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겐키(元亀) 3년 결전(決戦), 미카타가하라(三方ヶ原) 전투
088 1572년 5월 상순
피자의 역사는 의외로 얼마 되지 않았다. 정확히는 피짜라고 불리는 그 요리는 이탈리아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평평하게 늘린 빵반죽 위에 다양한 토핑을 얹어 구워내는 심플한 요리다.
원반 모양의 평평한 빵은 세계 각국에 보이지만, 위에 토핑을 얹어 굽는다는 방법이 현재의 피자의 조리법과 닮은 것 때문에 이집트에서 전래되었다는 설도 있다.
현재의 피자에 가까운 요리가 등장하는 것은 18세기 후반, 나폴리의 노점이었다.
당초에는 서민의 음식으로서 친숙해진 피자였으나 세련되고 세분화되어가서, 19세기 초에는 피자 전문점이라는 의미의 피체리아(pizzeria)가 등장하는 등, 이탈리아의 폭넓은 층에 침투해 갔다.
피자의 역사가 오래되지 않은 요인은 토마토에 있다. 피자에 빠질 수 없는 재료인 토마토는, 스페인 인이 대항해 끝에 남미의 잉카에서 가지고 돌아온 것이다.
하지만 16세기에는 유럽에 토마토를 가지고 돌아갔으나, 당초에는 식용으로 생각되지 않았었다.
토마토와 같은 가지과의 식물 벨라도나(Belladonna)가 유럽에서는 유독 식물로 유명했기에 오로지 관상용으로 재배되었다.
여기서 기근이 이탈리아를 덮친다. 식량 확보에 고심하던 서민들은, 누구도 쳐다보지도 않던 토마토의 열매를 먹을 수밖에 없었다.
굶어죽는 것보다야 낫다고 생각해 토마토를 먹어보니 정말 맛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 이후, 이탈리아 요리에 붉은색을 곁들이는 빼놓을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이야기를 피자로 되돌리자. 당초에는 나폴리의 빈민층이 먹는 것이라는 위치였던 피자였으나, 이탈리아 왕비 마르게리타(Margherita)에게 헌상되어, 그녀가 사랑했기에 일반에 퍼져나갔다.
왕비가 좋아하여 자신의 이름을 붙인 마르게리타 피짜는 나폴리 피짜의 대표이다. 토핑은 심플하니 세 종류, 바실리코(basilico, 바질(basil)), 모차렐라 치즈, 토마토 소스만을 사용한다.
그녀가 이 요리를 사랑한 이유로, 세 가지 토핑이 갖는 색깔이 이탈리아 국기를 연상케 한 점이다. 심플하기에 얼버무림이 통하지 않는, 만드는 사람의 실력이 시험받는 나폴리 피짜의 임금님이다.
여담이지만, 피자와 피짜는 전혀 다른 요리이다. 그냥 본국풍의 발음이 피짜인 것이 아니라, 재료부터 먹는 방법까지 다르다.
피짜가 이탈리아 요리인 데 반해, 피자는 피짜를 기초로 미국에서 개량된 미국 요리이다.
피짜가 원칙적으로 한 사람당 한 장을 먹는데 대해, 피자는 한 장을 여러 사람이 나누어 먹는 일이 많다.
도우(dow)라고 불리는 반죽의 맛과 식감을 주역으로 삼는 피짜에 대해, 피자는 토핑이야말로 메인이며, 반죽은 곁들이는 것이다.
참고로 일본의 피자에서는 정석적 토핑인 옥수수나 감자, 마요네즈는 미국에서조차 이질적으로 비치는 듯 하다. 원조인 이탈리아인이 일본의 피자를 피짜라고 인정하지 않겠다고 강변하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이야기다.
그런 피짜를 16세기의 일본에서 재현해보인 것이 시즈코였다. 이유는 물론 노부나가이다. 시대의 최첨단을 달리는 오와리(尾張)에서 나는 식재료를 활용한 요리를 의논한 결과, 노부나가의 절대적 명령(鶴の一声)으로 시작되었다.
현대에서는 다양한 토핑이 올라가 있는 피자였으나, 그만한 재료를 준비하는 데는 수고가 든다. 그래서 나폴리 피짜의 대표이자 심플하고 맛있는 마르게리타 피짜가 선택되었다.
그래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바질은 재배가 쉽기 때문에 그다지 수고가 들지 않지만 문제는 모짜렐라 치즈와 토마토 소스이다. 특히 모짜렐라 치즈는 어렵다.
모짜렐라 치즈는 물소(水牛)의 젖을 원료로 만들지만, 전국시대의 일본에 물소는 존재하지 않는다. 또 수입해서 사육하려고 해도, 다습한 환경인 일본에서는 대단히 손이 많이 가서 어렵다.
하지만 물소 젖을 고집하지 않는다면 대용은 가능하다. 소에서 짠 우유에 레몬즙과 약간의 소금을 넣어 끓이면 모짜렐라 치즈의 대용품은 얻을 수 있다.
어느 쪽이냐 하면 리코타(Ricota) 치즈에 가깝지만, 이것저것 따질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1년 내내 토마토를 입수 가능한 현대와 달리 딱 좋게 익은 토마토가 열매를 맺고 있을 리도 없어서, 케첩에 양파와 마늘, 가루치즈, 소금과 후추를 섞어 토마토 소스의 대용품을 만들었다.
하지만, 마지막이자 최대의 문제가 하나 있었다. 시즈코는 피자의 반죽을 만들어 본 경험이 없었다.
"설마 이 나이에 피짜를 구울 줄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셈으로 미츠오(みつお)에게 물어봤더니, 운좋게도 그는 피짜를 만들어 본 경험이 있었다. 어째서 경험이 있냐고 하면, 매번 그렇지만 부업의 아르바이트로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도 일했었기 때문이다.
그 밖에도 어업을 돕거나, 농가에서 수확을 돕거나, 실로 경험이 풍부한 미츠오였다.
"하지만, 피짜 아궁이에서 굽는 쪽을 경험하셨을 줄은 몰랐어요"
"그 가게는 본격적인 이탈리안 레스토랑이라서요. 사장이 일부러 이탈리아까지 벽돌을 사러 갔었다고 합니다. 바질도 자택에서 재배하고, 모짜렐라 치즈를 들여올 곳을 찾는 등, 꽤나 진지했죠ー"
"이것저것 경험하셨군요"
"……그 시절은 불경기였거든요. 샐러리맨의 박봉으로는 딸을 고생시키지 않을 만한 수입을 얻을 수 없었습니다"
말이 끝남과 동시에 미츠오는 한숨을 쉬었다. 그의 어깨에 아시미츠(足満)가 손을 얹고 위로했다. 시즈코 자신은 현대의 노동을 거의 해본 적이 없지만, 생계를 위해 일한다는 것은 힘들겠구나라고 생각했다.
