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텐쇼(天正) 2년 토우고쿠(東国) 정벌(征伐)
124 1575년 2월 하순
텐쇼(天正) 2년은, 노부나가가 기후 성(岐阜城)에서 새해를 축하하는 마지막 해가 된다. 노부나가의 아즈치(安土) 이전 계획은 이미 주위에 알려져 있고, 아즈치 성(安土城)이 완공될 때까지의 임시 궁궐(仮御殿)도 완성되었으며, 이전을 향한 세세한 준비도 차질없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래저래 정신없는 연말연시를 모두가 평온하게 보낼 수 있도록 배려하여, 아즈치로의 이전 예정일은 새해 15일 무렵으로 정해졌다. 노부나가가 떠난 후의 기후 성에는 후계자인 노부타다(信忠)가 들어가서 기후를 통치하게 된다.
"설날(元日)만큼은 느긋하게 보낼 수 있네"
항상 그렇듯 설날에는 시즈코의 수하들도 대부분이 집으로 귀성한다. 잔류하는 사람은 돌아갈 집이 없거나 또는 돌아갈 생각이 없거나 둘 중 하나가 된다. 시즈코는 이곳이 집이며, 아야(彩)는 돌아갈 집이 없다. 작년까지는 둘만의 정월(正月)이었으나, 올해에는 시로쿠(四六)와 우츠와(器)가 더해져 조금 활발한 분위기가 되었다.
고용인(家人)들도 최저한의 인원만을 남기고 나머지는 집으로 돌아가게 했다. 평상시에는 그렇다치고, 정월 동안 정도는 푹 쉬었으면 하는 시즈코의 배려였다.
저택의 규모에 비해 거주하는 사람이 적기 때문에 작은 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상황에서, 시즈코는 옆에 뒹굴거리고 있는 비트만들을 쓰다듬고 있었다.
비트만 패밀리 중에서 부모에 해당하는 비트만과 바르티는 요즘 누워있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도 그럴것이, 이제 비트만 패밀리 전체가 노경(老境)에 달해 있었다.
비트만과 바르티에 관해서는 출생일을 알 수 없기에 연령은 추측할 수밖에 없지만, 인간으로 말하면 80세 이상에 해당할 거라고 미츠오(みつお)가 말했었다.
울프독(wolfdog)이라는 종을 남겼기 때문인지, 사육되는 것에 의해 본능이 옅어졌는지, 비트만 패밀리에는 순혈의 후계자가 끊겨 버렸다.
여기에 있는 패밀리가 전부이며, 그들이 생을 마쳤을 때 그들의 일족은 사라지게 된다.
"너도, 이제 할아버지구나. 계속 함께 있을 수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생물로서의 수명만큼은 어쩔 수가 없네……. 그 때를 위한 준비는 하고 있지만…… 아직 쓰게 하고 싶지 않아"
꼭 인간이 아니더라도, 늙은이와 남겨지는 이의 생활은 힘들다. 생명력이 뿜어내는 거친 기세는 자취를 감추고, 다만 평온하고 조용하게 최후를 향해 착실히 걸어간다.
시즈코의 뒤를 쫓는 것을 그만두고, 그래도 시즈코가 있을 장소를 지키며 기다려주는 비트만이 늙어가는 것을 마주하는 것은 괴롭다. 하지만, 언젠가 확실히 찾아올 그 때를, 아무 준비도 없는 채 맞이하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까지 평온하게 지낼 수 있도록 부심하는 것이 시즈코 나름대로의 도리를 지키는 법이었다.
비트만에 이어 카이저나 쾨니히 등도 순서대로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무래도 카이저들, 제 2세대의 수명에는 어느 정도 여유가 있지만, 그래도 아델하이트나 루츠의 얼굴에서 정한(精悍)함이 사라지고 부드러운 풍모로 변하기 시작하고 있었다.
"주인(飼い主)의 숙명인가…….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고 생각하지만, 상상 이상으로 괴롭네"
중학 시절의 친구가, 태어났을 때부터 함께 자라온 애견(愛犬)과의 이별을 이야기했던 것을 떠올렸다. 곁에 있는 것이 당연한, 자신의 반신(半身)이라고도 부를 수 있는 가족이 떠나간다.
그 때는, 친구의 고뇌와 비애를 이해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역시 어딘가 남의 일이었으리라. 이 정도로까지 절실한(身につまされる)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너희들의 주인으로서 어울리는 인물이 되었을까?"
말로 꺼내어 물어보았으나, 당연히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이것이 감상에 지나지 않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렇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시즈코의 심정을 헤아렸는지, 바르티가 시즈코의 손을 핥았다. 그녀의 체온과 친애의 정이 전해져오는 듯 했다.
"그런가…… 고마워"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그저 있는 그대로의 시즈코를 무리의 리더로 인정해주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시즈코는 옅은 미소를 떠올리고는 바르티의 목에 팔을 감고 끌어안았다.
평소에는 과도한 접촉을 싫어하는 바르티였으나, 이 때만큼은 시즈코가 하는 대로 몸을 맡겨주었다.
정월 2일째 이후로는 예년(例年)대로 정신없이 지나갔다. 특히 기후 성에서는 노부나가의 전출에 따라, 노부나가, 노부타다 양쪽에 인사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듯 예년 이상의 장사진이 형성되었다.
인사를 받는 노부나가들이 바쁜 것은 물론이지만, 그 뒤(裏方)에서 일하는 근시(近侍)들은 그야말로 앉은 자리를 데울 틈도 없을 정도로 정신없이 바빴다.
"여러분꼐서 바쁘실 거라고 생각해 인사를 미루고 있었는데, 본인께서 직접 오시는 건 좀 문제가 있지 않을까 합니다만……"
"무슨 말이냐. 아즈치로 옮겨가면 이렇게 마음 편하게 찾아올 수도 없게 된다. 조금 아쉬워해도 벌받을 일은 아니니라"
기후 성의 소란(喧噪)을 뒤에서 일하는 사람들(裏方)에게 들은 시즈코는, 좀 진정될 무렵 인사하러 가겠다고 편지를 보내고 저택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시즈코가 가면, 시즈코를 목적으로 한 혼잡이 더해져, 제아무리 근시들(近侍衆)이라도 손님들을 다 감당하지 못하게 된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노부나가에게 비중이 높은 시즈코는 앞다투어 인사하러 갈 필요성이 적다. 안 그래도 고생하고 있는 사람들(裏方)에게 불에 기름을 붓는 짓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기후 성이 진정되는 것을 기다리고 있을 때, 밤이 깊은 후라고는 해도 노부나가 본인이 시즈코 저택으로 쳐들어왔다.
