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겐키(元亀) 4년 무로마치 막부(室町幕府)의 종언(終焉)


106 1573년 6월 상순



"에취! 으으……, 누가 내 이야기라도 하고 있는 걸까?"


케이지(慶次)가 코타로(虎太郎)와 술판을 벌이고 있을 무렵, 시즈코는 유태인 소녀 '모미지(紅葉)'를 대동하고 노부나가가 있는 곳으로 가고 있었다. 방문 목적은 망고가 수확 시기가 되었기에, 우선 노부나가에게 헌상하기로 한 것이다.

망고는 비교적 빠르게 상하는 과일이다. 현대의 환경에서도 냉장으로 며칠, 냉동이어도 2개월 정도밖에 선도를 유지하지 못한다.

간편하게 냉장 시설을 사용할 수 없는 전국시대인만큼, 작부(作付け, ※역주: 작물을 심는 것) 시기를 엇갈리게 하여, 수확 시기가 흩어지도록 조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금년에는 시즈코가 미카타가하라(三方ヶ原) 전투 준비로 정신없이 바빴기에, 세세한 지시를 내릴 수 없어 한꺼번에 작부를 해 버렸다.

그 때문에 같은 시기에 대량의 망고가 익어버리게 되어, 수요량을 공급량이 상회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었다.


가치를 알 수 없었기에 생각없이 유통시킬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썩게 놔두는 것도 아깝다.

뭔가 좋은 처분 방법이 없을까 생각했을 때 떠올린 것이 집들이 연회(新築祝い)를 틈타 초대객들에게 대접하는 것이었다.

현대라면 생식(生食) 이외에도 망고 처트니(chutney)나 잼 등으로 가공하여 장기보존도 가능하지만, 하나같이 대량으로 설탕을 사용하는데다, 처트니의 경우에는 귀중한 후추나 다른 향신료 등도 필요해진다.

아직 설탕이나 향신료가 귀중한 전국시대에서는 코스트상 포기할 수밖에 없어, 많은 사람이 모이는 집들이 연회에서 생식으로 대접하는 것이 가장 유용한 소비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미안해, 운반하는 걸 돕게 해서. 다들, 주상(上様) 상대로는 위축되어 버려서 말야……"


"괘, 괜찮, 습니다"


모미지는 기특하게도 시즈코에게 작은 주먹을 쥐어보이며 의욕이 있다는 점을 어필했다.

본인은 기합을 넣고 있는 모양이지만, 시즈코에게는 든든함보다 어린애 특유의 사랑스러움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어머, 저 사람들은"


모퉁이를 돌았을 때, 시즈코는 낯익은 세 사람을 발견했다. 도쿠가와(徳川) 가문 가신(家臣)들인 타다카츠(忠勝), 한조(半蔵), 야스마사(康政)였다. 상대는 이쪽을 눈치채지 못한 채, 만취하여 제정신이 아닌 타다카츠를 부축하며 걷고 있었다.


"이 방이면 되겠지. 그럼 간다"


"음. 하나, 둘ー"


구령소리와 함께 한조와 야스마사가 또다시 만취하여 제정신이 아닌 상태(酩酊)인 타다카츠를 방으로 던져넣었다.

그야말로 집어던진다는 표현이 딱 맞을 정도로 익숙한 동작이었으며, 던져지는 타다카츠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었다.

일단 타다카츠가 무사히 자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 한조가 한숨을 쉬었을 때, 두 사람은 이쪽을 바라보는 시즈코들의 존재를 깨달았다.


"어이쿠, 시즈코 님. 추한 꼴을 보여드렸군요. 헌데, 뭔가 기묘한 것을 들고 계시군요"


"무엇이라고요ー!"


한조가 시즈코에게 말을 건 순간, 갑자기 각성(覚醒)한 타다카츠가 고함을 지르며 뛰쳐나왔다.

타다카츠를 던져넣은 방의 바깥은 툇마루(縁側)와의 사이에 있는 복도(廊下)로 되어 있어, 방에서 등을 돌리고 있던 두 사람은 타다카츠의 돌진을 정통으로 받았다.

갑작스런 일에 두 사람 모두 낙법조차 치지 못하고 들이받혀 날려간 기세대로 툇마루에서 정원으로 얼굴부터 다이빙했다.

그것이 그치지 않고, 타다카츠는 예상하지 못했던 격돌에 다리가 꼬여, 앞으로 고꾸라져 복도를 핥게 되었다.

얼굴부터 정원으로 떨어져 몸을 새우처럼 꺾은 채 쓰러진 한조와 야스마사, 얼굴로 브레이크를 걸게 되어서 몸부림치는 타다카츠.

극히 흔한 복도에서의 대화가, 아비규환의 지옥도로 뒤바뀐 순간이었다.

체면을 중시하는 무사에게 있어 너무나도 불명예스러운 참상을 보고, 시즈코는 살짝 모미지의 눈을 손으로 가렸다.


"다들, 지위가 있으신 분들이니, 지금 본 것은 잊도록 해"


"네, 네에"


시즈코의 말을 솔직하게 받아들인 모미지는, 시즈코가 손을 떼자 자기 손으로 자기 눈을 가리고 주위의 광경을 보지 않으려 했다.

시즈코가 다시 타다카츠 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타다카츠에 의해 날아간 두 사람이 일어서서 타다카츠와 치고받으며 싸움을 시작하고 있었다.


"저건, 말릴 수 없겠네"


취객이라고는 해도, 맹장(猛将) 세 사람이 치고받는 것이다.

시즈코 같은 여자가 말리러 들어가봤자 간단히 날아가 버릴 것이 눈에 선했다. 언제 끝날까, 라고 시즈코는 생각했으나, 결판의 때는 의외로 빨리 찾아왔다.

타다카츠 정도는 아니라고 해도, 두 사람도 나름 꽤 술을 마셨다. 그 상태에서 격렬한 운동 같은 걸 하면, 결과는 불 보듯 뻔하다.


"기다려! 두 사람 다…… 우풉, 위험하다……"


"으윽…… 여, 여기는 일시 휴전……"


"그렇…… 군"


치밀어오르는 구토감에 이성이 되돌아왔을 무렵에는 이미 늦었다. 세 사람 다 취객의 벌건 얼굴에서 푸른 색을 넘어서 흙빛으로 바뀌더니, 입을 틀어막고 달려나갔다.

목적지는 아마도 측간이겠지, 라고 시즈코는 이해하고는 눈을 계속 가리고 있는 모미지에게 말을 걸었다.


"이제 눈을 떠도 돼. 그럼 갈까? 모미지 짱"


모두 못본 적으로 하자, 누구에게든 그게 제일 온당한 결과가 될 거라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모미지가 어떻게 생각했는지 알 수 없지만, 오늘 일을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할 거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웠다. 이리하여 그들의 체면은 지켜졌다.


생각지도 못한 소동에 말려들었으나, 그것들 전부를 없었던 일로 한 시즈코는, 대량의 망고를 들고 노부나가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도착하기 직전, 예상치 못하게 노부나가와 마주쳐버렸다.


"그 녀석이 이번에 고용한 남만의 계집이냐"


시즈코 뒤에 낯선 소녀가 서 있는 것을 깨달은 노부나가가 모미지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갑작스럽게 말을 걸자 놀란 모미지는, 그래도 짐을 든 채로 엎드려 절했다.


"네, 착한 아이입니다"


"엎드리지 않아도 된다, 고개를 들어라. 흠, 머리는 검지만 눈이 우리와 다르구나. 비취(翡翠)같은 푸른색(碧色)을 띠고 있군. 이런 남만인도 있는가"


모미지의 머리카락은 약간 곱슬머리인 흑발이며, 눈동자는 파란색을 띤 녹색이었다.

선교사들과는 약간 느낌(面持ち)이 다른 모미지의 외모가 신기한 건지, 아니면 서양인의 골격에 흥미를 가진 건지, 노부나가는 모미지를 자세히 관찰했다.

배려가 없는 시선에 노출되어 위축된 모미지는, 다시 고개를 숙여 버렸다.


"주상, 모미지가 무서워하고 있습니다. 그 쯤에서 용서해 주십시오"


"딱히 적의를 보인 건 아니다. 신기한 눈을 하고 있구나, 라고 생각한 것 뿐이다. 빛의 정도에 따라 흔들리는 모습이 보석처럼 아름답구나"


턱에 손을 대며 노부나가는 모미지의 눈을 칭찬했다. 마음에 없는 말 같은 걸 할 리가 없는 노부나가의 말에, 노여움(勘気)을 두려워한 모미지도 다시 고개를 들었다.


"이방인(異人)을 품는 것에 대해 뭔가 말하는 놈도 나오겠지만, 내가 허락하겠다. 네가 나를 위해 일하는 한 쓸데없는 소리(文句)는 못하게 하겠노라"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하여, 시즈코. 뭘 들고 있는 게냐? 아아, 아마타마(甘珠, ※역주: 직역하면 단 구슬)이냐"


노부나가는 시즈코가 들고 있는 바구니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시즈코가 바구니 속에서 하나 꺼내서 보여주자, 그는 망고의 별명을 말했다.

최근 알게 된 것이지만, 노부나가는 자신이 마음에 든 것에 대해 별명을 붙이는 버릇이 있었다. 그의 네이밍 센스는 너무 뜬금없어서 다른 사람에겐 이해하기 어렵지만, 간결하게 특징을 포착하고 있었다.


"네, 이번에 수확을 하게 되었기에, 우선 주상께 헌상할 겸, 식후의 감미(甘味)로서 어떨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나쁘지 않다. 마침 단 과일이라도 집어먹을가 생각했던 참이다. 남만의 케이크인가 하는 건 달지만, 너무 달아서 끈적인다고 느꼈지"


그 한 마디로 망고의 처리방법이 확정되었다. 시즈코는 망고를 주방으로 운반하여, 서둘러 접시에 담아 내도록 명했다.

망고를 생식할 경우, 현대와 마찬가지로 중앙에 있는 씨를 피하여 과실을 세 개로 자른다.

씨앗이 있는 중앙부를 제외하고, 양쪽의 과실에 대해 껍질에 거의 닿을 정도로 주사위 모양으로 칼집을 넣은 후, 마지막으로 껍질을 뒤쪽에서 밀어 꺾으면 먹기 좋은 형태가 된다.

노부나가에게 제공되지 않은 씨앗이 붙은 부분은, 과육과 씨앗으로 나누어진다. 과육 부분은 혜택(役得, ※역주: 직업이나 업무 수행 중에 얻게 되는 이득을 말함)으로서 주방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위장으로 들어가지만, 씨앗은 껍데기(外殻)와 속껍질(渋皮)을 벗긴 후에 재배로 돌려진다.


이 망고의 씨앗은, 꺽꽂이(挿し木)와는 별도로 키우기 때문에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려면 최소한 6년 정도 걸린다.

이것은 시즈코가 해외에서 들여온 다양한 품종에도 적용되는 것인데, 꺽꽂이나 분주(株分け)에 의한 카피가 아니라 씨앗부터 재배하면, 유전이나 돌연변이에 의해 부모와는 다른 성질을 갖는 경우가 있다.

더 달고, 더 싱싱한 우량 품종을 얻기 위해 품종 개량을 하려고 씨앗부터 재배하고 있는 것이다.