"뭐, 이런저런 일이 있었습니다만, 이쪽에서 가장 좋은 점이라고 하면 이것저것 먹을 수 있다는 거군요. 대뱃살(大トロ)을 마음껏 먹다니, 저쪽에선 돈이 아무리 많아도 부족하니까요"
"참치도 그렇지만, 다양한 생선이 적당한 가격으로 손에 들어오는 건 좋지"
어두운 화제로 분위기가 나빠졌다고 생각했는지, 미츠오는 일부러 밝은 분위기로 말했다. 아시미츠도 시즈코도 쓸데없니 무거운 분위기를 끌고 갈 생각은 없었기에, 그에게 맞장구를 쳤다.
"참치는 인기가 없으니까요. 뭐 피빼기와 신경빼기(神経抜き), 그 후에 바닷물로 만든 얼음을 만들지 못하면 속살이 익어서 맛없어지니까요"
참치는 도미(鯛) 등 다른 생선과 마찬가지로, 죠몬(縄文) 시대부터 식용으로 쓰인 친숙한 생선이다. 하지만, 참치는 에도(江戸) 시대 중반까지는 인기없는 생선이었다. 그것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쿄(京)는 도미 등 흰살생선을 최고로 치고, 그 이외의 생선은 하급어(下魚)로 취급했다. 참치는 붉은살 생선이기에 당연하지만 저급어(低級魚)로 보았다.
다음으로 에도 시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참치는 '시비우오(鮪)'나 '시비(宍魚)'였는데, '죽는 날(死日)' 등 죽음을 연상시키는 단어와 발음이 겹쳐, 싸움 전에 길흉을 따지는(験を担ぐ) 무사들에게 인기가 없었다.
또, 붉은 살이기에 짐승 고기와 닮았다고 하여 '육(宍, 짐승 고기라는 의미)'의 한자가 쓰여, 옛부터 있는 육식 금지의 사상 때문에 기피되기 일쑤였다.
에도 시대에 들어서도 참치는 저급어 취급으로, 당시의 시(川柳) 중에 '참치장수(鮪売り)가 간단하다며(安いものさと) 나타(鉈)를 꺼내(鉈を出し)' (※역주: 제대로 된 식칼이 아니라 나타, 그러니까 마체테 비슷한 칼로 마구 썰어 팔았다는 의미로 보임)라는 것이 남아있는 것을 볼 때, 얼마나 참치가 값싼 생선이었는지 알 수 있다.
에도 시대 후기가 되어 쥠초밥(握り寿司)이 등장하자, 그 때까지 밭의 비료로 취급받던 참치의 지위가 겨우 향상되었다. 그리고, 냉동기술이 발달하면서 고급어(高級魚)의 반열에 합류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때까지 고급어의 반열에 들지 못했던 것은, 참치를 적절하게 처리하지 못했던 것이 원인으로 '야케(やけ)'라 불리는 선도 열화가 발생한 것이 원인이다.
참치는 배 위로 올라오면 심하게 난동을 부려 체온이 금방 40도까지 올라간다. 그렇게 되면 참치의 살이 변색되어버려, 겉보기와 맛이 열화된다.
또 피빼기와 신경빼기를 한 후 차게 식히지 않으면 피 속의 효소(酵素)가 근육을 분해하여 산화가 촉진되어 시큼한 맛이 된다.
에도에 도착할 무렵에는 겉보기에는 변함이 없지만 내부는 상온(常温)에서 며칠 방치된 것처럼 변한다. 이 때문에 참치는 '맛없는 생선'이라 생각되었다.
전국시대, 참치의 미야케(身焼け)를 일으키지 않고 운반하려면, 주낙(延縄) 어법으로 낚아올린 참치에 피빼기와 신경빼기를 한 후, 바닷물 얼음에 재워 항구로 가지고 돌아올 필요가 있다.
항구에 가지고 돌아온 후에도 처리는 계속된다. 바닷물 얼음에 재운 채로 운반하여, 시즈코 전용이자 전국시대에 유일하게 존재하는 냉동고에 넣어 2~3일 냉동 보존한다.
이렇게 하면 참치 내부에 있는 기생충을 사멸시킬 수 있다. 냉동처리가 끝난 후에도, 수고를 아끼지 않고 얼음물 해동을 하여 참치의 살을 숙성시킨다.
여기까지 하면 간신히 현대와 동등한 생식(生食)이 가능한 참치로서 취급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현대의 최신 시설을 이용한 -60도 이상으로 급속 냉동하여 세포의 변화를 방지한 참치와 비교하면 약간씩 세포의 열화는 발생하지만, 그래도 평범하게 낚아올린 참치보다 훨씬 맛은 좋다.
"급속 냉동이 가능하면 좋겠지만요ー. 아무래도 무리겠죠. 뭐, 대뱃살을 마음껏 먹을 수 있는 건 행복합니다. 술에도 잘 어울리고요. 그렇다고는 해도, 수백 kg짜리 참치는 잘 걸리지 않네요. 잘해봐야 100kg면 큰 편입니다"
"근해에도 흑참치 같은 건 있는 모양이니까. 의외로 근해에 생선이 풍부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
잡담을 하며 다 구워진 피짜를 그릇에 담고, 그것을 근처에서 기다리고 있던 호리들에게 건넸다. 받아든 호리들은 그것들을 노부나가들이 있는 큰 방(広間)으로 날랐다.
아무래도 수십인분의 피짜를 굽는 것은 굉장한 중노동이었다. 다 구워진 피짜는 차례차례 무장들의 위장 속으로 사라져갔다. 몇 장을 구워도 끝날 기색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후ー, 아무래도 슬슬 더워졌어"
피짜 아궁이의 불이 줄어들 기색은 없고, 설령 화력이 떨어지면 장작이 차례차례 투입되었다. 그 열기가 새어나와 주위에는 봄을 넘어서 한여름 같은 더위였다.
장시간 열기에 노출된 몸은 수분을 요구했다. 시즈코는 물에 설탕과 소금, 레몬즙을 넣은 스포츠 드링크를 한 모금 마셨다.
뜨겁게 달아오른 몸에 깊이 스며드는 차가운 스포츠 드링크는 최고였다.
"……저녁 식사인 참치는 속편하게 끝났으면 좋겠네. 근데, 어째서 내가 이런 걸 들여오면 다들 아무 말도 안해도 모여드는 걸까"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시즈코였으나, 그 이유를 그녀가 알게 되는 일은 없었다.
시즈코가 아무 말도 안 해도 노부나가나 무장들이 식재료의 반입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시즈코의 저택에 때를 같이하여 모여드는 데는 간단한 까닭이 있었다.
그녀의 임시 저택이 정해졌을 때부터, 시즈코 저택의 주위에는 노부나가나 주요 무장들의 친족으로 둘러싸였기 때문이다.
표면상으로는 시종(側仕え)이나 고용인이었으나, 그들은 평소부터 시즈코의 동향을 면밀히 관찰하여 그것을 자세히 주인에게 보고할 의무를 가지고 있었다.
원래는 아야가 그 임무를 맡았지만, 아야의 지위도 높아지며 다양한 일거리를 맡게 되어, 시기 적절한 보고를 올리는 것이 어려워졌기에 급거 대역으로서 친족들의 고용인이 선발된 것이다.
