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텐쇼(天正) 2년 토우고쿠(東国) 정벌(征伐)

 

124 1575년 2월 하순



텐쇼(天正) 2년은, 노부나가가 기후 성(岐阜城)에서 새해를 축하하는 마지막 해가 된다. 노부나가의 아즈치(安土) 이전 계획은 이미 주위에 알려져 있고, 아즈치 성(安土城)이 완공될 때까지의 임시 궁궐(仮御殿)도 완성되었으며, 이전을 향한 세세한 준비도 차질없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래저래 정신없는 연말연시를 모두가 평온하게 보낼 수 있도록 배려하여, 아즈치로의 이전 예정일은 새해 15일 무렵으로 정해졌다. 노부나가가 떠난 후의 기후 성에는 후계자인 노부타다(信忠)가 들어가서 기후를 통치하게 된다.

 

"설날(元日)만큼은 느긋하게 보낼 수 있네"

 

항상 그렇듯 설날에는 시즈코의 수하들도 대부분이 집으로 귀성한다. 잔류하는 사람은 돌아갈 집이 없거나 또는 돌아갈 생각이 없거나 둘 중 하나가 된다. 시즈코는 이곳이 집이며, 아야(彩)는 돌아갈 집이 없다. 작년까지는 둘만의 정월(正月)이었으나, 올해에는 시로쿠(四六)와 우츠와(器)가 더해져 조금 활발한 분위기가 되었다.

고용인(家人)들도 최저한의 인원만을 남기고 나머지는 집으로 돌아가게 했다. 평상시에는 그렇다치고, 정월 동안 정도는 푹 쉬었으면 하는 시즈코의 배려였다.

 

저택의 규모에 비해 거주하는 사람이 적기 때문에 작은 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상황에서, 시즈코는 옆에 뒹굴거리고 있는 비트만들을 쓰다듬고 있었다.

비트만 패밀리 중에서 부모에 해당하는 비트만과 바르티는 요즘 누워있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도 그럴것이, 이제 비트만 패밀리 전체가 노경(老境)에 달해 있었다.

비트만과 바르티에 관해서는 출생일을 알 수 없기에 연령은 추측할 수밖에 없지만, 인간으로 말하면 80세 이상에 해당할 거라고 미츠오(みつお)가 말했었다.

울프독(wolfdog)이라는 종을 남겼기 때문인지, 사육되는 것에 의해 본능이 옅어졌는지, 비트만 패밀리에는 순혈의 후계자가 끊겨 버렸다.

여기에 있는 패밀리가 전부이며, 그들이 생을 마쳤을 때 그들의 일족은 사라지게 된다.

 

"너도, 이제 할아버지구나. 계속 함께 있을 수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생물로서의 수명만큼은 어쩔 수가 없네……. 그 때를 위한 준비는 하고 있지만…… 아직 쓰게 하고 싶지 않아"

 

꼭 인간이 아니더라도, 늙은이와 남겨지는 이의 생활은 힘들다. 생명력이 뿜어내는 거친 기세는 자취를 감추고, 다만 평온하고 조용하게 최후를 향해 착실히 걸어간다.

시즈코의 뒤를 쫓는 것을 그만두고, 그래도 시즈코가 있을 장소를 지키며 기다려주는 비트만이 늙어가는 것을 마주하는 것은 괴롭다. 하지만, 언젠가 확실히 찾아올 그 때를, 아무 준비도 없는 채 맞이하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까지 평온하게 지낼 수 있도록 부심하는 것이 시즈코 나름대로의 도리를 지키는 법이었다.

비트만에 이어 카이저나 쾨니히 등도 순서대로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무래도 카이저들, 제 2세대의 수명에는 어느 정도 여유가 있지만, 그래도 아델하이트나 루츠의 얼굴에서 정한(精悍)함이 사라지고 부드러운 풍모로 변하기 시작하고 있었다.

 

"주인(飼い主)의 숙명인가…….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고 생각하지만, 상상 이상으로 괴롭네"

 

중학 시절의 친구가, 태어났을 때부터 함께 자라온 애견(愛犬)과의 이별을 이야기했던 것을 떠올렸다. 곁에 있는 것이 당연한, 자신의 반신(半身)이라고도 부를 수 있는 가족이 떠나간다.

그 때는, 친구의 고뇌와 비애를 이해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역시 어딘가 남의 일이었으리라. 이 정도로까지 절실한(身につまされる)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너희들의 주인으로서 어울리는 인물이 되었을까?"

 

말로 꺼내어 물어보았으나, 당연히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이것이 감상에 지나지 않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렇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시즈코의 심정을 헤아렸는지, 바르티가 시즈코의 손을 핥았다. 그녀의 체온과 친애의 정이 전해져오는 듯 했다.

 

"그런가…… 고마워"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그저 있는 그대로의 시즈코를 무리의 리더로 인정해주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시즈코는 옅은 미소를 떠올리고는 바르티의 목에 팔을 감고 끌어안았다.

평소에는 과도한 접촉을 싫어하는 바르티였으나, 이 때만큼은 시즈코가 하는 대로 몸을 맡겨주었다.




정월 2일째 이후로는 예년(例年)대로 정신없이 지나갔다. 특히 기후 성에서는 노부나가의 전출에 따라, 노부나가, 노부타다 양쪽에 인사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듯 예년 이상의 장사진이 형성되었다.

인사를 받는 노부나가들이 바쁜 것은 물론이지만, 그 뒤(裏方)에서 일하는 근시(近侍)들은 그야말로 앉은 자리를 데울 틈도 없을 정도로 정신없이 바빴다.

 

"여러분꼐서 바쁘실 거라고 생각해 인사를 미루고 있었는데, 본인께서 직접 오시는 건 좀 문제가 있지 않을까 합니다만……"

 

"무슨 말이냐. 아즈치로 옮겨가면 이렇게 마음 편하게 찾아올 수도 없게 된다. 조금 아쉬워해도 벌받을 일은 아니니라"

 

기후 성의 소란(喧噪)을 뒤에서 일하는 사람들(裏方)에게 들은 시즈코는, 좀 진정될 무렵 인사하러 가겠다고 편지를 보내고 저택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시즈코가 가면, 시즈코를 목적으로 한 혼잡이 더해져, 제아무리 근시들(近侍衆)이라도 손님들을 다 감당하지 못하게 된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노부나가에게 비중이 높은 시즈코는 앞다투어 인사하러 갈 필요성이 적다. 안 그래도 고생하고 있는 사람들(裏方)에게 불에 기름을 붓는 짓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기후 성이 진정되는 것을 기다리고 있을 때, 밤이 깊은 후라고는 해도 노부나가 본인이 시즈코 저택으로 쳐들어왔다.

 

"함부로 기후 성을 비우시면, 주상의 재가(裁可)를 기다리는 사람들(裏方)이 곤란해지는 게 아닌가요?"

 

"당분간은 인사 뿐이라서 결재 따윈 필요없다. 그보다 어서 '케이크'라는 걸 내지 못하겠느냐"

 

자기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지만, 이미 와 버린 이상 어쩔수 없다고 생각하고, 시즈코는 케이크 만드는 것을 재개했다.

현대의 품질에는 아득히 미치지 못한다고는 해도, 초콜렛이 만들어진 것이다. 다행히 신선한 계란은 내다 팔 정도로 많았기에, 계란과 초콜렛만으로 만들 수 있는 가토 쇼콜라(gâteau chocolat)를 만들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시즈코 저택의 평소의 면면에 대해 초콜렛 케이크를 만든다고 선언한 것을 들은 듯한 타이밍에 노부나가가 등장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케이크 만들기는 시간이 걸리기에, 노부나가에게 기다리는 동안 집어먹을 것을 내기 위해 손쉽게 만들수 있는 팬케이크를 먼저 제공했다.

시즈코가 초콜렛을 중탕(湯煎)에 녹이고 있는 동안, 나가요시(長可)가 극한(極寒)의 빙실(氷室)에서 므랭그(meringue)를 만들고 있었다. 냉장고 같은 편리한 것은 없기에, 이빨이 덜덜 떨릴 듯한 환경에서 계란 흰자(卵白)를 계속 섞어줄 필요가 있었다.

 

"시즈코가 있는 곳은 따분함과는 인연이 없구나"

 

주방(厨)에 서는 시즈코의 뒷모습을 보면서 노히메(濃姫)가 중얼거렸다. 추가인원은 노부나가 뿐이었지만, 팬케이크를 굽는 냄새에 끌렸는지, 노히메나 이치(市), 챠챠(茶々)에 하츠(初)도 나타나 앉았다.

아무래도 젖먹이인 고우(江)에게 줄 수는 없어서, 유모와 고우만이 다른 방에서 대기하게 되었다.

서둘러 귀인(貴人)들의 숫자만큼 팬케이크가 구워지자, 각자 쟁반에 담겨 운반되었다. 갓 구운 팬케이크가 풍기는 식욕을 끄는 향기에, 위장이 소리를 내며 가볍게 항의하였으나 무시하고, 잔열(粗熱)을 받은 초콜렛에 계란 노른자(卵黄)를 섞어 반죽했다.

 

"시, 시, 시즈코!, 이, 이이, 이거! 다 됐어"

 

그 때 타이밍 좋게 나가요시가 나타나서, 간신히 므랭그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물체를 가져왔다. 고맙다고 말하고 받아들며 나가요시의 상태를 살피자, 얼어붙어버렸을 입술은 보라색이 되어 있었고, 이빨이 덜덜 떨려 제대로 말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용케 여기까지 마무리해 줬네. 고마워, 카츠조(勝蔵)군. 목욕탕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 얼른 가"

 

정당(精糖) 기술도 어설프고 핸드 믹서 같은 편리한 물건이 없는 상태에서 결이 고운 므랭그를 만드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가열하면서 만드는 스위스 므랭그를 이용한다는 선택지도 있었지만, 부드러운 케이크로 만들기 위해서는 꼭 프렌치 므랭그가 필요했다.

몸을 부여잡는 듯 하며 목욕탕으로 향하는 나가요시를 전송하고, 시즈코는 일단 뿔이 선 상태의 므랭크를 몇 번에 나누어 초콜렛 반죽(生地)에 섞어넣었다.

므랭그를 뭉그러뜨리지 않도록 깔끔하게 섞은 후, 사전에 준비해 둔 금형(金型)에 유채 기름(菜種油)을 엷게 바른 것에 초콜렛 반죽을 흘려넣고 통통 두드려서 공기를 뺐다.

 

"시즈코는 지금부터 '케이크'를 굽는다고 한다. 우리들은 이걸 먹으면서 기다리도록 하자"

 

노부나가는 김을 풍기는 팬케이크에 벌꿀을 잔뜩 바르고, 젓가락으로 솜씨좋게 둘로 접어 입으로 가져가 크게 베어물었다.

'주룩'하며 스며드는 벌꿀과, 그것을 묵직하게 받아내는 케이크 반죽의 향기로우면서도 달콤한 맛에 자기도 모르게 표정이 풀렸다.

 

"맛있구나!"

 

유리 제품의 부산물인 중탄산소다(重曹)가 듬뿍 들어간 팬케이크는 현대의 그것에 비해서도 손색이 없는 완성도였으며, 노부나가 뿐만이 아니라 노히메들도 눈을 크게 뜨고 맛보고 있었다.

빨리도 한 장을 먹어치운 노부나가는, 다른 한 장에 다른 접시에 올려진 크림과 감(柿)의 잼을 발라 우물거리고 있었다. 단 것을 좋아하는 것은 여전하구나 하고 시즈코는 어딘가 흐뭇한 느낌으로 바라보며 예열(余熱, ※역주: 작가가 독음이 같은 予熱과 착각한 듯함)해둔 돌가마(石窯)에 케이크의 금형을 투입했다.

 

"단 것과 함께 마시면 이 떫은 홍차(紅茶)라는 것도 각별하구나. 약간 신맛을 느끼지만, 되려 마음에 든다"

 

티 컵에 든 홍차를 흔들면서 이치가 중얼거렸다. (좀 지나치게) 가느다란 손잡이가 달린 티 컵에 망설였던 이치였으나, 지금은 우아하게 사용하고 있었다.

 

"달아ー"

 

"달아ー"

 

챠챠와 하츠는 그렇게 말하면서 눈 깜짝할 사이에 팬케이크를 먹어치웠다. 메인인 초콜렛 케이크에 대한 예고편(前座)이고, 어른과 달리 많이 먹지 못하는 그녀들의 팬케이크는 작다.

일찌감치 다 먹어버려서 어른들의 팬케이크를 먹고 싶은 듯 바라보았으나, 더 맛있는 초콜렛 케이크의 등장을 얌전히 기다리고 있었다.

 

손님방의 상황을 살피면서 돌가마의 상태를 보고 있던 시즈코는, 꺼낸 초콜렛 케이크에 대나무 꼬치를 꽂고, 설익은 반죽이 따라오지 않는 것을 확인한 후 미소를 지었다.

초콜렛의 품질 문제인지, 므랭크가 충분하지 않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약간 겉보기가 좋지 않기는 해도 일본(本邦) 최초의 초콜렛 케이크가 무사히 구워졌다.

시즈코는 금형에서 꺼낸 케이크에 식칼을 넣어 한 홀을 8등분하여 잘랐다. 손님방에 앉아있는 귀인은 5명, 큰 역할을 한 시즈코와 나가요시가 받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고, 마지막 한 조각의 행방이 파란(波乱)을 불러올 듯 했다.

 

"……참으로 농후하고 향기로운 맛이구나"

 

"남만의 언어로 가토 쇼콜라(프랑스어로 초콜렛 케이크라는 의미)라고 합니다"

 

일본 최초라는 말에 가장 먼저 입으로 가져간 노부나가는 말을 잃었고, 잠시 시간이 지난 후 간신히 감상을 짜냈다. 초콜렛이 갖는 고혹적(蠱惑的)인 향기와, 풍부한 유분(油分)과 당분(糖分)이 가져오는 펀치력이 노부나가를 마비시켰던 것이다.

노부나가와 시즈코가 대화하는 옆에서 노히메들도 케이크를 맛보고 그 맛에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챠챠와 하츠에게는 초콜렛의 쓴맛이 강했는지, 팬케이크용의 크림을 발라서 우물거리고 있었다.

 

"시즈코야, 이건 더 만들 수 없느냐?"

 

재료 자체는 존재했으나, 므랭그를 만드는 작업이 가혹하여 그리 쉽게는 만들 수 없다고 설명하자, 전원의 눈이 케이크 접시에 남겨진 최후의 한 조각에 못박혔다.

시즈코는 스스로 불똥을 뒤집어쓰는 어리석음을 피하여 얼른 퇴장했으나, 행운을 붙잡지 못한 누군가의 손에 의해 또다시 나가요시가 빙실로 보내지게 된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정신없이 바쁜 노부나가가 일부러 찾아온 것이다. 케이크만으로 만족할 리가 없어, 와인이나 맥주 외에, 그에 맞는 만주류까지도 토산품(土産)이라 칭하며 가지고 갔다.

기후와 오와리(尾張) 사이의 거리니까 가볍게 찾아올 수도 있으나, 아즈치로 옮겨가면 식생활은 말할 것도 없고 다양한 생활 양식에 제한을 받게 된다.

냉장이나 수송 기술 수준이 낮았기에, 천하인(天下人)이라고 해도 이것만큼은 어떻게 할 방법이 없는 숙명이었다.

 

(아즈치 성에서도 케이크를 만들 수 있게 하라고 할 것 같아……)

 

아즈치로 옮겨가면 노부나가의 분방함도 자취를 감출거라 생각했으나, 어째서인지 노부나가가 변함없이 무리한 요구를 하는(無茶ぶりをする) 미래가 상상되어 버려서 시즈코는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태풍같은 방문을 소화해낸 시즈코였으나, 하늘은 그녀에게 휴식을 주지 않았다.

 

"……드디어, 인가"

 

전달된 편지를 읽던 시즈코는, 만감(万感)의 심정을 담아 중얼거렸다. 편지에는 천하오검(天下五剣) 중 마지막 한 자루, 쥬즈마루(数珠丸)를 입수했다는 소식이 적혀 있었다.

도우지기리(童子切) 야스츠나(安綱), 오니마루(鬼丸) 쿠니츠나(國綱), 미카즈키(三日月) 무네치카(宗近), 오오덴타(大典太) 미츠요(光世) 등 네 자루는 비교적 이른 시기에 시즈코가 있는 곳에 모였다.

그러나, 마지막 한 자루인 쥬즈마루(数珠丸) 츠네츠구(恒次)의 입수는 대단히 어려웠다. 왜냐하면 쥬즈마루는 니치렌(日蓮) 상인(上人)의 유품으로, 다른 유품과 함께 오랫동안 미노부 산(身延山) 쿠온지(久遠寺)에 퇴장(退蔵)되어 있었다.

시즈코가 꾸준히 쌓아올린 문예(文芸) 보호(保護)의 실적이 평가받아, 조정(朝廷)으로부터의 공작(働きかけ)도 있어, 이번에 겨우 쥬즈마루 츠네츠구만이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여기에 이르기까지 길고 어려운 교섭이 벌어졌을 것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온갖 난관을 배제하고 결과를 이끌어낸 조정의 담당자와, 최종적으로 양보해준 쿠온지의 승려에게 시즈코는 감사했다.

 

"하지만, 카츠조 군이 오오덴타 미츠요를 필요없다고 할 줄이야…… 케이지(慶次) 씨나 사이조(才蔵) 씨도 받으려고 하지 않고"

 

천하오검이 모이기는 했으나, 사장(死蔵)시켜서는 의미가 없다. 자료를 남긴 후, 현물을 수하의 장수들에게 하사하려고 했으나, 누구도 받으려 하지 않았다.

수하의 장수에 대한 대외적인 포상(褒美)으로서, 케이지와 사이조에게는 이미 천하오검을 하사했지만, 모두의 앞에서 하사되었다는 사실만이 중요하며, 케이지와 사이조 모두 칼 본체는 시즈코 저택의 창고에 보관해둔 채였다.

일단 소유권이 이전되었기 때문인지 가끔 본인들이 손질을 하고 있는 모양이지만, 귀성할 때도 가지고 갈 기색조차 없었다. 그리고 이번의 나가요시에 이르러서는, 애초에 하사받는다는 형식조차 불필요하다고 잘라 말했다.

따라서 미카즈키 무네치카만 평소부터 아시미츠가 소유하고 있지만, 다른 네 자루 및 오오카네히라(大包平)라는 명도(名刀)를, 칼을 휘두를 일이 없는 시즈코가 소장하게 되어 버렸다.

아시미츠 자신은 시즈코가 원한다면 미카즈키 무네치카를 넘겨줄 생각이었지만, 시즈코로서는 실용품을 사장시키는 건 부끄럽다는 생각이 있었기에, 계속 아시미츠가 관리하게 되었다.

 

"뭐, 괜찮으려나. 역사적 자료가 흩어져 없어지는 걸 방지할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좋은 거라고 생각하자. 그보다, 영지에서의 진정(陳情)이……"

 

"시즈코오!"

 

진정서를 확인하려고 시즈코가 책상에 손을 뻗은 순간, 방을 구획하는 맹장지가 난폭하게 열어젖혀졌다. 이런 행패를 부리는 것은 저택에서도 몇 명 밖에 없기에 자연히 범인을 알 수 있었다.

 

"일을 하면 아니 된다. 백부(伯父, ※역주: 검색해보니 한국과는 다소 명칭의 차이가 있는 듯 하지만(한국 기준으로는 외숙이나 외숙부라고 하며 어머니의 오빠에 대해 백부라는 표현을 쓰지는 않는 듯함), 여기서는 일단 원문의 한자인 백부를 그대로 읽겠슴)님께서 그리 말씀하셨느니라!"

 

득의만면(得意満面)한 모습으로 가슴을 펴는 것은 챠챠였다. 워커홀릭인 시즈코에 대해 외교(外交)를 금지시킨 정도로 쉰다면 고생할 일이 없다. 그렇게 생각한 노부나가가, 시즈코의 감시역으로 챠챠를 발탁했다.

경애하는 백부인 노부나가로부터 대임(大役)을 받은 것과 챠챠 자신이 시즈코가 상대해주는 것을 즐기는 것이 화근이 되어, 시즈코가 일을 하려고 하면 어디선가 챠챠가 나타나는 것이었다.

어린애였기에 집중력이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는 결점은 있으나, 천성적으로 좋은 감을 발휘하여 타이밍좋게 방해하러 나타나는 챠챠에게 제아무리 시즈코라도 애를 먹고 있었다.

 

"이건 일이 아니에요. 편지를 읽고 있을 뿐이랍니다"

 

"아니 된다! 그 표정은 거짓말을 하고 있는 표정이니라!"

 

자기도 모르게 시선이 여기저기 움직여버리는시즈코를 수상쩍게 보던 챠챠는 시즈코의 말을 거짓말이라고 판단했다.

 

"그런 그렇고, 챠챠 님. 지금 시간은 공부(座学) 시간이 아닌가요?"

 

의무교육의 중요성을 몸으로 알고 있는 시즈코인만큼, 시즈코 저택에 체재하는 일정 연령의 사람들은 빠짐없이 교육이 실시된다. 본래는 동년배 아이들과 책상을 나란히하고 면학(勉学)에 힘쓰고 있어야 할 시간이며, 챠챠가 이곳에 있다는 것은 태업을 의미한다.

 

"공부보다 임무가 중요하노라!"

 

시즈코의 지적에 챠챠는 눈을 피하며 딴청을 부렸다. 눈을 보고 이야기하지 않는 것은 뒤가 구린 구석이 있다는 증거, 둘이서 셋트인 하츠가 없는 것도 고려하면, 혼자서만 도망쳤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었다.

 

"챠챠 님, 이런 곳에 계셨군요"

 

감정의 기복이 느껴지지 않는 차가운 목소리와 함께, 돌연 뻗쳐온 손이 챠챠의 뒷덜미를 붙잡았다.

 

"우왓! 등 뒤에서라니 비겁하다!"

 

"무슨 말씀을 하시던 공부를 하셔야 합니다"

 

"놓ー아ー라ー!"

 

멋진 수완으로 챠챠를 구속한 아야는, 챠챠의 저항을 무시하고 그녀를 끌고 떠나갔다. 챠챠의 목소리는 서서히 멀어져서, 복도의 모퉁이를 돌았을 때 쯤 뚝 하고 들리지 않게 되었다.

 

"……진정서, 읽을까"

 

일련의 사건을 없었던 일로 한 시즈코는, 책상에 놓인 서류 상자에 손을 뻗어 가장 위에 놓여있던 진정서를 들어올렸다.




1월 하순이 되자, 노부나가는 아즈치의 임시 궁궐로 본거(本拠)를 옮겼다. 빈 기후 성에는 노부타다가 입성하고, 노부나가의 아즈치 이전을 알게 된 사람들은 드디어 혼간지(本願寺)와의 결판을 낼 생각이구나라고 수근거리고 있었다.

혼간지 입장에서는 그래봤자 소문이라며 무시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혼간지에 남겨진 전력은 키이(紀伊) 문도들(門徒衆) 뿐으로, 나머지는 사이고쿠(西国)에 모우리(毛利) 등의 협력자가 남아있을 뿐이었다.

토우고쿠(東国)에 뿌리내린 문도들은 이제는 찾아볼 수도 없어, 도저히 전력으로서 기대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카이(甲斐)의 타케다(武田)나, 토우고쿠의 영웅(雄)인 호죠(北条)에게 도움을 청하려고 해도, 그 사이를 차단하는 형태로 시즈코를 거느린 노부타다가 포진하고 있다.

토우고쿠로부터의 지원이라는 한 팔이 뜯겨나간 상태에서 노부나가와 대치해야 한다는 사실이, 혼간지 수뇌부의 골머리를 썩게 하고 있었다.

 

"우리들은 멸망의 위기에 서 있습니다"

 

혼간지에서 개최된 대(対) 노부나가 작전회의 자리에서, 라이렌(頼廉)은 현재 상황을 이렇게 평가했다. 소심한 자세라고 다들 입을 모아 비난했으나, 라이렌이 한 번 노려보자 입을 다물었다.

 

"여러분도 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들은 지금까지 전국에 퍼져 있는 문도들에게 결기(決起)를 촉구하여 많은 병력을 동원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다의 손에 의해 각지의 문도들은 진압당하여, 이제는 혼간지 문도라는 것을 밝히는 것이 꺼려지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일대 거점이었던 나가시마(長島)와 카가(加賀)도 빼앗기고, 쫓겨난 문도들이 난민이 되어 밀어닥쳐, 오늘날 우리들의 곤경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한편 오다는, 그들의 생활 기반을 병탄(併呑)하여 기세를 불렸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키이 문도들만으로는 노부나가를 저지하는 것 따위 불가능한 이상, 많은 난민들을 데리고 있는 우리들은 가만히 앉아 있어도 죽음을 기다릴 뿐이라는게 현재 상황입니다"

 

"하지만, 굶주린 신도들을 저버릴 수는……"

 

"우리들에게 남겨진 선택지는 두 가지. 하나는 모든 것을 내던져 오다를 치는 철저 항전. 다른 하나는 패배를 받아들이고, 폐하(帝)를 통해 조정(調停)를 신청하는 것입니다. 조직으로서의 혼간지는 사라지지만, 종교로서는 존속할 수 있도록, 우리들은 해산되고, 이곳 이시야마(石山) 혼간지를 넘길 것을 요구받아——"

 

"아니 되오!"

 

라이렌이 이시야마 혼간지의 포기(明け渡し)를 언급한 순간, 어떤 인물이 그걸 가로막으며 노성을 질렀다.

목소리의 주인은 쿄뇨(教如). 혼간지 법주(法主)인 켄뇨(顕如)의 장남으로, 오다와의 철저 항전을 부르짖는 급선봉이었다. 그와 그를 지지하는 일파는 강경하게 철저 항전을 주장하고 있었다.

이것이 훗날, 혼간지를 동서로 가르는 비극을 낳게 된다.

 

"일향종(一向宗)의 일향(一向)이란 일의전심(一意専心). 갈 길을 굽혀서는 무엇이 일향종이라는 것이오! 나아가면 극락왕생(極楽往生), 물러나면 무한지옥(無限地獄)에 빠질 것이오. 우리들에게 항복이라는 선택지는 없소!"

 

평소처럼 작전회의가 소극적이 되려고 할 때 쿄뇨가 독려를 했다. 오다와의 일시 강화에 대해서조차 난색을 표하는 그들은, 실질적인 패배를 받아들이는 조정안(調停案) 따위 받아들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현재 상황을 올바르게 인식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들의 주장은 과대망상의 영역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럼, 여쭙겠습니다. 어떠한 방법으로 오다를 타도할 것입니까?"

 

"우리들이 신심(信心)을 버리지 않는 한, 부처께서는 반드시 혼간(本願, ※역주: 중생을 구제하기 위한 부처의 서원(誓願))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오! 마음이 꺾이지 않는 한, 우리들에게 패배는 없소!"

 

"……그래서 왕생할 수 있다고 해도, 현세에 남는 것은 시체의 산이겠지요. 우리들이 문도를 잃을 때마다 우리들의 힘은 약해집니다. 우리들이 약해지면, 오다 뿐만이 아니라 다른 종교 세력(寺社)들도 적으로 돌아설 것입니다"

 

라이렌의 지적에 쿄뇨는 말을 잃었다. 혼간지의 적은 오다 뿐만이 아니다. 지금까지 혼간지가 괴롭혀온 종교 세력이, 반역의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혼간지가 세력을 잃으면, 종교 세력은 오다에게 영합하여 일향종을 철저히 짓밟으려고 적대할 가능성조차 있었다.

그렇기에 라이렌은, 궁지에 몰린 지금이야말로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지금부터는 한 발짝 잘못 내디디는 것만으로 지금까지의 협력자까지 보신을 위해 오다로 변절하게 된다.

 

"하지만, 혼간지를 잃어서는, 교의(教義)를 위해 순교한 사람들에게 면목이 서지 않소"

 

여전히 물고늘어지는 쿄뇨였으나, 라이렌은 이미 전쟁의 결론(落としどころ)을 생각하고 있었기에 그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현재 상황에서 결단할 수 없다면, 제가 한 가지 판단재료를 늘리도록 하지요"

 

"대체 무엇을?"

 

"제가 직접 어떤 인물과 만나, 우리들의 미래를 점칠 수 있는 정보를 가지고 돌아오죠. 그것을 바탕으로 여전히 철저 항전할 것인지, 명예를 버리고서라도 실리를 취하여 살아남는 길을 모색할지를 판단했으면 합니다"

 

"어떤 인물이라 하면?"

 

쿄뇨가 숨을 들이키며 묻자, 라이렌은 한 박자 쉬고 대답했다.

 

"오다가 심복(懐刀)으로서 신뢰하는 자. 오다 님의 최대의 이해자이자 타케다 패배의 공로자. 오섭가(五摂家) 필두(筆頭) 고노에 가문(近衛家) 영애, 시즈코입니다"

 

"뭣!"

 

고요해진 작전회의장이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졌다. 시즈코라고 하면 오다 가문의 중신(重臣)이며, 혼간지가 규합한 오다 포위망의 핵심인 타케다 군을 괴멸시킨 원적(怨敵)이다.

지금도 여전히 혼간지를 경제적으로 조이고 있는 수괴(首魁). 노부나가와 표리(表裏)를 이루는, 오다 가문의 얼굴이라 할 인물이었다. 그 시즈코와 직접 만나겠다고 라이렌은 선언한 것이다.

이것에는 항상 냉정한 켄뇨도 경악하여 라이렌의 눈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물론, 면회가 이루어진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운좋게 면회가 이루어지더라도, 그 전후에 적의 함정에 걸려 목숨을 잃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것을 오다의 악행으로 하여 혼간지의 대의를 선전할 수 있겠지요"

 

"오다는 수하가 멋대로 한 짓이라고 발뺌할지도 모르오"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시즈코는 오다 가문에 깊이 뿌리내린 거목(大樹). 그걸 보신을 위해 잘라내면 오다의 대들보가 흔들립니다. 혼간지의 중신인 제가 목숨을 걸기만 해도 다름아닌 오다가 모든 어려움을 배제하고 저를 지켜야 하며, 회담을 끝낼 때까지 오다는 움직임을 멈출 수밖에 없게 됩니다. 회담이 성사되어 정보를 얻을 수 있다면, 금후의 판단 재료가 늘어납니다. 결과가 어떻게 나오던, 우리들에게 손해는 없습니다"

 

"음……"

 

쿄뇨는 라이렌이 말하는 계책을 듣고 자기도 모르게 신음했다. 라이렌이 단독으로 직접 적진으로 들어가, 거기서 얻은 정보로 다시 방침을 정한다. 그렇게까지 해서 가지고 돌아온 정보를 소홀히 취급하거나 할 수는 없으니, 작전회의는 반드시 항복 쪽으로 흘러가리라.

라이렌은 혼간지를 버리고, 무장세력으로서의 혼간지를 해산해서라도 종교로서의 일향종을 남길 속셈인 것이다. 쿄뇨는 그렇게 확신했다.

 

(그렇게 놔두지는 않는다! 거점으로서의 혼간지를 잃으면, 구심력을 잃고 조직을 유지할 수 없게 된다)

 

"물론, 이쪽이 만나고 싶다고 바란다고 바로 만날 수 있는 상대는 아닙니다. 그 절차를 밟는 동안, 시즈코에게 무엇을 묻고, 무엇을 말할지를 상담하도록 하죠"

 

본심은 처음부터 정해진 주제에 뻔뻔한 소리를 한다고 쿄뇨는 마음 속으로 내뱉았다.




2월에 들어서, 오다 가문으로부터의 양자인 시로쿠나 우츠와를 받아들인 시즈코의 생활도 자리를 잡고 있었다. 외교(外交)를 금지당했다고는 해도, 영주(領主)인 이상 영지 운영에 관한 일거리가 발생하고, 시즈코가 아니면 판단할 수 없는 사안도 쌓여갔다.

시즈코에게 휴식을 취하게 하기 위해 가신들이 극력 작업을 대행하고 있었으나, 결국 시즈코가 현장으로 복귀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일을 재개하면 공적인 시간이 많아져, 당장 시로쿠나 우츠와와 접할 시간이 줄어든다. 하지만, 시로쿠나 우츠와가 아무 부자유없이 살기 위해서도 일을 소홀히 할 수는 없었다.

일과 가정 사이에 끼어 고뇌하는 아버지의 기분을 점점 느끼고 있는 시즈코였다.

 

"……좋아, 이걸로 됐겠지"

 

오전 시간을 총동원하여 쌓여 있던 결재 문서의 처리를 끝내고 자기 방에서 간단한 점심식사를 했다. 퍼넣듯이 식사를 마친 후, 복장을 고치고 응접실로 향했다.

 

"지금 돌아왔습니다"

 

"수고했어요. 바로 보고를 부탁해요"

 

응접실에는 오랫동안 토우고쿠에 정보 수집차 나가 있던 사나다 마사유키(真田昌幸)가 기다리고 있었다. 현재, 시즈코 휘하의 장수들은 사이조를 남기고 전부 나가 있었다.

나가요시는 노부나가의 명령을 받고 오우미(近江) 일원(一円)의 치얀유지 활동에 동원되었고, 케이지는 경비가 허술해진 시즈코의 영지를 혼자서 순찰하고 있었다. 타카토라(高虎)는 여전히 아즈치 성 축성 때문에 쿠로쿠와슈(黒鍬衆)를 이끌고 오우미에 머물고 있었으며, 아시미츠(足満)는 사이고쿠에 대한 첩보활동과 우에스기 가문(上杉家)에 대한 관계 유지(顔つなぎ)를 위해 바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놀라운 것은 나가요시 이외의 전원이, 시즈코가 명령해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행동 지침을 정하고 시즈코의 허가를 받아 움직이고 있었다.

그렇기에, 아무리 시즈코의 주변을 탐색해봐도 각지에 흩어진 장수들의 속셈은 파악할 수 없다.

 

"역시 오와리와 미노(美濃)의 영향범위 바깥의 시장은 축소 경향에 있나요……"

 

"예. 미카와(三河)는 절약하는 분위기 정도입니다만, 그보다 동쪽의 시장은 물류 자체가 줄어서 긴축상태(緊縮状態)에 있습니다"

 

시즈코는 마사유키에게 토우고쿠에 위치하는 각 시장의 조사를 명령했었다. 그 결과로서, 각국의 시장 규모가 서서히 축소되고 있는 것이 판명되었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두 가지. 하나는 오랫동안 계속된 전쟁 때문에 한창 일할 때의 남성 인구가 줄어들어, 물자의 생산력 및 구매능력 자체가 떨어진 것.

또 하나는, 각국의 경제 상황이 악화되어, 시장에 돌릴 수 있는 돈이 고갈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전시통제(戦時統制)에 의한 긴축재정(緊縮財政)을 취하면서 다음 전쟁의 준비를 하고 있다고도 생각할 수 있으나, 마사유키의 조사에 의하면 군수물자의 유통 자체가 줄었기 때문에 정말로 여유가 없는 것이라는 점을 엿볼 수 있었다.

시장에서 돈이 사라지면 상거래는 성립되지 않게 되고, 애초에 시장이 서지 않게 된다. 시장이 서지 않는다면, 이익에 민감한 상인들이 일부러 위험을 감수하면서 발을 들여놓을 리가 없다.

가라앉는 배에서 쥐가 도망치듯 앞다투어 철수하고, 이후에는 다가가지 않게 되어버렸다.

 

"사나다 님은 계속 조사를 부탁해요. 다음에는 한 발자국 더 들어가서, 민초(民草)들의 생활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조사해 주세요"

 

"옛"

 

"그리고 임무를 수행한 간자들에게는 충분한 휴식을 취하게 해 주세요. 피로를 남겼다가 판단력이 떨어져서, 정체를 들켜 흔적이 남아도 곤란하니까요"

 

"옛.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보고를 마치고 다음 임무를 받은 마사유키는 응접실에서 나갔다. 그리고 그와 교차하듯, 아시미츠가 응접실에 모습을 드러냈다. 노린 듯한 타이밍에 시즈코는 놀랐지만, 그대로 대응하기로 했다.

 

"우선은 수고했어요. 그래서, 뭔가 단서는 잡았나요?"

 

"혼간지에 움직임이 있었다. 켄뇨는 여전히 방침을 결정하지 않았지만, 시모츠마 라이렌(下間頼廉)을 필두로 하는 항복파와, 쿄뇨가 주도하는 항전파가 대립하고 있지. 그리고 작전회의 자리에서 라이렌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한 모양이다"

 

"재미있는 이야기라뇨?"

 

시즈코는 고개를 갸웃하며 아시미츠에게 되물었다. 아시미츠는 작게 미소를 떠올리며 대답했다.

 

"시즈코, 너와 회견해서 금후의 방침을 결정한다는 모양이다"

 

"흐ー음…… 어? 네!?"

 

시즈코는 일순 흘려들을 뻔 하다가 당황해서 아시미츠에게 다가가더니 목소리를 낮춰 귓말을 했다.

 

"나는 외교를 금지당했으니 애초에 만날지 만나지 않을지의 판단을 할 수 없어요. 뭣보다, 정치에서 멀어져 있는 나랑 만나서 어쩌겠다는 건가요?"

 

"글쎄. 나는 그놈이 아니니까 알 수 없지만, 놈에게는 너와 만나는 것에 의해 얻는 것이 있다고 판단한 걸지도 모르지. 아니면 시즈코와 만나는 것 자체가 목적이라고 볼 수도 있다"

 

"아아! 나와 회담하는 것 자체를 정치적 협상에 이용할 생각인가, 거 참 민폐스러운 얘기네……"

 

아시미츠의 말을 듣고 잠시 허공을 노려보며 생각에 잠겨있던 시즈코였으나, 상대의 노림수를 이해하고 탄식했다. 상대의 내부 사정은 모르더라도, 상대의 입장과 목적을 알게 되면, 그 속셈은 자연히 꿰뚫어볼 수 있다.

 

"즉 라이렌은, 승산 없는 전쟁을 계속하기보다 조기에 항복해서 살아남는 걸 꾀하고 있다는 거네요"

 

라이렌은 자신의 마음 속을 읽혔다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겠지만, 시즈코를 여자라고 얕보면 안 된다.

시즈코는 현대에서 역녀(歴女, 역사를 좋아하는 여성)로 분류된다.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이 있듯, 장기적 시점에서 역사를 부감(俯瞰, ※역주: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듯 보는 것)하면 종종 비슷한 사건이 반복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본은 물론이고 세계의 역사에 대해서도 체계화된 지식으로서 배워익히고 있었다. 유사한 사례에서 상대의 노림수를 추측하는 정도는 쉬운 일이었다.

 

시즈코의 추리로는, 라이렌의 노림수는 강화(講和)에 있다. 그는 이미 오다를 적대자(敵対者)로 보고 있지 않고, 혼간지 내부의 항전파를 잘라내는 것에 주안점을 두고 있으리라.

따라서 라이렌은 시즈코와 회담이 성사되던 아니던, 강화로 이어지는 길을 가기 위해 행동할 거라 생각된다. 쿄뇨를 시작으로 하는 항전파에게 있어 불리한 상황에서의 강화는 받아들이기 어렵지만, 라이렌은 이 이상 상황이 개선되지는 않을 것이라 판단하고 있었다.

제아무리 오다 가문이라고 해도 혼간지 정도의 거대 종교 조직을 완전히 씨를 말리거나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신심은 개개인의 마음 속의 문제이기에, 아무리 노부나가라도 파고들 수 없는 영역이다.

따라서 종교조직과의 대립은 오래 계속되고, 그리고 그 때문에 강화에 조건을 붙이는 것도 가능해진다. 혼간지측이 신도를 줄이면서 무장해제에 이르는 것이 가장 온건하면서도 이상적인 종전 방법이 되기 때문이다.

바로 여기에 라이렌의 활로(活路)가 존재했다. 설령 쿄뇨 등 항전파와 대립하여 종파를 둘로 갈라 상쟁하게 되더라도, 어느 한 쪽만이라도 살아남을 길을 선택한다.

그것은 예전의 동포로부터 배신자라는 욕을 먹게 되고, 설령 강화가 성립하더라도 누구로부터도 칭찬받지 못하는 수라(修羅)의 길이었다. 라이렌은 그것들을 각오하고 시즈코와의 회담에 임하려 하고 있었다.

 

"내가 라이렌을 만나지 않으면 전쟁이 오래 끌게 되고, 만나면 정치적 대결(駆け引き)에 휘말려들게 되네. 회담 전에 라이렌의 몸에 무슨 일이 있으면 우리들이 누명을 뒤집어쓰게 되니, 내부 항쟁의 암살(凶刃)로부터 라이렌을 지켜야 하나……"

 

정말로 짜증나는 계책을 생각해낸 셈이다. 결과가 어떻게 나와도 라이렌은 자신의 목숨 외에는 잃어버릴 것이 없지만, 도박에 승리하면 본래의 가치 이상의 성과를 이끌어내게 되어버린다.

 

"아무리 나라도 이건 불쾌하네요. 혼간지에 이용당하는 것도 화가 나니까, 여기는 제3의 선택지를 선택하게 할 필요가 있겠어요"

 

시즈코가 웃으면서 말하자, 아시미츠는 맡겨두라고 말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달력은 2월로 접어들었다. 노부나가가 아즈치로 거처를 옮긴 지 한 달이 지나려 하고 있었으나, 표면적으로는 아무 일도 없이 지나갔다. 혼간지도 라이렌의 행동을 지켜볼 셈인지, 조정을 경유하여 시즈코와의 회담을 타진해와, 노부나가의 판단을 기다리는 상태가 되었다.

노부나가 자신은 제 3차 오다 포위망이 형성되지 않도록 각 방면의 역학관계를 조정하면서 직할령인 아즈치의 정비에 힘을 쏟고 있었다.

2월 하순이 되자, 노부나가는 조정으로부터 정3위(正三位)의 품급과 우근위대장(右近衛大将)의 직책을 하사받았다.

노부나가는 머지않아 종2위(従二位)에 서임되어 내대신(内大臣)을 겸직하게 될 것이라고 조정 내부에서 그럴싸한 소문이 돌고 있었다.

때를 같이하여 니히메(仁比売)가 종3위(従三位)에 서임되고, 시즈코도 부지런함(精勤)을 평가받아 종3위를 하사받게 되었다.

니히메에게는 병행하여 곤츄나곤(権中納言)에 임명되었으나, 시즈코에게는 관직이 주어지지 않았다.

 

"조정이 양쪽을 저울질하여 양쪽 모두에게서 이익을 끌어내려고 하고 있는 걸까?"

 

시즈코는 노부나가가 보낸 주인장(朱印状)을 보며 중얼거렸다.

여전히 공적인 자리에 모습을 보이지 않는 니히메였으나, 노부나가의 손에 의해 기회가 있을 때마다 천황과의 서신 교환이 계속되고 있다고 했다.

슬슬 그런 인물은 없다는 게 드러나는 게 아닐까 하고 시즈코는 위태로움을 느끼고 있었다.

 

(뭐 드러나게 될 것 같으면 병사한 걸로 해서 성대하게 화장(荼毘)하여 얼버무리겠지……)

 

애초에 병약해서 밖에 나오지도 못한다는 설정의 니히메이다. 급서(急逝)했다고 해도 이상하게 생각되지는 않을 것이다.

후견인인 노부나가가 장례식을 치르면, 이것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사람 따윈 없다.

 

"자자, 슬슬 영주의 일을 해야지. 오와리 뿐만 아니라 키묘(奇妙)님의 미노 쪽 치다꺼리도 해야 하니 큰일이야"

 

노부나가로부터 미노를 이어받은 노부타다는, 시즈코에게 미노의 관리(仕置き, 영주로서의 통치 전반)을 명했다. 노부타다의 직속 신하들에게도 아닌 밤중에 홍두깨(寝耳に水) 격인 사건이었던 듯, 입을 모아 노부타다에게 명령을 번복하도록 간언했다.

그러나, 노부타다는 그들의 간언들 듣지 않고 그들에게 말했다.

 

"뭔가 착각을 하고 있는 모양인데, 나는 시즈코에게 미노의 국주(国主)가 되라고 명한 게 아니다. 나는 지금까지 실무에 관여해오지 않았기에 미노의 사정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안 그래도 아버님으로부터 미노를 이어받은 것으로 현장은 혼란스러워하고 있겠지. 그렇기에 종래의 방식을 잘 알고 있는 사람에게 조력을 청하는 것은 당연한 일. 모두의 말뜻은 알겠으나, 시즈코 없이 미노나 오와리를 운영하는 것 따윈 꿈 같은 소리(夢物語)에 불과하다. 선임자(先達)의 방식을 바로 곁에서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날려버리고 시즈코 이상으로 영지를 번영시킬 수 있는 방안이 있다면 말해보아라"

 

어디까지나 시즈코는 길잡이(水先案内人)이며, 최종적인 판단은 모두 노부타다가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외교의 자리에도 동행시킬 수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노부나가나 노부타다의 대리인(名代)으로서라고 단언했다.

주군이 이렇게까지 말하면 가신으로서는 따를 수밖에 없었다. 시즈코 자신도 야심과는 인연이 없는 성격이며, 멋대로 행동할 생각 따윈 손톱만큼도 없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정체시키면 안 되는 대사업은 아이치(愛知) 용수(用水)와 키소(木曽) 삼천(三川)의 정비려나?"

 

아이치 용수는 치타(知多) 반도(半島) 전역에 혜택을 줄 상하수도용의 용수다. 그 용도는 농업에 한정되지 않고, 공업이나 상업까지 폭넓게 예상되고 있다. 사업에 착수한 지 이미 몇 년이 경과했으나, 아직 먼 꿈이라는 상태였다.

그래도 천하인이 행하는 일대 공공 사업이며 금후의 막대한 이익이 예상되다보니, 자금력이 있는 유력자들은 하나같이 이 사업에 투자했다.

공사 자체의 기초적인 기술은 실증되어 있으며, 이후에는 단순히 노력을 필요로 할 뿐이기에 안정된 이익이 기대되는 사업이 되어 있었다.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키소 삼천의 정비였다. 키소가와(木曽川)와 나가라가와(長良川), 그리고 이비가와(揖斐川)의 세 강은 하류부에서 복잡하게 얽혀 있고, 유량(流量)에 비해 강바닥이 얕기 때문에 종종 수해를 일으켰다.

상류부나 중류부에 저수지를 설치하려 해도 발본적(抜本的)인 해결을 꾀하지 않는 한 수해의 근절은 불가능하다.

 

"뭐, 유역(流域) 전역이 오다 가문의 지배 하에 들어온 것은 평가할 수 있으려나"

 

역사적 사실에서는 치수(治水) 기술의 미숙함에 기인하는 공사 자체의 난이도에 더해, 각 지역을 다스리는 영주들의 이해가 대립하여, 수리(水利)를 둘러싸고 다투었기 때문에 치수 대책은 지지부진했다.

그러나, 지금은 미노, 오와리, 이세(伊勢) 등 유역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세 나라의 이해가 일치하고 있어, 노부나가라는 카리스마의 호령 하나에 모두 한덩이가 되어 치수 대책에 달라붙어 있었다.

 

미노나 오와리의 이점으로는, 안정된 사업용수를 확보할 수 있는 점, 홍수에 의한 피해를 경감시킬 수 있는 점을 들 수 있다. 남은 이세가 받는 이익으로는, 상공업의 중심지인 오와리와 육로가 개통되는 것이 컸다.

이 한 가지만 가지고도 북(北) 이세가 키소 삼천에 대한 치수공사를 추진하기에는 충분했다. 현재로서는 키소 삼천의 하류역(下流域)을 도하(渡河)하는 것은 어려워서, 직선거리로는 오와리와 가까운데 그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실제로 노부나가도 이세 침공 당시 최단거리를 택하지 않고 일단 미노로 나가서 크게 우회하여 이세로 향하는 루트를 선택했다.

해로를 이용하면 오와리와도 교역할 수 있다고는 하나, 육로를 이용할 수 없어서는 교통의 요충지는 될 수 없다. 오와리에서 발단하는 융성의 파도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오와리에서 이세로의 대동맥(大動脈)을 뚫을 필요가 있었다.

 

"모두가 목적을 향해 매진하고 있는데, 형제 싸움에 휘말려들어서 난리도 아니었어……"

 

시즈코는 의도하지 않게 노부나가의 직계 형제들의 다툼에 말려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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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
잡담2020. 1. 1. 07:57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올 한해 좋은 일이 가득하길 기원합니다.




Happy 2020!

Posted by 가리아

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텐쇼(天正) 원년(元年) 키나이(畿内)의 사회기반 정비


123 1574년 12월 하순



노부나가와 카가(加賀) 일향종(一向宗)의 반목(確執)은 역사를 대폭 반복하는 형태로 결판이 났다. 말할 것도 없이 오다 측의 압승이며, 호쿠리쿠(北陸) 지방의 세력구도가 뒤바뀌게 되었다.

이 전쟁에 도중 참전한 우에스기 켄신(上杉謙信)은 군신(軍神)이라는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활약을 보여, 눈 깜짝할 사이에 혼간지(本願寺) 세력을 구축하더니, 노토 국(能登国)을 지배하에 두었다.

전후처리(戦後処理)에 애를 먹고 있던 시바타(柴田)는, 켄신에게 한 발 뒤쳐지면서도 카가 국을 지배하에 두었다. 이로서 호쿠리쿠 정벌은 완료되어, 양자가 각각 지배력을 강화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켄신의 영토가 확대되게 되었으나, 노부나가는 이것을 문제시하지 않았다. 그보다도 토우고쿠(東国)에서 혼간지 세력을 제거할 수 있었던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카가 일향종 정벌, 실로 수고하였다"


노부나가는 시바타를 시작으로, 카가 일향종 정벌에 참전한 무장들에게 감사장과 상을 하사했다.

외국(唐物)의 다기(茶器)까지는 주어지지 않았으나, 시바타는 다화회(茶会)를 주최하는 것을 허락받아 크게 체면을 세울 수 있었다.

반대로 혼간지는 존망의 위기에 처해 있었다. 카가 일향종을 잃은 것에 의해 오랜 세월에 걸쳐 토우고쿠에 구축해 왔던 교두보가 붕괴한 것이다.

혼간지가 주도한 오다 포위망에 큰 구멍이 뚫려, 반 오다를 내걸었던 동맹은 이 시점에서 와해되었다. 남은 반 오다 세력이 개별적으로 저항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조직적인 저항은 되지 못하고, 기세를 타고 있는 오다 상대로는 성과를 바랄 수 없었다.

현 시점에서는 오다와 강화를 맺고 있는 혼간지였으나, 그 기색(旗色)은 좋지 못하였다. 융성을 자랑하는 오다 가문의 경제력에 압도되어, 혼간지의 경제활동은 축소 일로를 걷고 있었다.

조정에 대한 영향력에 대해서도, 고노에 사키히사(近衛前久)가 칸파쿠(関白) 취임한 이래로는 눈길을 끌지 못했다.

지금도 여전히 혼간지 편을 들고 있는 사람들은 주류파가 되지 못하고 배척된 오합지졸에 불과하다.

일이 여기에 이르면, 혼간지에게 남겨진 선택지는 적다.

노부나가가 제창하는 방침을 받아들일 수 없는 이상, 혼간지는 가진 것 전부를 던져 노부나가에게 저항하던가, 주의주장(主義主張)을 굽혀서라도 살아님는 길을 모색하기 위해 투항할 수밖에 없다.


"휘이ー, 이걸로 대충 다 끝난 걸까?"


시즈코는 목과 어깨를 돌리면서 사무업무로 굳은 몸을 풀었다. 오다 가문은 카가 평정에 들떠 있었으나, 시즈코는 후방지원은 했어도 직접 참전하지 않았기에 어딘가 남의 일이었다.

그 때문에 노부나가로부터 감사장이 보내지지도 않았으나, 그에 대해 불만을 가지는 것도 아니고, 잠시나마의 평온을 만끽하면서 밀린 업무를 처리하고 있었다.

정형화된 사무작업은 아야(彩)들에게 맡길 수 있게 되기 시작했기에, 시즈코가 해야 할 것은 오직 판단과 의사결정이 필요한 일에 한된다.

그 대표적인 것이 서신에 대한 회신이었다.

현대라면 메일도 아니고 메신저 어플에서의 한 마디로 끝날 용건이라도 형식을 중시한 서신을 교환했기에, 막대한 비용을 들여 운송할 필요가 있다.

시즈코의 지위 향상과 함께 교제나 인사의 중요성이 늘어나, 연말쯤 되면 세밑 선물(お歳暮) 준비에 쫓기게 된다.

교제 범위가 좁았을 때는 직접 시즈코가 가서 인사도 할 수 있었으니, 이제는 그런 걸 바랄 수도 없다.

대리인(名代)을 세워, 무례(不義理)를 사과하는 서신과 함께 세밑 선물을 전달하도록 수배한다.

대리인이라고는 해도 상대의 가문의 격(家格)에 맞는 인선이 요구되었기에, 스케줄 정리에 난항을 겪어서 지금 막 작업에서 해방되었다는 사정이었다.


"연말연시 준비도 시작해야지"


세세한 업무에 정신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시즈코에게 노부나가로부터의 호출이 도착했다. 새해 이후의 아즈치(安土) 이전에 관한 것일까라고 생각하면서 시즈코는 노부나가가 있는 기후(岐阜)로 향했다.


"양자 결연(養子縁組)……인가요? 굉장히 갑작스런 이야기네요. 그래서, 어느 분과 결연을 맺게 되는 건가요?"


밀담(密談)용의 다실(茶室)이 아니라, 사람은 물리기는 했지만 성 안의 알현실에서 회담을 하고 있었다.

노부나가가 갑작스레 꺼낸 양자결연의 화제를 듣고, 시즈코는 노부나가의 자식을 어딘가의 집에 후계자로서 양자로 보내는 거라 생각했다.

드물게 헤아림이 둔한 시즈코의 모습에 노부나가는 미묘한 표정을 떠올리면서 한숨을 쉬었다.


"내 자식을 네게 양자로 보낸다,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네에, 그건 참으로…… 네!?"


어디까지나 남의 일이라고 흘려듣고 있던 시즈코는, 노부나가로부터 당사자라고 선고되자 얼빠진 소리를 냈다. 당황하여 자세를 바로한 후, 맹렬한 속도로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노부나가가 중대사를 갑작스레 말하는 것은 항상 있는 일이지만, 이번 일은 비밀리에 처리될 만한 일이 아니다.


"너 자신을 어디서 굴러먹던 말뼈다귀인지도 모를 놈에게 시집보낼 수는 없다. 그리고 영주의 후계자가 부재인 상태로는 백성들도 불안을 느낄테고, 뭣보다 좋지 않은 생각을 하는 놈들이 나타나게 된다"


"……뭐, 확실히 그렇군요"


시즈코의 감각으로는 슬슬 결혼을 의식할 나이이지만, 평균수명이 짧은 전국시대에서는 이미 퇴물(年増)로 분류된다.

이 시대, 유력자의 자녀라면 빠르면 10세가 되기 전부터, 늦어도 10대 후반쯤 되면 배우자를 얻는다.

20세를 넘어서도 미혼인 상태라는 것은, 불문(仏門)에 귀의(帰依)하여 출가한 것이라도 아닌 이상 말도 안 되는 것이었다.

아직은 사전 통보(内示) 단계라고는 해도, 장차 오와리를 맡을 영주에게 후계자가 없다고 하면 집안 소동의 불씨가 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네게 어울리는 남자가 없다. 지금 너는 오섭가(五摂家) 필두(筆頭)인 고노에 가문(近衛家)의 영애(姫). 그리고 오다 가문에서도 견줄 사람이 없이 출세가 빠르다(出世頭). 네가 남자가 아니기에 원숭이놈(※역주: 히데요시)이 제일 출세가 빠른 것으로 되어 있지만 말이다. 네 입장은 수하의 장수에는 머무르지 않고, 나라의 초석이 되어 불가결한 존재가 되어버렸다. 어지간한 사람으로는 네가 맡은 중책을 나눠맡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그래서 주상의 자녀분을 양자로 삼아라, 그런 말씀이십니까?"


"그렇다. 하지만, 후계자가 생겼다고 하면 집안 사람들도 너를 보는 눈이 달라지겠지"


노부나가의 말에 시즈코가 긍정했다. 시즈코는 여자이며,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후계자를 만들지 않았기에, 출세 경쟁에 방해된다고 간주되지 않아왔다.

그러나, 이제와서 주인 가문인 노부나가의 자식을 후계자로 얻었다고 하면, 주위의 인식은 달라진다.

기다리고 있으면 사라져 주는 1대 한정의 공로자에서, 세습에 의해 오다 가문의 중신의 지위를 점유할 수 있는 장애물로.


"그래서, 네게 맡길 자식은 '사연이 있'다……"


시즈코의 후계자가 '사연이 있'기만 하면, 시즈코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무리라도, 시즈코만 없어지면 어떻게든 처리할 수 있다. 주위에 그렇게 생각하게 하여 밸런스를 잡을 필요가 있었다.


"보좌역으로서 요시나리(可成)를 붙이겠다. 녀석이라면 부족하지 않겠지"


"부족은 커녕, 너무 거물입니다만…… 괜찮겠습니까? 그……"


"공신(功臣)을 한직(閑職)으로 몰아넣는 것처럼 보이느냐? 나는 애초에 남의 말(風評)을 신경쓰지 않고, 요시나리에 대해서도 걱정할 필요 없다. 이 이야기를 꺼냈을 때, 놈은 '공수신퇴(功遂身退) 천지도(天之道)(공을 이루었으면 후진(後進)에게 길을 내어주는 것이 올바른 도리이다)'라는 노자(老子)의 말을 인용하여 말했다. 늙은 몸으로 후진의 육성에 관여할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은 일은 없다고 말이지"


"본인들이 납득하였다면 상관없습니다. 그래서, '사연이 있'다 라고 하시면?"


노부나가에게 자식에 대해 묻자, 그물게 미간을 찡그리며 복잡한 표정을 떠올렸다. 마음 속으로 다양한 갈등이 소용돌이치고 있는지, 그답지 않게 말을 흐렸다.


"……쌍둥이다"


그래도 간신히 뱉어낸 말로 시즈코는 대략적인 사정을 헤아렸다.

출산 자체가 어려운 일(難事)이었던 전국시대에서, 한 번의 임신으로 얻을 수 있는 아기(赤子)는 한 명이라는 것이 상식이었다.

그렇기에, 쌍둥이나 세쌍둥이는 비정상적인 사태로서, 종종 모자가 모두 죽음에 이르게 되었기에 기피되었다.

지역에 따라서는 개나 고양이처럼 한 번에 많은 자식을 낳는 '짐승배(畜生腹)'라고 경멸되어, 무사히 태어났다고 해도 아기를 '처분(処分)'하는 것은 드물지 않았다.

하지만, 거친 일(荒事)이 생업인 무가에서 노부나가의 피를 잇는 직계는 중요하며, 후계자 다툼의 씨앗이 되지 않는 만일에 대한 대비로서 오늘까지 살아있게 했었던 것이리라.


"사정은 이해했습니다"


노부나가가 시즈코에게 쌍둥이를 맡기는 이유. 그것은 노부나가 자신이 완강하게 말로 꺼내려 하지는 않지만, 오다 가문에 두고 있는 한 불우한 입장에서 평생 썩게 되는(飼い殺し) 자기 자식에 대한 애정이라고 헤아렸다.

예전에 시즈코는 츠루히메(鶴姫)가 임신했을 때 당시의 출산에 관한 상식을 철저할 정도로 파괴했다.

임신의 메커니즘은 말할 것도 없고, 아기를 가지기 쉬운 날의 법칙에 대해서도 공개하여, 오다 가문 내부의 비전(秘中)으로 취급되고 있다.

오다 가문 내에서 후계자 때문에 고민하고 있는 집안에는, 시즈코에게 배운 노히메 전속 시녀가 파견되었고, 그에 의해 아이를 가졌다는 이야기는 유명했다.

수많은 인습(因習)을 과거의 것으로 만들어 온 시즈코가, 쌍둥이를 멋지게 키워낸다면, 쌍둥이에 대한 주위의 시선도 달라지지 않을까 하고 노부나가가 기대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자세한 것은 요시나리에게 들어라"


그 말만 하고 노부나가는 알현실을 나갔다. 남겨진 시즈코는, 란마루(蘭丸)의 안내를 받아 요시나리가 기다리는 방으로 향했다.


"사정에 대해서는 주상께서 말씀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소개하지요. 남자 쪽이 시로쿠(四六), 여자 쪽이 우츠와(器)라고 합니다"


요시나리는 시즈코에게 양자가 될 쌍둥이를 소개한 후, 그 자신의 입으로 상세한 사정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 때 두 사람의 이름에 대해서 이야기하게 되었는데, 남자 쪽은 아침 4시에서 6시 사이에 태어났기에 시로쿠라고 이름붙여지고, 여자 쪽은 출산 직후에 남자아이가 산유(産湯)로 씻겨지는 동안 옆의 통(桶)에 넣어진 것 때문에 우츠와(※역주: 그릇)이라고 이름붙여졌다고 한다.

참으로 성의없는(場当たり的) 네이밍이라 어이가 없어지지만, 노부나가의 자식들은 왕왕 그런 식으로 이름이 붙여졌다.


"피가 통한 부모는 아니지만, 오늘부터 너희들의 어머니가 되겠어. 잘 부탁해"


시즈코의 말을 듣고 쌍둥이는 나란히 예의바르게 머리를 숙였다. 두 사람의 나이는 14세, 만으로는 13세이다. 하지만, 시즈코의 눈에는 나이보다 꽤나 작아보였다.

참고로 그들을 낳은 모친은 산후의 예후(肥立ち)가 좋지 않아 치료한 보람도 없이 죽었다.

전국시대의 관습에 따르면 쌍둥이는 재수가 나쁘다고 하여 한쪽만을 양자로 내보내거나, 양쪽 다 처분하는 것이 상식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노부나가 자신의 강한 의향에 의해 특례적으로 둘 다 시즈코의 양자가 되게 되었다.


"재수가 좋고 나쁨 같은 건 시즈코에게는 관계없다. 어미를 잃은데다 부스럼(腫物) 취급받으며 아이들은 필요 이상으로 고통을 겪었다. 다름아닌 시즈코가 상관없다고 하는데, 그런 이유로 떼어놓자는 것이냐?"


쌍둥이는 재수가 나쁘니 공신(功臣)인 시즈코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노부나가에게 진언하는 사람도 있었으나, 그는 의외로 인정어린 말(人情じみた言葉)로 물리쳤다.

이것을 본 가신들은, 드디어 시즈코도 노여움을 샀나 하고 판단하는 사람도 있었고, 지금까지 이상으로 중용될 징조라고 보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한 억측들을 제외하더라도, 유일하게 확실한 것은 두 사람에게 흐르는 노부나가라는 패왕(覇王)의 피가 시즈코에게 맡겨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저는 구체적으로 뭘 하면 되나요?"


"주상께서는 '시즈코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시즈코 님은 스스로가 생각하시는 어머니로서 행동하십시오. 무가(武家)의 관습에 밝지 못하신 것은 알고 있으니, 부족한 부분은 제가 보충하겠습니다. 늙은 몸에는 애보기(子守) 역할에 충실하는 것이 어울리겠지요, 핫핫핫"


"아뇨, 모리(森) 님을 보모(子守) 취급이라니…… 도저히 감히……"


자신을 노인이라 칭하는 요시나리였으나, 그를 앞에 두고 '늙었다'같은 말을 할 수 있는 것은 노부나가 이외에는 없다.

현역인 케이지(慶次)조차 "예전에도 무서웠지만, 지금 쪽이 더 무섭다"고 말했고, 사이조(才蔵)는 "뽑아든 칼(抜き身の刀) 같던 무위(武威)는 모습을 감추었지만, 면도칼(剃刀) 같은 예리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아들인 나가요시(長可)의 경우에는 "따라잡았다고 생각했던 등이 다시 멀어졌다"고 말했다.

3인 3색의 평가였지만, 공통된 점은 '요시나리는 지금 쪽이 무섭다'였다.


"어머니로서, 인가요"


시즈코는 요시나리의 말을 되씹으면서 쌍둥이에게 시선을 돌렸다. 몸단장은 되어 있었지만 아무래도 벼락치기였으며, 평소에 소홀히 대해졌던 것을 엿볼 수 있었다.

노부나가가 방임주의(放任主義)인 것을 이용하여, 재수도 나쁘고 거의 틀림없이 후계자가 되지 않을 쌍둥이에 대해 유모(乳母)가 거칠게 대응한 것이리라. 그렇게 생각하니, 지금까지 시중을 담당했던 유모의 모습이 보이지 않고 요시나리하고만 함께 있는 것도 납득이 갔다.


"그래서, 두 사람의 유모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시즈코가 묻자, 요시나리는 두 사람에게 들리지 않도록 시즈코에게 가까이 가서 귓말을 했다.


"유모는, 쌍둥이에게 해온 일을 자신의 몸으로 맛보고 있소"


그렇게 말하며 내밀어진 글에는 유모에게 내려진 처벌이 쓰여 있었다. 쌍둥이를 맡고 있던 유모는, 요즘 식으로 말하면 니글렉트(neglect, 육아포기)를 했었다.

두 사람에 대해 극히 위압적으로 굴고, 외부에 대해 최소한의 형식을 갖추는 것 이외에는 일체의 돌봄을 거부했다. 말을 해도 대답하지 않고, 번거롭게 하면 폭력으로 응했다.

주어지는 식사도 최저한이어서, 비교적 풍요로운 오와리에서 두 사람의 발육상태가 좋지 않은 것은 그것에 원인이 있는게 아닐까 생각되었다.

아무리 기피되는 자식(忌み子)이라고는 해도, 유모 따위가 노부나가의 자식을 함부로 다루어도 될 리가 없다. 유모의 소행이 발각되었을 때, 노부나가가 물리적으로 목을 날려버리려 했는데, 요시나리가 제지했다.


"아이들에게 준 고통을 생각하면 편히 죽게 하는 것 같은 자비는 필요없습니다. 두 사람에게 한 일을, 같은 세월만큼 그 몸에 새겨주는 것이야말로 벌이 되겠지요"


요시나리의 진언을 받아들여, 노부나가가 내린 판결은 '14년의 유폐(幽閉)'였다. 두 사람의 유모는 누구도 찾아올 일 없는 지하로 쫓겨나, 항상 폭력에 시달리는 생활을 하게 되었다.

형벌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지만, 이미 유모의 눈에서는 빛이 꺼져가고 있다고 서신은 글을 맺고 있었다.


"일단, 목욕하자!"


처참하고 가혹(苛烈)한 처벌에 전율하며 현기증이 나는 머리를 흔들면서, 기분을 새롭게 하기 위해 시즈코는 입욕을 제안했다.




쌍둥이를 데리고 저택에 돌아온 후, 시즈코는 목욕탕 준비를 명했다. 그에 병행하여 두 사람의 옷을 준비(見繕う)하도록 쇼우(蕭)에게 의뢰한 후, 시즈코 자신이 우츠와를 데리고 목욕탕으로 직행했다.


"자, 조금 쓰릴 테니 눈을 감아ー"


우츠와의 머리를 감겨주면서 시즈코는 주의를 당부했다. 이성(異性)인 시로쿠의 입욕에 대해서는 같은 또래의 소성(小姓)들에게 맡겨두었다.

13세쯤 되면 이미 사춘기를 맞이하여, 여자인 자신이 몸을 씻겨주는 것을 싫어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함께 입욕하고 알게 된 것인데, 우츠와는 시즈코의 지시에 맹목적으로 따랐다. 한 마디도 말을 하지 않고, 다만 몸을 내맡겼다.

예의를 차리고(遠慮) 있는 건가라고도 생각했으나, 어떤 지시에도 주저없이 따르는 걸 볼 때 그런 것은 아닌 것을 알 수 있었다.

몸을 다 깨끗하게 씻었을 무렵에는 다소는 마음을 열어줄까 하고 막연한 기대를 품었지만, 그 기대는 보기좋게 박살나게 되었다.


"휘이ー. 목욕은 좋네. 하루의 피로가 씻겨나가는 것 같아"


먼저 우츠와를 탕에 들어가게 한 후, 시즈코도 몸을 씻고 탕에 들어갔다.

원래는 시즈코에게는 산더미처럼 쌓일 정도의 일거리가 있지만, 아이를 맡기는 것과 동시에 노부나가가 시즈코에 대한 인사 등 의례적인 것 일체를 맡아주었기에 그녀의 부담은 단번에 줄어들었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듯한 휴가에 당황한 시즈코였으나, 노부나가는 처음부터 이 시기를 노리고 있었다.

애초에 겨울은 농한기(農閑期)로, 외교(外交)를 제한해버리면 시즈코 자신이 손대야 할 일은 없다.

육아에 전념하라는 대의명분 아래, 워커홀릭인 시즈코에게 강제적으로 휴가를 쓰게 하는 일석이조의 책략이었다.


(현장에서 손을 떼는 대신 연구개발비를 두 배로 해 주세요라고 말했더니 받아들여졌고…… 그렇게 일에만 몰두한 인상은 없는데 말야)


지금까지도 일하는 것이 너무 과하다고 말했으나 전혀 개선의 조짐이 보이지 않는 시즈코에게 답답해진 노부나가의 조치였으나, 시즈코 자신에게는 과하게 일을 했다는 자각은 없었다.

확실히 매일 뭔가 할 일에 쫓기기는 했지만, 그래도 시즈코 기준으로는 적당히 휴식을 취하고 있었고 잠도 충분히 자고 있었다.

하지만, 밤새 일을 한다는 것 같은 개념이 없는 시대에서 보면, 시즈코는 명백하게 오버 워크라서 보는 쪽이 위기감을 느낄 정도였던 것이다.

손에 뜬 물에 얼굴을 비추면서 이것저것 생각하고 있자니, 우츠와가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것을 깨달았다. 이런저런 표정(百面相)을 짓기라도 했나 하고 생각하며 시즈코는 쑥스러운 미소를 떠올리면서 말했다.


"목욕 끝나면 밥 먹자"


입욕시에 알몸을 보고 깨달은 것인데, 우츠와의 영양 상태는 좋지 않았다. 야위었다고는 생각했지만, 설마 갈비뼈가 드러나 보일 정도일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2차 성징(性徴)이 시작되는 지금 시기라면 아직 늦지 않다. 한시라도 빨리 필요한 영양을 섭취하게 해야 한다.


"자, 나갈까"


시즈코가 말하자 우츠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일어섰다. 준비되어 있던 새 옷으로 갈아입히고 방으로 돌아가자 이미 식사 준비가 되어 있었다.

먼저 와 있었는지, 깨끗해진 모습의 시로쿠가 요시나리의 옆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럼, 식사를 하죠"


시즈코와 요시나리가 쌍둥이를 가운데 두는 평소와는 다른 자리 순서로 앉힌 후, 시즈코는 식사 개시를 고했다.




쌍둥이를 양자로 받은지 1주일이 경과했다. 처음에는 눈을 마주치지 않았던 우츠와도, 지금은 시즈코와 눈이 마주치게 되었다.


"하지만…… 어째서지? 어째서 대화가 없는 걸까……"


쌍둥이가 시즈코 저택의 생활에 익숙해지는 것과 반비례하여 시즈코는 낙담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두 사람이 시즈코에 대해 말을 하지 않는 점이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것저것 말을 걸기는 하지만,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이거나 침묵하거나 둘 중 하나로, 부정의 의사조차 표시해주지 않았다.

고용인들의 이야기로는 몇 명인가와는 대화를 하고 있다고 들었기에 말을 할 수 없는 것은 아닌만큼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미움받는 걸까? 그렇겠네, 갑자기 어머니입니다라고 해도 곤란하겠지……"


시즈코는 팔짱을 끼면서 현 상황을 개선할 방법을 모색했다. 다행히 두 사람은 의사소통을 거절하고 있는 것은 아니어서, 이쪽의 물음에 대해서는 반응해준다.

다만, 자발적으로 말하려고는 하지 않는다. 그것도 시즈코에 대해서만 그런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으ー음. 아! 혹시 주상께서 붙이신 이름에 불만이 있는 게 아닐까? 아무래도 그 센스는 좀 아니지. 성인식(元服)도 가까우니, 뭔가 특별한 이름을 생각하자. 이거라면 두 사람의 희망도 들을 수 있고, 대화의 실마리를 잡을 수 있……을지도"


이 시대, 성인의 대열에 합류하는 성인식을 기회로 아명(幼名)을 버리고 새로운 이름을 쓴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 미로에 빠져든 시즈코는, 두 사람의 침묵을 노부나가의 네이밍에 대한 불만이라고 단정하고, 묘한 방향으로 엉뚱하게 달려가기(迷走) 시작했다.

엉뚱하게 달려가고 있다고는 해도, 명확한 지침을 얻은 시즈코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평소답지 않게 경쾌한 느낌으로 복도를 걸어, 모퉁이 바로 앞에서 발을 멈추었다.


"너 말야, 아직 시즛치랑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며. 뭔가 불만이라도 있는 거야?"


케이지와 누군가가 이야기하고 있고 자신의 이름이 들렸기에, 시즈코는 자기도 모르게 발을 멈추었다.

엿듣기는 좋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케이지의 상대가 아마로 시로쿠라고 생각하고, 시즈코는 벽에 달라붙듯 하며 귀를 쫑긋 세웠다.


"……무슨 말을 하면 좋을지 모르겠어요"


"그것뿐만은 아니잖아? 뭘 물어봐도 절대로 아니라고 말하려고는 하지 않잖아. 뭘 그렇게 무서워하는거야?"


"그 분에게…… 시즈코 님께 미움받고 싶지 않아요. 안 그래도 기피되는 쌍둥이를 떠맡았는데, 이 이상 폐를 끼칠 수는 없어요……"


두 사람의 대화를 조마조마해하면서 지켜보고 있자니 일순 케이지와 눈이 마주쳤다.

시즈코는 당황해서 머리를 숨겼지만, 잘 생각해보면 기척에 민감한 케이지가 자신을 눈치채지 못했을 리가 없다고 생각을 고쳐먹고, 다시 벽에 달라붙듯 하며 모퉁이 너머를 엿보았다.

역시 케이지의 대화 상대는 시로쿠였다. 케이지는 시로쿠와 함께 덧문 밖 툇마루(濡れ縁)에 앚아서 술병을 한 손에 들고 정원을 바라보고 있었다.

체구가 큰 케이지와 나란히 있으니 불안해질 정도로 체격이 작은 시로쿠의 시선은 정원이 아니라 어딘가 먼 곳을 보고 있는 듯 했다.


"핫핫핫. 그거 크게 나왔군! 시즛치에게 미움받는 건 보통 일이 아니거든? 항상 상식을 깨는 시즛치가 쌍둥이라는 것만으로 싫어할 리가 없어. 애초에, 정말로 싫다면 오다 나으리에게 그렇게 말했겠지. 시즛치는 그래도 용서되니까 말야"


"그건……"


"여기서 7일을 지내보고 너는 어떻게 생각해? 시즛치가 한 번이라도 너희들을 싫어하는 듯한 기색을 보였어? 세상의 상식을 비웃는 이 저택에서의 생활에는 놀랐지? 그걸 탄생시킨 굉장한(とびっきり) 괴짜(変人)가 시즛치라고. 쌍둥이라서 재수가 없어? 그럼 저기서 느긋하게 굴러다니고 있는 녀석들도 재수가 없는 걸까?"


그렇게 말하며 케이지는 불을 붙이지 않은 담뱃대(煙管)로 정원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비트만이 누워 있었으며, 그 옆에 짝인 바르티가 달라붙어 있었다.

무슨 용무인가 하고 고개를 돌렸으나, 케이지가 손을 살래살래 흔들자, 흥미를 잃어버리고 다시 둥글게 몸을 말았다.


"저거 말야, 시즛치가 가장 신뢰하는 가신이야. 짐승배를 싫어한다면, 애초에 짐승 같은 걸 곁에 둘 리가 없어. 저렇게 큰 짐승을 집 안에 두는 괴짜를 달리 본 적 있어?"


실례네! 라고 시즈코가 드물게 분개했다. 시즈코 자신은 의식하고 있지 않았으나, 그녀가 저질러온 상식파괴를 열거하면 양손양발의 손가락 발가락으로는 어림도 없다.


"네. 여기서는 지금까지의 상식이 무엇 하나 통용되지 않아요"


"그렇지. 그 비상식적인 건 불쾌해? 처음에는 당황할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다른 곳이 더 불편하게 느껴지지. 게다가 말야, 너는 좀 어린애답지가 않아. 어린애로 있는 것을 허락받지 못했는지도 모르지만, 여기서는 어린애로 있어도 돼. 어린애니까 좀 더 어른을 의지하라고. 그게 어린애의 특권이야"


"그러네요. 그 분은, 지금까지의 어른과는 달라요. 그렇기에 그 분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요"


"시즛치는 너희들의 어머니가 되려고 하고 있어. 내 태도에도 불만을 말하지 않는 시즛치야. 너희들이 서먹서먹하게 구는 것(他人行儀) 때문에 고민하고 있을 거라고. 서두를 필요는 없지만, 조금은 신용해보는 게 어때?"


"……"


"뭐, 갑자기 태도를 바꿀 수는 없겠지. 우선은 인사 정도부터 시작해보는 게 어때? 자, 나는 슬슬 실례하겠어"


자기 할 말만 하고는 케이지는 혼자 자리에서 일어나 시즈코가 숨어있는 반대쪽으로 떠나갔다. 남겨진 시로쿠는, 케이지가 떠난 후에도 툇마루에 앉아 무언가 생각에 잠겨 있는 듯 했다.




케이지가 떠난 것과 동시에 시즈코도 그 자리를 벗어났다. 자기 방으로 돌아온 시즈코는 두 사람의 대화를 떠올렸다. 문득, 예전의 아야(彩)을 떠올렸다.

아야도 나이에 걸맞지 않게 어른스러운 아이였다. 그것은 자신의 입장이 불안정하여, 언제 버려질지 모르는 상황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서둘러 어른이 될 필요가 있었다.

시로쿠도 또한, 어른이 되어야 할 이유가 있었던 것이리라. 그는 유년기를 버리고 어른이 될 수밖에 없었다.


"……어린애로 있을 수 없는 어린애라……"


13년. 자신이 지내온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며, 그들이 보아왔을 세계는 어떤 것이었는가, 그것을 생각하니 시즈코는 마음이 괴로워졌다.


"시즈코 님. 이 서류에 재가를 부탁드립니다"


얼마 동안 생각에 잠겨있었는지, 아야의 목소리가 들리자 시즈코는 겨우 바깥쪽으로 의식을 돌렸다.


"아, 미안해. 생각을 좀 하고 있었어. 서류네, 고마워"


"제 역할이니, 신경쓰지 마십시오"


아마도 방 입구에서 몇 번이나 불렀으리라. 그래도 반응이 없었으니 실내로 들어오며 불렀을 것이다. 명백하게 쓸데없는 수고가 늘어난 것인데, 아야의 태도는 평소와 다름없었다.

그게 참으로 기분좋게 느껴져, 시즈코는 자기도 모르게 파안(破顔)했다.


"고마워. 다음부터는 주의할께"


"……아닙니다. 외람되다고는 생각하지만, 조금 참견을 하겠습니다. 시즈코 님, 지금의 당신께서는 아이들에게 대가를 원하고 계십니다"


"어?"


아야의 발언에 시즈코는 멍해졌다. 너무나 예상밖이라서 아야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눈을 껌뻑거리고 있자, 아야는 작게 한숨을 쉬더니 말을 이었다.


"떠올려 주십시오. 저와 둘이서 살았을 때를. 고용인(家人)도 없고, 이런 저택도 아니고, 외풍(隙間風)이 들이치는 허름한 집(安普請)이었습니다만, 당신께서는 항상 웃고 계셨습니다"


이어지는 아야의 말을 듣고 시즈코는 간신히 이해했다. 아야도 또한 어른스러운 어린애였다. 그런 그녀에 대해, 자신은 어떻게 행동했었던 걸까.

답은 자연히 나왔다. 신분이나 출신 따위 신경쓰지 않고, 아야의 태도가 어떠하던 자신은 아야를 귀여운 여동생처럼 대하며 매일 자신의 즉흥적인 생각(思い付き)에 따라 이리저리 휘둘렀다.


"건방진(かまびすしい) 말씀을 드렸습니다. 꾸중은 얼마든지 받겠습니다. 하지만, 우선 시즈코 님께서 웃는 표정이 아니시면…… 겉과 속이 다르지 않은 시즈코 님의 웃는 표정에 구원받은 사람들은 많습니다. 스스로에게 자신이 없는 사람은, 타인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지가 불안한 것입니다. 당신의 웃는 얼굴에는 그것을 물리치는 힘이 있습니다"


아야는 머리를 땅에 대며 말을 이었다. 주인을 화나게 할 것을 각오한 간언(諫言)이었다. 그리고 내용은 정곡을 찌르고 있었다. 시즈코는 자각하지 못하는 와중에 자신의 행동에 대해 대가를 기대하고 있었다.

그걸 지적받은 시즈코는 자기도 모르게 볼을 긁었다.


"그러네. 나는 언제부터인지, 어린아이가 내게 마음을 열어줄 것을 기대하고 있었어. 나도 아직 멀었네…… 나는 우선 두 사람이 가족이 되는 것을 환영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야 했었던 거네. 응, 고마워 아야 짱"


"아닙니다, 주제넘은 말씀을 드렸습니다. 칭찬받을 일이 아닙니다"


"딱딱하네. 그런 아야 짱은 벌로 나한테 꼭 안기는 거야!"


자, 이리온이라고 말하듯 양팔을 펼치는 시즈코에 대해 눈이 가늘어지는 아야. 다분히 어이없음을 품고 있는 시선에 시즈코는 움찔할 뻔 했으나, 뜻을 정하고 말했다.


"이건 명령이에요"


"그런 시덥잖은 명령을 하지 말아주세요"


"알겠어? 아야 짱. 권력이라는 건 이럴 때 쓰는 거야!"


좋은 미소를 띠고 잘라 말하는 시즈코를 보고 아야는 자기도 모르게 쓴웃음을 지었다. 양팔을 펼친 채 기다리고 있는 시즈코를 보고, 글러먹은 언니를 바라보는 여동생의 마음을 알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여기는 자신이 굽혀야 한다고 판단한 아야는, 한숨을 쉬더니 쭈뼛거리며 시즈코의 품 안으로 뛰어들었다.


"후후. 항상 마지막에는 굽혀 주네"


"시즈코 님이 고집이 세서 그렇습니다……"


두 사람이 껴안고 있던 시간은 짧았다. 약간 시간을 두고 아야는 시즈코의 포옹에서 스륵 하고 빠져나왔다. 닌자(忍者)같네라고 생각한 시즈코였으나, 그것을 입 밖으로 내어 말하는 우는 범하지 않았다.


"좋아! 기운을 받았어. 그럼, 나는 시로쿠나 우츠와를 찾아올게. 그리고, 지금처럼 두 사람을 꼭 안아주고 올게"


"뭐든지 적당히가 중요합니다만?"


"핫핫핫. 대(大)는 소(小)을 겸한다고 하니까 괜찮아 아야 짱"


껄껄 웃으며 시즈코는 방을 나갔다. 혼자 남겨진 아야는 쓴웃음을 지으며 자신도 방을 나가려다 깨달았다.


"시즈코 님, 서류를 잊으셨어요…… 아 진짜……"


아야는 어쩔 수 없네라고 말하듯 머리를 흔들고 품에서 종이를 꺼내더니 결재의 기한을 적어서 시즈코의 책상(文机)의 눈에 잘 띄는 장소에 놔두고 나갔다.




생각을 고쳐먹은 시즈코는, 어떤 의미에서는 태도를 싹 바꾸었다. 어딘가 자신은 어른이니까라면서 폼을 잡고 있던 부분이 있었다.

그러한 표면적인 것들을 버리고, 자신의 감정을 스트레이트로 두 사람에게 전하도록 접했다.

상대의 안색을 살피는 것 같은 짓을 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관여하여, 노골적이라고도 생각될 정도의 감정 전달 방식을 택했다.

전국시대에서는 있을 수 없는 허그(hug)를 해보거나, 셋이서 나란히 누워 자거나 하는 등, 시즈코가 즐겁다고 생각하는 것을 닥치는 대로 시도했다.

타인으로부터 애정 표현을 받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시로쿠나 우츠와는 당황했으나, 마찬가지로 애정을 표시하면 탐욕스럽게 받아들이는 비트만들을 보고 조금씩 마음을 열게 되었다.

참고로 고양이과의 동물들은 과하게 신경써주려고 하는 시즈코를 기피하여 그녀를 낙담하게 했지만.


"저는, 가족이라는 것이 잘 이해되지 않게 되었습니다"


"핫핫핫, 그래서 말했잖아? 시즛치에게 상식은 통용되지 않는다고 말야. 하지만, 나쁜 기분은 아니지?"


불평(愚痴)하는 모양새였지만 어딘가 기쁜 듯 이야기하는 시로쿠를 보면서 케이지가 웃으며 대답했다.


"웃을 일이 아닙니다. 우츠와 앞에서 저 짐승들처럼 행동할 수는 없어요"


"딱히 상관없잖아? 시즛치도 본성을 보이고 있으니, 너도 본심으로 부딪혀주면 되는거야"


"그런 건가요……"


케이지의 말에 시로쿠는 한숨을 쉬었다. 친족은 물론이고 유모에게까지 꺼려졌던 자신들이 이곳에 온 후로는 되롭다고 느낄 틈조차 없다.

하지만, 시즈코는 그냥 무르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나쁜 짓을 하면 반드시 꾸짖고, 무엇이 나빴던 것인지를 확실히 들려준다.

이쪽이 입을 다물고 있어도 일방적으로 이야기를 계속하며 밭일이니 학교니 생각나는대로 끌고다닌다.


"하지만, 이상하게 불쾌하게 느껴지지는 않지?"


지금 그야말로 자신이 생각하고 있던 것을 정확하게 지적당하자 시로쿠는 자기도 모르게 케이지를 쳐다보았다.


"그렇군요. 요즘에는 우츠와도 웃게 되었습니다. 좋은 일이겠지만, 저는 아무래도 익숙해지지 않는군요"


동성(同性)이라는 점도 있어서인지, 우츠와는 요즘 시즈코를 잘 따르게 되었다. 셋이서 잘 때도, 가끔 같은 이불에서 자는 경우가 있다고 시로쿠는 우츠와에게 들었다.

적의나 혐오감을 받는 것보다 가족으로 다루어지고 애정을 가지고 접해주는 것은 좋은 일일 거라고 시로쿠는 생각하고 있었다.

생각하고는 있지만, 같은 때에 태어나서 같은 경우를 견뎌온 동지이자 자신보다도 약한 우츠와를 지키기 위해서라며 습득한 어른의 껍질은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았다.


"서두를 필요는 없어. 시즛치는 성과를 요구하는 게 아니야. 네가 정말로 시즛치를 신용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솔직해지면 되는거야"


"네"


"뭐, 시즛치의 후계자가 되려면 그에 걸맞게 고된 수행도 필요하지만 말야, 와하핫"


"……무리겠죠. 그 분은 입지전(立志伝)적인 인물, 그것도 역사에 이름을 남길 걸물(傑物)입니다. 그렇게 높은 목표에는 도저히 도달할 수 없어요"


"그야 그렇지. 가능하다고 해도 곤란하고, 네가 목표로 할 것은 그게 아냐. 아무리 발버둥쳐도 너는 시즛치가 될 수 없어. 그러니, 너는 네가 생각하는 훌륭한 어른이라는 것을 목표로 하는거야"


"그게 시즈코 님이라서 곤란한 겁니다만…… 감사합니다, 마음이 좀 편해졌습니다"


시로쿠는 그 나름대로 시즈코에 대해 알아보고 다녔다. 고용인을 시작으로, 도서관의 사서 등에게도 물어보고 다니며 좋든 싫든 이해하게 되었다.

시즈코가 여자의 몸이면서 오다 가문의 중진이 될 수 있었던 이유, 그리고 겨우 10년도 되지 않아 그녀가 쌓아올린 거대한 재력과 권력, 군사력이 결집되어 있는 이 땅을.


"이런 데 있었네"


한동안 양쪽 다 말없이 정원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자 등 뒤에서 아까까지 화제로 삼았던 시즈코의 목소리가 들렸다.

케이지는 뒤쪽으로 쓰러지듯 하며 돌아보고, 시로쿠는 몸매무새를 단정히 하고 시즈코 쪽을 향하여 깊이 고개를 숙였다.


"아, 긴장하지 않아도 돼. 그런데 케이지 씨, 망년회(忘年会) 겸 환영회(歓迎会) 준비는 잘 되고 있어요?"


"아……"


질문을 받고 케이지는 떠올렸다. 연례행사(恒例)가 된 망년회를, 시로쿠나 우츠와의 환영회를 겸해 성대하게 할 거니까 참가자의 의향을 확인해달라고 의뢰받았던 것을 잊고 있었다.

카네츠구(兼続)에게 이야기를 했을 때까지는 기억에 있었지만, 그 이후에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 자기도 모르게 우물거리는 케이지의 모습을 보고 시즈코는 대략적인 사정을 헤아렸다.


"대답은 모레까지 해 줄래요? 노파심에서 말해두지만, 참가표명이 없는 경우에는 참가하지 않는 걸로 간주될 거에요. 참가하지 않아도 벌칙은 없지만 식사는 준비되지 않으니까, 그 경우에는 따로 외식을 해야 할테데……"


"아니, 참가할거야! 나는 물론 참가하지만, 요로쿠(与六, 카네츠구)의 대답을 듣지 못해서 보류하고 있었어"


"요로쿠 군이라면 얼마 전에 주인인 나가오 키헤에지(長尾喜平次, 우에스기 카게카츠(上杉景勝)) 군과 함께 '참가하겠다'고 대답을 받았어요"


"그, 그랬었나. 아니, 서로 연락이 어긋난 모양이네. 대답이 늦어서 미안해"


"그럼, 케이지 씨도 참가네요. 아, 요로쿠 군은 주빈(主賓)이니까 강제 참가야. 그럼, 나중에 봐요들"


할 말을 마치자 시즈코는 서둘러 떠나갔다. 케이지는 이마에 솟은 땀을 훔치며 한숨을 내쉬었다.


"위험해위험해, 모처럼의 망년회를 놓칠 뻔 했어"


"망년회라는 게 뭔가요?"


케이지의 말에 시로쿠가 고개를 갸웃하며 질문했다.


"시즛치가 연말에 여는 연회야. 한 해의 노고를 치하하고, 새롭게 맞이하는 해에 대해 마시고 먹고 떠드는 연회지"


"그건 꽤나 거창한 연회로군요"


"그렇지? 게다가, 시즛치는 이런 특별한 시기(節目)의 행사에는 힘을 쏟거든. 해를 거듭할 때마다 요리나 술의 종류가 늘어나고 내용도 호화로워지고 있어. 뭐, 그에 비례해서 참가인수도 증가 일로를 걷고 있지만 말야"


"그러고보니 남만인도 고용하고 계시더군요. 그건 저도 놀랐습니다"


"핫핫핫. 눈은 파랗고 덩치가 크니까. 하지만, 이야기해보면 재미있는 영감님이야. 여자들과는 접점이 없어서 사람됨을 모르겠지만 말야"


모미지(紅葉)는 한결같이 작물의 연구나 성장기록을 관리하기 때문에 농장(圃場)이나 밭에 있는 경우가 많아 케이지와 얽힐 기회가 거의 없다. 모미지 자신도 낯을 가리는 성격이기에 교우 범위가 한정되어 있었다.

그녀의 교섭없음(没交渉)을 보완하듯, 코타로(虎太郎)는 사교적이었다. 주인인 시즈코에게는 예의바르게 행동하지만, 케이지와는 10년은 된 친구처럼 거리낌없이 대하고 있었다.

지위(立場)로 따지면 케이지 쪽이 윗줄이지만, 그런 지위를 신경쓰지 않고 대하는 코타로를 케이지는 좋게 보고 있었다.


"기회가 있으면 이야기해보는 게 좋을거야. 망년회에도 나올테니까. 여기가 아니면 결코 해볼 수 없는 체험이니까, 젊었을 때 이것저것 경험을 쌓아두라고?"


곤혹스러워하는 시로쿠에 대해 케이지는 가벼운 말로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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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

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텐쇼(天正) 원년(元年) 키나이(畿内)의 사회기반 정비


122 1574년 12월 상순



노부나가의 야마토(大和) 순시는 성공적으로 끝났다. 귀로(岐路, ※역주: 작가가 음이 같은 帰路를 잘못 쓴 듯) 도중에 쿄(京)에 들러, 란쟈타이(蘭奢待)에서 잘라낸 한 조각을 오오기마치(親町) 천황(天皇)에게 헌상하고 기후(岐阜)로 귀국했다.

노부나가와 행동을 함께 하고 있던 시즈코는, 기후에서 노부나가와 헤어져 오와리(尾張)의 자택으로 돌아갔다.


"수고했어"


저택에 돌아가자, 한 손에 주먹밥을 든 나가요시(長可)가 마중나왔다. 카가(加賀) 공격이 끝났다고는 듣지 못했기에 돌아와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던 시즈코는 놀랐다.

이유를 물었더니, 이미 대세는 결정지어졌고, 잔당 사냥이나 병량(兵糧) 공격에 참가할 생각도 없어서 귀환했다는 듯 했다.


"그런 사정이라면 어쩔 수 없네. 병사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돈은 계속 줄어드니까"


"군의 규모도 축소 경향이라서 말야, 예상이 빗나갔는지 케이지(慶次)도 돌아왔어. 미노(美濃)까지는 함게 있었는데, 도착하자마자 어딘가로 사라졌지"


"아ー, 어쩐지 알겠어"


목적을 정하지 않았을 때의 케이지는 바람 부는 대로 기분 내키는 대로 행동하기 때문에, 주위 사람들의 그의 행동을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신기하게도 위급할 때는 지각하지 않기 때문에, 실이 끊긴 연 같은 거라고 다들 모른 척 하고 있었다.


"뭐, 시음회(試飲会)까지는 돌아오겠지"


"시음회?"


익숙치 않은 단어에 시즈코는 고개륵 갸웃했다. 실언을 깨달은 나가요시가 다급히 발길을 돌렸으나, 달려나가기 전에 시즈코에게 목덜미를 꽉 붙잡혔다.


"질문받고 도망친다는 건, 뒤가 구린 일이 있다는 거겠지?"


"어, 아니…… 하핫"


명백히 눈을 이리저리 굴리고, 말도 하고는 있지만 완강하게 실토하려 하지는 않았다. 그렇다면이라고 생각하고 마찬가지로 시즈코를 마중나온 사이조(才蔵)와 아시미츠(足満)에게 시선을 돌렸다.

노골적으로 시선을 회피했다. 이건 남자들이 결탁해서 뭔가 나쁜 짓을 벌이고 있다고 헤아린 시즈코는, 한숨과 함께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면 어쩔 수 없네요. 창고의 열쇠를 녹여버리고(鋳溶), 창고 입구도 봉인하죠"


"""자, 잠깐!!"""


시즈코의 진심을 감지하고 세 사람이 안색을 바꾸며 시즈코를 제지했다. 시음회라고 하니 뭔가 새로운 술을 마시는 이벤트이겠지만, 이렇게까지 감추고 싶어하는 것이 납득이 가지 않았다.


"그래서, 왜 비밀인 거죠?"


"……그, 뭐냐. 시즈코가 재배하고 있던 홉(hop)이 있었지?"


세 사람은 서로 눈짓을 햇지만, 이윽고 단념했는지 아시미츠가 대표하여 말하기 시작했다.


"응? 아, 그러고 보니 있었네요"


시즈코 자신은 술을 마시지 않지만, 보리(大麦)의 유효한 사용처로서 맥주 제조를 시야에 넣고, 이른 단계에서 남만 경유로 홉을 수입하여 재배하고 있었다.

애초에 한랭한 기후를 좋아하는 홉의 재배는 난항을 겪었으나, 올해가 되어 간신히 가공 가능한 품질의 것을 수확할 수 있었기에, 번식용의 포기와는 별도로 구별한 미수정(未授精)의 암그루(雌株)만을 수확했다.

성숙한 홉의 암그루는 '구화(毬花)라고 불리는 솔방울과 닮은 꽃 같은 것을 피운다 (엄밀하게는 꽃이 아니다).

시즈코가 가져온 지식에서는 미수정의 구화만을 사용하는 것이었기에 수그루의 재배는 한정적이 되었다.

이 구화는 맥주의 원료 중 하나이며, 쓴맛이나 향을 연출하고, 잡균의 번식을 억제하여 보존성을 높이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그러고보니 원료용으로 분쇄가공만 해서 보관해 둔 채였네요"


수확한 구화는 저온하에 두고 송풍(送風)하여 건조시키고, 그 후 분쇄한 것을 압축하여 펠렛(pellet)으로 가공한다. 이렇게 하는 것으로 보존성이 높아져서 수 년의 시간을 견디는 것이 가능해진다.


"그…… 역시 시간을 두면 풍미(風味)가 떨어지잖느냐? 그게 아까워서, 그만 전부 써 버렸다……"


그러고보니 아시미츠는 갓 수확된 구화를 둘로 갈라서, 중심 부근에 있는 레몬색의 '루풀린(lupulin) 알갱이'를 꺼내서 그 선명(鮮烈)하고 화려한 향기에 거하게 취해 있었다.

오랫동안 마시지 않은 맥주의 향기를 떠올리고, 그 무렵부터 계획을 세웠던 것인지도 모른다.


"……잘 알겠어요"


세 사람이 조급해하는 이유, 그것은 주세(酒税)에 있었다. 오다 영토 내에서 주류는 담근 단계의 양에 따라 과세되며, 현물 또는 금전으로 세금을 납부해야 한다.


다만 과세는 상용주조(商用醸造)에 한정되며, 연구개발이나 자가소비하는 분량에 대해서는 관례적으로 못본 척 하고 있었다.

이번의 경우에 적용한다면 자가소비라고 강변하지 못할 것도 없지만, 아무래도 무리가 있다고 시즈코는 판단했다.

아마 처음에는 평소의 네 사람만이 마실 양을 담글 예정이, 서서히 참가자가 늘어남에 따라 규모가 커져버린 것이리라.

그들이 시즈코에게 말하지 않은 것도, 아무래도 이 양은 문제가 있지(拙い) 않을까라는 의식이 있었던 게 아닐까.

어쨌든 시즈코로서는 주조(酒造)의 총 책임자(元締)이기도 하며, 노부나가에게 바치는 주세의 총괄도 맡고 있다.


"참고로 만든 맥주는 어쩔 생각이었어요?"


표면적으로는 생긋 웃는 상태로 기묘한 박력을 띤 시즈코가 물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일이 커졌다고 헤아린 아시미츠는, 사이조의 옆구리를 찔러 눈짓을 교환했다.


"(아무래도 이거 안 좋아진 것 같다, 솔직히 사과하자)"


"(알겠소)"


"(미, 미안. 내가 입을 잘못 놀려서……)"


"(오히려 전화위복(怪我の功名)이군. 여기는 어설프게 감추려고 하지 말고 밝힐 수밖에 없다) 우리들이 마실 만큼만 만들어서 전부 마셔버릴 생각이었다……"


시즈코는 두통을 참는 듯 미간을 손가락으로 주무르면서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오다 영토 내에서는 술을 담그려면 신청이 필요하고, 담근 양에 따라 납세의 의무가 부과된다고요. 개인이 소비할 정도의 양이라면 눈감아 줄수도 있지만, 모두가 마실 양이면 장사 규모잖아요? 위정자가 지키지 않는 법 따위 아무도 지키지 않게 되어버리니, 이후에는 반드시 상담해줘요? 알았어요?"


스스로도 잔소리같다고 생각하면서도 차근차근 말했다. 아마도 시즈코의 손을 번거롭게 하지 말자고 몰래 만들었을 아시미츠가 쓸쓸하게 고개를 떨구었다.

생각해보니, 예전에 아시미츠가 현대의 시즈코 집에서 얹혀 살았을 때, 그는 자주 시즈코의 아버지와 풋콩(枝豆)을 안주로 저녁에 맥주를 마셨었다.


"(임시 거처였다고는 해도, 향수를 느낄 정도로는 생각해 줬던 걸까?) 그래서, 시음회에 참가하는 건 누구에요?"


"예, 옛…… 저희들 세 명 이외에, 케이지 님과 미츠오(みつお) 님, 고로(五郎) 님――"


"알았어요. 예상 이상으로 대규모인 모양이네요. 그렇게 되면 눈감는 정도로 끝날 양이 아닐테니, 주세는 모두의 급료에서 빼두겠어요"


가볍게 현기증을 느끼기 시작한 시즈코는 사이조의 말을 가로막았다.


"(여러 사람 손을 빌리는 동안 규모가 확대되어 간거겠지. 내 직속의 무장들이 무허가로 술을 담글 거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을테니……) 용서하는 건 이번 뿐이에요? 다음에도 했다간 당신들이라고는 해도 처벌하지 않을 수 없으니, 나한테 그렇게 하게 하지 말아줘요?"


"시즈코, 정말 미안하다……"


아시미츠를 필두로, 다른 두 명도 충분히 반성하고 있는 듯 하여, 시즈코는 이 이상의 질책은 필요없다고 판단했다. 그보다도 불미스런 일(不始末)에 대처하기 위해 움직이는 편이 건설적이다.


"그럼, 이 이야기는 끝이네요"


시즈코가 가볍게 한숨을 쉬고, 각종 수속을 하러 가려고 할 때, 마치 노린 듯한 타이밍에 쇼우(蕭)가 나타났다.


"이쪽에 계셨습니까, 시즈코 님. 노히메(濃姫) 님께서 오셨습니다. 시즈코 님과의 면회를 원하십니다"


"알겠어요. 아무래도 이 꼴로는 뵐 수 없으니, 목욕(湯浴み)을 하고 가겠어요. 그 동안의 환대(歓待)를 부탁해요. 그리고 주세의 신고 누락을 발견했으니, 아야 짱에게 전해줄래요?"


"알겠습니다.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쇼우는 날렵하게 인사를 하고는 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바쁘게 떠나갔다. 항상 묘하게 타이밍좋게 나타나네라고 생각하며 시즈코는 목욕탕으로 향했다.

목욕을 시작으로 몸치장을 갖추는 동안 노히메를 꽤 오래 기다리게 해버렸다는 것을 깨닫고 서둘러 응접실로 이동했다.


"대단히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 사전 연락도 없이 찾아온 것이니, 기다리는 것은 당연하노라"


"그리 말씀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시즈코의 지위(立場)가 높아짐에 따라 공식적인 자리 또는 그에 가까운 장소에서는 의례적인 대화를 요구받게 되었다. 신뢰할 수 있는(気心の知れた) 노히메 상대로도 마찬가지라, 고용인들(家人)을 물린 사적인 공간에서 대화를 하는 흐름이 되었다.


"후우, 참으로 딱딱하구나"


시즈코의 사실(私室)로 안내되자마자 노히메는 평소의 스스럼없는 태도로 돌아왔다. 노골적일 정도의 전환에 자기도 모르게 쓴웃음을 지은 시즈코였으나, 그만큼 마음을 열어주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나쁜 기분은 들지 않았다.


"서로 지위가 생겼으니 그에 맞는 행동을 요구받는 것은 어쩔 수 없겠지요. 노히메 님께서는 천하인(天下人)의 정실(正室)이시니까요"


"알고 있으니까 마음에는 들지 않지만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그에 맞게 행동하고 있지 않느냐? 애초에 천하인의 처(妻)이니 뭐니 떠받들려봤자 나 자신에게 무슨 권력이 있는 것도 아니다. 정(情)으로 움직이는 여자가 정치에 관여해봤자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는 것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느니라"


"저기, 저도 일단 위정자인데요"


"시즈코는 숫처녀(未通女) 아니더냐? 여자로는 치지 않느니라"


"저는 그렇다치고, 본심은요?"


"정치는 남자의 일. 남자의 등을 슬쩍 밀어주고 지친 남자를 치유해주는 게 좋은 여자라는 것이니라"


"그렇겠죠"


노히메의 성격은, 천하인의 정실이라는 권위를 휘두르기보다, 자신의 기량만으로 내키는 대로 인생을 구가하는 쪽이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입장상 정치에 관계가 없을 수는 없다. 이런저런 제약이 가해지는데도 그 안에서 최대한의 즐거움을 찾아내는 노히메의 모습에 천하인의 처의 마음고생을 엿볼 수 있었다.


파앙-!!


"시즈코는 없느냐? 아, 언니(義姉上)! 먼저 오셨습니까, 늦어서 죄송합니다"


경쾌한 소리와 함께 호쾌하게 맹장지를 열어젖힌 것은 오이치(お市)였다. 뒤에 챠챠(茶々)와 하츠(初), 유모(乳母)에게 안겨 있는 고우(江)가 있었다.

오다 가문의 여자들은 방문을 미리 알리지 않는 습관이라도 있는 건가 하고 의심하고 싶어지지만, 그러고보니 노부나가도 갑작스레 찾아오기 때문에 오다 가문의 혈통이라고 납득했다.


"호호홋, 내가 길을 서두른 것 뿐이니라. 신경쓰지 말거라"


"집주인인 저는 신경쓰이는데요…… 그런데 어떤 용건이신가요?"


요즘에는 노히메나 이치 등의 부인들(奥方衆)은 거의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노히메 혼자라면 변덕(気紛れ)으로 넘어갈 수 있지만, 두 명 동시가 되면 뭔가 꿍꿍이가 있다고 시즈코가 경계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렇게 경계하지 말거라. 뭐, 어려운 이야기는 아니니라. 나와 오이치들 일동은, 당분간 오와리에 체류하게 되었느니라"


"네, 그러신가요…… 네!? 그건 대체 어째서?"


내년에 당장이라도 노부나가는 본거지를 아즈치(安土)로 옮긴다. 이미 임시 궁궐(仮御殿)은 완성되어 있지만, 새해맞이(年賀) 행사가 있기에 기후에 머물고 있으며, 정월이 지나면 아즈치로 이주할 것이 결정되어 있다.

이 시기에 노히메나 이치가 오와리에 머무르는 이유가 시즈코에게는 이해되지 않았다.


"아즈치라기보다 오우미(近江) 일원(一円)은 아직 안정되지 않았느니라. 그런 상황에서 주군의 급소가 될 수 있는 우리들이 무방비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으면 좋지 않은 일을 꾸미는 패거리들이 나타날지도 모른다. 그게 아니라도 사람의 출입이 늘어나서 아무래도 경비가 느슨해지고, 간자들이 끼어들 여지도 늘어나겠지. 그래서 우리들이 오와리에 체류하게 된 것이니라. 주군께서 자리를 잡으실 때까지 당분간 신세를 지겠노라"


"과연, 사정은 이해햇습니다. 그 정도의 중대사인데, 사전에 당사자인 저에게 이야기가 오지 않았다는 게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만……"


"그거라면, 내가 중간에 막았느니라"


"아아…… 그런 건가요"


시즈코에게 소식이 오지 않은 것은 노히메의 소행이었다. 치기에 의한 장난인지, 아니면 심모원려(深謀遠慮)에 의한 것인지는 알 도리가 없지만, 귀인(貴人)을 받아들이려면 준비가 필요하기에, 하다못해 한 마디 귀띔해줬으면 싶었던 시즈코였다.


"우리들 외에도 친족들이 오와리에 체재하겠지만, 시즈코가 있는 곳에 머무르는 것은 나와 이치의 가족들 뿐이다. 수행원도 최저한으로 했으니, 그리 번잡하게 하지는 않을게다"


"잘 알겠습니다. 친족의 안전을 염려하여 피난을 권하시다니, 주상께서는 일가친지를 아끼시는군요"


"무슨 헛소리냐. 걸리적거리니 그런 것 뿐이다. 오우미는 구석구석까지 살필 수 있는 기후나 오와리와는 다르다. 지금부터는 노골적으로 적대하는 놈들이 아니라, 호의적으로 접하며 비벼보려는 놈들도 나오겠지. 그런 정세에서는 쓸모없는 아군만큼 골치아픈 것은 없느니라"


"어떻게 적에게 무능한 자를 떠넘길지는 옛부터 정치에서 쓰인 수법이군요. 그걸 생각하면 싸울 수 없는 아군은 방해된다고 주상께서 생각하시는 것도 무리는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스스로 자신의 몸을 지킬 수조차 없는 자는 급소가 될 뿐만이 아니라 아군을 피폐하게 하고, 나아가서는 적을 이롭게 하게 된다. 무능한 아군을 안에 품고 있으면, 적은 그냥 앉아서 유리함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노부나가는 고사(故事)에 따라 아군에서 무능한 자를 배제하고, 유능하다면 적일지라도 받아들이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그런 것이니라. 우리들은 주군의 족쇄가 되어서는 안 된다. 하다못해 방해가 되지 않도록 몸을 숨기는 것이 내조(内助)의 공(功)이니라"


노히메는 일체의 불만을 드러내지 않고 잘라 말했다. 노부나가로부터 방해꾼 취급을 받고 있는데도 신경쓰는 기색조차 없다.


"그래서, 본심은요?"


오래 알고 지내지 못한 사람이라면 노히메의 속이 깊음에 감명을 받으리라. 하지만, 노히메가 그런 기특한 성격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잘 알고 있는 시즈코는 눈을 가늘게 뜨며 떠보았다.


"주군 공인의 휴가(骨休め)니라. 이걸 즐기지 않고 어찌할 것이냐!"


시즈코의 상상대로, 노히메는 노부나가의 태도 따윈 신경쓰고 있지 않았다. 오히려 잘되었다며 아예 거리낌없이(大手を振って) 놀 구실로 삼을 속셈이었다.

이치가 지당하신 말씀이라고 말하듯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걸 보니, 이미 계획은 짜여져 있는 것이리라.


"호호홋, 주군의 태도에 일희일비(一喜一憂)할 정도로 순진(初心)하진 않느니라. 게다가, 지금의 주군께서는 멸사봉공에 철저해야 하실 때, 친족들을 규합해서 주군을 보좌하는 게 처(妻)의 임무이니라"


"……강하시군요. 제겐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썩어도 살무사(蝮)의 딸, 미적지근한 세상에 살고 있지는 않느니라. 자, 따분한 이야기는 끝이다. 방의 준비를 부탁할 수 있겠느냐?"


"알고 있습니다. 쇼우에게 준비를 시킬테니, 이쪽에서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시즈코는 그렇게 말하고 쇼우를 불러 노히메들이 지낼 방을 준비하도록 명했다.




노히메들이 시즈코 저택에 기거하게 된 얼마 후, 남자들이 기다리고 기다리던 시음회가 열렸다.

발기인(発起人)은 코타로(虎太郎). 부추긴 것은 케이지, 찬동자가 사이조, 나가요시, 아시미츠, 타카토라(高虎), 미츠오, 고로, 시로(四郎), 야이치(弥一)였다.


"훗훗훗, 작년의 와인은 실패였지만, 까마귀머루(エビヅル)인가 하는 것으로 담근 올해는 조금 다르다! 하지만, 백포도주라는 건 엄청나게 손이 많이 가는 제법인데, 포도에 따라 이렇게 달라질 줄이야……"


코타로가 준비한 와인은 두 종류. 일본의 고유종인 까마귀머루라는 포도를 사용하여 담근 적포도주와, 코우슈(甲州) 포도로 만든 백포도주였다.

당초에 코타로는, 준비되어 있던 코우슈 포도를 사용하여 적포도주를 담그려고 했다. 그러나, 서양의 품종에 비해 당도(糖度)가 낮아서인지, 가당(加糖)을 해도 여전히 알코올 도수가 낮아서 부패해 버렸다.

썩은 와인을 폐기하는 현장에 우연히 나타난 미츠오가 와인 제조의 힌트를 주어, 올해의 와인 제조를 무사히 성공으로 이끌었다.


"어이쿠, 첫 선을 보이는 맥주도 잊으면 곤란하지. 아시미츠 아저씨가 웬일로 열심히 착수한 명품(逸品)이야. 원료도 시즛치가 공들여 키워낸 일급품, 맛이 없을 리가 없어!"


맥주가 든 통을 치면서 케이지가 웃었다. 단골이 된 청주(清酒) 외에 소주(焼酎)나 럼 주 같은 증류주들도 놓여있어, 그야말로 품평회라고 해야 할 분위기를 드러내어 참가자들은 어쨌든 흥분(高揚)했다.

그러나 아시미츠에 사이조, 나가요시 등 세 명은 침통한 표정을 떠올리고 있었다. 개중에도 나가요시는 창백해 보일 정도로 안색이 나빠, 한 눈에도 정상이 아닌 모습이라는 것을 엿볼 수 있었다.


"왜 그래? 다들 기운없는 표정을 하고? 성가신 일은 나중으로 미루고, 오늘은 술을 마시며 떠들자고"


케이지가 어깨를 치면서 나가요시를 격려했으나,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평소라면 기분을 고쳐먹고 함께 떠들텐데, 정말로 몸 상태가 안 좋은건가 하고 케이지가 괴이쩍은 표정을 지었다.


"그…… 미안해, 실은……"


나가요시가 사정을 말하기 전에, 입구의 문이 팡 하는 소리를 내며 열렸다. 조심스레 사전 교섭을 한데다가 창고 안에서 몰래 개최하고 있었던 만큼, 사정을 알고 있는 세 사람 이외의 전원의 시선이 입구로 집중되었다.


"안녕? 몰래 모여있는 여러분. 밀조주(密造酒)의 제조는 엄벌에 처해진다는 건 알고 있나요?"


그곳에는 온화한 미소를 떠올리면서도 박력을 띠고 있는 시즈코가 서 있었다. 몰래 소비할 만큼만 살짝 만들었다고 생각하고 있던 사람들은 심상치않은 사태에 전율했다.


"미안, 말실수를 해버렸다……"


나가요시가 쥐어짜듯 말했다. 그 한 마디로 현 상황을 헤아린 남자들은, 자신들이 처한 상황에 머리를 감싸쥐고 싶어졌다.


"윗사람이 법을 무시하면 백성들에게 본보기가 서지 않잖아요? 그런 고로, 이 술에 대해서는 세금을 징수하겠어요"


"아니, 그, 말이지"


케이지가 어물거리면서도 변명을 하려고 했으나, 시즈코는 그쪽을 한 번 노려보는 것만으로 그것을 봉쇄해버렸다.


"변명은 소용없어요! 처벌이 없을 수는 없으니, 다음 급료에서 주세를 빼겠어요. 그 대신 정식 품평회로 만들어 줄테니, 이런 좁은 곳에 틀어박혀 있지 말고 큰 방(広間)으로 모여요!"


시즈코는 그렇게 말하고 발길을 돌렸다. 남자들도 묘한 상황이 되었다고 생각하면서 얌전히 시즈코를 따라 큰 방으로 향했다.

큰 방에 도착하자, 그곳에는 이미 연회석 준비가 갖추어져 있어, 긴 탁자 같은 좌탁(座卓)이 늘어서 있었고, 그 위에 김을 풍기는 큰 접시에 담긴 요리들이 빼곡하게 놓여 있었다.


"특례 조치는 이번 뿐이에요.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로 모두를 처벌하고 싶지 않으니, 다음부터는 제대로 신고하라고요! 자, 설교는 끝. 모처럼이니 비교하면서 마셔보고, 요리와의 상성 같은 것도 나중에 보고해주면 좋겠어요"


타조 고기나 오골계(烏骨鶏), 오와리(尾張) 코친(cochin)의 닭튀김, 닭의 난반즈케(南蛮漬け), 어패류의 조림(煮付け), 각종 버섯 덴뿌라(天ぷら), 보울(bowl) 가득히 담긴 생야채 샐러드, 야채 절임(香の物)에 오와리 쌀의 흰쌀밥이 가득 담긴 밥통(お櫃)이 늘어서 있었다.


"모두의 보고를 바탕으로 주상께 헌상할 메뉴를 정할 거니까, 주의해서 맛보도록 해요. 그럼, 나머지는 잘 부탁해요"


그 말만 하고 시즈코는 맹장을 닫고 연회장으로 화한 큰 방에서 나갔다. 그녀의 발소리가 멀어지고 완전히 들리지 않게 되었을 때 다들 성대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시음회는 계속해도 되는건가? 급료에서 깎이는 건 뼈아프지만, 그 이상의 요리가 놓여 있는 것처럼 생각되는데"


"뭐가 어찌되었든, 모처럼의 요리가 식어버린다. 촌스러운 말은 하기 없기야. 새로운 술과 맛있는 밥, 이걸 먹지 않겠다는 건 거짓말이지"


케이지가 부추기자, 의기소침해 있던 사람들도 평소의 모습을 되찾았다.


"하지만, 주상께 헌상할 것을 정하는 이상, 취하도록 마실 수도 없지. 각각을 확실히 음미하고, 모두의 의견이 정리된 후에 실컷 마시는 게 맞는 게 아닐까?"


"그건 어떨까? 나는 뭔가 시음회를 계속할 구실이 없으면 우리들도 흥을 내기 어려울 거라 생각한 시즛치의 배려라고 생각하는데 말야. 정말로 그런 걸 정할 생각이라면 시즛치는 더 정성껏 절차를 밟을거야"


"아마도 케이지의 말대로겠지. 하지만, 시즈코의 자비심(仏心)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 우리들은 각자의 어리석음을 부끄러워하고, 내일부터는 마음을 고쳐먹어야 한다"


사이조의 말을 케이지가 부정하고, 아시미츠가 마지막을 마무리했다.


"아시미츠 아저씨의 말대로네. 밀조주를 만든 건 아무래도 너무 지나쳤어"


머리를 긁적이며 케이지가 드물게 반성을 입에 올렸다. 모두가 각자 반성하고, 자리가 조용해졌을 때 미츠오가 입을 열었다.


"그럼, 슬슬 시작하죠. 모처럼 시즈코 씨가 준비해준 요리입니다. 그 뜻을 헛되게 해서는 더더욱 면목이 없게 되겠지요"


"아저씨치고는 좋은 말을 하잖아! 좋아, 답답한 얘기는 끝이야. 마음을 새로이 하기 위해서도, 오늘은 밤새 마시자고!"


"아저씨가 아니라 미츠오입니다"


고로가 일부러 밝게 말하고, 그에 대해 미츠오가 단골 멘트를 날렸다. 평소대로의 모습에, 자연스럽게 웃음이 떠오르는 일동이었다.


"내 와인은 사전에 확실히 신고하고 세금도 제대로 납부했는데 말이지……"


"자자, 다행히 공식적으로 인정받게 된 시음회니까, 맡은 바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도록 하죠"


혼자서만 뒤가 구린 곳이 없었던 코타로가 멋진 턱수염을 만지작거리며 툴툴대고, 야이치가 달래면서 개회(開会)를 촉구했다.


"그럼, 시즛치의 관대한 조치에 감사하고, 또 충분히 반성했으니 시음회를 시작하자고!"


"오-!"


케이지의 선언에 남자들은 주먹을 치켜들었다.




"(현대인으로서는) '어쨌든 생(生)'이죠! 욕심을 말하자면 시릴 정도로 차게 한 것을 마시고 싶지만 말입니다"


중얼거리면서 미츠오가 맥주를 쭉 마셨다. 현대 일본에 유통되고 있는 대부분의 맥주는, 라거(lager) 계열의 필스너(pilsner) 스타일로 제조되고 있다.

필스너 스타일의 역사는 1842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체코의 플젠(Plzeň)에 있는 필젠(Pilsen) 양조장에 독일인 양조가(醸造家) 요제프 그롤(Yosef Groll)이 초빙되어, 이 때 제조된 맥주가 유명한 '필스너 우르켈(Pilsner Urquell, 우르켈은 원조(元祖)나 오리지널(元)이라는 의미)'이며, 그 제조방법을 필스너 스타일이라고 불렀다.

지금은 일본 뿐만이 아니라 세계 각국의 맥주 메이커가 필스너 스타일을 채용하여 맥주를 제조하고 있다.


맥주는 크게 나누면 에일(ale)과 라거(lager)로 나뉘며, 발효 과정에서 효모(酵母)가 보리즙(麦汁)의 상부에 떠오르는 '상면발효(上面発酵)'로 만들어진 것을 에일이라 부르고, 반대로 아래로 침전되는 '하면발효'로 만들어지는 것을 라거라고 부른다.

역사적으로는 에일 쪽이 오래되었으며, 라거는 중세기 무렵에 탄생하여, 19세기 무렵부터 주류가 되었다. 이것은 라거의 발효 온도에 의한 부분이 크다.

일반적으로 20에서 25도의 상온에서 발효되는 에일은 잡균이 번식하기 쉽고, 그에 반해 라거는 5에서 15도라는 저온에서 발효시키기 때문에 품질이 안정적이다.

산업혁명 이후의 대량생산의 흐름에는 품질이 안정적인 라거 쪽이 유리하여, 시대에 등을 떠밀리는 형태로 주류로 도약하게 된다.


여담이지만 라거를 주류로 밀어올리는 원동력이 된 것은, 프랑스의 세균학자 루이 파스퇴르(Louis Pasteur)가 1866년에 저온살균법(파스퇴라이제이션(pasteurization)이라고도 부른다)이라는 세균의 번식을 막는 방법을 개발한 것이 크다.

맥주 양조의 과정에서 한발 빨리 저온살균법을 채용한 독일은, 부패(腐敗) 내성(耐性)을 향상시켜 고품질의 맥주로서 명성을 떨치게 된다.

본래 파스퇴르는 맥주를 위해 저온살균법을 발명한 것이 아니고, 프랑스 와인의 지위 향상을 목표로 연구를 계속한 끝에 얻은 성과였다.

자국인 프랑스에 대한 애착이 강하고 독일을 대단히 싫어했던 그의 공적이 하필이면 독일 맥주의 지위 향상에 기여했다는 것은 상당한 아이러니라 할 수 있으리라.

후에 파스퇴르의 저온살균법은 우유에도 응용되게 된다.

또, 일본에서는 파스퇴르보다 300년 이상 전에 일본주의 제조 공정에서 '히이레(火入れ)'라는 저온살균법이 경험적으로 탄생했었다.


에일과 라거는 발효 방법만이 아니라 마실 때의 적절한 온도도 다르다.

일반적으로 에일은 상온 부근이 적절한 온도라고 한다. 이것은 상온인 쪽이 맥주가 가진 향을 잘 느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에 반해 라거는 차게 해서 마시는 쪽이 적절하다.

이것은 차게 한 쪽이 라거가 가지는 섬세함(キレ)이나 쓴맛, 탄산(炭酸)의 상쾌함(爽快感)을 확실히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특히 시릴 정도로 차게 한 라거가 선호되는 것은 기후에 의한 영향이 크다.

일본은 1년 내내 습도가 높고 여름의 더운 시기가 길다. 이 때문에 목넘김이 상쾌하고 청량감(清涼感)이 있는 차가운 라거가 선호되고, 상온의 에일은 기피되는 경향이 있다.

그에 반해 독일을 포함한 유럽은 건조하고 추운 기간이 오래 계속된다. 이 때문에 몸이 차가워지는 라거보다도 상온의 에일이 선호된다.


"크으으!! 직접 만든 맥주는 수고 때문에라도 맛도 한결 더 좋군요"


"묘하게 쓰고, 입속이 얼얼해. 뭐라 말할 수 없는 맛이군"


맥주의 평가는 딱 둘로 갈렸다. 맥주에 익숙한 아시미츠나 미츠오는 기세좋게 술잔을 비우고 있었으나, 나가요시나 타카토라는 미묘한 표정을 떠올리면서 살짝살짝 핥듯 마시고 있었다.

처음 경험하는 탄산의 자극에 익숙해지지 않아 조금식 마시고 있기에 목넘김(喉越し)이 좋다는 점이 느껴지지 않고 쓴맛이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으음! 이 백포도주는 대단히 차분하고 고급스러운 맛이군"


코타로의 말에 야이치도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 동의했다. 숙성 기간이 짧기에 아직 거친 부분이 남아있는 마무리였으나, 작년의 곰팡이 투성이 포도주와는 한 획을 긋는 완성도였다.


"미츠오 님에게 들었을 때는 반신반의했는데, 설마 이 정도의 맛이 될 줄이야……"


"하하하, 저는 텔레…… 어흠. 다른 사람에게 들은 지식을 말했을 뿐입니다. 대단한 일을 한 것은 아니지요"


순간적으로 텔레비전이라고 말하려던 미츠오는 다급히 얼버무렸다. 코우슈 포도가 백포도주에 적합하다는 것도, 까마귀머루로 적포도주를 만든다는 아이디어도 텔레비전에서 방영된 내용을 기억하고 있었던 것에 불과했다.

백포도주의 대략적(大雑把)인 제법과, 코우슈 포도가 재료로 적합한 점, 또 생식으로는 맛있다고는 할 수 없는 까마귀머루가 와인으로 만들면 훌륭한 맛을 낳는다는 정보만을 전달했다.

이 전국시대에서 원재료인 코우슈 포도나 까마귀머루를 모을 수 있었던 것은, 시즈코의, 나아가서는 오다 가문의 위광(威光) 덕분이라고도 할 수 있다.


"겸손도 지나치면 아니꼬움(嫌味)이 되겠지. 당신의 지식은 크게 도움이 되었소. 나도 주인에 대해 면목이 서게 되었지"


"그런 건가요. 그렇다면 저도, 맛있는 와인을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코타로의 사의를 받아들이자, 이번에는 미츠오도 생산자에 대한 소비자로서의 감사를 표했다. 일순 멍해진 코타로였으니, 곧 파안(破顔)하더니 미츠오에게 적포도주도 권했다.


"백포도주도 좋지만, 이쪽의 적포도주도 지지 않지. 모국의 와인에도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자부하고 있소"


"아직 젊은 와인이라 그런지 신맛과 쓴맛이 강합니다만, 산양 치즈와 조합하니 끝내주는군요!"


"그 새빨간 와인이라는 건 그렇게 맛있어? 나도 한 잔 마셔볼까!"


"맛있습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보고 있던 케이지가 와인에 흥미를 보였다. 즉시 야아치가 비교적 마시기 쉬운 백포도주를 따라서 케이지에게 건네주었다.


"고마워…… 크ー. 청주만큼 세지는 않지만 꽤나 강한 술인데. 포도다운 신맛이 재미있어"


"갓 담근 젊은 와인이니까요. 몇 년이나 숙성을 거듭하면 모난 부분이 없어져서 부드러워지고, 수분도 날아가 다른 맛이 됩니다"


"호오! 조금씩 맛이 변하는 건가, 꽤나 재미있는데. 다음에는 적포도주인가 하는 걸 부탁할까?"


"알겠습니다. 여기 있습니다"


생긋 웃은 야이치가, 적포도주를 케이지에게 건네주었다. 와인글라스에라도 따라서 빛을 투과시키면 그렇지도 않지만, 아직 투명도가 높은 유리는 귀중하여, 와인글라스의 가격도 무섭도록 비싸다.

이 때문에 시음회에서는 기껏해야 보통 술잔(ぐい呑み)으로 마시고 있었기에 빛이 차단되어 피처럼 보였다. 피를 부정한 것(穢れ)으로서 기피하는 사람들은 적포도주를 기피하고 있었지만, 케이지에게는 관계없었다.


"술고래(蟒蛇)인 미츠오가 와인을 마시고 있는 틈에 내가 맥주를 마시지"


미츠오나 케이지가 와인에 정신이 팔려 있는 동안, 아시미츠는 맥주를 계속 마시고 있었다. 맥주병 같은 건 없었기에 통에서 직접 퍼마시고 있어, 몇 잔 째인지는 아무도 몰랐다.

그다지 과음(深酒)을 하지 않는 아시미츠의 페이스는 명백히 일본주(日本酒)를 마실 때보다 빨랐다.


"아시미츠 씨, 그거 몇 잔 째야?"


"처음부터 세지 않았다. 그런 걸 신경쓰고 있으면 술이 맛없어지잖나"


"아니, 과음은 좋지 않은 거 아니야?"


"이 정도는 마신 축에도 안 든다. 그보다 네놈도 마시지 못하겠냐, 모처럼의 맥주가 미지근해진다"


"에엑!? 평소와 달리 엄청나게 들이대는데……"


"시끄럽다. 내 술을 못 마시겠다는거냐?"


고로의 지적에, 아시미츠는 술주정뱅이의 단골(定番) 대사로 받아쳤다. 가까이서 듣고 있던 시로는 괜히 벌집을 건드릴 것 없다는 듯 그 자리를 떠났다.


"이 닭튀김이라는 건 맛있네. 이건 밥이 지나치게 당겨"


"카츠조(勝蔵)! 이 시기만 하다고 생각했던 레몬 즙을 뿌리면 더 맛있어진다!"


"잠깐! 난 그 즙, 싫어한다고!! 아ー아, 전체에 다 뿌려버렸어……"


시로와 마찬가지로 아시미츠의 주사(絡み酒)를 피한 사이조나 나가요시, 타카토라는 닭튀김을 차례차례 먹어치웠다. 순식간에 그들의 앞에 있던 큰 접시의 요리는 깨끗하게 사라졌다ㅑ.

요리가 없어진 후에도 그들은 한 손에 술잔을 들고 담소하였으며, 그것은 미츠오 이외의 전원이 취해 쓰러질 때까지 계속되었다.


남자들이 난리를 치고 있는 동안, 시즈코는 몇 번째인지 모를 한숨을 쉬고 있었다.


"――이리하여 도깨비(鬼)를 퇴치한 모모타로(桃太郎)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있는 곳으로 보물을 가지고 돌아가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잘됐네요(めでたし、めでたし)"


시즈코가 챠챠와 하츠를 선두로, 여성진 전원에게 상연(上演)하고 있는 것은 그녀가 직접 만든(謹製) 종이연극(紙芝居)이었다.

서민을 위한 오락의 제공과 기본적인 교양의 습득, 권선징악(勧善懲悪)의 스토리를 고르는 것에 의한 도덕심의 향상을 노리고 시험적으로 만든 것이다.

화려한 색채를 가진 종이연극의 한 장에 챠챠가 관심을 가지고, 시즈코가 그것을 실연(実演)해보이자, 어른들도 끼어들 정도로 대호평을 받아, 끊임없이(延々) 상연을 반복하게 되고 있었다.


"저는 슬슬 자고 싶은데요……"


"아니 된다! 아직 그 밖에도 이야기가 있지 않느냐?"


노히메와 이치의 기세에 눌려, 결국 시즈코는 밤새도록 종이연극을 계속하는 상황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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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

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텐쇼(天正) 원년(元年) 키나이(畿内)의 사회기반 정비


121 1574년 10월 상순



"미끼"


마고이치(孫一)가 괴이쩍다는 목소리로 되물었다. 라이렌(頼廉)은 마고이치의 물음에 긍정하더니 말을 이었다.


"우리들은 항상 오다의 동향을 엿보고 있었소. 세세한 곳까지 놓치지 않고(微に入り細を穿って) 정보를 모아, 그 자리마다 최선이라고 생각되는 수를 계속 둬 왔소. 하지만 현실은 어떻소? 상황이 호전되기는 커녕,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상황에 몰려 있소. 즉, 오다는 자신에게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것을 잘 알고 미끼가 되어 요란하고 대대적으로 움직여보이는 것으로 진짜 책략을 감출 수 있었던 게 아니겠소?"


"과연…… 우리들은 머리를 쫓고 있었다고 생각했지만, 요란하게 치장된 꼬리였다는 거군요. 하지만, 뭐든지 스스로 결정하고 싶어하며 중요한 부분은 다른 사람에게 맡기지 않는 오다가 진짜 책략을 맡길 수 있는 상대 같은 것이 있을까요?"


"보통은 없지만, 놈만큼은 감춰놓고(囲って) 있지. 남자가 아니기에 출세의 야심이 없고, 절대로 배신하지 않는데다 유능하며, 세세하게 지시를 내리지 않아도 명령의 뒤에 감춰진 큰 줄기를 읽고 단독으로 책략을 굴릴 수 있는 인물. 이번의 사이카(雑賀)의 수난(受難)에도 반드시 관여하고 있을 것이오"


"……고노에(近衛)의 딸인가"


손에 든 작은 나뭇가지를 꺾어서 중앙의 화톳불에 던져넣으며 마고이치가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세 사람이 소속된 각자의 조직 중, 마고이치가 소속된 사이카슈(雑賀衆)가 입은 피해가 현저하게 많다. 영주(国人)도 아닌데 천하에 이름이 알려진 철포(鉄砲) 용병집단(傭兵集団)이, 지금은 그런 업취도 없는 오합지졸로 전락했다.

게다가 사이카슈의 대부분이 상인으로 돌아갔다는 것은 유통을 담당하는 상인들의 입을 통해 무서운 속도로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상인으로서는 웃기는 화제를 제공하여 거래 상대의 관심을 끌려고 하기에, 소문에서의 사이카슈는 괴멸했다는 취급이었다.

이렇게 되면 용병집단으로서의 사이카슈를 원하는 사람은 없어지니 점점 더 장사로 경도(傾倒)되게 된다. 사이카슈의 개개의 세력이 개별적으로 윤택해지는 것과 맞바꾸어 사이카슈의 평판은 땅바닥에 떨어졌다.


"오다의 세력이 아니라 상인들에게 정보를 담당하게 한 것도 절묘한 수법이지. 상재(商材, ※역주: 장사할 거리)를 손에 들고 전국으로 일제히 퍼져나가는데다, 전원의 입에 자물쇠를 채우는 것 따위는 불가능하지. 철저 항전을 외치던 무리들도 정세가 불리해짐에 따라 기세를 잃고 있소. 전의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상재가 없기에 장사로는 먹고살 수 없는 자들 뿐이오"


"적을 칭찬해서 어쩌자는 거요! 뭔가 수를 쓰지 않으면 선조들께서 쌓아올린 사이카슈가 붕괴할 것이란 말이오!"


"무리요. 우두머리(棟梁)의 호령 하나에 전원이 움직이는 체제였다면 모를까, 합의제(合議制)였기에 붕괴는 피할 수 없소. 다들 각각 다른 곳을 바라보고 시작한 것이오. 다시 모으는(纏め上げる) 것은 쉽지 않지"


마고이치는 냉혹할 정도로 상황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공을 들여 키워내고 함께 싸워온 사이카슈를 붕괴로 이끈 노부나가나 시즈코가 미웠다. 하지만, 사이카슈가 살아남을 것을 생각한다면 개인적인 감정은 배제해야 한다.

각각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기 시작한 선단(船団)을 버리고, 자신과 같은 방향을 향하는 배들만을 묶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예전의 영화를 아쉬워해서 때를 잘못 파악하면 모든 것을 잃는다.

보통 사람에게는 불가능한 손절(損切り)이지만, 마고이치에게는 그것이 가능했다. 자신의 목숨과 타인의 목숨을 저울에 재어, 타인이 살아남는 쪽이 사이카슈의 이득이 된다고 생각하면 주저없이 목숨을 버릴 수 있다. 그런 비인간적인 결벽함(潔さ)이 마고이치에게는 있었다.


"게다가 오다에게 부추겨진 패거리들을 신경쓰고 있을 수 없는 이유가 있소"


"그 이유를 물어도 되겠소?"


지금까지 듣는 역할에 철저했던 에케이(恵瓊)가 의문을 입에 올렸다. 마고이치는 한번 크게 한숨을 쉬더니 에케이의 질문에 대답했다.


"그 패거리들도 사이카슈가 미워서 결별한 것은 아니오. 상인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사이카슈의 이득이 될 거라 믿고 전향한 것이지. 자신의 생각을 믿고 있기에 모두를 이끌기 위해 주류파(主流派)가 되려 하겠지. 이렇게 항전파(抗戦派)는 소수파(少数派)로 몰려, 변화 없는 상황(ぬるま湯)에서 썩어가게 될 것이오. 우리들이 이빨을 잃었을 때, 오다에게 대항할 방법 따윈 없건만……"


"하지만, 바로 그렇기에 모두에게 밝히고 재기를 꾀해야 하는 게 아니오?"


"이렇게까지 용의주도한 책략을 구사하는 놈들이 그럴 여유를 줄 리가 없소. 반드시 제 2, 제 3의 화살을 쏘아넣어 서로 상잔하도록 유도하겠지. 그렇게 다들 피폐해졌을 때 오다가 평정하겠다는 계산인 것이오"


"과연…… 오다는 힘들이지 않고 사이카를 쓰러뜨리고, 혼간지(本願寺)는 모우리(毛利) 이외의 기댈 곳을 잃게 되겠군. 카가(加賀) 일향종(一向宗)은 쉽게 오다에게 구실을 주어버려 이미 풍전등화(風前灯火). 키이(紀伊) 문도(門徒)들도 사이카슈라는 버팀목을 잃게 되면 머지 않아 와해되겠지요. 혼간지가 살아남으려면 농성을 할 수 밖에 없지만, 원군이 올 곳이 없는 농성 따윈 자살에 불과하오"


"지금 상황은 '외통수'요"


라이렌이 씁쓸함에 찬 목소리를 쥐어짰다. 이미 어지간한 한 수로는 반면(盤面)을 뒤집을 수 없다. 그야말로 무언가를 댓가로, 한 번에 두 수를 두는 것 같은 대 이변(大番狂わせ)이 필요해진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서도 여전히 라이렌의 눈은 죽지 않았다. 기사회생(起死回生)의 한 수를 믿고 승기(勝機)를 기다리는, 궁지에 몰린 쥐의 표정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래서 말한 것이오…… 최초로 포위했을 때, 얼마만큼 뼈아픈 피해를 입더라도 오다를 멸망시켰어야 한다고……"


부끄럽기 짝이 없다는 듯 라이렌의 입에서 흘러나온 중얼거림에, 두 사람은 해줄 말을 찾지 못했다.




"에취…… 누가 내 이야기라도 하고 있는 걸까? 뭐, 그건 그렇고…… 또또 성가신 일이야……"


노부나가에게서 온 서신을 본 시즈코가 투덜거렸다. 서신의 내용을 요약하면 '시즈코의 다실(茶室)을 쓸 것이니, 만반의 준비를 갖춰놓고 기다려라'였다.

기후 성(岐阜城)에 설치된 노부나가 근제(謹製)의 다실이 아니라 일부러 시즈코의 저택에 있는 다실에서 다화회(茶会)를 열겠다는 내용이었다. 단적으로 말하면, 시즈코 저택에 있는 다실은 질박(質素)하다.

애초에 다도(茶の湯)에 거의 흥미가 없는데다, 역사적 사실에서 히데요시(秀吉)가 만들게 한 황금의 다실을 알고 있었다. 호화찬란(絢爛豪華)한 다실 따위 마음이 진정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 사치스러움을 배제하고 극력 간소한 다실로 만들었다.


다실의 넓이는 객층(客層)을 고려한 최저한인 다다미 넉장 반(四畳半, ※역주: 약 2.25평). 소위 말하는 '코마(小間)'를 채용했다. 여담이지만 다다미 넉장 반 이하의 공간을 코마, 넉장 반 이상을 히로마(広間)라고 부른다. 다다미 넉장 반은 '코마'도 되고 '히로마'도 된다.

기본적인 설계는 소우안(草庵) 다실(茶室)을 참고로 했다. 지붕은 짚(藁)으로 이고(葺), 벽도 무미건조한(素っ気の無い) 흙벽. 창문도 바탕창(下地窓, ※역주: 명칭은 직역. 벽에 흙을 다 바르지 않고, 뼈대인 외를 그대로 드러내 보이게 해 창으로 쓰고 있는 것(흔히, 다실(茶室) 따위에 씀))이라 불리는, 벽을 거기만 칠하다 만 듯한 간소하게 보이는 것이다.

내부 장식도 간소하기 짝이 없어, 중앙부에 다다미 반 장의 로 다다미(炉畳, ※역주: 화로를 설치하기 위해 화로의 크기만큼 잘라낸 다다미)를 놓고, 주위를 풍차의 날개처럼 둘러싸는 다다미가 있을 뿐으로, 그 밖에는 역시 간소한 토코노마(床の間, ※역주: 일본식 방의 상좌(上座)에 바닥을 한층 높게 만든 곳(벽에는 족자를 걸고, 바닥에는 꽃이나 장식물을 꾸며 놓음; 보통 객실에 꾸밈))가 있을 뿐이었다.

토코노마에는 노부나가가 쓴(揮毫) '제행무상(諸行無常)'의 족자(掛け軸)와, 시장에서 사온 아무 특징도 없는 도자기 꽃병이 놓여있고, 계절에 따라 눈에 띈 화초(草花)를 꽂았다.

외견으로는 아담하고 내부 장식도 간소하기는 하나 질감(風合い, ※역주: 용법 확실하지 않음)이 있었다. 센노 리큐(千利休)가 완성시킨 소우안 다실의 아취를 느끼게 하는 제법 괜찮은 다실이라고 자부하고 있었으나, 주위에서는 '음침하다(陰気臭い)', '초라하다(みすぼらしい)' 등 심한 평가를 받고 있었다.


"재수(運気)가 없어지겠다고까지 험담한 다실을 쓰고 싶다니…… 누구한테 이상한 소리라도 들은 걸까?"


최근의 다화회에서 자주 화제에 오르는 것은 히가시야마고모츠(東山御物)였다. 다실에 히가시야마고모츠가 있다는 것만으로 동경의 대상이 될 정도이며, 많은 히가시야마고모츠를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시즈코의 다실은 그야말로 훌륭한 것일거라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현실은 히가시야마고모츠는커녕, 노부나가 본인의 손에 의한 글씨(書) 이외에는 가치있는 것 따위 일체 없다는, 아예 시원스러울 정도의 다실이었다.


"뭐, 주상이시니까, 뭔가에 써먹을 수 있겠다고 보신 거겠지만…… 배경을 모르는 상태에서 생각해봤자 소용없으려나. 슬슬 자자"


불을 끈 시즈코는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다. 이미 비트만들이 주위에 웅크려 있었기에 이불 주변은 약간 더울 정도였다.

가끔 고양이가 이불 위로 올라오지만, 자는 도중에 가슴을 압박당하면 꿈자리가 사나워지기에 방 한 구석에 모포를 깐 바구니를 놓아두고 있었다.

고양이에게 대신할 침상을 제공하려는 것이었지만, 이용되고 있는 기색은 없었다.


다음날, 시즈코는 다실의 준비를 명한 후, 하루의 업무를 오전중에 처리했다. 점심식사를 한 후에는, 자기 방에서 비트만들과 느긋하게 늘어져서 보냈다.

딱히 무언가를 하는 것은 아니었다. 허물없는 가족이나 다름없는 동료와 느긋한 시간을 공유한다. 시즈코 정도의 입장이 되면 이렇게 시간을 쓰는 게 사치가 된다. 오랜만에 찾아온 휴식을 즐기고 있었다.


"조금 더 지나면 추워지겠지만, 지금은 지내기 좋은 기후네"


"웡"


시즈코의 혼잣말에 카이저가 한 번 짖어서 대답했다. 그녀의 말을 이해한 건지, 아니면 단지 우연이 겹친 것 뿐인지는 시즈코에게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어쩐지 맞장구를 쳐준 것처럼 느껴졌다.


"후우…… 드디어 남만 과일들도 내 손을 떠났고, 남만 상인에게서 산 데이츠(dates)는 애초에 손이 안 가니까"


데이츠란 대추야자(ナツメヤシ)의 과실이다. 남만 상인이 보존식으로 가져온 것을 시즈코가 흥미를 느끼고 사들인 것이다.

인류에 의한 대추야자 재배의 역사는 오래되어, 일설에 따르면 기원전 6천년 무렵에는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에서 재배되었다고 생각되고 있다.

일본에는 그다지 친숙하지 않아서 단일 품종처럼 생각되고 있지만, 실제로는 4백 종류 이상이나 되는 품종이 있으며, 예전에 대추야자를 주식으로 삼았던 지역에서는 과실의 숙성 정도에 따라 몇 종류나 되는 명칭이 주어졌을 정도로 중요한 식량이었다.

건조 기후대(乾燥帯)에 많이 분포하고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듯, 건조함이나 온도변화에 강하고 가혹한 재배환경에도 견디며 잘 성장한다. 일본의 기후에서는 습기에만 신경쓰면 0도를 크게 밑돌지 않는 한 시들어버리는 경우는 드물어, 온실을 이용할 수 있는 시즈코의 환경에서는 손이 갈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드라이 프루츠(dry fruit)로 가공된 후에도 발아할 줄이야…… 무서운 생명력이네"


공업적인 가열처리를 하지 않은 천일(天日) 건조였기에 발아 능력이 없어지는 온도까지 달하지 않았던 게 아닐까 하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처음에는 먹은 후의 데이츠의 씨앗을 조사하기 위해 물에 담궈놓았는데, 하룻밤 지나고 보니 1.5배 정도까지 부풀어 있어서 혹시나 해서 흙에 심어봤더니 발아했다.

아무래도 모든 씨앗에서 발아하는 건 아니고, 발아율은 1할에도 미치지 못햇지만 시즈코는 대단히 기뻐했다.

성목(成木)이 될 때 까지는 저온에 주의할 필요가 있기에, 화분에 옮겨심어 재배를 계속하고 있었다. 문제는 데이츠가 자웅이주(雌雄異株)에 의한 결실성(結実性)을 가지는 것이었다.

이 성질 때문에 암수(雌雄) 포기가 함께 있지 않으면 과실의 수확은 기대할 수 없는데, 꽃이 피기 전에는 암수의 판별이 불가능한 것이다.

시즈코는 현대에서 다이어트 식품으로서 소개되었던 데이츠의 기사를 읽었었기에, 암포기(雌株)는 아래를 향해 꽃이 피고, 수포기(雄株)는 위를 향해 꽃이 파운다는 것만은 기억하고 있었다.

지금은 10개 정도의 모를 키우고 있지만, 그것들이 전부 어느 한 쪽의 포기에 편향되지 않기를 기도할 뿐이었다.


"뭐, 딱히 열매를 수확할 수 없어도 상관없지만, 열매를 딸 수 있게 되면 '돈까스(とんかつ) 소스'를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이 있지…… 다행히 남만 상인들은 데이츠가 상품이 될 거라고 생각해준 모양이니, 이후에도 정기적으로 사들일 수 있겠지"


대추야자는 중동에서는 인기있는 식품이며, 데이츠를 날것으로 먹은 후의 씨앗은 그냥 버려두어도 잘 발아한다. 하지만, 전술한 대로 암수를 판별하는 데 몇 년이 걸리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키우려고는 하지 않는다.

수그루가 하나 있으면, 50개 정도의 암그루에 수분(受粉)하는 것이 가능하며, 우수한 수그루 이외의 가치가 대체적으로 낮기 때문에 뒤늦게(後発) 재배하는 입장에서는 극히 불리한 경쟁원리가 적용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들로 남만 상인들에게 데이츠는 보존식으로서 외에는 중요시되지 않아, 중량당 거래가격이 높게 설정되어 있는 시즈코에게 우선적으로 돌려지게 된다.

시즈코는 이것을 이용하여 금후에도 건조 데이츠에서 씨앗을 회수하여 재배를 계속할 예정이었다.


시원한 오후의 한때를 만끽하고 있던 시즈코의 귀에, 깔려져 있는 자갈을 밟으며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시즈코는 손에 들고 있던 책을 덮고 일어서서 경계를 하고 있는 비트만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시즈코 님, 주상으로부터 파발(早馬)이 도착했습니다. '내일 점심떄가 지나서 도착한다'라고 하십니다"


"알겠어요. 내일은 아침 일찍부터 다실의 청소를 하도록 쇼우(蕭)에게 전해줘요"


"알겠습니다"


툇마루(縁側)에 앉아 있는 시즈코가 일어나지 않도록 정원을 빙 돌아서 보고하러 온 소성(小姓)에게 명령을 전달했다. 시즈코는 덮은 책을 툇마루에 놓고 일어나서 기지개를 켰다.

아쉽지만 평온한 시간은 끝났다. 표정을 조인 후, 시즈코는 자신이 해야 할 일에 착수했다.


다음날 오후. 쇼우들이 꼼꼼하게 손질해놓은 다실에서 시즈코는 노부나가의 도착을 기다리고 있었다. 겨우 다다미 넉장 반(四畳半)이라고는 해도 10월의 기후에는 조금 쌀쌀하다.

방의 중앙에 설치된 화로(炉)에 숯을 늘어놓고 삼발이(五徳)를 놓은 후, 그 위에 차관(茶釜)을 걸었다. 이렇게 하면 방 전체가 따뜻해져서, 바깥 기운을 쐰 손님이 실내에서 몸을 녹일 수 있게 된다.

시즈코의 다실에서는 다다미의 일부를 잘라내고 마룻바닥 아래에 설치된 이로리(囲炉裏)인 로단(炉檀)에 솥을 설치하는 방식을 채용하고 있다. 참고로 솥이 다다미 위에 놓인 화로에 걸리는 양식을 풍로(風炉)라고 부른다.

현대에는 다양한 예법(作法)이나 절차(手順)가 전해지지만, 초대받았을 때 창피를 당하지 않을 최저한밖에 알지 못하는 시즈코는, 대접하는 입장으로서 방을 따뜻하게 해두자고 생각한 것이다.


실내가 충분히 따뜻해졌을 무렵, 밖에 대기하고 있는 소성이 노부나가의 도착을 알렸다. 안내하도록 명한 후, 시즈코는 노부나가의 도착을 기다렸다.

이윽고 지면을 밟는 발소리가 들려왔기에 귀를 쫑긋 세우고 있자니 기묘한 것을 눈치챘다.

안내하는 소성은 도중에서 대기하기 때문에 발소리는 1인분이 되어야 하는데, 아무리 들어봐도 여러 사람의 발소리가 들려오는 것이다.

누굴까 하고 괴이쩍게 생각하고 있을 때, 노부나가에 이어 본 적 없는 인물이 다실로 들어왔다.