"아, 잊을 뻔 했다. 사모님(奥方)들께도 가져다드려"


시즈코는 노히메(濃姫)들에게도 망고를 내놓도록 명령한 후, 모미지와 함께 주방을 나섰다.




시즈코 저택의 집들이 연회는 떠들썩하면서도 탈없이 종료되었다.

그만큼 준비했던 술을 남김없이 마셨는데도 인사불성에 빠진 사람이 없었으니, 에치고(越後) 사람들에는 주호(酒豪)가 많다는 것은 정말이구나라고 감탄했다.

예상대로, 시즈코가 켄신(謙信)과 차분히 대화할 기회는 없었다. 하지만, 이것은 정치적으로 당연한 이야기였다.

아무리 신하가 되었다고는 해도, 즉시 노부나가나, 오다 가문 내에서도 주목받는 중진(重鎮)인 시즈코에게 거리낌없이 접촉했다가는, 우에스기(上杉) 가문은 오다 가문에게 알랑거린다는 이미지를 주게 되어버린다.

그렇게 되면 오다 가문과 우에스기 가문 각각의 가신들끼리 다툼을 시작할 것이 눈에 선했기에, 켄신으로서도 남들의 눈이 있는 상태에서는 신중한 대응이 요구되었다.

그러한 의도를 헤아리고 있었는지, 노부나가도 켄신의 태도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영주(国人)의 비애(悲哀)려나. 마음 속을 터놓고 나누고 싶은 말도 있겠지만, 표면적으로는 움직이지 못하겠지. 그럼, 슬슬 괜찮으려나?)


조직끼리 얽히게 되면 어쩔 수 없이 긴장 상태가 발생하게 된다. 오다 가문 가신(家中)들조차 서로 견제하고 있는 현 상황에 일말의 씁쓸함을 느끼면서도 시즈코는 아야(彩)를 대동하고 감옥으로 향했다.

시즈코 저택에 갖춰진 지하 감옥은, 단단한 암반이 깎여나가 생겨난 천연의 동굴을 이용하여 만들어졌다.

출입구는 견고한 쇠창살로 막혀 있어, 빈손으로 갇히게 되면 빠져나온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 감옥의 입주자(入居者)는, 사나다(真田) 가문을 섬기는 간자였다.


"깨어 있어?"


"깨어 있다"


감옥의 쇠창살을 가볍게 두드리며 시즈코가 어둠에 대고 말했다. 잠시 간격을 두고, 감옥 안에서 사람이 몸을 움직이는 기척이 느껴졌다.

놀랍게도 되돌아온 것은 젊은 여성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시즈코는 즉시 이해했다. 타케다(武田) 가문은 유랑무녀(歩き巫女)를 많이 쓰고 있기에, 간자가 여자인 경우는 드물지 않다는 것을.


"미안해, 부자유스럽겠지만 조금 더 참아줘. 이렇게 해두지 않으면 입막음을 당할 가능성이 있으니까"


"자신의 입장은 이해하고 있다. 사치스런 소리를 하자면, 손발의 족쇄를 풀어줬으면 하는데"


"그건 당신의 자유를 뺏는 동시에, 당신의 몸을 지키는 것이기도 해. 지금은 풀어줄 수 없어. 일단 이야기를 들려주겠어?"


"나는 건네준 서신 이외의 것은 듣지 못했다"


"서신에서 대략적인 사정은 파악했지만, 그 이외에 알리고 싶은 정보가 있지 않아?"


시즈코의 물음에 간자는 침묵했다. 이건 묵비(黙秘)가 아니라 주저하고 있는 것이라고 헤아린 시즈코는 계기를 부여했다(呼び水をさす).


"(지금, 억지로 캐물어봐도 소용없으려나) 뭐, 괜찮겠지. 일단 조금만 더 참아줘. 아, 탈출하려고는 하지 않는 편이 좋아. 아무리 나라도 그건 감싸줄 수 없으니까"


"……잘 알고 있다. 한 가지만 전하고 싶군. 주군(主)의 마음은 이미 정해졌다. 당장은 올 수 없지만, 반드시 당신에게 달려오겠다고 하셨지"


"알고 있어. 내가 이해하고 있다는 걸 그에게 전하기 위해서도 얌전히 있어줘. 며칠만 참으면 돼. 그럼"


들을 것은 들었다. 그것을 이해한 시즈코는 아야를 데리고 감옥을 나섰다.

시즈코가 말한대로, 사나다 가문의 간자는 며칠 후, 적당한 이유를 붙여 풀어주었다.

그 때 서신의 답장은 들려보내지 않았다. 도중에 누군가에게 붙잡힐 가능성이 있기에, 간단히 구두로 대답을 전하기로만 했다.


"자, 이번에야말로 평화가 올 거야"


기지개를 켜며 몸을 푸는 시즈코였으나, 그 말을 입에 올릴 때마다 평화에서 멀어지고 있는 것을 그녀는 모른다.


사나다 가문의 간자를 풀어준 지 일주일 후. 계절은 장마(梅雨)로 변하여 날이 갈수록 더워지는 가운데, 시즈코는 노부나가가 있는 기후 성(岐阜城)으로 향하고 있었다.

목적은 시즈코가 담당하고 있는 인프라 정비 사업의 상황을 보고하기 위해서다. 노부나가는 혼간지(本願寺)와의 강화(和睦)가 성립한 이래, 정력적으로 인프라 정비에 착수했다.

쿄(京) 주변은 물론이고, 오우미(近江)나 이세(伊勢)를 경유하여 미노(美濃), 오와리(尾張)에 이르는 대동맥(大動脈)을 정비하는 대사업이었다.

미카와(三河)나 에치고(越後)는 포함되지 않았으나, 이에야스(家康)가 인프라 정비에 의욕을 보였기에, 조만간 제 2차 인프라 정비사업으로서 계획에 포함되게 된다.


"금일 하늘 맑음(本日は晴天なり, ※역주: 무선전화설비의 테스트 등에서 쓰이는 표현. 단순히 의미는 '오늘은 날씨가 좋음'이지만, 옛날식의 말투라서 일부러 저렇게 번역함), 이랄까"


장마 기간중에 멀리 나가게 되었으나, 기후 성으로 가는 날은 다행히 맑은 하늘이었다.

우비(雨具) 준비가 필요없었기에 가는 것은 쉬웠으나, 언제 날씨가 나빠질지 시즈코는 걱정하고 있었다. 다행히, 기후에 도착한 후에도 날씨가 악화될 기색은 없었다.


"이쪽에서 기다려 주십시오"


안내역을 맡은 호리(堀)에게 안내된 방에서 시즈코는 노부나가로부터의 부름을 기다렸다. 계획은 순조 그 자체로, 큰 문제도 없기에 보고에 불안을 품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이번의 여정을 짧게 계산하여, 경비병도 사이조(才蔵)를 포함한 얼마 안 되는 수하만 데리고 왔다.


"이번의 보고에는 딱히 걱정할 만한 사항은 없네. 당초에 휴일(休日) 제도를 도입한다고 건의했을 때는 설명하는 데 한나절이 들었는데……"


일본에서는 메이지(明治) 시대가 될 때까지 명확하게는 휴일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쉬는 것은 우란분재(齋)와 연말(盆暮れ正月), 설날(正月), 그리고 축제일 등의 특별한 날에 한정되었다.

다만 조정에서 일하는 관리들에게는 가(假)라고 하는 정기 휴일이 있었다.

매일이 노동이고 몸을 쉴 틈도 없어서는 건강에 좋지 않다고 생각한 시즈코는 위에 말한 휴일을 제정했다.

막연히 매일 일하기보다, 휴일을 정해 완급을 조절하여, 노동자가 건강하게 페이스 조절(メリハリ)을 하며 일하는 것으로 효율이 올라가고, 최종적으로는 사회 전체의 이익이 된다고 시즈코는 노부나가에게 설명했다.

요일의 제정은 오와리에밖에 침투해있지 않기에, 인프라 정비사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간이적은 휴일 제도를 시험적으로 도입하기로 했다.


제도는 대단히 단순명쾌했다. 그날그날의 노동에 목표를 정하고,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던 날이 6일 모이면 다음 날은 하루종일 휴일로 했다. 반대로 말하면, 목표 미달이 계속되면 영원히 휴일은 오지 않는다.

이 휴일은 노동에 면제되는 것 뿐만 아니라, 노동일에 상당하는 급료가 지급되는, 말하자면 '유급휴가'였다. 휴일을 지내는 방법에 규정은 없었고, 법을 어기지 않는 한 뭘 해도 좋다고 하였다.

노동일에 영향을 주지 않는 한, 술을 마시던 행락(行楽)을 가던 자유였다.

미지의 제도이기는 하나, 노동자에게는 불이익은 커녕 유리한 제도이며, 휴일이라는 것을 이해한 노동자들은 다들 열심히 휴일을 얻으려고 분투했다.

종래의 일하는 방식에서는, 날씨를 이유로 일이 없어도 급료는 나오지 않았기에, 일하지 않고도 급료를 받을 수 있는 특전에 분기(奮起)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오늘은 부름이 늦네……. 휴일 제도의 성과를 듣고 싶다고 하셨으니, 슬슬 부름이 와도 좋을 텐데……"


그런 말을 딱히 누구를 대상으로 하지 않고 중얼거리고 있을 때, 시즈코의 귀에 뭔가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생각한 후, 옆에 있는 사이조에게 얼굴을 돌렸다.


"기분 탓은 아니죠?"


"소생의 귀에도 들렸습니다. 저건 맹장지가 찢어지는 소리일까요?'


"으ー음, 수상한 자(曲者)가 침임했다…… 고는 생각하기 어렵지만, 일단 확인하러 가죠"


여차하면 사람을 부르면 된다고 가볍게 생각한 시즈코는 사이조와 수하의 병사들에게 주의를 환기시키며 소음이 계속되고 있는 현장으로 발을 옮겼다. 주의하면서 다가갔으나, 소음이 끊기는 일은 없었다.

대기실(控えの間)까지 들릴 정도의 소음이 끊기지도 않는 것에, 시즈코는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생각을 고쳐먹고 긴장을 조였다.


"이 어리석은 놈이!!"


"아, 아버님! 기다…… 커흑!"


노부나가의 노성이 들린 순간, 전원이 유사시(荒事)에 대비해 전투태세에 들어갔으나, 이어지는 노성의 내용을 이해하자 몸에서 힘을 뺐다.

흘러나오는 내용을 볼 때 노부나가의 생명이 위협받고 있는 사태는 아니고, 노부나가 자신이 친족 중 누군가에게 격노하고 있다고 전원이 헤아렸다.

시즈코가 눈짓을 하자, 사이조를 필두로 모든 병사들이 머리를 숙이며 고개를 돌렸다. 노부나가가 주위를 신경쓰지 않을 정도로 격노하고 있는 것이다. 관여되지 않는 편이 좋은 게 당연했다.


"이번만큼은 참을 수 없다! 내가 직접, 그 목을 날려주마!!"


노부나가의 노기가 가라앉지 않는 것에 일말의 불안을 느낀 시즈코는, 자기가 생각해도 손해보는 성격이라고 어이없어하면서 중재하기 위해 현장으로 발을 들이밀었다.

실내는 참담한 상황이었다. 노부나가는 분노한 표정으로 뽑아든 칼을 치켜들고 있었으며, 바닥에 주저앉아있는 두 명의 남성을 베어버리려 하고 있었다.