동향이라고 해도 전부는 아니고, 오직 먹을 것에 관한 것이었다.
시즈코는 현대의 요리를 미츠오나 아시미츠, 때로는 고로(五郎)와 함께 재현해고, 그것들의 레시피를 정기적으로 자신이 관리하는 마을의 식당가조합(飲食街組合)에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레시피를 기본으로, 각 요리사들이 나름대로의 개조를 했기에, 언제부터인가 식당가는 일식, 양식, 중식이 뒤섞인, 무국적 요리나 창작 요리에 가까운 것들이 넘쳐나게 되었다.
식욕이라는 것은 무시할 수 없다. 맛있는 요리라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마음을 풍요롭게 해준다.
예를 들면 해삼(ナマコ)이다. 현대에서도 일본산의 말린 해삼은 세계 최고급품이다. 전국시대에는 말할 것도 없고, 현대에서도 해삼이 얼마나 맛있는지 아는 사람은 적다.
하지만 바로 가까운 곳에 재료가 있고, 그 조리법이나 맛이 널리 알려지면 평가는 뒤바뀐다. 해삼 식초(ナマコ酢)나 해삼 내장(고노와다) 등이 술안주로 서민에게 알려지자 단번에 수요가 뛰어올랐다. (※역주: 일본이 이 고노와다에 아주 환장을 하기 때문에, 예전에 한국에서 나는 해삼의 고노와다는 외화벌이를 위해 전량 일본으로 수출되고 국내 유통이 금지된 적이 있었다고 하여, 산지에서나 조금(정말 조금) 맛볼 수 있는 정도였다고 함)
아무도 쳐다보지도 않던 재료의 수요가 높아지면 남획되어 숫자가 줄어드는 것이 세상의 이치이지만, 시즈코가 대대적으로 양식업을 하고 있었기에 '해삼도 양식이 가능한 게 아닐까?'라고 생각되어, 뜻이 맞는 사람들끼리 조합을 만들어 해삼의 연구가 수행되게 되었다.
해삼의 양식은 시즈코가 계획하고 실행에 옮긴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연구를 시즈코는 대대적으로 장려하여, 자금은 말할 것도 없고 기술 원조까지 했다.
해삼은 빛을 싫어하기 때문에 어두운 환경과 쾌적한 수온을 유지해줘야 하지만, 먹이는 다른 양식어가 먹고 남긴 것이나 배양한 돌말류(珪藻), 적당한 해초 분말이면 문제없다.
이러한 해삼의 양식업 착수가 다른 사람들을 자극하여, 방어나 참돔, 잿방어, 넙치(광어), 참전갱이, 참고등어, 보리새우 등 생선이나 새우의 양식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나오게 되었다.
다만, 의욕적으로 양식이 이루어지는 것은 식용 가능한 생물 뿐이며, 관상용 잉어(緋鯉) 같은 관상용 품종을 키우는 것 같은 별난 짓을 하는 것은 시즈코 뿐이었다.
양식업의 발달에 따라, 시즈코의 마을이나 항구 마을에는 다종다양한 식재료가 식탁에 올라오게 되고, 그 여파가 다른 마을까지 퍼져나가, 결과적으로 오와리의 구석구석까지 경제효과가 파급되었다.
땅을 지배하는 노부나가나 무장들은 아무 것도 안 해도 세수(税収)가 올라가니까 쓸데없는 참견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무장들도 인간이다. 맛있는 것을 먹고 싶다는 욕구는 있다. 아니 오히려 남들보다 배는 강하다고 할 수 있다.
특히 기폭제인 시즈코들이 가까이 있으니, 그녀들을 감시하면 한발 빨리 요리를 접할 수 있다. 그런 속셈이 맞물려 시즈코의 동향은 감시되고 있는 것이다.
본인이 알게되면 "무슨 짓을 하는거야"라고 어이없어할 이야기이긴 하지만.
"피짜인가 하는 것은 잘 먹었다. 하지만 역시 나는 쌀이 좋구나. 남만인들은 저런 것을 매일 먹고 질리지 않는 것이냐"
마르게리타 피짜를 맛본 노부나가는 감상을 말했다.
다들 그의 감상에 고개를 끄덕였지만, 매일 쌀을 먹고 있는 일본인을 보고 서양인도 같은 감상을 느끼지 않을까, 하고 시즈코는 마음 속으로 지적했다.
한동안 담소한 후 해산되었으나, 저녁식사에 참치가 나올 것이기에 다들 귀가하지 않고 각자 휴식을 만끽하고 있었다.
시즈코와 미츠오, 아시미츠, 고로에게 휴식 시간은 없다. 다음은 저녁 식사인 참치의 밑준비를 해야 한다.
아무리 고로가 미리 밑준비를 한다고 해도 그 혼자서 처리할 수 있을리가 없다. 피짜의 작업이 끝나자, 그대로 고로의 보조를 맡았다.
잠시 휴식한 후 조리장으로 이동하였는데, 설실(雪室)에서 숙성된 참치의 살을 앞에 두고 고로가 신음했다.
"시비…… 참치라는 건 부위가 많구만. 뭘 만들어야 할지 떠오르질 않아"
한마디로 참치의 살이라고 해도 배와 등, 볼, 정수리(脳天), 꼬리 등 다양한 부위에서 고기를 얻을 수 있다. 부위별로 명칭은 다르지만, 기름이 오른 정도에 따라 대뱃살(大トロ), 중뱃살(中トロ), 살코기(赤身)로 분류된다.
확실히 밑처리를 해두었기에, 미야케가 발생한 갈색이 아니라 깨끗한 붉은색 고기였다. 대뱃살도 기름이 듬뿍 올라 있었다.
"회(刺身)와 초밥(寿司)으로 참치의 맛을 느끼게 한다고 치고…… 그밖엔 뭐가 좋을까요?"
메뉴가 고민된 시즈코가 미츠오에게 물었다. 솔직히 시즈코도 고로와 마찬가지로 회와 초밥 이외에 이렇다 할 요리가 떠오르지 않았다.
시식할 때도 회와 초밥 정도밖에 떠오르지 않아, 결국 그걸로 끝내 버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노부나가들이 먹을 차례따. 회와 초밥만으로는 심심하다.
"으ー음, 이만큼 많이 있으니, 야마카케(山かけ丼, ※역주: 다랑어회에 산마즙을 곁들인 요리) 덮밥일까요. 와사비나 본양조(本醸造) 간장도 있으니 맛있을거라 생각합니다"
"아, 선물로 참치 병조림(ツナ, ※역주: 흔히 말하는 참치캔의 참치인데, 적당한 단어가 없어 문맥상 참치 병조림이라고 의역했음)을 만들죠"
"참치 병조림이라고 하면 마요네즈를 뺄 수 없지. 하지만 참치마요는 위험하다, 밥이 지나치게 당겨"
"아시미츠 씨는 참치마요를 원하시는군요. 본양조의 쌀식초에 갓 낳은 계란, 갓 짜낸 유채기름(菜種油)이 있군요. 마요네즈는 충분히 만들 수 있습니다"
"아저씨가 말하는 마, 마욘네-즈? 가 뭔진 모르겠지만, 재미있을 것 같으니 만들어줘"
"아저씨가 아니라 미츠오입니다. 참치 병조림은 마늘에 생강, 소금, 유채기름이군요. 아, 그러고보니 후추가 있었죠. 이걸로 맛에 깊이를 낼 수 있습니다"
"후추는 아직 귀중하니까, 너무 많이 쓰지 마라?"