"함부로 기후 성을 비우시면, 주상의 재가(裁可)를 기다리는 사람들(裏方)이 곤란해지는 게 아닌가요?"
"당분간은 인사 뿐이라서 결재 따윈 필요없다. 그보다 어서 '케이크'라는 걸 내지 못하겠느냐"
자기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지만, 이미 와 버린 이상 어쩔수 없다고 생각하고, 시즈코는 케이크 만드는 것을 재개했다.
현대의 품질에는 아득히 미치지 못한다고는 해도, 초콜렛이 만들어진 것이다. 다행히 신선한 계란은 내다 팔 정도로 많았기에, 계란과 초콜렛만으로 만들 수 있는 가토 쇼콜라(gâteau chocolat)를 만들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시즈코 저택의 평소의 면면에 대해 초콜렛 케이크를 만든다고 선언한 것을 들은 듯한 타이밍에 노부나가가 등장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케이크 만들기는 시간이 걸리기에, 노부나가에게 기다리는 동안 집어먹을 것을 내기 위해 손쉽게 만들수 있는 팬케이크를 먼저 제공했다.
시즈코가 초콜렛을 중탕(湯煎)에 녹이고 있는 동안, 나가요시(長可)가 극한(極寒)의 빙실(氷室)에서 므랭그(meringue)를 만들고 있었다. 냉장고 같은 편리한 것은 없기에, 이빨이 덜덜 떨릴 듯한 환경에서 계란 흰자(卵白)를 계속 섞어줄 필요가 있었다.
"시즈코가 있는 곳은 따분함과는 인연이 없구나"
주방(厨)에 서는 시즈코의 뒷모습을 보면서 노히메(濃姫)가 중얼거렸다. 추가인원은 노부나가 뿐이었지만, 팬케이크를 굽는 냄새에 끌렸는지, 노히메나 이치(市), 챠챠(茶々)에 하츠(初)도 나타나 앉았다.
아무래도 젖먹이인 고우(江)에게 줄 수는 없어서, 유모와 고우만이 다른 방에서 대기하게 되었다.
서둘러 귀인(貴人)들의 숫자만큼 팬케이크가 구워지자, 각자 쟁반에 담겨 운반되었다. 갓 구운 팬케이크가 풍기는 식욕을 끄는 향기에, 위장이 소리를 내며 가볍게 항의하였으나 무시하고, 잔열(粗熱)을 받은 초콜렛에 계란 노른자(卵黄)를 섞어 반죽했다.
"시, 시, 시즈코!, 이, 이이, 이거! 다 됐어"
그 때 타이밍 좋게 나가요시가 나타나서, 간신히 므랭그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물체를 가져왔다. 고맙다고 말하고 받아들며 나가요시의 상태를 살피자, 얼어붙어버렸을 입술은 보라색이 되어 있었고, 이빨이 덜덜 떨려 제대로 말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용케 여기까지 마무리해 줬네. 고마워, 카츠조(勝蔵)군. 목욕탕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 얼른 가"
정당(精糖) 기술도 어설프고 핸드 믹서 같은 편리한 물건이 없는 상태에서 결이 고운 므랭그를 만드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가열하면서 만드는 스위스 므랭그를 이용한다는 선택지도 있었지만, 부드러운 케이크로 만들기 위해서는 꼭 프렌치 므랭그가 필요했다.
몸을 부여잡는 듯 하며 목욕탕으로 향하는 나가요시를 전송하고, 시즈코는 일단 뿔이 선 상태의 므랭크를 몇 번에 나누어 초콜렛 반죽(生地)에 섞어넣었다.
므랭그를 뭉그러뜨리지 않도록 깔끔하게 섞은 후, 사전에 준비해 둔 금형(金型)에 유채 기름(菜種油)을 엷게 바른 것에 초콜렛 반죽을 흘려넣고 통통 두드려서 공기를 뺐다.
"시즈코는 지금부터 '케이크'를 굽는다고 한다. 우리들은 이걸 먹으면서 기다리도록 하자"
노부나가는 김을 풍기는 팬케이크에 벌꿀을 잔뜩 바르고, 젓가락으로 솜씨좋게 둘로 접어 입으로 가져가 크게 베어물었다.
'주룩'하며 스며드는 벌꿀과, 그것을 묵직하게 받아내는 케이크 반죽의 향기로우면서도 달콤한 맛에 자기도 모르게 표정이 풀렸다.
"맛있구나!"
유리 제품의 부산물인 중탄산소다(重曹)가 듬뿍 들어간 팬케이크는 현대의 그것에 비해서도 손색이 없는 완성도였으며, 노부나가 뿐만이 아니라 노히메들도 눈을 크게 뜨고 맛보고 있었다.
빨리도 한 장을 먹어치운 노부나가는, 다른 한 장에 다른 접시에 올려진 크림과 감(柿)의 잼을 발라 우물거리고 있었다. 단 것을 좋아하는 것은 여전하구나 하고 시즈코는 어딘가 흐뭇한 느낌으로 바라보며 예열(余熱, ※역주: 작가가 독음이 같은 予熱과 착각한 듯함)해둔 돌가마(石窯)에 케이크의 금형을 투입했다.
"단 것과 함께 마시면 이 떫은 홍차(紅茶)라는 것도 각별하구나. 약간 신맛을 느끼지만, 되려 마음에 든다"
티 컵에 든 홍차를 흔들면서 이치가 중얼거렸다. (좀 지나치게) 가느다란 손잡이가 달린 티 컵에 망설였던 이치였으나, 지금은 우아하게 사용하고 있었다.
