 게 작전이에요. 이제 곧… 좋아, 투석이 이제 곧 끝난다…… 지금이에요!"
선언함과 동시에 시즈코는 힘차게 일어섰다. 겐로들도 따라서 일어서서 타케다 군의 투석병들을 시야에 포작했다.
"발사!"
시즈코가 쿠제의 창끝을 타케다 군 쪽을 향해 내려치자, 죽 늘어선 100자루의 총구가 일제히 불을 뿜었다.
100명에 의한 일제 사격이었으나, 그 사격 타이밍은 완전히 딱 맞지는 않았다. 그 때문에 기관총 같은 단속적(断続的)인 총성이 하마마츠 성의 한켠에 울려퍼졌다.
갑작스런 총격에 놀란 도쿠가와 병사들이었으나, 곧 그 경악은 다른 색깔로 칠해졌다. 타케다 군의 투석병들 중, 앞열을 맡고 있던 100명 중 4할이 쓰러져 있었다.
감시병(物見)에게서 보고된 투석병들의 총 숫자는 약 300. 한 번의 사격으로 부대의 1할이 소모된 셈이다.
100발 중 40발 명중으로는 절반 이상 빗나간 것이지만, 처음 사격인 것과, 상대를 시인(視認)하고 있지 않았던 것이 원인이었기에 시즈코는 신경쓰지 않고 다음 호령을 내렸다.
"다음, 발사!"
"예…… 옛!"
처음으로 실전 투입된 신식총(新式銃)의 위력을 인식한 텟포슈(鉄砲衆)는, 엄청난 위력이 입을 벌리고 멍해 있었다. 그러나 시즈코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리고는 그 자리를 물러났고, 후열(後列)이 재빠르게 총을 겨누고 발포했다.
지나치게 빠른 후속 사격에 대응하지 못한 타케다 군의 투석병들은, 몸을 피할 수조차 없이 다시 많은 병사들을 잃었다.
거기에 숨통을 끊듯 제 3차 사격이 덮쳐갔다. 결국 부대를 수습하지조차 못한 채 대부분의 투석병들이 목숨을 잃었다.
"당신들은 약하지 않아. 다만 시류(時流)를 타지 못했어. 그 뿐이야"
말과 동시에 시즈코는 쿠제를 내리쳤다. 제 4차 사격은 총공격이 되어, 200개나 되는 총탄이 겨우 십수명의 타케다 병사들을 관통했다.
아군의 시체에 가로막혀 나아가지도 물러서지도 못한 채, 납탄의 폭풍 앞에서 타케다 병사들은 벌집이 되어 목숨을 잃었다.
그들이 쓰러짐과 동시에 시즈코는 개피리(犬笛)를 불었다. 반드시 전황을 지켜보는 군감(軍監)이 있을거라 생각해서, 시즈코는 그들을 습격하기 위한 병사들을 배치해두고 있었다.
"으아악!"
멀리서 희미한 비명 같은 소리가 들렸다. 매복하고 있던 것은 비트만 패밀리와, 그들의 명령에 따르도록 조교된 개(犬) 군단이다.
깊고 빽빽한 수풀이나 뒤쪽이 보이지 않는 나무 뒤에 숨어도 늑대나 개는 속일 수 없다.
아무리 주의깊게 숨어있어도, 체취로 위치를 들키게 된다. 아무리 발이 빠른 사람이라도, 늑대나 개에는 도저히 당할 수 없고, 전속력으로 계속 달릴 수 있는 한계도 슬플 정도로 차이가 있었다.
사냥개로서 교육된 개들은, 목표가 되는 인간이 지칠 때까지 추격하고, 빈틈이 생길 때까지 몰아붙인다.
피로 때문에 달릴 수 없게 된 사람을 집단으로 덮쳐서, 상대의 숨이 끊어질 때까지 방심하지 않는다.
존재가 노출된 시점에서 타케다 군의 군감들의 운명은 결정되었다.
"목이 있으면 설득력이 있을텐데… 저 안에서 목을 찾을 수 있을까?"
"무리라고 생각합니다"
메마른 웃음을 떠올리며 시즈코는 타케다 군의 시체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겐로는 그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을 일별하더니, 한숨과 함께 고개를 가로저었다.
