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겐키(元亀) 3년 결전(決戦), 미카타가하라(三方ヶ原) 전투
093 1572년 9월 하순
오다 가문과 맺은 약정(約定)도 있어, 츠루히메(鶴姫)는 아기의 목이 꼿꼿해지는 4개월 무렵까지 입원생활을 해야 했다.
미츠오도 가끔은 혼자서 생활하는 것도 속편하니 좋다고 생각했으나, 곧 잘못 생각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은 지금까지 어떻게 혼자서 살았던 것일까, 라고. 가족을 얻고 함께 생활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 되어, 예전의 고독한 생활을 전혀 떠올리지 못했다.
"네놈, 홀몸(独身)을 놀리는 거냐"
"아저씨, 자랑질(惚気)이라면 오다 나으리 상대로 해줘"
"타진(たじん鍋, ※역주: Tajine(طاجين))이란 그릇 모양도 그렇고 물도 넣지 않는 해괴(面妖)한 요리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맛있군요. 야채가 이렇게 달아지다니"
아시미츠(足満), 고로(五郎), 그리고 최근 알게 된 시로(四郎)에게 상담했다. 하지만, 세 사람으로부터의 대답은 도저히 미츠오를 만족시키는 것이 아니었다.
"심한 말이군요. 시로 씨는 아예 이야기조차 듣지 않으시잖습니까"
"이야기는 들었습니다만, 소생이 드릴 조언은 없습니다"
"그러네. 그보다 아저씨는 자랑질이 취미인 건가. 듣고 있는 이쪽이 다 부끄럽네"
"자각 증상이 없기 때문이다. 이쪽은 여자하곤 인연이 없는 생활인데, 용서없이 자랑질하러 오는군"
아주 냉담(けんもほろろ)했다. 그러면서 미츠오가 준비한 요리는 사양않고 먹는 세 사람이었다.
"하지만, 여러분 의외로 사이가 좋아졌군요"
"네놈이 우의(友誼)을 맺었으니, 나쁜 사람은 아니겠지. 뭐 처음의 고로만큼 멍청한 짓은 하지 않았지만"
"잠깐만, 아시미츠 씨. 나를 처음엔 어떻게 생각했는데?"
"그대로도 먹을 수 있는 식재료를 먹을 수 있을지 아닐지 아슬아슬한 존재로 바꾸는 가짜(似非) 요리사"
"너무해! 요리에 실패는 항상 있는 법이라고!"
"시끄럽다. 생선 초조림(酢煮魚)을 가르쳤을 때, 조금만 넣으면 된다고 했는데 식초만 가지고 조린 건 용서할 수 없어"
"윽, 그건…… 그"
"뭐ー 그건 우리가 가르치는 방법에도 문제가 있었으니까요, 네"
맛국물(出汁)에 식초를 작은술로 1~2술 정도 넣고 생선을 조리면 풍미가 확 좋아진다.
초절임(酢締め) 생선과 마찬가지로 비린내가 옅어지고 단백질의 응고작용도 있어 조릴 때 형태가 망가지는 것을 막아주는 일석이조의 조리법이다.
하지만 고로는 요리 이름밖에 기억하지 못해서, 차가운 식초에 생선을 집어넣고 조린다는 폭거를 감행했다.
비린내가 나는데다 목이 멜 정도로 신맛도 강하여, 입으로 가져가도 삼키는 것은 극히 어렵다는 독극물(劇物)이 탄생했다. 거부하는 고로에게 억지로 먹였지만.
"에잇, 술이다! 술을 가져와라ー! 마시지 않고는 못해먹겠다"
"에에엑…… 뭐 괜찮습니다만"
아시미츠의 될 대로 되라는 식의 말에 미츠오는 곤혹스러운 표정을 떠올렸다.
"오, 아저씨. 뭔가 만들테니 주방을 빌릴게"
한숨을 쉬며 미츠오가 일어서자, 고로가 술안주라도 떠올렸는지 주방을 빌려달라고 부탁했다. 거절할 이유가 없는 미츠오는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이 나가자, 아시미츠와 시로만이 남았다. 알고 지낸 기간이 짧은 시로는 대화의 주제를 열심히 생각했고, 아시미츠는 그다지 수다스럽지는 않았기에 고요함이 자리를 지배했다.
"……아시미츠 님은 특이하시군요"
침묵을 깬 것은 시로였다. 그는 묵묵히 식사를 하는 아시미츠에게 의문으로 생각하고 있던 점을 말했다.
"그리 보이느냐"
"식사하실 때조차 당신은 토시(篭手)를 벗지 않으십니다"
"과연 랍파(乱波, 역주: 닌자를 가리키는 말 중 하나로, 여기서는 타케다(武田)의 닌자라는 의미)라는 건가. 보통은 눈치채지 못하는 것을 눈치채는군"
순간 시로의 표정이 굳었다. 하지만 아시미츠는 그다지 신경쓰지 않고 식사를 하며 말을 이었다.
"이상할 건 없지. 타케다로부터 도망쳐온 랍파의 이야기는 내 귀에도 들어왔다. 어째서 도망쳤는지는 모르나, 흥미도 없다"
"그렇, 습니까. 처음부터 정체를 알고 계셨군요. 하지만, 어째서 당신께서는 저를 못 본 척 하시는 겁니까"
"내게는 벨 이유가 없다. 네놈이 오다를 조사하던 말던, 나와는 관계없지. 타케다 밑이 싫어서 도망처왔다고 해도 말이다. 내게 베이고 싶으면 친구에게 손을 대 봐라. 그럴 기색을 보인 순간에는 그 목을 날려주지"
"그건 불가능한 이야기군요. 미츠오 님은 제게 잘 대해주십니다. 은혜를 원수로 갚은 파렴치한이 될 생각은 없습니다"
"역시, 카이(甲斐)에서는 세금이 무겁더냐"
아시미츠는 카이에 대해 현대에서 얻은 정보가 있다. 융성(隆盛)함을 자랑하는 강국으로서 이름을 떨친 카이도, 매년같이 전쟁을 벌인 덕분에, 전비(戦費)를 메꾸기 위해 무거운 세금이 부과되었던 것이다.
특히 유명한 것이 신겐(信玄)의 아버지인 노부토라(信虎)와 신겐의 서자(庶子)인 카츠요리(勝頼)다. 노부토라의 낭비는 그렇다치고, 카츠요리는 금광(金山)이 고갈되었기 때문에, 세금을 다른 곳에 쓸 수 밖에 없어, 결과적으로 무거운 세금이 된 것이지만.