"달아ー"
"달아ー"
챠챠와 하츠는 그렇게 말하면서 눈 깜짝할 사이에 팬케이크를 먹어치웠다. 메인인 초콜렛 케이크에 대한 예고편(前座)이고, 어른과 달리 많이 먹지 못하는 그녀들의 팬케이크는 작다.
일찌감치 다 먹어버려서 어른들의 팬케이크를 먹고 싶은 듯 바라보았으나, 더 맛있는 초콜렛 케이크의 등장을 얌전히 기다리고 있었다.
손님방의 상황을 살피면서 돌가마의 상태를 보고 있던 시즈코는, 꺼낸 초콜렛 케이크에 대나무 꼬치를 꽂고, 설익은 반죽이 따라오지 않는 것을 확인한 후 미소를 지었다.
초콜렛의 품질 문제인지, 므랭크가 충분하지 않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약간 겉보기가 좋지 않기는 해도 일본(本邦) 최초의 초콜렛 케이크가 무사히 구워졌다.
시즈코는 금형에서 꺼낸 케이크에 식칼을 넣어 한 홀을 8등분하여 잘랐다. 손님방에 앉아있는 귀인은 5명, 큰 역할을 한 시즈코와 나가요시가 받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고, 마지막 한 조각의 행방이 파란(波乱)을 불러올 듯 했다.
"……참으로 농후하고 향기로운 맛이구나"
"남만의 언어로 가토 쇼콜라(프랑스어로 초콜렛 케이크라는 의미)라고 합니다"
일본 최초라는 말에 가장 먼저 입으로 가져간 노부나가는 말을 잃었고, 잠시 시간이 지난 후 간신히 감상을 짜냈다. 초콜렛이 갖는 고혹적(蠱惑的)인 향기와, 풍부한 유분(油分)과 당분(糖分)이 가져오는 펀치력이 노부나가를 마비시켰던 것이다.
노부나가와 시즈코가 대화하는 옆에서 노히메들도 케이크를 맛보고 그 맛에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챠챠와 하츠에게는 초콜렛의 쓴맛이 강했는지, 팬케이크용의 크림을 발라서 우물거리고 있었다.
"시즈코야, 이건 더 만들 수 없느냐?"
재료 자체는 존재했으나, 므랭그를 만드는 작업이 가혹하여 그리 쉽게는 만들 수 없다고 설명하자, 전원의 눈이 케이크 접시에 남겨진 최후의 한 조각에 못박혔다.
시즈코는 스스로 불똥을 뒤집어쓰는 어리석음을 피하여 얼른 퇴장했으나, 행운을 붙잡지 못한 누군가의 손에 의해 또다시 나가요시가 빙실로 보내지게 된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정신없이 바쁜 노부나가가 일부러 찾아온 것이다. 케이크만으로 만족할 리가 없어, 와인이나 맥주 외에, 그에 맞는 만주류까지도 토산품(土産)이라 칭하며 가지고 갔다.
기후와 오와리(尾張) 사이의 거리니까 가볍게 찾아올 수도 있으나, 아즈치로 옮겨가면 식생활은 말할 것도 없고 다양한 생활 양식에 제한을 받게 된다.
냉장이나 수송 기술 수준이 낮았기에, 천하인(天下人)이라고 해도 이것만큼은 어떻게 할 방법이 없는 숙명이었다.
(아즈치 성에서도 케이크를 만들 수 있게 하라고 할 것 같아……)
아즈치로 옮겨가면 노부나가의 분방함도 자취를 감출거라 생각했으나, 어째서인지 노부나가가 변함없이 무리한 요구를 하는(無茶ぶりをする) 미래가 상상되어 버려서 시즈코는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태풍같은 방문을 소화해낸 시즈코였으나, 하늘은 그녀에게 휴식을 주지 않았다.
"……드디어, 인가"
전달된 편지를 읽던 시즈코는, 만감(万感)의 심정을 담아 중얼거렸다. 편지에는 천하오검(天下五剣) 중 마지막 한 자루, 쥬즈마루(数珠丸)를 입수했다는 소식이 적혀 있었다.
도우지기리(童子切) 야스츠나(安綱), 오니마루(鬼丸) 쿠니츠나(國綱), 미카즈키(三日月) 무네치카(宗近), 오오덴타(大典太) 미츠요(光世) 등 네 자루는 비교적 이른 시기에 시즈코가 있는 곳에 모였다.
그러나, 마지막 한 자루인 쥬즈마루(数珠丸) 츠네츠구(恒次)의 입수는 대단히 어려웠다. 왜냐하면 쥬즈마루는 니치렌(日蓮) 상인(上人)의 유품으로, 다른 유품과 함께 오랫동안 미노부 산(身延山) 쿠온지(久遠寺)에 퇴장(退蔵)되어 있었다.
시즈코가 꾸준히 쌓아올린 문예(文芸) 보호(保護)의 실적이 평가받아, 조정(朝廷)으로부터의 공작(働きかけ)도 있어, 이번에 겨우 쥬즈마루 츠네츠구만이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여기에 이르기까지 길고 어려운 교섭이 벌어졌을 것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온갖 난관을 배제하고 결과를 이끌어낸 조정의 담당자와, 최종적으로 양보해준 쿠온지의 승려에게 시즈코는 감사했다.
"하지만, 카츠조 군이 오오덴타 미츠요를 필요없다고 할 줄이야…… 케이지(慶次) 씨나 사이조(才蔵) 씨도 받으려고 하지 않고"
천하오검이 모이기는 했으나, 사장(死蔵)시켜서는 의미가 없다. 자료를 남긴 후, 현물을 수하의 장수들에게 하사하려고 했으나, 누구도 받으려 하지 않았다.
수하의 장수에 대한 대외적인 포상(褒美)으로서, 케이지와 사이조에게는 이미 천하오검을 하사했지만, 모두의 앞에서 하사되었다는 사실만이 중요하며, 케이지와 사이조 모두 칼 본체는 시즈코 저택의 창고에 보관해둔 채였다.
일단 소유권이 이전되었기 때문인지 가끔 본인들이 손질을 하고 있는 모양이지만, 귀성할 때도 가지고 갈 기색조차 없었다. 그리고 이번의 나가요시에 이르러서는, 애초에 하사받는다는 형식조차 불필요하다고 잘라 말했다.