투석병들을 이끌고 있던 장수를 확인하지 않고 공격했기 때문에, 어디에 장수들과 사병들이 있었는지 아무도 몰랐다.
거기에 겹쳐 쓰러진 시체는 300구 가까이나 되었다. 어슬렁어슬렁 나가서 원하는 수급을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
팔짱을 끼고 신음한 시즈코였으나, 결국 수지가 맞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수급을 포기했다.
"그럼, 일생일대의 연기를 해볼까요"
기지개를 한 번 켠 후, 시즈코는 쿠제를 걸머지고 이에야스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때를 조금 거슬러올라가, 작전회의 장소에 있던 이에야스는 혼란스러워하고 잇었다.
"한번 더 묻겠다. 적의 숫자는 300, 이 틀림없느냐?"
"예, 옛. 놈들은 단속적으로 투석을 하고 있습니다. 어찌할까요"
다시 확인한 이에야스였으나, 척후로부터의 대답은 전과 다름없었다. 이에야스는 팔짱을 끼고 깊은 생각에 빠졌다.
(타케다 군이 300이라고? 어떻게 된 거냐, 300은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적다. 그 정도의 병력으로는 하마마츠 성에 제대로 된 피해조차 줄 수 없지. 신겐 땡중놈(坊主)이 노리는 것은 무엇이냐? 겨우 300으로 뭘 하고 싶은거냐?)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적의 노림수를 알 수 없었다. 그 때문에 이에야스는 초조해져서, 비지땀을 흘리며 더욱 깊은 생각에 잠겼다.
이윽고 이에야스는 혼란시키는 것이말로 노림수가 아닐까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아주 웃기고 있군! 내가 병사를 이끌고 박살내주겠다! 겨우 300 정도, 개수일촉(鎧袖一触)이다"
"잠깐 기다리게. 300뿐이라고 장담은 못하지. 버리는 말에 낚여서 나갔다가 본대가 버티고 있을 경우 무의미하게 병력을 소모할 뿐이다"
"하지만 이대로 보고만 있으면 우리들의 체면 문제가 있네"
도쿠가와 가문 가신들도 적의 노림수를 알 수 없어 의견이 갈려 방침이 정해지지 않았다. 한편, 오다 가문 가신들은 그 분규(紛糾)를 조용히 바라볼 뿐, 적극적으로 의논에 참가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어흠, 도쿠가와 님. 물론, 치고 나가시겠죠? 아니면 지성(支城)을 지탱하고 있는 사람들이 버티지 못합니다. 설마 타케다가 다른 곳으로 갔을 때 우리들이 등뒤를 찌르는 작전을 잊으신 겁니까?"
도쿠가와 가문 가신들 사이에서 결론이 나오지 않는 것이 서서히 초조함을 느낀 사쿠마(佐久間)가 이에야스에게 진언했다. 사쿠마도 300명의 뒤에 대군이 버티고 있을 가능성은 이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기다려봤자 확증은 얻을 수 없는 이상, 300명의 병사들을 박살내는 것 이외에 방법은 없다.
대군이 버티고 있을 경우에는 즉시 철수할 필요가 있지만, 그 때에 나올 희생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기다리시오. 아무래도 타케다의 속셈이 보이질 않소. 1만의 병력이 지키고 있는 하마마츠 성에, 뭣 때문에 300 정도를 파견했는지…… 그렇군!"
간신히 이에야스는 타케다의 노림수를 눈치챘다. 그리고 눈치챔과 동시에, 이미 승패는 결정지어져 버린 것을 깨달았다.
이대로 농성하면 300 정도에 겁먹고 틀어박혀 아군을 저버렸다는 오명이 후세까지 따라붙는다.
이에야스가 판단을 망설이고 있는 동안, 타케다는 유유히 미카와(三河)를 침략한다. 그렇게 되면 미카와와 토오토우미(遠江)는 분단되어, 미카와의 탈환은 절망적이 된다.