미츠오, 고로, 아시미츠 등 세 명은 참치를 앞에 두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요리를 했다. 끼어들 여지가 없네라고 생각한 시즈코는 쓴웃음을 지으며 볼을 긁었다.
"그럼 요리는 세 사람에게 맡길게요. 나는——"
"그럼 그 동안, 저와 같이 차라도 한 잔 어떠시겠소?"
"우와악!"
어느 틈에 등 뒤에 서 있었는지, 상쾌한 미소를 떠올린 사키히사(前久)가 시즈코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그렇게 말했다. 너무나도 예상밖이었기에 시즈코는 얼빠진 비명을 질렀다.
"핫핫핫, 놀라게 해버린 듯 하군요"
"……무얼 하러 왔느냐"
갑작스런 사키히사 등장에 놀란 고로와 미츠오였으나, 아시미츠는 꿍한 표정으로 질문했다. 아시미츠의 노려보는 듯한 시선을 받고도 사키히사는 표표(飄々)한 태도로 대답했다.
"아니, 저녁식사가 좀 궁금해져서 말이지. 잠깐 놀려주러 왔네. 그랬더니 뭔가 즐거운 듯한 목소리가 들려서 말이지. 방해하는 것도 미안하다고 생각하여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기다린 게지"
생글거리며 대답한 후 사키히사는 시즈코 쪽을 보았다.
"실례했소이다. 놀라게 할 생각은 없었는데, 결과적으로 놀래킨 상황이 되어버렸군요"
"어, 아뇨, 이쪽이야말로 이상한 소리를 내서 죄송합니다. 아, 차라면 기쁘게 함께하지요"
"그거 고맙군요. 그럼 나와 시즈코 님은 이만 실례하지. 세 사람 모두, 맛있는 저녁 식사를 기대하고 있겠네"
승락을 얻은 사키히사는 시즈코의 어깨에 손을 얹고 그녀를 에스코트했다.
사키히사는 멍해있는 표정의 고로와 미츠오, 불쾌한 듯한 표정의 아시미츠에게 사람좋은 웃음을 던지고는 주방에서 나갔다.
그 날의 참치 잔치(マグロ尽くし)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에도 시대의 사람들은 지방살(脂身)에 약하지만, 전국시대의 사람들은 전쟁이 계속되기 떄문에 에너지를 많이 필요로 한다.
필연적으로 에너지가 되는 지방살도 많이 섭취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복잡한 얘기는 관계없이, 지금까지 맛없어서 먹을게 못 된다고 하던 참치가, 실은 어느 정도의 처리를 하면 맛있는 생선이 된다는 쪽이 충격적이었다.
시비라는 불길한 이름을 완전히 무시하고 노부나가를 시작으로 오다 가문 가신들은 정신없이 참치 요리를 즐겼다.
"맛있었다. 하지만, 시비로는 이름이 영 좋지 않군. 이후에는 시비가 아니라 참치라고 부르도록"
이름의 불길함은 노부나가의 절대적 명령 한 마디로 해결되었다. 하지만 지금 이 상태로는 참치의 사치스러운 부분밖에 맛보지 못했다. 좀 더 참치의 장점을 맛보았으면 하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그래서 그녀는 한 수를 준비했다. 현대에서도 대인기인 참치 병조림을 준비하여 노부나가들에게 뿌렸던 것이다.
참치 병조림은 굴(牡蠣)의 기름절임처럼 기름으로 저온 가열하는 요리이다. 모양도 신경쓸 필요 없고, 참치의 남은 부분을 기름으로 가열해서 기름과 함께 병에 담으면 된다.
다음날 아침 식사에 참치마요 주먹밥을 내자, 그야말로 광희난무(狂喜乱舞)가 벌어져, 다들 참치마요 주먹밥을 탐닉했다.
아침식사 후에 병에 담은 참치 병조림을 나누어주었는데, 수십개나 되던 참치 병조림은 하나도 남김없이 노부나가나 오다 가문 가신들이 가지고 돌아가 버렸다.
"무, 무서운 참치마요!"
잔뜩 있던 참치 병조림이 깨끗하게 사라진 것에 고로는 아연실색했다. 참치 병조림이 남으면 술안주로 삼으려 했던 고로의 생각은 허무하게 무너졌다.
남은 것이라고 하면, 시즈코가 등사판 인쇄한 참치마요의 레시피와 마요네즈의 레시피 뿐이었다.
팥소(餡) 때처럼 주먹밥 내용물의 논쟁이 벌어지지 않아 시즈코는 만만세였으나, 고로는 그렇지 못했다.
"말했잖나. 참치마요는 위험하다고"
그런 그에게 아시미츠는 어깨에 손을 얹고 위로의 말을 했다. 미츠오는 뭐라 말할 수 없는 표정으로 볼을 긁고 있었다.
"뭐ー, 이후에는 참치도 잔뜩 들여올 수 있을테니, 다음 기회를 기대하시죠, 네?"
"그렇다, 고로. 오다 나으리는 마음에 들어하셨으니, 이후에는 얼마든지 기회는 있을거다"
심하게 낙담한 고로를 아시미츠와 미츠오가 달랬다. 처음에는 낙담했던 고로도, 다음 기회가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마음을 다잡았다.
참치 시식회가 끝난 지 며칠 후, 시즈코의 저택은 며칠 전의 떠들썩함이 거짓말 같은 고요함에 휩싸여 있었다. 작물의 재배 상황을 차분히 확인할 수 있었기에 시즈코는 조용한 것을 기뻐했다.
재배하고 있는 남국의 과일 중 가장 수확 시기가 가까워진 것이 망고였다. 둥그런 망고가 잔뜩 있었으며, 앞으로 몇 달만 지나면 잘 익은 과실이 된다. 수확 후에는 접붙이기(接木)로 묘목을 만들어 늘리면 된다.
씨앗부터 키우면 최소라도 6년, 길면 10년 가까이 걸리므로 씨앗부터 재배하지는 않는다.
망고스틴이나 라이치, 람부탄, 드래곤 프루츠 등은 재배에 성공했을 뿐, 아직 열매를 맺는 데 이르지는 못했다.
뭣보다 이 품종들은 접붙이기나 꺽꽂이(挿し木) 기술을 사용해도 열매를 맺을 때까지 몇 년은 걸리는 것이다. 특히 직사광선에 약한 망고스틴과, 직사광선이 필요한 라이치의 상성이 나쁘다.