따라서 미카즈키 무네치카만 평소부터 아시미츠가 소유하고 있지만, 다른 네 자루 및 오오카네히라(大包平)라는 명도(名刀)를, 칼을 휘두를 일이 없는 시즈코가 소장하게 되어 버렸다.
아시미츠 자신은 시즈코가 원한다면 미카즈키 무네치카를 넘겨줄 생각이었지만, 시즈코로서는 실용품을 사장시키는 건 부끄럽다는 생각이 있었기에, 계속 아시미츠가 관리하게 되었다.
"뭐, 괜찮으려나. 역사적 자료가 흩어져 없어지는 걸 방지할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좋은 거라고 생각하자. 그보다, 영지에서의 진정(陳情)이……"
"시즈코오!"
진정서를 확인하려고 시즈코가 책상에 손을 뻗은 순간, 방을 구획하는 맹장지가 난폭하게 열어젖혀졌다. 이런 행패를 부리는 것은 저택에서도 몇 명 밖에 없기에 자연히 범인을 알 수 있었다.
"일을 하면 아니 된다. 백부(伯父, ※역주: 검색해보니 한국과는 다소 명칭의 차이가 있는 듯 하지만(한국 기준으로는 외숙이나 외숙부라고 하며 어머니의 오빠에 대해 백부라는 표현을 쓰지는 않는 듯함), 여기서는 일단 원문의 한자인 백부를 그대로 읽겠슴)님께서 그리 말씀하셨느니라!"
득의만면(得意満面)한 모습으로 가슴을 펴는 것은 챠챠였다. 워커홀릭인 시즈코에 대해 외교(外交)를 금지시킨 정도로 쉰다면 고생할 일이 없다. 그렇게 생각한 노부나가가, 시즈코의 감시역으로 챠챠를 발탁했다.
경애하는 백부인 노부나가로부터 대임(大役)을 받은 것과 챠챠 자신이 시즈코가 상대해주는 것을 즐기는 것이 화근이 되어, 시즈코가 일을 하려고 하면 어디선가 챠챠가 나타나는 것이었다.
어린애였기에 집중력이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는 결점은 있으나, 천성적으로 좋은 감을 발휘하여 타이밍좋게 방해하러 나타나는 챠챠에게 제아무리 시즈코라도 애를 먹고 있었다.
"이건 일이 아니에요. 편지를 읽고 있을 뿐이랍니다"
"아니 된다! 그 표정은 거짓말을 하고 있는 표정이니라!"
자기도 모르게 시선이 여기저기 움직여버리는시즈코를 수상쩍게 보던 챠챠는 시즈코의 말을 거짓말이라고 판단했다.
"그런 그렇고, 챠챠 님. 지금 시간은 공부(座学) 시간이 아닌가요?"
의무교육의 중요성을 몸으로 알고 있는 시즈코인만큼, 시즈코 저택에 체재하는 일정 연령의 사람들은 빠짐없이 교육이 실시된다. 본래는 동년배 아이들과 책상을 나란히하고 면학(勉学)에 힘쓰고 있어야 할 시간이며, 챠챠가 이곳에 있다는 것은 태업을 의미한다.
"공부보다 임무가 중요하노라!"
시즈코의 지적에 챠챠는 눈을 피하며 딴청을 부렸다. 눈을 보고 이야기하지 않는 것은 뒤가 구린 구석이 있다는 증거, 둘이서 셋트인 하츠가 없는 것도 고려하면, 혼자서만 도망쳤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었다.
"챠챠 님, 이런 곳에 계셨군요"
감정의 기복이 느껴지지 않는 차가운 목소리와 함께, 돌연 뻗쳐온 손이 챠챠의 뒷덜미를 붙잡았다.
"우왓! 등 뒤에서라니 비겁하다!"
"무슨 말씀을 하시던 공부를 하셔야 합니다"
"놓ー아ー라ー!"
멋진 수완으로 챠챠를 구속한 아야는, 챠챠의 저항을 무시하고 그녀를 끌고 떠나갔다. 챠챠의 목소리는 서서히 멀어져서, 복도의 모퉁이를 돌았을 때 쯤 뚝 하고 들리지 않게 되었다.
"……진정서, 읽을까"
일련의 사건을 없었던 일로 한 시즈코는, 책상에 놓인 서류 상자에 손을 뻗어 가장 위에 놓여있던 진정서를 들어올렸다.
1월 하순이 되자, 노부나가는 아즈치의 임시 궁궐로 본거(本拠)를 옮겼다. 빈 기후 성에는 노부타다가 입성하고, 노부나가의 아즈치 이전을 알게 된 사람들은 드디어 혼간지(本願寺)와의 결판을 낼 생각이구나라고 수근거리고 있었다.
혼간지 입장에서는 그래봤자 소문이라며 무시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혼간지에 남겨진 전력은 키이(紀伊) 문도들(門徒衆) 뿐으로, 나머지는 사이고쿠(西国)에 모우리(毛利) 등의 협력자가 남아있을 뿐이었다.
토우고쿠(東国)에 뿌리내린 문도들은 이제는 찾아볼 수도 없어, 도저히 전력으로서 기대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카이(甲斐)의 타케다(武田)나, 토우고쿠의 영웅(雄)인 호죠(北条)에게 도움을 청하려고 해도, 그 사이를 차단하는 형태로 시즈코를 거느린 노부타다가 포진하고 있다.
토우고쿠로부터의 지원이라는 한 팔이 뜯겨나간 상태에서 노부나가와 대치해야 한다는 사실이, 혼간지 수뇌부의 골머리를 썩게 하고 있었다.
"우리들은 멸망의 위기에 서 있습니다"
혼간지에서 개최된 대(対) 노부나가 작전회의 자리에서, 라이렌(頼廉)은 현재 상황을 이렇게 평가했다. 소심한 자세라고 다들 입을 모아 비난했으나, 라이렌이 한 번 노려보자 입을 다물었다.