그에 대해 두 사람은, 안색이 푸른 색을 넘어서서 하얗게 질려 있었으며, 코나 입가에서 피를 흘리고 있는 것을 보니 노부나가에게 얻어맞고 걷어차인 것은 틀림없었다.

최근 한동안 좋은 일이 계속되어 어지간한 일에는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던 노부나가가 웬일로 이 정도로 분노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건가 생각하면서, 호리나 란마루(蘭丸)가 필사적으로 다독이고 있는 노부나가에게 다가갔다.


"주상, 지나치게 화를 내시면 몸에 좋지 않습니다"


"웬 놈이냐! 음, 시즈코냐. 너는 거기서 기다리고 있어라. 이 쓰레기들을 처단한 후에 네 보고를 듣도록 하지"


"주상, 무례를 무릅쓰고 간언드리겠습니다. 분노에 휩쓸려 가신을 베면, 후대에 수치로서 전해질 것입니다. 여기는 일단 칼을 거두시고, 일의 전말과 주상의 뜻을 이 시즈코에게 들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뭐가 원인으로 노부나가가 이 정도로 격앙되어 있는지 알 수 없었지만, 노기에 휩쓸려 가신, 그것도 친족의 목을 날렸다고 하면 불명예가 될 것은 틀림없었다.

평소답지 않은 시즈코의 장광설이 노부나가에게 어느 정도 냉정함을 되찾게 했는지, 진절머리 난다는 듯 혀를 차고는 노부나가는 칼을 칼집에 넣어 란마루에게 던져주었다.


"반년이다. 반년의 유예를 주어도 여전히 이 상황을 벗어나지 못한다면, 친자(親子)의 연을 끊겠다! 이게 최후의 자비인 줄 알아라!"


바닥에 쓰러진 채 일어나지 못하고 있던 두 사람에게 내뱉은 후, 노부나가는 어깨로 숨을 쉬며(肩を怒らす) 걸었다. 간신히 칼부림 소동(刃傷沙汰)을 피할 수 있었던 것에 전원이 안도의 한숨을 쉰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덕분에 살았습니다. 솔직히, 저렇게까지 노하신 주상을 말릴 수 있을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안색이 새파래진 호리가 시즈코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쓰레기 취급받은 두 사람은 멍한 상태여서 아직도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호리는 노부나가의 칼을 받아든 채로 굳어있는 란마루의 어깨를 쳤다.

그걸로 제정신이 든 란마루에게, 호리는 의사를 불러오도록 명령했다. 쓰레기라고 불린 두 사람을 치료하기 위해서이리라. 란마루는 칼을 내려놓고는 서둘러 달려나갔다.


위험한 외줄타기이긴 했으나 어찌어찌 참극을 회피한 시즈코에게는, 아직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뭘 하고 있느냐! 시즈코, 너는 따라오지 못하겠느냐! 나머지는 물러나라! 바보 아들놈에게는 일에 착수하라고 전해라!"


"(아아, 역시 이렇게 되는구나) 그럼 여러분, 실례하겠습니다"


노부나가가 열어젖힌 맹장지 저편에서 노성이 들려왔다. 자신의 진척 보고에 더해, 노부나가의 넋두리(愚痴)를 받아준다는 일거리가 추가되었다. 사이조들에게는 먼저 돌아가도록 전하고, 시즈코는 노부나가의 뒤를 쫓았다.


"하여튼, 어찌할 도리가 없는 멍청한 자식놈들이다!"


시즈코가 내민 항아리에서 콘페이토(金平糖)를 한웅큼 집어 입에 털어넣고 거칠게 씹어부수며 노부나가가 내뱉았다.


"노여움의 원인은 이세의 개발이 늦어지고 있는 것입니까?"


"그렇다. 나가시마(長島)를 함락시킨 지금, 오와리와 이세와의 해운(海運)은 내가 장악했다. 그렇기에야말로, 오와리와 이세에서 뻗어나가는 도로 정비는 중요해진다. 항구에서 운반되는 물건들과, 그것을 운반하는 상인들의 왕래가 활발해지면 질수록 오다 영지는 윤택해진다. 육로(陸路)의 정비는 속도가 관건인데, 바보 아들놈들은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 뿐만이 아니라 혼간지 쪽 놈들에게 허를 찔리는 상황이다!"


(상인들로부터 소문을 듣고있었지만, 그다지 진척되지 않았구나, 도로정비)


시즈코는 노부나가의 넋두리에서 사태의 전말에 대해 대략적인 추측을 했다.

이세는 키이(紀伊) 반도(半島)의 동쪽에 위치한다. 이세 만(伊勢湾)을 장악한 지금, 노부나가는 전국으로부터의 해운을 받아 육로로 연결하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쿄로 이어지는 경로는 여럿 있는 쪽이 바람직하다. 설령 다시 오다 포위망이 구축되어 해상 봉쇄를 당하더라도, 육로가 건재하다면 노부나가를 가두는 것은 곤란해진다.

어느 한 쪽만이라도 유지할 수 있으면, 병력 수송도 물자 운반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세를 포함하는 지역은 가파르고 험준한(急峻) 지대라서 교통편이 좋지 않습니다. 그 때문에, 산을 깎아서 길을 내려는 계획이었습니다만, 그게 진척되지 않고 있다는 것일까요?"


"다소의 지연이라면 문제삼지 않는다. 실패에서 배우고, 다음에 활용하면 된다. 문제는 놈들이 책임을 피하려고 한 것이다"


"……납득했습니다"


만회 불가능한 실패가 아니라면, 노부나가는 실패에 대한 처벌을 내리더라도 만회할 기회 또한 준다. 만회할 수 있으면 좋고, 실패하면 거기까지다.

노부나가의 임무에 대한 기본적인 자세는 이것이 전부다. 물론, 몇 번이나 실패를 반복한다면 이야기는 다르지만.


"누구보다 앞장서서 걷는 길이라면, 나도 실패에 대해 고려한다. 그 실패를 연구하는 것으로 뒤를 잇는 자들의 모범이 되기 때문이지. 하지만, 멍청한 자식놈들은 실패에서 아무 것도 배우려 하지 않고 다만 시간을 낭비하며 같은 실패를 반복하고 있다. 그것도 뒤처리를 해준 이후보다도 상황을 악화시킨다는 덤까지 붙여서 말이지"


"새로이 반년의 유예를 주신 것이 마지막, 이라는 것인가요. 확실히, 그 말씀을 들으면 충분히 온정을 베푸신 것이군요. 이래도 실패한다면, 참수를 당해도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겠지요"


"지금 당장이라도 목을 날려버리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말이다. 자, 불쾌한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네 보고를 들어보자"


노부나가는 헛기침을 하며 화제를 바꾸었다. 시즈코도 본론으로 들어가며 표정을 조였다. 그렇다고는 해도, 새삼스레 보고할 내용은 거의 없었다. 이건 집에 빨리 갈 수 있겠다, 고 그녀는 내심 웃었다.


"보고라고 하셔도, 현재 상황은 제 2단계, 제 54공정까지 차질 없이 끝났습니다. 계획보다도 앞서서 진행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꽤 빠르구나. 제 54공정이라고 하면, '다음 달부터 개시될 예정' 아니었더냐? 예정된 것 이상이라는 것은 훌륭하다. 지금부터도 한층 더 분발하도록"


"감사합니다. 노동자들에게는 약간의 휴가와 포상을 주고 예기를 가다듬도록 명하였습니다. 이제부터는 날씨가 나빠지기 쉬운 시기이므로, 노동 환경이나 위생 환경에도 신경쓰지 않으면 안 됩니다"


장마의 시기는 우천시에는 공사를 중지할 수밖에 없어, 공기(工期)가 늦어지면 그걸 만회하기 위해 무리한 노동을 강요할 가능성이 생긴다.

인프라 사업은 이후에도 계속되는 대사업이므로, 노하우를 축적한 베테랑 노동자를 혹사시켜 망가뜨리고 싶지는 않다.


"그러고 보니, 인프라 사업과는 별도로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지금,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상관없다, 말해봐라"


"화폐의 유통량이 줄어들고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수하에 따르면 쿄나 오우미 등에서는 물물교환 시장이 부활하고 있다고 합니다. 조속히 화폐를 늘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화페를 늘린다, 라는 말에 노부나가의 표정이 변했다.

안색에서 추측컨대, 노부나가도 화폐의 유통량이 줄어들고 있는 것은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리라. 하지만 노부나가는, 그에 대해 유효한 조치를 떠올리지 못했다.

그렇다고 해서 노부나가를 무지하다고 비웃을 수는 없다. 경제학 따위 존재하지 않는 시대에서 화폐를 늘린다는 생각에 도달하는 것은 아무리 사고가 유연한 노부나가라고 해도 어려운 일이니까.


"……그리 생각하느냐. 역시, 화폐가 문제인 것이냐"


"통화(通貨) 발행에 관한 권한은 조정으로부터 오다 가문이 위임받았습니다. 최상책은 불환지폐(不換紙幣)로 경제를 컨트롤하는 것입니다만, 그것에는 여러가지 제약이 있습니다. 지금은 은화(銀貨), 금화(金貨)를 주조하여, 시장의 거래 규모에 맞는 화폐량을 담보하는 것이 급무라고 생각됩니다"


"돈이 모자라면, 만들면 된다라. 훗…… 말로 하면 간단하지만, 누구도 그 해답을 찾아내지 못했다. 역시 한번에 건너뛰는 식(一足飛び)으로는 할 수 없는 것인가"


노부나가는 자조하듯 웃었다. 화폐가 부족하면, 새로운 화폐를 제조하여 투입한다. 대단히 간단한 대책이지만, 그 해답조차 자신은 찾아내지 못했다.

시즈코가 지금도 여전히 지혜가 있는 사람들을 모아 많은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것도, 새로운 것을 시작하려면 평범한 것들의 축적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노부나가는 이해했다.


"최종적으로 목표한 지점은 보이고 있습니다만, 현재 상황으로는 불가능하다고 생각됩니다. 우선은 아전(鐚銭, ※역주: 표면이 닳아버리거나 불순물이 섞인 돈)을 구축하고, 새로운 화폐로서 금, 은, 동전을 유통시키는 것이 선결이라 생각합니다"


"애초에, 어째서 화폐가 줄어드는 것이냐? 그걸 이해하지 않고서는 이야기를 진행시킬 수 없다"


"그렇군요…… 가령 일본 전체에 동전(銅銭)이 1천만닢이 있다고 가정합니다. 발행 당시에는 일본에 1천만닢의 동전이 있습니다. 하지만 유통을 거치는 과정에서 동전은 마멸되거나, 녹여서 불순물을 섞어 구리(銅)의 비율을 줄이거나 하여 아전이 생겨나기 시작합니다. 이 아전의 존재와 정전조문(精銭条文)에 의해, 유통되는 화폐의 숫자가 변합니다. 알기 쉽게 절반이 정전(精銭), 절반이 아전이라고 가정합니다. 아전은 5닢에 정전 1닢으로 친다고 하면, 동전 자체는 1천만닢이 있지만, 정전 5백만닢과 아전 1백만닢의 합계 6백만 문(文)밖에 통용되지 않게 됩니다. 당초에 유입된 동전의 숫자보다 화폐가 줄어든 상태입니다. 이렇게 되면 화폐의 가치가 올라가고, 반대로 물가가 떨어집니다"


영락전(永楽銭)은 명나라(明)에서 수입하고 있는 동전이다. 화폐 공급량이 제로인 현 상황에서는, 시장에 존재하는 화폐는 줄어들기만 할 뿐이다.