외모에서 추측컨대 50대(五十路) 근처, 무인(武人) 특유의 타인을 압도하는 듯한 기세가 없었기에 시즈코는 상인이 아닐까 생각했다. 공가(公家)일 가능성도 생각했지만, 그렇다면 노부나가가 상대에 맞춰 장식할 것을 명령하지 않는 것이 부자연스럽다.

공가에 대해 시위(示威)를 한다면, 많은 히가시야마고모츠를 소유하고 있는 노부나가가 사용하지 않을 리가 없다. 노부나가를 직접 만날 수 있는 사람의 얼굴은 시즈코도 다 잘 알고 있었지만, 처음 보는 인물의 정체(出自)를 알 수 없어 눈썹을 찡그리게 되었다.


"신경쓰지 마라"


시즈코의 시선을 눈치챈 노부나가가 웃으면서 명령했다. 노부나가가 문제없다고 판단한 이상 시즈코로서는 이의를 제기할 수도 없어, 예정대로 차를 끓이기 시작했다.


(……거북해)


시즈코로서는 초대객 측의 예법이라면 어느 정도 익히고 있지만, 호스트(亭主)로서의 예법 같은 건 알 방법도 없어, 시대극 드라마 등에서 본 장면을 떠올리며 대충 흉내내기(見様見真似)로 차를 끓였다.

마루(床) 앞에 있는 귀인(貴人)용 다다미에 떡 하니 책상다리를 하고 앉은 노부나가에게서 떨어져서, 손님용 다다미에 정좌(正座)한 그 인물은 시즈코의 일거수일투족을 놓치지 않으려고 관찰하고 있었다.

다실을 만들기는 했으나, 호스트가 되는 것 따위 상정하지 않았던 시즈코는, 좋게 말하면 아류(我流)로, 나쁘게 말하면 서투른(稚拙) 동작(所作)으로 차를 끓였다.

호스트의 움직임을 자세히 관찰하려고 하는 태도를 볼 때 손님은 다도인(茶人)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그렇다기에는 시즈코의 솜씨를 알고 있는 노부나가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납득이 가지 않았다.

이 경우, 시즈코의 실수(不手際)는 주인인 노부나가의 불명예로도 이어지기에 창피를 당하는 것은 노부나가가 되는 것이다. 노부나가의 의도와, 손님의 속셈 양 쪽이 분명치 않았기에 시즈코는 일말의 불안감을 품고 있었다.


"……드십시오"


본래의 예법이라면 우선 차과자를 권하고, 손님이 다 먹는 시점을 헤아려 차를 내놓는 것이지만, 각자가 원하는 타이밍에 먹는 쪽이 좋다고 생각한 시즈코는 양쪽을 한꺼번에 제공했다.


"흠, 또 신작(新作)이냐. 겉보기는 그렇다치고, 맛은 좋구나"


노부나가는 예법에 맞지 않음(無作法)을 신경쓰지 않는지, 우선 차과자를 먹어치우고, 다음으로 엷게 끓인 차(薄茶)에 손을 뻗었다. 그리고 또다시 시즈코가 폭거(暴挙)를 감행했다.

다른 찻종(茶碗)으로 끓인 차를, 또다시 차과자와 함께 손님에게 권했다.

너무나 파격적인 행동에 기겁한 손님이었으나, 잘 먹겠습니다(頂戴します)라며 인사를 하고 노부나가를 따라 차과자와 엷은 차를 입으로 가져갔다.

잠시 눈을 크게 뜨더니, 이어서 토코노마에 장식된 꽃병(花入れ)으로 시선을 돌렸다.


"과연…… 이것은 범부채열매(射干玉)를 본딴 것이군요. 가을의 긴 밤을 연상시키는 반들반들한 검은색, 차과자(茶菓子)로 계쩔을 연출하면서 맛도 일급품. 실로 훌륭한 솜씨(点前, ※역주: (다도(茶道)에서) 가루 차를 달여 손님에게 내는 법식)였습니다"


"네, 네에. 칭찬해주시니 영광입니다"


그런 의도가 전혀 없었던 시즈코는, 너무 과도한 칭찬을 받아 어쩔 줄 모르게 된(褒め殺し) 상태에 곤혹스러워하고 있었다.

그런 시즈코의 모습을 즐겁게 바라보면서 노부나가는 손님의 정체를 밝혔다.


"다행이구나, 시즈코. 보아하니 소우에키(宗易)의 기준에 합격한 모양이다. 입발린 칭찬 따위를 하지 않는 소우에키가 격찬을 하다니 희한한 일도 다 있구나"


"소우……에키……? 앗!"


눈 앞의 인물이 누구인지를 이해한 시즈코는, 자기도 모르게 자신이 아는 이름을 말하려다 다급하게 말을 삼켰다.

센노 소우에키(千宗易), 현대에서는 센노 리큐(千利休)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다도(茶湯)의 천하 3대 종사(天下三宗匠) 중 한 명이었다.

노부나가가 사카이(堺)를 직할령으로 삼았을 때, 이마이 소우큐(今井宗久), 츠다 소우큐(津田宗及) 등과 함께 다도 사범(茶頭)으로 고용했다.


여담이지만 후세에 전해지는 리큐의 이름을 썼던 시기는 짧다. 그는 그 인생의 대부분을 법명(法名)인 소우에키로서 활동했다.

리큐의 이름은 1585년, 히데요시가 칸파쿠(関白) 취임의 답례로 궁중(禁裏) 다화회(茶会)을 열려고 생각한 것이 발단이다.

그 다화회의 호스트를 맡는 소우에키의 신분이 서민(町人)이었기에, 그가 궁중으로 예궐(参内) 할 수 있도록 오오기마치(正親町) 천황(天皇)이 '리큐'라는 거사호(居士号, ※역주: 법명 아래에 붙이는 칭호 중 하나)를 소우에키에게 내린 것에 의해 명실공히 천하제일의 다도인으로서 이름을 날리게 된다.


"소우에키는 화려함(華美)을 좋아하지 않아, 사치를 잔뜩 부린 다실이나 히가시야마고모츠 등의 명물이 존중받은 다화회에 싫증을 내고 있었지. 그래서, 내가 아는 한 가장 초라…… 질박(質素)한 다실인 이곳으로 데려온 것이다"


"……그러시다면 미리 알려주셨다면——"


"알려주면 너는 자리를 꾸미려고 하겠지만, 있는 그대로의 너를 소우에키에게 보여주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후에 차성(茶聖)이라고도 불리는 다도(茶道)의 대가 앞에서 서투른 솜씨를 드러낸 시즈코의 항의를 노부나가는 한 마디로 잘라버렸다.

노부나가의 말대로, 사전에 알았다면 시즈코는 가진 힘을 총동원하여 그 자리를 꾸몄으리라.

그렇게 꾸며진, 그 자리에서 끝나는 다화회로는 의미가 없다고 노부나가는 생각했던 것이다.


"어떠냐, 소우에키. 요즘 다들 칭찬하는 유행과는 정반대를 가는 이 다화회, 사양할 필요 없으니 생각한 바를 말해보아라"


"……그렇군요. 다도(茶の湯)의 예법으로서는 지나치게 파격적이고, 한 잔의 차를 얼마나 맛있게 음미할 수 있느냐는 점에서는, 차과자와 말차(抹茶)를 한꺼번에 내어서는 소용없습니다"


"네, 네에. 부끄럽습니다"


노부나가조차 한 수 물릴 수밖에 없는 소우에키가 볼 때, 시즈코의 솜씨는 애들 장난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것은 예법에 한정된 이야기로, 손님을 어떻게 대접하는지라는 본질은 짚고 있었으며 좋게 평가할 곳도 많았다.


"그렇게 긴장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어디까지나 당세(当世)의 '다도(茶の湯)'의 예법에 비추어 보았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저는 다실도 그렇지만 이 다화회를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네, 네에……"


"예를 들면 토코노마의 꽃병. 명품이라는 것도 아니고, 흔하디 흔한 도기(陶器)에 역시 흔하디 흔한 범부채(檜扇)를 꽂아두었을 뿐입니다. 일견 아무 생각 없이 꽂아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잎사귀와 꽃과 열매라는 보기 알맞은 시기(見頃)가 각기 다른 가을의 시간을 훌륭하게 재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가을의 변화(移ろい)라는 웅대함에 비해 자칫 무미건조할 정도의 그릇. 거기에 부족(不足)의 미(美), 유한(幽閒)한 정취(侘び)가 있겠지요"


"……감사합니다"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부분을 거창하게 칭찬받고, 시즈코는 조용히 묻어가기로 했다.


"실로 좋은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당신의 다실을 보고, 저는 제가 목표로 하는 곳이 보인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그렇게 말하고 소우에키는 계속 찡그리고 있던 표정(渋面)을 풀고 처음으로 웃음을 떠올렸다.


"저는 최근의 다도, 특히 외국(唐物)의 다기를 편중하는 흐름에 불만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불만을 말할 뿐', 새로운 길을 제시하지 못하였습니다. 불평불만을 말하는 것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겠지요. 이런 다도의 방식이 좋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라고, 스스로가 좋다고 믿는 것을 제시하지 않고 타인의 동의 같은 것은 얻을 수 있을 리가 없습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말없이 지켜보고 있던 노부나가는, 엷은 웃음을 떠올리며 물었다.


"어떠냐, 시즈코는 재미있지? 조금은 자극이 되었느냐?"


"예, 뜻하지 않게 초심(初心)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저 자신이 추구하는 다도가 틀리지 않았다고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극한까지 낭비를 배제하고 허식을 없애는, 메마른 유현(幽玄)의 미(美)인가 하는 것이냐"


"이 이상 아무 것도 깎아낼 수 없을 때까지 깎아내어, 간소함 속에 아취(趣)를 찾아내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와비차(侘び茶, ※역주: 다도(茶道)에서, 다구(茶具)나 예법보다는 화경 청적(和敬淸寂)의 경지를 중시하는 일)'일까요"


"호화찬란(豪華絢爛)함을 중시하는 우리들 영주(国人)들의 다도와는 대조적이군. 그 또한 좋겠지"


와비차라는 말이 마음에 들었는지, 소우에키는 눈을 감고 몇 번이고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와비차의 방향성이 형태를 잡아가고 있었다.

이윽고 다시 눈을 뜬 후, 소우에키는 자세를 바로하고 시즈코를 바라보았다.


"시즈코 님,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부탁, 입니까?"


"무례한 이야기입니다만, 저 꽃병을 제게 주시지 않겠습니까?"


소우에키의 말이 의미하는 것을 이해하고 시즈코는 꽃병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렇다 할 만한 눈을 끄는 곳이 없는, 아무 특징도 없는 도자기 꽃병이다.

젊은 기술자의 습작(習作)인지, 시장에서 팔리지 않고 하나만 남아있던 것을 시즈코가 산 것이다.

녹로대(ろくろ)조차 쓰지 않았는지, 모양도 균일하지 않고 일그러져 있고, 색채도 촌스러웠다.


"오늘이라는 날을 잊지 않도록, 길을 헤멜 때 초심으로 돌아가는 이정표로서, 부디 부탁드릴 수 있겠습니까? 제가 드릴 수 있는 대가 따위 시즈코 님께서 보시기엔 하찮은 것, 하지만 무엇이든 내어드릴 생각입니다"


"어, 아뇨. 그렇게 대단한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마음에 드셨다면 가져가 주십시오. 대가는 필요없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이 은혜는 언젠가 갚겠습니다"


설마 시장에서 10엔(오다 영토 내의 새 화폐의 단위, 현대 가격으로 환산하면 몇백엔 정도)에 산 것을 가지고 싶어할 사람이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못해서 갑자기 대답하기가 곤란해져 버린 것이었다.


시즈코는 밖에 대고 사람을 불러 꽃병을 포장하게 한 후 소우에키에게 손수 건넸다.


"제가 목표로 하는 다도가 모양새를 갖추면, 가장 먼저 시즈코 님을 초대하겠습니다"


"네, 즐겁게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소우에키는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다실을 나갔다. 한편, 노부나가는 나갈 생각이 전혀 없는지 귀인용 다다미에 책상다리를 한 채로 과자 쟁반의 내용물을 집어먹고 있었다.

그에 반해 소우에키는 와비차로 머리가 가득 찼는지, 노부나가가 남아있는 것도 신경쓰지 않고 빠른 걸음으로 떠나갔다.


"……와비차라. 영 내키지 않는구나. 화려하기만 하면 된다고는 하지 않겠지만, 화려함이 없으면 차맛도 흐려지겠지"


소우에키가 떠나고 잠시 시간이 지난 후, 노부나가는 시즈코가 끓인 호지차(焙じ茶)를 찻잔(湯呑)으로 마시면서 말했다.


"주상께서 좋아하시는 다화회와는 정반대쪽(対極)에 위치하는 것이겠지요"


"……뭐 좋다. 소우에키가 유한한 정취에 경도된다면 이쪽도 나쁠 것이 없지"


"그건 무슨……"


질문을 말하던 도중에 시즈코는 이해했다. 소우에키가 목표로 하는 와비차는 노부나가가 좋아하는 '카라모노스키(唐物数寄, ※역주: 외국의 다기 등을 선호하는 것)'와는 정반대의 방향성을 가진다.

명품(외국산의 다기)을 필요로 하지 않는 소우에키의 사상이 침투하면, 그것(명품)을 자신이 손에 넣기 쉬워진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리라. 어째서인지 노부나가는 와비차가 주류가 될 수 없다고 확신하고 있는 듯 했으나, 역사를 알고 있는 시즈코는 일말의 불안을 지울 수 없었다.


"네가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그보다 야마토(大和)로 갈 준비는 되었겠지?"


"예, 옛"


"그럼 됐다. 쿄(京)에서 며칠 체재하고, 그 후에 야마토로 간다. 확실히 맡은 역할을 다해보이거라"


노부나가는 그 말만 하고는 시즈코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다실을 나갔다.




소우에키와의 해후(邂逅) 이후로 시즈코는 정신없이 바빴다. 시즈코는 예전부터 오오기마치 천황에게 쇼소인(正倉院)의 보물(宝物) 열람 허가를 요청하는 진정서를 올렸었다.

그것이 원인이 되어 조정에서는 소동이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발단은 오다 가문에게 잘 보이려고 생각한 공가(公家)들이 결탁하여 천황(帝)의 의향을 무시하고 시즈코의 열람을 허가해버린 것에 있었다.

사후승낙이라는 형태로 알게 된 천황이 화를 내며 공가들의 월권행위를 책망했으나, 공가들은 '오다 님의 후원(引き立て)을 받아 공가 일동이 한뜻을 모아 정무에 힘써야 할 때에 형식에 구애받아 기회를 놓치는 것 어리석은 일'이라며 천황에 대한 불만을 일기에 남기는 상황이었다.


어째서 공가와 천황이 다투고 있냐고 하면, 금년이 연이은 가뭄에 의한 피해가 컸던 것에 있다.

오와리(尾張), 미노(美濃) 등 노부나가 직할의 곡창지대는 항상 가뭄 대책을 취하고 있고 설비도 충실했기에 영향은 경미했으나, 다른 나라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반복하여 기우(雨乞い) 의식(儀式)이 치러지고, 음양사(陰陽師)를 초빙하여 점괘(占筮)를 보았다. 결과는 드물게 보는 재앙(凶事)이라고 나와서 조정이 발칵 뒤집히는 대소동이 되었다.

현대인이라면 '뭐 이런 비과학적인'이라고 일소에 붙이겠지만, 이 시대에서의 역점(易占)의 신빙성은 높아서, 각지에서 가지기도(加持祈祷)가 활발하게 벌어지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대륙에서 유래한 사고방식인데, 천하가 크게 어지러울 때에는 그것을 다스리는 천자(天子)의 부덕함(不徳)을 하늘이 꾸짖는(咎) 것이라는 천인상관설(天人相関説)이 널리 믿어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대규모의 가뭄 피해가 벌어졌다고 하면, 천황의 부덕함을 하늘이 꾸짖고 있는 것이라고 하여 통렬한 천황 비판이 줄을 잇고, 천황의 명령에 따르지 않는 자들도 생겨나는 것이다.


여담이지만, 역사적 사실에서는 노부나가가 오오기마치 천황에게 양위를 강요했다는 설이 있다(정반대로 양위를 간(諫)했다는 설도 있다). 그것이 때마침 궁중(禁中)의 괴이한 일(怪異)이나 대재해(大災害)로 천하가 크게 어지러워진 해의 일이었던 것이다.

즉 노부나가는 당시의 천황에게 무례를 범한 것은 아니고, 천재지변(天変地異)이나 대재해를 다스리기 위해서도 양위해 주십시오라는, 당시의 가치관으로서는 당연한 것을 요청한 것 뿐이었다.

참고로 오오기마치 천황은 노부나가의 양위 요청을 물리쳤고, 그가 혼노지(本能寺) 사변에서 횡사하는 마지막까지 양위를 계속 거부했다.


이러한 소동도 맞물려, 정식으로 쇼소인에 대한 출입허가가 내려진 것은 노부나가가 쿄에 도착하고 며칠 후라는 꼬락서니였다.

물론 노부나가가 앉아서 기다리고 있는 동안, 시즈코는 양부(養父)인 사키히사(前久)에게 요청하여 조정 내부의 조정(調停)을 꾀하게 하였기에 간신히 오늘이라는 날을 맞이하게 되었다는 상황이었다.

번거로운 얘기라고 생각한 노부나가였으나, 딴 마음(下心)이 있다고는 해도 자신에게 편의를 봐주려 한 자들을 함부로 대할 수도 없어서, 소동의 원인이 된 것을 사과하고 쌍방을 위로하는 데 그쳤다.


그 후에는 아무 일 없이 야마토로 들어가 토우다이지(東大寺)에 도착했다. 노부나가는 거기서 전군에 대해 '무법(無法)의 엄금(厳禁)'을 명령했다.

이 금기를 깨면, 깬 본인은 물론이고 부대의 동료나 직속 상사까지 연좌하여 책임을 묻는다는 가혹한 것이었다.

거기에 토우다이지의 경내(境内)에 진을 치는 것도 금지하고, 경내 바깥에서 진을 칠 때도 불의 취급에 이르기까지 세세하게 금지령을 내렸다.

거기다, 노부나가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그냥 대기하고 있으면 되는 것은 아니고, 주변의 치안 유지에 최대한의 협력을 하라고 당부했다.


이러한 지시들을 내린 후, 노부나가는 최저한의 수행원만을 데리고 토우다이지를 방문했다.

그 때에도 강권을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형식대로의 절차를 밟아 쇼소인에 들어가, 황숙향(黄熟香, 란쟈타이(蘭奢待)라는 이름을 가진다)(※역주: 토우다이지(東大寺) 쇼소인(正倉院)에 소장되어있는 향목(香木))을 열람하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또, 자신이 보물창고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란쟈타이만을 꺼내게 하여 대승정(大僧正) 입회 하에 열람 및 2군데를 잘라내기로 했다.

노부나가라고 하면 방약무인(傍若無人)의 화신(権化)이며 신도 부처도 두려워하지 않는 야만인이라는 선입관을 가지고 있던 토우다이지의 승려들은, 실제의 노부나가를 보고, 예의바르고 당당한 행동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노부나가가 야마토로 간 최대의 목적은 야마토를 지배하에 두었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함이며, 그것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은 토우다이지나 카스가타이샤(春日大社)에 대해서는 시종 예의바르게 행동했다.

그에 반해 야먀토를 다스리는 위정자들에 관해서는, 다시 자신이 있는 곳으로 와서 지배하에 들어갈 것을 선언하게 했다. 노부나가의 도착을 알면서도 인사가 늦거나 또는 소식(音沙汰)이 없는 자들에게는 소규모의 군을 이끄는 사절을 보냈다.

또, 인사하러 온 사람들에게도 사전에 수집했던 정보와 본인이 제출한 정보를 대조하여 그 차이를 하나하나 지적해 보였다.

그 후 사실을 감추어봐야 좋을 게 없다는 것과, 영지 운영에 개선의 여지가 보이지 않을 경우 그 지위를 박탈할 뜻을 전했다.


반골정신(反骨精神)이 넘치는 야마토의 호족(豪族)들이 노부나가에게 절대복종을 맹세할 리가 없지만, 헌재 상황은 거역해봐야 승산이 보이지 않는 이상 위정자들은 노부나가의 분노(勘気)를 두려워하여 앞다투어 찾아오게 된다.

가장 먼저 인사하러 온 것은, 다름아닌 마츠나가 히사히데(松永秀久)였다. 다른 유력자들은 노부나가가 진을 친 이후에 방문한 것에 반해, 마츠나가는 노부나가가 쿄를 나섰을 무렵부터 준비를 갖추고 부근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노부나가의 도착을 엎드려 절하며 맞이했다.


"마중나오느라 수고했다. 오랜만이구나 마츠나가. 별 일 없는 듯 한데, 잘 있었느냐?"


"옛, 말씀에 감사드립니다. 영민들과 함께 잘 지내고 있습니다"


"성은 거두어들였지만, 낙심하지 않고 충근(忠勤)한다면 언젠가 빛을 볼 날도 있을게다. 자, 다른 이야기다만 조정에서 맡은 예사(芸事) 보호의 일환으로 명품의 기록을 하고 있는 것은 알고 있겠지? 네가 가진 히라구모(平蜘蛛)도 천하에 이름높은 명품(逸品)이라 들었다. 협력할 생각이 있다면 언제든지 말하라. 결코 나쁘게는 하지 않겠다"


"예, 옛!"


"흠, 실로 견실하게 일하고 있는 듯 하구나. 유일한 걱정거리는 츠츠이(筒井)와의 사이인가. 부디 경거망동을 삼가도록. 물러가도 좋다"


마츠나가는 땅바닥에 이마가 닿을 정도로 엎드려 절하고 있었다. 노부나가는 마츠나가의 성격을 알고 있었기에 억지로 강요는 하지 않았으나, 기회가 있을 때마다(折に触れて) 히라구모를 내놓으라고 암묵적으로 요구했다.

그렇다고는 해도 히라구모를 내놓으면 무사히 반환될 거라는 보증은 없다. 노부나가가 명품 사냥으로 손에 넣은 명품은 셀 수도 없으나, 그것이 소유주에게 반환되었다는 이야기는 거의 듣지 못했다.

대놓고 거절을 말하면 역적(朝敵)으로 처벌될 것은 확실했기에, 얄궂게도 히라구모의 존재가 마츠나가의 지위를 지키고 있다는 측면도 있었다.

이것은 마츠나가에게 한정된 이야기는 아니지만, 역적이 되면 일족도당(一族郎党)의 씨몰살이 기다리고 있다. 마츠나가 개인으로서는 히라구모를 내놓고 싶은 생각 따위는 없다.

그러나, 이 시대에서 개인의 감정으로 일족을 파멸로 몰아넣는 선택이 가능할 리도 없었다. 마츠나가로서는 가장 효과적인 타이밍에 히라구모를 내놓아야 한다는, 어려운 선택(かじ取り)을 강요받게 된다.


"히이익!!"


"사람의 얼굴을 보자마자 비명을 지르다니, 예의가 없지 않느냐?"


노부나가를 배알한 후, 그 길로 시즈코가 있는 곳에도 가려던 마츠나가였으나, 건물의 모서리를 막 돌았을 때 그가 가장 만나고 싶지 않았던 인물과 직면했다.

생기(生気)가 느껴지지 않는 어두운(昏い) 시선을 받고, 마츠나가는 목덜미에 칼날이 들이대어진 듯한, 살아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는 상황이었다.


"시즈코에게도 인사하러 갈 생각이냐?"


"……오다 님의 신임이 두텁고 조정으로부터도 예사 보호의 임무를 받은 분이시니, 가능하다면 뵙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은 같은 주군을 모시는 신하로서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호오, 그건 기특한 마음가짐이구나. '어차피 세상물정 모르는 꼬마 계집애, 어떻게든지 구워삶을 수 있다'라는 말이 들린 것 같았는데, 내 기분 탓이렷다?"


아시미츠의 말에 마츠나가의 표정이 얼어붙었다. 비지땀을 흘리면서도 마츠나가는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아까 그 말도 결코 큰 목소리로 중얼거린 것은 아니다. 바로 옆에서 시중들고 있었더라도 들렸을지조차 의심스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 앞의 남자는 낱낱이 되읊어보였다. 정말로 저 세상에서 되살아나서 악귀나찰(悪鬼羅刹)의 힘을 얻은 게 아닐까 하고 등골이 서늘해졌다.


"마츠나가. 나는 말이다, 네놈이 뭔가 착각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하고 있느니라. 네놈이 지금도 목숨이 붙어있는 것은, 네놈의 재간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으렷다?"


"아, 아니오…… 결코 그러하지는……"


"……뭐 좋다. 사람의 마음까지는 속박할 수 없는 것. 하지만 말이다, 마츠나가. 시즈코에게, 나아가서는 오다 님에게 적대하려 할 때는 명심하거라. 그 때, 네놈은 진짜 지옥을 뼈저리게 알게 될 것이다. 간단히 죽어서 도망칠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말아라. 내가 '그러했듯', 몇 번이고 저 세상에서 끌어와서, 죽여달라고 애원하던 말던 고통스럽게 해주마"


"히!? 히이이익!!"


그야말로 아시미츠는 지옥에서 되살아난 악귀(悪鬼)였다. 평범하지 않다고 의심하고는 있었으나, 드디어 본성을 드러냈다. 이놈의 손에 걸리면 죽어서도 안녕은 얻지 못할 것이라는.

아시미츠의 말을 그렇게 받아들인 마츠나가는 안면을 창백하게 물들인 채 네 발로 기듯이 부리나케 달려나갔다. 싸늘한 시선으로 마츠나가의 등 뒤를 지켜본 아시미츠는, 발걸음을 돌려 시즈코의 진으로 돌아갔다.


마츠나가에게 불운했던 것은, 이미 시즈코와의 면회에 대해 사전 연락을 해버린 것이었다. 도망친 상대가 기다리고 있는 장소로 털레털레 가야 하는 것이다.

악운(悪運)은 거기서 끝나지 않고, '어째서인지' 사이조(才蔵)가 외부 순찰 경계를 맡았기에, 시즈코의 진 안에는 아시미츠 휘하의 병사들이 경호를 담당하고 있었다.


"오와리의 명군(名君)으로 이름높으신 시즈코 님을 만나뵙게 되어 대단히 기쁘게 생각합니다. 오와리에 비해 촌구석인 야마토입니다만, 이 고장 사람인 저희들에게는 토지감(土地鑑, 그 지역에 대한 지리나 건물의 배치, 생활 습관 등이 몸에 배어있는 것. '감(勘)'은 잘못 쓴 것)이 있사오니, 용무가 있으시면 뭐든지 말씀해 주십시오"


마츠나가는 사방에서 날아오는, 문자 그대로 화살같은 시선에 견디며 시즈코에게 실례가 없도록 필요 이상으로 자신을 낮춘 인사를 했다.


"저 같은 풋내기(若輩者)에 대한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저희들은 야마토에 대해 잘 알지 못하므로 힘을 빌리게 될 때도 있겠지요. 그 때는 잘 부탁드립니다"


"옛! 미력하나마 전력을 다하겠습니다"


마츠나가는, 아까부터 격하게 아파오기 시작한 배를 손으로 누르며, 발을 끌듯 시즈코의 진에서 멀어졌다.

소문으로 듣던 시즈코와는 첫 만남이었으나, 내외에 많은 적을 가지고 있는 마츠나가는 한 눈에 이질적인 점을 깨달았다. 많은 병사들을 가질수록 모두의 속셈은 천 갈래 만 갈래로 흩어져, 하나의 목표를 향해 매진(邁進)하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시즈코의 진을 지키고 있는 병사들은, 모두 하나같이 마음 속으로부터 시즈코를 사모(心酔)하여, 시즈코를 위해서라면 목숨을 내던질 각오를 엿볼 수 있었다.

종교적인 광신에도 통하는 기색을 느끼고, 마츠나가는 아시미츠와 같은 정도로 시즈코가 무서워 견딜 수 없게 되었다.


(하늘은 나를 저버렸다……. 몸을 사리고 오로지 마츠나가 가문의 존속만을 바라자)


예전에 암살했던 주군은 지옥에서 악귀가 되어 되살아났다. 그리고 그 악귀가 지키는 여자는, 하필이면 온 나라의 남자들을 홀리는 경국(傾国)의 악녀(悪女)였다.

야심을 죽이고, 몸을 사리고, 다만 우직하게 통치에만 힘쓰면, 마츠나가 가문은 모른 척 해주겠다는 것을 알게 된 것만이 수확이었다.

자포자기(捨て鉢)가 되어, 오다가 반드시 가지고 싶어하는 히라구모와 함께 저세상으로 도망쳐 한방 먹여줄까라고도 생각했으나, 아시미츠의 말에 의하면 그조차 불가능한 듯 했다.

마츠나가는 자신의 불운을 한탄하며, 태어날 시대를 잘못 택했다고 후회했다.


완전히 초췌해진 마츠나가의 모습을 본 야마토의 호족들은, 비교적 온화한 통치를 한다는 평판이었던 마츠나가조차 저렇게 추궁을 당했으니 대체 어떤 처벌(仕打ち)이 기다리고 있을지 전전긍긍하면서 알현에 임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노부나가는, 의도하지는 않았으나 고생하지 않고 야마토의 유력자들을 굴복시킬 수 있게 되어 그 성과에 크게 만족하고 있었다.

날을 잡아 다시 방문한 토우다이지에서는, 대승정의 입회 하에 란쟈타이를 2군데 잘라냈다. 하나는 자신이 가지고, 다른 하나는 오오기마치 천황에게 헌상하게 된다.

그 때 노부나가는 대승정에게 조정으로부터 받은 예사 보호의 임무를 설명하고, 시즈코에게 편의를 봐 주도록 부탁했다. 자신의 이름을 걸고 무법한 일은 없을거라고 맹세하고, 시즈코의 인품에 대해서도 조정에서 직접 임무를 내릴 정도라고 설득(請け負)했다.

정치적인 판단을 요하는 일인만큼 그 자리에서의 대답을 요구하지는 않았고, 노부나가는 시종 좋은 기분으로 토우다이지를 나섰다. 이어서 방문한 카스가타이샤에서도 마찬가지의 자세를 관철하며 시즈코에 관한 이해를 구하는 데 부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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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

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텐쇼(天正) 원년(元年) 키나이(畿内)의 사회기반 정비


120 1574년 9월 하순



"큭큭큭. 당대 제일로 이름높은 요우헨텐모쿠(曜変天目)가 모두 내 손 안에 들어왔도다"


노부나가는 아주 기분좋게 중얼거렸다. 요우헨텐모쿠 찻종(茶碗)은, 철을 포함한 흑색 잿물(黒釉)을 써서 특징적인 텐모쿠(天目) 형태로 구워낸 텐모쿠 찻종 중에서도 최고봉의 것으로 친다.

남송(南宋) 시대의 한 시기에, 건요(建窯)에서 극소수만 구워졌다고 하는 요우헨텐모쿠 찻종. 만든 이도 알 수 없으며, 두번다시 구워지지도 않아, 만들어진 나라(窯元)인 중국에는 도편(陶片) 밖에 남아있지 않다.

완전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물건은 모두 바다를 건너 일본에밖에 존재하지 않는 등 여러가지로 불가해한 점이 있지만, 그릇 속에 별하늘(星空)을 담는 웅대한 조형은, 당시의 권력자들의 넋을 빼놓았다.

다기(茶器)에 흥미가 없는 시즈코조차, 보는 각도에 따라 색상이 변하는 신비적인 빛에 매료되었다.


"군태관좌우장기(君台観左右帳記)에 기록된 대로군요"


아시카가(足利) 쇼군 가문(将軍家)이 수집한 보물들의 목록인 '군태관좌우장기'에는, 각각의 보물의 등급이 분류되어, 그 모양이나 내력에서 실제로 입수햇을 때의 가격같은 것까지 기재되어 있었다.

요우헨텐모쿠 찻종을 모으는 데 있어, 가짜에 속지 않기 위해서도 군태관좌우장기의 내용을 머릿속에 집어넣은 시즈코는, 현물을 앞에 두고 기술이 정확했음을 실감하고 있었다.


"흠…… 츠다(津田, 사카이(堺)의 호상(豪商)인 츠다 소우큐(津田宗及))의 요우헨은 다른 것에 비해 평범하구나. 그래도 다른 다기에는 없는 빛을 뿜고 있다"


"하지만, 욕심많은 상인이 용케 포기했네요. 다기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만, 요우헨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 재력이나 권세를 담보해주는, 상인이라면 누구나 목구멍에서 손이 나올 정도로 탐내는 명품이라고 하더군요"


"그 재산이나 권세도 목숨이 있어야 의미가 있는 것이지. 과연 이름높은 호상이군. 시류를 잘못 읽지 않는다"


노부나가는 암암리에 협박해서 빼앗았다고 으스댔다. 그러면서 말을 할 때는 상대를 칭찬해 보이니 질이 나쁘다.

아마도 방방곡곡에서 츠다가 문물 보호를 위해 스스로 공출했다고 이야기하며, 선견지명이 있고 속이 깊은 인물이라고 칭찬하고 있으리라.

자신의 재력을 담보하는 명물을 빼앗겼다고는 해도, 천하인(天下人)에 가장 가깝다고 하는 노부나가에게 좋은 인상을 주게 되면 그것이 대신 신용을 낳게 된다.

자신의 입장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그것을 이용하여 교묘하게 행동한다. 정치가로서도 일류의 재간을 보이는 노부나가는 역시 대단하다고밖에 말할 수 없었다.

참고로, 이것들은 노부나가가 사리사욕을 위해 모으고 있는 것이 아니다. 조정에서 임명된 문물보호의 명목으로 시즈코가 맡아가지고 있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백지수표(空手形)라고는 해도 언젠가 반납될 가능성도 없는 것은 아니기에, 한가닥(一縷) 희망을 품으며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시즈코에게는 뿔뿔이 흩어졌던 예술품이나 수많은 서적들이 모여들어, 그것들을 집약해서 국문학(国文学)이나 국사(国史)의 편찬에도 착수하고 있었다.

명물을 강탈하기 위한 명목으로는 지나치게 유명해져서, 대놓고 싫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있을 수 없을 거라 생각되었다.


"……헤아렸습니다"


"호오? 네게도 '뱃심(腹芸)의 기초'를 가르칠 때가 온 것이냐"


"진의를 감추고 전달되는, 주상의 명령을 몇 년이나 수행해 온 덕분입니다"


"핫핫핫, 너도 많이 컸구나. 그것도 시즈코라면 숨은 뜻을 헤야려 줄 것이라 기대하고 한 것이니라"


놀리자 노부나가가 웃었다. 입으로는 기특한 소리를 해보이지만, 종래의 방식을 바꿀 생각이 없다는 것이 뻔히 보였다.

정작 노부나가 본인은 나란히 놓여있는 요우헨텐모쿠 찻종을 눈으로 비교하고 손에 들어 손바닥에서 굴려보는 등 시종 매우 기분이 좋았다.


"흠, 충분히 즐겼노라. 하지만, 가치가 있는 물건은 세상에 나가지 않으면 의미가 없지"


"주상께서는 요우헨텐모쿠 찻종을 정치에 이용하실 생각이십니까?"


노부나가의 말이 의미하는 바를 헤아리고 시즈코가 질문했다. 임기응변(当意即妙)의 대응을 보이는 시즈코를 만족스럽게 쳐다본 후, 노부나가는 부채를 펼쳐 스스로 부쳤다.


"그렇게 말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한 곳에 모든 요우헨텐모쿠 찻종이 모여 있으면, 큰 불이나 도난 등으로 모두 유실되어 버릴지도 모른다. 신용할 수 있는 수하에게 분산시켜 관리하게 하면 더욱 안전해지겠지. 아니냐?"


"제가 목록을 만들고, 현물은 각지에 분산시켜 보관한다는 형태로 하사하실 생각이라는 점은 이해했습니다"


"헤아림이 너무 좋은 것도 재미없구나"


"칭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가치있는 것은 사용해야 가치가 있으며, 사장(死蔵)시켜서는 의미가 없다는 주상의 방침은 알겠습니다만, 아무래도 즉시 그렇게 하는 것은 보기에 좋지 않을 듯 합니다"


"지금 당장이라고는 하지 않았다. 토우고쿠(東国) 정벌이 성공했을 때는 그에 걸맞는 상이 필요해지겠지. 그때까지는 네가 관리하여, 네가 집착하고 있는 '사진'인가 하는 것으로 '군태관좌우장기'를 뛰어넘는 자료를 만들어보여라"


노부나가는 현물에 그치지 않고 그것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기록한다는 사진의 유용성이나 그 이용가치까지도 정확히 꿰뚫어보고 있었다.

개발이 난항을 겪고 있어, 다양한 값비싼 시약(試薬)을 물쓰듯 쓰는 사진이라는 돈먹는 하마를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 추진하라고 등을 떠밀었다.


"옛, 반드시 기대에 부응해 보이겠습니다"


"그렇게 긴장하지 않아도 좋다. 사본(写し)이라고는 해도 당대 제일의 미술품을 손에 넣을 수 있다고 하면 돈을 아끼지 않을 호사가는 적지 않지"


시즈코의 각오를 노부나가는 호쾌하게 웃어넘겼다. 이어서 소성(小姓)을 불러들여서는 요우헨텐모쿠 찻종을 치우게 했다.


"요즘은 매사가 잘 풀리는구나. 아니, 지나치게 잘 풀린다"


요우헨텐모쿠 찻종 대신 아무 특징도 없는 찻잔(湯呑)으로 녹차를 즐기면서 노부나가가 중얼거렸다. 다소 계획(目論見)에 어긋남은 있어도, 큰 줄기에서는 노부나가의 계획은 순조롭게 진행(推移)되고 있었다.

카가(加賀) 일향종(一向宗)의 영토에 대해서도 착실히 잘라내고 있어, 눈이 쌓이는 겨울까지는 전체의 3분의 2 정도를 빼앗을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물론 유지하는 것을 생각하면 3분의 2라는 숫자는 너무 많지만, 상대가 회복하기 전에 가능한 한 잘라내는 것은 정석이었다.


"이전에도 말했지만, 곧 본거지를 아즈치(安土)로 옮긴다. 새해의 임시 궁궐(仮御殿) 준공(落成)에 맞추어 이주할 예정이다. 네게는 오와리(尾張)를 맡기겠다. 오와리 동쪽을 견제하라"


"키묘(奇妙) 님이 토우고쿠 정벌에 성공하면 애초에 견제할 상대가 없어지지 않습니까?"


"눈이 닿지 않는 곳에 반의(叛意)의 싹(萌芽)이 있다. 어느 세상이든 무분별한 놈들(不心得者)은 끊이지 않는 법, 커지기 전에 네가 잘라내는 것이다"


"알겠습니다"


"수괴(首魁)인 혼간지(本願寺)가 무너지면, 종교세력(寺社) 놈들은 오합지졸이 될 것이다. 원래 통치자의 무법에 대항한다는 것이 무장(武装)의 명분(建前)이었지. 통치자가 무력이 아니라 만인이 지켜야 할 법으로 속박하는 이상, 놈들이 무장할 정당성은 사라진다. 무력을 가지기에 싸움을 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비무장한 상대끼리는 승부를 읽을 수 없기에 어설프게 움직이지도 못하게 되겠지"


확정된 미래를 말하듯 담담하게 말을 마치자, 노부나가는 차로 목을 축였다. 한숨 돌린 후 말을 이었다.


"남는 것은 조정(朝廷)에 둥지를 틀고 있는 호리병박(うらなり) 놈들이다. 오다의 태두(台頭)를 좋게 보지 않는 공가(公家) 놈들이, 기득권익(既得権益)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암약하고 있다. 그것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최근에는 '오다는 언젠가 쓰러질 것이다(高転びに転ぶ)'라는 평을 듣고 있다. 오만해진 내가 발목을 잡힐 거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겠지"


이 '쓰러질 것이다(高転びに転ぶ)'라는 말은, 모우리(毛利) 가문의 외교(外交) 역할을 맡았던 승려, 안코쿠지 에케이(安国寺恵瓊)가 야마가타(山県) 에치젠노카미(越前守) 이노우에 하루타다(井上春忠)에게 보냈다고 하는 편지 안의 유명한 말(예언이라고 함)이다.

타인의 심정을 돌아보지 않고 가혹(苛烈)한 정치를 하는 노부나가는 천하를 얻을 수 없다. 조만간 노부나가의 천하는 끝나고 히데요시(秀吉)의 세상이 올 것을 예견했다고 한다.

에케이의 의도가 어떠했던, 역사적 사실에서 노부나가는 미츠히데(光秀)에게 배신당해 혼노지(本能寺)에서 횡사(横死)했다. 그가 예견한대로 히데요시가 그 뒤를 이어 천하인이 되고, 에케이는 재빨리 그에 빌붙어 모우리 가문의 평안무사함(安泰)을 얻어낸다는 성과를 올렸다.

본래는 감춰져야 할 에케이의 말이 조정 내에서 유포되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은 노부나가를 좋게 생각하지 않는 세력이 공작을 벌이고 있다고 생각하는 쪽이 자연스럽다.


"그렇군요. 주상께서는 합리성을 추구하신 나머지, 심정을 경시하시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 외에도 사고방식이 지나치게 급진적(先鋭的)이라 다른 사람과의 공감을 얻기 힘든데, 말씀이 부족하니 스스로의 마음 속을 밝히지 않으시고, 그리고 땡깡(我儘)이 심하신 듯 합니다"


"본인을 앞에 두고 잘도 말하는구나!"


"하지만, 천하인의 그릇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주상을 제외하면 적임자는 없습니다. 스스로가 선두에 서서 개혁을 추진하고, 또 그 책임을 질 각오를 갖는 영주(国人) 따위, 주상 이외에는 없습니다. 하지만, 주상의 치세(治世)는 길지는 않겠지요. 주상께서는 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는 개혁자(変革者)이십니다. 민중은 태평(泰平)을 바라며, 개혁(変革)을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훗, 내 그릇에 일본은 좁다. 세상이 태평해지면, 키묘에게 뒤를 맡기고 세계로 나가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아얏!"


노부나가는 웃으면서 시즈코의 머리를 가볍게 쥐어박았다. 가볍게라고는 해도 무인(武人)의 일격에 시즈코는 일순 눈앞이 캄캄해졌다.


"그리고, 내 땡깡은 귀여운 수준이지"


"예!? 하지만 그게 먹고 싶다, 이게 가지고 싶다라고 발작적으로…… 아뇨, 아무 것도 아닙니다"


말이 나옴에 따라 험악해지는 노부나가의 시선을 받고 시즈코의 말소리는 점점 작아졌다. 노부나가도 이것저것 무리한 요구(無茶)를 했다는 자각은 있는 듯, 작게 한숨을 쉬었다.


"스스로가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하면 뭐가 권력자라는 거냐. 자, 슬슬 점심식사 때로구나. 식사 준비를 하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밥은 오와리 쌀(尾張米)의 햅쌀이다. 된장국에는 두부와 유부(油揚げ)가 좋겠구나. 반찬(菜)은, 그렇군, 저번에는 타조를 먹었으니, 이번에는 오와리 코친(Cochin, 九斤黄)이 좋겠다. 식후의 단맛(甘味)은 제철 과일이 먹고싶다"


노부나가는 태도를 바꿨는지, 시원스러울 정도로 땡깡스러운 요구를 꺼냈다. 자각이 없는 땡깡도 골치아프지만, 배를 째라고 나오면 더 답이 안 나온다고 스스로의 실언을 후회하는 시즈코였다.




9월도 하순을 맞이하여, 오와리, 미노(美濃)에서는 세금(年貢)의 징수가 일단락되었다. 올해도 예측 수치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정도의 수확량을 확보할 수 있어, 겨울을 날 수 없는 아사자(餓死者)가 나올 가능성은 낮았다.

납세의 의무를 이행하자, 백성들은 신사(神社)로 가서 무사히 수확을 맞이한 것을 신들에게 감사드리고, 내년의 풍작을 기원했다.

오와리, 미노에서는 쌀농사 이외의 산업도 번서하고 있기에, 도축(屠畜) 등으로 목숨을 빼앗긴 동물들을 공양하는 위령제(慰霊祭)도 열린다. 가축(家畜)이나 가금(家禽)은 말할 것도 없고, 양잠(養蚕)이나 양봉(養蜂)에 의한 곤충이나 어패류(魚介類)에 대해서도 함께 제사를 지낸다.

현대에서도 농업학교 등에서는 실습에서 희생되는 동물들을 제사지내는 공양탑(供養塔)이 존재하며, 매년 위령제가 열리고 있다.


"올해도 순조롭네. 병해(病害)나 충해(虫害)는 확대하기 전에 대처하고 있으니 손해는 허용범위 내로 억제되었어"


예년의 수확 실적에서 산출한 예측 수치와, 아야(彩) 들이 막 정리한 세수(税収) 실적을 비교하며 시즈코는 예산실적(予実)의 정밀도를 가볍게 계산했다.

다소의 오차는 발생하지만, 뭔가의 대처가 필요해질 정도의 오차는 발생하지 않았다. 하지만, 시즈코의 창고(蔵)에 보관되기만 해서는 수확물에 상품가치가 발생하지 않는다.

물론, 그런 것은 백성들이 생각할 것이 아니라, 뭐가 어찌되었든 위정자(為政者)인 시즈코가 해야 할 일이다. 석고(石高) 상으로는 5만 석(石)으로 되어 있지만, 그것은 쌀에 한정된 이야기이며, 다종다양한 산물을 통합하면 백만 석은 될 듯한 수익이 발생했다.

항구 마을(港街)을 정비한 이래로 토우고쿠 경제의 현관문이 되어 있는 오와리에서는, 수확기 이외에도 항상 세수가 발생한다는 점이 크다.


"오와리 쌀을 어떻게 한다?"


손에 들고 있는 장부의 한 곳에 붓으로 밑둘을 그으며 시즈코는 한숨을 쉬었다. 오와리 쌀이라고 하면, 천황이 애용하는 쌀(御用米)로 이름을 날려, 천하 일품이라는 명예로운 쌀이 되었다.

먹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스테이터스 심볼이며, 답례용(贈答用)이나 경사(祝い事) 자리에는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되었다. 하지만, 이름 그대로 오와리에서밖에 재배되지 않아, 유통량이 제한되어 있는 것이 희소가치를 낳고 있었다.

서민들이 볼 때는 한 그릇조차 눈이 튀어나올 정도의 가격이 되는 오와리 쌀이, 시즈코의 창고에는 산더미처럼 보관되어 있었다. 올해의 수확이 많았던 것도 한 이유지만, 최대의 원인은 작부량(作付け量)을 늘린 것이다.

노부나가의 방침에 의해, 오와리 쌀은 시즈코의 마을을 중심으로 한 극히 제한적인 범위에서만 생산되었다. 하지만, 오와리 쌀의 수요는 노부나가의 예상을 아득히 웃돌았다.

그 결과, 오와리 쌀은 식량으로서가 아니라 투기적 가치를 가지는 상품으로서 상인들이 매점하여 가격을 끌어올리거나 사장시키거나 하게 되었다.


고심해서 만들어낸 오와리의 명산품(名産品)이 돈벌이 도구가 되어서는 매우 화가 난다며, 노부나가는 한정시켰던 공급량을 늘리기로 했다.

하지만, 품종개량이 된 오와리 쌀은, 통사으이 품종보다도 많은 시비(施肥, ※역주: 거름주기)를 필요로 하며, 종래의 품종에 비교해 키가 작기 때문에 수위(水位) 관리에도 신경쓸 필요가 있다.

만들라고 해서 금방 만들 수 있을 정도로 간단한 것이 아니라고 노부나가는 생각했다. 그래서 필요하다고 예상되는 유통량의 두 배 정도를 작부하게 하여, 시즈코의 마을 사람들에게 농사 지도를 하게 했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은 노부나가의 기대에 멋지게 부응해 보였다. 절반을 예상한 수확량은, 뚜껑을 열어보니 8할 이상의 수량이 되어, 오와리 쌀이 남아돈다는 진기(珍妙)한 현상이 발생해 버렸다.

노부나가로서는 투기적 상품으로서의 가치를 무너뜨리고 싶을 뿐이며, 오와리 쌀의 가격이 폭락한다는 사태는 바람직하지 않다. 소량씩을 장기적으로 계속 공급할 수 있는 양을 확보한다는 작전이 역효과가 나버린 모양새가 되었다.

오와리 쌀을 감당하지 못하게 된 노부나가는, 남은 오와리 쌀의 처리 일체를 시즈코에게 일임했다. 일임했다고 하면 듣기는 좋지만, 시장에 낼 수 없는 물건이기에 용도는 제한된다.


"……일단 가문 내에 뿌릴까? 한식구끼리 소비하는 걸로는 시장 가치에 영향을 줄 거라 생각되지 않으니까"


고민한 끝에, 시즈코는 자신의 가신들이나, 오다 가문 후다이(譜代) 가신들을 중심으로 오와리 쌀을 선물하기로 했다. 그래도 여전히 남을 것 같으면 가공해서 다른 상품으로 만들면 된다.

평소에 정치적인 선물에 대해서는 최저한으로 끝내는 시즈코가 대대적으로 오와리 쌀을 뿌리게 되면 야심이 있다고 간주될 게 뻔하다. 그래서, 시즈코는 '풍작의 나눔(お裾分け)'이라는 형태를 취하여 곳곳에 선물할 방침을 세웠다.


"사실은 술 쪽이 효율이 좋지만…… 남을 것 같지 않은 느낌이 드네요. 어떻게 생각해요? 귀를 쫑긋 세우고 있는 술고래(呑兵衛) 씨들"


시즈코가 장부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그러자 맹장지의 그림자에서 몇 명이 얼굴을 드러냈다. 케이지(慶次)와 사이조(才蔵)가 멋적은 표정을 떠올리면서 방으로 들어왔다.


"이상하네. 기척은 지웠을 텐데……"


"매년 똑같은 문답을 주고받고 있잖아요. 걱정하지 않아도 케이지 씨들이 마실 분량은 확보해 뒀어요. 고민되는 건, 내 명의로 되어 있는 술의 처리에요"


주조사업(酒造事業)의 총 책임자(元締め)인 시즈코에게는, 세금으로서 술이 현물로 납부된다. 술지게미(酒粕)나 감주(甘酒) 등은 쓸데라도 있지만, 통술(樽酒)의 경우 금주령(禁酒令)도 있어서 시즈코는 조리(調理) 이외에는 전혀 소비할 수 없다. 그래서 시즈코의 창고에는 몇 년의 숙성을 거친 청주(清酒)가 잠자고 있기도 하다.


"주상께서는 그다지 술을 드시지 않고, 그렇다고 해서 고노에(近衛) 님께는 이미 상당한 양을 돌리고 있으니, 이 이상은 가치의 폭락을 불러와버리겠죠. 다른 사람에게 선물하면, 또 정치적인 의미를 의심받을테고…… 슬슬 놓을 장소도 문제네요"


생각을 하면서 시즈코는 책상 위에서 손가락을 튕겼다. 축하 자리에서 모두에게 뿌리거나, 바쁘기 짝이 없는 쿠로쿠와슈(黒鍬衆)에게 쏘기도(差し入れ) 하고 있지만, 그래도 줄어들기보다는 늘어나는 양이 웃돌고 있었다.

오와리 쌀이나 오와리의 청주라고 하면 상류계급 사이에서 종종 선물용(進物)으로 귀하게 여겨질 정도의 지위를 획득하고 있었다. 쿄(京)에서 희소한 것에 의미가 있기에, 지방이라고는 해도 대량으로 방출하는 것은 좋지 않다.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는 거 아냐? 시즛치가 '이렇게 하고 싶다'고 생각한 대로 하면 되는거야. 정치적으로 문제가 있다면, 보호자가 나서주겠지"


"……그러네요. 지금 가장 무난한 건 카가 침공군에 보내는 걸까요. 진중위문(陣中見舞い)이라는 형태라면 소비하는 데 어려움은 없을테니까요"


"그럼, 시바타(柴田) 님께 파발(早馬)을 보내죠"


"아, 타진은 주상을 경유해서 해놓았어요. 주상께서도 소비한다면 상관없다고 말씀하셨고, 시바타 님에게서 '배려, 감사스립니다'라고 대답을 받았으니, 남은 건 규모의 조정을 하고 있는 단계에요. 단, 아케치(明智) 님만이 진이 멀리 떨어져서 고립되어 있으니 수송할 때는 호위의 숫자를 생각할 필요가 있으려나 해서요"


"어, 그러고보니 카가 일향종이 시바타 군과 전투를 시작했을 때, 에치젠 쪽에서 배후를 기습했던가? 첫 수에 큰 전과를 낚아챘는데, 그 이후에는 연계가 되지 않아 고립 기미라는 이야기였지"


케이지의 말에 시즈코는 긍정했다. 당초, 미츠히데는 시바타 군이나 하시바(羽柴) 군이 카가 일향종을 몰아넣을 때까지 국경 부근을 굳히고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개전 후에도 움직일 기색이 없는 모습으로 보고, 카가 일향종의 수뇌부는 아케치 군은 퇴로를 봉쇄하는 부대라고 단정짓고 전력을 전선에 집중시켰다. 후방에 대한 주의가 소홀해진 틈을 놓치지 않고, 갑작스럽게 아케치 군의 복병부대가 급습했다.

이 미츠히데의 용병(用兵)은 시바타들에게도 사전에 전달되지 않은 완전한 기습(不意打ち)으로 기능하여, 자칫 후토게 성(二曲城)이 함락당할 뻔 하는 상황까지 몰리게 되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아케치 군도 본대는 아니고 유격대였기에 숫자에서 밀린다. 공격하여 함락시키는 것이 무리라고 판단하자, 즉시 방어시설의 파괴로 방침을 전환하여, (櫓)이나 무기고에 불을 지르고 성문을 닫을 수 없도록 공작을 한 후, 화려하게 물러나 보였다.

이 일련의 움직임 덕분에 시바타 군은 단번에 깊숙한 곳까지 공격해 들어가, 후토게 성에 틀어박힌 카가 일향종은 해자(堀)와 성벽(廓)에 의지하여 절망적인 농성을 강요받고 있었다.

얄궂게도 미츠히데의 기습에 의해 카가 일향종은 치고 나가는 방침에서 농성으로 방향을 틀었다. 시바타 군으로서도 깊이 추격하는 것을 피하고 토리고에 성(鳥越城)과의 연계를 끊으려 움직이고 있어, 교착 상태에 빠져 있었다.

하지만, 이 일련의 공방에 의해 카가 일향종의 주력 부대는 그 숫자가 크게 줄어, 미츠히데의 전공은 누구나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일단 협공(挟撃)하는 모양새가 되었지만, 아케치 님의 부대는 숫자가 적어요. 거기에, 시바타 님이나 하시바 님을 미끼로 해서 새치기(抜け駆け)한 형태가 되었으니 원군은 도저히 바랄 수 없겠죠. 그렇다고 해서 병력을 물릴 수도 없으니, 어려운 판단을 해야 하겠네요"


"그걸 잘 알고 새치기한 거겠지. 사견이지만, 싸움이라는 건 무슨 짓을 해서든 이기면 된다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말야"


"동감이다. 아케치 님의 방식으로는 언제 새치기를 당할지 불안해져서 도저히 옆이나 등 뒤를 맡길 수 없지. 자신들만은 버려지지 않을 거라고 아무 근거없이 믿을 수 있을 정도로 낙천적이 될 수는 없다"


(예견하고 있었지만, 역시 아케치 님의 평판은 나쁘네……)


머리가 너무 잘 돌아가기에 독단전행(独断専行)에 빠지기 쉽고, 냉소가(皮肉屋)는 아니지만 아무래도 분위기를 파악 못하는 발언이 눈에 띈다. 대단히 뛰어난 능력 때문에 중용되고 있지만, 협조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배경을 이해하고 있다고는 해도, 시즈코로는 미츠히데를 어떻게 할 수는 없고, 할 생각도 없다.


"뭐, 우리들이 참견할 일도 아니니, 깊게 관여하지 않도록 하죠. 자, 아케치 님에게는 누가 갈래요?"


"내가 가지"


일단은 가장 위험이 예상되는 미츠히데의 진에 화물을 운반할 부대의 호위역을 고민하고 있자, 빈말로도 일을 열심히 한다고는 말할 수 없는 케이지가 손을 들었다.


"……수송부대를 호위하는 것 뿐인데요?"


"그건 이해하고 있어. 대장이 미움받는다고 해도, 말단 병사들은 목숨을 걸고 있다고. 그 남자다움(漢気)에 보답해줘야 된다는 바보가 있어도 괜찮잖아?"


"음ー, 그런 바보는 싫지 않을것 같네요. 그럼, 아케치 님에 대한 수송부대의 호위를 케이지 씨에게 부탁할게요"


"맡겨둬"


카부키모노(傾奇者)의 방식(流儀)을 좋아하는 시즈코는 케이지의 의견을 존중하기로 했다.


"호위대(馬廻衆)의 임무는…… 아니, 말하지 않겠다. 그런 녀석이었지, 네놈은"


미츠히데의 부대가 고립되어 있기에 일부러 격려하러 간다. 위의 속셈은 어떻든간에, 현장의 병사들은 목숨을 걸고 버티고 있는 것이다. 부대의 숫자가 적고 포진이 얇다는 것은 적으로부터의 습격을 받기 쉽다는 것도 의미한다.

역경 속에서 원군으로 달려가서 운 좋으면 적에게 한 방 먹여줄 수 있다면 통쾌할 것이다. 그런 카부키모노의 어쩔 수 없는 천성(性)을 느낀 사이조는 말없이 보내기로 했다.


"아무래도 시바타 님의 진에는 저 자신이 가야겠죠. 부하에게 위험을 떠넘기고 본인은 후방에 틀어박혀 있어서는 모양새가 안 좋으니까요"


"시즈코 님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은 아닐 것입니다. 쓸데없는 위험을 피하는 것은 위에 서는 사람의 의무입니다. 소생이 대리(名代)로 가도록 하지요"


"으ー음, 그런가요?"


특히 급한 용무가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직접 가는 게 좋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고 있자, 소성(小姓)이 아시미츠(足満)의 귀환을 알려왔다.

즉시 이쪽으로 안내하라고 소성에게 명하고는 사이조 쪽을 돌아보았다.

시즈코가 잠깐 시선을 뗀 사이에, 어느새 케이지가 실내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위험이 따르는 임무를 앞두고 기분을 내려고(景気づけ) 유곽(花街)에라도 간 것이리라.

사전에 서로 짠 것도 아닌데 시즈코와 사이조가 서로 쳐다보고 어깨를 움츠리며 쓴웃음을 지었다. 이윽고 복도에서 발걸음 소리와 함께 옷을 약간 지나치게 껴입은 차림새의 아시미츠가 들어왔다.


"일단 수고하셨어요. 귀환하자마자 죄송하지만, 서둘러 개요만이라도 구두로 보고를 부탁해요"


"인프라 정비에 관해서는 자연이 상대이니 다소 순서가 뒤바뀌기도 하겠지만, 남은 건 시간 문제겠지. 문제는 우에스기(上杉) 가문의 집안 소동이다. 시즈코의 판단대로 불온한 사태가 되어 있지. 지금은 후시키안(不識庵)이 제압하고 있지만, 카게토라(景虎, 호죠 우지야스(北条氏康)의 친자식) 진영이 수상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후시키안이 오랫동안 에치고(越後)를 비우게 되면 무장봉기도 일어날 수 있겠지"


"흠흠. 그렇게 되면, 오다 가문이 토우고쿠 정벌에 주력하고 있을 때가 위험하려나요? 주상이시라면 일부러 봉기를 유도해서 쳐부술지도… 으ー음, 한번 상담을 해보는 편이 좋겠네요"


반 오다의 기수(旗頭)였던 타케다(武田) 가문을 잃은 지금, 혼간지에게 의지할 곳은 토우고쿠의 영웅(雄)인 호죠 외에는 없다. 이 무렵, 켄뇨(顕如)가 각 방면에 보내는 문면(文面)도 기세가 꺾여, 예전의 격문을 띄우던 기세는 자취를 감추었다.

만에 하나 호죠까지 오다 가문에 굴복하면, 혼간지의 운명(命運)은 끝장나버린다. 켄뇨로서는 저자세로 나가더라도 호죠를 끌어들일 필요가 있었다.


"……성가신 얘기네요. 반대로 말하면, 호죠를 제외하면 토우고쿠는 평정된 셈이려나요"


"그렇게 되겠지. 그보다, 좀 말해둬야 하는 이야기가 생겼다. 보고하러 들렀던 기후(岐阜)에서 오다 님에게 서신을 맡아가지고 왔다"


그렇게 말하고 아시미츠는 품에서 봉인된 서신을 꺼냈다. 시즈코가 내용을 확인하자, 노부나가가 야마토(大和)로 갈 때 동행하라는 내용으로, 일정과 경로(順路)가 적혀 있었다.

문면을 볼 때, 일단 쿄에서 합류한 후 야마토로 갈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시기에 노부나가가 야마토로 가는 노림수를 알 수 없었다.

딱히 의미도 없이 서신을 꼼꼼히 뜯어보던 시즈코였으나, 문득 어떤 것을 떠올렸다.


"츠츠이(筒井)와 마츠나가(松永) 사이의 불화(確執) 때문일까?"


츠츠이란 '야마토 네 가문(大和四家)'으로 꼽히는 츠츠이 씨(筒井氏)를 가리키며, 현 당주(当代)는 츠츠이 쥰케이(筒井順慶)가 맡고 있었다. 이 쥰케이와 마츠나가 히사히데(松永久秀)에는 적지않은 악연(因縁)이 존재한다.

쥰케이는 예전에 마츠나가에 의해 거성(居城)인 츠츠이 성(筒井城)에서 쫓겨나 한동안 자복(雌伏)의 시간을 보냈다. 그 후, 미요시(三好) 3인방(三人衆)과 결탁한 쥰케이는, 마츠나가 히사히데에게서 츠츠이 성을 탈환했다는 경위를 가지고 있었다.

단적으로 말하면 서로 죽고 죽이던 두 사람이 함께 오다를 주군으로 섬기게 된 것이다. 그리 쉽게 손을 잡을 수 있는 사이는 아니었다.

한편, 마츠나가 히사히데는 노부나가의 신하가 된 후, 그의 명령에 따라 타몬야마 성(多聞山城)을 넘겼다. 타몬야마 성에는 미츠히데나 시바타 등이 당번제(当番制)로 들어가게 되어, 야마토의 백성들에게 오다 가문의 세력 아래로 들어갔다는 것을 알리고 있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마츠나가는 거성을 빼앗긴 채 얌전히 있을 인물은 아니다. 조금이라도 오다에게 빈틈(綻び)이 보이면 그 목젖을 물어뜯으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이리하여, 각자의 속셈이 뒤엉킨 결과, 아직 야마토에는 수상한 전란의 기운이 감돌고 있는 것이었다.


"오다 님이 노리는 것은, 야마토의 권력자에서 민초(民草)에 이르기까지 지배자는 오다라는 것을 드러낼 생각이겠지. 흠…… 마츠나가에 대해서는 내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군"


"어? 아시미츠 아저씨, 마츠나가 히사히데랑 교류가 있었어요?"


"음. 나는 그놈에게 '대단히 신세를 졌고', 이쪽도 이것저것 '편의를 봐 준' 사이지. 적지 않은 교분을 쌓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실로 즐거운 듯한 미소까지 떠올리며 아시미츠가 고개를 끄덕였다. 도전히 사교적이라고는 하기 어려운 아시미츠가 그렇게까지 친한 사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시즈코였으나, 어림짐작으로 교우 관계에 참견할 수도 없었기에 의문을 속으로 삼켰다.


"그럼, 주상께서 야마토에 도착하셨을 때 인사하러 오게 하도록 부탁할 수 있겠어요? 츠츠이 씨는 주상께 어머니를 인질로 바쳤을 정도니까 말할 것도 없이 오겠지만…… 혹시 모르니 편지를 보내두죠"


노부나가가 일군(一軍)을 이끌고 야마토에 들어가고, 동시에 현지의 유력자들이 모조리 인사하러 간다는 구도는, 장병들이나 민초들에게도 알기 쉽게 지배구조를 어필할 기회가 될 것이다.


"그럼, 케이지 씨와 카츠조(勝蔵) 군은 카가로, 요키치(与吉) 군은 계속 아즈치에 잔류. 그렇게 되면, 나는 사이조 씨가 시바타 님의 진에서 돌아오는 대로 주상과 동행하게 되는 걸까요?"


"야마토로 간다면 나도 동행하지. 다름아닌 마츠나가가 얽혀 있으니까 말이다. 내가 직접 가서 녀석과 조금 '대화'를 할 필요가 있겠지"


"그러네요. 주상의 앞에서 츠츠이 쪽과 다투어도 곤란하니, 그런 부분은 교우(交友) 관계가 있는 아시미츠 아저씨에게 맡길게요"


"거성도 잃고 처지가 곤란한 마츠나가에게는 나쁜 이야기는 아닐테지. 지기(知己)나 마찬가지인 내가 중재에 들어가는 것이니 '싫다고 하지는(無下にされる)' 않겠지" 


마츠나가의 입장에서는 엎친 데 덮친 격(弱り目に祟り目)으로 재난(災難)일 뿐이지만, 실로 기분좋게 이야기하는 아시미츠의 말을 의심하는 사람은 그 자리에 없었다.


"주상께서 야마토에 체재하시는 동안에 문제를 일으키면 큰일이 될테니까요. 츠츠이 쪽도 얌전히 있을 수밖에 없을테고, 마츠나가 쪽은 아시미츠 아저씨가 제어해 주는 거죠? 주상 앞에서 다툼이라도 일으켰다간 어떤 처벌이 내려질지 몰라요"


마츠나가는 노부나가가 대단히 원하는 차관(茶釜)인 코텐묘(古天明) 히라구모(平蜘蛛)(이후 히라구모라 부름)를 소유하고 있었다. 마츠나가는 노부나가의 신하가 될 때 명품 '츠쿠모카미(九十九髪) 나스(茄子)'를 헌상했으나, 히라구모에 관해서는 몇 번 요청을 들어도 결코 양보하려 하지 않았다.

이러한 경위도 있어, 히라구모를 바친다면 싸움을 해서 쌍방 모두 처벌하게 되어도(喧嘩両成敗) 마츠나가 측은 사정을 봐줄 가능성이 높다.  츠츠이 측으로서는 먼저 손을 쓰면 필패인 상황이 되니, 마츠나가만 제어할 수 있다면 큰 문제는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예상할 수 있었다.


"언젠가는 히라구모도 명물조사(名物調査)의 일환으로 맡게 되겠지만, 지금 시기에서는 억지력이 되니까 손대지 않는 편이 좋으려나요"


"호오…… 그러고보니, 시즈코는 히가시야마고모츠(東山御物)도 수집하고 있었던가"


"딱히 금전적 가치가 있어서 원하는 건 아니에요. 우리들의 시대에서는 유실되었다는 것을 후세에 남길 수 있다면 내가 이 시대에 살았던 의미가 있으려나 해서요"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도 없지 않느냐. 뭐, 마츠나가에 대해서는 내게 맡겨둬라. 나쁘게 하지는 않을테니"


"응, 부탁해요. 이쪽은 야마토로 갈 계획을 세울게요"


"걱정말아라(놈이 어떤 표정을 지을지 볼만하겠군)"


마츠나가가 아시미츠로부터의 편지를 받아들고 어떤 표정을 떠올릴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옅은 미소가 치밀어오르는 아시미츠였다.




노부나가의 야마토행이 착착 진행되는 동안, 이시야마(石山) 혼간지에서는 내분의 전조가 보이기 시작하고 있었다.

원인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큰 이유로서는 노부나가가 새롭게 닦은 도로의 존재가 있었다. 이세(伊勢)를 경유하여 오와리와 사카이(堺)를 육로로 잇는 정비된 도로는, 중소규모의 상인들의 교역을 활발하게 했다.

이세를 지배하에 둔 노부나가는, 오와리에서 축적된 해산물의 양식 기술을 이세에도 들여오게 했다. 양식이 궤도에 오르기에 앞서 가공시설이 가동을 시작하여, 말린 전복이나 말린 해삼이 비교적 싼 가격으로 유통되게 되었다.

말린 전복이나 말린 해삼은, 이웃나라인 명(明) 나라에서는 건화(乾貨)라고 불리며, 말린 표고버섯과 함께 인기높은 상품이다. 중량당 이익률이 높은 상품으로서 알려져 있지만, 종래에는 상선을 보유한 대상인이 아니면 취급할 수 없는 선망의 상재(商材, ※역주: 장사할 거리)이기도 했다.

그러나, 노부나가가 닦은 도로라면, 큰 가게라고 부를 수 없는 작은 상인들에게도 일확천금의 찬스가 주어졌다.

그 결과, 그야말로 골드 러시에 들끓었던 미국 서부 같은 성황(盛況)이 이세를 중심으로 퍼져나가게 되었다.

일확천금을 꿈꾸며 야심을 품은 상인들이 전국에서 모여들어, 상품을 사입(仕入)하여 전국으로 흩어졌다. 대상인들은 종래대로 해운(海運)을 통한 해외무역을 하고, 그 이외의 상인들은 육로로 국내의 유통을 담당하여 자연스러운 분업(棲み分け)이 이루어졌다.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수요가 생겨나고, 그것을 기회(商機)로 시장이 들어선다. 시장을 보고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주변 일대에는 전에 없었을 정도의 돈이 흘러들어오게 되었다.


이렇게 판을 깔아놓은 노부나가는, 이 거대한 권익구조의 일부를 이시야마 혼간지를 편드는 세력, 그것도 네고로슈(根来衆)나 사이카슈(雑賀衆)(오오타 당(太田党))에 나누어주었다.

적을 이롭게 하기만 하는 행위일 뿐이기에 처음에는 함정을 의심한 네고로슈나 사이카슈였으나, 전에 없던 기세로 팽창하는 재화(財貨)에 참을 수 없게 되었다.

사이카슈는 원래 상인집단으로서의 측면도 가지고 있어, 상인들이 교역의 안전을 담보하기 위해 무장한 결과 용병집단이 되었다는 설도 있다.

그리고 그들은 상인으로서 키워온 연줄(縁故)에 의해, 서쪽으로는 큐슈(九州)에서 동쪽으로는 북(北) 칸토(関東)까지 커버하는 인맥(伝手)을 가지고 있었다. 목숨을 걸고 전쟁터에 나가지 않아도 장사로 돈을 벌 수 있다면, 상인으로 되돌아가는 사람도 당연히 나오게 된다.


이 일련의 흐름에야말로 노부나가의 매복(埋伏)의 독(毒)이 숨어 있었다.

사이카슈는 의사결정을 각 세력의 대표들에 의한 합의제에 맡기고 있었다. 사이카 당(雑賀党)과 오오타 당의 2대 파벌은 있지만, 그 밖에도 유력한 세력들이 군웅할거(群雄割拠)하여, 세력의 대표를 순번제(輪番制)로 맡고 있었다고 한다.

지금까지는 용병 사업에 특화되는 것으로 큰 이익을 내고 있었기에, 일단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세력 내부의 파워 밸런스가 크게 뒤흔들려 버렸다.


"오다에 빌붙는 얼간이들에게 제재(制裁)를!"


"어디서 흘러오건 돈은 돈이다! 이 상기(商機)를 놓치지 않고 힘을 축적하는 것이 선결이다!"


"오다의 주구(走狗)로 전락했느냐, 사이카슈의 수치(面汚し)가!"


"무기가 없으면 전쟁은 할 수 없다! 그리고 무기를 갖추려면 돈이 필요하다. 이상이나 긍지만으로는 배는 부르지 않아!"


그들은 자신의 재화를 지키기 위해 무장했다. 그러나, 노부나가는 그가 정한 상거래의 규칙(約束事)을 지키는 한, 적을 편드는 쪽이더라도 상인들을 비호해준다.

이렇게 목숨을 걸면서도 벌이가 적은 용병 사업을 버리고 안정적인 생활을 추구하는 파벌과, 어디까지나 자주독립을 관철하며 권력자에게 의존하지 않는 생활을 계속하는 파벌로 나뉘어 다툼이 시작되었다.


"당했군"


노부나가가 펼친 사이카슈 붕괴의 책략을 깨달은 사이카 마고이치(雑賀孫一)였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이제는 합의(合議)를 열려 해도, 회의(会議)가 분규할 뿐 무엇 하나 결정할 수 없게 되었다.

이렇게 되어버리면 연합 세력(寄り合い所帯)의 취약함이 드러나 버린다. 각각의 파벌이, 자신들이 속하는 집단을 이끌고 멋대로 행동하게 되어 버렸다.


"재편(立て直し)은 어려운가"


험악한 표정의 마고이치에 대해, 시모츠마 라이렌(下間頼廉)이 의문을 입에 올렸다.


"혼간지 내부에서도 승병(僧兵)의 도망이 줄을 잇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시기를 같이 하여, 사이카슈의 내부 붕괴. 이것을 우연이라고 단정짓기에는 조금 지나치게 상황이 잘 맞아떨어집니다"


라이렌 뿐만이 아니다. 그의 옆에는 승려 차림의 남자가 앉아 있었다. 그 남자의 이름은 에케이(恵瓊). 노부나가의 실추(失墜)를 예언했던 모우리(毛利) 가문의 외교승(外交僧), 바로 그 사람이었다.

세 사람은 화톳불을 둘러싸고 마주보고 있었다. 각각 중요한 지위를 가진 사람들이, 실내조차 아닌 장소에서 대화를 나눈다는, 일종의 기묘한 상황이 생겨났다.

라이렌이 속한 이시야마 혼간지는 오다와 강화를 맺었고, 마고이치가 속한 사이카슈의 일파도 표면상으로는 오다에게 복종하고 있다. 직접 칼을 맞대지는 않았으나, 에케이가 섬기는 모우리에게 오다는 잠재적인 적이다.

그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것 자체가 위험한 행위이기에, 많은 상인들로 떠들썩한 야외에서 잡담(世間話)을 가장하여 비밀 회합을 가지고 있었다.


"오다에게 한 방 먹었군요"


"무력으로 상회하면서 정치적 책략(搦め手)까지 쓰다니, 합의제의 약점을 찔렸소"


"칼날을 맞대는 것만이 싸움은 아니라는 것이겠지요. 돈을 화살로 삼아 욕망을 꿰뚫는 싸움도 있다고 뼈저리게 알게 되었습니다. 무변자(武辺者)라는 소문은 믿을 게 못되는군요"


에케이의 중얼거림에 라이렌은 팔짱을 끼고 말없이 생각했다. 대화를 주도하고 있던 그가 입을 다물었기에, 고요함이 자리를 지배했다. 때때로 들리는 벌레 소리와 장작이 터지는 소리만이 울렸다.

라이렌은 자기 팔을 손가락으로 톡톡 치면서 눈부시게 머리를 회전시키고 있었다. 지금부터 노부나가가 취할 행동을 예측하지 못한다면 이시야마 혼간지의 만회는 절망적이 된다.

숙고한 끝에 라이렌은 한 가지 가설을 떠올렸다.


"설마, 오다는 자신을 미끼로 삼은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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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

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텐쇼(天正) 원년(元年) 키나이(畿内)의 사회기반 정비


119 1574년 9월 상순



카가(加賀) 일향종(一向宗)에 대한 대책이 시동되어 전쟁의 기운이 짙어지고 있었으나, 정작 노부나가는 변함없이 내정(内政)에 주력하고 있었다.

물론, 전혀 무관심할 리는 없고, 눈에 띄지 않게 착착 포석(布石)을 두고 있었다.


때를 같이하여 시즈코는, 히데요시(秀吉) 영토인 나가하마(長浜) 방면의 개발을 일단락짓고, 예전부터 요청이 있었던 오오츠(大津) 방면의 개발에 착수하고 있었다.

여기서 시즈코가 착수한 것은 타나카미 산(田上山)의 개발.

광물 자원의 채굴과, 그에 따른 도로 정비가 주된 사업이었다. 타나카미 산은 시가 현(滋賀県)에서도 남서부에 위치하는 오오츠의 다시 남쪽에 위치하는 산들의 총칭이다.

이 산들은 화강암(花崗岩)이 주체라서, 거의 전역(全域)에 걸쳐 화강암 광물이 산출되었다.

대표적인 것으로서 건축 자재로 중요시되는 어영석(御影石)이나, 현대에서는 보석이나 파워 스톤(power stone) 등으로 불리는 수정(水晶)이나 황옥석(黄玉石, 토파즈(Topaz))을 얻을 수 있다.

현대에서는 장식품이나 보석으로 가치가 있는 수정이나 황옥석이지만, 당시에는 양쪽 다 철(鉄)보다 단단하기에 가공할 수 없어, 오랜 세월 동안 무가치한 존재로 방치되어 왔다.

비교적 크게 성장하기 쉬운 수정 등은, 시대에 따라 신체(ご神体)로 숭배된 적도 있지만, 작은 황옥석은 메이지(明治) 시대에 외국인 보석상이 그 가치를 찾아낼 때까지 길가의 돌멩이와 다름없는 취급을 받았다.


무가치하다고 단정된 황옥석이지만, 시즈코가 볼 때는 보물의 산이었다. 수정은 철보다도 단단하고, 황옥석은 수정보다 더 단단하다.

충격에 대해 특이하게 깨지는 모습을 나타내는 '벽개성(劈開性)'을 가지기에 취급은 어렵지만, 단단하다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었다.

입경(粒径)이 작은 것이라도 연마제(研磨剤)로 이용할 수 있기에, 시즈코는 현지 백성들을 고용하여 대대적으로 수집하게 하고 있었다.

특히 비가 온 다음날이 호기로, 그 날은 위험수당으로서 일당에 2할을 더 얹어주면서까지 동원했다.

그렇게까지 하면서 사람을 모으는 이유는 황옥석의 비중(比重)에 있었다. 황옥석은 비중이 커서, 어지간한 비로는 쓸려가지 않는다. 비에 표토(表土)가 쓸려내려가서 비중이 큰 황옥석이 노출되는 것을 기대하고 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표토가 쓸려내려간다는 것은, 지면이 진흙탕이 된다는 이야기다. 타나카미 산은 경사가 급한 사면(斜面)이 많아서, 발밑이 불안정한 상황에서는 이동하는 것만으로도 위험이 따른다.

위험하고 지저분하고 힘든 일. 소위 말하는 3D 노동이기에, 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렇기에 위험수당을 얹어주어 대우를 후하게 하여 인원을 확보했다.


여담이지만 황옥석에는 두 종류가 있는데, 굴절률이 높고 장시간 빛에 노출되어도 퇴색(退色)되지 않는 것을 'OH 타입', 그 이외의 것들을 'F 타입'이라고 부른다.

일본에서 산출되는 것은 기본적으로 'F 타입'이며, 대부분이 무색투명한 원석이다.

현대에서는 이것들에 가열이나 방사선(放射線)을 조사(照射)하여 인공적으로 착색한 것들이 유통되고 있는 경우도 많다.

무색투명한 토파즈와 수정을 육안만으로 구별하는 건 어렵지만, 특성을 알고 있으면 간단히 판별할 수 있다.

수정과 마찰시켜 수정에 상처가 나면 토파즈이고, 상처가 나지 않으면 수정이다.


광석의 채굴과 병행하여, 시즈코는 타나카미 산에서 횡행하고 있는 남벌(乱伐)을 금지했다. 노송나무 목재(檜材)의 일대 산지로서 이름을 떨치고 있던 타나카미 산은, 당시부터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남벌되었다.

역사적 사실에서는 남벌의 결과 민둥산이 되어, 유출된 표토가 하천으로 유입되어 홍수의 원인이 된 경위가 있다.

이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시즈코는 거의 쓰는 일이 없는 강권(強権)을 동원하여 일대의 재목(材木)을 윤번제(輪番制)로 공급하는 계획성 임업(林業)으로 변경했다.

이것은 실제로 이와미 은광(石見銀山) 등에서도 채용되었던 시스템으로, 은광 주변을 32개소로 구획 정리하여 순번에 따라 벌채를 한다는 것이다.

벌채를 한 구획은, 다음 벌채에 대비해 식림(植林)을 하여 장기적으로 목재를 계속 공급한다는 형태를 취한다.

이전에도 언급했으나, 오오츠 방면의 하천에 토사(土砂)가 유입되어 유량(流量)이 제한되어 버리면 비와 호(琵琶湖)가 범람하여, 오우미(近江) 일대가 물바다가 된다.

한 번 홍수가 발생하면 우물물 등이 오염되거나, 모기 등이 대량 발생하는 등의 재해가 줄지어 일어난다(負の連鎖). 위정자로서는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문제였다.


"오우미의 치수(治水)에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광대한 범위에 피해가 발생하니까. 뭐, 하시바(羽柴) 님의 영역이라서 내가 너무 참견하는 것도 꺼려할테니, 슬쩍 정보를 흘리고 나머지는 맡기도록 하자. 그보다 사진의 개발을 진행해야 해!"


사진이라고 해도, 현대인이 떠올리는 듯한 롤 필름을 사용한 것은 아니다.

유리판에 유제(乳剤, 감광재료(感光材料)가 함유된 젤라틴)를 도포한 '유리 건판식(乾板式) 필름'을 이용하는 방식이다.

당연히 흑백사진이며, 컬러 사진 따윈 바랄 수도 없다.

은염사진(銀塩写真)의 감광 원리나 현상(現像)에 이르기까지의 이론 등에 대한 이해를 몽땅 건너뛰고 그런 물건이라며 억지로 연구개발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인지 실용화에 난항을 겪고 있다.

역사적 경위를 생각하면 동떨어진(隔絶) 기술 레벨이기에, 겨우 몇 년 만에 실용화시키려는 건 너무 뻔뻔한 이야기이다.


그렇게까지 하며 시즈코가 사진에 고집하는 이유는, 단지 '정보의 보존에 적합'하기 때문이었다. 사진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잘라내어 보존할 수 있다.

문화재의 보호자에 임명된 시즈코는, 당시의 다양한 문화를 가능한 한 후세에 전하자고 생각했다.

문자(文字)나 도식(図式)이라는 기호(記号)로 기록된 문서는 사본을 만들면 복제할 수 있지만, 회화(絵画)나 입체(立体), 건축(建築)이나 정원(庭園) 등은 남길 방법이 없다.

그러나, 사진이라면 현물 그 자체는 무리라도, 그 때 그 장소에 존재했던 일순간을 있는 그대로 보존할 수 있다.

그 시대의 사람들의 생활하는 모습 등의 형태가 없는 것들조차도 풍경(風景)으로서 잘라낼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사진의 원리는 철두철미(徹頭徹尾)하게 화학 반응 위에 성립되고 있다. 휴대가 가능하고 장기간의 보존에 견딜 수 있는 사진의 개발에는 아직 연구기간이 더 필요했다.


"불꽃(花火)은 뭐…… 목숨 아까운 줄 모르고 실력있는 기술자가 있어서 생각보다 연구가 진행되었지만 말야"


현대인에게 여름의 풍물시(風物詩)가 된 불꽃놀이였으나, 그 정체는 화약과 금속 분말을 이용한 염색반응(炎色反応)이 가져오는 찰나의 예술이다.

언제쯤 일본에 불꽃놀이가 정착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전국시대에는 전래되었을 거라는 기록을 볼 수 있다.

당시에 전래된 불꽃은 로켓(打ち上げ式) 불꽃이 아니라, 고정식의 통에서 색이 입혀진 불꽃이 튀어나가는 것이었다.

한편, 시즈코가 말하고 있는 불꽃이란 로켓 불꽃이다. 당초에는 총탄을 개발하면서 화약이나 탄두(弾頭)을 연구할 때, 탄두를 구리(銅)로 감싸는 방식을 제안했을 때의 여담이었다.

염색반응의 원리를 개진(開陳)하고, 실제로 가늘게 늘려뽑은 구리선을 로(炉)에 넣자 청록색의 불꽃이 튀는 것을 기술자들에게 보여주고, 이것을 이용한 불꽃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려줘버렸다.

대부분의 기술자들은 감탄했을 뿐이었으나, 포탄 개발의 중심적인 기술자가 흥미를 보였다. 시즈코가 아니라, 아시미츠(足満) 주도로 진행되고 있던 대포의 개발에 응용할 수 있다며 연구를 신청했다.

당초에는 화약이 군수품이고 귀중한데다 취급이 어렵기에 시즈코는 난색을 표했다.

그러나, 그다지 화약을 많이 사용하지 않는 모기향 불꽃(線香花火, 역주: ※직역)의 존재를 떠올리고, 그것을 최초의 연구 과제로 한다는 것을 조건으로 허가를 내렸다.

쇳가루(鉄粉)를 아교로 개어, 막대기에 화약과 함께 얇게 펴바르면 되는 모기향 불꽃이지만, 분말의 크기나 바르는 양 등 연구할 점은 많았다.


"설마, 로켓 불꽃에까지 다다를 줄이야……"


모기향 불꽃을 시작으로, 손으로 드는 불꽃(手持ち花火)을 개발하고, 다음으로 화약의 연소를 추력으로 하는 쥐불꽃(ネズミ花火)이 탄생했으며, 팽이불꽃(コマ花火) 등을 거쳐 이윽고 별(星)이라고 불리는 화약 덩어리를 쏘아올린다는, 대포로도 이어지는 원시적인 로켓 불꽃에까지 이르렀다.

그렇다고는 해도, 전국시대이니 채색광제(彩色光剤)로서 이용할 수 있는 것은 구리나 주석(錫), 납(鉛)에 인(燐) 등이라, 색채는 파란색 계열에 치중되게 된다.

그러나, 불이라고 하면 붉은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가진 사람들에게 이 불꽃은 획기적이었다.


"점점 사용하는 화약량이 늘었으니 폭발사고 같은 것도 있었지만, 드디어 밤하늘에 선을 그리는 데까지 왔네. 그러고보니 주상께서, 여름 축제에 폐하(帝)의 임석(臨席)을 청하신다고 했었는데…… 불꽃놀이를 보여주는 거겠지"


"시즈코 님"


천황(帝)을 들고나오는 이상 사소한 실패조차 용납되지 않는다. 꼼꼼하게 사전 준비를 하여 만에 하나라도 연소(延焼) 등이 일어나지 않도록 철저하게 방화지대(火除地)를 확보할 필요가 있다.

이것저것 고민할 게 늘어나네 하고 시즈코는 진절머리를 내며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 때 방 밖에서 시즈코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시즈코 님, 카가 일향종의 건에 대해 보고드립니다. 거듭된 도발에 의해 긴장감이 높아져, 드디어 말단(末端)을 억제할 수 없게 된 듯 합니다"


"……수고했어요. 계속 감시를 부탁해요"


"옛"


목소리의 주인은 사나다(真田) 가문이 관리하는 간자였다. 간자답게 요점만을 간결하게 정리한 정기보고를 받고 시즈코가 치하하자, 목소리의 주인은 소리도 없이 떠나갔다.

카가 일향종에 대해서는 시바타 카츠이에(柴田勝家)를 총대장으로 하는 군세가 에치고(越後)로 보내어지는 기술자들의 호위라 칭하며 움직이고 있었다. 그 도중에 이것저것 수를 내어서는 일향종에 대한 도발을 거듭하고 있었다.

물론, 일향종의 총본산인 혼간지(本願寺) 측도, 이 노골적인 도발이 의도하는 바를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카가 일향종에 대해 도발에 응하는 것을 금하는 통보를 보냈다.

하지만, 혼간지의 대응을 비웃듯, 오다 군은 추가적은 도발을 거듭했다.

가는 곳마다 "혼간지는 자기들 목숨이 아까워 카가 일향종을 저버렸다"라는 식으로 떠들고, 침묵을 유지하는 카가 일향종을 "강한 자에게는 대들지 못하는 겁장이 무리"라고 선전(吹聴)했다.


오다 가문과 혼간지는 강화(和睦)를 맺었으나, 그건 가느다란 실로 연결된 일시적 평화에 불과하다. 개미 구멍 하나로도 쉽게 붕괴하여 다시 적대 관계로 돌아가는 아슬아슬한 것이었다.

그런 상대의 영토 내에서 사실과는 다른 악평을 퍼뜨리는 것은, 사람의 입을 통해서만 정보가 퍼지는 전국시대에서는 대단히 유효한 한 수가 되었다.

그게 어떤 집단이던, 무력으로 먹고사는 이상 얕보이고 침묵해서는 체면을 유지할 수 없다.

적지 않게 이름을 날려 자존심이 비대해졌을 때 이런 취급을 받으면, 말단이 폭주하는 것도 시간 문제였다.


"상대가 먼저 싸움을 걸었다는 사실만 있으면 그 뒤에는 어떻게든 명분이 서지. 만에 하나, 혼간지가 카가 일향종을 버리더라도 그 책임을 혼간지에게 묻는 것은 가능하니까"


노린 대로 카가 일향종이 오다 가문에게 덤벼들고 혼간지가 그에 동조하여 강화를 파기하면, 노부나가는 오히려 기뻐할 거라고 쉽게 상상할 수 있었다.


(인내심 싸움(我慢比べ)도 슬슬 끝이려나)


시즈코는 휴 하고 한숨을 쉬었다. 이시야마(石山) 혼간지가 다시 전쟁을 시작한다. 결전의 때는 착착 다가오고 있었다.




혼간지에서는, 노부나가가 기후(岐阜)에 계속 머물고 있었기에 방심이 생겨나고 있었다.

휘하의 장병들은 카카 일향종에 대해 도발을 거듭하고 있지만, 노부나가 본인은 그 움직임을 짜증스럽게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사태의 추이를 살피고 있는(日和見) 수뇌진에서 시모츠마 라이렌(下間頼廉)만이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꾸준한(地道) 조사의 결과, 시즈코의 동향은 물론이고 노부나가의 행동 경향까지 분석하고 있었다.

지금까지의 경향에서 볼 때, 노부나가가 조용히 바라보고(静観) 있을 때는 대부분 자복(雌伏) 하면서 힘을 축적하는 경우가 많다.

이번의 강화에서 이어지는 일련의 평화도 다음 싸움을 위해 군비를 갖추고 있음에 지나지 않는다고 추측할 수 있었다.

애초부터 혼간지 측도 숙적(宿敵) 노부나가 상대로 항구적인 평화가 성립할 거라고는 생각하고 있지 않다. 언젠가 자웅을 겨울 때가 올 것이라 이해하고, 다가올 싸움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휴전중에도 계속하여 군비를 증강하고 있는 노부나가에 비해, 혼간지 측은 '당분간은 싸움을 일으키지 않을 것이다'라고 판단하고 시간을 낭비해 버렸다.


(모두를 아몽(阿蒙, 진보가 없는 인물을 가리키는 말)이라 비웃을 수는 없다. 적지 않은 부(富)가 혼간지에도 유입되고 있으니, 당분간 싸움은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노부나가는 적대세력이라고 해서 혼간지를 의도적으로 배제하는 경제정책을 취하지는 않았다. 노부나가가 정한 상거래에 관한 규정을 지킨다면 그 문호는 만인에게 열려 있었다.

전쟁에도 물자의 대량 소비와 인구 조정이라는 측면이 있기에, 전쟁이 종결된 후에는 대부분 경제가 활발해진다.

소위 말하는 전쟁수요(戦争特需)로 활성화된 시장은, 유통 경로상에 위치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부를 가져다준다.

이 호경기는, 오다 포위망을 유지하기 위해 많은 부를 방출한 혼간지의 호주머니를 두둑하게 해주었다. 표면적인 이유로서 다음 싸움에 대비한 축재(蓄財)라고 칭하고 있지만, 조금이라도 현 상황을 유지하고 싶다고 바라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라이렌이 위구하고 있듯이 휴전 기간이 길어지는 것은 위험했다.

지금은 '오와리 양식(尾張様式)'이라 불릴 정도가 된, 오와리에서밖에 생산되지 않는 물건들을 차례차례 퍼뜨리는 노부나가와, 유통의 부수입(余禄)을 받아먹고 있는 데 지나지 않는 혼간지는 문자 그대로 수익의 단위가 다르다.

게다가 노부나가는, 얻은 이익을 재투자하여 경제를 활성화시키는 것으로 더욱 효율적으로 부를 창출하는 호순환(好循環)을 만들어냈다.

이렇게 되면, 시간이 지날수록 오다 가문과 혼간지의 차이는 벌어져 버린다.


(취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 강화를 지금 당장 파기하고 오다 영토로 쳐들어가거나, 아니면…… 아니, 어느 쪽도 현실적이지 않다)


현 시점에서 강화를 파기하고 오다 가문을 공격할 수 있을 만한 대의명분이 없다. 혼간지 뿐이라면 신앙심을 부추겨서 사기를 유지할 수 있지만, 혼간지에 호응하는 각 세력은 그럴 수 없다.

만민(万民)에 대해 노부나가를 쳐부숴야 한다는 대의를 제시하지 못하면 동맹국도 병력을 내기 어렵다. 한편, 노부나가로서는 시간이 지날수록 우위에 서기 때문에, 때가 무르익기를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오다가 이렇게까지 반석(盤石)인 것은…… 역시 시즈코에 의한 바가 큰 것인가"


라이렌은, 시즈코야말로 오다 가문 융성의 원동력이라고 생각하고 집요하게 시즈코의 정보를 찾아다녔다. 그러나, 정보를 모으면 모을 수록 시즈코의 노림수가 보이지 않게 되어갔다.

시즈코의 사업은 너무나 다방면에 걸쳐 있었다. 복잡하게 얽힌 다각경영(多角経営)이기에, 한두개의 사업을 없애봐야 아무 의미도 없다.

게다가 각각의 분야에서 시즈코가 일으킨 사업을 이어받을 인재들이 성장해버렸다. 오다 가문의 뼈대(屋台骨)를 기울게 하려면 오다 영토의 태반을 초토화시키는 수준의 전과가 필요하다.

라이렌은 신화에 나오는 '야마타노오로치(八岐大蛇)'를 상대로 하는 듯한 절망감을 느끼고 있었다.


"카가도 언제까지 버틸 것인가……"


집요하게 이어지는 카가 일향종에 대한 도발은 말단 승병(僧兵)들의 격발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혼간지로서도 한 번은 노부나가에게 항의를 했지만, "사람의 입에 자물쇠를 채울 수는 없는 법. 무력 행사를 하고 있다면 몰라도, 말단 병사에 이르기까지 모조리 입을 다물게 하라는 건가?"라는 대답이 왔다.

노부나가는 암중에 "말단 병사들의 발언에까지 트집을 잡는다면 이쪽도 똑같은 대처를 요구하겠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노부나가를 불적(仏敵)으로 간주하는 신자들은 많으며, 그들은 노부나가를 악귀나찰(悪鬼羅刹)처럼 욕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이리하여 혼간지는 자승자박(自縄自縛)으로 움직일 수 없게 되어, 라이렌은 몹시 후회스러운(臍を噛む) 심적으로 신자들의 인내를 바랄 수밖에 없었다.


(노부나가를 시골(田舎)의 토호(土豪)라고 얕보아서는 안 된다. 놈은 자신의 체면에 구애받지 않는다. 이익이 있다고 판단되면, 숙적인 혼간지와도 강화를 맺어 보이는 도량이 있다)


그리고 라이렌의 사고는 처음으로 되돌아갔다. 이대로 손을 빨고 있다간 패배는 필연. 그러나, 오다 가문의 세력을 깎아내려고 해도 어지간한 방법으로는 타격도 줄 수 없다.

숙고한 결과, 라이렌은 큰 도박에 나서기로 했다. 이 도박은 대단히 위험하여, 책략이 성공하지 못하면 자신의 파멸로도 이어진다. 그러나, 이미 자신의 몸을 아까워할 시기는 지났다.


"(……어쩔 수 없지) 누구 없느냐"


각오를 굳히자, 라이렌은 사람을 불러서 어떤 서신을 지정한 장소까지 전달하도록 명했다.




시간이 흘러 8월이 되었다. 천황이 임석하여 개최될 예정이었던 불꽃놀이 대회였으나, 예년에 없던 무더위(真夏日)가 이어졌기에 9월로 연기되게 되었다.

분지(盆地)인 쿄(京)는 심각한 더위에 시달려, 사람들은 시원함을 찾아 그늘로 도망쳤다. 기온도 그렇지만 습도도 높았기에 불쾌지수는 미친 듯이 올라갔다.


오섭가(五摂家)의 일익(一翼), 고노에 가문(近衛家)의 유자(猶子)인 시즈코도, 필요에 의해 교토에 저택이 주어졌다.

그렇다고는 해도 궁궐(御所)에 출사(出仕)할 필요가 없는 시즈코 저택은, 주인이 부재인 상태로 여름 사양으로 개수(模様替え)를 하고 있었다.

나무 문짝을 떼어내고, 바람이 잘 통하는 대오리문(簾戸)으로 교환하거나, 처마(軒)에 발(簾)을 매달아 햇빛을 막거나 하는 등의 조치가 취해졌다.

그밖에도 풍경(風鈴)을 매달거나, 등나무로 짠 깔개(敷物)인 '아지로(籐)'를 깔거나 하는 등 곳곳에 배려가 되어 있었다.


"올해 여름은 더워 죽겠군……"


문제가 있다고 하면, 본래의 주인이 아니라 피서 목적으로 사키히사(前久)가 뻔질나게 드나들고 있다는 점이었다.


고용인(家人)에게 준비시킨 차가운 차로 목을 축이면서 사키히사가 중얼거렸다. 시원함을 위해서라면 저택 내에 연못(池)이 있는 사키히사 저택에서도 충분하다.

일부러 멀리 나오면서까지 시즈코 저택에 드나드는 이유는, 쿄에서 유일하게 제빙기(製氷機)가 설치되어 있는 점이었다. 냉각재로서 질산암모늄(硝安)을 사용하기 때문에, 군수물자인 질산(硝酸)을 소비한다.

아무리 사키히사라도 제빙기만큼은 설치를 허락받지 못하여, 이렇게 시즈코 저택에 출근 도장을 찍고 있는 것이다.


뜨거워진 몸에 차가운 수분을 섭취하는 것은 좋지 않다. 급격하게 위장이 차가워지면 출혈하는 경우도 있다고 시즈코가 신신당부했었다.

그래도 끈적끈적한 더위에 지친 사키히사는 모르는 척 컵을 홀짝였다. 다른 사람의 눈이 있다면 사키히사도 자중했겠지만, 한식구만 있는 상황이라면 다소 긴장이 느슨해지는 것도 어쩔 수 없다.


"제빙기는 내구(耐用) 시험도 겸하고 있으니 상관없지만, 피서지 대용으로 삼지 말아줬으면 하는데"


오와리에 도착한 보고를 받고, 시즈코는 뭐라 말할 수 없는 미묘한 기분이 들었다.

보고서에는 귀인(貴人)이자 시즈코의 아버지이기도 한 사키히사를 함부로 대할 수도 없어 고용인들이 고생하고 있는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날씨만큼은 어쩔 도리가 없었기에, 한창 더운 시기가 지나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건 그렇고, 드디어 폭발했네, 카가 일향종"


"오래도록 이어진 더위도 맞물려 인내의 한계를 넘어선 것이겠지요"


시즈코는 사키히사의 보고서를 옆에 두고, 간자로부터 최신 상황을 듣고 있었다.

거듭된 도발에 참지 못한 카가 일향종의 일단(一団)이, 기술자들을 호위하는 오다 가문의 수하(手勢)들을 덮쳤다. 습격에 대비하고 있던 병사들은 이것을 무찌르는 것과 동시에, 일부는 일부러 놓아주었다.

도망친 일향종을 추격한 오다 군은, 그들이 도망친 절 '오야마고보(尾山御坊)'를 포위하고, 일향종의 습격으로 사망자가 나왔다고 떠들었다.

오야마고보는 말은 절이라고 해도 돌담(石垣)을 둘러친 성이나 다름없는 요새였다. 농성 태세를 보이는 일향종에게, 총대장인 시바타가 최후통접을 들이댔다.


"비열하게도 비무장의 기술자들을 습격하여 그 목숨을 빼앗았다고 하면 용서할 수 없다. 습격에 가담한 자들 및 이것을 지휘한 승려의 인도를 요구한다"


실제로는 기술자들에게 사상자는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죽은 자는 말이 없는 것이 난세(乱世)의 법칙.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습격하고 거기에 패주한 일향종에게는 어떠한 변명도 용납되지 않았다.

시바타를 필두로 하는 오다 군은, 카가 일향종의 거점이었던 토리고에 성(鳥越城)과 후토게 성(二曲城)도 포위하여 상호의 연계를 불가능하게 해버렸다.

날이 갈수록 두터워지는 포위와, 보급을 끊기고 정보조차 들어오지 않는 상황에서 공황에 빠졌는지, 오야마고보의 승병들은 신자들을 이끌고 치고 나왔다.

이걸 기다리고 있던 시바타가 박살을 내고, 거기에 선제공격을 받았다며 다른 거점에도 압력을 가했다.

자포자기(捨て鉢)한 일향종과, 면밀하게 준비를 갖추었던 시바타 군으로는 싸움조차 되질 않아, 치고 나온 일향종의 거의 대부분이 목숨을 잃었다.


필연적으로 패배하게 될 개전에 당황한 이시야마 혼간지는 카가 일향종의 오야마고보 퇴거와 맞바꾸어 군을 물려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노부나가는 이것을 거절했다.

때를 같이하여 오다 군에게 호응하듯, 에치고의 우에스기 켄신(上杉謙信)이 카가를 향해 진군을 개시했다.

물론, 사전에 합의된 군사행동이지만, 노부나가는 대외적으로는 관계없음을 가장하여 국경에 병사를 파견하기까지 했다.

노부나가는 우에스기에 대해 아시미츠(足満)를 사자로 파견하여 그 진의를 묻도록 명했다. 그에 더해, 나가요시(長可)를 시바타가 있는 곳으로 보내어 상황을 확인하고 보고하는 역할을 맡겼다.


"카츠조(勝蔵) 군이 봤을 때 너무 지나치다고 생각하면 말리고 와라라는 이야기였던 모양인데…… 명백히 인선(人選) 미스네. 부족하다면서 독전(督戦)하는 모습이 눈에 보이는 것 같아요"


"독전은 커녕, 선두에 서서 공성에 참가할 가능성까지 있지"


술잔을 한 손에 들고 케이지(慶次)가 웃으며 대답했다. 나가요시의 코앞에 먹이를 매달아 놓고 참전하지 말고 보고하러 돌아오라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無理難題)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소규모 전투(小競り合い)라도 시작되면, 바디시(bardiche)를 한 손에 들고 뛰어드는 모습을 쉽게 상상할 수 있었다.


"아케치(明智) 님이 움직이지 않았어요…… 그렇다는 건, 또 뒷말을 듣겠네요"


"국경의 견제가 임무이니 공성에 참가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만……"


"아니, 자기 영토인 에치젠을 방어할 뿐이라면 여유가 있어요. 추측이지만, 카가 일향종의 주의가 시바타 님을 향하고 있는 동안, 유격부대를 배후로 침투시켜서 때를 보아 급습하지 않을까요?"


"과연…… 힘들이지 않고 전과를 탈취하는 것입니까. 확실히 뒷말 한두마디 정도는 듣겠군요"


시즈코의 이야기를 듣고 사이조(才蔵)는 이해가 갔다. 미츠히데(光秀)의 임무는 카가 일향종의 에치젠 도망을 허용하지 않는 것. 그것만 견지한다면, 여세를 몰아 공격하더라도 문제는 없다.

그러나, 화살 앞에 서서 주의를 끌고 미끼가 된 쪽은 속이 좋을 수 없다.


"흐ー음, 카가 일향종이 공격한다고 하면…… 역시 하시바(羽柴) 군 쪽일까요? 군의 재편이 끝나지 않아서, 다른 곳과 비교해서 명백하게 압력이 약하니까요"


벼락출세한 히데요시는, 후다이(譜代)의 신하들에 비해 가신단(家臣団)이 약하다. 상비군(常備軍) 같은 건 가질 수가 없어서, 대다수가 반농반병(半農半兵)의 아시가루(足軽)나 잡병(雑兵)으로 구성된다.

무가의 일문을 담당하는 시바타 군과 비교하면 아무래도 숙련도 면에서 뒤떨어져버린다. 반면, 상승지향(上昇志向)이 강하고, 난장판(泥臭い)인 싸움에서야말로 진가를 발휘한다는 강점이 있다.

또, 오우미(近江)의 장병들을 자군으로 끌어들인 것에 의해 지휘계통의 재편이 끝나지 않아, 군으로서의 단결력이 약하다는 약점을 품고 있었다.


"아무리 '사람을 홀리는 사람(人たらし)'인 하시바 님이라도 오우미의 장병들을 받아들이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겠죠. 이번에는 뒷바라지일(裏方)에 전념하시지 않을까요?"


"하시바 님은 그렇다치고, 시바타 님 쪽은 전의가 높겠지요. 카츠조 군, 제대로 역할을 수행해주면 좋겠는데…… 무공 운운하는 것보다 날뛸 수 있는 자리를 원하는 것처럽 보였으니…… 걱정이에요"


"저번의 아사쿠라(朝倉) 침공에서는 주력과 길이 어긋나서 기다리다 끝나 버렸고, 그 이후에는 활약할 자리가 없었으니까. 기운이 남아도는 카츠조가 흥분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그런 잡담을 하는 세 사람이었으나, 시즈코의 걱정이 적중했다는 것을 후에 알게 된다.




달력은 9월로 접어들어, 아침저녁으로 싸늘함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맹위를 떨친 더위는 자취를 감추고, 하루종일 시원하여 살기좋은 날들이 이어졌다.

더위에 약하여 늘어져 있던 동물들도 활발하게 활동을 시작하는 계절.

그러나, 같은 달에 예정되어 있던 불꽃놀이 대회는 중지되었다. 주빈(主賓)인 천황의 몸이 좋지 않아, 제 1회 대회에 반드시 천황이 임석하는 것을 바랐던 노부나가가 중지할 것을 결단했다.

노부나가는 분한 듯 했지만, 불꽃놀이 기술자들은 1년 동안의 연구(研鑽) 기간이 생긴 것을 기뻐했다. 노부나가는 행사의 중지와 천황의 회복을 기원하는 서신을 작성하여 위문품과 함꼐 보냈다.


"공작(孔雀)의 장식깃털(飾り羽)이 이렇게 비싸게 팔리는구나……"


번식기(繁殖期) 숫공작(雄孔雀)을 상징하는 장식깃털(상미통(上尾筒))은, 그 아름다움 때문에 귀하게 여겨졌다.

이 장식깃털은 매년 새로 나며, 번식기인 초여름을 지나면 빠지기 시작해, 가을을 맞이할 무렵에는 모두 빠진다.

그리고 다시 늦가울 무렵부터 새로운 깃털이 나기 시작하여, 한겨울에는 다시 다 난다고 한다.


처음에는 두 쌍으로 시작한 진공작(真孔雀)의 번식이었으나, 그 후에도 계속하여 수입하거나 부화에 성공하거나 해서 숫자가 늘어, 지금은 15쌍이 생활하고 있다.

진공작의 장식깃털은 보석에 비유될 정도로 아름다워, 인도 공작의 그것보다도 가치가 높다고 한다.

그 상품가치는 일본 국내보다도 해외, 특히 유럽 각국에서 높아져서, 일본 국내에는 거의 유통되지 않는다.

빠져나간 장식깃털은 하나하나 정성스레 세척된 후 개별적으로 포장되어 바다를 건너게 된다.


공작에는 크게 못 미치지만, 타조의 깃털(羽根)도 유력한 상품이 되었다. 주로 유럽의 귀족사회에서, 타조의 깃털은 장식품으로 애용되고 있었다.

대항해시대(大航海時代) 후기인 17세기에 아프리카에서 입식자(入植者)들에 의해 상업 사육이 시작되어, 세계 각지에서 사육이 시작되는 21세기까지의 기간 동안 타조의 깃털은 금이나 다이아몬드와 나란히 아프리카의 특산품이었다.

오랫동안 남아프리카의 독점적 축산업으로 무역을 지탱해온 타조의 존재는, 노부나가에게 매력적인 산업으로 보여졌다.

그 거체(巨体)에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사람을 잘 따르는 타조는 환경의 변화에 강하고 성장도 빠르기 때문에 우수한 가금(家禽)이 된다.

단, 번식기에 들어가면 성질이 난폭해지기 때문에 취급에는 주의가 필요해진다.

진공작과 비교하면 사육이 용이한 타조는, 전용 목장에서 쑥쑥 자라고 있었다. 개체수가 일정치에 달하면 오래된 세대부터 도살하여 가공된다.


참고로 해외로 수출되는 것은 타조의 깃털과 가죽 뿐이며, 그 고기에는 상품가치가 안정되지 않았다. 통상적인 방법으로 도살된 타조의 고기는 대단히 피비린내가 심하여 식용에 적합하지 않다.

그 이유는, 타조는 무려 시속 80km에 달할 정도의 속력을 지탱하는 강인한 심폐(心肺)를 가지고 있어, 도살이라는 생명의 위기에 직면하면 그 우수한 순환기가 전력으로 전신에 피를 보낸다.

그 결과, 전신의 모세혈관이 파열되어, 근육 구석구석까지 혈액이 스며들어 개도 안 먹는다고 하는 고기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현대에서는 타조 고기도 훌륭한 상품으로 유통되고 있다.

그 비결은 도살 방법에 있었다. 도살할 타조를 한 방으로 이동시켜, 고농도의 탄산(炭酸) 가스로 기절(昏倒)시킨다. 실신한 상태에서 도살하는 것으로 식용에 적합한 고기로 가공하는 것이 가능했다.

정기적으로 손에 들어온다고는 해도, 상업적으로 유통시킬 만한 양은 확보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타조 고기는 시즈코의 그녀의 관계자들이 소비하는 데 그쳤다.


현 시점에서 오와리에서 남만(南蛮)으로 운반되는 주요 수출품은, 비단(絹)이나 목면(木綿) 등의 섬유 이외에, 도자기(陶磁器)나 진주(真珠), 진공작, 타조의 깃털 등 장식품류, 간장(醤油)이나 된장(味噌) 등의 보존식이 선호되었다.

또, 이웃나라인 명(明)나라에는 칠기(漆器)나 부채(扇) 등의 가공품 외에, 표고버섯이나 해삼에 전복, 굴 등의 건물(干物)과 우뭇가사리(天草) 등의 해조류(海藻類)가 많았다. 그 다음으로 무구(武具)나 의류, 생활용품 등이 거래되고 있다.

이러한 수출품목들에는 하나의 공통점이 존재한다. 하나같이 시즈코가 손댄 산업에 의한 상품인 것이다.


"상당한 양을 계속 공급하고 있는데 의외로 수요가 줄지를 않네"


소모품과는 달리, 장식품류는 공급이 안정되면 가격이 내려갈 거라고 시즈코는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가격 변동이 보이지 않았다.

그 이유 중 하나로, 유통을 담당하는 상선(商船)의 높은 손모율(損耗率)이 있었다.

이 시대의 해운 사정으로는, 일본을 출발하여 무사히 서양 각국까지 도착하는 상선은 많지 않아서, 절반 정도의 선박이 침몰하거나 난파의 고난을 겪거나 했다.

해난(海難) 사고가 드문 시대의 가치관에 기인한 맹점이었다.


"오, 이건 히가시야마고모츠(東山御物)의 보고서인가. 어디어디…… 순조롭게 수집이 진행되고 있다라. 뭐, 세세한 부분은 아시미츠 아저씨에게 맡겨두자"


히가시야마고모츠는 무로마치(室町) 막부(幕府) 8대 쇼군(将軍) 아시카가 요시마사(足利義政)가 수집한 회화나 다기(茶器), 문구(文具) 등의 총칭이다. 그 중에는 아시카가 쇼군 가문이 대대로 수집한 물건들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

참고로 히가시야마고모츠는 메이지(明治) 이후에 정착된 호칭으로, 그 때까지는 히가시야마도노고모츠(東山殿御物 또는 東山殿之御物) 등으로 불리고 있었다.

요시마사의 조부인 3대째 쇼군 아시카가 요시미츠(足利義満)나 아버지인 요시노리(義教) 등, 역대 쇼군이나 아시카가 쇼군 가문은 외국 물건(唐物)을 존중하는 경향이 강하여, 무역을 통해 많은 예술품을 수집하고 있었다.

그러나, 오우닌의 난(応仁の乱)을 계기로 뿔뿔이 흩어지거나, 또는 막부의 재정난(財政難) 때문에 매각되어 버리거나 했다. 그대로 소유자 불명, 소재 불명이 된 것도 적지 않다.


하지만 시즈코가 조정으로부터 예술품의 보호에 임명받은 것으로 상황은 일변한다.

노우아미(能阿弥)가 남겼다고 하는 히가시야마고모츠에 대해 편찬된 '어물어화목록(御物御画目録)'이나 마찬가지인 자료인 '군태관좌우장기(君台観左右帳記)' 등을 바탕으로 뿔뿔이 흩어진 히가시야마고모츠의 소재를 파악하려고 했다.

소재가 확정된 시점에서 소유자에게 반환 요청이 들어간다. 왜냐하면 아시카가 쇼군 가문의 지보(至宝)에 관한 소유권은 현재 오다 가문이 이어받고 있다.

설령 정식으로 하사받은 것이라도 고려되지 않았다. 매각에 응하던가, 스스로 나서서 반환하던가, 그도 아니면 무력으로 빼앗기게 된다.


"시즈코 님, 주상께서 오셨습니다"


"알겠어요"


보고서를 읽고 있자, 소성(小姓)이 노부나가의 내방을 전해왔다. 노부나가가 오와리까지 온 이유를 시즈코는 헤아리고 한숨을 쉬었다.


"다기겠지, 틀림없이"


이유는 단순해서 히가시야마고모츠에 포함되는 다기나, 현대에서 국보나 중요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 다기가 시즈코가 있는 곳으로 모여들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연대에서 국보로 지정된 요우헨텐모쿠(曜変天目) 찻종(茶碗) 세 가지가 전부 모였다. 최고 걸작으로 이름높은 '이나마텐모쿠(稲葉天目)'의 이름으로 알려진 찻종을 노부나가가 그냥 지나칠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이걸로 노부나가가 소유하고 있는 첫번째 요우헨텐모쿠 찻종이 함께 있으면, 일본에 존재하는 모든 요우헨텐모쿠 찻종이 한 자리에 모이게 된다.


"으ー음, 그렇게 투덜대시더니, 무슨 바람이 분 걸까?"


응접실로 향하면서 시즈코는 혼잣말을 했다. 당초, 시즈코는 목록을 작성하기 위해 노부나가가 소유한 요우헨텐모쿠의 대출(貸出)을 요청했다. 하지만, 노부나가는 이것을 거절하고 한시도 손에서 떼어놓지 않았다.

'군태관좌우장기'의 기술이 정확한지 확인하게 해달라고 시즈코가 직접 가는 것을 제안했으나, 그조차도 기각되었다.

최종적으로 '다른 요우헨텐모쿠를 다 수집한다면 생각해 봐도 좋다'가 되어 지금에 이르렀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딱딱한 인사는 됐다. 오늘 온 이유는 알고 있겠지?"


"물론입니다"


노부나가의 물음에 대답하면서, 시즈코는 소성에게 신호를 보냇다. 엄중하게 포장되어 있다고는 해도, 하나면 나라를 살 수 있다고까지 하는 다기인만큼, 이걸 운반하는 소성들의 발걸음은 무거웠다.

무사히 나무 상자의 운반을 마치자, 완충재로 감싸인 다기가 보이도록 뚜껑을 열었다. 대임(大任)을 마친 소성들은 일단 안심하고는 인사를 하고 방을 나갔다.


"충분히 확인해 주십시오"


시즈코가 직접 요우헨텐모쿠 찻종에 씌워진 천을 제거하자, 노부나가의 눈에 선명한 색채를 자랑하는 다기가 들어왔다.

노부나가는 엷은 웃음을 떠올리며, 지참한 나무 상자에서 자신의 요우헨텐모쿠를 꺼냈다.

모든 요우헨텐모쿠가 한 자리에 모인, 역사적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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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

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텐쇼(天正) 원년(元年) 키나이(畿内)의 사회기반 정비


118 1574년 7월 중순



시즈코가 시바타(柴田) 등으로부터 상담 요청을 받은 지 이미 1주일이 지났다. 그러나, 작전회의가 재개되었다는 이야기는 들리지 않았다. 그래도 시즈코는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낙관시하고 있었다.

시즈코에게는 전쟁 준비보다도 카카오 빈즈의 마무리 쪽이 중대사였다. 기대대로 발효가 진행되었다면, 슬슬 다음 공정인 건조작업에 들어가야 한다.

발효 상태를 평가하기 위해, 시즈코는 실제로 카카오 빈즈를 갈라 확인하는 컷 테스트(cut test)를 실시했다. 검사 항목은 두 가지. 색깔(色合い)과 향기(香り)를 확인하여 발효 상태를 평가한다.

발효 전의 카카오 빈즈라면, 단면은 폴리페놀(polyphenol)의 일종인 안토시아닌(anthocyanin)에 의한 자색(紫色)을 띠고 있다. 이 자색은 발효가 진행되면서 발효열로 중합반응(重合反応)을 일으켜, 갈색(褐色)을 띠게 된다.

색깔에 이어 향에 대해서도 확인해본다. 초콜렛과는 거리가 먼, 어딘가 된장(味噌)을 연상케 하는 끈적임을 가지면서, 그러면서도 달콤한 듯한 향기가 난다.

순조롭게 발효가 진행되었다면 좀 더 산미(酸味)가 있는 향기가 나지만, 그것은 환경의 차이라고 포기하고 건조(乾燥) 공정으로 이행하기로 했다.


카카오 빈즈는 중량 중 3분의 1 이상을 수분이 차지한다. 이 수분량을 8~6% 정도까지 줄이는 작업을 건조 공정이라 부른다.

원산지에서 실시되는 건조 작업은, 노지(露地) 등에 1미터 정도 높이로 짜놓은 나무 틀(木枠) 위에 '대나 띠로 엮은 발 같은 것(すのこ)'을 깔고, 그 위에 카카오 빈즈를 늘어놓고 천일(天日) 건조를 한다.

이 건조 작업중에도 천천히 발효가 진행되기 때문에, 현지의 토양균(土壌菌)이나 건조 방법에 따라 카카오 빈즈의 맛이 좌우되게 된다.

현대에서는, 이 건조 작업을 거쳐 최종 품질 체크가 실시되고, 합격한 카카오 빈즈만이 마대자루(麻袋, 표준 60kg)에 넣어져 세계 각지로 수출된다.


"좋은 느낌으로 건조되고 있네"


일본은 온난습윤(温暖湿潤) 기후이며, 오래 이어진 장마(梅雨)의 영향도 있어 노지에서의 천일 건조가 어렵다. 그래서 시즈코는, 당초 비닐하우스 내에서 천일 건조를 하려고 생각했다.

그러나, 비닐하우느 내부는 온천의 폐탕(廃湯)이 지나가고 있어 대단히 온도가 높은 환경이 되어 있었다. 명백하게 건조 공정에 부적절한 환경이었기에, 새롭게 폐자재(廃材)나 단재(端材)를 유용한 소형의 비닐하우스(투명 팩티스(factice)로 된)를 지었다.

금후의 재배 확장에 따라 언젠가는 대형의 건조 시설이 필요해지겠지만, 당분간은 이 시설로 운용하게 된다. 건조를 주목적으로 하고 있기에, 통기성(通気性)을 중시한 설계가 되어 있고, 목재가 많이 사용되었다.

값비싼 투명 팩티스를 사용하는 부분이 천정 부분만이기에, 보는 느낌상으로는 비닐하우스라기보다 천창(天窓)이 달린 헛간(納屋)에 가깝다.

전용의 설비를 준비한 덕분도 있어, 비가 오는 날도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카카오 빈즈는 잘 건조되어 있었다. 하지만, 여기까지 해도 '초콜렛의 재료가 만들어졌다'라는 것 뿐이며, 초콜렛으로 만들려면 추가적인 작업이 기다리고 있었다.


"다음은 카카오 빈즈를 카카오 매스(cacao mass)로까지 가공해야지"


건조를 마친 카카오 빈즈는 당연히 단단한 외피(外皮)에 감싸여 있어, 카카오 매스로 가공하려면 이것을 제거하여 알맹이를 꺼낼 필요가 있다.

그 때문에, 우선 카카오 빈즈를 가볍게 볶아서 외피(husk)에 금이 가게 한다. 이어서 수차(水車)를 동력으로 하는 분쇄기에 넣어 카카오 빈즈를 거칠게 분쇄한다.

분쇄된 카카오 빈즈를 풍구(唐箕, 볍씨(籾) 선별용(選別用)의, 수차 동력을 사용한 대형의 것)과 체(篩)를 사용하여 외피를 제거한다. 남은 배젖(胚乳, nib) 부분을 카카오 닙(cacao nib)이라고 부른다.

이 닙에는 지방질(脂質)인 카카오 버터(cacao butter)가 중량비(重量比)로 보면 5할 이상이나 포함되어 있다. 이 닙을 잘게 갈아서 페이스트(paste) 상태로 만드는 것을 마쇄(磨砕)라고 부른다.

이쪽도 수차 동력에 연결된, 기술자 마을(技術街)의 기술자 근제(謹製)의 마쇄기(磨砕機)에 의해 닙은 자잘한 조각으로 분쇄된다. 잘게 마쇄됨에 따라 함유되어 있는 카카오 버터가 유리(遊離)되어, 마찰열(摩擦熱)에 의해 녹으면서 페이스트 상태로 바뀌는 것이다.

마쇄기의 최종 공정인 롤러 부분에서, 복수의 롤러 사이를 통과하여 페이스트 상태가 된 카카오 매스가 반출된다. 이 카카오 매스는 롤러에 달라붙어 있기에, 철제 칼날이 이것을 긁어내어 꺼내어진다.

현대의 기계라면 한 번의 작업으로 충분한 입자경(粒子径)이 될 때까지 마쇄되지만, 전국시대의 원시적인 기계에 거기까지의 정밀도를 요구하는 것은 가혹하다.

따라서 꺼내어진 페이스트 상태의 카카오 매스를 다시 마쇄기에 걸어, 반복 처리하는 것으로 정밀도를 보완한다.


이렇게 매끄러운 페이스트 상태가 된 카카오 매스는, 설탕과 무당연유(無糖練乳, 전분유(全粉乳)가 이상적이지만 제조 난이도가 높아서 포기했다)와 혼합되어, 오랜 시간에 걸쳐 뒤섞이게 된다.

카카오 매스의 본질은 유지(油脂) 성분으로, 액당(液糖)이나 통상의 우유(牛乳)와는 잘 섞이지 않기 때문에, 수분을 극력 제거한 상태에서 혼합시킨다. 그래도 페이스트 상태의 물체에 분말 등을 녹이는 데는 시간이 걸리며, 게다가 큰 저항이 걸리기에 강한 힘이 필요해졌다.

그 때문에, 여기서 사용하는 혼합기(믹서)의 동력은 축력(畜力)이 된다. 봉에 매여 혼합기의 주위를 빙글빙글 도는 소의 모습은, 가내수공업(家内制手工業)을 방불케 했다.

그렇게 완성된 것은 초콜렛 도우(chocolate dough)라고 불리며, 초콜렛을 초콜렛답게 하는 특색있는 공정으로 진행된다.


1880년에 스위스의 루돌프 린츠(Rudolphe Lindt)에 의해 탄생되어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100년도 넘는 세월동안 초콜렛 제조의 심장부라 불리는 것이 콘칭(conching) 공정이다.

콘칭이란, 간단히 표현하면 '반죽하는(練る)' 작업이다. 마쇄된 초콜렛 도우를 콘체(conche)라고 부르는 기계로 끊임없이 반죽한다.

장시간 쉬지 않고 일정한 속도로 반죽하기 때문에 다시 수차가 동력이 되어 콘체를 움직인다. 이 콘칭을 하는 것에 의해 도우에서 유분(油分)이 스며나와 서서히 연화(軟化)를 시작한다.

원초(原初)의 콘체로는 72시간 걸렸다고도 할 정도로 오랜 시간을 들여 반죽하는 것에 의해, 수분이나 불쾌한 냄새의 원인이 되는 성분이 증발하고 제거되어 특유의 아로마(aroma)가 피어나기 시작한다.

계속 반죽하는 것으로 수분과 유분이 섞이는 '유화(乳化)'가 진행되어, 걸쭉한 초콜렛 특유의 식감(舌触り)이 생겨난다.

이 공정을 마친 후, 다시 템퍼링(tempering)이라 불리는 온도조정을 행하여 카카오 버터의 결정 구조(結晶構造)를 정렬하는 것에 의해, 반질반질(艶やか)하고 식으면 단단히 굳은 초콜렛이 된다.

현대인이라면 당연하게 먹을 수 있는 초콜렛 과자지만, 그 뒤에는 실로 수고스러운 제조 공정이 존재하고 있다.


시즈코는 완성형을 알고 있기 때문에 망설임없이 제조를 진행할 수 있지만, 제법이 고안될 때까지는 대단히 긴 역사가 있었다.

카카오는 16세기에 유럽에 전래되었으나, 19세기에 초콜렛의 4대 혁명이라 불리는 기술 혁신이 등장할 때까지 초콜렛이라는 것은 음료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단, 당시의 초콜렛은 현대의 코코아 같은 것과는 다른, 쓴맛이 강하고 대단히 기름진 것이었다. 그 때문에, 당초에는 기호품(嗜好品)이라기보다 약으로 취급되어, 빈말로도 맛있는 음료는 아니었다.


그 후, 오랫동안 약으로 쓰인 초콜렛이었으나, 19세기에 들어서자 다양한 기술 혁신이 일어났다. 그 선구(先駆け)라고도 불리는 발명은, 네덜란드의 식품 메이커 '반 호텐(Van Houten)'에서 태어났다.

반 호텐의 창업자인 카스파루스 반 하우텐(Casparus van Houten)은, 1828년에 카카오 빈즈에 50% 이상이나 함유되어 있는 카카오 버터를 유압식 압착기에 넣어 절반 정도까지 줄이는 방법을 고안해냈다.

게다가 건조시킨 카카오 매스를 잘게 부숴 분말 상태로 만드는 것으로 뜨거운 물에 녹기 쉬운 코코아 파우더로서 유통시켰다.

그 뒤를 이은 2대 업주 콘라드 요하네스 반 하우텐(Coenraad Johannes van Houten)은, 카카오 빈즈를 알칼리 용액으로 처리하는 방법인 '더치 프로세스(Dutch process)'를 개발한다. 이것으로 발효 과정에서 생산된 산을 중화시켜, 수용성을 높인 '코코아'가 탄생한다.


이 기술 혁신을 계기로 1847년에 뜨거운 물에 녹이지 않고 직접 먹을 수 있는 고형 초콜렛을 고안하고, 1875년에 주식회사 네슬레(Nestlé)의 창업자 앙리 네슬레(Henri Nestlé)가 더욱 부드러운 밀크 초콜렛을 개발했다.

4대 혁명의 마지막은, 1879년에 루돌프 린츠가 우연의 산물(여러가지 설이 있음)로서 입 안에서 녹는 부드러운 초콜렛(후에 린츠 초콜렛이라고 부르는 브랜드가 된다)을 만드는 데 있어 중요한 콘칭 제법을 발견했다.


이들 4대 발명이 탄생하자 스위스에 린츠 사, 네슬레 사, 영국에 캐드베리(Cadbury) 사, 미국에 허쉬(Hershey) 사 등의 초콜렛 기업이 탄생하여, 공장에 의한 대량생산에 의해 그때까지 고급품이었던 초콜렛이 일반 대중도 접할 수 있는 것이 되어 보급되기 시작하게 된다.

여담이지만, 인류에게는 맛있는 감미(甘味)일 뿐인 초콜렛이지만, 개나 고양이에게는 유해한 물질이 된다. 초콜렛에는 테오브로민(theobromine)이라 불리는 크산틴(Xanthin) 유도체(誘導体)가 존재한다.

이것은 카페인 등의 친척으로, 인간에게는 어지간히 대량으로 섭취하지 않는 한 해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개나 고양이 등은 테오브로민의 대사속도(代謝速度)가 느려서, 과도한 흥분상태나 탈수증상을 일으켜, 최악의 경우에는 죽게 된다.


"콘칭은 하루 이상 걸리니까 얼른 시작하자"


각종 원료를 투입하고, 수차 동력을 전달받은 콘체가 가동을 시작했다. 이후에는 정기적으로 상태를 지켜보면서 다 반죽되기를 기다릴 뿐이다.

이리하여 약간의 여유를 얻은 시즈코였으나, 거기에 또다시 태클(横やり)이 들어왔다.


"……하아, 머리가 아프네"


전령이 가지고 돌아온 편지를 읽고, 시즈코는 자기도 모르게 탄식했다. 편지의 내용은 카가(加賀) 일향종(一向宗) 토벌의 건으로, 극력 관여하지 않으려 하고 있었지만, 일이 나쁜 쪽으로 진행된 모양이었다.

시바타(柴田)는 관계자를 모아 작전회를 여는 게 아니라, 시즈코의 생각을 결정사항으로서 문서화하여 각 무장에게 통지했다. 현장에서 직접 이야기를 들었던 시바타들조차 곧바로 이해하지는 못했던 내용이니만큼, 항목별로 적은(箇条書き) 문장을 받기만 한 무장들은 곤혹스러워했다.

아쉽게도 시바타 자신이 보냈었던 문서는 첨부되어 있지 않아서 어떤 내용이 적혀 있었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시즈코 쪽으로 문의가 온 이상 치명적으로 설명이 부족했을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시바타의 문서는 시즈코가 발안자라고 적혀있었던 모양이라, 편지를 통한 우원(迂遠)한 연락이 아니라, 모여서 작전회의를 열고, 그 자리에 시즈코도 참가해 줬으면 한다고 적혀 있었다.


(확실히 시바타 님은 주인의 의도에 관계없이 명령받은 것을 우직하게 수행하는 분이니 어쩔 수 없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 결론에 이르게 된 경위라던가 하는 것도 당연히 알고 싶겠지……)


작전회의에서 시즈코에게 기대되는 역할은, 초안(草案)의 내용을 전원에게 알기쉽게 전달하여 구체적인 계획으로 구현하는 군사(軍師)이다.

편지를 보낸 것이 시바타가 아니라 미츠히데(光秀)나 히데요시(秀吉)였다면, 두 사람 다 책모를 구사하는 지장(智将) 타입이기에, 주도면밀한 사전 교섭(根回し)을 한 후에 작전회의를 열었으리라.

그에 반해 시바타는 '공격하는 시바타에 물러나는 사쿠마(かかれ柴田に退き佐久間)'라고 평가되었듯, 선봉을 맡는 일이 많은 저돌맹진(猪突猛進) 타입의 맹장(猛将)이다. 일단 명령이 떨어지면 망설임없이 따르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으리라.

그러나, 제대로 설명도 듣지 못하고 전쟁터에 나서는 호담한 사람은 많지 않다. 당연히 그런 명령은 따를 수 없다고 거부하게 되어, 시바타로서는 몸을 사리는 겁쟁이라며 격앙하게 된다.

이러한 쌍방의 어긋남이 악순환을 낳아, 양자의 골이 결정적인 수준으로 깊어지기 전에 시즈코가 호출되었다.


"이 얘기, 조절(匙加減)을 잘못하면 카가 일향종 정벌이 문제가 아니게 되겠네"


카가 일향종 정벌의 총대장은 시바타이다. 총대장의 명에 따르지 않는 집단 따위 이미 군이라고 부를 가치가 없다. 카가 일향종은 어쨌든 수십 년에 덜쳐 카가를 계속 통치하고 있다.

군으로서의 통솔을 잃은 상태에서 상대할 수 있는 적일 리가 없다. 뭣보다 카가 일향종은, 나가시마(長島) 일향종보다도 광신적(狂信的)이라는 정보가 시즈코에게는 들어와 있었다.

종교적인 열광이라는 것은 탄압받을 수록 불타오른다. 그 신앙심을 무기로 집단으로 묶어 제어하고 있는 지휘 중추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일정을 볼 때 사전 교섭은 무리겠고…… 어느 정도 애드립으로 해결할 필요가 있으려나. 우선 판단 재료가 없으면 이야기가 되질 않으니, 파벌이나 세력간의 정보를 파악하자"


그렇게 중얼거린 시즈코는, 쇼우(蕭)와 아야(彩)에게 명령을 내렸다.




6월 하순이 되자 겨우 작전회의가 열렸다. 전혀 진척을 보이지 않은 가신들의 모습에 노부나가가 짜증을 내고 있다는 소문이 그럴듯하게 퍼지고 있었다.

작전회의의 장소는 시즈코가 운영하는 학교의 강당이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한 곳에 모일 수 있을 만한 넓이가 있고, 주위에 숨을 수 있는 장소 같은 게 없었기에, 병사들을 숨겨놓거나 무기를 숨겨놓거나 하는 좋지 않은 생각을 할 도리가 없었다.

회장의 경비는 시즈코 직속의 부대가 맡고, 주도면밀한 밑조사를 한 후에 사람들을 물려놓았다. 회장에는 시바타나 미츠히데, 히데요시 같은 주요 무장들은 이미 도착해 있었고, 다른 무장들도 속속 모여들고 있었다.

그러나, 시바타의 문서가 야기한 불신감은 어떻게 할 수 없는지, 다들 각자 불만을 감추려고도 하지 않아 시작하기 전부터 찌릿찌릿(ギスギス)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다.


"……이상이 제 생각(案)입니다"


총대장인 시바타의 체면도 있기에, 시즈코는 흑판을 끌어내서 그림이나 도형을 그려가면서 문서의 내용을 '보충하는' 형태로 자신의 생각을 설명했다.

고생한 가치가 있었는지, 무장들의 반응은 아주 좋았으며, 시바타의 지시가 황당무계한 것이 아니라고 납득할 수 있었다는 표정을 떠올리고 있었다.

하지만, 여기까지의 설명은 스타트 라인에 지나지 않는다. 카가 일향종을 전쟁터에 세울 때까지의 무공을 따지지 않고, 그 후의 성과에 따라 무공을 정한다는 큰 줄기는 전해졌다.

그럼, 구체적으로 누가 어떤 역할을 맡아서, 어떤 위치에 포진하느냐라는 구체적인 작전으로 작전회의가 진행되었다. 이렇게 되면 시즈코가 나설 일은 없고, 모두의 생각이 일치될 때까지 듣는 역할에 충실하기로 했다.

전원이 결론이 나지 않는 작전회의에 피로를 느꼈을 무렵, 미츠히데가 주위를 둘러보면서 말했다.


"흠…… 이대로는 끝이 안 나겠군요. 누구나 조금이라도 자신에게 유리한 위치를 원하기에 이야기가 전혀 결판이 나질 않는군요"


작전회의가 분규하여 하나같이 짜증을 느끼고 있을 때, 미츠히데가 일부러 누구나 뻔히 알고 있는 이야기를 하면서 안 그래도 나쁜 분위기를 굳혀 버렸다.

시즈코는 미츠히데의 분위기 파악 못하는 점, 융통성 없음에 한숨을 쉬고는, 슬슬 때라고 생각하며 손을 들어 목소리를 냈다.


"발언의 허가를"


"말씀하십시오"


모두가 미츠히데의 무책임한 말에 노기를 띠는 가운데, 시바타가 즉시 허가했다.


"아케치(明智) 님께서 지적하신 것처럼, 이대로는 무의미하게 시간만 낭비할 뿐입니다. 여기는 일단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포진부터 확정해가는 게 어떨까요? 이 작전회의에 앞서 여러분의 상황을 조사했습니다. 애초에 완전히 평등한 배치 따윈 불가능하니, 큰 부분을 굳힌 후에 세부적인 것을 좁혀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참고로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포진이라는 것을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


타케나카 한베에(竹中半兵衛)가 시즈코에게 자세한 내용을 물었다. 시즈코가 한베에의 주인인 히데요시를 보자, 그는 시즈코를 향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보고, 히데요시의 사정(窮状)을 작전회의 자리에서 공표해도 상관없다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럼…… 하시바(羽柴) 님께는 군비(軍備) 제공을 맡아주십시오. 새 영지인 오우미(近江)는 아직 수확이 안정되지 않고, 이마하마(今浜)에의 투자로 군자금이나 군수물자의 비축이 충분치 않다고 들었습니다. 자금이나 물자는 저희 군이 제공하고, 그걸 각처에 전달하는 병참(兵站)의 일익(一翼)을 맡아줄 인원을 보내주셨으면 합니다"


"그 제안에 감사드립니다. 부끄럽지만, 이마하마는 전쟁피해(戦災) 복구(復興)가 한창입니다. 치안유지를 위해서도 병사는 필요하며, 나라(国許)를 비울 수도 없습니다. 빌려주신 자금이나 물자는, 세수가 안정되는대로 서서히 갚겠습니다"


히데요시와 눈짓을 교환한 한베에가 대답했다. 적지 않은 빚을 지게 되지만, 없는 건 어쩔 수 없다(無い袖は振れない). 히데요시로서도 스스로 말을 꺼내지 못한 약점을 밝히고 빚을 지면서까지 돈과 병사를 내놓은 것으로 일단 체면이 선다.

합격점을 받은 것에 시즈코는 휴 하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럼, 다음으로 아케치 님입니다만, 아케치 님께는 카가 일향종이 에치젠(越前)으로 도망치지 못하도록 견제해 주십시오. 그 때, 저희 군의 텟포슈(鉄砲衆) 300과 충분한 탄약을 제공하겠습니다. 거기에 산악 소탕전(山狩り)에 능한 병사와 군용견(軍用犬) 등을 예비병으로 5000 빌려드리겠습니다"


미츠히데에게는 카가 일향종이 에치젠으로 도망치지 못하도록 국경을 굳히는 역할을 담당하게 한다. 중심적인 인물이 한 명이라도 살아 도망치면 재기할 가능성이 있기에, 다른 사람보다 병사를 동원하기 쉬운 미츠히데가 적임이라 할 수 있었다.

숙련된 텟포슈 300으로 도로를 봉쇄하면, 얼마 안 되는 군세로는 도저히 돌파할 수 없는 방벽을 칠 수 있다. 길 아닌 길을 가려 해도, 군용견을 데리고 있는 병사들이 순찰하는 산을 빠져나가는 것은 어렵다.


"시즈코 님의 배려, 감사드립니다"


시즈코의 추가 파병에 의해 미츠히데는 유격군(遊撃軍)을 조직할 수 있어, 카가 일향종 공격에 돌릴 병력을 늘릴 수 있다. 이 두 사람의 포진이 결정되면, 나모지는 자동적으로 분배가 시작된다.

총대장은 시바타이기에, 시바타 파의 무장들이 정리되고, 이어서 아케치 파의 무장들이 에치젠 부근을 담당하게 된다. 하시바 파의 무장들이 조금 손해를 보는 모양새가 되지만, 대신 소모를 적게 억누를 수 있기에 표면적으로 불만을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시즈코의 발언으로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한 작전회의는, 시즈코가 총대를 메어(身を切った) '세 사람이 한 냥씩 손해봄(三方一両損, ※역주: 고전 만담(落語)의 내용으로, A라는 사람이 3냥을 주워서 본래의 주인인 B에게 가져다주었는데, B는 일단 떨어뜨린 이상 자기 것이 아니라며 받지 않아 다툼이 일었고, 이 이야기를 들은 영주 C가 1냥을 더하여 A와 B에게 2냥씩 나누어주어, A는 3냥을 주웠는데 2냥만 가지게 되었고, B는 3냥을 떨어뜨렸는데 2냥만 돌아오고, C는 1냥을 내주었으니 세 사람이 각각 1냥을 손해보았다는 이야기라 함)'으로 간신히 수습되었다.

한 번 치명적인 불화를 불러오게 되면, 아무리 오다 군이라고 해도 내부 붕괴는 면할 수 없다. 시즈코는 일시적으로 손해를 보더라도 오다 군 전체로서 이득을 보는 쪽을 택했다.

한 때는 붕괴의 위기에 빠졌던 작전회의는 차질없이 끝나, 시바타가 마무리의 말을 했다.


"그럼 여러분, 결코 준비를 게을리하지 마시오"


이 말과 함께 작전회의는 해산되었다.


이 이야기는, 며칠의 시간을 두고 노부나가의 귀에도 들어갔다. 노부나가는 보고를 다 듣더니, 매우 좋은 기분으로 각자의 행보(行く末)를 지켜보기로 했다.

한편, 시즈코는 위장이 아파질 듯한 작전회의가 끝났기에 어깨에서 힘을 빼고 있었다. 작전회의 전부터 준비를 진행했기에, 각각의 무장에 대한 지원에 관해서는 이미 시즈코의 손을 떠난 상태였다.


다시 자유로운 시간을 짜낼 수 있었던 시즈코는, 중단했던 초콜렛 제작을 재개했다. 콘칭이 끝나, 식혀서 굳힌 초콜렛을 꺼낸 후, 마지막 공정인 템퍼링에 착수했다.

템퍼링이란 온도조정이며, 우선 중탕(湯煎)을 이용해 초콜렛을 50도 가까이 가열하여 녹인다. 액상화된 초콜렛을 중탕에서 꺼내, 얼음물 등을 이용하여 28도 전후까지 식힌다.

그 후, 다시 중탕에 넣어 초콜렛을 덥혀, 30~32도 정도의 온도를 유지한다. 이 템퍼링의 온도는 초콜렛 메이커나 초콜렛의 종류에 따라 달라진다.

시즈코의 경우에는 불순물이 많을 것을 상정하여, 여유를 두고 온도 설정을 했다.


이리하여 매끄러운 상태로 마무리된 초콜렛을, 사전에 준비해 둔 틀에 부어넣고 식히면 완성된다. 이상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에이징(aging)이라 불리는 정온 창고(定温倉庫)에서의 숙성기간이 필요하지만,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 것이라며 포기했다.

초콜렛으로 완성되어 버리면 유통기간이 3개월 정도로 한정되어 버린다. 이 때문에, 이번에 사용하지 않은 분량은 콘칭 전의 카카오 매스 상태로 보존하기로 했다.

식혀서 굳힌 카카오 매스 상태라면, 온도만 주의하면 1년 동안은 보존이 가능해진다.


"엄청나게 손이 많이 갔지만, 드디어 완성이다! 음ー…… 아무래도 현대의 시판품보다는 몇 등급 떨어지네. 뭐, 가루가 날리지 않은 것만 해도 어디야"


식혀서 굳힌 초콜렛을 틀에서 떼어내어 접시 위에 담았다. 박리(剥離)가 잘 되지 않은 것, 금이 간 것 등을 제외하고, 보기 좋은 것들을 선별하여 노부나가에게 헌상할 분량으로 삼았다.

시즈코는, 박리에 실패해 쪼개진 초콜렛 조각을 입에 넣고 천천히 맛을 음미했다.


"기억에 있는 초콜렛은 좀 더 부드럽게 녹았지만, 혀 위에서 껄끔거리는데다가 목구멍에 달라붙네……"


시즈코는 불만스럽게 투덜댔지만, 함께 시식할 기회를 얻은 남자들은 놀라고 있었다.


"세상에! 입에 넣었을 때는 카키모치(かき餅) 처럼 딱딱한데, 입 안에서 곶감처럼 녹았다!"


"와하핫, 뭐야 이게? 쓴 건지 단 건지 잘 모르겠어. 하지만, 이 맛은 술에 어울릴 것 같군"


헌상품의 준비를 하고 있는 동안, 초콜렛의 실패작은 케이지(慶次)들의 뱃속으로 들어갔다. 미지의 식감과, 긴장되는(引き締まる) 쓴맛과, 그 뒤를 잇은 단맛에 매료되어, 초콜릿은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당신들, 먹는 건 좋은데 말이에요, 좀 더 맛을 음미해줬으면 하는데요? 그거 만드는 데 엄청나게 고생했거든요?"


"미안미안. 먹기 시작하니까 멈추지 않아서 말야"


"하여튼…… 주상께 헌상하러 갈 거니까, 외출 준비를 해둬요"


그 말만 하고 시즈코는 숨겨들고 있던 접시를 안고 저택으로 들어갔다. 목표한 인물은 금방 발견되었다. 예상외의 진객(珍客)을 데리고 있었지만.


"시즈코 님, 주상께 가신 게 아니었나요?"


아야가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진객, 즉 챠챠(茶々)와 하츠(初)가 목덜미를 붙잡혀 끌려가고 있는 것 보니, 또 짓궂은 장난이라도 쳐서 연행되고 있던 거라고 짐작했다.


"응. 그 전에 잠깐 용무가 있어서 말야. 아야 짱, 입을 벌려. 거부권은 없어. 이건 명령이에요"


"그 손에 들고 계신 것과 관계있는 거군요? 알겠습니다. 명령이라고 하시면 이의는 없습니다"


챠챠와 하츠를 마룻바닥에 굴려놓은 채로 아야는 얌전히 시즈코 앞까지 가더니 순순히 입을 벌렸다. 소위 말하는 아ー 라는 상황인데, 의외로 창피하게 느껴져서 시즈코는 헛기침을 한 번 하고는 아야의 입에 초콜렛 조각을 던져넣었다.

처음에는 씹지 않고 혀로 햝아 확인하던 아야였으나, 금방 눈을 크게 떴다. 입 안에서 초콜렛이 녹기 시작한 것이다. 뚜렷하게 모양을 갖춘 고형물(固形物)이 이렇게 녹아버리는 것이 기묘하게 생각된 것이리라.

눈을 껌뻑거리면서도, 그녀가 초콜렛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신기한 음식이군요. 단단하면서도, 전에 먹었던 물엿(水飴)처럼 녹아 사라졌습니다"


"맛있지?"


"그러네요. 신기한 향기와 녹는 단맛, 조금 씁니다만 마음에 들었습니다"


아야의 기준을 만족시켰는지, 그녀는 평소답지 않게 부드러운 미소를 떠올리고 있었다. 평소의 포커 페이스가 무너질 정도였으니 만든 보람이 있다고 시즈코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시즈코ー, 나도ー, 아ー"


"아ー"


하지만 챠챠와 하츠의 목소리에 제정신을 차린 아야는, 평소의 포커 페이스를 떠올리고는 다시 챠챠와 하츠를 구속했다.


"우선은 야단을 맞은 다음입니다"


"하나 정돈 상관없어. 아야 짱의 흐트러진(デレた) 얼굴도 볼 수 있었으니까"


그렇게 말하며 먹이를 조르는 아기 새처럼 입을 벌리고 기다리고 있는 챠챠와 하츠에게 초콜릿을 던져넣어주었다. 그녀들은 즉시 씹어버렸지만, 그래도 입 안에서 녹는 초콜렛에 눈을 빛냈다.


"달아ー, 맛있어ー, 하나 더ー"


"하나 더ー"


"안 됩니다. 간식은, 야단을 맞으신 다음입니다"


아야에게 질질 끌려가면서 둘은 초콜렛을 하나 더 달라고 졸랐다. 아야는 따끔하게 호통을 친 후, 용서없이 둘을 끌고갔다.

어떻게든 탈출하려고 둘은 몸부림쳤으나, 아야도 익숙해져서 어린아이(幼子)의 탈출은 불가능했다.


"남겨둘테니까, 제대로 사과하면 먹어도 좋아요ー"


"남지 않을게다. 남은 건 내(妾)가 먹을테니"


시즈코가 멀어지는 둘에게 말할 때, 갑자기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돌아보는 것과 동시에, 손에 들고 있던 접시의 무게가 사라졌다. 주위를 둘러보니, 시즈코에게서 접시를 빼앗아 초콜렛을 입으로 가져가는 이치(市)가 보였다.


"오랜만이구나, 시즈코. 별 일은 없느냐?"


"오이치(お市) 님, 언제 오셨나요?"


"아까 언니(義姉上, 노히메(濃姫))와 함께 왔다. 언니는 방에서 쉬고 계시니, 내가 시즈코를 부르러 왔느니라"


얼마 전부터 이치는, 출산을 위해 한동안 시즈코의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아자이(浅井) 세자매 중 막내인 고우(江)이다. 무사히 출산했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난산(難産)이었기 때문인지 회복을 위해 한동안 입원한다고 했다.

퇴원했다는 소식은 없었는데 환자 본인인 이치의 등장에 시즈코는 크게 놀랐다.


"오이치 님, 이제 몸은 괜찮으신 건가요?"


제아무리 아야라도 어머니인 이치 앞에서 챠챠와 하츠를 끌고 갈 수도 없어, 두 사람을 놔주고 고개를 숙였다.


"덕분에 좋아졌느니라. 미리 연락도 없이 찾아온 것이니 딱딱한 인사는 필요없다. 이거 참 신기한 맛이구나"


"어머니ー, 저도ー!"


"도ー"


"안 된다. 너희들은 유모에게 야단맞고 오거라"


"부ー, 치사해요ー"


접시를 향해 손을 뻗는 챠챠와 하츠였으나, 이치는 접시를 높게 들어올려 방어했다. 의외로 예절교육에 엄격한 모습을 흐뭇하게 생각하였으나, 지적했다가 괜히 긁어 부스럼이 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았기에 시즈코와 아야는 사태를 조용히 관망하기로 했다.


"그런데, 오늘은 어떤 일로 이쪽으로 오셨는지요?"