또, 타케다 가문에서는 세금의 징수를 가신들이 하고, 가신들에게는 그럴 재량이 부여되어 있었기에 신겐이라도 참견할 수 없는 상태였다.
그 때문에 영지마다 세금이 제각각이었으며, 장소에 따라서는 곤궁해질 정도의 무거운 세금이 부과되었다.
시로가 예전에 어디에 있었는지는 흥미가 없는 아시미츠였으나, 출분(出奔, ※역주: 도망쳐서 행방을 감춤)할 정도라는 상황을 볼 때 타케다에게 지배되는 땅에서 살고 있었을 거라고 어림짐작했던 것이다.
이것은 타케다에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라, 이에야스(家康)나 노부나가도 마찬가지이다. 대체적으로 국주(国主)의 직할령(お膝元)에서는 측량(検地)도 엄격하지 않고 세율도 낮게 억제되어 있었다.
하지만 새롭게 지배한 땅에는 엄격한 측량이 이루어졌고, 소비된 전비를 보충하기 위해 무거운 세금이 부과되는 것이 예상사였다.
지배 체재를 쇄신(刷新)하는 이상 비용도 들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면도 있지만, 신참자(新参者)에게는 대체적으로 무거운 세금이 부과되고, 노역이나 병역 등 그 외의 봉사까지 요구되는 가혹한 징세를 받는 경우가 많다.
도쿠가와(徳川)에서 타케다로 변절하려 한 가신들의 영지에서는, 세금이 지금 이상으로 무거워질 것을 이해한 영민들이 반대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세금을 바치면 굶어죽을 수밖에 없어, 그렇다면 아예 한 가닥 희망에 걸어보았다고 하면 이해해 주시겠습니까?"
"어느 세상이던 신참자는 엄격한 취급을 받지. 하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세금이 너무 무겁다. 역시 금의 생산량이 떨어졌기 때문인가"
신겐이라고 하면 금광 개발이 유명하지만, 만년에는 생산되는 금이 고갈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것은 정확하지 않다. 신겐의 금광인 쿠로카와 금광(黒川金山)이나 카이오쿠 금광(湯之奥金山)은 에도(江戸) 시대에 들어선 후에도 금을 계속 산출했다.
그렇기에 금광에서 금이 고갈된 게 아니라, 실제로는 타케다 가문의 재정난이나 기술적인 문제에 의해 채굴이 틀어졌던 것이다.
금광에서 금을 파내려면 인건비가 엄청나게 들어간다. 그리고 금광에서 파낸 금광석은 그대로는 가치가 없다. 제련(精錬)하여 금으로서의 형태를 갖출 필요가 있다. 이렇게 해야 겨우 금으로 취급받는 것이다.
카이의 금광은 광맥이 노출되어있는 경우가 많았기에, 지표면을 조금 파는 것만으로 금을 산출할 수 있었다.
하지만 땅 속 깊이 파내려가면 상황이 달라진다. 금광에는 낙반(落盤), 붕괴(崩落), 함몰(陥没)이 늘 따라붙는다. 이 때문에 갱도를 보강하면서 파내려갈 필요가 생겼다.
갱도가 뻗어나갈 때마다 채산성은 악화되고, 게다가 타케다 가문은 채굴하는 이상의 페이스로 금을 필요로 했기에, 서서히 카네호리슈(金堀衆, ※역주: 타케다 가문에서 금 채굴을 전담하던 집단)에게 줄 임금이 부족해졌다.
그로 인해 카네호리슈가 명령에 따르지 않게 되어, 금의 산출량이 떨어진다는 악순환에 빠져들었다. 즉, 금광이 고갈된 것이 아니라, 재정난과 기술부족이 금 고갈의 원인이다.
에도 시대에 들어서 카이의 금광이 부활한 것은, 갱도를 파는 법이나 금은 개주(金銀吹替え) 등, 광산에서의 채광과 제련 기술이 비약적으로 진보했기 때문이다.
가장 진보한 것은 '수평 갱도(横相(요코아이)라고도 부름)'라는 수법이다.
종래의 채굴법은 아래쪽으로 비스듬히 하들어간다. 이 때문에 지하수가 용출되면 배수(排水)를 할 수 없어, 우량 광맥이라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수평 갱도는 사전에 시험적으로 파서, 광맥이 있는 부분을 찾아 수평적으로 파들어간다. 이에 의해, 갱도를 굴착했을 때 지하수가 나와도 배수가 용이해졌다.
반면, 광맥이 뻗어 있는 방향을 시험적으로 파서 조사할 수 없을 경우 이 채굴법은 쓸 수 없다. 고도의 측량기술이 있어야 가능한 채굴법이라고 할 수 있다.
"다들, 세금을 내지 못하고 차례차례 굶어죽어갔습니다. 일이 이렇게 되면 어쩔 수 없다, 고 소생은 어머니와 처자식을 데리고 도망쳤습니다. 오다 영토로 도망친 것도, 나는 새도 떨어뜨릴 기세의 이곳이라면 그렇게 간단히 소란을 일으키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조금 어설펐군. 놈들은 오다 영토라도 개의치 않았다. 덕분에 실험체가 늘어났으니 결과적으로 네놈들 랍파들의 행동은 내게 이득이 되었지"
실험체, 라는 말에 시로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공포를 느꼈다. 그것을 꿰뚫어본 아시미츠였으나, 그는 작게 웃음을 떠올릴 뿐, 그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기다리셨습니다. 아니, 뭡니까, 이 미묘한 분위기. 아시미츠 씨, 또 뭔가 무서운 소리를 해서 겁주거나 한 건 아니겠죠"
조금 긴장을 품은 침묵이 내려앉았으나, 악의 없는 미츠오의 말로 단번에 흩어졌다. 시로는 휴 하고 가슴을 쓸어내렸고, 아시미츠는 방금 전의 미소를 거두어들였다.
"무례한 녀석이군. 나도 장소를 구별하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맞아맞아. 문병에 따라간 우리들을 내버려두고 부인과 둘만의 세계를 만드는 아저씨가 아니라고"
미츠오에 이어 고로도 되돌아왔다. 고로는 큰 접시에 몇 가지 안주를 담아왔다. 큰 접시를 테이블 가운데 놓고 그는 자리에 앉았다.