지금은 정전이더라도, 언젠가 아전으로 바뀌고, 나아가 화페 가치를 끌어올려, 물가가 계속 떨어지는 디플레 경제에 빠져든다.

그야말로 지금이 디플레 경제 상태이다. 이것을 해소하려면 내수의 확대가 바람직하다고 한다.

하지만 내수를 확대하려 해도, 거래량에 걸맞는 만큼의 화폐가 필요해진다. 그래서 시즈코는 기존의 역사를 본받아, 동전뿐만이 아니라 금이나 은의 화폐도 투입하도록 진언했다.


"주상께서 정하신 정전조문은, 금의 '무게'에 대해 교환할 수 있는 '돈'을 결정하고 있습니다. 이래서는 화폐는 계속 줄어듭니다. 금이나 은을 가공하여 화폐로서 유통시키고, 그런 후에 공공 투자를 하여 내수의 확대를 노리는 것이 좋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흠…… 금이나 은은 남만과의 거리에 사용하고 있었지만, 그걸 우리 나라에서도 사용한다는 것이냐. 당면의 과제는 시장에 존재하는 화폐의 숫자를 늘리는 것이구나. 그렇다면 조속히 금이나 은을 모아서 새로운 화폐를 주조할 필요가 있겠구나"


"새로운 화폐의 모양 같은 건 정하셨습니까?"


"지나치게 기발(奇抜)해도 쓰기 불편하겠지. 영락전과 비슷한 모양이면서 위조를 방지할 수 있으면 된다. 물론, 위조한 놈에게는 일가친지 몰살(根切り)이 기다리고 있다"


"그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옛부터 통화 위조는 중죄…… 일가친지 몰살, 즉 일족 도당을 모두 죽이는 정도가 타당합니다"


"이야기는 결정되었구나. 당장 기사들을 모아라. 기사들에게도 엄한 감시를 붙여라. 금은으로 돈을 만드는 것이다. 사심을 가질 가능성이 있지"


"잘 알고 있습니다"


옛부터 통화 제조에 종사하는 것은 엄격한 감시 하에 놓였다.

에도(江戸) 시대에서는, 에도 막부(江戸幕府)가 통화를 제조하는 킨자(金座), 긴자(銀座), 도우자(銅座)라는 화폐주조기관을 설립하고, 각각의 기관(座)에 통화를 제조하게 했다.

특히 가장 가치가 높은 금화를 주조하는 킨자는, 막부로부터 엄격한 감시를 받고 있었다.

고위의 직책(役職)에 부임할 수 있는 가문을 한정하는 것은 물론이고, 직원으로서 채용될 때는 서약서의 의무화, 작업자에 의한 상호감시체제, 봉행소(奉行所)로부터의 순시(巡視) 등이다.


특별히 에도 막부가 엄격했던 것은 아니다. 현대에서도 지폐 제조에 관한 기술은 극비 취급이 기본이며, 관련되는 직원이 사생활에 이르기까지 제한을 받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다.


"서약서의 의무화, 직원의 상호 감시, 제 3자에 의한 순시 등의 규정이 필요하겠군요. 각 직원에게는 조금이라도 수상한 행동을 한 자를 밀고하면 포상금을 준다고 말해두면 배신자도 나오기 어렵겠지요"


"역시 빈틈없구나"


시즈코의 설명에 노부나가는 히죽 웃었다.




우에스기 켄신(上杉謙信)이 노부나가의 신하의 예를 취했지만, 그 하나만으로 신종(臣従)이 담보되느냐 하면 그렇지는 않다. 우선 신하의 증거로서 인질이 노부나가에게 보내질 것이 결정되었다.

누굴 보낼 것인가라는 선별은 의외로 시간이 소요되지 않았다.

노부나가의 인질이 되는 것은 우에스기 카게카츠(上杉景勝)였다. 이것은 우에스기 카게토라(上杉景虎)가 호죠(北条) 가문 출신인 데 비해, 카게카츠는 우에다(上田) 나가오(長尾) 가문 출신인 것이 영향을 주었다.

그리고 에치고 나가오 씨는 오랫동안 가문 내부의 권력투쟁을 계속하고 있었다.

특히 우에다 나가오 가문과 코시(古志) 나가오 가문은 현재도 적대하고 있어, 코시 나가오 가문의 입장에서는 인질의 건은 카게카츠를 추방할 둘도 없는 찬스였다.


카게카츠는 카네츠구(兼続) 등 약간의 측근만을 데리고 에치고를 출발했다. 도중에 아무 일도 없이 기후(岐阜)에 도착하여 노부나가에게 인사를 마쳤다.

노부나가는 카게카츠가 보내어진 것을 그다지 신경쓰지 않고 인질로서 맞아들였다.

원래대로라면 기후의 성시(城下町)에서 생활하겠지만, 미노와 에치고는 지리적으로 가깝고 연락도 취하기 쉽다는 불안이 있었기에, 카게카츠는 오와리에서 인질 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오와리의 경우, 카게카츠를 돌봐줄 인물은 한 명 밖에 없다.


"아ー, 뭐ー, 그렇게 되지 않을까ー 라고 생각했었어"


노부나가로부터의 명령서를 다 읽은 시즈코는 성의없는 태도로 받아들였다. 미노에 카게카츠를 계속 두게 되면, 켄신이라면 어떻게 해서든 연락을 취하는 것이 가능하다.

하지만, 오와리까지의 경우 물리적인 거리가 가로막는다. 간자를 보내려 해도 발견될 가능성은 높아지기에, 켄신도 쉽게 연락을 취할 수 없다.


"주상의 명령입니다. 견실하게 실행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인질인가. 그래서, 란마루. 너, 시즈코의 질문에 대답할 수 있냐?"


다부진 표정으로 말하는 란마루에게, 나가요시가 히죽히죽 웃으며 훼방을 놓았다. 하지만, 란마루는 나가요시의 말을 흘려들었다.


"주상의 명령에 이의 따위 있을 리가 없잖습니까. 그리고 형님, 이 자리에서 저는 주상의 사자(使者). 그런 거친 말투는 문제가 있지 않을까 합니다"


"말 하나는 그럴듯하게 하게 되었구나"


"자, 거기, 일일이 트집을 잡지 마. 받아들이는 건 딱히 문제 없어요. 세세한 지시는 전부 적혀있으니까요. 그래서, 우에스기 가문의 인질의 취급에 대한 건 이족에 일임된 거라고 생각해도 되는거죠?"


"예. 주상께서는 '귀여워해줘라'는 전언을 받았습니다"


"잘 알겠어요. 수고하셨어요"


딱히 질문이 없었던 시즈코는 거기서 대화를 종료시켰다. 그 후, 란마루가 기후로 돌아가고, 이쪽의 지시에 따라 카게카츠들이 측전(側殿) 중 하나에 들어갔다.

그런 일들이 끝나자 카게카츠와 카네츠구가 시즈코에게 알현을 신청했다. 도착 인사일 거라고 이해한 시즈코는, 두 사람을 즉시 부르도록 소성(小姓)에게 명령했다.


"나가오 키헤이지(長尾喜平次)라고 합니다. 길어질지, 아니면 짧아질지는 모르지만, 그 때까지 잘 부탁드립니다"


"히구치 요로쿠(樋口与六)입니다. 마찬가지로, 지금부터 신세를 지겠습니다"


"이야기는 들었어요. 몇 가지 행동에 제한은 두겠지만, 비교적 자유롭게 지내도 상관없어요"


시즈코는 두 사람에게 세세한 제한을 가할 생각은 없었다. 과도한 제한을 둔 결과, 감시측의 인원 부족에 빠져버려서는 얘기가 안 된다.

또, 아무리 켄신이 노부나가의 신하가 되겠다고 결정해도, 불만을 가진 사람들은 반드시 있다. 그런 패거리들에게 파고들 여지를 주지 않기 위해서도, 인질의 취급은 엄격하게 할 생각은 없었다.

불만을 가진 사람이 은혜를 원수로 갚는 짓을 하면, 노부나가나 켄신이 제재(粛正)를 가할 때 대의명분이 되지 않을까, 하는 흑심(下心)도 있었다.


"지금 있는 집 안이라면 자유롭게 행동해도 상관없지만, 외출시에는 이쪽에서 사람이 따라붙으니까 그것만 주의해줘요"


"과분한 온정,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자세한 이야기를 생략하면, 대충 이 정도일까? 나머지는 감시역인 케이지 씨에게 그때그때 물어주세요"


그 후, 카게카츠와 카네츠구는 케이지를 따라 퇴출했다. 나가기 직전에 술이 이러니 저러니 하는 케이지와 카네츠구의 대화가 들렸기에, 시즈코는 약간 불안을 느꼈다.

술의 소비가 크게 늘어나는 게 아닐까, 하는 불안에.




이제 곧 아자이(浅井)-아사쿠라(朝倉) 침공일까, 라고 시즈코가 막연히 생각하고 있을 때, 금속 가공에 종사하고 있던 전직 노예인 야이치(弥一)와 루리(瑠璃)가 찾아왔다는 연락을 받았다.

호출한 기억이 없었기에 뭔가 상담할 일이 있나 하고 생각한 시즈코는 두 사람을 만나기로 하고, 귀찮지만 알현실까지 이동했다.

생각대로, 두 사람은 상담할 일, 이라기보다 어떤 부탁을 하기 위해 시즈코와의 면회를 요청한 것이었다.


"집을 가지고 싶어요?"


그건 둘이서 살 집을 가지고 싶다, 라는 상담이었다. 각자 일하는 장소가 다르기에, 현재 야이치와 루리는 따로따로 살고 있다.

지금까지 떨어져 살았던 경험이 없었기에, 이것이 보이지 않는 스트레스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둘이서 함께 살고 싶다. 하지만 허가 없이 생활(待遇)을 바꾸면 질책받을 거라고 야이치가 생각하여, 시즈코에게 허가를 받으러 왔다는 이야기였다.


"응, 딱히 상관없어요. 그걸로 일의 효율이 올라간다면 이쪽도 거절할 이유는 없어요"


시즈코의 허가를 받자 야이치와 루리는 휴 하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렇게까지 신경쓸 일인가, 라고 생각했으나 노예 생활이 길었기에 그들은 고용주의 허가를 얻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는 것이라고 시즈코는 이해했다.


"그런데 일은 순조롭나요?"


"네. 처음에는 어색한 관계였습니다만, 지금은 여러분이 매우 잘 대해주십니다. 다만, 기술자들의 진지함, 만은 지금도 어색합니다. 조금, 따라가기 힘듭니다"


"젊은 사람이나 정열적인 사람으로부터는 선생님이나 스승이라고 불려서 기쁩니다. 하지만, 다들 너무 진지하여, 이쪽이 반대로 미안해져 버립니다"


"그런가요, 그거 다행이네요. 뭐 우리 기술자들은 지는 걸 싫어하니까요. 두 사람의 기술을 배워서 언젠가 그걸 뛰어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는 거겠죠"


이야기를 들어보니 야이치나 루리와 기술자 마을의 기술자들의 관계는 양호했다. 그들이 만드는 상품도 날개돋친 듯 팔린다, 까지는 아니지만 서서히 주목받게 되고 있었다.