타케다에게 미카와를 빼앗긴다. 그것은 도쿠가와가 본거지를 잃는 것과 동시에, 오다 가문과도 분단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대로 치고나가서 만약 300의 배후에 본대가 버티고 있다면 유린당한다. 타케다는 이에야스가 치고 나올 것을 계산에 넣고 간단히 철수를 허용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에야스는 당분간 군으로서 움직일 수 없게 된다. 그 동안 타케다는 미카와로 병력을 진군시키리라.
어느 쪽을 선택해도 승리는 없다. 그것에 이에야스는 떄가 늦었음을 이해했다.
그리고 도쿠가와와 오다가 분단되면, 어느 쪽인가가 먼저 멸망당하고, 그 후에 남은 한 쪽이 멸망당하는 미래밖에 없다는 것도.
"도쿠가와 님, 무엇을 망설이십니까! 이대로는 우리들의 패배는 필연적! 어서 출진 명령을!"
"기, 기다려 주시오, 사쿠마 님. 알 수가 없습니다. 타케다의 속셈을 알지 못하여, 우리들은 타케다의 기보(棋譜) 대로 움직이고 있는게 아닌가, 라고밖에 생각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망설이고 있을 틈은 없습니다. 타케다의 속셈은 알 수 없습니다만, 300 정도에 농성을 계속하면 후세에까지 비웃음당할 것이 뻔합니다"
"그렇…… 소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대답이 궁한 이에야스에게 사쿠마나 히라테(平手)가 짜증을 느꼈다. 잠시 기다렸으나 대답을 내놓지 못하는 이에야스에게, 사쿠마의 짜증이 정점에 달했다.
"어째서, 망설하시는 겁니까. 혹시…… 처음부터 타케다의 움직임을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니겠지요!"
사쿠마가 말한 순간, 그 때까지 분규하고 있던 장내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터질 듯이 긴장된 것으로 변화했다. 도쿠가와 가문 가신들은 주군이 우롱당한 것에 격분하여 사쿠마를 노려보았다.
"웃기지 마라! 우리들이 얼마나 오다를 위해 진력해왔다고 생각하는 거냐!"
격앙하는 것도 당연한 반응이다. 사쿠마의 대사는, 도쿠가와가 오다를 배신했다고 단정하고 있었다.
배신자라는 욕을 먹고 분노를 느끼지 않는 사람은 없다. 게다가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는 그 자리에서 의심받으면 더욱 그렇다.
무수한 적의에 노출된 사쿠마였으나, 겁먹는 기색도 없이 다시 말을 하려 했다. 하지만, 그 전에 갑자기 사쿠마가 앞으로 기울더니 기세좋게 바닥을 굴렀다.
"시끄럽다, 멍청이가 재잘대지 마라"
사쿠마가 바닥을 구른 이유는, 소리도 없이 사쿠마의 등 뒤로 돌아간 아시미츠(足満)가 용서없이 걷어찼기 때문이다. 낙법이고 뭐고 없이 이마를 바닥에 처박은 사쿠마는, 아픈 곳을 손으로 눌렀다.
"아시미츠 님, 이게 무슨 짓이오! 아무리 시즈코 님의 가신이라고 하나, 이러한 행패는 용납되지 않소!"
"멍청이가 멍청한 소리를 하니까 멈춘 것 뿐이다. 어리석은 자로서 이름을 남기고 싶다면 다른 곳에서 해라!"
히라테의 격앙도 아시미츠는 태연한 표정으로 흘려넘겼다. 이번에는 오다 가문 가신들 사이에서 다툼이 일어날 뻔 했으나, 그 전에 시즈코가 작전회의 장소로 들어왔다.
"아ー, 여러분 기다리셨…… 아니 뭔가요, 이 분위기는"
도쿠가와 가문 가신들은 자신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사쿠마가 이마를 손으로 감싸면서 히라테와 함께 아시미츠에게 따지고 있었으나, 아시미츠는 태연한 표정으로 흘려듣고 있었다.
일촉즉발(一触即発)의 분위기이면서 뭐가 어떻게 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혼돈스러운 상황에 시즈코는 고개를 갸웃했다.
"상황은 잘 모르겠습니다만, 일단 사쿠마 님, 히라테 님, 미즈노(水野) 님. 여기 이것, 영주님으로부터의 명령서(指示書)입니다"
상황을 이해하기보다 작전대로 진행하는 쪽이 우선이라고 판단한 시즈코는, 노부나가로부터 받아온 주인장(朱印状)을 사쿠마들에게 건넸다.