"아니, 시즈코에게 용무가 있었다만, 오라버니가 계신 곳으로 간다고 들었다. 아무리 나라도 오라버니를 앞지를 수는 없지. 시즈코가 돌아오는 것을 기다려 이야기하도록 하겠느니라"


"(그건, 우리 집에서 묵으신다는 것 결정이네요) 알겠습니다. 그럼, 돌아오는대로 연락을 드릴테니, 그때까지 편하게 쉬고 계십시오"


"음, 부탁한다. 에잇, 그렇게 부어있지 말거라. 언니께 드린 다음, 너희들에게도 나누어줄테니, 어서 일을 보고 오너라"


시즈코의 대답을 듣고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인 이치는, 볼이 부은 챠챠와 하츠에게 말하고 조용히 떠나갔다. 우아하고 부드러운 몸짓과는 대조적으로 폭풍 같은 사람이라고 시즈코는 생각하면서 노부나가가 있는 곳으로 갔다.




기후 성(岐阜城)에 등성(登城)하자, 시즈코는 다실(茶室)로 안내되었다. 노부나가는 결정사항을 주지(周知)할 때는 큰 방(広間)에서 회담을 갖지만, 다실로 안내될 때는 비밀스런 이야기가 된다.

시즈코로서는 다실 따위는 근처에도 가고 싶지 않지만, 의외로 안내되는 기회가 많아서 이미 달관(諦観)의 경지에 올라 있었다.

평소와 같이 허리에 차고 있던 칼을 맡기고, 손발을 씻고, 실내의 노부나가에게 말을 걸어 대답을 받은 후, 작은 출입구(躙り口)로 다실로 들어갔다.

칼을 맡기는 행위는 다실에 가지고 들어가는 건 풍류가 없다(無粋)는 면도 있지만, 상대에게 목숨을 내맡기는 자세를 나타내기 위함이기도 하다. 밀실인 다실로 초대받는 것은 노부나가로부터의 신뢰의 증거이며, 무기를 맡기고 빈손으로 들어가는 것은 그에 답하는 의식(儀式)으로서의 일면을 가진다.

입실 전에 손발을 씻는 것도, 위생적인 면도 그렇지만 손발에 독을 묻히지 않았다는 증명이 된다. 이러한 절차를 거쳐 겨우 다실로 입실할 수 있다.


"실례합니다"


보온용의 질산암모늄(硝安)을 넣었기에 의외로 나무 상자가 커서, 우선은 초콜렛이 든 나무상자가 다실로 들어가고, 이어서 시즈코가 들어갔다.

물론, 헌상품인 초콜렛은 시식시종(毒見役)이 독이 없다고 확인한 것을 반입한 것이다. 다실에 들어가자 먼저 온 사람이 있었다. 본래는 쿄(京)에 있어야 할 미츠히데였다.

그는 시즈코를 보고는 작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고, 시즈코도 당황해서 마찬가지로 인사를 했다.


"시즈코는 여전히 사람을 애타게 하는 게 능숙하구나"


"죄송합니다. 서둘러 왔습니다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상관없다. 농으로 말한 것 뿐이다. 낑깡, 너도 먹어보아라"


바로 헌상된 초콜렛에 손을 댄 노부나가가, 나무 상자를 미츠히데 쪽으로 돌렸다. 품에서 회지(懐紙, ※역주: 접어서 품에 지니는 종이(과자를 나누거나 술잔을 씻을 때 씀))를 꺼내 공손하게 초콜렛을 집어올린 미츠히데였으나, 반들거리는 윤기를 띤 갈색의 물체를 앞에 두고 굳어 있었다.

사전에 이야기를 듣지 못했더라면 도저히 먹을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으나, 주인인 노부나가가 권한 이상에는 각오를 굳히고 먹을 수밖에 없었다.

순간적인 텀을 거쳐 미츠히데는 초콜렛을 입에 넣었다. 처음에는 눈살을 찌푸렸던 그도, 서서히 부드러운 표정을 떠올렸다.


"신기한 식감입니다. 손으로 잡을 수 있는데, 입 안에 넣으니 갓 만든 떡(餅)처럼 흩어지며 훨씬 부드럽게 녹습니다"


노부나가가 두 개째에 손을 뻗고, 이어서 미츠히데도 그에 따랐다. 두번째 이후에는 두 사람 다 주저없이 입에 던져넣었다. 잠시 동안 말없이 초콜렛을 맛보고 있었으나, 이윽고 만족했는지 초콜렛 상자를 옆으로 밀었다.

다실의 온도에 녹으면 곤란하기에, 보냉제(질산암모늄)가 든 팩티스 자루를 넣고 나무 상자의 뚜껑을 덮었다.


"자, 미지(未知)의 과자를 즐겼으니, 본론으로 들어가자. 너희들도 알고 있겠지만, 호죠(北条)에 수상한 움직임이 있다. 키묘(奇妙)가 토우고쿠(東国) 정벌에 나서면, 반드시 부딪히게 되겠지"


"강화(和睦)를 목적으로 일전을 겨룰 생각일까요?"


"낑깡의 말대로, 나와 창칼을 맞대어 토우고쿠에는 호죠가 있다고 드러낸 후에 강화할 속셈이겠지"


노부나가는 전부터 호죠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었다. 적으로 돌아서던 노부나가의 밑으로 들어오던, 어느 쪽을 선택해도 즉시 대응할 수 있도록 호죠 가문에 관한 최신 정보를 수집하도록 지시해두었다.

그리고 매일 전달되는 정보에서 호죠 가문의 주류파가 오다 가문과 교전하는 방향으로 뭉치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상대가 처음부터 절충안(落としどころ)을 생각하고 있다면, 예전에 시즈코에게 말했던 계획이 빛을 보게 된다.


"타케다(武田) 가문의 무위(武威)를 꺾고 우에스기(上杉) 가문도 끌어들인 지금, 토우고쿠에 대한 준비(仕込み)는 거의 끝났다고 할 수 있지. 그러나, 호죠 가문이 명확하게 우리들과 적대할 자세를 드러낸 경우, 이쪽에 이점이 생긴다"


"호죠 가문과 싸움을 하여 패하거나 또는 비기도록 하여, 오다 가문에 대해 적대적인 세력을 색출한다, 라는 것입니까?"


"그 말 대로다. 타케다가 대패를 맛보고 우에스기가 우리들에게 항복한 지금, 호죠는 토우고쿠 최후의 대국(大国). 그렇기에 놈들이 '기대를 품는 상황'를 연출할 필요가 있다"


말할 것도 없이 반 오다 연합이 기대하는 결과란, 토우고쿠의 영웅(雄)인 호죠가 일어나 오다 가문을 패배시키는 것이다.


"시즈코, 너는 상황을 만들어라"


"옛"


"낑깡은 그 후, 우리 편(身内)에 숨어있는 배신자, 모반을 꾸미는 자, 내통 등의 수상한 행동을 하는 자들을 모조리 조사해라"


"옛"


"놈들은 충분히 궁지에 몰려 있다. 먹이를 흔들어보이면 검정망둑(ダボハゼ)처럼 달려들겠지. 그 먹이 뒤에 낚싯바늘이 있다고는 꿈에도 생각하고 있지 않을 것이다. 놈들은 바늘에 걸리는 순간 끝장으로, 일망타진하여 쓸어버리겠다"


대국을 내다보고, 큰 승리를 얻기 위해 작은 패배를 받아들인다. 입으로 말하는 건 쉽지만, 실행하는 것은 지극히 어렵다. 상대가 이겼다고 판단할 정도로는 피해를 받아야 하며, 그러면서 그 이상의 피해를 억누르며 철수해야 한다.

이 정도의 어려운 일을 해내기 위해서는, 떄로는 노부타다(信忠)에게조차 비밀을 유지해야 하리라. 노부타다는 시즈코를 완전히 신뢰하고 있기에, 일이 드러난 이후의 일을 생각하면 지금부터 우울한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시즈코, 조정으로부터의 예사(芸事) 보호(保護)는 어찌되고 있느냐"


"호소카와(細川) 님 등 쿄의 유력자들의 조력을 얻어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조사하고 있습니다"


조정에서 받은 역할에 대해 질문을 받았기에 시즈코는 현 상황을 보고했다. 예사 보호라고 해도 하는 일은 지루(地味)하다. 먼저 어디에 뭐가 얼마나 있는지를 파악한다. 그것들을 목록으로 정리하고, 그 중에서 필요한 것과 불필요한 것을 선별한다.

마지막으로 현물(現物)을 확인하여, 문서 종류라면 현물 또는 사본을 얻는다. 회화(絵画)나 골동품(骨董品) 종류라면, 가능하다면 매입하고, 무리라면 소유주를 목록에 등록한다.

사진(写真)이 실용화되었다면 회화 종류에 대해서도 사본을 만들 수 있지만, 사진 기술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연구 성과가 나오지 않았다.


"조급해 할 필요는 없다. 느긋하게 마음먹고 진행하도록"


"옛!"


"음. 그럼 일단 물러가라. 나중에 용무가 있으니, 별실에서 기다리도록"


"알겠습니다. 그럼, 일단 실례하겠습니다"


노부나가는 일단 시즈코에게 퇴석(退席)하도록 명했다. 시즈코는 다실에서 나와서, 란마루(蘭丸)의 안내를 받아 가까운 곳에 지어진 정자(四阿)에서 쉬기로 했다.

최근에는 호리(堀)가 따라붙지 않고 란마루 혼자서 안내를 맡는데, 그는 매번 여러가지 표정(百面相)을 보여주기에 그걸 보면 지루하지는 않았다.

시즈코는 정자에 도착하자 내어진 차를 마시며 가져온 책을 읽었다. 잠시 후 노부나가의 호출이 떨어져, 책을 품 속에 넣고 다시 다실로 향했다.


"요즘에는 많은 일거리를 수하들에게 맡기고 있는 것 같더구나"


"네, 제가 없으면 안 되는 일거리는 적어졌습니다"


예전에 시즈코가 시작한 사업도, 서서히 수하들에게 인계되어, 각각의 분야에 전임(専任) 가신들이 성장하고 있었다. 후미(入り江)에서의 양식 사업(養殖事業) 같은 경우에는 완전히 시즈코의 손을 떠나, 지금은 보고서를 보기만 할 뿐이었다.

이것만큼은이라고 생각하며 계속 유지하고 있던 남국(南国)의 과실(果実) 재배도 앞으로 몇 년만 지나면 시즈코의 손을 떠나기 시작하리라.


"그러면 됐다. 너는 뭐든지 너무 혼자서 끌어안으려고 한다. 남에게 맡길 수 있는 건 맡기고, 너밖에 할 수 없는 것을 해라"


"예"


"뭣보다, 너는 스스로에 대해 너무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다. 가신이나 기술자들의 휴식에는 신경을 쓰면서, 정작 너 자신은 쉬려고 하지 않지 않느냐! 그래서는 아랫사람도 마음 편히 쉴 수 없느니라!"


"예, 예에…… (어째서, 나는 잔소리를 듣고 있는 걸까?)"


갑작스러운 노부나가의 질책에 시즈코는 곤혹스러워졌다. 시즈코의 내심은 신경쓰지 않고, 노부나가의 잔소리는 1각(刻, ※역주: 1각은 약 2시간)이나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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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

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텐쇼(天正) 원년(元年) 키나이(畿内)의 사회기반 정비


117 1574년 6월 중순



4월. 채유(採油) 목적으로 재배되고 있는, 시야 한가득 들어오는 유채꽃(菜の花) 꽃밭이 최전성기를 맞이하여, 오와리(尾張)에 조금 늦게 봄이 왔음을 알리고 있었다.

날이 갈수록 따뜻해지며 사람들도 활동적이 될 시기를 가늠하여 노부나가가 몇 가지 새로운 법령을 발표(発布)했다. 그것은 천황(帝)의 칙허(勅許)를 얻은 전국적인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오다 영지 내부를 대상으로 한 내향적인 것이었다.

오와리나 미노(美濃)는 물론이고, 새롭게 영지로 편입된 에치젠(越前)이나 오우미(近江)도 대상이기에, 영지마다 부칙(附則), 세칙(細則)이 추가되기는 했으나 대체적으로는 3개의 줄기로 구성되는 법령이었다.


첫번째는 '낙시낙좌령(楽市楽座令)'. 이것은 오와리나 미노에서는 당연한 것이 된 내용이지만, 전쟁피해 복구(戦災復興)를 고려하여 새 영지에도 확대한 것이다.

대체적으로는 '특권을 가진 상공업자(商工業者)를 배제한 자유거래시장의 창설과, 그것을 방해하는 자에 대한 벌칙'으로 구성되어 있다.

노부나가의 눈이 미치기 쉬운 오와리, 미노에서 축적된 노하우를 바탕으로, 직할령이 아닌 먼 땅에서의 도입이라는 실험적 시책이라는 측면도 있었다.


두번째는 소위 말하는 '칼사낭령(刀狩り令)'이라 불리는 무구징수령(武具徴収令)이었다. 이쪽도 오와리, 미노에서는 이미 시행되었으며, 새 영지에 대한 법령이다.

당시에는 전쟁 경험이 있는 농민이라면 칼이나 창 등의 무기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수리(水利) 등을 둘러싸고 마을 사이에 분쟁이 발생하면, 이런 무기들이 사용되어 쉽게 사상자가 나는 사태로 발전했다. 그리고 희생자가 또다른 희생자를 불러, 분쟁이 확대해가는 경향이 있었다.

이러한 것을 근본적으로 방지하는 의미에서도 무사(武士) 이외의 사람들은 무구의 소유에 제한을 받는다는 내용이었다. 물론, 권력을 이용해 억지로 빼앗으면 반발을 불러일으키기에, 적절한 이유가 있다면 소유가 인정되었다.

그러나, 이 무구의 소유에는 관리책임이 따라서, 만에 하나 도난당하여 범죄에 사용될 경우, 소유주에게도 엄벌이 가해진다는 간과할 수 없는 리스크가 따라붙었다.

조기에 무장해제에 응할 경우, 무구 대신 오와리 식의 철제 농기구가 지급되었기에 무구의 소유를 고집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마지막 하나가 '정교분리령(政教分離令)'이었다. 이것은 승려에 대한 법론(法論)의 금지와, 위정자에 대한 특정 종교에의 경도(傾倒)를 금지한 것이었다.

전자인 법론(종론(宗論)이라고도 한다)은 교의(教義)가 다른 종교 사이에 발생하는, 각자의 교의의 우열이나 진위를 둘러싸고 벌어진 논쟁이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말싸움이지만, 결판이 나지 않으면 무력에 호소하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처음부터 상대를 병탄(併呑)하기 위해 싸움을 걸어서 무력 투쟁으로 세력을 확장한 법화종(法華宗)같은 예도 있었다.

난세를 종식시키려 하고 있는 때에 새로운 분쟁의 불씨를 흩뿌려서는 본말전도(本末転倒)가 되기에, 이 법령에 관해서는 잘잘못을 따지지 않고 관여한 자들 모두에게 공평하게 엄벌이 가해졌다.

다음으로 위정자에 대한 종교색(宗教色)의 배제인데, 일례로서 승려 등을 부하로 쓰는 경우, 일정한 절차를 밟는 것이 의무화되었다.

또, 위정자 자신에게도 특정 종교에 대한 편들기나 변호(口利き), 그리고 반대로 특정 종교에 대한 부당한 탄압을 금지했다. 예외적으로 종교 세력의 정치 개입에 대한 감시나, 무력으로 이를 진압하는 것은 인정했다.

단, 무력 개입을 할 때는 위정자 이외의 감시역의 승인이 필요하여, 제멋대로(恣意的) 강권을 휘두를 수 없도록 제한되어 있기도 했다.

이를 위반할 경우, 위정자라도 일가족 몰살(根切り)조차 가능하다는 엄격한 처분이 명시되어 있었다.

이 법령에 따라 종교 세력(宗教家)은 정치에 개입하지 않는 한 신앙(信教)의 자유를 인정받고 위정자의 개입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이점도 존재했다.


이 법령들은 오다 영지 내에 한정되는 영국령(領国令)이기에, 발표되어 주지(周知)되는 즉시 시행되었다. 우선 종교 세력(寺社勢力)에 대한 철저한 무장해제가 이루어지고, 이어서 민중으로 그 대상이 바뀌었다.

다음으로 특정 종교를 우대하고 있던 영주는 영지를 몰수당하고 추방당했다. 이것은 우대를 받던 측에도 적용되어, 정치에 개입했다는 이유로 영유지(所領)를 몰수당하고, 관계자 전원이 종교시설(寺社)에서 추방되었다.

당연히 이의나 반론으로 떠들썩했다. 그러나, 노부나가는 그러한 것들을 일체 받아들이지 않고, 기각당했음에도 여전히 격하게 반응하는 자들에 대해서는 마찬가지로 추방 처분했다.

하나라도 예외를 인정하면 조금씩 다른 것도 인정해야 하기에, 최종적으로는 유명무실(形骸化)해지는 것을 노부나가는 이해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노부나가는 단호한 태도를 관철했다.

거기에 소극적인 반항인 사보타주(sabotage)도 인정하지 않았다. 정기적으로 진척(進捗) 상황을 보고하게 하여, 정당한 이유 없이 대처가 늦어질 경우 그게 누구든간에 벌을 내렸다.

반대로 노부나가의 위세를 빌려 종교 세력에 대한 협박이나 탄압을 행한 자는 역시 예외없이 참수되었다. 그리고 철저 항전의 자세를 무너뜨리지 않은 종교단체(寺社)들은 불태워서 씨를 말렸다.

공정하면서 가혹(苛烈). 그것이 노부나가의 정교분리령에 대한 평가가 되었다.


법령이 시행된 후 1개월 쯤 지나자, 공순(恭順)한 경우와 반항한 경우의 예가 쌓이게 되어, 다소의 불리함(不都合)은 있어도 따르는 편이 상책이라고 다들 생각하게 되었다.

이리하여 원활하게 무장해제가 진행되게 되어, 당장 할 일이 없어진 가신들에게 노부나가는 측량(検地)을 실시할 것을 명했다.


"쿠로쿠와슈(黒鍬衆)의 측량반(測量班)이 모두 나가 있는 건 그 때문인가……"


시즈코는 각지에서 밀려드는 쿠로쿠와슈 파견 요청서를 보고 중얼거렸다. 오다 가문에서는 이미 측량 절차가 확립되어 있지만, 신속하고 정확한 측량을 실행할 수 있는 인원이라고 하면 시즈코의 쿠로쿠와슈 이외에는 없었다.

게다가 노부나가가 명한 측량에는, 불필요한 성의 철거가 포함되어 있었다. 결과적으로 대규모의 토목공사가 필요해져, 직접 모두 처리하기보다는 순서를 기다리더라도 시즈코에게 인재파견을 요청하는 쪽이 싸게 먹히게 되었다.


"우선도가 높은 지역은 오우미와 에치젠입니다. 배치(差配)에 관해서는 아시미츠(足満) 님께 확인을 받았습니다"


쇼우(蕭)가 시즈코가 자리를 비운 동안 진행된 내용을 설명했다. 요청서를 받고, 쇼우가 기본 계획의 초안을 잡아, 아시미츠와 노부나가의 승인을 얻은 후에 인재 파견을 하고 있었다.

당초, 쇼우는 선착순으로 요청을 받아 측량지(測量地)의 넓이를 고려하지 않고 일정한 인원을 균등하게 파견하는 계획을 세웠다. 겨우 인재파견 쯤이야라고 쇼우가 얕보고 있었던 것도 있지만, 계획서를 본 담당자들은 하나같이 불만을 이야기했다.

파견될 곳의 실정을 고려하지 않는 허술(杜撰)한 계획에 영주까지 끼어들어 정치적인 다툼(駆け引き)이 시작될 상황이었기에, 아시미츠가 지휘하여 계획을 재검토했다.

영지의 장래를 좌우하는 중요한 안건이기에, 파견될 곳의 사정이나 지리적인 정보, 파견 인원의 규모에 이르기까지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는 것을 쇼우는 꼼짝없이(否応なく) 이해하게 되었다.

그러한 사정들은 처음부터 다 계산했다고 말하는 듯 자료를 한 손에 들고 차례차례 원안(素案)을 써내려가는 시즈코를 보고 그 넓은 견식과 높은 실무능력에 혀를 내둘렀다.


"묘하게 오우미 일대에 인원이 많이 파견되고 있는 것 같은데, 이건 어째서이지?"


"아즈치(安土) 주변의 조사와 그에 부수되는 공사들 때문입니다"


"과연"


노부나가의 거성(居城)이 될 아즈치 성(安土城)은, 군사적인 방어시설이라기보다는 정치적인 편리성(利便性)을 중시하여 설계되어 있었다. 그렇기에, 아즈치 성 근처에 있는 군사적 거점이 되는 성들은 모조리 파기된다고 했다.

총이나 화약의 등장에 의해 화력면이 돌출된 전국시대에서 난공불락의 성이라는 건 있을 수 없다. 그렇다면 아예 방어는 최소한으로 줄이고, 주변 지역에 대량의 군을 잠복시켜둘 수 있는 거점을 모조리 없애버리는 쪽이 안전성을 확보할 수 있다.

지리적으로도 쿄(京)나 사카이(堺), 오와리나 토우고쿠(東国)를 잇는 요충지에 위치하여, 물류의 동맥으로서 기능할 수 있는 절호의 위치였다. 쿄 방면이나 토우고쿠 방면 중 어느 쪽으로 가더라도, 한편으로는 수운(水運)으로 갈아타기 전의 거점이 되고, 한편으로는 산을 넘는 것에 대비한 보급지(補給地)로서 기능하여, 아즈치에 대량의 돈이 떨어질 것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사카이의 호상(豪商)들도 앞다투어(鎬を削って) 가게를 내려고 하겠지. 어쨌든 알겠어. 공사가 개시되면 자재의 운반이 필요해지겠지만, 지금 당장은 괜찮으려나"


"네. 그럼,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시즈코로부터 합격점을 받은 것에 쇼우는 휴 하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쇼우가 떠나간 후, 시즈코는 별도로 분개(仕訳)된 서류를 보았다. 내용은 시즈코가 운영하는 학교에 관한 것이었다.

당초에는 시즈코 저택에서 일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시작한 사설학원(私塾)이었으나, 유능한 인재를 배출한다는 평가를 얻은 후에는 그 규모는 확대 일로를 걷고 있었다.

소문을 들은 유력자들이 경쟁하듯 자녀들을 보내게 되어, 도저히 시즈코 저택의 부지 내에서 해결될 규모가 아니게 되었다.

신분이 높은 자제들은 시중을 들어줄 인원도 데리고 오기 때문에, 급거 학교와 병설되는 기숙사(寄宿舎)도 짓게 되었다.

광대한 부지를 필요로 하는 만큼 시즈코 저택 부근에서 토지를 확보할 수 없어, 산기슭(山裾)에 있는 일대를 개척하여 토지가 준비되었고, 사상 최초의 완전 기숙사식 학교로서 5월부터 개교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거참, 면학(勉学)에 있어서는 신분에 관계없이 전원 일률적인 환경으로 만들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나"


머리를 긁적이며 시즈코는 한숨을 쉬었다. 이렇게까지 거창하게 할 예정은 아니었지만, 이제는 돌이킬 수 없다.

국내(本邦) 최고 학교라는 사전 선전(触れ込み)에, 오다 가문 일족이나 중신들의 자제들이 책상을 나란히하게 된다. 당연히 아이들에게 연줄을 만들려고 자녀들을 보내려는 부모들이 끊이지 않는다.

그 대신 자금은 윤택하게 모여, 학교의 정원은 200명 정도가 될 거라 예상되었다. 한편, 기숙사에 대해서는 500명 가까운 인원이 생활할 수 있는 규모가 필요해져, 대사원(大寺院) 뺨칠 정도의 시설이 생겨났다.


"뭐, 실제로 운용해보지 않으면 불편한 점 같은 건 알 수 없지. 예정보다도 정원이 많은 것은 모른 척 하자"


억지로 자신을 납득시킨 시즈코는, 결재 서명을 하고는 서류를 치웠다. 이윽고 시일이 흘러 4월 후반. 멀리서 온 입학 희망자들을 기숙사에 받아들여, 예상보다 한 발 빨리 학교의 운영이 시작되었다.




5월이 되어도 노부나가의 내정 중시의 방침은 변하지 않았다. 우선순위 관계상 뒤로 밀려나 있던 삼림정비(森林整備)에도 착수하여, 정기적으로 간벌(間伐)과 식수(植樹)에 힘써, 마을 산(里山)의 전망(見通し)을 좋게 하여 산적(山賊)이나 강도(野盗) 등이 잠복할 장소를 없앴다.

계획적인 벌채(伐採)와 식수가 이루어진 덕분에, 표토(表土)의 유출이 적어져서 하천으로 유입되는 토사도 적어졌다. 산 뿐만이 아니라, 하천 정비(河川整備)에 수해 대책(水害対策), 항만 정비(港湾整備), 도로의 유지보수(街道普請), 측량(検地)과 병행하여 새 영지에 대한 호적(戸籍) 도입(配備), 자경단(自警団)의 조직과 범죄 단속 등을 행했다. 얼마나 노부나가가 내정에 힘을 쏟고 있는지 엿볼 수 있다.

사회에서 불안을 제거하여 활발한 경제 활동을 촉진하고, 결과적으로 사회가 풍족해진다는 것이 노부나가의 생각이었다.


노부나가는 자신 뿐만이 아니라 가신들에게도 사회 기반에 투자를 하여 정비하도록 명했다. 영주 자신이 주도하여 공공사업을 함으로써 고용을 창출한다. 백성들의 호주머니가 두둑해지면, 새로운 수요가 생겨나 경제 활동이 가속된다고 설명했다.

특히 힘을 쏟은 것이 도로 정비였다. 유통을 촉진하는 것이야말로 경제 활성화로 이어진다고 거듭 설명했다.

전국시대의 상식에 따르면, 도로 정비 같은 걸 하면 외적(外敵)의 침입을 쉽게 만드는 경국(傾国)의 정책이다. 이 때문에 하천에 다리를 놓으려고조차 하지 않고, 길도 가능한 한 구불구불하게(蛇行) 만드는 것이 좋다고 했다.

그러나, 노부나가는 적에게 공격받을 리스크보다도, 교통을 편리하게 하여 나라를 부유하게 만드는 쪽을 우선시했다.


이 정책에는 오다의 동향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던 호죠(北条)도 크게 혼란스러워했다. 머지않아 시작될 타케다(武田), 호죠와의 전쟁을 생각하면, 적을 이롭게 하는 행위가 될 뿐이기에, 노부나가의 진의가 어디에 있는지 헤아리지 못하고 있었다.

거기에 병행하여 실시된 '칼사냥'에 의해 병사가 될 백성들로부터 무기를 압수한 것이 혼란에 박차를 가했다. 각자가 무기를 가지고 있으면, 긴급한 경우 즉시 대응할 수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명백하게 이득이 없는 행동으로 보였다. 하지만, 상비군(常備軍)을 보유한 노부나가의 입장에서는 병농분리(兵農分離)를 추진하고 있을 뿐이라 이미 정해진 노선이었다.

일단 전쟁이 시작되면, 각지에 주둔하고 있는 전투훈련을 받은 병사들이 달려온다. 그 숙련도는, 무기를 들기만 했을 뿐인 초짜 따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는 해도, 상비군이란 것은 항상 자금을 소비하는 돈 먹는 하마(金食い虫)이다. 상비군을 가진다는 생각 같은 건 상상 밖의 일이었다.


5월 중순을 지나도 노부나가에게 눈에 띄는 움직임은 없었다. 노부나가 뿐만이 아니라, 후계자인 노부타다(信忠)도 군사행동을 하고 있는 기색이 없었다. 오다 군이 크게 움직일 때 반드시 큰 공을 세우는 시즈코도, 뒷바라지(裏方) 일에 종사하고 있어 움직임이 보이지 않았다.

타국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것은, 무장해제에 응하지 않는 종교단체(寺社)들을 불태우고 있는 호리 히데마사(堀秀政) 뿐이었다. 노부나가로부터 대장으로 임명되고, 시즈코로부터 나가요시(長可)를 빌려 동분서주하며 세상을 떨게 하고 있었다.

종교단체에 대한 대처와 병행하여, 나가요시는 노부나가로부터 받은 다른 임무에도 종사하고 있었다. 그것은 영지 내에 부정하게 설치된 관문(関所)의 발견과 파괴였다.

이러한 기강잡기(綱紀粛正)라고도 할 수 있는 규율(規律)의 집행(引き締め)은, 노부나가에 대한 반란을 꿈꾸는 반란분자들의 결탁을 저해하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반란이든 혁명이든, 상대의 부정을 규탄한다는 대의명분이 필요해진다.

하지만, 자타에게 모두 엄격하게 규율을 적용하여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고 있는 상대에게 원한을 품는 것 자체가 애초에 어렵다. 게다가 널리 민초(民草)들에게까지 개척이나 길의 유지보수 등의 일거리를 주고 있기에, 할 일이 없어 시간이 남는 사람 자체가 적어졌다.

유교(儒教)의 경서(経書) 중 하나인 '대학(大学)'에서 말하길, '소인한거위불선(小人閑居して不善を為す)'이라 했다. 이것은 소인(별볼일없는 인물)은 다른 사람의 눈이 없으면 나쁜 짓을 한다는 의미이다.

즉 널리 일거리를 주어 만민이 적극적으로 사회에 관여하도록 유도하면, 자연스럽게 다툼은 적어지는 것이다.


노부나가는 이런 외향적인 움직임과 병행하여, 내부의 단속을 철저히 했다. 지금까지 노부나가는 군사행동이 많아서 영지 내부를 비워두는 경우도 많았다. 이 때문에 내부에 부패가 생겨나게 되어버렸다.

그것은 세금(年貢)의 횡령이었다. 세금의 횡령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부수입(役得)으로서 묵인되고 있었다. 하지만, 오와리에서는 징세(徴税)에 관계되는 인원 모두에게 그에 걸맞는 봉급이 지급되고 있기에 노부나가가 법령에 의해 금지할 것을 명언했었다.

법이 정비되었다고 해도 실제로 단속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추가적인 이익을 탐하여 나쁜 짓에 손대는 것도 인간의 본성이었다.

지금까지는 전란(戦乱)에 정신이 없었고, 노부나가 자신도 세입(歳入)과 세출(歳出)이 지나치게 커져서 세세한 부분까지는 다 파악하고 있지 못했다. 눈이 닿지 않는 것을 이용해서 다른 서류에 섞어넣거나 서류를 위조하거나 해서 사복을 채우는 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간신히 노부나가 자신이 여유가 생겨서 내부 조사에 착수해보니, 놀랄 정도로 많은 횡령이 발각되었다. 하나같이 대규모 횡령이라고는 할 수 없는, 10석(石) 정도의 횡령을 몇 번이고 반복하고 있는 상습범들이었다.

고작 10석, 하지만 10석. 횡령을 방치해도 되는 이유는 되지 않는다. 나쁜 싹은 일찌감치 잘라버리지 않으면 반드시 커져서 돌이킬 수 없는 부정이 되어 현실화(顕在化)된다.

백성이란 존재는 관(官)의 부정에는 민감하여, 관에 대한 불만이 쌓이게 되면 최종적으로 오다 가문에 대한 불만이 되어 열매를 맺는다. 노부나가는 자신의 실책을 반성하고, 대대적으로 칼질을 할(大鉈を振るう) 생각으로, 출혈을 각오하고 착수했다.


"이 방법 저 방법으로 사복을 채우는 데는 머리가 잘도 돌아가는구만"


나가요시는 어이없다는 듯 내뱉았다.

총대장인 호리를 필두로, 나가요시는 영지의 순찰을 하고 있었다. 명목상으로는 임검(臨検)이지만, 실제로는 횡령 사실을 규탕하고 즉각 태도를 고치도록 경고하고 있었다.

과거의 횡령에 대해서는 불문에 부치고, 태도를 고친다면 지금의 지위도 인정(安堵)한다는 비교적 온화한 경고였다. 그렇기에 죄를 인정하지 않고 어떻게든 얼버무리려고 하는 패거리가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것은 최후통첩이기도 했다. 경고를 받아들여 개심한다면 좋고, 그렇지 않으면 무력으로 처단당하게 된다. 실제로 호리와 나가요시는 지금까지 몇 번이나 영주들의 목을 물리적으로 날려버렸다.


"어디, 이 주변이었던가? 신고(届け出)되지 않은 관문인가 하는 건"


신고되지 않은 관문 같은 건 존재해서는 안 된다. 호리와 나가요시는, 밀고가 있었던 숨겨진 관문이 있는 장소에 도착했다. 하지만, 주변을 돌아봐도 관문은 커녕 작은 길(小径) 하나 보이지 않았다.


"거짓 정보를 받은 건가?"


"아니, 그렇지 않아…… 냄새가 나는군. 소행(作為)을 감추려고 하는 조무라기(小者)의 냄새가 나"


한번 둘러보고 관문을 발견하지 못한 호리와 대조적으로, 나가요시는 눈을 가늘게 뜨고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그의 감이, 교묘하게 위장된 부자연스러움을 꿰뚫어본 것이다.

주의깊게 주위를 관찰하고 있던 나가요시는, 위화감의 정체를 포착했다. 울창하게 우거진 잡초(下草)들의 높이가 기묘하게 균일했던 것이다. 나가요시는 시험삼아 잡초를 한 웅큼 움켜쥐고 뽑아 보았다.

그다지 힘을 주지도 않았는데 깨끗하게 뿌리째 뽑혔다. 명백하게 인위적으로 심어진 것이었다. 표토를 발로 긁어내자, 밟아서 다져지고 건조한 길이 모습을 드러냈다.


"과연, 도로폭을 볼 때 주요도로는 될 수 없지만, 개인이 밀수(抜け荷)를 하기엔 충분하군. 평소에는 이렇게 감춰놓고, 밀수를 하려는 상인과 결탁해서 뒷길을 이용한다는 거군. 어디까지나 소규모의 밀수에 그치니 쉽게는 발각되지 않지"


주요 도로(主幹道路)에서 떨어진 가느다란 길(細道)에서 근근(細々)하게 잔돈(小銭) 벌이나 할 생각이겠지만, 사태는 그 정도에 그치지 않는다. 금지품의 반입이나 범죄자의 유입이나 탈출 등 중대한 범죄로 이어지는 악행이었다.


"위장에 쓴 흙은 젖어 있는데 아래의 길은 말라 있어. 즉, 이런 짓을 한 패거리는 아직 가까이 있다는 거야"


나가요시는 히죽 미소를 떠올리더니, 장대한 바디시(bardiche)를 고쳐쥐었다. 그의 부하들은 사냥이 시작된다는 것을 이해했다. 각자가 손에 든 무기의 덮개를 벗겨내어 칼날을 드러낸 후 나가요시의 뒤를 따랐다.


"좋아, 그럼 갈까"


들토끼라도 사냥하는 듯한 태평한 말투로 나가요시는 호령을 내렸다. 나가요시의 부하들은 말없이 무기를 치켜들고 나가요시를 선두로 길 안쪽으로 분산되어 들어갔다.

아마도 산을 뒤지게(山狩り) 되겠지만, 호리는 말릴 생각 따윈 전혀 없었다. 은폐 공작의 증거로서, 부자연스럽게 잡초가 심어진 흙을 병사들에게 회수하게 했다.

이에 대해서는 실행범은 물론이고, 두목(元締め)에게도 책임을 지게 할 필요가 있다. 벌써부터 비명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으나, 호리는 신경도 쓰지 않고 영주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6월을 코앞에 두고, 시즈코는 비닐하우스 내에서 작업하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이유는 수확기를 맞이한 카카오에 있었다.

카카오의 모는 2, 3년이면 성목(成木)으로 성장한다. 1571년 1월에 심은 카카오도, 말라죽어버린 몇 그루를 제외하고 많은 모가 성목으로 성장했다.

카카오는 일반적인 과수(果樹)와 달리, 뿌리에 직접 꽃이 피며 열매를 맺는 생태(植生)를 보인다. 이것을 '간생화(幹生花)'라고 부르며, 카카오의 경우에는 수술과 암술이 같은 꽃에 있는 양성화(両性花)로, 벌레에 의해서만 수분(受粉)이 이루어진다.


카카오의 꽃은 계절에 관계없이 1년 내내 피며, 1년 전체로 보면 한 그루의 나무에서 5000에서 1만 5000개나 되는 꽃이 핀다고 한다. 하지만, 개개의 꽃의 수명은 대단히 짧아서 겨우 1, 2일만에 시들어버린다.

오후 늦게 개화를 시작하여, 다음 날 오전에 완전히 개화한다. 그리고 개화한 다음 날에는 그 전부가 시들어버린다. 즉, 수분이 가능한 시기가 대단히 한정되는 것이다.

게다가 가지나 뿌리의 구별없이 꽃을 피우기에, 경우에 따라서는 엄청나게 높은 곳에 꽃이 피는 경우도 있다. 사람 눈에 보이지 않고 시들어버리는 경우가 대단히 많다.


이러한 이유로, 카카오의 결실률(結実率)은 1만 개의 꽃에 대해 열매를 맺는 것은 100개에서 300개 정도로 낮아져버린다.

당연히 모든 꽃에 대해 인공수분(人工授粉)을 시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여기서는 대량으로 깔따구과(ユスリカ)의 벌레를 양식하여 수분을 위해 풀어놓았다. 예전에 서양인이 카카오를 재배했을 때, 카카오 나무와 그 주변을 지나치게 청결하게 해서 열매를 맺지 않았다는 일화도 있다.


시즈코도 카카오 나무가 꽃을 피우기 시작한 2년째부터 다양한 곤충을 투입하여 수분을 시도했다. 그 결과, 이 환경에서는 깔다구과를 풀어놓았을 때 수분률이 높았다.

이것을 고려하여 3년째가 되는 올해, 깔다구과의 벌레만 집중적으로 방충(放虫)했다. 상성이 좋았는지, 겨울 시기에 꽃을 피우는 식물이 달리 없었던 것이 다행이었는지 상세한 분석은 이제부터 해야 하지만, 어쨌든 많은 카카오가 열매를 맺었다.


방충에서 약 반년이 지난 현재, 많은 카카오 나무에 방울(鈴) 모양으로 카카오팟(cacao pod)이라 불리는 카카오 열매가 매달려 있었다.

수확 작업 자체는 어렵지 않아서 시즈코가 아니라도 가능하지만, 그녀는 자신 이외의 사람이 수확 작업을 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었다.

이유는 수확할 때 가지나 뿌리를 다치게 해버리면, 이듬해부터 그곳에는 꽃이 피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시즈코는, 손이 닿는 범위는 작은 칼 등으로 주의깊게 수확하고, 높은 곳에 있는 것들은 특주(特注)한 전정가위(高枝切り鋏)를 사용하고 있었다.

알루미늄 같은 건 바랄 수 없다보니 통짜 철제(総鉄製)라서 그에 걸맞는 무게도 있기에 다루기가 어려워, 시즈코 혼자서 작업하고 있었다.


"좋아…… 이제 괜찮으려나"


시즈코는 눈 앞에 매달려 있는 카카오팟을 수확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수확용의 작은 칼을 꺼내어 신중하게 열매 부분만을 잘라냈다.

수확된 카카오팟은 두껍고 단단한 껍질로 덮여 있으며, 그 안에서 하얗고 부드러운 과육(섬유질이기에 펄프(pulp)라고 부른다)에 둘러싸인 씨앗(種子), 소위 말하는 카카오 빈즈(cacao beans)가 30개에서 45개 정도 얻을 수 있다.

이 펄프 부분도 식용 가능하지만, 잘 익어 반투명하게 비치는 것이라면 약간의 단맛과 약간의 신맛을 갖는 나타데코코(nata de coco) 같은 식감을 가진다.

특별히 맛있는 것은 아니지만, 카카오 빈즈에 초콜렛의 풍미를 주기 위해 필요한 부위라서 펄프째로 씨앗을 꺼낸다.

현대에서의 1차 발효(発酵)에서는 크게 두 가지의 방법이 사용된다. 하나는 수확한 씨앗을 바나나 잎으로 감싸 발효시키는 히프(heap) 법. 또 하나는 대규모 플랜테이션 등에서 채용되는 나무 상자를 이용한 박스(box) 법이 있다.

카카오 빈즈의 품종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어느 방법을 채용하더라도 1주일 정도면 발효가 끝난다. 시즈코의 경우, 그다지 대규모가 아닌데다, 동시에 재배하고 있기에 바나나 잎을 입수할 수 있었기에 히프 법을 선택했다.


이 공정에서는 크게 만든 대나무 바구니에 바나나 잎을 가득 깔고, 그 위에 펄프로 감싸인 상태인 씨앗을 올려놓고, 다시 그 위에 바나나 잎을 덮는다는, 히프 법의 발전형인 배스킷(basket) 법을 도입했다.

현대에서는 '질'보다도 '양'을 중시하기 때문에 병변(病変)한 카카오 빈즈도 같이 발효시켜 버리지만, 시즈코는 꼼꼼하게 선별했다.

병에 걸려 검게 변색된 카카오 빈즈는 당연히 제거하고, 극단적으로 크기가 다른 씨앗도 선별하여 제거했다. 이 때 지나치게 커서 선별에서 떨어진 씨앗을 꺼내 주위를 덮는 펄프를 찢어서 입에 넣었다.


"음ー, 새콤달콤하네"


1차 산업 종사자의 특권인 집어먹기(つまみ食い)를 감행한 시즈코는, 증거인멸을 하듯 남은 씨앗을 품종개량용으로 분류했다.

카카오 빈즈를 발효시키는 이유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발아(発芽) 능력을 잃게 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향미(香味) 물질의 전구체(前駆体, precursor)를 만들기 위해서이다.

발효 전의 카카오 빈즈는 전술한대로 점성(粘性)이 있는 펄프에 감싸여 있기에, 빈즈끼리 달라붙어 공기가 통하지 않는 혐기(嫌気) 상태가 되어 있다. 이 혐기 상태에서 활약하는 것이 '효모(酵母)'이다.

효모는 약 15퍼센트 정도 존재하는 펄프의 당분을 양식으로 활동하여, 당분을 알코올로 바꾼다.

이 1차 발효가 되는 것으로, 펄프가 분해되어 빈즈에서 벗겨져 떨어지던가 카카오 빈즈에 그 성분이 흡수된다.

그렇게 되면 카카오 빈즈가 공기에 접촉하는 호기(好気) 상태가 된다. 이 후, 카카오 빈즈 자신이 발효하는 2차 발효로 스테이지가 이동한다.


2차 발효에서는 활동의 주체가 '효모'에서 '유산균(乳酸菌)'이나 '아세트산균(酢酸菌)'으로 바뀐다. 2차 발효 초기단계에서는 유산균이 많지만, 발효가 진행됨에 따라 아세트산균이 늘어난다. 이 때, 아세트산균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1차 발효에서 산출된 알코올을 베이스로, 아세트산균은 아세트산(酢酸)을 생산한다. 이 아세트산이 카카오 빈즈에 스며들면, 카카오 빈즈의 떫은 성분을 줄요준다. 거기에 알코올과 산이 반응하면 에스테르(ester)가 생성되어, 이것이 독특한 좋은 향기를 낳는 것이다.

2차 발효에서는 균류가 산소를 좋아하는 호기성(好気性)이기에, 하루에 세 번 정도 교반(撹拌)하여 발효를 촉진시키는 경우도 있다.


여담이지만 카카오 빈즈의 알코올 발효를 이용하여 카카오 술을 만들 수 있다. 카카오의 원산지인 중남미에서는 옛부터 마시던 술이다.


시즈코가 집어먹던 씨앗을 포함하여 모양이 크고 무거운 씨앗을 선별하여 다음 세대의 모를 육성한다. 미리 준비해둔 화분에 씨앗을 뿌리고 느긋하게 생육을 지켜본다.

일본의 기후에 적응한 카카오 빈즈를 키우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큰 씨앗이 튼튼한 품종으로 이어질지는 알 수 없다. 다양성을 가지게 하여 교배를 계속하면, 언젠가 우수한 유전형질이 표출될 가능성도 있다.


카카오의 씨앗을 심은 화분을 그늘(日陰)에 안치한 후, 다음으로 시즈코는 커피 나무를 확인하기로 했다. 역시 이쪽도 시즈코가 직접 관리하고 있지만, 카카오와 커피 이외의 것은 시즈코의 손을 떠나 버렸다.

남은 식물들에 대해서는 전임(専任)의 관리자(世話係)를 붙여 인수인계를 실시했다. 그 이유는 시즈코는 바쁘기 때문에 집을 비우는 횟수도 증가하기만 하는 경향이라, 시즈코를 전임으로 하면 충분한 데이터를 얻을 수 없게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커피 나무는 나무 높이(樹高)가 90cm까지 성장해 있었다. 100cm를 넘을 무렵부터 열매를 맺기 시작하기에, 당분간 더 상황을 지켜볼 필요가 있었다.

온실환경에 있음에도 꽤나 느릿한 성장이라고 생각하면서 시즈코는 커피 나무의 상태를 관찰했다.

다행히 질병같은 징후도 없이 건강하게 성장하고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카카오 빈즈를 발효시키고 있는 대나무 바구니에 번호와 날짜를 적어넣고 시즈코는 비닐하우스를 나왔다.


부근에 있는 휴식용의 벤치에 앉아서 시즈코는 일련의 작업에 대해 상세한 내용을 기록했다.

시즈코가 꼼꼼하게 기록을 작성하기 때문에 비교적 용이하게 인수인계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지만, 그녀 자신도 그 때 어떤 의도로 작업을 했는지, 어떤 발견을 했는지 등을 자세히 기록하지 않으면 잊어버리기 떄문에 필요에 따른 조치였다.

이제와서 기억력이 비약적으로 좋아질 리도 없으니, 귀찮다고 생각하면서도 카카오 나무와 커피 나무에 관한 작업 일지를 작성했다. 대략 다 정리가 끝났을 무렵, 반투명한 팩티스(factice) 너머로 이쪽으로 다가오는 사람 모습이 보였다.

곧장 이리로 향하는 사람 모습이 몇 명으로 구성된 단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시즈코는 또 성가신 얘기가 들어왔구나 하며 하늘을 쳐다보았다.


"시즈코 님, 급한 손님이 오셨습니다…… 몸이 안 좋으시다면 다른 날에 다시 오시도록 전하겠습니다만?"


"괜찮아, 잠깐 생각을 좀 하고 있었던 것 뿐이야. 오늘 손님이 올 예정이 있었던가?"


"아뇨, 오늘 예정된 손님은 없습니다"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쇼우가 대답했다. 갑작스럽게 급한 손님 방문이라고 하면, 대단히 귀찮은 이야기가 될 거라고 시즈코는 확신했다.


"그래서, 누가 왔어?"


"네. 시바타(柴田) 님과 삿사(佐々) 님, 그리고 저희 아버지입니다"


"……성가신 일, 확정이잖아"


시즈코는 중얼거림과 동시에 고개를 숙이며 양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흘러나오는 소문에 의하면, 그들은 카가(加賀) 일향종(一向宗)에 대한 도발에 관해 작전회의가 분규(紛糾)하고 있다고 했다.

각각 세력이 팽팽한 상태에서의 파벌싸움이기에, 무공에 흥미가 없는 시즈코는 방관자의 입장을 취할 생각이었으나, 각각의 파벌의 수장이 찾아왔다고 하면 피할 수도 없다.


"뭐, 이 꼴로 만날 수는 없으니…… 일단, 손님을 응접실(応接間)로 안내하고, 그 동안 갈아입을 옷이라던가 이런저런 준비를 부탁해"


"옛"


한 번 깊게 인사를 한 후, 쇼우는 준비를 위해 달려나갔다.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입욕을 마친 후 응접실로 가자, 그들은 이미 준비된 좌탁(座卓)에 앉아 있었다. 본래 시즈코를 따라와야 할 케이지(慶次)는, 마에다 토시이에(前田利家)와 얽혀 이야기가 탈선하는 것이 싫었는지, 술병(徳利)을 한 손에 들고 목욕탕으로 가버렸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이쪽이야말로, 사전 연락도 없이 방문했음에도 회의 자리를 마련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사이조(才蔵)를 대동한 시즈코가 상좌에 앉자, 시바타가 대표하여 인사를 했다.


"여러분도 바쁘시겠죠. 쓸데없는 말(建前)는빼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소문은 듣고 있습니다. 오늘 용건은 카가 일향종의 건이시겠죠?"


"헤아리신 대로, 저희들은 카가 일향종 공격을 앞두고, 첫걸음부터 발이 꼬여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나다 가문(真田家)이라는 첩보부대를 거느린 지금, 외부 뿐만이 아니라 오다 가문 내부의 동향도 실시간으로 시즈코의 귀에 들어오게 되어 있었다. 의도적으로 정보를 수집하지 않아도, 정기적으로 실시되는 보고에 의해 대략적인 동향을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카가 일향종을 향한 도발에 관해서는, 누가 그걸 담당할지로 다투고 있다고 들었다. 어떻게 도발(徴発, ※역주: 원문에는 '징발'로 되어 있는데, 이것도 작가가 도발(挑発)과 일본어 독음이 같은 한자를 잘못 쓴 것으로 보임)하고, 어떻게 상대에게 손을 쓰게 할지가 정해지지 않았다.

정벌의 대의명분을 얻은 사람에게야말로 제1 무공이 있다고 다들 생각하여, 서로 견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공을 독점해서는 주위의 반감을 사게 되고, 그렇다고 중용(中庸)적인 안을 내놓으면 주위에서 반론이 나와 기각된다.


"지금 상태로는 시간만 흘러가 도저히 주상의 기대에 부합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서로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저희들 중 누가 주도해도 모가 나기 때문에, 제 3자인 시즈코 님의 조력을 얻고자 왔습니다"


"(으ー음, 못 하는 건 아니지만……) 그렇군요. 무공을 둘러싸고 서로 견제할 정도라면, 아예 특정한 무공으로 만들지 않으면 되지 않을까 합니다만……"


"누구의 공인지를 확실히 하지 않으면 논공행상에 지장이 생깁니다. 그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시바타가 입을 열기 전에 삿사가 대화에 끼어들어왔다. 그의 지적은 당연한 것으로, 책임이나 상벌의 소재라는 것은 확실히 해두지 않으면 다툼의 씨앗이 된다.

공이 있다고 인정받고, 보상이 있기에 목숨을 거는 것이며, 다소 무리한 명령을 내리는 것이 가능해진다.


"아뇨, 무공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이 건에 대해서만' 전원의 연대책임이자, 전원의 무공으로 하는 겁니다. 그 이후의 무공에 대해서는 종래대로 각자 평가하면 되는 겁니다"


"음…… 말씀하시는 의미를 잘 모르겠습니다만……"


"죄송합니다. 순서대로 설명드리겠습니다. 여러분께서는 카가 일향종을 도발하여 전쟁터로 끌어내면 제1 무공이라고 생각하고 계시지요. 하지만 주상께는, 그들을 전쟁터로 끌어낸다는 것은 대전제(大前提)에 지나지 않습니다. 준비단계이기에, 이걸 전원이 해내야 하는 공통목표로 삼는 것입니다. 이게 가능해야 처음으로 각자 겨룰 수 있는 무대에 설 수 있는 것입니다. 그걸 해내지 못하면 그것은 전원의 책임이 됩니다. 카가 일향종을 전쟁터에 세우고, 그로부터 얼마나 빠르게 평정할 수 있는지를 충분히 겨루시면 됩니다"


설명을 들은 세 사람은 신음했다. 노부나가는 카가 일향종의 토벌을 명했다. 즉, 카가 일향종을 공격하는 데 충분한 대의명분을 얻는 것은 당연히 가능해야 하는 요건이 된다.

역설적으로, 거기까지의 단계는 노카운트로서 고려하지 않고, 어디까지나 참가자격으로 간주하며, 실제로 카가 일향종을 정벌한 실적에 따라 무공을 매기는 평가방식이라는 쪽이 공평하다.

구체적인 성과를 숫자로 확인할 수 있기에, 노부나가로부터도 포상을 받기 쉬워진다.


"……확실히 그렇군. 주상께서는 도발하여 전쟁터로 끌어낸 후에 정벌하라고 말씀하셨다. 그것을 무공이라고 요란하게 떠들어봤자 명예(ほまれ)가 될 수 없겠지. 그보다도 주상의 기대 이상의 속도로 제압하면 주상께서 기꺼이 생각하시겠지"


"우선은 겨룰 무대를 준비하는 데까지 협력한다……라"


"이야기는 이치에 맞는군. 시바타 님도 토시이에 님도 이의는 없으시겠지?"


세 사람은 자신들 나름대로 납득하는 말을 찾아내자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걸로 작전회의는 어떻게 되겠다, 고 시즈코는 휴 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물론, 그렇게 일이 원하는 대로 풀릴 리가 없다, 라는 것을 그녀는 후에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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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

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텐쇼(天正) 원년(元年) 키나이(畿内)의 사회기반 정비


116 1574년 3월 하순



시즈코는 중단했던 청서(清書)를 재빨리 끝낸 후, 즉시 옷을 갈아입고 알현에 임했다. 소성(小姓)이 도착을 알리고 시즈코가 방으로 들어가자, 미츠히데(光秀)의 사자는 엎드려서 기다리고 있었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인사치레는 필요없습니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죠"


해가 질 때 찾아와서 그 날을 넘길 수도 없다는 용건이니만큼, 시즈코는 조금이라도 시간을 절약하고자 재촉했다.

송구스러워하면서도 미츠히데의 사자가 말한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쿄(京)의 치안이 회복된 이래, 상인들이 들여오는 다양한 물건들이 유통되어, 공가(公家) 들은 물론이고 서민에게까지 폭넓게 침투하기 시작했다.

큰 길에는 큰 가게들이 늘어서서 진기한 것들을 팔고 있다.

개중에서도 가회(歌会)나 다도회(茶会)에 빠질 수 없는 과자를 취급하는 상점은 공가들의 심부름꾼들이 경쟁하듯 상품을 구입하게 되었다.

그리고 천황(帝)이 주최하는 어전 가회(歌御会) 자리에서, 반(反) 고노에(近衛) 파의 공가들이 제공된 차과자(茶請け)에 트짐을 잡았다.


말하자면, 근년 조정에 유행하는 것들은 하나같이 고노에 가문에서 시작된 것으로, 천황의 위광(威光)까지 흐려져 버렸다.

고노에 가문만 우쭐하게 하지 말고 천황의 권위가 쇠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이 어떠냐는 것이었다.


자칫하면 불경(不敬) 죄를 물을 수 있는 도발적인 발언이지만, 이렇게까지 얕보이면 천황도 물러설 수는 없었다.

그래서 천황은 조정에 가까운 미츠히데를 의지하여, 고노에 가문을 통하지 않고 공가들을 놀라게 할 과자를 요청했다.


"……격조높고, 그러면서 누구도 본 적이 없는 맛있는 과자 말인가요……"


용건을 듣기 전부터 안 좋은 예감은 들었지만, 나쁜 예감일수록 잘 맞는다. 격조 따위와는 거리가 먼 서민파의 시즈코로서는 암담한 심정이었다.


"저희들도 백방으로 손을 썼습니다만, 결국 이거다 할 만한 것을 찾지 못햇습니다……. 하지만, 제 주인은 시즈코 님이라면 좋은 지혜를 빌려주실거라고……"


"흠……"


시즈코는 부채로 입가를 가리면서 눈부시게 머리를 굴렸다. 대략적인 사정은 이해할 수 있었으며, 사자가 지참한 미츠히데의 서신으로부터 공가들의 노림수도 파악할 수 있었다.

이것은 조정 내부의 권력투쟁의 일환인 것이다. 조정에서의 역학(力学)이 고노에 가문의 독무대인 것을 재미없게 생각하는 세력이 있으며, 그들이 수하(手勢)를 이용하여 천황을 도발했다는 배경이 있었다.

실제로, 천황은 고노에 가문에 의지하지 않고 미츠히데에게 협력을 타진했다. 고노에 가문 일파를 배제하는 첫걸음에는 성공했으나, 천황이 의지한 상대가 나빴다.

조정의 사정에도 밝은 미츠히데는, 공가들의 속셈을 정확히 꿰뚫어보고, 최선의 한수로서 시즈코를 지목했다.

시즈코는 송구스러워 어쩔 줄 모르는 사자의 모습을 보고 문득 떠올린 것이 있었다. 그것은 현대에서 시즈코의 할아버지가 황수포장(黄綬褒章, ※역주: 우리나라의 산업 포장에 해당함)을 받게 되어, 당시의 천황으로부터 하사받은 기념품의 존재였다.


"(그거라면 격조높고 천황의 권위를 나타낼 수 있겠네) 폐하께서 직접 의뢰하신 것이라면 거절할 수도 없겠군요. 조금 시간이 필요하겠습니다만, 폐하의 위광을 나타낼 수 있는 과자의 건, 잘 알겠습니다"


노부나가에게 문의해볼까도 생각했지만, 흑막의 노림수가 드러난 이상 받아들이라고밖에 말하지 않을 것은 명백했다.

미츠히데의 사자가 돌아간 후, 시즈코는 다시 천황에게 어울리는 과자에 대해 생각했다.

연출에 관해서는 참고할 수 있는 것이 있기에 문제없다. 중요한 내용물을 어떻게 할까에 대해, 시즈코는 지혜를 쥐어짜게 되었다.


"확실히 나밖에 할 수 없는 의뢰려나. 고노에 님이 지나치게 힘을 가지는 걸 경계하고 있는 거겠지"


꽤나 어려운 문제라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단순히 희한한 과자를 준비하기만 하는 거라면 미츠히데에게도 가능한 이야기다.

그의 인맥(伝手)을 이용하면, 오와리(尾張), 미노(美濃)의 기술자들을 동원하여 희한한 과자를 준비하는 것도 어려운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거기에 시즈코를 개입시켜서는 안 되는 이유.


"천황이 자발적으로 찾아낸 오다 가문에 속하지 않는 세력. 그것을 내세워서 조정에서의 세력을 양분하려는 자들이 있다…… 라"


고노에 사키히사(近衛前久)가 오다 가문과 친한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며, 조정에게 노부나가는 최대의 스폰서이기도 했다. 그러나, 조정도 굳게 단결된 조직(一枚岩)은 아니라, 전원이 노부나가의 영향 아래에 있는 것을 좋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었다.

개중에는 세력 기반에 종교 세력(寺社勢力)을 품은, 오다 가문에 반항적인 공가도 존재했다. 무가(武家)나 불가(仏家)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공가 내에서 일어나지 않을 리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사키히사의 칸파쿠(関白) 취임 이래, 이 파워 밸런스가 크게 무너진 것이리라.

지금까지는 세력 유지에 급급하여 표면적으로 반항하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수하를 버림패로 쓰게 되더라도 큰 도박을 걸어온 것이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상대는 그만큼 궁지에 몰려 있다고도 볼 수 있다.


"흑막까지 한꺼번에 뭉개버리는 것은 무리겠지만, 물어뜯어온 이상 팔다리 하나 쯤은 받아야겠지"


직접 자신들의 손을 더럽히지 않고 천황의 위엄을 빌려 도박을 한다. 나쁘지 않은 수라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하지만, 지략이 뛰어난 미츠히데의 눈에는 그 속셈이 뻔히 보였다는 데서 그들의 운이 다한 것이다.

간신히 찾아온 평화로운 시간에 쓸데없는 짓을 꾸며 여가를 빼앗겼으니, 그에 걸맞는 대가를 치르게 하지 않으면 시즈코의 속이 풀리지 않는다.

이걸 기회로, 흑막의 목젖 앞에 칼날을 들이미는 것이 중요하다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좋아! 내용물은 그렇다치고, 겉포장을 만드는 데도 시간이 걸리니까 얼른 시작하자"


좋은 작전을 떠올린 시즈코는, 각처에 협력을 요청하는 편지를 쓰기 위해 붓을 들었다.




각처에 편지를 날린지 며칠이 지나, 시즈코가 머물고 있는 쿄의 저택에는 편지를 받은 상대들이 모여 있었다. 고노에 사키히사, 아케치 미츠히데(明智光秀), 호소카와 후지타카(細川藤孝) 등 세 사람이었다.

시즈코는 시제품(試作品)을 보여주면서 그들에게 작전을 설명했다.


"나쁘지 않은 취향이군요"


시험 제작된 그릇(容器)을 보며 호소카와가 감상을 말했다. 시즈코가 참고로 한 것은 봉보니에르(Bonbonnière, 봉봉 용기(容器)라는 의미의 프랑스어). 황실(皇室)의 경사(慶事)의 축하연(祝宴)에서 답례품(引き出物)으로 나누어주었던 '과자그릇(菓子器)'이었다.

펼친 부채를 본떠, 유황으로 표면을 그슬린 은(いぶし銀)으로 표면을 마무리한 손바닥 사이즈의 봉보니에르는 우아하면서 중후했다.

누가 봐도 한눈에 고급품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존재감을 드러내면서도 결코 천박하지 않은 풍격(風格)을 갖추고 있었다.

안에 들어 있는 과자는, 오와리의 술곳간(酒蔵)에 특별히 만들게 한 특히 진한 탁주를 넣은 일본주 봉봉이라고 불러야 할 만한 과자였다.

국화를 본딴 봉봉을 깨물면, 안에서 걸쭉하고 농후한 당액(糖液)이 퍼져나간다. 특별히 발효를 끝낸 거르지 않은 전국(醪)을 부숴넣어, 증류하지 않는 범위에서 최대한 농도를 올린 탁주를 써서 쌀의 향기를 느낄 수 있는 시럽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이 과자의 발안자(発案者)를 '니히메(仁比売)'로 한다는 겁니까"


미츠히데의 말에 시즈코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상대의 노림수는 노부나가와 미츠히데의 사이를 나쁘게 하는, 말하자면 이간(離間) 공작(工作)이다.

노부나가가 고노에 가문의 딸인 시즈코를 내세우고, 그에 대해 미츠히데는 천황의 신임이 두터운 '니히메'를 받든다. 반 오다 가문의 공가들로서는 오다 가문에 쐐기를 박을 수 있었다고 생각하겠지만, 현실은 동일인물이다. 그 사실을 모르면 적인 셈이다.

이걸 기회로 미츠히데에게는 반 오다 세력의 공가들이 접촉을 시도해오겠지만, 그 모두가 노부나가에게 그대로 알려지게 된다는 계획이다.


"그리고 내가 나중에 분해하는 모습을 보이면, 상대는 계책이 성공했다며 마각(馬脚)을 드러낸다는 것인가"


사키히사가 턱을 쓰다듬으며 감탄했다. 핵심이 되는 가회(歌会)는 카노 쇼에이(狩野松栄)의 그림에 대해 시를 지어 그 완성도를 겨룬다는 것이다.

그림의 선정은 사키히사가 하고, 호소카와가 시를 생각하고, 미츠히데와 친밀한 사이인 공가가 그 시를 읊어 상을 탄다. 소위 말하는 조작(出来レース)이지만, 무대 뒤편을 들여다볼 수 없는 한, 적측인 사키히사가 끼어 있기에 들킬 일은 없다.


"이럴 때는 제 3자를 끼워넣는 게 좋지. 어딘가에 트집을 잡으면 여러 방면에 싸움을 거는 셈이 되니까"


시즈코는 속이 시커먼 남자들의 술책(駆け引き)에 감탄하고 있었다. 그림은 카노 파의 것이고, 시에 대해서는 호소카와가 저명한 시인(歌人)과 협력하여 상을 타는 데 어울린다는 언질을 받는다.

그리고 천황의 위광을 나타내는 과자는, 눈이 높아진 사키히사가 봐도 발군(出色)의 완성도였다. 그림도 시에도 트집을 잡히지 않고, 상품(恩賜品)의 발안자는 천황이 아끼는 사람이다.

반 오다 가문의 공가들은 기세가 붙겠지만, 그것이야말로 치명적인 함정이 된다. 미츠히데라는 독을 마시고, 가진 패를 드러내어 실각한다는 미래를 향해 자기 발로 나아가게 되리라.


"승인을 받은 듯 하여 다행입니다. 그럼, 여러분 잘 부탁드립니다"


시즈코의 말에 각자 고개를 끄덕였다. 작전의 성과는 직방(覿面)이었다. 미츠히데는 반 오다의 공가들의 환심을 사서, 알게 된 정보를 사키히사에게 흘리는 것으로 반 오다 세력의 손발을 잘라나갔다.

그들은 의지할 곳을 찾아 미츠히데에게 기울었지만, 미츠히데와 사키히사가 공모하고 있었기에 사육(飼い殺し)되는 꼴이 되었다.


"순조롭네, 순조로워"


어전 가회(歌御会)에서 선보여진 봉보니에르는 천황의 위럼을 충분히 나타내었고, 이후에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하사되는 물건으로 정착되었다. 용기에는 쥬로쿠야에오모에기쿠(十六八重表菊), 소위 말하는 국화 문양이 새겨져 황실에만 납품되게 되었다.

계속해서 황실에 봉보니에르를 납품할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시즈코에게 노부나가로부터의 편지가 도착했다.

자신이 없어서는 안 되는 일은 없다고 판단하고, 세 사람에게 뒤를 맡기고 쿄를 떠났다.

기후 성(岐阜城)에 도착한 시즈코는, 노부나가가 지정한 그의 다실(茶室)로 향했다. 다실의 작은 출입구(躙り口)를 어렵지않게 통과하여 다른 사람이 없는 실내로 들어갔다.

방 밖에 호위는 서 있었지만, 내부의 대회는 밖으로는 새어나가지 않는다. 호위조차 배제할 필요가 있는 화제라는 것을 깨달은 시즈코는 자연스레 허리를 곧게 펴고 앉았다.


"이걸 보아라"


노부나가는 시즈코의 도착에 대해 오느라 고생했다는 말도 하기 전에 접혀진 서신을 던져주었다.

마주보고 앉은 노부나가에서 화로(炉)를 넘어 날아온 편지가 다다미(畳) 위를 미끄러져 시즈코에게 도달했다. 그녀는 그것을 받아들고 내용을 읽었다.

내용은 호죠(北条)의 동향에 관한 보고서였다. 호죠 가문에 잠복시킨 간자가 보낸 정보인데, 읽어나가던 시즈코의 미간에 주름이 졌다.


"이건…… 까다롭게 되었군요"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굼벵이(愚図)라고 얕보았는데, 이렇게 상황이 맞아떨어지면 평가를 수정해야겠지"


호죠 가문의 당주, 호죠 우지마사(北条氏政)가 오다 가문에 굴복하지 않는 이유로서, 오랫동안(連綿) 계속 칸토(関東)를 지배해온 호죠 가문의 자부심이 있었다.

설령 오다 가문에 굴복하더라도, 호죠 가문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타케다(武田)와의 전쟁이 된다. 영토를 조금 차지하는 싸움이 아니라, 쌍방의 존망(存亡)을 건 총력전(総力戦)의 선봉(先鋒)을 맡게 된다.

그렇게 되면 영민들에게도 막대한 부담을 강요하게 되고, 오다 가문의 이익에 따라 이용당하다 망하는 미래가 예상된다.

이 이상 결단을 미룰 수는 없어, 오다 가문에 굴복할 것인가, 아니면 타케다와 손을 잡고 이빨을 드러낼 것인가를 결단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러서도, 호죠 우지마사는 여전히 결단을 보류하고 있었다.


"이걸 보고, 너는 어찌 생각하느냐?"


"토우고쿠(東国) 정벌(征伐)에 영향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타케다는 미카타가하라(三方ヶ原)에서 패배를 맛본 이후, 우에스기(上杉)의 남하(南下)를 걱정하여 호죠와 동맹을 맺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기우에 그쳤습니다만…… 지금도 여전히 동맹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타케다 정벌을 나서면 호죠와도 창칼을 맞대게 되겠지요"


잠재적인 적은 그밖에도 존재했다. 그것은 아군인 우에스기 가문이 품고 있는 호죠 우지야스(北条氏康)의 7남(우에스기 카게토라(上杉景虎))의 존재였다. 우에스기 켄신(上杉謙信)이 예전에 양자로 들인 그의 진영이, 호죠의 위기가 왔을 때 어떻게 움직일지 불투명했다.


"훗…… 외국(唐, 여기서는 중국의 당(唐) 왕조가 아니라 막연하게 외국을 가리킴)의 고사(故事)에, 어려운 일에 맞서는 자세를 화살에 비유한 일화가 있지. 한 대의 화살은 쉽게 부러지지만, 여러 개의 화살을 묶으면 부러지지 않는다. 사람도 마찬가지지…… 타케다, 호죠, 우에스기의 말썽꾸러기. 이 세 놈이 견고하게 결탁하면, 아무리 우리들이라고 해도 쉽지 않은 고전을 강요받게 된다"


노부나가의 말을 듣고, 시즈코는 모우리 모토나리(毛利元就)의 '화살 세 대의 가르침(三矢の教え)'을 상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모우리 모토나리가 아들 세 사람에게 전했다고 하는 '화살 세 대의 가르침'은 후세에서의 창작으로 간주된다.

노부나가가 말한 중국의 '서진록(西秦録)'의 고사나, 몽골 제국을 세운 칭기즈칸의 일화, 이솝 우화 등 세계 각지에서 그 비슷한 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호기(好機)라고도 볼 수 있지. 이걸로 키묘(奇妙)에게 싸움에서 '지는 법'을 배우게 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 수 있다"


한 발만 잘못 디뎌도 칸토에 반 오다의 교두보가 생겨버린다는 위기(瀬戸際)인데, 노부나가의 입에서는 예상밖의 말이 흘러나왓다.

시즈코가 자신도 모르게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지만, 노부나가는 즐겁다는 듯 웃음까지 떠올리고 있었다.


"싸움에서 지는 법…… 입니까? 하지만 그래서는……"


"승패는 병가지상사. 하지만, 키묘는 패배를 모른다. 상승무패(常勝無敗) 같은 것은 있을 수 없다. 언젠가 반드시 패배를 맛볼 때가 온다. 하지만, 지는 싸움에도 잘 지는 방법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하면 빠른 단계에서 포기하고 재기로 이어지는 유리한 상황에서 패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는 것을 모르면, 스스로가 실패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간신(佞臣, 주군에게 아첨하는 부하)에 둘러싸여 스스로의 패인(敗因)을 찾으려고조차 하지 않게 되겠지. 그런 놈에게 천하를 지배할 자격은 없다"


시즈코의 말을 자르며 노부나가는 노부타다의 바람직하지 않은 미래를 이야기했다.


"스스로가 부족함을 인정하고, 더욱 높은 목표를 향해 반성, 노력할 수 있는 사람은 강해진다. 내가 뒷처리를 해줄 수 있는 동안 키묘에게는 '내가 특별한 것이 아니다'라는 것을 배우게 할 필요가 있다. 스스로의 약함을 마주했을 때, 자신이 깔보았던 사람들이 자신보다도 강하다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타케다, 호죠, 우에스기의 삼국동맹(三国同盟)이 성립되어도 좋다고 하시는 겁니까?"


"그렇다. 젊은 키묘라면 노회(老獪)한 호죠에게 패하더라도 수치가 되지는 않는다"


"호죠가 적대하지 않고 군문(軍門)에 들어올 가능성은……"


"없다. 호죠가 아무리 얼간이라도, 한 번도 창칼을 맞대지 않고 항복하지는 않는다. 호죠를 얕보면 안 된다라고 생각하게 하지 않으면 놈에게는 승산이 보이지 않는다. 그 바탕에 있는 것이 호죠 가문의 긍지인지, 아니면 고난을 받을 영민들을 생각해서의 자비인지도 모르지만, 호죠는 반드시 내게 이빨을 드러낸다"


"거기까지 내다보시면서도 패하실 것입니까"


호죠는 우유부단해서 기치(旗幟)를 명확하게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불확정요소(不確定要素)가 되는 것으로 조금이라도 토우고쿠 정벌에 대해 우위를 차지하려고 움직이고 있다.

거기까지 내다보면서도 일부러 후계자인 노부타다의 수행의 기회로 삼는다. 평범한 영주(国人)로서는 도저히 내릴 수 없는 비정하면서도 합리적인 판단이었다.

싸움에서 지게 되면 적지 않은 피해가 생긴다. 하지만, 노부나가는 그조차도 만회할 수 있다고 호언(嘯)하고 있는 것이다.

즉, 호죠도 타케다도 우에스기도 노부나가의 예상의 범주를 넘지 못하고 손바닥 위에서 춤추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다. 패한 후의 국면까지 꿰뚫어보는 노부나가의 안력(眼力)에 시즈코는 어쩐지 두려움을 느껴야 했다.


"그렇다고 해서 불안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시즈코, 네게는 키묘의 감시역(目付役)을 명한다"


"감시역인가요?"


"패배를 모르는 키묘는, 열세에 몰리게 되면 역전할 방법을 모색하겠지. 하지만 그래서는 장래에 화근을 남기는, 어설픈 패전을 연출하게 된다. 네가 눈을 빛내어, 불리한 도박에 나서려고 하는 키묘를 제지(掣肘)하는 것이다. 키묘가 진심으로 경의를 품는 인물은 그리 많지 않지. 몇 안 되는 존재인 네 말이라면 흥분(逆上)한 키묘의 귀에도 들릴 것이다"


"미력하지만 분부를 받들겠습니다"


승락의 말과 함께 시즈코는 노부나가에게 고개를 숙였다. 여러가지 걱정거리(懸念事項)는 존재했으나, 이번만큼은 노부타다의 안건을 최우선으로 생각했다.


"흠…… 패전한 후에 재기를 다짐하는 말이 있었으면 좋겠구나"


"격려(景気づけ)입니까?"


"패전에서 배우고, 그리고 재기에 거는 키묘의 마음가짐을 나타내는 말이 좋겠다. 패배를 단순한 실패로 끝나지 않게 하는, 단순하면서도 힘있는 말이 좋겠지"


"그렇군요……"


시즈코는 턱(頤)에 손을 대고 생각에 잠겼다. 어떻게 꾸미든 패배는 패배, 그걸 받아들인 후의 긍정적인 자세를 강하게 나타낸다. 꽤 어렵다고 생각했으나, 아까의 고사에서 머리를 스치는 것이 있었다.


"그럼, 이런 건 어떻겠습니까? 다발이 된 화살은 꺾이지 않지만, 다발이 된 지푸라기는 쉽게 꺾이지. 가느다란 지푸라기를 굵은 화살이라고 착각한 것이 패인이로다!"


"……훗, 큭큭큭, 하하핫! 지고도 여전히 과대평가를 했다고 큰소리를 치는 것이냐! 어지간한 승산(勝算)을 보이지 않으면 도저히 받아들여지지 않는 말이지만, 바로 그렇기에 재미있도다!"


시즈코의 제안에 노부나가는 소리높여 웃었다.




시즈코는 노부나가와의 알현 후, 쿄로 곧장 돌아갈 예정이었다. 그러나, 천황으로부터 계속적으로 하사품(恩賜品)의 주문을 하고 싶다는 요청이 미츠히데를 통해 들어와서, 식재료나 기술자를 오와리와 미노에서 수배할 필요가 생겼다.

각각의 수배가 끝날 때까지 쿄에는 돌아가지 않는다는 뜻을 파발마(早馬)를 통해 전하기로 하고 그대로 자택으로 향했다.

이번에 천황에게 헌상한 봉보니에르는 재료부터 엄선해서 최고의 기술자의 손으로 마무리되었다. 오와리 최고의 기술자를 쉽게 빼내가게 둘 수는 없기에, 도제(徒弟)를 쿄로 파견하도록 손을 썼다.

일본주 봉봉에 대해서도, 원재료(原材料)야 오와리에서밖에 생산할 수 없지만, 재료만 반입하면 현지에서도 생산할 수 있도록 황실 애용(御用達)의 과자점을 쿄에 열기로 했다.


시즈코는 기술자들의 이동이나 기계설비 등의 반송(搬送)에 지나칠 정도로 신경썼다.

그 덕분인지, 쿄까지 가는 도중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니, 일어나게 하지 않았다는 것이 올바르다.

반 오다 파의 공가들은 방해를 획책하여, 깡패(荒くれもの) 들을 고용하여 도적(野盗)을 가장한 습격을 시도했다. 하지만, '운 나쁘게도' 같은 날에 주변에서 산적 토벌이 이루어져, 그들은 습격 전에 뿔뿔이 흩어져 도망치게 되었다.

습격의 실패를 알게 된 공가들은, 다음 한 수를 강구하려고 햇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깡패들을 고용한 공가의 심부름꾼이 구속되어, 줄줄이 사탕으로 그들의 행적이 드러나버렸다.

도마뱀 꼬리를 자르는 수준이 아니라 머리와 몸통을 남기고 팔다리가 전부 뜯겨나간 반 오다의 공가들은, 길고 괴로운 자복(雌伏)의 시간을 강요받게 된다.


그 후에는 차질없이 만사가 진행되어, 쿄에 도착한 후 몇 주일이 지나자, 다음 하사품의 용기가 될 봉보니에르를 헌상할 수 있었다. 최종 마무리에 관해서는 오와리에서밖에 할 수 없었기에 다소의 시간이 필요했지만, 천황이나 공가들에게 탄성을 지르게 할 만한 물건이 완성되었다.

천황에의 헌상은 의뢰를 받은 미츠히데가 했으나, 발안자인 '니히메'에게 천황으로부터 하사품이 도착했다. 천황의 위광을 선양(発揚)시키고 체면을 지킬 수 있게 한 데 대한 답례였다.

시즈코는 오동나무(桐) 상자를 열고 내용물을 확인했다. 그곳에는 향목(香木)인 백단(白檀)의 나무조각을 섭새긴(透かし彫り) 아름다운 부채가 들어 있었다.

그것은 시원함을 위한 물건이 아니라, 고급스러운 향을 즐기기 위한 부채였다. 요양중의 몸이면서도 천황의 체면을 지키기 위해 고생한(骨を折った) '니히메'에 대한 배려를 엿볼 수 있는 몰건이었다.

천황으로부터의 하사품을 소중히 품 속에 넣은 시즈코는, 결연하게 고개를 들고 말했다.


"그럼 돌아가죠"


쿄에서의 인수인계나 잔무(残務) 처리를 마친 시즈코는 오와리로 귀국했다.

자택으로 돌아온 시즈코는, 결재를 기다리는 서류들을 확인했다. 아야(彩)가 배려하여 우선순위가 높은 것부터 위로 놓인 서류를 주욱 훑어보았다.

역시랄까, 쿠로쿠와슈(黒鍬衆)에 대한 요청이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다.

오우미(近江)에서는 치수공사(治水工事), 에치젠(越前)에서는 츠루가(敦賀) 항구의 항만정비(港湾整備), 오우미로 이어지는 상업적 이용에 견딜 수 있는 도로 정비 등 대규모 인프라 사업이 줄지어 있었다.

게다가 아직 공식적으로 발표되지는 않았지만, 노부나가가 거점을 아즈치(安土)로 옮길 것이 결정되어, 그 밑준비로서 아즈치에서의 조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었다.


그 외에는 결재서류가 아니라 토우고쿠의 정치적 책략에 대한 보고서가 늘어서 있었다. 내용을 확인하니, 카츠요리(勝頼)라기보다 타케다 가문이 악순환에 빠져 있는 것이 적혀 있었다.

타케다 가문의 중신들이 카츠요리를 얕보고, 그 태도에 반발한 카츠요리는 강경한 정책을 취한다. 이렇게 되면 영주들 사이의 불화에서 오는 채무를 짊어지게 되는 것은 영민(領民)들이다.

카이(甲斐) 국에 잠입시킨 간자들의 손에 의해, 타케다 가문의 불화나 추문(醜聞)은 밑바닥 계층에 이르기까지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백성들은 카츠요리라는 암군(暗君)은 물론이고, 암군을 제어하지 못하는 타케다 가문 자체에도 불만을 가지도록 유도되었다.

중신들 중 누군가가 불이익을 감수하면서라도 카츠요리를 당주로서 지지하여 일치단결한다면 백성들의 불만은 얼마간 누그러졌으리라. 그러나, 이미 쌍방의 관계는 수복 불가능할 정도로 완전히 틀어져 있었다.


"이건 예상밖이네. 예상한 것 이상으로 카츠요리라기보다 타키데 가문 전체가 백성들의 신용을 잃고 있어. 주상께서는 패하는 싸움을 예상하고 계시지만, 싸움을 벌이기 전에 타케다 가문이 자멸할 것 같아"


역사적 사실에서도 카이 침공으로부터 1개월만에 대세는 결판이 났다. 이 상황이라면 1년도 가지 않아 타케다와 개전(開戦)하게 될 가능성도 생겼다. 이대로 카츠요리의 구심력이 계속 떨어지만, 일찌감치 타케다를 쳐부수고 여세를 몰아 호죠까지 쳐들어가서 승리를 주울 가능성조차 있다.


"후ー, 키나이(畿内)의 정무(政務)만 해도 바쁜데, 거기에 토우고쿠 정벌의 감시역이라. 머리가 아파……"


골치아픈 문제가 산적해 있는 현실 앞에서 시즈코는 기분이 축 처지는 것을 감출 수 없었다.




3월 하순이 되자, 시즈코는 자기 영지에 배포할 모(苗)의 생육 상황을 확인하고 있었다. 동시에 모내기에 사용할 각종 도구의 정비까지 지시했다.

오와리, 미노의 영민들은 직접 볍씨(種籾)를 뿌리지 않는다. 매년, 오다 가문에 의해 육모(育苗)된 모를 지급받아 이것을 심는다.

볍씨가 아닌 모의 상태까지 생육되어 있기에 발아율(発芽率)을 신경쓸 필요도 없고, 환경의 변화에도 강하다. 오다 가문이 육모를 대항하는 동안, 백성들은 아라오코시(荒起し, ※역주: 경작의 준비 작업으로 논밭을 대충 갈아 엎는 일)라고 하는 논밭의 정비를 한다.

빠른 사람은 1월이나 2월부터 아라오코시를 시작하지만, 그 정도로 많은 논밭을 가지지 않은 백성은 기온이 풀리는 3월 무렵부터 착수한다.


오다 가문이 모를 관리하기 때문에 백성들은 볍씨를 직접 확보할 필요가 없다. 오다 가문은 모를 지급하는 것으로 안정적인 수확을 기대할 수 있다.

모의 바탕이 되는 볍씨는, 세금으로 징수된 것 중에서 준비되기 때문에 백성들 측에 부담은 없으며, 모에 질병이 발생하더라도 일방적으로 파기를 명령할 수 있어 질병이 만연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양쪽 모두에게 메리트가 있는 제도이지만, 모를 얼마만큼 준비할 수 있는지가 수확량으로 직결된다는 결점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오와리, 미노에 지급되는 모는 시즈코의 영지 내에서 전부 만들어지고 있다는 점도 문제였다.


"각지로부터의 보고로는, 현재는 문제없는 것 같네"


"네. 순조롭게 생육되고 있습니다. 작년에 선별하신 볍씨도 순조롭습니다"


서류를 확인하면서 시즈코는 아야에게 보고를 받았다. 심은 모가 순조롭게 생육하고 있다는 것은, 올해도 기대한 대로의 수확량을 예상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개척도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기에, 내년부터는 에치젠이나 오우미에도 모를 지급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양쪽 모두 수확량(石高)보다는 우선 지역의 안정화를 꾀하는 쪽이 선결이기는 하지만.


"오우미는 치수공사가 밀려 있네. 몇 번이나 세금을 경감해달라고 탄원했던 게 괜한 게 아니구나"


현대의 시가((滋賀) 현(県)에서는 상상하기 어렵지만, 오우미는 수해(水害)가 많은 지역이었다. 특히 아네가와(姉川や野洲川)나 야스가와(野洲川) 유역은 수해가 끊이지 않는 지역이기도 했다.

역사를 들여다보면, 야스가와는 10년에 한 번 꼴로 수해가 일어났다. 주민들에게는 일상다반사라고까지는 하지 않더라도, 50년쯤 살면 몇 번은 겪는 이벤트다.


"우선은 하천(河川)의 확장공사가 있고, 거기에 쿄로 이어지는 수로를 만들고 있습니다"


비와 호(琵琶湖)는 방대한 수량을 가지고 있지만, 그 물을 배출하는 출구는 요도가와(淀川, 세타가와(瀬田川)라고도 한다) 단 하나 뿐이다. 그렇기에, 요도가와가 토사(土砂) 등으로 막히게 되면, 갈 곳을 잃은 호숫물이 범람하게 된다.

현대에는 치수나 이수(利水) 목적으로 만들어진 세타가와 아라이제키(洗堰, ※역주: 댐(dam)의 일종인 듯)가 존재하지만, 전국시대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여담이지만 메이지(明治) 시대에는 난고 아라이제키(南郷洗堰)라는 옛 아라이제키가 건조되었다.


아라이제키 같은 설비가 없다면 어떤 비극이 초래되는지가 기록에는 남아있다. 메이지 29년(※역주: 1896년)에 발생한 홍수에서는, 범람한 비와 호의 물이 2개월 넘게 빠지지 않았다.

히코네(彦根)에서는 8할 이상의 지역이 수몰되었고, 오오츠(大津)에서는 중심부 전체가 물에 잠겼다. 야스가와도 물이 터져, 유역에 존재했던 거주구는 몇 개월에 걸쳐 수몰되게 되었다.

비와 호는 키나이의 중요한 수원(水源)이지만, 한 번 이빨을 드러내면 모든 것을 쓸어버리는 거칠게 날뛰는 용으로 변하는 존재이기도 했다.


"강바닥 준설(川浚) 세금이 추가로 들겠네"


강바닥 준설이란 강바닥에 쌓인 토사나 오물을 제거하는 것을 말한다. 오우미의 치수의 역사는, 요도가와에 대한 강바닥 준설이라고 해도 좋다.

역사적 사실에서 에도 시대에는 오사카(大阪)에 준설 명가금(冥加金)이라 불리는, 수리(水利)의 덕(恩恵)을 보는 데 대한 대가가 존재했다. 이것은 적립금(積み立て)의 측면도 가지고 있어, 이것을 재원으로 하여 강바닥 준설이 실시되었다.

어느 쪽이든, 근간에 있는 것은 유입량에 대해 유출량이 제한되는 것에 기인한 범람이다. 아라이제키의 정비에 그치지 않고, 요도가와를 확장하여 소통 능력을 확대할 필요가 있었다.


"직접적으로 덕을 보는 쿄나 사카이(堺)는 물론이고, 수운(水運)을 이용하는 에치젠 등에서도 임시 세금을 징수하는 듯 합니다. 제도가 안정되면 징수액 자체는 낮게 억제될 것 같습니다"


"그렇게 되면, 카가(加賀) 국에도 청구할 수 있으려나? 과연…… 흠"


"수운의 이용 상황을 보는 한, 청구해도 문제없지 않을까 합니다"


비와 호를 이용하는 지역에 평등하게 세금의 부담을 요구한다. 강바닥 준설 자금을 확보할 수 있으며, 남는 것으로 하천 확장도 할 수 있는 절묘한 제도라고 시즈코느 생각했다.

교통망이 발달한 현대에서는 육운(陸運)와 해운(海運)이 주역이며, 하천을 이용한 수운 등은 거의 볼 수 없지만, 전국시대에서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역사적 사실에서, 노부나가의 사후(死後)에 히데요시가 비와 호의 호상이권(湖上利権)을 지배했듯, 수송로로서도 중요한 존재였다.

중앙을 크게 단축할 수 있는 수운과 달리, 크게 우회해야 하는 육로는 운송시간도, 그에 드는 비용도 늘어나는 경향에 있었다.

비와 호의 호상권(湖上権)을 노부나가가 쥐고 있는 이상, 세금의 납부를 거부하면 수송로가 닫히게 될 것은 뻔하다. 카가 일향종(一向宗)은 증오스러운 노부나가에 대해 세금을 납부하는 것 외에 길은 없다.


"그럼, 일향종들은 얌전히 말을 들으려나? 뭐, 응하게 되면 지출이 쌓여서 점점 목이 조여들겠지. 반항하면 무력에 의한 제압이 기다리고 있고. 응, 빠른지 늦을지의 차이밖에 없네"


"새로운 육로를 열려고 해도, 오우미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오다 가문의 가신. 어떤 결과가 나와도 카가의 일향종에게 미래는 없습니다. 마지막 일격만 남은(後一押し) 상황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뒷일은 시바타(柴田) 님에게 달렸으려나. 여기서 분발하면 호쿠리쿠(北陸) 일대가 시바타 님의 지배하에 들어오게 되네. 그렇게 되면 삿사(佐々) 님이나 마에다(前田) 님(※역주: 마에다 토시이에(前田利家))도 호쿠리쿠의 다이묘(大名)인가"


"성공하면 가문 내에서 한 발짝 앞서게 됩니다. 하지만, 아케치 님이나 하시바(羽柴) 님도 지지 않습니다. 특히 아케치 님은 키나이에 있는 수송로의 권익을 대부분 쥐고 계십니다. 또, 시즈코 님께서 제공하신 수송선이 예상 이상의 성과를 올리고 있어, 사카모토(坂本)는 쿄의 현관이라고 불릴 정도로 번성하고 있습니다"


해양에서는 실패라고 결론지어진 중형 수송선이 비와 호에서는 각광을 받았다. 다소의 악천후 따위 끄떡도 하지 않고, 하루만 있으면 나가하마(長浜)에서 사카모토까지 항행하는 속도를 자랑했다.

또, 스크류 추진이기에, 배의 이동에 노(櫂)릃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에 의해 절약할 수 있었던 공간을 화물 스페이스로 전용할 수 있다는 이점도 있었다.

결점은 증기기관이기에 목탄(木炭)이나 석탄(石炭)을 필요로 하는 것이나, 홀수선(喫水)이 낮아서 운반하는 중량에 제한이 있다는 점이었다.


이 때문에, 오래 가지 않는 화물 등을 운반하는 상인들은 몇 척이나 되는 배를 수배하여 화물을 운반하게 된다. 배에 적재할 수 없을 정도로 무거운 물건이나, 많은 화물을 운반하는 경우에는 육로를 선택할 수밖에 없어, 호위나 인부(人足)의 수배를 생각하는 등 추가로 비용이 먹히게 되었다.


"아ー, 그거 말이지. 활약할 자리가 생겨서 다행이야. 기술자들도 기뻐하고 있었고"


"편수를 늘려달라는 요청이 있습니다만"


"그 부분은 하시바 님이나 아케치 님에 달렸으려나ー. 뭐, 어느 쪽도 장사할 기회가 늘어나니까 싫다고는 하지 않겠지만…… 또 주도권을 둘러싸고 다투게 될지도……"


비와 호의 호상권은 오다 가문이 쥐고 있지만, 비와 호에서 사용되는 상선 루트의 주도권을 둘러싸고 히데요시와 미츠히데가 서로를 견제하고 있었다.

현재는 계속된 전쟁으로 황폐해진 오우미의 복구를 우선시하고 있었기에 히데요시가 주도권을 쥐고 있다. 하지만, 기회가 있으면 주도권을 탈환하려고 미츠히데는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상업이 번성함에 따라 수운의 중요도는 커져간다. 그에 비례하여 생기는 권익도 거대해지기에, 그들의 대립(因縁)은 깊어지고 있었다.


"뭐, 주 목적은 염전(厭戦)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거지만, 이렇게 노골적이면 아무래도 생각을 좀 해야될지도 모르겠네"


염전이란 전쟁을 싫어하는 사상을 가리키는 말이다.

언제까지나 정치가 불안정해서는, 짧은 생각(短慮)에 전쟁을 택하는 멍청이가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키나이에서만이라도 전쟁을 혐오하는 분위기를 만들 필요가 있었다.

아직 병농분리(兵農分離)가 완전하지 않은 이상, 병사의 태반은 백성들이다. 그 백성들이 전쟁을 싫어하게 되면, 전쟁을 하고 싶어도 병사가 모이지 않는다. 또, 칼사냥(刀狩り)도 하기 쉬워진다.


칼사냥에 의한 무장해제, 상인들의 활발한 활동, 치수 등의 공공 사업에 의한 재해 대책, 쌀이나 야채 등의 생산력 향상, 이것들을 실시함으로서 백성들의 생활을 안정시켜간다.

생활이 안정되면 안정될수록, 목숨을 걸면서까지 전쟁에 나가는 사람은 적어진다. 농한기(農閑期)에 개척 등의 일거리를 만들면, 전쟁에 나가려는 마음은 한층 더 옅어진다.

많은 사람들은 자칫 잘못하면 목숨을 잃는 전쟁보다, 견실하게 일하면 확실히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일거리 쪽이 좋다고 생각한다.


"이세(伊勢)는 관할 밖이지만, 오우미나 에치젠에 관해서는 안정될 때까지 몇 년은 필요하려나"


"그 동안 혼간지(本願寺)를 정벌하시는 건가요?"


"아니, 혼간지의 정벌은 하지 않아. 세세한 조건은 있지만, 일향종의 존속을 인정하는 대신 이시야마(石山)에서 퇴거하라는 게 요점이려나"


"그것은……"


지금까지 멸망시킬 기세였던 노부나가의 행동과 어긋나는 게 아닌가, 하고 아야는 생각했다. 그런 아야의 생각을 눈치챘는지, 시즈코는 말을 덧붙였다.


"지금은 켄뇨(顕如)를 '교섭하는 자리에 앉히는 데' 힘을 쏟고 있으니까. 그리고 혼간지를 완전히 멸망시키면 거꾸로 정세를 불안정하게 만들어버리니까, 살려두는 편이 좋아"


"그렇습니까?"


"흠…… 그럼 시즈코 언니가 아야 짱에게 정치 이야기를 해주도록 할께요"


아야에게 정치를 가르친다는 상황이 재미있는지, 시즈코는 자신만만하게 가슴을 펴며 말했다.

그에 대해 아야는, 그다지 흥미가 있다는 기색도 없이 시즈코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만약 혼간지가 멸망했다고 가정하자. 그 경우, 신자들은 어떻게 할까?"


"개종할까요?"


"그러네. 하지만 신앙(信仰)은 내면의 문제야. 내일부터 다른 종파로 갈아타세요, 라는 말을 들어도 곤란하겠지? 내일부터는 기독교(伴天連)를 믿어라, 는 말을 들으면 아야짱은 어떻게 생각할까?"


"그것은……"


"그래, 당황하게 되고 받아들일 수 있을 리가 없지. 그걸 강제하면 탄입이 되고…… 억압받은 신도들은 일치단결해서 들고일어나서, 위정자에 대해 이빨을 들이대는거야. 그렇게 되면, 피비린내나는 종교전쟁이 시작되어버려"


"그걸 막기 위해서인가요?"


"그래. 적에게 마지막 도망갈 길을 준비해 두는 것은 중요해. '혼간지를 위해서'라는 자신을 납득시킬 수 있는 변명거리가 있다면, 아랫사람들은 순순히 패배를 인정하지. 반대로 도망칠 길이 없으면, 목숨이 다할 때까지 저항하는거야. 게다가……"


"게다가?"


"혼간지의 경제력이나 다른 세력과의 연계는 아깝거든. 완전히 멸망시키기보다, 죽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크게 되살아나지도 못하게 하면서 자신의 장기말로 이용할 수 있는 정도의 상태로 두는 편이 편리한 거야" 


일단은 납득한 아야였다. 하지만, 의문점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은 시즈코 님의 생각이시고, 주상의 생각은 아니지요?"


"오, 좋은 부분을 눈치챘네, 아야 짱. 확실히 세세한 점에서 차이가 있겠지만, 하지만 나와 주상의 생각은 크게 어긋나지 않을거라 생각해"


"그럴까요. 주상의 언동을 생각하면 화해(和睦) 같은 건 있을 수 없다고 생각됩니다만"


"그건 아야 짱 나름대로 생각해서 해답을 도출하면 돼. 괜찮아, 내 말을 듣고 스스로 생각해서 의문을 품게 된 아야 짱이라면 분명히 가능할거야"


"칭찬받아서 송구스럽습니다만, 뭔가 대답을 얼버무리신 것처럼 생각됩니다"


"에엑ー, 거기는 기뻐해야 하는 상황 아냐ー?"


"과대평가입니다"


불만스럽게 말하는 시즈코였으나, 아야는 시즈코의 말을 듣고도 표정을 바꾸지 않고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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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

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텐쇼(天正) 원년(元年) 키나이(畿内)의 사회기반 정비


115 1574년 3월 상순



2월. 공기가 맑게 개는 듯한 추위를 견디며 싹이 트는 계절인 봄을 절실히 기다리게 될 시기. 시즈코 저택의 주방에서는 취사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생선은 수온이 낮은 쪽이 맛있다고 한다. 낮은 수온에 견딜 수 있도록 몸에 다량의 기름기를 축적하기 때문인데, 이것은 생선에 한정된 이야기는 아니다.

겨울에 수확하는 무(大根)가 단맛이 나는 것도, 추위에 견디기 위해 수분을 줄이고 대신 당분을 축적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민물(真水)은 0도에서 얼어붙지만, 설탕물(砂糖水)은 얼지 않는다.

소위 말하는 '비점 상승(沸点上昇), 응고점 강하(凝固点降下)'라는 현상이다. 참고로 기온의 영향을 잘 받지 않는, 땅 속 깊은 곳에 있는 끝부분은 해충 등으로부터 몸을 지키기 위해 매운 맛이 나게 되는 거라고 한다.


"홋홋…… 겨울에는 역시 방어무조림(ブリ大根)이지"


입에서 열기를 발산시키며 시즈코가 중얼거렸다.

방어무조림이란 일본 전국에 전해지는 향토요리(郷土料理)인데, 토야마 현(富山県)의 겨울 방어(寒ブリ)를 쓴 그것이 유명하다. 여러가지 배리에이션이 존재하지만, 방어와 무를 간장으로 조리는 것은 공통되어 있다.

유통이 발달한 현대에서도 동해(日本海) 쪽과 태평양 쪽에서 잡힌 방어의 가격에 배 이상의 차이가 나는 경우가 있다.

홋카이도(北海道)에서 남하하여, 동해의 거친 파도를 이겨내고 토야마 만(富山湾)까지 도착한 '히미(氷見) 겨울방어'는 겨울의 미각의 왕(王者)이라고도 불린다.

당연히 유통이 발달하지 않는 전국시대에서 신선한 '히미 겨울방어' 따위 바랄 수도 없었기에, 시즈코가 조리에 사용한 것도 오와리(尾張)에서 잡힌 약간 작은 방어이다.


"생선을 먹는 것은 오랜만입니다. 생선 같은 건 진흙냄새가 나거나 극단적으로 짜거나 둘 중 하나라고 생각했습니다만, 이건 참을 수 없군요!"


소년처럼 눈을 반짝이면서 마사유키(昌幸)가 절찬했다. 오늘밤은 사나다 마사유키(真田昌幸)와 그의 아들들, 노부유키(信之), 유키무라(幸村, 노부시게(信繁))를 초대한 저녁식사였다.

산간 지방(山国)인 카이(甲斐)에서는 바다 생선 따위 바랄 수도 없다. 진흙 냄새가 나는 민물고기(川魚)나, 장기간의 운반에 견딜 수 있게 강하게 염장(塩蔵)된 것에 한정된다.

고급품인 설탕(砂糖)을 아낌없이 쓰고, 간장(醤油)과 미림(みりん)을 넣고, 냄새를 없애기 위해 생강(生姜)과 함께 조린 방어는 마사유키의 마음을 소년으로 되돌릴 정도의 것이었다.


"오늘 항구에 갓 올라온 방어가 들어왔거든요. 엣츄(越中)의 방어에 비하면 떨어지지만, 오와리의 방어도 제법 좋아요"


"세상에! 이것 이상가는 것이 또 있다고 하시는 겁니까……"


마사유키는 그야말로 깜짝 놀랐다는 표정으로 전율을 감추지 못했다. 흥분하는 마사유키와는 대조적으로, 그의 아들을은 긴장해서 쭈뼛거리며 밥을 먹고 있었다.


"어린애가 사양 같은 거 하는게 아니야. 저쪽의 어른들을 보라고? 맛있는 걸 배불리 먹을 수 있다는 건 행복한 거야. 많이 먹고, 얼른 커야지"


어린애들을 상냥한 눈으로 바라보면서, 시즈코는 케이지(慶次) 들의 자리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열어젖혀진 맹장지 사이로 보이는, 옆 자리에서는 케이지들이 밥통(櫃)에서 밥을 퍼먹고 있었다.

처음에는 쟁반과 함께 나온 밥그릇(椀)으로 먹었지만, 번거롭다는 듯 밥통째로 가져오게 해서는 밥주걱을 집어넣어 호쾌하게 먹고 있었다.

어느 틈에 술까지 꺼내서는, 손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연회를 벌이는 상황이었다.

나쁜 어른의 표본이기는 하지만, 먹는 모습도 호쾌하여 사양 같은 것과는 인연이 없었기에 시즈코가 비교 대상으로 삼았다.

본래는 주인으로서 질책해야 하지만, 마사유키 자신이 신경쓰지 않는다고 말했기에 내버려두었다.

시즈코로서도 식사는 즐겁고 떠들썩하게 하는 편이 맛있다고 생각하였기에 마음대로 하게 하기로 했다.


한편, 노부유키와 유키무라는 곤혹스러워하고 있었다. 시즈코가 권하기는 했으나, 그들은 무가(武家)의 남아(男児)로서 엄격한 예절 훈련을 받아왔다. 아버지나 아버지의 상사인 시즈코 앞에서 실례가 있어서는 안된다고 망설이고 있었다.


"어린애가 어른의 사정 같은 걸 신경쓰지 않아도 돼. 잘 먹고, 잘 놀고, 잘 공부해. 그게 어린애가 할 일이니까"


다시 한 번 촉구하자, 그제서야 두 명은 기세좋게 밥을 먹기 시작했다. 매콤달콤하게 조려진 방어의 맛은 어린아이의 예민한 미각조차 매료시켰다.

그렇다고는 해도, 둘 다 아직 10살도 되지 않은 어린애였기에 먹을 수 있는 양도 뻔했다.

이미 식사를 마치고 아이들이 눈을 빛내며 식사를 하는 모습을 입가에 미소를 띠고 바라보고 있던 마사유키가, 두 명이 식사를 마치는 시점을 가늠하여 말했다.


"훌륭한 식사를 대접받았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아버지의 말을 듣고, 노부유키도 다급히 고개를 숙이고, 약간 뒤늦게 유키무라도 그에 따랐다.


"변변치 못해 죄송합니다(お粗末様でした). 두 사람은 배부르게 먹었어?"


식사를 마치고 차를 마시고 있던 시즈코가, 생긋 미소를 떠올리며 대답했다. 시즈코가 말을 건 두 명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아래위로 끄덕였다.


"시즈코 님, 이렇게 환대해 주셨음에도 뻔뻔한 이야기입니다만, 한 가지 청이 있습니다"


"상관없어요. 가능할지 아닐지와는 별도로, 언제든지 들어볼 생각은 있으니까요"


"옛. 그럼, 사양않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소문이 자자한 시즈코 님의 도서실(図書室)을 이용하고 싶습니다"


시즈코의 도서실이란, 그녀가 모은 동서양을 불문하고 고금(古今)의 서적(書物)들이 한 곳에 모인 건물을 가리킨다.

처음에는 문자 그대로 한 방(一室)이었지만, 장서 숫자가 늘어남에 따라 창고(蔵)가 되고, 새 저택에서는 아예 독립된 건물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명칭은 전부터 바뀌지 않아, 누구나 도서실이라 부르고 있었다.

이 도서실은 시즈코 저택에서 일하는 사람에게는 널리 개방되어 있으며, 카게카츠(景勝)나 카네츠구(兼続)처럼 저택에서 기거하는 사람들에게도 열람 허가를 주고 있었다.

그러나, 마사유키같은 외부인이 이용하는 것은 어렵다. 시즈코가 금지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시즈코 저택에 출입하는 데 필요한 수속이 번거롭기 때문이다.


"으ー음, 안전 면에서도 책의 반출은 허가할 수 없네요. 그렇지, 7일마다 하루만 도서실 출입을 허가하죠. 모처럼이니 아이들도 책을 접할 수 있게 하면 좋지 않을까요?"


"저 뿐만 아니라 자식(愚息)들에게까지 배려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첩보를 관장하는 마사유키로서는 군침이 넘어가는 대상인 도서실의 출입을 7일에 하루라고는 해도 허락받은 것은 기대 이상의 기쁨이었다.

사서(司書)인 할아범에게 보내는 편지를 써서 아야(彩)에게 건네주었다. 내일이 되면 즉시 심사와 수속을 해 줄 것이다.

시즈코로서는 도서의 대출을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외부로 반출하는 것은 분실이나 정보의 유출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었기에 도서실 내부에서의 열람으로 한정시키기로 했다.


"허가증이 발행되면 연락할게요"


"정말 감사드립니다"


부자가 나란히 멋지게 예를 올렸다. 통상의 일 때문에 바빠서 그다지 도서실을 이용하지 못하는 마사유키와는 대조적으로, 7일마다 반드시 방문하는 노부유키가 카게카츠와 함께 도서관의 터주로 불리게 될 때까지 그다지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3월에 들어서, 시즈코가 정한 새 달력으로는 봄이 되었다. 평소에는 사람들의 출입도 적은 시즈코 저택의 한 구석이 갑자기 소란스러워져 있었다.

그곳은 시즈코 밑에서 일하는 문관들의 사무실(仕事部屋). 현대에서 말하는 결산보고서(決算報告書)에 해당하는 것을 아야를 필두로 한 그녀의 부하들이 총동원되어 작성하고 있는 것이었다.


"손익계산서(損益計算書) 다 됐습니다!"


"확인합니다. 다음은 이쪽을 부탁해요"


방에는 아야를 포함하여 총 20명 정도가 가득 들어차 있었다. 맹장지를 걷어내고 하나의 큰 방으로 만들었으나, 그래도 묘하게 비좁게 느껴졌다.

그 원인은, 복도(廊下)까지 밀려나가 있는 서류의 산이었다. 전원이 주판(算盤)을 한 손에 들고 자료를 검산(検算)하거나 새로운 서류를 작성하는 등, 각자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다.

매달의 마감일도 나름 바쁘지만, 이번에는 모든 부서의 연간(通年) 총결산(総決算)이기에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 싶을 정도의 상황이었다.

아무리 바빠도 냉정함을 잃지 않는 아야도, 이 때 만큼은 여유를 잃고 분투하고 있었다.


"내용 확인이 끝났습니다. 결재해 주시면 청서(清書)로 돌리겠습니다"


문관들이 각자가 담당한 분량을 가지고 와서 아야의 자리에 놓인 결재를 기다리는 문서함에 서류를 쌓아놓았다.

현대와 같은 복사기 따윈 존재하지 않기에, 여러 부가 필요한 서류는 지금도 청서반(清書班)이 별실에서 필사적으로 베껴적고 있다.

방에는 문관들이 경과를 보고하는 목소리 외에는 모두가 주판을 튕기는 소리나, 종이와 붓이 마찰하는 소리, 서류를 말리거나 먹이나 물을 보충하거나 하는 몸종(小間使い)들이 일하는 소리밖에 나지 않았다.

각 부서를 총괄하는 아야는, 쌓인 서류를 확인하고 크로스 체크(cross-check)를 반복하여 틀린 곳이 없는지 확인한다.

아야의 승인을 얻은 서류만이 시즈코에게 보내어지고, 최종적으로는 노부나가에게 도착하게 된다.


시즈코가 손대는 사업은 많고, 그 반면 문관의 숫자는 압도적으로 부족하다.

방에 가득찬 사람들의 표정에는 귀기(鬼気)가 서려 있었으며, 평소에는 제 세상인 양(我が物顔) 활보하는 비트만들도 이 며칠 동안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통기결산서(通期決算書)가 완성되었습니다. 확인을 부탁드립니다"


서류와 격투를 벌이기를 14일. 간신히 마무리된 서류를 손에 들고 아야는 시즈코 앞으로 나아갔다.

어지간히 가혹한 작업이었는지, 빈틈을 보이지 않는 아야의 눈 밑에는 짙은 다크 서클이 생겨 있었고, 머리카락도 윤기를 잃었다.


"네, 받았습니다. 문제가 있으면 연락하겠지만, 오늘 일은 이걸로 끝내세요. 서류 사정(精査)이 완료되면 5일간의 특별휴가를 지급합니다. 부서 내에서 조정해서 각자 휴가를 쓸 수 있게 계획해 주세요"


특별휴가란, 유급휴가와는 별도로 그때그때 지급되는 유급의 휴가이다. 단순히 유급휴가 날짜가 늘어났다고 생각하면 알기쉽다.


"감사합니다"


"단, 특별휴가는 3월, 4월 두 달 동안만 쓸 수 있으니, 어렵다고는 생각하지만 조정을 부탁해요"


"맡겨 주십시오. 그럼,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네, 수고했어요. 오늘은 푹 쉬어요"


다른 사람의 눈이 있기에 사무적인 태도로 일관했으나, 시즈코는 피로가 역력한 아야가 얼른 쉬었으면 했다.

매사에 아무렇지 않은 척(強がる)을 하는 경우가 많은 아야도, 아무래도 꾸밀 여유도 없었는지 약간 비틀거리며 방을 나갔다.

결산서의 확인이라고 해도, 지금 당장 시즈코가 작업하는 것은 아니다. 시즈코가 확인을 하고 있으면 서류 작성자인 아야들이 휴식을 취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시즈코가 손대는 사업은 하나같이 차입금(借入金)이 없는, 말하자면 무차금(無借金) 경영(経営)이기에 확인은 쉽다.

사람, 물건, 돈의 흐름이 서류만으로 확실하게 추적되어, 이번 분기에 어느 정도의 이익이 있고, 자산 상황을 파악할 수 있다는 것만 확인하면 된다.

그 이외에는 각 서류간의 수치에 관한 관련성 체크를 하면, 노부나가에게 제출하기 위한 요약서를 첨부하여 완성된다.


"그럼 결산서는 넣어두고, 먼저 빌렸던 책을 돌려주러 가자"


시즈코는 결산서를 자물쇠가 달린 서랍에 넣고, 도서실에서 빌렸던 책을 한 손에 들고 방을 나섰다.


도서실에 들어가자, 열람석에 진을 치고 책을 산더미같이 쌓아놓은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두 개의 작은 뒷모습은, 한 명이 카게카츠, 다른 한 명이 노부유키였다.

그러고보니 오늘이 노부유키가 이용하는 날이었구나라고 생각하면서, 시즈코는 카운터로 가서 사서에게 반납 절차를 부탁했다.

반납을 마친 시즈코는, 다음에 빌릴 책을 물색하기 위해 책장 사이를 돌아다녔다.

이용자는 모두 책의 가치를 알고 있기에 소중히 다루고는 있지만, 인기있는 서적은 손땀이나 손기름 떄문에 어쩔 수 없이 상하고 있었다.


('열 권을 읽느니 한 권을 옮겨써라(十遍読むより一遍写せ)'라는 말도 있으니, 사본(写本)을 권장해서 매입하기라도 할까?)


이 속담(諺)이 의미하는 것은 독서의 요령이다. 책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는 것보다 내용을 한 번 옮겨쓰는 편이 내용을 잘 이해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

사본을 만들기 위한 전문 부서가 있기는 하나, 장서의 숫자는 방대하여 책이 늘어나는 속도에 도저히 따라가지 못한다.

그렇기에, 한 번 인쇄된 책이라고는 해도 가벼운 마음으로 다시 인쇄해 달라고 말하기는 어려웠다.


(지질(紙質) 관계상 한번 더 제판(ガリ切り, 등사판 인쇄(ガリ版印刷)의 원판을 만드는 것)부터 다시 해줘야 하니까……)


경질(硬質)의 펄프지와는 달리, 화지(和紙, ※역주: 일본 종이)에 왁스(蝋)를 바른 것을 제판에 사용하고 있기에 내구성에도 문제가 있어, 한 권만 인쇄하는 등의 세세한 대응(小回り)을 할 수 없다는 배경도 있었다.

시즈코가 고민하고 있을 때 옆에서 말이 걸려왔다.


"엇, 시즈코 님. 인사가 늦어서 죄송합니다. 책이 정신이 팔려서 실례했습니다"


그 점에서, 사본이라면 종이와 붓만 있으면 본인의 노력만으로 책이 늘어난다. 개가(開架) 서고(書庫)에 있는 책은 기밀성도 낮기에 내용을 기억하더라도 문제없고, 사본 자체를 사들이면 유출될 일도 없다.

이거라면 양쪽에 메리트가 있으니, 사본 제작 키트라도 만들까 하고 생각이 깊어지고 있을 즈음에 정신을 차리고 목소리가 들린 쪽을 돌아보았다.

볼에 홍조(紅潮)를 띄우고 말을 걸어온 것은 노부유키였다.

아직 어린 노부유키의 목소리는 높고 잘 들렸기에 이용자들이 무슨 일인가 하고 주시(注視)했으나, 카게카츠는 익숙해졌는지 신경쓰지 않고 책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내가 올 때마다 인사할 필요는 없어. 그건 그렇고 꽤나 읽고 있는 모양이네? 열람석에 책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어. 아침부터 계속 있던 거야?"


시즈코가 쿡쿡 웃으면서 묻자, 노부유키는 눈을 반짝이면서 대답했다.


"네, 녜에. 이곳은 상상 이상이었습니다. 천하의 모든 것이 이곳에 모여 있는 게 아닐까 생각될 정도입니다. 분야별로 책도 정리되어 있어, 안내를 따라가면 쉽게 원하는 책을 찾을 수 있는 것도 놀랐습니다!"


최근 비슷한 절찬을 들었네, 라며 카게카츠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계속 같은 자세를 취해서 몸이 굳었는지, 카게카츠는 등받이가 달린 의자에 체중을 맡기고 한창 기지개를 켜고 있던 참이었다.

시즈코의 시선을 깨달은 카게카츠는, 자기도 모르게 손에 든 책으로 자신의 얼굴을 감추고는 열람석 쪽으로 몸을 돌렸다. 영리(利発)하고 어른스럽기는 하나, 그는 20세가 채 되지 않는 젊은이였다.

좋아하는 것에 몰두하고 있으면 빈틈도 생기는 법이었다. 그는 산처럼 쌓인 책을 정리하여, 조금이라도 어지럽다는 인상을 불식시키려 노력하고 있었다.

마치 어머니에게 정리하라는 말을 들은 어린애 같다고 시즈코는 미소를 지으며 지켜보았다.


"꽤나 다양한 분야에 흥미가 있구나?"


노부유키가 손에 들고 있는 책은 실용서(実用書)에서 오락서(娯楽本)까지 있어 장르에 일관성이 보이지 않았다. 무사의 자식이 좋아하는 전기(戦記)도 있고, 농업이나 원예(園芸)에 관한 책에도 손을 대고 있었다.


"예. 저(某)는 어떤 것을 본격적으로 연구하자고 정할 정도로 책을 읽지 않았습니다. 우선은 목록을 보고, 흥미가 있는 책을 모두 읽은 후에 정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것에 흥미를 가지는 건 좋은 일이야. 하지만 읽는 것만으로 끝내면 아깝지. 읽은 내용을 확실히 자신의 것으로 소화할 수 있도록 견문(見分. ※역주: 작가가 독음이 같은 見聞을 잘못 쓴 것으로 보임)을 넓히도록 해"


"옛, 명심하겠습니다"


"좋아. 아, 그러고보니 이제 곧 점심시간인데, 같이 점심식사라도 어때? 키헤이지(喜平次) 군도 같이 올 거지?"


"함께 하겠습니다"


시즈코의 권유에 카게카츠는 망설임없이 대답햇다. 모처럼의 권유를 거절할 이유도 없고, 케이지가 자신의 소성(小姓)인 카네츠구(兼続)를 데리고 거리로 나가 있다는 이유도 컸다.

소성이 주인을 방치하고 놀러나간다니 언어도단(言語道断)이라고 생각될 법 하지만, 카게카츠 자신은 신경쓰고 있지 않았다.

부모의 품에서 멀리 떨어진 인질 생활이니, 가끔의 자유 정도는 허용되어야 한다고 그는 생각하고 있었다.


"저, 저도 함께 하겠습니다!"


즉시 대답한 카게카츠와는 대조적으로 약간 망설힌 노부유키는, 그래도 카게카츠에게 촉발되었는지 경쟁하듯 대답했다.


"좋아좋아. 그러면 나중에 사람을 보낼게. 그때까진 자유롭게 독서하고 있어"


이 이상 오래 있으면 독서의 방해가 된다. 특히 노부유키는 7일에 한 번인 귀중한 기회이다. 그렇게 생각한 시즈코는 이야기를 마무리하고는 두 사람에게 손을 흔들고 도서실에서 나갔다.


점심식사는 장어구이 덮밥(ひつまぶし)이었다. 문자 그대로 배터지게(鱈腹) 먹은 두 사람은, 오후의 수마(睡魔)와 싸우느라 고생했다.




시즈코들이 평온하게 지내고 있을 때, 고노에 사키히사(近衛前久)는 쿄(京)에서 세력 확대에 여념이 없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강권(強権)을 휘두르는 것도 아니고, 뇌물을 주는 것도 아니다.

적극적으로 문화를 발신(発信)하고, 예술이나 유흥(遊興)을 진흥(振興)했다. 그는 빈번하게 공가(公家)들을 초대해서는 오와리에서 유래한 신기한 문물을 선보였다.

그것은 치안이 악화된 쿄를 버리고 지방의 장원(荘園)으로 이주했던 사람들에게 다시 쿄로 되돌아오기에 충분한 이유가 되었다.

노부나가의 상락(上洛) 이후, 철저한 단속으로 치안이 안정되어, 황폐해졌던 쿄가 옛 광채(輝き)를 되찾은 점도 컸다.


게다가 사키하사의 저택에는 다른 곳과는 다른 연구(工夫)가 적용되어 있었다. 교토(京都)는 분지(盆地)로, 겨울이 되면 차가운 공기가 정체되어, 소위 말하는 '몸속까지 스며드는 추위(底冷え)'라는 현상이 발생한다.

기밀(気密) 같은 건 바랄 수도 없는 당시의 건축 양식으로는, 여름에는 쾌적하더라도 겨울에는 화로를 끌어안고 견디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추우면 사람의 활동성이 떨어져버린다. 현대에서는 단열성이 우수한 의복이 많이 있어 야외에서도 옷을 든든히 입으면 상당한 추위에 견딜 수 있다.

전국시대에는 그런 의복은 존재하지 않고, 그냥 옷을 껴입는 것만으로는 우아하지 않다고 사키히사는 생각했다. 우아하게, 그러면서 추위를 이겨낼 수 있는 수단을 강구할 필요가 있었다.

거기서 사키히사가 취한 대책이란, 오와리에서 기술자를 초빙하여 자택의 부지(敷地) 내에 기밀성이 높은 별채(別邸)를 짓는 것이었다.

외벽을 회반죽을 바른 흰 벽으로 마감하고, 내부를 중공 구조(中空構造)로 하여, 그 사이에 단열제로서 펠트를 끼워넣었다.

눈썰미가 좋은 사람이 본다면 별채의 외관과 내부의 공간에 차이가 있는 것을 눈치챌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의도까지 꿰뚫어볼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사키히사의 연구는 이것에 그치지 않았다. 시즈코의 지식을 바탕으로, 체감온도(体感温度)에 습도가 크게 영향을 미치는 것을 알고, 가습기까지 준비했다.

물론, 전기식의 가습기 같은 것이 아니라, 물을 넣은 용기를 아래로부터 덥혀 증기를 보내는 원시적인 가습기이다. 하지만, 건조한 겨울의 공기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환경을 제공해준다.


어려운 것은 우아해야 하는 것이었다. 노골적으로 대책을 취해놓은 것이 보여서는 우아하지 않다.

그 때문에 가습기는 마룻바닥 아래의 공간에 설치되고, 펠트로 감싼 단열 파이프를 통해 조용히(密かに) 공기를 보낸다.

송풍구는 교창(欄間, ※역주: 문·미닫이 위의 상인방과 천장과의 사이에 통풍과 채광을 위하여 교창(交窓) 따위를 붙여 놓은 부분)으로 덮어서, 얼핏 보아서는 구멍이 보이지 않게 되어 있었다.

마룻바닥 아래에서 올라오는 냉기(冷気)를 차단하기 위해 다다미(畳) 아래에서 펠트를 깔아, 별채의 실내는 놀라울 정도로 쾌적한 환경이 되어 있었다.


"과연 고노에 님. 유리(玻璃) 장지문(障子)이라니 아름답습니다. 따뜻한 실내에서 겨울 풍경을 감상하는 것은 각별하군요"


"아뇨아뇨, 저로서는 이 별채(離れ)를 준비하는 것만도 벅찹니다. 쿄에서 쫓겨난 촌놈(鄙, 田舎者)이 여러분을 충분히 대접하고 있는 것인지 내심 불안하군요"


시즈코에게서 직접 배운 차완무시(茶碗蒸し, ※역주: 계란찜의 일종)에 대만족하여 입맛을 다시며 초대받은 공가들이 입을 모아 사키히사를 칭찬했다. 사키히사는 겸손한 태도를 보이면서도 공가들의 모습을 관찰하고 있었다.

오늘은 사키히사가 주최한 가회(歌会, ※역주: 일본 시(和歌)를 짓고 서로 발표, 비평하는 모임)가 있었고, 그 후에 딱 적당한 시간이라는 이유로 저녁식사를 제공하고 있었던 것이다.

몸을 안쪽부터 덥혀주는 식사와 절품(絶品)으로 이름높은 오와리의 청주(清酒)를 먹은 공가들은, 사키히사의 재력과 최첨단의 문화에 취했다.

여담이지만 천황(天皇)이 주최하는 가회는 어전 가회(歌御会)라고 하여, 그 해의 첫 가회를 첫 어전 가회(歌御会始, 타이쇼(大正) 시대에 歌会始로 개칭됨)라고 부른다.


이러한 조장 내부의 권력투쟁은 일견 노부나가들에게 아무 이익도 가져오지 않는 듯 생각되었으나, 투자하기체 충분한 이점이 있었다.

세상은 무가(武家) 사회가 되었다고는 해도, 명목상으로는 뭘 하더라도 조정(朝廷)의 권위가 필요해진다.

이렇게 사키히사를 중심으로 파벌을 만들어 두면 여러 모로 편리해진다(融通が利く). 공가들에게 군사력 따윈 존재하지 않지만, 그들이 꾸준히 이어온 역사와 권위는 이용가치가 높았다.


그리고 지금은 많은 공가들이 장원으로부터의 수입을 잃고, 토지나 재산을 담보로 상인들에게서 돈을 빌리고 있는 공가도 있다.

개중에는 일상생활조차 어려워서, 선조 대대로 내려온 토지나 저택까지 빼앗기고 허름한 빈 집으로 이주하여 생활자금을 빌리며 근근하게 생활하는(爪に火を点す) 공가까지 있었다.


사키히사가 많은 공가들을 초대하여 연회를 열면, 그런 공가들의 경제 상황 같은 것을 알 수 있다.

'물에 빠진 사람은 지푸라기라도 붙잡는다(溺れる者は藁をもつかむ)'라는 말처럼, 약간의 경제 원조로 사키히사의 파벌로 들어와 조정에 대한 발언력을 한층 더 강화시켜준다.

그렇다고는 해도, 이런 책략을 노부나가가 쓰면 공가들의 긍지에 상처를 입힌다. 귀족들의 미묘한 심리(機微)를 잘 알고 있는 사키히사를 통해서 공작을 하는 쪽이 성공률도 높았다.


"겸손하시기는요. 아 그렇지, 따님(ご息女)의 소문, 제(麻呂) 귀에도 들리더군요"


"이거 괜한 이야기로 귀를 번거롭게 해드렸군요. 저는 쿄를 떠난 이후 오랫동안 무가 사람들과 가까이 지내 왔습니다. 덕분에 딸도 여자답지 않게 이것저것 손을 대고 있어 아직 시집을 갈 기색도 없군요"


"하지만, 따님의 조력이 있어 모두 쿄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저희들 공가와 무가를 잇는 가교(架け橋)로서 보기 드문 재주를 가지고 있다더군요"


부채로 입가를 가리면서 공가가 웃었다. 여기서부터 서로의 속을 살피는 것(腹の探り合い)에는 사키히사가 실력을 발휘할 자리가 된다. 사키히사는 접대용 미소(愛想笑い)를 떠올리면서도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3월에 들어서자, 노부나가는 많은 포고령을 발표했다. 역법(暦法), 도량형(度量衡), 새 화폐(新貨幣) 등을 시작으로 그 내용은 다방면에 걸쳤다.

개중에는 사키히사를 통해 천황(帝)을 움직여, 공가들의 토지에 대한 덕정령(徳政令)도 내렸다. 덕정령은 채무(借金)의 불이행(踏み倒し)으로, 채권자(債権者)에게는 물론 환영받지 못한다.

상인들의 조합(組合)을 통해 노부나가에게 진정서가 도착했으나, 그는 '곤경을 틈타 터무니없는(法外) 이자를 받으며 선조 대대로 내려온 토지나 저택을 속여 빼앗은 악랄한 자들에게만 적용된다'라고만 대응했다.

일부 상인들은 불만을 품었지만, 이 덕정령은 대체로 호의적으로 받아들여졌다.

부흥하고 있는 쿄의 토지를 계속 품어서 원한을 사기보다, 얼른 돌려주고 공가의 환심을 사는(取り入る) 쪽이 이익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역법이나 도량형을 제정하는 것은 지배자의 증거. 일본에 사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틀림없이(否応なく) 노부나가의 시대가 왔다고 이해하게 되었다.


때를 같이하여 노부나가는 조정으로부터 종3위(従三位) 참의(参議)에 임명되었다. 참의란 대신(大臣)이나 납언(納言, ※역주: 일본 관직명의 경우, 가독성이나 이해를 돕기 위해 한자와 일본 독음을 경우에 따라 번역에 구별하여 사용하고 있음) 다음가는 중요한 직책으로, 조정의 최고 기관인 태정관(太政官)의 관직 중 하나이다.

이름 그대로, 조정의 정무에 관한 의사(議事)에 참여할 수 있는 직책이다. 국정에 관여하는 고관(高官)이므로 취임하려면 조건이 존재한다.

노부나가의 경우에는 동시에 종3위를 받았기에 참의가 될 수 있었다.


"일들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네"


노부나가가 쿄에 체류중의 경비는 소수라도 유사시의 즉응력(即応力)이 높은 시즈코의 군이 맡게 되었다. 주력은 사이조(才蔵)가 이끌고 종군하고 있으며, 케이지와 나가요시(長可)는 유격대(遊撃隊)가 되었다.

케이지는 대기하는 것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아, 쿄에 도착하자마자 부대를 남겨놓고 혼자서 홀연히 사라졌다.

나가요시는 부대를 이끌고는 있었으나 케이지와 큰 차이가 없어, 경라(警邏)라고 칭하며 쿄의 거리로 끌고나갔다.

대기소(詰所)에 남아있는 것은 시즈코 직속의 용기병(竜騎兵, 총기병(銃騎兵)) 부대와 사이조 군 뿐이었다.

시즈코 자신도 케이지와 나가요시의 동향을 파악하고 있지 않았기에, 적의 입장에서는 언제 케이지나 사이조와 조우하게 될 지 알 수 없어 긴장을 강요받는 상황이 의도치 않게 만들어졌다.


"요키치(与吉) 군은 단독으로 아즈치(安土) 주변의 환경조사(環境調査). 아시미츠(足満) 아저씨는 오와리에서 내 대리. 뭔가, 나는 군을 유지하기 위한 장식품(置物)이 된 것 같은 느낌이에요"


"그만큼 시즈코 님께 구심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시즈코 님께서 계시는 것만으로 쿄의 백성들은 안심한다는 것이겠지요. 부디, 경거망동은 삼가시고 여기서 진득하게 계셔 주십시오"


시즈코의 중얼거림에 사이조가 다독였다. 노부나가의 영향인지, 시즈코에게도 갑자기 혼자서 말을 몰아 달려나가는 버릇이 생겨버렸다.

단, 현재의 시즈코는 공가 필두(筆頭)인 고노에(近衛) 가문의 딸이자, 오다 가문에서도 중진(重鎮)이라 불리는 지위를 가지고 있었다.

신분(肩書)과는 대조적으로 육체적으로는 연약한 여성으로, 혼자서 좋지 않은 일(厄介ごと)에 말려들게 되면 목숨을 잃을 위험조차 있었기에, 부하들은 살아도 사는 것 같지가 않은 것이다.


"아니 그…… 그 때는 폐를 끼쳤어요. 뭐 불평은 할지도 모르지만, 아무래도 그런 짓은 이제 안 할 거에요"


까딱하다 책임문제가 되어, 경비 책임자인 사이조가 할복하겠다는 말을 꺼냈기에, 시즈코는 혼자서 몰래 다니는 일은 없어졌다.

참고로, 천하인에 가장 가까운 노부나가는, 입장이 변해도 혼자서 암행(お忍び)이라 칭하고 돌아다니고 있다.


"불평 정도라면, 이 사이조가 얼마든지 받아드리겠습니다"


"종4위하(従四位下)에 서임되어 버렸으니까요. 아무래도 경솔한 행동은 할 수 없어요"


조정으로부터 예사(芸事)의 수호를 맡은 시즈코는, 그와 병행하여 종4위하의 품계를 받았다. 단, 관직은 주어지지 않아 무관(無官)이다.

원래는 품계(位階)를 내릴 예정은 아니었으나, 조정 측에서 의뢰한 형식을 취하는 이상 아무 것도 주지 않아서는 모양새가 나쁘다.

그렇다고 해서, 갑자기 높은 지위에 임명할 수도 없었기에, 소위 말하는 명예찍으로서 종4위하에 임명하게 되었다.

여담이지만, 공식적으로는 알려지지 않은 시즈코의 다른 이름인 '니히메(仁比売)'는, 당대의 천황으로부터 종4위상을 받았다.


조정을 분규(紛糾)하게 만든 시즈코의 서임이었으나, 당사자인 시즈코는 완전히 밖으로 밀려나 있어(蚊帳の外), 그녀에게는 노부나가가 시즈코를 대신해 받았다는 통지만이 도착하고 그녀에게는 선택지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노부나가로서는 조정 내에 자신의 세력이 늘어나 발언력이 커지는 것이기에 거절할 이유는 없다. 이미 시즈코는 천하에 이름이 알려진 여걸(女傑)이 되어 있어, 이제와서 감출 의미는 별로 없었다.


"뭐, 품계(官位)를 받아봤자 하는 일에는 변함은 없으니, 내일의 준비를 해 둬야겠네요"


손에 든 산더미같은 종이 뭉치를 치면서 시즈코는 입을 열었다.

품계를 받아 승전(昇殿)을 허락받는 전상인(殿上人)이 되더라도 시즈코가 하는 일은 변함이 없다.

높은 지위를 이용하여 정치를 하는 것은 노부나가이고, 정치적 뱃심(腹芸)을 부릴 수 없는 자신이 정치 같은 걸 할 수 있을 리도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지금은 노부나가의 일본 통일을 향한 자복(雌伏)의 때라 생각하고, 시즈코는 얌전히 장식품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기로 했다.


그렇게 말은 해도 일본의 현관문인 사카이(堺)에 가까운 쿄까지 온 것이다. 조금 정도 취미를 즐겨도 벌은 받지 않을거라 생각하고, 시즈코는 정력적으로 외부와의 교류를 가지고 있었다.

출자(出自)나 배경 등은 묻지 않고, 쿄의 백성이던, 멀리서 찾아온 행상(行商)이던, 평소에는 관계가 없는 종교(寺社) 관계의 사람이던, 이 시대의 역사나 풍토를 알고 있는 정보원(情報源)을 찾고 있었다.


특히 시즈코가 좋아한 것은 예수회가 데려온 노예들이었다. 흑인 뿐만이 아니라 실로 다양한 인종이 노예로 취급되고 있었다.

아마도 스페인 인으로부터 얻었을 아즈텍 인이나 인디언, 아랍 계열, 아시아 계열의 인종도 있어, 외모 만으로도 혼돈스러운 양상을 보이고 있었다.

노예라고 하면 가장 먼저 흑인 노예를 들 수 있지만, 어떤 인종이던 노예가 된 사람들은 있었다는 산 증거이기도 했다.


시즈코는 노예상에게 돈을 지불하고 노예들에게 직접 이야기를 들었다. 노예들의 삶이나 노예가 되기 전의 생활 습관, 문화, 풍습에 종교나 사상 등에 대해서도 시간이 허락하는 한 들었다.

질문받는 쪽은 옛날 이야기를 하기만 하면 노역을 면제받고, 게다가 약간의 보수까지 받을 수 있다. 다들 기쁘게 자신의 지식을 개진(開陳)해 주었다.

물론 일본인 이외의 노예에 대해서는 노예상이 통역을 붙여줄 필요가 있어 나름 비용이 꽤 들었지만, 책으로는 알 수 없는 생생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던 시즈코는 만족하고 있었다.


시즈코는 그런 이야기들을 요약해 기록하여, 후에 당시의 풍물을 알 수 있는 서적으로 편찬할 생각이었다.

현재 시즈코가 열심인 것은 인디언 노예가 말하는 선주민(先住民)의 문화에 대해서였다.

아즈텍 인 노예에게는 대화조차 거절당했으나, 인디언 노예와는 우호적인 관계를 구축할 수 있었다.

이 차이가 생긴 이유는 단순하여, 인디언의 가치관에 기인했다. 인디언 노예가 속하는 부족은 독수리를 신성한 동물로 숭배하고 있어, 길들인 자에게는 일정한 경의를 표한다.

시즈코가 가지고 있는 독수리의 깃털도 중요한 아이템이며, 그들이 쓰는 깃털장식은 '워 버넷(War Bonnet)'이라고 불리며, 전투에서 용감하게 싸워 공을 세운 사람에 대한 훈장으로서 하나씩 주어지는 것이었다.


물론, 처음에는 경계받았다. 그러나, 그들이 교섭할 때 하는 파이프 담배(煙草)를 돌려피울 때 '용감한 자에게라면 대답하겠다'고 그가 선언했기에, 시즈코는 부채머리 독수리인 시로가네를 인디언 노예에게 보여주었다.

그들 인디언에게 담배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파이프로 담배를 피운다는 행위는, 파이프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로 하늘 위에 사는 위대한 존재와 대화하는 것으로 간주했다.

이 때문에 화평 교섭이나 거래 때에는 파이프 담배를 돌려피워서 약속을 위대한 존재에게 서약했다. 위대한 존재가 증인이 되어 서약한 내용은 절대로 깨는 것이 용납되지 않는다.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된다고 생각해?"


"용감한 자여. 우리들은 죽음을 특별한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육체를 버리고 혼만 남게 되는 것 뿐이다. 혼은 불멸이며, 생명은 계속된다"


"어떤 걸 먹었어?"


"버팔로(buffalo)나 카리부(caribou) 등을 사냥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곡물이다. 콩이나 옥수수, 호박도 먹었다. 콩이나 옥수수는 건조시켜(乾して乾燥させて) 저장했다"


통역을 통하고 있었기에 짧은 문장으로 집약되어버렸으나 시즈코는 신경쓰지 않았다. 인디언 노예의 말을 받아적고, 다음 질문을 계속했다.

점심 때가 되자, 그들의 식생활에 맞춘 옥수수의 포리지(porridge)를, 여름에 수확하여 보존해두었던 스위트 콘으로 만들어 함께 점심식사를 하기로 했다.

삶아서 불리기만 해도 달콤한 스위트 콘에 인디언 노예는 놀랐지만, 그가 생각하는 포리지의 맛과는 달랐던 모양이었다.

다음에 기회가 있으면 그 자신이 솜씨를 보여준다고 말했다.


"용감한 자여, 또 만나자"


헤어질 때도 인디언 노예의 태도는 담백했다. 언제 누구에게 팔려갈지 모르는 신세인데, 그는 그것을 비관하고 있는 기색조차 없었다.

거기에는 그 나름대로의 철학이 있었으며, 있는 그대로 살아가는 그 모습을 부럽다고까지 생각했다.




"꽤나 모였네"


자택의 창고에 문자 그대로 산더미처럼 쌓인 종이를 보고 시즈코는 중얼거렸다. 종이의 원료에는 닥나무(楮), 삼지닥나무(三椏), 안피나무(雁皮), 삼(麻) 등 4종류를 사용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자생하고 있는 것을 수확하거나 상인에게서 사들였지만, 시즈코는 종이를 대량생산하기 위해 대대적인 원재료 생산에 착수하기로 했다.

만들어지는 종이의 품질을 생각하면, 안피나무를 재배하는 것이 이상적이지만, 안피나무는 생육이 늦고 또 재배가 어려웠다.

그래서 재배가 용이하며 매년 안정된 수확을 기대할 수 있는 닥나무를 주로 하고, 삼지닥나무를 부재료로 키우기로 했다.


"하지만, 과연 에치젠(越前) 화지. 좋은 걸 만드네. 미노(美濃) 화지도 지지 않지만, 역시 장지문(障子)이나 포장지(包み紙)용이지"


청서(清書)용으로 준비한 에치젠 화지의 매끄러운 표면을 쓰다듬으며 시즈코는 중얼거렸다.

에치젠 제압 후, 시즈코는 에치젠의 기술자들을 받아들였다. 그중에는 당연히 화지 기술자도 있었다.

화지의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시즈코는 화지 생산의 거점을 세우고 화지 기술자들을 그곳에 던져넣었다.

환경 차이에 당황했던 에치젠의 화지 기술자들도, 익숙한 도구나 설비가 없는 것만 빼면 좋은 대우인 것을 알자 열심히 화지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들이 의욕적으로 일하기 시작했을 때, 시즈코는 미노 화지 기술자들과 마찬가지로 솜씨가 좋은 기술자를 골라 '명인(名人)'이나 '달인(達人)'의 칭호를 내렸다.

하지만 칭호를 받은 기술자들 입장에서는, 자신이 만든(漉) 종이가 다른 기술자들의 것과 따로 취급되는 것과 약간 보수가 늘어나는 것 외에는 대우에는 변함이 없다.


기술자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당연한 것이, 이것은 판매하는 입장에서의 품질보증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명인'이나 '달인'이 만든 종이가 질이 좋은 것은 당연하며, 따라서 그 상품 가치도 자연히 달라진다.

좋은 것을 싸게 제공한다는 사고방식은 대량생산 대량소비가 당연한 시대의 가치관이며, 공업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전국시대에서는 좋은 물건에는 그에 맞는 가격이 붙었다.

완성된 상품의 매매가가 달라지기 때문에, 서서히 '명인'이나 '달인'의 칭호를 갖는 기술자들에게 환원되는 보수는 늘어간다.

성과에 걸맞는 보수가 약속된다면, 기술자들은 서로 절차탁마(切磋琢磨)하며 더욱 좋은 물건을 만들려고 노력하기 시작하여, 전체적으로 미노 화지의 기본적인 품질도 올라간다.


단, 품질이 좋으면 팔린다는 보장이 있는 것은 아니다. 더욱 좋은 물건에는 그에 걸맞는 포장이 있으며, 가격에 걸맞는 선전이 필요해진다.

설량 일반인이 손댈 수 없는 가격이라도, 비싸지만 좋은 제품이라면 가격이 비싸더라도 사들이는 사람은 있으며, 사용자의 주변에 그 상품가치가 퍼져나간다.


물론, 선전에만 그치지 않고 가격 설정에도 이런저런 연구를 한다. 심리적(心理的) 가격 설정(価格設定)이라고 불리는 가격 설정을 했다.

구매자는 가격이 비싼 것에는 가치가 있고, 가격이 낮은 것에는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다. 이것을 명성가격(名声価格)이라고 부른다.

또, 복수의 선택지가 제시되어 고급품, 중급품, 보급품을 늘어놓으면, 많은 사람들은 중급품을 선택하기 쉽다. 이것을 단계가격(段階価格)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구매자 심리를 찌른 가격을 제시하여, 시즈코는 구매자층을 분리시켰다.


즉, 에치젠 화지를 고급 브랜드 상품으로 삼고, 미노 화지 중에서도 질이 좋은 것을 중급품, 일반적인 품질의 것을 보급품으로 취급했다.

이러한 연구를 한 가치가 있어, 각각의 화지는 서서히 침투해갔다.


"잊어버리기 전에 얼른 청서해버리자"


시즈코는 콧노래를 부르면서 낮에 수집한 이야기의 내용을 에치젠 화지에 청서해갔다.

경필(硬筆, ※역주: 연필이나 펜 등의 총칭)에 익숙했던 시즈코는 당초에 모필(毛筆, ※역주: 붓)에 고생했으나, 이제는 붓 쪽이 빠르게 쓸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시즈코 님, 아케치(明智) 님의 사자가 왔습니다"


이제 곧 정리가 끝날까 싶을 때, 소성이 사자의 내방을 알려왔다. 중요한 부분은 끝났다고는 해도, 시즈코로서는 얼른 다 끝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이제 곧 해도 질테니, 내일 이야기했으면 좋겠다고 전해요"


방에 들어오는 햇빛을 보고 대략의 시각을 추측했다. 이제 곧 해가 질 거라 생각한 시즈코는, 지금은 바쁘니까 다른 날에 다시 와 달라는 뜻을 전하도록 명했다.

소성은 짧게 대답한 후, 말을 전하러 갔다. 소성이 떠나기를 기다리지 않고 시즈코는 작업을 재개했다.


"대단히 죄송합니다, 시즈코 님. 뭔가 화급(火急)한 용무라고 하시며, 오늘 중에 말씀을 드리고 싶다고……"


몇 장만 남았을 때 소성이 돌아왔다. 얼굴을 보지 않아도 그가 곤혹스러운 표정을 떠올리고 있는 것은 금방 알 수 있었다. 시즈코는 작게 한숨을 쉰 후, 다 쓴 초고(下書き)의 매수(枚数)를 세었다.


"……조금 기다리라고 전해요. 먼저 방으로 안내해서 차와 차과자(お茶請け)를 내주도록 해요. 그리고 케이지 씨…… 는 아마 없겠네. 사이조 씨 등을 불러줘요"


"알겠습니다"


10분 정도에 끝내자. 그렇게 결의한 시즈코는 다시 붓을 손에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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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

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텐쇼(天正) 원년(元年) 키나이(畿内)의 사회기반 정비


114 1574년 1월 하순



오다 군에 의한 군사 지원을 거절한다. 시즈코는 그 요청의 의도에 대해 생각했다.


"이쪽에서 부탁해 놓고 무슨 뻔뻔한 소리를 하는 거냐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하지만, 이대로는 쵸소카베(長宗我部)가 시코쿠(四国)의 패자(覇者)인 의미가 없습니다. 오다 님이 우연히 이야기를 한 것이 쵸소카베이며, 거기에 필연성은 없고 누구든 상관없었다는 게 됩니다"


이케(池)의 표정에 씁쓸함이 떠올랐다. 사실 그 말대로라서, 시코쿠를 다스리기에 충분한 기량이 있다면 노부나가는 쵸소카베를 고집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쵸소카베가 아니면 안 된다고 우쭐할 정도로 현실이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시코쿠를 통치하려면, 얕보인 채로는 지장이 생깁니다"


시즈코가 추측할 것도 없이, 이케 자신이 이유를 말했다. 과연, 맞는 말이라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현재, 쿠키 수군의 활약만이 부각되며 쵸소카베의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이대로 가면, 오다 군이 쵸소카베에게 '시코쿠를 통일시켰다'라고 누구나 생각하리라.


"뜻은 잘 알겠습니다. 그거라면 직접 주상(上様)께 상소를 드리는 것이 이치라고 생각합니다. 미요시(三好) 건으로 화가 나 계시지만, 올바른 도리가 있다면 분명히 들어주실 것입니다"


"예…… 예에, 그건 잘 알고 있습니다만…… 그……"


노부나가에게 상소하라고 하자, 이케는 갑자기 우물거리기 시작했다.

그의 태도를 보고 시즈코에게는 짚이는 곳이 있었다. 승산(勝ち筋)이 보이기 시작한 후에 자신들에게도 활약할 장소를 달라고 청하는 것은 확실히 뻔뻔한 이야기이다.

최종적으로는 시코쿠의 안녕으로 이어지며 오다에게도 이익이 있는 일이지만, 이 제안을 한다는 것은 노부나가의 역린(逆鱗)을 건드릴 수 있다고 염려하고 있는 것이다.

자칫 노부나가의 신경을 잘못 건드려서 쵸소카베까지 한꺼번에 멸망시켜버리라는 말이 나오면 어디 가서 하소연도 못한다.

그래서 노부나가 자신도 여러 모로 인정하고 있는 시즈코에게 중간에 서서 중재해 달라고 청하고 있는 것이라고 시즈코는 헤아렸다.


(주상께서는 감정적이 되시긴 하지만, 감정에 맡긴 채 결정을 내리는 경우는 드문데…… 뭐, 이런 특징은 평소에 알고 지내지 않으면 모르겠지)


그리고 쿠키 수군의 실전 경험은 충분히 쌓았다고 시즈코는 판단했다.

한꺼번에 물렸다가 역전당할 수는 없으니, 단계적으로 물리게 하여 본래의 목적으로 운용을 시작해도 좋을 무렵이라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방침을 전환하기에 충분한 이유가 없다. 뭣보다 아직 미요시는 건재하여 노부나가의 의향을 이루지 못한 점이 걸린다.


"흐ー음. 주상을 설득하려고 하면, 그 나름대로의 근거가 필요합니다. 5년…… 아니, 3년 안에 미요시를 멸망시키실 수 있겠나요?"


"3년! 아니…… 이걸 하지 못한다면, 머지 않아 오다 님께서도 저희들을 저버리시겠죠. 반드시 멸망시켜 보이겠습니다"


"(이게 절대 조건이라는 건 아니지만, 저쪽에는 그 정도의 각오를 해 주는 편이 좋겠지) 알겠습니다. 그런 것이라면, 제가 주상께 말씀드리지요. 시간은 좀 걸릴텐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예. 이 건에 대해서는 아케치(明智) 님의 지원도 있습니다. 즉시 결단해 달라는 생각 따윈 애초에 하지 않았습니다"


이케가 한 말에서, 시즈코는 누가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인지 이해했다. 애초에 쵸소카베는 미츠히데(光秀)의 영향 아래 있었다. 하지만, 이번의 사건으로 세력 구도는 크게 변화했다.

이 요청을 계기로 다시 미츠히데의 영항력은 강해진다. 오다에게도 좋고, 쵸소카베에게도 좋고, 시즈코에게도 이득이 있다. 당연히 미츠히데의 이익은 말할 필요도 없다.

과연 지장(智将)으로 이름높은 아케치 미츠히데(明智光秀). 절묘하게 이해관계를 조정해보인다고 시즈코는 감탄할 정도였다.


(의욕적(乗り気)으로 보인 것이 오해를 부른 걸까? 시코쿠가 통일된다면 누가 다스려도 나는 상관없는데)


시즈코로서는 시코쿠의 토지에 거대한 과수(果樹) 재배지대(栽培地帯) 벨트를 예정하고 있었다.

시코쿠는 중앙을 동서로 시코쿠 산맥(四国山脈)이 가로지르고, 그것을 경계로 북부와 남부는 기후가 크게 달라진다. 옛부터 한해(干害, ※역주: 가뭄 피해)를 입기 쉽고, 수경재배(水耕栽培)에는 적합하지 않지만, 일조량이 좋은 산지에 물빠짐이 좋은 토양을 선호하는 과수를 심어 일본의 수요를 충당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시즈코로서는 역사적 사실대로, 에히메 현(愛媛県)에서 귤 등의 감귤류를 재배하고, 카가와 현(香川県)에서는 올리브를 키우고, 평야(平野) 지대에서는 쌀만큼 물을 필요로 하지 않는 밀(小麦)을 키울 생각으로 이것저것 수배하고 있었던 것이다.

드물게 시즈코가 지배지에 대해 욕심을 보였기에, 미츠히데로서도 경계를 해버렸다는 배경이 존재했다.


미츠히데는, 이 이야기를 중재하는 것으로 쵸소카베에 대한 영향력을 확보하고 시즈코에게 다른 뜻이 없는 것도 확인할 수 있다.

시즈코로서도 미츠히데가 고삐를 쥐어준다면, 준비가 헛되지 않게 되기에 바라는 바라고 할 수 있었다.

각자 다른 미래를 내다보면서도 이해가 일치했기에, 원만하게 이야기가 마무리되었다.


전원의 합의를 얻게 되자, 이케는 시즈코, 미츠히데 양쪽에게 깊이 고개를 숙이고 퇴출했다. 미츠히데가 자리를 뜨지 않는 것을 보니 아직 용무가 있는 거라고 헤이란 시즈코는 내심 진절머리를 냈다.

억지로 자리를 떠도 되었으나, 다음에 갈 곳이 히데요시(秀吉)였기에 엉뚱한 혐의를 받는 것도 곤란하다고 생각하여 참기로 했다.


"번거로운 이야기를 가져와서 죄송합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시즈코 님 밖에 할 수 없는 일이기에, 부디 잘 부탁드립니다. 그런데 다른 이야기입니다만, 타마(珠)는 폐를 끼치고 있지 않습니까?"


"타마 짱 말인가요? 요즘에는 일도 잘 배워서 손이 안 가고, 건강하게 일을 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건 다행이군요. 타마에게서 오는 편지에는 신기한 동물을 봤다느니, 아름다운 채색이 된 유리(玻璃)를 봤다느니…… 할 일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도무지 불안한 내용들 뿐이라서……"


시즈코의 대답에 미츠히데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타마에게서 오는 편지로는 근황조차 알 수 없어 불안해져서 이렇게 묻게 된 것이라고 시즈코는 헤아렸다.


(무장(武将)이라고 해도 부모. 역시 자기 자식은 신경쓰이는 것이겠지)


세상에서는 오다 가문에서 가장 출세가 빠른 것(出世頭)으로 이름높은 미츠히데도, 자기 자식의 일이 되면 부모의 표정을 보였다. 체면을 차리는 것도 있겠지만, 의외로 정이 많은 성격이라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그 후, 타마의 근황에 대해 시즈코가 알고 있는 범위에서 두세마디 더 나눈 후, 미츠히데는 안심하고 자리를 떴다.

정신차려보니 상당한 시간이 지나 있어, 시즈코는 히데요시로부터 사전 연락이 필요없다고 들었기에 그 길로 히데요시를 찾아갔다.