특히 1mm 정도의 가느다란 바늘 모양의 은이나 금으로 세공한 허리띠(帯飾り)는, 평소에 장식품을 달지 않는 무가(武家)의 부인들 사이에서 조용히 인기 상품이 되어 있었다.


"고마운 이야기, 입니다. 하지만, 동포들이 지금도 불우한 취급을 받고 있다, 고 생각하면, 저는 진심으로 기뻐할 수 없습니다"


근본이 성실한 건지, 야이치는 자신만이 구원받은 현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루리가 야이치의 등을 문지르며 위로했으나 그다지 효과는 없었다.


"하, 네가 언제부터 다른 사람의 걱정을 할 수 있는 신분이 된 게냐"


시즈코가 건넬 말을 생각하고 있을 때, 어느 새 코타로가 야이치의 등 뒤에 서 있었다. 깜짝 놀란 야이치가 돌아보았으나, 그런 그를 보고 코타로는 코웃음을 쳤다.


"조금 여유가 생겼다고 애숭이가 우쭐하지 마라. 자기 몸 하나 뜻대로 하지 못하는 네가, 다른 사람의 몸을 걱정하다니 웃기는구나"


"……네"


"지금은 자신의 기반을 다지고, 자신이 홀로 설 수 있게 되는 걸 우선시해라. 다른 사람을 돌봐주는 건 그 다음이다"


주인인 시즈코가 뭔가 말하기보다, 같은 유태인인 코타로의 말이 납득하기 쉬웠는지, 아까까지 외곬으로 생각하며 고민하고 있던 야이치였으나, 지금은 고민이 해결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야이치의 표정에 만족했는지, 코타로는 히죽 웃으며 앉았다.


"미안합니다, 주인님. 오늘은 부탁할 것이 있어서 왔습니다만"


"이제와서 늦은 얘기네요. 이번에는 괜찮지만, 다음부터는 제대로 순서를 지켜 주세요"


"노력하죠. 그래서, 이야기라는 건 와인을 만들고 싶으니, 그 환경을 갖춰 줬으면 합니다"


누구에게 배운 거냐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은근히 건방진 말투에 마음 속으로 태클을 걸던 시즈코였으나, 와인이라는 단어를 듣고 생각에 잠겼다.

기독교에서 와인이란 '신의 피'이며, 대단히 중요한 아이템이다. 하지만 실은 유태 교에서도 와인은 기쁨의 상징, 안식일에 기도를 드리는 등 중요한 것이다.

여담이지만, 유대 교에는 계율에 적합한 카슈루트(kashrut, 코셔(Kosher)라고도 한다)라는 식사 규정이 있다.


카슈루트를 엄격하게 지킨다면, 와인은 유태 교도가 순서에 따라 포도를 재배하고 와인을 만들어 병에 담은 것 이외에는 인정되지 않는다.

물론, 카슈루트에 적합한 와인을 이교도가 만져도 마찬가지로 더럽혀진 것으로 간주된다.


"그건 계율에 따른 포도주를 만들고 싶다는 건가요?"


"응? 아핫핫핫, 계율 같은 건 생각도 안 했습니다. 순수하게 와인이 마시고 싶어진 것 뿐입니다. 하지만 포도를 모으는 건 지금의 내게는 불가능한 일이니, 주인님에게 부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거라면 몇 달만 기다리면 코우슈(甲州) 포도가 수확할 시기가 될 거에요. 그 때, 생식에 맞지 않는 것을 와인용으로 쓰죠"


"잘 부탁합니다"


말을 끝냄과 동시에 코타로는 몸을 돌려, 용무는 끝났다고 말하듯 알현실을 나갔다. 지나치게 자유분방한 모습에 주위 사람들은 어이가 없어졌으나, 케이지와 시즈코만은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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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

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겐키(元亀) 4년 무로마치 막부(室町幕府)의 종언(終焉)


105 1573년 6월 상순



5월 하순, 전국시대의 종언(終焉)을 고하는 역사적 이벤트가 미노(美濃)의 기후 성(岐阜城)에서 막을 올렸다.

전국시대를 대표하는 다이묘(大名) 중 한 명이라도 해도 과언이 아닌 우에스기 켄신(上杉謙信)이, 노부나가의 거성(居城)인 기후 성에서 신하의 예를 올렸다.

이것으로 에치고(越後)는 노부나가의 지배하에 편입된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한 나라가 함락되었다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미노보다 동쪽에 있는 나라들은 상락(上洛)하려고 하면 반드시 노부나가가 지배하는 땅을 통과해야 하며, 결과적으로 상락이 불가능해졌다.

오다, 도쿠가와(徳川), 우에스기의 3개국으로 사이고쿠(西国)로 통하는 길을 틀어막았다.

이 사실은 노부나가에게 토우고쿠(東国)에 대해 동원할 병력의 수를 줄일 수 있으며, 동시에 사이고쿠 문제에 집중 대응할 수 있게 되는 메리트를 가져온다.

한편, 세력이 분단된 형태가 된 엣츄(越中)나 에치젠(越前)의 일향종(一向宗)은 궁지에 빠졌다.

육로를 통한 보급로가 끊기고, 오다-우에스기의 양쪽을 상대해야 하는 상황을 강요받게 된다. 무력에서 떨어지는 일향종으로서는 죽었다 깨어나도 이길 수 없는 도식이 성립되었다.


주변국이 갑작스럽게 뒤바뀐 세력구도에 대응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는 동안, 원흉(元凶) 중 한 명인 시즈코는 다른 일로 정신없이 바빴다.


"어째서 이렇게 된 거지?"


뭐가 어떻게 되어 지금의 상황이 된 건지, 시즈코는 이해할 수 없었다. 우에스기 켄신이 노부나가를 방문하고, 신하의 예를 올릴 때까지는 예정대로였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어째서 우리 집 집들이가, 어느새 우에스기 가문을 환영하는 주연(酒宴)으로 바뀐 거지?"


시즈코는 혼자서 불평했다. 새 집이 완성되었으나 집들이를 하지 못했기에, 가까운 사람들(身内)을 초대하여 한식구(内輪)끼리 축하연을 열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 자리에 주군인 노부나가나, 그 맹우(盟友)인 이에야스(家康)가 참가하는 것까지는 간신히 납득도 할 수 있었다.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그 축하연에 우에스기 켄신까지 참가할 것이 결정되었다고 듣고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애초에 우에스기 가문이 신하가 되는 것을 축하해도 되는지라는 근본적인 문제가 시즈코에게는 있었다.


"지금부터는 우리들도 시즈코 님과 한식구가 됩니다. 한식구의 경사에 불만 같은 게 있을 리 없지요"


하지만, 켄신 본인이 전혀 신경쓰지 않았고, 그러긴 커녕 시즈코 저택의 구조(造り)에 흥미진진하여 축하연에 참가한 상황이었다.


"이것이 오와리(尾張)의 최신(今様) 저택…… 곳곳에 여러가지 배려(工夫)가 되어 있군"


"영주님(御実城様), 한동안 체재해보고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만, 옛것과 새로운 건축 양식이 훌륭하게 융합되어 있습니다! 이쪽을 보아 주십시오"


"오늘은 초대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실로 훌륭한 저택이군요, 시즈코 님"


"어이쿠, 이건 시즈코 님, 대단히 멋진 궁궐(御殿)이군요. 소생도 언젠가 이런 저택을 가지고 싶습니다"


"카하하핫, 좋구나 좋아(善哉善哉)! 경사스런 일이 겹치니, 우리들의 미래도 밝을 것이야"


그 후에도 초대한 기억이 없는 사람들까지 차례차례 방문해왔다.

타케다(武田)를 쳐부수고 우에스기가 신하가 된 것에 의해 당면한 위협이 없어진 것 때문인지, 오다 가문의 중신들도 거리낌없이 집들이에 얼굴을 내밀게 되었다.

예상외의 대 북적임에 수용 능력이 시험받게 되었으나, 기적적으로도 참가자 전원이 연회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

다만 비정상적으로 인구밀도가 높아져 있었기에, 어디에 누가 있는지 상좌(上座) 부근을 제외하면 알 수 없는 상황이 되어 있었다.


"이제 딱히 우리 집 집들이가 아니어도 괜찮은거 아닌가"


시즈코는 그런 말을 중얼거리면서, 이 날을 위해 준비해온 디저트의 마무리를 하고 있었다. 그것은 소위 말하는 딸기의 쇼트케이크였다.

딸기라고 해도 현대와 같은 양딸기(オランダイチゴ)가 아닌, 일본에 옛부터 자생하고 있는 산딸기(キイチゴ) 속(属)의 장딸기(クサイチゴ)를 사용했다.

장딸기는 산딸기 중에서도 대형이고, 현대의 품종 정도는 아니라고 해도 강한 단맛을 가지고 있다.

현대의 품종과 달리 약간 자기주장이 강한 신맛을 갖지만, 잼 등으로 가공해버리면 신경조차 쓰이지 않는다. 이번에는 신맛을 약화시키기 위해 시럽을 졸여 약간 불을 들였다.


여담이지만 스폰지와 크림을 층층이 쌓아서 크림 장식과 함께 딸기 등의 과일을 얹은 쇼트케이크는 일본이 발상지이다.

영어권에서는 레이어(layer, 또는 레이어드(layered)) 케이크라고 부르는 비슷한 케이크가 존재한다.

그러나, 사용되는 반죽(生地)은 스폰지가 아니라 비스킷이라고 불리는 단단한 식감의 반죽을 사용하며, 크림이나 과일을 중간에 끼워넣는 것이 특징이다.

따라서 일본에서 생일이나 크리스마스 등의 정석이 되는 딸기의 쇼트케이크라는 것은 일본에만 존재한다.


"으ー음, 역시 케이크는 좋아. 너무 많이 먹으면 살찌지만…… 아니, 예전과는 운동량이 다르니까, 하나쯤 더 먹어도 괜찮…… 을지도 몰라"


하나쯤 더, 라고 생각한 시즈코였으나, 둥글둥글한 자신을 상상하고 자제했다. 그리고 쟁반에 쇼트케이크를 몇 개 얹은 큰 접시를 놓은 후, 이것을 노히메(濃姫)가 있는 곳으로 가져가도록 몸종(小間使い)에게 명했다.


그 후, 별실(別室)에서 자유롭게 집주인이 없는 집들이를 만끽하고 있던 노히메들에게 말을 걸고, 시즈코는 노부나가가 있는 상좌로 발을 옮겼다.

축하받을 입장인 집주인인데 어째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건가 하고 일순 쓸데없는 생각을 했으나, 자신이 자리를 비운 동안 노부나가 등 비호자(庇護者)들이 정치적인 협상을 취사선택해줄 거라고 생각을 고쳐먹었다.


"다들, 오늘은 실컷 마시고 먹고 즐기자꾸나"


그 후, 노부나가가 개회사를 하여 시즈코 저택 집들이 연회가 개막되었다.




처음 본 에치고(越後) 사람들을 한 마디로 나타내지면, 그들은 술에 대해서는 사양하지 않았다. 에치고 사람들이 있는 자리와 없는 자리는 술통의 소비량이 눈에 띄게 차이가 나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볼 때는 무서운 기세로 마시고 있는데 취해 쓰러지지 않는 술고래(蟒蛇) 투성이였다.