내용은 '시즈코의 명령에 따라라, 아니면 일가족 몰살(根切り)이다'로 대단히 알기 쉬웠다. 내용을 알고 놀랐으나, 노부나가의 명령이라면 따르지 않을 수는 없어, 사쿠마들은 입을 다물었다.
"그럼, 우선 보고를. 하마마츠 성에 온 타케다 병 300명은 처리했습니다. 그리고 뒤에 대군은 버티고 있지 않습니다"
"……그 전에 한 가지 질문해도 괜찮겠소?"
"네, 괜찮습니다"
지금까지 본 적도 없을 정도로 진지한 표정의 이에야스에게 내심 겁을 먹은 시즈코였으나, 표정에는 드러내지 않고 태연한 태도를 취했다.
"방금, 사쿠마 님께 우리들 도쿠가와 가문이 오다를 타케다에게 팔아넘긴 것인가, 라는 추궁을 받았소.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솔직한 의견을 듣고 싶소"
"저는 도쿠가와 님의 배신 따위 전혀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다"
"어째서 그렇게 단언할 수 있으십니까"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원군을 보내겠다고 결단하신 영주님을. 만약 도쿠가와 님이 배신했다면, 영주님꼐서는 원군을 보내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다. 도쿠가와 님을 믿으셨기에 영주님께서는 원군을 보내셨습니다. 그렇다면, 가신인 제가 영주님을 믿는 것은 당연한 도리가 아닙니까"
시즈코의 말에 이에야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노부나가가 이에야스를 믿었으니, 시즈코는 이에야스를 믿는다.
하극상이 당연하고 부모가 자식을, 자식이 부모를 팔아넘기는 시대에서, 이에야스는 그렇게까지 노부나가를 신뢰하고 있는 시즈코에 놀라는 것과 동시에, 그렇게까지 신뢰받는 노부나가가 부러웠다.
"당신에게 그렇게까지 신뢰받는 오다 님에게, 약간이지만 질투를 했습니다. 어흠… 거짓이 없는 당신의 눈을 믿도록 하지요"
"감사합니다. 다짜고자 죄송합니다만, 지금부터 어떤 계책을 실행합니다. 한 번만 말씀드릴테니, 잘 들어 주십시오"
그리고 시즈코는 년 단위로 덥혀온 계책을 말했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했던 이에야스도, 도중부터 시즈코의 계책에 죽죽 빨려들어갔다.
이에야스가 그렇게 되었기 때문인지, 가신들도 빨려들어가고 있는 것은 간단히 알 수 있었다.
"……정말로 가능한 건가?"
마지막까지 들은 이에야스는 의문을 중얼거렸다. 지금까지 노부나가나 시즈코의 행동이, 계책을 듣고 겨우 전체가 이어져 있는 것을 이에야스는 이해했다.
하지만, 최종적인 도달지점이, 작전이 성공할지는 아직 확신을 가지지 못하고 있었다.
"가능하다 불가능하다가 아닙니다. 하는 겁니다. 불안하시면 도쿠가와 님께서는 농성하고 계셔도 괜찮습니다. 오다 군 만으로…… 아니, 제 군만으로도 작전을 실행합니다"
잠시 생각한 후, 이에야스는 시즈코의 눈을 보았다. 망설임 없이 일직선으로 나아가는 눈이었다. 여기서 자신이 계책에 찬성하지 않더라도 시즈코는 자신의 군 만으로 실행할 것이다. 말로 하지 않아도 눈으로 또렷하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천정 쪽으로 고개를 든 이에야스는 눈을 감았다. 10초 정도 지났을 무렵, 이에야스는 눈을 뜨고 시즈코를 바라보았다.
"알겠습니다. 도쿠가와 가문의 운명, 당신에게 맡기지요!"
뺨을 힘껏 후려쳐 기합을 넣은 후, 이에야스는 시즈코의 계책에 찬성한다고 선언했다.
"다들! 준비하라! 우리들 미카와 무사의 의지를 보여주자!"
"주군…… 옛!"