그러나, 타이밍 나쁘게 오우미(近江)에서 긴급한 연락이 도착하여 히데요시는 타케나카 한베에(竹中半兵衛)를 데리고 기후(岐阜)를 출발했다는 것이었다. 회견은 연기려나 하고 시즈코는 생각했으나, 대리인(名代)으로서 남은 히데나가(秀長)와 만나게 되었다.


"우선, 이쪽에서 불러놓고 자리를 비운 무례를 사죄드립니다. 이마하마(今浜, 나가하마(長浜)의 옛 이름. 히데요시가 이주한 후에 나가하마라고 부르게 되었다)에서의 축성에 조력해 주신 점, 형님을 대신해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히데나가는 시즈코에 대해 사의(謝意)를 표하면서 깊이 고개를 숙여 감사했다. 그에 따라 시즈코도 고개를 숙였다.


"아니오, 순조로운 듯 하여 안심했습니다"


"공방 마을(工房街)의 보청(普請, ※역주: 건축이나 수선)을 현지 주민들에게 맡겨주신 것을 형님은 대단히(殊の外) 기뻐하고 계십니다. 올해 겨울에는 굶주리는 백성이 없을 것이라면서요"


"현지의 지형지리에 익숙한(土地勘) 현지 분들을 고용하는 쪽이 합리적이니까요"


히데나가로부터 정중한 감사를 받고 시즈코는 조금 당황했다.

보청이란, 널리(普) 청한다(請)는 글자 그대로, 사회 기반을 지역 주민들이 만들고 유지해가는 것을 가리킨다.


여기서 시즈코가 한 것은 나가하마에 대규모 유리 공방지대(工房地帯)를 만드는 것이었다.

오와리(尾張)에서 시작된 유리제품 제조였으나, 점차 오와리에서만으로는 비좁아지기 시작했다. 기술자들도 늘리고 규모를 확대하고 싶었으나, 시즈코의 영지는 주위가 농지(農地)에 둘러싸여 있어 용지의 확보가 어렵다.

원래는 실험적으로 소규모로 시작한 산업이었으나, 기술이 확립된 지금에 와서는 채산성이 높은 우수한 산업으로 성장했다.

제조업이라는 것은 왕왕 생활 양식이 특이하기에 거주구에서는 격리되어 집중시키는 쪽이 효율도 좋다. 시즈코가 어딘가에 광대한 토지를 확보할 수 없을까 고민하고 있었을 때, 손을 들어올린 것이 히데요시였다.

히데요시는, 새로운 영지의 주요 도로를 따른 일등지(一等地)를 확보하여 유리 공방을 유치해 줄 것을 부탁했다.


이마하마는 교통의 요충이지며, 수도인 쿄(京)에도 적당히 가까워서 사치품(奢侈品)으로 간주되는 유리 제품의 생산지로 삼기에는 좋은 입지라고 할 수 있었다.


"오와리 키리코(尾張切子)의 술잔은 폐하(帝)께서도 애용하시는 물건이라고 하니, 언젠가 이마하마로부터 헌상될 것을 생각하면 감개무량하군요"


"그건 어떨까요? 폐하께 바치는 헌상품은, 품평회에서 최상으로 평가된 물건이지요. 제 기술자들도 그렇게 쉽게 그 영예를 양보하진 않을거라 생각하는데요?"


평소 강하게 주장하지 않는 시즈코가 드물게 자부심을 드러내보였다. 자신의 진퇴를 걸고 키워낸 산업이니만큼 애착도 강한 것이리라.


"하지만, 그 정도의 산업을 이마하마로 옮겨도 괜찮으신 겁니까?"


"오와리의 공방이 제일이라고 생각하고는 있습니다만, 유리 산업이 퍼지는 것 자체는 대환영이지요"


"하하하, 겸손하시군요. 부를 자기들끼리(身内) 독점해버리는 것이 인지상정. 널리 민초(民草)들에게 부를 나누어주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돌고 돌아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어도 여전히 어렵지요. 자, 너무 길게 이야기할 수도 없으니, 형님께 받은 이야기를 전해드리겠습니다"


"네, 네에"


"이마하마는 유리와 비단(絹)의 생산지로서 개발을 진행한다. 하지만, 양쪽 모두 필수품이 아니기에 미래의 전망에 불안감이 있다. 그래서, 이것만큼은 이마하마 외에는 없다는 것이 있으면 좋겠다, 라고 하셨습니다"


"과연"


히데요시의 상담이란 '나가하마에 특산품(特産品)을 만들고 싶다'였다. 확실히 나가하마를 포함하는 오우미는, 헤이안(平安) 시대의 기록에도 남아있을 정도로 질 좋은 견사(絹糸)나 견직물(絹織物)의 산지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이제와서는 그것도 과거의 영광에 불과하다. 오우미가 산출하는 비단 제품이 품질이 좋더라도 생산량이 부진하고, 거듭되는 전란으로 기술자(技術者)나 장인(職人, ※역주: 職人은 보통 '장인'이라는 뜻이기도 하지만, 작중에서 사용되는 뉘앙스는 '기술자'에 가까운 경우가 많아 職人은 기술자로 번역하고 있었으나, 여기서는 따로 기술자라는 표현이 등장했기에 職人을 장인으로 번역했음)들을 잃었다.

한 마디로 특산품이라고 해도 즉각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당분간은 쌀의 생산량을 늘리는데 주력하여 특산품을 낳을 바탕을 쌓아올려야 한다. 하지만, 나가하마에서의 쌀농사에는 한 가지 과제가 존재했다.

후세의 이야기가 되지만, 오우미 지방에는 수해(水害)가 빈발했다. 아네가와(姉川)나 타카토키가와(高時川, ※역주: 아네가와의 반대되는 뜻으로서 이모우토가와(妹川)라고도 함)가 범람하거나, 이건 남부에서의 이야기이지만 타나카미 산(田上山)이 원인이 되어 세타가와(瀬田川)가 범람하기도 했다.

양질(良質)의 목재를 꾸준히 제공해온 타나카미 산도, 에도(江戸) 시대에는 '대머리 타나카미(田上の禿)'로서 전국적으로 유명한 민둥산(禿山) 지대가 되었다.

한 번 비가 내리면, 대량의 토사(土砂)가 세타가와로 흘러들어가, 하류 지역의 마을(集落)들이 이전할 정도의 피해를 냈다.

메이지(明治) 시대가 되자 본격적인 치수(治水) 공사가 정부 주도로 시행되어, 그 때 생겨난 것이 유명한 '네덜란드 언제(オランダ堰堤)'이다.


"오우미는 수해가 많고, 그 때문에 치수공사를 우선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치수에 관해서는 어느 정도 기술을 제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오! 그거 든든하군요. 대놓고 말은 못하지만, 어떻게든 수도(都)에 가까우면서도 수입이 안정되어 있는 오와리-미노(美濃) 지방에 영지를 원하는 가신들도 있습니다. 수해에 대책을 세울 수 있게 되면, 오우미의 수리(水利)는 멋진 매력이 되겠지요"


이 시대의 일본에서 경제의 중심지는 오와리이다. 물류 면에서는 사카이(堺)에 한 발 양보한다고는 하나, 언젠가 일본의 현관문을 맡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었다.

거기서 멀리 떨어진 오우미의 땅으로, 영민들은 오다 가문 일당(一党)에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것을 고려하면, 히데요시의 가신들이 쌍수를 들고 환영하지 않는 것도 납득할 수 있다.

히데요시가 상담해온 것도, 나가하마의 장래성을 보여주지 않으면 가신들이 따라오지 않을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리라.


"상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형님께서 상황을 정리하시고 본인이 시즈코 님을 찾아뵐 테니 그 때 부탁드립니다. 우선은 전향적으로 검토해주신다는 회답만을 받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이것으로 히데나가와의 회담은 종료되었다. 히데나가는 히데요시에게서 맡은 용건을 전달한데다 시즈코의 협력을 받을 수 있게 되어 아주 기분이 좋은 상태로 귀로에 올랐다.


(치수라고 하면 영주의 기량이 시험받는 분야. 아무 대가도 없이 제공한다고 말할 수 있다니…… 그녀의 권세는 그 정도에까지 이른 것일까요? 그녀는 쌀이야말로 힘이며, 돈이나 권력의 근원에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인지도 모르겠군요)


똑같이 노부나가라는 주군을 모신다고는 해도, 시즈코와 히데요시의 관계는 현대풍으로 말한다면 그룹 회사 내부의 경쟁사(競合他社)이다.

그룹 전체가 착수하고 있는 주력상품 '쌀'에 관한 기술을 나눠준다는 것은 스스로의 어드밴티지를 버리는 것과 다름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즈코는 기술공여를 수락했다. 그녀는 말하자면 '쌀본위제도(米本位制度)'에서 탈피하여 아득히 먼 미래를 내다보고 있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그녀의 속셈이 어찌되었던, 형님께서 이마하마로 옮겨가시면 지금까지와 같은 관계(付き合い)는 바랄 수도 없지요. 지금은 장래로 이어지는 포석을 둘 수 있었던 것에 만족하고, 이것이 훗날 형님께 이익을 가져오기를 기대하도록 하죠)


조급해 할 필요는 없다. 부주의하게 시즈코와의 거리를 줄이면, 그것은 주위의 경계를 초래한다.

히데나가는 때가 무르익지 않은 것을 이해하고 있었기에, 다음으로 이어지는 한 수를 둘 수 있었던 것만으로 만족하고 물러났다.


(무리하게 다가가려고 하면, 이쪽도 가진 패를 내보이게 됩니다. 그녀가 하찮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조차 우리들에게는 주옥같은 의미를 가지지요. 조용히, 천천히 낚아챈다. 흠…… 나쁘지 않군요)


이런 공작(工作)도 꽤 재미있다. 그렇게 생각한 히데나가는, 무의식중에 소리내어 웃었다. 호위의 병사들이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그가 그것에 대답하는 일은 없었다.




시즈코가 노부나가에게 쵸소카베의 건을 보고하려고 알현을 신청했을 때, 예상보다도 빠르게 수락의 답변이 돌아왔다. 안 좋은 예감을 느끼면서도 시즈코는 노부나가와의 알현에 임했다.


"달력(暦), 인가요"


"음. 지금까지의 달력을 폐지하고, 새로운 달력을 제정한다. 새로이 퍼뜨리는 달력은, 네가 지금까지 사용해 온 달력을 쓰려고 생각하고 있다"


달력을 제정한다는 것은, 도량형(度量衡)의 통일과 맞먹는 천하인(天下人)의 일이다. 일본에서는 옛부터 태음력(太陰暦)이 사용되었고, 메이지(明治) 6년에 태양력(太陽暦)으로 바뀔 때까지 실로 다양한 달력이 사용되었다.


"1년을 365일과 3각(刻, 6시간)으로 정하고, 12개월을 1년으로 하고, 홀수 달을 31일, 짝수 달을 30일로 한다. 2월을 윤년(閏年)의 조정월(調整月)로 하고, 평년(平年)은 29일, 윤년에서는 30일로 정한 달력 말입니까?"


"그렇다. 하루를 24시간으로 하고, 한 시간을 60개의 분으로 나누고, 다시 1분을 60개의 초로 나누는 것이었더냐? 꽤나 번거롭다고 생각했는데, 네가 매년 보고해 오는 연간(年間) 온도 경향(温度傾向)이나 작부(作付け)와 수확량(収量)의 자료를 보고 그 유용성을 이해했다"


태음력이란 달의 운행을 강하게 의식한 달력이며, 날짜와 달의 모습(見かけの形)이 일치한다. 따라서 달만 떠 있다면 그 날이 며칠인지 달력이 없어도 구할 수 있다.

그러나, 태음력에서는 실제의 계절과 날짜가 점점 어긋나버려서, 날짜와 연동된 계절별 현상을 기대하는 근대 농법과는 상성이 나쁘다.

그래서 시즈코는 그레고리 력(暦)을 기준으로 독자적인 달력을 정리했다. 평년을 365일로 하는 관계상, 단순히 홀수 달을 31일, 짝수 달을 30일로 해서는 1년이 366일이 되어 버린다.

그래서 현대의 역법(暦法)과 마찬가지로, 2월을 29일로 하고, 400년에 97회의 윤년을 두는 방식을 채용했다.

어째서 2월을 하루 줄인 것인가 하면, 선인(先人)이 2월로 정하고 그것이 통용되고 있는 이상, 뭔가의 의미가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농업에 있어 편리하기에 사용하고 있습니다만, 그걸 정식으로 채용해도 괜찮을까요?"


어디까지나 농업을 하면서 매년 같은 날짜 쯤에 같은 작업을 하는 것을 의식하게하기 위해 도입한 것이었다. 그것을 노부나가는 일본 전토에서 사용하는 기본적인 달력으로서 제정하겠다고 하고 있었다.

실제로 역사의 선별을 견뎌낸 그레고리 력이 아니라 독자적으로 고친 것이기에 불안해지는 것도 당연했다.


"아무 문제도 없을 것이다. 농업은 나라의 근간이다. 날짜와 계절이 일치하면, 윤달(閏月) 같은 번거로운 것도 필요없지. 물론, 급격한 변혁은 혼란을 가져오니, 당분간은 옛 달력과 병용하게 되겠지만 말이다"


이미 노부나가의 마음 속에서는 결정 사항이 되어 있었다. 이렇게 되면 시즈코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지금 이상의 이득을 보여주지 않는 한 그는 앞서 한 말을 뒤집지 않는다.

시즈코는 번의(翻意)를 촉구하는 것을 포기하고, 사용하면서 문제(不具合)가 생기면 그때그때 수정하는 방침으로 변경하기로 했다.


"자, 내 용무는 끝났다. 네 용건은 무엇이냐?"


"예. 시코쿠 통일에 전망이 섰으니, 쿠키 수군을 쵸소카베에게서 빼내어 해상 봉쇄 임무를 수행하게 했으면 합니다"


"호오…… 그 노림수는 어디에 있느냐"


노부나가의 시선이 날카로워졌다. 시즈코와 이케의 대화를 몰라도, 미츠히데나 쵸소카베의 속셈은 헤아리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시즈코가 무슨 말을 할지 판단하려고 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영주(国人)나 종교 세력(寺社勢力)에 속하지 않는 철포(鉄砲) 용병집단(傭兵集団) 사이카슈(雑賀衆)에 대한 대책에 이용합니다. 사이카슈의 대부분은 소규모 세력의 집단입니다만, 사이카 마고이치(雑賀孫市)가 이끄는 사이카토(雑賀党), 오오타 사다히사(太田定久)가 이끄는 오오타토(太田党)의 2대 재지영주(在地領主)의 세력은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들에 대해 당근과 채찍에 의한 이간 공작(離間工作)을 하려고 합니다. 오오타토에게는 정치적 책략을 포함한 당근을 주고, 사이카토에 대해서는 해상봉쇄라는 채찍을 휘두릅니다"


"그런 허를 찌르는 것을 생각하지 않더라도, 단번에 공격해서 멸망시킨다는 방법도 쓸 수 있겠지. 그걸 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이냐?"


"현재의 군사력을 생각하면 그 방법도 취할 수 있습니다만, 좋은 방법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 지역에는 사이카슈 외에도 코우야 산(高野山), 코카와데라슈(粉河寺衆), 쿠마노산 산(熊野三山), 네고로지슈(根来寺衆) 등 다섯 세력이 서로 견제하고 있습니다. 이런 지역에 돌출된 새로운 세력이 발생하면, 그들은 외적을 배제하기 위해 손을 잡아, 오다 가문이라도 무시할 수 없는 거대 세력을 형성하겠지요. 안 그래도 지리적 이점이 없는데다 까다로운 사이카슈를 상대해야 합니다. 다른 세력까지 참전해오면 쓸데없이 병력을 소모하게 됩니다. 사이카슈만 노려서 각개격파를 꾀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흠"


"혼간지(本願寺)의 편을 드는 사이카슈라고 하나, 개중에서도 명확하게 오다 가문에 적대하는 자세를 보이는 사이카토에게는 해상봉쇄를 하여 그들의 자금원인 해운(海運)이나 무역(貿易)을 차단합니다. 한편, 네고로지슈에 가까운 오오타토에게는, 그들을 통해 이익을 주어 우대합니다. 같은 세력 안에서 명확하게 균형이 깨지면, 내부 항쟁으로 발전할 가능성은 높다고 생각됩니다"


"그러기 위해서 쿠키 수군을 쓰고 싶다는 것이냐?"


"사이카토도 해운이나 무역에 손을 대고 있는 이상 독자적인 수군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과 싸워 승리하고, 나아가 장기간에 걸쳐 해상봉쇄를 실행한다고 하면 쿠키 수군 이외에는 불가능합니다. 쵸소카베도 수군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현재 거기까지의 숙련도는 기대할 수 없습니다"


"시기는"


"가까운 시일 내에 혼간지는 우리들과의 강화(和睦)를 깨고 공격해오겠지요. 그들의 전력을 지탱하는 것은 모우리(毛利) 수군, 무라카미(村上) 수군, 그리고 사이카슈의 수군. 이들이 해상으로 인원과 물자를 수송하여 지원을 꾀하겠죠. 하지만, 이미 쿠키 수군이 포진하고 있다면 어떻게 될 거라 생각하십니까?"


"후, 후하하하핫!"


갑자기 노부나가가 홍소(哄笑)했다. 갑작스런 일에 시즈코는 당황했으나, 그녀의 곤혹스러움 따위 신경도 쓰지 않고 노부나가는 한바탕 웃더니 그녀에게 말했다.


"시즈코. 너는 싸움의 본질을 이해하고 있구나"


"예? 아니, 칭찬받게 되어 영광입니다"


"싸움이란, 직접 칼날이나 화살을 주고받는 것 뿐만이 아니다. 사전에 얼마만큼 준비를 했는가, 그것이야말로 싸움의 근간이지. 가신 녀석들은 많은 병사를 보유하면 된다고 착각하고 있지만, 싸움을 좋아하지 않는 네가 가장 본질을 잘 이해하고 있다는 것은 얄궂은 이야기구나"


그렇게 말한 노부나가는 웃음을 떠올리며 턱을 만지작거렸다.


"좋다. 쿠키 수군은 네 뜻대로 해라. 쵸소카베의 속셈대로 되는 것도 매우 마음에 들지 않지만, 다음 싸움에서 우위를 차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 옛"


노부나가의 결정을 듣고 시즈코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고개를 숙였다. 이걸로 쵸소카베의 체면을 유지하면서, 오다 가문에게 가치가 있는 한 수를 적보다 앞서 둘 수 있게 된다.

장기간 머나먼 시코쿠에서 전투행위를 계속해온 쿠키 수군에게는 충분하게 위로를 해줄 필요가 있다. 장비의 보급이나 개수도 포함하여 충분한 보수와 휴식을 주어, 다음 작전에 대비하게 하기로 했다.


(예상 이상으로 순순하게 받아들여졌네. 나가하마의 특산품을 생각할 시간을 얻을 수 있겠어. 으ー음…… 나가하마의 특산품에 대해서는 명나라(明)에서 기술을 계승한 '치리멘(ちりめん, ※역주: 바탕이 오글쪼글한 비단)' 견직물이 좋겠지. 분명히 '하마치리멘(浜ちりめん)'이라고 불리웠으니…… 응, 그게 좋겠어)


역사적 사실에서의 '치리멘' 견직물은, 텐쇼(天正) 시대에 건너온 명나라의 직공(職工)이 일본에 전했다고 한다.

센슈(泉州) 사카이에 발단을 두는 '치리멘' 견질물은, 그 생산지가 사카이에서 쿄(京)로, 쿄에서 탄고(丹後)로 옮겨간다. 훗날 '하마치리멘'이라고 불리는 나가하마에서의 생산은, 나카무라 린스케(中村林助)와 이누이 쇼쿠로(乾庄九郎) 두 사람이 탄고에서 기술을 배워오고, 또 탄고에서 기술자를 파견받아 기술을 정착시켰다.

이것은 에도 시대 중기(中期)의 일로, 현 시점에서는 사카이에서조차 퍼져 있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다.


"조정에서 받은 예사(芸事)의 수호(守護)에, 동료 가신들의 상담을 해주고, 자신의 영지도 관리해야 하지. 너도 항상 정신없이 바쁘구나"


"주상께서 일본을 통일하시게 되면 느긋하게 휴가를 받겠습니다. 그리고 저 같은 것에게는 아까울 정도의 우수한 가신들이 받쳐주고 있습니다"


"확실히, 네 가신들은 우수하지. 신뢰할 수 있는 가신이란 얻기 힘든 것이다. 절대 함부로 다루지 말아라"


"옛"


"널 위해서 내게 직접 담판까지 지었던 겐로(玄朗)는 내 밑에 두고 싶을 정도다. 너를 맹신하지 않는 점이 아주 좋더군"


고개를 숙이는 시즈코에게 노부나가는 웃으면서 겐로의 이름을 꺼냈다. 성(名字)을 얻은 겐로의 휘(諱)는 시즈오키(静興). 그의 휘를 정하는 데는 우여곡절이 있었다.


겐로가 휘를 정할 때, 그는 주군인 시즈코에게서 한 글자를 받고 싶다고 청했다. 시즈코는 이것을 쾌히 승낙하여, '시즈(静)' 한 글자를 내렸다.

그러나, 겐로가 세운 전공은 눈부신 것으로, 노부나가에게서 직접 '나가(長)'의 한 글자를 받는 영예를 얻었다. 관례로 볼 때는 시즈코의 주군에 해당하는 노부나가의 한 글자를 우선시한다.


이렇게 주군, 또는 고귀한 신분의 사람에게서 이름 중에 한 글자를 받는 것을 편휘(偏諱)라고 한다.

통상적으로 편휘에서는 통자(通字)와는 다른 글자가 내려지는데, 드물게 통자가 내려지는 경우도 있었다.

통자란, 그 집안에서 대대에 걸쳐 사용되는 글자를 가리키며, 노부나가의 경우에는 '노부(信)'의 글자가 해당된다. 노부나가의 아버지인 노부히데(信秀)에게서 노부나가로, 노부나가에서는 노부타다(信忠)로 대대로 이어지고 있다.

편휘의 관례에 따르면, 여러 사람에게서 이름을 받게 되는 경우는 없다. 이것은 휘가 편휘와 통자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겐로의 경우, 노부나가로부터 받은 '나가(長)'를 위에 두고, 아래에 '노부(信)' 나 '시즈(静)', 코(子)' 등의 주군의 이름을 피한 통자를 쓰는 것이 맞다.

하지만, 겐로로서는 꼭 시즈코의 편휘를 쓰고 싶었다. 고뇌한 끝에 겐로가 내린 판단은, 노부나가의 편휘를 반납하는 것이었다.


"소생이 지금의 신분을 얻을 수 있었던 것도, 모두 시즈코 님께서 키워주셨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그런 시즈코 님께 편휘를 청해놓고, 주상으로부터 이름을 하사받았다고 하여 바꾸거나 할 수는 없습니다. 소생 따위가 주상께서 하사하신 것을 반납하는 것은 만 번 죽어 마땅한 무례인 것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겐로, 목숨을 걸고 청원합니다. 시즈코 님의 편휘를 쓰는 것을 용서해 주십시오. 도저히 안 되겠다고 하신다면, 이 목을 주상께 드리겠습니다"


기본적으로 하사된 것을 거절한다는 것은 대단히 무례한 행위가 된다. 흰 옷(白装束)을 입고 노부나가에게 청원하는 겐로에 대해, 오다 가문 가신들은 실컷 욕을 퍼부었다.

그러나, 중인환시리에 모욕을 당한 장본인인 노부나가가 크게 소리내어 웃었다.


"사람은 신분이 높아짐에 따라 초심을 잊어가지. 하지만, 이 겐로는 어떠냐! 일문(一門)의 두령(頭領)이 되어서도 여전히 시즈코에 대한 은의(恩義)를 잊지 않았다. 나와 시즈코에게 모두 예의를 지키기(筋を通す) 위해, 분노를 사서 죽음을 명령받을 것을 각오하고 청원하는 그 결벽함(潔さ), 실로 훌륭하다!"


이 한 마디로 판결이 내려졌다. 노부나가가 좋다고 한 이상, 주위에서는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이로서 노부나가로부터의 편휘는 없었던 것이 되고, 겐로는 시즈오키라는 휘를 사용하게 되었다.


"모두의 충의(忠義)를 받을 가치가 있는 주군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엎드린 채 대답했기에 노부나가도 시즈코 본인도 깨닫지 못했으나, 시즈코는 자랑스러운 듯한 표정을 떠올리고 있었다.




귀가한 시즈코는 급히 달력을 문서화하는 데 착수했다. 노부나가가 안건을 채용한다는 것은, 나아가서는 세상에 공표할 초안(草案)을 제출하라는 의미라고 시즈코는 헤아렸다.

노부나가 자신은 명확히 말하지는 않았으나, 시즈코에게 명령한 이상 성과에는 그에 걸맞는 보수가 지급된다. 화려함은 없는 일이지만, 노부나가의 치세를 지탱하는 받침대가 되기에 결코 소홀히 할 수는 없다.


"달력은 예전에 책정했을 때의 초고(下書き)가 있었지"


그렇게 말하면서 시즈코는 자신의 행리(行李, 대나무나 등나무 등으로 짠 옷농(葛籠))을 뒤집었다. 그녀의 초고를 기초로 한 초안은 이와 같다.


제 1장 역법(暦法)

제 1조 계절이 한 바퀴 도는 데 걸리는 날짜 수를 1년으로 정한다. 해가 뜨고, 진 후, 다시 떠오를 때까지를 1일로 정한다.

이에 따라, 1년을 365일로 정한다. 단, 365일로는 약간 계절과 역법에 어긋남이 발생하므로, 윤년(閏年)을 두어 이를 조정한다.

제 2조 윤년이란 1년을 366일로 하는 해로 정한다. 또, 365일인 해를 평년(平年)이라 정한다.

제 3조 윤년이 되는 해는, 이하의 규칙으로 구한다.

제 3조-제 1항 연수(年数)가 4로 나누어 떨어지는 해는 윤년으로 정한다

제 3조-제 2항 연수가 100으로 나누어 떨어지는 해는 평년으로 정한다

제 3조-제 3항 제 2항에서, 400으로 나누어 떨어지는 해는 윤년으로 정한다

제 4조 1년을 12로 나누어 각각을 달(月)이라 정하고, 1월부터 12월까지로 한다

제 5조 홀수 달을 31일로 정하고, 짝수 달을 30일로 정한다

제 5조-제 1항 2월을 윤년의 조정월로 정하여, 평년은 29일, 윤년은 30일로 정한다

제 5조-제 2항 3월에서 5월까지를 봄, 6월에서 8월을 여름, 9월에서 11월을 가을로 정하고, 12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를 겨울로 정한다

제 6조 옛 역법의 사용을, 새 역법 시행 후 10년 동안은 인정하기로 한다. 10년 경과 후에는, 어떠한 문서에서도 새 역법 이외에는 사용을 금한다.


"아! 기년법(紀年法)에 대해서도 정해야지. 으ー음…… 역시 황기(皇紀)가 익숙해지기 쉬우려나"


역법의 초안을 정리하면서, 기점(起点)이 되는 시점을 정하지 않은 것을 시즈코는 깨달았다.

그레고리력을 베이스로 하고 있기에 서력(西暦)이 어울리지만, 서양의 성인(聖人)의 생일로는 받아들여지기 어렵다.

그래서 시즈코는 천황제(天皇制)와 연결된 황기를 이용하기로 했다.

황기란, 정식 명칭을 진무 천황(神武天皇) 즉위기원(即位紀元)이라고 부르며, 일본서기(日本書紀)를 참고로 일본이 제정한 기년법이다.


"역법과는 달리 기년법도 제정해야겠네. 시각법(時刻法)도 필요하려나"


다른 종이를 준비하여, 시즈코는 기년법과 시각법의 조문을 적어넣었다. 그녀의 안(案)은 다음과 같다.


제 2장 기년법

제 1조 초대 천자(天子), 진무 천황의 즉위를 기원(紀元)으로 한다.

제 2조 즉위년은 가장 오래된 정사(正史), 일본기(日本紀)에서 구한다.

제 3조 제 1, 제 2조에 의해, 금년을 황기 2234년으로 한다.


제 3장 시각법

제 1조 시각의 단위는 '시(時)', '분(分)', '초(秒)'로 정한다. 1일은 24시간으로 하고, 1시간을 60분, 1분을 60초로 정한다.

제 2조 9시를 정자(正子), 12시를 정오(正午)로 정한다.

제 3조 정자 및 정오는, 별도로 정하는 자오선(子午線)을 햇님(天道様)이 통과하는 시각으로 한다.

제 4조 시각을 12지(十二支)로 세는 것을 시각법 시행 후 10년간은 인정한다. 단, 10년 경과 후에는 어떠한 문서도 시각법 이외의 사용을 금한다.


"후ー, 이 정도려나"


시즈코는 조문을 다 쓰자 바닥에 대자로 누웠다. 오해의 여지가 없는 문장으로 룰을 정하는 것은 예상 이상으로 피곤했다.

자연을 상대로 아무 생각 없이 몸을 움직이고 있는 쪽이 성격에 맞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러나, 일본이 평화로워지면 이런 사무처리는 더 늘어날 것이다.


"이것의 청서(清書)을 부탁해요"


시즈코는 서류를 근시(近侍)에게 맡겼다. 노부나가에게 제출하려면 초안을 기초로, 정식 서류로 작성하는 작업이 필요해지는데, 그것은 시즈코의 역할이 아니다.

본래는 우필(右筆)이라 불리는 문관이 담당하지만, 시즈코 저택에서는 서류를 담당하는 문관 중 누군가가 청서하여, 필두 문관(筆頭)이 확인하는 흐름이 된다.

그것을 시즈코가 최종 확인하고, 문제없다고 판단되면 노부나가에게 제출된다.

번거로운 절차(手順)를 거치게 되지만, 노부나가도 지금은 많은 결재를 하는 몸이다. 노부나가에게 제출하는 서류는 그가 그대로 사용할 수 있는 상태로 작성하는 게 바람직하다.


"귀찮지만, 반려되어 오면 괜히 수고가 더 들어가니까"


자신을 위로하듯 시즈코는 어깨를 주물렀다.

며칠 후, 시즈코의 초안을 기초로 한 정식 서류가 노부나가에게 전달되었다.




역법 전반의 정식 서류가 완성되기 전, 시즈코는 매일 들어오는 서신을 읽고 있었다.

겨울은 강설(降雪)에 의해 주요 도로 이외에는 통행불능이 되어 사람들의 왕래가 격감했다. 이 때문에, 시즈코가 집에 있을 것을 예상하고 서신이 오는 경우가 많다.

처음으로 읽은 서신의 발신인은 우에스기 켄신(上杉謙信)이었다. 내용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금주령(禁酒令) 때문에 몸 상태가 좋아졌다'였다.


"가려움도 가라앉았구나. 알코올 의존증의 이탈기(離脱期)는 벗어났다고 봐도 되려나"


알코올 의존의 상태에서 주량의 감량 또는 금주를 했을 경우에 발생하는 일련의 증상을 가리켜 이탈증상(離脱症状, ※역주: 금단증상)이라고 한다. (작가 주: 알코올에 한정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이탈증상은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초기에는 손이나 전신의 떨림, 발한(発汗)이나 집중력의 저하, 환각(幻覚)이나 환청(幻聴) 등이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이것들을 조기이탈증상(早期離脱症状)이라 부른다.

그에 반해 후기이탈증상(後期離脱症状)은, 음주를 그만두고 2~3일 후에 나타난다. 환시(幻視)나 소재식 장애(見当識障害, ※역주: 자기가 시간적·공간적·사회적으로 어떤 위치에 있는가 라는 의식(의식의 이상(異常)을 판정하는 근거가 됨)), 비정상적 흥분이나 발열, 발한, 떨림 등의 증상을 보인다.

이러한 이탈증상들은 강한 불쾌감을 동반하여, 여기서 벗어나기 위해서 술을 계속 마신다는 악순환에 빠지기 쉽다.


켄신은 수족의 부종(浮腫) 외에 전신의 가려움도 호소했으나, 그것들이 가라앉았다는 것은 이탈기를 벗어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서신에 적힌 근황에는 '요즘에는 식사가 맛있게 느껴진다'라고 적혀 있었다.

그의 건강에 대해서는 금후에도 주의해서 관찰할 필요가 있지만, 시즈코처럼 영구 금주령(永久禁酒令)을 내릴 정도로 심각한 상황은 아닌 듯 하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잘 됐네 잘 됐어. 켄신의 후계자 싸움은 아직 표면화(顕在化)하지 않았지만, 조만간 우에스기 카게토라(上杉景虎) 진영에서 움직임이 있을 것 같으니까"


후계자 싸움은 당분간 기다려 줬으면 좋겠다. 그렇게 생각은 했으나, 호죠(北条) 가문이 멸망에 직면했을 때 그들이 어떤 행동을 취할지는 미지수이다.

하지만, 그것을 억누르는 것이 가장(家長)인 켄신의 역할이다. 그러기 위해서도 그는 건강을 유지해줘야 한다. 건강에 주의하지 않은(不摂生) 기간이 긴 만큼 장수(長寿)는 기대할 수 없다.

그래도 향년 49세가 아니라 70세까지 연장할 수 있다면 충분히 역사는 바뀔 수 있다.

반대파에게도 조금씩 이익을 줘서 회유와 포섭(取り込み)을 하면, 다른 사람의 땅을 빼앗지 않고도 자국을 부유하게 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전환할 가능성이 있었다.


(흐ー음. 아직 켄신이 건재하고 당분간은 이쪽의 지시에 따라준다는 상황은 고맙네. 눈이 녹을 무렵부터 인프라 정비도 개시될 전망이고…… 다만 동해(日本海) 쪽에서는 눈이 내리는 시기가 기니까, 조금 더 시간이 걸릴 것 같네)


현대와 같은 제설용 중장비는 존재하지 않는다. 설령 제설을 할 수 있다고 해도, 눈을 버릴 땅도 확보할 수 없다. 눈을 운반하기 위해서도 정비된 인프라가 필요해진다.

현 단계에서 기계화된 제설기 같은 건 바랄 수도 없다. 연료의 확보나 한랭지(寒冷地)에서의 동작 시험 등 클리어해야 할 과제도 많다.

언젠가는 개발하고 싶다고 생각은 하고 있지만, 달리 우선시해야 할 안건을 품고 있기에 전망이 서지 않고 있었다.


"뭐, 자세한 이야기는 내가 하기보다 실제로 감독하는 아시미츠(足満) 아저씨가 적임이겠지. 왕왕 말이 좀 부족하지만……"


켄신의 서신을 치우고, 시즈코는 다음 편지를 손에 들었다. 발신인의 이름이 사키히사(前久)였기에, 무슨 일이 있나 하여 내용을 진지하게 음미했다.

그러나, 읽어나감에 따라 시즈코의 미간에 주름이 졌다.


"공가(公家)에 대한 정치적 책략을 하려고 하니 식재료니 뭐니를 보내달라, 는 건 알겠어. 하지만 마지막의…… 왜 고양이를 보내달라는 거야? 딸에게 사쿠야(開耶, 사키히사가 기르고 있는 터키시 앙골라의 이름. 코노하나사쿠야비메(木花開耶姫)에서 따온 이름)를 뺏기기 일쑤? 거기까진 책임 못 져……"


최근에 터키시 앙골라가 처와 딸에게 달라붙어버려 상대해주지 않아서 쓸쓸하니 새 고양이를 보내달라, 라고 편지에는 우아(雅)한 필치로 절절하게 적혀 있었다.


"설마, 역사적 사실에서 시마즈 요시히로(島津義弘)에게 보낸 서신과 마찬가지인 서신을 받은 건 역사적으로 귀중하려나?"


역사적 사실에서는, 시마즈 요시히로가 사키히사에게 고양이를 선물하고, 그 답례로 '고양이는 부인에게 빼앗겨 내 손에 없소. 딸도 절실히 원하고 있지만 모르오. 우선은 내 것이 있었으면 하오"라는 편지를 보냈다는 일화가 존재한다.

암묵적으로 딸의 것도 조르는 사키히사의 유쾌한 일면을 엿볼 수 있는 문서이지만, 부탁받는 쪽은 배겨낼 수가 없다.


"그렇게 딱 좋게 새끼 고양이를 확보할 수 있을 리 없잖아……"


번식기에 막 들어간 현재 상태에서는 일단 무리일 것이고, 설령 새끼 고양이를 수배할 수 있다고 해도 사키히사를 따를지는 고양이에 달렸다. 이상적으로는, 사키히사와 새끼 고양이를 만나게 하여 그가 마음에 든 새끼 고양이를 양도하는 것이 틀림이 없다.

그렇다고 해도 사키히사는 이미 칸파쿠(関白)의 지위에 있어, 그렇게 쉽게 부를 수 있을 리가 없다. 또, 자칫 이상한 것을 보냈다가는 오다 가문의 체면에도 관계된다. 사키히사 자신이 납득해도, 주위가 똑같이 받아들인다는 보장은 없다.


"응, 다음이다 다음"


생각하는 것을 포기한 시즈코는, 다음 서신을 손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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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

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텐쇼(天正) 원년(元年) 키나이(畿内)의 사회기반 정비


113 1574년 1월 하순



설날(元日). 새해 인사를 나누기 위해 노부나가가 있는 곳을 찾는 사람들은 작년에 비해 몇 배로 불어나 있었다.

혼잡을 예상하고 준비된 대합소(待合所)는 사람으로 넘쳐나서, 대합소에 들어가려고 해도 장사진(長蛇の列)을 각오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당연히 그런 상태였기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할당되는 시간은 엄격히 제한된다. 간결하면서 필요 최소한의 말로 노부나가에게 기억되기 위해 모두가 머리를 쥐어짜고 있었다.

화톳불(篝火)이 피워져 있다고는 해도, 찬바람이 불어닥치는 시련을 견뎌내고 간신히 노부나가와의 알현이 이루어져도, 나눌 수 있는 말은 정형화된 인사 외에는 한두마디에 불과하다.

인사를 마친 사람이 실의에 잠겨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좀 더 잘해보이겠다고 야심을 불태우는 사람들의 행렬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차가 맛있네"


설날쯤 되면 다들 본가(実家)로 돌아간다. 항상 소란스럽던 시즈코의 저택도 이 날만큼은 정숙함에 휩싸여 있었다.

무슨 일만 있으면 소동을 일으키는 이치(市)와 챠챠(茶々), 하츠(初)도 정월(正月) 동안에는 오다 가문으로 귀성해 있었다.

시녀나 하인들에게도 휴가와 노잣돈(路銀)을 주어 돌려보내버렸기에, 시즈코의 저택에서는 사람의 기척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곁에서 시중드는 사람들(側仕え)이 전부 나가 있기에 뭘 하려고 해도 직접 움직일 수밖에 없지만, 시즈코는 이걸 불편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이로리(囲炉裏)에서 느긋하게 물을 끓여 직접 자신과 아야(彩) 몫의 차를 끓여 한잔 마시고 있었다.


"미노(美濃)에서 나는 좋은 찻잎을 준비했습니다"


지금 시즈코가 사용한 차통(茶筒)을 들어보이며, 포커 페이스에 어딘가 뽐내는 듯한 표정을 떠올리며 대답했다.

아야와도 오래 알고 지냈기에, 약간의 표정 변화를 읽어낼 수 있게 되었다.

맛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이 느긋한 시간도 포함하여 총평(総評)한 건데, 라고 쓴웃음을 지으면서도 아야답다고 시즈코는 웃었다.


처음 만났을 때에 비하면 두 사람 다 신분이 지나치게 높아졌다. 항상 주위에 누군가가 대기하고 있었기에, 둘만이 조용히 대화할 수 있는 시간 같은 건 정월 이외에는 있을 수 없었다.

최근의 시즈코는 노부나가의 명령을 받고 집을 비우는 일이 많다. 한편, 아야는 시즈코가 없을 때 집을 보게 되므로, 쇼우(蕭)와 함께 집 안을 관리할 필요가 있다.

이 때문에, 자연스럽게 엇갈리는 생활을 하게 되어, 대화는 커녕 자칫하면 한 달 넘게 얼굴을 마주칠 수 없는 경우까지 있었다.


"뭔가, 설(正月)이라는 느낌이 드네"


다른 사람 없이 아야와 둘이서 조용히 이야기를 한다. 겨우 그런 것이 어렵다. 지금의 시즈코에게는 1년에 한 번, 설에만 찾아오는 특별한 시간이었다.

조금 옛날을 떠올려보았다. 지금의 저택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좁은 방에 자신이 있고, 주위를 케이지(慶次)나 사이조(才蔵), 나가요시(長可), 아야가 둘러쌌다.

무슨 이야기를 했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다들 웃었던 것은 확실했다. 옛날 쪽이 나았다는 말은 하지 않겠지만, 시즈코는 꽤나 멀리 와버린 듯한 심정이었다.


"뭔가, 여러가지가 변해가네"


"시즈코 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고 싶으신지는 모르겟습니다만, 당신께서 필요없다고 하시지 않는 한, 저는 당신 곁에서 계속 모실 것입니다"


"……고마워"


아야의 꾸밈없는 말을 듣고 시즈코는 약간 간지러운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 이후로 어느 쪽도 입을 열지 않았지만, 무언(無言)의 시간을 거북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주상(上様)께서 일본을 통일하시면 조금은 조용해지려나?)


일본에서 전쟁이 사라지고, 세상에 태평(泰平)이 찾아오면 조용히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몽상을 하면서 시즈코는 아야와 둘만의 설을 보냈다.


하룻 밤이 지난 후, 다음날부터는 평소대로 돌아왔다. 고용인(家人)들도 돌아와서, 전날의 고요함이 거짓말처럼 떠들썩했다.

첫 일거리로서, 우선 노부나가에게 새해 인사를 드리러 간다. 올해부터는 노부타다에 대한 인사도 필요해져, 준비에 다들 정신없이 바빴다.

주군에 대한 인사를 마쳐도 쉴 수 있는 틈 따윈 없다. 사흘째가 되면 자신의 부하들이나 오다 가문 내의 요인(要人)들도 설 인사를 하러 시즈코의 저택을 방문한다.

상대에 맞춰 안내할 방에서 입을 의상까지 바꿀 필요가 있어, 사전에 쇼우와 상담했다고는 하지만 익숙하지 않는 점도 맞물려 뭐가 뭔지 알 수 없었다.


그런 것들을 마치면, 다음은 자신의 관할령(所領)인 주요 마을(街)에 새해 인사를 하러 갈 필요가 있었다.

이때쯤 되면 케이지가 돌아오지 않더라도 다른 사람들은 시즈코 저택으로 돌아와 있기에, 행사에 호위로서 따라온다.

여기까지 만사 지장없이 끝낼 수 있다면 한숨 돌릴 수 있지만, 그때는 한달도 절반은 지나 있다.

애초에 마츠노우치(松の内, ※역주: 설에 門松(=대문 앞에 세우는 소나무 장식)를 세워 두는 동안(설날부터 7일 혹은 15일까지))라 불리는 기간은, '정월 대보름(小正月)'까지의 15일로 치기 때문에, 새해는 정신없이 바쁘게 지나간다.


"크어ー, 겨우 끝났다"


시즈코는 좌식 책상(文机) 위에 엎어져 있었다. 아직 선물(進物)의 체크가 남아 있었지만, 그건 크게 번거로운 것은 아니다.

시즈코가 새해 인사를 하고 있는 동안, 아야와 쇼우가 신분별로 정리한 자료를 준비해주었다.

그 후에는 시즈코가 내용을 확인하고,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기만 하면 되었다. 서류를 확인하고 추가로 몇 통의 글을 썼기 떄문에, 1시간 쯤 지나가 끝이 보이기 시작하고 있었다.


"흐ー음. 쿠로쿠와슈(黒鍬衆)를 데리고 있어서 그런가, 이런저런 사람들이 왔네"


미츠히데(光秀)나 호소카와 후지타카(細川藤孝) 등의 쿄(京)에 거점을 두는 유력자들이나, 히데요시(秀吉)를 시작으로 시바타(柴田)에 사쿠마(佐久間) 등 오다 가문 후다이(譜代)의 가신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최저한의 답신은 하고 있으나, 추가로 뭔가 선물하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시즈코는 서류를 뒤적이고 있었다. 문득, 시즈코는 서류와는 별도로 두 통의 편지가 첨부되어 있는 것을 깨달았다.


"이게 뭐지?"


손에 들고 보니 한 통은 사키히사(前久)로부터 온 것이며, 다른 한 통은 아시미츠(足満)로부터의 편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키히사는 그렇다치고, 아시미츠가 편지를 보내다니 희한하다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급한 일이라면 직접 찾아올 아시미츠의 편지를 뒤로 미루고, 먼저 사키히사의 편지를 열어보기로 했다.

적혀 있는 내용은, 조정이 소유한 보물창고(宝物殿)인 쇼소(正倉)의 출입을 허가하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이건…… 흠흠"


쇼소란 당대의 조정이 재물(財物)을 보관하기 위해 마련한 창고이며, 현대에는 그 대부분이 소실되어 버렸다.

예전에는 남도(南都) 7대사(七大寺)에 각각 쇼소가 줄줄이 세워져 있는 구획을 담벼락으로 둘러싼 '쇼소인(正倉院)'이 존재했으나, 현존하고 있는 것은 토우다이지(東大寺) 쇼소인 중 한 채만 남게 되어버렸다.

당시의 보물이 시간을 넘어서 아직도 양호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이유 중 하나는, 고상식(高床式)의 구조에 의해 습도에 의한 훼손이나 벌레의 피해를 막을 수 있었던 것이다.

또, 칙봉(勅封) 제도로 엄중하게 관리되어 함부로 개봉되지 않았던 점도 이유로 들 수 있다.


"아무래도 시기는 미정인가. 뭐, 당연하겠지"


엄중하게 봉인되어 제한된 사람들 밖에 볼 수 없는 쇼소의 보물을 열람할 수 있는 권리를 얻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에치젠(越前)에서의 행동이 있었다.

시즈코 자신이 의식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치죠다니(一乗谷)에 있는 문물(文物)을 피난시킨 후에 불태웠다는 사실은, 문화의 수호자(担い手)를 자칭하는 공가(公家)나 조정(朝廷)에게 대사건이었다.

노부나가에게 아사쿠라(朝倉)란 몇 번이고 골탕을 먹은 존재. 그 아사쿠라를 앞두고, 노부나가에게 문물을 반출할 유예를 청하고 그걸 인정받았다는 사실은 무거웠다.

직접 노부나가를 만날 기회가 없는 공가들에 있어, 노부나가는 악마(鬼神)처럼 무서운 존재이며, 그 노부나가를 제어하여 문물을 보호하는 시즈코에게서 공가들은 '문화의 수호자'의 모습을 보았다.


"언제 허가를 받아도 괜찮도록, 준비만큼은 게을리하지 말아야지"


조정의 보물창고이기에 쉽게 열리지는 않는다. 그것을 이해하고 있는 시즈코는, 뛰는 마음을 억누르면서 상대방의 대응을 기다리기로 했다.

시즈코는 깨닫지 못하고 있었지만, 쇼소의 출입허가증에 날짜가 기재되어 있지 않는 것에는 조정의 노림수가 존재하고 있었다.

만약 시즈코가 허가증의 내용에 불만을 품고 강권(強権)을 통해 출입을 요청하면, 조정 측은 이유를 붙여 거절할 생각이었다.

의도하지 않게 보물을 앞에 두고도 이기적으로 행동하지 않는 이성적인 인물로 보이게 된 시즈코는, 옆으로 치워두었던 아시미츠의 편지를 열어보았다.


"흐ー음, 검술사범(剣術指南) 역할로 야규(柳生) 가문의 협력을 요청하기로 했구나. 일부러 편지를 보내와서 대립 관계라도 된 줄 알았네"


현재의 야규 가문은, 아시미츠와 인연이 깊은 마츠나가 히사히데(松永久秀)를 섬기고 있었다.

그 마츠나가가 정월 인사를 하러 기후(岐阜)를 방문했을 때, 아시미츠는 억지로 교섭의 자리를 만들었다. 마츠나가는 '쾌히 승락'해 주었다, 고 편지에는 적혀 있었다.


"네놈에게는 거부권 따윈 없다. 승복할지, 싸울 준비를 할지, 원하는 쪽을 선택해라"


"절대로(努々) 도망치려는 생각 같은 건 하지 말아라. 네놈의 일거수 일투족은 항상 감시되고 있다고 생각해라"


"여기서 결단하지 않아도 상관없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조건은 혹독해질 거라는 것을 명심해라"


"오해가 없도록 말해두지만, 이것은 내 뜻이 아니라 오다 님의 의향을 전하는 것이다"


"이것들을 고려하여 가급적 신속하게 대답을 보내라"


"네놈이 야규를 아까워하여 대답을 하지 않는다면, 이쪽에도 생각이 있다. 그렇게 무서워할 것은 없다. 적어도 고향(国許)까지는 돌아갈 수 있겠지. '지금은' 말이다"


이러한 명백히 협박(恫喝)에 가까운 교섭이 이루어졌다. 교섭이라는 것은 말뿐이고 일방적인 최후통첩에 지나지 않는 내용을 모르는 시즈코는, 야규 가문을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지금의 야규 가문 당주는 무네토시(宗厳)가 맡고 있다. 하지만, 무네토시 본인은 전쟁에서 귀국하던 도중 말에서 떨어져 큰 부상을 입었다.

적자(嫡男)인 미치카츠(巌勝)의 경우에는 타츠이치 성(辰市城) 전투에서 부상을 입어, 시중을 들어줄 사람(介添え)이 없으면 일어날 수 없는 상태였다.

후세에서 야규(柳生) 신카게류(新陰流)의 지위를 확립한 무네노리(宗矩)도, 이 시점에서는 나이어린 꼬마에 불과했다.

선조대대의 영토(所領)가 있기에, 누굴 파견해 올지 생각하니 일말의 불안이 있었다.


(순리대로 간다면 차남인 큐사이(久斎)일까? 3남인 토쿠사이(徳斎)는 어릴 때 출가했으니 일단 대상에 올라가지 않겠지. 4남인 무네아키(宗章)는 열 살도 되지 않는 소년…… 으ー음, 이건 어려우려나)


현재 상태에서 판단하면, 무네아키가 성인식(元服)을 치를 때까지 기다리는 게 좋겠다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현 시점에서는 만족스럽게 지도(指南)을 할 수 있는 인물이 없다.

카미이즈미 노부츠나(上泉信綱)의 직계 제자이자, 야규 무네토시를 쓰러뜨리고(여러가지 설이 있음), 역사적 사실에서는 오다 노부타다(織田信忠)나 토요토미 히데츠구(豊臣秀次) 등에게 무술(兵法)을 전수했다고 하는 히키타 카게토모(疋田景兼)도 생각했지만, 지금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

그가 후보로 올라가지 않는 이유로서, 그의 방랑벽(放浪癖)을 들 수 있다. 역사적 사실에서는 평생 무사수행(武者修行)의 길을 걸으며, 결코 한 곳에 머무르지 않는 유랑 생활을 계속했다.


"아무래도 검술 사범(指南)이, 무사수행 여행이라고 하고 종종 행방을 감추는 건 문제니까"


천천히 생각할 필요가 있겠다고 시즈코는 한숨을 쉬었다. 그런 그녀에게 추가타(追い打ち)를 먹이는 사태가 발생한다.




그것은 1월도 다 지나서 며칠만 있으면 2월이 되려는 시기의 일이었다. 노부나가로부터 호출을 받고, 시즈코는 그의 거성(居城)인 기후 성(岐阜城)으로 향하고 있었다.

성에서는 호리(掘)와 란마루(蘭丸)의 울퉁불퉁(凸凹) 콤비가 여전히 만담(漫才) 비슷한 대응을 주고받으며 시즈코를 안내했다. 맹장지가 열리고 시즈코의 눈에 들어온 광경에 그녀는 엉거주춤했다.


"잘 왔다. 기다리고 있었느니라"


시즈코는 노부나가의 말에 놀란 것이 아니다. 상좌(上座)에 있는 노부나가를 중심으로, 좌우로 주루룩 중신(重臣)들이 모여 있는 현장을 보고 보통 일이 아니구나라고 겁을 먹은 것이다.

적자인 노부타다를 시작으로, 히데요시(秀吉)에 미츠히데(光秀), 시바타(柴田)에 삿사(佐々), 마에다 토시이에(前田利家)에 니와 나가히데(丹羽長秀) 등, 쟁쟁한 인물들이 죄다 모여 있었다.

자신이 이 장소에 어울리지 않는 것에 메마른 웃음을 떠올리면서 시즈코는 상좌 가까이 준비된 자리에 머뭇거리며 앉았다.


"자, 시즈코의 도착으로 전원이 모였구나. 드디어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겠다"


노부나가의 말에 전원의 표정이 조여졌다. 노부나가가 명언(明言)하지 않아도 모두 이해하고 있었다. 지금부터 노부나가가 말하는 내용에 의해 자신들의 진퇴(進退)가 좌우될 것이라는 것을.

전원이 노부나가의 말을 하나라도 놓치지 않겠다고 마른 침을 삼켰는데, 그 모습이 재미있었는지 노부나가는 웃음을 떠올리면서 입을 열었다.


"그렇게 조바심내지 마라. 먼저 조정(朝廷)에서, 재미있는 칙서(勅書, 천황(天皇)으로부터의 명령서)가 왔다"


그 말과 동시에, 등 뒤에 시립하고 있던 소성이 움직였다. 두 명의 소성이 쟁반에 얹힌 칙서를 공손하게 받쳐들고 시즈코와 미츠히데 앞에 각각의 쟁반을 놓고 물러났다.

시즈코는 시선만을 미츠히데에게 향했는데, 그도 같은 생각을 했었는지, 의도치 않게 두 사람은 서로 마주보는 모습이 되었다.


두 사람의 행동에 신경쓰지 않고 시즈코는 턱짓으로 시즈코를 재촉했다. 읽어라, 라는 말이라고 헤아린 시즈코는 칙서의 내용을 확인했다.


"폐하(帝, みかど)께서 그대들 두 사람에게 예사(芸事)의 보호를 맡기고 싶으시다고 한다"


독특하고 난해한 표현(言い回し)에 애를 먹는 시즈코를 보고 노부나가가 칙서의 내용을 요약해서 말했다.

새로운 직함을 만들고 조정이 후원할테니 일본 각지에 흩어져 있는 예술품이나 기술자들의 보호를 하라는 내용이었다.

형식상은 명령이지만, 거절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간원(懇願)에 가까운 내용이었다. 조정의 보물을 맡는 토우다이지(東大寺)조차 과거에 두 번이나 불탄 적이 있다.

물론, 보물을 노린 방화(焼き討ち)는 아니었지만, 불교의 총본산 중 하나로 꼽히는 토우다이지조차 안전하지는 않다.

특히 마츠나가 히사히데와 미요시(三好) 3인방(三人衆)이 벌인 토우다이지 대불전(大仏殿) 전투는 공경(公卿 ,※역주: 조정에서 정3품, 종3품 이상의 벼슬을 한 귀족)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재미있으니, 시즈코가 맡아라. 낑깡은 그러한 것에는 관여하지 마라. 네게는 다른 일을 맡기겠다"


"옛, 잘 알겠습니다"


칙서를 건네주기는 했지만, 결국에는 노부나가가 방침을 결정했다.

노부나가의 말에서, 칙서에는 시즈코와 미츠히데 중 어느 한 쪽이 받아들여주기만 하면 된다고 써 있었던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지금은 무가(武家)의 정점에 서서 천하에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는 오다 가문의 위광과, 지방을 다스리는 사원들(寺社)의 힘을 합치면 문물의 보호가 가능할 것이라고 조정은 생각한 것이리라.


(흠……)


하지만, 이 이야기를 받아들여봤자 노부나가에게 이익이 없는 것이 석연치 않았다. 예사에도 이해를 보이고 있다고는 하나, 노부나가는 그렇게까지 문예(文芸)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 노부나가의 심금(琴線)을 울리는 요소가 있었는지, 그것을 파악해두지 않으면 노부나가의 기대를 저버리게 된다. 노부나가가 직접 밝히지 않는 이상, 스스로 그 마음 속을 추측할 수밖에 없다.


(…………아, 알 것 같다)


노부나가가 시바타와 이야기하고 있는 도중, 시즈코는 계속 심사숙고(沈思黙考)하고 있었다. 몇 가지 추론은 떠올랐으나 확신을 얻지 못하고 있을 때,  시즈코의 귀는 노부나가가 흘린 '다기(茶器)'라는 단어를 포착했다.

빠져 있던 퍼즐의 조각이 갖춰졌다. 시즈코는 모든 것을 이해했다.


(문물을 보호하게 되면, 당연히 다기도 그 대상에 포함되지. 폐하의 칙명으로 문예의 조사를 하고 있다고 하면, 이 요청을 거절할 수는 없어. 주상께서 마음에 들어하실 경우, 소유주에게는 기한을 정하지 않는 차용증(借用書)과 협력에 대한 감사장(感状)이 보내지겠지)


나는 새도 떨어뜨릴 기세의 오다 가문에 더해, 쇠락하기는 했으나 결코 얕볼 수 없는 조정이 손을 잡았다. 무력으로는 오다 가문에게 밀리고, 대의명분조차 상대에게 있다.

이 상태에서 싸움을 거는 건 어리석음의 극치. 협력의 요청이라는 건 말뿐이고 징발 행위일 뿐이지만, 거역하면 '역적(朝敵)'으로서 후세에 이름을 남기게 된다.


(주상의 노림수는 알겠는데, 처음부터 힘으로 밀어붙이면 반발이 무서우니, 우선 온건하게 진행하자. 고노에(近衛) 님이나 호소카와(細川) 님의 조력을 부탁할까?)


대의가 이쪽에 있다고는 해도, 처음부터 시비조로 임할 이유도 없다. 강권에 의지하는 것은 최종수단으로 하자, 그렇게 결론지은 시즈코였다.

시즈코가 혼자서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 때, 노부나가가 시바타의 처우를 발표했다. 호쿠리쿠(北陸)에 둥지를 튼 최후의 적, 카가(加賀) 일향종(一向宗)의 토벌에 있어 시바타 카츠이에(柴田勝家)를 총대장으로 임명했다.

시바타가 이끄는 호쿠리쿠 방면군(方面軍)의 진용은, 히데요시나 삿사, 마에다 토시이에에 후와 미츠하루(不破光治) 등을 지원군(与力)으로 붙였다. 이 오다 가문 내에서도 손꼽는 군세로 호쿠리쿠를 평정하라고 명령한 것이다.

이 인사(人事)를 볼 때 호쿠리쿠를 맡게 되는 것은 시바타인 것이 확정되었다. 가신들의 출세 경쟁에서는 시바타가 한 발 앞선 모양새가 된다.

영달(栄達)에 흥미가 없는 시즈코를 제외하고 다른 중신들은 사태의 중대함을 이해하고 있었다.


(여기는 역사적 사실대로네)


역사적 사실에서는, 시바타 카츠이에가 1580년 11월 17일에 카가 국(加賀国)을 평정하여, 실로 90년이나 되는 동안 몇 번이고 반복된 잇키(一揆)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었다.

이번의 경우에도 시바타가 평정의 임무를 받았으나, 역사적 사실과는 사회 정세가 달랐다.

역사적 사실에서는 우에스기 켄신(上杉謙信)이 카가 국까지 진출하여, 시바타는 테도리가와(手取川) 전투에서 켄신에게 호되게 당하게 된다.

그러나, 현재 상황에서는 우에스기 가문과는 동맹을 맺었으며, 정세를 돌아봐도 배신을 당할 가능성은 극히 낮다. 에치젠에는 미츠히데가 진을 치고 있어, 그는 카가 일향종의 퇴로를 끊는 임무를 받고 있었다.

이러한 것들을 고려할 때, 카가 일향종에게는 처음부터 승산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 무장을 해제하고 노부나가의 지배를 받아들이던가, 아니면 전멸할 때까지 싸우던가 둘 중 하나 밖에 길은 없었다.


"훌륭하게 대임(大役)을 수행해 보이겠습니다"


"결코 이쪽에서 먼저 쳐들어가지 말도록. 놈들을 계속 도발하여, 놈들이 쳐들어왔다는 대의를 얻은 후에 반격하라"


이것은 장렬(壮絶)한 인내심 싸움(我慢比べ)이었다. 현재 노부나가는 혼간지(本願寺)와 화평을 맺고 있어, 이 동안 다른 혼간지 파가 노부나가를 공격했을 경우, 이시야마(石山) 혼간지는 아무 말도 못하고 보고 있을 수밖에 없다.

카가 일향종이 먼저 노부나가를 공격했다는 명분(体裁)만 있으면, 이시야마 혼간지는 병사 한 명조차 움직이는 것이 용납되지 않는다.

화평의 약정을 깨면, 그것 자체가 노부나가에게 이시야마 혼간지를 공격하게 하는 대의명분이 되어 버린다.


"네 마음껏 공격해 보아라"


노부나가는 굳이 시바타에게 구체적인 방침을 내리지 않았다. 노부나가는 시바타에게 호쿠리쿠의 통치 및 켄신을 견제하는 역할을 맡길 생각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슬슬 모든 것을 스스로 생각하고 움직일 수 있을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노부나가가 시바타에게 시련을 내린 것은, 시바타가 어느 쪽이냐 하면 지시를 기다리는 타입의 무장이기 때문이다.

그는 노부나가라는 주군을 모셨기에 100의 힘을 발휘하는 타입이었다. 주인의 명령을 받으면 주저없이 앞으로 나아가지만, 자신이 생각하게 되면 판단을 내리지 못했다.

하지만, 호쿠리쿠를 맡기려면 그래서는 안 된다. 노부나가의 눈이 구석구석 미치지 못하는 이상, 시바타는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여, 그 자리에 맞는 대책을 취해야 한다.

이 카가 일향종 토벌은, 시바타가 호쿠리쿠를 다스릴 자격이 있는지를 판단하는 시금석(試金石)이 된다.


"옛! 반드시 낭보를 전해드리겠습니다!"


"이번의 인사(采配)에 하고 싶은 말도 있겠지. 하지만, 지금은 호쿠리쿠 평정에 주력하라. 이곳을 무너뜨리면 남는 거점은 키이(紀伊) 뿐이다. 너희들은 그쪽에서 공을 세우도록"


"옛!"


가장 먼저 시바타가 대답하고, 히데요시나 미츠히데도 그에 따라 엎드렸다. 그들의 모습에 노부나가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시즈코. 네게는 독단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재량을 주겠다. 이 세상의 누구도 네 움직임에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겠지. 일부러 너를 자유롭게 두는 것으로 자리를 휘저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예, 옛"


시즈코는 노부나가의 말에 한방 먹은 느낌이었다. 말하자면 백지 위임장을 받은 것에 가깝다. 노부나가의 지시를 받지 않아도, 시즈코의 판단으로 군을 움직이는 것이 가능해진다.

시즈코의 성격상, 오다 가문에게 불이익이 되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라는 신뢰의 증거라고도 할 수 있었다. 단독 부대라도 눈부신 전과를 올리는 시즈코 군이 공격으로 전환한다.

이만큼 적대 세력에게 위혐적인 것은 없다. 국면을 한 수에 뒤엎을 수 있는 '조커(鬼札)'가 보이지 않는 장소에 숨어있는 것이다.

이름높은 시즈코 군이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만으로 적에게 계속 압력을 줄 수 있다.


(시즈코의 속박을 풀어주면, 가신들은 일제히 협력을 요청하려 움직이겠지. 우선은 집안 싸움을 제어하는 수완을 보도록 하자)


일부러 시즈코를 자유롭게 풀어준 이유. 그것은, 이 자리에 모인 야심이 넘치는 가신들의 움직임을 볼 속셈도 있었다.

지금은 서로 견제하며, 입 밖으로 내지는 않지만 눈은 웅변적으로 말하고 있었다. 히데요시나 미츠히데, 그리고 시바타까지 어떻게 시즈코를 자기 진영으로 끌어들일까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그럼, 이 녀석들을 인도(舵取り)할 수 있을지 아닐지, 그에 따라 나라를 맡길 수 있을지를 알 수 있지. 시즈코를 미끼로 모두가 움직이고, 결과가 어떻게 되던 내게 손해는 없다. 후훗, 어떤 결과가 나올지(鬼が出るか蛇が出るか) 즐겨보도록 하지)


노부나가나 시바타들의 생각과는 별개로, 시즈코는 태평하게도 어떻게 문물을 보호할까 생각하고 있었다.


모두가 침착함을 되찾을 무렵을 재어 노부나가가 다시 입을 열었다.

호쿠리쿠에 이어, 노부타다에게 토우고쿠(東国) 토벌의 총대장을 명했다.

이미 예전의 기세는 없다 해도, 아직까지 강국(強国)으로서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타케다(武田). 그리고 타케다나 우에스기에 필적한다고 하며, 아직까지 기치(旗幟)를 뚜렷하게 드러내지 않고 있는 호죠(北条).

원래대로라면 삼자가 서로 견제하여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三竦み)이지만, 우에스기를 받아들인 것으로 저울이 크게 오다 쪽으로 기울었다.

여기까지 밥상(お膳立て)을 차려놓으면, 노부타가가 후계자가 되는 데 어울리는 무훈(武勲)이면서도 목숨을 잃을 위험성은 현격하게 낮아진다.


"토우고쿠 정벌 임무, 삼가 받들겠습니다"


타케타다 호죠 등의 열강(列強)에 겁먹지 않고 노부타다는 당당한 태도로 명령을 받았다. 어엿한(一廉) 무장으로서의 편린(片鱗)을 보이기 시작한 노부타다에게, 노부나가는 미더운 듯한 미소를 떠올렸다.

그 후, 각자 준비를 게을리하지 말라는 노부나가의 말로 그 자리는 마무리되었다.




가장 먼저 시즈코에게 말을 건 것은 노부타다였다. 그는 용무도 끝났으니 얼른 퇴장하려고 하던 시즈코를 발견하고 다짜고짜 끌고들어왔다.


"간자를 빌려달라고?"


기선을 제압하여 용건을 말하는 노부타다에게 수상쩍다는 시선을 보내면서 그녀는 노부타다의 말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했다.


"음. 앞서 토우고쿠 출신의 무장들을 받아들였지 않으냐? 뭐라고 했더라……"


"혹시 사나다(真田) 가문 말야?"


"그래그래, 그 사나다 뭐시기다. 빌리고 싶다고는 말했지만, 내가 운용하는 것은 아니다. 사나다 뭐시기가 지휘해서 소문을 흘려줬으면 한다"


"……어쩐지 노림수는 알겠는데, 네 입으로 정확하게 알려줬으면 하는데?"


소문을 흘린다는 시점에서 시즈코는 노부타다가 뭘 하고 싶은지를 헤아렸다.

노부나가는 대체로 말이 부족하여, 그의 마음 속을 헤아리는 것에 익숙해진 결과, 노부나가가 모든 것을 말하지 않아도 의도하는 바를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시즈코의 헤아림이 좋은 것에 안주하여, 노부나가는 시즈코 이외에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애매한 지시를 내리게 되었다.

알아듣기 쉽게 차근차근 설명해달라는 것까진 바라지 않지만, 하다못해 필요 최소한의 지시를 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시즈코였다.


"노림수는 단순하다. 백성들의 마음을 타케다에게서 멀어지게 한다. 전쟁에서는 현지의 백성들이 협력적인지가 상황을 좌우하지. 원래부터 유리한 상황이기는 하나, 바로 그렇기에 더욱 우위를 흔들림없는 것으로 할 한 수를 강구하는 거지"


"적지에 침투하여 이반(離反) 공작을 하게 되면 시간이 상당히 걸리는데, 그건 고려하고 있다고 생각해도 되겠지?"


"당연하지. 서두르지 않고 지긋하게, 철저하게 한다. 카츠요리(勝頼)가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풀더라도 뭔가 꿍꿍이가 있는 거 아냐? 라고 의심을 품을 정도로 말이지"


노부타다의 작전은 단순하지만 효과가 높다. 기본적으로 무사는 아무 것도 생산하지 않는다. 작물을 키우는 백성의 마음이 떠나면, 아무리 군사력이 있더라도 전쟁이나 할 상황이 아니게 된다.

현저한 예로서, 역사적 사실에서의 '나가쿠테(長久手) 전투'에서의 이에야스(家康)의 행동이 있다. 이에야스는 각 마을의 촌장들에 대해 처자식을 인질로 바치게 하여 이케다(池田) 군과 내통하지 못하도록 대책을 취했다.

이것은 도쿠가와(徳川)-오다 노부카츠(織田信雄) 연합군이 현지 백성들로부터 미움받고 있던 것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백성들의 마음의 떠나면, 그에 따른 이적행위(利敵行為)를 막기 위해 더욱 가혹한 조치를 취해야 하게 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역사적 사실에서의 노부타다는 겨우 한 달 정도만에 카이(甲斐)를 공격하여 멸망시켰는데, 이것도 백성들이 카츠요리를 싫어하여 위정자(為政者)를 갈아치우기 위해 움직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백성들은 적극적으로 오다 군을 받아들여 타케다 군의 내정(内情)을 알려주고, 마을이나 논밭을 불태우면서까지 오다에게 항복했다.

민심이 떠난 것에 의해, 방어하는 측이 초토화 작전(焦土作戦)을 받는다는 굴욕적인 정세를 낳아, 단기 결판을 초래했다.


"거기까지 하게 되면, 카츠요리의 문제점을 찔러서 가신들에 대한 구심력(求心力)을 땅에 떨어지게 할 필요가 있네. 뭐, 지금도 이미 미움받고 있고, 타케다 가문의 가문(家督) 상속에 대한 교육도 받지 않아서, 후다이(譜代)의 신하들에게 얕보이고 있지…… 그런 의미에서는 조금 불쌍하네"


카츠요리가 걸어간 인생의 족적(足跡)을 알고 있는 시즈코는 그렇게 혼잣말을 했다. 타케다 신겐(武田信玄)의 4남이기는 하나 서자(庶子)였기에, 카츠요리는 형제들 중에서 유일하게 모친의 생가(生家)인 스와(諏訪) 가문의 성씨(名跡)를 이었다.

타케다라는 성을 쓸 수 없었기에 가신들로부터 계속 얕보여서, 성인이 된 후에도 타케다 가문 직계의 남자들에게는 반드시 주어지는 '신(信)'이라는 이름 글자를 받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 카츠요리가 큰 불만을 품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으나, 신겐이나 후다이의 중신들은 그것을 묵살했다.


신겐이 죽은 후 타케다 가문의 당주가 된 카츠요리였으나, 처음부터 임시(中継ぎ) 당주 취급이었다. 특히 카이 수호직(甲斐守護職)이나 대선대부(大膳大夫) 등의 관위(官位)가 카츠요리에게는 하나도 주어지지 않았다.

싸움에 있어서도 풍림화산(風林火山), 타케다비시(武田菱) 등의 타케다 가문을 상징하는 깃발의 사용도 금지당했다. 그렇기에 집안(一門) 사람들이나 친족들, 후다이의 중신들은 카츠요리를 더욱 얕보았다.

솔선하여 카츠요리의 말을 거역하고, 카츠요리의 정책을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행동했다. 그 결과, 좋은 성과가 나오면 공을 자기 것으로 하고, 나쁘면 카츠요리 탓을 했다.


타케다 가문을 이어받는 교육을 받지 못한 채, 신뢰할 수 있는 참모나 심복을 얻지 못한 채, 타케다 가문을 이었다.

그 때문에, 스와 가문에서는 '타케다 사람'이라고 거리를 두고, 타케다 가문에서는 '스와 사람'으로서 한층 낮게 보여졌다.

형식상이라고는 해도 주군을 주군으로 생각하지도 않는 가신들을 규합하지 못하여, 신겐이 죽은 후의 타케다 가문의 몰락을 결정지은 우장(愚将)으로서 이름을 남겼다.


"선대(先代)가 위대했기 때문의 불우함에는 동정하지만, 봐주지는 않는다"


"……뭐, 그렇지"


역사적 사실 이상으로 가혹한 길을 걷기 시작한 카츠요리였으나, 그래도 타케다 가문을 이어받은 이상 손을 늦출 수는 없다.

타케다 가문을 쳐부수는 것으로 비로소 오다 가문은 무가(武家)의 정점에 섰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3년, 아니 2년일까? 호상(豪商)들에게도 타케다 가문이 정체를 숨기고 거래를 요청해 오겠지만 신경쓰지 말고 거래해도 좋다고 통지해둘게"


"그래서는 타케다가 힘을 되찾게 되어버리지 않을까?"


"어느 정도의 힘은 돌아오겠지. 하지만, 공을 서두른 카츠요리는 군비 확장을 강행하려고 하지 않을까? 그 군비를 사들일 자금은 어디에서 조달할 거라 생각해? 순리적으로 생각하면 영민들에게서 더욱 징수할 수밖에 없겠지. 지금의 타케다 가문의 전력으로는 타국을 침공할 여유 따윈 없으니까"


가능하다고 해도 국경 부근을 조금 빼앗는 정도가 한계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짓을 하면 약간의 이익과 맞바꾸어 타국의 원한을 살 뿐이다.

지금의 타케다 가문에는 영지(所領)에 무거운 세금을 부과하는 것 이외에 취할 수 있는 부흥의 길이 없다. 가능하다면 신푸 성(新府城)의 축성에 착수해줬으면 하고 시즈코는 바랬다.

신푸 성의 축성은 경제 부흥을 목적으로 한 공공사업이지만, 그 이익에 관여할 수 있는 사람은 한정적이라서 나라 전체로 이익이 재분배되는 구조가 아니다.

과도한 부담을 짊어지게 되어 영민들의 불만이 한꺼번에 폭발하면, 카이 곳곳에서 잇키(一揆)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었다.


"과연…… 확실히 방법이 없군. 뭐, 세세한 건 그쪽에 맡기겠다. 시즈코나 사나다 뭐시기가 좋다고 생각하는 방법으로 백성들의 마음을 카츠요리에게서 멀어지게 해 줘. 나는 그 후의 통치에 대해 생각해 두겠다"


시즈코가 말하려는 바를 이해한 노부타다는, 내용을 확인하는 의미도 겸하여 몇 번이고 고개를 끄덕였다.




노부타다와 헤어진 후, 이번에야말로 귀가하려고 한 시즈코였으나, 방을 나서자 곧장 누군가가 말을 걸어왔다.


"시즈코 님, 잠시 시간을 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여어 시즈코, 잠깐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괜찮겠느냐?"


시즈코가 볼 때 오른쪽에서는 미츠히데가, 왼쪽에서는 히데요시가 말을 걸어왔다. 서로 상대의 존재를 깨달은 듯, 시즈코를 사이에 끼고 시선을 충돌시켰다.


""실은, 긴히 부탁할 것이……""


이거 번거로워졌네라고 시즈코가 생각하고 있을 때, 히데요시와 미츠데의 목소리가 깔끔하게 겹쳤다. 타이밍도 내용도 단어 하나하나까지 일치한 것에 서로 놀란 표정이 되었다.

하지만, 즉시 제정신이 들자 서로 불쾌한 듯한 표정을 떠올리며 상대를 견제하기 시작했다.


"이 이상 순번 때문에 다투시는 건 사양하겠습니다. 여기서는 운을 하늘에 맡기도록 하죠. 주사위 숫자가 짝수라면 아케치(明智) 님, 홀수라면 하시바(羽柴) 님의 이야기를 먼저 듣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시즈코는 품에서 꺼낸 정육면체의 주사위를 던졌다. 주사위는 마루의 판자(板) 사이를 몇 번 굴러가며 맹장지에 부딪힌 후 움직임을 멈추었다.

히데요시도 미츠히데도 마른침을 삼키며 주사위의 숫자를 보았다. 나온 숫자는 '4(四)'였다. 자신이 먼저라는 것을 이해한 미츠히데는 득의만면해졌으며, 반대로 히데요시는 어깨를 늘어뜨리고 의기소침해졌다.


"그럼, 아케치 님부터 말씀을 듣겠습니다. 이후, 하시바 님을 찾아뵙겠습니다"


"사전 연락(先触れ)은 필요없다. 그 쪽의 용무가 끝나는 대로 아무 때나 와도 상관없다"


하늘의 결정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모양새가 좋지 않다고 생각했는지, 히데요시는 의외로 순순히 물러났다. 미츠히데는 부채로 입가를 가리고는 있었으나, 아마도 웃음이 짙어졌으리라.


"서서 이야기할 수도 없겠지요. 방을 준비해 두었으니, 그쪽으로 와 주시겠습니까?"


미츠히데가 직접 안내한 방은, 화려(華美)하지는 않으나 절묘하게꾸며진, 미츠히데답게 약간 멋을 부린 방이었다.

그러나, 세련된 자리의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 인물이 몇 명, 좀 떨어진 아랫자리(下座)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을 시즈코는 깨달았다.

약간 경계하면서도 시즈코는 상석(上座)으로 안내되고, 그 등 뒤에 사이조(才蔵)가 서고, 어느 틈엔가 달려와 있던 케이지(慶次)가 사이조 옆에 앉았다.


"조금 복잡한 이야기가 됩니다. 미리,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알겠습니다"


"우선 뒤에 있는 사람들을 소개하겠습니다. 이쪽은 쵸소카베(長宗我部) 님의 수군(水軍)을 맡고 있는 이케(池) 님입니다"


미츠히데에게 소개된 인물, 이케가 약간 앞으로 나서며 시즈코를 향해 깊이 고개를 숙였다.


"처음 뵙겠습니다. 소생, 쵸소카베의 신하, 이케 시로자에몬(池四郎左衛門)이라 합니다"


"아, 정중한 인사 감사드립니다(これは御丁寧に, ※역주: 일본에서는 흔히 쓰이는데, 굳이 우리말로 하면 '아이고, 이렇게 정중하게 인사해 주시다니' 정도의 뉘앙스). 저는 시즈코라고 합니다"


예기치 못한 인물의 등장에 시즈코는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대답을 해버렸다.

이케 시로자에몬 요리카즈(頼和). 이케는 원래 토사(土佐)의 영주이며, 당초에는 쵸소카베 쿠니치카(長宗我部国親)와 싸우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딸을 처로 맞은 이후에는 그 밑으로 들어가, 쵸소카베 수군의 주력을 맡게 되었다.

사카이(堺)와 활발하게 교역하여 쵸소카베의 재정을 뒷받침한 인물이기도 하다.

역사적 사실에서는 후에 아내와 불화가 생겨 모반의 혐의를 뒤집어쓰고, 그 당시의 주군인 쵸소카베 모토치카(元親)의 명령으로 자결하게 되었다.


"저희 주군을 위해 오랫동안 조력을 해주셨음에도 인사가 늦은 점을 사죄드립니다. 주군은 오다 님, 시즈코 님의 진력(尽力)에 대단히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건 다행입니다 (실험장으로 삼았다고 말하면 화내려나?)"


이케가 감사의 말을 했다. 그에 대해 시즈코는 표면적으로는 생긋 웃는 태도를 취하면서도, 내심 볼이 경련하는 느낌이었다.


역사적 사실에서는 토사를 통치하는 데 10년이 걸리고, 시코쿠(四国) 통일에 다시 10년이 소요된 쵸소카베가, 어떻게 12년이나 때를 앞당겨 시코쿠 통일을 앞두고 있는 것일까.

거기에는 몇 가지 우연과, 쵸소카베에게 기가막힌 행운이 작용했기 때문이었다.

노부나가가 상락했을 때, 쵸소카베 모토치카는 아직 토사 통일을 이루고 있지 못했다. 그 후, 1년 정도 노부나가의 동향을 지켜보고 있었으나, 갑자기 모토치카는 결단했다.

자주독립을 버려서라도, 노부나가와 동맹을 맺는다. 최악의 경우 그 밑으로 들어가게 되어도 상관없다고 모토치카가 말했다. 당연히 가신들로부터는 반대의 목소리가 나왔으나, 그는 그것들을 전부 침묵시켰다.


하지만, 노부나가의 입장에서는 토사 한 나라조차 통일하지 못하는 모토치카와 동맹을 맺어봐야 전혀 이익이 없다.

첫번째는 만나보지도 못하고, 미츠히데에게 중재를 부탁한 두번째도 냉담하게 축객을 당했다.

이것이 마지막이라고 각오를 한 모토치카는, 삼세번(三度目の正直)이라고 말하듯이 나라를 팔아넘기는 것 같은 조건으로 종속될 것을 청했다. 그래도 노부나가에게서 썩 좋은 대답은 듣지 못했다.

그러나, 노부나가는 뭔가 생각하는 바가 있었는지, 시즈코를 참고인(引き合い)으로 내세워, 모토치카에게 그녀와 동맹을 맺도록 유도했다.


시즈코의 입장에서는, 모토치카가 노부나가에게 동맹을 요청한다는 것은 청천벽력이었다.

그러나, 쵸소카베의 취급을 둘러싸고 노부나가와 미츠히데가 반목하여 혼노지 사변(本能寺の変)이 일어났다는 설이 있는 것을 알고 있는 몸으로서는, 도저히 이것을 못본 척 할 수 없었다.

쵸소카베가 빠른 단계에서 시코쿠를 통일하는 것이 최종적으로는 오다 가문에게 이익이 될 거라 판단한 시즈코는, 시즈코에게 동맹을 받아들이겠다고 말했다.


"무엇이 어떻게 이익이 되는 것이냐?"


"쵸소카베 님의 거점인 토사는 시코쿠의 하부(下部)에 해당합니다. 큐슈(九州) 원정을 고려했을 경우, 해로(海路) 상의 보급지점으로서는 대단히 좋은 위치가 됩니다. 또, 그가 조기에 시코쿠를 정리하게 되면, 츄고쿠(中国) 지방의 모우리(毛利) 등에게 압력을 가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확실하게 주종관계를 확립하여 시코쿠에 교두보를 구축하면, 일본 통일을 향해 약진하기 위한 포석이 될 것입니다"


"호오, 제법 앞을 내다보고 있구나. 재미있다, 관리(差配)는 네게 일임하마"


시즈코는 현대에서 가져온 지도를 노부나가에게 보여주면서 전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정확무비한 지형도가 그려진 지도 덕분도 있어, 노부나가도 시즈코가 이야기하는 이점을 시각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세 번째에 이르러 쵸소카베는 노부나가의 신하가 되게 되었다. 국력적으로 오다 가문과의 동맹은 이룰 수 없었으나, 그래도 오다 가문 비장의 시즈코와의 동맹은 훗날 뛰어난 성과가 되었다.


단, 이 시점에서는 쵸소카베의 입장에 변화는 없다. 그 후, 시즈코의 중재로 사키히사(前久)가 움직여, 조정에서 시코쿠 통일의 윤지(綸旨)가 나왔다.

하지만, 조정이 인정했다고 해도 멀리 떨어진 시코쿠의 땅에서는 실제 효력 같은 건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어디까지나 '조정으로서는 쵸소카베를 시코쿠의 대표로서 인정합니다'라는 정도로밖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당초, 노부나가는 쵸소카베에 대한 군사적인 지원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오다 포위망 때문에 여유가 없었다는 이유도 있지만, 그렇게까지 할 의리도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노부나가의 태도를 정반대로 바꾸어버린 사건이 일어났다. 시코쿠에서 쵸소카베와 패권을 다투고 있는 미요시의 군이, 노부나가가 남만에서 수배한 화물을 실은 배를 격침시켜 버린 것이다.

그 배에는 노부나가가 고심 끝에 남만에서 사들인 각종 광석(鉱石)이 가득 실려있었다. 당초, 미요시 군은 쵸소카베가 사카이와의 교역에 이용하고 있는 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미요시는 노부나가의 역린(逆鱗)을 건드렸다. 노부나가가 다음 약진을 기하여 막대한 비용과 많은 시간을 들인 성과를 물거품으로 만들어 버렸다.


배가 격침당한 것을 알게 된 노부나가의 분노는 대단했다.

전국시대에 화물의 보험(保障) 같은 게 있을 리도 없고, 그보다도 방대한 시간을 들여 준비한 것이 물거품으로 돌아가 다음 한 수를 두기 위한 기회를 놓친 것에 격노했다.

노부나가는 즉각 미요시를 멸망시키려고 시코쿠로 침공하려 했기에, 그를 뜯어말리기 위해 많은 가신들이 적지않은 상처를 입었다.

파손된 기물도 많아, 맹장지의 경우에는 무사했던 것이 적었을 정도의 상황이었다.


연일 분노를 터뜨렸으나, 일전(一転)하여 냉정해지자 노부나가는 쵸소카베를 이용하여 미요시를 멸망시키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토사 통일조차 애를 먹고 있는 쵸소카베였기에, 기폭제가 필요하다고 그는 생각했다.

거기서 주목받은 것이, 오다 가문이 보유하고 있는 쿠키(九鬼) 수군이었다.


스크류 선을 시작으로, 시즈코로부터 다양한 기술 공여 끝에 근대화를 달성한 쿠키 수군이었으나, 해전(海戦) 자체가 없었기에 실전 경험이 거의 없었다.

노부나가는 쿠키 수군의 실력이 얼마나 되는지 파악하기 위해, 미요시를 상대로 시험(試し斬り)을 해볼 생각이었다.

이리하여 쵸소카베에게 쿠키 수군이 파견되어, 토사 통일을 하기도 전에 미요시와 전쟁을 벌인다는 생트집 수준의 과제(無理難題)가 쵸소카베에게 떨어졌다.

가신들은 밀어닥친 재난에 비탄(悲嘆)했으나, 모토치카는 "이 정도의 무리도 할 수 없다면 시코쿠 통일은 불가능"이라고 정색하며 가신들을 설득한 후 미요시에게 싸움을 걸었다.


급조한 연합군이었기에 처음에는 밀리는 느낌이었던 쵸소카베 군이었으나, 도중부터 상황이 호전되었다.

미요시 군의 유능한 무장이 '때마침(都合良く)' 병사하고, 미요시 군의 주력이었던 아와지(淡路) 수군이 쿠키 수군의 압도적 화력 앞에 전멸하기 직전까지 간다는 대패를 맛보았다.

게다가 미요시 군의 보급로를 끊기 위해 긴 사정거리를 살린 대지 포격(対地砲撃)을 반복하여, 그들이 사용하는 항구를 하나도 남김없이 파괴했다.

이에 의해 바다로부터의 지원을 받지 못하게 된 미요시 군이었지만, 항구를 파괴했다는 것은 쵸소카베 군도 해상에서 육지로 공격해 들어갈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대의 양륙함(揚陸艦)에 가까운 수송선을 개발해놓았던 쿠키 수군은, 항구가 없어도 인원이나 물자를 실어날라 쵸소카베 군을 지원했다.


그러는 동안, 제 2차 오다 포위망이 시작되어 오다 가문의 상황은 어려워졌다. 그러나, 대부분의 예상을 뒤엎고, 미카타가하라(三方ヶ原) 전투에서는 신겐을 격파하고, 겨우 며칠만에 나가시마(長島) 일향종을 쳐부쉈다.

이 급격한 전개에 쵸소카베 이외의 시코쿠의 영주들은 마음 속 깊이 두려움에 떨었다.

특히 미요시의 편을 드는 세력의 동요는 현저했다. 그에 반해 쵸소카베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정치적 책략(調略)과 무력을 번갈아 섞어가며 세력을 늘렸다.

지금은 시코쿠에서 쵸소카베를 다르지 않는 것은 미요시 세력만 남은 상태로, 다른 영주들은 모두 쵸소카베 모토치카에게 굴복했다.


"(파죽지세라는 건 이런 걸 말하는 거겠지) 자, 단지 인사만 하시려고 오셨다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제게 어떤 용무이신가요?"


과거를 되돌아보면서 시즈코는 이케에게 다음 말을 재촉했다. 단순히 면회만 할 거라면 지금까지도 기회는 있었다.

그러지 않고, 지금 이 자리에서 미츠히데가 자리를 마련한다는 것은, 뭔가 중대한 이야기가 있는 것이라고 시즈코는 추측했다.


"옛. 혜안이 놀라우십니다. 실은 대단히 뻔뻔스러운 이야기입니다만, 시즈코 님께 긴히 부탁드릴 것이 있습니다"


"부탁?"


시즈코의 질문에 이케는 고개를 한 번 끄덕이더니, 그는 의외의 부탁을 말했다.


"실은…… 이 이상의 지원을 사양하고자 이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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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

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겐키(元亀) 4년 무로마치 막부(室町幕府)의 종언(終焉)


112 1573년 12월 중순



시즈코 밑에서 뿌리를 내린 마사유키(昌幸) 등 사나다슈(真田衆)는, 환경의 차이도 있어 당황하기는 했으나, 1개월도 지나기 전에 오와리(尾張)의 생활에 적응하고 있었다.

기쁜 오산(誤算)으로서, 간자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평가해주는 마사유키를 의지하고 타케다(武田) 가문의 간자들이 속속 출분(出奔)하여 모여들었다는 것이 있었다.


"돌아가신 신겐(信玄) 공(公)이 심혈을 기울여 키워낸 간자들을 그대로 몽땅 받을 수 있는 겁니다. 그에 반해 타케다 가문은 고심해서 구축한 정보망을 잃고, 지금은 매일의 연락도 자유롭게 하지 못한다더군요. 우리들은 누워서 떡먹기(濡れ手で粟を掴む)로 그들의 손발을 잘라낼 수 있는 겁니다. 행운이라고 생각하지 않나요?"


시즈코의 가신 중 한 명이 마사유키 밑으로 간자들만이 늘어가자, 외부인이 대량으로 유입되는 것을 걱정하여 시즈코에게 경고를 했다.

그에 대한 시즈코의 대답이 이것이었다. 확실히 숫자가 늘어나면 관리가 어려워진다. 타케다 가문에서 보내어진 간자도 있겠지만, 그것조차도 마사유키가 손을 써서 품고 있었다.

그리고 시즈코의 지적대로, 현재의 타케다 가문은 정보망이 기능하지 않아, 자신들의 영토 이외의 정세 같은 건 전혀 모르는 쇄국 상태에 빠져 있었다.

적국에 접하는 영지를 가진 타케다 가문 가신들은 바깥의 정보를 필요로하여 간자들을 붙잡으려고 하였으나, 한 번 기운 저울이 되돌아가지는 않았다.

'미츠모노(三ツ者)', '유랑 무녀(歩き巫女)' 같은 첩보원(諜報員)들을 총괄하고 있던 조직이 붕괴하여 외부의 정보가 전혀 들어오지 않는다는 위기에 직면하고 있었으나, 국내를 정리하는 데 필사적인 카츠요리(勝頼)는 이것들을 돌아보려고 하지 않았다.


"꽤나 사람이 늘어났네요. 저번의 보고 시점에서 200명 정도였다고 했는데, 매일 합류해오고 있는 모양이니 실제 숫자는 더 많겠지요"


"신겐 공 직할의 집단도 있었으니, 실태를 파악하고 있던 것은 신겐 공 뿐이었을 거라 생각됩니다"


마사유키는 모여드는 간자들을, 자신을 정점으로 한 조직에 포함시키고, 재편된 조직의 개요를 시즈코에게 보고하고 있었다.

마사유키는 정력적으로 일하고 있었다. 얼마 안 되는 기간 동안 지휘계통이 붕괴된 조직을 재구축하고, 새로운 첩보망으로서 전개하여, 수시로 각지에서 정보가 들어오는 체재를 갖춰가고 있었다.

급조된 조직이라 그런지 정보 밀도의 편중이 존재하기는 하나, 인원이 고르게 배정되면 정보를 고르게 얻을 수 있기에, 큰 문제로 생각되지는 않았다.


"무리하게 지휘계통을 바꿀 필요는 없겠네요. 종래의 지휘계통 위에 사나다 님을 두는 것과, 감사요원(監査要員)을 끼워넣는 정도일까요? 급격한 조직 개편은 혼란을 불러옵니다. 현재 상황을 유지하면서, 필요에 따라 바꿔가죠"


"옛"


"그건 그렇고, 단기간에 용케 이만큼 조사했네요. 주상(上様)께서도 칭찬하셨습니다. 지금부터의 활약에도 기대하고 있겠어요"


"기대에 부응하도록 분투(奮励) 노력하겠습니다"


마사유키에게는 지금이 승부처(正念場)였다. 예전의 무공 따위 오다 가문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하지만, 일하면 일할수록 평가받아, 활약할 장소가 넓어진다.

간자 조직을 쇄신하여 각지의 정보를 적절히 수집하고, 그것들을 집약, 정사(精査)하여 노부나가에게 정기적으로 보고하는 체제. 이 시스템 구축을 통해 무공으로 평가받았다.

오가 가문에 있어 유용하다면, 그 공은 전쟁터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평가 방침은, 휘하에 병력을 갖지 못한 마사유키에게 대단히 고마운 것이었다.

사나다 가문을 출분하면서 유능한 장병들은 대부분 본가(本家)에 두고 왔다. 마사유키는 어디까지나 '후계(家督) 다툼에 패하여 추방되었다'라는 모양새가 아니면 안 된다.

자신에게 추격대까지 보낸 본가였지만, 자신이 원인이 되어 옛 보금자리(古巣)에 엉뚱한 의혹을 받게 하는 것에 부끄러운(忸怩たる) 마음이 있었다.


"너무 과하게 몰두하지는 마세요"


보기에도 어깨에 지나치게 힘이 들어가 있는 마사유키를 보고 시즈코는 쓴웃음을 지으며 충고했다.




겨울도 깊어져 12월에 들어서자, 전쟁의 기색은 멀어졌다. 농한기(農閑期)야말로 싸움을 걸기 좋은 건 상식이지만, 그럴 상황이 아닌 긴박한 이유가 존재했다.

오다 가문에 관한 것만 들어도, 쿄(京)나 오우미(近江) 등 키나이(畿内)의 곡창지대로부터의 세금을 집계해보니, 대규모의 흉작(不作)임이 판명되었기 때문이다.

정확한 측량(検地)이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평균적인 수확량의 계산은 못하고 있었으나, 백성들의 말에 따르면 예년의 6할 정도밖에 수확하지 못했다고 한다.

노부나가의 지배지에서 식량에 여유가 있는 것은 미노(美濃)와 오와리 뿐으로, 새롭게 산하에 편입된 키나이의 영지에서는 여유 같은 건 바랄 수도 없다.

예년 수준인 경우에도 간신히 먹고 살 정도라는 상태였기에, 4할이나 부족하다고 하면 비상사태라 할 수 있었다.

이대로 방치하면 백성들은 굶주리고, 일향종(一向宗)이 선동하면 쉽게 잇키(一揆)로 발전한다. 잇키가 발생하면 사카이(堺)와 쿄, 오와리를 잇는 물류(物流)의 대동맥(大動脈)이 정체되게 된다.

이러한 것들을 고려한 결과, 노부나가는 미노나 오와리의 잉여미(余剰米)나, 새로운 지배지용으로 쌓아놓고 있던 비축미(備蓄米)까지 방출했다.

이 시책의 덕분도 있어, 키나이에서의 소동은 일어나지 않았으나, 노부나가에게 전쟁이 가능할 정도의 여유는 없었다.

당장 닥친 위협도 없었기에, 노부나가는 지배지 전역의 통치 강화로 방향을 틀었다.

이에 의해 각지의 통치를 맡고 있던 가신들도, 측량이나 농업개혁 같은 부국정책을 중시한 영지 경영에 힘쓰게 되었다.


"농업개혁은 좋지만,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날 의지하는 건 그만했으면 좋겠어"


노부나가의 지배지 곳곳에서, 농업지도를 할 수 있는 인원을 파견해 달라느니, 비상식적일 정도의 짧은 납기로 농기구를 대량으로 준비해 달라느니 하는 요구가 올라오는 것에 시즈코는 진절머리를 내고 있었다.

가능하다면 현지에서 산업을 일으켜서 내수(内需)를 확대하는 방침을 취했으면 하고 생각했지만, 정신없이 바쁘게 사는(生き急ぐ) 무장들에게 기다리라는 것도 가혹한 이야기였다.

현지 근처에서 조달할 수 있는 것은 상인들의 연줄을 통해 융통하고, 그것조차 어려운 것은 시즈코가 준비하는 것으로 대응했다.


이러니저러니 하는 새에도 계절은 흘러가 12월도 중반이 되었다. 연말(年の瀬)을 앞두고 다들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시즈코도 바쁜 일의 짬짬이 시간을 내어 돈이 든 나무 상자를 들고 가신들의 집으로 갔다.


"시즈코 님께서 직접 오시다니 황송합니다. 용건이 있으시면 언제든지 달려갔을텐데요"


겐로(玄朗)가 시즈코에게 깊이 고개를 숙였다. 타케다 군의 격퇴로 시작하여, 그 후의 나가시마(長島) 잇코잇키(一向一揆), 아자이(浅井)-아사쿠라(朝倉) 전투에서도 눈부신 무공을 세운 겐로는, 노부나가로부터 무사의 신분(士分)을 받았다.

무사의 신분이라고 해도 아시가루(足軽)가 아니라, 말을 타는 것을 허락받는 무사의 신분으로 대우받았다.

성(名字)을 쓰는 것을 허락받은 겐로는, 성을 오와리쿠스노키(尾張楠木), 이름(仮名)을 겐로라 하고, 휘(諱)를 시즈코에게서 한 글자를 받아 시즈오키(静興)라고 쓰게 되었다.


신분에 걸맞는 의류나 가구(調度), 무가 저택(武家屋敷)등도 주어졌고, 노부나가로부터 하사(拝領)받은 칼을 차, 그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모습이 되어 있었다.

내일조차 알 수 없는 거렁뱅이(食い詰め者)였던 시절에서 보면 믿을 수 없는 입신출세(立身出世)를 이루어, 주위에 어엿한 승리자(成功者)로 보이게 되었다.

하지만 그 자신은 아무 것도 변하지 않아, 자신을 키워준 시즈코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한층 더 충성을 맹세했다.


"이런 기회라도 없으면 겐로 할아버지의 얼굴을 볼 수 없으니까요. 올 안 해, 정말로 수고했어요"


시즈코가 그렇게 말하자, 뒤에 시립하고 있던 소성이 앞으로 나왔다. 소성은 겐로의 앞에 상(膳)을 놓고, 인사를 한 후 뒤로 물러났다.

시즈코는 자신이 안고 있던 나무 상자에서, 미농지(美濃紙)로 포장된 돈을 꺼내 늘어놓은 후, 상을 겐로 쪽으로 밀었다.

현대에서 말하는 겨울 상여금이다. 연말에서 새해에 걸친 기간에는 이것저것 필요해진다.

새롭게 가문을 일으킨 겐로의 경우 한층 더 그렇기에, 그것을 보태주기 위해서도 시즈코가 포상금을 제도화했다.


"각별하신 배려, 감사드립니다"


다른 가신들에게도 나눠주기 때문에 그렇게까지 큰 돈은 아니지만, 그래도 자신을 신경써주는 시즈코에게 겐로는 감사의 마음을 품었다. 겐로는 공손히 상에서 돈을 받아들어 품 속에 넣었다.


"사실은 근황 같은 거 묻고 싶지만, 오늘밖에 모두의 집을 돌 시간이 없으니, 미안하지만 실례할게요"


"옛! 귀중한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연말도 다가오고, 사람들의 통행도 많습니다. 부디 몸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시즈코 님에게 무슨 일이 있어서는 일본 전체의 손실. 이 겐로, 무슨 일이든 제쳐놓고 달려갈테니, 용건이 있으시면 불러 주십시오"


"네, 충분히 주의할게요. 하지만 연말은 푹 쉬어요. 몸을 쉬는 것도 중요한 일이에요"


"옛!"


가볍게 대화를 나눈 후, 시즈코는 겐로의 저택을 떠났다. 지금부터 니스케(仁助) 등의 집도 돌 필요가 있다.

원래는 시즈코가 가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저택으로 불러서 포상을 건네주는 것이 도리이다.

그러나, 시즈코 직속의 공을 세운 가신들만이라도 직접 가서 사는 모습을 확인하고 그 공을 치하하고 싶다는 시즈코의 마음에, 근시(近侍)들도 결국 두 손을 들어, 줄지어서 상을 주러 다니고 있다.

물론, 전원을 다 도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하기에, 안전상의 배려 등에서도 측근이나 특히 공을 세운 자들로 대상이 한정되었다.


"분명히 이 근처에…… 아, 있다 있어"


탁 트인 땅에 덩그러니 서 있는 도장(道場) 같은 건물에 시즈코는 아시미츠(足満)와 함께 들어갔다.


"아니 시즈코 님. 이런 누추한 곳에 오시다니, 무슨 일이십니까?"


목적의 인물은 사이조(才蔵)였다. 이 건물은 수련장(鍛錬場, ※역주: 원어는 '단련'이지만, 우리말에서는 '단련'이라고 하는 것보다 '훈련'이나 '수련'이라고 하는 편이 자연스럽게 느껴져서 수련으로 번역)이라고 하여, 나가요시(長可)가 애용하고 있는 것을 보고 사이조나 타카토라(高虎)도 촉발되어 단련을 하게 되었다.

케이지(慶次)는 뭔가 이유를 붙여 동행하지 않았지만, 그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상식을 뛰어넘는 수련을 하고 있다.

하지만, 카부키모노(傾奇者)로서는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는 모습 따위는 보이고 싶지 않다는, 그 나름의 긍지가 있었다.


"수련을 중단시켜서 미안해요. 자, 전에 말했던 겨울의 포상금을 주려고 왔어요"


"시즈코 님이 직접 오시지 않아도, 부르시면 제가 갔을텐데요"


"신경쓰지 말아요.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니까요"


웃으면서 시즈코는 아시미츠에게서 돈을 받아서 그것을 사이조에게 직접 건네주었다. 사이조는 의복을 단정히 하고 인사를 한 후 돈을 공손히 받아들었다.


"수련은 순조롭나요?"


"부끄럽지만, 잘 되지 않고 있습니다"


시즈코는 질문하면서도 사이조가 매달아놓았을 종이를 보았다. 시즈코의 시선 끝을 보며 사이조가 자조하면서 대답했다.


사이조가 하고 있는 수련은 단순했다. 들보(梁)에 실을 매달고, 그 끝에 구멍이 뚫린 종이를 매단다.

제 1단계는 매달린 종이를 창으로 벤다. 제 2단계는 종이를 찌른다. 최종 단계는 문(鎧戸)을 열고 바람에 흔들리는 종이를 베거나 또는 찌른다.

말로 하면 간단하지만, 막상 실행하려고 하면 그 어려움을 이해할 수 있다.


가까운 예를 들자면, 길이 3미터 정도의 스테인리스제 낚싯대를 준비해서, 끝부분에 젖은 청바지를 매단다.

그 상태에서, 가능한 한 낚싯대를 길게 잡고 끝부분을 대(台座)에 올리려고 하는 난이도일까.

중심이 전방으로 치우쳐 있기에, 앞쪽 끝부분(先端)을 정지시키는 것조차 어렵고, 뒤쪽 끝부분(末端)을 잡고 있기에 약간의 움직임이 앞쪽 끝부분에서는 큰 움직임이 되어 나타난다.


이것이 사이조가 사용하는 대신창(大身槍)쯤 되면, 창날(穂先)이 2척(尺)을 넘는 다마스커스 강으로 되어있기에, 그 무게는 상상을 초월한다.

앞서 말한 중심 밸런스에 더해, 자루 자체가 무게로 휘기 때문에, 표적이 되는 종이에 맞추는 것조차 보통 사람에겐 어렵다.


"베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하지만, 찌르려고 하니 이야기가 다릅니다"


과연 창의 명수인 사이조답게, 앞쪽 끝부분의 흔들림도 없이 기합(気合)과 함께 일섬(一閃)으로 표적을 갈라 보였다. 다음으로 창을 몸 가까이 당겨 허리에 대고 자세를 취한 후, 창을 바짝 당겼다 찔러냈다.

하지만, 창의 앞쪽 끝부분은 표적에서 벗어난 공간을 관통했다. 창이란 기본적으로는 후려치는 것이지만, 전쟁터에서는 그렇게 딱 좋게 창을 휘두를 수 있는 상황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사이조는, 좌우로 공간이 없어도 공격할 수 있는 찌르기나, 찌르기에서 참격(斬撃)으로 변화시키는 수련을 스스로의 과제로 삼고 있었다.

쓸 것인지 아닌지는 상황에 달렸지만, 쓸 수 있는 패(手札)가 많아서 나쁠 것은 없다.


"위에서 아래로 중량을 실어 후려치면 갑주 위에서도 상대에게 피해를 줄 수 있습니다만, 날카롭게 찌르고 거둘 수 있다면 상대를 처치한 후 더욱 빠르게 다음 공격을 할 수 있습니다"


후려쳐서 넘어뜨린 후에 찔러죽인다는 두 동작보다도, 찌르고 거두면 다음 공격 준비도 된다. 이상적으로는 일격일살(一撃一殺)이 바람직하다.

이 생각은 당연히 전쟁터에서도 유효하지만, 사람의 왕래가 많은 거리 등에서 호위를 맡는 호위대(馬廻衆)로서의 개념이 강하게 드러나있었다.

군중에 섞여 귀인(貴人)을 습격하는 자를, 사람들의 틈새로 재빠르게 처치한 후 다음 공격에 계속 대비한다.

군중뿐만 아니라 동료를 방패로 삼는 경우도 고려하여, 약간의 간격이라도 찔러낼 수 있는 정밀도를 몸에 익히려고 열심히 생각한 끝의 수련이었다.


"뭐, 이런 건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니에요. 참고가 될지는 모르지만, 언니가 긴 무기를 쓸 때는 비틀면 앞쪽 끝부분이 안정된다고 말했었어요"


"호오! 비트는 것입니까?"


"뭐더라, 자이로 효과? 어쨌든 창을 회전시키면서 찌르면, 앞쪽 끝부분은 안정되는 모양이에요"


"비튼다…… 뭔가 빛이 보인 느낌이 듭니다"


"손끝에서만 비틀면 반대로 더 흔들린다고 했던가요? 뭐, 주워들은 이야기니까 참고 정도로만 들어요"


"옛, 명심하겠습니다. 제 노력이 올바른지, 계속 자문자답하면서 수련하겠습니다"


"그럼 좋아요"


사이조의 말에 시즈코는 엄지손가락을 세우며 말했다.




겨울 상여금 전달을 마친 시즈코는, 드디어 연말 준비를 시작했다. 그렇다고는 해도, 예전처럼 모든 작업을 혼자서 할 수는 없다.

그녀에게는 답답하더라도 지시를 내리고 수하들에게 작업을 시킬 필요가 있었다.


"으ー음, 새해맞이(年越し) 준비는 재미있는데 말야"


소매를 걷어올리며 의기양양하게 새해맞이 준비에 참가하려던 시즈코였으나, 아야(彩)와 쇼우(蕭)에게 "주인께서 준비에 바쁘시게 되면 고용인(家人)들의 능력을 의심받게 됩니다. 부디 자중해 주십시오"라는 충고를 들었다.

결과적으로 시즈코는 해야 할 작업을 리스트업하여 그에 따라 작업을 진행하도록 지시를 내리고, 그 후에는 일체 할 일이 없어져버렸다.

실질적으로 집 안의 일은 아야와 쇼우가 관장하고 있으며 시즈코에게 질문조차 하지 않았기에, 예상외로 시간이 남아돌게 되었다.

부하가 우수하면 편하지만, 할 일이 없어 무료해지는 것도 곤란하다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위에 서는 사람의 숙명이지"


시즈코의 불평에 아시미츠가 대답했다.

이전에는 시즈코 한 명에게 부하(負荷)가 집중되었으나, 전쟁 때문에 장기간 집을 비우는 일이 많아지면서, 아야나 쇼우가 집을 지키면서 단련이 되어 그녀들만으로 처리할 수 있는 일의 범위가 늘어났다.

이제 시즈코에게 남은 것은 보고를 듣는 것과, 그녀가 아니면 결재할 수 없는 사안이나, 노부나가로부터의 명령서 등에 한정된다.


"내 역할은, 돈을 마련하는 것(金策)과 각 부서의 조정 정도밖에 남지 않게 되었어요"


"사장이나 회장이 일의 상세한 내용을 파악하고 있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시간이 났으니 밭일이라도 하는게 어떠냐"


"……없어요. 다들 우수해서, 내가 작업할 게 없어요"


아시미츠의 말에 시즈코는 무거운 한숨을 쉬었다. 섬세한 작업이 요구되는 일부 품종의 재배를 제외하면, 시즈코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작업은 없어지기 시작했다.

각각의 작물에 담당자가 붙어서, 처음에야 조언을 요청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이제는 훌륭하게 성과를 내고 있었다.

문자의 읽고 쓰기를 교육시켰기에 재배 기록이 작성되고, 우수한 사람들이 그것을 바탕으로 교재까지 만들게 되었다.

이것들 전부가 출세욕 같은 게 아니라 항상 바쁜 시즈코를 편하게 해주자는 선의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그녀로서도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조만간 망고라던가 남국(南国) 계열의 과실(果実)에서도 손떼게 될지도 모르겠네요. 카카오도 내년 5월 쯤에는 열매를 맺을 것 같고…… 커피콩도 순조롭고……. 새로운 작물의 씨앗이라도 수입할까요"


"생각하는 건 상관없지만, 아까부터 손이 멈춰있다. 생각할 시간(持ち時間)은 이제 없으니까 고려 시간을 다 쓰기 전에 다음 수를 둬라"


모래시계를 가리키면서 아시미츠는 장기판으로 시선을 돌렸다.

전국(戦局)은 이미 시즈코의 패배개 9할쯤 확정된 상태였다. 중요한 말(大駒)인 비차(飛車)는 남아 있었지만, 적진에 홀로 남겨져 움직이지 못하고 보기좋게 사실상 죽은 상태였다.

왕을 둘러싼 말들도 반쯤 붕괴되어, 아시미츠에게 한 수의 여유가 생기면 시즈코의 패배가 확정된다. 시즈코로서는 아시미츠에게 계속 장군(王手)을 부르지 않으면 즉각 패배한다는 낭떠러지에 몰려 있었다.


"아니, 여기에 계마(桂馬)를 두면, 견제(合駒)는 할 수 없으니 외통수(詰み)죠!"


"안타깝지만, 그래서는 장기말(駒)이 하나 모자란다. 자, 이렇게 도망치면 다음 장군은 부를 수 없지"


"크으으으윽"


장기판을 핥을 듯 쏘아보았으나 아무리 생각해도 장군을 부를 수 없었다. 그리고 한 수가 비게 되면 그 후에는 아시미츠의 장군 연타를 막아내지 못하고 패배(投了)하게 된다.


"졌어요. 이 녀석한테 속았네요…… 에잇"


패배를 선언하는 말을 하고 고개를 숙인 시즈코였으나, 지는 것은 분했다. 그런 생각 때문에, 승패를 가른 아시미츠의 '은(銀)'을 향해 자신의 '보(歩)'를 손가락으로 튕겨 날렸다.


"그만둬라"


튕겨나간 장기발을 아시미츠가 잡아서 원래 위치로 돌려놓았다. 솔직히 태도를 고친 시즈코에 대해 아시미츠 주도로 복기(感想戦)를 하여, 각각의 국면에서의 최선의 수를 모색했다.

그게 끝나자 장기판과 장기말을 치우고, 아시미츠는 완전히 식어서 미지근해진 차로 목을 축였다.


"다음은 지지 않아요. 오랜(積年) 굴욕을 풀거에요!"


"그렇게 말하지만 꽤나 패배가 쌓여 있다. 감정에 내맡기지 말고 패한 원인을 연구해서 정진해라"


"내가 장기(将棋)를 가르쳐 줬는데!!"


"뭐, 그건 나이를 괜히 먹은 건 아니라는 거지"


시즈코가 리턴 매치(再戦)를 원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한 아시미츠는, 다시 장기판을 되돌려놓고 장기말을 늘어놓았다. 시즈코다 자신의 장기말을 늘어놓은 후, 후리고마(振り駒, ※역주: 일본 장기에서, 선수(先手)·후수(後手)를 정하기 위해 세 개 또는 다섯 개의 ‘歩’를 장기판 위에 던지는 것)를 하여 선수를 정했다.


"그렇지, 새 집으로 옮긴 이후 저택 안이 시원해졌구나"


이번에는 시즈코가 선수를 잡아, 서로 장기말을 두는 소리만 나고 있을 때 문득 아시미츠가 말했다.

그의 말대로, 이전의 시즈코 저택에서는 부지(敷地) 면적에 비해 물건이 많아서, 어수선(雑然)한 인상이었다.

그러나, 새 집으로 옮긴 이후에는 고용인들이 늘어났기 때문인지, 세세한 곳까지 눈이 가서 정리정돈이 철저하게 이루어진 느낌이 있었다.


"5S를 가르쳐서 철저하게 하고 있으니까요. PDCA 사이클 같은 건 아직 무리겠지만, 5S는 기본이니까요"


5S란 서비스업이나 제조업에서 원활하게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고안된 슬로건이다.

"정리(整理), 정돈(整頓), 청소(清掃), 청결(清潔), 예절(躾)의 5항목으로 구성되어 있어, 로마자로 표기하면 모두 머릿글자가 S가 되기에 5S라고 부른다 (※역주: 정리 - seiri, 정돈 - seiton, 청소 - seisou, 청결 - seiketsu, 예절 - sitsuke).

5S란 특별한 이념을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매일의 생활에서 필요한 마음가짐을 명확히 하고, 개인이 아니라 조직 전체로 임하는 것이다.

여담이지만, 기업에 따라서는 항목을 더욱 추가하여 7S나 10S로 하는 경우도 있다.


시즈코는 이 가장 기본적인 5S를 시즈코 저택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에게 철저하게 주입시켰다.

매일 아침 사훈(社訓)을 외우게 하는 경영자처럼, 5S를 확인하게 하는 시간을 각 식사 전에 두고, 암송할 수 있으면 반찬이 하나 늘어난다는 눈에 보이는 사탕을 주었다.

이건 젊은 사람일수록 즉각적인 효과가 있어서, 고용인들의 업무 수행에 대해 아야나 쇼우에게서 듣고,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우수자를 모두의 앞에서 칭찬했다.

5S를 철저히 하면 시즈코에게 좋은 인상으로 기억될 수 있다고 하여, 모두가 경쟁하듯 5S를 배우고 또 실천했다.

이 덕분도 있어, 새 집에서는 설거지칸(洗い場)에서 물에 담궈둔 채로 놓여있는 식기(食器) 등도 보이지 않게 되고, 뚜껑이 열린 상태인 큰 상자(長持)도 자취를 감추었다.

확실히 정리정돈이 구석구석까지 미친 일터를 유지하고 있는 덕분도 있어, 사소한 실수나 사고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지금은 더욱 효율이 좋은 정리정돈법을 모색하여, 축적된 노하우를 체계화시키는 데까지 이르러 있었다.


"읽고쓰기와 주판에 더해, 이런 생활의 기초를 가르치면 다른 집에서 일할 때도 도움되니까요"


"이제는 시즈코의 도서관(図書館)에서 책을 읽는 하녀도 있는 모양이더군"


당초에는 많지 않았던 장서(蔵書)도, 수집이 계속됨에 따라 방을 압박하게 되었다.

그래서 시즈코는 한 장의 미농지(美濃紙)를 둘로 접어 철하는(綴じる), 봉철(袋綴) 식의 소위 말하는 화장본(和装本, ※역주: 일본 재래식으로 제본한 책)으로 책을 관리하기로 했다.

크기도 형식도 제각기 다른 두루마리(巻物)나 종이 뭉치(紙束)를 정리해서 모아, 규격화된 미농지에 등사판 인쇄하여 실로 철했다. 원본은 창고에 보관하고, 복제본에 일련번호(連番)를 붙여 목제 책장에 꽂아두었다.

초기에는 단순히 서고(書庫)라고 불렸으나, 시즈코가 평소에 도서실(図書室)이라고 불렀기에, 언젠가부터 도서실이라는 호칭이 퍼지게 되었다.


"학습의 기회는 평등하게 주어져야 해요. 적성이 있는지는 본인에 달렸지만"


"배운 것은 헛되지 않지. 지식은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재산이 되니까 말이다"


시즈코의 말에 아시미츠는 미소를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종자(従者)들은 새해맞이 준비에 정신없이 바빴지만, 주인인 시즈코는 할 일이 없어 시간이 남아돌고 있었다. 오랜만에 책이라도 읽으려고 그녀는 도서관으로 발길을 옮겼다.


"시즈코 님"


도서실에는 선객(先客)이 있었다. 우에스기(上杉) 가문에서 바쳐진 인질로서 머물고(逗留) 있는 나가오 키헤이지(長尾喜平次), 훗날의 우에스기 카게카츠(上杉景勝)이다. 그는 손에 들고 있던 책을 덮더니, 나무 책상에서 일어나 인사를 했다.

시즈코도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숙여 답례를 한 후 말했다.


"최근에는 도서실의 터주(主)로 불리고 있는 모양인데, 그렇게 마음에 들었어?"


"예. 이곳에는 고금동서(古今東西)의 책들이 모여 있어, 모두 읽으려면 얼마나 걸릴지 상상도 되지 않습니다"


"돈을 뿌려서 여기저기서 긁어모았으니까. 돈이 꽤나 들었지만, 그에 걸맞는 수집은 되었다고 생각해"


"장서의 양만 따진다면 승원(僧院) 쪽이 많겠죠. 하지만, 양과 질이 전혀 다릅니다. 이만큼 넓은 범위에 걸친 영지(叡智)가 집약되어 있는 장소는 이 일본 전체를 찾아봐도 이곳 이외에는 없겠지요"


"그렇게 말해주면 모은 보람이 있네"


"게다가 일부를 제외하고 그 대부분을 무료로 개방하다니, 처음에는 제정신인가 의심했습니다. 하지만, 이용하면서 그 의의를 알게 되었습니다"


"흐ー음, 그 의의라고 하면?"


"모두가 이곳에서 지식을 얻으면, 오다 가문 전체의 교양이 높아집니다. 아랫사람이 공부하고 있는데 윗사람이 배우지 않아서는 본보기가 서지 않지요. 그렇게 되면 모두가 공부에 힘쓰게 되어, 오와리 전체에 지혜가 뿌리를 내리게 되겠지요"


"꽤나 멀리 내다볼 수 있게 된 모양이네"


"다만, 남만의 책은 난해하여, 일본의 언어로 고쳐 쓰여져 있음에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것도 필기체에서 인쇄용의 블록체로 고쳐서 그걸 다시 일본어로 번역한 거야. 원본은 지렁이가 꿈틀거리는 것 같아서 나도 못 읽을 정도지"


"저것도 읽기 쉽게 되어 있는 것입니까……"


키헤이지는 아연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남만인인 코타로(虎太郎)가 해독해주지 않으면 그런 독특한 글씨(くせ字)는 구별할 수 없어"


인질이라는 입장이지만, 시즈코의 시원스런 태도에 키헤이지도 긴장이 누그러졌는지, 꽤나 말투가 부드러워졌다.


"하지만, 우리들과는 전혀 다른 토양에서 자란 감성으로 쓰여진 책에는, 일본의 책에는 없는 재미(趣)를 느낍니다. 가능하면 원서를 읽어보고 싶습니다만, 아무래도 남만의 언어를 습득하는 것은……"


"으ー음, 남만어 사전도 만들고는 있지만 말야. 다만, 아무래도 사본으로 만들지 않은 원서는 폐가(閉架) 서고에 보관하고 있어서 열람하려면 주상의 허가가 필요하니까 대출은 무리려나?"


시즈코의 말대로, 그녀의 도서관의 폐가 서고에는 현대에서 말하는 희귀본(稀覯本)이 산더미처럼 잠자고 있었다.

예를 들면 코페르니쿠스(Nicolaus Copernicus)가 1543년에 출판한 '천체(天球)의 회전에 관하여'의 초판본(初版本).

니콜로 마키아벨리(Niccolò di Bernardo dei Machiavelli)의 '군주론(君主論)'이나 '전술론(戦術論).

데시데리우스 에라스무스(Desiderius Erasmus)의 '우신예찬(痴愚神礼賛)' 이나 '교정판(校訂版) 신약성서(新約聖書)'.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가 발표했다고 하는 '95개조 반박론(論題)' (※역주: 면죄부의 능력과 효용성에 관한 토론).

155년에 리용(Lyon)의 마세 보놈(Macé Bonhomme) 출판사에서 출판되었다고 하는 노스트라다무스(M. Michel Nostradamus)의 '노스트라다무스 예언집(Les Prophéties de M. Michel Nostradamus)'의 초판본 등이다.


개중에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i ser Piero da Vinci) 수고(手稿, ※역주: 손으로 쓴 원고)라는, 현대에서는 유실된 것까지 존재하고 있었다.

그 진위 여부(真贋)에 대해서는 확실하지 않지만, 2만 페이지나 될 듯한 방대한 자료가 만에 하나 진품일 경우, 유실되는 것은 너무나도 아깝다고 생각한 시즈코가 사들인 것이다.


그밖에도 카톨릭 교회가 위험시하고 있는 서적의 리스트인 '금서목록(禁書目録)'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책들도 있었다.

그러한 책들이 일본으로 반입된 데는, 위정자(為政者)나 종교가(宗教家)들의 타협이라는 배경이 있었다.

카톨릭 교회로서는 금서로 지정된 서적은 처분하고 싶다. 하지만, 방대한 자금을 들여 만들어진 책을 잿더미로 만드는 것은 아깝다.

가능하다면 들어간 비용은 회수하면서 현물은 어둠 속으로 묻어버리고 싶다는 것이 본심이었다.

거기서 선택된 것이 일본으로의 매각이었다. 비 기독교 국가이자, 왕성한 지식욕과 돈을 아끼지 않는 구매력에 상인이나 선교사들이 앞다투어 책을 가지고 왔다.


통상적으로는 언어를 이해할 수 없는 서양의 서적 같은 건 소수의 호사가(好事家)들이 사모으는 정도지만, 시즈코는 대대적으로 매입을 선언했다.

그 결과, 서양에서 반입되는 서적의 대부분이 시즈코가 있는 곳으로 모여들게 되었다.

카톨릭 교회로서도 위험한 지식은 처분되고, 대가로서 적지 않은 돈을 얻을 수 있다.

그리하여 쌍방의 이해가 일치한 결과, 시즈코는 서양의 책을 제한없이 구입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들을 코타로가 블록체로 옮겨쓴 것과 일본어로 번역한 것이 제판(ガリ切り)되어 등사판 인쇄로 돌려진다.

그렇게 하여 원본과 복제된 인쇄물에 관리번호를 붙이고, 원본과 원어판은 폐가 서고에 보관되고, 일본어 번역판에 관해서도 검열을 받아 문제없다고 판단된 것만이 개가(開架) 서고에 공개되고 있다.


그리고 개가 서고에 진열된 서적이라면, 시즈코 저택에서 일하는 사람은 자유롭게 열람이 가능했다.

시녀들은 '침초자(枕草子)'나 '겐지 이야기(源氏物語)' 등에 열중하고, 소성(小姓)들은 '도연초(徒然草)'를 읽고 내용에 관해 토론했다.

등사판 인쇄에 적합한 얇고 튼튼한 종이를 준비할 수 없는 것과, 진열 공간의 물리적 문제에 의해 여러 권이 있어야 할 책은 항상 누군가의 손에 있어, 순서를 기다리는 경우가 발생할 정도의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일본 3대 수필의 하나로도 꼽히는 '방장기(方丈記)'는, 다른 두 작품에 비하면 인기가 없었다.


"뭐, 남만의 언어에 대해서는 나중에 차차 익히면 좋을 거야. 번역할 수 있는 사람이 늘어나는 건 대환영이니까. 게다가 다른 나라의 사상도 절대 무시할 수 없거든. 환경이 다르니까 모든 것을 적용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일본에서도 통용되는 개념도 있고 말야"


그렇게 말하며 시즈코는 이치죠다니(一乗谷)에서 가지고 돌아온 서적이 놓여 있는 책장에서 한 권을 빼들었다.

이 도서실에는 명문화되어 있지 않은 암묵적인 룰이 딱 하나 있었다. 새롭게 도서실에 진열된 책을 최초로 읽는 것은 시즈코라는 룰.

그 때문에, 이치죠다니에서 가져와서 복제되기를 기다리는 원서가 진열된 책장은 아무도 손대지 못한 상태로, 시즈코만이 순서대로 빌려서 읽고 있는 상태였다.


"좋아, 오늘은 이것의 대출을 부탁해요"


"예, 알겠습니다"


시즈코는 책과 함께 나무패(木札)를 사서(司書)에게 건넸다. 시즈코의 도서실에서 사서를 맡고 있는 것은, 키묘마루(奇妙丸)의 교육 담당이기도 했던 할아범(爺)이었다.

키묘마루가 성인식을 치르고 노부나가 밑에서 활동하게 되자, 그는 감시역(お目付け役)으로서의 역할을 마치게 되었다.

시즈코는 교양도 있고 학문에 조예(造詣)도 깊은 인재를 묻히게 하는 것은 아깝다고 생각하여, 도서실의 사서로 일하지 않겠냐고 타진했다.

딱히 거절할 이유도 없었고 대우는 파격적으로 좋았기에, 할아범은 쾌히 받아들였다. 그 이래, 시즈코의 도서실에서의 대출을 전담하고 있었다.


도서실에서 책을 빌리는 방법은 현대의 그것과 큰 차이가 없다.

우선 사서에게 신청하여 개인용의 도서실 이용 카드에 해당하는 나무패를 받는다. 빌리고 싶은 책을 대출대까지 가져가서, 자신의 나무패와 함께 제출한다.

사서인 할아범이, 책의 관리번호를 나무패와 대장(台帳)에 기입하고, 대장에는 추가로 대출 날짜와 대출받은 사람을 기입한다. 나무패는 사서가 맡아서 도서실에서 관리하고, 책을 반납하면 나무패를 돌려준다.

책을 험하게 다루거나 훼손하거나 하면 피해에 해당하는 벌금이 부과된다.


"여기 있습니다"


"고마워요"


기입을 마친 후 할아범은 시즈코에게 책을 건네주고, 나무패를 벽에 설치된 대출패 보관함에 끼워넣었다.


"그럼, 나는 실례할게. 너무 몰두하지 말고 가끔은 바깥 공기를 쐬는 것도 중요해"


책을 받아든 시즈코는, 독서에 집중하는 키헤이지에게 말을 건 후 도서실을 나왔다. 책의 세계에 몰두하고 있는 그의 귀에 그녀의 충고가 들렸는지는 수수께끼였다.




책을 안고 자기 방으로 돌아가는 도중, 시즈코는 어디에 잠깐 들리기로 했다.


"안녕? 잘 되어 가요?"


"어이쿠, 주인님. 웬일로 직접 오셨습니까. 손으로 더듬어가며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코타로가 관리하는 와인 양조장(醸造蔵)이다. 양조장이라고는 해도 부지 대부분이 저장 공간으로 이용된다.

와인은 레드, 화이트, 로제의 세 종류가 있으며, 주요 제조 공정은 공통된다. 레드 와인은 껍질째로 담그고, 화이트 와인은 껍질이나 씨를 제거하고 발효시킨다.

로제 와인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제법이 존재하지만, 코타로는 세녜(Saignee) 방식이라고 불리는, 도중에 껍질을 제거하고 발효시키는 제법을 채용하고 있었다.


이번에 수확된 코우슈(甲州) 포도는 옅은 적자색(赤紫色)의 껍질을 가지고, 과실은 부드러운 인상의 연분홍색(薄桃色)을 띠었다. 신맛은 약하고 단맛도 그다지 강하지 않아, 와인 제조에 적합하다고 하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서양에서 와인 제조의 권익은 교회가 쥐고 있어, 그들은 한결같이 포도밭을 개간해서 양조 기술을 갈고닦았다.

개중에는 교회를 찾는 순례자들에게 와인을 대접하는 경우도 있어,이것이 선술집(居酒屋)의 원조라고도 전해진다. 또, 현대에서처럼 와인을 병입(瓶詰め)하여 코르크로 마개를 하게 된 것은 17세기 말의 일이다.

그런 배경도 있어, 교회의 비의(秘儀)에 속하는 와인의 제법은 비밀로 지켜져, 와인 그 자체라면 몰라도 포도의 씨앗이나 묘목에 이르면 즉시 반출이 어려워진다.

예수회에 요청을 하기는 했으나 아직까지 전망이 보이지 않아, 일본에서 와인 양조를 하려면 코우슈 포도를 쓸 수 밖에 없었다.


"통에 넣었다는 건 지금부터 숙성하는 거에요?"


"떡갈나무(樫)로 된 작은 통에서 발효를 했는데, 고향의 오크(Oak)와는 달라서 어떤 향이 붙을지 모르겠습니다. 맛을 보았을 때는 약간 싱거운 인상을 받았습니다"


이번에 코타로가 담근 것은 레드 와인과 로제 와인.

우선 수확된 포도 열매를 송이(房)에서 한 알씩 떼어낸다. 이 때 포도를 씻으면 표피에 붙어있는 효모균이 떨어지기 때문에 가능한 한 씻지 않도록 한다.

다음으로 포도 열매를 가볍게 압착해서 과즙을 짜내고, 준비한 작은 통에 통째로 옮겨서 발효 공정으로 들어간다.

그 후에는 하루에 몇 번 저어주어 곰팡이가 슬지 않게 하면서 몇 주일에 걸쳐 발효시킨다.


어느 정도 발효가 진행된 단계에서, 세녜(프랑스어로 피빼기를 의미한다)를 하여, 액체 속에 껍질이나 과육, 씨앗의 비율을 높여 응집감(凝集感)을 낸다.

이렇게 추출된 부분이 레드 와인이 되며, 남은 부분은 로제 와인으로서 다음 공정으로 진행된다.

여기까지를 1차 발효라고 하며, 1차 발효가 끝나면 과즙만을 추출하고, 남은 껍질이나 씨앗에 강한 압력을 가해 압착한다. 이것들의 혼합물을 다시 알코올 발효시킨다.


이게 끝나면, 저장용의 통으로 옮겨서 숙성시킨다. 여기까지의 공정을 2차 발효라고 한다.

이 후에는 숙성 기간이 지남에 따라 통의 하부에 앙금(澱)이라 불리는 다양한 침전물이 모이기 떄문에, 앙금빼기(澱引き)라는, 위쪽의 맑은 부분(上澄み)만을 다른 통으로 옮기는 작업을 몇 번 한다.

숙성을 마친 와인은 남은 침전물을 제거하기 위해 여과되고, 마지막으로 병입을 한다.


하나같이 단순한 작업이지만, 사용되는 포도의 품종이나 숙성시키는 통의 재질, 통의 가공처리나 숙성시키는 기간 등에 따라 와인의 맛은 변화한다.

같은 와인이라도 숙성 없이 마시는(若飲み) 것과, 장기간의 숙성을 거친 후 마시는 것은 다른 풍미를 보인다.


와인을 마시는 데 빼놓을 수 없는 아이템으로서 디캔터(decanter)를 들 수 있다. 가게 등에서 보틀(bottle)을 주문하면, 탁상용의 용기에 옮겨담아준다. 이 용기를 디캔터라고 부른다.

엄밀히 말하면 '카라페(carafe)'와 '디캔터'의 두 종류가 있으며, 각각 용도가 다르지만, 여기서는 디캔터만을 다루기로 한다.

와인을 디캔터에 옮겨담는 것을 디캔터쥬(décantage, ※역주: 디캔팅(decanting))라고 부르며, 주로 침전된 앙금을 제거하기 위해 사용된다.

병입 후에도 와인의 숙성은 계속되어, 그 과정에서 색소 성분이나 타닌(Tannin)이 결합하여 앙금이 된다. 이 앙금은 와인의 맛을 크게 해치기 때문에, 일부러 옮겨담는 것으로 앙금을 제거하는 것이다.

장기간 숙성된 빈티지(vintage) 와인은 디캔터로 옮기는 경우가 많다. 단, 와인의 종류에 따라서는 디캔터에 옮기면 매력을 잃는 경우도 있기에 주의가 필요하다.


"잘 되면 맛있는 와인이 될지도 모르겠네요. 다만, 피 같은 색상이 기피될지도 모르겠지만요"


"팔리지 않으면 제가 책임을 지고 소비할테고, 남만인들에게 줄 선물도 되겠지요"


"부디 과음에는 주의해 주세요?"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몸이 나빠지기 전에 취해 쓰러지니까요"


"그건 그거대로 감기 같은 거에 걸리니까 걱정인데요"


"혼자서 마시는 건 자제하고 있으니 안심하십시오"


근본적인 해결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으나, 이 이상 집요하게 말해봤자 역효과라고 생각하고 시즈코는 그를 신용하기로 했다.


"뭐, 적당히 마시세요. 나는 마실 수 없지만, 주상께서는 와인에 흥미를 가지신 모양이니까요"


"숙성이 끝난 단계에서 잘 만들어진 것을 골라 헌상하겠습니다"


"맡기겠어요"


그 말만 하고 시즈코는 발길을 돌려 와인 양조장을 나갔다.




미노와 오와리의 시장에는 소량이지만 노부나가의 신 화폐(新貨幣)가 유입되기 시작하고 있었다. 수요에 대해 공급이 따라가질 못해, 시장에서는 혼재되어 이용되고 있었다.

그래도 새로운 동화(銅貨)의 유입에 의해 약간씩이기는 해도 아전(鐚銭)이 회수되기 시작하여, 시장에서 화폐의 열화(撰銭)에 기인하는 소동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화폐의 명칭을 바꿀 생각이 없었던 노부나가였으나, 가장 친숙한 동화가 종래의 영락전(永楽銭)과 마찬가지로 원형에 구멍이 뚫려 있었기에, '앞을 볼 수 있다', '장사의 운(円, ※역주: '원(동그라미)'이라는 뜻인데, 운수(縁)라는 한자와 일본어 독음이 같음)이 좋아진다'라고 하여 언제부터인지 엔(円)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그러한 시장의 움직임과 별개로, 시즈코는 새 집 옆에 새로운 시설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사숙(私塾), 현대에서 말하는 사립학교(私立学校)에 해당한다.

지금까지는 도제(徒弟) 제도처럼 선배가 후배에게 가르쳐 전하는 것으로 충분했으나, 선배에 대해 가르침을 청하는 후배의 숫자가 너무 많아져, 선배들은 본래의 업무가 소홀해지고 수배에 대해서도 교육의 질(度合い)에 편차가 생긴다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었다.

그래서 급거 학교를 건축하여, 전문의 교육기관으로서 독립시키기로 했다.

학교라고는 해도 수용 인원은 백 명도 안 되고, 단층집(平屋) 구조인데다 방도 그다지 많지 않다.

단, 교실 이외에도 특수 교실로서 도서실, 기술실(技術室), 가정과실(家庭科室), 음악실(音楽室), 미술실(美術室), 무도장(武道場)에 운동장(運動場) 등, 현대의 중학교 정도의 설비는 갖춰져 있었다.


뭐든지 맨땅에 박치기(手探り)하는 식으로 시작한 학교이기에, 입학할 수 있는 사람은 시즈코의 저택에서 일하는 사람만으로 한정되었다.

교육 내용은 기본적인 문자의 읽고 쓰기에 더해, 주판(算盤)을 이용한 사칙연산(四則演算)까지를 필수로 쳤다.

이 밖에도 필수 기술로서 요리에 재봉, 청소에 세탁 같은 생활에 필요한 기능을 남녀를 구별하지 않고 가르쳤다.

선택과목으로서, 희망자에게는 농기구 등의 정비나 수리, 악기의 연주나 악보(譜面) 보는 법, 회화(絵画)나 서예(書道), 꽃꽂이(華道), 다도(茶道) 등의 예사(芸事) 등도 배울 수 있다.


(무예에서 나기나타(薙刀)의 지도(指南)가 가능한 사람은 쇼우 짱이 소개할 사람이 있는 모양인데…… 자, 검술 사범(指南役)은 누구로 할까. 미야모토 무사시(宮本武蔵)는 아직 멀었고, 츠카하라 보쿠덴(塚原卜伝)은 벌써 죽었고, 카미이즈미 노부츠나(上泉信綱, ※역주: 코우이즈미 노부츠나라고도 함)은 무리겠지. 그렇게 되면, 역시 카미이즈미 노부츠나에게서 면장免状)을 받은 야규 무네토시(柳生宗厳) 밖에 없나. 지금은 마츠나가 히사히데(松永久秀)를 섬기고 있을테니 어려우려나…… 언제 한 번 아시미츠 아저씨에게 상담해 볼까)


"오, 시즈코. 여기 있었냐…… 아, 그대로 있어도 괜찮다"


이것저것 생각하고 있을 때 등 뒤에서 누가 말을 걸어서 돌아보았다. 노부타다(信忠)가 말 위에서 손을 흔들며 이쪽으로 다가왔다. 말에서 내리려고 하는 시즈코를, 노부타다는 손으로 제지했다.


"이쪽에 얼굴을 비추다니 웬일이야?"


"가끔은 시즈코의 얼굴을 봐야지"


그런 말을 하면서 노부타다는 시즈코에게 힐끗힐끗 시선을 던졌다.

그 모습을 볼 때 뭔가 좋은 일이 있었지만 자기 입으로 말하기는 꺼려지니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봐달라는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다.

일부러 무시할 수도 있었지만, 그랬다가 토라져버려도 귀찮다고 생각하여 양보하기로 했다.


"꽤나 기분이 좋아 보이는데, 뭐 좋은 일이라도 있었어?"


"훗훗훗, 알아보겠냐? 꼭 알고 싶다면 알려주지 못할 것도 없지"


(귀찮네)


노부타다의 텐션이 올라갈수록 시즈코의 텐션은 끝없이 하강했다. 하지만, 기분이 한껏 좋아져 있는(有頂天) 노부타다에게는 시즈코의 태도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듣고 놀라거라, 시즈코! 나는 연초부터 아버님께 토우고쿠(東国) 정벌의 총대장으로 임명될 것이 결정되었다!"


"헤ー, 잘됐네"


"야! 좀 더 기뻐해줘도 되잖아!"


"응, 잘됐네. 착하다 착해"


"그만두지 못하겠냐! 난 이제 곧 20살이란 말이다! 머리를 쓰다듬는다고 기뻐할 나이가 아냐!"


머리를 쓰다듬자 노부타다가 창피한 나머지 외쳤다. 그 목소리에 놀란 말이 움직이려 했기에, 고삐를 당겨 제동을 걸었다.

그 동안 움직이지 못하는 노부타다의 머리를 시즈코는 실컷 쓰다듬었다.


"그래서, 토우고쿠 정벌은 언제부터 시작하는데?"


노부타다의 머리를 쓰다듬는 걸 멈추더니 시즈코는 토우고쿠 정벌로 이야기를 돌렸다.

토우고쿠 정벌이라고는 하나, 상대는 타케다라고 생각해도 좋다. 우에스기는 이미 신하가 되었지만, 그게 영향을 끼쳤는지 타케다는 점점 더 태도를 경직시켜 오다 측과의 교섭을 계속 거부하고 있다.

노부나가로서도 타케다의 태도는 이미 계산에 넣고 있어, 반복되는 교섭은 '대화는 충분히 했다'는 실적을 남기기 위해서였다.


"나로서는 새해가 되자마자라도 군을 출동시키고 싶지만, 그러기에는 사전 정보가 너무 부족하다. 움직이지 않고 천천히 정보를 모아야해. 특히 적 측의 성의 배치나 보급로, 수원지(水源地)나 하천의 위치 등도 알 수 있으면 더욱 좋겠지. 그런 정보들을 입수한 후에 필살의 작전을 짜서 단번에 박살내는 게 이상적이다. 물론, 타케다가 움직이지 않는 게 전제이지만 말야"


"일단은 쳐들어가고 현지에서 작전을 생각한다던가 하는 소릴 했으면 따귀를 때려서라도 말릴 생각이었는데, 그럴 필요는 없는 것 같네"


"아무래도 예전의 단기 돌격(単騎突撃)같은 짓은 안 한다. 필승을 기하지 않으면 안 되니까, 일격에 처치해야 해"


"도쿠가와, 우에스기와의 연대도 생각해야지"


"그래. 우에스기는 실제로 움직이지 않아도 돼. 쳐들어갈 기색을 보이기만 해도 타케다로서는 병력을 쪼개야 하니까. 그렇다고는 해도, 불안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건?"


"호죠(北条)다. 지금도 여전히 놈의 기치(旗幟)는 정해지지 않았어. 하지만, 적이 된다면 타케다과 함께 박살낼 뿐이다"


"카츠요리의 부인은 호죠 사람이니까. 그걸 고려해도 호죠는 움직일 수 없지 않을까?"


"그렇다면 그걸로 상관없다. 타케다가 멸망하면 호죠가 뭘 어떻게 발버둥을 치더라도 이미 상황은 뒤집을 수 없지. 호죠만 쳐부수면 남는 건 오합지졸들이다. 그 후에는 천천히 압력을 가하면 되지.


이미 머릿속에는 큰 틀의 계획이 보이고 있는지, 노부타다의 태도에는 자신이 넘치고 있었다. 실제로 노부타다의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피아의 전력을 생각하면, 신중하게 계획을 진행하여 확실히 타케다만 멸망시킨다면 그 후에는 어떻게든 된다.

오다에게 투항하면 좋고, 아니면 적으로서 쳐부술 뿐. 노부나가의 수법을 흉내내고 있지만, 정석(定石)에 따른 것이며 거기에 크게 잘못된 점은 없다.

하지만, 시즈코에게는 기묘한 불안이 응어리처럼 남아 있었다.


(……그만두자. 근거없는 불안으로 손을 멈추면 기회를 잃으니까)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을때야말로 위태롭다. 호사다마(好事魔多し)라는 옛말이 있듯, 일이 지나치게 생각대로 잘 진행되는 것에 시즈코는 불안을 느끼고 있었다.

의식적으로 머릿속에서 불안을 털어낸 후, 시즈코는 사람좋은 미소를 떠올렸다.


"잘만 하면 토우고쿠는 몇 년 안에 평정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


"그랬으면 좋겠군"


시즈코의 말에 노부타다는 태평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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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

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겐키(元亀) 4년 무로마치 막부(室町幕府)의 종언(終焉)


111 1573년 10월 중순



아자이(浅井)-아사쿠라(朝倉) 가문의 멸망으로부터 1개월이 경과했다. 그동안 노부나가는 눈에 띄는 행동을 하지 않았다.

히데요시(秀吉)와 미츠히데(光秀)는 대립을 표면화시키면서도, 각자 노부나가로부터 맡겨진 영지의 통치에 부심(腐心)하고 있었다.

당초의 쟁점이었던 쿠로쿠와슈(黒鍬衆)는, 도로정비로부터 돌아온 인원을 포함해 균등하게 분배하여 각자에게 공평하게 할당하게 되었다.

하지만, 히데요시에게는 첫 성이다. 자신의 위세를 보이기 위해, 또 부하들의 구심력을 높이기 위해서도, 조속히, 그리고 사카모토 성(坂本城)에 지지 않는 성을 짓고 싶다는 기합이 들어가 있었다.


"우선적으로 자재를 돌려줬으면 한다고 해도…… 내 재량 밖이거든"


역사적 사실에서는 향년 62세에 사망한 히데요시의, 30대도 후반에 접어들어 처음으로 짓는 성이 되는 나가하마 성(長浜城). 편의를 봐주고 싶지만, 어느 한 쪽의 편을 들 수도 없다.

자칫 편의를 봐 주었다가는 잘못된 정치적 메시지로서 받아들여지게 된다. 이번만큼은 양쪽이 사용하는 건축자재의 가격을 아슬아슬하게까지 낮추는 것으로 납득하게 하기로 했다.


"자, 하나 처리됐다. 다음은 수확에 관한 보고네"


"옛. 쌀에 관해서는 작년과 비슷한 수확이 될 거라는 예상입니다. 그 외의 곡물이나 야채에 대해서도 예년과 비슷한 수준이며, 병충해의 피해도 최소화되었습니다. 해산물에 관해서는 양식(養殖) 부문이 호조이며, 올해 처음으로 시도하는 연어(鮭)는 벌써부터 풍어(豊漁)라는 보고가 올라와 있습니다"


"그런가. 연어의 치어(稚魚)를 잔뜩 방류했으니 그 결과가 나오고 있는거네. 하지만 연어의 회귀율(回帰率, 방류한 연어가 돌아오는 비율)은 낮으니까, 하다못해 1퍼센트 정도만 돌아와 주면 좋겠는데 말야"


연어는 한 번의 산란에서 3000개 정도의 알을 낳는다. 모든 과정을 자연에 맡긴 경우, 무사히 성어(成魚)가 되어 강으로 돌아오는 것은 몇 마리 정도가 되어버린다.

자연 산란의 경우에는, 우선 부화할 수 있는 확률부터 4할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무사히 치어가 되었다고 해도, 성장 과정의 도태에 의해 숫자가 줄어들어, 최종적으로 번식할 있게 되는 개체는 엄청나게 적다.

하지만, 인공부화를 하는 경우에는 부화율을 95퍼센트 가까이까지 끌어올릴 수 있고, 천적이 없는 환경에서 성장할 수 있기 때문에 회귀율을 크게 끌어올리는 것이 가능한 것이다.

자연 산란의 연어는 회귀율이 0.5퍼센트 정도인 데 대해, 인공부화를 한 경우의 회귀율은 조건에 따라 4에서 6퍼센트까지 된다.


"일 파ー센토, 입니까?"


"백 분의 일이라는 의미야. 자연이라는 건 약육상식이거든. 더 많이 돌아와주게 하기 위해서도, 내년도의 방류 숫자는 더 늘릴거야. 거슬러 올라온(遡上) 연어는 포획해서 계속 인공수정을 시켜줘"


"예, 옛"


백분율을 나타내는 퍼센트라는 낯선 단어에 이상하다는 듯한 표정을 떠올렸던 쇼우(蕭)였으나, 시즈코의 지시를 받고 생각을 새로 정리했다.

시즈코는 만족하지 않는 모습이었으나, 흥분한 어조로 어획량을 이야기하는 보고를 받은 쇼우는 시즈코가 내다보는 미래의 아득함에 전율했다.

올해의 연어의 소상량(遡上量)은 문자 그대로 단위가 다른데, 시즈코에게는 그조차도 통과점에 불과한 것이다.

시즈코가 만족할 만한 결과를 떠올리려고 한 쇼우는, 강에서 연어가 넘치려 하는 소름끼치는 광경이 뇌리를 스치며 몸을 떨었다.


"연어의 풍어에 대해 듣고, 귀가 밝은 상인들이 모여있는 모양이네. 고노에(近衛) 님의 칸파쿠(関白) 취임도 있어서 상당수를 유통시키지 않고 확보해 두어야 하니까, 어느 정도를 시장에 풀 지가 고민거리네"


"연어는 그렇다치고, 예넌과 마찬가지로 농산물들이 속속 모여들고 있습니다. 영지로부터의 세수(税収)도 있습니다만, 그 이상으로 백성들로부터 감사의 표시로서 헌상되고 있습니다"


"으ー음…… 오곡풍양(五穀豊穣)의 답례인 것 같은데, 우리 집은 신사(神社)가 아니거든. 모두의 호의니까 함부로 할 수도 없네"


"그럼, 올해도 수확제(収穫祭)에서 뿌리는 것으로 방출하죠"


그밖에도 세세한 보고를 한 후, 쇼우는 인사를 하고 나갔다. 올해도 예상 이상의 수확을 거두어, 백성들이 굶을 상황은 회피할 수 있었다.

예상치 못한 사태에 대비하여, 곳곳에 비축미(備蓄米)를 집적해놓고 있기에, 유통이 차단되는 것 같은 대재앙에도 어느 정도 대응할 수 있을거라 예상되었다.


"모처럼의 수확기니까, 이것저것 사들여볼까. 시험해보고 싶은 요리도 있고"


가을이라고 하면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가을이라는 말이 있듯이, 식재료가 풍부한 계절이다. 예전이라면 혹독한 겨울을 대비하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는 것(質素倹約)을 강요받아 병사들의 사기도 떨어지기 일쑤였다.

일찍부터 병농분리(兵農分離)를 추진하고, 직업군인을 다수 보유하는 오다 군에 대한 영향은 경미하지만, 많은 나라에게 겨울 준비는 사활문제가 된다.

오와리(尾張)에서도 소규모 농가 등은 주머니 사정이 빡빡해지기에, 조금이라도 이익을 환원하기 위해 시즈코는 가을에 다양한 요리를 시험해보고 있었다.


"아야(彩) 짱ー, 돈 줘ー"


"……아, 벌써 그런 시기군요. 알겠습니다"


시즈코는 금고지기를 자인(自認)하는 아야에게 돈을 졸랐다. 벽에 걸린 달력을 확인하면서 아야가 대답하고, 금전이나 물품의 출납을 관리하는 출납부를 펼쳤다.

예산의 계상(計上)에서 출금까지를 아야에게 부탁한 후, 시즈코는 호위대(馬廻衆)를 불렀다.

사이조(才蔵)는 항상 곁에 있으니 문제없었지만, 케이지(慶次)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기에 나가요시(長可)에게 물었더니 '아침 일찍부터 나갔다'라고 듣고 포기하기로 했다.


"자, 그럼 새로운 식재료를 찾으러 출발이다"


의기양양하게 호령을 내리며 시즈코는 사이조와 병사들을 대동하고 항구마을로 출발했다.




시즈코가 가고 있는 항구마을에는, 혼간지(本願寺)의 인간이 들어와 있었다. 그의 이름은 시모츠마 라이렌(下間頼廉). 뛰어난 무장인 동시에 유명한(名うて) 정치가이기도 했다.

혼간지의 중요 인물이기도 한 그가 직접 잠입해 있는데는 이유가 있었다. 이전부터 시즈코의 동향을 살피기 위해 간자를 풀어 정보를 모으고 있었으나, 도무지 성과가 나오질 않았다.