소문이 헛되지 않은 에치고 주호(酒豪) 들의 모습을 직접 보고 제아무리 노부나가나 이에야스라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여전히 내 금주령은 풀리지 않았지만…… 말야)


흐르는 작업처럼 술통에서 퍼올려져서 운반되어가는 술병(徳利)을 보면서 시즈코는 자신에게 채워져 있는 목줄에 대해 생각했다.

만약을 위해서 대량으로 술을 준비하고 술가게(酒屋)에서도 대량으로 사들였으나 남을 일은 없을거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우에스기 사람들에 비해 이에야스 등 도쿠가와 사람들은 아직 청주에 익숙하지 안하, 그 소비 페이스는 느릿했다.

지금은 미카와(三河)나 토오토우미(遠江)에도 오와리나 미노에서 생산된 청주가 팔리게 되었으나, 아직 생활에 침투하는 데는 이르지 못한 모양이다.

노부나가는 평소처럼 자신의 페이스로 마시고 있었다. 애초에 술을 잘 못 마시는(下戸) 것으로 알려진 노부나가였기에, 그다지 많은 양의 술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 어느 쪽이냐 하면, 그는 술보다 단 것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었다.


(한식구끼리의 속편한 연회가 어쩐지 거창한 주연(酒宴)이 되어 버렸네)


주역이기에 시즈코는 노부나가와 마찬가지로 상좌에 위치하고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면 눈에 들어오는 것은 노부나가, 이에야스, 고노에 사키히사(近衛前久), 우에스기 켄신이라는 쟁쟁한 인물들이었기에 조금도 긴장이 늦춰지지 않았다.

게다가 이 후, 노히메들과도 얼굴을 맞댈 필요가 있다.


(마음이 무겁네)


조금도 편히 즐길 수 없는 연회가 계속된다고 하면 아무리 시즈코라도 기분이 처진다. 하지만 입장상, 축하받을 집주인이 참가하지 않는다는 폭거는 있을 수 없기에, 결국 포기의 경지에 도달했다.


"죄송합니다. 용무가 있어 잠시 실례(中座)하겠습니다"


슬슬 때가 되었나, 하고 생각한 시즈코는 노부나가에게 자리를 비울 것을 알렸다. 노히메들 때문이라고 이해하고 있는 노부나가는, 시즈코의 머리를 탁탁 하고 가볍게 친 후에 말했다.


"뼈는 주워주마"


"아니, 죽으러 가는 건 아닙니다만"


"평소에도 종잡을 수 없는(一筋縄ではいかぬ) 오노(お濃)에 술까지 들어간 상태다. 제대로 된 결과로 끝날 리가 없지 않느냐"


노부나가의 말을 듣고 시즈코는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일 뻔 했다. 하지만 주군의 눈 앞에서 그 부인(細君)의 험담을 긍정할 수도 없어 다급히 태도를 바로했다.

깊이 고개를 숙인 후, 시즈코는 조용히 연회장을 나왔다. 애초에, 연회도 절정을 맞이하여 취객들로 넘쳐나고 있는 연회장이었다.

설령 시즈코가 알기쉽게 연회장을 나섰다고 해도 신경쓰는 사람은 적었으리라.


"후우…… 피곤하네"


연회장에서 조금 떨어진 장소로 이동했을 때 시즈코는 후 하고 한숨을 쉬었다. 자신의 어깨를 주무르면서 걷고 있자니, 모퉁이에서 아야(彩)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시즈코를 발견하자, 발소리를 내지 않고 시즈코에게 다가왔다. 뭔가 다른 사람에게 알리고 싶지 않은 일이 있는 건가, 라고 즉시 이해한 시즈코는, 가까운 방으로 아야를 부르며 먼저 들어갔다.

잠시 간격을 두고 아요도 시즈코를 쫓아 방으로 들어왔다.


"영내에 잠입해 있던 사나다(真田)의 간자를 포박했습니다. 그런데 기묘한 것이, 그 간자는 시즈코 님께 이 서신을 전해달라고……"


"용케 들어왔네…… 아니, 지금이니까 그런가. 외부인이 이렇게 많이 들어오는 건 지금밖에 없으니까"


자신이 예전에 썼던 계책을 쓴 거라는 것을 시즈코는 헤아렸다.

오다, 도쿠가와, 우에스기의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초대객까지는 파악할 수 있어도, 수행원들 한 사람 한 사람 까지는 아무래도 파악할 수 없다.


"하지만 '하늘의 감시원(空番)'만은 속일 수 없었던 듯 합니다. 비밀리에 처분하려고 했습니다만, 사나다로부터의 정보를 가지고 있다고 듣고, 지금은 묶어서 감옥에 가두어두기만 했습니다"


"지금이라면 이 저택을 구역으로 삼고 있는 애들보다 사람 숫자가 많으니까. 뭐, '하늘의 감시원'인 까마귀들이라면 숫자도 충분하지만 말야"


비트만들이나 시로가네 등, 시즈코의 저택을 구역으로 삼고 있는 동물은 많다. 하지만, 그 이외에도 같은 공간을 구역으로 정하고 있는 동물은 있다.

가장 많은 것이 까마귀 패밀리다. 정확한 숫자는 알 수 없지만 100마리 가까이가 시즈코의 저택 부근을 근거지로 삼고 있다.

청소부(scavenger)의 지위대로, 시즈코의 저택에서 나오는 생활 쓰레기의 처리를 까마귀들이 맡고 있었다.


그런 관계로, 시즈코의 저택에 간자가 숨어들려 해도, 먹이를 다투는 적으로 인식되어 어디에 숨어있었냐고 묻고 싶어질 정도의 숫자로 간자들을 덮쳐간다.

생활 쓰레기를 지정한 장소에 버리기만 하면 되는, 천연의 간자 대책이었다.


"흠…… 흠"


사나다로부터의 서신을 아야에게서 받아들고 시즈코는 서신의 내용을 확인했다. 읽어감에 따라 시즈코의 표정이 험악해졌고, 필연적으로 아야의 긴장도 높아져갔다.


"곤란하네, 이건"


"어떤 내용이 쓰여 있는지요"


"간단히 말하면 집안 소동. 되돌려보낸 무토 키헤에(武藤喜兵衛)가 사나다 가문을 이었지만, 그가 타케다륵 등지고 오다 밑으로 들어가는 것을 좋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과 다투고 있는 모양이야. 게다가 전투중에 후퇴 명령이 나오기 전에 군을 물렸기 때문에 책임을 추궁당하고 있는 것 같아. 타케다 가문의 간자들도 마찬가지 상황인 모양이지만"


서신에는 타케다 가문의 상황과, 사나가 가문이 놓여 있는 상황이 적혀 있었다. 우선 무토 키헤에는 정식으로 사나다 가문을 이어 사나다 마사유키(真田昌幸)로 개명하였다.

하지만 사나다 가문을 잇자마자 그는 미카타가하라(三方ヶ原) 전투에서 신겐(信玄)의 후퇴 명령보다 앞서 병사를 물러나게 한 책임을 추궁받았다.

책임을 추궁한다고 하면 듣기는 좋지만, 요는 패전의 손실을 조금이라도 보전하기 위해 본보기로서 영지를 몰수하겠다고 말한 것이다.

마사유키를 시작으로 사나다 가문 전체가 가볍게 보이고있다는 상황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본보기로 이용된 것은 타케다의 간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카츠요리(勝頼)는 신겐이 고심해서 만들어낸 간자 조직을 '얄팍한 쓰레기(人でなし)들의 집단'으로 단정했다.

그리고 미카타가하라 전투에서, 오다 측의 정보를 모으지 못한 것의 책임을 그들에게 지웠다.


이에 의해 타케다 직속의 간자 네트워크는 괴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게 된다.

훗날 카츠요리가 범한 뼈아픈 실책으로서 종종 거론되게 되는데, 전국시대에서 간자를 경시하는 것은 극히 일반적인 사고방식이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문자 그대로 목숨을 걸고 모아온 정보가 음미하지도 않고 버려져서야 사기를 유지할 수 없다.

예쩐에 타케다를 섬겼던 간자들이 신겐이 죽은 후에 사나다의 밑으로 모여든 것도 새롭게 태어난 사나다가 정보를 중요시하여 간자들을 버리는 돌처럼 취급하지 않았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본보기…… 입니까?"


"단적으로 말하면 조직 전체의 문제를 특정 개인에게 떠넘겨서 체재(体裁)를 보존한 거야. 손실도 보전할 수 있으니까. 그 상황에서는 사나다가 병사를 물리지 않았어도 승산 따윈 없었지만…… 뭐, 생트집이네"


"그건, 자신의 팔다리를 먹어서 배고픔을 채우고 있을 뿐으로, 팔다리가 없어지면 밭도 일구지 못하는데요……"


"그런 거야. 타케다는 조직 전체로서 패했다고 인정하고 싶지 않았어. 그 뿐만 아니라, 일부의 겁장이들이 발목을 잡았다고 자기 보신(保身)을 꾀한 거야. 이쪽 입장에서는 좋은 경향이지만, 책임을 지지 않는 책임자를 가진 조직은 머지앖아 붕괴하니까"


어디보자, 라고 시즈코는 턱에 손을 대고 생각했다. 이미 역사는 알려진 역사적 사실에서 벗어났다. 이제부터는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대로 각 세력이 움직일 거라는 보장은 없다.

그걸 생각하면 사나다 마사유키에게는 빨리 복귀해 줬으면 좋겠다고 시즈코는 생각하고 있었다. 이제부터는 정보가 무엇보다 중요시될거라고 그녀는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간자는 당분간 감옥에 가둬놔. 괜히 움직이게 해서 이 이상 정보를 아는 사람이 늘어나면 확실히 제거될 테니까. 그걸 피하기 위해서라도 감옥에 넣어두고 나중에 풀어주는 게 좋아"


"알겠습니다. 간자에 대해서는 함구(秘匿)하도록 명해두었고, 만에 하나 알려져도 정보 수집중이라고 대답하겠습니다"


"잘 부탁해. 지금부터의 싸움은 정보가 중요해져. 지금 이상으로 정보를 수집해야 하고, 그러러면 실력좋은 간자가 많이 필요해지니까"


이걸로 이야기는 끝, 이라고 말하듯 시즈코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노히메는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며 시즈코는 아직이냐, 라고 중얼거렸다. 몸종들은 허리를 꼿꼿이 펴며 아직 안 오셨습니다라고 대답했다.

한숨을 쉬면서 노히메는 몸종들을 물러나게 했다.


"노히메 님, 시즈코는 오라버니께 붙잡혀 있겠죠.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할 거라 생각합니다"


이치(市)가 노히메를 다독였지만, 정작 노히메에는 효과가 별로 없었다.