멍하니 있던 도쿠가와 가문 가신들이었으나, 이에야스의 선언을 듣자마자 표정이 변했다. 전사(いくさ人)의 표정이 된 도쿠가와 가문 가신들은, 공기가 찌릿찌릿 진동할 정도로 큰 목소리로 기합을 넣었다.
이에야스도 지지 않겠다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그가 목소리를 높일 떄마다 가신들의 사기가 올라갔다.
"말을 끌고와라! 우리들 도쿠가와의 힘, 저놈들의 눈에 똑똑히 새겨주자!"
싸움 준비가 끝나자, 오다-도쿠가와 연합군 2만은 하마마츠 성에서 출진했다. 전군은 미카타가하라 대지(台地)를 북상하여, 몇 갈래의 길을 통해 북쪽 끝에 있는 네아라이마츠(根洗松) 부근으로 향했다.
시즈코들은 도착하기 전부터 범상치않은 압박감을 느끼고 있었다. 말로 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야마가타 마사카게(山県昌景)가 합류한 신겐의 본대 2만 7000이 기다리고 있는 것을.
도중에 복병의 습격이 없었던 것은 자신감의 발로인지, 아니면 복병을 알게되어 오다-도쿠가와 군이 철수할 가능성을 고려한 것인지, 어쨌든 타케다 군의 깃발이 보일 때까지 습격은 받지 않았다.
"도착했네요"
시즈코의 예상대로, 그리고 지형을 바탕으로 계산한 지점에 타케다 군은 포진하고 있었다.
"이것이…… 타케다 군인가"
타케다 군에게서 뿜어지는 위압감에 나가요시(長可)는 침을 삼켰다. 하지만 즉시 얼굴을 후려쳐 기합을 넣으며, 위압감에 삼켜질 뻔 했던 마음을 다잡았다.
"좋았어! 쳐부숴주마!!"
"기합을 넣는 건 좋지만, 도가 지나쳐서 쓸데없이 힘을 빼지 마라"
"지금부터 즐거운 싸움이 시작된다고. 촌스러운 소리는 하는 게 아니지"
"……내 생애에서 가장 가혹한 하루가 되겠지"
나가요시, 사이조(才蔵), 케이지(慶次), 타카토라(高虎)가 각자 나름대로 기합을 넣으면서 시즈코의 곁을 떠나 지정된 배치에 당했다.
그들의 뒷모습을 전송한 후, 시즈코는 신호를 보내 각 부대에 빠르게 배치에 당하도록 명했다.
중핵은 시즈코 군, 좌우에 사쿠마, 히라테, 미즈노, 후방을 도쿠가와 군이 담당했다.
진형은 봉시진(鋒矢陣)에 가깝지만, 화살표 끝부분에 텟포슈가 배치되고, 게다가 화살표 중앙에 시즈코가 있는 점이 종래의 봉시진과 달랐다.
"오늘만큼은 이것저것 따질 여유는 없네"
말 위에서 시즈코는 몸을 가볍게 움직여 풀어준 후, 몇 번인가 심호흡을 했다. 시즈코에게는 병사들을 고무하기 위해 목소리를 높일 의무가 있다. 손동작이 잘 보이도록 하얀 장갑을 착용했다.
"들어라!! 우리 병사들아!!"
병사들이 일제히 시즈코 쪽으로 몸을 돌렸다. 잠깐 간격을 둔 후, 시즈코는 말을 이었다.
"우리들의 앞에 있는 것은, 일본 최강으로 이름높은 타케다 군이다! 그리고 이름높은 무장들이 모두 모여 있다! 그야말로 타케다 군의 총력이 결집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총력이 결집이라는 말에 병사들의 표정이 변했다. 상대는 일본 최강의 군대, 그 군대의 모든 것이 결집되어 있는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불안이 병사들에게 엄습했다.
"하지만 그들을 앞에 두고 말하겠다! 그들은 어제까지 상대가 약했던 덕을 본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을 마침과 동시에, 시즈코는 쿠제를 하늘높이 치켜들었다.
"나는 믿는다! 우리들은 타케다에게 뒤떨어지지 않는 정예인 것을! 놈들에게 보여주자꾸나! 일본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보여주자꾸나! 우리들의 진짜 힘을!!"