"여러분도 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들은 지금까지 전국에 퍼져 있는 문도들에게 결기(決起)를 촉구하여 많은 병력을 동원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다의 손에 의해 각지의 문도들은 진압당하여, 이제는 혼간지 문도라는 것을 밝히는 것이 꺼려지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일대 거점이었던 나가시마(長島)와 카가(加賀)도 빼앗기고, 쫓겨난 문도들이 난민이 되어 밀어닥쳐, 오늘날 우리들의 곤경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한편 오다는, 그들의 생활 기반을 병탄(併呑)하여 기세를 불렸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키이 문도들만으로는 노부나가를 저지하는 것 따위 불가능한 이상, 많은 난민들을 데리고 있는 우리들은 가만히 앉아 있어도 죽음을 기다릴 뿐이라는게 현재 상황입니다"
"하지만, 굶주린 신도들을 저버릴 수는……"
"우리들에게 남겨진 선택지는 두 가지. 하나는 모든 것을 내던져 오다를 치는 철저 항전. 다른 하나는 패배를 받아들이고, 폐하(帝)를 통해 조정(調停)를 신청하는 것입니다. 조직으로서의 혼간지는 사라지지만, 종교로서는 존속할 수 있도록, 우리들은 해산되고, 이곳 이시야마(石山) 혼간지를 넘길 것을 요구받아——"
"아니 되오!"
라이렌이 이시야마 혼간지의 포기(明け渡し)를 언급한 순간, 어떤 인물이 그걸 가로막으며 노성을 질렀다.
목소리의 주인은 쿄뇨(教如). 혼간지 법주(法主)인 켄뇨(顕如)의 장남으로, 오다와의 철저 항전을 부르짖는 급선봉이었다. 그와 그를 지지하는 일파는 강경하게 철저 항전을 주장하고 있었다.
이것이 훗날, 혼간지를 동서로 가르는 비극을 낳게 된다.
"일향종(一向宗)의 일향(一向)이란 일의전심(一意専心). 갈 길을 굽혀서는 무엇이 일향종이라는 것이오! 나아가면 극락왕생(極楽往生), 물러나면 무한지옥(無限地獄)에 빠질 것이오. 우리들에게 항복이라는 선택지는 없소!"
평소처럼 작전회의가 소극적이 되려고 할 때 쿄뇨가 독려를 했다. 오다와의 일시 강화에 대해서조차 난색을 표하는 그들은, 실질적인 패배를 받아들이는 조정안(調停案) 따위 받아들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현재 상황을 올바르게 인식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들의 주장은 과대망상의 영역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럼, 여쭙겠습니다. 어떠한 방법으로 오다를 타도할 것입니까?"
"우리들이 신심(信心)을 버리지 않는 한, 부처께서는 반드시 혼간(本願, ※역주: 중생을 구제하기 위한 부처의 서원(誓願))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오! 마음이 꺾이지 않는 한, 우리들에게 패배는 없소!"
"……그래서 왕생할 수 있다고 해도, 현세에 남는 것은 시체의 산이겠지요. 우리들이 문도를 잃을 때마다 우리들의 힘은 약해집니다. 우리들이 약해지면, 오다 뿐만이 아니라 다른 종교 세력(寺社)들도 적으로 돌아설 것입니다"
라이렌의 지적에 쿄뇨는 말을 잃었다. 혼간지의 적은 오다 뿐만이 아니다. 지금까지 혼간지가 괴롭혀온 종교 세력이, 반역의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혼간지가 세력을 잃으면, 종교 세력은 오다에게 영합하여 일향종을 철저히 짓밟으려고 적대할 가능성조차 있었다.
그렇기에 라이렌은, 궁지에 몰린 지금이야말로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지금부터는 한 발짝 잘못 내디디는 것만으로 지금까지의 협력자까지 보신을 위해 오다로 변절하게 된다.
"하지만, 혼간지를 잃어서는, 교의(教義)를 위해 순교한 사람들에게 면목이 서지 않소"
여전히 물고늘어지는 쿄뇨였으나, 라이렌은 이미 전쟁의 결론(落としどころ)을 생각하고 있었기에 그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현재 상황에서 결단할 수 없다면, 제가 한 가지 판단재료를 늘리도록 하지요"
"대체 무엇을?"
"제가 직접 어떤 인물과 만나, 우리들의 미래를 점칠 수 있는 정보를 가지고 돌아오죠. 그것을 바탕으로 여전히 철저 항전할 것인지, 명예를 버리고서라도 실리를 취하여 살아남는 길을 모색할지를 판단했으면 합니다"
"어떤 인물이라 하면?"
쿄뇨가 숨을 들이키며 묻자, 라이렌은 한 박자 쉬고 대답했다.
"오다가 심복(懐刀)으로서 신뢰하는 자. 오다 님의 최대의 이해자이자 타케다 패배의 공로자. 오섭가(五摂家) 필두(筆頭) 고노에 가문(近衛家) 영애, 시즈코입니다"
"뭣!"
고요해진 작전회의장이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졌다. 시즈코라고 하면 오다 가문의 중신(重臣)이며, 혼간지가 규합한 오다 포위망의 핵심인 타케다 군을 괴멸시킨 원적(怨敵)이다.
지금도 여전히 혼간지를 경제적으로 조이고 있는 수괴(首魁). 노부나가와 표리(表裏)를 이루는, 오다 가문의 얼굴이라 할 인물이었다. 그 시즈코와 직접 만나겠다고 라이렌은 선언한 것이다.
이것에는 항상 냉정한 켄뇨도 경악하여 라이렌의 눈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물론, 면회가 이루어진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운좋게 면회가 이루어지더라도, 그 전후에 적의 함정에 걸려 목숨을 잃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것을 오다의 악행으로 하여 혼간지의 대의를 선전할 수 있겠지요"
"오다는 수하가 멋대로 한 짓이라고 발뺌할지도 모르오"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시즈코는 오다 가문에 깊이 뿌리내린 거목(大樹). 그걸 보신을 위해 잘라내면 오다의 대들보가 흔들립니다. 혼간지의 중신인 제가 목숨을 걸기만 해도 다름아닌 오다가 모든 어려움을 배제하고 저를 지켜야 하며, 회담을 끝낼 때까지 오다는 움직임을 멈출 수밖에 없게 됩니다. 회담이 성사되어 정보를 얻을 수 있다면, 금후의 판단 재료가 늘어납니다. 결과가 어떻게 나오던, 우리들에게 손해는 없습니다"
"음……"
쿄뇨는 라이렌이 말하는 계책을 듣고 자기도 모르게 신음했다. 라이렌이 단독으로 직접 적진으로 들어가, 거기서 얻은 정보로 다시 방침을 정한다. 그렇게까지 해서 가지고 돌아온 정보를 소홀히 취급하거나 할 수는 없으니, 작전회의는 반드시 항복 쪽으로 흘러가리라.