'그건 죄송합니다, 라고 사과했잖습니까"
"첫번째니 용서했지만, 두번째는 없다. 네놈의 문병에는 두번다시 따라가지 않는다"
"호오…… 미츠오 님은 그 정도로 애처가(愛妻家)이신 겁니까"
테이블 한켠에 놓인 술을 잔에 따르면서 시로가 의문점을 말했다.
"잘 물어봤어 시로 씨. 아저씨는 말야, 따라간 우리들을 방치하고 부인을 포옹하질 않나, 사랑을 속삭이질 않나, 나중에는 우리들의 존재를 잊지 않나, 정말 장난이 아니었어. 게다가 따라가달라고 부탁한 건 아저씨라고"
"하지만 부부 사이를 길게 유지하는 비결은 원활한 소통과 피부의 접촉(※역주: 스킨십)이니까요. 나이가 몇 살이 되더라도 피부의 접촉은 마음을 진정시키는 효과가 있습니다"
"이렇다니까. 나는 두번째부터는 안 따라갔지. 고로는 따라간 모양이지만, 결과는 내 예상대로였다"
"아저씨를 뒤에서 걷어차버리고 싶어졌지만, 부인의 눈이 무서워서 얼른 물러났어"
"무슨 말씀이신가요. 츠루히메 씨는 그렇게 무서운 사람이 아닙니다"
(안 되겠군 이 놈)
세 사람이 나란히 한숨을 쉬었다. 시로는 츠루히메와 만난 적은 없지만, 미츠오의 태도로 볼 때 츠루히메가 미츠오에게 상당히 반해있다는 사실을 엿볼 수 있었다.
어처구니없어 말도 안 나온다는 듯, 각자 잔에 술을 따르고 고로 특제의 술안주를 집어먹었다.
"애초에 시로 씨도 부인이 있잖습니까"
"소생, 미츠오 님처럼 적나라한 사정은 밝히지 않슴돠"
"시로 씨, 혀가 꼬이는데"
고로가 지적하자 시로는 좌우로 몸을 흔드는가 싶더니, 갑자기 탁자에 얼굴을 처박았다. 아플 것 같은 소리가 났으나 시로는 고통을 호소하지 않았다. 대신 기분좋게 자는 숨소리가 들려왔다.
"시로 씨 술 못 마시는 거였나! 아저씨, 시로 씨를 눕히자고"
"술은 셀 거라 생각했는데 말이죠. 일단 토해도 괜찮도록 옆으로 눕히죠…… 어, 이거 알코올 도수가 높은 술이었어요! 급성 알코올 중독일지도 몰라요! 어서 응급처치를 해야 합니다!"
"맙소사, 소란스럽구만"
서둘러서 시로에게 달려가는 고로와 미츠오를 바라보며 아시미츠는 술잔을 기울였다.
9월 하순, 이미 타케다 군은 싸움 준비를 마쳐놓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약간의 부하들을 데리고 이에야스의 거성(居城), 하마마츠 성(浜松城)으로 향하는 일행이 있었다.
타케다 사천왕 중 한 명, 바바 노부하루(馬場信春)였다. 후세에 '지용(智勇)이 항상 제장(諸将)들 가운데 가장 뛰어났다'고 평가되며 영주(国人)가 될 수 있는 기량을 가졌다고 전해진 인물이다.
그 최후에 대해서도, 신장공기(信長公記)에 비할 데 없는 활약을 한 인물로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미요시 씨(三好氏) 본가(本家) 최후의 당주 미요시 요시츠구(三好義継)의 최후에 대해서와 같은 평가이다.
70회 이상 전쟁터에 나섰으면서 최후의 나가시노(長篠) 전투에서까지 단 한 번도 긁힌 상처조차 입지 않았기에, 현대에서는 '불사신의 오니미노(鬼美濃)'라고 평가된다.
다른 타케다 가문 사천왕보다 출세는 늦었지만, 후세에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무장이다.
그런 그는 타케다 가문에 대한 반골심(反骨心)이 격화되고 있는 하마마츠 성에 도착했다. 신겐은 보고를 받았을 때 "과연 바바 미노노카미(馬場美濃守)"라고 한 마디 했을 뿐이었다.
한편, 이에야스는 바바의 방문에 깜짝 놀라 벌벌 떨고 있었다.
노부나가로부터의 지시도 있어, 곧바로 대응할 수 없다고 말하자, 바바는 미카타가하라(三方原) 대지(台地)의 북쪽 끝에 있는 네아라이마츠(根洗松)에 있겠다는 말을 남기고 떠나갔다.
미카타가하라 전투에서 타케다 군이 도쿠가와 군을 기다렸다고 전해지는 장소가 네아라이마츠라고 하는데, 그곳을 바바가 지정한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할 수 있겠다.
"주군, 만나실 필요는 없습니다. 이미 타케다와는 전쟁을 한 지 수 년째, 이제와서 나눌 이야기 따위 없습니다"
가신 중 한 명이 진언했으나, 이에야스는 마음 속에서 신음하고 있었다. 가신의 말대로, 타케다와 이제와서 나눌 이야기는 없다. 동맹 파기도 타케다가 일방적으로 했던 것이다.
동맹 파기로부터 소규모 충돌(小競り合い)을 거듭한지 수 년이 지났다. 전황은 일진일퇴의 상태로, 타케다가 다시 동맹을 맺으려 한다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었다.
"아니, 만나지. 여기서 도망치면 웃음거리가 된다. 겁쟁이라고 비난받는 것은 참을 수 없다"
"주군…… 옛!"
생각 끝에 이에야스는 바바를 만나기로 했다. 이 회담 신청에서 도망치면, 미카와(三河)는 겁쟁이들의 무리라고 타케다가 선전할 것은 뻔히 보였다.
이러한 조롱은 오래 간다. 지금까지 같은 편이었던 지방 유력자들이, 타케다로 변절할 가능성도 있다.
으스스하고 무서운 회담이 되겠지만, 이에야스는 거절한 후에 받게 될 디메리트가 너무 크다고 판단했다.
이에야스는 사카이 타다츠구(酒井忠次)를 성에 남겨, 만에 하나의 일이 있을 경우 타케다 가문은 암살이나 꾀하는 겁쟁이, 라는 선전을 하라고 지시했다.
죽을 생각은 전혀 없었으나, 그 후에 미카와가 부당한 취급을 받는 것만큼은 결코 인정하지 않겠다는 이에야스의 의사였다.