간자의 잠입 자체는 성공하지만,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알맹이가 빠져 있었다(精彩を欠く). 몇 번이나 인원을 교체했지만 상황이 개선되지 않았기에, 참다 못해 직접 나선 것이다.


(이 마을(街)은 너무나도 위험하다)


라이렌은 시즈코가 관리하는 마을을 돌아보며 간자들이 정보를 가지고 돌아가지 못한 이유를 알게 되었다.


(이 마을의 생활은 독이다. 청결하고 쾌적하며 자유롭다. 이 상황에 익숙해진 자가 위기감을 계속 유지하는 것 따위 불가능하다. 하물며 편한 것을 배운 사람이, 그 생활을 버릴 수 있을 리도 없다)


간자로서 마을에 살며, 자리를 잡고 활동하면 할수록 쾌적한 환경이라는 독이 정신을 갉아먹는다. 사람, 물건, 돈이 모여들어 활기가 넘쳐흐르는 항구마을에서는 일자리도 많아서 먹고 사는 데 곤란할 일은 없다.

손톱에 불을 붙이는 것 같은 일향종(一向宗)의 생활로 돌아갈 수 있을 리가 없다. 가능한 한 체류를 연장하여 쾌적한 생활을 유지하려고 한다. 그 결과, 라이렌에게는 제대로 된 정보가 모여들지 않는다.

담당에서 뺀 간자들이 그 후 연락이 끊긴 이유도 이걸로 확실해졌다. 라이렌조차 겨우 며칠의 체류로 결의가 둔해질 정도였으나, 다른 사람이라면 미루어 짐작할 수 있으리라.

고난에 견딜 수는 있어도, 쾌락을 끊는 것은 어렵다. 빠르게 조사를 마치고 귀국해야 한다. 그렇게 생각한 라이렌의 눈에 묘한 인파가 들어왔다.


"이거 보십쇼! 오늘 아침에 막 올라온 대물입니다. 본 적도 없는 생선이지유?"


"아침에 딴 채소가 들어왔습니다ー!"


"산의 먹거리(山の幸)라면 우리 가게가 제일이에요!"


엄청나게 북적이는 인파에 다가감에 따라, 그들의 외침 소리가 라이렌의 귀에도 들려왔다. 누군가에게 물건을 팔려고 하고 있는건 이해할 수 있었지만, 그렇다기에는 파는 사람의 숫자가 너무 많다.


"실례, 이건 대체 무슨 행사(催し)입니까?"


이미 장사가 끝났는지, 떨어진 위치에서 짐을 정리하고 있던 상인에게 라이렌은 말을 걸었다.

승려의 모습을 한 라이렌이 말을 걸자 대단히 놀란 상인이었으나, 검소한 옷차림에 호감을 느꼈는지 쾌히 알려주었다.


"이 마을에서는 매년 연례 행사요. 이 시기가 되면 시즈코 님이 연일 큰 돈을 가지고 오셔서, 이런저런 것들을 대량으로 사가시지"


"호오…… 꽤나 이름있는 부호(御大尽)이겠군요"


"뭐, 오가는 금액의 자릿수가 다르니까 부호이신 건 맞겠군. 하지만, 그 뿐만이 아니외다. 여기서 거래된 것들은, 조금 지나면 재미있는 것으로 변하여 돌아온다고"


"어떻게 말입니까?"


"스님, 이 마을은 처음이신가? 그럼, 여기서 조금 떨어진 곳에 큰 마을이 있는 건 알고 있소?"


상인의 물음에 라이렌은 고개를 끄덕였다. 항구 마을에 오기 전에 지나친, 중계지(中継地)가 되는 큰 마을일 거라고 추측했다.


"그럼 얘기가 빠르지. 그곳은 시즈코 님의 직할(お膝元)인데, 여기서 산 것을 사용해서 이런저런 요리를 시험하시지. 그 요리를 만드는 법이, 각 마을의 요리점들에 공표된다오. 절임(漬物) 같은 보존식(保存食)에서, 큰 가게의 주인이나 드실 듯한 고급요리까지 폭넓게 알려주시니 고마운 일이야. 말하자면 사가신 물건들은 훗날 날개돋친 듯 팔릴 게 틀림없다는 거지"


"과연…… 요리?"


"그렇지. 이 항구마을에서도, 여기서 동쪽으로 조금만 가면 요리점 거리가 있으니 가보슈. 직할 마을 만큼은 아니지만 맛있는 요리가 갖춰져 있지. 바다의 재료에 한정한다면 여기가 최고지. 어이쿠, 슬슬 돌아가서 사입(仕入)을 하지 않으면 장사할 기회를 놓치지. 스님도 조심해 가슈"


인파가 흩어지기 시작할 시점을 가늠한 상인은, 자기 할 말만 하고 라이렌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떠나갔다.

바쁘게 대화가 끊겼지만, 그래도 많은 수확이 있었다. 요리점에 대해서는 일단 나중으로 미루고, 시즈코의 행동을 관찰하기 위해 상황을 살폈다.

눈에 띄는 인파가 적어지고, 큰 거래를 성공시켰는지 아주 기분이 좋은 상인들이 많이 보였다.


(이만한 숫자의 사람들로부터 정기적으로 사들이다니…… 꽤나 사정(羽振り)이 좋은 모양이군)


인파는 사라졌지만, 시즈코들이 떠날 기색은 없었다. 매물(出物)이나 대물(大物)을 느긋하게 기다릴 생각인 듯한 그 모습에서 윤택한 자금이 있음을 엿볼 수 있었다.


(오다의 비정상적인 융성(隆盛)도, 놈의 존재가 있기 때문인가. 몇 번이고 크게 뿌려도 마르지 않는 재산을 어떻게 모은다는 것인가)


라이렌은 시즈코의 끝을 알 수 없는 재력의 원천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별 뜻 없이 본 가게의 장식용 접시(絵皿), 그 멋진 꽃무늬(大輪)를 본 그는 천계(天啓)를 깨달았다.


(그런가! 놈은 자신의 영유지(所領) 뿐만이 아니라, 오와리(尾張) 일대 전체를 번영시킨 것이다!)


그것을 깨닫자, 지금까지는 각각의 점으로박에 보이지 않았던 것이 선을 이루며 형상(像)이 되어 떠올랐다.

전국시대에서의 부(富)란, 풍요로운 타인의 땅을 빼앗는 것에 있다. 지금 있는 것을 더욱 풍요롭게 하기에는 시간과 돈이 지나치게 많이 든다.

그 점에서, 타인의 부를 빼앗는 방법은, 싸움이라는 도박을 통해, 이기면 즉시 막대한 부를 얻을 수 있었다.

현재 오와리의 가치는 기라성(綺羅星)처럼 높아져, 내버려둬도 사람이나 물건, 돈이 모여든다.

오와리 한 나라만으로도 무서울 정도의 물량을 계속 생산할 수 있는 것이다. 오다의 경제를 봉쇄하는 것 따위 잠꼬대에 지나지 않는다고 라이렌은 깨달았다.


(점이라면 포위하여 가두기라도 하겠지. 무수한 점을 이은 면을 상대로, 약간의 점을 없애봤자 다른 점들이 그것을 보완해버린다. 주요 도로를 봉쇄하려 해도, 오다 령을 통하는 모든 길을 봉쇄한다는 건 현실적이지 않다)


자신들이 현재 상황을 얼마나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곡해하여 인색하고 있었는지 뼈저리게 알게 되었다. 이제와서는 오다를 포위하는 것 따위 불가능했다.

반 오다 세력이 일치단결하여 죽을 각오로 저항한다면 가능성도 있겠지만, 통일성 없는 잡다한 집단(寄り合い所帯)에 단결 따윈 바랄 수도 없다.


(너무 늦었다(遅きに失した). 이제와서 시즈코를 조사해도 의미가 없다. 이미 놈이 없어도 번영하는 구조가 생겨났다. 그래도 시즈코를 처리하면 약간의 유예는 얻을 수 있겠지만, 그러기 위해 필요해지는 희생이 너무 크다)


모든 것이 너무 늦었다. 최초의 오다 포위 때, 얼마만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다방면에서 동시에 공격을 했다면, 이라고 뒤늦게 후회했다.


(우에스기(上杉)가 오다에게 굴복한 것도, 이미 되돌릴 수 없다는 걸 깨닫고 차선책을 모색한 결과, 인가)


계속 쓰고 있던 깊은 삿갓(深編笠)으로 얼굴을 가리면서 라이렌은 자신들의 미래를 걱정하며 떠나갔다.




라이렌이 낙담해서 떠나갔을 때, 시즈코는 사들인 것들의 목록과 예산을 비교하며 주위에 말했다.


"쫓아가지 않아도 돼요"


시즈코를 호위하는 사이조는 물론이고, 병사들도 수상한 승려 차림의 사내를 눈치채고 있었다. 라이렌이라고 꿰뚫어본 것은 아니고, 혼간지의 간자일 거라 짐작하고 있었다.

그런 그들에게, 시즈코는 추적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주위에서 괴이쩍게 여기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자신의 위기관리라는 한 가지에 있어 시즈코의 신용은 낮다.


"아니, 저렇게 노골적이면 아무리 나라도 눈치채요. 저 모습을 보니, 성과가 나지 않아서 현장을 보러 온 윗사람(上役) 쯤 될테고, 직접 보고 들은 내용을 가지고 돌아가주는 쪽이 내부의 사기가 떨어질지도 모르니까요"


"알겠습니다. 하지만, 부디 몸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알겠어요. 자, 계속 물건을 사러 가죠"


사이조의 충고를 솔직하게 받아들인 후, 시즈코는 항구마을에서의 쇼핑을 계속했다.

규모가 큰 거래 이외에는 현물과 현금으로 거래하기 떄문에, 어느 정도 짐이 쌓이면 짐꾼을 고용하여 순차적으로 시즈코 저택으로 운반하게 했다.

이게 며칠이나 계속되니, 상인들이 장사할 기회라고 기합을 넣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시즈코는 타이밍을 살펴서 귀가했다.


시즈코 저택에서는, 미츠오(みつお)와 고로(五郎)가 시즈코들에 앞서 운반되어 온 식재료를 앞두고 신음하고 있었다.

주방에서는 시로(四郎)가 밑준비 등의 잡일을 하고 있었으나, 시즈코는 면식이 없었기에 새로운 하인(下男)이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이만큼 신선한 식재료를 모을 수 있다는 건 굉장하네…… 재력만으로는 무리니까. 하지만, 이만큼 있으면 뭣부터 쓸지 고민되네"


"그렇지. 하지만, 그걸 어떻게 요리하는지가 실력이지"


"아뇨…… 시식하시는 분(味見役)들이…… 그……. 너무 도전적인 요리는 피하는 게……"


미츠오의 말에 나란히 앉아있는 시식자들을 훔쳐보았다.

옆의 손님방(座敷)에는 노부나가를 필두로, 노부타다(信忠) 등 오다 일족, 시바타 카츠이에(柴田勝家)나 타케나카 한베에(竹中半兵衛) 등 마침 짬이 난(都合のついた) 오다 가문 가신들에 더해, 조금 떨어진 가까운 쪽(手前側)의 자리에는 카네츠구(兼続)나 카게카츠(景勝) 등 우에스기 가문 사람들까지 있었다.

시식회(試食会) 참가를 절실히 희망(切望)하고 있던 이에야스(家康)는 안타깝게도 시간이 나지 않았지만, 다음에도 꼭 불러달라고 간절히 부탁했다.

게다가 한식구(身内枠)로서, 쿄(京)로 갔어야 할 사키히사(前久)가 앉아 있었는데, 오직 시식회에 참가하기 위해 잠시 돌아왔던 것이다. 케이시(家司)인 신도 나가하루(進藤長治)도 빈틈없이 옆에 앉아 있었다.

마찬가지로 한식구인 나가요시와 케이지 등, 시즈코의 가신들도 이 기회를 놓칠 리가 없었다.


"명백하게 실패가 용납되지 않는 면면이구만"


"식탐(食い意地)이 강한 분들이네…… 어쩔 수 없지. 사력을 짜내 볼까!"


결사의 각오로 기합을 넣는 그들에게, 분위기를 읽지 못하는 시즈코가 식재료를 운반해 왔다.


"상황은 어때요?"


또 새로운 식재료가 추가되었다고 미츠오들이 질린 표정을 짓는 것을 신경쓰지 않고, 시즈코는 톱밥이 가득 찬 상자에서 내용물을 꺼냈다.


"완전히 얼어붙어 있어서, 빙실(氷室)에서 꺼낸 지 꽤 지났는데도 반도 해동되지 않았네요"


시즈코가 운반해온 것, 그것은 회귀한 연어를 이케지메(活け締め)하여 내장을 뺀 후에 냉동해둔 생연어였다.

기생충의 감염 리스크를 피하기 위해 장기간 냉동해두었고, 그중 몇 개를 골라 해동하고 있었다.

현대에서는 당연하게 식탁에 올라오는 생연어이지만, 전국시대에는 한정된 사람밖에 먹을 수 없는 고급품이다.

냉동기술이나 수송기술이 발달하지 않았기에, 아무리 돈을 내더라도 제철(旬)인 시기와 입지(立地)를 겸비한 영지에서밖에 구할 수 없는 고급품(逸品)이었다.

고로가 머리를 잡고 들어올려 해동 상태를 확인하고 있자 시식자들의 자리에서 환성이 터져나왔다.

제철의 회귀 연어인데다 이만큼 대형의 것은 영주(国人)라 하더라도 쉽게 볼 수 없다.


"……아시미츠(足満) 아저씨가 했던 그거, 내볼까?"


"아, 차가움과 식감이 재미있는 요리였지. 반응이 좋을지도 모르겠군"


"불평을 피하기 위해서도 단골(定番) 요리도 내죠! 연어의 뫼니에르에 지게미 장국(粕汁)…… 아! '하라코(はらこ) 밥' 같은 건 어떨까요?"


"연어알의 간장절임이 있었던가? 좋아, 연어 잔치(尽くし)로 해볼까"


연어를 중심으로 야채나 조미료가 든 상자를 뒤집으면서 미츠오들이 의견을 교환했다. 시즈코의 존재를 까맣게 잊어버린 듯 하여, 그녀는 쓴웃음을 지으면서도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어떤 요리가 나올까"


그 자리에 있는 전원의 심정을 대변하는 듯, 시즈코는 턱을 괴면서 중얼거렸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연어를 넣어 지은 밥인 '하라코 밥', 연어의 뫼니에르, 연어의 루이페(녹은 음식이라는 의미의 아이누어, 반해동 상태의 생선회), 연어 껍질 구이와 연어의 지게미 장국입니다"


시식자들 앞에 놓인 요리는 연어 잔치의 이름에 걸맞는 메뉴였다.




대호평 속에 끝난 시식회로부터 다시 1개월이 경과했다. 본격적으로 겨울이 시작된다고 생각될 무렵 아시미츠가 에치고(越後)에서 귀환했다. 예상 밖의 인물을 데리고.


"응, 사나다(真田) 가문 사람들은 예상했었는데, 어째서 우에스기 가문까지?"


토우고쿠(東国)의 사정을 알고 있었기에, 사나다 마사유키(真田昌幸)가 우에스기를 의지하여 출분(出奔)할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은 했찌만, 우에스기 켄신(上杉謙信)까지 동행할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저번에 대면했을 때와는 달리, 이번에는 약간 적개심이 느껴졌다. 사정이 이해되지 않았기에, 시즈코는 아시미츠만을 불러세워 사정을 물었다.


"……고코타이(五虎退)의 양도는 상관없지만, 금주령(禁酒令)에 가까운 주량 제한 따윈 받아들일 수 없다는 모양이다. 그래서 주량 승부(呑み比べ)를 해서 이기면 내가 시즈코에게 이야기해주겠다고 말했지"


고코타이란 켄신이 에이로쿠(永禄) 2년(※역주: 1559년)에 상락(上洛)했을 때, 오오기마치(正親町) 천황(天皇)으로부터 하사받은, 아와타구치 요시미츠(粟田口吉光)가 만든 단도(短刀)이다. 견명사(遣明使, ※역주: 무로마치(室町) 막부(幕府)에서 명나라에 파견한 사절)가 이것을 사용해 다섯 마리의 호랑이를 쫓았다는 일화가 있어, 그것이 이름의 유래라고 전해진다.


"금주에 반발할 거라고는 예상했지만, 주량 승부로 결판을 낸다는 건 좀 아니라고 생각해요. 주량을 제어하는 게 건강에 도움된다고 전해줬어요?"


"술의 양을 줄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더 이상 들은 척도 않더군. 고집이 센 녀석이다"


그렇게 말하며 아시미츠는 시즈코에서 시선을 피했다. 감이 좋은 시즈코는, 그 모습에서 아시미츠가 굳이 그 이상의 설득을 하려고 하지 않았던 것을 헤아렸다.


우에스기 켄신이라고 하면, 3합(合) 용량의 '마상배(馬上盃)'를 애용할 정도의 대(大) 주호(酒豪)이다. 그 애주 때문에 고혈압성 뇌출혈을 일으켜 49세라는 젊은 나이에 이 세상을 떠났다.

일설에 의하면 켄신은 40살 때도 가벼운 뇌출혈을 일으켜 왼쪽 다리에 후유증이 남아 있었다고도 한다. 그걸 알고 있던 시즈코는, 켄신의 다리를 주시하고 있었다.


약간 끄는 듯한 버릇이 있었으며, 다리도 붓기가 있었다. 때때로 여기저기를 긁는 것을 보니, 전신에 가려움이 나타다고 있는 것이리라.

현대에서 작성했던 흑역사(黒歴史) 노트에는, 켄신을 아군으로 끌어들였을 때의 알코올 의존증 대책을 이것저것 조사했었기에, 어느 정도의 대책은 취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뇌출혈의 직접적 원인은 고혈압이니, 시즈코는 우선 고혈압 대책에 착수하려고 생각했다. 고혈압의 요인은 운동부족에 알코올이나 염분의 과잉 섭취를 생각할 수 있다.

전국시대의 사람이 운동부족이 될 거라고는 생각할 수 없기에, 문제는 식생활과 알코올이라고 시즈코는 판단했다.

얄궂게도 켄신의 아시미츠에 대한 태도가, 그의 알코올 의존증을 부각시키고 있었다.


(알코올 의존증에 걸린 사람은 음주의 폐해를 모른 척 하지. 공격적이 되는 것도 의존증의 심리에 맞아떨어지고, 이건 슬슬 강제력을 동반한 치료에 착수하지 않으면 안되려나)


역사적 사실대로 켄신이 죽으면, 후계(家督) 싸움에서 '오타테(御館)의 난(乱)'으로 발전할 것은 명백하다.

그걸 이유로 우에스기 가문에 개입하는 것도 생각할 수 있지만, 토우고쿠의 견제를 위해 켄신은 건재해주지 않으면 곤란하다.

켄신이 건강하게 오래 사는 동안, 그 동안에 타케다(武田)나 호죠(北条), 모가미(最上) 등의 츄우부(中部), 칸토(関東), 토호쿠(東北)에 걸친 영주들을 장악한다.

여기까지 진행되면, 우에스기 가문의 후계자 싸움이 어떻게 결판이 나던 대처할 수 있다.


"……어쩔 수 없네. 자신이 제안한 승부에서 지면 변명도 못 하겠지. 이번의 폭음(暴飲)은 필요경비라고 납득하죠"


"놈은 서약서(誓紙)를 준비해 두었다. 신앙심에 걸고라도 약속을 깨지는 않겠지. 뭐, 상대는 미츠오다. 그 녀석이 출입금지를 당한 무한리필(飲み放題) 이자카야(居酒屋)는 셀 수도 없지"


"객기를 부릴 것 같으면 말려줘요. 이것 때문에 간경변(肝硬変)이나 뇌경색(脳梗塞)이 오면 의미가 없으니까"


"잘 알고 있다"


시즈코는 아시미츠에게 수상쩍은 시선을 보냈다. 약간 수상한 기색(挙動不審)을 보인 아시미츠였으나, 허리에 차고 있던 칼자루에 손을 댔다. 여차하면 힘으로라도 막겠다는 뜻이리라.

약간 어이가 없어졌으나, 어쩔 수 없다고 납득하고 시즈코는 안쪽에 대고 말했다.


"쇼우 짱, 미츠오 씨를 데려와줘"


순수하게 1대 1 주량 승부를 하려고 한 시즈코였으나, 문득 어떤 생각을 떠올렸다. 직접 대결하는 것보다, 팀 대항전으로 해버리는 쪽이 부담도 적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떠올린 것이다.

발길을 돌리려던 쇼우를 멈춰세우고, 케이지나 사이조, 나가요시도 불러오도록 명령했다.


"당신들, 천하에 이름을 날리는 주호가 되어보고 싶다는 생각 없어요?"


이리하여 오와리(尾張) 팀과 에치고 팀에 의한 주량 승부가 벌어졌다. 차례차례 술통이 개봉되고, 알코올 냄새가 감도는 대회장에서 일찌감치 퇴장한 시즈코는, 다음 날 우승자로부터 직접 결과를 들었다.

오와리나 미노(美濃), 에치고의 위신을 건 주호들의 주량 승부, 날이 밝았을 때 서 있었던 것은 미츠오 단 한 사람 뿐이었다.




주량 승부에서 소비된 술의 양을 생각하니 머리가 아팠지만, 시즈코는 켄신이 약속대로 술을 끊을 결의 표명으로서 '마상배'를 깨버린 것을 알고 기뻐했다.

치열하기 짝이 없었던 주량 승부였으나, 당사자인 미츠오 본인은 일부 사람들로부터 '주신(酒神様)'이라고 숭배받아 곤혹스러워하고 있었다.

잠정적으로 천하제일의 주호가 된 미츠오에게 츠루히메(鶴姫)가 새삼 다시 반하여, 얼굴을 마주칠 때마다 미츠오가 자랑질(惚気)을 해댄다고 아시미츠는 씁쓸한 표정으로 내뱉았다.


"사이가 좋은 건 아름다운 것일까요. 자, 드디어 완성되었나요, 신(新) 화폐(貨幣)"


시즈코는 쟁반에 놓인 신 화폐를 바라보았다. 금(金), 은(銀), 동(銅)의 세 가지 주화였다.

역사적 사실에서도 노부나가는 삼화제도(三貨制度)의 구상을 가지고 있었다고 하지만, 화폐는 천한(卑しい) 것이라는 가치관이 많았기에 뒤로 미루어졌다.

그러나 '지금의 노부나가'에게는 여력도, 새로운 가치관을 꺼내들고 보급시킬 발신력(発信力)도 있었다.

노부나가는 불환지폐(不換紙幣)를 시기상조(時期尚早)라며 포기하고, 삼화제도를 통해 금본위제도(金本位制度)로 유도하여, 이윽고 태환화폐(兌換貨幣)로의 전환을 내다보고 신 화폐의 운용을 개시했다.


새 제도라고는 해도 딱히 새로운 것은 없다.

동화(銅貨)는 유통되고 있는 영락전(永楽銭)과비슷하게 주조하고, 은화(銀貨)는 사각형의 판 모양, 금화(金貨)는 에도(江戸) 시대에 유통되었던 짚신(草鞋) 모양의 코반(小判)이었다.

교환 레이트를 크게 변경하면 혼란을 가져오기에, 동화 1닢을 현재의 정전(精銭)과 같은 가치로 하고, 은화 1닢을 동화 100닢으로 정했다.

그리고 금화 1닢을 은화 10닢과 같게 하여, 금화 1닢으로 1000문(文), 즉 1관문(貫文)으로 정했다.


각각의 화폐의 금속 혼합비는 극비로 하여, 통화 발행에 관여하지 않았기에 시즈코도 파악하고 있지 않았다. 전용(全容)을 파악하고 있는 것은 노부나가와, 통화좌(通貨座)를 총괄하는 기술자들 뿐이다.


도래전(渡来銭, 중국의 전화(銭貨))의 유통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으나, 일본의 통화를 통일하려면 이행 기간이 필요하다.

당분간은 도래전, 노부나가의 신 화폐, 각국이 독자 주조하고 있는 영국(領国) 화폐(貨幣)의 세 종류가 혼재하게 되리라.

노부나가 자신도 성급한 화폐 이행은 경제에 영향이 나온다고 생각하여, 금후 20년을 잡고 신 화폐로 전환할 계획이었다.

신 화폐의 보급은 쿄(京)나 사카이(堺) 등 키나이(畿内) 일대(一帯), 오와리나 미노 등 노부나가의 직할령 내에 그칠 것이라 예상하고, 일본 전체의 통화 제도의 쇄신을 노부타다의 역할로 삼았다.

태환지폐(兌換紙幣)나 불환지폐에 관해서는, 노부타다의 자손의 과제로서 장기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내년부터 세금의 징수는 이 신 화폐로 이루어지는 건가"


올해의 세금에 대해서는 지금까지대로 하고, 내년부터 납세에 한해 신 화폐로만 하게 된다. 아전(鐚銭)은 오와리와 미노에서만 다른 곳보다 앞서 올해까지만으로 사용 제한을 두었다.

아전이나 정전의 신 화폐로의 교환은 항상 이루어지기에, 노부나가의 직할령(お膝元)에 한정한다면 빠른 단계에서 전환될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오와리나 미노를 시금석으로 삼아, 쿄나 사카이 등 키나이 권역은 3년을 잡고 아전 구축을 실시한다. 각 나라에서 독자적으로 발행하고 있는 영국 화폐에 대해서는 5년을 기준으로 사용 불가능하게 한다.

이러한 제도들은 조정의 이름으로 전국에 포고되고, 위반한 경우에는 조적(朝敵)으로서 처벌된다는 엄격한 내용이었다.


"위조화폐인 사주전(私鋳銭)을 만들면 조적이 되고, 사용 기한을 넘은 통화를 납세에 사용하면 사형인가. 용서없네. 뭐, 몇 년의 유예가 있는데 환전하지 않은 거니까 당연하다고 하면 당연하겠지"


하지만, 이것들은 어디까지나 '통화를 사용'할 경우에 한한 제한 사항이며, 사용기한을 넘은 통화를 가지고 있는 것 자체는 죄로 간주되지 않는다.

현대에서도 사용할 수 없는 통화, 소위 말하는 고전(古銭, ※역주: 옛날 돈)을 수집하는 콜렉터는 많다.

공적인 장소에서 사용하지 않는다면, 신 화폐 이외의 것을 대량으로 가지고 있어도 문제는 없다.

하지만, 이행 기간을 지나면 환전할 수 없게 되어, 고전에 가치가 있다고 인정하는 호사가(好事家)들 사이에서만 거래가 성립하게 된다.


"흐ー음. 큰 상거래를 하려면 금화 한 종류 만으로는 불편하려나. 은화, 금화에 대해서는 여러 종류를 준비하도록 주상께 상신해 둘까"


"시즈코 님. 사나다 님이 오셨습니다"


"안내해줘요"


신 화폐를 앞에 두고 예상되는 문제에 대해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소성(小姓)이 사나다 마사유키의 내방을 알려왔다.

즉시 안내하도록 시즈코가 명령하자, 소성 한 사람이 마사유키를 데리러 가고, 나머지는 알현의 준비를 갖추었다.

숙취인지 안색이 좋지 않은 케이지나 사이조 등도 집합하고 잠시 지나자, 소성의 안내를 받아 사나다 마사유키와 몇 명의 남성들이 들어왔다.


"푹 쉬었나요?"


"과분한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쇠약해져 있던 처자식도 완전히 기운을 되찾았습니다"


시즈코의 질문에 대해 마사유키는 고개를 숙인 채 대답했다.

아시미츠가 마사유키를 데리고 돌아온 직후의 상태는, 극도의 피로 때문인지 심하게 쇠약해져있어, 먹을 것도 고형물(固形物)은 받아들이지 못할 정도로 쇠약해져 있었다.

그런 상태에서는 제대로 대화 같은 게 가능할 리도 없어, 시즈코는 마사유키들에게 며칠 휴양을 취하라고 했다.


"자, 아시미츠에게서 개요는 들었습니다만, 확인의 의미도 겸하여 다시 묻겠습니다. 사나다 가문의 사정과,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경위를 가능한 한 자세히 말해 주세요"


"옛"


마사유키는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는지, 한 마디로 대답하더니 품 속에서 종이(懐紙)를 꺼내어, 그걸 확인하면서 더듬거리며 말하기 시작했다.

우선 사나다 가문을 둘러싼 상황에 관하여, 사나다 가문은 마사유키의 아버지에 해당하는 유키타카(幸隆)가 건재했으나, 적자(嫡男)인 노부츠나(信綱)와 둘째 형(次兄)인 마사테루(昌輝)가 모두 전사했다.

그래서 3남인 마사유키가 급거 사나다 가문에 복귀하여 가문(家督)을 이었다.

그러나, 이미 적자인 노부츠나가 당주가 되었었기에, 이 가문 계승은 혼란의 방아쇠를 당기게 되었다. 먼저 마사유키는 무토우(武藤) 가문의 후계를 포기하고, 대신 무토우 츠네아키(武藤常昭)가 가문을 이었다.

그리고 죽은 장남 노부츠나(信綱)의 적녀(嫡女, 정처(正妻)의 장녀(長女))인 세이온인(清音院)을 처로 맞이했다. 이것으로 사나다 가문 당주로서, 적류(嫡流)의 혈통(血筋)이라는 정당성을 담보하려 했다.

바로 그 때, 마사유키는 스와 카츠요리(諏訪勝頼)로부터 영토(所領) 일부에 대한 몰수를 통고받았다. 사나다 가문에게는 청천벽력이라, 사나다 가문에서 계승 문제가 다시 타올랐다.

주군 가문(主家)인 카츠요리에게 마사유키의 복성(復姓, ※역주: 성을 되찾는 것)과 가문 상속은 인정받았으나, 갑자기 영지를 몰수당하는 사람을 사나다 가문 당주로 앉혀놓아도 되는가라고 가신들이 갈라졌다.

거기에 남은 영토에 대해서도 다른 곳보다 무거운 세금이 부과되어, 마사유키 배척 세력의 기세가 강해졌다.

이 소동은 앞서의 계씅 문제보다도 오래 계속되어, 타케다 가문에 인질을 보낼 상황이 아니게 되었다.


마사유키는 아버지인 유키타가와 상의하여, 이 이상의 소동은 사나다 가문을 단절로 이끌거라고 판단했다. 마사유키가 당주인 한 이 소동은 가라앉지 않을 것이기에, 마사유키는 스스로 물러나기로 했다.

그래서 에치고를 오다 군이 방문했을 때, 마사유키는 자신이 쫓겨나는 형태로 사나다 영토를 뒤로 하고 에치고 영토로 가서, 그곳에서 오다 군과 합류하여 시즈코가 있는 곳으로 돌아올 것을 계획했다.

용의주도한 것으로 유명한 마사유키가 드물게 발작적으로 행동했기에, 이런저런 착오가 발생했다.

사나다 영토를 출발한 뒤에 일행에 노부유키(信之)가 포함되지 않은 것을 깨닫고, 완전히 사나다 가문을 배신한 도피행으로서 사나다 가문에서 추격대가 붙게 되었다.


"뭐랄까…… 긁어 부스럼(藪蛇)이랄까, 역효과가 나버린 감이 있네요"


경위를 듣고 있던 시즈코는, 계획성의 결여와 나쁜 타이밍에 어이가 없어졌다. 하지만, 이례적인 행동이었기에 도망칠 수 있었다고도 할 수 있다.

꼼꼼히 계획하고 행동하는 마사유키의 성격을 알고 있는 만큼, 크게 우회한 탈출 경로를 택할 거라고 예상되었고, 추격대의 숫자가 적었기에 무사히 합류할 수 있었던 것이다.

시즈코는 턱에 손을 대고 사나다 가문과 적대한 것에 대해 생각했으나, 이미 움직여버린 사태는 바꿀 도리가 없다.

마사유키의 건에 대해서는 노부나가에게도 보고하였고, 필요한 정보를 얻어낸 후에는 그의 처우를 시즈코에게 일임한다는 말을 들었다.


"무례를 무릅쓰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진언드리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의 처우에 대해 생각하고 있을 때, 마사유키의 뒤에 있던 남자 한 명이 나섰다. 마사유키가 그의 움직임을 막으려 했으나, 시즈코는 그것을 손으로 제지했다.


"상관없습니다. 발언을 허가합니다"


"감사드립니다. 착오가 있었기에 주군께서는 직속 부대(手勢)를 이끌지 않으시고 저희들 랍파(乱破)들만 동행하게 되었습니다. 전쟁터에서 전력으로는 칠 수 없는 저희들이지만, 전쟁터 이외에서의 그늘에 가려진 일들(陰働き)에 도움이 되어 보이겠습니다. 부디 주군께 자비를 베풀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그의 비장한 결의를 듣고 시즈코는 인식이 어긋난 것을 깨달았다.

마사유키는 몸만 달랑 시즈코가 있는 곳으로 와서 사나다 가문과 온건하게 결별한 후에 직속 부대를 부를 생각이었기에, 그가 데려온 것은 약간의 측근과 마사유키의 눈과 귀가 되는 많은 간자들 뿐이었다.

전국시대의 상식에서 볼 때, 그들은 도저히 전력으로 칠 수 없다. 짐덩어리로서 냉대받는 게 아닌가 하고 그 간자 사내는 생각한 것이리라. 대단한 오해라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오해가 있는 듯 하니 정정하겠습니다만, 나는 애초에 당신들에게 전력을 기대하고 있지 않습니다. 다른 곳의 방식(流儀)에 물든 정규병보다, 유연한 대응이 가능한 랍파 쪽이 고마울 정도입니다. 나는 사나다 님의 지혜를 기대하고 초대한 것입니다. 판단의 재료가 되는 정보를 가져오는, 눈이나 귀인 당신들 랍파를 가벼이 여길 리가 없지요. 나는 전쟁터에서의 무공보다, 그러기까지 어떻게 정보를 얻는가, 전쟁터에서도 한발 빨리 정보를 얻는 것을 중시하고 있습니다"


이 생각은 시즈코에 한정된 것은 아니다. 노부나가의 방침이 시즈코나 다른 가신들에게 즉각 전달되는 것은, 노부나가 자신이 정보를 중요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도로 정비의 일환으로, 각지에 '역(駅)'을 건설했다.

역은 소규모의 것부터 여관마을(宿場町)이라고도 할 수 있는 대규모의 것까지 있지만, 하나같이 갈아탈 말과 전령들의 휴게소, 식량이나 자재를 조달할 수 있는 설비가 갖춰져 있다.

전령이 릴레이 형식으로 정보를 전달하기 때문에, 달리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속도와 은밀성을 유지하며 가신들에게 정보가 전달되고 있었다.

이러한 정보나 물류의 인프라 정비에도 힘을 쏟고 있는 것도 있어, 간자를 천한 것으로 보는 풍조를 혐오하고 있었다.


"그걸 듣고 안심했습니다"


"다른 곳에서 어떤 취급을 받아왔는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명심해 주세요. 정보를 중요시하기 때문에, 그것을 파악하는(見極める) 눈은 엄격해집니다. 당신들이 모아온 정보로 우리들은 싸움의 향방을 판단합니다. 잘못된 정보를 가져오면, 이길 수 있는 싸움에 지고, 이길 수 없는 싸움에 몸을 던지게 되는 겁니다. 그 정도로 정보라는 것은 '무거운' 것입니다"


시즈코의 말에 간자 사내는 경탄의 표정을 떠올렸다. 하지만, 시즈코는 신경쓰지 않고 말을 이었다. 


"세상(巷)에서는 싸움의 승패는 머릿수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곳은 다릅니다. 정밀하고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지 아닌지에 우리들의 운명은 크게 좌우됩니다. 결코 천한 일이라는 생각 같은 건 하지 마세요"


"……옛, 명심하겠습니다"


"아, 그리고 한 가지 말해두지요. 정보는 양만 많으면 되는 건 아닙니다. 정보가 '없다'는 것도 또한 정보입니다. 어째서 '없다'고 판단했는지를 추적해보면 훌륭한 성과로 판단합니다.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정보의 누락'입니다. 정보가 없을 때 억지로 보고하려고 하지 말고, 필요할 때 필요한 정보를 얻어주면 됩니다. 좋은 정보에는 그에 걸맞는 보수를 약속하지요"


"그것은……"


"신상필벌. 공 있는 사람은 반드시 상을 내리고, 죄과가 있는 사람은 반드시 벌합니다. 딱히 이상한 얘기는 아니잖아요?"


그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라고 간자 사내가 말하려 했으나, 시즈코의 대사가 사내의 발언을 막았다. 간자 사내는 그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다만 깊이 고개를 숙였다.


"그것을 가져와요"


이야기가 일단락되자, 시즈코는 소성에게 명령하여 나무 상자를 가져오게 했다. 소성들은 하얀 나무(白木)로 만든 나무 상자를 마사유키 앞에 몇 개 늘어놓고 인사를 한 후 구석으로 물러났다.


"뭘 하더라도 자금이 필요하겠죠. 하지만 당신들은 아직 성과를 내지 못했습니다. 그렇기에 백성들로부터의 세금으로 비용을 충당할 수는 없습니다"


거기서 말을 끊고 시즈코는 마사유키에게 나무 상자를 열어보도록 했다.

마사유키가 나무 상자 중 하나에 손을 대어 뚜껑을 열었다. 안에는 빈틈없이 돈이 가득 들어 있었다. 엄청난 거금이 준비되어 있는 것에 마사유키는 경악했다.


"그렇기에, 사비(私費)로 착수금(支度金)을 준비했습니다. 이만큼 있으면 당분간의 자금은 곤란하지 않겠지요. 이 이후에는 기본적인 보수에 더해, 성과에 따라 성과보수도 지급하겠습니다"


"각별하신 배려…… 이 마사유키, 그저 감사드릴 뿐입니다"


"한 가지 충고하면, 남의 돈이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사람은 고생하지 않고 얻은 공돈(あぶく銭)을 간단히 낭비해 버립니다. 이걸 잃으면 이제 다음은 없는, 생명줄(命銭)이라 생각하고 유효하게 사용해 주세요"


"명심하겠습니다"


시즈코의 충고에 마사유키는 깊이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뭘 하려고 해도 마사유키는 우선 오와리에 생활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생각한 시즈코는, 마사유키에게 당분간의 주거를 알선하고 자리를 잡도록 명령했다.

몸만 달랑 오와리로 왔기 때문에 생활 거점이 갖춰져 있지 않았다. 토지나 저택의 취득은 현지 사람의 협력이 없이는 대체로 잘 되지 않는다.

우선은 자리를 잡고, 언제든지 움직일 수 있는 태세를 갖추는 것이 그의 첫 임무가 되었다.


그로부터 며칠 후, 시즈코는 마사유키에게 어떤 명령을 내렸다.

그녀가 명령한 것은 사람을 모으는 것, 그것도 카이(甲斐) 출신 중에서 류우지(竜地)나 단고(団子) 등 코우후(甲府) 분지(盆地)에 있는 마을 출신자들 또는 그 마을들에 대하 잘 아는 사람들을 찾게 했다.

마사유키는 시키는대로 직속 부하들로부터 대상자를 선출했는데, 모여든 것은 겨우 4명에 지나지 않았다.


"'도로카부레(泥かぶれ)'라는 병을 알고 있나요?"


모여든 사람들에 대해 시즈코가 물었을 때, 마사유키를 포함한 전원은 시즈코의 말을 이해했다.


도로카부레, 후에 일본주혈흡충증(日本住血吸虫症)이라고 명명되는 풍토병(地方病)이다.

초기에는 발열이나 설사 등의 경미한 증상이지만, 병이 깊어지면 팔다리가 야위고 배가 부풀어올라 죽는다.

흙탕물병에 해당하는 병이 처음으로 기재된 문헌은 갑양군감(甲陽軍鑑)이며, 병이 깊어진 오바타(小幡) 분고노카미(豊後守) 마사모리(昌盛)가 카츠요리에게 휴가를 요청했을 때의 상황이 적혀 있다.

이것이 카이에 도로카부레가 만연했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기록이라고 생각되고 있다.


이 질병이 언제부터 퍼졌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천년 이상 옛날부터 계속 유행해온 질환이라고 생각된다. 세상에서는 '코우후 분지의 백성들은 도로카부레로 죽는 것이 운명'이라는 말까지 있었다.

이것은 지배자 계층이 거의 감염되지 않고, 백성들이나 소작인(小作人)들에게만 발병률이 집중된 것에 기인한다.

그렇기에 유행지인 어떤 마을에 딸이 시집갈 경우, 관(棺桶)을 등에 짊어지게 해서 보내라는 노래가 있을 정도였다.

백성들도 유행지가 편중되어 있는 것은 깨달았으나, 어떤 원인으로 발병하는지 전혀 짐작도 가지 않았다.

이 도로카부레에 정부(行政)가 본격적으로 착수하기 시작한 것은 메이지(明治) 14년(※역주: 1881년). 유행의 종식이 선언된 것은 무려 헤이세이(平成) 8년(※역주: 1996년) 2월 19일이다. 그야말로 115년이라는 긴 세월에 걸친 도전이었다.


"배가 부풀어 죽는 병 말씀입니까?"


간자 중 한 명이 머뭇거리며 발언했다. 시즈코는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 말을 이었다.


"맞아요. 당신들의 임무는, 도로카부레가 발생한 마을을 이 지도에 표시하는 거에요"


"그러기만 하면 됩니까?"


"기억할 수 있는 한 전부를 부탁해요. 예방 대책은 있지만, 아직 카이는 타케다가 지배하는 땅. 지금은 상황을 파악하는 것 이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시즈코가 '예방 대책이 있다'고 말한 순간, 네 명 중 한 명이 눈을 크게 떴다.


"막을 수 있는 겁니까!?"


"발병한 후에는 치료할 수 없지만, 무엇에 주의하면 피할 수 있는지를 알고 있어요. 남만(南蛮)에도 같은 질병이 있고, 거기서 어느 정도 효과를 올린 대응책이 있거든요"


물론, 시즈코는 현대의 지식으로 감염원(感染源)도 대응 방법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에게 그걸 알려줘봤자 의미가 없다.

시즈코가 취할 수 있는 대책이란 감염원에서 멀어지는 것이며, 감염원을 근절시키는 것이 아니기에, 생활하면서 감염원에 접촉하지 않을 수 없는 그들에게 알려줘봤자 대책을 세울 방법이 없는 것이다.


도로카부레는 기생충증(寄生虫症)으로, 오염된 물 등에 접촉하는 것으로 감염된다.

일본주혈흡충(日本住血吸虫)의 유생(幼生)인 세르카리아(cercaria)는, 물 속에 숨어서 종숙주(終宿主)인 포유류와 접촉하면 그 피부를 물어뜯고 체내에 침투하여 번식한다.

이 세르카리아는 대단히 작아서 육안으로는 확인할 수 없다. 이 때문에 근절 대책을 위해 취해진 시책은, 일본주혈흡충의 중간숙주(中間宿主)인 미야이리가이(ミヤイリガイ, ※역주: 宮入貝, 학명 Oncomelania hupensis, 다슬기 비슷하게 생긴 고둥)의 멸종이었다.

일본주혈흡충의 중간숙주는 반드시 미야이리가이여야만 하며, 다른 담수산 고둥(巻き貝)류에는 기생할 수 없다.


일본주혈흡충의 생활사(生活史)는, 분변(糞便)을 통해 물 속으로 흩어진 알(虫卵)이 부화하여, 미라시디움(miracidium)이 된다. 이 미라시디움이 미야이리가이와 접촉하여, 이 고둥의 체내에서 세르카리아로 성장한다.

세르카리아는 미야이리가이를 벗어나 물 속으로 이동하여, 물과 접촉한 포유류를 경피(経皮) 감염시킨다.

포유류를 감염시킨 세르카리아는 성충(成虫)인 일본주혈흡충이 되어, 그 이름 그대로 혈관 내부에서 하루에 3000개나 되는 알을 낳는다.

이것이 분변을 경유하여 다시 밖으로 배출되어, 비 등을 통해 물 속으로 돌아가는 라이프 사이클이다.


이 생활사에서, 인류의 감염원이 되는 것은 미야이리가이에 기생할 수 있었을 경우 뿐이기에, 미야이리가이를 근절할 수 있으면 일본주혈흡충도 구축할 수 있다.

하지만, 미야이리가이 자체가 번식력이 왕성하고, 물 속에 그치지 않고 땅 위에서도 생활할 수 있기에 근절은 대단히 어렵다.

실제로, 유행지에서 미야이리가이를 구축할 때까지 70년이나 되는 세월이 소요되었다.


여담이지만 일본주혈흡충은, 종숙주인 포유류에 기생할 때까지 타이트한 타임 리밋이 존재한다.

알에서 부화한 미라시디움은 18시간 이내에 미아이리가이로, 유충인 세르카리아는 48시간 이내에 종숙주에 기생하지 않으면 죽어버린다.

이것은 어떠한 환경에서도 마찬가지의 결과를 보여, 미라시디움의 단계에서는 인간을 감염시킬 수 없다. 이 때문에 미야이리가이만 멸종시킬 수 있다면, 일본주혈흡충의 알이 얼마나 남아있던간에 인류에게 위협이 될 수 없다.


"그렇……습니까"


뭔가 생각하는 바가 있는지, 간자는 얼굴을 손으로 덮고 눈물을 흘렸다. 가까이 있던 다른 간자가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위로했다.


"죄송합니다. 그의 여동생은 도로카부레로 목숨을 잃었기에……"


"그건 유감이에요. 하지만, 그의 여동생 같은 피해자가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해서도, 이 임무에 진지하게 임해 주세요. 기억하고 있는 내용이면 됩니다. 감염자를 낸 마을에 표시를 해 주세요. 내 생각이 맞다면, 특정한 하천(河川) 유역(流域)에 집중되어 있을 거에요"


"옛!"


간자들은 깊이 고개를 숙이고, 네 명이 서로에게 달라붙듯 지도를 각각 한 손에 받쳐 들고 방을 나갔다. 함께 나가려던 마사유키였으나, 시즈코가 제지했다.


"……당분간 토우고쿠의 정보 수집을 부탁해요. 특히 타케다의 동형에 대해서는 상세하게 부탁해요. 측량(検地)이나 상공업(商工業)에 대한 관여, 부국(富国)에 이어지는 정보를 중점적으로 모아 주세요"


"옛!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타케다에게 예전의 영광은 되찾지 못할 거라 생각됩니다. 그만한 인원을 할당할 필요가 있을까 의심스럽습니다만"


"아니오. 지금의 타케다는 궁지에 몰린 쥐(窮鼠)에요"


시즈코는 마사유키의 말을 명확하게 부정했다. 타케다 신겐(武田信玄)을 패배시킨 시즈코가 그렇게까지 단언하는 것에 마사유키는 놀랐다.


"우리들은 승리를 얻기 위해 준비를 갖추고, 이길 수 있는 장소로 끌어들여, 상대의 실력을 봉쇄하는 형태로 승리했어요. 상대의 앞마당(土俵)에서 승리한 게 아니에요. 궁지에 몰려서 남은 영토를 지키기 위해 필사적인 된 쥐는 고양이에게도 이빨을 들이댑니다. 방심하고 얕보다가는 뼈아픈 일격을 당하게 되겠죠"


시즈코의 말에 마사유키는 공감가는 곳이 있었다. 누구나 자신이 안주할 땅을 누군가가 빼앗으려고 하면 죽기살기로 저항한다. 거기에 이길 수 있느니 없느니의 승산은 관계없다.


"궁지에 몰린 사람은 단기적으로는 보통 사람(常人)을 능가합니다. 본거지만 남은 타케다에게는 물러설 곳이 없어요. 각오가 서게 되면, 카이의 정병(精兵)은 위협적이에요. 다시 힘을 되찾지 못하도록, 완전히 쇠약해진 시점을 판단하기 위해서도, 철저한 정보수집이 필요해집니다"


"눈이 확 트였습니다. 반드시 기대에 부응해 보이지요"


"잘 부탁합니다. 다른 이야기인데, 자녀분들은 건강해졌나요?"


갑작스런 화제 전환에 당황한 마사유키였으나, 시즈코에게 다른 뜻이 없음을 알자 미소를 떠올리며 대답했다.


"지나치게 건강해서 감당이 안 됩니다"


"그거 잘 되었군요. 제가 보기에는 두 사람 모두 맹장(猛将)이 될 것입니다. 아까운 것은, 우리들이나 당신의 활약에 따라 태평한 세상이 되면 활약할 장소가 없어지는 것 정도일까요"


"확실히 그렇게 말할 수 있군요. 하다못해 10년, 아니 5년만 빨리 태어났더라면 도움이 되어드렸을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무가(武家)의 남자가 연약해서는 안 되지요. 언젠가 시기를 봐서 단련에 참가시키지요"


"잘 알고 있습니다"


시즈코의 말에 마사유키는 사람좋은 미소를 떠올리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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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

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겐키(元亀) 4년 무로마치 막부(室町幕府)의 종언(終焉)


110 1573년 8월 중순



"히익! 어, 어째서 네놈이 이곳에 있는 것이냐!?"


아사쿠라(朝倉) 마고하치로(孫八郎) 카게아키라(景鏡)는 공황 상태에 빠져 외쳤다. 그의 눈 앞에는 참수되었어야 할 아사쿠라 요시카게(朝倉義景)가 서 있었다.

요시카게의 등 뒤에는, 그의 측근인 토리이(鳥居)나 타카하시(高橋)도 서 있었고, 다시 그 뒤에 코토쿠인(高徳院), 코쇼쇼(小少将)를 필두로 부인(妻)들이 서 있었다. 모두의 표정에는 배신자에 대한 분노가 서려 있었다.

카게아키라는 아까까지 수다스럽게(饒舌) 떠들고 있었다. 자신이 어떻게 요시카게를 배신하고, 아사쿠라 가문을 휘어잡은 후에 코토쿠인 등도 추방하고, 이치죠다니(一乗谷)를 선물로 오다에 투항할 생각이었는지를.

요시카게들은 그 자초지종(一部始終)을 옆방에서 듣고 있었으며, 도중에 자리를 뜬 미츠히데(光秀)에 이어 방에 들어온 것이다.


카게아키라는 오다 가문에게 무가치한 인간이라고 이미 버림받았다.

미츠히데의 유도에도 깨닫지 못한 채 자신의 배신을 자랑스럽게 떠벌이는 모습에 실망하고, 자신들이 직접 처단할 정도의 가치도 없다며 자리를 떴다.


"뭐, 뭐냐 그 눈은! 네놈 때문에 이치죠다니가 어떤 운명을 맞이하게 되는지 알고 있는 것이냐!?"


"물론 들었다. 이 전쟁 뿐만 아니라, 시종 결단을 내리지 못한 우유부단함에 대한 비판은 달게 받지. 약육강식의 난세에서 예능(芸事)에 열을 올린 어리석고 암울한 당주, 그야말로 맞는 말이다"


"그, 그렇다! 네놈의 우유부단함이 오다에게 이득을 보게 한 것이다! 싸움을 싫어하고, 냉혹한 현실에서 눈을 돌린 머저리(腑抜けもの)이다! 백 년의 영화를 자랑한 이치죠다니를 멸망시킨 것은, 요시카게! 네놈이다!"


요시카게가 스스로의 잘못을 인정한 것을 보고, 카게아키라는 자신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요시카게를 통렬하게 비난했다.


"네놈 말대로, 후세에 나는 암군(暗君)으로서 이름을 남기겠다"


그러나, 라고 중얼거리며 요시카게는 허리에 찬 칼을 뽑았다. 그에 반해 카게아키라는 빈손이었다. 조금이라도 미츠히데에게 좋은 인상을 주려고 스스로 무장해제를 자청한 결과였다.


"네놈이 배신한 것은 아사쿠라 가문 뿐만이 아니다. 네놈 자신의 목숨만을 아까워하여 지켜야 할 백성들까지 팔아넘긴 것이다. 우매한 나에게 정이 떨어져 저버리는 것은 상관없다. 내 목을 선물로 삼아 백성들의 목숨을 구해달라고 청했다면 다들 네놈을 용서했으리라……"


"히, 힉! 자, 잠깐! 이곳은 오다의, 아케치(明智) 님의 진이다! 여기서 나를 베면, 네놈의 처자도 연좌(連座)를 면하지 못한다!"


"애초에 다들 각오한 바이다!"


"큭! 미쳤구나"


카게아키라는 사지(死地)를 벗어나기 위해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어디에도 활로(活路) 따윈 없었다. 게다가, 이만큼 소란을 피우고 있는데 오다 군의 병사들이 달려오는 기색도 없었다.

아무리 기다려봤자 구원은 오지 않는다. 애초에, 이 자리는 미츠히데와 시즈코가 준비한 카게아키라 단죄(断罪)의 자리였다.


"카게아키라, 나도 곧 따라갈 것이다. 지금부터 고난을 받을 에치젠(越前)의 백성들에게 지옥에서 계속 사죄하라!!"


말이 끝남과 동시에 칼이 내려쳐졌다. 왼쪽 어깨에서 오른쪽 옆구리에 걸쳐 비스듬하게 베인 카게아키라는, 멍하니 선 채로 상처를 부여잡으며, 쿨럭 하고 피를 토하더니 쓰러졌다.

아사쿠라 가문을, 나아가서는 에치젠을 팔아넘기면서까지 생존을 꾀한 카게아키라의 최후는, 배신자의 말로다운 가여운 것이었다.


"끝났군요"


카게아키라의 목이 떨어지는 것을 기다려 미츠히데가 돌아왔다. 미츠히데가 상좌(上座)에 앉자, 요시카게는 칼을 칼집에 넣고, 허리에서 풀어 멀리 던져버린 후 엎드려 절했다.


"배신자의 처리도 끝났습니다. 이제 미련은 없습니다. 제 목으로 이 전쟁의 결판을 짓도록 하지요"


"분명히 확인했습니다"


"솔직히 말해, 어깨의 짐이 덜어졌습니다. 이치죠다니 백 년의 영화를 수호하는 아사쿠라 가문 당주. 재주 없는 몸에게는 너무 무거운 짐이었습니다. 뜻대로 되지 않는 현실에서 눈을 돌려, 예능에 넋을 뺀 댓가가 이것이군요. 저를 따라 목숨을 잃은 사람들에게는 면목이 없습니다만, 겨우 어깨의 짐이 덜어져서 안도하고 있기도 합니다"


요시카게의 말에는 아무런 현기(衒氣)도 없었다. 필요 이상으로 자신을 크게 보이려 항상 허세를 부리던 어깨의 힘이 빠져, 평온한 표정을 떠올리고 있었다.


"에치젠의 지보(至宝), 이치죠다니는 잿더미로 변하겠지요. 에치젠의 백성들은 아사쿠라 가문을 섬긴 벌을 받고, 당신은 그것을 지켜본 후 참수되게 됩니다. 아사쿠라 가문 당주 최후의 의무, 훌륭하게 수행하십시오"


예전에 주군으로 섬겼기 때문인지, 미츠히데의 목소리에는 애절함이 있었다. 하지만, 요시카게가 죽지 않고서는 이 싸움의 결판은 바랄 수 없다. 어떻게 손을 쓰더라도 그의 죽음은 피할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청을 들어주실 수 있겠습니까? 제 목을 이치죠다니가 보이는 장소에 묻어 주십시오. 설령 잿더미가 되어서라도 이치죠다니를 지켜보는 것이 제 의무입니다"


"그것은……"


미츠히데는 망설였다. 이치죠다니를 불태워버린 후, 그 계기가 된 요시카게의 묘(墓所)가 가까이 있을 경우 백성들의 증오는 어디로 향한 것인가, 조금만 생각해보면 누구나 알 수 있었다.

어떤 죄를 지어도 죽으면 다들 부처(仏)라고는 하나, 곤경에 처한 백성들에게 그런 입바른 소리가 통용될 것인가, 묘가 파헤쳐지고 죽은 후에도 모욕받는 것이 아닐까 하고 미츠히데는 생각했다.


"쭉은 후, 이치죠다니를 지켜보는 것조차 용서하지 않겠다고 백성들이 생각한다면, 그것은 달게 받아들이지요. 이치죠다니의 멸망을 초래한 저야말로 그 벌을 받는 것이 마땅합니다"


"거기까지 각오하신 것입니까, 그렇다면 아무 말씀도 드리지 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미츠히데가 부탁을 받아들인 것으로, 아사쿠라 가문의 운명이 정해졌다. 요시카게는 이치죠다니의 멸망 후에 참수, 토리이와 타카하시는 요시카게의 명복을 빌겠다(菩提を弔う, ※역주: 네이버 일한사전에서 검색되는 표현이긴 한데, 여기서는 남은 평생 고인을 위해 기도하는 삶을 살겠다는 의미로 요즘 흔히 쓰는 '고인의 명복을 빈다'라고 하는 단순한 인사말과는 다름)고 했다.


"훌륭한 각오였습니다. 이 어미는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요시카게의 등 뒤로 코토쿠인이 말을 걸었다. 죽으러 가는 아들을 전송하는 어미의 마음 속은 어떠할까. 표정은 감출 수 있어도 목소리까지는 다 감추지 못했다.

그 후, 코토쿠인은 속세를 떠나 남은 평생 요시카게의 명복을 빌며 지내게 된다.

코쇼쇼나 요히라(四葩)도 출가하여 비구니(尼)가 되어, 마찬가지로 명복을 비는 것을 택했다.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희망할 경우 원하는 장소로 돌아가는 것이 허용되었다.

히데요시(秀吉) 등이 보기에는 지나치게 약한 대응이지만, 미츠히데는 결판이 난 지금 쓸데없는 피를 흘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형(刑)의 날짜가 정해질 때까지 마지막 이별(別離)을 준비하십시오"


미츠히데의 선언으로 예전의 주종(主従)은 결별(決別)했다. 요시카게들은 병사들에게 둘러싸여, 아사쿠라 가문의 조상 대대로 위패를 모신 절(菩提寺)인 신게츠지(心月寺)에서 통고(沙汰)를 기다리게 되었다.


이치죠다니의 외연(外縁)부에 설치된 임시 진에서 미츠히데로부터 경위를 들은 시즈코는, 저물어가는 낙일(落日)을 바라보며 크게 한숨을 쉬었다.


(남은 건 아자이(浅井) 가문 뿐…… 아자이 가문이 멸망하면, 전국시대는 종언(終焉)을 향해 나아가게 되지)


아사쿠라는 멸망하고, 아자이도 곧 뒤를 따른다. 타케다(武田)는 이미 시간 문제이며, 우에스기(上杉)는 노부나가의 신하가 되었다.

남은 대국은 아키(安芸, 현재의 히로시마(広島) 현(県) 서부(西部))의 모우리(毛利)와, 큐슈(九州)를 나눠먹고 있는 류조지(龍造寺), 시마즈(島津), 오오토모(大友) 등 세 가문을 들 수 있다.

시코쿠(四国)의 유력자(雄), 쵸소카베(長宗我部)는 미츠히데를 통해 노부나가와 동맹을 맺어 시코쿠 통일을 앞두고 있었다. 사실상, 쵸소카베도 노부나가에게 복종하게 된다.

토우고쿠(東国)의 호죠(北条)는 기치(旗幟)를 명확히 하고 있찌 않지만, 타케다가 쇠퇴하고 우에스기도 포섭된 이상, 거취의 판단이 강요되어 내부가 혼란스러운 상태였다.


(이제 조금만 더 하면…… 몇 년만 지나면 오다 가문에 의한 천하통일을 이룰 수 있어)


예측하지 못한 사태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이라는 조건부이기는 하나, 시즈코는 전국시대의 종언을 예감하고 있었다.




이치죠다니가 미츠히데의 손에 의해 함락되고 아사쿠라 가문이 멸망했다는 소식은 아자이를 공략중이던 히데요시의 진에도 전해졌다.


"지금이 호기(好機)다! 책략(調略)과 진군을 밀어붙여라! 큰 도박이지만, 여기가 승부의 갈림길이다!"


아사쿠라 가문 멸망의 소식에 적과 아군이 모두 동요하는 가운데, 히데요시만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노부나가에게 판단을 묻지 않고 독단으로 오다니 성(小谷城)으로 단번에 치고올라갔다.

후에 '오다니 성 하룻밤 함락(一夜落とし)'이라고 칭해지는, 히데요시의 약진(躍進)을 결정한 전투가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한편, 아자이 쪽은 전투를 벌일 상황이 아니었다. 이미 아자이의 편을 드는 자들은 없었고, 유일한 희망(頼みの綱)이었던 아사쿠라 가문도 스러졌다. 아자이는 이미 가라앉는 배가 되어 있었다.

그 증거로 오다니 성을 지키는 방어시설에서 병사들이 도망쳐, 히데요시의 쾌진격을 막는 자들은 없었다.


히데요시는 오다니 성의 혼마루(本丸, ※역주: 예전에 등장했을 때는 본채라고 의역했으나, 여기저기 일본 성 특유의 구조물을 가리키는 고유명사가 등장하는 관계로 여기서는 혼마루라는 독음을 적었음)로 통하는 길을 확보하자, 히데나가(秀長)가 이끄는 책략조(調略組)와 히데요시 자신과 타케나카 한베에(竹中半兵衛)가 이끄는 공성조(城攻め組)로 군을 나누었다.


"단숨에(一気呵成) 치고 올라가라! 시간을 주면 다른 자들도 따라오게 된다. 지금이라면 공을 독점할 수 있다!"


히데요시는 병사들을 고무하면서 오다니 성을 공략했다. 그 때, 시즈코에게서 빌린 텟포슈(鉄砲衆) 250이 한층 이채(異彩)를 뿜고 있었다.

아자이 측의 철포부대(鉄砲部隊)가 사정거리 밖에서 총격을 받고 차례차례 쓰러졌다.

화승총(火縄銃) 따위는 비교도 안 되는 직진성이 가져오는 긴 사정거리와, 미리 부대가 숨어있는 장소를 알고 있는 듯 선정된 위치로부터의 저격이 맹위를 떨쳤다.

텟포슈에 의한 선제의 일격으로 혼란에 빠졌을 때, 옆에서 히데요시의 선봉대(先駈け)가 치명적인 일격을 가해 분쇄해 갔다.

아자이 측도 다수의 '쿠니토모즈츠(国友筒)'라 불리는 화승총을 갖추고 있었으나, 발포하기 전에 사수가 죽음을 당했기에 의미가 없었다.

역사적 사실에서는 히데요시의 군세가 시미즈다니(清水谷)의 급경사로부터 쿄고쿠마루(京極丸)를 급습하여 함락시켰으나, 이 전투에서는 산노마루(山王丸), 코마루(小丸) 등 두 개의 곡륜(曲輪)을 정면에서 돌파하여, 겨우 반나절만에 쿄고쿠마루에 접근했다.


"아마도 당주인 아자이 히사마사(浅井久政)는 혼마루에 있을 것이다! 먼저 쿄고쿠마루를 함락시켜 본채를 고립시킨 후 치고 올라간다!"


히데요시의 말을 들은 나가마사(長政)는 반사적으로 부정할 뻔 했다.


(아니, 아버님은 쿄고쿠마루로 달려갔을 것이다. 그 사람은 그런 사람이다)


설명하기 힘든 부자(親子)의 직감으로, 나가마사는 아버지는 히사마사가 쿄고쿠마루에 있을거라 확신하고 있었다.

여기서 책략조의 히데나가가 나카마루(中丸, ※역주: 독음이 츄우마루인지 나카마루인지 확실하지 않음)에서 합류해왔다.

나카마루를 지키는 아자이 가문 중신인 아자이 시치로 이노리(浅井七郎井規), 민타무라 사에몬노죠(三田村左衛門尉)、오오노기 시게토시(大野木茂俊) 등이 변절하여 히데나가의 무대를 들여보냈기에 피를 흘리지 않은 채 쿄고쿠마루에 도착했다.

히데요시의 군세는 쿄고쿠마루의 출입구인 방어시설, 코구치(虎口)를 공격하고 있었다. 그 좁은 넓이 때문에 숫자의 유리함을 살리지 못하여, 히데요시 측에도 많은 희생자가 나왔다.

합류한 히데나가는 책략의 경과 보고를 겸하여, 알아낼 수 있었던 정보를 히데요시에게 귀엣말로 전달했다.


"형님, 아카오(赤尾) 미마사카노카미(美作守)는 혼마루에 틀어박혔다고 합니다"


아카오 미마사카노카미 키요츠나(清綱)는 아자이 가문 중신 중의 중신이다.

아카오에 카이호 츠나치카(海北綱親), 아메노모리 키요사다(雨森清貞, 아메노모리 야헤에(雨森弥兵衛)의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음)를 더한 세 명은, 아자이 삼장(三将)으로 불리고 있었다.

히데요시는 아카오가 쿄고쿠마루 같은 중요 거점을 지키지 않고 혼마루에 틀어박혀 있는 이유를 생각했다.


"아마도 아자이 나가마사 님의 적자(嫡男)인 만푸쿠마루(万福丸)를 지키고 있는 것이겠지"


"과연…… 히사마사에게는 직계의 후계자, 나가마사 님이 이쪽에 붙었다고 해서 죽이거나 하지는 않겠죠. 분명히 열 살 정도의 어린아이, 차기 아자이 가문 당주로서 키우고 있다고 생각하면 이치에 맞는군요"


여기서 쿄고쿠마루를 함락시켜버리면 남은 혼마루는 벌거숭이가 된다. 하지만, 쿄고쿠마루와 혼마루 사이에는 폭이 약 25m나 되는 거대한 해자(大堀切)가 가로놓여있다.

히데요시의 진격을 막는 장애물이기도 하지만, 혼마루로부터의 원군이 달려오는 것도 불가능하게 하고 있었다.

히데요시는 턱에 손을 대고 금후의 방침을 생각했는데, 한 가지 묘안이 떠올랐기에 히데나가에게 명령했다.


"아카오에게 만푸쿠마루를 데리고 투항하면 오다니 성의 성주로 삼겠다고 타진해라"


"주상께 상의 없이 성주의 약속은 아무래도 독단이 너무 지나치지 않겠습니까?"


"상관없다! 오다니 성만 함락시킬 수 있다면 주상께서도 용서하실 것이다! 내가 출세할 수 있을지 아닐지의 갈림길(瀬戸際)이다! 어서 책략을 실행해라!"


"네에네에, 사람을 참 부려먹으시는군요 형님도"


히데요시의 기세에 히데나가는 어깨를 움츠렸다. 그들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 동안 쿄고쿠마루는 함락되었다.

병사들에게 조사하게 했으나, 히사마사 발견의 보고는 올라오지 않았다. 더 참지 못하게 된 히데요시는 먼저 혼마루를 함락시키기로 했다.


"수괴(首魁)인 히사마사는 혼마루에 있다! 쿄고쿠마루를 거점으로 하여 혼마루로 치고 올라간다!"


히데요시의 호령에 병사들이 함성으로 대답했다.




역사적 사실에서는 쿄고쿠마루의 북쪽에 위치하는 코마루에서 아자이 히사마사는 자결했다고 전해진다.

코마루는 히사마사가 은거한 후의 거처이며, 나가마사로부터 가문(家督)을 되찾은 히사마사는, 쿄고쿠마루가 공격받고 있다고 듣자마자 코마루에서 출진하여 쿄고쿠마루로 달려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쿄고쿠마루에서 히사마사가 발견되지 않은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아버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나가마사와 엔도(遠藤), 미타무라(三田村)는 쿄고쿠마루의 숨겨진 방에서 히사마사를 발견했으나, 숨겨진 방 자체가 발견되지 않은 것을 이용하여 그의 존재를 은폐했다.


"……왜 그러느냐, 내 목을 베지 않을 것이냐"


히사마사는, 이 상황에서도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아들을 괴이쩍다는 듯 올려다보았다.

이 자리에는 그 외에도 아자이 코레야스(浅井惟安, 후쿠쥬앙(福寿庵)이라는 별명(庵号)을 가진다)와 무악사(舞楽師)인 모리모토(森本) 츠루마츠타이후(鶴松大夫) 두 사람이 있었다.

이제 여기까지라고 각오한 히사마사는, 마지막으로 두 사람과 술잔을 나눈 후 자결하려고 하고 있었다. 그 직전에 나가마사가 숨겨진 방으로 들어선 것이다.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이제 아버님의 참수는 피할 수 없겠지요. 그렇기에, 저는 아버님의 진의를 여쭘고 싶습니다. 어째서 아버님은 완고하게 형님(義兄上)에게 계속 거역하신 것입니까? 타케다(武田)가 패했을 때, 지금부터는 오다의 세상이 될 거라고 생각하지 못하신 겁니까!?"


"그렇다. 타케다가 패했다고 듣고, 우리들의 시대는 끝났다는 것을 깨달았다. 시대에 뒤떨어진 아자이의 편을 들어 함께 멸망하는 것은 아사쿠라 정도일 거라고도 이해했다"


"그렇다면! 그 때 오다에 투항했다면……"


"그럴 수는 없다!"


나가마사의 말을 끊으며 히사마사가 말했다.


"그것만은 할 수 없는 것이다. 이 오우미(近江)는, 내가 롯카쿠(六角)의 침공을 막아내고, 얼마만큼 좌절과 쓴맛을 보면서도 지켜낸 나라다. 그걸 어떻게 생판 남에게 넘겨줄 수 있겠느냐"


나가마사의 질문에 대해 히사마사는 쥐어짜듯이 대답했다. 그는 필사적(一所懸命)이라는 말처럼, 그야말로 목숨을 걸고 오우미에 집착했다. 그렇기에 오우미를 넘기고 오다의 신하가 된다는 선택지를 선택할 수 없었다.


"물론, 이 결말은 예상할 수 있었다. 나는 용맹했던 돌아가신 아버지나, 전투에 능한 너와는 대조적으로 전투의 재능이 없었다. 아카오에게는 '천하태평한 세상이었다면 주군께서는 명군이 되셨겠지요'라는 말을 들었다. 뒤집어 이야기하면 난세를 살아남을 재주는 없었던 것이다"


히사마사는 처음부터 이해하고 있었다. 자신은 난세에 적응하지 못하고, 그럴 수 있는 것은 아들인 나가마사라는 것을.

히사마사는 나가마사가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오우미를 지켰으면 했다. 하지만, 나가마사는 오우미보다도 넓은 세계를 꿈꾸며 뛰쳐나가 버렸다.

고루한 노인(旧弊)으로 변한 자신은 그것을 인정할 수가 없었다. 아버지와 조상들이 사랑한 오우미를 포기할 수 없었다.


"이 오다니 성을 공격해들어온 무장…… 분명히 하시바(羽柴)라고 했더냐. 그놈의 맹렬한 진격을 보고 깨달았다. 이 성은 버티지 못할 것이라고. 그렇기에, 내 멋대로의 행동(我儘)에 마지막까지 함께하려고 한 가신들에게 자유를 명했다. 목숨을 아껴 도망치는 것도 좋고, 나와 함께 싸워 산화하는 것도 좋고, 살아남은 자들을 모아 적에게 투항하는 것도 좋으니, 마음대로 하라고 말이다. 아카오에게는, 그놈(※역주: 히데요시)이 책략을 부리면 그에 응하라고 명령해 두었다. 아카오에게는 네 적자인 만푸쿠마루를 맡겨두었지"


"만푸쿠마루가 살아있는 겁니까!"


"멍청한 놈! 이유도 없이 손자를 죽이는 사람은 없다. 만푸쿠마루에게는 아자이 가문을 맡길 생각이었다……"


히사마사는 나가마사를 일별했다. 격렬하게 대립하기는 했으나, 나가마사가 밉다고 손자를 죽일 정도로 노망이 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만푸쿠마루에게 다음 대의 아자이 가문을 맡기기 위해 당주로서 키워내려고까지 했다.


"하지만, 그것도 끝이다. 아자이 가문은 오다가 만드는 세상에서 배신자로서 이름을 남기겠지. 너도 이제 아자이라는 성을 쓰지 못할 것이다. 그렇기에, 아자이의 망령인 내가 모든 오명을 받아들이겠다!"


그렇게 소리높여 외친 후 히사마사는 나가마사를 떠밀어버렸다. 갑작스런 일에 낙법도 취하지 못하고 나가마사는 등부터 벽에 충돌했다.

폐의 공기가 밀려나와 기침을 하는 나가마사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고, 히사마사는 단도를 쥐더니 가로 일자로 배를 갈랐다.


"사루야샤마루(猿夜叉丸)야…… 너는 아자이에 얽매이지 말고 살거라……"


"아……, 아버님!!"


"아자이의 죄와 오명은 내가 짊어지겠다. 너는 내 목을 가지고 아자이의 종언(終焉)을 지켜보아라. 하지만, 죽는 것은 용서하지 않겠다. 누구에게 무슨 소리를 듣던, 너는 살아라"


"아버님……"


나가마사가 달려가기 전에, 아자이 코레야스가 카이샤쿠(介錯, ※역주: 할복하는 사람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목을 쳐주는 것)으로서 히사마사의 목을 베어 떨어뜨렸다. 히사마사의 머리가 바닥에 떨어졌다. 나가마사는 몸을 떨면서 히사마사의 머리를 소중하게 품에 안았다.


"아버님…… 저는 어리석었습니다. 오우미에 고집하는 아버님을, 시세(時世)를 읽지 못하는 고집불통 노인이라고 경멸하기까지 했습니다"


나가마사는 흘러넘치는 눈물을 닦으려 하지도 않고 펑펑 흐르게 내버려두었다.


"오우미는 할아버님, 아버님이 가신들과 피투성이가 되며 손에 넣은 땅. 롯카쿠를 상대로 대승한 것으로 우쭐해져, 오우미 한 나라에 그칠 그릇이 아니라고 자만하고 있었습니다.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그 승리도 아버님이 꾸준히 준비를 해오셨기에 가능했던 것……. 저는 정말로 불효자입니다"


나가마사는 히사마사의 머리에 대고 이야기했다.


"저는 결국 우물 안의 개구리. 조금 싸움에 능할 뿐인 범백(凡百)의 장수인데, 위대하신 형님의 눈에 띈 것으로 자신까지 특별해졌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저 자신은 아무 것도 변하지 않았고,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하였는데……"


나가마사는 이를 악물고, 흐르는 눈물을 거칠게 닦더니 뺨을 때리며 얼굴을 들었다.


"아버님의 마지막 말씀, 반드시 이루어 보이겠습니다. 흙탕물을 마시고 돌을 씹더라도 살아남아, 난세의 끝을 지켜보고, 저 세상에서 아버님께 들려드리지요"


나가마사는 히사마사의 머리에 서원(誓願)한 후, 그 머리를 소중히 천으로 감쌌다.




아자이 히사마사의 할복 후, 아자이 코레마사와 모리모토 츠루마츠타이후도 주군을 따라 할복 자결했다. 주군인 히사마사와 같은 장소에서는 감히 할 수 없다며, 뜰로 내려가서 배를 갈랐다.

나가마사가 직접 두 사람의 카이샤쿠를 맡고, 그들의 목을 엔도와 미타무라에게 맡겼다. 히사마사의 목은 자신이 들고 히데요시가 있는 곳으로 보고하러 갔다.


"히사마사는 자결했나. 혼마루도 곧 함락되겠지. 나가마사 님은 그 목을 주상께 전하러 가시오"


히사마사의 수급이 올라온 것으로 히데요시는 매우 기분이 좋았다. 스스로가 수급을 취할 필요는 없지만, 아자이의 멸망을 나타내기 위해 히사마사의 목은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이만"


나가마사는 히데요시의 명령을 받고 노부나가가 있는 본진으로 향했다. 도중에는 아무도 입을 열려 하지 않았다. 죽은 자도 산 자도 입을 다문 채 말없이 앞으로 앞으로 걸어가 본진에 도착했다.


"다들, 자리를 비우도록"


노부나가는 나가마사가 올려든 히사마사의 목을 보고 가신들에게 명령했다. 가신들은 적 대장의 목에 흥분하는 일 없이 숙연하게 진에서 나갔다.


"히사마사의 최후는 어땠느냐?"


"오우미의 국주(国主)에 어울리는 최후였습니다. 아버님과 마지막으로 대화해보고 스스로의 미숙함과 어리석음(不明)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형님께서 말씀하시는 장대한 꿈에 취해, 그 패도(覇道)의 진실(中身)을 보지 못했습니다"


"……"


"저로서는 도저히 형님과 나란히 설 수 없습니다. 아버님은, 매사의 표면만을 보고 이해했다고 생각하고 있던 제 눈을 뜨게 해 주셨습니다. 제가 그대로 오우미의 국주로 있었다면, 이곳에 목이 나란히 놓여있었겠지요"


자조를 떠올리며 나가마사는 말했다. 노부나가는 그 모든 말을 말없이 듣고 있었다. 아무 말 없이, 나가마사가 모든 것을 토해낼 때까지 기다렸다.


"저는 결국, 무엇도 될 수 없었습니다. 아자이는 아버님이 끝내셨습니다. 저는 그냥 나가마사로서 이 난세의 향방을 지켜보고 싶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천명(天命)을 가진다. 네 천명은 패도의 증인(見届け人)이었던 것 뿐이다. 나도 히사마사와 마찬가지로, 내가 사는 방법을 바꿀 수 없다. 자신을 고쳐 바라보고, 이제부터 무엇이든 될 수 있는 너를 부럽게까지 생각한다"


"설마요! 형님께서 저 따위를 부러워하시다니……"


노부나가의 말에 나가마사는 경악했다. 노부나가는 천하에 손이 닿을 거리에 있다. 천하통일을 눈앞에 둔, 무가(武家)에서 태어난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선망하는 위치에 있다. 그 노부나가가, 나가마사가 부럽다고 말한 것이다.


"나가마사여. 천하의 패도를 가는 자는 고독하다. 누구에게도 약점을 보일 수 없고, 누구에게도 마음을 허락할 수 없다. 수많은 쓰레기들(塵芥)로부터의 증오를 한 몸에 받고, 때로는 함께 걷는 가신들에게 죽음을 명할 필요가 있다. 모두의 목숨과 뜻(想い)을 맡은 이상, 나는 멈출 수 없다. 나아가는 길 끝이 낭떠러지라 해도 멈출 수 없는 것이다. 멈춰서서, 뒤돌아보고, 새로운 길을 걷기 시작할 수 있는 네가 부럽다"


그것은 나가마사가 갖지 못한 시점에서의 말이었다. 노부나가는 나가마사의 시선을 깨닫고는, 자조기미로 말을 이었다.


"너는 내 패도의 진실이 보이지 않는다고 했으나,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다. 내게는 네 주인인 시즈코가 말하는 미래에서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그 녀석은, 나보다 더욱 앞을 보고 있다"


"형님, 그것은……"


"하지만, 시즈코가 어떠한 높은 목표를 가지고 있던, 내 발걸음은 멈추지 않는다. 나는 먼저 일본을 손에 넣는다. 시즈코가 그리고 있는, 끝을 볼 수 없는 꿈(見果て)의 저편이 어디에 있던, 나는 나의 발걸음으로 걷는다. 너도 네 발걸음으로 쫓아와라. 나는, 먼저 꿈의 끝에서 너를 기다리고 있겠다"


완곡하기는 하나 노부나가는 나가마사를 배려하고 있었다. 싸움으로 가득한 난세의 끝을 목표로, 같은 길을 걷는 노부나가가 자신을 기다리겠다고 한 것이다.


"형님, 저는 어리석은데다 맥까지 빠졌던 모양입니다. 형님의 패도를 함께 걷는 것이 아니라, 길을 벗어나 방관자가 될 생각이었습니다. 저는 또다시 도망치려고 했던 것입니다. 형님의 말에 각오가 섰습니다. 아무리 꼴사납더라도, 이 목숨이 다할 때까지 계속 발버둥쳐, 형님의 발자국을 따라가겠습니다"


"그러냐…… 나가마사. 어엿한 무사의 표정이 되었구나. 내가 걷는 길은 험난하다. 각오하고 따라와라"


결연하게 얼굴을 든 나가마사에게 노부나가는 말했다.


"너는 나와 함께 끝까지 꿈을 꾸고, 이치(市)를 행복하게 할 책무가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라"




아자이, 아사쿠라 두 가문을 멸망으로 몰아넣은 노부나가는, 드디어 에치젠과 오우미를 장악했다.


"강북(江北) 아자이 옛 영토 전부(浅井跡一職進退)를 하시바 츠쿠젠노카미(筑前守)에게 일임한다"


"이치죠다니의 처리, 아케치 코레토휴우가노카미(惟任日向守)에게 일임한다"


북 오우미(北近江)는 히데요시가 다스리고, 에치젠의 일부는 미츠히데가 통치하게 되었다.

미츠히데는 이미 사카모토(坂本) 일대를 다스리고 있어, 그게 이유이기도 한지 에치젠의 지배지는 약간 작아졌지만, 이걸로 두 사람 모두 10만 석(石)이 넘는 영주(国人)가 되었다.

히데요시와 미츠히데는 모두 신참자(新参者)임에도, 오다 가문을 대대로 섬겨온 후다이(譜代)의 신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에 이르렀다.

한편, 시즈코는 지배는 없지만, 막대한 재화에 더해 고서(古書)나 예술품(芸術品) 같은 문물이 내려졌다.

아자이, 아사쿠라가 남긴 문물에 더해, 에치젠이나 오우미의 기술자들 등의 인재도 보수로 하사되었다.

논공행상도 큰 문제 없이 끝나고, 이후에는 귀국하기만 하면 될 터였다.


(뭐지, 이 상황은……)


시즈코는 자신이 놓인 상황을 보고,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시즈코는 자신의 진에서 오른쪽을 미츠히데와 그의 가신들에게 막혀 있었고, 좌측에는 히데요시의 그의 가신들에게 막혀 있었다.

두 유력자(雄)들에게 문자 그대로 샌드위치가 되어 시즈코는 탄식했다. 그들은 쿠로쿠와슈(黒鍬衆)를, 나아가서는 시즈코의 후방지원부대에 협력을 요청하려고 했다.

이 시대, 자신의 지배지에는 거점이 되는 성을 짓는다. 이것은 그 땅을 다스리는 지배자를 명확히 하고, 내외에 오다 가문의 세력권 안이라는 것을 알리는 시위행위이기도 했다.


"실은 전부터 댁(お前様)이 마음에 안 든다고 생각했지"


"핫핫핫, 그거 이상한 우연이군요. 저도 그렇습니다"


시즈코를 끼고 히데요시와 미츠히데는 서로 견제해댔다. 이 무렵 쿠로쿠와슈는 석공(石工) 집단인 아노우슈(穴太衆)도 받아들여, 성곽 건축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존재가 되어 있었다.

지금까지는 좋게 말하면 투박(無骨)한, 나쁘게 말하면 실용 일변도의 성을 건축했었다. 그러나, 사카모토 성(坂本城)의 건축에서 실용성은 유지하면서 미관도 겸비하게 되었다.

숙련된 기술이 승화된 결과인데, 사카모토 성은 아름다운 성으로서 일약 천하의 이목을 모았다. 그 이래로, 지배지에 세우는 성은 지배자의 얼굴로서 아름다움도 요구되게 되었다.


히데요시도 미츠히데도 모두 자신의 힘을 과시할 필요가 있다. 특히 히데요시에게는 첫 성이 된다. 건축에 들이는 기합은 미츠히데보다도 강하다. 그렇다고는 해도, 미츠히데도 에치젠에는 보통이 넘는 집착이 있었다.

미츠히데에게 에치젠은 아사쿠라 요시카게 밑에서 10년을 지냈던 땅이기도 하다.

지정학적인 우위성을 이야기하자면, 동해(※역주: 원문은 日本海)에 접한 에치젠은 츠루가 항구(敦賀港)를 가지기에 동해 주변의 해운(海運)의 요충지로서 주목받고 있었다.

츠루가 항구의 권익 자체는 노부나가가 장악하더라도, 해로에서 육로로 이어지는 도로를 장악하면 얻을 수 있는 권익은 막대하다. 미츠히데에게 에치젠은 경제적으로도 중요한 땅이 된다.


(곤란하네……)


히데요시와 미츠히데 모두 서로 한 발자국도 물러설 기색이 없었다. 제아무리 쿠로쿠와슈라고 해도 한 번에 두 개의 성을 지을 수는 없다.

무리하게 인원을 쪼개봤자 우열(優劣)이 발생하게 되고, 떨어지는 쪽의 축성을 허용할 수 있는 두 사람이 아니었다.


(하다못해 한 달만 더 시간이 있으면……)


한 달이 지나면, 도로 정비를 담당하던 쿠로쿠와슈의 태반이 일을 마치고 돌아온다. 하지만, 어느 족도 한 달이나 기다린다는 끈기가 필요한 이야기를 받아들여주지 않았다.


"시즈코! 아직 진에 있었느냐, 마침 잘 되었다"


시즈코가 골머리를 썩히고 있을 때, 거친 발소리와 함께 노부나가가 진으로 들어왔다. 그는 주위를 휙 둘러보더니 상황을 파악하고는 그대로 시즈코에게 말을 걸었다.


"북 이세(北伊勢)가 소란스럽다. 진압하러 키묘(奇妙)를 보내기로 했다. 시즈코에게는 그 녀석의 보좌를 맡기겠다"


"옛"


기가 막힌 타이밍(渡りに船)에 시즈코는 냉큼 달라붙었다.


"거기 둘. 성은 도망가거나 하지 않는다. 쿠로쿠와슈가 없어도 진행할 수 있는 준비는 있겠지. 인력(人手)을 보내줄테니, 준비를 하고 쿠로쿠와슈를 기다려라"


"예, 옛!"


할 말을 다 하자 노부나가는 가버렸다. 톱의 의사 결정이 이루어지면, 이후에는 그에 따라 조용히 진행할 뿐. 시즈코는 북 이세를 진압하면 그대로 귀국할 수 있겠다고 기뻐했다.

축성에 필요한 건축자재의 수배로 두 사람이 다시 으르렁거리기 전까지는.




히데요시와 미츠히데의 대립에 말려들어 정신적으로 피로함을 느끼면서도 시즈코는 두 사람을 잘 다독이는 데 성공했다. 두 사람이 새로운 불씨를 찾아내기 전에, 시즈코는 얼른 노부타다(信忠)를 따라 북 이세로 향했다.


"북 이세의 말썽꾸러기(跳ねっ返り) 놈들, 한꺼번에 밟아주겠다"


노부타다(키묘마루(奇妙丸))는 아주 기분이 좋았다. 아사쿠라 공격도, 아자이 공격도 전선에 설 수 있었던 건 초반 뿐으로, 그 이후에는 후방에서 손가락을 빨며 구경할 수밖에 없었다.

쌓이고 쌓인 울분을 북 이세에서 발산시키려는 속셈이었다. 나이가 젊고 공을 지나치게 서두른 나머지 성과를 내지 못했지만, 노부타다에게는 선견지명이 있었다.

예측하지 못한 사태에 대한 재치(機転)도 뛰어나, 명장의 그늘에 가려지는 경우가 많았지만 서서히 두각을 드러내고 있었다.


"입만 산 놈들 같으니. 자기 뒤도 제대로 못 닦는 거냐"


눈 깜짝할 사이에 북 이세를 진압하고 기후(岐阜)로 돌아가는 길에 노부타다가 투덜거렸다. 이세에 관해서는 노부나가의 차남인 노부카츠(信雄)와 3남인 노부타카(信孝)가 지배하고 있었다.

하지만, 앞서 노부나가로부터 도로 정비의 허술함을 추궁받아서 다른 모든 것을 내던지고 정비를 추진한 결과, 일향종의 암약에 의한 폭동을 선동당해버렸다.

또다시 실책를 보인 두 사람에게 노부나가는 진압을 명하지 않고, 노부타다를 파견하게 되었다.


"대장이 직접 돌격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뭐든지 처음이 중요한 거다"


시즈코의 쓴소리에 얼굴을 찡그리며 노부타다는 대꾸했다. 북 이세에 도착한 노부타다는, 전황을 파악하자 기마 부대만을 이끌고 적의 중심부라고 간주된 집단을 단숨에 박살냈다.

노부타다의 수읽기는 정곡을 찔러, 반란은 주도자를 잃고 붕괴했다. 하지만, 자칫 잘못하면 적진 속에 고립되어서 전사했을 가능성도 있었기에, 가신들은 살아도 산 것 같지가 않았다.

가신들이 입아프게 노부타다에게 쓴소리를 했기에, 노부타다도 옹고집이 생겨 듣지 않겠다는 태도가 되어버려, 감시역(お目付け役)인 시즈코가 나서야 하게 된 것이다.


"뭐, 괜찮지만"


시즈코에게까지 잔소리를 듣자 아무리 노부타다라도 반성의 빛이 보이기 시작했을 때 전령이 달려왔다. 노부나가로부터의 명령인가라고 생각한 시즈코는, 노부타다에게 말해 전군을 정지하게 했다.

전령에게서 서신을 받아들도 노부타다와 함께 내용을 확인했다.


"이번에는 에치고(越後)인가……"


"음, 뭐냐? 우에스기가 배신하기라도 했다는 거냐?"


"아냐. 우에스기에 기술 공여를 할 것이니 그 회담에 참가하라는 이야기야. 으ー음, 너는 관계없으려나? 응, 직접적으로는 관계없네. 어쨌든 일단 오와리(尾張)로 돌아가서 군을 재편성해야겠네"


"이대로 기후에서 가면 되는 것 아니냐"


"군사행동은 계획을 바탕으로 움직이니까, 마음대로 성의 물자를 쓸 수는 없어. 에치고로 갈 계획을 다시 짜야 해. 그리고 며칠 정도 쉬고 싶어……"


"그런 거라면 어쩔 수 없군. 하지만, 북 이세 진압 축하 연회에는 나와라"


"여유가 있으면"


그 후에는 딱히 아무 일도 없이 그들은 기후에 도착했다. 이튿날 아침 일찍부터 노부타다가 시즈코 저택을 습격하여 억지로 축하 연회 자리로 끌고나간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싸움은 시작하는 것보다 끝낸 후가 힘들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시즈코였다. 그녀는 오와리로 귀환하자 군을 해산시키고, 목욕탕에 들어가 여행의 피로를 풀었다.

목욕탕에서 나왔을 때 쇼우(蕭)와 마주쳤다. 기막힌 타이밍이라 말하듯, 에치고의 우에스기를 방문할 때 가져갈 토산품(土産)을 수배해달라고 부탁했다.

예의범절(礼儀作法)에 대해서는 노부나가에게 집중 교육을 받았지만 어차피 벼락치기였기에, 태어나면서부터 무가의 딸인 쇼우에게 맡기는 편이 좋다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잘 알겠습니다. 맡겨 주십시오"


쇼우가 토산품을 건넬 상대와 선물을 물건을 고르는 동안, 시즈코는 짧은(束の間) 자유를 만끽했다. 아무리 우에스기 가문이 신하로 들어왔다고 해도, 여전히 오다 가문에 복종하는 것을 좋게 생각하지 않는 자들은 많다.

그것을 잘 알면서 시즈코를 에치고로 보내는 이유는 무엇인가. 대답은 단순하고 명쾌하다.

우에스기가 청한 빈객(賓客)인 시즈코에 대해 어떠한 불상사(不手際)가 있을 경우, 그것은 우에스기에게 큰 과실이 된다. 우에스기 가문 내부의 인사에 간섭당해도 켄신(謙信)으로서는 감수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미끼로서 생각하면 시즈코는 적임이었다. 가장 먼저 우에스기 가문이 초빙할 정도의 기술력을 가지고 있으며, 노부나가의 대리인(名代)으로서 부끄럽지 않은 신분이 있는, 집안도 실적도 흠잡을 데 없지만 여자이다.

상대에게는 얕보기 쉽고, 적의를 보이기 쉽다. 그런 상태에서 예측하지 못한 사태에 즉시 대응하여 무사히 돌아올 수 있는 인재라고 하면 시즈코 이외에는 있을 수 없었다.


(맙소사, 상대를 위축시키지 않는 범위에서, 또한 예측하지 못한 사태에 대응할 수 있는 인원수라)


꽤나 까다로운 임무라고 시즈코는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시즈코로서는 거절하기는 커녕 바라던 바였다. 문제의 싹은 커지기 전에 뽑아버리는 게 가장 좋다. 이것은 농업에 대한 시즈코의 지론이기도 했다.

시즈코는 크게 의욕을 보이고 있었으나, 사절단의 진용을 알게 된 노부나가가 제동을 걸었다.

'정치가 관계되는 교섭 자리에 밀고 당기는 응수를 하지 못하는 네가 가지 마라. 아시미츠(足満)를 대리인으로 보내라'는 지시였다.

기합을 넣었던 만큼 김이 샌 기분이 든 시즈코였으나, 자신이 가지 않아도 아시미츠가 특유의 후각으로 나쁜 싹을 뽑아 줄거라고 생각을 고쳐먹었다.


아시미츠와 함께 협의한 결과, 에치고에는 아시미츠가 병사 3000을 이끌고 가게 되었다.

단, 기술지도를 할 사관(士官) 이외의 텟포슈(鉄砲衆)는 전부 두고간다. 텟포슈는 적은 인원으로도 위협적이라, 쓸데없이 에치고의 불안을 부채질하는 것을 막기 위한 판단이었다.

켄신이 동원할 수 있는 병력은 1만 정도이며, 켄신 이외의 가신들이 독단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병력은 많아봤자 1000을 약간 넘는 정도일 것이다.

켄신이 배신하면 제아무리 아시미츠라도 끝장이지만, 그 경우에는 에치고에 숙청의 태풍이 몰아친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반란에 가담한 일족은 모조리 몰살을 당하게 된다.

노부나가는 면종복배(面従腹背)로부터의 배신을 대단히 싫어한다. 다음 지배자가 누가 되던, 어리석은 지도자를 섬긴 에치고의 백성들은 길고 괴로운 시련을 강요받게 된다.


"이렇게 되었으니, 미안하지만 내 대리로 에치고에 가줄 수 있겠어요?"


"시즈코의 부탁이라면 거절할 수 없지. 잘 알았다"


시즈코의 긴한 부탁이라고 하면 아시미츠에게 거부는 없었다. 켄신이 시즈코를 신경쓰고 있는 것을 알고 있는 그는, 시즈코가 직접 에치고로 가는 사태는 회피하고 싶었다.

대놓고 이야기하지는 않지만 노부나가도 같은 의견이며, 아시미츠는 그의 속셈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유일하게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은 사키히사(前久)였으나, 그의 경우에는 시즈코가 에치고로 간다면 자신도 동행할 생각이었다.


"기술 공여를 해봤자 사람이나 물자의 교유가 없으면 시작되질 않아요. 우선은 도로가 정비되어야 처음으로 구체적인 계획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걸 중심으로 이야기를 하고 와 줄래요? 언젠가는 영토 내에서 통용될 화폐 이야기도 하고 싶지만, 아무래도 시기상조겠지요"


"도로정비만으로 문제없겠지. 제설 도구나 융설제(融雪剤) 이야기만 해도 우에스기 입장에서는 목구멍에서 손이 나올 정도일 것이다"


"유리 제품의 소재로서 컬릿(cullet)을 만들 때 염화칼슘(calcium chloride)이 부산물로 산더미처럼 병산(併産)되니까요. 괜찮을 거라 생각하지만, 충분히 주의해줘요. 켄신 자신은 신용할 수 있어도, 가신들이 야심을 품지 않았다는 법은 없으니까요"


"충분히 주의하지. 내가 자리를 비운 동안, 시즈코는 사나다(真田) 가문의 동향에 주의해라. 놈들, 슬슬 집안싸움(内輪もめ)에 박차가 가해지기 시작했지. 머지 않아 내란이 벌어질 가능성까지 있다"


"일단 간자를 통해서 듣고는 있는데, 친 타케다 파(親武田派)와 오다로 갈아타는(鞍替え) 파벌이 대립하고 있는 모양이네요. 계속 상황을 보겠지만, 그쪽으로 연락이 가면 보호를 부탁해요. 적대한다면 용서는 필요없어요"


"이제와서 적대한다면 그런 놈들의 미래는 뻔하다"


사나다 가문은 완전히 둘로 갈라져 있었다. 지금은 나는 새를 떨어뜨릴 기세의 오다 가문으로 갈아타려는 혁신파(革新派)와, 신겐(信玄)으로부터의 은혜를 원수로 갚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친 타케다의 보수파(保守派)로 갈려 있었다.

혁신파가 세력을 얻은 이유로서, 스와 카츠요리(諏訪勝頼)의 억지 징세에 의한 점이 컸다.

신겐의 시대에도 시장에 대한 화폐의 공급 부족 때문에 화폐 가치의 상승을 초래하여, 결과적으로 물가의 하락에 제동이 걸리지 않게 되었다.

그 상황에서, 카츠요리가 추가적으로 징세 때의 화폐 기준을 조였기 때문에 급격한 디플레를 초래해 버렸다.

노부나가의 지배지 이외에서는 일정한 기준을 두고 그것을 통과한 아전(鐚銭)이라면 징세에 사용할 수 있게 하고 있었다. 하지만, 카츠요리는 신겐의 방침을 이어받아, 정전(精銭) 이외의 것으로의 납세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 떄문에, 급격하게 시장에서 화폐가 고갈되어, 지금까지의 두 배는 되는 기세로 디플레가 진행되었다.

카츠요리에게는 규제 완화를 요구하는 탄원서가 끊임없이 도착했으나, 그는 그 모두를 묵살하고 있었다.


"먼저 참을성이 바닥나는 것은 친 타케다 파겠지. 설령 불안요소(獅子身中の虫, 우에스기)와 손을 잡는다 쳐도, 사나다 가문 당주가 전쟁터에 나오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은 무토 키헤에(武藤喜兵衛)가 아니라 사나다 마사유키(真田昌幸)였던가요? 그는 승산이 있다는 걸 알게 되면 이쪽의 계책을 즉시 채용할 정도로 유연하니까, 어쩌면 뭔가 상대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행동을 취할지도 모르겠네요. 나로서는 어서 이쪽으로 와줬으면 하는데 말이에요. 여차할 때는 잘 부탁해요"


"뭐, 좋은 소식은 자면서 기다리라고 하잖느냐? 기대하지 말고 기다려다오"


그다지 내키지 않는 태도를 보이며 아시미츠는 떠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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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

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겐키(元亀) 4년 무로마치 막부(室町幕府)의 종언(終焉)


109 1573년 8월 중순



시즈코의 노림수대로, 아케치(明智) 군의 후방을 시즈코 군 본대가 따라가고, 시즈코와 용기병(竜騎兵), 호위들만이 미츠히데(光秀)와 함께 행동하는 모양새로 아사쿠라(朝倉) 군을 추격하게 되었다.

서로 함께 싸워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쓸데없는 혼란을 피하기 위해 앞뒤로 나누어 배치했다는 것이 미츠히데의 말이었으나, 이 상황으로 몰아넣은 전공은 아케치 군에 있다고 노부나가가 인정하고 있으니, 전공을 얻을 기회은 우선적으로 주어지는 게 마땅했다.

그러나, 이 포진도 시즈코의 입장에서는 좋았다. 기세에 탄 이긴 싸움이라고는 해도, 백병전이 되면 병사의 소모는 피할 수 없다.

이미 승패가 결정된 소화 시합(消化試合)에서 약간의 공만을 세우기 위해 고심해 키워낸 병사를 소모하고 싶지는 않았다.


맹렬하게 추격하는 아케치-시즈코 군이었으나, 에치젠(越前)과 오우미(近江)의 국경 부근에서 그 발이 멈추었다. 길이 두 갈래로 갈라져서, 아사쿠라 군이 어느 쪽 길로 갔는지 판단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역사적 사실에서는 요시카게(義景)가 토네사카(刀根坂)를 통해 히키다 성(疋壇城) 쪽으로 갔다고 하지만, 이미 역사적 사실과는 다른 길로 나아가고 있었기에 역사적 사실대로 토네사카를 선택했다고 단언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지면에 남은 발자국으로 판단해보려고도 했으나, 양쪽 길 모두 많은 사람들이 지나갔다고 생각되는 무수한 새로운 발자국이 남아있어 판단의 재료가 되지 못했다.


(전술적으로 생각해도 역사적 사실대로 히키다 성과 츠루가 성(敦賀城)이 있는 토네사카 방면을 선택할 거라 생각되지만, 궁지에 몰려 길을 잘못 들었을 가능성도 있지)


신들린 듯 날카로운 감각을 보이는 노부나가가 없는 이상 대장인 미츠히데가 판단을 내려야 하지만, 그는 아직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귀중한 시간을 덧없이 소모하고 있던 그 자리에, 잡병(雑兵)들의 공포에 질린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적의 공격(敵襲)인가 하고 경계하기도 했으나, 곤혹스러운 분위기가 있을 뿐 전투의 기색은 없었다.

병사들의 바다를 헤치듯 하며 다가오는 사람 모습이 보이고, 그것은 말에서 내리더니 무기를 말에 기대어 세워놓고 맨손으로 걸어왔다.


"여어! 이런 데서 언제까지 밍기적대고 있는 거야?"


귀에 익은 목소리에 미츠히데나 시즈코도 어꺠의 힘을 뺐지만, 상대가 다가옴에 따라 그 비정상적인 모습이 뚜렷하게 드러났다. 목소리의 주인은 에치젠으로 가는 지름길인 츠바키자카(椿坂)로 통하는 길에서 나타난 나가요시(長可)였다.

하지만, 그 풍모는 다가올수록 농밀해지는 피냄새와, 아직도 김을 풍기고 있는 피와 기름기(血脂)로 번들번들 빛나는 갑주에 의해 거의 사람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머리부터 피와 내장을 뒤집어쓴 것 같은 꼴을 보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말을 잃고 입을 열지 못하고 있었다.


"안타깝지만, 아사쿠라 군 본대는 이쪽을 선택하지 않은 모양이야"


자신의 뒤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나가요시는 대담하게 웃었다.


"아사쿠라 군은 츠바키자카 쪽으로는 가지 않았다고 봐도 틀림없겠나?"


미츠히데가 확인을 겸해 못을 박았다. 나가요시는 전의로 고양된 흉상(凶相)을 떠올리며 단언했다.


"'이곳을 지나간 아사쿠라 병사는 없다'"


본인의 말대로 아사쿠라 군 본대는 아니라고 해도, 적지 않은 사람 숫자의 발자국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가요시는 단언했다.

지금도 갑주에서 흘러내리는 적의 피와, 그가 남긴 시뻘건 발자국을 보고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적은 츠바키자카가 아니라 토네사카를 통해 철수하고 있을 것이다. 아군의 성으로 도망쳐 들어가기 전에 추격한다!"


판단의 재료를 얻은 미츠히데는 망설이지 않았다. 지금은 한시라도 빨리 아사쿠라 군을 따라잡을 필요가 있다. 미츠히데의 호령을 들은 아케치 군은, 대열을 정비하고 토네사카를 향해 전진하기 시작했다.


"수고했어. 그 폭풍우 속에서 용케 앞질렀네"


노부나가가 오오즈쿠 성(大嶽城)을 공격하고 있었을 때, 케이지(慶次)와 나가요시는 직속 부하들을 이끌고 아사쿠라 군의 진을 돌파하여 배후로 빠져나갔다.

야간의 폭풍우 때문에 보초가 줄어들어 있었다고는 해도, 들키면 포위되어 섬멸당했을 결사의 행동이다.

보기좋기 아사쿠라의 감시를 돌파하여, 그들은 이 분기점에 먼저 도착했다. 하지만, 그들도 여기서 시즈코와 같은 명제에 골머리를 썩게 된다.

둘 중 하나에 걸고, 츠바키자카 안쪽에 진지를 구축하고 매복했다.

아깝게도 당첨되지는 않아서, 그들은 본대에서 낙오된 병사들을 모조리 쓰러뜨리고, 추격해올 아군에게 올바른 루트를 알려주기 위해 합류했던 것이다.


궤주(潰走)하고 있는 아사쿠라 군이 볼 때는 나가요시와 마주쳤을 때의 절망감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으리라.

배후에서 맹렬하게 추격해오고 있을 오다 군이 전방에도 나타났다. 앞으로 가도 지옥, 뒤로 돌아가도 지옥이라면, 이라고 생각하여 전방 돌파를 꾀한 병사들은 모조리 목숨을 잃었다.

냉정하게 피아의 전력차를 비교할 수 있었다면 자군 쪽이 우세라고 이해할 수 있었겠지만, 공황 상태에 빠진 병사들은 무구를 내던지고 도망쳤다.

후방으로 도망치려고 하는 선두 집단과, 쫓겨서 필사적이 된 후방 집단이 격돌하며 그들의 혼란은 정점에 달했다.

아군끼리조차 싸우기 시작한 아사쿠라 군을 상대로, 케이지나 나가요시들은 개수일촉(鎧袖一触)의 승리를 거두었다.


"지금부터 아사쿠라 군 본대를 칠 건데, 올 거야?"


원래는 시즈코도 미츠히데와 함께 이동해야 하지만, 나가요시들에게 다음 지시를 내릴 필요가 있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그들에게는 각자의 재량으로 움직이는 것이 허용되어 있었다.


"간다, 라고 말하고 싶지만, 아무래도 피곤하네. 나는 괜찮아도 병사들이 피로에 지쳤어. 나와 케이지들은 병사들을 데리고 일단 본진으로 돌아가겠어. 너는 아사쿠라를 확실히 멸망시키고 와"


"알았어. 습격해 오는 아사쿠라 병사는 없을거라 생각하지만, 일단 조심해"


"어. 길게 휴식을 취한 후에 전원 다 같이 이동하겠어. 뭐, 아사쿠라 병사를 발견하면 패죽여놓을게"


"적당히 해"


그렇게 말하고 시즈코는 말머리를 돌려 떠나갔다.

그녀가 떠난 후 잠시 간격을 두고, 이윽고 케이지들이나 나가요시의 병사들도 따라붙었다. 그들도 나가요시 정도는 아니라 해도 전신을 적의 피로 새빨갛게 물들이고 있었다.


"어이쿠, 조금 늦었나. 뭐, 이쯤에서 휴식한 다음 진에 돌아가서 잘까"


"아무래도 피곤하네. 어차피 도망칠 거면 에치젠까지 단번에 도망칠 거라 생각했는데"


"예측이 빗나겠네. 잡병들 뿐이었고 본체는 반대로 향한 거겠지"


"다음이 있아면 이번엔 놓치지 않아"


서로 그런 말을 나누면서 그들은 자기 진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그들은 깨닫지 못했다. 깃발(旗印)조차 새빨갛게 물들어 적인지 아군인지 판별할 수 없는 피투성이 군단이 다가왔을 때, 진을 지키는 병사들이 어떤 행동을 취할지를.

공격할 기색도 없고 천천히 다가오는 피투성이 집단을 괴이쩍게 여긴 위협사격을 받게 되자 처음으로 깃발의 참상을 깨닫고, 예비의 것과 교체하는 것으로 간신히 아군끼리 싸우는 상황을 회피할 수 있었다.


한편, 미츠히데와 시즈코는 아사쿠라 군을 쫓아 밤의 어둠을 질주하고 있었다.

배후에서 시시각각 다가오는 군세에 퇴각을 포기한 야마자키 나가토노카미(山崎長門守) 등, 몇 안되는 무장들은 몇 번인가 반전하여 오다 군에게 과감하게 덤벼들었다.

이 결사의 반격에는 제아무리 아케치 군이라도 발을 멈추고 응전하여, 본대의 추격이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계속 쫓기며 소모될 대로 소모된 후위(殿軍)로는 기세를 타고 있는 아케치 군을 당할 수 있을 리가 없어, 결국 야마자키도 전사했다.


후위가 문자 그대로 목숨을 걸고 벌어낸 시간도 허무하게, 아사쿠라 군이 토네사카의 중간 쯤에 걸쳤을 무렵, 시즈코 군은 드디어 그 꼬리를 물어뜯었다.

그들을 격파하면 남는 것은 요시카게와 얼마 안 되는 병사들 뿐이다.

하지만, 썩어도 마지막까지 요시카게를 따른 가신들은 침착했다. 이제 철수는 불가능하다고 알게 되자 반전하여 시즈코들을 거꾸로 물어뜯으려고 덮쳐왔다.


"2식(弐式) 관탄(관통탄(貫通弾))을 장전. 신호와 함께 일제 발사하라"


시즈코는 신겐(信玄)에게서 물려받은 지휘부채(軍配)를 하늘높이 들어올렸다. 진로가 제한되는 외길(一本道)이라는 것은, 신식총의 특수 탄종의 관통탄 및 산탄이 가장 효과를 발휘하는 지형이다.


"일제 발사!"


지휘부채가 휘둘러내려짐과 동시에 뇌명(雷鳴)과 닮은 총성이 울려퍼졌다. 2식 관탄은 인체를 상대로도 그 관통력을 유감없이 발휘하여, 예상 이상의 전과를 올렸다.

총탄이 관통했기에 즉사는 면했으나, 최전열에 부상병의 산이 생겨나고, 그 뒤에 시체의 산이 쌓여졌다.

시체의 산은 마음을 독하게 먹고 밟고 넘는다 해도, 부상자를 밟아죽이는 것은 쉽지 않다. 필연적으로 돌격은 기세를 잃고, 아사쿠라 병사들은 최후의 기회를 놓쳐 버렸다.


일순 주저했으나, 시즈코는 고개를 흔들어 망설임을 떨쳐내고 추가 소사(掃射)를 명령했다. 다시 굉음과 함께, 경단(団子) 모양으로 뭉쳐 있던 집단이 풀썩풀썩 쓰러졌다.

완전히 기세를 잃은 아사쿠라 군에게, 미츠히데가 이끄는 주력부대가 덮쳐갔다.

과연 미츠히데의 주력부대라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격류를 역행하는 물고기처럼 적병을 짓밟고 찢어발기며 전선을 밀어올렸다.

사기에 더하여 병장(兵装)도 숙련도도 앞서는 아케치 군은, 닥치는 대로 적진을 난도질했다. 아사쿠라 군은 정면에서 물어뜯겼고, 무장들도 빗의 이빨이 나가듯 전사해갔다.


토네사카 전투에서, 아사쿠라 군은 아사쿠라 미치카게(朝倉道景)나 키타노(北庄) 성주(城主) 아사쿠라 카게유키(朝倉景行) 등 일족들(一族衆), 야마자키 요시이에(山崎吉家)나 카와이 요시무네(河合吉統) 등 유력 무장까지 잃어, 아사쿠라 군의 중핵을 구성하는 부대는 괴멸 직전의 상태였다.

후의 수급 확인(首実検)에서 판명되는데, 예전에 노부나가에게 함락된 이나바 산성(稲葉山城)의 예쩐 성주인 사이토 타츠오키(斎藤龍興)도 이 싸움에서 목숨을 잃었다.


이 싸움에서 요시카게를 본 사람은 없었고, 아케치 군과 시즈코 군은 사전에 정한 대로 약간의 병력만을 남기고 주력부대는 요시카게를 쫓았다.

목표는 요시카게 뿐이라는 의견이 일치한 미츠히데와 시즈코는, 최소한의 휴식조차 아끼며 추격했다.

이 신속(神速)이라 해야 할 행군 덕분에, 히키다 성으로 도망쳐 들어간 요시카게는 이치죠다니(一乗谷)로 가지 못하고 포위되었다.


직접 전투를 하지 않은 시즈코 군의 후방지원부대는, 도착하는 것과 동시에 이치죠다니로 통하는 길과, 비와 호(琵琶湖) 쪽으로 빠져나가는 길 양쪽을 완전히 봉쇄했다. 포위의 완성을 기다려 미츠히데가 책략(調略)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가 적에게 전한 내용은 '요시카게가 항복한다면 가신들도 함부로 다루지는 않겠다. 다만, 이 단 한번의 권고를 거부하고 항전을 선택할 경우, 여자고 어린아이고 가리지 않고 모두 죽이겠다'였다.

공성에는 시간과 많은 병력을 필요로 한다. 증원이 오지 않는 절망적인 농성을 하고 있는 아사쿠라 군에게는, 힘으로 공격하기보다 공갈을 포함한 책략 쪽이 효과적이라고 미츠히데는 생각했다.


그리고, 그 효과는 즉각적이었다. 성에서 보이는 범위를 시즈코 군에게 맡기고, 아케치 군이 배후에서 많은 군기를 내걸고 실제 숫자보다 많아 보이게 한 결과, 아사쿠라 군의 전의는 꺾였다.

거의 시간을 끌지 않고 아사쿠라 요시카게, 요시카게의 측근인 토리이 카게치카(鳥居景近), 타카하시 카게아키라(高橋景業), 히키다 성 성주 히키다 로쿠로사부로(疋壇六郎三郎) 등이 성문에서 나왔다.

요시카게 본인은 성 안에서 할복할 생각이었는지, 갑주를 몸에 걸치고 있지 않았다. 노림수대로 요시카게를 산 채로 붙잡을 수 있었던 것에 시즈코는 휴 하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사쿠라 가문 당주(当主), 아사쿠라 사에몬노카미(左衛門督) 님으로 보입니다만, 틀림없습니까?"


초췌한 나머지 인상(人相)조차 변해 있었기에, 미츠히데가 만약을 위해 확인했다. 요시카게는 체념한 표정을 떠올리면서도 똑바로 미츠히데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 본 미츠히데는 시즈코에게 눈짓을 했다.

시즈코는 말없이 큰 지휘부채를 휘둘렀고, 그에 맞춰 성을 포위하고 있던 시즈코 군은 포위를 풀고 시즈코의 등 뒤에 정렬했다. 길을 봉쇄하고 있던 사람들도 봉쇄를 해제하고 돌아와 있었다.


"약속대로, 포위는 해제했습니다"


미츠히데의 선언과 함께, 따라붙어 있던 시즈코 군 본군은 아사쿠라 병사들의 무장 해제와 철수 준비를 개시했다.

그 후에는 이치죠다니 성(一乗谷城)만 남았지만, 당주인 요시카게가 항복한 이상, 이미 그들에게 저항할 수 있는 힘은 없었다.

미츠히데는 오다 군에게 히키다 성에서의 무장 해제와 개방을 맡기고, 이치죠다니 성으로 향할 군을 재편성했다.

광대한 성시(城下町)를 품은 이치죠다니 성으로 한꺼번에 몰려가서 잡병들이 폭주해버리면 답이 없기에, 확실히 통제할 수 있는 인원을 선발할 필요가 있었다.


"코토쿠인(高徳院)만 포박할 수 있다면 에치젠은 함락된 거나 마찬가지다"


코토쿠인이란 요시카게의 어머니의 이름이다. 그밖에도 코쇼쇼(小少将)나 요시카게의 차남인 아이오마루(愛王丸) 등 요시카게의 혈족을 포박하면 아사쿠라 가문은 멸망한 것과 마찬가지가 된다.

하지만 시즈코는 그런 인물들보다 요시카게의 딸 요히라(四葩)를 최중요 인물로 생각하고 있었다. 역사적 사실에서는 그녀는 이치죠다니에서 도망쳐, 그대로 이시야마(石山) 혼간지(本願寺)로 도망쳐 들어갔다.

그리고 예전부터의 약정대로, 혼간지 켄뇨(顕如)의 장남인 쿄뇨(教如)와 결혼했다고 한다.

그 후, 켄뇨와 쿄뇨에 대해 요히라가 어떤 이야기나 부탁을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1년 후에 에치젠에서 잇코잇키(一向一揆)가 발발한다. 이 때, 노부나가에게 변절했던 아사쿠라 가문의 대부분이 사망(討ち死に)했다.


"아케치 님, 잠시 괜찮으시겠습니까?"


시즈코는 이치죠다니로 갈 준비를 하고 있는 미츠히데에게 말을 걸었다. 미츠히데는 연전에 의한 피로를 보이지 않고 시즈코 쪽을 돌아보았다.


"실은, 상담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시즈코는 이곳에 올 때까지 생각하고 있던 것을 미츠히데에게 털어놓았다. 처음에는 놀라던 미츠히데였으나, 시즈코의 이야기를 다 듣자 턱에 손을 대고 생각에 잠겼다.


"……확실히 그 쪽이 좋겠지요. 주상께서도 다기(茶器)를 손에 넣기 위해서, 라고 하면 불태우지 않아도 탓하시지는 않으시겠지요"


시즈코의 이야기란, 역사적 사실에서 벌어진, 이치죠다니를 불태우는 것을 늦추는 것이었다.

이치죠다니에는 많은 문화재나 역사적으로 귀중한 자료들이 남아 있다. 현대에서도 불탄 흔적에서 다기가 출토되고 있기에, 당시부터 많은 다기가 존재하고 있었다고 추측된다.

본심을 말하자면 문물(文物)의 보호를 빼더라도 이치죠다니를 불태우는 것은 회피하고 싶었다. 이치죠다니는 에치젠 문화의 집결지이기에, 이걸 불태워버리면 에치젠의 백성들에게 큰 화근을 남기게 된다.

하지만, 이치죠다니는 아사쿠라 가문의 상징이기도 하기에, 그 붕괴를 세상에 널리 알리기 위해서도 이치죠다니를 불태우는 것은 불가피한 사건이었다.

이것을 늦추는 것에 노부나가가 난색을 표할 것은 알고 있었지만, 다도(茶の湯)의 가치를 높이고 싶은 노부나가로서는 다기의 보호를 구실로 삼으면 당분간이라면 참아주기도 할거라는 계산이 깔려 있었다.

최종적으로는 역사적 사실대로 성시를 포함하여 잿더미로 변하겠지만, 그래도 시즈코는 최저한의 문화재 보호가 끝난 후에 그렇게 했으면 했다.


"그쪽에 대해서는 이미 주상께 올릴 서신을 준비해 두었습니다. 아마도 서신만으로 문제없다고는 생각합니다만, 만약의 일이라는 것도 있으니까요"


"그럼, 주상께의 대응은 부탁드립니다. 이쪽은 병사들이 약탈하지 않도록 감시의 눈을 강화하겠습니다. 명물(名物)의 보호는 저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현 시점에서는 이치죠다니에 불을 지르지 않는다. 문화재를 가장 먼저 반출하고, 노부나가에게는 다기를 수색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실제로 병행하여 다기의 회수도 진행하여, 발견된 다기를 노부나가에게 보내면 노부나가도 시즈코의 부탁을 함부로 거절하지는 않을거라고 생각했다.


"그럼 그렇게 부탁드립니다"


시즈코와 미츠히데는 가치관을 공유할 수 있었던 느낌을 받았다.




미츠히데와 시즈코가 요시카게를 붙잡기 조금 전, 노부나가는 오다니 성 부근에 설치된 본진으로 돌아가 있었다.

그는 이미 아사쿠라가 멸망한 것이라고 말하는 듯, 에치젠에 대한 견제로서 배치했던 시바타들도 오다니 성 포위에 참가하도록 명령했다.

오다 군이 총력을 기울여 오다니 성을 포위하고 있을 때, 시즈코로부터 서신을 받은 히데요시(秀吉)는 자기 진으로 돌아가자 히데나가(秀長)를 호출했다.


"네에네에, 무슨 용무이십니까 형님"


평소와 같은 표표(飄々)한 태도로 응하는 히데나가에게 히데요시는 물어뜯을 듯 추궁했다. 그는 히데요시가 뭘 묻고 싶은지 알고 있었지만, 그걸 전혀 내색하지 않고 모르는 척 하고 있었다.


"너, 시즈코에게 무얼 내놓았느냐!?"


히데요시는 시즈코로부터 걷네받은 서신을, 작전지도를 펼쳐놓은 탁자에 내려치듯 놓으며 외쳤다. 히데요시가 격앙하는 것도 어쩔 수 없다. 시즈코의 서신에는 오다니 성에 관한 기밀 정보가 기록되어 있었다.

부근 일대의 상세한 지형도에 더해, 오다니 성의 방어시설의 규모와 상세한 정보가 망라되어 있어, 군사기밀을 알고 있는 내통자로부터 얻은 정보인 것을 엿볼 수 있었다.

하지만 히데요시가 문제삼고 있는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이만한 정보를 얻기 위해, 히데나가가 시즈코에게 무얼 내놓았는가, 그것이 히데요시의 관심사였다.


"그 뭐냐, 얼마 전에 아사쿠라 가문의…… 뭐였죠"


"에치젠 오오노 군(大野郡)의 군사(郡司)를 맡고 있는 아사쿠라 마고하치로(朝倉孫八郎)다"


"네네 맞습니다, 그 아사쿠라 마고어쩌고를 필두로 몇 명인가가 요시카게를 배신하고 오다 군에게 유리하도록 병사를 움직일테니 대신 목숨을 살려달라, 는 내용을 연명(連名)으로 쓴 서신이 도착했잖습니까? 그것과 교환했습니다"


"그것 말이냐…… 어, 그것 뿐이냐?"


히데나가가 시즈코에게 내놓은 것을 알게 된 히데요시는, 너무나도 하찮은 것이었다는 점에 맥이 빠져버렸다.

배신의 증거라고는 해도, 구명의 탄원서의 용도 따윈 히데요시에게는 짐작가는 것이 없어, 그의 마음 속에서는 휴지조각으로 위치가 정해져 있었다.


"아마도 요시카게나 에치젠의 백성들이 품을 원한을 유도하기 위해 쓰겠지요. 자신들을 패배시킨 상대보다도, 배신한 아군 쪽이 증오할 상대로서 적합하니까요"


"과연. 하지만, 탄원서를 받아놓고 그걸 무시한다는 것도 모양새가 좋지 않구나"


"무슨 말씀이십니까, 형님? 구명의 탄원서인가 하는 건 어디에 있습니까? 여기에 없는 이상은, 우리들에게 도착하지 않았다. 그걸로 된 거 아닙니까. 아사쿠라 토벌에서 최대 무공은 아케치 님으로 확정입니다. 그렇다면 아사쿠라의 일족들을 살려줘봤자 우리들에게 이익 따윈 없을 겁니다. 그 놈들이 어찌되던 우리들은 관여하지 않는 것이 상책이겠죠"


"뭐, 그렇구나"


히데나가의 말에 일리가 있음을 인정한 히데요시는, 이 이상 탄원서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포기했다. 그는 시즈코에게서 받은 서신을 정리하여, 작전회의용으로 펼쳐놓은 지도와 비교해보았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오다니 성을 함락시키는 것에 전력을 쏟도록 하자. 이 정보가 있으면 확률이 높은 도박을 할 수 있다. 지금이야말로 공격할 때다"


"그 말씀 대로입니다, 형님"


히데요시의 힘있는 선언에 히데나가는 미소를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설마 오다니 성에 관한 기밀을 흘리다니, 이거 참 놀랍군요. 하지만, 어떻게 이렇게까지 상세한 정보를 입수한 걸까요. 그녀의 휘하에 있는 간자들의 움직임은 파악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만…… 후훗, 뭐 좋겠죠. 이번에는 탄원서 정도로 형님께 무공을 올릴 기회가 굴러들어온 것이니까요. 쓸데없이 캐다가 풀을 쳐서 뱀(아시미츠(足満))이 나오면 곤란하죠)


탁자에 펼쳐진 서신의 내용을 읽으며 히데나가는 웃었다. 지금까지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으나, 금후에는 적극적으로 관여할 필요가 있으리라. 왜냐하면 다른 무장들도 시즈코에 대한 의존도를 높이고 있다.


(한 명의 여자에게 다 큰 남자들이 정신이 필린다.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 볼 때는 연애질(色恋沙汰)에 넋이 나간 어리석은 자들로 보이겠지요. 하지만, 이곳 이외에 활로(活路)는 없습니다. 이 세상의 상식에 얽매이지 않는 시즈코 님을 끌어들일 수 있을지 없을지, 그것이 금후의 향방(行方)을 좌우합니다)


지금부터의 일을 생각한 히데나가는 점점 더 미소가 짙어졌다.




시즈코는 미츠히데와 함께 이치죠다니에 들어갔다. 이치죠다니 성을 지키는 장병들이나 이치죠다니의 성시에 사는 백성들은 오다 군이 쳐들어온다는 말을 듣고 당황해서 도망쳤다.

평시라면 북적거릴 성시의 왕래도 끊기고, 백성들이 도망칠 때 떨어뜨린 천쪼가리 등이 바람에 휘날려올라가 쓸쓸함을 강조하고 있었다.

백 년의 영화(栄華)를 자랑한 이치죠다니도 이렇게 되어버리면 폐허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복병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토리이 님, 쓸데없는 살생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투항을 권고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알겠습니다"


요시카게의 측근인 토리이가 권고하면 병사들도 항복하기 쉬울거라고 미츠히데는 생각했다. 궁지에 몰려 자포자기한 적병이 같이 죽자고 거리에 불을 지르는 것을 회피하고 싶었다.


"시즈코 님은 문화재의 보호를 부탁드립니다"


"알겠습니다"


미츠히데가 역할을 지정하고, 각자가 주어진 역할을 수행했다.

시즈코는 문화재의 보호, 회수를 정력적으로 수행했다. 시즈코 군의 병사들은 말단까지 통제가 잘 잡혀 있어, 만에 하나라도 약탈을 저지를 우려가 없었기에 적임이었다.

실제로 시즈코 군의 수완은 매우 뛰어나서, 문화재의 보호나 숨어 있던 장병들의 처자들의 보호 등도 효율좋게 수행했다.

속속 모여드는 문화재를 보자, 나름 지식을 갖춘 시즈코조차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것들이 많이 있었다.


"중국(唐物)의 밥공기(茶碗) 같은 것도 있네"


정원이나 건축물 등 물리적으로 움직일 수 없는 것, 또는 반출할 수 없기에 아예 파괴되어 버린 것 이외의 것들이 모여들었다.

개중에는 내력을 알 수 있는 자료가 첨부되어 있는 것도 있었지만, 태반은 어떤 시대에 어떤 경위로 들여온 것인지 알 수 없는 것들 뿐이었다.

눈여겨본 밥공기 이외에도 꽃병(花瓶)이나 항아리(壺, 회화(絵画), 족자(掛け軸), 편지(手紙), 서적(書物) 등 회수된 물건들은 다종다양했다.


"꽤나 많이 모였네"


"시즈코 님! 그쪽은 장부 기재(記帳)가 끝나지 않았습니다. 만져보실 거라면 이쪽의 장부 기재가 끝난 물건들로 부탁드립니다"


시즈코는 산더미처럼 쌓인 서적들 중 한 권을 손에 들고 펼쳐보고 있었다.

그러나, 문화재의 목록을 작성하고 있던 병사에게 야단을 맞았다. 거북한 표정을 떠올리면서 시즈코는 서적을 원래 위치로 돌려놓고 물러났다.


"야단맞아버렸네. 기록이 끝난 것부터 읽어볼까"


아무래도 숫자가 방대했기에, 목록에 기재된 것들부터 임시 보관소로 징발된 무가(武家) 저택(屋敷)에 분류하여 운반되고 있었다.

그곳에 놓인 서적이라면, 이후에는 포장해서 노부나가에게 보내기만 하면 되기에, 포장될 때 까지는 읽어도 문제없었다.


"시즈코 님, 잠시 괜찮으시겠습니까?"


그렇게 생각하며 일어섰을 때, 소성 한 명이 시즈코를 불렀다.

기세가 꺾인 느낌이 들었지만, 노부나가가 필요로 하지 않는 문화재를 상으로 받을 예정인 것을 떠올리고, 나중에라도 괜찮다고 생각한 시즈코는 다시 앉았다.


"무슨 일이죠?"


"옛. 실은 아사쿠라 요시카게의 모친인 코토쿠인이 시즈코 님을 만나뵙고 싶다고 하는데…… 어떻게 할까요?"


"아케치 님이 대화를 하셨다고 들었는데 저한테 무슨 용건일까요? 뭐, 여기서 입씨름을 해봐야 소용없죠. 만날테니 이쪽으로 안내하도록 전해주세요"


"옛, 바로 그리하겠습니다"


대답을 한 소성은 코토쿠인을 불러오기 위해 발걸음을 돌렸다. 잠시 후 억세 보이는 귀부인과, 그 뒤에 몹시 울어서 눈이 퉁퉁 부은 여성이 따르고, 여성의 뒤에 숨으려는 듯 하는 가장 나이어린 여성이 안내되었다.

시즈코는 사전에 얻은 정보로부터, 억세 보이는 귀부인을 코토쿠인, 그 뒤가 요시카게의 처인 코쇼쇼, 가장 뒤의 여성이 바로 요히라일거라고 시즈코는 헤아렸다.


시즈코는 앉아 있던 걸상(床几)에서 일어나 그녀들의 대표인 코토쿠인에게 이름을 밝히고 자리를 권했다.


"제가 시즈코라고 합니다. 자, 앉으시기 바랍니다. 행군중이기에 아무래도 좋은 가구(調度)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만, 땅바닥에 앉는 것보다는 낫겠지요"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코토쿠인이 감사 인사를 하고 앉자, 멍하니 있던 코쇼쇼와 요히라도 정신을 차리고 당황하여 준비된 의자에 앉았다.


"용건을 듣기 전에 우선 한 잔 올리지요. 독 같은 건 넣지 않습니다. 당신들을 독살할 필요성이 없으니까요"


그렇게 말하며 시즈코는 손수 차를 끓이고, 먼저 입에 머금어 보였다. 그대로 같은 찻주전자(急須)에서 차를 따라 세 명에게 건넸다.

시즈코가 독이 없음을 보였지만, 코토쿠인은 생사여탈을 상대방이 쥐고 있는 지금 독살을 의심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해 주저없이 차를 마셨다.

코쇼쇼와 요히라는 코토쿠인의 모습을 흘끔거리면서 쭈뼛쭈뼛 차를 마셨다.


"그럼, 제게 용건이 있다고 하셨습니다만, 어떤 용건이신지요? 저희 군의 최고 책임자는 아케치 님입니다. 제가 어떠한 판단을 하더라도, 아케치 님이 아니라고 하시면 그걸로 결정은 뒤집히지 않습니다"


"솔직하게 여쭙겠습니다만, 저희들은 어떻게 되는 것인지요?"


"에치젠은 주상께서 지배하시게 되고, 아사쿠라 가문은 단절되겠지요. 주상께서는 아사쿠라 가문에 몇 번이나 호되게 당하셨습니다. 이제와서 용서를 빌어도 용서하시지는 않으시겠죠"


요시카게가 노부나가와 적대할 것을 표명한 지 3년. 노부나가는 몇 번이나 쓴맛을 보았고, 아사쿠라가 오우미(近江)에 있는 것만으로도 견제를 위해 병력을 쪼개야 했다.

특히 신겐(信玄)이 직접 나선 카이(甲斐) 타케다(武田)의 대원정(大遠征), 즉 서상작전(西上作戦)에서는, 오다 가문의 운명을 걸어야 하기까지 했다.

그만한 짓을 한 이상, 노부나가가 아사쿠라 가문에 온정을 베풀 가능성은 한없이 낮았다. 아무리 재보를 내놓더라도 요시카게와 그 적자(嫡子)의 참수는 피할 수 없다.


"패자(敗者)의 일족(一族) 단절(断絶)은 난세(乱世)의 상식. 일이 이렇게 되었는데 이제와서 저항하지는 않겠습니다. 제가 여쭙고 싶은 것은 요히라가 어떻게 되는지에 대한 것입니다"


"어떻게 되느냐고 하셔도……"


"시치미떼지 마십시오. 저는 요히라를 확실하게 붙잡으라고 당신이 명령하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들(愚息)이 아니라 요히라를 붙잡으라고 명령하신 이유를 알려주셨으면 합니다. 이제부터 죽으러 가는 사람에 대한 전별(手向け)로서 부디 온정을 베풀어주실 수 없겠습니까"


겨우 이해가 간 시즈코였으나,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고민되었다.

시즈코는 분명히 요히라를 반드시 붙잡으라고 명령했다. 그것은 역사적 사실을 알기에, 그녀가 살아서 혼간지에 도착하면 훗날 에치젠에서 잇코잇키가 발발할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배지역에서 잇코잇키가 발생하면 진압하는 데 적지않은 희생이 생긴다.

이 이상 에치젠에서 말썽을 일으키고 싶지 않았기에, 시즈코는 문제의 싹을 자르는 의미에서 그녀의 포박을 명했다. 최악의 경우에는 시체라도 상관없다고 덧붙여서.


그 명령을 어떤 경위로인지 알게 된 코토쿠인이, 시즈코에게 본심을 들으러 온 것이다. 그걸 생각하면 요히라가 시즈코를 바라보는 겁먹은 시선에도 납득이 갔다.


"그것은 요히라 님이 혼간지 켄뇨의 적자와 혼인할 약정을 맺고 있기 때문입니다. 혼간지로 도망쳐서 켄뇨의 비호를 받아 잇코잇키를 선동해서는 곤란합니다. 물론, 잇코잇키가 발생하게 되면, 가담한 일향종(一向宗)은 씨를 말릴 것입니다"


"만약 잇코잇키가 발생했다고 하면, 그 때 에치젠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사견(私見)입니다만, 이라는 전제를 두겠습니다. 우선 아사쿠라 가문을 배신하고 오다 가문으로 변절한 자들이 혼란을 틈타 살해되겠지요. 그 후, 오다 군이 진압을 위해 출진하여, 일향종을 뿌리째 뽑아버립니다. 나가시마(長島)에서는 이유가 있었기에 이시야마 혼간지로 돌려보냈습니다만, 이곳 에치젠에서의 잇코잇키에는 그러한 이유가 없기에, 마지막 한 사람에 이르기까지 철저하게 처치할 것입니다. 몇 만이나 되는 사람이 죽게 됩니다. 물론, 일향종이 된 에치젠의 백성들이, 말입니다"


알아듣기 쉽도록 차근차근(噛んで含める) 코토쿠인에게 들려주었다. 실제로는 나가시마 때와 마찬가지로 일향종을 이시야마 혼간지로 떠밀어보내게 되겠지만, 그보다도 처참한 최후가 기다리고 있다고 말하는 편이 억지력이 된다.


"제 예상이라고는 해도, 그다지 크게 벗어나지는 않을 것입니다. 세 분께서는 잘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만, 그걸 아시고도 도망치실 생각이라면 혼간지로 가시기 바랍니다. 물론, 저희들도 추격대를 보낼 것이지만, 도망치는 데 성공하시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겠지요"


"……"


"하지만,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한 번 싸움이 시작되면, 많은 피가 흐르고, 수많은 목숨이 사라집니다. '수만 명에 달하는 에치젠의 백성들'의 죽음을 '평생 짊어지실 각오'가 없으시다면 섣부른 행동은 그만두시기 바랍니다"


담담한 시즈코의 말투가 공포를 부채질했는지, 요히라가 손이 떨려 잡고 있지 못하게 된 밥공기를 땅바닥에 떨어뜨렸다.

거기에 허리에 힘까지 빠졌는지, 뒤로 쓰러질 뻔한 것을 코쇼쇼가 얼른 부축해 주었다.

싸움터의 의자기에 등받이가 없었고, 그 때문에 쓰러지고, 그 때문에 즉시 움직일 수 있었던 것이지만, 부축한 코쇼쇼도 공포에 움츠러든 상태여서 조금 가엾게 느껴졌다.


"조금 으름장이 심했군요. 하지만, 그것은 일어날 수 있는 미래입니다. 에치젠에 시체의 산을 쌓고 그 땅을 선혈로 물들여서라도 저희들에게 한 방 먹일 것인가, 아니면 원한(禍根)을 품으면서도 조용히 여생을 보내실지, 그 선택을 하시는 것은 여러분 자신들입니다"


코토쿠인은 똑바로 시즈코를 바라보고는 있었으나, 아무래도 안색은 창백해지고 비지땀을 흘리고 있었다.


"승패는 병가(兵家)의 상사(常), 원한을 잊으시라고는 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들어올린 주먹을 내려치실 곳도 필요하시겠죠. 그것을 고려하여, 저는 지금부터 어떤 서류를 분실할 것입니다. 패인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생각하시는 것도 좋겠죠"


말을 끝내자 시즈코는 일어서서 소성에게서 서신(書状)을 받아들고, 아무렇지도 않은 동작으로 코토쿠인 쪽으로 떨어뜨린 후 자리로 돌아갔다.

시즈코의 의도를 알 수 없었던 코토쿠인이었으나, 서신을 펼쳐 내용을 읽어본 그녀의 수려한 미간에 점점 주름이 패였다.


"……전쟁의 향방은 알 수 없는 것. 부모 마음으로서는 아들이 이겨줬으면 했습니다. 여기까지 몰려서, 간신히 당주로서 어울리는 행동을 할 수 있게 되었건만……"


치밀어오르는 분노를 억누르듯, 코토쿠인은 서신을 움켜쥐었다.


"하지만, 이 자들은 용서할 수 없습니다. 융성(隆盛)할 때는 실컷 단물을 빨아놓고, 일족의 위기에 처하자 당주에게 거역할 뿐만 아니라 행패(足蹴)를 부리고, 나아가 당주를 팔아넘기는 패거리들 따위……"


시즈코가 코토쿠인에게 보여준 것은 카게아키라(景鏡)의 구명 탄원이 적힌 서신의 사본이었다.

요시카게와 카게아키라의 다툼(禍根)으로 아사쿠라 가문이 쪼개져서 훗날의 에치젠 잇코잇키로까지 발전하는 이상, 여기서 재앙의 뿌리를 뽑아둘 필요가 있었다.

그것은 정도(正道)에서 벗어난 정치적인 판단이며, 시즈코도 본심을 말하자면 이런 짓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여기서 화근을 제거하지 않으면, 그 싹은 잇코잇키라는 형태로 싹을 틔워, 훗날 몇 만이나 되는 목숨이 사라진다.

설령 정도에 어긋나더라도, 때로는 위정자는 비정한 결단을 내려야 한다는 것을 그녀는 실제 체험으로 뼈저리게 느꼈다.


"……이쪽의 지시에 따라주신다면, 카게아키라에게 한 방 먹일 기회를 드리지요"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참고 있던 코토쿠인이 시즈코의 말에 얼굴을 들었다.


"단, 저희들이 드리는 것은 기회 뿐입니다. 카게아키라를 처치할지, 아니면 모른 척 할지, 그것은 당신들의 자유입니다. 저희들은 강요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다시 말씀드리지요. 이것은 아케치 님도, 그리고 주상께서도 인정하신 이야기입니다. 남은 것은 당신들의 판단으로 결정됩니다"


"……"


"내통한 자를 팔아넘기는 것은 칭찬받을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배신이라는 것은 본래 들키면 파멸할 각오를 하고 저지르는 것. 이것도 사견입니다만, 아마도 주상께 카게아키라는 이미 이용가치가 없는 것이겠죠"


시즈코는 헛기침을 한 후 손뼉을 쳤다. 그 소리에 놀란 코토쿠인과 코쇼쇼가 움찔하며 허리를 폈다.


"지금은 쓸데없는 생각을 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단순히, 카게아키라를 용서할 것인가, 용서하지 않을 것인가. 그것 뿐입니다"


코토쿠인은 시선을 시즈코에서 서신으로 돌렸다. 잠시 서신을 바라보고 있던 그녀였으나, 천천히 서류를 움켜쥐고는 둘로 찢어버렸다.


"좋습니다"


그것이 코토쿠인의 대답이라고 이해한 시즈코는, 가까이 있던 소성에게 명해 코토쿠인이 찢은 서류를 미츠히데에게 전하라고 했다.




이치죠다니 성 함락 소식은 즉시 노부나가에게 전해졌다.

단, 성시를 포함한 이치죠다니 일대의 소각(焼き討ち)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고, 그 이유로서 다기(茶器) 등의 명물품(名物品)을 회수하여 전비(戦費)를 충당하기 위해서라는 보고가 올라갔다.

모든 보고를 다 들은 노부나가는 한 마디도 말하지 않았다. 그 표정에는 아무 감정도 떠올라있지 않아, 미주하고 보고를 마친 병사는 이마에 땀이 솟으며 입술이 퍼래질 정도로 깨물고 있었다.

좌우에 있던 오다 가문 중신들도 마른침을 삼키며 노부나가의 말을 기다렸다.


"보고, 수고했다. 물러가도 좋다"


그 한 마디를 들은 병사는 휴 하고 한숨을 쉬었다. 인사를 하고 발걸음을 재촉하여 떠나가는 병사를 노부나가는 재미없다는 듯 바라보았다. 실제로 노부나가는 흥이 깨진 상태였다.

아사쿠라는 멸망하고, 오다니 성에 대해서는 히데요시가 뭔가 열심히 움직이고 있었다. 아자이(浅井)-아사쿠라 토벌을 내걸고 출진했는데 스스로의 손으로 직접 결판을 지을 기회를 얻을 수 없었다.

뻔히 결과를 알고 있는 보고를 그냥 기다린다는 것이 이 정도로 따분할 줄은 몰랐다. 무료함을 달래려 해도, 그게 가능할 만한 사람은 이 자리에 없었다.


"아버님, 잠시 괜찮으시겠습니까"


멀리 떨어져 있는 유쾌함의 씨앗(愉快の種)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었을 때, 지금까지 침묵하고 있던 노부타다(信忠)가 노부나가에게 진언했다. 기분전환 정도는 될 거라 생각하여 노부나가는 노부타다의 발언을 허락했다.


"듣자하니 아사쿠라 가문 당주 및 적자는 아직도 참수되지 않고, 이치죠다니의 소각도 미루어진 듯 합니다. 전비 회수를 위해 다기나 명물을 모은다고는 해도, 이래서는 조금 약하다고 생각됩니다"


"……키묘(奇妙) 이외에는 물러나라"


엉뚱한(頓珍漢) 소리를 한 노부타다에게, 노부나가는 눈가를 손으로 누르며 말했다. 지시대로 좌우에 있던 중신들이 물러가고, 그 자리에 노부나가와 노부타다만이 남겨진 것을 확인한 후, 노부나가는 말을 이었다.


"아사쿠라가 어떻게 되던 이제는 아무래도 상관없다. 이번의 일은 시즈코가 영주(国人)가 될 수 있을지, 그 시련이 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시련…… 입니까?"


"그렇다. 시즈코는 여차할 때(ここ一番) 마무리가 허술하다. 타케가와의 싸움에서도, 녀석은 스와 카츠요리(諏訪勝頼)를 놓쳤다. 나가시마 일향종에서도 마찬가지다. 빠르게 통치하기 위해서라느니 이런저런 이유를 붙이고는 있지만 말이다"


"그것은……"


놓아준 채로 괜찮은 건가 하고 의문을 입에 올리려던 노부타다는 말을 삼켰다. 괜찮지 않다고 판단되었다면 시즈코는 이미 처벌을 받았을 것이다.

현재 시즈코가 처벌을 받지 않은 이상, 노부나가는 시즈코의 허술함(甘さ)을 이해하면서 그래도 좋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시즈코의 허술함에도 이용가치는 있다. 하지만, 위정자는 때로는 비정한 판단을 내려야 한다. 부하에게 죽으라고 명령할 수는 있게 되었지만, 정치적 판단으로 대를 살리기 위해 소를 죽이는 것을 못하고 있다"


"그 시련을 극복하기 위해, 아사쿠라는 딱 좋은 상대라고 하시는 것입니까"


"그렇다. 지금까지처럼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다. 시즈코가 스스로의 의지로 쳐들어가서, 정치적 판단을 내리는 것이다"


"하오나…… 할 수 있겠습니까? 시즈코는 지금까지 정치적 판단을 피해 왔습니다"


"할 수 있다. 시즈코는 반드시 적을 처단한다. 그게 우연히 아사쿠라였다는 것 뿐이다"


지금까지 시즈코는 잡병이나 아시가루(足軽), 무장(武将)들을 처치해왔다. 하지만 타국을 침공하여 영주를 처형한 적은 없었다. 아니, 할 수 없었다.

본인이 피했던 것도 있지만, 그러한 냉혹한 판단이 필요한 상황에서는 항상 노부나가나 아시미츠가 대행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것을 스스로 해야만 한다.


"항상 아시미츠가 있어줄 수 있다고는 장담할 수 없다. 녀석도 언젠가 그 허술함 때문에 시즈코의 몸이 위험에 처할 것을 고려하여 내 시련을 말없이 지켜보고 있지"


"아버님은 시즈코를 그렇게까지 평가하고 계시는 것입니까"


"물론이다. 녀석이 훌륭한 영주가 된다면, 오와리(尾張)를 맡겨도 좋다고까지 생각하고 있다"


오와리를 맡긴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노부타나는 뼈아플 정도로 이해했다. 자신의 근거지(お膝元)를 맡기는 것은 노부나가의 아버지 대부터 섬겨온 가신들에게조차 고려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것을 노부나가는 시즈코가 어엿한 영주로서 성장한다면, 오와리라는 한 나라(一国)를 맡겨도 좋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게까지 특별 취급되는 것에, 노부타다는 질투를 금할 수 없었다.


"지금은 아직 멀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시즈코가 영주가 되어, 우에스기(上杉)나 도쿠가와(徳川)와 연계할 수 있을 정도로 정치에 능숙해지게 되면 토우고쿠(東国)의 견제는 완벽해진다. 나는 사이고쿠(西国)의 지배에 집중할 수 있지. 등 뒤를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는 건 정말로 편하다"


과연 시즈코는 할 수 있을 것인가, 라고 노부타다는 의문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노부나가는 이미 확신하고 있는지, 자신이 부여한 시련을 시즈코가 극복할 거라고 믿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 노부나가의 확신이 올바른 것임을 노부타다는 알게 된다. 카게아키라의 목이 노부나가가 있는 곳에 도착한 그 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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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

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 앞부분부터 읽으시려 할 떄 편리하도록 목차 링크 페이지를 만들어보았습니다. 링크 등을 하실 경우에도 본 페이지로 하시면 편리하실 거라 생각합니다.


에이로쿠(永禄) 8년 노부나가(信長) 공(公), 만남의 때


001 - 1565년 3월 중순

002 - 1565년 3월 하순

003 - 1565년 4월 상순

004 - 1565년 4월 하순

005 - 1565년 5월 상순

006 - 1565년 5월 중순

007 - 1565년 5월 중순

008 - 1565년 6월 상순

009 - 1565년 7월 중순

010 - 1565년 8월 상순

011 - 1565년 8월 하순

012 - 1565년 10월 중순



에이로쿠(永禄) 9년 오와리 국(尾張国)의 농업개혁


013 - 1566년 4월 상순

014 - 1566년 6월 상순

015 - 1566년 9월 중순

016 - 1566년 9월 중순

017 - 1566년 10월 상순

018 - 1566년 10월 상순

019 - 1566년 10월 상순

020 - 1566년 10월 중순

021 - 1566년 10월 하순

022 - 1566년 12월 상순

023 - 1566년 12월 상순



에이로쿠(永禄) 10년 천하포무(天下布武)


024 - 1567년 1월 상순

025 - 1567년 1월 상순

026 - 1567년 1월 하순

027 - 1567년 2월 하순

028 - 1567년 3월 중순

029 - 1567년 3월 하순

030 - 1567년 4월 상순

031 - 1567년 4월 상순

032 - 1567년 4월 중순

033 - 1567년 4월 중순

034 - 1567년 4월 중순

035 - 1567년 5월 상순

036 - 1567년 5월 상순

037 - 1567년 5월 상순

038 - 1567년 5월 상순

039 - 1567년 7월 중순

040 - 1567년 9월 중순

041 - 1567년 9월 중순



에이로쿠(永禄) 11년 상락(上洛)


042 - 1568년 1월 초순

043 - 1568년 2월 초순

044 - 1568년 2월 하순

045 - 1568년 4월 중순

046 - 1568년 6월 상순

047 - 1568년 6월 중순

048 - 1568년 6월 중순

049 - 1568년 8월 중순

050 - 1568년 8월 중순

051 - 1568년 12월 중순



에피소드 1 (통합)


분노의 무신(武神) 혼다 헤이하치로 타다카츠(本多平八郎忠勝)

시즈코가 만들고, 노부나가가 먹는다

좋아, 그렇다면 전쟁이다

노부나가 둑(信長堤)

전국시대식 양치

도쿠가와(徳川)의 참마즙 보리밥

마성(魔性)의 여인 노히메(濃姫)

쌀 + 마 = 바이오 플라스틱



에이로쿠(永禄) 12년 이세(伊勢) 평정(平定)


052 - 1569년 1월 상순

053 - 1569년 1월 상순

054 - 1569년 3월 상순

055 - 1569년 3월 상순

056 - 1569년 5월 상순

057 - 1569년 5월 상순

058 - 1569년 6월 하순

059 - 1569년 7월 중순

060 - 1569년 8월 하순

061 - 1569년 9월 상순

062 - 1569년 12월 상순



겐키(元亀) 원년(元年) 제 1차 오다(織田) 포위망(包囲網)


063 - 1570년 1월 상순

064 - 1570년 3월 상순

065 - 1570년 5월 중순

066 - 1570년 6월 하순

067 - 1570년 6월 하순

068 - 1570년 8월 하순

069 - 1570년 9월 하순

070 - 1570년 11월 중순

071 - 1570년 12월 하순

072 - 1570년 12월 하순

073 - 1570년 12월 하순



겐키(元亀) 2년 히에이 산(比叡山) 엔랴쿠지(延暦寺)


074 - 1571년 1월 상순

075 - 1571년 3월 상순

076 - 1571년 4월 상순

077 - 1571년 4월 하순

078 - 1571년 5월 중순

079 - 1571년 8월 중순

080 - 1571년 9월 중순

081 - 1571년 9월 중순

082 - 1571년 10월 상순

083 - 1571년 11월 하순

084 - 1571년 12월 하순

085 - 1571년 12월 하순



겐키(元亀) 3년 결전、미카타가하라(三方ヶ原) 전투


086 - 1572년 1월 상순

087 - 1572년 3월 상순

088 - 1572년 5월 상순

089 - 1572년 7월 상순

090 - 1572년 7월 하순

091 - 1572년 8월 중순

092 - 1572년 9월 상순

093 - 1572년 9월 하순

094 - 1572년 11월 하순

095 - 1572년 12월 중순

096 - 1572년 12월 하순

097 - 1572년 12월 하순

098 - 1572년 12월 하순

099 - 1572년 12월 하순



에피소드 2


01 - 아버지들의 고뇌

02 - 다채로운 기술자 집단

03 - 여자식(女子式) 다도회(茶の湯)

04 - 창고 청소

05 - 면(麵) 전쟁(戦争)

06 - 난월어기(卯月御記) (현대어 스타일)

07 - 죽을 장소를 버렸다

08 - 끓어오르는 피



겐키(元亀) 4년 무로마치(室町) 막부(幕府)의 종언(終焉)


100 - 1573년 1월 하순

101 - 1573년 2월 중순

102 - 1573년 3월 중순

103 - 1573년 4월 중순

104 - 1573년 5월 중순

105 - 1573년 6월 상순

106 - 1573년 6월 상순

107 - 1573년 8월 상순

108 - 1573년 8월 중순

109 - 1573년 8월 중순

110 - 1573년 8월 중순

111 - 1573년 10월 중순

112 - 1573년 12월 중순



텐쇼(天正) 원년(元年) 키나이(畿内)의 사회기반 정비


113 - 1574년 1월 하순

114 - 1574년 1월 하순

115 - 1574년 3월 상순

116 - 1574년 3월 하순

117 - 1574년 6월 중순

118 - 1574년 7월 중순

119 - 1574년 9월 상순

120 - 1574년 9월 하순

121 - 1574년 10월 상순

122 - 1574년 12월 상순

123 - 1574년 12월 하순



텐쇼(天正) 2년 토우고쿠(東国) 정벌(征伐)


124 - 1575년 2월 하순

125 - 1575년 4월 하순

126 - 1575년 5월 중순

127 - 1575년 5월 중순

128 - 1575년 9월 중순

129 - 1575년 9월 중순

130 - 1575년 9월 중순

131 - 1575년 10월 중순

132 - 1575년 11월 중순

133 - 1575년 11월 중순

134 - 1575년 11월 중순

135 - 1575년 12월 중순



텐쇼(天正) 3년 애도(哀惜)의 시간(刻)


136 - 1576년 1월 중순

137 - 1576년 1월 중순

138 - 1576년 1월 중순

139 - 1576년 2월 중순

140 - 1576년 3월 하순

141 - 1576년 4월 하순

142 - 1576년 5월 하순

143 - 1576년 6월 상순

144 - 1576년 6월 상순

145 - 1576년 6월 상순

146 - 1576년 8월 중순

147 - 1576년 9월 상순

148 - 1576년 10월 상순

149 - 1576년 10월 중순

150 - 1576년 10월 중순

151 - 1576년 12월 하순



에피소드 3


01 - 식(食)에의 집착

02 - 홍등가(花街)의 여인

03 - 힘없는 상냥함은 무책임일 뿐이다

04 - 소년이여, 카레이(かれい)를 먹어라

05 - 심심풀이(退屈しのぎ)

06 - 잊혀진 이야기

07 - 호죠(北条) 가문의 실패



텐쇼(天正) 4년 격세지감(隔世の感)


152 - 1577년 1월 하순

153 - 1577년 3월 하순

154 - 1577년 3월 하순

155 - 1577년 4월 상순

156 - 1577년 4월 상순

157 - 1577년 4월 상순

158 - 1577년 4월 상순

159 - 1577년 4월 중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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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번역 > 취미번역물 목차'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전국자위대 - 목차  (0) 2019.07.26
Posted by 가리아

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겐키(元亀) 4년 무로마치 막부(室町幕府)의 종언(終焉)


108 1573년 8월 중순



8월 11일. 히데요시(秀吉)로부터 정치적인 공작(調略)을 받고 있던 야키오 요새(焼尾砦)를 지키는 아사미(浅見) 츠시마노카미(対馬守)가 꺾여서 오다 측으로 변절했다.