한 쪽은 햇빛에 주의하고, 한 쪽은 햇빛을 쪼이게 할 필요가 있어, 묘목이 작은 상태에서는 혼동하여 실패할 우려도 있었다.
운좋게 성공했지만, 다음에는 수확하기 위한 높이에 주의해야 한다.
"무화과는 분명히 첫 해에는 수확하면 안됐지. 게다가 물을 좋아하는 성질…… 요즘 들어 생각이 드는데, 이만한 숫자를 한번에 재배하려고 생각한 건 실패였을지도"
카카오나 커피만으로 만족하면 좋았을걸, 이라고 시즈코는 최근들어 생각하게 되었다.
아무래도 필요한 대응이 너무 뒤죽박죽이라, 각자의 재배 구획에 정보를 정리한 서류를 놓게 했다.
손질이나 육성 상황을 파악하기 전에 그것들을 읽고 혼란되지 않게 한 덕분에 지금까지 착오는 발생하지 않았다.
하지만 커피는 수확할 수 있는 것이 빨라도 내년, 카카오에 이르러서는 3년 이상을 예상하고 있었다.
드래곤 프루츠나 무화과는, 첫해째의 열매에서 씨앗을 빼기 때문에 먹을 수 없다. 두 품종 모두 식용으로 쓸 수 있는 것은 내년부터다.
망고스틴이나 라이치, 람부탄은 열매를 맺기까지 몇 년이 걸리기 때문에, 빨라도 심은 후 3년째 정도로 예상하고 있다.
남만 과일 중에서 가장 간단한 작물이 드래곤 프루츠다.
드래곤 프루츠는 선인장류에 속하기 떄문에 재배 자체는 어렵지 않으며, 병충해나 불량환경에도 강하기 때문에 딱히 농약을 쓰지 않고 1년에서 2년이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게다가 과실 뿐만이 아니라 꽃봉우리(蕾)나 꽃도 식용할 수 있고, 특별히 관리를 해주지 않아도 잘 자라는 왕성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
그 때문에 남만 과실을 재배하고 있는 비닐하우스에서는 상당히 함부로 취급되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흙에서 양분을 빨아들여 성장을 계속하고 있었다.
늘리는 방법도 씨앗과 꺽꽂이 두 가지 방법이 있으며, 뭣보다 씨앗으로부터도 발아율이 좋기에 금방 늘어난다. 다만 추위에는 약하므로 밖에서 재배할 수는 없어 비닐하우스에서 꺼내서 키우는 일은 없다.
"파인애플도 잔뜩 늘어났는데, 슬슬 소비량에 맞지 않으니 숫자를 줄여볼까"
지금까지는 두 개 정도의 비닐하우스가 있었으나, 새로운 저택을 짓게 된 관계로 두자릿수에 달하는 숫자가 건축되게 되었다.
온천의 수량(湯量) 관계로 온실 하우스로 만들 수 있는 숫자는 제한되지만, 그래도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숫자를 재배할 수 있다.
확장되는 것은 비닐하우스 뿐만이 아니다. 논밭이나 닭이나 집오리, 거위(鵞鳥)에 오골계(烏骨鶏) 등을 사육하는 구획도 새롭게 정비된다. 물론 확장 규모 때문에 이전하는 것은 아직 나중의 이야기였지만.
"후추가 순조롭게 겨울을 나서 안심했어. 이거라면 묘목을 늘리는 것도 문제없네"
마지막으로 후추 나무를 확인하여, 순조롭게 겨울을 나고 있는 것을 확인한 시즈코는 비닐하우스를 떠났다.
노부나가가 시즈코의 집을 방문한 이후, 카네츠구(兼続)의 활동은 눈에 띄게 줄었다. 가끔 케이지(慶次)와 함께 시즈코가 관리하는 마을에 외출하는 정도로, 하루종일 방에서 데굴거리는 경우가 많았다.
시즈코 관찰에 질린 건지, 아니면 단순히 아무 것도 할 생각이 들지 않는건지, 어떤 마음으로 카네츠구가 활동을 삼가고 있는지는 모른다.
다만, 시즈코로서는 초기의 감시에 가까운 행동이 없어져서 꽤나 속이 편해지긴 했다.
"신세졌소. 인연이 있다면 다시 만나지"
그리고 세월은 순식간에 흘러서 4월, 완전히 눈이 녹았다고는 하기 어렵지만 에치고(越後)로 귀환하는데 문제없는 시기가 되자, 카네츠구는 그 말만 남기고 시즈코의 집에서 떠나갔다.
침울한 이별도 없이, 바람에 흐르는 구름 같은 느낌이었다. 시즈코는 또 홀연히 나타나서 대충 집에 죽치고 앉았다가 바람같이 떠나가는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즈코가 준비한 선물을 빼먹지 않고 가지고 돌아간 것에는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지만.
"뭐랄까, 자유로운 바람의 아들이라는 느낌이었네"
살짝 중얼거린 시즈코의 카네츠구에 대한 인물 평가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 평가를 받은 카네츠구는 일향종(一向宗)을 가볍게 따돌리고 며칠 후에 켄신(謙信)의 거성(居城)인 카스가 산성(春日山城)으로 귀환했다.
"지금 돌아왔습니다, 영주님(お実城様)"
성으로 돌아오자 켄신으로부터 즉시 호출이 떨어졌다.
"잘 돌아왔다. 여행길에 피곤할텐데 미안하지만, 바로 오와리의 이야기를 들려주겠느냐"
싱긋 웃는 표정으로 말하는 켄신이었으나, 반대로 사네츠나(実綱)는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그것도 어쩔 수 없는 것이, 카네츠구는 카게카츠(景勝)의 근시(近習)이다. 그 역할을 잊고 혼자서 오다가 있는 곳으로 갔으니 불쾌하게 생각해도 어쩔 수 없다.
카게카츠 본인은 "요로쿠(与六)는 바람의 아들이니까요"라며 별로 신경쓰지 않았지만.
"옛, 영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백성들은 느긋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작은 분쟁은 종종 일어났습니다만, 그것을 전문으로 다루는 자들이 있었기에 큰 소동으로 발전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그러한 틀에 박힌 보고는 필요없다. 요로쿠, 네가 느낀 것을 솔직히 말해라"
노키자루(軒猿)가 올리는 것 같은 보고를 켄신은 원하지 않았다. 필요한 것은 카네츠구가 무엇을 보고, 어떻게 느꼈는지였다. 켄신의 진의를 이해한 카네츠구는 자세를 바로했다.
"실례했습니다. 그럼…… 시즈코 님은 한 마디로 말하면 신비(不思議), 합니다. 소생도 이런저런 소리를 듣습니다만, 시즈코 님은 그보다 한층 더 불가사의한 존재입니다. 무욕…… 은 아니군요. 타인의 욕심은 민감하게 알아챕니다. 그 욕심을 잘 자극해서, 원하는 대로 일을 시키는 수완은 훌륭하다고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듣기좋은 소리만으로 사람이 움직인다면 정치하는 자들이 고생할 일은 없다. 명예, 땅, 명품(名物), 돈 등, 인간이라는 존재는 동기에 사리사욕, 말하자면 이득을 얻지 못하면 움직이지 않는다.