타다카츠(忠勝)나 야스마사(康政), 한조(半蔵) 등 측근들을 이끌고 이에야스는 네아라이마츠에 도착했다. 거기서 일행은 놀랄만한 광경을 목격했다.
바바는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병사는 후방으로 물려놓고, 자신은 윗옷은 벗은 채로 칼도 좀 떨어진 곳에 아무렇게나 놓여 있었다.
후방에 있는 병사들도, 맨 앞열은 무기를 땅바닥에 내려놓고 있었다.
누가 봐도 빈손(丸腰)이며, 호위하는 자들조차 없었고, 병사들도 만일의 사태 때 즉시 달려올 수 없는 거리에 있었다. 그게 한층 더 바바에게 으스스한 느낌을 받게 했다.
타케다를 증오하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 빈손인 상태로 회담에 임하고 있으니.
"어이쿠, 의외로 허리가 가벼웠군. 얼마간 더 시간이 필요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오 춥군. 아무래도 늙은 뼈에 맨몸은 힘들구먼"
이에야스가 도착한 것을 안 바바가, 표표(飄々)한 태도로 말했다. 그는 추위에 몸을 떨더니, 벗어놓았던 웃옷을 입었다.
"주군, 놈은 빈손입니다"
한조가 이에야스에게 귓말을 했다. 한조의 말을 들을 것도 없이, 이에야스는 알고 있었다. 이만한 담력과 여유가 어디에 있는 것인가, 이에야스는 도무지 알 수 없었다.
한 가지 알 수 있었던 것은, 바바의 여유는 이에야스를 얕보고 하는 행동은 아니다, 라는 점이었다.
"먼저 말해두겠소. 회담이라고 했으나, 사실은 한 사람 더, 이 자리에 불렀소. 그 인물이 도착할 때까지 잠시 기다리시오"
바바는 그렇게 말하더니 등지고 있던 나무에 기대어섰다. 정중한 말투도 반대로 바바의 으스스한 분위기를 더하고 있었다.
조금 망설인 이에야스였으나, 허리에 차고 있던 칼을 던져버리더니 바바와 마찬가지로 나무를 등지는 형태로 앉았다. 가신들은 당황했으나, 이에야스의 표정을 본 순간 그의 각오를 이해했기에 침묵했다.
"홋홋홋, 여차하면 대담해지는군. 정말로 영주님(屋形様)의 사람보는 눈은 무섭군"
"뭣이?"
"서두르지 마시오. 곧 기다리는 사람이 도착할테니"
바바의 말대로, 말발굽 소리가 이에야스의 귀에 들렸다. 하지만 들려오는 것은 말발굽 소리 하나 뿐으로, 그 이외의 소리가 들리지 않아, 그는 처음에는 파발마라도 온 건가 생각했다.
이윽고 말발굽 소리의 주인이 시야에 들어오자, 이에야스는 자신의 생각이 틀렸음을 깨달았다.
"아, 네놈은!"
맨 먼저 반응한 것은 이에야스가 아니라 타다카츠였다. 왜냐하면 말에 타고 나타난 것은 아시미츠였기 때문이다. 다른 인물은 아시미츠, 정확히는 아시미츠가 타고 있는 말에 놀랐다.
현대에서는 맥이 끊어졌다고 하는 데스트리어는, 큰 체격과 중무장을 견딜 수 있는 명마로 이름높다. 하지만 그것은 순혈종의 맥이 끊어진 것 뿐이며, 중세나 근세에서 교잡도 이루어졌다.
마종의 취급에 대해서도 현대와 같은 DNA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용도에 따라 대략적으로 마종을 정했다. 그 떄문에 전혀 다른 복수의 품종을 하나의 마종으로서 취급한 경우도 있다.
즉, 오늘날까지 이어진 마종에도 데스트리어의 혈통이 남아있을 가능성은 높다.
하지만 당시에도 전쟁 이외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말이라는 평가였으며, 말이 전쟁의 꽃이 아니게 된 시대에 남아있었다고 하기에도 미묘한 부분이긴 하다.
"계속 거절당했지만, 드디어 이야기를 들어주시는 것이군요, 아시미츠 님. 아니…… 쇼군 각하(公方様)"
쇼군(公方)이라는 단어에 이에야스의 표정이 경직되었다. 하지만 아시미츠는 주위의 시선 따윈 전혀 개의치 않고 말에서 내려 적당한 곳에 앉았다.
"이야기는 들어주마"
그 말만 하고 아시미츠는 입을 다물었다. 거만한 태도였으나, 바바는 신경쓰지 않고 쓴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아직까지 상황이 파악되지 않는 이에야스였으나, 질문해봤자 대답이 나올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아, 바바가 어떻게 나오는지 지켜보기로 했다.
"미카와와 전쟁을 시작한 지 수 년, 타케다와 도쿠가와 사이에는 원망(怨嗟)이 소용돌이치고 있겠지. 하지만, 나는 그것을 알면서도 어떤 제안을 하겠소"
"제안이라고……?"
"우리들을 상대로 이렇게까지 길게 싸우고 있는 그대를, 영주님도 우리들도 높이 평가하고 있소. 그렇기에 그대를 전쟁에서 죽게 하는 것은 아깝지"
"이제와서 우리들 상대로 정치적인 공작(調略)이라고?"
"그렇소. 나는 도쿠가와 님이 타케다 가문의 편을 들도록 설득하러 왔소"
"그런 제안, 받아들일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이에야스는 노성을 지르며 바바의 제안을 거절했다. 하지만 바바는 이에야스의 분노를 보고도 태도를 바꾸지 않았다.
"알고 있소. 만약 도쿠가와 님이 타케다 가문의 편을 들면, 오다 가문이 가만있지 않겠지. 그대는 그것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겠지? 하지만, 그 오다 가문이 존재하지 않게 되면, 문제는 없어지지 않소?"
그 대사로 이에야스는 깨달았다. 타케다의 목적은 도쿠가와 영토가 아니라 오다 영토라는 것을. 그리고 그 말이 의미하는 것을.
이해한 이에야스는 경악한 표정을 떠올렸다. 그에 반해 바바는 즐거운 듯한 미소를 떠올렸다.
다만 아시미츠만은 표정이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
"설마!"