그 소식은 즉시 노부나가에게 전해져, 야마모토 산성(山本山城)에 이은 정치적 책략의 성공에, 시즈코를 제외한 오다 가문의 주요 가신들 사이에 동요가 퍼져나갔다.

야키오 요새가 함락된 이상, 남은 것은 오오즈쿠 성(大嶽城) 뿐이었다. 오오즈쿠 성까지 히데요시가 함락시킬 경우, 이번의 아자이(浅井)-아사쿠라(朝倉) 토벌에서의 제 1공은 히데요시의 것이 된다.

그렇게 되면 오다 가문 내에서의 히데요시의 발언력은 더욱 강해지기에, 그것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많았다.


한편, 권력 다툼에 흥미가 없는 시즈코에게는 동요도 없고, 담담하게 시바타 카츠이에(柴田勝家)나 마에다 토시이에(前田利家)의 진으로의 물자 반입 및 텟포슈(鉄砲衆)의 배치를 하고 있었다.

야키오 요새 소식을 들은 시바타 카츠이에나 마에다 토시이에에게 이것저것 이야기를 듣게 되어 필요 이상으로 발이 묶였지만 대략 예정대로 일을 마쳤다.

이튿날인 12일, 역사적 사실에서는 밤중에 뇌우(雷雨)를 동반한 큰 비가 내렸다고 하는데, 시즈코는 낮의 구름의 움직임 등을 볼 때 날씨가 나빠지는 것은 다음날로 미뤄질 거라고 예상했다.

그리고 시즈코의 예측대로, 12일 밤에는 바람은 강했지만 비 한방울 내리지 않고 지나갔다.


"날씨가 나빠지는 걸 마냥 기다린다, 는 것도 할 일이 없어 꽤나 따분하네"


케이지(慶次)가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미안해요, 이런 날씨에 맡긴 작전이라"


"상관없어. 요는 하늘이 우리들의 편을 들지, 아니면 적에게 붙을지, 그런 천명(天命)을 점치는 것도 멋진 일이야. 그런데, 정말로 할 거야? 나는 전혀 상관없지만, 실패하면 아무리 시즛치라고 해도 호되게 혼나는 정도(大目玉)로는 끝나지 않을 걸?"


"바로 그러니까 재미있다, 고 생각하지 않아요?"


시즈코의 대꾸에 의표를 찔려 일순 멍해진 케이지였으나, 파안(破顔)하더니 배를 잡고 웃기 시작했다. 다른 뜻(含むところ)이 일체 없는, 유쾌해서 견딜 수 없다는 웃음이었다.


"시즛치도 웬걸, 훌륭한 카부키모노(傾奇者)잖아. 확실히 보통이라면 하지 않겠지. 바로 그러니까 재미있어. 내 병사들은 의욕이 넘쳐. 이런 재미있는 이야기에 끼지 않을 수는 없다고 말야"


"자칫 잘못하면 추위로 죽을지도 모르는데, 그렇게 의욕적인 말이 나오는 건 놀랍네요"


"그럴지도. 하지만, 계책이 딱 맞아떨어졌을 때의 놈들의 표정은 꽤나 볼만하겠지"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케이지 부대 중에서도 강자(猛者)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왔다.

대장인 케이지의 영향인지, 다들 제각기 튀는 개성을 드러내고 있었다(傾いていた). 개중에는 어지간한 무공을 세우지 않으면 들 수 없는 붉은 창(朱槍)을 들고 있는 사람까지 있었다.


"자, 먼저 케이지 씨한테 이야기했지만, 이번의 계책이 승인되었어요. 계책의 내용에 대해서는 전에 이야기한 내용에서 변경은 없어요. 최고(ここ一番)로 튀어보일 기회(傾きどころ)에요. 자신의 인생관(生き様)을 적에게 똑똑히 보여주세요"


시즈코의 말에 모여든 카부키모노들은 굵직한 미소를 떠올렸다. 기세(意気込み)는 충분했고, 이후에는 때가 오는 것을 기다릴 뿐이라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그리고 드디어 13일. 아침부터 하늘은 흐리고 비가 올 기색이 농후하게 감돌고 있었다. 아침 일찍 시즈코는 자기 진에서 고용한 츄우겐(中間)들의 명부를 보고 있었다.


"여기랑…… 이 집단은 꽤나 오랜 기간동안 고용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슬슬 익숙해져서 의식이 느슨해질 듯 하니까, 일처리를 잘하면 보수를 더 얹어줘요. 숙련자라면 보수가 많아도 문제없겠죠"


"그래서는 다른 사람과 차이가 나게 되어 버립니다만……"


"자신의 목숨을 도박판(賭け皿)에 걸고 있는 그들에게 정신론(精神論)이나 근성론(根性論)은 먹혀들지 않아요. 일의 성과에 따른 적절한 평가와 보수를 주면 그들은 최대로 힘을 발휘해요. 격전을 거듭하는 우리 군에서 반복해서 고용하고 있다면, 역전의 병사로 대우해 줘야죠. 일의 성과에 따른 보수를 주는 것으로 다른 사람들도 촉발되어서 분발하게 될 거에요. 게다가 불평이나 하며 제대로 일하지 않는 패거리는 매사 구실을 붙여 일하지 않게 돼요. 그런 자들은 다음부터 고용하지 않아도 상관없어요"


츄우겐을 고용하면, 항상 같은 구성으로 오는 사람들이 생긴다. 츄우겐으로서 한데 묶어(十把一絡) 취급하는 게 아니라 성과에 따라 차이를 두어야 한다고 시즈코는 말한 것이다.


"옛! 잘 알겠습니다"


"도구류의 정비는 제대로 되었어요? 도구가 좋고 나쁘고에 따라 효율이 달라지니까요"


"예, 문제없습니다. 기술자들이 전량 검사하여 문제없다고 보증하고 있습니다"


"좋아요. 노동 사이사이에는 휴식을 취하고 하고 있죠? 어떤 사람이라도 장시간 일하면 피로가 쌓여요. 피로가 쌓이면 판단을 잘못하거나, 생각지 못한 실수를 하거나 하니까요"


"과부족없이 휴식시간을 두고 있습니다. 덕분에 대단히 기운이 넘치는 츄우겐들이 모여 있습니다"


"그럼 좋아요. 당신들도 적절하게 휴식을 취하세요. 일하면 피곤해져요. 그건 육체 노동이든 두뇌 노동이든 마찬가지에요. 누군가가 탓한다면 저한테 보고하세요. '신하(臣下)를 챙기는 것(保障をする)'은 제 의무니까요" 


"옛! 시즈코 님의 배려, 대단히 감사드립니다"


부하의 말에 시즈코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고 서류를 내려놓고 일어섰다.


"항상 말하고 있지만, 우리들은 오다 군에서 뒷바라지를 하는 역할(縁の下の力持ち)이에요. 결코 화려한 활약을 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오다 군이 쾌진격을 거듭할 수 있는 것은 우리들의 뒷바라지가 있기 때문이에요. 이것을 자랑으로 여기고, 강철같은 결속으로 흔들림 없는 실적을 쌓아올려, 이제부터도 오다 군의 병참을 계속 담당합니다"


"옛!!"


후방지원부대의 대장들은 시즈코에게 깊이 고개를 숙인 후 본진을 떠났고, 그와 교차하듯 케이지나 사이조(才蔵)들이 시즈코가 있는 본진으로 돌아왔다.


"이 하늘 모습과 비 냄새…… 이제 곧 날씨가 나빠질 거에요. 그게 개시의 신호…… 케이지 씨와 카츠조(勝蔵) 군, 잘 부탁해요"


"맡겨둬. 재미있는 결과를 가지고 돌아올게"


나가요시(長可)가 힘있게 주먹을 쥐며 기합을 어필했으나, 케이지는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설령 나가요시가 폭주하더라도 케이지가 함께라면 어떻게 해 주려나, 라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시즈코는 이번의 작전에 한 가지 걱정을 하고 있었다. 그것은 나가요시가 폭주해버린다는 가능성.

최근, 나가요시는 노부나가의 명령을 받고 키나이(畿内) 각지의 소동 진압 임무에 나섰다. 하지만 나가요시가 착임하는 것과 동시에 뚝 하고 소동이 발생하지 않게 되었다.

나가요시의 악명은 키나이에도 퍼져 있어, 타케다(武田)의 적비대(赤備え)조차 쓰러뜨리는 잔학무도(悪逆非道)한 무뢰한(無頼漢)으로 생각되고 있었다.

그렇기에 작은 소동이 발생하더라도 나가요시가 달려갔을 무렵에는 해결되어 있어, 그의 불완전연소에 의한 욕구불만은 쌓여만 갈 뿐이었다.

이제 충분히 적과 싸울 수 있는 기회가 왔으니, 혈기가 넘치는 나가요시가 폭주하는 게 아닐까 하고 걱정하고 있었다.


"사이조 씨와 요키치(与吉, 타카토라(高虎)) 군에게는 본진의 수비를 부탁해요. 텟포슈의 태반을 각지에 파견했으니, 본진에는 약간의 텟포슈와 용기병(竜騎兵) 밖에 남아있지 않아요. 방심하지 말도록 부탁해요"


"옛!"


텟포슈는 겐로(玄朗)가 대대장(大隊長)을 맡고, 그 아래에 200명 정도를 1개 부대로 하여 지휘하는 대장들이 몇 명 존재한다. 그 대장 중 한 명이 아자이 나가마사(浅井長政)였다.

그의 출신에서 볼 때는 그런 지위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지만, 그는 단지 일개 병졸로서 재출발하여 빠르게 치고 올라왔다.

엔도(遠藤)나 미타무라(三田村)도 이제는 완전히 숙련된 텟포슈가 되어 있었다.

그 나가마사가 지휘하는 부대를, 시즈코는 그 사실을 알지 못한 채 히데요시가 있는 곳에 배치한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였을지도 모른다.


"그러고보니, 아케치(明智) 님이 용기병 50을 써서 아사쿠라의 진을 흔들고 있었지. 그건 주상께서 도발하라고 명하신 건가?"


"아마 그렇겠죠. 적의 소모를 노리고 계시니까요. 용기병의 기동력이라면 한번 부딪히고 즉시 철수하는 일격이탈(一撃離脱) 전법을 쓸 수 있으니 딱 어울릴 거에요"


용기병은 신식총(新式銃)을 장비한 기병대이며, 말에 탄 채로 장거리 저격이 가능한 병종이다.

정밀사격이 요구되는 경우에는 말에서 내리지만, 그 이외에는 기동력을 살려 적과 접촉, 적의 사정거리 밖에서 일방적으로 사격을 퍼붓거나 적을 끌어들이며 사격을 계속한다는, 종래에는 없었던 공격이 가능해진다.

말에 의한 기동력과 신식총의 압도적 성능에 의해, 겨우 50기 뿐인 용기병이라도 10배의 적을 교란시키는 것이 가능해진다.

다만 기병인 이상, 시야가 양호하고 발밑의 지반이 든든해야 한다는 제약은 피할 수 없다.


"멀리서 보고 있었는데, 아사쿠라 군 입장에서는 거슬리기 짝이 없겠지. 그만큼 일방적으로 당해도 요시카게(義景)가 움직이려 하지 않는 것도 문제다. 지금쯤 아사쿠라의 가신들은 요시카게에게 따지고 있었지. 이번만큼은 요시카게의 생각이 맞지만 말이다"


아시미츠(足満)가 웃으면서 시즈코의 말을 보조했다.

현 시점에서는 어디의 진을 공격해도 신식총으로 무장한 텟포슈가 100명 이상 있다. 백병전의 거리까지 다가갈 무렵에는 많은 장병들이 목숨을 잃을 게 뻔하다.

그걸 생각하면 도발에 응하지 않고 수비를 굳히는 요시카게의 전법이 이치에 맞는다. 단, 기습을 받고 총탄을 뒤집어쓰는 쪽은 오래는 버틸 수 없다.


"어쩔 수 없어요. 총격을 받아도 계속 버텨라, 고 해도 상황이 호전될 기미가 없어선 견딜 수 없어요. 그렇다고는 해도, 슬슬 그 고생도 끝나겠죠. '그 사람'이 하시바(羽柴) 님과 접촉한 모양이니…… 며칠 안에는 결판이 나지 않을까요"


"영고성쇠(栄枯盛衰)는 세상의 상리(定め). 명가(名家)의 미명(美名)에 안주하여 정진(精進)을 잊은 자에게 미래는 찾아오지 않지"


"뭐, 미련이 남지 않게 깨끗하게 목을 쳐 주는게 무사의 정이라지. 맡겨둬, 내가 일도양단해줄게"


"에잇, 카츠조 군. 일도양단하면 안 돼. 이번 작전은 요시카게가 핵심이라고"


"안심해, 시즛치. 카츠조가 바보짓을 할 것 같으면 후려갈겨서라도 막을테니까"


케이지가 때려서 막으면, 그 자리에서 대 난투가 벌어지지 않을까 불안해진 시즈코였으나, 시즈코는 그 자리에 있을 수 없으니 믿을 수밖에 없었다.


"적 앞에서 아군끼리 싸우는 것만큼은 참아줘요"


"실례네. 나도 상황을 파악하는 분별은 있…… 겠지?"


"어째서 자기가 말해놓고 의문으로 생각하는 거야. 괜히 더 불안해지잖아. 뭐 여기서 말해봤자 소용없나. 하지만, 이번에는 케이지 씨랑 카츠조 군 밖에 활약할 기회가 없는데, 다른 두 사람은 혹시 불만 같은 거 있어요?"


사이조와 타카토라는 본진의 수비. 케이지들이 날뛰고 있을 때도 시즈코의 호위라는 중대하지만 눈에 띄지 않는(地味) 임무를 맡는다. 아시미츠의 경우에는 본진에서 나가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는다.

화려한 전과를 기대할 수 없으니 불만은 없느냐고 시즈코는 물어보았다.


"소생은 오랜만에 호위대(馬廻衆) 다운 일을 할 수 있어 만족하고 있습니다"


"물론, 전쟁터에서의 무공을 세우고 싶은 생각도 있습니다만, 이번에는 얌전히 있는 편이 좋다고(吉) 감이 속삭이고 있기에 불만도 없습니다"


"그래요, 다행이네요. 희망이 있으면 말해줘요. 가능한 한 맞춰볼테니"


"시즈코 님의 배려(心遣い)에 감사드립니다"


시즈코의 말에 사이조와 타카토라가 깊이 고개를 숙였다.


"망설이지 마라. 시즈코는 단지 명령하면 되는 거다. 나는 그에 응할 뿐이다"


아시미츠는 그것이 지극히 당연하다고 말하는 듯 망설임없이 단언했다. 그답다고 시즈코는 쓴웃음을 지었다.


"좋아요, 그럼 이야기는 끝이네요. 자, 나는 지금부터 키묘(奇妙) 님을 달래고 올게요. 가까이 있으면서 이틀이나 내버려두다니 어떻게 된 거냐, 라고 펄펄 뛰고 있는 모양이니까요"


"그건 중요한 일이군. 힘내, 시즛치"


무거운 한숨을 쉬는 시즈코에게 케이지가 진심이 하나도 담기지 않은 말을 하며 그녀를 전송했다.




노부타다의 진은 불온한 분위기에 휩싸여 있었다. 기분이 나쁜 것을 감추려고도 하지 않는 노부타다 때문에 진 전체가 음울한 분위기를 뿜고 있는 듯 했다.

노부타나는 이미 노부나가의 후계자로서 내외에 알려져, 언젠가 천하인(天下人)의 뒤를 이을 것이 결정되었다. 그걸 생각하면, 가신들은 노부타다의 기분을 상하게 할 만한 언동을 두려워하게 된다.


"슬슬 댓발이나 나온 입을 좀 집어넣어 줬으면 좋겠네"


다만 시즈코가 볼 때는 챠마루(茶丸, 키묘마루(奇妙丸)) 시대의 인상이 강하여, 언제까지나 손이 가는 남동생처럼 생각되었다.

성인식(元服)을 치른 이래로, 노부타다는 노부나가의 명에 따라 각지에서 싸우고는 있지만 한 번도 시즈코와 전장에 함께 나간 적이 없었다.

왜냐하면 시즈코가 싸워온 전장은, 언제 누가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위험하기 짝이 없는 장소들 뿐이었기 때문이다. 제아무리 호담한 것으로 유명한 노부나가라도 적자(嫡男)를 그런 장소에 둘 수는 없다.

하지만, 이번의 아자이-아사쿠라 토벌이라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싸울 수 있다. 노부타다는 그렇게 기대로 가슴을 부풀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니 시즈코는 전선에서 멀리 떨어진 후방에 머무르고 있고, 각 진영의 지원이나 조정에 전념하고 있었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바쁜 듯 하지만 전선에 나올 기색은 없다.

그것 때문에 기분이 상한 노부타다에게 가신들은 위축되어, 결과적으로 그의 본진은 기능부전에 빠져 있었다.


"시즈코가 아버님의 명령으로 움직이고 있는 건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재미없는 건 어쩔 수 없군"


"그렇게 말해도, 대신할 사람이 없는 일이니까 어쩔 수 없잖아. 이번의 싸움의 결과에 따라 아자이-아사쿠라 양쪽을 멸망시킬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아자이는 하시바 쪽이 처치하겠지. 이쪽이 나설 일은 없어. 아사쿠라는 아버님이 직접 계책을 짜고 계시지. 만에 하나라도 우리들이 나설 장면은 없을 거다. 이 싸움이라면 시즈코와 함꼐 싸울 수 있다고 기대하고 있었는데 말야"


"그렇게 땡깡을 부려도……"


"알고 있어, 알고 있다고. 이게 내 땡깡이라는 것도, 함부로 자신의 심정을 드러내지 말라는 것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입으로는 이해하고 있는 듯 하나, 도저히 납득하고 있다고는 보이지 않는 노부타다의 태도에 시즈코는 머리를 긁적이면서도 그의 기분을 맞춰주었다.

우선 노부타다의 가신들을 물러나게 했다. 그들이 있어봤자 상황은 호전되지 않고, 긴장을 강요당한 그들에게야말로 휴식이 필요하다.

가신들을 떨어뜨려놓은 것으로 비밀의 작전같은 연출을 할 수 있고, 노부타다의 본심도 끌어내기 쉬워진다는 일석이조의 계책이었다.


"그래서, 기분이 상한 건 하시바 님과 아케치 님 양쪽이 관계되어 있는걸까?"


본심을 들켜 경악한 표정을 떠올리면서 노부타다는 시즈코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어려운 추리는 아냐. 적자이면서도 눈에 띄는 무공이 없는 너랑, 주상을 따라 각지에서 수많은 전공을 세운 중신(重臣), 어떻게 해도 비교해버리고 초조해지는 건 어쩔 수 없지"


"여전히 날카로운 건지 맹한 건지 판단하기 어렵구나. 그래, 나는 초조하다. 애초에 나이부터 다르니까 비교해도 소용없는 건 알고 있어. 하지만, 내가 무공을 세울 수 있는 전장은 앞으로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단 말이다"


노부타다도 시즈코 상대로 허세를 부릴 필요가 없어서인지 심정을 솔직하게 토로했다.

시즈코의 예상은 옳았다. 노부타다의 무공이라고 하면 나가시마(長島) 일향종(一向宗) 토벌이지만, 그건 충분히 판이 깔린 상황을 틈탄 것 뿐으로, 솔직하게 자랑할 수 없었다.

전장에 나간 것(いくさ働き) 자체가 몇 년밖에 되지 않으니, 생애의 절반 이상을 계속 싸워온 히데요시나 미츠히데(光秀)와 비교하는 것 자체가 우습다.

노부타다 자신도 그렇게 이해하고는 있지만, 마음만 조급해져 버린다.

이대로 대단한 무공도 없이 노부나가의 후계자(後釜)가 되어봐야, 과연 부하들은 자신을 따라와 줄 것인가라고.

하다못해 천하인의 자리에 걸맞는 무공을 스스로의 손으로 쟁취하고 싶다고 노부타다는 생각하고 있었다.


"이건 내 지론(持論)인데 말야, 인생은 등산에 비유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해. 산의 높이는 알 수 없어. 하지만 누구나 정상을 향해 한 발씩 나아가. 그 길은 여의치 않고(不如意) 시련에 가득차 있어. 앞이 보이지 않는 여정(道行)에 망설이게 되어버릴지도 몰라. 하지만 망설인 이유를 '남 탓'으로 해버리면 두번 다시 걸어갈 수 없게 된다고 생각해"


"……"


"챠마루 군, 너는 초조해하고 있어. 하시바 님, 아케치 님, 그리고 누구보다도 주상이 걸어오신 산의 높이와 그 발걸음(歩調)을 바로 옆에서 보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말야, 목표로 하는 정상도, 산꼭대기에 이르는 길도, 계속 걸어가는 발걸음도 사람마다 다 달라. 타인의 발걸음을 보고 초조해져서 자신의 발걸음이 엉켜서 주저앉을 필요는 없지 않을까? 네가 지금 걸을 수 있는 발걸음으로 한 발 한 발 나아가는 쪽이, 멈춰서서 초조해하는 것보다는 앞으로 나갈 수 있어"


시즈코의 이야기를 다 들은 노부타다는 볼을 긁었다.

시즈코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 것인가. 그것은 타인을 질투할 시간이 있으면 스스로를 갈고닦기 위해서도 지금은 일단 이것저것 가리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라, 라는 것이다.

시즈코다운, 에두르면서도 배려에 가득한 말에 노부타다는 잔뜩 들어갔던 힘이 풀어지는 것을 느꼈다.


"아ー 이제 됐어! 시즈코와 이야기하고 있으면 나 스스로의 소심함(小ささ)이 싫어진다"


얼굴에 손을 대고 노부타다는 하늘을 보았다.


(이래서는 언제까지나 어린애 취급이겠군)


성인식을 치르고 사회적으로는 어른이 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바깥쪽 뿐으로, 알맹이는 여전히 어린애인 채라는 것을 노부타다는 뼈저리게 깨달았다.

타인의 무공에 초조해져서 주위에 화풀이나 하는 사람을 사람들은 따라오지 않는다.

곤경에 처할수록 뻔뻔스럽게 웃어라, 예전에 시즈코가 했던 말을 노부타다는 떠올렸다.


"그래서, 기분은 나아졌어?"


"나아졌다 나아졌어. 그래서, 말이지. 뭔가 좋은 계책은 없어?"


전환이 빠른 건 장점이네, 라고 내심 생각하면서 시즈코는 턱에 손을 대고 생각했다. 잠시 후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귀 좀 빌려줘. 실은 말야ーー"




8월 13일 밤, 강풍과 뇌우를 동반하는 격렬한 비가 쏟아졌다. 후세에서도 '이날 밤은 폭풍우였다'라고 신장공기(信長公記)나 아사쿠라 가문의 기록에 남아 있다.

옥외에 있으면 1분도 지나지 않아 비 맞은 생쥐 꼴이 되어, 천둥 소리와 퍼붓는 빗소리로 주위 소리도 제대로 들리지 않는 상태였다.

오오즈쿠 성을 지키는 자들은 다들 안으로 틀어박히고, 얼마 안 되는 보초(物見)들만이 어둠을 향해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자, 출진이다!!"


코를 붙잡혀도 알 수 없을 정도의 어둠 속에서, 노부나가는 호위대만을 이끌고 오오즈쿠 성으로 출진했다. 그 앞의 야키오 요새는 이미 함락되었기에, 그들은 상처없이 오오즈쿠 성으로 접근했다.

목적지인 오오즈쿠 성의 불빛이 보이게 될 듯할 때, 노부나가는 이변을 눈치챘다. 적측이 야습을 눈치채고 응전하고 있는 건가라고도 생각했으나, 즉시 그 생각이 틀린 것을 깨달았다.


"쳐라!! 쳐라!!"


노부타다가 이미 오오즈쿠 성을 공격하고 있었다. 제아무리 노부나가라도 예상밖의 사태였으나, 이런 계책을 떠올릴 듯한 인물에 생각이 미치자 미소를 떠올렸다.

크게 고함치고 있는 노부타다의 근처까지 말을 몰아가서 뇌우에 지지 않는 큰 목소리로 외쳤다.


"키묘!! 내게 상의도 없이 공격을 하다니!!"


노부나가의 목소리를 들은 노부타다가 돌아보았다. 그는 노부나가를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아버님!! 뇌우는 오다 가문에게 길조(吉兆)!! 이 기회를 놓칠 수는 없잖습니까!!"


"말 하나는 그럴듯하게 하는구나!! 다들!! 키묘에게 지지 마라!! 쳐라!!!"


노부타다의 호위대에 더해, 노부나가의 직속 부하들도 공성에 가세했다.

이 사태에 대해, 오오즈쿠 성의 수비를 맡은 사이토 교부쇼유(斉藤刑部少輔)나 수하의 병사들은, 시종 선수를 빼앗기고 있었다.

노부타다의 군세의 접근을 눈치챘을 때는 이미 성문에 접근을 허용하여, 칼날이 목젖에 들이대어진 상태가 되어 있었다.

이 뇌우에서는 우군이 눈치채고 달려와줄 가능성은 낮았고, 원군을 부르려 해도 오다 군의 포위를 뚫고 어느 쪽으로 달리면 될지조차 알 수 없었다.

혈기왕성한 오다 군을 상대로 겨우 수백 명의 피로할 대로 피로한 병사들만으로 지켜내야 하는 것이다.

폭풍우를 받으면서도 기세등등한(逸る) 오다 군과 대조적으로, 코앞까지 적이 쳐들어온 상황이 된 아사쿠라 병사들의 사기는 계속 떨어졌다.


"아버님의 직속에 지지 마라, 쳐라!!"


이리하여 노부나가와 노부타다의 전격(電撃) 작전에 오오즈쿠 성은 겨우 몇 시간만에 함락되었다. 오오즈쿠 성의 낙성(落城)은, 비가 그친 다음 날 이른 아침까지 아무도 깨닫지 못했다.


"벌써 오오즈쿠가 함락되었다는 것이냐!"


오오즈쿠 성 함락 소식에 아자이-아사쿠라는 공황 상태에  빠졌으나, 오다 군도 적지않게 동요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야키오 요새를 함락(調略)시킨지 겨우 이틀, 이걸로 아자이-아사쿠라는 외통수의 국면을 맞이한다.

노부나가의 전격적인 행동에, 가신들조차 상황 파악이 필요한 상태였다. 히데요시는 히데나가(秀長)나 타케나카 한베에(竹中半兵衛), 그밖의 주요 가신들을 모아 작전회의를 열었다.


"설마 주상께서 친히 함락시키실 줄이야…… 키묘 님께서 먼저 공격하셨다고 하니, 우리들은 선수를 빼앗겨 버렸다"


히데요시는 탄식하면서도 흥분이 식지 않은 모습으로 말했다. 지도를 펼치고는, 아자이와 아사쿠라가 완전히 분단된 상태를 붓으로 적어넣었다.

전령이 가져온 서신에는, 노부나가는 그대로 쵸노 성(丁野城)을 공격하러 가고, 노부타다는 오오즈쿠 성의 수비가 맡겨졌다.

이 때, 통상적으로는 일가친지까지 몰살될 장병들을, 어째서인지 노부나가는 아사쿠라 본진으로 쫓아버렸다고 한다.

노부나가의 노림수가 어디에 있는지, 히데요시로는 아무리 생각해도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히데요시만이 혼란스러워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다른 무장들도 마찬가지로 노부나가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윽고 노부나가는 쵸노 성을 책략(調略)을 써서 수중에 넣고, 성을 지키던 적병들을 쫓아낸 후, 쵸노 성에 기름을 뿌리고 불을 질렀다.

그것들이 끝나자, 노부나가는 쵸노 성 부근에서 무장들을 소집했다.


"오늘 밤 아사쿠라는 반드시 철수한다. 알겠느냐, 이 기회를 놓치지 말아라! 아사쿠라는 반드시 철수한다. 놈들의 등 뒤를 찔러 아사쿠라를 섬멸하는 것이다"


노부나가는 재삼 무장들에게 당부했다. 그의 말에는 망설임이 전혀 없어, 그가 오늘 밤의 아사쿠라 철수를 확신하고 있는 것을 알리고 있었다.

그러나, 노부나가의 예언이라고도 해야 할 발언을 들은 무장들은, 근거가 제시되지 않는 발언에 당황하고 있었다.

이미 아자이-아사쿠라 모두 시체나 다름없으며, 그걸 겨우 며칠만에 해낸 노부나가의 수완은 훌륭하다고밖에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노부나가라도 신이 아닌 인간. 적이 후퇴하는 날짜까지 맞출 수 있는 것인가 하고 쉽게는 믿지 못하고 있었다.

이 때, 노부나가의 분노를 사더라도 아사쿠라 철수의 근거를 들었더라면, 그들의 뼈아픈 실패는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으리라.




"역시, 어떤 무장도 움직일 기색이 없네"


해가 저물어도 전투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것에 시즈코는 탄식했다.

노부나가가 거듭 아사쿠라 군의 철수를 예고했으나, 시바타(柴田)나 사쿠마(佐久間) 등 무장들의 진은 고요했다.

지도와 전황을 보면 일목요연한데, 노부나가가 설명하지 않은 걸까라고 그녀는 생각하고 있었다.


아사쿠라 본진은 타나카미 산(田上山)에 있다. 본진에서 오오즈쿠 성과 쵸노 성이 보이는 방향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면 그들이 어떤 심경에 빠질 것인가.

지금까지 수많은 실패를 저지르며 가신들의 신뢰를 잃고 있는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요시카게는 무리를 무릅쓰고 출병했다.

아사쿠라 가문의 주력 중신들이 출진을 거부하여, 장병들의 사기가 낮은 상태에서의 출진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오오즈쿠 성과 쵸노 성이 함락되었다. 요시카게에게 더 이상 장병들을 붙잡아둘 힘은 없었다. 여기서 철저 항전을 부르짖어봤자, 누구 하나 따라오지는 않을 것이다.

퇴로를 차단하고 억지로 싸우는 상황에 몰아넣어도 장병들의 마음은 철수로 기울어져 있다. 싸우면 일단 이길 수 없고, 여기서 패배하면 아사쿠라 가문은 붕괴한다.

싸움이 벌어지지 않더라도, 솔선하여 오다 가문과 내통하는 자가 생길지도 모른다.


"키묘 님은 오오즈쿠 성에서 움직일 수 없으니 그렇다치고…… 슬슬 아케치 님 쯤은 뭔가 행동을 시작할 것 같긴 하려나ー"


아사쿠라 야습에 관해 시즈코는 호출되지 않아서, 아자이의 견제 역할로서 사이조, 타카토라와 함께 본진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시즈코는 태평한 모습으로 밤하늘을 바라보며 별자리와 별의 운행에 대해 떠올리며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그 느긋한 시간은, 소성(小姓)이 급한 걸음으로 달려오는 소리에 끝을 고했다.


"시즈코 님, 아케치 님이 급히 진으로 오셨습니다"


"서울러서 이쪽으로 안내해주세요. 아마도 시간 여유는 없을테니까요"


"예? 옛"


마치 미츠히데의 용건을 알고 있는 듯한 시즈코의 말에 멍해졌던 소성이었으나, 즉시 발길을 돌려 미츠히데와 세 명의 가신들을 데리고 돌아왔다.


"무례함은 알고 있습니다만 시간이 없기에, 서로 속을 떠보는 것은 생략했으면 합니다"


"용건은 아사쿠라 군에 대한 야습에 관한 것이지요? 주상께서 재삼 말씀하신 듯, 일단 틀림없이 오늘 밤 아사쿠라 군은 철수하겠지요"


"저 자신의 우둔함이 아쉽습니다만, 지금 가장 주상의 마음을 이해하고 계시는 건 시즈코 님이시지요.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시는지 가르침을 주실 수 있겠습니까"


"제 생각도 섞여 있습니다만, 그래도 괜찮으시다면"


시즈코의 서두(前置き)에 미츠히데는 고개를 숙였다. 상대가 누구이건, 가르침을 청하는 경우라면 고개를 숙인다. 다른 사람에겐 할 수 없는 행위였다.

바로 그렇기에, 얼마 안 되는 기간에 오다 가문 가신들(家中)의 필두(筆頭)까지 올라갈 수 있었던 것이리라.


"각 진영의 포진 상황에 대해서는 이미 아시고 계실거라 생각하니 생략하겠습니다. 우선, 아사쿠라 군의 시점에서 생각해 주십시오"


작은 탁자를 사이에 놓고 미츠히데와 시즈코가 마주보았다. 탁자 위에는 현재 상황을 나타낸 지도가 놓여 있었다. 시즈코는 그 지도에 붓으로 작은 선과 화살표를 써넣었다.


"아사쿠라 군의 장병들은, 오오즈쿠 성과 쵸노 성 방향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보았겠죠. 두 개의 성이 함락된 지금, 아사쿠라 군은 오다니 성(小谷城) 부근(近辺)의 방벽을 잃은 상태입니다. 방어 시설도 없는 본진에서 철저 항전하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겠죠"


"흠"


"다음으로 아사쿠라 가문 당주인 요시카게입니다. 그는 과거의 실패와 이 전황에 의해 구심력을 잃었습니다. 애초에, 이 싸움에서도 '몸이 안 좋아서'라며 출진을 거부한 가신이 있을 정도입니다. 아자이의 운명(命運)이 다한 것이 누구의 눈에도 명백한 지금, 이치죠다니(一乗谷)에서 방어하는 쪽이 이치에 맞으니까요. 그리고 철수한다면 빠르면 빠를수록 좋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 쪽으로 변절하는 무장들이 생겨나니까요"


"과연. 거기까지 읽는다면 아사쿠라 군이 오늘 밤 철수한다고 주상께서 예고하신 것도 당연한가요"


요시카게에게 남겨진 시간은 적다. 지금까지처럼 우유부단(優柔不断)하게 행동하다가 기회를 놓치면, 이번에야말로 가신들에게 버림받게 되어 그 목을 선물로 오다 가문으로 변절하려는 자가 나올 가능성까지 있다.

지금까지와 다르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서도, 요시카게는 즉각 결단했다. 물론, 이치죠다니로 철수하는 결단이다.


요시카게의 입장에서는 첫 영단(英断). 하지만 노부나가는 요시카게가 그렇게 결단하는 것까지 계산해두고 움직이고 있었다. 바로 그렇기에 노부나가는 오늘 밤 아사쿠라 군은 후퇴한다고 예고한 것이다.


"그렇습니다. 슬슬 아사쿠라 군의 철수가 시작될 때가 아닐까 합니다"


2만이나 되는 군을 이끌고 철수하려면 신속한 행동이 요구된다. 그러나, 아사쿠라 군은 지금까지 신속한 행군을 해본 경험이 없다. 게다가 전날의 폭우에 의해 지면은 진흙탕으로 변해 있는 상태이다.

평소 이상으로 시간이 걸릴 것은 명백했다.


"아케치 님께 이것을 드리겠습니다"


시즈코는 미츠히데에게 서신을 내밀었다. 미츠히데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내밀어진 서신을 받아들었다.


"이게 무엇입니까?"


"저희 진에 남아있는 텟포슈에 대한 명령서입니다. 단적으로 말씀드리면 '이 명령서를 가진 사람의 지시에 따르라'입니다"


"괜찮으십니까"


"제 몸은 뒤의 두 사람에게 맡겨두었습니다. 그리고, 아사쿠라 군을 섬멸하는 것이 주상의 목적입니다. 누가 무공을 세웠다, 라는 것에 집착하여 공격할 기회를 놓치면 후세에 웃음거리가 되는 것은 주상이시니까요"


"그렇다면, 감사히 받겠습니다. 이 은혜는 언젠가 갚도록 하지요. 이 자리는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다시 미츠히데가 깊이 고개를 숙였다. 이번에는 뒤에 있는 가신들도 그에 따랐다. 시즈코도 그를 따르는 모양새로 미츠히데에게 고개를 숙였다.

고기를 들자, 미츠히데는 즉시 몸가짐을 바로하고 명령서를 품 속에 넣더니 재빨리 나갔다. 그들의 발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었을 때, 시즈코는 한숨을 쉬었다.


"시즈코 님, 아케치 님을 너무 편드시는 것이 아닙니까?"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조용히 있던 타카토라였으나, 미츠히데가 떠나가자 의문을 입에 올렸다.

쓴소리라기 보다는, 지금까지 구석구석 골고루(満遍なく) 지원하고 있던 시즈코가, 미츠히데에게만 눈에 보이는 지원을 한 것이 그에게는 의문이었다.


"딱히 아케치 님이 아니더라도, 처음에 찾아온 사람이면 누구라도 괜찮았어. 아무도 안 왔다면 텟포슈를 빌려줄 일도 없었지. 이번의 주상의 발언을 가신들 중에서 가장 믿고 있던 것이 아케치 님이었던 것 뿐이야"


"하지만, 굳이 텟포슈를 다 빌려주실 정도는 아니지 않습니까?"


"이유는 분명히 있어. 생각의 실마리를 줄까? 철포는 쏘면 큰 소리를 내지. 이걸로 대답을 알 수 있을거야"


"…………아!"


힌트를 받은 타카토라는 곤혹스러워했으나, 이윽고 어떤 해답에 도달했다. 이해한 타카토라를 보고 시즈코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야습의 개시를 알리는 효시(嚆矢)가 되지. 내 지원은, 맨 먼저 공격한다는(一番槍) 신호를 다른 무장들에게 보낼 권리를 얻은 것에 불과해. 뭐, 전투가 시작한 걸 알게 되어도 움직이지 않는 사람이 나올 것 같긴 하지만"


신식총이던 화승총(火縄銃)이던, 화약이 폭발하는 이상 큰 소리가 주위에 울려퍼진다. 소리가 들리면 눈치빠른 사람은 깨달을 것이다. 아사쿠라 군은 철수하고, 그것을 오다 군이 추격하고 있다는 것을.


시즈코는 어깨의 힘을 빼며 그 자리에 드러누웠다.


"뭐, 내일에는 결과가 나올거야"




아사쿠라 요시카게(朝倉義景)는 야음을 틈타 철수할 것을 결정했다. 그는 약간의 병사들을 남겨 소리를 내도록 명령했다.

사기를 북돋우는 함성(鬨)을 지르면 철수하려고 하고 있다는 생각을 오다 군은 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소수의 병사라면 도망치는 것도 쉽다. 밤이 지나면 철수를 들키기 떄문에, 남겨놓는 병사들은 주변 지리를 잘 아는 자들을 골랐다.


하지만, 그런 잔재주는 확신을 얻은 노부나가에는 아무런 효과도 주지 못했다. 함성의 보고를 들은 오다 가문 가신들은 아사쿠라가 철수하지 않을거라 생각했으나, 노부나가와 미츠히데는 철수가 시작되었다고 확신했다.

철수하는 아사쿠라 군을 최초로 덮쳐간 것은 미츠히데였다. 그와 노부나가는 다른 무장들의 도착을 기다리지 않았다. 아군이 없다는 것은 미츠히데에게 대단히 유리하게 작용했다.


"쏴라!!"


아사쿠라 군의 후위(殿)에 따라붙자마자, 미츠히데는 우선 텟포슈로 선수를 쳤다. 어둠 저편에서 굉음과 함께 총탄이 날아온다. 아사쿠라 군은 어지간히 혼이 빠질 것이다.

아니나다를까, 아사쿠라 군은 패닉에 빠졌다. 차례차례 병사들이 쓰러져가는 참상에, 모두 앞다투어 도망치려고 생각했다.

종자(従者)는 주인(主人)을, 주인은 종자를 밀어젖히고 도망치려고 하는 아비규환의 지옥도가 곳곳에서 펼쳐졌다.

다른 무장들이 참전했다면, 이렇게 사정없이 총탄의 비를 쏟아부을 수는 없었으리라.


텟포슈로 실컷 아사쿠라 군의 공포를 부추긴 후, 만반의 준비를 갖춘 아케치 군의 주력이 아사쿠라 군을 덮쳐갔다. 이미 싸울 의사조차 없는 아사쿠라 병사들이었으나, 아케치 군은 용서없이 베어넘겼다.

아케치 군이 전진할 때마다 진흙투성이의 아사쿠라 병사들의 시체가 나뒹굴며 시산혈해(屍山血河)가 이러할까 싶은 광경이 벌어졌다.

주변에는 피와 내장이 풍기는 쇠(鉄)와 녹(錆) 냄새가 가득하고, 여기저기에 타다 버린 말이나 무구, 군기 등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아사쿠라 군이 얼마나 혼란에 빠졌는지 쉽게 엿볼 수 있는 증거였다.


아케치 군은 아사쿠라 군의 배후를 급습했다. 갑작스레 총격을 얻어맞은 아사쿠라 병사들은, 적의 규모도 어디서 공격받은지도 모르고 어쨌든 앞으로 도망치려고 했다.

하지만, 앞은 전날의 폭우로 질퍽거려서 마음대로 전진할 수 없다. 이윽고 죽음은 등 뒤에서 다가오고 있는 것을 깨달은 병사들이 필사적으로 도망치기 시작하여 혼란에 박차가 가해졌다.

앞에 가는 병사를 짓밟더라도 자신만은 살고 싶다며 무턱대고(遮二無二) 도망친 결과, 아군을 짓밟더라도 도망치려고 하는 광란의 도가니로 빠져들었다.


"뭣이라!! 주상과 아케치 님이 아사쿠라 군에게 야습을 걸었다고!!"


다음 날 아침, 아사쿠라 군을 추격할 것을 자신이 명령한 자들의 도착을 기다리지 않고 노부나가가 소탕전에 나선 것에, 오다 가문 가신들은 겨우 깨달았다.

준비를 하면서 함성 소리에 완전히 방심해버렸던 그들은, 다급하게 노부나가를 쫓았다. 그들이 노부나가를 따라잡은 것은 토네자카(刀根坂)의 바로 앞이었다.

도중의 시체나 무구가 굴러다니는 모습을 볼 때 격렬한 소탕전이 벌어진 것은 명백하여, 오다 가문 가신들은 스스로의 실수를 이해했다.


"용서받을 수 없는 실수다"


가신들에게는 아사쿠라 병사들의 참상보다 노부나가의 조용한 분노 쪽이 무서웠다. 노부나가가 화를 내는 것도 당연하다. 갑작스레 명령한 게 아니라, 사전에 선봉 무장까지 결정된 상태에서의 태만이다.

결과적으로 무공은 미츠히데가 독점하게 되었으나, 그에 대한 불만을 표정에조차 드러낼 수 있을 리도 없어, 실수한 무장들은 고개를 숙이고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선봉을 맡았던 자는 앞으로 나와라"


노부나가의 말대로 시바타나 히데요시가 앞으로 나섰다. 노부나가는 전원에게 한 방씩 주먹을 내려쳤다. 범한 실수에 비해 지나치게 온건한 벌이었다. 원래대로라면 참수 명령이 떨어져도 이상하지 않다.


"두 번은 말하지 않겠다. 이걸 기회로 아사쿠라를 섬멸한다"


"옛!"


"낑깡(미츠히데)! 너는 이놈들을 이끌고 아사쿠라를 추격해라"


그 순간, 아사쿠라 토벌의 최대 공로자는 미츠히데로 결정되었다. 아사쿠라 가문을 멸망시킨 공적은 미츠히데가 받게 된다. 다른 사람들은 뭘 해도 아사쿠라 가문을 멸망시키는 데 힘을 보탰다, 라는 입장에 불과하다.


"송구스러우나 주상, 저들은 서둘러 이곳으로 달려온 모습입니다. 병사들도 피로가 쌓여 있는 상태이니, 헛되이 병사를 소모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됩니다. 이곳은 가장 피로가 적은 시즈코 님의 군을 빌리고 싶습니다"


"녀석은 오다니 성에서 대기하고 있다. 지금부터 부르기엔 시간이 필요하다"


미츠히데의 말에 노부나가는 노려보면서 의문을 말했다. 싸늘한 눈빛을 앞두고 미츠히데는 평소의 표정을 무너뜨리지 않았다.


"이미 불러 두었습니다. 이제 곧 이쪽으로 오실 겁니다"


미츠히데의 말이 올바른 것을 증명하듯, 노부나가는 조금 멀리서 말들이 달려오는 소리가 들리는 것을 깨달았다. 저만큼 일사불란하게 겹치는 말발굽 소리를 낼 수 있을 정도로 숙련도가 높은 군은 하나 뿐이다.


"핫! 손이 빠른 녀석이구나! 좋다. 아까의 무공을 봐서, 멋대로 시즈코를 불러들인 것은 불문에 부치겠다"


"관대하신 조치, 감사드립니다"


"그럼 이곳에 있는 자들은 병사들을 쉬게 한 후 오다니 성으로 돌아가라! 빠르게 준비하라!"


다른 무장들은 당했다, 라고 이를 갈았다. 만회하려면 시즈코 군의 텟포슈가 필요해진다. 없어도 된다고 하면 좋겠지만, 자군이 입을 피해의 단위가 달라진다.

시즈코 본인이 왔다고 하는 이상, 텟포슈도 데려왔을 것은 확실하다고 무장들은 생각했다. 미츠히데의 교활함과 치밀한 계산에 무장들은 새삼 분노를 느꼈다.


"기다리시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주상"


사반각(四半刻) 후, 시즈코가 노부나가가 있는 진에 도착했다. 노부나가는 시즈코를 일별한 후, 미츠히데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낑깡, 텟포슈는 몇 명 데려가겠느냐"


"가능하면 돌파력이 있으면 좋겠습니다만, 300명만 있으면 문제없다고 생각합니다"


"시즈코, 텟포슈는 몇 명 데려왔느냐"


"오다니 성 앞의 진에는 겐로를 필두로 예비병을 포함하여 700. 이쪽에는 600을 데려왔습니다"


순간 무장들이 웅성거렸다. 시즈코의 텟포슈는 1000명이라는 대부대다. 하지만 방금 그녀의 말을 믿을 경우, 약간이지만 텟포슈의 총 숫자가 늘어난 것이 된다.

하지만 동시에 텟포슈가 있다는 것은, 만회할 기회를 많이 얻을 수 있다는 것이기도 하다. 각자 다양한 속셈을 품고 다음에 취할 행동을 생각했다.


"600이라…… 400을 남기고, 나머지 200은 오다니 성으로 배치한다. 너는 400의 텟포슈를 이끌고 낑깡과 함께 아사쿠라 가문을 멸망시켜라"


"옛!"


노부나가에게 인사한 후 시즈코는 즉시 준비에 착수했다. 지금까지 다소 느긋하게 행군하고 있었으나, 이제부터는 도망치는 적을 추격할 속도가 필요해진다.

미츠히데가 어떤 배치를 할지는 알 수 없었지만, 텟포슈와 호위 역할의 병사들이 최전열(最前列), 그 뒤에 미츠히데의 주력부대, 후방에 시즈코의 군이라는 배치일거라고 짐작했다.


"하시바 님, 지금, 시간은 괜찮으신가요?"


"앙? 뭐냐, 시즈코"


오다 가문 가신들이 전투 준비를 하고 있는 틈을 타서, 시즈코는 히데요시에게 다가갔다. 일거수 일투족을 다른 무장들에게 관찰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는 시즈코는, 생긋 웃는 표정을 무너뜨리지 않고 봉서(封書)를 내밀었다.


"네네(ねね) 님으로부터 편지를 맡아두었습니다. 내용은 부끄러우니까 '진에서 읽어 달라'고 하셨습니다"


"뭐? 어…… 어어, 미안하구나. 하여간 네네 그것이 참"


일순 멍한 표정을 지은 히데요시였으나, 즉시 헤벌레한 표정을 떠올렸다. 멀리서 보고 있던 무장들은 눈치채지 못했지만, 히데요시의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단적으로 말하면 가짜 웃음(作り笑い)이었다.

히데요시는, 시즈코가 뭔가 타인에게는 알리고 싶지 않은 것을 건네줬다는 것을 즉시 헤아렸다.


"하시바 코이치로(羽柴小一郎) 님께 전해드리려 했습니다만, 그런 편지는 형님께 직접 전해 주십시오, 라고 하시더군요"


"어쩔 수 없는 녀석이군. 고맙다, 시즈코. 나중에 읽지"


거기서 귀를 쫑긋 세우고 있던 무장들도 시즈코들로부터 의식을 돌렸다. 문제없지만 방심은 하지 말자고 시즈코는 긴장을 조였다.

히데요시에게 건넨 것이 무엇인지 다른 사람들이 알면 확실하게 쟁탈전이 벌어진다. 그걸 피하기 위해서도 내용물은 흥미를 끌지 않는 것으로 위장할 필요가 있었다.


(딱히 히데요시와 손을 잡을 생각은 없지만, 야차(夜叉, 아자이 나가마사) 씨가 꼭 오다니 성 공격에 참가하고 싶다고 필사적이니)


친지(身内)나 지인이라도 있는 걸까, 라고 시즈코는 태평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실제로는 오다니 성의 예전 성주이자, 아자이 가문의 당주인 나가마사가, 한번 더 아버지와 이야기할 기회를 얻고 싶어해서였지만.

시즈코의 속셈과 나가마사의 속셈, 그리고 히데요시의 속셈은 각자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지만, 오다니 성이라는 점에서는 일치하고 있었다. 그것이 후에 히데요시의 대활약으로 이어지는 무공의 원천이 된다.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어, 나중에 보자고"


가벼운 인사로 두 사람은 헤어졌다.

자기 진이 가까워지자 히데요시는 전력질주에 가까운 속도로 타케나카 한베에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굉장한 기세에 타케나카 한베에는 깜짝 놀랐다. 그러나, 어깨로 숨을 쉬고 있는 히데요시는 미소를 떠올리며 말했다.


"서둘러 돌아가자. 오다니 성을 함락시키는 것은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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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
잡담2019. 10. 20. 21:29

조금 전에 티스토리 일부 블로그에서 블로그 및 관리페이지 모두 접속이 안 되는 현상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다시 되긴 하는데...


안 그래도 티스토리 안드로이드 앱은 업데이트를 안해서 안드로이드 최신버전에서는 알림기능도 제대로 동작 안하고... 운영사인 Daum에서 티스토리에 별로 신경쓰는 것 같지도 않으니... 싸이월드처럼 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으니 슬슬 블로그 이전을 심각하게 고려해야봐야겠군요.


그런데 네이버 블로그는 싫고... 이글루스도 망했고... 블로거는 불편한 점이 많아서... 흠... -ㅅ-;


블로그나 기타 번역물 등 연재하기에 좋은 사이트 아시는 분 계시면 추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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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

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겐키(元亀) 4년 무로마치 막부(室町幕府)의 종언(終焉)


107 1573년 8월 상순



정신없었던 6월과 정반대로, 7월은 비교적 평온하게 지나갔다. 가끔 나가요시(長可)가 출전하고, 불완전연소였는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돌아오는 정도로, 이렇다 할 변화는 없었다.

사이조(才蔵)는 평소대로 시즈코의 호위에 전념하고, 타카토라(高虎)는 쿠로쿠와슈(黒鍬衆)와 행동을 함께 하고 있기에 빈번하게 집을 비우게 되어, 얼굴을 보이는 적이 드물었다.

한편, 케이지(慶次)는 카게카츠(景勝) 등 인질의 감시라는 명목으로, 매일 그들과 함께 놀러다니고 있었다.

시즈코는 집들이 연회(新築祝い) 소동으로 정체되어 있던 정무를 처리하는 나날을 보냈지만, 정무 담당자들이 사무 작업에 숙달되기 시작했기에 의사 결정을 하면 나머지 처리를 이어받아주게 되어, 직무 때문에 정신없이 바쁘다는 상태와는 인연이 없어지게 되었다.


그런 평온한 나날들도, 7월 중순에 들어서자 끝을 고했다. 노부나가가 드디어 아자이(浅井)-아사쿠라(朝倉) 가문 토벌의 호령을 내렸다.

이 출전에서는 노부나가 스스로가 총대장으로 출전하고, 적자(嫡男)인 노부타다(信忠, 구(旧) 키묘마루(奇妙丸))도 부대장이라는 지위로 노부나가를 따르고 있었다.

당연하지만 시즈코도 호출되어, 그녀 자신도 출전하게 되었다. 오다 군의 총력이 결집되어, 노부나가의 의지(意気込み具合)를 내외에 천명했다.


"에ー, 이번 싸움에서 주상(上様)께서는 아자이, 아사쿠라 두 가문을 멸망시키실 생각이십니다. 상대도 물러설 곳이 없기에 죽기살기로 저항할 것이 예상됩니다. 방심하다가 다치거나 하지 않게 빈틈없이 대응하죠"


평소대로 어딘가 맥이 빠진 시즈코의 훈시에, 작전회의에 모여든 평소의 멤버 8명은 쓴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이번에 우리들은 아사쿠라 가문의 대응에 집중합니다. 아자이 가문 측의 공략은 하시바(羽柴) 님이 진행하고 계셨기에, 지금까지대로 하시바 님에게 맡기기로 했습니다. 현장 상황을 모르는 사람이 괜히 나섰다가 불화를 부르면 본말전도니까요. 하시바 님 측에서 의뢰가 있으면 대응하는 정도로 좋다고 생각해요. 특별한 사정이 있다면 주상으로부터 하명이 있겠죠"


그 말대로, 시즈코는 자군(自軍)을 아사쿠라 가문에만 집중할 예정이었다.

이것은 전술한 대로, 히데요시(秀吉)가 선임으로서 아자이 가문에 대응하고 있던 것도 있지만, 아사쿠라 가문이 사용하는 성채(城砦)가 아자이 가문의 배후에 위치하고 있는 것이 큰 이유였다.

특히 오오즈쿠 성(大嶽城)은 이 싸움의 향방을 좌우하는 핵심이 된다. 오오즈쿠 성은 아자이 가문의 거성(居城)인 오다니 성(小谷城)과 마찬가지로 오다니 산(小谷山)의 북쪽에 위치하는 성이다.

오다니 성보다 북쪽에 지어져, 아사쿠라 가문의 거성인 이치죠다니 성(一乗谷城)의 중계점으로서 대단히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즉, 이곳을 노부나가에게 함락당할 경우, 아자이 가문은 목젖에 칼이 들이밀어진 상태가 된다.

아자이 가문은 아사쿠라 가문과 완전히 분단되어, 병력 수에서 밀리는 아자이-아사쿠라 측의 유일한 이점인 연대(連携)를 취할 수 없게 되어 각개 격파당하는 것이 누구의 눈에도 명백해지는 것이다.


"이에 앞서 아시카가(足利) 쇼군(将軍) 가문이 쿄(京)에서 추방되게 됩니다. 뭐, 이에 대해서는 우리가 뭔가 할 필요는 없겠죠. 다만, 아자이-아사쿠라 침공은 쇼군 추방 후에 이루어질거라 생각합니다"


"이미 이름뿐인 쇼군이니까, 아예 처치해 버리면 뒷탈(後腐れ)이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드는데 말야ー"


"주상께서는 쇼군을 살해한 찬탈자라는 악명을 싫어한 거겠죠. 거기에 형식상으로는 상대가 항복하고 그걸 받아들인 것이니, 사리(筋)는 지켜야 해요"


"흐ー음"


나가요시의 말에 시즈코가 대답했다. 딱히 깊은 의도는 없었는지, 나가요시는 성의없는 대답을 하여 대화를 끝냈다.


"자세한 사항에 대해서는 오우미(近江)로 출전하여, 도중의 작전회의에서 말하겠어요. 평소대로, 준비를 부탁해요"


"알겠습니다"


"그럼, 이걸로 작전회의는 종료에요. 예정일까지는 각자 예기를 북돋아주세요"


아자이-아사쿠라 전투 출전의 작전 회의는 단시간에 끝났다.

기본적으로 시즈코가 전달 사항을 늘어놓았을 뿐, 상의할 만한 내용이 거의 없었던 것이 원인이다. 노부나가는 아자이-아사쿠라 두 가문의 영토를 빼앗은 후, 엣츄(越中) 일향종(一向宗)까지 박살낼 생각이었다.

엣츄 일향종은 에치고(越後), 미노(美濃), 에치젠(越前)에 둘러싸이게 되어 완전히 갈 곳을 잃는다.

그렇게 되면 노부나가에게 굴복하거나, 몰락해가는 타케다(武田)에게 비호를 요청하거나, 그도 아니면 자포자기하여 어딘가로 쳐들어가거나를 선택하게 된다.

엣츄 일향종이 그것들 중 어떤 것을 선택하더라도 노부나가로서는 상황이 좋았다. 엣츄 일향종만 처리하면, 이시야마(石山) 혼간지(本願寺)의 병력은 키슈(紀州) 문도(門徒)들만이 남게 된다.

혼간지는 히에이 산(比叡山) 등의 종교 세력(寺社勢力)과는 달리, 자체적인 승병(僧兵) 집단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

그들의 강점은 각지에 흩어져 있는 문도들을 동원한 잇코잇키(一向一揆)라는, 필요할 때 임시로 편성되고, 용무가 끝나면 해산되는 자유도가 높은 전력이다.

그 기초는 문도들이며, 그것이 감소하면 필연적으로 혼간지의 영향력은 약체화된다.

따라서 노부나가는 동일본(東日本)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엣츄 일향종의 씨를 말려, 혼간지의 문도를 자기 영토의 서쪽에만 한정시킬 생각이었다.


"이걸로 오케이"


시즈코는 필요한 서류를 정리하여 노부나가에게 보낼 서신을 준비했다.

이번의 싸움에서는 공격이 아니라 후방 지원에 전념할 필요가 있었다. 오우미는 영토의 중앙에 비와 호(琵琶湖)가 존재하는 관계상, 필연적으로 평야 부분이 적어져 영토 대비 수확량이 다른 곳보다 떨어진다.

그렇기에 현지에서의 물자 조달은 어렵고, 이세(伊勢)나 미노, 오와리(尾張)에서도 군수물자를 운송할 필요가 있었다. 실제로 선임인 히데요시도 물자 보급에 관해 미노로부터의 지원에 완전히 의존하고 있었다.

이번에 전군이 오우미에 전개하게 되면, 물자의 조달에 난항을 겪을 가능성이 있다.

그 우려를 회피하기 위해서도, 시즈코의 후방지원부대가 병참을 담당하여 과부족없이 물자 공급을 할 필요가 있었다.


"아, 군이 움직이면 인질인 요로쿠(与六) 군들은 어떻게 하지? 케이지 씨에게 맡길까. 나머지는 이걸 쇼우(蕭) 짱에게 맡기고, 출납(出納) 관리는 아야(彩) 짱이 하니까…… 음, 이거면 되겠지?"


필요 서류를 작성한 시즈코는, 소성(小姓)을 불러 쇼우에게 전달하도록 명령했다. 그 후에는 쇼우와 아야가 필요한 것을 갖춰서 후방지원부대에 연락하기만 하면 된다.

그것만으로 오다 가문에 혈액을 공급하는 심장인 병참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영지 경영도 순조롭고, 이번의 싸움에서 받을 영향도 적지. 고노에(近衛) 님은 쿄로 이주하신 후에 칸파쿠(関白)가 되실 게 확정되었으니…… 고서(古書) 편찬(編纂) 사업도 본격화되려나"


오우닌의 난(応仁の乱) 이후의 혼란기에 귀중한 고서가 유실되고, 지금도 여전히 고서가 흩어져 없어지고(散逸) 있는 것을 걱정한 시즈코는, 역사적 사실에서는 하나와 호키이치(塙保己一)가 편찬한 '군서류종(群書類従)'과 마찬가지로, 흩어져 없어진 고서를 편찬하는 사업을 일으킬 생각이었다.

다만, 이 사업은 공가(公家)나 종교 세력(寺社)에 다대한 영향력을 갖는 사키히사(前久)의 협력이 필요불가결했다.

다행히도 보전 사업에 흥미를 보인 사키히사는 시즈코에게 협력할 것을 약속한다.

다만, 현물을 양도받는 것은 불가능하기에, 사본을 만들 필요가 있었다. 즉, 원본을 빌려서 사본을 만들고, 그걸 가지고 편찬하는 방식이 된다.


방대한 시간과 인원, 비용이 필요해지는 것 치고는 이익은 없다.

하지만 시즈코는 돈보다도 꾸준히 이어진 역사의 집대성인 고서가 사라지는 것을 문제시하여, 잉여(余剰) 기미였던 개인 자산에서 비용을 내기로 약속했다.

문화에 가치를 인정하고 고서를 남기려고 하는 사업은, 의외로 조정을 포함한 공가 사회나 종교 세력 등의 문화인들에게 호의적으로 받아들여졌다.

그 덕분인지는 알 수 없지만, 현대에서는 10권밖에 남아있지 않은 '일본후기(日本後紀)' 전 40권이, 사본이기는 하나 15세기 이래 1세기를 거쳐 재결집하게 되었다.

조정 비장(秘蔵)의 서적에 대헤서도 사본 제작 허가를 얻을 수 있었고, 공가나 종교 세력들이 비장하고 있는 다양한 고서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실제 작업에는 년 단위의 시간이 필요해지며, 단시간에 사본 제작이 끝나는 고서 따윈 없었다.


"역사적 사실에서는 카미교(上京)가 불타버렸지만, 그게 없었으니 고서들이 남아있던 걸까? 뭐, 어쨌든 서적의 소실이나 분실은 후세에 큰 손실이니까, 만회가 가능한 지금 전집을 만드는 사업을 시작해야지"


여담이지만, 하나와 호키이치는 계 1273종의 편집에 40년 가까운 세월을 들였다. 그 이상의 고서가 모일 듯한 시즈코의 고전(古典) 전집(全集) 편찬사업은 더욱 많은 시간이 필요해질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었다.

바로 그렇기에, 사키히사가 칸파쿠라는 조정의 정점에 취임하는 시기에 시작해야 한다고 시즈코는 생각하고 있었다.


"편찬에는 고노에 님도 협력해 주실테니, 이후에는 끈기있게 사업을 계속하는 것 뿐이지만 말야"


시즈코가 벌인 고서(※역주: 원문에서 고서랬다가 고전이랬다가 일관적이지 않음) 전집 편찬사업의 개요는 아래와 같다.

먼저 가능한 한 고서의 사본을 얻는다. 이 사본을 바탕으로, 기재된 문자를 규격화된 한자와 히라가나(平仮名), 카타카나(カタカナ)로 옮겨적는다.

이것은 고서에 쓰인 문자가 쓰는 사람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규격통일된 표기를 사용하여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정보로서 남기는 것이 목적이다.

문자의 통일이 완성되면, 그것들을 활판인쇄(活版印刷, 현대의 원고용지와 마찬가지의 세로쓰기(縦書き) 줄맞춤(段組み) 포맷)하여 서적으로 만든다. 마지막으로 사본을 그대로 인쇄할 수 있는 목판이 완성되면 종료된다.


"그럼, 달리 일거리는 없고…… 이리 와, 비트만"


방 구석에서 얌전히 있던 비트만들에게 시즈코는 손짓을 하며 불렀다. 그녀의 목소리에 전원이 벌떡 일어나서 쏜살같이 시즈코에게 달려왔다.

시즈코가 비트만의 머리를 쓰다듬자, 그는 꼬리를 힘차게 흔들며 화답했다. 즉시 카이저들도 나도나도 하면서 조르기 시작해, 시즈코는 쓴웃음을 지으며 전원의 머리를 차례대로 쓰다듬었다.


"좋아! 산책이라도 할까!"


한동안 오랫만의 스킨십을 즐기고 있던 시즈코였으나, 날씨도 좋았기에 밖에 나가려고 생각했다.

생각난 김에 하자(思い立ったが吉日)는 듯 갑자기 일어선 시즈코를, 처음에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올려다보던 비트만들이었으나, 시즈코가 외출 준비를 시작하자 목적을 헤아리고는 그 뒤를 따랐다.

그들은 무리의 우두머리인 시즈코가 선두를 걷고, 그 옆 또는 뒤에서 꼬리를 흔들며 쫓아갔다.


"오늘은 좋은 날씨네!"


넓은 정원에 나오자 시즈코는 기지개를 켜면서 실컷 햇빛을 쬐었다.

최근 틀어박혀서 사무처리만 하고 있었기에, 오랜만의 태양은 조금 눈부셨다. 비트만들도 시즈코를 따라 제각기 기지개를 켰다.


"내일도 날씨가 좋으면 햇볕이나 쬐는 것도 좋을지도"


좋은 날씨가 계속되기를 빌면서, 시즈코는 비트만들과 함께 걸었다.

다음날은 아쉽게도 비가 올 듯한 날씨였다.




7월 하순, 무로마치 막부(室町幕府) 최후의 쇼군인 아시카가 요시아키(足利義昭)는 정이대장군(征夷大将軍)의 지위를 반납하고, 적자인 요시히로(義尋)를 아시카가 가문의 후계자로 삼는다고 발표했다.

요시아키 자신은, 쿄를 떠나 빈고(備後) 국으로 하향한다. 적자인 요시히로를 차기 정이대장군으로 만들기 위해 노부나가가 책임을 지고 키워낸다는 이야기였으나, 누구나 요시히로를 인질이라 보고 있었다.

요시아키 자신의 퇴위도 건강 문제(体調不良)에 의한 것으로 발표되었으나, 누구의 눈에도 노부나가의 손에 의한 추방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는 해도, 썩어도 전 쇼군이라는 위광은 남아서, 그의 생활이 곤궁해질 일은 없었다.


대외적으로는 아시카가 막부가 존속하고 있지만, 쿄의 백성이나 조정, 공가, 타국의 영주(国人)들은 막부가 멸망했다고 생각했다.

후세의 역사서에는 1573년 7월 하순, 무로마치 막부 멸망이라고 기록된다.


요시아키가 쿄에서 추방당했기에, 그를 통한 노부나가의 간접적인 지배는 끝나고, 노부나가 자신이 천하인(天下人)으로서 행동하는 시대가 막을 올렸다.

노부나가는 즉시 아시카가 쇼군 가문의 예전 직할지(御料所)를 자신의 영토로 접수하고, 현재의 원호(元号)를 겐키(元亀)에서 텐쇼(天正)로 개원(改元)했다.

또, 지금까지 막부가 하고있던 업무를 자신의 가신이자 교토(京都) 쇼시다이(所司代, ※역주: 무로마치 막부에서의 장관 대리, 차관 정도의 직위)인 무라이 사다카츠(村井貞勝)에게 하도록 명했다.


"시대가 변하겠네. 지금부터는 주상의 시대…… 아니, 다들 왜 그래요?"


쿄에서 보내온 보고서를 읽으면서 시즈코는 시대의 변곡점(変わり目)을 직접 겪을 수 있었던 것을 떠올리고 감회가 깊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주위 사람들은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왜냐니…… 더워"


그것은 전원이 더위에 입을 다물고 있었던 모습을 봐도 명백했다. 올해는 예년보다도 기온이 몇 도나 높아서, 현대에서 말하는 폭염(猛暑)이 이어지고 있었다.

케이지 같은 경우에는 상의를 벗어던지고 속옷 차림을 드러내고 있었으며, 사이조는 뭔가 말하고 싶은 표정을 떠올리면서도 그럴 기력이 솟지 않는지 잔소리조차 하지 않았다.

털가죽을 두르고 있는 비트만 패밀리, 타마나 하나 등의 동물들도 타는 듯한 햇살을 피해 그늘에 머무르게 되었다.

현 시점에서의 시즈코 저택에서, 기운이 넘친다고까진 할 수 없어도 평소대로 행동하고 있는 것은 시즈코 뿐이었다.


"더운 날이 계속되고 있네요. 출진도 가까워졌으니, 뭔가 대책을 생각해야 할지도요?"


"그보다…… 어째서 시즈코는 멀쩡한 거야. 나는 더워서 죽을 것 같아"


"어째서라니, 여름은 더운 거잖아요?"


시즈코도 더위를 느끼지 않는 것은 아니다.

태평양에 고기압이 상주하기 때문에, 일본의 여름은 바람이 별로 불지 않는 기후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소빙하기(小氷河期)인 전국시대의 여름은, 현대 일본의 혹서일(酷暑日)이 계속되는 작열지옥(灼熱地獄)보다는 꽤나 시원하다.

에어컨에 의한 열섬 현상이 있는 것도 아니고, 포장된 도로의 열반사가 있는 것도 아니다.

별로 불지도 않는 바람을 차단할 정도로 건물이 밀집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기밀성(気密性)이 높은 건축 양식까지 더해져 실온(室温)이 계속 오르지도 않는다.

이러한 이유로, 더한 지옥을 실제 체험으로 알고 있는 시즈코가 볼 때, 이 정도의 더위는 다소 불쾌한 정도이며, 케이지들처럼 익어버릴 정도로 덥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어쩔 수 없네요. 빙고(氷室)에서 수박이라도 꺼내서 먹는 건 어때요?"


수박의 9할은 수분으로 구성된다. 그렇기에 시원함(涼)을 연출하는 여름의 단골 과실이라 할 수 있다.

또, 붉은 과육에서 알 수 있듯이 베타(β) 카로틴이나 리코펜을 많이 함유하고 있으며, 의외로 칼륨도 많이 함유하고 있기에 피로 회복이나 이뇨 작용이 높다.

단지 수분이 많은 단 과실이 아니라, 여름을 시원하게 보내기 위한 합리적인 디저트라고 할 수 있었다. 물론 지나치게 먹으면 몸에 좋지 않지만, 그건 수박에 한정된 이야기는 아니다.


"아ー, 확실히 우물물로 식힌 수박이나 토마토는 맛있지"


"자자, 늘어지지 말아요! 지금 준비하게 할 테니 기운을 내요(しゃきっとしなさい)"


잠시 후 차갑게 식은 수박과, 아까까지 우물물로 차게 식히고 있던 갓 수확한 토마토가 나왔다.


"음ー, 더운 날에는 역시 이거군"


케이지들은 찬물이 든 통에 발을 담그면서, 토마토나 수박을 먹으며 폭염을 이겨냈다.




출진 준비도 끝나고, 예정일까지 한가함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던 어느 날, 시즈코는 농기구를 걸머지고 밭으로 가고 있었다.

그 날은 희한하게 바람이 강해서 더위는 약간 누그러져 있었다. 평소에는 나무 그늘이 정위치인 비트만들도, 시즈코의 뒤를 기운차게 따라올 수 있을 정도로는 시원한 날이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여름의 햇살은 강하다. 시즈코는 수제의 밀짚모자를 쓰고 있었다.


"흐흥~. 여름이야말로 밭일의 본편(本番)이지요"


쌀은 가을 무렵에 수확기를 맞이하기에, 미묘하게 농한기(農閑期이기도 한 여름에 밭일에 힘을 쏟는다. 여름 야채 등의 가지치기(整枝)나 잎사귀 따기(摘葉), 그리고 수확이 기본적인 작업이다.

익숙한 손길로 시즈코는 작물의 상태를 확인하고는 재빠르게 가지치기와 잎사귀 따기를 했다. 수확 시기인 야채나 과일은 바구니에 넣고, 솎아낼 것은 땅에 묻었다.


"비트만은 이쪽. 카이저, 그 바구니 갖다줘. 아델하이트, 이 끈 당겨줘…… 좋아, 고정됐어. 이제 놓아도 괜찮아"


비트만 패밀리와 협력하여 밭일을 처리했다. 비트만들도 익숙해져서, 시즈코의 지시에 정확하게 반응해서 일을 척척 해냈다. 점심때를 조금 넘겼을 무렵, 예정된 작업은 종료되었다.


"음ー, 이걸로 완료. 이동을 생각하면 8월 3일이나 4일이 출진일테니, 앞으로 며칠은 밭일을 할 수 있겠네"


기지개를 켠 후, 시즈코는 나무 그늘에서 휴식했다. 비트만들은 시즈코의 주위에 진을 치자 시즈코와 마찬가지로 기지개를 켰다. 바람이 살포시 불어와서 햇볕에 탄 몸을 식혀주었다.

기분좋은 따스함(陽気)에 졸음을 느낀 시즈코였으나, 땀을 흘린 채로 잤다간 확실하게 감기에 걸리기에 뺨을 때려 기합을 넣었다.


"좋ー아, 땀을 흘리자. 그 후에 느긋하게 쉬는거야"


카이저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은 후, 시즈코는 벌떡 일어났다. 농기구의 정리를 허드렛일꾼(下働き)에게 맡긴 후, 시즈코는 흙과 땀 투성이가 된 몸을 목욕탕에서 씻어냈다.

목욕탕을 나온 후에는 약간 늦은 점심식사를 하고, 가볍게 사무처리를 하며 보냈다.


출진 전의 긴장감을 띠면서도 느긋한 분위기는, 오다 가문 중진이 되어버린 그녀에게 허락된 약간의 휴식이었다.

조용하고 마음이 편해지는 시간의 흐름이었다. 하지만, 가혹한 전쟁터로 갈 날은 확실히 다가오고 있었다. 바로 그렇기에, 이 평온한 일상을 그녀는 소중히 여기고 있었다.


"어머, 윳키랑 시로쵸코잖아. 희한하네"


서류를 들여다보고 있을 때, 입구를 열고 설표인 유키와 시로쵸코가 들어왔다. 두 마리는 시즈코가 서류를 확인하고 있는 것을 보자, 그녀의 소매를 물고 잡아당겼다.

앉아있기만 할거면 이쪽에 신경쓰라, 는 의사표시였다. 시즈코로서도 급한 서류는 아니었기에, 책상 위에 내려놓고 윳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시즈코가 일을 중단한 것에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비트만 패밀리였다.

그들은 시즈코의 일을 중단하는 폭거에 놀란 표정을 지었으나, 일단 일이 끝났다는 걸 알자 표정을 조인 후 발군의 팀워크로 시즈코의 주위에 포진했다.

정위치(定位置)를 확보하고 승리의 표정(勝ち誇った顔)을 떠올리는 비트만들이었으나, 윳키와 시로쵸코는 자리 순서에 집착이 없는지, 비트만들에게 신경쓰지 않고 꼬리를 흔들거리며 시즈코에게 아양을 부렸다.


"그렇게 밀집하면 덥거든. 자자, 너는 턱을 쓰다듬어주는 걸 좋아했지?"


머리나 턱을 쓰다듬고 있자, 어느 틈에 타마와 하나도 방에 들어와 있었다. 시로가네나 쿠로가네, 아카가네는 열어젖혀진 맹장지 밖에서 시즈코를 보고 있었다.

시즈코의 주위는 어지간한 동물원 같은 상태가 되어 있었다. 시즈코는 뒤에 있던 카이저의 등을 쓰다듬은 후, 그 위에 머리를 올리고 드러누웠다.


"이게 제일 마음이 편해지네"


중얼거리면서 다시 기분좋은 피로를 느낀 시즈코는, 저항하지 않고 의식의 끈을 놓았다.


실컷 밭일을 하고 비트만 패밀리를 시작으로 동물들과 노는 나날을 보내다가 맞이한 출진의 날.

시즈코는 비트만들에게 집을 지킬 것을 부탁하고, 출진을 위해 갑주를 입었다. 전쟁용 복장(戦装束)을 걸쳤을 때, 평소의 느슨한 표정을 떠올리는 시즈코는 어디에도 없었다.


"오랫동안 이어진 아자이-아사쿠라와의 싸움도 마지막이다. 이번에 결판을 낸다"


"옛!!"


"자, 출진이다!!"


병사들의 호응에 만족스러운 듯한 미소를 떠올린 시즈코는 출진 호령을 내렸다. 행군을 시작한 지 조금 지났을 때, 시즈코는 카네츠구(兼続)가 전송하러 온 것을 발견했다.

시즈코는 미소를 띠고는, 오른손을 왼쪽 상박(二の腕)에 대고, 왼팔을 위로 굽히는, 소위 말하는 승리 포즈(ガッツポーズ)를 취해보였다.

낯선 몸짓에 놀란 카네츠구였으나, 알통(力こぶ)을 솟게 해보이는 몸짓이라는 걸 깨닫자 미소를 떠올리며 시즈코와 같은 포즈를 취했다.

단지 그 뿐이었지만 어쩐지 의미는 통했다고 시즈코는 느꼈다.


8월 6일, 오다니 성 포위가 계속되는 가운데, 시즈코가 진에 도착했다. 동시에 야마모토 산성(山本山城)의 아츠지 사다유키(阿閉貞征)가 노부나가 측으로 변절했다는 소식이 오다 진영에 도착했다.

예전부터 비밀리에 오다 측과 내통하고 있던 아츠지였으나, 짐짓 오다 측으로 변절할 것을 내외에 선언했다. 이 소식을 받았을 때, 노부나가는 기후(岐阜)에서 오우미로 출진했다.


8월 8일, 노부나가가 야마다무라(山田村) 부근에 포진했다. 이 정보를 입수한 아사쿠라는 다음은 없다고 이해했는지 전군을 이끌고 출진하여 키노모토(木之本) 부근에 포진했다.

오다 군과 아사쿠라 군은 타카토키가와(高時川) 또는 야마다가와(山田川)를 사이에 두고 대치했다. 오다 군은 아사쿠라 군과 대치하면서, 오다니 성의 견제로서 토라고젠 산(虎御前山)에도 병사를 배치했다.


여담이지만 아사쿠라 요시카게(朝倉義景)는 타나카미 산(田上山)에 본진을 두었다는 것만 알려져 있고, 다른 무장들을 어떻게 배치했는지는 알 수 없다.

예상으로서는 아사쿠라 일문 사람들(一門衆, ※역주: 고유명사인지 그냥 명사인지 확실하지 않음. 일어 위키에는 혼간지의 특정 집단에 한정된 의미로서의 고유명사로 설명되어 있음)이 요시카게의 본진을 둘러싸듯 배치되고, 노부나가와 대치하는 타카토키가와 부근에 야마자키 요시이에(山崎義家) 등이 포진했다고 생각된다.


한편, 노부나가는 아사쿠라에 대해 시바타 카츠이에(柴田勝家)나 마에다 토시이에(前田利家), 사쿠마 노부모리(佐久間信盛) 등을 배치하고, 토라고젠 산에 하시바 히데요시, 그 부근에 노부타다 두 사람이 아자이의 견제로서 배치되었다.

노부나가 본진과 토라고젠 산의 중간쯤에 있는 쵸노 성(丁野城)의 견제에는 아케치 미츠히데(明智光秀)가 배치되었다. 그밖에 이나바 잇테츠(稲葉一鉄)나 가모 우지사토(蒲生氏郷) 등이 노부나가의 본진 부근에 포진하고 있었다.


그리고 시즈코가 어디에 포진했는가 하면, 그건 노부타다의 곁이었다. 하지만, 노부나타의 곁에 진은 있었으나, 정작 시즈코는 그 장소에 없었다.


"토라고젠 산의 요새는 수리가 필요…… 오다니 성의 견제로 텟포슈(鉄砲衆) 250을 배치. 물자는 우선 열흘치를 놔두겠어요. 6일이 지나면 보급부대를 파견하겠습니다"


시즈코 부재의 이유는, 이번의 주 목적이 병참 담당이기 때문이다.

노부나가로서는 이번 싸움으로 아자이-아사쿠라를 멸망시킬 생각이었기에 확실하게 일을 진행하고 싶었다. 하지만, 총대장인 자신이 여기저기 이동할 수도 없다.

그래서 지목된 것이 시즈코이다.

타케다와의 전투에서 승리한 것으로, 시즈코는 적극적으로 전과를 추구할 필요가 없고, 그러나 누구도 가볍게 여길 수 없는 발언력과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다.

물자 운반이나 텟포슈의 파견 등의 원조를 받는 입장이기에, 다른 무장들도 함부로 대할 수는 없다.


(번거로운 방법이네. 하지만 천하가 가끼워지면 오다 가문 내분에서도 권력투쟁이 시작될테고, 주상께서 움직이시면 영향력이 너무 크니 어쩔 수 없나)


기본적인 배치는 노부나가의 결정이지만, 최종적인 판단은 시즈코에게 일임되어 있었다.

보기에 그럴싸한(体の良い) 조정자 역할을 떠맡은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노부나가가 정치적인 재량을 시즈코에게 맡기는 것은 드문 일이기에, 신뢰의 증거로 생각하기로 했다.


토라고젠 산에 물자가 운반되는 대열이 이어졌다. 아자이에게 압력을 가하기 위해서도 물자 운반에 사용되는 리어카의 숫자를 필요 이상으로 많이 사용하고 있었다.

이 계책은 나름 효과가 있었던 듯, 아자이 군은 오다 가문이 운용하는 압도적 물량에 전율하고 있었다.


"순조로운 것 같군요"


후방지원부대에 지시를 내리고 있을 때, 타케나카 한베에(竹中半兵衛)가 시즈코에게 말을 걸어왔다. 지금 있는 병사들에게 지시를 마저 내린 후, 시즈코는 타케나카 한베에 쪽으로 몸을 돌렸다.


"네, 순조롭습니다. 이쪽에는 텟포슈를 250 배치하겠습니다. 뭐, 아자이는 남은 병력이 적으니까 공격해 오지는 않을거라 생각합니다만, 만일에 대비해서요"


"이쪽의 조사에 따르면 많아봤자 2000 정도라고 생각됩니다. 성을 지키는 것만으로도 벅차다는 느낌이겠죠. 하지만, 궁지에 몰린 쥐는 고양이를 문다라고도 합니다. 지나치게 몰아붙이다가는 뼈아픈 반격을 당할지도 모릅니다"


"방심은 금물이죠. 그런데 어떤 용건이신가요?"


타케나카 한베에다 순수하게 잡담을 하려고 시즈코에게 말을 걸었다고는 그녀는 처음부터 생각하지 않았다.

오다지 성을 함락시키느냐 마느냐에 하시바의 무공은 크게 좌우되는 것이다. 다른 사람과 잡담할 여유 따윈 없다, 고 시즈코는 생각하고 있었다.


"헤아리신 대로입니다. 실은 하시바 님이 시즈코 님께 상담드리고 싶은 것이 있다 합니다. 그리 많은 시간은 뺏지 않겠습니다. 잠시 와주실 수 있겠습니까?"


"……지금부터 아케치 님이 있는 곳으로 갈 예정이었으니, 그리 많은 시간은 낼 수 없습니다만, 그래도 괜찮으시다면요"


시즈코는 부탁에 응하면서도 내심 한숨을 쉬고 있었다. 이미 오다 가문 내부의 유력자들끼리 서로 견제하고 있는 듯 생각되었다.

이 무렵, 미츠히데는 다른 가신들보다 발언력이 강해져 있었다. 노부나가의 의도를 이해하여 쿄를 지배하고, 사카모토(坂本)에서는 명군(名君)의 이름을 한껏 드높이고 있었다.

신중 일변도인가 하면, 때때로 대담한 정치적 책략(調略)을 구사해보는 등, 그 일처리 솜씨는 노부나가가 직접 칭찬할 정도였다.

입신출세(立身出世)를 바라지 않는 시즈코가 볼 때는 노부나가의 천하통일이 빨라진다고 기뻐할 일이지만, 다른 가신들이 볼 때는 탐탁찮은 이야기였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 이쪽으로"


남은 업무를 다른 사람에게 인계하고, 타케나카 한베에의 안내를 받아 히데요시의 진으로 이동했다. 그들은 작전회의장에서 지도를 앞에 두고 끙끙대고 있었다.

눈치가 빠른 히데요시는 한 발 빨리 시즈코를 발견하자마자 생글생글 사람좋은 웃음을 떠올렸다.


"오오! 기다렸다, 시즈코. 아니, 갑자기 불러내서 미안하군. 실은 긴히 부탁할 일이 있다"


그렇게 말하면서 시즈코를 지도 앞으로 안내했다. 여기서 무공을 세울 수 있느냐 아니냐에 따라 지금까지의 고생에 보답받느냐 마느냐가 결정되는 것이다. 그도 더욱 높은 보수와 지위를 얻고 싶어 필사적이었다.


"실은 여기부터 어떻게 공격해야 할지 의견이 갈려서 말이지. 모두와 의논해보았지만, 이렇다 할 좋은 의견이 없다. 그래서, 시즈코에게 외부인인 제 3자의 시점에서 본 의견을 들을 수 있을까?"


"네…… 원하신다면 괜찮습니다만"


대답하면서도 시즈코는 작전회의에 참가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았다.

하나같이 탐탁지 않다는 표정을 떠올리고 있었다. 유일하게 히데요시의 동생인 히데나가(秀長)만이 뭔가를 기대하는 듯한 즐거워보이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당연한 이야기다. 아무리 대장인 히데요시의 방침이라고는 해도, 외부인의 의견을 중시한다는 소리를 들으면 지금까지 작전회의에 참가해서 머리를 쥐어짠 사람으로는 탐탁할 리가 없다.

자칫 잘못하면 적의(敵意)로도 해석될 수 있는 시선 속에서 위장이 아프다라고 생각하면서도, 시즈코는 지도의 한 점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이번 싸움에서 초점(焦点)이 되는 장소, 그것은 야키오 요새(焼尾砦, ※역주: 검색해봐도 焼尾의 독음을 알 수 없어 임의로 적음), 오오즈쿠 성(大嶽城)이 됩니다. 특히 오오즈쿠 성이 함락되면, 아자이와 아사쿠라의 연락을 차단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반대를 무릅쓰고 출진한 아사쿠라는 아자이를 저버릴 수밖에 없게 됩니다"


"하지만, 지형적 이점(地の利)은 상대측에 있습니다. 오오즈쿠 성을 탈환하려고 하지 않을까요?"


히데나가가 표정을 바꾸지 않고 시즈코에게 질문했다. 다른 사람들은 히데나가가 시즈코의 의견의 허점을 지적한 것으로 알고 히죽거리는 웃음을 떠올리며 지켜보았다.

하지만 시즈코는 신경쓰지 않고, 붓을 들어 지도에 뭔가를 그려넣더니 들어올려보였다.


"그건 이걸 보시고도 같은 말씀을 하실 수 있으신가요?"


그 말을 듣고 히데나가를 포함한 전원이 지도를 바라보았으나, 시즈코가 그려넣은 기호가 무엇을 나타내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타케나카 한베에가 즉시 적군의 병력이 시계열적으로 변화하는 모양을 시사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조금 늦게 히데나가도 깨닫고 신음했다. 하지만 두 사람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핫핫핫, 형님. 보는 법만 알면 실로 명료한 것입니다. 우리들이 오오즈쿠 성을 함락시키고, 아자이가 오다이 성에서 오오즈쿠 성을 탈환하기 위해 출진했다고 하죠. 그 움직임이 이 기호입니다. 오다니 성에 남은 병력이 크게 줄었습니다. 형님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어떻게 하다니, 뻔하지 않느냐. 오다니 성의 방비가 줄어들었다면, 그 틈을 찔러 공격…… 앗!"


거기까지 말했을 때 간신히 히데요시도 이해했다. 시즈코가 뭘 말하려고 했는지를.


"그렇습니다. 아자이나 아사쿠라가 오오즈쿠 성으로 향한다면, 숫자에서 앞서는 오다 군에게는 그들의 배후를 칠 호기입니다. 숫자에서 밀려 신중해져 있는 상대가 그걸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습니다. 어정쩡한 병력으로는 탈환할 수 없고, 그렇다고 해서 대군을 파견하면 본진이 함락됩니다. 유일한 연락로는 분단되어, 서로의 생각(思惑)을 알 수 없게 됩니다. 완전히 외통수로 몰아넣은 반상(盤面)입니다.


타케나카 한베에가 부채로 시즈코가 그려넣은 기호와 의미를 해설하면서 설명했다. 히데요시의 가신들도 그제서야 시즈코의 뜻을 이해하고, 동시에 경탄했다.

머리를 맞대고 계속 고민했던 자신들이 깨닫지 못한 것을, 시즈코는 너무나 간단히 깨닫고 지적해 보였다. 자존심이 크게 상했지만, 동시에 질 수 없다고 분발하게 되었다.


"즉, 우리들만으로 야키오 요새와 오오즈쿠 성, 이 둘을 함락시키면 대 전공(大戦功)이 확정된다는 것입니다, 형님!"


"말 안해도 알고 있다! 과연…… 이 둘, 아니 오오즈쿠 성만이라도 함락시키면 승리의 저울은 우리들에게 기울게 된다!"


"주상께서 저 위치에 본진을 두신 것도, 이걸 내다보신 것이겠지요. 아마도 며칠 안에 뭔가 움직임이 있을거라 생각됩니다. 그 때 부터는 시간과의 싸움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럼, 이라고 중얼거리고 시즈코는 태양의 위치를 확인하여 시간을 추측했다. 지금부터 출발하면, 미츠히데가 있는 곳에 해가 떨어지기 전에 도착할 수 있을거라 계산했다.

미츠히데의 군은 유격대이기에 규모가 작아서, 물자 운반이나 텟포슈의 배치에 그다지 시간이 들지 않는다.

내일은 아사쿠라 방면의 시바타 카츠이에나 마에다 토시이에의 진에 갈 예정이기에, 오늘 업무는 예정대로 끝날 계산이었다.


"그럼 시간이 촉박하여, 저는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시즈코는 히데요시들에게 인사했으나, 이미 누구의 귀에도 들리지 않았다. 모두 지도를 둘러싸고 이러쿵저러쿵 의견을 교환하고 있었다.

이 필사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무공에 대한 집념이 히데요시 군의 강점이리라. 시즈코는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한 번 숙이고 몸을 돌렸다.


(과연 시즈코 님. 정확하게 사태의 핵심을 꿰뚫어보고 그걸 알기쉽게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군. 자자, 이번 싸움을 그녀는 어떻게 즐겁게 해줄까)


시즈코가 작전회의장에서 떠나는 모습을, 히데나가는 즐거운 듯 웃으며 전송했다.




조금 발길을 서둘러서 시즈코는 미츠히데의 진에 도착했다. 사전에 통보했기에, 경비하는 병사에게 용건을 전하자 즉시 물자의 반입이 시작되었다.

미츠히데가 공략하는 쵸노 성 공격 부대에는 텟포슈가 100명 배치된다.

히데요시에게 250, 시바나타 마에다에게 450이라는 비율을 보면 적게 보인다. 이건 미츠히데의 부대가 유격대로서 편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대인원을 데리고 다니면 필연적으로 행군 속도가 늦어지므로, 100명만 배치하게 되었다. 그리고 미츠히데의 진에는 텟포슈 외에도 용기병(竜騎兵, 신식총(新式銃)을 장비한 기병(騎兵))이 50기 배치되었다.

텟포슈 100에 용기병 50, 이들을 운용하여 미츠히데는 쵸노 성을 공격한다.


"수고하십니다, 시즈코 님"


물자 반입의 지휘를 하고 있을 때, 등 뒤에서 미츠히데가 말을 걸어왔다. 시즈코는 내심 한숨을 쉬면서, 그러나 생긋 웃는 표정으로 미츠히데에게 대답했다.


"아케치 님"


"아, 딱딱한 인사는 생략하지요. 신속한 물자 반입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이쪽의 텟포슈도 탄약 걱정이 없어졌습니다"


신식총의 배치는 그다지 순조롭지 않다. 높은 공작 정밀도가 요구되기 때문에, 제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 때문에, 대부분의 부대에서는 종래의 화승총이 계속 사용되고 있었다. 만에 하나라도 적에게 노획되는 것을 노부나가가 두려워하여 배치할 곳을 엄선하고 있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다.

화약에 관해서는 시즈코가 초기부터 계속 제조하고 있었기에, 다른 영주들이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노부나가는 가신들에게 충분한 양을 공급할 수 있었다.


"부족해지면 말씀해 주십시오. 추가로 3백 30관(약 500kg)까지라면 자유롭게 써도 좋다고 주상의 허가를 받았습니다"


약 500kg라는 물량에, 가까이 있던 병사들이나 시동(小間使い) 몇 명이 반응했다. 눈치가 빠른 미츠히데는, 그것만으로도 대략적인 상황을 파악했다. 그는 싱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소식이군요. '저희 진에만 해도 3백 30관'이나 더 융통해 주실 여유가 있다는 것이군요. 그리고 '본진에는 그 이상'의 여유가 있다니, 그건 정말 잘된 일입니다"


반응을 보인 시동이나 병사들의 표정이 굳었다. 그러나 그것도 찰나의 시간에 불과하여, 다급히 일을 다시 시작했다. 너무나도 노골적이라 미츠히데로서는 드물게 이를 드러내며 웃고 있었다.


"이거 참 안 되겠군요. 나이를 먹으면 저도 모르게 젊은이들을 놀리고 싶어집니다"


"때로는 동심으로 돌아가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군요. 자, 이거 서서 이야기가 길어졌군요. 이 후의 예정은 없으시다고 들었습니다. 함께 저녁이라도 하시겠습니까?"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그럼, 신세를 지겠습니다"


예상은 했지만, 익숙하지 않은 떠보기(腹芸)를 앞두고 시즈코는 머리가 아파졌다. 하지만 히데요시 때와 마찬가지로 표정에는 드러내지 않고 미소를 지으며 대응했다.


저녁식사는 질박(質素)한 것이었다. 최소한의 영양은 섭취할 수 있었기에 문제는 없었지만 미적 화려함은 없었다.

사치라고 하면 그뿐이지만, 역시 식사는 눈으로도 즐길 수 있는 요소가 있으면 좋겠다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시즈코 님, 잠시만 이야기를 해도 괜찮겠습니까?"


화기애애한 분위기의 식사였으나, 그것은 미츠히데가 다소 진지한 표정으로 시즈코에게 말을 걸게 되어 끝을 고했다. 미츠히데의 모습을 보고 시즈코도 긴장을 하며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제가 대답할 수 있는 것이라면 뭐든지요"


"감사합니다. 실은 제가 맡고 있는 사카모토의 도시(街)에 대해 상담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그건 어떤 내용인가요?"


사카모토는 히에이 산 엔랴쿠지(延暦寺)의 관문도시(門前町)나 석조(石積み) 도시(町)라고 한다. 특히 아노우슈(穴太衆, ※역주: 일본의 근대 초기에 해당하는 쇼쿠호(織豊) 시대(역주: 아즈치모모야마(安土桃山) 시대)에 활약한 석공 집단)의 아름다운 석조가 유명하다. 현대에서는 나라에서 중요 전통적 건조물 보존구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그 사카모토에서 미츠히데에게 맡겨진 역할은, 엔랴쿠지의 감시와 비와 호의 지배, 거기에 쿄로 통하는 도로 확보다. 그러기 위해서 노부나가는 미츠히데에게 사카모토 성의 축성을 명했다.


미츠히데는 축성에 조예(造詣)가 깊고, 그렇기에 사카모토 성을 비와 호의 물을 이용한 수성(水城) 형식(形式)으로 설계했다. 거기에 대천수(大天守)와 소천수(小天守)를 얹은 호화현란(豪華絢爛)한 성으로 축성했다(※역주: 천수(天守)란 천수각(天守閣)이라고 하는, 일본의 성 중심부에 위치하는 가장 높은 망루 부분을 가리킴).

역사적 사실에서는 텐쇼 10년(※역주: 1582년)에 아케치 미츠히데가 성에 불을 질러 일족과 함께 자살할 때까지, 사카모토 성은 아즈치 성(安土城) 다음가는 아름다운 성이라고 루이스 프로이스가 평가했다.

현재의 사카모토 성의 대부분이 비와 호의 호수 밑바닥에 잠들어있어, 당시를 떠올리게 하는 것은 얼마 남지 않은 돌담(石垣) 뿐이다.


"아시는 바와 같이, 우리들은 사카모토의 도시를 한 번, 철저하게 불태웠습니다. 그렇기에 주민들의 반발이 강하여 통치에 조금 애를 먹고 있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시즈코 님의 의견을 들을 수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저라면 고려하지 않겠습니다. 사는 집이 불태워진 것에 기인하는 악감정은 아무리 상대의 비위를 맞춰주더라도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런 것에 노력할 정도라면, 도로를 정비하여 조금이라도 생활 환경을 향상시키는 쪽이 유익합니다"


백성을 소중히 여기는 시즈코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가혹한 의견에 미츠히데는 약간 멍해졌지만, 시즈코는 신경쓰지 않고 말을 이었다.


"이렇게 말하면 밑도 끝도 없지만, 백성들은 누가 지배자이건 신경쓰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생활을 지켜주는, 좋은 미래를 주는 지배자'를 환영합니다. 그 관점에서 보면 도시를 불태운 우리들은 생활의 파괴자이니 좋은 인상을 주지 못합니다"


가재(家財)를 빼앗은 상대에게 좋은 인상을 품을 사람은 없다. 적지 않게 불만이 있는 게 당연하다.

특히 사카모토의 도시는 히에이 산 엔랴쿠지의 관문도시로서 번성했었다.

엔랴쿠지로부터 떨어지는 떡고물을 받아 단물을 빨고 있던 사람들이 볼 때, 오다 가문은 자신들의 밥줄을 빼앗은 증오스러운 상대이다.


"이걸 전제로 하면, 권력자를 회유하는 것이 흔히 실시되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라면 권력자도 빈민(貧民)도 모두 평등하게 한 개인으로 취급하여,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하는 통치를 실시하겠습니다. 처음에는 불만도 나오겠죠. 하지만, 그러한 불만들 중에 '무엇을 해소하면 가장 많은 사람이 행복해지는가?'를 생각해서 정책을 펼치면 불만의 목소리는 서서히 작아질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소수파를 무시하고 탄압해도 좋다는 것이 아니라, 이상적인 것은 전원이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전원의 최대 행복이 최상. 하지만 신이 아닌 한 불가능한 이야기다. 사람과 사람은 사소한 일로도 충돌하는 생물이다. 전원의 최대 행복을 실현이라는 건 있을 수 없다.

그렇기에 이상은 전원의 행복이라고 정해두고, 현실적으로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실현하다. 이것이 현재 상황에서 가능한 가장 '나은' 정책이 아닐까라고 시즈코는 생각하고 있었다.


"……"


미츠히데는 멍한 표정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동석하고 있던 아케치 가문의 가신들도 마찬가지였다.

뭔가 이상한 소리를 했나, 라고 생각하며 자신의 발언을 돌이켜보았다. 자신이 말한 내용은 민주주의의 사상에 가까웠다. 이 시대에 민주주의를 설파해 봤자 찬동은 얻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왜냐하면, 사람마다 생각이 다 다르기 떄문이다. 민주주의에서도 그렇지만, 그런 사상은 갑자기 툭 튀어나오는 것이 아니다. 사회가 그것을 요구하게 된 후에 사상이 태어나는 것이다.

사회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원하지 않는데 적용하면, 사람들은 혼란스러워할 뿐으로 사회는 기능부전(機能不全)에 빠진다.


"아, 이거, 얼마 전에 읽은 남만의 책의 영향이 나왔군요. 죄송합니다, 머리를 비우고 처음부터 다시 생각하겠습니다"


"아, 예……"


서둘러 변명을 하며 시즈코는 이야기를 얼버무렸다. 다행히 미츠히데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는지, 아까와 다름없이 멍한 상태였다.


"사카모토니까, 역시 비와 호에 항구를 만드는 것은 어떨까요. 수운(水運)은 물론이고, 사카모토의 경관은 훌륭합니다. 이 경관을 즐기는 관광선 같은 것도 운행한다던가…… 그렇게 하여 사카모토에 돈이 떨어지게 되면, 서서히 불만은 사라져 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어, 비와 호는 이런 모양이니…… 항로는 이곳과 이곳을 잇는 느낌으로 어떨까요"


도중에 종이와 붓을 가져오게 하여 시즈코는 종이에 비와 호의 모습을 대충 그렸다. 그곳에 사카모토와 오오츠(大津), 아즈치(安土), 나가하마(長浜) 등을 그려넣고 동그라미를 친 후, 그것들을 선으로 연결했다.

간소하게나마 항로를 그린 종이를 미츠히데에게 건네주었다. 읽고 있는 도중에 진정되었는지, 그는 시즈코가 그린 비와 호의 항로 제안을 지긋이 바라보고 있었다.


"과연. 항구가 있으면 도시는 사람과 물건으로 넘쳐나지요. 사람과 물건이 모이면 상거래가 시작되고, 상거래가 활발해지면 사람들에게 활기가 붙죠. 사람들에게 활기가 붙으면, 사카모토에 떨어지는 돈도 많아져서 불만도 서서히 작아지겠군요"


"네, 네에…… 조금 시간은 걸리겠지만요…… 아, 그러고 보니 실패작이 되어버린 중형(中型)의 수송선, 그것을 비와 호의 상선으로 개조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호오, 그건 흥미깊은 이야기군요"


시즈코가 말하는 실패작이 된 중형의 수송선이란, 스크류 프로펠러 수송선이다. 물론, 화선(和船)이 아니라 용골(竜骨)이 있는 배다.

건조된 배는 몇 번인가 사용되긴 했으나, 하천에서 쓰기에는 너무 크고, 해상에서 사용하기에는 너무 작다, 라는 저평가를 받았다.

그렇기에 실패작이라는 낙인이 찍혀버렸다. 그 수송선도 비와 호에서 쓴다면 빛을 보게 되지 않을까, 라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다행히 실패작이라고 들었음에도 미츠히데는 수송선을 채용하는 이야기에 흥미를 보였다.

비와 호에 대해 이야기꽃을 피웠을 무렵에는, 미츠히데도, 미츠히데의 가신들도 시즈코가 이야기한 민주주의 비슷한 사상은 머릿속에서 사라져 있었다.

그것에 내심 쾌재를 부른 시즈코였다. 다만 시즈코는 읽고 있는 책의 영향을 적지 않게 받는다, 라고 미츠히데들이 생각하게 된 것은 깨닫지 못했다.




즐거운 이야기로 하루가 끝, 이라는 식이 되지는 않았다. 해가 지기 직전, 미츠히데의 진으로 노부나가의 사자가 왔다. 내용은 미츠히데가 아니라 시즈코에 대한 것이었다. 단적으로 말하면 본진으로 와라, 였다.


호출 소식을 들은 후 시즈코는 바쁘게 움직였다. 식사를 부어넣듯이 마친 후, 병사들의 작업 상황을 확인하고 남은 일에 대한 지시를 빠르게 내렸다.


"정신이 없어 죄송합니다"


"아뇨아뇨, 천만에요. 즐거운 한 때였습니다. 또 기회가 있다면 꼭 부탁드립니다"


시즈코는 전송하러 나와준 미츠히데에게 사과했으나, 미츠히데 본인으로부터는 신경쓰는 기색을 찾아볼 수 없었다. 휴 하고 가슴을 쓸어내린 후, 시즈코는 말고삐를 쥐었다.


"그럼 저는 실례하겠습니다. 무슨 일이 있으시면 남겨놓은 병사에게 물어주십시오. 담당자가 대답해드릴 것입니다. 그럼!"


말이 끝남과 동시에 시즈코는 말을 달리게 했다. 서둘러 달려가는 시즈코의 모습에 미츠히데는 쓴웃음을 떠올리고 있었지만, 지금의 시즈코에게는 그걸 눈치챌 여유조차 없었다.

해는 이미 지고 있었다. 이대로는 본진에 도착하기 전에 밤이 되어버린다. 그건 어떻게든 피하고 싶은 시즈코였다.

다행히 말을 혹사시킨 덕분에, 아슬아슬하게 저녁(日暮れ)이라고 할 수 있는 시간에 본진에 도착했다.


"늦다"


하지만, 노부나가에게서는 입을 열자마자 불만의 목소리가 날아왔다. 그만큼 급한 용건이 있었던 걸까, 라고 생각하면 시즈코는 노부나가에게 사죄했다.


"이것을 보아라"


노부나가는 간소한 책상 위에 펼쳐져 있던 지도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 말대로 시즈코는 지도를 보았다. 히데요시의 그것과 달리, 적과 아군의 포진 상황 등 자세한 정보가 지도에 그려져 있었다.

즉, 아자이와 아사쿠라 양 진영에 정치적 책략의 손길이 깊이 침투해 있다고 해도 좋았다. 아니면 이만큼 상세하게 적의 정보를 얻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사쿠라는 주위의 반대를 물리치고 이번 출진을 결정했지. 그렇다면, 요시카게에게 반감을 가진 일족이나 가신이, 노부나가의 정치적 책략에 달려드는 것도 당연한가) 거의 승리, 로군요"


"이유를 말해라"


히데요시에게 말한 내용이 노부나가의 귀에도 들어갔나, 라고 생각하면서 시즈코는 지도의 어떤 지점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야키오 요새의 공략이 성공하면, 남는 것은 오오즈쿠 성 뿐입니다. 이걸로 아자이-아사쿠라는 외통수에 몰립니다. 아사쿠라는 이번에 주위의 반대를 물리치고 출진했습니다. 오오즈쿠 성이 함락되면, 원군으로 달려온 대의명분을 잃게 됩니다"


"계속해라"


"오오즈쿠 성이 함락되면, 아사쿠라 군에 동요가 퍼져나가고, 철수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집니다. 이것에는 요시카게도 거스를 수 없겠죠. 하지만, 아사쿠라 군이 철수하려면 본진에서 츠루가(敦賀)까지 가늘고 긴 산길을 지날 필요가 있습니다. 즉, 일직선으로 긴 행군을 강요받게됩니다. 이후에는…… 엉덩이를 창으로 찔러주면 끝나게 됩니다"


"그걸 감안해서, 너라면 어떻게 하겠느냐"


노부나가가 뭘 생각하고 있는지 여전히 알 수 없었지만, 시즈코는 명령받은 대로 노부나가에게 '자신이라면 이렇게 한다'라는 내용을 말했다.

아무래도 큰 목소리로 말할 내용은 아니었기에, 노부나가에게 들릴 정도로 목소리를 낮췄지만.


"재미있군. 날씨(天候)에 좌우되지만, 놈들의 혼을 빠지게 할 수 있겠군. 크큭, 그런 그렇고, 이것에는 아무리 나라도 놀랐다"


"계책이라는 것은 '설마 그런'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 군에는 이러한 계책에 딱 맞는 인물이 있습니다"


"유쾌하구나. 야키오 요새의 공략은 내일에라도 끝나겠지. 네 이야기를 듣고 원숭이(※역주: 히데요시)가 필사적으로 계략을 짜고 있으니 말이다"


역시 시즈코가 히데요시에게 말한 내용을 노부나가는 어떠한 수단을 통해 알게 되었던 것이리라. 그렇다면 미츠히데에게 이야기한 내용도 그는 파악하고 있을거라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다만, 미츠히데의 이야기는 흥미의 대상이 아니었는지, 노부나가가 사카모토에 대해 이것저것 캐물어오지는 않았다.


"내일부터 바빠지겠구나"


진심으로 즐거운 듯 노부나가는 그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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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

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겐키(元亀) 4년 무로마치 막부(室町幕府)의 종언(終焉)


106 1573년 6월 상순



"에취! 으으……, 누가 내 이야기라도 하고 있는 걸까?"


케이지(慶次)가 코타로(虎太郎)와 술판을 벌이고 있을 무렵, 시즈코는 유태인 소녀 '모미지(紅葉)'를 대동하고 노부나가가 있는 곳으로 가고 있었다. 방문 목적은 망고가 수확 시기가 되었기에, 우선 노부나가에게 헌상하기로 한 것이다.

망고는 비교적 빠르게 상하는 과일이다. 현대의 환경에서도 냉장으로 며칠, 냉동이어도 2개월 정도밖에 선도를 유지하지 못한다.

간편하게 냉장 시설을 사용할 수 없는 전국시대인만큼, 작부(作付け, ※역주: 작물을 심는 것) 시기를 엇갈리게 하여, 수확 시기가 흩어지도록 조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금년에는 시즈코가 미카타가하라(三方ヶ原) 전투 준비로 정신없이 바빴기에, 세세한 지시를 내릴 수 없어 한꺼번에 작부를 해 버렸다.

그 때문에 같은 시기에 대량의 망고가 익어버리게 되어, 수요량을 공급량이 상회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었다.


가치를 알 수 없었기에 생각없이 유통시킬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썩게 놔두는 것도 아깝다.

뭔가 좋은 처분 방법이 없을까 생각했을 때 떠올린 것이 집들이 연회(新築祝い)를 틈타 초대객들에게 대접하는 것이었다.

현대라면 생식(生食) 이외에도 망고 처트니(chutney)나 잼 등으로 가공하여 장기보존도 가능하지만, 하나같이 대량으로 설탕을 사용하는데다, 처트니의 경우에는 귀중한 후추나 다른 향신료 등도 필요해진다.

아직 설탕이나 향신료가 귀중한 전국시대에서는 코스트상 포기할 수밖에 없어, 많은 사람이 모이는 집들이 연회에서 생식으로 대접하는 것이 가장 유용한 소비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미안해, 운반하는 걸 돕게 해서. 다들, 주상(上様) 상대로는 위축되어 버려서 말야……"


"괘, 괜찮, 습니다"


모미지는 기특하게도 시즈코에게 작은 주먹을 쥐어보이며 의욕이 있다는 점을 어필했다.

본인은 기합을 넣고 있는 모양이지만, 시즈코에게는 든든함보다 어린애 특유의 사랑스러움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어머, 저 사람들은"


모퉁이를 돌았을 때, 시즈코는 낯익은 세 사람을 발견했다. 도쿠가와(徳川) 가문 가신(家臣)들인 타다카츠(忠勝), 한조(半蔵), 야스마사(康政)였다. 상대는 이쪽을 눈치채지 못한 채, 만취하여 제정신이 아닌 타다카츠를 부축하며 걷고 있었다.


"이 방이면 되겠지. 그럼 간다"


"음. 하나, 둘ー"


구령소리와 함께 한조와 야스마사가 또다시 만취하여 제정신이 아닌 상태(酩酊)인 타다카츠를 방으로 던져넣었다.

그야말로 집어던진다는 표현이 딱 맞을 정도로 익숙한 동작이었으며, 던져지는 타다카츠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었다.

일단 타다카츠가 무사히 자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 한조가 한숨을 쉬었을 때, 두 사람은 이쪽을 바라보는 시즈코들의 존재를 깨달았다.


"어이쿠, 시즈코 님. 추한 꼴을 보여드렸군요. 헌데, 뭔가 기묘한 것을 들고 계시군요"


"무엇이라고요ー!"


한조가 시즈코에게 말을 건 순간, 갑자기 각성(覚醒)한 타다카츠가 고함을 지르며 뛰쳐나왔다.

타다카츠를 던져넣은 방의 바깥은 툇마루(縁側)와의 사이에 있는 복도(廊下)로 되어 있어, 방에서 등을 돌리고 있던 두 사람은 타다카츠의 돌진을 정통으로 받았다.

갑작스런 일에 두 사람 모두 낙법조차 치지 못하고 들이받혀 날려간 기세대로 툇마루에서 정원으로 얼굴부터 다이빙했다.

그것이 그치지 않고, 타다카츠는 예상하지 못했던 격돌에 다리가 꼬여, 앞으로 고꾸라져 복도를 핥게 되었다.

얼굴부터 정원으로 떨어져 몸을 새우처럼 꺾은 채 쓰러진 한조와 야스마사, 얼굴로 브레이크를 걸게 되어서 몸부림치는 타다카츠.

극히 흔한 복도에서의 대화가, 아비규환의 지옥도로 뒤바뀐 순간이었다.

체면을 중시하는 무사에게 있어 너무나도 불명예스러운 참상을 보고, 시즈코는 살짝 모미지의 눈을 손으로 가렸다.


"다들, 지위가 있으신 분들이니, 지금 본 것은 잊도록 해"


"네, 네에"


시즈코의 말을 솔직하게 받아들인 모미지는, 시즈코가 손을 떼자 자기 손으로 자기 눈을 가리고 주위의 광경을 보지 않으려 했다.

시즈코가 다시 타다카츠 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타다카츠에 의해 날아간 두 사람이 일어서서 타다카츠와 치고받으며 싸움을 시작하고 있었다.


"저건, 말릴 수 없겠네"


취객이라고는 해도, 맹장(猛将) 세 사람이 치고받는 것이다.

시즈코 같은 여자가 말리러 들어가봤자 간단히 날아가 버릴 것이 눈에 선했다. 언제 끝날까, 라고 시즈코는 생각했으나, 결판의 때는 의외로 빨리 찾아왔다.

타다카츠 정도는 아니라고 해도, 두 사람도 나름 꽤 술을 마셨다. 그 상태에서 격렬한 운동 같은 걸 하면, 결과는 불 보듯 뻔하다.


"기다려! 두 사람 다…… 우풉, 위험하다……"


"으윽…… 여, 여기는 일시 휴전……"


"그렇…… 군"


치밀어오르는 구토감에 이성이 되돌아왔을 무렵에는 이미 늦었다. 세 사람 다 취객의 벌건 얼굴에서 푸른 색을 넘어서 흙빛으로 바뀌더니, 입을 틀어막고 달려나갔다.

목적지는 아마도 측간이겠지, 라고 시즈코는 이해하고는 눈을 계속 가리고 있는 모미지에게 말을 걸었다.


"이제 눈을 떠도 돼. 그럼 갈까? 모미지 짱"


모두 못본 적으로 하자, 누구에게든 그게 제일 온당한 결과가 될 거라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모미지가 어떻게 생각했는지 알 수 없지만, 오늘 일을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할 거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웠다. 이리하여 그들의 체면은 지켜졌다.


생각지도 못한 소동에 말려들었으나, 그것들 전부를 없었던 일로 한 시즈코는, 대량의 망고를 들고 노부나가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도착하기 직전, 예상치 못하게 노부나가와 마주쳐버렸다.


"그 녀석이 이번에 고용한 남만의 계집이냐"


시즈코 뒤에 낯선 소녀가 서 있는 것을 깨달은 노부나가가 모미지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갑작스럽게 말을 걸자 놀란 모미지는, 그래도 짐을 든 채로 엎드려 절했다.


"네, 착한 아이입니다"


"엎드리지 않아도 된다, 고개를 들어라. 흠, 머리는 검지만 눈이 우리와 다르구나. 비취(翡翠)같은 푸른색(碧色)을 띠고 있군. 이런 남만인도 있는가"


모미지의 머리카락은 약간 곱슬머리인 흑발이며, 눈동자는 파란색을 띤 녹색이었다.

선교사들과는 약간 느낌(面持ち)이 다른 모미지의 외모가 신기한 건지, 아니면 서양인의 골격에 흥미를 가진 건지, 노부나가는 모미지를 자세히 관찰했다.

배려가 없는 시선에 노출되어 위축된 모미지는, 다시 고개를 숙여 버렸다.


"주상, 모미지가 무서워하고 있습니다. 그 쯤에서 용서해 주십시오"


"딱히 적의를 보인 건 아니다. 신기한 눈을 하고 있구나, 라고 생각한 것 뿐이다. 빛의 정도에 따라 흔들리는 모습이 보석처럼 아름답구나"


턱에 손을 대며 노부나가는 모미지의 눈을 칭찬했다. 마음에 없는 말 같은 걸 할 리가 없는 노부나가의 말에, 노여움(勘気)을 두려워한 모미지도 다시 고개를 들었다.


"이방인(異人)을 품는 것에 대해 뭔가 말하는 놈도 나오겠지만, 내가 허락하겠다. 네가 나를 위해 일하는 한 쓸데없는 소리(文句)는 못하게 하겠노라"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하여, 시즈코. 뭘 들고 있는 게냐? 아아, 아마타마(甘珠, ※역주: 직역하면 단 구슬)이냐"


노부나가는 시즈코가 들고 있는 바구니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시즈코가 바구니 속에서 하나 꺼내서 보여주자, 그는 망고의 별명을 말했다.

최근 알게 된 것이지만, 노부나가는 자신이 마음에 든 것에 대해 별명을 붙이는 버릇이 있었다. 그의 네이밍 센스는 너무 뜬금없어서 다른 사람에겐 이해하기 어렵지만, 간결하게 특징을 포착하고 있었다.


"네, 이번에 수확을 하게 되었기에, 우선 주상께 헌상할 겸, 식후의 감미(甘味)로서 어떨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나쁘지 않다. 마침 단 과일이라도 집어먹을가 생각했던 참이다. 남만의 케이크인가 하는 건 달지만, 너무 달아서 끈적인다고 느꼈지"


그 한 마디로 망고의 처리방법이 확정되었다. 시즈코는 망고를 주방으로 운반하여, 서둘러 접시에 담아 내도록 명했다.

망고를 생식할 경우, 현대와 마찬가지로 중앙에 있는 씨를 피하여 과실을 세 개로 자른다.

씨앗이 있는 중앙부를 제외하고, 양쪽의 과실에 대해 껍질에 거의 닿을 정도로 주사위 모양으로 칼집을 넣은 후, 마지막으로 껍질을 뒤쪽에서 밀어 꺾으면 먹기 좋은 형태가 된다.

노부나가에게 제공되지 않은 씨앗이 붙은 부분은, 과육과 씨앗으로 나누어진다. 과육 부분은 혜택(役得, ※역주: 직업이나 업무 수행 중에 얻게 되는 이득을 말함)으로서 주방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위장으로 들어가지만, 씨앗은 껍데기(外殻)와 속껍질(渋皮)을 벗긴 후에 재배로 돌려진다.


이 망고의 씨앗은, 꺽꽂이(挿し木)와는 별도로 키우기 때문에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려면 최소한 6년 정도 걸린다.

이것은 시즈코가 해외에서 들여온 다양한 품종에도 적용되는 것인데, 꺽꽂이나 분주(株分け)에 의한 카피가 아니라 씨앗부터 재배하면, 유전이나 돌연변이에 의해 부모와는 다른 성질을 갖는 경우가 있다.

더 달고, 더 싱싱한 우량 품종을 얻기 위해 품종 개량을 하려고 씨앗부터 재배하고 있는 것이다.


"아, 잊을 뻔 했다. 사모님(奥方)들께도 가져다드려"


시즈코는 노히메(濃姫)들에게도 망고를 내놓도록 명령한 후, 모미지와 함께 주방을 나섰다.




시즈코 저택의 집들이 연회는 떠들썩하면서도 탈없이 종료되었다.

그만큼 준비했던 술을 남김없이 마셨는데도 인사불성에 빠진 사람이 없었으니, 에치고(越後) 사람들에는 주호(酒豪)가 많다는 것은 정말이구나라고 감탄했다.

예상대로, 시즈코가 켄신(謙信)과 차분히 대화할 기회는 없었다. 하지만, 이것은 정치적으로 당연한 이야기였다.

아무리 신하가 되었다고는 해도, 즉시 노부나가나, 오다 가문 내에서도 주목받는 중진(重鎮)인 시즈코에게 거리낌없이 접촉했다가는, 우에스기(上杉) 가문은 오다 가문에게 알랑거린다는 이미지를 주게 되어버린다.

그렇게 되면 오다 가문과 우에스기 가문 각각의 가신들끼리 다툼을 시작할 것이 눈에 선했기에, 켄신으로서도 남들의 눈이 있는 상태에서는 신중한 대응이 요구되었다.

그러한 의도를 헤아리고 있었는지, 노부나가도 켄신의 태도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영주(国人)의 비애(悲哀)려나. 마음 속을 터놓고 나누고 싶은 말도 있겠지만, 표면적으로는 움직이지 못하겠지. 그럼, 슬슬 괜찮으려나?)


조직끼리 얽히게 되면 어쩔 수 없이 긴장 상태가 발생하게 된다. 오다 가문 가신(家中)들조차 서로 견제하고 있는 현 상황에 일말의 씁쓸함을 느끼면서도 시즈코는 아야(彩)를 대동하고 감옥으로 향했다.

시즈코 저택에 갖춰진 지하 감옥은, 단단한 암반이 깎여나가 생겨난 천연의 동굴을 이용하여 만들어졌다.

출입구는 견고한 쇠창살로 막혀 있어, 빈손으로 갇히게 되면 빠져나온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 감옥의 입주자(入居者)는, 사나다(真田) 가문을 섬기는 간자였다.


"깨어 있어?"


"깨어 있다"


감옥의 쇠창살을 가볍게 두드리며 시즈코가 어둠에 대고 말했다. 잠시 간격을 두고, 감옥 안에서 사람이 몸을 움직이는 기척이 느껴졌다.

놀랍게도 되돌아온 것은 젊은 여성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시즈코는 즉시 이해했다. 타케다(武田) 가문은 유랑무녀(歩き巫女)를 많이 쓰고 있기에, 간자가 여자인 경우는 드물지 않다는 것을.


"미안해, 부자유스럽겠지만 조금 더 참아줘. 이렇게 해두지 않으면 입막음을 당할 가능성이 있으니까"


"자신의 입장은 이해하고 있다. 사치스런 소리를 하자면, 손발의 족쇄를 풀어줬으면 하는데"


"그건 당신의 자유를 뺏는 동시에, 당신의 몸을 지키는 것이기도 해. 지금은 풀어줄 수 없어. 일단 이야기를 들려주겠어?"


"나는 건네준 서신 이외의 것은 듣지 못했다"


"서신에서 대략적인 사정은 파악했지만, 그 이외에 알리고 싶은 정보가 있지 않아?"


시즈코의 물음에 간자는 침묵했다. 이건 묵비(黙秘)가 아니라 주저하고 있는 것이라고 헤아린 시즈코는 계기를 부여했다(呼び水をさす).


"(지금, 억지로 캐물어봐도 소용없으려나) 뭐, 괜찮겠지. 일단 조금만 더 참아줘. 아, 탈출하려고는 하지 않는 편이 좋아. 아무리 나라도 그건 감싸줄 수 없으니까"


"……잘 알고 있다. 한 가지만 전하고 싶군. 주군(主)의 마음은 이미 정해졌다. 당장은 올 수 없지만, 반드시 당신에게 달려오겠다고 하셨지"


"알고 있어. 내가 이해하고 있다는 걸 그에게 전하기 위해서도 얌전히 있어줘. 며칠만 참으면 돼. 그럼"


들을 것은 들었다. 그것을 이해한 시즈코는 아야를 데리고 감옥을 나섰다.

시즈코가 말한대로, 사나다 가문의 간자는 며칠 후, 적당한 이유를 붙여 풀어주었다.

그 때 서신의 답장은 들려보내지 않았다. 도중에 누군가에게 붙잡힐 가능성이 있기에, 간단히 구두로 대답을 전하기로만 했다.


"자, 이번에야말로 평화가 올 거야"


기지개를 켜며 몸을 푸는 시즈코였으나, 그 말을 입에 올릴 때마다 평화에서 멀어지고 있는 것을 그녀는 모른다.


사나다 가문의 간자를 풀어준 지 일주일 후. 계절은 장마(梅雨)로 변하여 날이 갈수록 더워지는 가운데, 시즈코는 노부나가가 있는 기후 성(岐阜城)으로 향하고 있었다.

목적은 시즈코가 담당하고 있는 인프라 정비 사업의 상황을 보고하기 위해서다. 노부나가는 혼간지(本願寺)와의 강화(和睦)가 성립한 이래, 정력적으로 인프라 정비에 착수했다.

쿄(京) 주변은 물론이고, 오우미(近江)나 이세(伊勢)를 경유하여 미노(美濃), 오와리(尾張)에 이르는 대동맥(大動脈)을 정비하는 대사업이었다.

미카와(三河)나 에치고(越後)는 포함되지 않았으나, 이에야스(家康)가 인프라 정비에 의욕을 보였기에, 조만간 제 2차 인프라 정비사업으로서 계획에 포함되게 된다.


"금일 하늘 맑음(本日は晴天なり, ※역주: 무선전화설비의 테스트 등에서 쓰이는 표현. 단순히 의미는 '오늘은 날씨가 좋음'이지만, 옛날식의 말투라서 일부러 저렇게 번역함), 이랄까"


장마 기간중에 멀리 나가게 되었으나, 기후 성으로 가는 날은 다행히 맑은 하늘이었다.

우비(雨具) 준비가 필요없었기에 가는 것은 쉬웠으나, 언제 날씨가 나빠질지 시즈코는 걱정하고 있었다. 다행히, 기후에 도착한 후에도 날씨가 악화될 기색은 없었다.


"이쪽에서 기다려 주십시오"


안내역을 맡은 호리(堀)에게 안내된 방에서 시즈코는 노부나가로부터의 부름을 기다렸다. 계획은 순조 그 자체로, 큰 문제도 없기에 보고에 불안을 품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이번의 여정을 짧게 계산하여, 경비병도 사이조(才蔵)를 포함한 얼마 안 되는 수하만 데리고 왔다.


"이번의 보고에는 딱히 걱정할 만한 사항은 없네. 당초에 휴일(休日) 제도를 도입한다고 건의했을 때는 설명하는 데 한나절이 들었는데……"


일본에서는 메이지(明治) 시대가 될 때까지 명확하게는 휴일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쉬는 것은 우란분재(齋)와 연말(盆暮れ正月), 설날(正月), 그리고 축제일 등의 특별한 날에 한정되었다.

다만 조정에서 일하는 관리들에게는 가(假)라고 하는 정기 휴일이 있었다.

매일이 노동이고 몸을 쉴 틈도 없어서는 건강에 좋지 않다고 생각한 시즈코는 위에 말한 휴일을 제정했다.

막연히 매일 일하기보다, 휴일을 정해 완급을 조절하여, 노동자가 건강하게 페이스 조절(メリハリ)을 하며 일하는 것으로 효율이 올라가고, 최종적으로는 사회 전체의 이익이 된다고 시즈코는 노부나가에게 설명했다.

요일의 제정은 오와리에밖에 침투해있지 않기에, 인프라 정비사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간이적은 휴일 제도를 시험적으로 도입하기로 했다.


제도는 대단히 단순명쾌했다. 그날그날의 노동에 목표를 정하고,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던 날이 6일 모이면 다음 날은 하루종일 휴일로 했다. 반대로 말하면, 목표 미달이 계속되면 영원히 휴일은 오지 않는다.

이 휴일은 노동에 면제되는 것 뿐만 아니라, 노동일에 상당하는 급료가 지급되는, 말하자면 '유급휴가'였다. 휴일을 지내는 방법에 규정은 없었고, 법을 어기지 않는 한 뭘 해도 좋다고 하였다.

노동일에 영향을 주지 않는 한, 술을 마시던 행락(行楽)을 가던 자유였다.

미지의 제도이기는 하나, 노동자에게는 불이익은 커녕 유리한 제도이며, 휴일이라는 것을 이해한 노동자들은 다들 열심히 휴일을 얻으려고 분투했다.

종래의 일하는 방식에서는, 날씨를 이유로 일이 없어도 급료는 나오지 않았기에, 일하지 않고도 급료를 받을 수 있는 특전에 분기(奮起)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오늘은 부름이 늦네……. 휴일 제도의 성과를 듣고 싶다고 하셨으니, 슬슬 부름이 와도 좋을 텐데……"


그런 말을 딱히 누구를 대상으로 하지 않고 중얼거리고 있을 때, 시즈코의 귀에 뭔가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생각한 후, 옆에 있는 사이조에게 얼굴을 돌렸다.


"기분 탓은 아니죠?"


"소생의 귀에도 들렸습니다. 저건 맹장지가 찢어지는 소리일까요?'


"으ー음, 수상한 자(曲者)가 침임했다…… 고는 생각하기 어렵지만, 일단 확인하러 가죠"


여차하면 사람을 부르면 된다고 가볍게 생각한 시즈코는 사이조와 수하의 병사들에게 주의를 환기시키며 소음이 계속되고 있는 현장으로 발을 옮겼다. 주의하면서 다가갔으나, 소음이 끊기는 일은 없었다.

대기실(控えの間)까지 들릴 정도의 소음이 끊기지도 않는 것에, 시즈코는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생각을 고쳐먹고 긴장을 조였다.


"이 어리석은 놈이!!"


"아, 아버님! 기다…… 커흑!"


노부나가의 노성이 들린 순간, 전원이 유사시(荒事)에 대비해 전투태세에 들어갔으나, 이어지는 노성의 내용을 이해하자 몸에서 힘을 뺐다.

흘러나오는 내용을 볼 때 노부나가의 생명이 위협받고 있는 사태는 아니고, 노부나가 자신이 친족 중 누군가에게 격노하고 있다고 전원이 헤아렸다.

시즈코가 눈짓을 하자, 사이조를 필두로 모든 병사들이 머리를 숙이며 고개를 돌렸다. 노부나가가 주위를 신경쓰지 않을 정도로 격노하고 있는 것이다. 관여되지 않는 편이 좋은 게 당연했다.


"이번만큼은 참을 수 없다! 내가 직접, 그 목을 날려주마!!"


노부나가의 노기가 가라앉지 않는 것에 일말의 불안을 느낀 시즈코는, 자기가 생각해도 손해보는 성격이라고 어이없어하면서 중재하기 위해 현장으로 발을 들이밀었다.

실내는 참담한 상황이었다. 노부나가는 분노한 표정으로 뽑아든 칼을 치켜들고 있었으며, 바닥에 주저앉아있는 두 명의 남성을 베어버리려 하고 있었다.

그에 대해 두 사람은, 안색이 푸른 색을 넘어서서 하얗게 질려 있었으며, 코나 입가에서 피를 흘리고 있는 것을 보니 노부나가에게 얻어맞고 걷어차인 것은 틀림없었다.

최근 한동안 좋은 일이 계속되어 어지간한 일에는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던 노부나가가 웬일로 이 정도로 분노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건가 생각하면서, 호리나 란마루(蘭丸)가 필사적으로 다독이고 있는 노부나가에게 다가갔다.


"주상, 지나치게 화를 내시면 몸에 좋지 않습니다"


"웬 놈이냐! 음, 시즈코냐. 너는 거기서 기다리고 있어라. 이 쓰레기들을 처단한 후에 네 보고를 듣도록 하지"


"주상, 무례를 무릅쓰고 간언드리겠습니다. 분노에 휩쓸려 가신을 베면, 후대에 수치로서 전해질 것입니다. 여기는 일단 칼을 거두시고, 일의 전말과 주상의 뜻을 이 시즈코에게 들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뭐가 원인으로 노부나가가 이 정도로 격앙되어 있는지 알 수 없었지만, 노기에 휩쓸려 가신, 그것도 친족의 목을 날렸다고 하면 불명예가 될 것은 틀림없었다.

평소답지 않은 시즈코의 장광설이 노부나가에게 어느 정도 냉정함을 되찾게 했는지, 진절머리 난다는 듯 혀를 차고는 노부나가는 칼을 칼집에 넣어 란마루에게 던져주었다.


"반년이다. 반년의 유예를 주어도 여전히 이 상황을 벗어나지 못한다면, 친자(親子)의 연을 끊겠다! 이게 최후의 자비인 줄 알아라!"


바닥에 쓰러진 채 일어나지 못하고 있던 두 사람에게 내뱉은 후, 노부나가는 어깨로 숨을 쉬며(肩を怒らす) 걸었다. 간신히 칼부림 소동(刃傷沙汰)을 피할 수 있었던 것에 전원이 안도의 한숨을 쉰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덕분에 살았습니다. 솔직히, 저렇게까지 노하신 주상을 말릴 수 있을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안색이 새파래진 호리가 시즈코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쓰레기 취급받은 두 사람은 멍한 상태여서 아직도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호리는 노부나가의 칼을 받아든 채로 굳어있는 란마루의 어깨를 쳤다.

그걸로 제정신이 든 란마루에게, 호리는 의사를 불러오도록 명령했다. 쓰레기라고 불린 두 사람을 치료하기 위해서이리라. 란마루는 칼을 내려놓고는 서둘러 달려나갔다.


위험한 외줄타기이긴 했으나 어찌어찌 참극을 회피한 시즈코에게는, 아직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뭘 하고 있느냐! 시즈코, 너는 따라오지 못하겠느냐! 나머지는 물러나라! 바보 아들놈에게는 일에 착수하라고 전해라!"


"(아아, 역시 이렇게 되는구나) 그럼 여러분, 실례하겠습니다"


노부나가가 열어젖힌 맹장지 저편에서 노성이 들려왔다. 자신의 진척 보고에 더해, 노부나가의 넋두리(愚痴)를 받아준다는 일거리가 추가되었다. 사이조들에게는 먼저 돌아가도록 전하고, 시즈코는 노부나가의 뒤를 쫓았다.


"하여튼, 어찌할 도리가 없는 멍청한 자식놈들이다!"


시즈코가 내민 항아리에서 콘페이토(金平糖)를 한웅큼 집어 입에 털어넣고 거칠게 씹어부수며 노부나가가 내뱉았다.


"노여움의 원인은 이세의 개발이 늦어지고 있는 것입니까?"


"그렇다. 나가시마(長島)를 함락시킨 지금, 오와리와 이세와의 해운(海運)은 내가 장악했다. 그렇기에야말로, 오와리와 이세에서 뻗어나가는 도로 정비는 중요해진다. 항구에서 운반되는 물건들과, 그것을 운반하는 상인들의 왕래가 활발해지면 질수록 오다 영지는 윤택해진다. 육로(陸路)의 정비는 속도가 관건인데, 바보 아들놈들은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 뿐만이 아니라 혼간지 쪽 놈들에게 허를 찔리는 상황이다!"


(상인들로부터 소문을 듣고있었지만, 그다지 진척되지 않았구나, 도로정비)


시즈코는 노부나가의 넋두리에서 사태의 전말에 대해 대략적인 추측을 했다.

이세는 키이(紀伊) 반도(半島)의 동쪽에 위치한다. 이세 만(伊勢湾)을 장악한 지금, 노부나가는 전국으로부터의 해운을 받아 육로로 연결하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쿄로 이어지는 경로는 여럿 있는 쪽이 바람직하다. 설령 다시 오다 포위망이 구축되어 해상 봉쇄를 당하더라도, 육로가 건재하다면 노부나가를 가두는 것은 곤란해진다.

어느 한 쪽만이라도 유지할 수 있으면, 병력 수송도 물자 운반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세를 포함하는 지역은 가파르고 험준한(急峻) 지대라서 교통편이 좋지 않습니다. 그 때문에, 산을 깎아서 길을 내려는 계획이었습니다만, 그게 진척되지 않고 있다는 것일까요?"


"다소의 지연이라면 문제삼지 않는다. 실패에서 배우고, 다음에 활용하면 된다. 문제는 놈들이 책임을 피하려고 한 것이다"


"……납득했습니다"


만회 불가능한 실패가 아니라면, 노부나가는 실패에 대한 처벌을 내리더라도 만회할 기회 또한 준다. 만회할 수 있으면 좋고, 실패하면 거기까지다.

노부나가의 임무에 대한 기본적인 자세는 이것이 전부다. 물론, 몇 번이나 실패를 반복한다면 이야기는 다르지만.


"누구보다 앞장서서 걷는 길이라면, 나도 실패에 대해 고려한다. 그 실패를 연구하는 것으로 뒤를 잇는 자들의 모범이 되기 때문이지. 하지만, 멍청한 자식놈들은 실패에서 아무 것도 배우려 하지 않고 다만 시간을 낭비하며 같은 실패를 반복하고 있다. 그것도 뒤처리를 해준 이후보다도 상황을 악화시킨다는 덤까지 붙여서 말이지"


"새로이 반년의 유예를 주신 것이 마지막, 이라는 것인가요. 확실히, 그 말씀을 들으면 충분히 온정을 베푸신 것이군요. 이래도 실패한다면, 참수를 당해도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겠지요"


"지금 당장이라도 목을 날려버리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말이다. 자, 불쾌한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네 보고를 들어보자"


노부나가는 헛기침을 하며 화제를 바꾸었다. 시즈코도 본론으로 들어가며 표정을 조였다. 그렇다고는 해도, 새삼스레 보고할 내용은 거의 없었다. 이건 집에 빨리 갈 수 있겠다, 고 그녀는 내심 웃었다.


"보고라고 하셔도, 현재 상황은 제 2단계, 제 54공정까지 차질 없이 끝났습니다. 계획보다도 앞서서 진행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꽤 빠르구나. 제 54공정이라고 하면, '다음 달부터 개시될 예정' 아니었더냐? 예정된 것 이상이라는 것은 훌륭하다. 지금부터도 한층 더 분발하도록"


"감사합니다. 노동자들에게는 약간의 휴가와 포상을 주고 예기를 가다듬도록 명하였습니다. 이제부터는 날씨가 나빠지기 쉬운 시기이므로, 노동 환경이나 위생 환경에도 신경쓰지 않으면 안 됩니다"


장마의 시기는 우천시에는 공사를 중지할 수밖에 없어, 공기(工期)가 늦어지면 그걸 만회하기 위해 무리한 노동을 강요할 가능성이 생긴다.

인프라 사업은 이후에도 계속되는 대사업이므로, 노하우를 축적한 베테랑 노동자를 혹사시켜 망가뜨리고 싶지는 않다.


"그러고 보니, 인프라 사업과는 별도로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지금,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상관없다, 말해봐라"


"화폐의 유통량이 줄어들고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수하에 따르면 쿄나 오우미 등에서는 물물교환 시장이 부활하고 있다고 합니다. 조속히 화폐를 늘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화페를 늘린다, 라는 말에 노부나가의 표정이 변했다.

안색에서 추측컨대, 노부나가도 화폐의 유통량이 줄어들고 있는 것은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리라. 하지만 노부나가는, 그에 대해 유효한 조치를 떠올리지 못했다.

그렇다고 해서 노부나가를 무지하다고 비웃을 수는 없다. 경제학 따위 존재하지 않는 시대에서 화폐를 늘린다는 생각에 도달하는 것은 아무리 사고가 유연한 노부나가라고 해도 어려운 일이니까.


"……그리 생각하느냐. 역시, 화폐가 문제인 것이냐"


"통화(通貨) 발행에 관한 권한은 조정으로부터 오다 가문이 위임받았습니다. 최상책은 불환지폐(不換紙幣)로 경제를 컨트롤하는 것입니다만, 그것에는 여러가지 제약이 있습니다. 지금은 은화(銀貨), 금화(金貨)를 주조하여, 시장의 거래 규모에 맞는 화폐량을 담보하는 것이 급무라고 생각됩니다"


"돈이 모자라면, 만들면 된다라. 훗…… 말로 하면 간단하지만, 누구도 그 해답을 찾아내지 못했다. 역시 한번에 건너뛰는 식(一足飛び)으로는 할 수 없는 것인가"


노부나가는 자조하듯 웃었다. 화폐가 부족하면, 새로운 화폐를 제조하여 투입한다. 대단히 간단한 대책이지만, 그 해답조차 자신은 찾아내지 못했다.

시즈코가 지금도 여전히 지혜가 있는 사람들을 모아 많은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것도, 새로운 것을 시작하려면 평범한 것들의 축적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노부나가는 이해했다.


"최종적으로 목표한 지점은 보이고 있습니다만, 현재 상황으로는 불가능하다고 생각됩니다. 우선은 아전(鐚銭, ※역주: 표면이 닳아버리거나 불순물이 섞인 돈)을 구축하고, 새로운 화폐로서 금, 은, 동전을 유통시키는 것이 선결이라 생각합니다"


"애초에, 어째서 화폐가 줄어드는 것이냐? 그걸 이해하지 않고서는 이야기를 진행시킬 수 없다"


"그렇군요…… 가령 일본 전체에 동전(銅銭)이 1천만닢이 있다고 가정합니다. 발행 당시에는 일본에 1천만닢의 동전이 있습니다. 하지만 유통을 거치는 과정에서 동전은 마멸되거나, 녹여서 불순물을 섞어 구리(銅)의 비율을 줄이거나 하여 아전이 생겨나기 시작합니다. 이 아전의 존재와 정전조문(精銭条文)에 의해, 유통되는 화폐의 숫자가 변합니다. 알기 쉽게 절반이 정전(精銭), 절반이 아전이라고 가정합니다. 아전은 5닢에 정전 1닢으로 친다고 하면, 동전 자체는 1천만닢이 있지만, 정전 5백만닢과 아전 1백만닢의 합계 6백만 문(文)밖에 통용되지 않게 됩니다. 당초에 유입된 동전의 숫자보다 화폐가 줄어든 상태입니다. 이렇게 되면 화폐의 가치가 올라가고, 반대로 물가가 떨어집니다"


영락전(永楽銭)은 명나라(明)에서 수입하고 있는 동전이다. 화폐 공급량이 제로인 현 상황에서는, 시장에 존재하는 화폐는 줄어들기만 할 뿐이다.

지금은 정전이더라도, 언젠가 아전으로 바뀌고, 나아가 화페 가치를 끌어올려, 물가가 계속 떨어지는 디플레 경제에 빠져든다.

그야말로 지금이 디플레 경제 상태이다. 이것을 해소하려면 내수의 확대가 바람직하다고 한다.

하지만 내수를 확대하려 해도, 거래량에 걸맞는 만큼의 화폐가 필요해진다. 그래서 시즈코는 기존의 역사를 본받아, 동전뿐만이 아니라 금이나 은의 화폐도 투입하도록 진언했다.


"주상께서 정하신 정전조문은, 금의 '무게'에 대해 교환할 수 있는 '돈'을 결정하고 있습니다. 이래서는 화폐는 계속 줄어듭니다. 금이나 은을 가공하여 화폐로서 유통시키고, 그런 후에 공공 투자를 하여 내수의 확대를 노리는 것이 좋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흠…… 금이나 은은 남만과의 거리에 사용하고 있었지만, 그걸 우리 나라에서도 사용한다는 것이냐. 당면의 과제는 시장에 존재하는 화폐의 숫자를 늘리는 것이구나. 그렇다면 조속히 금이나 은을 모아서 새로운 화폐를 주조할 필요가 있겠구나"


"새로운 화폐의 모양 같은 건 정하셨습니까?"


"지나치게 기발(奇抜)해도 쓰기 불편하겠지. 영락전과 비슷한 모양이면서 위조를 방지할 수 있으면 된다. 물론, 위조한 놈에게는 일가친지 몰살(根切り)이 기다리고 있다"


"그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옛부터 통화 위조는 중죄…… 일가친지 몰살, 즉 일족 도당을 모두 죽이는 정도가 타당합니다"


"이야기는 결정되었구나. 당장 기사들을 모아라. 기사들에게도 엄한 감시를 붙여라. 금은으로 돈을 만드는 것이다. 사심을 가질 가능성이 있지"


"잘 알고 있습니다"


옛부터 통화 제조에 종사하는 것은 엄격한 감시 하에 놓였다.

에도(江戸) 시대에서는, 에도 막부(江戸幕府)가 통화를 제조하는 킨자(金座), 긴자(銀座), 도우자(銅座)라는 화폐주조기관을 설립하고, 각각의 기관(座)에 통화를 제조하게 했다.

특히 가장 가치가 높은 금화를 주조하는 킨자는, 막부로부터 엄격한 감시를 받고 있었다.

고위의 직책(役職)에 부임할 수 있는 가문을 한정하는 것은 물론이고, 직원으로서 채용될 때는 서약서의 의무화, 작업자에 의한 상호감시체제, 봉행소(奉行所)로부터의 순시(巡視) 등이다.


특별히 에도 막부가 엄격했던 것은 아니다. 현대에서도 지폐 제조에 관한 기술은 극비 취급이 기본이며, 관련되는 직원이 사생활에 이르기까지 제한을 받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다.


"서약서의 의무화, 직원의 상호 감시, 제 3자에 의한 순시 등의 규정이 필요하겠군요. 각 직원에게는 조금이라도 수상한 행동을 한 자를 밀고하면 포상금을 준다고 말해두면 배신자도 나오기 어렵겠지요"


"역시 빈틈없구나"


시즈코의 설명에 노부나가는 히죽 웃었다.




우에스기 켄신(上杉謙信)이 노부나가의 신하의 예를 취했지만, 그 하나만으로 신종(臣従)이 담보되느냐 하면 그렇지는 않다. 우선 신하의 증거로서 인질이 노부나가에게 보내질 것이 결정되었다.

누굴 보낼 것인가라는 선별은 의외로 시간이 소요되지 않았다.

노부나가의 인질이 되는 것은 우에스기 카게카츠(上杉景勝)였다. 이것은 우에스기 카게토라(上杉景虎)가 호죠(北条) 가문 출신인 데 비해, 카게카츠는 우에다(上田) 나가오(長尾) 가문 출신인 것이 영향을 주었다.

그리고 에치고 나가오 씨는 오랫동안 가문 내부의 권력투쟁을 계속하고 있었다.

특히 우에다 나가오 가문과 코시(古志) 나가오 가문은 현재도 적대하고 있어, 코시 나가오 가문의 입장에서는 인질의 건은 카게카츠를 추방할 둘도 없는 찬스였다.


카게카츠는 카네츠구(兼続) 등 약간의 측근만을 데리고 에치고를 출발했다. 도중에 아무 일도 없이 기후(岐阜)에 도착하여 노부나가에게 인사를 마쳤다.

노부나가는 카게카츠가 보내어진 것을 그다지 신경쓰지 않고 인질로서 맞아들였다.

원래대로라면 기후의 성시(城下町)에서 생활하겠지만, 미노와 에치고는 지리적으로 가깝고 연락도 취하기 쉽다는 불안이 있었기에, 카게카츠는 오와리에서 인질 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오와리의 경우, 카게카츠를 돌봐줄 인물은 한 명 밖에 없다.


"아ー, 뭐ー, 그렇게 되지 않을까ー 라고 생각했었어"


노부나가로부터의 명령서를 다 읽은 시즈코는 성의없는 태도로 받아들였다. 미노에 카게카츠를 계속 두게 되면, 켄신이라면 어떻게 해서든 연락을 취하는 것이 가능하다.

하지만, 오와리까지의 경우 물리적인 거리가 가로막는다. 간자를 보내려 해도 발견될 가능성은 높아지기에, 켄신도 쉽게 연락을 취할 수 없다.


"주상의 명령입니다. 견실하게 실행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인질인가. 그래서, 란마루. 너, 시즈코의 질문에 대답할 수 있냐?"


다부진 표정으로 말하는 란마루에게, 나가요시가 히죽히죽 웃으며 훼방을 놓았다. 하지만, 란마루는 나가요시의 말을 흘려들었다.


"주상의 명령에 이의 따위 있을 리가 없잖습니까. 그리고 형님, 이 자리에서 저는 주상의 사자(使者). 그런 거친 말투는 문제가 있지 않을까 합니다"


"말 하나는 그럴듯하게 하게 되었구나"


"자, 거기, 일일이 트집을 잡지 마. 받아들이는 건 딱히 문제 없어요. 세세한 지시는 전부 적혀있으니까요. 그래서, 우에스기 가문의 인질의 취급에 대한 건 이족에 일임된 거라고 생각해도 되는거죠?"