라이렌은 혼간지를 버리고, 무장세력으로서의 혼간지를 해산해서라도 종교로서의 일향종을 남길 속셈인 것이다. 쿄뇨는 그렇게 확신했다.
(그렇게 놔두지는 않는다! 거점으로서의 혼간지를 잃으면, 구심력을 잃고 조직을 유지할 수 없게 된다)
"물론, 이쪽이 만나고 싶다고 바란다고 바로 만날 수 있는 상대는 아닙니다. 그 절차를 밟는 동안, 시즈코에게 무엇을 묻고, 무엇을 말할지를 상담하도록 하죠"
본심은 처음부터 정해진 주제에 뻔뻔한 소리를 한다고 쿄뇨는 마음 속으로 내뱉았다.
2월에 들어서, 오다 가문으로부터의 양자인 시로쿠나 우츠와를 받아들인 시즈코의 생활도 자리를 잡고 있었다. 외교(外交)를 금지당했다고는 해도, 영주(領主)인 이상 영지 운영에 관한 일거리가 발생하고, 시즈코가 아니면 판단할 수 없는 사안도 쌓여갔다.
시즈코에게 휴식을 취하게 하기 위해 가신들이 극력 작업을 대행하고 있었으나, 결국 시즈코가 현장으로 복귀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일을 재개하면 공적인 시간이 많아져, 당장 시로쿠나 우츠와와 접할 시간이 줄어든다. 하지만, 시로쿠나 우츠와가 아무 부자유없이 살기 위해서도 일을 소홀히 할 수는 없었다.
일과 가정 사이에 끼어 고뇌하는 아버지의 기분을 점점 느끼고 있는 시즈코였다.
"……좋아, 이걸로 됐겠지"
오전 시간을 총동원하여 쌓여 있던 결재 문서의 처리를 끝내고 자기 방에서 간단한 점심식사를 했다. 퍼넣듯이 식사를 마친 후, 복장을 고치고 응접실로 향했다.
"지금 돌아왔습니다"
"수고했어요. 바로 보고를 부탁해요"
응접실에는 오랫동안 토우고쿠에 정보 수집차 나가 있던 사나다 마사유키(真田昌幸)가 기다리고 있었다. 현재, 시즈코 휘하의 장수들은 사이조를 남기고 전부 나가 있었다.
나가요시는 노부나가의 명령을 받고 오우미(近江) 일원(一円)의 치얀유지 활동에 동원되었고, 케이지는 경비가 허술해진 시즈코의 영지를 혼자서 순찰하고 있었다. 타카토라(高虎)는 여전히 아즈치 성 축성 때문에 쿠로쿠와슈(黒鍬衆)를 이끌고 오우미에 머물고 있었으며, 아시미츠(足満)는 사이고쿠에 대한 첩보활동과 우에스기 가문(上杉家)에 대한 관계 유지(顔つなぎ)를 위해 바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놀라운 것은 나가요시 이외의 전원이, 시즈코가 명령해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행동 지침을 정하고 시즈코의 허가를 받아 움직이고 있었다.
그렇기에, 아무리 시즈코의 주변을 탐색해봐도 각지에 흩어진 장수들의 속셈은 파악할 수 없다.
"역시 오와리와 미노(美濃)의 영향범위 바깥의 시장은 축소 경향에 있나요……"
"예. 미카와(三河)는 절약하는 분위기 정도입니다만, 그보다 동쪽의 시장은 물류 자체가 줄어서 긴축상태(緊縮状態)에 있습니다"
시즈코는 마사유키에게 토우고쿠에 위치하는 각 시장의 조사를 명령했었다. 그 결과로서, 각국의 시장 규모가 서서히 축소되고 있는 것이 판명되었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두 가지. 하나는 오랫동안 계속된 전쟁 때문에 한창 일할 때의 남성 인구가 줄어들어, 물자의 생산력 및 구매능력 자체가 떨어진 것.
또 하나는, 각국의 경제 상황이 악화되어, 시장에 돌릴 수 있는 돈이 고갈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전시통제(戦時統制)에 의한 긴축재정(緊縮財政)을 취하면서 다음 전쟁의 준비를 하고 있다고도 생각할 수 있으나, 마사유키의 조사에 의하면 군수물자의 유통 자체가 줄었기 때문에 정말로 여유가 없는 것이라는 점을 엿볼 수 있었다.
시장에서 돈이 사라지면 상거래는 성립되지 않게 되고, 애초에 시장이 서지 않게 된다. 시장이 서지 않는다면, 이익에 민감한 상인들이 일부러 위험을 감수하면서 발을 들여놓을 리가 없다.
가라앉는 배에서 쥐가 도망치듯 앞다투어 철수하고, 이후에는 다가가지 않게 되어버렸다.
"사나다 님은 계속 조사를 부탁해요. 다음에는 한 발자국 더 들어가서, 민초(民草)들의 생활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조사해 주세요"
"옛"
"그리고 임무를 수행한 간자들에게는 충분한 휴식을 취하게 해 주세요. 피로를 남겼다가 판단력이 떨어져서, 정체를 들켜 흔적이 남아도 곤란하니까요"
"옛.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보고를 마치고 다음 임무를 받은 마사유키는 응접실에서 나갔다. 그리고 그와 교차하듯, 아시미츠가 응접실에 모습을 드러냈다. 노린 듯한 타이밍에 시즈코는 놀랐지만, 그대로 대응하기로 했다.
"우선은 수고했어요. 그래서, 뭔가 단서는 잡았나요?"