"생각하신 대로요. 이번에 우리는 전쟁을 할 것이오. 하지만 우리들의 목적은 도쿠가와 님, 그대의 목이 아니오. 오다 가문…… 오다 단죠노죠(織田弾正忠)를 쓰러뜨리는 것이오"
노부나가를 쓰러뜨린다. 그것이 과장도 뭣도 아니라 가능하다고 생각하게 할 만한 힘이 타케다 가문에는 있었다.
그렇기에, 정말로 쓰러뜨릴 것인가, 라는 생각이 이에야스의 뇌리에 떠올랐다. 하지만 즉시 머리에서 털어내고 이에야스는 바바를 노려보았다.
"우리들이 오다를 치려면, 우선 배후에 위치하는 도쿠가와 님을 어떻게 할 필요가 있지. 하지만, 그대를 전쟁에서 죽게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 영주님의 생각이오"
받아들이기에 따라서는 타케다 가문에게 도쿠가와 가문은 상대가 되지 않는다, 라고도 들리는 말이었다. 설령 전쟁이 벌어져도, 언제든지 이에야스를 쳐부술 자신이 있기에 나오는 말이다.
하지만 이에야스는 바바의 말을 부정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 소규모 충돌을 거듭해온 전쟁이지만, 승리라 할 만한 것은 얼마 안 되었다.
그리고 오다를 친다면, 타케다 가문은 총력전을 걸 가능성이 높다. 지금까지처럼, 타케다 가문이 목적을 이루었다고 병사를 물릴 가능성은 한없이 낮다.
이에야스는 그 상태에서 타케다 가문에게 이길 자신은 없었다.
"쇼군 각하도 전쟁에서 죽이게 되면 우리들은 역적이라는 비난을 받겠지. 그렇기에, 타케다 가문으로 오실 것을 권하러 왔습니다"
"……"
"그리고 우리들은 히에이 산(比叡山)을 품고 있소. 우리들의 대의(大義)는 부동(不動)입니다"
바바의 말을 정리하면, 타케다 가문이 오다 가문을 치려면, 우선 오다 영토의 배후에 위치하는 도쿠가와 영토에 대해 대처해야 한다.
하지만, 타케다 가문은 이에야스를 높이 평가하고 있기에, 전쟁에서 쓰러뜨리기엔 아깝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이에야스를 한 편으로 끌어들인다. 그 경우 걱정되는 오다 가문을 타케다 가문이 쳐부순다고 확약하면, 타케다 가문 아래로 들어오는 데 망설일 것은 없어진다.
아시미츠도 마찬가지다. 만에 하나, 쇼군을 죽이면 이유를 불문하고 타케다 가문의 명예, 그리고 신겐의 패도(覇道)에 상처가 생긴다. 그렇기에 타케다 가문으로 들어오던가, 아니면 전쟁이 벌어지는 도중에 어딘가에 몸을 숨겼으면 한다는 것이다.
"내가 하는 말을 받아들여 주시겠소? 이대로 오다 가문의 편을 들면, 천하의 대역적(悪逆人) 편을 든 영주라는 비난을 후세(末代)에까지 받게 될 것이오"
"네 이놈!"
"분노는 눈을 흐리지. 한번 더 냉정하게 생각해보시오. 오다 가문은 지금까지 그대에게 무언가 해 주었소? 오다 가문은 그대들 미카와가 금후(今後)를 맡길 만한 상대이오?"
초조함과 분노한 표정의 이에야스, 그에 반해 냉정하게 타이르는 듯한 바바, 이 자리에서 아시미츠는 공기처럼 존재감이 없었다. 아니, 단순히 공기처럼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았다고도 할 수 있다.
"이야기는 끝난 것 같군"
그 말만 하더니 아시미츠는 조용히 일어서서, 몸에 붙은 먼지를 털어내고는 말에 올랐다.
"어디로 가실 셈입니까?"
"나는 처음에 말했다. 이야기는 들어주겠다…… 고. 이야기가 끝난 이상, 내가 여기에 있을 이유는 없다"
고삐를 잡더니 아시미츠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일단, 아까의 대답만은 해주지. 네놈이 말하는 쇼군은 죽었다. 그 찌꺼기(搾り滓)는 아직 현세에 머물러있지만 말이다. 하지만 사소한 일이다. 그리고, 나는 오다를 신용하고 있지는 않다"
바바는 아시미츠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제서야 어떤 것을 깨달았다. 아시미츠의 눈은 얼음처럽 차갑고, 그리고 광기의 색을 띠고 있었다. 도저히 사람이 가질 수 있는 눈빛이 아니고, 괴물이나 가질 수 있는 눈빛이라는 것을 바바는 순간적으로 깨달았다.
"내가 현세에서 믿음을 두는 상대는 단 한명. 나는 그 사람이 바란다면 만 명의 적과도 싸우고, 죽으라고 한다면 그 자리에서 내 목을 베겠다. 그 사람을 위해 살고, 그 사람을 위해 죽는다. 그리고, 그 사람 이외에는 모두 이용가치가 있느냐, 없느냐, 그것 뿐이다"
고삐를 놓더니 아시미츠는 손가락으로 바바를 가리켰다.
"그리고 네놈들에게 이용가치는 없다. 이용가치가 생길 가능성도 없다. 기껏해야 흰소리(大言壮語)만 했다가 꼴사납게 웃음거리가 되는 게 고작이다"
"뭣이라고요"
이번에는 바바의 표정이 변했다. 바바 뿐만이 아니라, 바바의 뒤에 있던 병사들의 안색도 변했다. 아시미츠의 말을 도발, 모욕이라고 받아들인 것이다. 하지만, 쏘아져오는 시선을 받아도 아시미츠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흥, 세상을 모르는 어리석은 놈들이. 후세에 수치를 남기고 싶지 않다면, 고향으로 돌아가 벌벌 떨고 있어라"
다시 고삐를 잡더니, 아시미츠는 말을 돌렸다. 바바나 이에야스를 등졌을 때, 그는 한 마디를 중얼거렸다.
"이 전쟁, 이긴…… 것은 우리들이다"
아시미츠는 바바의 대답을 듣지 않고 말을 달려 가버렸다. 남겨진 것은 긍지에 심각한 상처를 입은 바바 등 타케다 가문과, 마지막까지 사정을 이해하지 못한 이에야스 등 도쿠가와 가문 뿐이었다.
미묘한 공기가 흐르는 가운데, 이에야스도 바바의 제안을 거절했다. 바바는 딱히 신경쓰는 기색도 없이 이에야스의 대답을 듣고 바로 떠났다.