"예. 주상께서는 '귀여워해줘라'는 전언을 받았습니다"


"잘 알겠어요. 수고하셨어요"


딱히 질문이 없었던 시즈코는 거기서 대화를 종료시켰다. 그 후, 란마루가 기후로 돌아가고, 이쪽의 지시에 따라 카게카츠들이 측전(側殿) 중 하나에 들어갔다.

그런 일들이 끝나자 카게카츠와 카네츠구가 시즈코에게 알현을 신청했다. 도착 인사일 거라고 이해한 시즈코는, 두 사람을 즉시 부르도록 소성(小姓)에게 명령했다.


"나가오 키헤이지(長尾喜平次)라고 합니다. 길어질지, 아니면 짧아질지는 모르지만, 그 때까지 잘 부탁드립니다"


"히구치 요로쿠(樋口与六)입니다. 마찬가지로, 지금부터 신세를 지겠습니다"


"이야기는 들었어요. 몇 가지 행동에 제한은 두겠지만, 비교적 자유롭게 지내도 상관없어요"


시즈코는 두 사람에게 세세한 제한을 가할 생각은 없었다. 과도한 제한을 둔 결과, 감시측의 인원 부족에 빠져버려서는 얘기가 안 된다.

또, 아무리 켄신이 노부나가의 신하가 되겠다고 결정해도, 불만을 가진 사람들은 반드시 있다. 그런 패거리들에게 파고들 여지를 주지 않기 위해서도, 인질의 취급은 엄격하게 할 생각은 없었다.

불만을 가진 사람이 은혜를 원수로 갚는 짓을 하면, 노부나가나 켄신이 제재(粛正)를 가할 때 대의명분이 되지 않을까, 하는 흑심(下心)도 있었다.


"지금 있는 집 안이라면 자유롭게 행동해도 상관없지만, 외출시에는 이쪽에서 사람이 따라붙으니까 그것만 주의해줘요"


"과분한 온정,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자세한 이야기를 생략하면, 대충 이 정도일까? 나머지는 감시역인 케이지 씨에게 그때그때 물어주세요"


그 후, 카게카츠와 카네츠구는 케이지를 따라 퇴출했다. 나가기 직전에 술이 이러니 저러니 하는 케이지와 카네츠구의 대화가 들렸기에, 시즈코는 약간 불안을 느꼈다.

술의 소비가 크게 늘어나는 게 아닐까, 하는 불안에.




이제 곧 아자이(浅井)-아사쿠라(朝倉) 침공일까, 라고 시즈코가 막연히 생각하고 있을 때, 금속 가공에 종사하고 있던 전직 노예인 야이치(弥一)와 루리(瑠璃)가 찾아왔다는 연락을 받았다.

호출한 기억이 없었기에 뭔가 상담할 일이 있나 하고 생각한 시즈코는 두 사람을 만나기로 하고, 귀찮지만 알현실까지 이동했다.

생각대로, 두 사람은 상담할 일, 이라기보다 어떤 부탁을 하기 위해 시즈코와의 면회를 요청한 것이었다.


"집을 가지고 싶어요?"


그건 둘이서 살 집을 가지고 싶다, 라는 상담이었다. 각자 일하는 장소가 다르기에, 현재 야이치와 루리는 따로따로 살고 있다.

지금까지 떨어져 살았던 경험이 없었기에, 이것이 보이지 않는 스트레스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둘이서 함께 살고 싶다. 하지만 허가 없이 생활(待遇)을 바꾸면 질책받을 거라고 야이치가 생각하여, 시즈코에게 허가를 받으러 왔다는 이야기였다.


"응, 딱히 상관없어요. 그걸로 일의 효율이 올라간다면 이쪽도 거절할 이유는 없어요"


시즈코의 허가를 받자 야이치와 루리는 휴 하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렇게까지 신경쓸 일인가, 라고 생각했으나 노예 생활이 길었기에 그들은 고용주의 허가를 얻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는 것이라고 시즈코는 이해했다.


"그런데 일은 순조롭나요?"


"네. 처음에는 어색한 관계였습니다만, 지금은 여러분이 매우 잘 대해주십니다. 다만, 기술자들의 진지함, 만은 지금도 어색합니다. 조금, 따라가기 힘듭니다"


"젊은 사람이나 정열적인 사람으로부터는 선생님이나 스승이라고 불려서 기쁩니다. 하지만, 다들 너무 진지하여, 이쪽이 반대로 미안해져 버립니다"


"그런가요, 그거 다행이네요. 뭐 우리 기술자들은 지는 걸 싫어하니까요. 두 사람의 기술을 배워서 언젠가 그걸 뛰어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는 거겠죠"


이야기를 들어보니 야이치나 루리와 기술자 마을의 기술자들의 관계는 양호했다. 그들이 만드는 상품도 날개돋친 듯 팔린다, 까지는 아니지만 서서히 주목받게 되고 있었다.

특히 1mm 정도의 가느다란 바늘 모양의 은이나 금으로 세공한 허리띠(帯飾り)는, 평소에 장식품을 달지 않는 무가(武家)의 부인들 사이에서 조용히 인기 상품이 되어 있었다.


"고마운 이야기, 입니다. 하지만, 동포들이 지금도 불우한 취급을 받고 있다, 고 생각하면, 저는 진심으로 기뻐할 수 없습니다"


근본이 성실한 건지, 야이치는 자신만이 구원받은 현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루리가 야이치의 등을 문지르며 위로했으나 그다지 효과는 없었다.


"하, 네가 언제부터 다른 사람의 걱정을 할 수 있는 신분이 된 게냐"


시즈코가 건넬 말을 생각하고 있을 때, 어느 새 코타로가 야이치의 등 뒤에 서 있었다. 깜짝 놀란 야이치가 돌아보았으나, 그런 그를 보고 코타로는 코웃음을 쳤다.


"조금 여유가 생겼다고 애숭이가 우쭐하지 마라. 자기 몸 하나 뜻대로 하지 못하는 네가, 다른 사람의 몸을 걱정하다니 웃기는구나"


"……네"


"지금은 자신의 기반을 다지고, 자신이 홀로 설 수 있게 되는 걸 우선시해라. 다른 사람을 돌봐주는 건 그 다음이다"


주인인 시즈코가 뭔가 말하기보다, 같은 유태인인 코타로의 말이 납득하기 쉬웠는지, 아까까지 외곬으로 생각하며 고민하고 있던 야이치였으나, 지금은 고민이 해결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야이치의 표정에 만족했는지, 코타로는 히죽 웃으며 앉았다.


"미안합니다, 주인님. 오늘은 부탁할 것이 있어서 왔습니다만"


"이제와서 늦은 얘기네요. 이번에는 괜찮지만, 다음부터는 제대로 순서를 지켜 주세요"


"노력하죠. 그래서, 이야기라는 건 와인을 만들고 싶으니, 그 환경을 갖춰 줬으면 합니다"


누구에게 배운 거냐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은근히 건방진 말투에 마음 속으로 태클을 걸던 시즈코였으나, 와인이라는 단어를 듣고 생각에 잠겼다.

기독교에서 와인이란 '신의 피'이며, 대단히 중요한 아이템이다. 하지만 실은 유태 교에서도 와인은 기쁨의 상징, 안식일에 기도를 드리는 등 중요한 것이다.

여담이지만, 유대 교에는 계율에 적합한 카슈루트(kashrut, 코셔(Kosher)라고도 한다)라는 식사 규정이 있다.


카슈루트를 엄격하게 지킨다면, 와인은 유태 교도가 순서에 따라 포도를 재배하고 와인을 만들어 병에 담은 것 이외에는 인정되지 않는다.

물론, 카슈루트에 적합한 와인을 이교도가 만져도 마찬가지로 더럽혀진 것으로 간주된다.


"그건 계율에 따른 포도주를 만들고 싶다는 건가요?"


"응? 아핫핫핫, 계율 같은 건 생각도 안 했습니다. 순수하게 와인이 마시고 싶어진 것 뿐입니다. 하지만 포도를 모으는 건 지금의 내게는 불가능한 일이니, 주인님에게 부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거라면 몇 달만 기다리면 코우슈(甲州) 포도가 수확할 시기가 될 거에요. 그 때, 생식에 맞지 않는 것을 와인용으로 쓰죠"


"잘 부탁합니다"


말을 끝냄과 동시에 코타로는 몸을 돌려, 용무는 끝났다고 말하듯 알현실을 나갔다. 지나치게 자유분방한 모습에 주위 사람들은 어이가 없어졌으나, 케이지와 시즈코만은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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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

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겐키(元亀) 4년 무로마치 막부(室町幕府)의 종언(終焉)


105 1573년 6월 상순



5월 하순, 전국시대의 종언(終焉)을 고하는 역사적 이벤트가 미노(美濃)의 기후 성(岐阜城)에서 막을 올렸다.

전국시대를 대표하는 다이묘(大名) 중 한 명이라도 해도 과언이 아닌 우에스기 켄신(上杉謙信)이, 노부나가의 거성(居城)인 기후 성에서 신하의 예를 올렸다.

이것으로 에치고(越後)는 노부나가의 지배하에 편입된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한 나라가 함락되었다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미노보다 동쪽에 있는 나라들은 상락(上洛)하려고 하면 반드시 노부나가가 지배하는 땅을 통과해야 하며, 결과적으로 상락이 불가능해졌다.

오다, 도쿠가와(徳川), 우에스기의 3개국으로 사이고쿠(西国)로 통하는 길을 틀어막았다.

이 사실은 노부나가에게 토우고쿠(東国)에 대해 동원할 병력의 수를 줄일 수 있으며, 동시에 사이고쿠 문제에 집중 대응할 수 있게 되는 메리트를 가져온다.

한편, 세력이 분단된 형태가 된 엣츄(越中)나 에치젠(越前)의 일향종(一向宗)은 궁지에 빠졌다.

육로를 통한 보급로가 끊기고, 오다-우에스기의 양쪽을 상대해야 하는 상황을 강요받게 된다. 무력에서 떨어지는 일향종으로서는 죽었다 깨어나도 이길 수 없는 도식이 성립되었다.


주변국이 갑작스럽게 뒤바뀐 세력구도에 대응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는 동안, 원흉(元凶) 중 한 명인 시즈코는 다른 일로 정신없이 바빴다.


"어째서 이렇게 된 거지?"


뭐가 어떻게 되어 지금의 상황이 된 건지, 시즈코는 이해할 수 없었다. 우에스기 켄신이 노부나가를 방문하고, 신하의 예를 올릴 때까지는 예정대로였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어째서 우리 집 집들이가, 어느새 우에스기 가문을 환영하는 주연(酒宴)으로 바뀐 거지?"


시즈코는 혼자서 불평했다. 새 집이 완성되었으나 집들이를 하지 못했기에, 가까운 사람들(身内)을 초대하여 한식구(内輪)끼리 축하연을 열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 자리에 주군인 노부나가나, 그 맹우(盟友)인 이에야스(家康)가 참가하는 것까지는 간신히 납득도 할 수 있었다.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그 축하연에 우에스기 켄신까지 참가할 것이 결정되었다고 듣고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애초에 우에스기 가문이 신하가 되는 것을 축하해도 되는지라는 근본적인 문제가 시즈코에게는 있었다.


"지금부터는 우리들도 시즈코 님과 한식구가 됩니다. 한식구의 경사에 불만 같은 게 있을 리 없지요"


하지만, 켄신 본인이 전혀 신경쓰지 않았고, 그러긴 커녕 시즈코 저택의 구조(造り)에 흥미진진하여 축하연에 참가한 상황이었다.


"이것이 오와리(尾張)의 최신(今様) 저택…… 곳곳에 여러가지 배려(工夫)가 되어 있군"


"영주님(御実城様), 한동안 체재해보고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만, 옛것과 새로운 건축 양식이 훌륭하게 융합되어 있습니다! 이쪽을 보아 주십시오"


"오늘은 초대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실로 훌륭한 저택이군요, 시즈코 님"


"어이쿠, 이건 시즈코 님, 대단히 멋진 궁궐(御殿)이군요. 소생도 언젠가 이런 저택을 가지고 싶습니다"


"카하하핫, 좋구나 좋아(善哉善哉)! 경사스런 일이 겹치니, 우리들의 미래도 밝을 것이야"


그 후에도 초대한 기억이 없는 사람들까지 차례차례 방문해왔다.

타케다(武田)를 쳐부수고 우에스기가 신하가 된 것에 의해 당면한 위협이 없어진 것 때문인지, 오다 가문의 중신들도 거리낌없이 집들이에 얼굴을 내밀게 되었다.

예상외의 대 북적임에 수용 능력이 시험받게 되었으나, 기적적으로도 참가자 전원이 연회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

다만 비정상적으로 인구밀도가 높아져 있었기에, 어디에 누가 있는지 상좌(上座) 부근을 제외하면 알 수 없는 상황이 되어 있었다.


"이제 딱히 우리 집 집들이가 아니어도 괜찮은거 아닌가"


시즈코는 그런 말을 중얼거리면서, 이 날을 위해 준비해온 디저트의 마무리를 하고 있었다. 그것은 소위 말하는 딸기의 쇼트케이크였다.

딸기라고 해도 현대와 같은 양딸기(オランダイチゴ)가 아닌, 일본에 옛부터 자생하고 있는 산딸기(キイチゴ) 속(属)의 장딸기(クサイチゴ)를 사용했다.

장딸기는 산딸기 중에서도 대형이고, 현대의 품종 정도는 아니라고 해도 강한 단맛을 가지고 있다.

현대의 품종과 달리 약간 자기주장이 강한 신맛을 갖지만, 잼 등으로 가공해버리면 신경조차 쓰이지 않는다. 이번에는 신맛을 약화시키기 위해 시럽을 졸여 약간 불을 들였다.


여담이지만 스폰지와 크림을 층층이 쌓아서 크림 장식과 함께 딸기 등의 과일을 얹은 쇼트케이크는 일본이 발상지이다.

영어권에서는 레이어(layer, 또는 레이어드(layered)) 케이크라고 부르는 비슷한 케이크가 존재한다.

그러나, 사용되는 반죽(生地)은 스폰지가 아니라 비스킷이라고 불리는 단단한 식감의 반죽을 사용하며, 크림이나 과일을 중간에 끼워넣는 것이 특징이다.

따라서 일본에서 생일이나 크리스마스 등의 정석이 되는 딸기의 쇼트케이크라는 것은 일본에만 존재한다.


"으ー음, 역시 케이크는 좋아. 너무 많이 먹으면 살찌지만…… 아니, 예전과는 운동량이 다르니까, 하나쯤 더 먹어도 괜찮…… 을지도 몰라"


하나쯤 더, 라고 생각한 시즈코였으나, 둥글둥글한 자신을 상상하고 자제했다. 그리고 쟁반에 쇼트케이크를 몇 개 얹은 큰 접시를 놓은 후, 이것을 노히메(濃姫)가 있는 곳으로 가져가도록 몸종(小間使い)에게 명했다.


그 후, 별실(別室)에서 자유롭게 집주인이 없는 집들이를 만끽하고 있던 노히메들에게 말을 걸고, 시즈코는 노부나가가 있는 상좌로 발을 옮겼다.

축하받을 입장인 집주인인데 어째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건가 하고 일순 쓸데없는 생각을 했으나, 자신이 자리를 비운 동안 노부나가 등 비호자(庇護者)들이 정치적인 협상을 취사선택해줄 거라고 생각을 고쳐먹었다.


"다들, 오늘은 실컷 마시고 먹고 즐기자꾸나"


그 후, 노부나가가 개회사를 하여 시즈코 저택 집들이 연회가 개막되었다.




처음 본 에치고(越後) 사람들을 한 마디로 나타내지면, 그들은 술에 대해서는 사양하지 않았다. 에치고 사람들이 있는 자리와 없는 자리는 술통의 소비량이 눈에 띄게 차이가 나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볼 때는 무서운 기세로 마시고 있는데 취해 쓰러지지 않는 술고래(蟒蛇) 투성이였다.

소문이 헛되지 않은 에치고 주호(酒豪) 들의 모습을 직접 보고 제아무리 노부나가나 이에야스라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여전히 내 금주령은 풀리지 않았지만…… 말야)


흐르는 작업처럼 술통에서 퍼올려져서 운반되어가는 술병(徳利)을 보면서 시즈코는 자신에게 채워져 있는 목줄에 대해 생각했다.

만약을 위해서 대량으로 술을 준비하고 술가게(酒屋)에서도 대량으로 사들였으나 남을 일은 없을거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우에스기 사람들에 비해 이에야스 등 도쿠가와 사람들은 아직 청주에 익숙하지 안하, 그 소비 페이스는 느릿했다.

지금은 미카와(三河)나 토오토우미(遠江)에도 오와리나 미노에서 생산된 청주가 팔리게 되었으나, 아직 생활에 침투하는 데는 이르지 못한 모양이다.

노부나가는 평소처럼 자신의 페이스로 마시고 있었다. 애초에 술을 잘 못 마시는(下戸) 것으로 알려진 노부나가였기에, 그다지 많은 양의 술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 어느 쪽이냐 하면, 그는 술보다 단 것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었다.


(한식구끼리의 속편한 연회가 어쩐지 거창한 주연(酒宴)이 되어 버렸네)


주역이기에 시즈코는 노부나가와 마찬가지로 상좌에 위치하고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면 눈에 들어오는 것은 노부나가, 이에야스, 고노에 사키히사(近衛前久), 우에스기 켄신이라는 쟁쟁한 인물들이었기에 조금도 긴장이 늦춰지지 않았다.

게다가 이 후, 노히메들과도 얼굴을 맞댈 필요가 있다.


(마음이 무겁네)


조금도 편히 즐길 수 없는 연회가 계속된다고 하면 아무리 시즈코라도 기분이 처진다. 하지만 입장상, 축하받을 집주인이 참가하지 않는다는 폭거는 있을 수 없기에, 결국 포기의 경지에 도달했다.


"죄송합니다. 용무가 있어 잠시 실례(中座)하겠습니다"


슬슬 때가 되었나, 하고 생각한 시즈코는 노부나가에게 자리를 비울 것을 알렸다. 노히메들 때문이라고 이해하고 있는 노부나가는, 시즈코의 머리를 탁탁 하고 가볍게 친 후에 말했다.


"뼈는 주워주마"


"아니, 죽으러 가는 건 아닙니다만"


"평소에도 종잡을 수 없는(一筋縄ではいかぬ) 오노(お濃)에 술까지 들어간 상태다. 제대로 된 결과로 끝날 리가 없지 않느냐"


노부나가의 말을 듣고 시즈코는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일 뻔 했다. 하지만 주군의 눈 앞에서 그 부인(細君)의 험담을 긍정할 수도 없어 다급히 태도를 바로했다.

깊이 고개를 숙인 후, 시즈코는 조용히 연회장을 나왔다. 애초에, 연회도 절정을 맞이하여 취객들로 넘쳐나고 있는 연회장이었다.

설령 시즈코가 알기쉽게 연회장을 나섰다고 해도 신경쓰는 사람은 적었으리라.


"후우…… 피곤하네"


연회장에서 조금 떨어진 장소로 이동했을 때 시즈코는 후 하고 한숨을 쉬었다. 자신의 어깨를 주무르면서 걷고 있자니, 모퉁이에서 아야(彩)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시즈코를 발견하자, 발소리를 내지 않고 시즈코에게 다가왔다. 뭔가 다른 사람에게 알리고 싶지 않은 일이 있는 건가, 라고 즉시 이해한 시즈코는, 가까운 방으로 아야를 부르며 먼저 들어갔다.

잠시 간격을 두고 아요도 시즈코를 쫓아 방으로 들어왔다.


"영내에 잠입해 있던 사나다(真田)의 간자를 포박했습니다. 그런데 기묘한 것이, 그 간자는 시즈코 님께 이 서신을 전해달라고……"


"용케 들어왔네…… 아니, 지금이니까 그런가. 외부인이 이렇게 많이 들어오는 건 지금밖에 없으니까"


자신이 예전에 썼던 계책을 쓴 거라는 것을 시즈코는 헤아렸다.

오다, 도쿠가와, 우에스기의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초대객까지는 파악할 수 있어도, 수행원들 한 사람 한 사람 까지는 아무래도 파악할 수 없다.


"하지만 '하늘의 감시원(空番)'만은 속일 수 없었던 듯 합니다. 비밀리에 처분하려고 했습니다만, 사나다로부터의 정보를 가지고 있다고 듣고, 지금은 묶어서 감옥에 가두어두기만 했습니다"


"지금이라면 이 저택을 구역으로 삼고 있는 애들보다 사람 숫자가 많으니까. 뭐, '하늘의 감시원'인 까마귀들이라면 숫자도 충분하지만 말야"


비트만들이나 시로가네 등, 시즈코의 저택을 구역으로 삼고 있는 동물은 많다. 하지만, 그 이외에도 같은 공간을 구역으로 정하고 있는 동물은 있다.

가장 많은 것이 까마귀 패밀리다. 정확한 숫자는 알 수 없지만 100마리 가까이가 시즈코의 저택 부근을 근거지로 삼고 있다.

청소부(scavenger)의 지위대로, 시즈코의 저택에서 나오는 생활 쓰레기의 처리를 까마귀들이 맡고 있었다.


그런 관계로, 시즈코의 저택에 간자가 숨어들려 해도, 먹이를 다투는 적으로 인식되어 어디에 숨어있었냐고 묻고 싶어질 정도의 숫자로 간자들을 덮쳐간다.

생활 쓰레기를 지정한 장소에 버리기만 하면 되는, 천연의 간자 대책이었다.


"흠…… 흠"


사나다로부터의 서신을 아야에게서 받아들고 시즈코는 서신의 내용을 확인했다. 읽어감에 따라 시즈코의 표정이 험악해졌고, 필연적으로 아야의 긴장도 높아져갔다.


"곤란하네, 이건"


"어떤 내용이 쓰여 있는지요"


"간단히 말하면 집안 소동. 되돌려보낸 무토 키헤에(武藤喜兵衛)가 사나다 가문을 이었지만, 그가 타케다륵 등지고 오다 밑으로 들어가는 것을 좋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과 다투고 있는 모양이야. 게다가 전투중에 후퇴 명령이 나오기 전에 군을 물렸기 때문에 책임을 추궁당하고 있는 것 같아. 타케다 가문의 간자들도 마찬가지 상황인 모양이지만"


서신에는 타케다 가문의 상황과, 사나가 가문이 놓여 있는 상황이 적혀 있었다. 우선 무토 키헤에는 정식으로 사나다 가문을 이어 사나다 마사유키(真田昌幸)로 개명하였다.

하지만 사나다 가문을 잇자마자 그는 미카타가하라(三方ヶ原) 전투에서 신겐(信玄)의 후퇴 명령보다 앞서 병사를 물러나게 한 책임을 추궁받았다.

책임을 추궁한다고 하면 듣기는 좋지만, 요는 패전의 손실을 조금이라도 보전하기 위해 본보기로서 영지를 몰수하겠다고 말한 것이다.

마사유키를 시작으로 사나다 가문 전체가 가볍게 보이고있다는 상황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본보기로 이용된 것은 타케다의 간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카츠요리(勝頼)는 신겐이 고심해서 만들어낸 간자 조직을 '얄팍한 쓰레기(人でなし)들의 집단'으로 단정했다.

그리고 미카타가하라 전투에서, 오다 측의 정보를 모으지 못한 것의 책임을 그들에게 지웠다.


이에 의해 타케다 직속의 간자 네트워크는 괴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게 된다.

훗날 카츠요리가 범한 뼈아픈 실책으로서 종종 거론되게 되는데, 전국시대에서 간자를 경시하는 것은 극히 일반적인 사고방식이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문자 그대로 목숨을 걸고 모아온 정보가 음미하지도 않고 버려져서야 사기를 유지할 수 없다.

예쩐에 타케다를 섬겼던 간자들이 신겐이 죽은 후에 사나다의 밑으로 모여든 것도 새롭게 태어난 사나다가 정보를 중요시하여 간자들을 버리는 돌처럼 취급하지 않았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본보기…… 입니까?"


"단적으로 말하면 조직 전체의 문제를 특정 개인에게 떠넘겨서 체재(体裁)를 보존한 거야. 손실도 보전할 수 있으니까. 그 상황에서는 사나다가 병사를 물리지 않았어도 승산 따윈 없었지만…… 뭐, 생트집이네"


"그건, 자신의 팔다리를 먹어서 배고픔을 채우고 있을 뿐으로, 팔다리가 없어지면 밭도 일구지 못하는데요……"


"그런 거야. 타케다는 조직 전체로서 패했다고 인정하고 싶지 않았어. 그 뿐만 아니라, 일부의 겁장이들이 발목을 잡았다고 자기 보신(保身)을 꾀한 거야. 이쪽 입장에서는 좋은 경향이지만, 책임을 지지 않는 책임자를 가진 조직은 머지앖아 붕괴하니까"


어디보자, 라고 시즈코는 턱에 손을 대고 생각했다. 이미 역사는 알려진 역사적 사실에서 벗어났다. 이제부터는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대로 각 세력이 움직일 거라는 보장은 없다.

그걸 생각하면 사나다 마사유키에게는 빨리 복귀해 줬으면 좋겠다고 시즈코는 생각하고 있었다. 이제부터는 정보가 무엇보다 중요시될거라고 그녀는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간자는 당분간 감옥에 가둬놔. 괜히 움직이게 해서 이 이상 정보를 아는 사람이 늘어나면 확실히 제거될 테니까. 그걸 피하기 위해서라도 감옥에 넣어두고 나중에 풀어주는 게 좋아"


"알겠습니다. 간자에 대해서는 함구(秘匿)하도록 명해두었고, 만에 하나 알려져도 정보 수집중이라고 대답하겠습니다"


"잘 부탁해. 지금부터의 싸움은 정보가 중요해져. 지금 이상으로 정보를 수집해야 하고, 그러러면 실력좋은 간자가 많이 필요해지니까"


이걸로 이야기는 끝, 이라고 말하듯 시즈코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노히메는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며 시즈코는 아직이냐, 라고 중얼거렸다. 몸종들은 허리를 꼿꼿이 펴며 아직 안 오셨습니다라고 대답했다.

한숨을 쉬면서 노히메는 몸종들을 물러나게 했다.


"노히메 님, 시즈코는 오라버니께 붙잡혀 있겠죠.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할 거라 생각합니다"


이치(市)가 노히메를 다독였지만, 정작 노히메에는 효과가 별로 없었다.


"주군께서도 시즈코를 너무 부려먹으시느니라. 모처럼의 경사이니, 마음 편하게 지내게 해주면 될 것을…… 그렇지 않느냐, 이치"


"제게는 오라버니의 생각은 알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무슨 생각으로 이런 자리를 만드신 걸까요"


"주군의 생각은 어려워 보이지만 단순하느니라. 아마 시즈코의 영향력을 과시하고 계시겠지. 바깥에도, 안에도 말이다"


말하면서 노히메는 앞에 있던 접시에 놓인 과자를 집어먹었다. 이치에게는 노히메가 약간 초조해 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그건 남자 사회에서밖에 통하지 않는 논리다. 여자가 아닌 주군께서는 그걸 알지 못하시지. 여자 사회에서는, 혼인하여 아이를 낳고, 집안을 잘 관리하고, 각 가문의 부인(奥方) 들을 잘 상대(切り盛り)하고, 적자(嫡子)를 키워내야만 제 몫을 다 했다고 간주되지. 그 관점에서 본다면, 시즈코는 아무 의무도 다하지 않고 있는 밥벌레(穀潰し)이니라"


"확실히 시즈코는 집을 가지더라도 남편도 없고 자식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오라버니의 밑에서 천하통일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기 때문이지요. 저희들의 생활이 풍족해진 것도, 오다 가문이 융성한 세력을 유지하고 있는 것도 시즈코가 진력한 결과이겠지요"


"이치, 슬픈 일이다만, 인간이란 그렇게 매사를 잘 이해하는 자들만 있는 것은 아니니라. 시즈코가 얼마만큼 어려운 일을 해내더라도, 여자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 그 한 가지만으로 비난하는 패거리는 얼마든지 있느니라. 특히 집이라는 좁은 세계에 틀어박혀 자기 자식을 키우는 것만을 유일한 자랑으로 삼는 '무능한' 년들 중에 말이지"


드물게 감정을 감추려고 하지도 않고 욕설을 하는 노히메에게 이치는 내심 놀라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이치를 신용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낯간지러움이 느껴지기도 했다.


노히메가 말했듯, 전국시대의 무가(武家) 사회의 최심부(最奥), 여자 사회에는 명확한 의무가 존재했다.

남자 사회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면서도 그 영향에서 단절된 사회에서는, 아무리 남자 사회에서 유용함을 드러낸다 해도 여자 사회에서는 그에 대해서는 일체 평가받는 일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때때로 시즈코에게 벅찬 일을 시키시는 거군요"


여자로서 의무를 다하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여자 사회의 정점인 노히메로부터 총애를 받고 있다. 당연히 아래의 여자들이 기껍게 생각할 리가 없다.

하지만 노히메로부터 각별한 돌봄을 받으면서도 성가신 일을 떠맡게 되어,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고생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면 어떨까?

시즈코에게 질투하면서도, 그 입장을 대신하고 싶다는 여자들은 줄어들 것이다.

그리고 시즈코가 선보이는(発信) 다양한 문물을 노히메가 대신 퍼뜨리는 것으로 가볍게 보이는 일도 없이 받아들여져, 시즈코 본인은 그렇다치고 시즈코가 생산하는 물건들은 유용하다고 인식하게 된다.

이러한 보이지 않는 배려들이 있기에 비로소 시즈코는 남자 사회에만 전념할 수 있으며, 의무를 다하고 있지 않음에도 여자 사회에서도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여자들에게 시즈코는 유용하지만, 눈에 거슬릴 정도는 아니고, 일신에 총애를 받으면서도 전체적으로 불우(不遇)하다는 절묘한 배역을 해내고 있는 것이다.


"내가 단순히 시즈코를 귀여워하여 돌봐주면, 그 비뚤어진 생각(僻み)이나 질시(嫉み)는 시즈코에게 집중되지. 아무리 사회 전체에 대해 유익하더라도, 여자의 의무를 다하고 있지 않다는 한 가지만 가지고 악(悪)으로 몰리는 것이니라"


어느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지만, 의무를 다하지 않고 보수만을 받는 자는 미움받는다. 설령 어떤 위업을 해내더라도, 꾀를 부렸다고 하여 평가받지 못한다.

예를 들면 주식(株式)의 오발주(誤発注)가 벌어져, 실수로 비정상적으로 싸게 방출된 상표(銘柄)를 매점하여 적정 가격으로 파는 것으로 거액의 부를 얻은 사람이 있다고 하자.

세상은 그를 높이 평가할 것인가? 남의 약점을 파고들어 폭리를 취했다던가, 단순히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평가받는 게 고작일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그 자리에 설 수 있는가 아닌가만이 운(運)의 요소이며, 비정상적인 낮은 가격을 꿰뚫어보는 눈이나, 즉석에서 가능한 한 사들인다는 결단력과 자본력이라는, 그 자리에 서기 위해 보이지 않는 중첩된 요소(積み重ね)가 존재한다.

이러한 요소를 꿰뚫어볼 수 있는 사람은 대단히 적다. 시즈코의 예를 들어 말하자면, 그 얼마 안 되는 이해자가 노히메이며, 운만으로 출세한 여자라는 불필요한 질투나 따돌림(隔意)에 발목을 잡히지 않도록 보호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 덕분이기도 한지, 시즈코는 남자 사회에서는 오다 가문의 중신(重臣)으로서 경의를 받게 되고, 여자 사회에서도 자신들에게 유익한 결과를 가져오는, 고생을 도맡아 하는 사람(苦労人)이라는 지위를 확보할 수 있었다.

그래도 관계되는 사람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시즈코에 대해 질투를 품는 자들이 생겨난다. 이것만큼은 어쩔 수 없기 때문에, 때때로 모두에게 보이도록 시즈코를 부려먹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 시즈코는 주군께서 내리신 최대의 난제, 타케다 토벌을 해냈느니라"


"그렇군요. 지용(知勇)을 겸비한 많은 장수들을 거느린 타케다를 쓰러뜨리라니, 터무니없는 것도 정도가 있습니다"


"하지만 시즈코는 해냈다. 이것으로 남자 사회에서의 지위는 확고해졌지. 그렇게 되면…… 무슨 말인지 알겠지?"


부채로 입가를 가린 노히메가, 다음에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이치는 이해했다. 이치도 노히메를 따라, 부채로 입가를 가리고 목소리를 낮췄다.


"(주군께서는 시즈코에게 주군의 아이를 양자로 보내신다고 한다. 이걸로 무능한 놈들은 조용하게 만들 수 있지)"


"(과연…… 그리고 시즈코는 오라버니의 아이를 자기 아이로 삼는 것으로, 오라버니에 대한 충성을 드러낼 수 있지요. 그야말로 일석이조로군요)"


"(음. 주군께서도 시즈코의 남편감에 대해서는 생각하셨던 모양이다. 하지만, 몇 번을 고노에 님과 이야기를 나누어도 결론이 나지 않았다고 하더구나. 애초에, 이건 시즈코가 문제라기보다, 녀석의 군이 붕괴하는 쪽이 큰 문제이기 때문이지)"


"(오라버니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시즈코 군이 있는 덕분에 전쟁에서 해야 할 번거로운 일들이 반으로 줄었다고. 과연, 이제부터 두 배로 일을 하라, 고 해도 불만이 분출하겠군요)"


"(그렇지? 하지만 시기는 알 수 없기에, 이렇게 우리들이 시즈코를 지켜야 하느니라)"


"(노히메 님의 심모원려(深謀遠慮), 실로 감복했습니다. 그렇다면, 미력하지만 이 이치도 돕겠습니다)"


"(이것아, 어렵게 생각하지 말거라. 평소대로 하면 되는 것이다, 평소대로, 말이지)"


그걸 마지막으로 노히메는 부채를 접었다. 비밀 대화는 종료, 라는 신호다. 이치도 조금 늦게 부채를 접었다.




아야와 헤어진 후, 시즈코는 노히메들이 있는 여자용의 연회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가까이 갈수록 발걸음이 무거워지는 시즈코였으나, 무시할 수도 없었다.


"실례하겠습니다"


연회장이라고 해도 노부나가가 있는 대연회장처럼 딱딱하지는 않다. 오히려 격식을 차리는 것은 주최자인 노히메가 싫어하기 때문에, 대단히 느슨한 분위기로 가득차 있었다.


"오오, 드디어 왔느냐. 자, 이쪽으로 오거라"


가장 먼저 시즈코를 발견한 노히메가 손짓을 했다. 노히메의 말대로 시즈코는 노히메가 지정한 장소에 앉았다.


"설계 단계에서도 보았지만, 꽤나 훌륭한 저택이다. 주군께서도 지나치게 기합을 넣으셨구나"


"네에…… 확실히 과분한 대저택(豪邸)이 되었습니다. 덕분에 이런저런 사람들을 고용하지 않으면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들었느니라. 마츠(まつ) 님의 딸 뿐마니 아니라, 아케치(明智) 님의 딸도 고용했다더구나"


"어디서 들으셨는지 모르겠습니다만, 그 말씀이 맞습니다. 어째서인지 다들, 우리 딸은 어떻소, 라고 하시네요"


아케치 미츠히데(明智光秀)의 딸, 이름을 타마(珠, 타마(玉)라거나 타마코(珠子)라고 하는 경우도 있지만, 여기서는 타마(珠)를 채용함)라고 했다.

하지만 메이지(明治) 시대에 기독교도가 그녀를 칭찬했기 떄문에, 오늘날에는 호소카와 가라샤(細川ガラシャ)라고 하는 쪽이 유명하다.


새 저택은 이전의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넓이였기에, 아야나 쇼우(蕭) 만으로는 관리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그래서 시즈코는 새로 사람을 고용하기로 했는데, 이걸 들은 미츠히데가 "제 딸은 어떠십니까"라고 추천했다.

이게 방아쇠가 되었는지, 다른 무장들도 앞다투어 그 뒤를 따르려고 하여 일종의 소란이 벌어졌다.

모르는 사람을 고용하는 것보다야, 라고 생각해서 시즈코는 무장들을 딸을 맡는 형태로 고용하게 된다. 당초에는 불안도 있었지만, 본래 교육을 받은 무장들의 딸들이었다.

처음에는 자신들의 생활과 전혀 다른 환경 때문에 행동이 불안불안했으나, 곧 적응하자마자 척척 일을 해내고 있었다.

그래도 국어(国語)나 산수(算数)같은 시즈코 저택에서만 필요한 지식 레벨이 낮았기에, 종종 그것들의 보충수업(補習)을 하여 지식의 기본 바탕을 높이고 있었다.

덕분에 아무 것도 가르치지 않은 딸에게서 한자로 쓰인 편지가 왔다, 라는 유쾌한 상황이 여기저기의 가문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쇼우(蕭)짱은 기운이 넘치지만, 타마 짱은 호기심이 왕성하네요ー. 제가 고용한 남만인(南蛮人)에게도 겁먹지 않으니까요. 뭐 지나치게 저돌맹진(猪突猛進)한 것이 옥의 티입니다"


"괜찮지 않느냐. 그 쪽이 재미…… 어흠, 유쾌하니 말이다"


"얼버무리려조차 하지 않으시네요!"


말을 바꾸는 건가 생각했는데, 노히메는 단지 의미는 같지만 다른 단어를 말했을 뿐이었다. 어깨에서 힘이 축 빠진 시즈코는, 피로한 듯한 한숨을 쉬었다.

실제로, 적의가 없는 미소를 계속 짓는 것은 피곤한 일이었다.


"피곤한 것 같구나. 그럴 때는 실컷 노는 것이 중요하느니라"


"이게 끝나면 당분간은 마음 편하게 지내겠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복도 쪽에서 요란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급한 용무라도 있었나, 라고 시즈코가 입구 쪽으로 얼굴을 돌린 순간, 맹장지가 기세좋게 열어젖혀졌다.


"도착ー!"


"착ー!"


맹장지 너머에 있던 것은 챠챠(茶々)와 하츠(初)였다. 주위가 놀라는 것을 무시하고 둘은 방 안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목적의 인물인 시즈코를 발견하자, 표정을 풀며 그녀에게 돌격했다.


"시즈코오ー! 새 집, 축하하느니라ー"


"니라ー"


둘은 어린아이, 하지만 전 체중을 실은 태클은 어린아이라도 위력적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시즈코는 둘의 태클을 받아냈다. 하지만 둘은 신경쓰지 않고, 새끼 고양이처럼 시즈코의 품에서 아양을 부렸다.


"자, 두 분. 갑자기 입구를 기세좋게 열면 안 돼요. 물건은 소중히 다루도록 해요"


"네ー"


시즈코의 말에 기운차게 대답하는 둘이었으나, 시즈코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까지는 이해하고 있지 않았다. 이해하기보다 먼저, 흥미의 대상이 다른 것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시즈코ー, 이거 모야ー?"


챠챠는 시즈코의 등에 올라타며 쟁반에 올려져 있는 과자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이건 남만의 과자에요. 이름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저는 갸토(gateau, 프랑스어로 케이크라는 의미)라고 부르고 있어요"


케이크의 역사는 오래되어서, 고대 로마 시대에 만들어진 달콤한 빵이 케이크의 시작이라고 전해진다.

플라켄타(プラケンタ)라고 하는 고대의 치즈케이크도 탄생했지만, 오늘날의 케이크와는 성향이 조금 다르다.

현대인이 떠올리는 케이크가 탄생한 것은, 그로부터 1천년 가까이 지난 중세 유럽 시대, 현대의 굽는 방법이 된 것은 그로부터 다시 수 세기를 거친 17세기라고 한다.


한편, 일본에서는 전국시대에 전래된 카스테라가 케이크의 시작이다. 그로부터 수 세기를 걸쳐, 타이쇼(大正) 시대에 후지야(不二家)가 현대의 쇼트케이크를 개발, 판매했다.


시즈코가 만든 케이크는 한입 사이즈의 스폰지 사이에 크림과 과일을 끼워넣고, 위에 버터 크림으로 약간 장식을 한 정도의 미니사이즈 케이크이다.

하지만 설탕이나 계란, 생크림에 버터를 듬뿍 사용하기에, 미니사이즈라고는 해도 권력자밖에 맛볼 수 없는, 그냥 고급이 아니라 '초' 고급 과자가 되었다.


"달아ー, 셔ー, 근데 달아ー"


"천천히 드셔야 해요ー. 신맛이 있는 건, 장딸기가 끼워져 있어서 그래요"


전술한 듯이 장딸기는 약간 신맛이 강하지만, 그래도 야생 딸기(野イチゴ) 중에서는 신맛이 적고 단맛이 강한 품종이다.

재배도 쉬워서, 건조와 일조량에만 신경쓰면 수고를 들이지 않고 늘릴 수 있다.

다만, 땅에 심으면 지하경(地下茎)을 뻗어 한없이(野放図) 증식하기 때문에, 배지(培地)를 한정할 수 있는 플랜터 재배가 바람직하다.


장딸기는 갓 수확한 것에 시럽을 끼얹어 단맛을 강조하고 있지만, 어린아이의 예민한 미각에는 산맛이 강하게 느껴지는 모양이다.


"미묘하게 셔. 하지만 달아서 신경 안 쓰여"


이러니저러니 말하면서도, 챠챠와 하츠는 미니사이즈 케이크를 마음에 들어하여, 놓여진 미니사이즈 케이크를 차례차례 먹어치웠다.

하지만, 둘 다 한자릿수 나이의 어린아이, 배가 부르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만족이니라ー"


"니라ー"


배를 문지르며 둘은 시즈코에게 기댔다. 시즈코는 어이없어하면서도 몸종에게 모포를 가져오도록 명했다.

하지만, 시즈코는 곧 후회하게 된다. 모포를 덮어주자, 챠챠와 하츠가 본격적으로 잠이 들어버려 움직일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전신이 저리네"


움직이지 못하게 되어 곤란해하는 시즈코를 보다 못한 노히메가, 챠챠와 하츠의 유모를 불러 둘을 회수하게 했다. 시즈코는 노히메에게 감사 인사를 한 후, 굳어진 몸을 풀기 위해 근처를 산책했다.

연회장을 살짝 들여다보았는데, 이미 만취한 사람들이 잔뜩 있었기에 시즈코는 살짝 입구를 닫고 조용히 그 자리를 떠났다.


"으ー음, 몸에서 우둑우둑 소리가 나네"


관절에서 뚝뚝 하는 소리를 내면서 시즈코는 기지개를 켰다. 이대로 잘 되면 몇 년 안에 일본이 오다 가문에 의해 통일되겠다, 라고 시즈코는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그건 모든 일이 잘 되면, 의 이야기다. 뭔가 문제가 생겨서 엎어질(とん挫)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하지만, 그래도 오다 가문이 천하통일을 하는 것은 거의 기정사실(既定路線)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음? 저건……"


"시즈코 님"


멀리 뭔가 보인 시즈코였으나, 눈을 가늘게 뜨기 전에 이름을 불리웠기에 그녀는 그쪽으로 의식을 향했다. 얼굴을 돌리자, 그곳에는 약간 술냄새가 나는 미츠히데가 있었다.

그는 시즈코가 자신의 존재를 깨달은 것을 알자 인사했다.


"제 딸이 신세를 지고 있음에도 인사가 늦어 죄송합니다. 딸은 도움이 되고 있습니까?"


미츠히데의 질문에 시즈코는 말 대신 어떤 지점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대답했다. 처음에는 고개를 갸웃한 미츠히데였으나, 시즈코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쪽을 보고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잘 있습니다. 보시는 대로, 기운이 좀 넘치지만요"


시즈코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쪽에는, 미츠히데의 딸인 타마가 고양이 장난감(猫じゃらし)을 한 손에 들고 고양이들과 놀고 있었다. 지금은 시즈코의 집들이, 몸종들 중 하나인 그녀도 필연적으로 바빠지는데, 그녀는 땡땡이를 치고 있었다.

짐작컨대 고양이가 신경쓰여서 그쪽으로 의식이 집중되었기에, 일을 잊어버린 것일거라 시즈코는 이해했다.

미츠히데로서는 창피한 나머지 얼굴이 확확 달아오를 지경이라 도저히 진정할 수 없었다.


"……버릇이 없는 딸이라 죄송합니다. 잘못을 저지르면 사양치 말고 꾸짖어주셔도 좋습니다"


"평소에는 제대로 일을 잘 하고 있으니, 이 정도로 눈을 부릅뜰 필요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어느 정도 안심이 됩니다. 하지만, 내버려두면 우쭐할 지도 모릅니다. 잠시, 실례를"


말이 끝남과 동시에, 미츠히데는 타마를 향해 큰 걸음으로 다가갔다. 고양이에게 집중하고 있던 그녀는, 고양이 장난감을 흔드는 데 정신이 팔려 미츠히데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다.

미츠히데가 바로 뒤에 서자, 그제서야 타마는 등 뒤에 누군가가 있는 것을 깨달았으니, 이미 때는 늦었다.


"아, 아버님! 이, 이건 그…… 고양이가 귀엽습니다!"


"그런 건 알고 있다! 타마! 일을 잊어버리고 고양이와 놀다니, 무슨 생각을 하는 거냐!"


"꺄웅!"


(아, 타마 짱이 꿀밤을 맞았다. 변명하기보다 얼른 사죄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하는데 말야ー)


마음 속으로 조언을 생각하면서도 시즈코는 결코 미츠히데와 타마의 대화에 끼어들지 않았다. 10분 정도 혼이 난 후, 두 사람은 함께 시즈코가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꿀밤이 아팠던 듯, 타마는 머리를 열심히 문지르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고양이를 안고 있는 모습에 시즈코는 이제 쓴웃음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똑바로 일을 하도록 말해두었습니다. 다음에도 이런 짓을 한다면 사양말고 말씀해주십시오. 제가 직접 처단하겠습니다"


"시즈코 님, 일하는 걸 잊어서 죄송합니다"


먼저 미츠히데가, 그에 뒤따르는 형태로 타마가 고개를 숙였다.


"얼굴을 들어 주세요, 아케치 님. 타마 짱이 혼난 이유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면 문제없습니다. 자, 타마 짱. 늦은 걸 만회할 정도로 일해줘"


"네, 네!"


기운차게 대답한 후, 타마는 빠르게 뛰어갔다. 달릴 때도 고양이를 놓지 않았찌만, 도중에 싫증이 났는지 고양이가 타마의 손을 박차고 뛰어내렸다.

일순 멈춘 타마였으나 미츠히데에게 혼난 것을 떠올렸는지, 고양이에게서 시선을 떼고는 서둘러 주방 쪽으로 달려갔다.


"맙소사, 어린애라고는 해도 좀 더 정신을 차렸으면 좋겠군요"


타마의 어수선함에 한숨을 쉬는 미츠히데였다.




"영감님, 들어간다ー…… 여전하구만"


술병을 한 손에 들고 케이지(慶次)는 코타로(虎太郎)가 틀어박힌 방으로 들어갔다. 상대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들어간 순간, 방의 난잡함에 케이지는 쓴웃음을 떠올렸다.

여기저기에 휘갈겨쓰이고 바닥에 흩어져 있는 도식(図式)이나 계산식은 학문이 없는 케이지에게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데나 흩어놓는 건 좀 그렇다, 고 그는 생각했다.


"……어엉? 뭐냐 애숭이(若造)냐. 부탁받은 일이라면 처리했다"


의자에 앉은 채 자고 있었는지, 잠이 덜 깬 눈으로 코타로가 말했다. 지금은 별을 관측할 필요가 있어서, 코타로는 밤낮이 뒤바뀐 생활을 하고 있었다.


"영감님, 술이라도 한 잔 하겠어?"


"거절하면 어차피 거기서 마실 거 아니냐. 하여튼, 조금은 노인을 배려해주는 게 어떠냐"


"배려하니까 너무 몰두하다가 쓰러지지 말라고 이렇게 왔잖아"


"뭐…… 그건 일리가 있군"


훌륭한 턱수염을 훑으며 코타로는 작은 테이블을 잡아당겼다. 도중에 테이블 모퉁이가 가까이 있던 책더미에 걸려 더욱 노출된 바닥 면적이 줄어들었으나, 코타로는 그다지 신경도 쓰지 않았다.


"연구는 순조롭수?"


"순조……롭다고는 못 하겠지만, 좋은 기자재가 준비되어 있어서 곤란하지는 않다"


코타로의 잔에 술을 따른 후, 케이지는 자신의 잔에도 술을 채우며 물었다. 코타로의 연구란 지동설(地動説)이 올바른지를 증명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시즈코로부터 이런저런 기자재를 받았다. 망원경(굴절식)은 물론이고, 태양 투영판(投影板)이나 전용의 태양시계 등이다.

특히 태양 투영판은 우수하여, 이것 덕분에 코타로는 실명의 걱정 없이 태양을 관측할 수 있다.

투영판이라고 거창한 이름은 붙어 있지만, 원리는 단순하여, 천체망원경의 접안렌즈의 연장선상에 하얀 종이나 판을 설치할 뿐인 단순한 것이다.

관측 대상이 태양이기에 저배율의 접안렌즈라도 기능(機能)은 하지만, 대상을 관측하면서 미세한 조정을 할 수 없기에, 태양을 투영판에 비추는 수고만큼 쓸데없는 시간을 필요로 하는 결점도 가지고 있었다.


"그런가. 나는 뭐가 뭔지 모르겠지만, 영감님이 즐거워 보이니 다행이네"


"코페르니쿠스의 저서를 번역한 것 뿐으로, 원래는 그렇게까지 흥미가 있었던 건 아니지만 말이지. 하지만, 알면 알 수록 재미있다. 게다가, 이게 올바르다고 판명할 수 있으면, 교회 놈들이 울상을 짓게 만들어줄 수 있지"


"즐거워 보이네, 영감님. 하지만, 즐긴다는 건 중요하다고"


"이제 높으신 분들의 안색을 살피며 비굴하게 사는 건 사양이다. 어차피 사람의 삶은 한 번 뿐, 그렇다면 후회없이 죽기 위해서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사는 것도 재미있지"


"맞아맞아, 맛있는 걸 먹고, 햇빛 잘 드는 곳에서 뒹굴거리면서 지내는 것도 즐겁다고. 오늘은 경사가 있으니 맛있는 걸 슬쩍해오는 것도 간단하고 말야"


"뭔가 소란스럽다고 생각햇는데, 그런 걸 하고 있었나. 애숭이, 너는 안 나가도 되는거냐?"


"나는 그런 딱딱한 자리는 질색이야. 서로 뱃속을 탐색하면서 마시는 술 따위 맛도 없잖아"


"그 말이 맞다"


거기서 두 사람은 서로 마주보고 웃고, 그리고 잔에 담긴 술을 비웠다.


"처음에는 기묘한 맛이라고 생각했는데, 익숙해지니 이 술도 맛있군"


"헤헷, 오늘은 경사니까. 좋은 술이 잔뜩 나왔거든. 조금 넉넉하게 슬쩍해도 눈에 띄지 않는다는 셈이지"


"과연. 그런데, 고향의 와인이 몹시 마시고 싶어지는군. 주인에게 말하면 흥미를 끌 수 있으려나…… 아니, 주인이라면 와인을 만드는 법 정도는 알고 있을 것 같군"


"시즛치라면 알고 있어도 이상하진 않지. 지금 마시는 이 술도 시즛치가 지휘(音頭)해서 만들기 시작한 거야. 뭐, 시즛치에게 술을 마시게 하면 이래저래 야단이 나서 다들 시즛치에게 술을 마시지 못하게 하고 있지만 말야"


"술주정(酒乱) 같은 것인가. 그 정도가 딱 좋지. 인간은 너무 완벽하면 재미없으니까"


"음ー, 술주정…… 이려나. 뭐, 술버릇이 나쁘다는 점은 같은 얘기겠네. 어쨌든 술 뿐만 아니라 이런저런 것을 알고 있을테니, 어쩌면 만드는 법도 파악하고 있을지도 몰라"


애매한 대답을 괴이쩍게 생각한 코타로였으나, 그다지 흥미를 끌지는 않았기에 흘려듣기로 했다. 그 이후 두 사람은 이것저것 담소하며 때때로 술을 들이켰다.


"남만은 어떤 느낌이야?"


"어떠냐…… 고 해도. 나는 어떤 학자 밑에서 일하고 있었지. 학자라는 건 세상사에 둔감해서 말야. 그 덕분에, 나도 속세에 대해선 거의 모르는 채로 나이를 먹었지"


"그거 큰일이네. 인생은 즐기지 않으면 손해야. 가끔은 실컷 놀아야지"


"내 경우에는 놀기 시작한 게 좀 늦은 것 뿐이다"


"오, 제법 좋은 말을 하잖아, 영감님"


히죽 웃은 후, 케이지는 잔의 술을 비웠다. 조금 늦게 코타로도 잔을 비웠다. 케이지가 코타로의 잔에 술을 따랐고, 무뚝뚝하게나마 코타로도 케이지에게 술을 따라주었다.


"네가 말하는 남만은, 단적으로 말하면 최악이다. 종교로 백성들을 속박하고, 암흑시대를 나아가고 있지. 주인에게 말했지만, 나는 유태인. 기독교도 놈들이 볼 때는 유태인이라는 것만으로 악(悪)으로 취급받지"


"시답잖은 얘기구만"


"어, 실로 부조리한 얘기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나라가 형성되고, 그 나라의 국교(国教)로서 정착되었다면, 그런 사고방식이 상식이 되지. 뭐, 우리들 유태인들도 배타적인 부분이 있으니, 다수파가 되면 다를 바가 없겠지만 말이다"


"묘한 얘기군. 내가 볼 때, 믿는 신은 똑같은 거잖아? 일본에서도 같은 부처를 섬기면서, 다양한 종파로 갈려 있어. 그리고 자신이 속한 종파 이외에는 이단이라고 배척하지. 가르침은 같으니, 해석의 차이에 불과한 것인데 다투는 건 무의미(不毛)할 뿐이야"


"그렇지. 하지만, 이 나라에서는 종교가(宗教家)가 세력을 떨치지 못하는 게 좋군. 성지 탈환이라느니 이단자 사냥이라느니, 그런 바보같은 소동에 말려드는 건 질색이다"


"우리는 신앙을 강요하는 게 없으니까"


"자신의 수하가 무엇을 믿던 구애받지 않는다는 건가, 그것도 주인의 방침인가. 그것 때문에 생각났는데, 주인은 대체 정체가 뭐지? 저 나이에, 저만큼 달관하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아. 아직까지 밑바닥이 보이지 않는 견식을 가지고 있는 것 같고 말이지"


"글쎄?"


"글쎄…… 라니"


케이지의 성의없이 들리는 대답에 코타로는 어이가 없어졌다. 주인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고, 그뿐만 아니라 흥미도 없다는 태도로 보였기 때문이다.

코타로의 표정을 눈치채고, 케이지는 악의없는 미소를 떠올리며 말했다.


"시즛치의 진짜 정체가 뭔지, 같은 건 알아봤자 의미는 없어. 흥미도 없지. 우리들은……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그건 시즛치에 대해 거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 아니야"


"……"


"시즛치가 하는 일은 재미있고, 다음에 어떤 일을 저지를지, 기대와 흥미로 두근거리지. 그것만으로 충분해"


"과연. 확실히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은 중요하지. 뭐 주인의 경우, 맥락이 없는 일에 너무 폭넓게 손을 대서, 뭘 하고 싶은지 보이지 않는 게 난점이지만 말이지"


"그것조차 즐길 수 있게 되면 영감님도 어른(一人前)이 된 거지"


"연장자를 어린애(半人前) 취급하지 마라!"


그렇게 말하며 두 사람은 마주보고 웃었다. 그 이후에도 두 사람은 술잔을 나누며 대화를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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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

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겐키(元亀) 4년 무로마치 막부(室町幕府)의 종언(終焉)


104 1573년 5월 중순



시즈코는 오다 노부나가라는 인물을 이해했다고 생각했다. 아니, 이해했다고 생각하게 되었었다고 해야 할까.

우에스기 켄신(上杉謙信)으로부터의 항복 수락을 전하는 서신이 도착했다는 소식을 알릴 때, 노부나가의 대응은 빨라도 다음 날 아침이 될 거라고 시즈코는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소식을 전달받은 노부나가는 내용을 파악하자 정무를 중단하고, 정확성이 높은 정보를 입수하기 위해 시즈코가 있는 곳으로 출발한다는 결단을 내렸다.

준비에 시간을 잡아먹는 호위대(馬廻衆)를 놔두고 혼자서 말을 몰아 먼저 달려갔다.

강의과단(剛毅果断). 가장 빠르게 행동하는 노부나가를 따라잡은 사람은 없었다.

통상 한나절은 걸리는 거리를, 말을 바꿔타며 겨우 몇 시간만에 질주한 노부나가가 시즈코가 있는 곳에 도착한 것은, 해가 지고 땅거미가 지는 시간대였다.


"우에스기(上杉) 가문으로부터의 서신에 대해 묻고 싶은 것(疑義)이 있으니, 사자(使者)와 직접 이야기를 하고 싶다"


질풍신뢰(疾風迅雷)처럼 이동했을 노부나가였으나, 그에게서는 피로감 등은 보이지 않고 넘쳐나는 패기에 압도되는 것 같았다. 건네받은 수건으로 흐르는 땀을 거칠게 닦은 후, 다짜고짜 용건을 꺼냈다.

시즈코는 노부나가의 기세에 멍해졌지만, 즉시 그의 요구를 이해하자 카네츠구(兼続)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회견 절차를 갖추었다.

카네츠구 자신도 노부나가를 알현할 것을 예상하고 있었는지 즉시 몸가짐을 바로하고 알현에 임했다.


"사자님께 묻지. 즉시 결단한 이유는 무엇인가"


상대가 설령 어린애(童)라고 해도, 노부나가는 우에스기 가문의 사자로서 취급했다. 카네츠구도 예상보다 꽤나 빠른 알현임에도 불구하고 실로 당당하게 대답을 했다.


"영주님(御実城様)께서 숙고(熟考)하신 결과입니다"


"우에스기의 가신(家臣)들에게 불만은 없었는가"


"불만이 있던 없던, 영주님의 결단에 따르는 것이 가신. 물론 소생에게 불만 따윈 없습니다"


"우에스기가 바라는 요구란 무엇인가"


"그에 대해 소생은 아무 것도 듣지 못햇사옵니다. 다만, 난세(乱世)의 종언(終焉)과 백성들에 충분한 먹거리를 줄 수 있는 것은 지금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시즈코조차 압도되는 노부나가를 앞에 두고 겁먹지 않고 말을 늘어놓은 카네츠구를 노부나가는 마음에 들어했다.

그는 씩 하고 한층 깊은 웃음을 지으며 질문을 계속했다.


"너에게 주어진 역할은 무엇이냐"


"영주님께서 신하의 예를 취하실 때까지 인질이 되는 것입니다. 만약, 영주님께서 약정을 어기신다면, 이 목, 원하는 대로 하십시오"


"그 나이 치고는 훌륭한 각오로군. 흠…… 대략 그쪽의 사정은 파악했다. 수고했다. 물러가도 좋다"


"옛"


"밤도 깊었으니 밖을 돌아다니기는 불편하겠지. 특별히 시즈코의 집에 방을 마련하게 할 테니, 한동안 몸을 쉬도록"


"과분한 배려, 황공하옵니다"


카네츠구 자신도 (요구에 대해) 듣지 못했던 것도 있지만, 노부나가는 그다지 신경쓰는 기색도 아니었다. 질의를 마친 노부나가는 카네츠구를 물러나게 하고 독백했다.


"큭큭큭, 이렇게까지 노린 대로 움직이면 어쩐지 무섭기까지 하군"


사람들을 물리고 혼자 남은 방 안에서 노부나가는 진심으로 즐겁게 웃고 있었다. 그것도 그럴 것이, 타케다 신겐(武田信玄)을 쳐부수고, 쌍벽을 이루는 우에스기 켄신까지 굴복시킨 것이다.

그것들을 겨우 반년만에 해낸 것이니, 노부나가가 아니더라도 웃음이 멈추지 않을 상황이리라.


"아자이(浅井)와 아사쿠라(朝倉)가 초조해하는 모습이 눈에 선하구나! 굼벵이(愚図) 놈들이, 내 서신을 무시한 것을 후회하고 있겠지. 실로 유쾌하구나!"


한발 빨리 시류(時流)를 판단한 우에스기와, 대조적으로 우둔한 아자이, 아사쿠라의 행동을 돌아보고 노부나가는 소리높여 웃었다.

이 때의 노부나가의 모습을 기록한 책에 '각별(格別)한 만족감'이라고 표현되어 있는 것을 볼 때, 얼마나 노부나가가 기뻐했는지를 엿볼 수 있다.

그 정도로 우에스기의 굴복(臣従)이라는 사건은 그의 패도(覇道)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건이며, 천하통일의 시금석(試金石)이 될 수 있는 일이었다.


"시즈코! 술창고를 열고 술을 대접하거라!"


그 후, 겨우 쫓아온 호위대(馬廻衆)나 소성(小姓)들도 함께하여 조촐하지만 연회(宴)가 열렸다. 평소에는 술을 많이 마시지 않는 노부나가도, 이 때 만큼은 모두와 잔을 나누며 술잔을 비워댔다.

그리고 다음 날 이른 아침. 일출과 함께 출발하여, 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돌풍처럼 기후(岐阜)로 돌아갔다.

아무래도 쓸데없이 혼자서 달려가지는 않았지만, 누구나 노부나가의 갑작스런 행동에 겨우 따라가는 것이 고작이었다.


노부나가의 습격(襲来)으로부터 며칠이 지났지만, 그 후 그로부터의 접촉은 없었고, 또 싸움 준비를 하는 것도 아니라, 비교적 평온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카네츠구는 인질이라는 취급이었지만, 케이지는 신경쓰지 않고 그를 데리고 나가서 마을에서 놀며 돌아다녔다. 한가로운 분위기에 기분도 느슨해져, 시즈코도 오랜만에 농사일에 매진하고 있었다.

카카오 나무는 성목(成木)이 되었고, 커피 나무도 70cm 정도까지 성장하였으며, 후추는 순조롭게 포기 수를 늘려서 양산에 기세가 붙었다. 라이치나 망고스틴 등의 남국(南国) 계열 과수(果樹)의 생육도 순조로웠다.

육성 환경이 최적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순조로운 성장을 하고 있는 이유는, 비옥한 토양과 기후 조건 등으로 적당한 스트레스가 걸리는 환경에 있는 것이 식물의 생존 본능을 자극하여, 빠르게 성장하여 자손을 남기려고 하고 있는게 아닐가 하고 시즈코는 추측하고 있었다.


자신이 오다 가문의 중신(重臣)이 된 것 때문에 농사일에만 관여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어서, 각 작물마다 담당자를 배정하고 실제 작업에서는 손을 떼고 있었다.

고생하여 들여온 작물에 관여하지 못하는 불만은 있었으나, 생육이 순조로운 것을 시즈코는 기뻐했다.


"슬슬 바나나의 3배체(倍体)에도 도전해 볼까. 아마도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2배체와 4배체를 조합하면 만들 수 있다고 생각되는데. 역시 바나나는 씨없는 바나나여야지"


자연환경에서 우발적으로 바나나의 3배체가 발생하는 이유는 현대에서도 알려지지 않았으나, 시즈코는 씨없는 수박 등과 마찬가지로 2배체와 4배체의 교배에 의해 3배체 바나나가 발생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인위적으로 3배체를 안정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약제인 콜히친은, 로마 제국 시대에서 통풍(痛風)용의 약으로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다만 부작용도 강하기 때문에, 현대에서는 통풍에 콜히친이 처방되는 경우는 드물다.


"뭐, 뭐든지 시험해봐야 하니까, 4배체 바나나 만듥기 도전부터 시작했지만…… 3배체가 나오려면 몇 년은 걸리겠지"


현대의 씨없는 수박을 만드는 방법과 마찬가지로, 바나나의 싹에 아마도 추출할 수 있었을 콜히친 추출액을 처리햇다.

다만, 이게 성공했는지, 애초에 콜히친이 정상적으로 추출되었는지조차 알지 못한다.

콜히친의 추출 자체는 수입한 콜키쿰(イヌサフラン, Colchicum autumnale, autumn crocus)의 종자(種子)나 인경(鱗茎)을 에탄올로 열처리하면 추출할 수 있을 것이지만, 재결정화하려면 초산(酢酸) 에틸이 필요해지기 때문에 눈대중으로 판단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추출할 수 있었을 것이라 믿고 처리를 하고, 결과는 하늘에 맡긴다는 방식이다.

애초에 4배체가 얻어질 확률 자체가 많아봤자 10퍼센트 정도이므로, 씨없는 바나나를 먹을 수 있게 되려면 아직 먼 것 같았다.


"으ー음, 걱정없이 밭일에 전념할 수 있는 건 즐겁네"


비닐하우스(엄밀히는 비닐이 사용되지 않음)에서 나오자 시즈코는 기세좋게 기지개를 켰다.

오늘은 날씨도 좋으니, 일을 끝내면 툇마루(縁側)에서 더위를 식히면서 수박이라도 먹자, 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 때, 문득 어떤 생각을 떠올렸다.


"아, 맞다. 슬슬 다들 자리가 잡혔을 무렵이니, 집들이(新築祝い)라도 할까"


그 후에 시즈코는 이 발언을 후회하게 된다.




시즈코가 집들이 연회를 연다. 그 정보는 순식간에 노부나가나 노부타다(信忠, 키묘마루(奇妙丸))의 귀에도 들어갔다.

때를 같이하여, 오다 가문 후다이(譜代)의 가신들에게도, 조금 늦게 도쿠가와(徳川) 가문과 주요 가신들에게도 정보가 흘러갔다.

시즈코로서는 한식구끼리 조촐한 연회를 생각하고 있었으나, 그녀의 예상을 뒤엎고 사방천지에서 집들이 축하 선물(新築祝い)이 산더미처럼 도착했다.

급히 참가자 명부를 작성한 쇼우(蕭)가, 씨족(氏族) 별로 정리된 명부를 시즈코에게 건넸는데, 시즈코는 건네받은 명부의 두께를 보고 농담이라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저기ー, 어째서 이렇게 많이 축하 선물을 받은걸까? 그보다 나, 집들이 이야기는 주상 외에는 알리지 않았는데?"


"그건…… 시즈코 님이시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의미를 모르겠어 쇼우 짱. 어쨌든 식재료도 집기(什器)도 부족할테니 잔뜩 사들여와. 이걸 보여주면 돈은 아야 짱이 준비해 줄 테니까"


"옛! 그럼, 사야 할 것들 목록을 준비할테니, 저는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응, 잘 부탁해"


기운좋게 인사를 한 후 쇼우는 방을 나갔다. 그녀가 나가고 시즈코는 다시 한 번 명부를 읽어보았다.

위로는 노부나가나 이에야스(家康)에서 시작하여, 아래로는 정말 어디의 누구냐고 묻고싶어지는 사람들까지 참가자 숫자는 부풀어올라 있었다.

어디서 정보가 샌 걸까, 라고 조금 경계심을 품은 시즈코는 케이지를 불렀다.


"그야 시즛치지. 지금은 나는 새를 떨어뜨릴 기세인 시즛치의 동향. 누구라도 그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하고 있다고. 저택은 눈에 띄니까 감출 방법이 없어"


불려온 이유를 알게 된 케이지는, 반쯤 어이없어하면서도 대답했다.

좋든 나쁘든 시즈코는 감시받고 있다. 당사자가 평상시에는 둔감하기 때문에 깨닫지 못하고 있으나, 그녀가 눈에 보이는 형태로 뭔가를 하면, 적어도 오다 영토 내에서는 전원에게 훤히 알려진다.

다른 영토인 도쿠가와 가문에까지 전해진 것은,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흘린 것이리라.


"으ー음, 그냥 좀 신경쓴 식사회가 될 예정이었는데, 엄청 큰 일이 되어버렸네"


"포기할 수밖에 없어. 무토(武藤) 아저씨도 말했지만, 시즛치에게 줄을 대보려는 놈들은 이런 기회를 노리고 있지. 노골적으로 다가오는 패거리는 조심해야돼"


"작작 좀 했으면 좋겠어요. 권력은 필요하지만, 지나친 권력투쟁은 나라 안을 너덜더덜하게 만들 뿐이라고요"


"그러네. 하지만 시즛치는 여기저기 투자하고 있잖아? 그게 남들이 보기에는 사정이 좋은 것처럼 보이는거야. 돈과 권력, 사람이 길을 잘못 들기에는 충분하지"


"돈도 권력도, 결국 뭔가를 이루기 위한 도구에 불과한데 말이에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녀석들 쪽이 이 세상엔 많은 거야"


시즈코의 말에 케이지는 어깨를 으쓱했다.


"뭐, 이 정도라면 문제없겠지. 주의하는 건 좋지만, 지나치게 신경쓰는 것도 좋지 않아"


"그럴게요. 미안해요, 오래 붙잡아둬서"


"신경쓰지 마. 요로쿠의 상대를 하는 건 재밌거든. 문제가 있다고 하면, 요로쿠가 인질이라는 입장을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는 점일까?"


켄신이 노부나가에게 항복한다는 소식이 전해진 이래, 노부나가는 몇 번인가 켄신과 연락을 했다. 그 때 교환된 문서에 의해, 카네츠구는 정식으로 오다 가문에게 맡겨진 몸이 되어, 켄신이 노부나가가 있는 곳으로 올 때까지의 기간 동안 사실상의 인질로서 취급되게 된다.

이 정도의 중대 안건에 인질이 근시(近習) 한 명이냐고 노부나가는 의심하기도 했지만, 만약 켄신이 약정을 어기면 어린애 한 명에게 책임을 씌워 내버렸다고 선전할 수 있겠다고도 생각하여 카네츠구의 신병을 인수했다.

그리고 지금도 카네츠구는 케이지 감시 하에 시즈코 저택에서 묵고 있었다.

하지만, 감시가 붙어있다고는 해도 행동이 제한되는 경우 같은 건 거의 없고, 때때로 둘이서 함께 거리로 나가서는 밤늦게 돌아온다는 경우도 흔했다.


"그건 케이지 씨에게도 문제가 있는 거 아니에요?"


"실례네. 제대로 감시는 하고 있어"


"감시라는 명목 하에 데리고 놀러다니는 걸로밖에 안 보이는데요"


점심때쯤 일어났다고 생각했더니 카네츠구를 데리고 어딘가로 놀러가고, 돌아와서는 배불리 밥을 먹고 잔다.

케이지는 방심을 유도하여 본성을 보고 있다, 고 하지만 아무리 봐도 놀고 있는 걸로밖엔 보이지 않았다.

카네츠구도 예의가 필요한 장소에서는 무가(武家)다운 태도를 취했다.

그러나 케이지와 어지간히 상성이 좋은지, 둘이 함께 있으면 즉시 정신이 느슨해진다. 얼핏 보기에는 얼빠져 보이지만, 이런저런 입장을 다 배제하고 나이에 맞는 소년다움이 드러난다, 라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뭐, 건강하게 지내고 있으면 된 건가. 좀 있으면 우에스기가 주상께 인사드리러 올 테니, 그 때까지라고 생각하면 눈감아줄 수 있기도 하고요"


"그런 거지. 그럼, 난 이만 실례하겠어"


말이 끝나자마자 케이지는 방을 나갔다. 스킵(skip, ※역주: 한 발씩 번갈아서 껑충껑충 뛰는 것)이라도 할 것 같을 정도로 즐거운 분위기라고 느꼈기에, 또 거리에라도 놀러갈건가 하고 시즈코는 헤아렸다.


"그럼…… 우에스기는 언제쯤 오려나. 뭐, 그건 주상께서 생각하고 계실테니 신경쓸 필요는 없으려나. 나는 집들이 참가자 처리를 하자"


그렇게 말하며 시즈코는 책상 쪽으로 몸을 돌렸다.




시즈코가 집들이 준비에 정신이 없을 무렵, 노부나가는 혼간지(本願寺)와의 강화(和睦)에 관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켄신의 항복이 어지간히 충격이었는지, 혼간지는 다급하게 노부나가에게 강화를 타진해왔다.

아사쿠라(朝倉)나 아자이(浅井)도 충격을 받았지만, 노부나가에게 그들은 이미 의식할 정도의 상대는 아니었다.

노부나가는 혼간지와의 강화 조건으로, 반드시 통화발행권(通貨発行権)을 인정하게 할 생각이었다.


다행히 통화발행권의 중요성을 혼간지는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그것은 통화발행권을 손에 쥐려는 노림수를 이해하고 있지 못했던 것도 있지만, 노부나가가 그 밖에 도저히 허용할 수 없는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한 것이 원인이었다.

노부나가가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혼간지에 제시한 것은 이유가 있다. 소위 말하는 '부풀리기(ふっかけ)'이다.

도어 인 더 페이스 테크닉(door in the face technique)이라고 불리는, 요구의 낙차(落差)를 이용한 교섭술이다. 일본에서는 양보적 요청법(譲歩的要請法)이라고 불린다.

이것은 처음에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한다. 당연히, 상대는 받아들이지 않고 거절한다.

거기서 서서히 요구를 낮추어, 최종적으로 자신이 원한 요구를, 마치 그만큼 양보했다고 생각하게 하여 상대에게 요구를 받아들이게 하는 교섭술이다.

이것은 '은혜는 은혜로 갚는다'라던가 '호의를 보인 상대에게는 호의로 보답한다' 등, 베품(施し)이나 호의를 받았을 경우 뭔가 답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반보성(返報性)의 원리'라고 불리는 심리 법칙을 이용하고 있다.


그런 교섭술을 쓰는 이유는 명백하다. 노부나가는 이제부터 '양보했다'는 시늉을 대외적으로 보이면서 자신이 바라는 요구만을 확실하게 통과시킬 생각이었다.

혼간지는 뭔가 생트집을 잡아서라도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교섭해올 것이다, 라고 노부나가는 생각하고 있었다. 사실, 혼간지 측으로부터는 우는 소리에 가까운 탄원서가 도착했다.


"큭큭큭, 어리석은 놈들"


노부나가는 싱글벙글 웃으며 미리 준비해둔 '2번째'의 강화 조건이 쓰인 서신을 혼간지에 보냈다. 당연히, 그것도 혼간지가 거부할 것은 예상한 바였다.

설령 조건이 받아들여졌다 해도 노부나가에게는 본래의 조건에 덤으로 붙어오는 것이다. 거절당하면 세 통 째의 강화 조건을 보낼 뿐이다. 어느 쪽으로 결과가 나오던 노부나가에게 손해는 없었다.


"곧 비명을 지르겠지. 다른 곳에서 압력이나 항의(苦情)가 들어오면 대답을 늦춰라. 금방 참지 못하고 행동을 일으킬 것이다"


교섭이 난항을 겪어 싸움을 걸어온다면 좋은 일이었다.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노부나가는 두 번이나 양보해보인 것이다.

교섭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싸움을 걸어온다면 혼간지에게 대의(大義)는 없다. 도량을 보인 노부나가와, 자기본위에 도량이 좁은 혼간지. 사람들이 어느 쪽을 지지할지는 명백했다.

당황해서 강화를 신청한 시점에서 혼간지에 승산은 없었다. 노부나가는, 언제 켄뇨(顕如) 등이 강화를 받아들일지, 아니면 자포자기(破れかぶれ)하여 싸움을 걸어올지 남몰래 즐기기까지 하고 있었다.


그런 속이 시커먼 외교와는 인연이 없는 케이지는, 오늘도 카네츠구를 데리고 오와리(尾張)를 여기저기 산책하고 있었다.

카네츠구는 인질의 신분이지만, 감시역인 케이지는 전혀 신경조차 쓰고있지 않았다. 카네츠구를 데리고 온종일 놀러다니고 있었다.


"음…… 소문으로 들은 것처럼, 민초(民草)들의 표정이 밝군. 병자나 말라비틀어진 노인 따윈 어디에도 없어. 어린애들(童子)조차 기운차게 뛰어놀고 있군"


"지금은 이렇지만, 10년 전만 해도 말도 아니었어. 오다 나으리는 이 주변 일대를 갈아엎어버리고 상행위 자리를 만들까, 라고 생각하고 있었을 정도니까"


비옥한 대지가 많은 오와리이지만, 물론 모든 땅이 비옥했던 것은 아니다. 개중에는 말라비틀어진 땅에 사는 사람들도 있었다.


"지금부터 가는 곳은, 시즛치가 처음으로 손을 댄 마을에 살던 녀석들이 있는 곳이야.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거 기대되는군"


그런 대화를 나누며 두 사람은 시즈코가 처음으로 맡았던 마을로 들어갔다.

먼저 카네츠구의 눈에 들어온 것은 괴이한 광경이라는 한 마디로 설명되었다.

늘어서 있는 비닐하우스, 물방앗간(水車小屋)과 연결된 수직농장(垂直農場) 용의 설비 등, 그의 뇌리에 있던 전원풍경과는 전혀 다른 경관이었다.


"이 무슨…… 뭐지 이건?"


카네츠구는 눈 앞의 광경에 혼란스러워져 멍하니 멈춰서 있다가, 비틀거리며 다가갔다.


"인마! 누구야, 밭을 어지럽히는 녀석은!"


옆쪽에서 날아온 노성(怒声)에 카네츠구는 그제서야 제정신이 들었다. 무의식중에 상당한 거리를 걸었던 듯, 그의 발은 밭의 안쪽까지 들어와 있었다.

케이지는 누군가를 찾고 있었던 건지, 카네츠구로부터 시선을 떼고 있었기에 그도 카네츠구가 밭에 걸어들어간 것을 깨닫지 못했다.


"누구야 너희들…… 아니, 케이지 님 아니십니까! 아, 너는 빨리 밭에서 나와!"


간신히 케이지도 현재 상황을 이해했다. 아직 혼란스러워하고 있는 카네츠구를 붙잡아 밭에서 끌어낸 후, 화가 머리 끝까지 나 있는 남성에게 고개를 숙였다.


"미안, 내가 눈을 뗀 바람에 밭을 어지럽혀 버렸네"


"아, 아니아니, 그렇게까지 심하진 않으니 괜찮습니다. 그래서, 이쪽의 어린애는 누굽니까?"


"아ー 시즛치의 손님, 일까?"


인질이라고 하면 듣기에 나쁘다고 생각하여, 케이지는 카네츠구의 정체를 얼버무렸다. 남성도 그렇게까지 카네츠구에게 흥미는 없었는지, 케이지의 말을 듣고 납득한 표정을 떠올렸다.


"미안합니다. 본 적도 없는 광경이었기에, 넋이 나가버려 논밭을 어지럽혀버렸소. 이렇게 사과드립니다"


"아니, 이쪽이야말로 고함쳐서 미안했어. 아, 나는 타고사쿠(田吾作)라고 해. 촌장…… 시즈코 님의 손님이라면, 우리들에게도 손님이야. 아무 것도 없는 곳이지만, 천천히 있다 가라고"


"요로쿠라고 합니다. 그렇진 않습니다. 이쪽에서 보면 하나같이 새로운 것을 뿐이군요"


아까와는 정반대로 타고사쿠는 우호적인 태도가 되었다. 시즈코의 이름을 꺼낸 것만으로도 이렇게 바뀌는 건가, 라고 카네츠구는 새삼 시즈코가 백성들에게 얼마나 사랑받고 있는지 이해했다.


"그건 그렇고, 여전히 수수께끼의 것들이 많구만"


"헤헷, 여긴 시즈코 님이 바쁘셔서 못 하시는 일을 이것저것 맡고 있으니까요. 덕분에 다른 마을에서 온 녀석들은 거의 다 쩔쩔매고 있지요"


"괜찮다면, 구체적으로 뭘 하고 있는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카네츠구의 말에 타고사쿠는 기다렸습니다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을 떠올렸다. 옆에서 케이지가 쓴웃음을 떠올리고 있는 것도 깨닫지 못하고, 카네츠구는 타고사쿠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어, 잠깐 기다려줍쇼…… 있다, 이거군. 우선 이걸 시험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원래 왔던 길을 되돌아간 타고사쿠였으나, 금방 뭔가를 손에 들고 돌아왔다. 카네츠구는 타고사쿠가 들고 있는 것을 지긋이 바라보았지만, 그게 뭔지 알 수 없었다.

왜냐하면 얼핏 보기에는 투명한 상자에 초목(草木)이 떠 있는 걸로밖에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건 수경재배(水耕栽培)라고 하는 새로운 농법이거든요. 시즈코 님은 이 녀석의 연구를 하고 싶으신 것 같지만, 도저히 시간이 나지 않아서 우리가 수경재배의 연구를 맡은 겁니다. 관리가 어렵고, 저는 배운 게 없으니 흙도 없는데 어째서 자라는지 모르지만 말이죠"


수경재배란 종래의 흙에서 재배하는 농법과 달리, 물에 담궈서 재배하는 농법이다. 통상적으로는 무기(無機) 비료(肥料)를 사용하지만, 현대에서는 유기(有機) 액체비료(液肥) 등 유기 비료를 사용한 재배도 이루어지고 있다.


"……확실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전혀 짐작도 안 가는군요"


"그렇지! 뭔지 모르겠지만 자라거든! 정말, 시즈코 님은 머리부터 우리와는 다르다고!"


수경재배에도 놀랐지만, 카네츠구가 가장 놀란 것은 시즈코가 생각한 것을 마치 자신이 칭찬받은 듯 기뻐하는 타고사쿠였다.


"타고사쿠 님은, 시즈코 님을 경애하고 계시군요"


"헤헷, 뭐 지금에야 다들 마찬가지지만, 처음에는 반발이 심했거든. 왜냐하면 갑자기 여자, 그것도 우리보다 나이가 어린 여자애가 촌장이 되었으니까. 아무리 오다 님의 명령이라도 그건 좀…… 이라고 생각하는 녀석이 잔뜩 있었지"


"촌장……? 혹시 시즈코 님은 예전에 이곳의 촌장을 맡으셨던 겁니까?"


"어! 우리 마을은 세금으로 바칠 수확(年貢)의 양이 나빠서 말야. 그 때, 마을을 없애지 않는 대신, 시즈코 님이 파견되었다는 이야기야. 그로부터 몇 년 동안, 순식간에 굶어죽어가던 마을이 부활했다고. 저기 다른 애들보다 나이가 많은(年嵩) 애가 있지? 저 녀석, 예전에는 빼빼 마른 굶주린 꼬맹이였는데, 지금은 배터지게 밥을 먹고 크게 자랐어. 저 녀석 엄마가 밥을 준비하는게 큰일이라고 투덜거릴 정도의 대식가라고"


타고사쿠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방향으로 카네츠구는 얼굴을 돌렸다.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에는 몇 명의 아이들이 놀고 있었다. 다들 혈색이 좋은 피부를 하고 있었다. 타고사쿠가 가리킨 인물은, 그 중에서도 한층 키도 크고 폭도 넓었다.


"어때, 시즛치가 목표로 하는 세상이 조금은 보였어?"


지금까지 조용히 있던 케이지가, 아이들이 노는 광경에 못박혀있는 카네츠구에게 질문했다. 아이들을 홀린 듯 보고 있던 카네츠구가, 케이지의 말에 정신을 차렸다.


"충분해. 하지만, 이래서는 무사(いくさ人)는 필요없어지겠군. 슬픈 이야기지만, 이런 세상에 싸움만을 업으로 하는 자들은 소용없을테니까 말야"


그렇게 말하는 카네츠구는, 말과는 달리 밝은 미소를 떠올리고 있었다.




5월 중순, 노부나가와 혼간지 사이에 강화가 성립했다. 노부나가가 가장 원했던 통화발행권을 그는 보기좋게 획득했다.

그 밖에도 노부나가를 찾아오는 자들에 대해 편의를 제공할 것, 토지의 소유자 정리에 협력할 것, 경제 발전을 목표로 한 도로 정비 등의 인프라 사업에 자금을 출자할 것 등, 그 밖에도 세세한 내용이 정해졌다.

주위에서 보면 노부나가가 토지를 얻은 것도 아니고, 또 배상금을 얻은 것도 아니다. 꽤나 온당한 강화로 보였으나, 혼간지 자체는 노부나가를 경계하는 자세를 보였다.

하지만, 이미 목표를 달성한 노부나가는 신경쓰지 않고 가신들에게 통화의 개발을 서두르도록 명했다.


"교통편이 좋아지면 반드시 경제는 발전한다. 자금은 혼간지가 낼테니, 신경쓰지 말고 많은 사람을 고용해라. 특히 생활이 곤란한 자들에게 우선적으로 일을 주어라"


그와 함께 노부나가는 도로 정비도 가신들에게 명했다. 어찌되었던 도로 정비가 가장 먼저이고 가장 중요하다. 길 없이 사람은 움직이지 않고, 사람이 움직이지 않으면 물건은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물류를 촉진시켜 경제를 활성화시키려면 쿄(京) 주변에만 길이 정비되어 있어서는 부족하다. 일본 각지, 벽지(僻地)에까지도 노부나가는 모든 장소에 길을 낼 생각이었다.

물론, 도로에 관해서는 운용부터 관문(関所)까지 여러 가지 법이 정해져 있었다. 이러한 법들에 대해서는 혼간지도 준수하도록 약속하게 했다.


"토지는 전부 조사(検地)하라. 방해하는 자는 무력으로 침묵시켜도 좋다. 토지의 소유주는 자발적(差出方式)으로 결정하라"


토지의 소유자를 확정시키기 위해, 도로 정리와 함께 가신들에게 명했다. 이것은 두 가지 목적이 있었다. 하나는 토지의 소유자를 명확하게 하여, 지배 체제를 정리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종교 세력(寺社勢力)이나 공가(公家)가 가진 장원(荘園)을 포함하여, 대체 어디에 얼마만한 토지가 있는 정확한 수치를 손에 넣는 것이다.

영토 내부를 일괄 관리하기 위해서는 정확한 수치가 필요 불가결하다. 데이터를 바탕으로 징세(徴税)를 하면 혼란은 적어지고 지역간에 차이가 나는 것에 의한 항쟁도 사라지게 된다.


"알겠느냐, 절대 소홀히 하지 마라. 측량(検地)을 얼버무린 자는 지위를 막론하고 참수(打ち首)할 것이다"


그 한 마디에 가신들의 얼굴이 새파래졌다. 노부나가는 규율을 깨뜨린 자를 지위를 막론하고 참수한 과거가 있다. 따라서 조사를 대충 얼버무렸다간 기다리고 있는 것은 가문 폐쇄(お家取り潰し)에 가까운 징벌이다.

그것을 이해한 가신들은, 노부나가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것을 두려워하여 절대 소홀히하지 않고 맡은 일을 수행해나갔다.


한편, 노부나가와 혼간지가 강화한 것에 의해 켄신은 카가(加賀)나 엣츄(越中)의 일향종(一向宗)과 간접적인 강화를 하게 되었다. 물론, 조부(祖父)의 대부터 싸워온 사이이므로 강화라고는 해도 순순히 풀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혼간지가 강화한 것과, 강화 조건에 '노부나가를 찾아오는 자에게 편의를 제공한다'라는 것이 있었다.

그리고 이 조건을 지키지 않은 자는 오다 측에서 어떻게 처분하던지 혼간지는 간섭하지 않는다, 는 조건도.


"뭔가 이상한 기분이군. 쿄에서 손을 잡았던 사람들이 나란히 오다 님이 있는 곳으로 가다니"


켄신은 정예병 5000을 이끌고 카스가 산성(春日山城)을 나섰다. 아무리 노부나가와 혼간지 사이에 약속이 되었다고 해도, 켄신은 그것을 완전히 믿을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군 중에는 나오에 카게츠나(直江景綱)나 카와다 나가치카(河田長親) 등, 켄신의 측근들이 여럿 있었다.

그리고 혼죠 사네요리(本庄実乃) 등에게 그가 자리를 비운 동안 에치고(越後)를 맡겼다.


"……내 몸은 오다 가문에 있으며, 오래 전부터 이미 쇼군(将軍)이 아니다. 이번은 예외 중의 예외이다"


"핫핫핫, 그렇겠지. 지금은…… 어이쿠, 아직 아무 말도 안 했네만? 그렇게 무서운 얼굴을 하지 말아주게"


아시미츠(足満)는 켄신에 대해 마지못해 대꾸를 했다. 그게 재미있었는지 사키히사(前久)가 아시미츠를 놀렸다.

말하는 도중에 아시미츠가 사키히사를 노려보았기에, 사미히사는 마지막까지 말하지는 않았지만 입가에는 웃음을 떠올리고 있었다.

명백히 재미있어하는 모습이라고 이해한 아시미츠는, 지긋지긋하다는 듯 혀를 찼다.


"너무 신경을 곤두세우지 말게. 이제 곧 만날 수 있을테니"


"……네놈, 무슨 말이 하고 싶은거냐"


"으음? 말해도 좋은가?"


어깨를 으쓱하는 사키히사에게 무슨 말을 해도 소용없다는 것을 이해한 아시미츠는 혀를 찬 후 말의 걸음을 빠르게 했다.


"핫핫, 너무 놀린 모양이군. 기다리게 친구여. 아무 의미도 없이 놀린 게 아닐세. 자네는 짜증스러…… 어흠, 지나치게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네. 좀 더 웃는 게 어떤가"


"쓸데없는 참견이다. 내가 복잡한 표정을 짓던 말던 네놈에겐 관계없지 않느냐"


"친구로부터의 조언일세. 조금은 들어줘도 좋지 않은가?"


"고려할 가치도 없다"


아시미츠와 사키히사의 투닥거림을 켄신은 눈부신 듯 바라보았다. 부럽다고까지 생각했다. 두 사람은 별 뜻 없이 대화를 하고 있지만, 겉치레(建前)를 배제한 채 본심으로 대화할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것이 얻기 힘든 기적인 것처럼 생각되었다.

에치고는 다른 지역에 비해 무사가 토지에 집착하는 경향이 강하고, 그 때문에 내란이나 가신들끼리의 대립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초기의 우에스기 가문에서는 지역별로 파벌이 생길 정도였다.

초기의 켄신의 측근인 오오쿠마 토모히데(大熊朝秀)가 행방을 감추고(出奔), 후에 타케다 가문에 들어간 것도 에치고의 특수한 환경에 정나미가 떨어졌다, 또는 파벌투쟁의 영향으로 쫓겨났다고도 한다.

그런 환경이었기에, 켄신에게는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친구가 없었다. 친구 같은 건 바랄 수 없는 입장이라고는 해도, 이렇게 눈 앞에서 보니 부럽다는 마음이 샘솟았다.


"친구란 좋은 것이다. 거리낌없이 말을 주고받고, 곤란한 길을 걸으려 하면 아무 것도 묻지 않고 곁에 있어주는군"


"영주님(御実城様)"


"미안하다. 단지 내게 없는 것을 부러워한 것 뿐이다"


그 말만 하고 켄신은 말의 걸음을 빠르게 했다. 말을 건 카게츠나는 켄신의 마음 속까지는 헤아리지 못했지만, 그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는 헤아렸다.

하지만, 그 말을 카게츠나는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말하면 켄신의 수고가 물거품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아무리 혼간지에서 독립 경향이 강한 카가나 엣츄의 일향종이라도, 아무래도 켄신의 정예병과 타케다를 쳐부순 오다 군을 동시에 상대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고, 길에 요여(神輿)를 놓는 등 약간의 방해공작을 하면서 본격적인 대치는 피했다.

요여란 단적으로 말하면 신이 계시는 가마(輿)이다. 그렇기에, 요여는 신의 영역으로 생각되고 있었다.


"가져다 버려라"


하지만, 방해공작이라고 해도 아시미츠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었고, 반대로 아시미츠의, 어떤 의미에서는 냉혹하다고도 할 수 있는 현실주의(realism)에 대해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을 뿐이다.

그는 길에 놓인 요여를 쓰레기로 단정하고, 부근의 절벽에서 던져버렸다. 중량이 있는 요여가 낙하의 충격으로 여기저기 박살이 났다.

무참한 모습이 된 요여를 일별조차 하지 않고 아시미츠는 행군을 재개했다. 신벌(神罰)을 두려워하여 가까이 가려 하지 않는 켄신의 병사들과는 정반대의 태도였다.


"무섭군. 그는 신벌을 두려워하지 않은 것인가"


역전의 맹장(猛者)인 카케츠나조차 신벌에 대해서는 두려워한다. 오히려 카게츠나의 태도야말로 전국시대의 무사로서는 보통이었다. 아시미츠처럼 요여를 태연하게 던져버리는 짓이 가능한 쪽이 이단(異端)이었다.


"그에게는 신도 부처도 두려움의 대상은 아니겠지요. 제게는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만. 뭐, 녀석의 생각 따윈 누구도 이해할 수는 없겠죠"


"저런 자를 데리고 있으면서 오다 님은 불안해지지 않는 것입니까"


"아무래도 처음에는 놀랐겠죠. 하지만, 때로는 그와 같은 인물조차 부릴 필요가 있다, 고 오다 님은 생각하고 계시겠죠. 때때로 그에게 임무를 명하고 있습니다. 저 정도로서는 오다 님이 무엇을 목적으로 임무를 맡기고 있는지 헤아릴 수 없습니다만"


말과는 반대로 사키히사가 가벼운 말투로 카게츠나의 의문에 대답했다.

아시미츠는 신불(神仏)에 대한 경의도, 우려움도, 아무런 특별한 감정을 가지지 않는다. 사키히사에게 알 수 있었던 것은, 지금의 아시미츠는 예전에 쇼군(将軍) 시절의 그와는 다르다는 것 뿐이었다.

지금의 아시미츠는 도덕도 윤리도 양심도 내다버린, 얼음처럼 차가운 현실주의자다. 그래도 뿌리 부분이 변하지는 않았기에, 사키히사는 변함없이 아시미츠와 우정을 나누고 있었다.


"고노에 님도 신벌을 두려워하지 않으시는 겁니까"


"한 번은 끊어졌던 인연이 다시 이어졌지요. 이것도 신불의 배려. 그렇다면 이번에는 마지막까지 손득(損得)을 배제하고 우정을 나누는 것이 친구라는 것입니다"


"신벌보다 친구와의 인연을 소중히 하고 계시는 겁니까"


"스스로 원하여 신벌에 말려들려는 것 따위, 세상에서는 어리석음의 극치라고 웃음거리가 되겠지요. 하지만, 이 인연도 그 신불이 내려주신 것. 이것을 소중히 하는 것은 그렇게 우스운 것일까요. 아니, 확실히 우습겠군요"


카게츠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표면상으로는 사이가 나빠 보여도, 사키히사와 아시미츠는 깊은 부분에서 이어져 있었다. 그곳에 손득이나 세상의 소문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단지, 친구를 위해 움직인다. 심플하고, 그리고 전국시대에서는 이단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아니오, 소생은 부럽다고 생각합니다. 친구란 그렇게 고마운 것, 이라고 새삼 생각했습니다"


지금까지의 복잡한 표정이 사라지고, 카게츠나는 사람좋은 밝은 미소를 떠올리며 말했다.




노부나가와 화평을 맺은 혼간지는, 병행하여 정보수집을 하고 있었다. 어째서 타케다(武田) 군은 하룻밤만에 패배했는가, 그 원인을 알지 못하면 노부나가에 대한 대응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수 개월에 걸쳐 알아낸 내용, 그것은 켄뇨(顕如)나 라이렌(頼廉)을 놀라게 하는 내용이었다.


"그럼 오다는, 처음부터 타케다와의 싸움을 생각하여 행동했다는 것인가?"


켄뇨들을 놀라게 한 내용, 그것은 노부나가가 오다 포위망을 공략할 때, 끌려나온 타케다를 쳐부술 것을 전제로 움직였다는 사실이다.

오다 포위망에는 강력한 군이 필요하며, 그리고 그것은 켄신보다 타케다가 맡을 가능성이 높다, 고 노부나가는 예측했다. 그리고 그의 예상대로, 타케다는 카이(甲斐)에서 출진하여, 미카타가하라(三方ヶ原) 전투에서 패배를 맛본다.

타케다가 오다 포위망에 참가한 것도, 그 후의 혼간지나 다른 세력이 한 일도, 처음부터 노부나가가 그렇게 되도록 꾸몄다, 라는 것이 된다.

요약하면, 반 오다 연합은 노부나가의 손바닥 위에서 춤춘 것에 불과하다.


"그럼 강화 내용에도 놈이 뭔가 수작을 부렸다고 생각해야 하는 게 아니오!?"


"기다리시오. 그건 우리도 생각했소. 하지만, 놈은 토지를 요구하거나 우리들에게 퇴거를 요구하거나 하진 않았소. 게다가, 그 이상 버텼다간 오다에게는 우리들에게 강화의 의사가 없다고 보였을것이오"


"우리들에겐 모우리(毛利)의 지원이 있소. 우리들은 농성하며 오직 버티기만 하면 되오. 돈도 쌀도 무진장(無尽蔵)으로 있지. 그 동안 놈들의 자금줄을 포위하면 자동으로 국력을 잃게 될 것이오"


"외람되지만"


간자들의 보고로 당황하는 켄뇨의 측근들이, 라이렌(頼廉)이 말을 꺼내자 뚝 하고 대화를 멈추었다.


"오다의 경제를 봉쇄하는 것보다, 타케다를 쳐부순 오다의 주력인 '고노에 시즈코(近衛静子)'의 대책을 생각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일리가 있지만…… 어차피, 여자 아니오? 뭘 어떻게 할…… 아니, 실례했소"


라이렌의 말에 한 명의 승려가 반론했다. 그러나 라이렌이 노려보자, 그는 다급히 의견을 집어삼켰다. 라이렌은 켄뇨의 측근들을 한 번 둘러본 후 말을 이었다.


"여러분, 여자 상대라고 생각하고 계시는데, 우리들은 그 여자의 계책에 패했습니다. 이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 여기서 변명을 늘어놓아봐야, 우리들의 입장은 전혀 변하지 않습니다. 아니면 얕본 채로 또다시 발목을 잡혀, 손을 쓸 방법도 없을 정도로 패배하는 미래를 바라십니까?"


라이렌의 말에 켄뇨까지 입을 다물었다.

실은 켄뇨로서도 그래봤자 여자라고 약간 얕보고 있었다. 하지만, 군사 지휘관인 동시에 뛰어난 정치가인 라이렌은 시즈코를 얕보지 않았다.

그는 시즈코가 여자이기에 이 정도로 치고 올라올 때까지 누구나 놓치고 있었다는 것을 헤아렸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그녀가 여자인 것 때문에 얕보는 인물이 있다. 그건 무서운 일이라고 라이렌은 깨달았다. 왜냐하면 무얼 해도, 어떤 공적을 세워도 얕보이는 것이다.

상대에게 얕보게 할 수 있으면 불리한 상황을 뒤엎을 수 있다. 그것을 자연스럽게 행할 수 있으니 시즈코의 입장이 대단히 부럽다고 라이렌은 생각할 정도였다.


"여자라고는 해도, 아니, 여자이기에 상대를 방심하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들은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시즈코의 술수에 걸려든 것입니다. 방심은 금물(油断大敵). 우리들은 놈을 여자가 아니라 오다와 어꺠를 나란히 하는 적으로 인식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들을 타케다와 같은 말로를 맞이하게 됩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오다에 대해서는 조사하고 있습니다만, 그 시즈코인지 하는 건 완전히 미지의 존재입니다"


"그것을 위한 강화. 시간을 들여서 차근차근 시즈코에 대해 조사하는 것입니다. 지금, 시즈코 본인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탁월한 지혜를 가진 것, 칼의 수집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 놈은 관리하는 토지에 사는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것, 그리고 놈이 이끌고 있는 군이 달리 유례를 찾아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헛기침을 하여 라이렌은 분위기를 바꾸었다. 그 자신도 여기까지 여자를 적수로 보는 것은 굴욕이기는 했다. 하지만, 그 분노 때문에 눈이 흐려지면 여자에게 어이없게 패한 나약한 놈, 이라고 후세에 웃음거리가 된다.

그렇다면 굴욕보다도 참고 승리를 얻어야 한다, 고 라이렌은 머릿속을 정리했다.


"놈의 군에는 8명의 측근이 있습니다. 모리 카츠조(森勝蔵), 카니 사이조(可児才蔵), 마에다 케이지(前田慶次), 아시미츠(足満), 토우도 요키치(藤堂与吉), 겐로(玄朗), 니스케(仁助), 시키치(四吉). 전원이 이색적인 출신을 가진 자들이오. 보통이라면 군으로서 기능하지 않는, 개성이 강한 자들을 통솔하고 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지휘능력은 뛰어나다고 봐도 좋습니다"


"확실히…… 특히 마에다 케이지는 우리들의 귀에도 들어올 정도의 카부키모노(傾奇者). 자신의 인생관(生き様)을 지키기 위해서는 누구에도 굴하지 않는 사내가, 어째서 얌전히 군에 있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군"


"그거야말로 놈의 강점. 하지만, 어떤 강자에게도 약점은 존재합니다. 그걸 알게 될 때까지는 견딜 수밖에 없습니다"


라이렌의 말에는 설득력이 있었다. 이대로 오다와 정면 충돌해도 승산은 없다. 또, 농성을 하려고 해도 오다 측에는 수수께끼의 발파통(発破筒)이 존재하기에, 성문이 의미를 가지지 못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한 손으로 악수하는 척을 하면서, 반대쪽 손으로 후려갈길 수 있는 시기까지 오로지 기다린다, 이것이 지금의 혼간지가 취할 수 있는 가장 유망한 선택지였다.


"지금의 우리들은 오다의 세력을 꺾을 약점을, 고노에 시즈코의 약점을 찾을 때까지 계속 견디는 것이 최선. 비웃는 자들에게는 마음대로 말하게 놔두면 됩니다. 우리들이 마지막에 이기면, 그런 비웃음은 사라지게 됩니다"


"그렇소! 시모츠마(下間) 형부경법교(刑部卿法橋) 님의 말대로이오!"


작전회의에 참가하고 있던 한 사람의 승려가 일어서며 흥분한 기색으로 외쳤다. 그 목소리에 다른 사람들도 동조하기 시작했다.


"그렇소, 마지막에 이기면 되는 것이오"


"오다에게는 마음대로 말하게 놔두면 되오. 짐승같은 무사에게 구름 위의 존재(雲上人)인 승려가 패할 리가 없소! 마지막에는 부처의 가호가 있는 우리들이 승리할 것이오!"


"당장 농성을 대비해 손을 쓰도록 하지요. 뭐, 돈도 쌀도 무진장으로 있소. 10년이고 20년이고 견뎌내 보이겠소"


지금까지의 침묵이 거짓말인 것처럼, 전원이 의기양양하게 목소리를 높였다. 사기 저하를 신경쓰고 있던 라이렌은 그들의 태도에 약간 안도했다.


하지만 라이렌도, 그리고 켄뇨도 깨닫지 못했다. 애초에 시즈코는 자신의 약점을 감추지 않고 일부러 드러내보이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 보이면서 그것이 약점이 되지 않도록 서로 보완하는 체제를 갖추고 있었다.

그것을 깨달았다면 대응은 또 바뀌었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은 결국 그것을 깨닫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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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

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겐키(元亀) 4년 무로마치 막부(室町幕府)의 종언(終焉)


103 1573년 4월 중순



노부나가와의 회담을 마친 시즈코는, 케이지(慶次) 들을 데리고 귀가길에 올랐다.

오와리(尾張)에 있는 시즈코 저택(静子邸)의 본전(本殿)에서 고용한 노예 네 명을 기다리게 하고 있었기에, 그녀는 급히 옷을 갈아입고 알현실로 걸음을 서둘렀다.


"갑작스럽지만, 네 사람은 각자 일을 맡아줘요. 코타로(虎太郎) 씨는 서적(書物)의 번역을, 야이치(弥一) 씨와 루리(瑠璃) 씨는 각자 금속 가공과 융단(絨毯) 제조법의 전수, 모미지(紅葉) 짱은 어떤 식물의 재배 기록을 관리해 주겠어?"


유럽 각국에서 쓰여진 서적을 일본어로 번역하려면 현대의 사전이 있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시즈코가 가져온 전자사전 종류는 현대어의 그것으로, 중, 근세의 문법이나 어법과는 다를 가능성이 있었다.

그렇다면, 당시의 번역가에게 일본어로 번역하게 하는 게 가장 빠르고 손쉽다.

언어학자이자, 모국에 있을 때부터 번역을 하던 코타로는, 라틴어는 물론이고 프랑스어나 스페인어, 그리스어까지 능통했다.

일본어를 유창하게 할 수 있는 것도 그러한 밑바탕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복수의 언어를 알고 있었기에 교회의 눈에 띄어, 이단 심문을 받게 된 것이지만.


"번역 자체는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뭔가 말씀하시고 싶은 게 있으신 것 같군요"


"보수라고 하긴 뭐하지만, 지동설(地動説)의 근거가 되는 정보를 주지요"


지동설이라는 단어를 듣고 코타로의 눈썹이 꿈틀했다.

당시의 주류는, 우주의 중심에 지구가 있고, 다른 천체는 지구의 주위를 자전하면서 공전하고 있다는 설, 즉 천동설(天動説)이었다.

이에 대해 우주의 중심은 태양이며, 지구나 그 외의 행성(惑星)은 태양 주위를 자전하면서 공전하고 있다고 외친 것이 지동설이다.

지동설로 유명한 것은 갈릴레오 갈릴레이(Galileo Galilei)이지만, 최초로 제창한 것은 고대 그리스의 천문학자 아리스타르코스(Aristarchus)라고도 한다.


기원전 2세기의 천문학자 아리스타르코스는 달의 차고 이지러짐, 달과 태양의 거리, 달과 태양의 크기에서 태양이 지구를 돌고 있다고 생각하기보다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돌고 있다는 쪽이 자연스럽다고 생각했다.

여담이지만 달과 태양의 거리에 관해, 아리스타르코스는 '달이 상현(上弦)이나 하현(下弦) 달일 때, 태양은 바로 옆에서 지구를 비추고 있다. 그리고 지구와 달은 일직선의 위치 관계에 있다. 그렇다면, 그 때의 달과 지구의 앙각(仰角)을 측정하면, 지구로부터 달, 또 지구로부터 태양까지의 거리를 삼각측량으로 측정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는 실제로 계측을 하여, 그 결과로부터 태양은 지구에서 볼 때 달의 19배(실제로는 약 390배) 멀리 있다고 생각했다.


다음으로 그는 월식(月食)으로부터 달의 크기를 계측했다. 월식은 달이 지구의 그림자에 숨기 때문에, 달에 비치는 지구의 그림자로부터 지구의 크기를 구할 수 있다고 생각햇다.

그리고 그것들을 계측하여, 지구의 직경은 달의 3배(실제로는 약 4배)라고 계측 결과를 정리했다.

이러한 데이터로부터 태양은 지구 따위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크다고 그는 결론짓기에 이르렀다.

가설을 세워 실증하고, 그 데이터에서 도출한 결론으로부터 아리스타르코스는 '지구보다 큰 태양이 지구의 주위를 돌고 있다고 생각하기보다,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돌고 있는 쪽이 자연스립다'라며 지동설을 발표했다.

물론, 중세와 마찬가지로 당시의 천문학의 권위자들로부터 '그런 바보같은 이야기가 어디 있나. 신에 대한 모독이다'라고 일축되고 격렬한 비난을 받았다.


그 후, 2천년 가까운 시간이 흘러 16세기의 중세 유럽, 카톨릭 사제인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Nicolaus Copernicus)가 아리스타르코스의 연구 결과에 착안하여, 오차나 결점을 독자적인 계산으로 보완하여 재계측한 결과, 지동설이 올바르다고 확신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당시의 상식인 천동설을 부정하는 것은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었기에, 그것을 두려워한 코페르니쿠스는 죽기 직전에 겨우 발표했다.


어째서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의 발표를 두려워하고,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이단 심문 자리에서 자신의 주장을 철회했는가.

그 이유는 성경에 '신은 대지를 움직이지 않게 했다'라는 한 줄이 있었던 것 뿐이었다.

즉, 천동설을 부정하는 것은 성경이 틀렸다고 규탄하는 것이 되고, 나아가서는 신을 부정한다는, 기독교 국가에서는 사활문제가 되는 위험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그 때문에 카톨릭 교회는 완강하게 지동설을 부정해왔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옹호하고 태양계 같은 천체는 우주에 무수히 있다고 제창했던 조르다노 브루노(Giordano Bruno)는 이단 심문에 넘겨져 이단으로 선고받았음에도 자신의 주장을 철회하지 않았기에 화형에 처해졌다.

화형된 후, 그의 유해는 강에 버려졌고, 교회는 유족에게 장례식이나 묘의 설영(造営)을 금지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교회의 지독한 대응을 알고 있었기에, 이단 심문 자리에서 자신의 주장을 철회했다고 전해진다.


"그게 올바른 것을 증명할 수 있습니까?"


"내가 여기서 올바르다고 주장해봤자 당신은 납득하지 않겠지요. 그렇다면, 올바른지 어떤지는 당신이 증명하면 됩니다. 내가 제시한 근거가 틀렸다면 나를 거짓말장이라고 하면 되겠지"


"과연, 어쨌든 제 눈으로 실험하여 확인해야 하겠군요"


시즈코의 말에 코타로의 웃음이 깊어졌다.


이미 지동설이 상식인 세계에서 살아온 시즈코가 코타로에게 지동설을 확인하게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시즈코가 '결과'밖에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구는 자전하고 있다, 지구는 태양의 주위를 공전하고 있다, 라고 말하는 것은 간단하다.

하지만, 그것을 증명하려고 하면 그녀의 근거는 '그렇게 배웠으니까'가 되어버린다. 따라서 코타로에게 근거를 제시하고, 실제로 계측하게 하여 증명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지동설을 증명할 근거라고 한 마디로 말해도, 상세히 파고들면 여러가지가 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목성에 위성이 있는 것을 발견하여 공전의 근거로 삼았고, 금성이 차고 이지러지는 것이나 태양의 흑점의 움직임에서 행성이 자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케플러의 법칙을 확립한 요하네스 케플러(Johannes Kepler)에 의한 천문표 '루돌프 표(※역주: 루돌프 행성 운행표)'(당시의 행성 운행표(星表)와 비교하여 30배나 되는 정밀도를 가지고 있었다)도 발표되어, 지동설에 유리한 근거는 얼마든지 나와 있었다.


그래도 반론은 적지 않았다. 개중에서도 '지구가 한 번도 정지하지 않고 계속 움직일 수 있는 이유'에 대해서는 정확한 해답이 나오지 않고 있었다.

이 문제를 해결한 것이 아이작 뉴턴(Isaac Newton)이다. 그의 '운동의 법칙'이나 '만유인력의 법칙'이라는 보편적인 법칙으로 관성(慣性)을 정식화한 것에 의해 지동설의 의문이 모두 해소되었다.


다만, 아무리 근거있는 데이터가 나와도, 카톨릭 교회가 지동설을 승인한 것은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 발표로부터 수백년 후인 1992년이었다.


"융단, 인가요"


"그래요. 그게 나중에 단통(緞通, ※역주: (중국·인도·페르샤 등이 원산지인) 여러 가지 무늬의 두꺼운 양탄자)으로 이어지니까요"


"저어…… 단통이라는게 뭔가요"


"말하자면 융단의 친척, 이라고도 할까요. 뭐, 세세한 걸 신경쓸 필요는 없어요. 당신이 알고 있는 융단의 제법을 기술자들에게 전수하면 문제없어요. 나머지는 기술자들이 알아서 멋대로 개조하겠죠"


코타로와의 대화가 끝나자, 이번에는 루리가 시즈코에게 말을 걸었다.

단통이란 깔개(敷物)용 직물의 일종으로 중국제의 융단을 가리킨다. 융단과 혼용되는 경우가 많지만 다른 물건이다. 이런저런 차이점은 있지만, 가장 큰 차이점은 두께이다.


페르시아 융단은 대단히 얇은 융단이지만, 단통은 두께를 준 융단이라고 할 수 있다. 또 제법도 크게 달라서, 페르시아 융단은 날실(経糸)과 씨실(横糸)을 엮지만, 단통은 씨실에 날실을 통과시킬 뿐이다.


"네, 네에……"


"과거를 끄집어내게 되겠지만, 융단 제법의 전수가 끝나면 그 후에는 조언이나 감독을 하는 정도면 문제없어요"


이것은 후에 이야기를 듣고 알게 된 일인데, 루리는 한때 아랍에서 노예로 팔려서 융단을 제조하는 공장에서 허드렛일을 했었다.

때로는 기술자들을 돕는 경우도 있었기에, 제법에 대해서는 대충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 때 알게 된 제법을 오와리의 기술자들에게 전수하는 것이 그녀가 할 일이다.

단, 모든 공정을 파악하고 있는 진짜 기술자와는 다르기에 간략화된 순서 등으로 기억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었지만, 그 부분은 배운 기술자들이 알아서 보완할 거라고 생각하여 시즈코는 그다지 신경쓰지 않았다.


페르시아 융단은 일본과 별로 관련이 없는 듯 생각되지만, 아즈치모모야마(安土桃山) 시대에 이미 일본으로 수입되었다.

당대의 권력자인 토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는 페르시아 융단을 매우 마음에 들어하여, 재단하여 전쟁터에 나갈 때 입는 겉옷(陣羽織)으로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내용은 간단히 들리지만, 융단이나 단통은 외화(外資)를 얻기 위한 귀중한 상품이 될 거에요. 그러니 그 점만은 주의해 주세요"


"네, 알겠, 습니다"


"좋아요. 야이치 씨는 이제와서 이야기할 건 없겠죠. 마음대로 물건을 만들어 주세요. 나머지는 기술자들이 보고 멋대로 대항의식을 불태우며 흉내내서 뭔가를 만들겠죠"


"……그러기만 하면 됩니까?"


루리와 마찬가지로, 야이치가 할 일도 단적으로 말하면 기술의 계승, 그것 뿐이었다. 단지 자신이 만들 수 있는 것을 만들기만 하면 된다, 였으니 그들이 곤혹스러워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상관없어요. 이런 건 위에서 이야기를 해봐야 기술자들은 움직이지 않아요. 대항심을 불태울 상황을 만들면 알아서 움직이는 법이에요"


두 사람에게는 평소에 하던 일이라도, 시즈코에게는 새로운 기술이 들어오는 것이 중요했다. 그걸로 좋은 기술이 확립되고 새로운 것이 만들어질지는 그녀 자신도 판단이 서지 않았다.

하지만, 처음의 방아쇠를 당기지 않으면 이야기가 시작되질 않는다. 따라서 해외의 기술은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도입할 생각이었다.


"알겠습니다"


"잘 부탁해요ー. 그럼 마지막으로 모미지 짱. 너는…… 그렇지, 님 나무(インドセンダン)의 재배 기록이라도 관리해 주겠어?"


"네, 네!"


말을 걸자 깜짝 놀랐는지, 모미지는 허리를 펴며 대답했다. 뭔가 긴장할 만한 말을 했나, 라고 내심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시즈코는 말을 이었다.


"긴장하지 말고 진정해. 어느 정도는 가르쳐주겠지만, 그게 확실한지 어떤지를 확인하는 게 일이야. 별로 어렵지는 않거든? 올바르다면 재배할 수 있는 것이고, 틀렸다면 시들 뿐이니까"


"어, 시들게 해도, 되는 건가요?"


"확실히 검증한 결과라면야. 무의미하게 시들게 할 생각은 없거든? 뭘 어떻게 했더니 시들었다, 라는 기록은 남겨줘. 그런 기록이 쌓이고 쌓이면 언젠가 진실에 도달할 열쇠가 되는거야"


"네. 아, 알겠습니다"


모미지의 대답에 시즈코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시즈코가 모미지에게 재배시키는 님 나무(영어 명칭 Neem, 이후 님으로 표기함)은, 이름 그대로 인도 원산의 식물이다 (※역주: 일본어 명칭인 インドセンダン은 직역하면 인도 멀나무라는 의미).

인도에서는 옛부터 만능약으로서 가정에 상비된 나무인데, 최근에 해충 퇴치 효과가 있는 것이 밝혀졌다.

나무 전체에 뭔가의 효과가 있어, 인도의 전통의학인 아유르베다(आयुर्वेद, Ayurveda)에는 님의 씨앗이나 나무껍질, 잎사귀를 쓴 약이 여럿 기재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특기할 만한 것은, 씨앗이나 나무껍질에 함유되어 있는 오일이다. 아자디락틴(azadirachtin)이라는 성분이 함유되어 있는데, 이것이 수백 종류나 되는 벌레를 쫓는 효과가 있다.

또, 이것을 섭취한 벌레는 성장 호르몬의 작용이 방해받아 죽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이만한 효과가 있는데, 곤충 이외의 동물에는 영향이 없다고 한다.

기름을 짜낸 씨앗 찌꺼기를 가루로 만든 것은 님 파우더(Neem powder)라고 하며, 땅 속에 숨은 해충을 퇴치하는 효과가 있다.

다만 효과는 1, 2개월 정도밖에 지속되지 않기에, 정기적으로 님 파우더를 추가할 필요가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모미지 짱의 일이 제일 힘든 일일지도 모르겠네. 끊임없이 관측하고 기록하는 것 뿐이니까"


화학 농약을 입수할 수 없는 전국시대에서 님 나무나 씨앗에서 얻을 수 있는 오일 등은 화학 농약과 동등한 능력을 가진 편리한 존재이다.

다만 님 나무는 열대지역이 원산이기 때문에, 기온과 습도에 주의하며 재배할 필요가 있다. 내한(耐寒) 온도는 10도로, 그루(株)가 작을 때는 특히 추위에 약하다는 결점이 있다.

재배의 평균 기온은 20도에서 25도, 햇볕이 잘 들면서 물빠짐이 좋은 땅이 필요하다. 물빠짐이 나쁘면 뿌리가 썩는다.


그렇기에 일본에서는 오키나와(沖縄) 등의 아열대 지역에서밖에 야외(戸外) 재배를 할 수 없고, 일본의 혼슈(本州)에서는 겨울이 되면 실내(戸内) 재배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필연적으로 화분에 심어 재배하는 것이 기본이 되어버린다.

나무 그 자체가 해충 대책이기에 질병이나 해충은 거의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이점은 있찌만, 재배 그 자체는 나름 난이도가 높다.


"여, 열심히 하겠습니다"


"잘 부탁해"


한숨 돌린 후 시즈코는 다시 전원을 둘러보았다.


"그럼 대략적인 일의 설명은 했다고 생각해. 이건 전원에게 해당되는 말이지만 맡은 일만 제대로 하면 비는 시간에는 뭘 해도 좋아. 물론, 우리나라를 적대하는 행위를 했을 경우에는 그에 걸맞는 보답을 하겠지만 말야"


보답이라는 단어에 조금 긴장한 네 사람이었으나, 시즈코는 사람 좋은 웃음을 떠올리며 말을 이었다.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어. 평범하게 우리 나라의 법을 지키며 평범하게 생활하면 거의 문제는 없어. 궁금한게 있으면 질문하러 와도 좋아. 중요한 건 혼자서 끌어안지 않는 거야"


네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본 후 소근소근 상의를 했다. 그리고 시즈코 쪽으로 얼굴을 돌리며 잘 알겠다는 듯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의식주에 대해 안내하게 하지. 소성(小姓)들, 안내하도록"


네 사람의 대답에 만족한 시즈코는, 밖에서 대기하고 있는 소성들에게 네 사람을 안내할 것을 명했다.




그들을 맞이한지 3주일이 지났다. 표면적으로는 딱히 말썽도 없었고, 처음에는 기술자들과 다소 삐걱대기는 했으나, 신기함(物珍しさ)에서 오는 서먹함이었기 때문에 2주일이 지나자 사이가 좋아졌다.

루리는 사람이 어려운 모양이라, 오빠인 야이치의 뒤에 숨는 일이 많았다. 물론 기술자들의 부인들에 의한 기관총같은 대화에 대응하지 못한다는 면도 부정할 수 없다.


코타로는 번역을 재빠르게 마친 후, 지동설의 검증에 착수했다. 거의 은둔형 외톨이에 가까웠으나, 가끔 나와서는 케이지들과 술을 마셨다.

와인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중얼거렸다는 걸 듣고, 곧 와인 양조에 손댈 가능성이 있다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야이치는 과묵한 기술자로, 묵묵히 제품 제조에 열중하고 있었다.

결코 기술자들을 거절하는 것은 아니고, 지금까지 기독교도들로부터 계속 거절당해왔기에 어떻게 접해야 할지 모르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기술자들과 술을 마시면서, 무뚝뚝한 분위기는 변하지 않았지만 조금씩 말을 하게 되었다.


모미지는 진지했다. 진지함이 지나쳐 일에 너무 열을 올리게 되어버리는 것이 옥의 티였으나, 그래도 순조롭게 일을 수행하고 있었다.

다만, 다른 세 사람과 달리 타인과 접할 기회가 적었기에, 일본어의 습득은 조금 늦어지는 느낌이었다.


"응, 문제없네"


3주일이 지난 후 시즈코는 아야(彩)로부터 네 사람에 대한 보고를 받았다. 내용은 충분했고, 특별히 문제가 될 점은 보이지 않았다.


"네 사람 모두 기대 이상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문제가 있다고 하면, 시즈코 님이 모미지에게 너무 신경을 쓰셔서 본래의 일이 늦어지고 있는 점이네요"


"아ー 그건, 미안해. 어떻게든 때에 맞출게"


"신경쓰시는 건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너무 지나치게 신경을 쓰시면 모미지가 다른 사람의 질투를 사게 됩니다. 시즈코 님은 많은 사람들을 거느리고 계신 몽입니다. 뭐든지 적당히 부탁드립니다"


"오, 질투일까? 나는 항상 아야 짱이 너무 좋은데?"


말하자마자 시즈코는 아야를 껴안으려 했다. 하지만, 아야는 샥 하고 몸을 젖혀 시즈코의 포옹을 피했다.


"부ー, 아야 짱은 솔직해져야 한다고 생각해"


"바보같은 말씀 마시고, 스스로의 일을 끝내 주십시오. 10만 석을 다스리는 것이니, 지금 이상으로 서류가 늘어납니다"


"그걸 대비한 직원들은 다 준비해놨어. 나는 결재할 뿐이라서 그렇게까지 일은 늘어나지 않아"


시즈코는 노부나가가 10만 석을 다스리라고 했을 때부터 통치에 필요한 재능을 가진 사람을 모으고 있었다.

10만 석 중, 5만 석은 사키히사가 어떻게 다스릴지에도 달렸지만, 남은 5만 석은 시즈코 혼자서 다스려야 한다. 그래서, 시즈코는 5만 석을 세분화하고, 각자 전임(専任)의 대관(代官)을 두었다.

세금 관리의 가장 작은 단위를 다스리는 사람을 시장(市長), 복수의 시장 위에 서는 사람을 구장(区長), 그 구장들을 통솔하여 가장 위에 서는 것이 시즈코이다.

시즈코가 주로 하는 일은 법 정비, 세제 개혁, 시장 개혁, 토지의 소유자 정리, 인프라 개발, 금융 개혁, 예산의 입안과 집행이다.


"금융에는 은행이 필요한데, 그러려면 주상께서 통화 발행권을 얻을 필요가 있지. 뭐, 지금도 은행은 가동시키고 있으니 문제는 없지만"


은행에는 '금융중개(金融仲介)'와 '결제기능(決済機能)'과 '신용창조(信用創造)'의 3대 기능이 필요해진다.

하지만 그보다도, 은행은 백성들로부터의 신용이 중요해진다. 신용이 없이 돈을 빌리고 빌려주는 금융중개는 할 수 없다. 신용없이 결제 기능은 사용되지 않는다. 신용없이 신용창조는 할 수 없다.

뭐든지 백성들로부터 신용이 있을 것, 이것이 없으면 백성들이 돈을 맡기지 않고, 빌려준 돈이 제대로 변제되지도 않는다.


금융중개는 이름 그대로, 돈을 빌려주는 사람과 돈을 빌리는 사람의 중개를 하는 기능이다. 돈을 빌려주는 사람과 돈을 빌리는 사람 사이를 잘 조정하여, 거래의 리스크나 코스트를 경감할 수 있다.

결제기능은 예금을 사용하여 현금을 쓰지 않고 송금이나 지불을 하는 기능이다. 결제기능은 은행의 네트워크와 풍부한 자금이 있어야 처음으로 실현된다.


신용창조는 어렵게 들리지만, 간단히 말하면 예금과 대부를 반복하는 것으로 처음에 은행이 받은 금액의 몇 배나 되는 예금 통화를 창출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A씨와 B씨가 각자 1천만엔씩 은행에 맡겼다고 하자. 이 때, 은행에는 2천만엔의 본원적(本源的) 예금이 존재한다.

이 중, 준비예금(準備預金)이라는 일정한 금액을 남기고, 남은 금액을 대부의 자금으로 돌린다.

그리고 C씨가 은행에서 1천만엔을 빌렸을 때, 은행에는 A씨 예금 1천만엔, B씨 예금 1천만엔, C씨에 빌려준 1천만엔 등 합계 3천만엔이 은행의 계좌예금에 존재하는 것이 된다.

최초의 본원적 예금이 2천만엔이었기에, 은행에는 새롭게 1천만엔의 신용이 창조된 것이 된다.

이것을 반복하는 것으로 사회에 존재하는 통화가 늘어나고 경제활동이 원활해진다. 이 기능을 신용창조라고 한다.

다만 이름 그대로, 은행에 신용이 없으면 성립하지 않는 기능이다.


"뭐ー 은행이라고 해도, 지금은 신용이 없으니 돈을 맡는 것 정도밖에 할 수 없지만"


은행이 생긴다는 것은 즉시 돈을 맡아준다, 라는 게 되지는 않는다. 은행이라는 기능 자체가 처음이며, 돈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것에 저항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

타케다(武田)를 쳐부순 것으로 일정한 신용을 얻었는지 서서히 돈을 맡기는 사람들은 늘어나고 있지만, 그래도 얼마 되지 않는 정도다.

하지만 신용을 얻기 위해서는 막대한 노력이 필요하므로, 고객을 소중히 하며 꾸준히 신용을 획득할 수밖에 없다.


"서서히이긴 하지만 예금자는 늘어나고 있습니다. 역시 출입하는 상인들이 일제히 맡긴 것이 효과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출입하는 상인, 특히 큐지로(久治郎)는 은행의 메리트를 남보다 빨리 깨달았다. 그것은 현금을 은행에 맡겨두면 서류(紙)를 주고받는 것만으로 돈을 처리할 수 있어, 현금을 들고다니는 것보다 몇 배나 안전하다는 것이다.

설령 결제가 실행되지 않더라도, 계좌의 잔고만 확보해 두면 은행의 책임이 되므로 큐지로의 신용에 흠이 가지 않는다.

큰 상담(商談)을 마무리할때도, 자본주(金主)를 찾아서 상대마다 조건을 붙이며 교섭하지 않아도, 은행측이 많은 자본주들을 모아서 중개해 주므로, 많은 자금을 더욱 싸게 조달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돈거래가 빠르고 쉽다, 이 두 가지가 큐지로에게 큰 메리트였다.


"큰 돈이 예금되었네. 이 신용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내외의 적은 용서없이 철저하게 단속해줘. 한패가 있다면 토할 때까지 용서없이 취조하는 것도 허가할게"


"네. 경비에 관해서는 최상위의 상태로 대응하고 있습니다"


시큐리티가 확실한 것, 이게 우선 신용을 얻는 첫걸음이다. 경비하는 사람도 없고 아무 시큐리티 대책도 없는 은행에 돈을 맡기는 바보는 없다.

돈을 약탈하는 자는 용서하지 않는다. 그러한 엄격한 태도를 보이는 것으로 신용은 얻을 수 있다.

특히 전국시대에서는, 은행강도범은 그 자리에서 베어버리고 일가친지를 연좌시켜 효수(晒す)하는 정도의 태도가 아니면 안 된다.


"법적으로도 은행강도범의 살해는 문제없지만, 다 죽여버리면 배후관계를 밝힐 수 없으니까. 그 부분은 확실히 대응하도록 말해줘"


"잘 알고 있습니다"


"잘 부탁해ー. 아마 몇 달 동안은 큰 움직임도 없을거라 생각하니까 천천히 해도 돼"


그런 말을 한 시즈코는 후에 이 때의 발언을 후회한다.

그 빅 뉴스는 눈깜짝할 사이에 일본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그 뉴스를 알게 되었을 때, 누구나 "설마 그럴리가"라고 입을 모았다.

그것은 시즈코도, 계책을 실행한 노부나가조차 예상외의 사건이었다.


전국시대의 세상을 진감시킨 일대 뉴스. 그것은 에치고(越後)의 용, 즉 우에스기 켄신(上杉謙信)이 노부나가의 신하가 될 것을 수락했다는 사실이었다.




그 소식이 처음으로 도착한 곳은 시즈코 저택이었다.


"시즈코 님을 뵙고 싶소!"


자칫하면 뻔뻔한 태도로도 보이는 소년이 문지기에게 그렇게 말한 것은 4월 중순을 조금 지났을 무렵의 일이었다.

소년이라고는 해도 차림새는 훌륭하고 풍채도 어엿한 무사라고 생각되었기에, 문지기는 잠시 머뭇거린 후 사람이 찾아온 것을 시즈코에게 보고했다.

쇼우(蕭)에게 스케줄을 확인했으나, 그녀는 누군가의 방문이 예정되어 있지 않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보통은 돌아가라고 할 상황이지만, 혼자서 찾아온 사람을 함부로 돌려보내는 것도 그렇다고 생각하여 시즈코는 소년을 만나기로 했다.

그리고 알현실에서 소년의 모습을 보고 간신히 시즈코는 소년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어라, 요로쿠(与六) 군이잖아. 이래저래 1년만…… 인가? 이번엔 무슨 용무일까?"


"오늘은 배알할 기회를 주셔서 엎드려 감사드립니다. 오늘 찾아뵌 것은ーー"


가벼운 태도로 방문의 이유를 묻는 시즈코에 대해, 카네츠구(兼続)는 자세를 단정히하고 공손하게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도중에 뱃속의 벌레가 성대하게 울어제꼈다.


침묵이 자리를 지배했다. 다들 뭔가 말을 꺼내려다가 말을 집어삼켰다. 누구의 뱃속 벌레인지는 다들 알고 있었지만, 그걸 입 밖에 꺼내어 말하는 것은 꺼려졌다.

볼을 긁던 시즈코는, 천정을 바라보며 어떻게 할까 생각한 후, 헛기침을 하여 분위기를 바꾸었다.


"급한 이야기가 아니라면, 점심식사를 하면서 하기로 하죠. 오늘은 좋은 생선이 들어왓으니, 맛의 감상을 들려줬으면 하네요"


"……예, 옛. 배려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렇게 말하고 고개를 숙인 카네츠구의 귀는 새빨개져 있었다. 기껏 폼을 잡았는데, 보기좋게 마각을 드러내 버렸으니 창피해하는 것도 어쩔 수 없다.

시즈코는 깊게 지적하지 않고 손뼉을 쳐서 소성들에게 점심식사 준비를 명했다. 잠시 후, 진수성찬에는 거리가 멀지만 따뜻해보이는 식사가 전원의 앞에 놓여졌다.


"그럼 들도록 하죠"


"잘 먹겠습니다"


식전의 인사를 한 후, 다들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뱃속의 벌레가 울어제낀 카네츠구는, 처음에는 천천히 먹었지만, 공복에는 이길 수 없었던 듯 도중부터 퍼넣듯 먹고 있었다.

저번에 우정이 싹텄는지, 그냥 단순히 배가 고팠던건지, 케이지나 나가요시(長可)도 식사를 하는 스피드가 올라갔다.


"밥을 더 줘! 밥그릇(椀)으론 부족해. 나는 밥통(お櫃)째로 가져와!"


"아, 치사해! 야, 소성, 내게도 밥통으로 부탁해! 케이지보다 큰 걸로 말야!"


"케이지 님, 카츠조(勝蔵), 너희들 시즈코 님 앞에서ーー"


"나도 질 수 없군! 가장 큰 밥통으로 밥 추가 부탁해!"


사이조가 쓴소리를 했지만, 그 목소리는 케이지나 나가요시에게는 닿지 않았다. 뭔가 불이 붙었는지, 카네츠구까지 밥통으로 밥 추가를 요구하는 상황이었다.


"……에잇! 소성이여! 나(某)에게도 밥통으로 가져와라!"


드디어 사이조의 경쟁심에도 불이 붙었다. 이렇게 되면 이제 누구도 손을 댈 수 없는 상태였다.


"다 어디에 들어가는 걸까"


눈 앞에서 벌어지는 많이먹기(大食い) 경쟁에 시즈코는 어이없어하며 중얼거렸다.


먼저 나가요시가 탈락하고, 이어서 사이조, 케이지와 카네츠구의 일대일 대결(一騎打ち)이 되었으나, 몸 크기 때문에 케이지가 승리하는 결과가 되었다. 차를 홀짝이면서 그 모습을 뜨뜻미지근한 눈으로 지켜본 시즈코였다.

차를 다 마시고 쟁반 위에 올려놓은 후, 신음소리를 내며 드러누워 있는 카네츠구에게 말을 걸었다.


"그래서, 무슨 용무로 온 걸까?"


"우풉, 편지를 전하러 왔어. 그리고, 빌린 돈의 변제도 겸해서"


뱃속이 괴로운 듯한 모습으로 카네츠구는 편지, 이어서 돈이 든 자루를 내밀었다. 양쪽을 소성이 받아들고 안을 확인한 후 시즈코에게 가져왔다.


"돈은 아야 짱에게 건네줘요. 편지는 내용을 확인하겠어요"


"옛"


명을 받은 소성은 조용히 방을 나갔다.


"이제와서 말하기도 그렇지만 확인하지 않아도 되었던 거야?"


"네가 가져왔으니, 돈자루 내용물을 확인할 필요도 없겠지"


대자로 누워 있는 카네츠구의 질문에 시즈코는 편지를 펼치면서 대답했다. 애초에 돌아올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 돈을 카네츠구는 일부러 가지고 왔다.

그렇다면 내용물을 확인할 필요는 없고, 빌려간 금액이 확실히 들어 있을 것이다, 라고 시즈코는 판단했다.


(돈보다 편지 내용이 뭐냐……가 중요하지. 어디보자……)


드러누워있는 인간들을 내버려두고, 시즈코는 편지의 글자를 좇았다. 읽음에 따라 그녀의 미간에 주름이 지기 시작했다. 마지막까지 읽었을 때 시즈코는 다시 한 번 처음부터 편지를 읽었다.

네 번 정도 편지를 다시 읽은 후, 시즈코는 곱게 편지를 접었다.


"혹시 몰라 확인하는데, 농담이나 뭐 그런 건 아니겠지?"


"농담으로 끝날 내용이 아니겠지. 설령 농담이라면 여기에 오기 전에 내 목이 날아갔을걸"


"그러네…… 미안, 설마 이럴리가, 라는 내용이었거든"


"뭐 편지를 보면, 누구나 처음엔 그렇게 생각하겠지. 내용을 들었을 때 나도 내 귀를 의심했어. 하지만 영주님(御実城様)이 숙고하신 결과로 내리신 결론이야. 나는 그것에 따를 뿐이지"


"그래, 알았어"


카네츠구의 대답을 들은 후, 시즈코는 납득한 듯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필묵을 준비하세요!"


입구로 얼굴을 돌리고 시즈코는 큰 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거의 내지 않는 시즈코의 큰 목소리에 소성이 무슨 일인가 당황하며 지필묵을 준비했다.

준비된 종이에 시즈코는 편지의 내용을 간결하게 요약해서 2통을 썼다. 내용에 문제가 없는지 확인한 후, 화압(花押)을 찍어 곱게 접었다.

그리고 원래 편지를 함께 넣어 나무상자에 봉인한 후 소성을 불렀다.


"빠른 말을 바꿔타면서 주상께 가장 빠르게 전달하도록 전령에게 전하세요"


"옛!"


편지를 소성에게 건네주고 가능한 한 서두를 필요가 있음을 신신당부하도록 명했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낀 소성은 편지를 받아들자마자 뛰쳐나가듯 방을 나갔다.


"……무슨 내용인데?"


지나치게 다급한 모습에 편지가 궁금해진 나가요시가 머리만 들어서 시즈코에게 질문했다.

아래턱(頤)에 손을 대고 생각을 하고 있던 시즈코였으나, 나가요시가 질문해온 것을 깨닫자 요약한 문서를 흔들면서 대답했다.


"여기에는 우에스기(上杉) 가문은 오다 가문의 신하가 되겠으니(臣従), 그것을 주상께 전해달라, 는 내용이 적혀 있어"


"…………으억!?"


처음에는 멍한 표정을 떠올리고, 이어서 머리를 몇 번 흔든 후, 천정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 모습을 보이는 나가요시. 이윽고 그 말이 의미하는 것을 깨달았는지 얼빠진 목소리를 냈다.

너무나도 예상을 벗어난 내용이었는지, 케이지나 사이조조차 입을 반쯤 벌리고 있었다.


"가짜, 는 아니겠지?"


"아시미츠(足満) 아저씨랑 고노에(近衛)님이 함께 이름을 올렸으니(連名), 가짜나 농담 같은 건 아니라고 생각해. 뭣보다 요로쿠 군을 써가면서까지 이쪽을 속일 이유도 없어. 거짓 하나 없이(正真正銘), 이건 우에스기 가문의 항복 문서야"


"진짜냐……"


편지가 진짜라고 이해하자 나가요시가 놀란 목소리를 냈다. 우에스기 켄신은 타케다 신겐(武田信玄)의 호적수라고 평가될 정도의 인물이다.

그런 인물이 전투 한 번 벌이지 않고 항복에 동의하는 것이니 놀라지 말라는 쪽이 무리한 얘기다.


"하지만, 한 번도 전투를 하지 않고 항복한다는 것에 용케 동의했네"


"……만약 오다 가문과 싸울 경우, 우에스기 가문은 에치고를 업고 싸우게 되니까. 무사라면 전력차를 신경쓰지 않고 화려하게 산화한다는 길도 있겠지만, 백성을 업고 그런 짓을 하면 망국의 싸움밖에 되지 않아. 그렇다면 긍지를 버리더라도 에치고에 있어 뭐가 가장 좋을지를 선택할 필요가 있었던 게 아닐까"


노부나가와 켄신이 전투를 벌일 경우, 노부나가는 방면군(方面軍)을 파견하지만 켄신은 본인이 출진하는 본토결전이 된다.

그리고 노부나가는 설령 전투에서 패하더라도 만회할 수 있지만, 켄신은 패하면 거기서 끝이다.

켄신에게 있어 노부나가와 전투를 벌일 경우, 결코 져서는 안 되는 연전(連戦)이 상대의 힘이 다할 때까지 이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나라를 건 싸움에서, 적과의 전력차를 뒤집을 수 없는 경우, 결국 계속 소모되어 마지막에는 반드시 패배한다. 그 때, 에치고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하지만, 한 번 정도는 전투를 벌여도 벌은 받지 않는 거 아냐?"


"우에스기 가문 입장에서는 '지금'이 아니면 안 되거든"


에치고를 최우선으로 생각했을 때, 켄신은 무사로서는 있을 수 없는 소심(臆病)한 행위라는 비난을 외부에서 받고 내부에서 많은 비판이 터져나오더라도 이 시기에 항복하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다.


"주상의 적, 또는 적이 될 것 같은 패거리들은 서쪽에 혼간지(本願寺), 혼간지를 따르는 사이카슈(雑賀衆)나 일향종(一向宗), 모우리(毛利) 가문, 아자이(浅井) 가문, 아사쿠라(朝倉) 가문. 동쪽은 명확하게 적대하고 있지는 않지만 호죠(北条) 가문에 오우슈(奥州, ※역주: 현대의 후쿠시마(福島) 현, 미야기(宮城) 현, 이와테(岩手) 현, 아오모리(青森) 현에 해당)의 영주(国人)들, 등 잔뜩 있어. 이 상태에서 우에스기 가문이 싸움을 벌일 경우, 상황이 나빠진 후에 항복해도 주상께서 받아들이지 않게 돼. 왜냐하면, 타케다 가문에 이어 우에스기 가문을 격파했다, 라는 관록이 붙으니까. 그 쪽이 몇 배나 외교적으로 유리해지거든"


"어, 음"


이해가 잘 안되는지 나가요시는 곤혹스러운 표정을 떠올렸다. 케이지는 일부러 흘려듣고, 사이조는 진지하게 듣고는 있었지만 내용은 절반 정도밖에 이해되지 않았다.

카네츠구는 아까부터 계속 대자로 드러누워있었다. 담력이 있는건지, 아니면 단순히 신경이 굵은건지 판단이 고민스러운 부분이었다.


"하지만 결국, 주상께는 우에스기 가문을 굴복시켰다, 는 관록이 붙겠네. 다만, 그것과 맞바꿔서 우에스기 가문이 무슨 말을 할 지, 가 신경쓰여"


"항복하는 거니까 머리 숙이고 끝, 아냐?"


"아니, 그럴 리 없잖아. 항복한다고 해도 조건은 내걸겠지. 아마도 우에스기 가문에게 항복 조건을 교섭하는 자리야말로 외교라는 이름의 전쟁터가 되겠지"


아래턱에 손을 대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켄신이 항복을 받아들이는 조건으로서 무얼 제시해 올지를.

가장 유력하게 생각되는 것은 토지(土地)다. 에치고의 영주는 토지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 전 영토의 소유권을 인정받는다(安堵)는 조건이 나올 거라고 생각해도 틀림없다.

그 밖에 생각되는 것은 칸토칸레이(関東管領, ※역주: 무로마치(室町) 막부가 칸토(関東)를 다스리기 위해 카마쿠라(鎌倉)에 둔 벼슬)를 유지(固持)하는 것이다. 요시아키(義昭)가 정이대장군(征夷大将軍)을 반납한다고 해도, 무로마치 막부가 내린 모든 직책이 소멸하는 것은 아니다.

다음에 누군가가 정이대장군에 취임할 때까지, 아시카가(足利) 쇼군 가문(将軍家)에 의한 무로마치 막부의 잔재(残滓)는 계속 남는다. 설령 권위와 권력을 잃고 완전히 노부나가의 손아귀에 들어간 상태라고 해도.


"(아니, 칸토칸레이는 인정되지 않으려나. 그걸 인정했다간 우에스기 가문은 오다 가문을 뒷배경으로 삼아서 칸토 일원의 지배권을 확립하려고 하겠지. 아무래도 그건 인정할 수 없어. 가장 유력한 타협안은 켄신의 신변보장과 토지의 소유권 인정이려나) 어쩄든 주상께서 어떻게 판단하실지가 문제네. 내일 아침에는 오시겠지. 주상을 모셔야 하니 오늘중에 식료품을 구입해 둬요"


시즈코는 노부나가에게 낼 요리의 식재료를 사두도록 밖에 있는 소성에게 명했다. 소성은 대답을 한 후 시즈코의 명령을 전당하기 위해 자리를 뜨려 했다.


"그리고 모포를 한 장 가져와요. 호담한 아이지만, 감기라도 걸리면 큰일이니까"


"예? 옛"


조금 곤혹스러워하면서도 소성은 명령을 따랐다. 구매를 담당하는 사람에게 식료품을 구매할 것을 전하고, 모포를 한 장 들고 돌아왔다. 시즈코에게 모포를 건넨 후, 소성은 인사를 하고 방을 나갔다.


"정말로 호담하네"


어이없어하면서 시즈코는 대자로 누운 채 잠들어있는 카네츠구에게 모포를 덮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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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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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겐키(元亀) 4년 무로마치 막부(室町幕府)의 종언(終焉)


102 1573년 3월 중순



3월에 들어서자, 노부나가는 아시미츠(足満)에게 밀명을 내렸다. 내용에 대해서는 시즈코에게까지 비밀이었으며, 아시미츠가 출발하기 직전에 집을 비운다고 말했기에 그 존재를 인식했을 정도였다.

자신의 가족(身内)에게 자신이 파악하지 못한 위험이 미칠 우려는 있다.

하지만 노부나가도 아시미츠도 그걸로 좋다고 생각하고 자신에게 이야기하지 않는다면, 그 편이 낫다고 판단했을 거라 생각하고 일체의 의문을 삼킨 채 전송했다.

타이밍 나쁘게 시즈코도 또한 쿄(京)에 갈 필요가 생겨, 시간적으로 캐물을 여유도 없었다고도 할 수 있다.

설령 물어봤다고 해도 알리지 않는 편이 좋다고 확신하고 있는 아시미츠는 복잡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음이 틀림없다.

왜냐하면 아시미츠가 받은 밀명은, 고노에 사키히사(近衛前久)를 대동하고 우에스기 켄신(上杉謙信)의 거성(居城)인 카스가 산성(春日山城)으로 가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눈이 녹기 전의 잔설(残雪)이 많이 남아있는 시기에 일부러 하는 강행군. 정치적으로도 위험도적으로도 시즈코에게는 덮어두는 편이 그녀의 정신 건강을 생각하면 좋다고 아시미츠는 판단했다.


"이번 길은 목숨을 건 가혹한 것이 된다. 굳이 날 따라올 필요는 없다"


"신경쓰지 말게. 내가 가고 싶다고 생각한 것이니. 가끔은 객기를 부리는 것도 좋겠지"


돌려서 따라오지 말라고 하는 아시미츠였으나, 사키히사는 이해하면서도 흘려들었다. 뜻을 꺾는 것(翻意)은 무리라고 생각한 아시미츠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방한대책은 확실히 해 둬라. 겨울의 산은 사람의 영역이 아니니, 준비를 게을리하면 목숨을 잃는다"


"그렇게 말할거라 생각해서, 사전에 시즈코 님에게 방한 장비의 준비를 의뢰해 두었지"


아시미츠가 사키히사를 노려보는 시선에 위험(剣呑)한 빛이 서렸다. 하지만, 시선을 받는 본인은 표표(飄飄)한 태도를 무너뜨리지 않았다.


"이것을 예측하고 반년이나 전에 의뢰했네. 이번 건과 연결짓지는 못하겠지. 우연히 이번에 처음 쓰는 것 뿐, 설산을 상정한 본격적인 것일세"


"……그런가"


사키히사가 나무 상자에서 꺼내기 시작한 장비를 보고 아시미츠는 납득했다.

두꺼운 가죽으로 만들어진 외투는, 기름과 밀랍으로 처리되어 발수(撥水) 능력을 가진 것을 잘 알 수 있었다. 게다가 안쪽에는 기모(起毛) 처리된 털가죽을 붙여놓아, 보온능력도 높아 보였다.

마찬가지로 가죽제의 장화도 기모 처리는 물론이고, 앞부분에 충진물(詰め物)이 들어 있었고, 바닥면에는 징(鋲)이 박혀있어 미끄럼 방지 가공도 되어 있었다.

게다가 휴대용의 간이 설피(かんじき)까지 들어있어, 상황에 맞춰 구별하여 쓰는 것이 가능하게 되어 있었다.

의류도 두꺼운 천을 주머니 모양으로 꿰매고 안쪽에 솜을 넣은(※역주: 누빔) 실용성이 높은 것이었다.

외견으로 볼때는 조금 뚱뚱해질 정도로 입은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지만, 제품의 질을 알고 있는 아시미츠가 볼 때도 보증할 수 있는 장비였다.


"눈보라가 칠 때 필요해지니, 두건(頭巾)이나 목도리(襟巻)도 준비해 둬라"


"그런가, 충고에 감사하지. 이러니저러니 하면서도 자네가 챙겨주니까 나는 안심할 수 있네"


"웃기지 마라"


사키히사의 대답에 본의가 아니라고 말하는 듯한 아시미츠는 이야기는 여기까지라고 등을 돌리더니 사키히사를 두고 걸어갔다. 사키히사는 쓴웃음을 지으면서도 그의 등 뒤를 쫓아갔다.


아시미츠가 에치고(越後)로 출발하는 한편, 시즈코도 쿄로 출발했다. 병사들을 데리고 쿄에 들어간 후, 그녀는 즉시 최초의 목적인 타지마 소(但馬牛)의 매입을 실시했다.


타지마 소라고 하면 헤이안(平安) 시대에 편찬된 속 일본기(続日本紀)에도 등장하는, 옛날부터 이 나라(本邦)에 뿌리내린 소다.

현대 일본의 와규(和牛) 중 8할 정도가 타지마 소의 계통이라, 와규의 뿌리라고도 할 수 있는 품종이다.

타지마 소의 특징은 뭐라 해도 그 맛에 있다. 물론 통상의 소와 마찬가지로 농경(農耕)이나 하역(荷役)에도 쓰이지만, 수명이 길고 여러 번 새끼를 낳을 수 있으며 번식력이 왕성하다는, 축산에 적합한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옛부터 거론(取り沙汰)되어온 타지마 소는, 이후에도 다양한 기록(書物)에 그 모습을 남기고 있다.

역사적 사실에서 히데요시(秀吉)가 오오사카 성(大阪城)을 축성했을 때, 단 하루 뿐이지만 무사의 신분이 부여된 타지마 소까지 존재한다.

메이지(明治) 시대에 외래종과의 교잡으로 추가적인 품종 개량을 추구한 결과, 순혈종이 격감해버려서 한 떄는 멸종 위기에 빠진 적도 있었다.

하지만, 후에 기적의 네 마리라고 불리는 순혈종이 남아있던 것에 의해 부활하여, 오늘날의 와규를 탄생시킨 것이다.


긴 역사를 가진 타지마 소의 매입을 하는 것은, 노부나가가 타지마 소의 고기를 매우 마음에 들어했기 때문이다.

어용소(御用牛) 같은 취급이 되어, 쿄에 갈 때마다 타지마 소를 사들여서 미츠오(みつお)에게 사육과 품종개량을 맡겼다.

시즈코가 매입해오는 타지마 소는 순혈종이라, 품종개량된 현대의 지식은 그다지 통용되지 않는다.