"혼간지에 움직임이 있었다. 켄뇨는 여전히 방침을 결정하지 않았지만, 시모츠마 라이렌(下間頼廉)을 필두로 하는 항복파와, 쿄뇨가 주도하는 항전파가 대립하고 있지. 그리고 작전회의 자리에서 라이렌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한 모양이다"
"재미있는 이야기라뇨?"
시즈코는 고개를 갸웃하며 아시미츠에게 되물었다. 아시미츠는 작게 미소를 떠올리며 대답했다.
"시즈코, 너와 회견해서 금후의 방침을 결정한다는 모양이다"
"흐ー음…… 어? 네!?"
시즈코는 일순 흘려들을 뻔 하다가 당황해서 아시미츠에게 다가가더니 목소리를 낮춰 귓말을 했다.
"나는 외교를 금지당했으니 애초에 만날지 만나지 않을지의 판단을 할 수 없어요. 뭣보다, 정치에서 멀어져 있는 나랑 만나서 어쩌겠다는 건가요?"
"글쎄. 나는 그놈이 아니니까 알 수 없지만, 놈에게는 너와 만나는 것에 의해 얻는 것이 있다고 판단한 걸지도 모르지. 아니면 시즈코와 만나는 것 자체가 목적이라고 볼 수도 있다"
"아아! 나와 회담하는 것 자체를 정치적 협상에 이용할 생각인가, 거 참 민폐스러운 얘기네……"
아시미츠의 말을 듣고 잠시 허공을 노려보며 생각에 잠겨있던 시즈코였으나, 상대의 노림수를 이해하고 탄식했다. 상대의 내부 사정은 모르더라도, 상대의 입장과 목적을 알게 되면, 그 속셈은 자연히 꿰뚫어볼 수 있다.
"즉 라이렌은, 승산 없는 전쟁을 계속하기보다 조기에 항복해서 살아남는 걸 꾀하고 있다는 거네요"
라이렌은 자신의 마음 속을 읽혔다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겠지만, 시즈코를 여자라고 얕보면 안 된다.
시즈코는 현대에서 역녀(歴女, 역사를 좋아하는 여성)로 분류된다.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이 있듯, 장기적 시점에서 역사를 부감(俯瞰, ※역주: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듯 보는 것)하면 종종 비슷한 사건이 반복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본은 물론이고 세계의 역사에 대해서도 체계화된 지식으로서 배워익히고 있었다. 유사한 사례에서 상대의 노림수를 추측하는 정도는 쉬운 일이었다.
시즈코의 추리로는, 라이렌의 노림수는 강화(講和)에 있다. 그는 이미 오다를 적대자(敵対者)로 보고 있지 않고, 혼간지 내부의 항전파를 잘라내는 것에 주안점을 두고 있으리라.
따라서 라이렌은 시즈코와 회담이 성사되던 아니던, 강화로 이어지는 길을 가기 위해 행동할 거라 생각된다. 쿄뇨를 시작으로 하는 항전파에게 있어 불리한 상황에서의 강화는 받아들이기 어렵지만, 라이렌은 이 이상 상황이 개선되지는 않을 것이라 판단하고 있었다.
제아무리 오다 가문이라고 해도 혼간지 정도의 거대 종교 조직을 완전히 씨를 말리거나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신심은 개개인의 마음 속의 문제이기에, 아무리 노부나가라도 파고들 수 없는 영역이다.
따라서 종교조직과의 대립은 오래 계속되고, 그리고 그 때문에 강화에 조건을 붙이는 것도 가능해진다. 혼간지측이 신도를 줄이면서 무장해제에 이르는 것이 가장 온건하면서도 이상적인 종전 방법이 되기 때문이다.
바로 여기에 라이렌의 활로(活路)가 존재했다. 설령 쿄뇨 등 항전파와 대립하여 종파를 둘로 갈라 상쟁하게 되더라도, 어느 한 쪽만이라도 살아남을 길을 선택한다.
그것은 예전의 동포로부터 배신자라는 욕을 먹게 되고, 설령 강화가 성립하더라도 누구로부터도 칭찬받지 못하는 수라(修羅)의 길이었다. 라이렌은 그것들을 각오하고 시즈코와의 회담에 임하려 하고 있었다.
"내가 라이렌을 만나지 않으면 전쟁이 오래 끌게 되고, 만나면 정치적 대결(駆け引き)에 휘말려들게 되네. 회담 전에 라이렌의 몸에 무슨 일이 있으면 우리들이 누명을 뒤집어쓰게 되니, 내부 항쟁의 암살(凶刃)로부터 라이렌을 지켜야 하나……"
정말로 짜증나는 계책을 생각해낸 셈이다. 결과가 어떻게 나와도 라이렌은 자신의 목숨 외에는 잃어버릴 것이 없지만, 도박에 승리하면 본래의 가치 이상의 성과를 이끌어내게 되어버린다.
"아무리 나라도 이건 불쾌하네요. 혼간지에 이용당하는 것도 화가 나니까, 여기는 제3의 선택지를 선택하게 할 필요가 있겠어요"
시즈코가 웃으면서 말하자, 아시미츠는 맡겨두라고 말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달력은 2월로 접어들었다. 노부나가가 아즈치로 거처를 옮긴 지 한 달이 지나려 하고 있었으나, 표면적으로는 아무 일도 없이 지나갔다. 혼간지도 라이렌의 행동을 지켜볼 셈인지, 조정을 경유하여 시즈코와의 회담을 타진해와, 노부나가의 판단을 기다리는 상태가 되었다.
노부나가 자신은 제 3차 오다 포위망이 형성되지 않도록 각 방면의 역학관계를 조정하면서 직할령인 아즈치의 정비에 힘을 쏟고 있었다.
2월 하순이 되자, 노부나가는 조정으로부터 정3위(正三位)의 품급과 우근위대장(右近衛大将)의 직책을 하사받았다.
노부나가는 머지않아 종2위(従二位)에 서임되어 내대신(内大臣)을 겸직하게 될 것이라고 조정 내부에서 그럴싸한 소문이 돌고 있었다.
때를 같이하여 니히메(仁比売)가 종3위(従三位)에 서임되고, 시즈코도 부지런함(精勤)을 평가받아 종3위를 하사받게 되었다.