바바가 사라진 이상, 이에야스도 네아라이마츠에 있을 필요도 없어, 가신들을 데리고 거성으로 돌아갔다.
이에야스가 바바의 제안을 거절한 것은, 노부나가를 신용했기 때문이 아니다. 고집(意地)과 긍지는 있었으나, 무엇보다 아시미츠의 느낌이 으스스했던 것이 큰 이유였다.
마지막에 아시미츠가 중얼거린 말을 이에야스는 떠올렸다. "이기는"가 아니라 "이긴"이라고 그는 말했다. 어디에 타케다 가문에 '이긴' 것이라는 요소가 있는지, 이에야스에게는 그게 걸렸다.
허풍일 가능성은 생각되었다. 하지만, 아시미츠의 태도로 볼 때 도저히 허풍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한조, 쇼군…… 아니, 아시미츠 님이 그렇게까지 단언할 수 있었던 이유를 조사해다오"
"옛!"
명을 받은 한조였으나, 쉽지 않을 것을 느꼈다. 하지만 미카와의 명운(命運)을 결정할 중요한 일이기에, 지레 약해질 수는 없다고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한편, 아시미츠는 스스로의 역할을 다했기에, 매일 취미에 몰두하고 있었다. 시즈코에게 보고를 하고, 약의 효과도 아주 좋은 데이터를 얻을 수 있었다. 타케다를 포함한 전원의 행동이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었다.
여기서부터 장기를 두는 것은 시즈코가 할 일이고, 금후의 자신의 역할은 간자의 시선을 모으는 일이기에 놀고 있어도 문제없었다.
수확 시기도 겹쳤기에, 다양한 식재료를 미츠오의 집에 가져가서 연회를 열었다. 각자 일이 있지만, 아니, 일 때문에 평소에 만나지 못하기에, 더욱 자주 연회를 열게 되었다.
"술이 부족하다, 술이 부족해"
"오늘밤은 마시고 떠들고, 춤추고 노래하는 거다ー"
기묘한 노래를 부르면서, 아시미츠는 고로(五郎)와 어깨동무를 하고 수수께끼의 댄스를 선보였다. 그걸 시로(四郎)와 미츠오(みつお)가 장단(音頭)을 맞추며 부추겼다. 전원이 보기좋게 만취해 있었다.
조금 있으면 미츠오의 딸의 목이 자리를 잡기 때문에, 그에 따라 츠루히메(鶴姫)도 집으로 돌아온다. 그렇기에, 신나게 떠들고 놀 수 있는 게 지금뿐이라는 점도 있어, 네 명의 술판(どんちゃん騒ぎ)은 실로 떠들썩했다.
목장(牧場)이 있기 때문에, 이웃 사람이 시끄럽다고 항의할 일도 없다.
"여기여차, 여기여차, 둥둥둥, 슥슥, 보물이 나온다. 어기여차, 어기여차, 둥둥둥"
이번에는 미츠오와 시로가 소쿠리(ざる)를 양손으로 잡고 땅을 파는 동작을 하며 춤을 추었다.
"좋았어, 아저씨ー!"
참으로 초현실적(シュール)인 광경이었으나, 만취해있는 사람에게는 관계없다. 재미있으면 다른 건 모두 무시된다.
그 후에도 흉내를 내거나, 미츠오가 자랑질(惚気)을 해서 세 사람이 야유를 하거나, 기묘한 마임-마임 비슷한 춤을 추어 전원이 구토하거나 하는 등, 여러가지 의미에서 카오스적인 연회가 되었다.
"자, 슬슬 해도 지겠군. 미츠오를 병원으로 데려다줄까"
밖을 보니 일 각(刻)만 있으면 해가 질 것 같았다. 연회라고는 해도 현대와는 달리 대낮부터 하기 때문에 해가 지면 연회는 끝난다.
요즘 미츠오는 집이 아니라 츠루히메가 입원해있는 곳에서 밤을 보내고 있다. 새벽에는 집에 돌아가 일을 하고, 다시 밤이 되면 츠루히메가 있는 곳으로 간다.
애처가(愛妻家)의 모습에 시즈코도 쓴웃음을 지었을 정도지만, 말릴 이유도 없기에 미츠오용의 침대를 준비했다. 현재까지는 미츠오가 사용하고 있는 것 같진 않았지만.
"정리 끝났다. 그럼 갈까. 나와 고로는 병원에 갔다가 지옥거리(地獄通り)를 구경(冷やかし)하러 갈 건데, 시로 님은 어쩌실 건가"
지옥거리란, 소위 말하는 유곽(遊郭)이 모인 거리를 가리킨다. 유곽 거리에서는 분수에 맞는 가게를 고르지 못해서 엄청난 대금을 물게 되는 바람에 전 재산을 빼앗겼다는 이야기가 얼마든지 있다.
그러한 소문들에 꼬리가 붙어, 언제부터인가 유곽 거리는 실패하면 지옥으로 떨어진다고 해서 경계의 의미도 담아 지옥거리라고 불리게 되었다.
"모처럼 권유해주셨지만, 처자가 있는 몸이니 지옥거리는 사양하겠습니다"
"뭐, 그렇네. 나랑 아시미츠 씨만 구경하러 갔다올게"
그런 대화를 나누면서 외출 준비를 마친 네 사람은 각자의 목적지를 향했다. 도중까지는 함께였으나, 마을에 들어섰을 때 미츠오와 시로, 아시미츠와 고로의 두 패로 나뉘었다.
아시미츠와 고로는 두 사람과 헤어진 후, 그대로 지옥거리를 구경하러 갔다. 여기저기서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두 사람은 그대로 흘려들으며 걸었다.
충분히 구경했을 때 지옥거리를 빠져나와 음식점들이 모여있는 거리로 이동했다. 한 잔 걸치고 돌아갈 속셈이었다.
"그럼, 또 봐ー"
"음, 조심해서 돌아가라"
적당한 포장마차(屋台)에서 간단한 안주로 한 잔 걸친 후, 아시미츠는 고로와 헤어졌다. 비틀거리며 걷는 고로를 등 뒤에서 배웅한 후, 아시미츠는 술을 마셨다고는 생각되지 않는 걸음걸이로 귀가했다.
아시미츠로부터 보고를 받은 시즈코는, 한층 더 신겐이 계책에 휘말렸다는 것을 확신했다. 신겐이 오다 영토에 간자를 풀어 조사하고 있는 것은 시즈코도 알고 있었다.