쉽게 생각하고 외래종과 교잡 같은 걸 하려고 했다가는 메이지 시대의 실패를 반복해버리게 된다.

순혈종의 좋은 점을 남기면서 더욱 좋은 맛을 추구하는 끊임없는 도전이 필요해졌으나, 미츠오는 오히려 그것을 즐기기까지 하고 있었다.


평소에는 사들인 소를 상인이 오와리(尾張)까지 운반하지만, 이번에는 시즈코 자신의 쿄 체재가 단기간이기에 그녀가 오와리로 돌아갈 때 함께 운반하게 되었다.

사전에 교섭은 끝났기에 딱히 다투는 일 없이 거래는 성립되었다. 이후에는 시즈코가 쿄로 오게 된 본래의 목적을 달성할 뿐이었다.


"아무리 지나도 남장은 익숙해지지가 않네"


시즈코가 쿄를 방문한 이유. 그것은 외국의 기사(技師)를 포섭하는 것이다. 포섭한다고 해도, 현대처럼 기술을 가진 개인이 멋대로 망명 같은 걸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국가에 유익한 기사가 국외로 유출되는 것은 국력의 저하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물론 빠져나갈 구석은 있지만, 그러면 빼앗긴 쪽이 경계심을 품게 된다.

정치적인 마찰을 피하기 위해, 시즈코는 맹점이 되어 있는 루트를 통해 기사를 사들였다.


단적으로 말하면 노예 매매이다. 노예로 전락한 기사를 사들인 것이다.

물론 기사가 노예로 전락한 경우, 국가가 그 매각처에 눈을 빛내며 주의를 기울인다. 하지만, 매각처에서 다시 전매(転売)된 경우에는 꼭 그렇지는 않았다.

광산 노동 등의 가혹한 노역으로 소모될 것이라고 알고 있기에, 그 이상의 추적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다.

노예 매매가 본격화되고 대규모화되기 전이기에 가능한 편법(荒業)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대항해시대라고도 하는 전국시대에서도 노예의 매매는 이루어지고 있었다.

특히 일본에서 가까운 중국, 마카오는 아시아 최대의 노예 집적지가 되어 있었다. 높은 기술을 가진 노예를 감추는데는 안성맞춤인 장소가 된다.


"……하지만, 굉장한 이유로 노예로 삼네, 기독교(キリスト教)는"


이번에 사들인 노예 4명의 경력서를 확인하고 시즈코는 메마른 웃음을 떠올렸다. 4명 모두 화형이라는 극형이 내려졌으나, 관대한 처분이라는 명목으로 광산 노동으로 변경되었다.

관대한 처분이라고 말하지만, 조금이라도 돈이 되는 노예로서 팔아치우는 것이니 말은 하기 나름이라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어디어디…… 천동설(天動説)을 부정했다? 허가없이 주님의 우상(偶像)을 만들었다? 교회의 가르침을 비판했다? 뭐야 이게. 바테렌(伴天連)은 바보밖에 없는 거냐?"


시즈코가 보고 있는 경력서를 등 뒤에서 엿보고 있던 나가요시(長可)가 어이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기독교를 모르는 나가요시에게는 그게 죽을 죄라고는 도저히 생각되지 않았다.

역사적 배경도 포함하여 자세히 알고 있는 시즈코조차 바보스럽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을 대단히 진지하게 하고 있던 것이 중, 근세까지의 기독교권(教圏)이다.

 

"저쪽은 대단히 진지해. 사회는 급격한 변혁을 싫어하니까, 우리들에게는 바보스럽게 생각되는 내용이라도, 사회를 뒤흔드는 큰 죄가 되는거야"


"시즈코 님, 노예상인이 왔습니다"


경력서를 쟁반 위에 되돌려놓음과 동시에 소성이 손님이 왔음을 알렸다. 항상 쓰는 두건을 쓰고, 나가요시에게 소정의 위치에서 대기하도록 지시를 내렸다.


"들여보내세요"


소성에서 명령한 후 조금 지나자, 포르투갈인으로 보이는 노예상인과, 그가 데려온 남녀 네 명이 실내로 안내되었다.

야심만만한 포르투갈인 모험가 출신의 상인인 듯, 불손한 태도가 눈에 띄었다. 하지만, 동시에 장사꾼답게 돈줄이 될 수 있는 시즈코의 동향을 파악하려는 듯한 태도도 보였다.


의외로 만만찮네라고 생각하면서도 시즈코는 인사를 나누었다. 쓸데없는 이야기는 좋아하지 않지만, 상인은 이후에도 계속적인 거래를 생각하고 있는지, 자신에 대해 나불나불 떠들며 자신을 선전하려고 했다.


"주군, 아케치(明智) 님께서 오셨습니다"


슬슬 시즈코를 포함한 전원의 노여움이 한계에 달하고 있던 그 때, 겐로(玄朗)가 아케치 미츠히데(明智光秀)의 내방을 알려왔다.


"알겠다"


마침 잘 됐다고 생각한 시즈코는, 그걸 핑계로 상인을 쫓아냈다.

상인으로서는 다음으로 이어지는 언질을 원했겠지만, 주위가 발하는 위험한 분위기를 눈치채고, 후회하는 심정으로 떠나갔다.


"신세를 지네요, 겐로 할아버지"


상인이 나간 후, 시즈코는 성대하게 한숨을 쉬었다. 미츠히데의 내방은 겐로가 즉석에서 꾸며낸 거짓말이었다. 요인(要人)들끼리 사전 연락도 없이 상대를 방문하는 것 따윈 있을 수 없다.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겐로가 눈치챌 정도의 노여움(鬱憤)을 눈치채지 못한 상인의 무신경함(図太さ)은, 어떤 의미에서는 칭찬할 만한 것이었으리라.

그렇다고 해서 도저히 흉내내고 싶다고 생각되는 것도 아니고, 흉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되지도 않았다.


"과분한 말씀입니다. 소생은 이만"


겐로가 인사를 하고 나가는 것을 지켜보며 시즈코는 한번 더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다시 네 사람의 노예에게 시선을 돌렸다.

40줄의 남성, 30줄의 남성과 20대로 보이는 여성, 10대로 보이는 소녀 등 네 명이다.

애초에 시즈코는 외국인과의 접점이 적었기에 외국인의 용모는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10대의 소녀는 대단히 이질적이었기에 그녀의 시선을 강하게 끌었다.

머리를 감지 않았기에 기름으로 떡져있었지만, 촉촉한 검은 머리에 보석이라고 착각할 듯 선명한 녹색 눈(翠眼)이 인상적이었다.


경력서에 따르면 연장자인 남자는 복수의 언어를 다룰 수 있다고 한다. 언어학자라는 전력(肩書)도 있었기에, 통역 겸 번역자로서 채용했다.

30줄의 남성은 금속가공 기술자이며, 여성은 부인이 아니라 남성의 여동생에 해당한다. 기술자는 남성 뿐이고, 여동생은 연좌제로 노예로 전락된 거라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마지막 소녀가 수수께끼였다. 직업의 기재가 없는 대신, 마녀의 자식이라는 기재가 있었다. 이걸 볼 때 아마도 약사(薬師)일 거라고 시즈코는 어림짐작했다.


"………배가 고프겠지. 나는 옷을 갈아입을테니, 그들에게 식사를 주도록"


경력서를 죽 읽어보고 가장 곤혹스러웠던 것은 그들의 이름이 기재되어 있지 않은 점이었다.

노예에게 이름은 필요없다고 생각한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주인이 붙이는 것이 당연한 것인지,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이름이 없어서는 불편하다.

어쨌든, 우선은 배를 채울 필요가 있다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뭣보다 답답한 남장에서 해방되고 싶었다.




자신의 처우를 결정하지 않고 퇴출한 주인에게 곤혹스러워진 그들을 놔두고, 시즈코는 얼른 다른 방으로 이동했다. 평소의 차림새로 갈아입은 후, 다시 실내로 돌아와 상좌에 앉았다.

시즈코의 맨얼굴을 보고 네 사람은 하나같이 놀라고 있었다.

소녀를 제외한 전원에게, 자신들보다 젊은 여자가 주위에 있는 남성들보다도 상좌에 앉아있는 것이다. 놀라지 말라는 것이 무리한 이야기다.


"식사는 입에 맞았나?"


시즈코의 질문에, 처음으로 반응한 것인 소녀였다. 그는 목을 삐끗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연장자인 남자는 시무룩한 표정이었지만, 식사의 내용에 문제는 없는 듯 묵묵히 먹고 있었다. 나머지 두 사람은 곤혹스러워하면서도 제공된 식사의 맛에 놀라며 불만 따위는 있을 수 없었다.


그들에게 주어진 식사는 치킨 크림 스튜에 하얀 빵, 사슴고기 튀김(唐揚げ), 생야채 샐러드, 그리고 맑은 물이었다.

현대의 유럽에서는 육식화가 진행되어 빵이나 야채는 곁들이는 것 취급이다. 하지만, 근대 초기까지는 일본과 다름없이 곡물 중심의 식사를 했다.

서민들 뿐만 아니라 부농(豪農)이나 지방 영주(地方領主), 하급 귀족(下級貴族) 등의 식사도 곡물이 주체였다.

가난한 지역에서는 세금으로서 징수되는 밀(小麦)이 아니라 호밀(ライ麦), 귀리(えん麦)나 보리(大麦), 메밀(蕎麦) 등을 거칠게 갈아서 물이나 우유로 끓인 포리지(porridge)나, 그보다도 옅게 하여 물로만 끓인 그루엘(gruel)이라는 죽으로 먹었다.

빵은 빵가루를 만들 때 제분(製粉)할 필요가 있다. 제분(粉挽き)은 영주의 전권 사업이며, 영주 소유의 제분소(粉挽き所)를 사용하여 사용료를 낼 필요가 있었다.

그 때문에, 가난한 사람은 자택의 돌절구(石臼)를 사용하여 거칠게 가는 방법밖엔 없었던 것이다.

고운 가루로 만들려고 해도 시간을 들이면 마찰열로 변질되어 버리기 때문에 거친 가루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소금(食塩)조차 넣지 않고 물만으로 개어, 보존을 제일로 생각하여 굽기(焼しめる) 때문에 딱딱하고 퍼석퍼석한 빵이 되었다.

이 때문에 빵이라고 하면 스프에 적시거나 음료로 불려서 먹는 것이 통상적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지금 먹고 있는 빵은 놀랄 정도로 하얗고, 그리고 부드러웠다. 함유 수분량도 많고, 소금은 물론이고 계란이나 버터까지 넣어 충분히 발효시킨 극상품이었다.

부드럽고 단맛조차 느껴지는 하얀 빵에 그들이 도연(陶然)한 표정을 떠올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서양에서 사냥(狩猟)은 귀족의 특권으로 취급되었고, 사냥감의 고기들 중에서는 사슴 고기가 가장 선호되었기에, 사슴 고기는 사치스러운 고기로 취급되었다.

그러나, 최상의 사치로 친 것은 생야채였다.

현대 일본에서는 누구나 신선한 야채를 먹을 수 있지만, 이것은 발달된 유통이나 우수한 보존 기술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들이 발달하지 않은 중세에서는, 신선한 생야채 같은 것은 전용의 밭이나 고용인을 집 안에 두고 있는 한정된 왕후(王侯), 귀족(貴族)들의 먹거리였다.

서민들은 설령 생산자라 하더라도 팔고 남은 말라비틀어지고 썩기 시작한 야채를 먹었으며, 생야채를 먹는다는 것은 부와 권력의 상징이 되었다.


"서두르지 않아도, 아무도 안 뺏어간다"


허겁지겁 먹어대는 그들에게 시즈코는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말했지만, 대귀족이라도 쉽게 먹을 수 없는 진수성찬을 앞두고 그들의 손이 멈추는 일은 없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스튜, 튀김에 생야채 샐러드, 산더미처럼 준비된 빵이 위장 속으로 사라져 갔다.


"(저기 시즈코, 정말 괜찮은 거야?)"


그들의 식사가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을 때, 갑자기 나가요시가 시즈코에게 귓말을 했다. 괜찮다, 는 말의 의미를 즉시 이해한 시즈코는, 부채를 펼쳐 입가를 가리고는 나가요시에게 귓말로 대답했다.


"(일정한 조사는 빠짐없이 했어. 그걸 했으니까, 이렇게 오랜 시간을 들였는데 네 명밖에 모으지 못한 거야)"


나가요시가 신경쓰고 있는 것은 그들이 유럽 각국이나 기독교(伴天連)의 스파이가 아닐까 하는 점이다.

노예가 실은 일본 국내의 내정(内情)을 수집하는 역할을 맡은 스파이라는 가능성은 시즈코도 처음부터 생각하고 있던 것이었다. 그 때문에, 이런저런 '조사'를 아시미츠에게 의뢰했다.

그리고 그의 '스크리닝(screening) 검사'를 마치고 문제없다고 인증된 것이 지금 눈 앞에 있는 네 사람이다.


"(뭘 어떻게 '검사'했는지는 모르지만, 그 아시미츠 아저씨가 문제없다고 보증했으니 괜찮다고 생각하거든?)'


"(어…… 확실히 아시미츠 아저씨는 지독(苛烈)하니까. 그럼 괜찮은가)"


아시미츠가 조사했다, 라는 그 한 마디에 나가요시는 납득했다. 나가요시에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시즈코가 문제없다고 판단한 다른 이유는 그들이 '파문(破門)'된 점이다.


파문이란 교의(教義)에 반하는 신도를 종문(宗門)에서 추방하는 것을 말한다. 파문되면 기독교 신자로서의 지위를 잃게 되는데, 중, 근세에서는 그것만으로는 끝나지 않았다.

신자로서 인정받는 권리나 자신이 소유하는 재산, 파문된 사람이 왕족이라면 왕위나 영토, 게다가 적자(嫡子)에게 그것들을 상속할 권리를 잃는다.

게다가 교회에서 종교적 의식을 받을 권리를 잃어, 죽은 후에도 묘에 들어갈 권리조차 잃게 된다. 단적으로 말하면 '사람으로 취급되지 않고, 사회적으로 추방된다', 그것이 중, 근세의 기독교의 파문이다.


중세에서 유명한 사건으로서 '카놋사(Canossa)의 굴욕' 등 공격적인 면도 있지만, 파문은 기본적으로는 이단적 신앙을 막는 교회의 조치이다.

그렇기에 교의의 해석 차이에 의한 성직자끼리의 다툼이 일어났을 경우, 서로 파문되는 상호 파문(相互破門)이라는 결말을 맞는 경우도 있었다.

11세기에 기독교회와 동방정교회(東方正教会)로 분열되었으나, 이 때 쌍방의 최고위 책임자가 상호파문된 것이 분열의 이유이며, 상호파문의 가장 유명한 예로 들어진다.


(이 경력서를 보니, 제일 나이가 어린 소녀는 서자(庶子)인가. 이거 또 엄청나게 고생했을 것 같네)


서자란 기독교 세계에서는 '불의(不義)한 자식'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서자에게는 부모에게서 유산을 상속받을 권리를 시작으로 하는 많은 권리가 처음부터 주어지지 않는다.

또 세간으로부터도 냉랭한(厳しい) 시선을 받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기독교의 교의, 즉 신학적으로 성행위는 원죄(原罪)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당한 혼인의 결과로서 자손을 얻기 위한 성행위는 신에게 인정받은 것이기에 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생각되었다.

그러한 생각 때문에, 정당한 혼인 이외의 성행위는 신의 의지를 거역하고 악마의 유혹에 빠진 죄가 무겁고 사악한 행위로 생각되게 되었다.


(평민의 서자라는 것만으로도 괴로울텐데, 거기에 종교재판에 넘겨져 마녀로 판단된 여자의 딸, 게다가 교회에서 파문이라. 짧은 시간 동안 대체 무슨 짓을 한 걸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가 시즈코는 전원이 식사를 마친 것을 깨달았다. 나도 모르는 새 너무 깊은 생각에 빠졌구나, 라고 생각한 그녀는 머리를 가볍게 흔들어 머릿속을 새로이 했다.


"식사는 만족했으려나? 아무도 남기지 않은 걸 보니 만족했다고 생각하지. 그럼 먼저, 내 말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손을 들어줘"


헛기침을 한 후 시즈코는 그들의 반응을 기다렸다. 잠시 후 전원이 손을 들었다. 적어도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다는 것에 안도했다.


"(뭐 일본어의 공부를 시켰으니 당연한가) 그럼 좋아. 너희들의 경력은 확인했다"


그렇게 말하면서 시즈코는 경력서를 가볍게 흔들었다. 그러자마자 가장 나이많은 남성이 험악한 표정을 떠올렸다.


"하지만, 이런 건 참고 정도다. 우리 나라, 적어도 주상(上様)의 통치 아래 있는 땅에서는 출신이나 피부색으로 차별은 하지 않는다. 기독교에서 파문? 서자? 모두 고려할 가치가 없다. 인종이나 신앙이 다르더라도 유능하기만 하면 된다"


옅게 웃은 후, 시즈코는 경력서를 둘둘 말아 뒤로 던져버렸다. 가장 나이많은 남성은 경악으로 눈을 크게 떴으나, 시즈코는 그들의 반응을 무시하고 말을 이었다.


"원래는 내 입으로 할 말은 아니지만, 나는 나쁜 풍습(因習)을 버리고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일 정도의 도량을 가지고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다. 기독교의 교의에 반하더라도 그게 유익하다면 나는 인정하지. 애초에 나 자신이 기독교도가 아니니 교의에 따른 판단 같은 건 할 수도 없고, 할 생각도 없다"


"……"


"너희들은, 지금 먹은 식사를 다시 한 번 먹고 싶지 않은가? 만약 그렇게 생각한다면, 내게 스스로의 재주를 보여라. 너희들의 재주가 뛰어나다면, 나는 그에 걸맞는 보수를 지급하지. 내가 할 말은 이상이다. 뭔가 질문이 있다면 이 자리에서 사양말고 하도록"


위엄을 보여야 하기 때문에, 시즈코는 약간 거드름을 피우는 말투로 네 사람에게 선언했다.

네 사람은 각자 고민하고, 때로는 넷이서 서로 상의했다. 이윽고 결론이 나왔는지, 가장 나이많은 남성이 헛기침을 했다.


"아ー, 제가 대표로 질문하고 싶습니다"


유창한 일본어로 남성이 말했다. 어쩌면 프로이스보다 일본어를 잘하는게 아닐까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상관없다. 말하라"


"그럼…… 우선 저희들에게 충분한 양식을 내려준 것에 감사드립니다. 이러한 식사는 지금까지 먹어본 적이 없습니다. 이것만으로도 이 나라가 얼마나 부유한지 알 수 있었습니다"


"……"


"아까 당신은 출신이나 피부색을 따지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기에 묻겠습니다. 저희들은 유태인입니다. 그걸 알고도 아까의 말을 번복하지 않겠다고 단언할 수 있습니까?" (※역주: 원문에는 평어와 경어가 뒤섞여있는데, 아마도 일본어가 아직 조금 서투르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지만, 뒷부분은 또 경어가 이어지길래 어째 좀 이상해질 것 같아서 전부 경어체로 통일했음)


유태인. 현대에서는 일부를 제외하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인종이지만, 중, 근세에서 그들의 취급은 탄압이라는 한 마디로는 다 표현할 수 없다.

기본적으로 중세에서는 '유태인은 어떠한 권리도 소유할 수 없다'는 생각이 유럽 전체에 만연해 있었다. 자세한 이유는 생략하겠지만, 유태인은 당시 유럽 전체에서 미움받고 있었다.

가장 흔한 유태인에 대한 비난이 '그들은 고리대금업자(高利貸し)이다'라는 점이다.


오해가 없도록 부연하겠는데, 유태 교에서도 고리대금업은 금지되었고, 종종 지도자들인 랍비들에 의해 고리대금업의 금지가 설파되었다.

하지만, 대부업 이외에는 살아갈 방법이 없다고 하면 유태 교의 랍비들도 고리대금업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어, 유태 교의 경전이라 할 수 있는 탈무드에 있는 금지 내용을 완화시킬 수밖에 없었다.


한편, 중세 기독교(キリスト教)의 성직자들은 자산가들이었으며, 성직자 이외에도 다양한 직업(役割)을 가지고 있었다. 그 중 하나로 대부업이 있었다. 다만, 중세 교회는 성직자의 대부업을 종종 금지했다.

1179년의 제3 라테란(Lateran) 공의회(公会議)에서 '대부업을 하는 기독교도는 기독교도로서 매장하는 것이 합당하지 않다'라는 선언을 했다.

하지만, 돈을 빌리는 쪽인 왕이나 귀족, 상인들은 다양한 이유에서 돈을 빌려줄 존재가 필요했다.


지금까지 돈을 빌려주는 상대가 성직자였기 때문에, 교회의 위광(威光)을 두려워하여 임차(賃借) 문제는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성직자가 대부업에서 구축되고 유태인이 그 뒤를 이었을 때, 유럽인들의 적의는 유태인을 향하게 되었다.

평소에 경시하고 있는 유태인에게서 돈을 빌린다. 그것만으로도 굴욕인데, 높아진 적의를 품은 기독교도들은 돈을 빌렸으면서 유태인 따위에게 돈을 갚고 싶지 않다, 고 생각하는 자들이 생겨났다.

그런 반감을 이용하여, 돈을 갚을 수 없게된 자신들의 어려운 처지를 벗어날 수단, 이라는 핑계를 대고 빚을 갚지 않는 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개중에는 유태인이 무기 휴대 금지, 토지 소유를 금지당한 것에 착안하여, 폭동을 일으켜 유태인들을 학살하고 그 틈에 차용증(借金の証文)를 파기하는 자들도 나타났다.

차용증(借用書)이 파기되면 유태인의 소유자(대부분은 왕)는 변제를 청구할 수 없게되어(※역주: 원문이 조금 이해가 안 가는데, 유태인에게 왕이 있을 리는 없으니 아마도 소유자라는 것은 유태인 채권자를 뜻하고 채무자가 대부분 왕이라는 말이 아닐까 하지만 일단은 직역했음), 결과적으로 채권을 포기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아까도 말했지만, 한번 더 선언하지. 너희들은 유능함을 증명하면 된다. 출신이나 피부색 같은 건 사소한 일이다"


"알겠습니다. 그 말씀을 신용하고, 당신을 섬기겠습니다"


"내가 섬기기에 부족하다고 생각한다면 사양하지 않고 말하도록. 뒤를 쫓거나 하지는 않는다. 내가 그 정도의 인간이었다, 라고 생각할 뿐이다. 하지만 착각하지는 말도록. 자신의 재주에 안주하여 정진(精進)하는 것을 잊었을 때, 나는 용서없이 너희들을 내치겠다"


가장 나이많은 남성이 반응을 보였으나, 시즈코는 무시하고 말을 이었다.


"그것은 너희들이 유태인이기 때문이 아니다. 목표를 가지고 끊임없이 걸어가는 것으로 사람은 사람다운 존재가 되는 것이며, 사는 의미를 갖는다, 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단지 입을 벌리고 먹이를 기다릴 뿐인 가축은 필요없다"


시즈코가 말을 끝냄과 동시에 가장 나이많은 남성은 무릎을 치며 표정이 풀렸다. 그것은 모멸이 아니라 환희의 웃음으로 보였다.


"실례했습니다. 젊으신데도 잘 배우셨군요. 사실을 말하면, 말씀을 나눠보기 전에는 어떤 바보 상대를 해야 하는 건가, 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까지의 주인은 입만 살았지 머리 쪽은 텅 빈 분들이 많았거든요"


웃음을 거둔 남성은 자세를 바로했다. 그걸 본 나머지 세 사람도 그에 따랐다.


"저희들은 당신을 섬기겠습니다. 마음껏 저희들을 부려 주십시오"


"너희들의 주인으로서 합격, 이라고 생각해도 좋을까?"


"만점이라고 하진 않겠습니다만, 최고점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남성은 웃었다. 이번에는 나머지 세 사람도 마찬가지로 웃음을 떠올렸다.

조용히 상황을 듣고 있던 나가요시들은 곤혹스러워했으나, 시즈코와 유태인들 사이에 흐르는 부드러운 분위기를 느끼고 입을 다물었다.


"아, 깜빡할 뻔 했군요. 한 가지, 청이 있습니다"


"말도 안 되는 요구만 아니라면야"


"아니오, 단순한 청입니다. 저희들에게 이름을 주십시오"


남성의 말에 시즈코는 고개를 갸웃했다. 자조스럽게 웃으면서 남성은 말을 이었다.


"저희들은 유태인. 다툼에 져서 기독교로 개종되어, 지금까지 굴욕적인 이름으로 불려왔습니다. 저희들은 태어날 때 받은 이름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새롭게 태어나서 출발지로 삼고 싶습니다"


레콘키스타(Reconquista) 달성 후, 기독교로 개종된 유태인이나 북서아프리카의 이슬람 교도들은 신(新) 기독교도(cristianos nuevos)라고 불렸다.

하지만 개종자라는 의미에서의 콘베르소(converso)나, 심한 경우에는 마라노(marrano, 스페인어로 돼지, 더러운 사람이라는 모욕)으로 멸칭되는 경우가 많았다.


개종하는 이유는 국가에서 강제 개종령이 떨어지거나, 경제적인 곤란이나 사회적인 탄압을 피하기 위해서이거나 했다.

하지만 기독교로 개동하는 것은 희랍어나 아랍어로 된 이름을 버리고 세례명을 쓴다는 것과 같은 의미였다.

또, 개종하는 것으로 유태인 공동체로부터는 비판적인 시선을 받게 되고, 기독교도들로부터는 항상 배교의 의심을 받았다.

개중에는 개종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지금까지 자신들에게 가해졌던 규제의 대상에서 풀려나 권력을 얻어 벼락출세한 유력한 유태인도 있었다.


"그건 이 나라의 백성으로서 살아간다는 의미일까?"


"그 말씀대로입니다. 이제 종교에 휘둘리는 건 사양입니다. 하나같이 자기들에게 유리할 때만 동료 취급을 하고, 곤란할 때는 내쳐버립니다. 그런 놈들과는 결별하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내뱉듯이 남성이 말했다. 시즈코가 시선만을 나가요시들에게 돌리자, 그들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봐도 남성의 말에 거짓은 없다고 판단되었다.

애초에 아시미츠의 조사를 통과한 이상, 어딘가로부터의 스파이일거라고는 생각하고 있지 않았지만.


"흠…… 그럼 나중에 이름을 알려주지. 오늘은 그만 쉬도록"


"주인님으로부터 받게 되는 것이니,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남성은 씩 웃으면서 말했다.

후일, 시즈코는 그들에게 이름을 주었다. 가장 유창하게 일본어를 할 수 있는 가장 나이많은 남성은 '코타로(虎太郎)', 과묵한 30대의 남성에게는 '야이치(弥一)', 그 여동생은 '루리(瑠璃)', 10대의 소녀는 '모미지(紅葉)'라는 이름을 붙였다.




정치적으로도 군사적으로도 패배한 아시카가 요시아키(足利義昭)는, 모우리(毛利) 가문이 받아들이게 되었다.

대외적으로는 몸이 나빠져 정무를 수행할 수 없게 되어 장기 요양을 위해 정이대장군(征夷大将軍)의 지위를 천황(帝)에게 반납한다고 발표되었다.

하지만 쿄의 백성들이나 주변국의 백성들은 거의 믿지 않았고, 노부나가에게 반역했기에 쫓겨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직 짐정리나 인원 확보 등이 남아있기는 했지만, 요시아키가 쿄를 떠나는 때, 그것이 무로마치(室町) 막부(幕府)가 문을 닫는 날이 된다.

그렇다고는 해도 노부나가가 막부를 멸망시켰다는 소문(外聞)이 떠도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하여, 자신의 역할은 요시아키의 자식을 다음 대의 정이대장군에 걸맞는 자로 키워내는 것이라고 선언했다. 물론, 아무도 믿지 않았다.


반 오다 세력에 견제를 날린 후, 시즈코는 오와리로 귀환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기후(岐阜)에 도착했을 무렵 노부나가로부터 호출을 받았기에 시즈코는 기후에 남기로 했다.

새롭게 지어진 시즈코의 기후용 저택에 군을 놔둬도 되었지만, 이렇다 할 목적도 없고, 또 노부나가로부터 지시도 없었기에, 지휘를 겐로(玄朗)에게 맡기고 오와리에 동착하는 대로 군을 해산시키라고 명했다.


"또 변덕이려나"


그런 말을 중얼거리며 시즈코는 노부나가가 있는 곳으로 안내되었다. 이 무렵의 노부나가는 다실(茶室)을 밀회 장소로 삼고 있었기에, 시즈코가 안내된 장소도 다실이었다.

보통의 다실과 다른 점은, 조금 떨어진 장소에 경호하는 사람들이 눈에 띄지 않게 배치되어 있는 점이다.


"주상, 부르셨습니까"


"들어와라"


다실 밖에서 말을 걸자 즉시 노부나가에게서 입실 허가가 떨어졌다. 시즈코는 숨을 한 번 내쉰 후, 조용히 손님용 입구로 걸어갔다.

다실에 있는 손님용 입구는 '무릎걸음입구(躙り口, ※역주: 직역)'라고 불리고 있다. 좁은 입구이기에 무릎을 대고 들어갈 필요가 있고, 기세좋게 발을 들이미는 것은 불가능하여, 급소를 상대에게 보이면서 천천히 들어가는 것으로 적의가 없음을 보일 수 있다. 무릎걸음입구는 센노 리큐(千利休)가 배의 내부구조(舟座敷, ※역주: 검색해봐도 정확한 의미가 걸리지 않아 확실하지 않음)을 보고 떠올린 것이라 한다.

아직 센노 리큐의 와비차(わび茶, ※역주: 다도(茶道)에서, 다구(茶具)나 예법보다는 화경청적(和敬淸寂)의 경지를 중시하는 일)는 대성(大成)하지 않았기에, 손님용의 입구는 약간 낮은 정도로 억제되어 있었다. 물론, 다실에 들어가려면 무기나 방어구를 풀어놓을 필요가 있는 것은 변함이 없다.


"실례합니다"


입구를 조용히 열고 인사를 한 후 시즈코는 다실로 들어갔다. 노부나가는 차를 끓이고 있었다.


"아까 남만의 노예를 샀다고 들었다"


시즈코의 앞에 차가 놓였다. 노예를 산 이유를 말해라, 라는 뜻이라고 헤아린 시즈코는 찻잔(茶碗)을 앞으로 끌어당기며 노예 구입의 이유를 말했다.


"남만의 기술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제가 전할 수 있는 기술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새로운 기술을 퍼뜨리기 위해서는 노예 상인으로부터 기술자를 사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사는 이유로는 약하다"


"그러기 위한 언어학자입니다"


"호오?"


노부나가의 표정이 변했다. 시즈코는 노부나가가 흥미를 보인 것을 확신했다.


"바테렌(伴天連)이 우리 나라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으니, 이쪽도 그들의 언어를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만큼은 저쪽에서 언어의 연구를 하고 있는 사람을 데려와야 합니다. 하지만, 평범하게 끌어들이려 해도 상대가 경계심을 품게 되어버립니다"


본래의 의미에서의 언어학자는, 여러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언어에 대한 연구를 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하지만, 지금은 노부나가에게 설명하기 위해 시즈코는 그런 차이점을 생략했다.


"하지만, 노예라면 그런 쓸데없는 마찰을 회피할 수 있습니다. 물론, 간자가 파고들 가능성은 있으니, 그 점은 아시미츠 아저씨가 검사했습니다"


"흠…… 바테렌 놈들의 언어라. 확실히 알아둬서 손해는 없구나"


턱에 손을 대고 노부나가는 생각했다. 남만의 언어를 알아두어서 손해는 없다. 놈들이 밀담(密談)하고 있는 내용도 알 수 있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아시미츠가 검사했다면 간자로서 끈이 달려있을 가능성은 한없이 낮아진다. 이점이 있다는 걸 알게되자 노부나가는 작게 웃었다.


"차가 식는다"


"잘 마시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시즈코는 노부나가가 끓인 차를 마셨다. 많이 식어서 미지근해졌지만, 그런 말을 할 수는 없었기에 4, 5회에 걸쳐 차를 다 마셨다.


"그럼 남만의 노예의 건은 됐다. 우리 나라 이야기를 하자"


"알겠습니다"


"네가 내놓은 계책대로, 붙잡은 일향종(一向宗) 놈들을 대량으로 이시야마(石山) 혼간지(本願寺)로 보내줬다. 처음에는 효과가 보이지 않았찌만, 최근의 보고를 듣고 겨우 네 속셈을 이해할 수 있었다"


노부나가가 그렇게 말하면서 히죽 웃었다. 시즈코로서는 역사적 사실에서 벌어진 노부나가의 학살을 저지하고 싶었던 것 뿐인데, 그 이외의 효과가 있었나 하고 내심 고개를 갸웃했다.


"혼간지는 지금, 나가시마(長島) 잇코슈(一向衆)를 먹이기만도 벅차지. 교의(教義) 때문에 저버릴 수는 없다. 무구(武具)가 없기에 병사로 삼을 수도 없지. 굶주린 놈들을 받아들이면 치안이 흐트러지고 역병이 유행한다. 아주 좋은 계책이다"


노부나가의 말에 시즈코는 간신히 깨달았다. 나가시마 잇코슈에 얼마만한 인구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역사적 사실에서 2만 명이 타죽었다고 하니 적어도 수만 명이 있었던 것은 확실하다.

그만한 난민이 이시야마 혼간지로 밀어닥친다. 받아들이는 측인 이시야마 혼간지에 있는 켄뇨(顕如)와 측근들은 머리를 감싸쥐었을 것이 틀림없다.

애초에 식량은 거의 소지하지 않았고, 무구는 압수당해서 아무 것도 없고, 돈도 조금밖에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런 사람을 수만 명이나 품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종교의 성질상, 밀어닥치는 난민들을 저버릴 수는 없다. 하지만, 난민을 받아들이니 사기가 떨어지고, 치안은 악화되고, 자칫 잘못하면 역병이 유행한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사재(私財)를 털어서 수만 명의 난민을 먹여살려야 하는 것이다.


"이 계책은 쓸만하다. 이후에도 일향종은 껍질을 홀랑 벗겨서 이시야마 혼간지로 보내라고 각 방면에 전달했다"


"(효과가 있는 걸 알면 용서없이 계책을 실행하는 건 여전하네) 알겠습니다. 저희 군도 일향종과 상대했을 때, 가능한 적을 죽이지 않고 이시야마 혼간지로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음. 자, 다음 이야기인데, 네게 10만 석(石, ※역주: 1석은 한 사람이 1년 동안 먹는 곡식(쌀)의 양을 말하는 단위)의 영지를 내리겠다"


"네? 저어ー, 토지를 받아도 저는 관리할 수 없습니다만……"


아자이(浅井) 멸망 후에 히데요시(秀吉)가 노부나가에게 맡겨진 영지가 약 12만 석이라고 한다. 즉, 10만 석이라고 하면 미츠히데(光秀)나 히데요시, 시바타(柴田)와 어깨를 나란히하는 영지를 소유하는 것이 된다.

명실공히 다이묘(大名)라 할 수 있지만, 시즈코의 입장에서는 토지의 관리 같은 건 하고 싶지 않은 것이 본심이다.


"서두르지 마라. 우선 10만 중에 5만은 고노에(近衛) 가문의 것이다. 이것은 키나이(畿内)의 토지 정비를 했을 경우, 고노에 가문의 장원(荘園)이 줄어드는 것에 따른 조치이다. 이 5만 석에 대해 너는 아무 것도 안 해도 된다"


"하지만, 그래도 5만석인데요. 저, 토지의 관리는 무리일 거라는 느낌이 듭니다……"


"보좌관의 파견은 하겠다. 몇 년만 지나면 토지의 관리에 지장은 없어지겠지"


"(아~, 결정사항인 거군요) 알겠습니다. 이것저것 폐를 끼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잘 부탁드립니다"


노부나가의 안에서 이미 결정된 사항이라고 이해한 시즈코는, 무슨 말을 해도 소용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매번 그렇지만 갑작스런 명령은 좀 자제해줬으면, 이라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하지만 말해봤자 개선될 리도 없다.

왜냐하면 그는 오다 노부나가이므로.


"중간에 낀(板挟み) 보좌관이 위통(胃痛)으로 쓰러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안심해라. 쓰러질 정도라면 목을 날리겠다"


그 목을 날린다는 건 해고라는 말인지, 아니면 참수라는 말인지 조금 신경쓰였다. 하지만, 지적하는 것보다 못 들은 것으로 하는 쪽이 좋다고 생각하여, 시즈코는 노부나가의 말을 흘려들었다.


"그럼, 이제 곧 키나이는 소란스러워지겠군. 각 진영에 복종과 철저 항전,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이냐고 서신을 보냈다. 지금쯤, 놈들은 어떻게 할지 머리를 감싸쥐고 있겠지"


흡족스러운 얼굴고 노부나가는 말했다. 오다 포위망의 앙갚음을 할 수 있게 되어 그는 매우 즐거운 듯 했다. 왜냐하면 반 오다 연합의 생명줄이었던 타케다(武田) 군은 완전히 패배한 것이다.

이 시기, 오다 진영이 일기하성(一気呵成)으로 움직이는 것은 당연하다. 승기가 있을 때 수고를 아끼지 않고 쓸 수 있는 수를 모두 쓰는 것이 노부나가이다.


각 진영에 기치(旗幟)의 선언의 타진을 했다고는 하지만, 시즈코는 노부나가의 목적이 그것뿐이 아닌 것을 헤아렸다.

이 시기에 항복을 권유하면, 자신의 관대함을 널리 날릴 수 있다. 또, 복종을 거부한 경우, 전쟁도 어쩔 수 없다는 분위기를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이것만이라고도 생각되지 않았다. 노부나가가 단순히 그 이유만으로 편지 따윌 보낼 리가 없다. 뭔가 한 가지, 중요한 것이 있다, 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과연"


그리고 시즈코는 헤아렸다. 아시미츠가 급거 단독으로 임무를 수행하는 것, 그 이전에 사키히사가 방한용구를 발주했던 것, 그리고 노부나가가 각 진영에 보낸 복종을 권유하는 편지.

그 모두를 이어붙이자, 노부나가가 각 진영에 복종하라고 요구한 것은 그냥 블러프(bluff)이고 사실은 아무래도 좋은 것이라고 시즈코는 이해했다.

그가 손 안에 넣고 싶은 진영은 단 하나다. 그밖에는 노부나가가 보낸 복종의 편지의 대답으로서 어느 쪽을 선택할지는 노부나가에게 사소한 일이었다.


"차, 잘 마셨습니다"


하지만 대답을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어디서 누가 듣고 있는지 알 수 없고, 노부나가도 시즈코가 입 밖으로 내어 말하는 것을 바라지는 않는다. 차와 함께 말을 삼킨 시즈코는, 빈 찻잔을 내려놓았다.



※ 번역수정공지: 예전에 jerom님이라는 분이 남겨주신 댓글을 바탕으로 지금껏 별 생각 없이 편의상 일괄적으로 '카톨릭'으로 번역해오고 있었는데, 최근 원문에도 구체적으로 'カトリック'라는 용어가 별도로 등장하는 경우가 생기면서, 'キリスト教'과 '伴天連' 등은 카톨릭을 포함하는 상위의 개념으로서의 '기독교'(후자의 경우 상황 등에 따라 그냥 '바테렌'으로 쓰고 한자를 병기하는 식)로 번역하는 것이 맞을 것 같아 이후 번역시에 새로운 기준을 반영하고, 기번역분에 대해서는 전체적으로 수정에 들어갑니다. 물론 지금껏 해온 분량이 있으니 -ㅅ-;; 수십화 분량을 확인하고 수정하는 데는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습니다만, 기번역 분량에서의 수정은 급한 것은 아니니 천천히 수정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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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
기타번역2019. 8. 23. 02:58

GSOMIA 파기! 일한관계를 여기까지 악화시킨 아베 정권, 야시로(八代) 변호사, 아리모토 카오리(有本香) 등 아베 응원단은 "싫으면 오지마라" 대합창


2019.08.22 11:53


원문: https://lite-ra.com/2019/08/post-4917.html



22일 오후, 한국정부가 일본과의 군사정보 포괄보호협정(GSOMIA)를 갱신하지 않을 것을 결정했다. 보도에 따르면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에 의한 대한(対韓) 수출규제에 대해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지 않았다'며, '양국의 안전보장협력의 환경에 중대한 변화를 가져왔다'는 것을 이유로 들었다고 한다. 아베 정권의 반발은 필연적이다.


GSOMIA는 두 나라 간에 방위상의 기밀정보를 공유하는 협정으로, 2016년 이래로 이것에 기반하여 북한에 의한 미사일 발사실험 등에서의 정보 제공이 이루어져왔다. 안전보장상의 영향은 결코 낮지 않다.


Twitter 등에서는 벌써 넷우익들이 또 '또다시 국교 단절을 향해 전진했구나ㅋ'라며 쾌재를 부르고 있지만, 애초에 이 문제의 시발점은 아베 정권이 시작한 '한국 때리기'에 있다. 다들 아는 바와 같이, 아베 정권은 인권문제인 징용공 문제 등에 대한 사실상의 보복 조치로서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나 '화이트 국가' 배제에 나섰다. 이것은, 참의원에서의 쟁점을 흐리기 위한 목적이 있었으나, 당연히 한국 정부와 여론의 강한 반발을 불러, 그게 드디어 돌이킬 수 없는 곳까지 가버렸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는 동안 매스컴으로부터는 아베 정권이 시작한 '혐한 캠페인'을 탓하는 목소리는 전혀 나오지 않았다. 그러기는커녕, '혐한 캠페인'의 한 축을 담당해 온 것이 매스컴, 특히 TV의 와이드쇼 등의 어용 코멘테이터들이다. 그들은 맹목적으로 아베 정권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한국에 대해 헤이트 스피치나 다름없는 코멘트를 연발했다. 그것에 부추겨진 여론도 '한국 괘씸하다'라는 일색으로 물들어, 아베 정권의 폭주를 맥없이 허용해버린 것이다.


게다가, 와이드쇼의 '혐한 캠페인'은 점점 에스컬레이트되어, 최근에는 '한국은 올림픽에 오지 마라', '한국인 관광객은 필요없다'라는 등의 제정신이 아닌(fanatic) 소리까지 태연하게 하게 되었다.


그 필두가 '히루오비(ひるおび)!'(TBS)의 야시로 히데키(八代英輝) 변호사다. 야시로 변호사라고 하면 애초에 노골적으로 아베 정권 쪽인 '어용 코멘테이터'지만, 특히 한국에 관한 화제에서는 한겨레 신문이나 중앙일보, 아사히 신문을 '반일 삼총사(三羽烏) 같은 것'이라고 멋대로 내뱉는 등, 완전히 고삐가 풀린 상태가 되어 있다.


그 야시로 변호사가, 20일 방송된 '히루오비!'에서도 '한국은 도쿄 올림픽에 오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프로그램에서는, 후쿠시마 제1 원전 사고의 오염수의 처리를 둘러싸고, 한국 외무성이 주한 일본대사관 공사를 불러 사실관계의 확인과 금후의 계획의 설명을 요구했다는 보도를 거론하며, '한국 미디어에서는 일본정부에 의한 대한 수출 관리 엄격화의 대항조치 중 하나가 아닌가 하는 견해도 나오고 있다'는 이야기가 소개되었다.


이어서 '한국 올림픽 준비에 의혹'이라는 산케이 신문의 기사도 거론되며, '한국 올림픽 위원회가 후쿠시마 제1 원전 사고의 영향을 염두에 두고, 식재료의 안전이나 선수의 건강을 염려하는 사전 통지를 일본측에 송부했다', '일한 관계의 마찰을 올림픽을 둘러싼 국책회의 자리까지 끌어들인 모양새다'라는 보도가 소개되었다.


이에 대해 코멘트를 요구받은 야시로 변호사는 "뭐, 대단히 안 좋은 때 안 좋은 곳을 찔러오는구나라는 게 인상인데 말이죠'라고 하며, '오염수 처리의 문제는 이제와서 한국에게 무슨 소리를 들을 것도 없다"며 바다에 희석투기하는 것에 대해 설명한 후에 이렇게 말했다.


"한편, 한국은 이런 말을 하죠. 한국은 사실은 이웃나라고, 예를 들면 이 동일본 대지진으로 아직 5만 4000명이나 되는 피난민 분들이 일본에는 있습니다. 그런 쪽에 대해 위로의 말을 하는 거라면 몰라도, 이 관세 보복으로서 오염수 처리 문제를 노골적으로 들고나와서, 게다가 올림픽에까지 그걸 구실로 들고나오죠. 대단히 뭐랄까, 뭐 솔직히 말해서 저열(ゲス)한 주장을 해오는구나라고 생각되는데요"




야시로 변호사 "도쿄 올림픽, 싫으면 안 와도 된다", 아리모토 카오리"'교류가 중요'라는 강요는 하지 말았으면"


아니, 바다를 사이에 둔 이웃나라이고, 거기다 도쿄에서 올림픽이 개최되기 때문에야말로 원전 오염수의 안전 문제에 염려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나. 그것을 '수출규제에 대한 보복'이라고 일방적으로 단정하고 때리기 구실로 삼는다는 건 대체 무슨 생각인 건가. 하지만, 완전히 '혐한 이데올로그'로 화한 야시로 변호사는 거기에 이렇게 덧붙였다.


"일본은 이 올림픽 문제에 대해 올림픽 기간중에 한국에 대해 다른 나라와는 달리 개별 대응한다는 자세를 보이고 있죠. 말하자면 정성스런(丁寧) 설명을 한국에만 한다는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거 필요없잖아요. 싫으면 딱히 안 와도 된다, 라는 자세로 충분하지 않을까요"


세상에 '싫으면 오지 말라'고 내뱉다니, 어쨌든 '평화의 제전'이라고 하는 올림픽을 뭐라고 생각하고 있는 걸까. 그야말로 야시로 변호사 쪽이 한국 때리기에 이용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지만, '히루오비!'에서는 MC의 메구미 토시아키(恵俊彰)도 다른 코멘테이터들도 야시로 변호사의 발언에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이게 마치 '정론'인 듯 진행되어버린 것이다.


올림픽 뿐만이 아니다. 아베 정권과 문재인 정권의 대립으로, 민간 레벨에서도 일한의 우호 이벤트나 아이돌 등의 엔터테인먼트에 의한 교류, 나아가서는 학교의 수학여행 등이 중지, 연기되고, 한국에서 일본으로의 관광객도 감소하고 있다. 이것은, 경제적 손실은 물론이고 문화 교류에도 지대한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와중에, 자치단체나 민간의 노력에 의해 교류를 계속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예를 들면, 홋카이도와 삿포로 시 등은 19일, 신치토세 공항이나 아사히카와 공항에서 한국발 비행기에 탑승한 한국인의 환영 세레모니를 개최했다. 도착 게이트에는 한글로 '홋카이도에 잘 오셨습니다'라고 쓰인 현수막을 내걸었다. 보도에 따르면, 방문한 한국인들로부터 '정부 사이의 관계가 나빠도 개인의 좋은 관계는 유지될 거라 생각한다', '환영하는 마음이 전해졌다' 등의 이야기도 전해졌다.


그런데, 아베 응원단은 이런 환영 세레모니까지 때리고 있다. 예를 들면, 최근에 자민당에 소속되어 있으면서도 진보적인 발언을 하고 있는 타케이 슌스케(武井俊輔) 중원의원(衆院議員)이 <일한 관계의 악화에 따라, LCC(역주: 저가항공편)의 운항편 감소가 줄을 잇고 있습니다. 민간 교류, 청소년 교류에 영향이 없도록 노력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안 와도 된다! 라고 기세좋게 말하는 분도 있지만, 관광에 심각한 영향이 나오고 있습니다'라고 당연한 트윗을 했는데, 이것에 넷우익이 '한국인은 일본에 안 와도 된다!'라는 식으로 광분했다. 그리고, 이 타케이 씨의 트윗에 대해서는, 아베 응원단 문화인(文化人)인 아리모토 카오리 씨가 <LCC로 오는 사람들에게는 그에 걸맞는 서비스로 대응하는 것이 도리. 일반 국민 전반에게 '따뜻한 서비스를', '교류가 중요'하다는 용감한(勇ましい, 역주: ?? 이해되지 않는 용법임) 강요는 하지 말았으면 한다"라고 이해할 수 없는 주장으로 딴지를 걸었다. 에를 들면 이런 응수를 하고 있다.




한국으로부터의 관광객 감소에 스가(菅) 관방장관은 '중국, 유럽과 미국은 증가하고 있다'고 강변


타케이 의원 <아까 썼던 한국인 관광객에 대한 대접에 대해 안 와도 된다, 민폐다라는 식의 지저분한 말의 나열은 창피하고 암담한 느낌입니다. 정치가 복잡한 관계 속에서, 자신의 돈과 시간을 써서 방일해 주시는 분을 환영하는 것, 그게 아름다운 일본이 아닌지, 다시 한 번 생각해 줬으면 합니다>


아리모토 씨 <어떤 지저분한 말의 나열인지는 알 수 없지만, 외국인 관광객은 '안 와도 된다', '민폐다'라는 국민의 목소리는 듣지 않는다는 것인가요. 관광 산업은 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든 '예측할 수 없는 것(水もの)'. 그날그날 돈을 벌기는 쉽지만, 환경변화에 좌우되기 쉽습니다. 하물며 관광객을 보내느 것을 정치 카드로 이용하는 나라에 대한 의존은 대단히 위험합니다>


아니, 누가 봐도 타케이 의원 쪽이 정상적인 감각이라고 생각하는데, 말하자면 아리모토 씨는 LCC가 이러니저러니 하는 궤변을 늘어놓으면서(애초에 그거 자체가 머리가 심하게 나쁘달까 차별적이다), 결국 말하고 싶은 건 "한국인은 일본에 오지 마라!"라는 넷우익의 헤이트 스피치 그 자체인 것이다.


이제 할 말조차 없지만, 일본에서는 지금 이런 넷우익을 그대로 체현하는 "한국 배제 언동"이 활개치고 있다. 한번 더 말하지만, 그 흐름을 만든 것은 틀림없이 아베 정권이다. 사실, 정권 간부는 문재인 정권 비판 뿐만이 아니라 일반 한국 시민들도 공격 대상으로 삼아서 철저하게 "한국인은 일본에 안 와도 된다"는 헤이트 캠페인에 나서왔다.


예를 들면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권은 지난달 31일의 회견에서, 일한의 관계 악화에서 한국으로부터의 여행객이 감소하기 시작한 것을 지적받자, "중국(으로부터의 관광객)은 11% 이상 늘었고, 미국이나 유럽도 두 자릿수가 늘었다. 금년에 들어서도 (방일 외국인의) 증가세는 계속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며 "문제되지 않는다"라는 자세를 내보였다. 게다가 지금까지 한국정권 간부와의 회담 등에서 도발적인 언동을 거듭해온 카와노 타로(河野太郎) 외상(外相), 아베 수상의 한 팔인 아마리 아키라(甘利明) 전 경산상(経産相)이나 하기우다 코이치(萩生田光一) 간사장 대행 등도, 이제는 답이 없을 정도의 레벨낮은 선동을 거듭하고 있다.


그런 도발의 결과, 한국 정부도 물러서려 해도 물러설 수 없게 되어, 이번의 GSOMIA 종료 결정 같은 조치를 할 수 밖에 없게 된 것이리라. 당연히, 이대로는 도저히 도쿄 올림픽을 계기로 한 평화적인 우호관계의 재구축 등도 바랄 수 없다. 실제로, 한국이 도쿄 올림픽을 보이콧하게되면, 호스트국인 일본은 국제적으로도 복잡한 시선을 받게 될 뿐만 아니라, 금후의 북한의 핵 문제 교섭에서도 또다시 일본만이 "소외"될 것은 필연적이다. 당연히, 납치 문제에 대해서도 점점 더 어려워지게 된다.


몇 번이든 말하겠다. 아베 정권과 매스컴이 '혐한 캠페인'을 마구 부추기고 무역 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한 결과, 일한 관계의 악화는 안전보장상의 리스크로까지 발전하여, 이 나라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을 위험에 노출시키게 되었다. 이런 상황이 되었음에도 국민들은 아베 정권이 불러온 상황의 위험함을 이해하지 못하는 걸까.


(편집부)

Posted by 가리아

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겐키(元亀) 4년 무로마치 막부(室町幕府)의 종언(終焉)


101 1573년 2월 중순



쇼군(将軍), 아시카가 요시아키(足利義昭)는 자업자득에 의해 궁지에 몰려 있었다.

전국시대 최강이라고 평가받으며 반 오다(織田) 사상의 근간이 되었던 타케다(武田) 군은, 한 수 아래라고 생각된 오다-도쿠가와(徳川) 연합군에게 처절할 정도의 패배를 맛보았다.

시류(時流)를 잘못 읽었다. 그것을 깨닫게 된 반 오다 연합의 영주(国人)들은 거미새끼가 흩어지듯 이탈해 갔다.

아사쿠라(朝倉)의 경우에는 2만이나 되는 병력을 가지고 있으면서 한 번도 창칼을 맞대는 일 없이 자기 영토인 에치젠(越前)으로 도망쳐갔다.

반 오다 세력의 급선봉, 혼간지(本願寺)는 나가시마(長島) 일향종(一向宗)의 패잔병 수용으로 자승자박에 빠져 있었다.

노부나가는 패잔병에게 필요 최저한의 식량만 줘서 해방시켰기에, 혼간지에 도달할 무렵에는 굶주려서 살기를 띤 난민으로 화해 있었다.

이것을 저버리면 중생구제(衆生救済)를 외치는 혼간지는 대의명분을 잃는다. 받아들이면 머지않아 식량부족으로 파탄이 날 것이 뻔히 보였다.

교의(教義)를 바탕으로 민중을 동원한 만큼 행동에 제약을 받아, 교의 때문에 파멸로 나아가게 된다는 노부나가의 책략에 항거할 수 없었다.


요시아키 진영의 내부붕괴도 시작되고 있었다. 우선 요시테루(義輝)가 암살되었을 때부터 지지해준 호소카와 후지타카(細川藤孝)가 이탈했다.

그대로 미츠히데(光秀)를 통해 오다에 투항하여, 요시아키 진영의 내부 사정까지 모조리 밝혀지게 되어버렸다.

호소카와 후지타카가 이탈하기 전에 요시아키에게 한 마지막 말이 "이젠 정나미가 다 떨어졌다"였다.

이바라키(茨木) 성주(城主)인 아라키 무라시게(荒木村重)도, 미요시(三好) 가문에서 오다 가문으로 옮긴 것도 있어 새로이 노부나가의 신하가 될 것을 선언했다.


이미 요시아키가 아무리 발버둥쳐도 그의 편을 드는 사람은 없었고, 하물며 이제와서 병력을 내겠다는 말을 하는 기특한 세력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 상황 하에서, 타케다 군을 개수일촉(鎧袖一触)으로 쓰러뜨린 오다 군을 이끄는 노부나가가 쿄(京)로 온다.

요시아키 뿐만 아니라, 반 오다 연합의 편을 들었던 영주들은 잠못드는 밤을 보내며, 도망칠 수 없는 죽음의 기척에 떨며 지내고 있었다.


"후훗, 귀여운 녀석이로다"


일약 화제의 인물(時の人)이 된 노부나가였으나, 그는 서양의 고양이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공가(公家) 필두(筆頭)의 고노에 사키히사(近衛前久), 오다 가문에서 쿄의 중심인 아케치 미츠히데(明智光秀), 그리고 요시아키를 떠난 호소카와 후지타카 등 세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조정을 좌지우지하던 칸파쿠(関白), 니죠 하루요시(二条晴良)는 노부나가로부터 미움받아 세력을 잃었고, 그를 옹호하던 요시아키도 무력화(死に体)되었기에 고립되어, 노부나가가 천황에 올린 상소도 있어 사키히사는 귀락(帰洛)이 허용되었다.

사키히사는 니죠 성(二条城) 앞에 새 집을 지을 예정이었으나, 그때까지는 지금까지처럼 기후(岐阜)에서 지내고 있었다.


"정말로 사랑스러운 몸짓(仕草)이로군……"


오늘은 배에서 온 고양이를 선보인다는 명목으로 세 사람은 특별히 초대받았다.

뭣보다 터키시 앙골라를 노부나가로부터 양도받아 키우고 있었기에, 네 사람의 친교는 생각보다 깊어져 있었다.


"냐ー 냐ー"


"냐옹"


쟁쟁한 멤버들이지만, 고양이에게는 관계없는 이야기다. 고양이들은 자유분방하게 행동하였고, 누구도 그것을 탓하지 않았기에, 발톱질을 당한 다다미는 너덜너덜해지고, 미닫이문(障子)이나 맹장지(襖)는 구멍투성이라는 참상이 벌어져 있었다.

노부나가들은 그걸 탓하기는 커녕, 거리낌없는 표정으로 털을 고르고 있는 모습에 표정이 느슨해져 있었다.

귀인(貴人)을 위한 사치스러운 과자에도 손을 대지 않고, 누구에게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고양이의 모습(生き様)을 사랑했다.


"마치 고양이 카페네요"


현대의 애니멀 카페를 알고 있는 시즈코는 자기도 모르게 말했다. 완전히 풀어진 표정을 보면 그들의 체면(沽券)에 관계된다고 생각하여 뒤쪽으로 물러나있던 그녀였는데, 그 생각은 맞았다.

아마도 네 사람의 현재 상태는, 그들의 수하들에게는 도저히 보일 수 없는 꼴이리라.

매일매일 스스로를 엄격히 다스릴 것을 요구받고, 항상 긴장을 강요받는 생활을 하고 있는 탓인지, 고양이의 사랑스러우면서도 아름다운 자태와, 기품조차 느껴지는 자유분방한 행동에 매료된 것이리라.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고양이들이 크게 기지개를 키더니 웅크리며 자려고 하는 것을 깨달았다. 낮잠 시간이라는 것을 헤아린 시즈코는, 전원에게 들리도록 일어서며 손뼉을 쳤다.


"자, 끝입니다ー"


네 사람은 불만을 감추려고 하지도 않으며 돌아보았다. 아무리 불만이라도, 이 이상은 고양이에게 부담이 되기 때문에 쉬게 할 필요가 있었다.

암묵적으로 좀 더 연장하라고 요구하는 네 사람에게, 시즈코는 손가락을 교차시켜 X자를 만들며 강한 어조로 말했다.


"안 됩니다. 이 이상은 고양이가 싫어한다고요"


고양이가 싫어한다는데야 네 사람도 물러설 수밖에 없다.


"어쩔 수 없군, 고양이를 쉬게 하지. 옆에서 장기라도 둘까?"


"주상(上様), 소생이 상대해 드리겠습니다"


"소생이 기록을 맡지요"


"그럼 저는, 조금 바깥 공기를 쐬고 오지요"


네 사람은 각자 움직이기 시작했는데, 그 행동이 기묘한 것을 깨달은 시즈코는 그들을 제지했다.


"기다리세요! 여러분, 뭘 품속에 넣고 계신 건가요?"


움찔이라는 의태어가 귀에 들리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굳어버린 네 사람은, 시즈코의 시선을 피하듯 노골적으로 등을 돌려 딴청을 부렸다. 그러나, 동시에 어딘가에서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시즈코는 그것으로 모든 것을 깨달았다. 그들은 각자 마음에 드는 한 마리를 품속에 감추고 있었던 것이다. 의외로 나쁜 손버릇에 시즈코는 머리가 아파졌다.


"그럼, 이렇게 하지요. 한 분당 한 마리까지, 양보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입니다"


"좋아! 언질을 받았다. 들어와라 이놈들아"


노부나가의 말과 함께, 입구에서 고양이 운반 전용의 바구니를 든 소성(小姓)들이 들어왔다. 그들은 각자의 소성들에게 품에서 꺼낸 고양이를 맡기며 바구니에 고양이를 재우도록 지시하고 있었다.

그들의 철저한 준비성에 벌린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시즈코였다. 이윽고 네 사람은 노부나가가 사이베리안, 사키히사가 브리티쉬 숏헤어, 미츠히데가 노슈크 스쿠캇, 호소카와 후지타카가 이집션 마우를 데리고 방을 나섰다.

시즈코는 시종(使用人)들과 함께 남은 고양이를 케이지에 넣은 후에 앉아서 한숨 돌렸다.


"이렇게까지 고양이에 열광할 줄이야. 천황(帝)이나 쿄의 백성들도 터키시 앙골라에 푹 빠져있고 말이지"


노부나가에게서 선물받은 터키시 앙골라를 오오기마치(正親町) 천황(天皇)은 깊이 사랑했다. 우다(宇多) 천황과 마찬가지로 고양이 일기를 매일 쓰며, 기회가 있을 때마다 '우리 고양이가 제일 귀엽다!'고 주위에 자랑하고 있었다.

일기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오오기마치 천황은 터키시 앙골라를 위한 '전용의 집(小屋)'을 세우고, 고양이 돌보미(世話役)를 다섯 명을 두고, 가까운 곳에 수의사를 대기시켰다.

그 열광하는 모습은 천황의 총애를 다투는 여성들을 질투하게 하고, 후궁의 여인들(後宮女房)이나 공가의 인물들(公家衆)도 애증이 뒤섞이는 광경에 말을 잃었다.


오오기마치 천황보다 조금 늦게 쿄의 백성들에게도 터키쉬 앙골라가 선물되자, 쿄의 백성들은 '하양이님(お白さま)'이라 부르며 대단히 귀여워했다.

백성들은 누구의 지시를 받을 것도 없이 솔선하여 터키쉬 앙골라를 돌보고, 아이들도 스스로 놀이상대를 해주고 있었다.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시대적 배경이 고양이 같은 애완동물에 심취하는 원인의 하나가 된 게 아닐까 하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개도 마찬가지로 애완동물이긴 하나, 한때 쿄에서 맹위를 떨친 들개의 이미지가 정착되어 있어, 개의 인기의 복권(復権)은 어렵게 느껴졌다.


"그러고보니, 아시미츠(足満) 아저씨가 쇼군과 교섭한다고 햇던가. 고노에 님은 문제없다고 말씀하셨는데, 괜찮으려나"


이번의 교섭에서는, 요시아키에게 아들을 인질로서 노부나가에게 내놓고, 칩거중에 가신들로부터 간언하게 하는 것이 목적이다.

하지만 감정적인 요시아키는 옹고집(意固地)을 부리면 주위를 살피지 앟는다. 처형되지 않는 것을 믿고 철저 항전 태세를 취할 가능성까지 있었다.

이 교섭 자리에서 아시미츠가 어떻게 요시아키를 제어할 수 있을지, 그것이 시험받는 자리가 된다.


"적반하장(逆恨み)으로 한번쯤 더 싸움을 걸어올 것 같네"


그런 미래를 예상하며 투덜대는 시즈코는 모른다. 노부나가가 시즈코에게 말한 목표는 어디까지나 최저한이며, 진정한 노림수는 따로 있다는 것을.

노부나가의 진정한 목적. 그것은 '아시카가 쇼군 가문이 스스로 막부(幕府)를 폐쇄하는' 것이다. 무로마치(室町) 막부의 숨통을 끊는 것, 아시미츠는 그야말로 딱 맞는 인재라고 할 수 있었다.




오다 가문과 아시카가 쇼군 가문의 교섭은, 도저히 교섭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아시미츠는 입을 열자마자 일방적으로 요구를 들이댔다.


"이의가 있으면 말해보아라. 그 시점에서 '나의 적'이 되겠지만 말이다"


정숙이 지배하는 자리에서, 아시미츠가 아시카가 쇼군 가문을 섬기는 자들을 흘겨보았다(睥睨). 그 모습은 비정상적이라고밖에 할 수 없었다.

오다 가문의 교섭역으로서 왔을 터인 아시미츠가, 본래 요시아키가 앉아야 할 상좌(上座)에 앉아 있었다. 정작 요시아키는 아시미츠의 엉덩이 밑에 깔려 방석(座布団) 역할을 맡고 있었다.

요시아키의 얼굴은 훌륭하게 부어올랐고 여기저기에 푸른 멍이 들어있는 것을 볼 때, 아시미츠가 요시아키를 때려서 침묵하게 한 것을 엿볼 수 있었다.


"오다는 이 멍청이의 자식을 쇼군으로 옹립하려 하고 있지. 허나, 나는 그런 이야기를 인정하지 않는다. 아시카가 쇼군 가문은 정이대장군(征夷大将軍)의 자리를 반납하는 것이 세상의 흐름이다"


"혀, 형님…… 그건 너무…… 크헉!"


요시아키가 반론하려고 했으나, 아시미츠는 들을 생각이 없다는 듯 요시아키의 머리를 짓밟아 그의 얼굴을 마룻바닥에 비벼문댔다.

아시미츠의 완력에 저항할 수 있을 리도 없어, 요시아키는 신음소리를 내면서도 마룻바닥에 이마를 비비게 되었다.


"이렇게 되었는데 아직도 모르겠느냐! 어리석은 놈들. 천하가 태평하다면, 네놈들 무능한 놈들이 놀고 있더라도 세상은 돌아간다. 하나 지금은 난세(乱世)이다. 네놈이 쇼군 자리에 연연하여 달라붙어서 무능함을 계속 드러낸다면 백성들은 꾸준히 이어져내려온 쇼군을 가벼이 여기게 된다. 타케다가 오다를 쓰러뜨리면 아시카가의 세상이 돌아온다고? 헛소리하지 마라. 타케다가 오다로 바뀔 뿐 아시카가의 세상 따윈 두 번 다시 오지 않는다. 난세에서 힘이 없는 것은 죄악이다. 힘없는 쇼군을 따르는 자 따윈 없다. 아시카가 쇼군 가문은 지반을 굳힐 때까지의 이음새에 지나지 않으며, 이용가치가 없어지면 죄를 뒤집어쓰고 단죄될 것이 뻔하다"


설령 타케다가 오다-도쿠가와 연합군을 격파하여 상락에 성공했다고 치자. 스스로가 믿는 종교조차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신겐(信玄)이다. 아시카가 쇼군 가문의 권위를 이용하는 데 주저할 리가 없다.

노부나가와 마찬가지로, 아니 더욱 가혹하게 요시아키를 이용하여, 세력 구도를 재편하기 위해 숙청을 거듭하고, 그 모든 것을 요시아키에게 죄를 물어 처단할 것이다.

결국, 싸울 힘을 가지지 못한 아시카가 쇼군 가문은 잡아먹힐 뿐인 약자에 지나지 않는다.


"카미교(上京, ※역주: 교토 일부를 가리키는 지명)와 함께 멸망당하는 것을 바라느냐, 아니면 풍파를 일으키지 않고 떠나겠느냐, 원하는 쪽을 선택해라. 결론을 내리기 전에 한 가지만 알려주마. 네놈들이 다시 오다에 반기를 들었을 때, 그 앞에 서는 것은 '나'다"


아시미츠는 허리에 찬 칼자루에 손을 얹었다. 그 소리에 아시카가 쇼군 가문의 사람들은 아시미츠를 올려다보고, 그리고 말을 삼켰다.


그들은 아시미츠의 표정을 보고 벌벌 떨었다. 예전의 그를 아는 사람은, 변모한 그의 모습에 곤혹스러워졌다. 아시미츠의 표정은 도저히 사람이 떠올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악귀나찰(悪鬼羅刹) 같은 존재의 것이었다.

의견을 말할 것도 없이, 시선을 맞대기만 해도 죽음을 당한다. 기묘한 열기를 띠면서도 등골을 얼어붙게 할 정도로 차가운 시선을 받게 되자, 자신들이 한 칼에 베여버리는 미래를 선명하게 그릴 수 있어, 얼굴을 드는 것조차 할 수 없었다.


아시카가 가문도 무가(武家)의 일문(一門). 개중에는 호담(豪胆)한 자도 있었겠지만, 다들 하나같이 침묵한 채 아래를 내려다보며 떨고 있었다. 그들은 아시미츠를 '두려워하고(畏怖)' 있었다. 사람이 아니라 비명에 간 원령(怨霊)이 현현(顕現)한 것이 아닐까라고조차 생각했다.


"말해두지만, 나는 나를 저버린 아시카가 가문을 원망하거나 하진 않는다. 추호도 말이지. 나는 다양한 요인을 재어보고, 아시카가 가문에게 가장 좋은 길을 선택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농담처럼 말하는 아시미츠였으나 누구도 웃지 않았다. 아니, 웃을 수 없었다.

웃음소리를 내는 순간 아시미츠가 어떤 행동을 취할지 아무도 상상할 수 없었기에, 자신의 목숨을 걸고 도박할 수 있는 자는 없었다.


"나도 악마(鬼)는 아니다. 이쪽의 조건을 받아들인다면, 유종의 미를 거두게 해주지. 아시카가 가문은 타케다의 '부추김을 받았다'라던가 하는 식으로라도 해명을 하라. 내가 오다에게 잘 말해주지"


"알겠, 습니다. 오다 가문으로부터의 조건, 전부 받아들이고 항복하겠습니다"


결국, 이것은 교섭이 아니라 오다 가문으로부터의 항복 조건을 고하는 자리에 지나지 않았다. 아시카가 쇼군 가문에게는 처음부터 항복이냐 죽음이냐 밖에 없었던 것이다.

오다가 타케다를 격파했기에 세상의 흐름은 오다 가문으로 기울었다. 지금까지 반 오다 연합에 가담했던 영주들도 차례차례 이탈하고, 급선봉이었던 혼간지조차 의견이 갈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완전히 고립된 아시카가 쇼군 가문으로서는 애초에 교섭의 무대에 설 수조차 없다.


"그 말, 잊지 마라"


그 말만 하고 아시미츠는 요시아키에게서 일어나서 주위의 시선을 신경조차 쓰지 않고 방을 나갔다.

그의 발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었을 무렵, 아시카가 쇼군 가문 일동이 성대하게 한숨을 내쉰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노부나가가 요시아키에게 내민 조건은 여러 가지였으나, 주된 것은 이하와 같다.

하나, 아시카가 요시아키는 정이대장군에서 '자주적으로 물러나', 그 지위를 조정에 반납한다.

하나, 아시카가 가문에 전해지는 보도(宝刀)나 명도(名刀), 그 외에 사유재산의 전부를 오다 가문(실제로는 아시미츠)에게 양도한다.

하나, 쿄에서 퇴거하여, 이후에는 모우리(毛利) 가문에 의탁한다.

하나, 적자(嫡子)인 아시카가 기진(足利義尋)을 노부나가에게 인질로 바친다.




쇼군 요시아키와의 교섭도 무사히 종료되었다고 듣고 시즈코는 남아도는 시간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었다. 남은 것은 노부나가의 귀국을 따라 돌아갈 뿐이지만, 출발 소식이 영 오지 않았다.

귀로 도중에 이세 신궁(伊勢神宮)에 들러야 하기 떄문에 그 준비를 하고 있었으나, 그것마저 끝나자 본격적으로 할 일이 없어졌다.

노부나가는 권력자로서의 접대(付き合い)나 결재해야 할 안건들이 산처럼 쌓여 있었고, 사키히사는 건설중인 자택을 시찰하거나, 관계자에 인사를 하거나 하는 등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에 반해 시즈코는 노부나가가 엄선한 소수의 인물들밖에 찾아오지 않기 때문에, 농지(農地)가 없는 쿄에서는 시간때우기조차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처음에는 뭘 할까 고민했던 시즈코였으나, 쿄에서만 가능한 조사를 하자는 것에 생각이 미쳤다.


그것은 시장조사(市場調査)였다. 오와리(尾張)-미노(美濃)에 대해서는 말단까지 파악하고 있지만, 교토는 이야기가 다르다.

어느 가게가 무엇을 어디서 얼마만큼 들여와서 그게 얼마나 시장으로 흘러가고, 남은 것은 어디로 흘러가는지 자세히 조사하자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시장의 구조를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디에 종교 세력(寺社勢力)의 돈줄이 있는지를 조사하는 것도 중요한 목적이었다.


혼간지로 대표되는 종교 세력은, 키나이(畿内)에 그물망같은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작물이나 상품의 공급량을 조정하여 높은 시장 가격을 유지하여 폭리를 취한다는 과점기업(寡占企業)같은 사업을 전개하고 있었다.

무장한 승병(僧兵)을 보유하고, 전매품(専売品)에 의한 시장 조작을 자행하는 거대한 조직. 조정이나 많은 무가와 연줄을 가진 그들을 쳐부수려면, 단순히 무력으로만 밀어붙여서는 효율이 나쁘다.


거기서 시즈코가 착안한 것이 경제였다. 경제를 거론하려면 경제학이 나와야 하지만, 고교생이었던 시즈코에게는 버겁다. 그 쪽은 아시미츠가 가장 잘 알고 있다.

하지만 현대 일본의 고등 교육을 받은 시즈코는 방대한 기초 지식을 가지고 있고, 원래부터 역사를 취미로 하고 있었기에, 어느 정도의 경제의 흐름을 파악하고 있었다.

일본 역사과 경제는 일견 관계없는 것처럼 생각되지만, 실제로는 정치와 경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었다.

특히 노부나가가 취한 시책(施策)들은 경제에 기인(根差)한 것이 많았고, 그 때문에 그는 당시 사람들에게 이해받지 못하고 이단으로 취급받았다.

후세에서 노부나가가 신도 두려워하지 않는 인간이라고 불리게 되는 것도, 운부천부(運否天賦)가 좌우하는 상매매를 하면서 그 운명을 관장한다는 신불을 모시는 종교 세력을 정면으로 상대했기 때문이다.


"으ー음, 생활 필수품이 꽤나 비싸네. 특히 기름이 비싸"


전국 시대, 기름은 등유(灯油)로서 수요가 높다.

특히 사찰이나 신사는 야간에 하는 행사가 많았고, 그 때문에 기름을 독점적으로 다루는 아부라자(油座)가 사찰이나 신사에 많았으며, 개중에는 지닌(神人, ※역주: 중세에, 속인(俗人)인 채 신사(神社)에서 잡역을 하던 사람들)의 자격을 가진 아부라지닌(油神人)이라고 불리는 상인들이 있었다.

특히 유명한 아부라자가, 이궁(離宮) 하치만궁(八幡宮)의 오오야마자키(大山崎) 아부라자이다. 물론 오우닌(応仁)의 난(乱)에서 막부의 권위가 실추됨과 동시에 그들의 권력 또한 땅에 떨어졌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 당장 뭘 어떻게 할지는 생각할 수 없으려나"


파고들 틈은 보였다. 하지만, 시기를 잘못 판단하면 생각치 못한 반격을 받게 된다.


"시즈코 님, 주상께서 오셨습니다"


어떤 개입이 바람직할까를 생각하고 있을 때, 소성이 노부나가의 내방을 알렸다. 딱히 급한 용건도 없었기에, 바로 갈테니 먼저 노부나가를 안내하도록 명하고 준비를 갖추었다.


"아시미츠 이외에는 물러나라"


노부나가와 그와 동행한 아시미츠, 그리고 그들을 맞이한 시즈코가 자리에 앉자, 노부나가는 입을 열자마자 사람들에게 물러나도록 명했다. 소성들이 숨을 들이켰지만, 노부나가의 무언의 압력에 저항하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란마루(蘭丸)만이 미묘한 표정을 떠올렸으나, 노부나가의 명령에 거역할 수 있을 리도 없어, 모두와 함께 방을 나갔다.

세 사람만 남은 방에서, 노부나가는 준비된 차를 한 모금 마시고 말했다.


"그래서, 무얼 꾸미고 있느냐"


"네?"


"……요즘, 시장 조사라는 핑계로 여기저기 냄새를 맡고 다니고 있지 않았더냐. 또다시 뭔가 계책을 떠올린 것이겠지. 무엇을 할 셈인지 미리 말하라, 고 하는 거다"


노부나가의 질문에 대해 멍한 대답을 하는 시즈코를 보고, 노부나가는 한숨을 쉬며 경위를 설명했다. 시즈코가 시장 조사를 시작한 것은 바로 노부나가의 귀에 들어왔다.

하지만, 그게 무엇을 목적으로 하는지, 무슨 소용이 있는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왜냐하면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는 매상을 조사하고 있는 것 뿐이다. 웬만한 상인이라면 자신이 취급하는 상품에 대한 정도라면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천하인(天下人)의 심복(懐刀)으로서 이름높은 시즈코가 직접 손댈만한 것이라고는 도저히 생각되지 않았다.


"아…… 네. 단적으로 말하면, 혼간지의 힘을 깎아내기 위해서입니다"


개피리를 불어 개들에게 주위를 경계하게 한 후, 시즈코는 헛기침을 하고 계책을 설명했다.


"혼간지를 시작으로, 종교 세력은 키나이의 경제를 한 손에 쥐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그들의 재력은 막대하여, 우리들이 무력으로 압도하려고 해도, 그들은 경제력을 배경으로 항전을 계속하겠지요. 그렇다면, 보급을 지탱하는 경제력을 끊어버린다는 것이 저의 계책입니다"


"그것과 시장 조사에 무슨 관계가 있는지 말해라"


"그들의 시장 지배는 자(座)에 의해 지탱되고 있습니다. 독점 판매권(独占販売権, 비과세권(非課税権), 불입권(不入権) 등의 특권을 방패삼아 경쟁 원리를 배제하고, 생활 필수품으로 폭리를 취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독점하고 있는 상품을 조사하여, 더욱 싼 가격으로 시장에 푸는 겁니다. 같은 상품을 더 싸게 살 수 있다고 하면, 이익에 밝은 상인이라면 달려들겠지요. 그렇게 되면 그들도 가격을 내릴 수밖에 없어, 원하는대로 자금을 조달할 수 없게 됩니다. 어떤 세상이라도 군사력을 지탱하는 것은 경제력입니다. 경제력을 잃으면 자연스레 유지할 수 있는 병력이 줄어들게 됩니다"


자(座)라는 것은 특권을 가진 일부의 사람들이 상품을 독점하여 비싼 값으로 시장에 유통시키는 구조이다. 이것이 종교 세력에 부를 가져다주는 원천이라고 시즈코는 말하는 것이다.

이 구조를 파괴하고 경쟁 원리가 작용하는 시장을 되찾는 것으로, 기득권익을 갖는 종교 세력의 힘을 깎아내고 활발한 경제 활동을 촉진시켜, 백성들에게까지 그 이익을 환원시킨다.


"흠, 아시미츠와는 다른 방향인가"


"어라, 아시미츠 아저씨도 뭔가 생각했었어?"


"……단적으로 말하면 금융 정책이다. 그러기 위해 화폐 발행권을 손에 넣는다. 이것만 장악하면, 누가 어떤 권리를 휘두르던 관계없다. 돈을 통해 상업이 성립하는 한, 누가 시장을 지배하던간에 그 이익을 가로챌 수 있지. 통화(通貨)를 지배하는 자, 즉 그것이 경제의 지배자가 된다"


신용을 배경으로 무(無)에서 돈(金)을 낳고, 그 돈을 돌게 하는 것으로 더욱 많은 돈을 창출하여 이익을 얻는다. 아시미츠가 노리는 것은 그것이었다.

상거래의 원칙은 물물교환이며, 그것을 편리하게 하기 위해 통화가 존재한다. 모든 상거래가 통화로 이루어지면, 통화를 제조하는 사람이 물건의 가치의 지배자가 된다.

에도(江戸) 시대의 막부 지배가 반석의 체제였던 것도, 화폐 주조(鋳造)는 다른 곳에 위탁하기는 했으나 통화 발행권을 독점하여 경제를 계속 지배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통화 발행권은 지배자의 증거라고 할 수 있다.


"뭐 확실히…… 지폐(紙幣)를 발행하는 거야?"


"그것도 불환지폐(不換紙幣)를 말이지"


불환지폐란 금화(金貨)나 은화(銀貨)의 교환이 보증되지 않는 지폐를 가리킨다. 금은의 가치에 영향을 받지 않고 정부의 신용으로 유통되는 화폐이기에, 신용지폐(信用紙幣)라고도 한다.

현대의 선진국은 불환지폐로, 경제 정책이나 공급량의 조정을 하여 통화 가치의 신용을 유지하고 있다. 이것을 관리통화제도(管理通貨制度)라고 한다.


그에 반해 19세기에서 20세기 전반의 지폐는 태환지폐(兌換紙幣)라고 하여, 금화나 은화로 교환하는 것을 전제로 한 지폐였다.

지폐라기보다, 화폐가 되는 금이나 은 등의 귀금속의 보관증(預かり証)이라는 의미가 강하다. 불환지폐와 달리, 교환할 금은 등의 귀금속의 가치의 영향을 받는다.


"권위와 신용은 조정과 오다 가문이 담보하고, 시장에 유통하는 것은 사찰이나 신사에게도 협조하게 하면 된다. 그놈들이 쓴다고 하면 인지도는 높아지지"


불환지폐는 극단적으로 말하면 그냥 종이쪼가리다. 그 종이쪼가리를 가치있는 것으로 만드는 데는 조건이 있다.

그것은 신용, 인지도, 그리고 충분한 양이 시장이 공급될 것이다.

신용은 조정이 보증하지만, 그것이 통용된 것은 화폐 그 자체에 가치가 있는 귀금속이기 때문이다.

화폐 그 자체에 가치가 없는 불환지폐를 담보하려면 조정만으로는 부족하여, 오다 가문이 뒷받침할 필요가 있었다.


물론 오다 가문에도 부담이 가해지지만, 그 대신 다양한 특권도 얻을 수 있다.

우선 통화 발행을 조정에서 위탁받는다는 형식을 취하면, 통화를 위조한 상대를 역적(朝敵)으로서 대의명분 하에 처벌할 수 있다.


그밖에도 조정으로부터 신용(信認)을 얻을 수 있는 점도 크다. 정치의 실권을 잃은 조정이라 해도, 끊임없이 이어진 천황(帝)의 권위는 비할 데 없는 것이며, 그 뒷배경을 얻는다는 것은 큰 메리트가 된다.


마지막으로 불환지폐를 발행하는 것에 의해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누구도 파악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경제나 금융에 어두운 무가는 물론이고, 공가(公家)나 종교 세력이라도 미지의 사정에 대해서는 대처할 수 없다. 그게 어떠한 메리트를 오다 가문에 가져오는 지 알게 될 때는 이미 늦게 되는 것이다.


"타케다가 패배한 것으로, 혼간지는 오다 가문과 화해하지 않을 수 없다. 안 그래도 대량의 짐덩어리를 끌어안고 있는데, 지금 오다 가문과 다투는 것은 자살행위일 뿐이지. 그 때, 조건으로서 여러가지를 인정하게 하면 된다. 놈들은 언젠가 반기를 들 생각이니, 공수표로서 조건을 받아들이는 시늉을 하겠지"


"송전(宋銭)이나 명전(明銭)은 슬슬 한계다. 새로운 화폐가 필요해지지. 하지만, 그것을 지금처럼 외국(唐)에 의존해서는 외국의 영향을 적지 않게 받게된다. 정전(精銭)과 아전(鐚銭)의 교환 비율을 정했지만(에이로쿠(永禄) 12년에서 이듬해에 발령(発令)된 선전령(撰銭令)), 상인들로부터 번거롭다는 불평도 많다. 그렇다면, 새로운 화폐의 발행을 장악하는 게 가장 좋지"


"화폐의 권위는 조정이 보증하고, 그 가치를 담보하고 제조, 발행을 맡는 것이 오다 가문, 유통을 추진하는 것은 종교 세력이군요. 그렇게 생각하면, 지금 시기에 상대의 경제 기반을 축소시키는 것은 좋은 생각은 아니네요"


"그렇다. 새로운 화폐를 유통시키려면, 종교 세력의 유통을 이용한다. 하지만 시즈코의 계책도 나쁘지는 않다. 지금은 화폐를 우선시해야 하는 것 뿐이다"


과연 하고 시즈코는 납득했다. 노부나가로서도 종교 세력의 경제력을 깎아내고 싶다. 하지만 새로운 화폐를 유통시키려면 종교 세력이 가진 네트워크를 이용하는 쪽이 유리하다.

경제력을 빼앗을 것인가, 새로운 화페의 유통 촉진인가를 저울에 달아보고, 노부나가는 화폐가 유통된 후에도 경제력을 빼앗을 수 있다고 판단하여, 먼저 새 지폐의 유통과 인지도 향상을 우선시하겠다고 결정한 것이다.


"그럼 새 지폐의 유통과 동시에, 장부 기재를 상인들에게 의무화시키는 게 좋겠죠. 위에서 일괄적으로 부과되는 높은 세금을 내는 것이 아니라, 수고는 들지만 매상에 따른 세금을 부과하고, 1년에 한 번 장부를 제출하게 하여 초과 납부한 세금의 환급이나, 세금을 속이는 자들을 처벌하는 데 쓸 수 있습니다. 장부의 기재에 응하지 않는 자들은 미리 많은 세금을 부과하여 뜨거운 맛을 보여주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과연, 장부라. 나쁘지는 않은 생각이다"


"장부가 뭔지는 모르겠다만, 그게 있으면 돈의 흐름이 보인다고 하면 실행하도록 해라"


"나중에 가르쳐주지. 우선은 통화 발행권을 얻는다. 이게 최초이자 최대의 중요 사항이다. 이게 있고 없고로 이야기가 전혀 달라진다. 혼간지가 화평을 청해왔을 때, 이것만큼은 절대로 양보해서는 안 된다"


"알겠다. 혼간지에는 그 밖에도 세제(税制)나 토지 개혁을 인정하게 해야 하지만, 통화 발행권은 확실하게 인정하게 하지"


혼간지가 화평을 청해왔을 때, 노부나가는 몇 가지 조건을 받아들이게 할 생각이었다. 도로 정비, 토지의 소유자 문제, 세제 개혁, 시장 개혁 등이다.

도로 정비는 물론 유통을 정비하기 위해서다. 군용 도로로서 정비해도 평소의 유통에도 대단히 도움이 된다. 지름길이 생기거나 하면 사람이나 물자의 유통이 촉진되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토지의 소유자 문제란, 현재의 토지에는 복수의 소유자가 있는 문제이다.

선조 대대로 토지를 다스려온 사람과 막부로부터 토지를 받은 사람이 서로 소유권을 주장하며 다투어, 무력 충돌로 발전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 상태에서도 각자가 세금을 징수하기 때문에, 백성들은 세금을 낼 곳이 2중, 잘못하면 3중이 되는 경우도 있었다. 이것을 정비하는 것이 노부나가의 토지 개혁이다.

구체적으로는 자발적(差出)으로 측량(検地)을 하게 하여 토지의 소유자를 명확하게 한다. 이 자발적 방식으로의 측량을 전국 규모로 행한 것이 훗날의 '태합검지(太閤検地)'이다.


"하지만 토지 문제는 꽤나 다툴 것 같은데요?"


"그 때는 군대를 보여주어 조용하게 만들겠다"


"아, 그런가요"


시즈코가 지적을 했으나, 노부나가는 이미 생각하고 있었던 것인 듯 막힘없는 대답이 나왔다.

즉 자발적 방식에 따라라, 아니면 죽어라라는 이야기다. 상당히 억지스럽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토지 문제는 평생 해결되지 않는다, 고 노부나가는 생각했다.


"토지의 소유자가 명확히 결정되면, 공가나 종교 세력들은 장원의 권리를 잃는다. 하지만 백성은 복잡한 다중 과세를 생각하지 않아도 되게 되고, 결과적으로 부담이 경감되어 기뻐한다. 오다 가문에도 지배 체계를 간략화할 수 있어 정비하기 쉬워진다, 라는 것인가요"


"그렇다. 시장 개혁은 말할 것도 없이 낙시낙좌령(楽市楽座令)이다. 이것은 현지(地元)의 요청도 있으니 내용은 지역마다 달라지겠지만 말이다"


"그러네요. 우선은 도로 정비를 해서 유통을 촉진시키고, 다음으로 토지 정리를 하고, 마지막으로 시장 개혁일까요. 통화의 발행은 처음부터 계속해갈 필요가 있으니, 순서대로가 아니라 병렬적으로 하게 되겠군요"


"그렇다. 그럼, 이야기는 대충 이것으로 끝이다. 나중에 세부적인 조정을 하도록 하지. 나는 배가 고프다. 뭔가 맛있는 밥을 준비해라"


대화가 끝나자 노부나가는 자세를 풀고 그런 말을 했다. 전환이 빠른 건 여전하구나라고 생각하면서 시즈코는 식사 준비를 하기 위해 방을 나갔다.




노부나가의 정무가 끝남에 따라 시즈코도 기후로 귀국했다. 도중에 이세 신궁에 들려서 식년천궁(式年遷宮)을 위한 자금으로서 3000관문을 기부했다.

갑작스런 오다 군 방문에 이세 신궁의 신관들은 크게 당황했으나, 기부의 이유를 듣고 휴 하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밖에도, 노부나가가 가신들을 격려하면서 귀국했기에 예상보다 시간이 걸렸다. 겨우 기후에 도착한 후, 시즈코는 오와리로 돌아왔을 때 깜짝 놀랐다.


"크다"


그것은 시즈코가 쿄에 가 있는 동안 저택이 완성되어, 이미 새 집으로 이사가 끝난 것에 기인한다. 이사만이라면 문제없다. 아야(彩)에게도 이사에 관한 이야기는 사전에 의뢰해두었다.

문제는 자택의 문이, 이전의 그것과 비해 월등히 거대해진 것이었다. 성이 아니기에 방어시설은 적었으나, 성문을 지키는 병사 등은 이전과 다름없었다.


"크네ー"


집을 보고 시즈코는 그 이외의 감상이 떠오르지 않았다. 집은 크게 세 개로 나뉘어 있었다.

우선 가장 큰 본전(本殿)이다. 집이라기보다 정치적인 시설이라고 하는 쪽이 맞다. 현대에서 말하는 청사(庁舎)에 가까운 역할로, 그녀 이외의 사람이 정치 업무를 하는 경우에도 이용된다.

노부나가가 정치나 정책을 펼칠 때 이용되는 것도 고려되어 있어, 시즈코의 집이라기보다 오다 가문의 통치용 시설이라는 면이 강하다.

물론, 시즈코도 접견하거나 회의를 열거나 하는 경우에 이용하는 시설은 본전이 된다.


다음으로 두 사이즈 정도 작은 후전(裏殿)이다. 이곳이 시즈코의 집이라고 단언할 수 있는, 그녀를 위한 프라이빗 공간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가신이나 그 가족들이 머물거나 하는 경우도 있기에, 전부가 그녀의 공간은 아니다.

본전에도 주방(台所)은 있지만, 후전은 식량 보관 창고에 가깝고, 물터나 목욕탕도 있다. 시즈코는 물론, 아야나 쇼우(蕭)의 방도 있다.

지위가 낮아짐에 따라 방이 좁아져서, 시녀들은 공동으로 방을 쓰게 된다.

그 밖에도 비트만 패밀리나 터키시 앙골라인 타마, 하나. 설표인 윳키, 부채머리 독수리인 시로가네 등, 시즈코가 키우고 있는 동물들의 잠자리도 후전 안에 있다.


마지막이 측전(側殿)이다. 노부나가를 시작으로, 무장들이 머무르는 시설이다. 본전이라는 정치 시설이 있는 관계상, 이러한 시설이 필요해졌다.

다른 것과 달리 무가 저택을 작게 만든 것이 몇 채 늘어서있을 뿐이다. 노부나가용 시설만이 한층 더 큰 것은 알기쉬운 표식이라고 할 수 있다.


이밖에도 비닐하우스들이나 논밭, 식량이나 무구, 시즈코가 수집한 칼, 헌상품 등을 보관하는 창고, 닭이나 집오리 등의 가축을 사육하는 구획, 마굿간, 방어를 담당하는 병사들의 기숙사나 부수 시설, 공방 등 다종다양한 시설이 존재한다.

그것들을 성벽으로 빙 둘러싸고, 바깥쪽에 해자(堀)가 있는 것이 시즈코의 새 집이었다. 집이라기보다는 거점이라고 하는 쪽이 정확할지도 모른다. 새 집에서 일하는 스태프들도 전보다 한층 늘어났다.


"이제 그냥 웃을 수밖에 없네"


그런 말을 중얼거리면서 시즈코는 후전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당신들은 전용의 방이 있을텐데요?"


들어가려다가 뒤에 케이지(慶次)나 사이조(才蔵),나가요시(長可) 등 평소의 멤버가 있는 것을 시즈코는 깨달았다.


"그런 넓은 장소에선 마음이 편하지 않아"


"소생은 호위대(馬廻衆)니까요"


"나, 나는 딱히 상관없는데 말야, 고양이들이 놓아주질 않아서 말이지"


새 집에서도 평소와 다름없나, 라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아시미츠와 타카토라(高虎)는 전체를 둘러보고 오겠다며 갔으나, 언동을 볼 때 그들도 이 거점으로 옮겨살게 될 것일까, 라고 시즈코는 막연하게 생각했다.


"결국, 평소와 다름없나"


그런 말을 중얼거리면서 새로운 자기 집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현관에서 깨달았다. 바로 조금 전까지 대인원이 오락가락한 흔적이 보였다.

안 좋은 예감을 느끼면서 시즈코는 휴식(寛ぐ)을 위한 방으로 이동했다.


"오오, 드디어 돌아온 것이냐"


시즈코의 안 좋은 예감은 적중했다. 후전의 주인이 휴식하기 위한 자기 방에, 주인인 시즈코보다 더 느긋하게 쉬고 있는 노히메(濃姫)가 있었다.

그녀 뿐만이 아니었다. 이치(市)나 마츠(まつ), 네네(ねね) 등, 평소대로의 멤버도 다 모여 있었다.


"……뭘 하고 계신지 여쭈어도 괜찮을까요"


"보면 모르겠느냐. 쉬고 있느니라"


"아니, 그건 알겠습니다. 더 이상 확실할 수 없을 정도로요. 제 질문은, 어째서 제 집에서 쉬고 계신가, 인데요"


"새 집을 축하하러 왔는데, 정작 집 주인이 없더구나. 하여 집 주인이 돌아올 때까지 쉬고 있던 것이니라"


전반과 후반이 지나칠 정도로 전혀 이어지지 않아서, 머리가 아파진 시즈코였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오오, 드디어 왔느냐. 기다리기 지쳤노라"


시즈코가 무거운 한숨을 쉴 때, 아야가 쟁반에 무언가를 받쳐들고 들어왔다. 시즈코에게 인사를 한 후, 아야는 쟁반을 노히메들의 앞에 놓았다.

쟁반에는 푸딩(プリン)이 놓여 있었다. 현대와 같은 노란색이 아니라 백색의 푸딩이었으나 '기포(す)'가 없이 깨끗한 표면을 가지고 있었다.


"남의 집 식재료를 다 먹어치우실 생각이신가요"


"어차피 다 쓰지 못해서 썩히고 있을테니, 내가 유효하게 이용하고 있는 것 뿐이니라"


"윽, 아픈 곳을……"


소비보다 공급이 꽤나 오버하고 있는 시즈코에게, 식재료를 소비해주는 인물은 고마웠다.

하지만, 노히메는 무엇을 얼마만큼 소비하는지 알 수 없었기에, 그 점만이 시즈코의 두통거리였다.

하지만 소비하지 않으면 썩어버릴 공산이 컸기에, 식재료의 소비는 환영할 일이었다.


"그건 그렇고, 전체적으로 다다미(畳)를 깔다니 꽤나 크게 마음을 먹었구나"


"다다미 생산이 따라오질 못해서 아직 다다미가 들어가지 않은 방도 있지만요"


"전부터 하고 있던 연구가 성공해서 대량 생산을 할 수 있게 되었다더구나"


다다미는 에도 시대, 도쿠가와 요시무네(徳川吉宗)가 쿄호(享保) 개혁을 하여, 간척이 적극적으로 진행됨에 따라 재료인 골풀(藺)이 대량 생산되어 가격이 하락했지만, 그때까지는 고급품이었다.


물론, 노부나가도 시즈코의 진언을 따라 간척을 적극적으로 행하여, 골풀의 생산량은 비약적으로 향상되었다.

골풀의 재배는 기본적으로 3단계로 나뉜다. 최초의 전묘(畑苗, 1차 모종). 이것은 다른 것과 다르지 않게 바탕이 되는 모종(苗)을 만드는 밭이다.

12월 무렵에 모종을 심어, 그대로 모가르기(苗わり)를 하는 이듬해 8월까지 기다린다.

시기가 오면 골풀은 모밭에서 2차 모종의 밭으로 이동시킨다. 모종을 뽑아내어 진흙을 털어내고, 모종을 하나하나 갈라서 심어간다.

심은 직후에는 한 그루의 모종이지만, 골풀의 생명력은 강하기 때문에 차례차례 새로운 싹이 난다. 몇 달만 지나면 처음의 연약한 분위기는 어디로 갔는지 몰라볼 정도로 훌륭한 모종으로 성장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모종을 재배할 본밭(本田)에 심는다. 하는 작업은 1차 모종을 2차 모종의 논밭에 옮겨심는 내용과 같지만, 모종이 큰 만큼 재배할 논밭에서 하는 작업에는 숙련된 솜씨가 요구된다.

모종을 심은 지 2년 후인 7월에 골풀은 수확된다. 그 후, 진흙염색(泥染め)이라는 염토(染土)를 녹인 물에 담근 후, 건조시켜서 드디어 완성되는 것이다.


골풀의 재배는 숙련된 솜씨가 필요하지만, 시즈코는 전 공정의 대부분을 기계로 대용하는 연구를 하여 멋지게 성공하였기에, 오와리의 골풀 생산은 비약적으로 향상되었다.


"골풀의 이식기(移植機), 수확기(収穫機), 골풀 돗자리(畳表)의 제직(製織) 등등, 그런 전용의 기계를 개발하여 고품질의 다다미를 대량 생산하는 것이 가능해졌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수요가 폭등하여, 공급이 따라가질 못하고 있습니다"


"대량 생산도 일장일단이 있구나"


"그렇다고 해서, 하지 않으면 언제까지나 생활의 질은 올라가지 않지요"


"그렇구나. 그건 그렇고, 차과자(茶請け)가 없어졌으니, 뭔가 맛있는 것이라도 부탁하자꾸나"


그 말을 듣고 시즈코는 쟁반을 보았다. 쟁반 위에 있던 푸딩은 어느 틈에 전부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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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

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겐키(元亀) 4년 무로마치 막부(室町幕府)의 종언(終焉)


100 1573년 1월 하순



연말(年の瀬). 새해를 맞이하는 사람들은, 속해있는 진영에 따라 뚜렷하게 명암이 갈려 있었다.

오다 가문을 중심으로, 동맹 관계에 있는 도쿠가와(徳川) 가문도 화려한 새해를 기대하며, 바쁘면서도 활기찬 연말을 보내고 있었다.

대조적으로 반 오다 동맹의 면면들은, 장례식 같은 묵직한 분위기 속에 저물어가고 있었다.

왜냐하면 반 오다 동맹의 우두머리(旗頭)였던 타케다(武田) 가문의 패배라는 사실이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국지적인 패배가 아니라, 타케다 가문의 총력을 기울였음에도 완패라고 할 정도로 철저한 패배를 맛본 것이다.


반 오다 세력은, 누구 하나 타케다의 패배를 예상하지 않았으며, 다소의 고전은 할지라도 타케다 군의 상락(上洛)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니 수괴(首魁)인 타케다 신겐(武田信玄)을 시작으로, 바바 노부후사(馬場信房), 야마가타 마사카게(山県昌景), 나이토 마사토요(内藤昌豊)라는 타케다 사천왕(四天王) 중 무려 세 명이나 전사했다.

간신히 스와 시로 카츠요리(諏訪四郎勝頼, 뒷날의 타케다 카츠요리(武田勝頼))는 도망쳤으나, 타케다 가문의 유력한 무장들이 줄줄이 전사하여, 타케다 가문의 존속이 위태로워질 정도의 참상이 벌어졌다.

그에 비해 오다 측의 손해는 경미하여, 오다-도쿠가와 합쳐서 500 정도의 사상자를 내기는 했으나, 유력한 무장이 전사하지는 않았다.


미카타가하라(三方ヶ原) 전투에서 압승하여 천하를 진감(震撼)시킨 오다-도쿠가와 군이었으나, 그 이후의 오다 군의 행동은 반 오다 동맹의 참가자들을 기겁하게 했다.

타케다 군의 역사적 대패로부터 2일. 막심한 혼란에 빠져 있는 오다 포위망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노부나가는 일기하성(一気呵成)으로 나가시마(長島)를 공격해 함락시켰다. 14개에 달하던 방어의 핵심이던 요새들도 하루에 3개라는 비상식적인 속도로 함락되었다.

세상이 타케다 가문의 패배라는 충격에서 깨어나기 전에 나가시마는 깨끗하게 털리고, 오다 군에 의한 나가시마 성(長島城) 침공이 시작되기 전에 항복의 쓰라림(憂き目)을 맛보았다.

이 충격적인 침공을 가능하게 한 것은, 미카타가하라 전투에서 자군의 승리를 확신하고 여력을 남겨두었기 때문이라는 충격적인 사실을 천하에 알린 것이다.


12월 중순 무렵에 도쿠가와 가문에 대한 증원을 결정하고, 겨우 반 달 정도만에 세상은 완전히 바뀌어 버렸다. 역사의 전환점이었겠지만, 그 소용돌이 한복판에 있는 사람은 죽을 맛이다.

특히 상황이 뒤바뀌어 열세에 몰린 반 오다 동맹 편 사람들에게, 이 해의 연말은 다가오는 죽음의 기운에 몸이 얼어붙는, 숨을 돌리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는 가혹한 것이 되었다.

대외적으로는 노부나가가 타케다 신겐을 쳐부수고, 적자(嫡男)인 노부타다(信忠, 키묘마루(奇妙丸))가 나가시마 일향종(一向宗)을 박살낸 것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오다 가문 내에서는 그 모든 대업을 뒷받침한 시즈코의 존재야말로 승리의 핵심이었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었다.

실제로, 도쿠가와에 대한 원군(後詰め)으로서 하마마츠 성(浜松城)으로 가서, 핍박하는 전황을 두려워하는 도쿠가와 가문 가신들까지 설득하여 미카타가하라 전투를 승리로 이끈 것도, 나가시마에서의 쾌진격을 뒷받침한 병사들의 숙련도와 무장을 갖춰낸 것도, 모두 시즈코가 주도면밀하게 세운 계획의 성과였다.


기묘하게도 무토 키헤에(武藤喜兵衛)가 예언했던 것처럼, 오다 가문 안팎으로 그 존재를 드러내고 있는 시즈코는, 평소라면 자택에서 보낼 설날(元日)의 해가 뜨기도 전부터 노부나가의 호출을 받았다.

그것도 첫 해돋이(初日の出)를 볼 테니 함께 와라, 라는 이유에서였다.


"추워……"


"춥다고 생각하니 추운 것이다"


"아니 실제로 춥거든요. 그보다 어째서 저인가요. 일출까지는 따뜻한 집에서 뒹굴게 해 주세요"


노부나가가 천하에 손을 대던, 시즈코가 얼마나 무공을 쌓아올리던, 주위에서 보는 눈길은 변했지만, 두 사람의 관계는 변하지 않았다.


"뭐, 네게 이 광경을 보여주고 싶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이외에 이유 따윈 필요없지"


"그런가요"


너무나도 노부나가다운 말에 시즈코는 납득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해뜨기 전의 추위(冷え込み)에 제아무리 노부나가라도 말수가 적어져, 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거북한 침묵은 아니고, 조용히 시간이 지나기를 기다리고 있자, 밤의 어둠에 한 줄기 광명이 비추었다.

어느 쪽이 먼저랄 것도 없이 빛을 향해 눈을 돌리자, 지평선 너머로부터 주위를 아침햇살(朝焼け)로 물들이며 태양이 떠올랐다.


"와아"


그건 멋진 첫 해돋이 광경이었다. 공기가 맑기 떄문인지, 현대보다도 뚜렷하게 밤이 밝아져가는 모습이 보였다.

여담이지만 설날의 해돋이를 가리키는 말로서 '해맞이(ご来光, ※역주: 우리말에는 ご来光이나 初日の出을 따로 구분하는 명사가 없는 듯 하여 임의로 의역함)'와 '첫 해돋이(初日の出)'가 있으며, 이 두 가지는 혼동되기 쉽다.

하지만 '해맞이'는 높은 산에서 보는 일출을 의미하며, 석존(釈尊, ※역주: 석가세존(釋迦世尊)의 줄임말)이 후광(光背)과 함께 내영(来迎, ※역주: 사람이 죽을 때 부처나 보살이 극락정토로 맞이하러 오는 것)하는 것에 빗대어진 것이다. 즉, 신앙의 대상은 부처(仏陀)이며, 불교 행사 중 하나로 꼽힌다.

그에 반해 '첫 해돋이'는, 일출과 함께 세덕신(年神様)께서 강림하신다고 믿어졌기에 참배 대상이 되었다. 신앙의 대상은 세덕신이며, 신토(神道, ※역주: 일본의 토속 신앙)에서 정월(正月)의 중심 행사가 되었다.


"나쁘지 않은 기분이군"


오랫동안 가로막고 있던 걱정거리가 불식된 후 처음으로 맞이하는 설날(元旦)이라는 것도 맞물려, 노부나가는 재생되는 태양을 평소보다 신성하고 장업한 것으로 마음에 새겨두고 있었다.


"하지만, 정말로 타케다를 쳐부술 줄이야"


노부나가조차 지금도 가끔 꿈을 꾸고 있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진짜 자신은 미카타가하라(三方ヶ原) 전투에서 타케다를 격파하지 못하고 기후 성(岐阜城)에 틀어박혀 다가오는 죽음에 두려워하고 있으며, 지금의 자신은 절망 속에서 꾸는 희망사항으로 가득한(都合の良い) 물거품 같은 꿈이 아닐까 하고.

그러한 일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은 해도, 때때로 확인하게 되어버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저는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있다고는 하지 않습니다. 할 수 있다고 말한 것은 승산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훗…… 그건 그렇고 그 신식총(新式銃)은 흉악하구나. 저쪽의 공격이 닿지 않는 먼 거리에서 일방적으로 노리고 쏠 수 있으니 말이다. 상호간에 총격전(撃ち合い)이 벌어지기 전에 큰 손해를 강요받게 된다면, 아무리 머리가 나쁜 멍청이(撃ち合い)라도 주저하겠지"


"총만의 공적은 아닙니다. 모두가 제 말을 믿고 따라와 주었기에 이 큰 전과를 얻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번의 전공은 저 개인이 받을 것이 아니라, 모두가 받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너는 변함이 없구나. 처음 만났을 때부터, 아무 것도 변함이 없다"


과거를 그리워하듯 말했다. 처음 보았을 때부터 묘한 녀석이라고는 생각했지만, 신비하게도 어딘가 차분한 안정감이 있었다.

끝없이 대지에 도전하는 농업을 생업으로 삼기 때문인지, 굳건하게 대지에 뿌리를 내린 기묘한 존재감을 가지고 있었다.

누구나 부러워하는 큰 전과를 세웠음에도 추호도 흔들리지 않고 처음과 마찬가지로 자연스러운 태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노부나가에게 시즈코는 계속 마음껏 가지를 뻗어내기에, 가지치기를 하는 데 손이 무척 많이 가지만 커다란 열매를 가져오기도 하는 큰 나무와 같은 '이상한 녀석'일 것이다. 지금까지도, 그리고 이제부터도.


"타케다가 옛 기세를 되찾는 일은 이제 없을 것이다. 우에스기(上杉)의 귀추(帰趨)는 모르겠다만, 호죠(北条)는 심하게 동요하고 있지. 혼간지(本願寺)도 믿었던 패가 사라졌기에 내부적으로는 발칵 뒤집히는 대소동이 일어났겠지. 그리고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는 쇼군(将軍)에게는 아시미츠(足満)를 보내겠다"


"아시미츠 아저씨를요?"


"음. 녀석을 보고도 여전히 헛된 꿈을 꿀 수 있을 깜냥이라면 다시 볼 법도 하지만, 그런 기량은 없을게다. 아무래도 이번 건에서 어설픈 대응은 할 수 없지. 아들을 인질로 바치게 하고 녀석 자신은 칩거(蟄居)하도록 하겠다"


강한 어조와는 반대로 노부나가의 모습에서는 진절머리가 난다는 느낌(徒労感)이 엿보였다. 쇼군 요시아키(義昭)에 대한 것은 노부나가에게 두통거리일것이다.

아무리 장식뿐인 요여(神輿)라고는 해도 이렇게까지 정치 감각이 없으면 떠받들고 있는 쪽도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것이다.


"앞으로 1년이다. 네 군은 하나로 합쳐 운용하는 것이 아니라, 소규모로 재편성하여 활약해줘야겠다. 물론, 네 비장(虎の子)의 텟포슈(鉄砲衆)도 포함해서 말이다"


"반석의 지배체재를 확립하기 위해서인가요?"


"지금의 통치로는 각지에서 반기를 들면 그것만으로도 병력의 운용에 지장이 생긴다. 키나이(畿内)의 안정(安堵)은 혼간지를 치기 위해서는 필수적이다. 뭐 너 자신이 나가야 할 일은 그다지 없겠지만 말이다"


"어, 그건 무슨 의미인가요?"


시즈코의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고, 노부나가는 히죽하고 웃음을 떠올릴 뿐이었다. 이런 태도를 취할 떄의 노부나가는 대부분 자비없는 일을 생각하고 있다고 시즈코는 경험적으로 배웠다.


"너 자신이 어찌 생각하던, 타케다와 나가시마(長島)와의 싸움에서 보인 시즈코 군의 활약은 압도적(頭抜け)이었지. 그 시즈코 군의 본대가 움직이지 않고, 각지에 별동대가 파견된다면 적은 어찌 받아들이겠느냐?"


"……별동대의 파견은 경고. 설령 물리쳤다 해도, 그 몇 배의 군세에게 공격받아 멸망당한다는 것일까요"


"좋은 수읽기(読み)다. 간단히 굴복했다고 하면 체면이 서지 않겠지만, 타케다조차 꺾어버린 본대가 상대로는 싸움이 되지 않지. 경고 단계에서 얼마나 잘 대처할지, 목표가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 고생은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엄청난 정신적 중압이라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이제는 부성(付城) 전술이 표준화된 오다 군이다. 눈 깜짝할 사이에 주위를 포위당하여, 치고 나가려고 해도 신식총에 박살나고, 원군이 없는 절망적인 농성을 강요당한다.

사방팔방으로부터 언제 공격받을지도 모른 채 시시각각 줄어가는 병량(兵糧)을 바라보며, 이윽고 찾아올 죽음을 기다리는 완만한 자살. 보통의 신경으로는 견뎌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뭐, 일벌백계(一罰百戒)를 실천하고 있는 것 뿐이다. 죽은 자의 살을 먹고 피로 목을 축이는 참상을 알게되면, 섣불리 대들려는 생각 따윈 하지 않겟지"


"일벌(一罰)이 너무 가혹한 것 같은 생각도 듭니다만, 뭐 그건 어쩔 수 없겠죠. 피아의 차이를 추정하여 최선의 수를 강구하는 것이 영주(国人)의 임무이니까요. 판단을 잘못한 영주를 모신 댓가는 치루어야만 하겠죠"


"그 말대로다. 자, 첫 해돋이도 충분히 만끽했다. 슬슬 돌아가지 않으면, 노(濃, ※역주: 노히메) 녀석이 설날 요리를 다 먹어버리겠다"


말을 마침과 동시에 노부나가는 발을 돌렸다. 멍해져 있던 시즈코였으나, 정신이 들자 당황해서 노부나가의 뒤를 쫓았다.


"올해도 천하를 얻는 데(天下取り) 바쁠 것 같구나"


시즈코가 다가오는 발소리를 들으면서 노부나가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설날(元日) 아침, 노부나가가 처음으로 인사를 하는 것은 그의 일가친지(一族衆)라고 정해져 있다. 이것은 '가족이나 친족을 가벼이 여기는 자는, 가신이나 병사들에게도 마찬가지다'라는 노부나가의 신념에 따른 것이다.

솔선해서 모범을 보이고자, 노부나가는 정월(正月)을 처자나 친족들과 함께 맞이했다. 즉, 그 이전에 시즈코와 일출을 보러 나간 것은, 노부나가에게 시즈코는 가족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노부나가가 그것을 의도했는지, 아니면 무의식적인 것인지는 그 이외에는 알 방법이 없다.


"에취. 우우…… 누가 내 이야기라도 하고 있는 걸까"


첫 해돋이를 본 후에 일단 집으로 돌아온 시즈코였으나, 점심 때가 지났을 무렵 다시 노부나가가 있는 곳으로 갈 필요가 있었다.

그것은 설날에 열리는 노부나가의 다과회(茶会)에 참가하기 위해서다. 항상 참가하지 않았던 시즈코였으나, 아무래도 올해만큼은 참가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귀찮다고는 생각하면서도, 시즈코는 정장으로 갈아입었다. 몸단장을 마친 시즈코는 아야(彩)의 전송을 받으며 노부나가의 거성(居城)으로 출발했다.


아무래도 정월쯤 되면 사람들의 왕래도 줄어들어, 상인들이 빽빽하게 오가는 큰길도 한산했다.

주요 도로(街道)는 물론이고 도로 근처의 큰 길은 모두 포장되어 있는 덕분에, 도중에 아무 일도 없이 기후 성(岐阜城)에 도착할 수 있었다.

천하인(天下人)에 가장 가깝다고 평가되는 노부나가가 있는 기후 성쯤 되면, 노부나가에게 새해 인사를 하러 방문한 사람들이 줄을 짓고 있어, 수행원들도 포함하면 발디딜 틈도 없을 정도로 북적이고 있었다.

시즈코는 낯익은 소성(小姓)에게 말을 맡기고는 만나기로 한 사람들을 찾았다.


"분명히 현지 집합이라는 이야기였는데…… 아, 저기 있네"


사이조(才蔵)나 나가요시(長可)도 정월에는 부름을 받았지만, 그들은 집으로 돌아갔었기에 점심때부터 노부나가에게 인사하러 갈 때 현지에서 집합하기로 되어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자 시즈코는 사이조의 모습을 발견했다. 시즈코가 사이조의 곁으로 달려가자, 사이조도 시즈코를 확인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시즈코 님. 올해도 잘 부탁드립니다"


두 사람은 새해 인사를 나누었다. 그게 끝나자 사이조는 평소대로 시즈코의 뒤에 섰다. 새해 첫날부터 호위대(馬廻衆)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거 아닌가, 라고 생각한 시즈코였으나 사이조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놔두기로 했다.

그 후, 나가요시에 아시미츠(足満), 타카토라(高虎)가 차례차례 합류했다. 놀랐던 것은, 케이지(慶次)가 새해 인사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아무래도 올해는 갔다와라, 고 양부(養父)께서 말씀하셔서 말야"


카부키모노(傾奇者)인 케이지도 은혜를 입은 양부에게는 약하여, 올해는 인사를 드리고 와라, 라는 양부의 말에 거역할 수 없었다. 이것저것 생각하는 바가 있는 듯, 케이지는 미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좋은 양부시잖아요. '효도하고 싶을 때 정작 부모님은 안 계신다'고 하잖아요"


"알고는 있어. 하지만, 아무래도 이 나이가 되면 뭘 해야 좋을지"


지금까지 카부키모노로서 살아온 케이지에게 무엇이 양부에게 효도하는 것이 될지 떠오르지 않았다. 머리를 쥐어뜯어봐도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아, 그는 몹시 괴로워하며 정월을 맞이했다.


"뭐, 천천히 생각하면 되지 않아요? 서두르면 일을 그르친다, 고 하니까요. 슬슬 가죠"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시즈코는 노부나가가 있는 곳으로 가기 위해 모두와 걸음을 맞추어 걸었다. 아시미츠가 옆에 서고, 케이지나 사이조, 나가요시는 시즈코의 뒤를 따랐다.

가는 도중에 여기저기서 속삭이는 소리가 귀에 들렸다. 그 내용은 다양해서, 시즈코의 업적을 칭찬하는 것도 있고, 선망이나 질투, 욕설(悪罵)에 가까운 것까지 있었다.


선망의 대상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전국시대 최강의 자리를 빼앗는 데 성공했다. 최강의 자리에 있는 한, 이 이상의 무공은 존재하지 않는다. 시즈코의 무공에 트집을 잡으면 창피를 당하는 것은 그들 자신이 되는 것이다.

타케다를 패배시켰다는 것은, 시즈코를 기껏해야 뒷바라지 역할(裏方)이라고 가볍게 여기던 사람들이 죽었다 깨어나도 견줄 수 없는 압도적인 무공이었다.


한편, 질투나 악의를 받는 시즈코는, 뉘집 개가 짖느냐는 식으로 태연하게 받아흘리고 있었다.

사람이란 감정의 생물인 이상, 그러한 악의를 받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달관하고는, 상대해봤자 소용없다고 생각하고 신경을 껐다.

건설적인 의견이나 의미있는 비판이라면 받아들이지만, 단순히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비방중상(誹謗中傷) 같은 것은 피곤해질 뿐 얻는 것도 없기에 상대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설날의 노부나가는 오전을 가족이나 일족과 함께 지내기에, 필연적으로 대외적인 인사는 오후에 집중된다.

주요 가신들도 마찬가지지만, 준비를 위해 움직이는 사람들이 바쁘게 뛰어다니고 있어, 설날의 기후 성에서 사람의 기척이 끊기는 일은 없다.

애초에 노부나가의 경우에는 2일 이후에도 방문객이 끊기는 일은 없다. 어쨌든 시즈코도 다른 방문객과 마찬가지로 줄을 서서, 노부나가와의 접견을 허락받고 정월 인사를 올렸다.


"올해도 잘 부탁한다"


시즈코가 정월 인사를 했을 때, 노부나가는 대담한 웃음을 떠올리고 있었다. 뭔가 안 좋은 예감이 든 시즈코는 어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녀의 예감은 적중했다.




(어ー, 그러니까, 어째서 이런 상황이 된 걸까)


시즈코는 내심 머리를 감싸쥐었지만, 눈 앞에 보이는 광경은 변하지 않았다.


"왜 그러느냐. 사양할 필요 없다. 원하는 것을 말해라"


노부나가는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그의 눈 앞에는 요우헨텐모쿠챠완(曜変天目茶碗)이 놓여 있었다.

현대에서는 국보(国宝), 그것도 현존하는 것은 3개 뿐이라는 최상급의 텐모쿠챠완(天目茶碗)인 요우헨텐모쿠챠완이 아까운 기색도 없이 놓여 있었다.

그 뿐만이 아니라, 그 밖에도 노부나가가 애용하는 다기(茶器)가 늘어놓아져 있었다. 다기 뿐만이 아니라 히노모토고우(日本号)나 짓큐미츠타다(実休光忠) 등의 명창(名槍)이나 애용하는 칼까지 놓여 있었다.


명품들을 앞에 두고 시즈코는 한숨을 쉬었다. 노부나가는 미카타가하라 전투에서 타케다를 결정적으로 패배시키고, 또한 나가시마의 잇코슈(一向衆)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그 최대 공로자인 시즈코에게, 노부나가는 원하는 것을 주겠다고 말했다. 저번과는 달리, 이번에는 이런저런 현물(現物)을 시즈코에게 보여주면서 그는 논공행상을 시작했다.


(어쩌지. 다기 같은 건 필요없고, 취급에도 곤란하고…… 그렇다고 해서 칼이나 창이라는 것도 멋대가리가 없겠지)


마음 속으로 신음하면서 시즈코는 생각했다. 갑작스레 정월에 논공행상을 하는 것도 노부나가에 뭔가 생각이 있어서일거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현물이 잔뜩 있는데 땅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는 시점에서, 말로만 하지 않았지 뭔가 속셈이 있는 논공행상이라고 말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잠시 생각한 후 시즈코는 결론을 내렸다. 이거라면 노부나가의 체면을 지키면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손에 넣을 수 있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영…… 어흠, 그러시면 '주상(上様, ※역주: 적당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서 주상(主上)으로 의역)'께 세 가지 청이 있사옵니다"


주상(上様)이란 노부나가의 경칭이 된다. 전까지는 '영주님(お館様)'이었으나, 연말 무렵부터 주위에서는 노부나가를 '주상'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타케다와 나가시마를 쓰러뜨린 것 때문에 호칭이 바뀌었는지, 아니면 단순히 우연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시즈코도 노부나가를 '주상'이라고 고쳐 불렀다.


"말해보아라"


노부나가의 재촉을 받고 시즈코는 자세를 바로했다. 히죽 웃으며 이야기를 들을 자세를 취하는 것을 보니 노부나가는 시즈코의 언동을 재미있어하는 듯 보였다.


"……그럼 첫번째로, 싸움에서 죽은 자들의 영을 진혼(鎮魂)할 신사(社)의 건축 허가를 받고 싶사옵니다. 두번째는 토우시로 요시미츠(藤四郎吉光)의 칼 수집에 조력을 부탁드립니다. 세번째는 히노모토고우를 받고 싶사옵니다"


"좋다, 히노모토고우는 네게 주마"


시즈코의 청을 노부나가는 주저없이 승낙했다. 일순의 망설임조차 보이지 않았던 것에 오히려 시즈코 쪽이 당황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노부나가는 시즈코가 당황하는 것을 보고 히죽 웃을 뿐이었다. 몇 번인가 심호흡을 하여 마음을 가라앉힌 후, 시즈코는 노부나가에게 고개를 숙였다.


"황공하옵니다(有り難き幸せ). 하면, 히노모토고우의 운반 준비를 위해 이만 실례하겠사옵니다"


히노모토고우를 운반할 준비를 한다, 는 명목으로 시즈코는 자리를 벗어날 생각이었다. 너무 신경이 쓰여서 지쳤다고도 할 수 있다. 조금 휴식할 시간이 있었으면 하여 말한 이유였으나, 노부나가는 별로 신경쓰지 않고 승낙했다.


"붙잡히거든 포기하거라"


마지막에 노부나가가 한 말에 시즈코는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히노모토고우의 운반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시즈코는 노부나가가 한 말의 의미를 알게 된다.


"시즈코. 내게 인사도 없이 돌아가려 하다니 꽤나 몰인정(不人情)한 처사로구나?"




"피곤해. 이제 두번다시 가고 싶지 않아"


히노모토고우의 운반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운나쁘게 노히메에게 붙잡혔기에 시즈코는 크게 고생을 했다.

간신히 운반에 관한 지시는 내렸지만, 그 이상 뭔가 말하기 전에 시즈코는 노히에메게 질질 끌려갔다.

도중에 이치(市)와 챠차(茶々)들의 눈에도 띄여서, 그대로 여자들이 모여있는 방으로 강제 연행되었다. 그로부터 시즈코에게는 지옥이었다.

노히메와 이치의 콤비는 전혀 자비가 없었고, 반대로 처음 만나는 사람은 이미 시즈코에 대해 뭔가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지, 대응하는 것만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뭐 주상께 야겐(薬研)이나 란(乱) 같은 것의 하사를 확약받았으니 잘됐다고 생각할까……"


야겐토우시로(薬研藤四郎)는 아시카가(足利) 쇼군 가문(将軍家)의 보물(重宝)이었으나, 마츠나가(松永) 단죠(弾正)가 아시카가 요시테루(足利義輝)를 암살했을 때, 후도우쿠니유키(不動国行) 등과 함께 빼앗아서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겐키(元亀) 4년 1월 10일에, 마츠나가 단죠는 야겐토우시로와 후도우쿠니유키를 노부나가에 헌상했다고 전해진다.


"아, 기왕이면 후도우쿠니유키도 달라고 할 걸 그랬나. 뭐, 애도(愛刀)로 삼으실테니 무리겠지만"


"시즈코 님, 집계가 끝났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하늘을 바라보고 있자니 아야가 말을 걸어왔다. 정월부터 일을 시키게 되어버렸으나, 그걸 생각해도 조금 곤란한 상황이 시즈코에게는 있었다.


"그래서, 얼마나 됐어?"


"'주상'으로부터의 하사금을 합쳐 2만 7500관문(貫文)이 됩니다"


문제는 시즈코가 소지한 돈이었다.


"큰 돈을 받아도 곤란한데 말야"


"어쩔 수 없습니다. 오와리(尾張)나 미노(美濃)의 것은 대부분 시즈코 님이 관여하고 계시니까요. 그러니 돈이 가장 무난한 것이겠죠"


어째서 시즈코가 큰 돈을 소지하고 있냐 하면, 노부나가는 무공을 세운 사람에게는 다기나 돈으로 보수를 지불하고 있었다.

무장들이 다기를 원하는 가운데, 시즈코는 노부나가에서 돈을 받아서 개간(開墾)을 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언제부터인지 시즈코에게는 돈으로 보상을 해주는 것이 당연하게 되었다.


하지만 오와리, 미노에서는, 치타 반도(知多半島)에 농업용수를 끌어오는 등의 국가적 초대형 공사 이외에는 어느 정도 개간은 끝나 있었다.

다른 지역은 각각 지배자가 있기에 시즈코는 개간에 대해 참견할 권리가 없다.

그녀의 영향력은 오와리, 미노에 한정되어 있었다. 그래도 노부나가의 직할지(膝元)에서 이것저것 할 수 있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특권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어쩔까…… 아, 이세(伊勢) 신궁(神宮)이 있었지. 신궁 식년천궁(式年遷宮, ※역주: 신사(神社)에서 일정한 해에 새 신전을 짓고 제신(祭神)을 옮기는 일)을 위해서 기부하자. 일단 3000관 정도면 되려나"


"시즈코 님이시니 가신이나 병사들에게 나누어주실 거라 생각했는데요"


"그것도 좋지만, 슬슬 다른 곳에도 돈을 돌게 해야지. 그러러면 큰 곳에 쓰는 편이 편해. 기부하면 나중에 '오다 가문은 종교 세력(寺社勢力)을 멸망시킬 생각은 없다'는 어필도 되고 말야"


노부나가는 종교 세력에 가혹한 태도를 견지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평등하게 대우하고 있었다. 적대한다면 어떤 종교, 종파를 불문하고 싸우고, 중립이나 아군 진영의 편을 든다면 평등하게 보호했다.

시즈코가 포경(捕鯨)에 활용하고 있는 고래 신사(鯨神社)가 노부나가에게 아무 말도 듣지 않고 활동할 수 있는 것도, 그들은 노부나가와 적대할 생각은 없이 말 그대로 고래에 관한 일에만 종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말하면 무구(武具)를 구입하고 낭인(浪人)을 고용하기 시작하면 노부나가의 눈길을 끌게 된다.


"일단 주상께 이세 신궁에 대한 기부에 대해 허가를 받아줘. 그 이외에는 다른 사람들이 돌아왔을 때 생각하자"


"알겠습니다"


"잘 부탁해ー. 이제 곧 이사인데, 이사가 끝나면 모두에게 직함 같은 걸 줘야겠네. 슬슬 제대로 조직화하지 않으면 누가 뭘 담당하고 있는지 알 수 없게 되니까"


노부나가가 준비한 시즈코의 저택에 이사하면, 지금 이상으로 고용인(家人)이 늘어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지금까지처럼 어정쩡한 조직으로는 운영할 수 없게 된다. 원활하게 가문을 운영하기 위해서도 직함을 정해줄 필요가 있었다.


"이미 생각하신 바가 있으신가요"


"일단 바깥쪽과 안쪽을 구별해야지. 바깥쪽은 케이지 씨나 카츠조(勝蔵) 군들이 정점이고, 안쪽은 아야 짱이나 쇼우(蕭) 짱이 정점이려나"


"……그건……"


아야는 약간 망설였다. 쇼우는 마에다 토시이에(前田利家)와 마츠(まつ)의 딸이다. 집안(家柄)은 흠잡을 데 없고, 실력도 다른 사람들이 인정할 정도다. 지금에 와서는 내용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서류(書状)에 '쇼우(蕭)'라는 도장(印鑑)을 찍어 처리할 권한도 있다.

즉, 시즈코의 집은 쇼우가 관리(切り盛り)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반면 아야의 작업은, 지금도 시즈코가 사적, 공적을 가리지 않고 소유하고 있는 것들의 관리이다. 즉, 창고의 물건과 돈의 관리. 바꿔 말하면 아야의 일은 현대에서 말하는 관재인(管財人)이 된다.


"집안 같은 건 신경쓸 필요 없어. 그렇다기보다 나는 창고의 관리를 누구에게 맡길지가 가장 고민되는 부분이었거든"


"그건 어째서인가요"


"간단해. 내 창고에는 여러가지가 들어있어. 그 중에는 아직 세상에 알리고 싶지 않은 것들도 있어. 그런 것들의 유혹에 지지 않고 제대로 관리하는 사람이 창고를 담당해 줬으면 하는거야. 타케다와의 싸움도, 창고에 보관하고 있는 신식총이 유출되었다면 지금같은 결과가 되지는 않았을 테니까"


돌려 말한 것이지만 시즈코가 하고 싶은 말은, 가장 신용하고 있는 것은 아야라는 것이었다.


"시즈코 님의 믿음에 보답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조금은 편하게(デレ) 가자고, 아야 짱. 지금은 다른 사람도 없으니까, 자! 언니의 가슴에서 감격의 눈물을 흘리거라!"


양손을 펼치고 웰컴(welcome)을 하는 시즈코를 보고, 신용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느꼈던 감사한 마음이 싹 날아간 아야였다.


"그럼 3000관문을 준비해 오겠습니다"


"어~이, 이대로는 나는 꽤나 썰렁한데 말야…… 큭, 아야 짱이 편하게 행동하는 날은 언제가 되는 것이냐"


"바보같은 말씀 하지 마시고, 정월다운 일을 하며 지내 주십시오"


그런 말을 하는 아야는 깨닫지 못했다. 그녀 자신이 희미하게 미소를 떠올리고 있다는 것을.




이제 곧 이사라는 타이밍에 노부나가로부터 쿄(京)로 동행하라는 명령이 시즈코에게 전달되었다.

매사냥을 한다는 것이 표면적인 이유였으나, 진짜 목적은 달리 있다고 시즈코는 이해했다. 애초에 매사냥을 하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무장(武装)을 지시받았기 떄문이다.

명백한 시위(示威) 행위였다. 노부나가는 자신의 기세를 드러내보여, 적대자들의 반항의 싹을 잘라버릴 생각이었다. 그러기 위해서 시즈코 군을 활용할 생각이라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꽤나 심한 생각을 하시네. 뭐 이걸로 싸움이 줄어든다면 좋은 거지만"


명령서를 다 읽은 시즈코는, 아야에게 평소의 멤버를 모으도록 지시했다. 케이지만큼은 어디에 있는지 몰라서 시간은 걸렸지만, 어찌어찌 전원을 모으는 데 성공했다.


"후아아~, 자고 있는데 깨우다니, 시즛치는 너무한데"


"미안해요. 뭐, 일이라고 생각하고 포기해요. 이게 끝나면 아마 한가해질 거라 생각하니까"


크게 하품을 하면서 불평하는 케이지에게 시즈코는 한 손을 세우며(拝む) 사과했다. 케이지도 그렇게까지 불만은 아니었던 듯, 사이조가 팔꿈치로 찌르자 볼을 긁으며 입을 다물었다.


"그럼, 이번에는 단순히 쿄로 가기만 하는 거에요. 다만 이런저런 속셈들이 얽혀 있으니, 제대로 무장을 하고 가는 거에요. 뭐 이쪽은 이만한 힘이 있다, 라고 보여주기 위한 거겠죠"


"그거 참 의욕이 솟지 않는 얘기네.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나갈 필요가 있는거야?"


"자자, 이 정도로 떨어져나가는 상대 같은 건 처음부터 기대하지 않아도 되잖아요. 힘을 보여주고, 그래도 싸울 기개를 가진 상대를 확인한다고 생각하면 나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음, 뭐…… 그건 그렇네"


가장 먼저 불평하던 케이지를 시즈코는 간신히 설득했다. 의욕이 솟지 않는 것은 시즈코도 마찬가지다.

굳이 그런 짓을 하지 않아도, 이미 타케다와의 싸움에서 실컷 실력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이 이상 보란 듯이 뭘 할 필요는 없다고 시즈코도 생각하고 있었다.


"뭐, 쿄에서는 놀아도 문제없지 않겠어요? 비용이라면 어느 정도는 내줄게요"


"휘익ー, 과연 시즛치. 말이 통하잖아"


"이봐, 한심한 소리를 하지 마라. 평범해 보이지만, 시위 행위도 중요한 일이라고"


"알고있어. 알고는 있지만, 재미없는 건 재미없다고"


"뭐ー 나도 내키진 않아요. 하지만, '그것'을 수령해야 하니까, 마침 잘 됐다고 생각하려고 해요"


"오, 그럼 드디어 양도받을 수 있는 건가!!"


시즈코의 말에 나가요시가 반응했다. 나가요시의 질문에 시즈코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두 손을 쳐들며 기뻐했다.

'그것'은 해외의 토종(土着) 고양이였다. 터키시 앙골라에 반한 이후, 노부나가는 다른 해외의 고양이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더 많은 해외의 고양이가 가지고 싶다, 언제부터인지 그런 욕구를 품게 된 노부나가는, 시즈코에게 '돈은 얼마든지 들어도 좋다. 다른 고양이도 모아라'고 명했다.


가지고 있는 연줄을 최대한으로 활용하여 시즈코는 서양 고양이를 모았다.

우선 러시아 동부에서 자연발생한 토종 고양이 사이베리안(Syberian). 서력(西暦) 1천년 무렵부터 존재가 확인되어, 지금은 러시아의 역대 대통령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고양이다.

호기심이 와성하고 두뇌가 명석하면서 온화하고 참을성이 강하며, 그리고 어리광이 많은 성격의 고양이다.

그러면서 탁월한 사냥 능력을 가지고 있어, 물을 기피하는 고양이 종류임에도 물고기를 포획하는 사이베리안까지 확인되었다.


다음으로 영국의 토종 고양이인 브리티쉬 숏헤어(British Shorthair). 그 시작은 고대 로마가 영국을 침공했을 때, 식량을 노리는 쥐 대책으로 데려온 고양이가 시초라고 전해진다.

20세기에 품종의 표준화가 확립되었으나, 그보다 1세기나 전에 영국 국내에서 토종 고양이로서 관심을 받고 있었다.

본종(本種)은 단모종(短毛種)이지만, 장모종(長毛種)으로서 브리티쉬 롱헤어(British Longhair)라는 고양이도 존재한다. 이쪽은 비교적 새로운 고양이 품종이다.


다음으로 노르웨이의 토종 고양이 노슈크 스쿠캇(Norsk skogkatt, ※역주: 구글번역에서 들은 발음대로 적음). 영어로 노르웨지언 포레스트 캣(Norwegian Forest Cat)이라고 불리며, 의미는 노르웨이어와 마찬가지로 노르웨이숲 고양이다.

노르웨이에서는 옛부터 존재하는 토종 고양이인데, 4천년 이상 전부터 존재하는 고양이라거나, 남유럽에 있던 단모종이 노르웨이의 추위에 견디기 위해 장모종으로 변화했다거나, 11세기에 바이킹이 데려온 고양이가 원조라고 하는 등, 지금도 그 기원이 뚜렷히 밝혀지지 않았다.

확실한 것은, 방수기능이 있는 2중 털 등, 노르웨이의 환경에 적응했다는 점이다.

다만 한랭지방에 적응한 품종이기에, 아열대나 열대 지방에서는 열중증(熱中症)에 걸리기 쉽고, 방수를 위한 피부는 피부염에 걸리기 쉬운 문제가 있다.


마지막으로 가장 오래된 집고양이라고 하는 이집트의 토종 고양이 이집션 마우(Egyption Mau). 마우란 고대 이집트어로 고양이를 의미한다.

피라미드의 벽화에도 이집션 마우로 보이는 것이 그려져 있어, 이집션 마우는 고대 이집트 때부터 존재했던 게 아닐까라고 추측되고 있으나 확증은 없다.

반점(斑点) 무늬를 가진 고양이인데, 이 무늬는 고양이 품종들 중에서 유일하게 사람의 손이 닿아 생겨난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반점 무늬가 되었다고 한다.


참고로 현대의 이집션 마우는 가장 오래된 고양이로 유명한데, 러시아 왕녀 나탈리(Natalie Trubetskaya)가 이집트에서 집고양이를 몇 마리 들여와서 미국에 고양이들과 함꼐 망명한 후에 품종개량된 고양이가 정식 품종으로 등록되었기에, 비교적 새로운 미국 원산(原産)이라고도 한다.

시즈코가 들여온 것은 나탈리 왕녀가 이집트에서 들여왔다고 하는 집고양이다. 혼란을 막기 위해 시즈코는 이집션 마우라고 부르기로 했다.


이러한 토종 고양이들을 구입한 시즈코였으나, 그 구입 방법은 조금 특수했다. 일단 이 시대에, 고양이는 짐을 쥐로부터 지키는 중요한 존재였다.

항상 보아 익숙한 토종 고양이라고는 해도, 남만 상인들은 고양이를 간단히 넘겨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시즈코는 고양이를 일시적으로 맡아서, 일본에서 번식시킨 후에 남만의 배에 부모 고양이를 반납한다는 방법을 취했다.

물론, 그 동안 선박은 이동할 수 없게 되지만, 그에 드는 비용은 노부나가(정확히는 사카이(堺)의 상인들)가 부담했다.


이렇게 키워진 새끼 고양이가 드디어 양도될 수 있는 시기가 되었다. 양도는 언제나처럼 쿄에서 이루어진다.

그밖에도 시즈코가 의뢰한 것들이 있지만, 그건 다음으로 미루어도 문제없었다.


"좋아좋아, 나는 의욕이 마구 솟아나는데"


"타산적(現金な)인 녀석이군"


나가요시의 180도 달라진 태도에 사이조는 어이가 없어졌다. 하지만 의욕이 없는 것보다는 있는 쪽이 낫다고 생각하고 그 이상의 쓴소리는 하지 않았다.

케이지는 의욕이 없는 태도이기는 했지만, 시간때우기는 될 거라고 생각했는지 강한 거부반응을 보이지는 않았다.


"뭐, 편한 마음으로 가자고요. 그럼 잘 부탁해요"


시즈코의 마무리에, 각자 나름대로 대답했다.




1월 하순, 쇼군 요시아키는 타케다가 패한 것 때문에 마지못해 노부나가에게 항복했다. 하지만, 노부나가 본인은 요시아키가 오다 가문에 적대하여 거병했던 것조차  몰랐다.

몰랐다, 라기보다 떠오르지조차 않았다. 왜냐하면 그의 머릿속은 시즈코가 타케다를 쳐부술 때까지 계속 그쪽에 집중되어 있었던 것이다.

처음으로 알게 된 미츠히데(光秀)도 보고를 올리기는 했지만, 그 이후에는 타케다에게 집중하고 있었기에 쿄에 돌아왔을 때 요시아키로부터 사자가 와서 겨우 기억해냈다는 상황이었다.


그 정도로 요시아키의 거병은 노부나가에게는 하찮은 일에 불과했다.


이번에, 형식상으로는 경솔하게 거병한 요시아키에 대해 쓴소리를 하는 형태이지만, 쿄의 모든 사람이 노부나가는 요시아키를 징벌하기 위해 왔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실제로 그 생각은 맞았다. 단지 질책할 뿐이라면 군대를 끌고오지는 않는다. 군대는 요시아키에 대한 위압과 위협을 위한 것이라고 쿄의 백성들은 생각했다.


"그러고보니, 이제 곧 오다 군이 오는 모양이야"


"쇼군 님은 거병했다면서 한 번도 싸우기 전에 항복한 건가. 하여간 한심하구만"


"맞아맞아, 하다못해 한 번은 좀 싸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까지의 언동이 겹쳐서, 쇼군 요시아키에 대한 경의 따윈 바랄 수도 없었다. 애초에 경의가 없다면 천하인조차 바보 취급하는 것이 쿄의 백성들이다.

한 번도 싸우지 않고 항복했다고 하면 아무리 쇼군이라고 해도 비웃고, 웃음거리로 삼는다.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그들이 향하고 있던 쪽과는 반대쪽에서 남자가 한 명 달려왔다.


"오, 상황을 보러 간 녀석이 돌아왔네. 어땠어?"


"어, 어어어어떘어가 아냐! 이, 일단 물러나, 너희들!"


무릎에 손을 짚고 호흡을 고른 남자는, 다급하게 밀어내듯이 남자들을 가장자리로 비켜나게 하려 했다. 곤혹스러워진 남자들이었으나, 그 비정상적인 당황함에 투덜거리면서도 그 말을 따랐다.

도로 가장자리로 비켜나고 조금 지나자, 오다 군의 깃발이 보였다. 보려고 목을 길게 뺀 남자를, 상황을 보고 왔던 남자가 다급히 잡아끌었다.


"(뭐, 뭐야. 보는 정도는 문제없잖아)"


"(됐으니까 내 말대로 해!)"


그러고 있을 때 오다 군이 그들의 시야에 들어올 정도로 가까워졌다. 그리고, 상황을 보고 왔던 남자가 비정상적인 모습을 보인 이유를 그들은 알게 되었다.


오다 군의 행진은 대단히 통솔이 잘 잡혀있었다. 5명을 한 줄로 하여, 굵은 나무 같은 열을 짓고 있었다.

보통, 잡병이나 아시가루(足軽)가 뒤섞이면 대열은 모양새를 갖추지 못하고 가늘고 긴 형태가 된다. 그런데 등간격(等間隔)으로 열을 짓고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경악스러운 광경이다.


게다가 무장도 놀라웠다. 양쪽 끝의 사람들은 창을 들고 있었으나, 안쪽의 세 명은 총을 장비하고 있었다. 그게 길게 열을 짓고 있다. 이해력이 좋은 사람이라면 그것만으로도 대량의 화승총을 소지하고 있다, 라고 생각한다.

하물며 멀리서 보고 있던 간자들이라면, 그 광경만으로도 어떻게 보고해야 할지 골머리를 썩을 것이다.


(거 참, 주상께서도 짓궂으시다니까. 분명히 쇼군하고 쿄에 있는 간자들 양쪽에게 보여주려고 하는 거겠지. 현대에서 말하는 군사 퍼레이드일까?)


벌써 몇 번째 본건지 알 수 없는 쿄의 백성들의 놀란 얼굴을 흘려보면서 시즈코는 말고삐를 쥐었다. 도보 행진 훈련은 현대의 자위대도 할 정도로 체력의 향상을 목적으로 한 기본적인 훈련이다.

또 하나, 지형의 파악이라는 목적도 있지만, 시즈코는 체력의 향상을 주 목표로 하고 있었다. 병사 훈련소에서는 기본 중의 기본이며, 입대한 사람 모두가 셀 수 없을 정도로 한다.

훈련에 따라서는 배낭의 무게가 바뀌어, 가벼우면 20kg, 무거우면 60kg를 짊어진다. 거리도 짧으면 몇 km이지만, 길면 오와리에서 기후까지 이동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기에 노부나가는 시즈코 군을 쿄로 데려왔다. 통솔이 잡힌 군대가 많은 화승총(절반 이상은 훈련용의 사격성능이 없는 목업)을 장비하고 있는 광경은 적의 전의를 꺾기에 충분하다.

무장하고 행진하기만 하면 반항의 싹을 자르고, 쓸데없는 싸움을 줄이며, 적을 편드는 자들까지 줄일 수 있다. 게다가, 노부나가를 따르는 것은 타케다를 쓰러뜨린 시즈코 군이다.

노부나가의 입장에서는 이만큼 효율이 좋은 책략은 없었다. 얼핏 보기에는 그냥 걷기만 하는데 적이 줄어드는 것이니.


(뭐, 쓸데없는 싸움이 줄어드는 건 나도 찬성이지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시즈코는 목적지로 향했다.


그들을 놀란 표정으로 바라본 쿄의 백성들은 한동안 멍하니 있었다.


"……뭐, 뭔가, 전에 봤을 때보다 더 강해진 거 아냐? 오다 군은"


누군가가 중얼거리고, 이어서 겨우 실감이 났는지 남자들은 얼굴에서 땀을 흘렸다.


"장난 아닌데…… 저런 놈들에게 거스르려는 건 바보나 하는 짓이야"


"맞아맞아. 게다가 생각해봐. 오다 군이 강하다는 건, 이 도시가 안전하다는 이야기야"


"소문으로는 타케다 군이 전력으로 싸웠는데 박살을 내서 쫓아버렸대"


"으ー음, 오다 군은 굉장하네"


그 후에도 남자들이 이러쿵저러쿵 대화를 하고, 그 대화를 들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를 전해, 어느새 원래 이야기에 꼬리 뿐만이 아니라 다리까지 붙어서 멋대로 부풀려져버렸다.

쿄의 백성들의 오다 군에 대한 소문을 들었을 때, 노부나가는 남의 눈도 신경쓰지 않고 크게 소리내어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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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

전국자위대

戦国自衛隊


작가: 半村 良


번역: 가리아




제 2장


02 켄신(謙信)



히라이(平井) 상병(士長)이 배려하여 가져온 접이식 의자에 앉아 두 사람은 외통수 장기(詰将棋) 같은 대화를 계속했다. 대화의 흐름 하나로 영구히 접점을 잃어버릴지도 모르는 회담을, 두 사람은 끈기있게, 원하는 방향을 찾으며 계속했다.


"지금 에치고(越後)는……"


이라며 사내는 정세를 이야기했다. "북쪽으로 이로베(色部) 씨, 남쪽으로 아시나(蘆名), 우에스기(上杉), 무라카미(村上)의 각 가문, 그리고 서쪽으로는 진보(神保) 씨와 그것을 등 뒤에서 조종하는 아사쿠라(朝倉) 씨로 둘러싸여, 그야말로 다난(多難)한 때를 보내고 있소이다. 우리 주군이신 코이즈미(小泉) 에치고노카미(越後守)는 맹주(明主)이시나, 아무래도 강적들에게 둘러싸여서 싸움에 쫓기고 있어, 예전에 우리 영지(領国)였던 아가노가와(阿賀野川) 이북을 이로베 일족에게 빼앗겨도 되찾을 여유가 없는 상황이외다. 여기에 당신들과 싸우게 되면, 먼저 이 사카이가와(境川) 맞은편 기슭의 미야자키(宮崎) 요새(砦)에 있는 쿠로다 히데하루(黒田秀春) 놈이 기뻐하며 치고 나올 것이 틀림없소"


그렇기에 이 문제는 온건하게 처리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바(伊庭)도 그 점에서는 이의가 없었다.


"기일(期日)에 관해서는 확실히 말씀드릴 수 없지만, 저희들이 완전히 우군에게 버림받았는지 어쩐지, 아직 확실하지 않은 상황입니다. 또, 언제 이 상태에서 자력으로 탈출할 수 있을지…… 그 가능성도 없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다만, 어느 쪽이든, 당분간 이 지점을 떠날 수 는 없습니다. 한 발자국이라도 이곳을 떠나면, 그야말로 돌아갈 수 있을 것도 돌아갈 수 없게 되어 버립니다"


"그건 오히려 반가운 일이오. 당신들이 여기에 얼마나 오래 있으시던, 싸울 걱정만 없다면 전혀 상관없소. 그러나, 이곳에 수십일이나 가만히 있는 것은 불편하시지 않겠소이까?"


"곤란한 건 그것입니다. 저희들의 물자 중에서 가장 적은 것이 식량입니다"


"도움을 드리지요. 단, 신명(神明)을 걸고 적으로 돌아서지 않는다고 맹세해 주신다면 말이오"


"그거야 뭐…… 당신들 뿐만 아니라, 강 저편에 있는 쿠로다인가 하는 사람의 병사들과도 전투는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건……"


사내는 쓴웃음을 지었다. "쿠로다 세력과는 싸우게 될 거요(역주: 원문의 討たれい라는 표현의 의미를 정확히 모르겠음). 히데하루 놈과는 지금 한창 전쟁중이외다"


"허허……"


이번에는 이바가 쓴웃음을 지었다. 사카이가와가 엣츄와 에치고의 경계인 이상, 이곳에 분쟁이 발생하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이 사내가 말하는 것과 같은 전투 상태가 되어 있다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느긋한 풍경이었다. 사내가 분노한 표정으로 설명한 것에 따르면, 쿠로다 히데하루라는 인물은 원래 코이즈미 가문의 가신(家臣)이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비밀리에 시나노(信濃)의 우에스기 가문과 내통하여, 주군인 코이즈미 에치코노카미 유키나가(行長)가 호쿠에츠(北越)의 이로베 가문을 치러 나간 사이에 돌연 반기를 들어 영지를 지키고 있던 나가오 하루카게(長尾晴景)를 죽여버린 것이다. 하루카게는 이 사내의 형에 해당하며, 그 후에 카스가 산성(春日山城)에서 쫓겨나자 엣츄의 진보 가문으로 가서, 하필이면 그 에치고 측 최전선인 미야자키 요새의 수비 임무를 맡았다고 한다. 아무래도 거슬러올라가면 나가와 가문과도 혈연관계가 있는 사이인 모양이라, 그렇기에 비정상적인 증오가 양자 사이에 존재하고 있었다.


"이거 곤란하군요"


이바는 그렇게 말하고 반대편 기슭을 보았다. "당신과의 사이에 평화를 유지하면, 저 양반(あちらさん)의 마음에는 들지 않는다는 거군요"


"과연, 저 양반이라……"


이바의 말투가 웃겼는지 사내는 입을 크게 벌리고 웃었다.


"실례입니다만, 한번 더 당신의 성함을"


옆에서 말없이 듣고있던 히라이 상병이 대단히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가오 헤이조 카게토라(長尾平三景虎)"


사내는 웃으며 대답했다.


"소위(三尉)님, 이 분은 혹시……"


"뭔가 상병(陸士長)"


"나가오 카게토라, 그…… 우에스기 켄신(上杉謙信)이 아닐지요"


이바는 깜짝 놀라서 사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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