"주군께서도 시즈코를 너무 부려먹으시느니라. 모처럼의 경사이니, 마음 편하게 지내게 해주면 될 것을…… 그렇지 않느냐, 이치"


"제게는 오라버니의 생각은 알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무슨 생각으로 이런 자리를 만드신 걸까요"


"주군의 생각은 어려워 보이지만 단순하느니라. 아마 시즈코의 영향력을 과시하고 계시겠지. 바깥에도, 안에도 말이다"


말하면서 노히메는 앞에 있던 접시에 놓인 과자를 집어먹었다. 이치에게는 노히메가 약간 초조해 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그건 남자 사회에서밖에 통하지 않는 논리다. 여자가 아닌 주군께서는 그걸 알지 못하시지. 여자 사회에서는, 혼인하여 아이를 낳고, 집안을 잘 관리하고, 각 가문의 부인(奥方) 들을 잘 상대(切り盛り)하고, 적자(嫡子)를 키워내야만 제 몫을 다 했다고 간주되지. 그 관점에서 본다면, 시즈코는 아무 의무도 다하지 않고 있는 밥벌레(穀潰し)이니라"


"확실히 시즈코는 집을 가지더라도 남편도 없고 자식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오라버니의 밑에서 천하통일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기 때문이지요. 저희들의 생활이 풍족해진 것도, 오다 가문이 융성한 세력을 유지하고 있는 것도 시즈코가 진력한 결과이겠지요"


"이치, 슬픈 일이다만, 인간이란 그렇게 매사를 잘 이해하는 자들만 있는 것은 아니니라. 시즈코가 얼마만큼 어려운 일을 해내더라도, 여자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 그 한 가지만으로 비난하는 패거리는 얼마든지 있느니라. 특히 집이라는 좁은 세계에 틀어박혀 자기 자식을 키우는 것만을 유일한 자랑으로 삼는 '무능한' 년들 중에 말이지"


드물게 감정을 감추려고 하지도 않고 욕설을 하는 노히메에게 이치는 내심 놀라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이치를 신용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낯간지러움이 느껴지기도 했다.


노히메가 말했듯, 전국시대의 무가(武家) 사회의 최심부(最奥), 여자 사회에는 명확한 의무가 존재했다.

남자 사회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면서도 그 영향에서 단절된 사회에서는, 아무리 남자 사회에서 유용함을 드러낸다 해도 여자 사회에서는 그에 대해서는 일체 평가받는 일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때때로 시즈코에게 벅찬 일을 시키시는 거군요"


여자로서 의무를 다하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여자 사회의 정점인 노히메로부터 총애를 받고 있다. 당연히 아래의 여자들이 기껍게 생각할 리가 없다.

하지만 노히메로부터 각별한 돌봄을 받으면서도 성가신 일을 떠맡게 되어,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고생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면 어떨까?

시즈코에게 질투하면서도, 그 입장을 대신하고 싶다는 여자들은 줄어들 것이다.

그리고 시즈코가 선보이는(発信) 다양한 문물을 노히메가 대신 퍼뜨리는 것으로 가볍게 보이는 일도 없이 받아들여져, 시즈코 본인은 그렇다치고 시즈코가 생산하는 물건들은 유용하다고 인식하게 된다.

이러한 보이지 않는 배려들이 있기에 비로소 시즈코는 남자 사회에만 전념할 수 있으며, 의무를 다하고 있지 않음에도 여자 사회에서도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여자들에게 시즈코는 유용하지만, 눈에 거슬릴 정도는 아니고, 일신에 총애를 받으면서도 전체적으로 불우(不遇)하다는 절묘한 배역을 해내고 있는 것이다.


"내가 단순히 시즈코를 귀여워하여 돌봐주면, 그 비뚤어진 생각(僻み)이나 질시(嫉み)는 시즈코에게 집중되지. 아무리 사회 전체에 대해 유익하더라도, 여자의 의무를 다하고 있지 않다는 한 가지만 가지고 악(悪)으로 몰리는 것이니라"


어느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지만, 의무를 다하지 않고 보수만을 받는 자는 미움받는다. 설령 어떤 위업을 해내더라도, 꾀를 부렸다고 하여 평가받지 못한다.

예를 들면 주식(株式)의 오발주(誤発注)가 벌어져, 실수로 비정상적으로 싸게 방출된 상표(銘柄)를 매점하여 적정 가격으로 파는 것으로 거액의 부를 얻은 사람이 있다고 하자.

세상은 그를 높이 평가할 것인가? 남의 약점을 파고들어 폭리를 취했다던가, 단순히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평가받는 게 고작일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그 자리에 설 수 있는가 아닌가만이 운(運)의 요소이며, 비정상적인 낮은 가격을 꿰뚫어보는 눈이나, 즉석에서 가능한 한 사들인다는 결단력과 자본력이라는, 그 자리에 서기 위해 보이지 않는 중첩된 요소(積み重ね)가 존재한다.

이러한 요소를 꿰뚫어볼 수 있는 사람은 대단히 적다. 시즈코의 예를 들어 말하자면, 그 얼마 안 되는 이해자가 노히메이며, 운만으로 출세한 여자라는 불필요한 질투나 따돌림(隔意)에 발목을 잡히지 않도록 보호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 덕분이기도 한지, 시즈코는 남자 사회에서는 오다 가문의 중신(重臣)으로서 경의를 받게 되고, 여자 사회에서도 자신들에게 유익한 결과를 가져오는, 고생을 도맡아 하는 사람(苦労人)이라는 지위를 확보할 수 있었다.

그래도 관계되는 사람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시즈코에 대해 질투를 품는 자들이 생겨난다. 이것만큼은 어쩔 수 없기 때문에, 때때로 모두에게 보이도록 시즈코를 부려먹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 시즈코는 주군께서 내리신 최대의 난제, 타케다 토벌을 해냈느니라"


"그렇군요. 지용(知勇)을 겸비한 많은 장수들을 거느린 타케다를 쓰러뜨리라니, 터무니없는 것도 정도가 있습니다"


"하지만 시즈코는 해냈다. 이것으로 남자 사회에서의 지위는 확고해졌지. 그렇게 되면…… 무슨 말인지 알겠지?"


부채로 입가를 가린 노히메가, 다음에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이치는 이해했다. 이치도 노히메를 따라, 부채로 입가를 가리고 목소리를 낮췄다.


"(주군께서는 시즈코에게 주군의 아이를 양자로 보내신다고 한다. 이걸로 무능한 놈들은 조용하게 만들 수 있지)"


"(과연…… 그리고 시즈코는 오라버니의 아이를 자기 아이로 삼는 것으로, 오라버니에 대한 충성을 드러낼 수 있지요. 그야말로 일석이조로군요)"


"(음. 주군께서도 시즈코의 남편감에 대해서는 생각하셨던 모양이다. 하지만, 몇 번을 고노에 님과 이야기를 나누어도 결론이 나지 않았다고 하더구나. 애초에, 이건 시즈코가 문제라기보다, 녀석의 군이 붕괴하는 쪽이 큰 문제이기 때문이지)"


"(오라버니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시즈코 군이 있는 덕분에 전쟁에서 해야 할 번거로운 일들이 반으로 줄었다고. 과연, 이제부터 두 배로 일을 하라, 고 해도 불만이 분출하겠군요)"


"(그렇지? 하지만 시기는 알 수 없기에, 이렇게 우리들이 시즈코를 지켜야 하느니라)"


"(노히메 님의 심모원려(深謀遠慮), 실로 감복했습니다. 그렇다면, 미력하지만 이 이치도 돕겠습니다)"


"(이것아, 어렵게 생각하지 말거라. 평소대로 하면 되는 것이다, 평소대로, 말이지)"


그걸 마지막으로 노히메는 부채를 접었다. 비밀 대화는 종료, 라는 신호다. 이치도 조금 늦게 부채를 접었다.




아야와 헤어진 후, 시즈코는 노히메들이 있는 여자용의 연회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가까이 갈수록 발걸음이 무거워지는 시즈코였으나, 무시할 수도 없었다.


"실례하겠습니다"


연회장이라고 해도 노부나가가 있는 대연회장처럼 딱딱하지는 않다. 오히려 격식을 차리는 것은 주최자인 노히메가 싫어하기 때문에, 대단히 느슨한 분위기로 가득차 있었다.


"오오, 드디어 왔느냐. 자, 이쪽으로 오거라"


가장 먼저 시즈코를 발견한 노히메가 손짓을 했다. 노히메의 말대로 시즈코는 노히메가 지정한 장소에 앉았다.


"설계 단계에서도 보았지만, 꽤나 훌륭한 저택이다. 주군께서도 지나치게 기합을 넣으셨구나"


"네에…… 확실히 과분한 대저택(豪邸)이 되었습니다. 덕분에 이런저런 사람들을 고용하지 않으면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들었느니라. 마츠(まつ) 님의 딸 뿐마니 아니라, 아케치(明智) 님의 딸도 고용했다더구나"


"어디서 들으셨는지 모르겠습니다만, 그 말씀이 맞습니다. 어째서인지 다들, 우리 딸은 어떻소, 라고 하시네요"


아케치 미츠히데(明智光秀)의 딸, 이름을 타마(珠, 타마(玉)라거나 타마코(珠子)라고 하는 경우도 있지만, 여기서는 타마(珠)를 채용함)라고 했다.

하지만 메이지(明治) 시대에 기독교도가 그녀를 칭찬했기 떄문에, 오늘날에는 호소카와 가라샤(細川ガラシャ)라고 하는 쪽이 유명하다.


새 저택은 이전의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넓이였기에, 아야나 쇼우(蕭) 만으로는 관리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그래서 시즈코는 새로 사람을 고용하기로 했는데, 이걸 들은 미츠히데가 "제 딸은 어떠십니까"라고 추천했다.

이게 방아쇠가 되었는지, 다른 무장들도 앞다투어 그 뒤를 따르려고 하여 일종의 소란이 벌어졌다.

모르는 사람을 고용하는 것보다야, 라고 생각해서 시즈코는 무장들을 딸을 맡는 형태로 고용하게 된다. 당초에는 불안도 있었지만, 본래 교육을 받은 무장들의 딸들이었다.

처음에는 자신들의 생활과 전혀 다른 환경 때문에 행동이 불안불안했으나, 곧 적응하자마자 척척 일을 해내고 있었다.

그래도 국어(国語)나 산수(算数)같은 시즈코 저택에서만 필요한 지식 레벨이 낮았기에, 종종 그것들의 보충수업(補習)을 하여 지식의 기본 바탕을 높이고 있었다.

덕분에 아무 것도 가르치지 않은 딸에게서 한자로 쓰인 편지가 왔다, 라는 유쾌한 상황이 여기저기의 가문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쇼우(蕭)짱은 기운이 넘치지만, 타마 짱은 호기심이 왕성하네요ー. 제가 고용한 남만인(南蛮人)에게도 겁먹지 않으니까요. 뭐 지나치게 저돌맹진(猪突猛進)한 것이 옥의 티입니다"


"괜찮지 않느냐. 그 쪽이 재미…… 어흠, 유쾌하니 말이다"


"얼버무리려조차 하지 않으시네요!"


말을 바꾸는 건가 생각했는데, 노히메는 단지 의미는 같지만 다른 단어를 말했을 뿐이었다. 어깨에서 힘이 축 빠진 시즈코는, 피로한 듯한 한숨을 쉬었다.

실제로, 적의가 없는 미소를 계속 짓는 것은 피곤한 일이었다.


"피곤한 것 같구나. 그럴 때는 실컷 노는 것이 중요하느니라"


"이게 끝나면 당분간은 마음 편하게 지내겠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복도 쪽에서 요란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급한 용무라도 있었나, 라고 시즈코가 입구 쪽으로 얼굴을 돌린 순간, 맹장지가 기세좋게 열어젖혀졌다.


"도착ー!"


"착ー!"