오다 영토의 정보를 바탕으로 신겐이 상락(上洛)할 시기를 변경할 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아시미츠의 보고에 의해 시기가 변경될 가능성은 사라졌다.
신겐은 가신들의 의견을 일치시키려고 고심하고 있다. 아시미츠가 그만큼 도발했는데 공격할 시기를 바꾼다고 말하면 가신들이 반발할 가능성이 높다.
(여기서 이렇게 빼서…… 대충 이렇게 되려나…… 역시 네아라이마츠 주변이 포진지(布陣地)려나)
지형조사 데이터를 바탕으로 만든 지도를 보고, 시즈코는 타케다 군이 포진할 장소를 네아라이마츠라고 생각했다.
현대의 네아라이마츠는 당시의 흔적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 하지만, 그 너머에 있는 호우다 언덕(祝田の坂, 현대에는 호우다 옛 언덕(旧坂)이라고 부름)에는 당시의 흔적이 남아 있다.
통설(通説)에 따르면, 이에야스가 농성하는 하마마츠 성을 무시하고 타케다 군은 미카타가하라 방면으로 진로를 변경했다. 그 이동선상에 호우다 언덕이 있다는 것을 알게된 도쿠가와 군은 농성에서 타케다를 치고 나가는 것으로 작전을 변경한다.
하지만 호우다 언덕을 이동중이었던 타케다 군은, 도쿠가와 군이 배후를 습격하려고 했을 때 갑자기 반전해서 정면 충돌했다고 한다.
이 통설에는 이상한 점이 몇 가지 있다. 우선, 지금도 당시의 흔적이 남아있는 호우다 언덕은 어두컴컴하고 출구로 다가갈수록 좁아진다.
이러한 장소에서 일제히 반전하여, 거기에 3만이나 되는 군세가 조금도 흐트러짐없이 어린진(魚鱗陣)을 전개하는 것은, 당시의 군 사정을 고려하면 불가능한 이야기이다.
만약 신겐이 일제 반전을 가능하게 했다 하더라도, 손자병법(孫子兵法)에 기재되어 있는 피해야 할 지형에 가까운 호우다 언덕을 싸움터로 삼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또, 농성에서 공격으로 작전을 갑자기 변경했을 때, 원군(後詰め)의 역할을 맡고 있는 사쿠마(佐久間) 등이 같이 따라갔다는 점도 이해할 수 없다.
원군이라고는 해도, 오다 군에게 이에야스가 타케다 군을 적극적으로 공격하는 것에 이점이 있지 않는 한 반대하게 된다. 하지만 사쿠마 등이 타케다 군의 배후를 치는 것에 반대했다는 자료는 없다.
원군이 3천이라는 점도 이해할 수 없다. 원군의 장수인 사쿠마, 히라테(平手), 미즈노(水野)는 각각 유력한 무장들이다.
특히 사쿠마는 미츠히데(光秀)와 히데요시(秀吉)가 태두(台頭)하기 전까지 오다 군 내에서 가장 유력한 무장의 지위에 있었다.
그만한 인원들을 파견하면서 합계 병력이 고작 3천으로는 농성을 전제로 하더라도 불안하다. 애초에 신장공기에 병력수의 기재가 없고, 다른 자료는 병력수가 일치하지 않는다.
그러한 것들을 고려한 결과, 시즈코는 어떤 하나의 결론에 도달했다.
(애초에 만 단위로 파견했지만, 타케다가 함락한 성에서 농성을 하더라도 공성(城攻め)조차 하지 않고 지나가도 문제없도록 이중의 계책을 세운 게 아닐까)
그것은 오다의 원군은 여럿이었다, 라는 것이다. 오다 군의 원군은 2만 가까이 파견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하마마츠 성 하나가 아니라, 하마마츠 성을 포함하는 여러 성에 나누어 파견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타케다 군은 하마마츠 성을 함락시키지 않으면 오와리(尾張), 미노(美濃)를 공격해 들어가도 항상 등 뒤의 도쿠가와 군을 신경쓸 필요가 있다.
따라서 타케다 군으로서는 이에야스가 간단히 군사행동을 일으킬 수 없을 정도로는 두들겨놓을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하마마츠 성은 견고하기에, 농성을 하게 되면 간단히 함락시킬 수는 없다.
성이 공격받으면, 다른 성에 있는 오다 군이 구원하러 달려갈 수 있도록 원군을 분산배치했다.
그리고 상황을 이해한 타케다 군이 행동을 취하지 못하고 못박힌 상태로 만들어 시간을 버는 것이 노부나가의 작전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아무리 월동 장비가 있다고 해도, 타케다 군에게는 끊임없이 싸울 수 있는 체력이 없다. 군비(軍備)가 고갈되면 귀환하는 것 외에 선택지가 없는 것이다.
이거라면 만 단위로 원군이 파견되었다, 고 기재되어 있는 갑양군감(甲陽軍鑑)이나 도쿠가와 가문 가신들의 자료와 아귀가 맞는다. 겨우 3천으로 무장들이 하마마츠 성에 있었던 것도 어느 정도 설명된다.
호우다 언덕에 있는 타케다 군을 배후에서 급습하는 작전을 이에야스가 내더라도 사쿠마들이 반대할 이유는 없다.
타케다의 병력이 줄면 그만큼 기후(岐阜)에 있는 노부나가의 부담이 줄어들고, 타케다도 움직이기 힘들어진다.
오로지 견디고 견뎌서, 타케다가 허용된 시간을 다 쓰기를 기다린다, 라고 하면 한심하게 들린다.
하지만 사방팔방이 적으로 둘러싸인 노부나가에게는 이 작전이 가장 안전한 것이다. 한심한 상태 쪽이, 어설프게 타케다의 긍지를 상처입혀 또다시 여세를 몰아 공격받는 사태가 되지는 않는다.
몸을 낮춰 상대가 강하다고 띄워서 우쭐하게 하는 편이 노부나가에게는 안전하다.
(음ー, 역시 어렵네)
생각하면서 시즈코는 장기말을 움직였다. 타케다 군이 어린진을 전개할 가능성은 높다. 배후를 칠 수 있을거라 생각한 상대가 놀라고 있을 때 단번에 박살내 버린다는 작전이라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이에 대해 이에야스가 학익진(鶴翼陣)을 펼친 것은 잘못이라고 종종 이야기된다. 하지만 시즈코는 반드시 잘못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학익진은 정면에서 적의 공격을 받아낼 수 있기만 하면 공방 양쪽으로 우수한 진이기 때문이다. 물론, 보통은 열세인 쪽이 학익진을 펼치는 것은 어리석은 작전일 뿐이다.