상대의 의견에 찬동하고 편을 들더라도, 결국 그 인물을 움직이는 것은 자신이 얻을 수 있는 이익이다.
노부나가는 당연하지만 시즈코도 이 점을 충분히 이해하고, 자신을 편드는 자들에게 이익을 주고 있다. 물론, 주기만 하는 것은 아니고 준 이익에 걸맞는 일은 시키고 있다.
일도 하면서 쌍방에 이익이 늘어나는 것이니, 일을 맡게 된 자들은 필사적으로 성과를 낸다.
"호오, 시즈코 님은 사람의 욕망 따위 이해하지 않는 듯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만"
"겉보기와 생각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 여인입니다. 그녀는 자신을 이롭게 하는 자에게는 이익으로 보답합니다. 하지만, 자신을 해하려 들거나, 얕보고 속이려 들면, 그러한 의도의 정도에 관계없이 치명적인 보복을 합니다. 예를 들면 어제 술잔을 나누던 상대라도, 마치 표정이 뒤집히는 것처럼 대응이 바뀝니다"
"단념(思い切り)이 빠른 구석이 있는 것인가. 때와 장소에 따라서는 강점이 되지. 하여, 배신한 상대에게는 어떠한 처분을 내리더냐"
"배신한 상대가 개심(改心)한다면 용서합니다. 물론, 배신에 걸맞는 가혹한 노역이 주어집니다만, 몇 번인가 항복 권고를 하고, 그래도 태도를 바꾸지 않는다면 씨를 말립니다(몰살)"
"잘 알았다"
"옛"
카네츠구의 보고는 충분한 내용이었다. 켄신은 머릿속으로 카네츠구의 보고를 하나하나 음미하며, 지금부터 어떠한 행동이 에치고에게 좋을지 생각했다.
(타케다(武田)는 움직인다. 북쪽으로는 에치고 일향종, 동쪽으로는 타케다, 남쪽으로는 나가시마 잇코잇키(長島一向宗), 서쪽으로는 혼간지(本願寺). 아사쿠라(朝倉)나 아자이(浅井)도 있지만, 크게 나누면 이 네 군데가 오다를 포위하고 있지)
제 2차 오다 포위망은 조용히, 착실하게 노부나가를 둘러싸고 있었다. 저번같은 이런저런 세력이 아니라, 이번에는 모두 혼간지가 주도하여 포위망을 형성하고 있었다.
(보통이라면 오다의 패배는 필연. 우리 에치고라도 타케다와 전쟁을 하면 잘해봐야 비기겠지. 하지만 내게는 도저히 오다의 패배가 보이질 않는다. 타케다도, 혼간지도, 그리고 우리들도, 이 포위망에 숨겨져 있는 작은 비틀림이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닐까)
일본 최강의 타케다 군은 과장은 아니다. 신겐(信玄)은 통산 72회의 전투를 벌여, 개중 3번밖에 패배하지 않았다. 그 3번도 젊었던 시절, 유명한 토이시 함락전(戸石崩れ)에서 무라카미(村上) 세력에게 패배한 것 뿐이다.
그 이후로는 이겼던가 아니면 비겼던가 둘 중 하나였다. 이 승리에서 무서운 점은, 자국이 공격받았을 때의 승리는 하나도 없이, 모두 신겐이 다른 나라를 침공했을 때의 승리라는 것이다.
즉 타케다 신겐은 평생 다른 나라에게 공격받은 적이 없다. 타케다 군의 강력함을 다른 나라가 두려워하여 주저했던 것이다. 그야말로 신겐이 이끄는 타케다 군은 일본 최강의 군단이라고 할 수 있는 존재이다.
이 인식은 켄신 뿐만이 아니다. 제 2차 오다 포위망을 주도하고 있는 혼간지, 불태워진 엔랴쿠지(延暦寺), 요시아키(義昭)에 아사쿠라, 아자이도 같은 인식이다.
다들 타케다가 오다 영토를 공격하면 모든 것이 끝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 때문에 이번의 오다 포위망은 어떻게 노부나가를 괴롭혀서(信長) 타케타 대책에 집중하게 하지 못하는가가 핵심이라고 파악하고 있었다.
(뭔가 아귀가 맞지 않는다. 무엇이, 이라고 하면 대답할 수 없지만, 내 감이 아니라고 속삭인다)
켄신은 타케다가 움직이면 모든 것이 끝난다는 생각에 의문을 품고 있었다. 무언가 확증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단순히 자신의 감이, 오다가 타케다에게 패한다는 생각을 납득하지 못하고 있는 것 뿐이다.
"한 가지 묻겠다만, 시즈코 님은 전쟁 준비를 하고 있더냐"
"예? 아뇨, 그런 기색은 없었으며, 수하들도 딱히 이렇다 할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가…… 그만 물러가도 좋다"
카네츠구를 물러나게 한 후 켄신은 턱에 손을 대고 다시 생각했다. 그의 머릿속에서 몇 가지 예측이 세워져갔다. 켄신에게 있어 타케다가 멸망하던 오다가 멸망하던 어느 쪽이라도 상관없다.
어떠한 선택지가 에치고에 가장 좋을 것인가, 그것이 켄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다.
(조금 더 상황을 살필 필요가 있군. 타케다가 움직인다면 호죠(北条)나 우리 중 어느 쪽과 동맹을 맺어 배후 걱정을 없애려 들겠지. 그 때, 시즈코 님이 어떻게 움직일 것인가, 그 이후에 결정해도 늦지는 않을 것이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시즈코를 강하게 의식하고 있는 것을 깨달은 켄신은, 놀라면서도 작게 미소를 지었다.
한편, 켄신에게 보고를 마친 카네츠구는, 팔짱을 끼고 고민하고 있었다.
"그럼…… 시즈코 님에게 빌린 돈을 변제할 방법을 모색해 볼까"
5월 상순을 지났을 무렵, 제 2차 미카타가하라(三方ヶ原) 대지(台地)의 지형 조사팀으로부터 보고서가 올라왔다. 면밀한 지형에 더해 표고(標高), 각 지점(地点)마다 온도와 습도까지 데이터로서 정리되어 있었다.
이미 데이터로서는 완성되어 있었으나, 미카타가하라 대지의 지형 조사는 나중에 한번 더 할 예정이었다. 제 3차 미카타가하라 대지의 지형 조사는, 좀 더 군사적인 면에서의 조사가 된다.
타케다 군이 포진할 장소는 어디인가, 오다-도쿠가와(徳川) 연합군은 어떻게 이동하는 것이 최적인가 등, 대(対) 타케다 전에서 필요한 조사를 전부 수행한다.
"뭔가 열심히 조사하고 있다만, 잊어버리지는 말거라?"
조사 보고서를 숙독하고 있을 때, 갑자기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료에서 얼굴을 들고 목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팔짱을 끼고 으스대고 있는 키묘마루(奇妙丸)가 있었다.