"오, 오오오오!!"
불안을 날려버리려는 듯 병사들이 목소리를 높였다. 손에 든 무기를 치켜들며 고함을 지르자, 그걸 본 뒤의 병사들이 뒤를 잇듯이 목소리를 높였다.
"놈들을 얕보지 마라! 하지만 두려워하지 마라! 놈들은 강자가 아니다. 우리들의 무공(武功)의 초석이다! 제군들! 무공을 세워 이름을 높여라!"
"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이 싸움, 이긴… 것은 우리들이다!!"
"우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거의 모든 병사들이 고함을 질렀다. 그것은 떨어져 있떤 타케다 군의, 신겐이 있는 장소까지 들릴 정도였다.
오다-도쿠가와 군의 목소리를 허세라고 보았는지, 타케다 군 사이에는 조용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꽤나 허세를 부리는군"
"우리들 적비대를 앞두고 여전히 기염을 토한 것은 칭찬해 줄만 하지. 오다-도구카와 연합군을 칭찬해주자!"
"사기만으로 우리들에게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어설프다고밖에 할 수 없지!"
타케다 군에게는 고무(鼓舞)의 내용까지 들리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방심과도 닮은 과소평가에, 개중에는 모멸적인 말까지 들려왔다.
타케다 군은 어린진(魚鱗陣)을 전개하고 있었다.
선봉에 오야마다 노부시게, 그 배후에 야마가타 마사카게의 두 군이 제 1진.
좌익에 바바 노부하루(馬場信春), 중앙에 나이토 마사토요(内藤昌豊), 우익에 사나다 노부츠나(真田信綱), 마사테루(昌輝), 마사유키(昌幸) 3형제의 세 군이 제 2진.
좌익에 스와 카츠요리(諏訪勝頼, 뒷날의 타케다 카츠요리(武田勝頼)), 중앙에 타케다 노부토요(武田信豊), 우익에 요네쿠라(米倉) 탄고노카미(丹後守)의 세 군이 제 3진.
그리고 가장 뒤에 타케다 가문 일족이나 코사카 마사노부(高坂昌信)와 타케다 신겐(武田信玄)이 이끄는 본진이 있었다.
합계 4진으로 구성되는 타케다 가문 최강의 포진은, 불꽃처럼 공격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기다리고 있는 것은 타케다 신겐이 내릴 공격명령 뿐이었다.
(역시 그 불안(胸騒ぎ)은 기우(気の迷い)였나. 하지만, 사기가 높은 상대는 방심할 수 없지)
오다-도쿠가와 군의 목소리를 얕보는 사람이 많은 타케다 군에서, 신겐만이 목소리를 듣고 반대로 긴장을 조였다. 적은 한 번 떨어지려던 사기를 드높인 것이다. 긴장하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다소의 장애가 될 뿐 신겐은 승리를 의심하고 있지 않았다. 왜냐하면 오다-도쿠가와 군은 유리한 농성을 버리고, 신겐이 가장 자신있는 야전(野戦)에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옛부터 야전은 병사의 숫자가 많은 쪽이 우세하다. 오다-도쿠가와 연합군은 많이 잡아도 2만 몇천 정도. 그에 반해 타케다 군은 3만에 달하는 병력으로 포진하고 있다.
숫자상으로는 수천의 차이지만, 수천의 차이는 간단히 메울 수 있는 차이가 아니다. 승리를 확신한 신겐은, 불안했던 것은 기우라고 단정하고 지휘채를 손에 들었다.
공격명력이 떨어진다. 그 정보는 신겐이 말로 하지 않아도 눈 깜짝할 사이에 타케다 군 전체에 퍼졌다.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으나, 신겐은 신경쓰지 않고 지휘채를 하늘높이 들어올렸다.
"외통수이니라"
그렇게 말하며 신겐은 지휘채를 오다-도쿠가와 군으로 향했다. 그것이 공격명령이라고 이해한 순간, 신호병(貝役)이 소라고둥(法螺貝)을 불고, 북치는 병사가 전고(陣太鼓)를 힘있게 두들겼다.
그 소리를 들은 타케다 병사들은 공기를 뒤흔드는 포효를 내지르며 오다-도쿠가와 군에 돌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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