적의 움직임을 제한할 수 있는 애로(隘路, ※역주: 좁고 험한 길)였고, 미카타가하라 전투 후에 하마마츠 성에서 농성전을 벌이는 것을 생각하면, 소모를 줄일 수 있는, 최선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차선이라고는 할 수 있는 선택이었다.
(이쪽은 이런 작전으로…… 이런 식으로…… 좋아, 이걸로 완성이네)
모든 기보(棋譜)의 기록을 마치자, 시즈코는 그것들을 정리해서 타케나카 한베에(竹中半兵衛)에게 보냈다. 조금 기다리면 타케나카 한베에로부터 지적이 들어간 것이 돌아온다.
이것을 몇 번이나 반복하여, 미카타가하라의 전투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는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몇 번이나 반복했는지 시즈코도 기억하지 못한다.
"아~~, 피곤해. 두 번 다시 안 할거야, 이런 거"
육체적인 피로도 그렀지만, 사람이 잔뜩 죽는 작전을 생각하는 것은 정신적으로 피로한 시즈코였다. 그러나 미카타가하라 전투에서 어떤 결과를 낼 지에 따라 오다 군의 미래가 결정된다.
노부나가를 위해서도, 그리고 그녀 자신을 위해서도, 미카타가하라 전투는 결코 피할 수 없었다. 시즈코는 손으로 턱을 괴고는 성대하게 한숨을 쉬었다.
(작전대로 되면 상황은 일변하지. 바깥쪽 뿐만이 아니라, 오다 가문 내부도 이것저것 바뀌게 돼. 하아~~, 만약 지금 상태에서 현대로 돌아가도 위험한 인간 코스가 아닐까)
시즈코는 이미 현대에 돌아가는 것을 포기하고 있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갑자기 현대로 되돌려질 가능성은 제로는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미 오와리에 와서 7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양복(洋服, ※역주: 현대의 서양식 옷을 통칭함) 같은 건 이제와서 입을 생각도 들지 않고 키모노(着物)가 아니면 어색했다. 그리고 품 속이나 허리에 칼을 차지 않으면 어딜 가더라도 침착하지 못하게 되어버렸다.
전국시대라면 문제없지만, 현대에서 키모노에 칼을 차고 있으면 틀림없이 경찰서 신세를 진다. 잘못하면 정신병을 의심받아 입원 조치이다.
"(덮어놓고 일하다보니 생각하지 못했는데, 다들 어쩌고 있으려나) 엄마, 걱정하고 있으려나"
"어머니가 어쨌느냐?"
"으엑!"
갑자기 귓가에서 목소리가 들려 놀란 시즈코는 얼빠진 비명을 질렀다. 당황해서 목소리가 난 쪽을 돌아보니, 짓궃은 장난이 성공하여 즐거워보이는 노히메(濃姫)가 있었다.
"멍하니 있던데, 뭔가 생각할 일이 있었느냐?"
"남의 방에 함부로 들어오지 말아 주세요"
"몇 번이나 불렀지만 대답히 전혀 없기에, 방에서 쓰러져 있는게 아닌가 걱정했느니라. 들어와보니 뭔가 중얼거리고 있기에 귀를 기울인 것 뿐이니라"
"하아, 이제 됐습니다. 고민하는 게 바보스러워졌어요"
노히메를 보고 있자, 자신의 고민이 사소하게 생각되기 시작한 시즈코였다. 머리를 가볍게 흔들어 잡념을 털어버린 후, 다시 노히메를 바라보았다.
"그래서, 무슨 용무이신가요? 또 뭔가 드시러 오셨나요?"
"밥을 먹으러 온 건 아니다만, 뭐, 마츠(濃姫)들과 차를 마실 것이니 시즈코도 어떠냐 하고 부르러 왔느니라"
"그거 거절할 수 있는 건가요?"
"거절해도 좋느니라. 그 경우에는 끌고갈 뿐이니 말이다"
그건 사실 거절할 수 없다는 거나 마찬가지잖아, 라고 시즈코는 마음 속에서 지적했다. 아예 어린애처럼 땡깡을 부려볼까 하고 생각했으나, 이상한 모습으로 끌려가도 곤란하기에 생각하는 데만 그쳤다.
"알겠습니다, 가겠어요. 그러니까 달라붙지 말아 주세요"
"시즈코가 말하는 수킨싶, 이라는 것이니라"
어느 틈에 시즈코의 뒤로 돌아간 노히메가 시즈코를 부드럽게 감싸안았다. 노히메는 시즈코의 어깨에 턱을 올리더니, 고양이처럼 볼을 부볐다.
"처음에는 무슨 바보같은 짓을, 이라고 생각했다만, 이게 의외로 좋더구나. 주군께서는 창피하신지 두번다시 못하게 하신다만"
"뭐, 적극적인 애정 표현이니까요. 저도 꽤나 창피하거든요"
"창피해할 것은 아무 것도 없느니라. 나는 시즈코를 좋아하고 있으니. 그렇군, 아까 뭔가 어머니를 생각하던 모양인데, 쓸쓸하다면 나를 어머니라고 생각해도 좋느니라"
"……못 당하겠네요, 노히메 님께는. 하지만, 저희 어머니는 노히메 님과는 전혀 닮지 않았기에 그건 무리한 이야기네요"
"시즈코도 제법 컸구나. 자, 그럼 갈까"
등 뒤에서 떨어지더니, 노히메는 일어나서 다실(茶の間)로 향했다. 너무나 빠른 움직임에 시즈코는 일순 멍해졌으나, 금방 머리로 이해되자 일어서서 노히메의 뒤를 쫓았다.
"오늘의 차과자(茶菓子)는 무엇일고?"
등 뒤에서 쫓아오는 시즈코의 발소리를 들으면서 노히메는 그런 말을 중얼거렸다.
'취미번역 > 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카테고리의 다른 글
095 - 1572년 12월 중순 (9) | 2019.07.14 |
---|---|
094 - 1572년 11월 하순 (6) | 2019.07.09 |
092 - 1572년 9월 상순 (3) | 2019.07.03 |
091 - 1572년 8월 중순 (5) | 2019.06.30 |
090 - 1572년 7월 하순 (8) | 2019.06.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