"잊다니 뭐를?"
뭔가 예정이 있었나, 라고 시즈코는 고개를 갸웃했다.
"잠깐 기다려! 알겠냐, 이제 곧 내 첫 출전식(初陣式)이 있다. 시즈코, 꼭 참가해라"
"아아……"
지적받은 시즈코는 겨우 떠올렸다. 역사적 사실에서는 타케다 상대를 이에야스(家康)에게 떠넘긴 노부나가는, 겐키(元亀) 3년 7월에 전군을 오우미(近江) 방면에 소집시켰다. 거기서 노부나가는 적자(嫡男)인 노부타다(信忠)의 첫 출전식을 치렀다.
"7월인가. 좀 이것저것 겹치니까 될 지 모르겠네"
팔짱을 끼고 시즈코는 중얼거렸다. 아직 결정사항이라고 하긴 어렵지만, 올라온 보고서들을 볼 때 6월과 7월은 중요한 계획의 시제품(試作品)이 선보이게 된다.
그중 하나는 개발에 몇 년이나 걸렸지만 겨우 6월 하순에 완성이 예정된 수동식의 스크류 선박, 그리고 7월 상순에 내화(耐火) 벽돌이나 코크스로 철을 녹이는 고로(高炉)가 있다.
특히 고로는 스털링 엔진의 시제품의 시험과 세트로 수행된다. 스크류 선박은 아직 여유가 있지만, 고로와 스털링 엔진의 시운전은 반드시 성공시켜야 한다.
역사적 사실에서는 7월 하순의 아자이 공격이 노부타다의 첫 출전이라고 한다.
그리고 아자이 공격에 대해서는 시즈코의 귀에도 들어와 있다. 즉, 7월 하순에 노부타다의 첫 출전식이 치러질 가능성은 대단히 높다.
(자 어떡한다. 아시미츠 아저씨에게 맡겨도 되지만, 전군을 이끌고 가지 않으면 챠마루(茶丸)군은 삐질 것 같으니까 말야)
아무래도 키묘마루의 첫 출전식을 제끼고 연구 개발 쪽에 집중하는 건 좋지 않다. 하지만, 노부나가로부터는 모든 것에 우선하여 성공시키라는 엄명을 받았다.
(어라, 이거 오랜만에 위험ー한 상황 아니야?)
시운전이기에 실패할 가능성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트러블이 발생하여 잘 동작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것들을 첫 출전식까지 처리하고 참가하라, 는 것이 지금의 시즈코의 임무이다.
그것에 생각이 미친 시즈코는 얼굴에서 식은땀을 흘렸다.
"야야, 아무래도 내 첫 출전식을 제낀다고는 하지 마라?
어째서인지 성인식(元服)은 아직이지만, 첫 출전식은 최초의 영광스런 자리라고. 그곳에 네가 없으면 재미없잖아"
"알고 있어. 제끼거나 하진 않지만, 지금 떠안고 있는 안건들을 처리한 후 참가해야 하니 꽤나 빡빡힌 예정이라는 생각이라 그래"
"그럼 좋아. 다른 이야기인데, 너는 뭘 하고 있는 것이냐?'
"음ー, 새로운 공장의 지형 조사. 버섯 재배를 공업화시킬 거거든"
미카타가하라 대지의 지형 조사를 하고 있는 시즈코였으나, 진짜 목적은 노부나가 이외에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 이에야스에게조차도 가짜 목적을 말하고 본의(本意)를 밝히지는 않았다.
그들이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은 모든 것이 끝난 후면 된다. 지금은 괜히 비밀을 아는 사람을 늘리지 않고 정보를 은폐하는 것이 선결이다. 그러기 위해서라면 키묘마루조차 속인다는 것이 시즈코의 생각이었다.
"버섯 재배?"
시즈코의 꿍꿍이에 보기좋게 걸려든 키묘마루가 질문했다. 서류를 뒤적이는 척을 하며 미카타가하라 대지의 조사 보고서를 치운 후, 시즈코는 헛기침을 한 번 하여 분위기를 바꾸었다.
"종류에 따라 다르긴 한데 버섯은 재배가 가능한 게 있거든. 물론, 사람이 키운 버섯은 자연 속에서 자란 버싯이랑은 맛이나 향이 다르지만 말야"
버섯은 발생 조건에 따라 재배 방법이 다르지만 원목(原木), 균상(菌床), 퇴비(堆肥)、임지(林地) 재배의 네 종류를 기본으로 재배를 한다.
인공 재배의 역사는 그다지 오래되지 않아서, 16세기에 유럽에서 멜론 재배가 행해졌을 때, 동시에 주름버섯(ハラタケ) 종류의 버섯이 발생한 것을 계기로 버섯의 인공 재배가 시작되었다.
가장 빨리 버섯의 인공 재배에 성공한 나라는 프랑스로, 17세기에 머쉬룸(mushroom, ※역주: 보통 영어로 '버섯'을 뜻하지만, 이 경우에는 특정한 품종을 가리키는 듯함)의 인공 재배를 성공시키고, 18세기 초엽에 식물학자가 인공 재배의 기본적인 방법을 확립시켰다.
그로부터 1세기에 걸쳐, 19세기에 프랑스로부터 유럽이나 미합중국으로 인공 재배의 기술이 전해졌다.
한편, 일본은 에도 시대에 표고버섯의 인공 재배를 했지만, 종균(種菌)을 인공적으로 배양한다는 생각에 이르지 못했기에, 그다지 안정적으로 버섯을 얻을 수는 없었다.
"만가닥버섯(ブナシメジ) 같은 건 꽤 간단하니까 성공했지만, 다른 건 좀 더 시간이 걸릴 것 같아서 말야"
만가닥버섯이나 팽이버섯(エノキタケ), 맛버섯(ナメコ)은 일본에서 가장 많이 재배되고 있는 버섯류이다.
인공 재배가 대단히 용이하고 대량 생산하기 쉬운 이점이 있다. 현대와 같은 시설은 없어도 인공 재배 가능한 이점도 있다.
하지만 버섯균은 다른 균보다 약하기 때문에, 경합균(競合菌)을 차단할 수 있는 현대의 시설에서 재배하는 것과는 달리, 전국 시대의 인공 재배는 실패의 가능성을 품고 있다.
다만 맛버섯은 해로운 균에 대한 저항력이 다른 것에 비해 강하고, 그 때문에 가정에서도 쉽게 재배할 수 있다.
버섯균의 조직 배양은, 버섯의 일부를 잘라서 배양하는 조직 분리라는 수법을 사용한다.
우선 신선한 버섯을 준비하고, 멸균 처리한 날붙이로 버섯을 반으로 가른다. 오래된 버섯을 쓰지 않는 이유는 잡균에 오염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버섯의 내부 조직을 채취하여, 그것을 한천(寒天) 배지(培地)에 올려놓는다(置床). 그 후에는 성공할 경우 조직에서 버섯 균이 자란다.
본래는 무균 상태에서 접종(接種)을 하지만, 전국 시대에는 무균 환경을 만드는 것이 불가능하기에, 시즈코는 모닥불 옆에서 접종을 했다.