니히메에게는 병행하여 곤츄나곤(権中納言)에 임명되었으나, 시즈코에게는 관직이 주어지지 않았다.
"조정이 양쪽을 저울질하여 양쪽 모두에게서 이익을 끌어내려고 하고 있는 걸까?"
시즈코는 노부나가가 보낸 주인장(朱印状)을 보며 중얼거렸다.
여전히 공적인 자리에 모습을 보이지 않는 니히메였으나, 노부나가의 손에 의해 기회가 있을 때마다 천황과의 서신 교환이 계속되고 있다고 했다.
슬슬 그런 인물은 없다는 게 드러나는 게 아닐까 하고 시즈코는 위태로움을 느끼고 있었다.
(뭐 드러나게 될 것 같으면 병사한 걸로 해서 성대하게 화장(荼毘)하여 얼버무리겠지……)
애초에 병약해서 밖에 나오지도 못한다는 설정의 니히메이다. 급서(急逝)했다고 해도 이상하게 생각되지는 않을 것이다.
후견인인 노부나가가 장례식을 치르면, 이것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사람 따윈 없다.
"자자, 슬슬 영주의 일을 해야지. 오와리 뿐만 아니라 키묘(奇妙)님의 미노 쪽 치다꺼리도 해야 하니 큰일이야"
노부나가로부터 미노를 이어받은 노부타다는, 시즈코에게 미노의 관리(仕置き, 영주로서의 통치 전반)을 명했다. 노부타다의 직속 신하들에게도 아닌 밤중에 홍두깨(寝耳に水) 격인 사건이었던 듯, 입을 모아 노부타다에게 명령을 번복하도록 간언했다.
그러나, 노부타다는 그들의 간언들 듣지 않고 그들에게 말했다.
"뭔가 착각을 하고 있는 모양인데, 나는 시즈코에게 미노의 국주(国主)가 되라고 명한 게 아니다. 나는 지금까지 실무에 관여해오지 않았기에 미노의 사정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안 그래도 아버님으로부터 미노를 이어받은 것으로 현장은 혼란스러워하고 있겠지. 그렇기에 종래의 방식을 잘 알고 있는 사람에게 조력을 청하는 것은 당연한 일. 모두의 말뜻은 알겠으나, 시즈코 없이 미노나 오와리를 운영하는 것 따윈 꿈 같은 소리(夢物語)에 불과하다. 선임자(先達)의 방식을 바로 곁에서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날려버리고 시즈코 이상으로 영지를 번영시킬 수 있는 방안이 있다면 말해보아라"
어디까지나 시즈코는 길잡이(水先案内人)이며, 최종적인 판단은 모두 노부타다가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외교의 자리에도 동행시킬 수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노부나가나 노부타다의 대리인(名代)으로서라고 단언했다.
주군이 이렇게까지 말하면 가신으로서는 따를 수밖에 없었다. 시즈코 자신도 야심과는 인연이 없는 성격이며, 멋대로 행동할 생각 따윈 손톱만큼도 없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정체시키면 안 되는 대사업은 아이치(愛知) 용수(用水)와 키소(木曽) 삼천(三川)의 정비려나?"
아이치 용수는 치타(知多) 반도(半島) 전역에 혜택을 줄 상하수도용의 용수다. 그 용도는 농업에 한정되지 않고, 공업이나 상업까지 폭넓게 예상되고 있다. 사업에 착수한 지 이미 몇 년이 경과했으나, 아직 먼 꿈이라는 상태였다.
그래도 천하인이 행하는 일대 공공 사업이며 금후의 막대한 이익이 예상되다보니, 자금력이 있는 유력자들은 하나같이 이 사업에 투자했다.
공사 자체의 기초적인 기술은 실증되어 있으며, 이후에는 단순히 노력을 필요로 할 뿐이기에 안정된 이익이 기대되는 사업이 되어 있었다.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키소 삼천의 정비였다. 키소가와(木曽川)와 나가라가와(長良川), 그리고 이비가와(揖斐川)의 세 강은 하류부에서 복잡하게 얽혀 있고, 유량(流量)에 비해 강바닥이 얕기 때문에 종종 수해를 일으켰다.
상류부나 중류부에 저수지를 설치하려 해도 발본적(抜本的)인 해결을 꾀하지 않는 한 수해의 근절은 불가능하다.
"뭐, 유역(流域) 전역이 오다 가문의 지배 하에 들어온 것은 평가할 수 있으려나"
역사적 사실에서는 치수(治水) 기술의 미숙함에 기인하는 공사 자체의 난이도에 더해, 각 지역을 다스리는 영주들의 이해가 대립하여, 수리(水利)를 둘러싸고 다투었기 때문에 치수 대책은 지지부진했다.
그러나, 지금은 미노, 오와리, 이세(伊勢) 등 유역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세 나라의 이해가 일치하고 있어, 노부나가라는 카리스마의 호령 하나에 모두 한덩이가 되어 치수 대책에 달라붙어 있었다.
미노나 오와리의 이점으로는, 안정된 사업용수를 확보할 수 있는 점, 홍수에 의한 피해를 경감시킬 수 있는 점을 들 수 있다. 남은 이세가 받는 이익으로는, 상공업의 중심지인 오와리와 육로가 개통되는 것이 컸다.
이 한 가지만 가지고도 북(北) 이세가 키소 삼천에 대한 치수공사를 추진하기에는 충분했다. 현재로서는 키소 삼천의 하류역(下流域)을 도하(渡河)하는 것은 어려워서, 직선거리로는 오와리와 가까운데 그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실제로 노부나가도 이세 침공 당시 최단거리를 택하지 않고 일단 미노로 나가서 크게 우회하여 이세로 향하는 루트를 선택했다.
해로를 이용하면 오와리와도 교역할 수 있다고는 하나, 육로를 이용할 수 없어서는 교통의 요충지는 될 수 없다. 오와리에서 발단하는 융성의 파도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오와리에서 이세로의 대동맥(大動脈)을 뚫을 필요가 있었다.
"모두가 목적을 향해 매진하고 있는데, 형제 싸움에 휘말려들어서 난리도 아니었어……"
시즈코는 의도하지 않게 노부나가의 직계 형제들의 다툼에 말려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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