불에 의한 상승기류가 발생하여, 그것이 배지(培地)에 균이 달라붙은 것을 막아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팽이버섯의 폐배지(廃培地)에서 독황토버섯(コレラタケ, 독버섯)이 자라는 일이 많다.
따라서 식용 버섯의 배지니까 문제없다고 오해하고 먹었다간 큰일나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하다.
"네가 키운 표고버섯은 맛있지만, 버섯은 영 먹은 것 같지 않은 게 문제다"
"뭐 버섯이라는 건 많이 먹는 것도 아니니까"
만가닥버섯은 어떤 요리에도 잘 어울리며, 팽이버섯은 냄비요리(鍋物)나 끓인 요리(煮物)에 쓰이고, 맛버섯은 된장국이나 볶음 요리의 건더기로 쓰이는 등, 시즈코가 인공 재배하고 있는 버섯은 이용 범위가 넓다.
다만 표고버섯은 달라서, 이 버섯만큼은 영주나 무장 등, 지배 계급 사람들이 스테이터스 심볼(status symbol)로서 이용하고 있다.
식량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것이 시즈코의 기본적인 생각이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일반 사람들이 먹는 식재료와, 지배 계급 사람들이 자신의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 쓰는 식재료로 필연적으로 갈리게 된다. 버섯으로 말하자면 전자는 만가닥버섯, 후자는 표고버섯이 된다.
특히 표고버섯은 해외로 수출되는 중요한 상품이기에, 막대한 숫자를 생산하려고 해도 유통되는 양은 노부나가에 의해 완전히 컨트롤되고 있었다.
"쌀에 야채, 생선에 버섯, 정말 이것저것 손대고 있구나. 뭐, 그 덕분에 나는 매일 맛있는 밥을 먹을 수 있지만"
"나 혼자만으로는 창고에서 썩어버리니까 상관없지만 말야. 네 경우에는 너무 거리낌이 없어. 조직을 채취하기 위한 버섯까지 먹어버릴 줄은 몰랐다고"
인공 재배가 확립된 버섯이라면, 조직을 얻을 수 있다면 재배하는 것은 가능하다. 물론, 잡균에 오염되어 있을 가능성은 높기에, 숫자로 밀어버리는(下手な鉄砲も数撃ちゃ当たる) 작전으로 커버할 수밖에 없다.
현재, 시즈코가 아시아에서 수입한 새송이버섯(エリンギ)을 일본에서 재배하려 하고 있는데, 그게 그야말로 숫자로 밀어버리는 식으로 시도하고 있다.
톱밥에 묻어서 운반하더라도 수입에는 몇 개월 가까이 걸린다. 시즈코의 손에 들어올 무렵에는 썩어버릴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시즈코가 새송이버섯을 일본에서 채취하지 않고 해외에서 수입하는 이유는, 새송이버섯은 일본에는 존재하지 않는 버섯이기 때문이다. 지중해(地中海)의 기후 지대에서 중앙 아시아의 초원(ステップ) 기후 지대가 원산지이다.
프랑스나 이탈리아 등 유럽에서는 옛부터 인기있는 식용 버섯이지만, 일본에서는 최초로 인공 재배된 것이 1990년대로 비교적 새로운 버섯이다.
하지만 금방 재배 기술이 일본 전역에 보급되어, 지금은 대량 재배가 이루어져 적당한 가격으로 시장에 나돌고 있다.
일본에서는 자루(柄) 부분이 굵고 긴 것이 선호되는 데 반해, 유럽에서는 갓(傘)이 펼쳐진 상태가 선호되는 등, 같은 버섯이라도 선호되는 크기나 굵기, 상태가 다르다.
"미안, 술안주로 딱 좋길래 말야"
"뭐가 술안주야. 말린 버섯만 골라 먹고 있는 걸 보니 노리고 한 거나 마찬가지잖아"
버섯은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건조시키는 편이 오래 보존할 수 있다.
날것인채로는 냉장고에 넣고 1주일 정도지만, 적절한 순서를 지켜 말린 버섯은 통풍이 잘 되는 어두운 곳에 보존하면 최장 1년은 간다.
말리는 것은 딱히 장기보존만이 이유는 아니다. 태양광을 쬐어 말리는 천일건조(天日干し)라면, 에르고스테롤(ergosterol)이 비타민 D로 변화하기 떄문에 날버섯보다 비타민 D가 늘어난다.
또, 말리면 맛이 응축되고, 그 후에 물로 불리거나 하면 맛성분이 물에 녹아나와 좋은 맛국물을 낼 수 있다.
"글쎄. 그 때는 어두웠고, 적당한 걸 가져간 것 뿐이라고"
끝까지 시치미를 떼는 키묘마루였다.
"그래…… 뭐 이후를 생각해서 윳키랑 시로초코에게 입구를 경비시키고 있으니까 다음부터 길을 잘못 들 일은 없을거야"
"아! 비겁하다!"
"비겁하다니 실례네. 작전이라고 해줘"
키묘마루와 그런 대화를 하고 있을 때, 입구 쪽에서 사람 기척이 났다. 궁금해져서 그쪽으로 얼굴을 돌리니, 맹장지가 조용히 열렸다.
"이야기는 전부 들었습니다, 키묘 님"
"헉! 할아범(爺)!"
제일 들키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 들켜버린 키묘마루가 정말로 난리났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에 반해 할아범은 전혀 동요하지도 않고, 눈을 감은 채 조용히 말을 이었다.
"영주님의 뒤를 이으실 분이 어찌 이렇게 한심하실 수가. 이 할아범, 오늘만큼은 절대로 넘어가지 않겠습니다. 키묘 님의 응석을 받아드린 것을 오늘만큼 후회한 적은 없습니다"
"아니, 딱히 응석을 받아줬던 기억은 없는데……?"
태클을 걸어 분위기를 바꾸려고 했으나, 할아범은 키묘마루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손수건으로 눈가를 눌렀다. 어디서 손수건을 꺼낸거냐, 라는 태클은 걸지 않은 키묘마루였다.
"이제 곧 첫 출전식인데, 이래서는 다른 사람들에게 본보기가 서질 않습니다. 키묘 님! 할아범은 마음을 고쳐먹고 악마가 되겠습니다!
지금부터 차근차근 다시 교육시켜드릴테니 안심하십시오! 자, 가십시다!"
"어이 잠깐! 놔라 할아범! 일단 냉정하게 이야기를 좀 말야아아아아아아아아ーーーーーーーーー!!"
눈에도 보이지 않는 속도로 키묘마루를 포획하더니, 반론을 용납치 않는 분위기로 할아범은 키묘마루를 끌고갔다.
그의 단말마(断末魔) 같은 고함소리가 들려오지 않게 되었을 무렵, 시즈코는 서류를 꺼내서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자, 일을 계속 하자"
난 아무 것도 못 봤어, 그게 그녀가 내린 결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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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5 - 1571년 12월 하순 (12) | 2019.05.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