맹장지 너머에 있던 것은 챠챠(茶々)와 하츠(初)였다. 주위가 놀라는 것을 무시하고 둘은 방 안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목적의 인물인 시즈코를 발견하자, 표정을 풀며 그녀에게 돌격했다.


"시즈코오ー! 새 집, 축하하느니라ー"


"니라ー"


둘은 어린아이, 하지만 전 체중을 실은 태클은 어린아이라도 위력적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시즈코는 둘의 태클을 받아냈다. 하지만 둘은 신경쓰지 않고, 새끼 고양이처럼 시즈코의 품에서 아양을 부렸다.


"자, 두 분. 갑자기 입구를 기세좋게 열면 안 돼요. 물건은 소중히 다루도록 해요"


"네ー"


시즈코의 말에 기운차게 대답하는 둘이었으나, 시즈코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까지는 이해하고 있지 않았다. 이해하기보다 먼저, 흥미의 대상이 다른 것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시즈코ー, 이거 모야ー?"


챠챠는 시즈코의 등에 올라타며 쟁반에 올려져 있는 과자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이건 남만의 과자에요. 이름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저는 갸토(gateau, 프랑스어로 케이크라는 의미)라고 부르고 있어요"


케이크의 역사는 오래되어서, 고대 로마 시대에 만들어진 달콤한 빵이 케이크의 시작이라고 전해진다.

플라켄타(プラケンタ)라고 하는 고대의 치즈케이크도 탄생했지만, 오늘날의 케이크와는 성향이 조금 다르다.

현대인이 떠올리는 케이크가 탄생한 것은, 그로부터 1천년 가까이 지난 중세 유럽 시대, 현대의 굽는 방법이 된 것은 그로부터 다시 수 세기를 거친 17세기라고 한다.


한편, 일본에서는 전국시대에 전래된 카스테라가 케이크의 시작이다. 그로부터 수 세기를 걸쳐, 타이쇼(大正) 시대에 후지야(不二家)가 현대의 쇼트케이크를 개발, 판매했다.


시즈코가 만든 케이크는 한입 사이즈의 스폰지 사이에 크림과 과일을 끼워넣고, 위에 버터 크림으로 약간 장식을 한 정도의 미니사이즈 케이크이다.

하지만 설탕이나 계란, 생크림에 버터를 듬뿍 사용하기에, 미니사이즈라고는 해도 권력자밖에 맛볼 수 없는, 그냥 고급이 아니라 '초' 고급 과자가 되었다.


"달아ー, 셔ー, 근데 달아ー"


"천천히 드셔야 해요ー. 신맛이 있는 건, 장딸기가 끼워져 있어서 그래요"


전술한 듯이 장딸기는 약간 신맛이 강하지만, 그래도 야생 딸기(野イチゴ) 중에서는 신맛이 적고 단맛이 강한 품종이다.

재배도 쉬워서, 건조와 일조량에만 신경쓰면 수고를 들이지 않고 늘릴 수 있다.

다만, 땅에 심으면 지하경(地下茎)을 뻗어 한없이(野放図) 증식하기 때문에, 배지(培地)를 한정할 수 있는 플랜터 재배가 바람직하다.


장딸기는 갓 수확한 것에 시럽을 끼얹어 단맛을 강조하고 있지만, 어린아이의 예민한 미각에는 산맛이 강하게 느껴지는 모양이다.


"미묘하게 셔. 하지만 달아서 신경 안 쓰여"


이러니저러니 말하면서도, 챠챠와 하츠는 미니사이즈 케이크를 마음에 들어하여, 놓여진 미니사이즈 케이크를 차례차례 먹어치웠다.

하지만, 둘 다 한자릿수 나이의 어린아이, 배가 부르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만족이니라ー"


"니라ー"


배를 문지르며 둘은 시즈코에게 기댔다. 시즈코는 어이없어하면서도 몸종에게 모포를 가져오도록 명했다.

하지만, 시즈코는 곧 후회하게 된다. 모포를 덮어주자, 챠챠와 하츠가 본격적으로 잠이 들어버려 움직일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전신이 저리네"


움직이지 못하게 되어 곤란해하는 시즈코를 보다 못한 노히메가, 챠챠와 하츠의 유모를 불러 둘을 회수하게 했다. 시즈코는 노히메에게 감사 인사를 한 후, 굳어진 몸을 풀기 위해 근처를 산책했다.

연회장을 살짝 들여다보았는데, 이미 만취한 사람들이 잔뜩 있었기에 시즈코는 살짝 입구를 닫고 조용히 그 자리를 떠났다.


"으ー음, 몸에서 우둑우둑 소리가 나네"


관절에서 뚝뚝 하는 소리를 내면서 시즈코는 기지개를 켰다. 이대로 잘 되면 몇 년 안에 일본이 오다 가문에 의해 통일되겠다, 라고 시즈코는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그건 모든 일이 잘 되면, 의 이야기다. 뭔가 문제가 생겨서 엎어질(とん挫)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하지만, 그래도 오다 가문이 천하통일을 하는 것은 거의 기정사실(既定路線)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음? 저건……"


"시즈코 님"


멀리 뭔가 보인 시즈코였으나, 눈을 가늘게 뜨기 전에 이름을 불리웠기에 그녀는 그쪽으로 의식을 향했다. 얼굴을 돌리자, 그곳에는 약간 술냄새가 나는 미츠히데가 있었다.

그는 시즈코가 자신의 존재를 깨달은 것을 알자 인사했다.


"제 딸이 신세를 지고 있음에도 인사가 늦어 죄송합니다. 딸은 도움이 되고 있습니까?"


미츠히데의 질문에 시즈코는 말 대신 어떤 지점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대답했다. 처음에는 고개를 갸웃한 미츠히데였으나, 시즈코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쪽을 보고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잘 있습니다. 보시는 대로, 기운이 좀 넘치지만요"


시즈코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쪽에는, 미츠히데의 딸인 타마가 고양이 장난감(猫じゃらし)을 한 손에 들고 고양이들과 놀고 있었다. 지금은 시즈코의 집들이, 몸종들 중 하나인 그녀도 필연적으로 바빠지는데, 그녀는 땡땡이를 치고 있었다.

짐작컨대 고양이가 신경쓰여서 그쪽으로 의식이 집중되었기에, 일을 잊어버린 것일거라 시즈코는 이해했다.

미츠히데로서는 창피한 나머지 얼굴이 확확 달아오를 지경이라 도저히 진정할 수 없었다.


"……버릇이 없는 딸이라 죄송합니다. 잘못을 저지르면 사양치 말고 꾸짖어주셔도 좋습니다"


"평소에는 제대로 일을 잘 하고 있으니, 이 정도로 눈을 부릅뜰 필요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어느 정도 안심이 됩니다. 하지만, 내버려두면 우쭐할 지도 모릅니다. 잠시, 실례를"


말이 끝남과 동시에, 미츠히데는 타마를 향해 큰 걸음으로 다가갔다. 고양이에게 집중하고 있던 그녀는, 고양이 장난감을 흔드는 데 정신이 팔려 미츠히데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다.

미츠히데가 바로 뒤에 서자, 그제서야 타마는 등 뒤에 누군가가 있는 것을 깨달았으니, 이미 때는 늦었다.


"아, 아버님! 이, 이건 그…… 고양이가 귀엽습니다!"


"그런 건 알고 있다! 타마! 일을 잊어버리고 고양이와 놀다니, 무슨 생각을 하는 거냐!"


"꺄웅!"


(아, 타마 짱이 꿀밤을 맞았다. 변명하기보다 얼른 사죄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하는데 말야ー)


마음 속으로 조언을 생각하면서도 시즈코는 결코 미츠히데와 타마의 대화에 끼어들지 않았다. 10분 정도 혼이 난 후, 두 사람은 함께 시즈코가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꿀밤이 아팠던 듯, 타마는 머리를 열심히 문지르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고양이를 안고 있는 모습에 시즈코는 이제 쓴웃음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똑바로 일을 하도록 말해두었습니다. 다음에도 이런 짓을 한다면 사양말고 말씀해주십시오. 제가 직접 처단하겠습니다"


"시즈코 님, 일하는 걸 잊어서 죄송합니다"


먼저 미츠히데가, 그에 뒤따르는 형태로 타마가 고개를 숙였다.


"얼굴을 들어 주세요, 아케치 님. 타마 짱이 혼난 이유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면 문제없습니다. 자, 타마 짱. 늦은 걸 만회할 정도로 일해줘"


"네, 네!"


기운차게 대답한 후, 타마는 빠르게 뛰어갔다. 달릴 때도 고양이를 놓지 않았찌만, 도중에 싫증이 났는지 고양이가 타마의 손을 박차고 뛰어내렸다.

일순 멈춘 타마였으나 미츠히데에게 혼난 것을 떠올렸는지, 고양이에게서 시선을 떼고는 서둘러 주방 쪽으로 달려갔다.


"맙소사, 어린애라고는 해도 좀 더 정신을 차렸으면 좋겠군요"


타마의 어수선함에 한숨을 쉬는 미츠히데였다.




"영감님, 들어간다ー…… 여전하구만"


술병을 한 손에 들고 케이지(慶次)는 코타로(虎太郎)가 틀어박힌 방으로 들어갔다. 상대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들어간 순간, 방의 난잡함에 케이지는 쓴웃음을 떠올렸다.

여기저기에 휘갈겨쓰이고 바닥에 흩어져 있는 도식(図式)이나 계산식은 학문이 없는 케이지에게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데나 흩어놓는 건 좀 그렇다, 고 그는 생각했다.


"……어엉? 뭐냐 애숭이(若造)냐. 부탁받은 일이라면 처리했다"


의자에 앉은 채 자고 있었는지, 잠이 덜 깬 눈으로 코타로가 말했다. 지금은 별을 관측할 필요가 있어서, 코타로는 밤낮이 뒤바뀐 생활을 하고 있었다.


"영감님, 술이라도 한 잔 하겠어?"


"거절하면 어차피 거기서 마실 거 아니냐. 하여튼, 조금은 노인을 배려해주는 게 어떠냐"


"배려하니까 너무 몰두하다가 쓰러지지 말라고 이렇게 왔잖아"


"뭐…… 그건 일리가 있군"


훌륭한 턱수염을 훑으며 코타로는 작은 테이블을 잡아당겼다. 도중에 테이블 모퉁이가 가까이 있던 책더미에 걸려 더욱 노출된 바닥 면적이 줄어들었으나, 코타로는 그다지 신경도 쓰지 않았다.


"연구는 순조롭수?"


"순조……롭다고는 못 하겠지만, 좋은 기자재가 준비되어 있어서 곤란하지는 않다"


코타로의 잔에 술을 따른 후, 케이지는 자신의 잔에도 술을 채우며 물었다. 코타로의 연구란 지동설(地動説)이 올바른지를 증명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시즈코로부터 이런저런 기자재를 받았다. 망원경(굴절식)은 물론이고, 태양 투영판(投影板)이나 전용의 태양시계 등이다.

특히 태양 투영판은 우수하여, 이것 덕분에 코타로는 실명의 걱정 없이 태양을 관측할 수 있다.

투영판이라고 거창한 이름은 붙어 있지만, 원리는 단순하여, 천체망원경의 접안렌즈의 연장선상에 하얀 종이나 판을 설치할 뿐인 단순한 것이다.

관측 대상이 태양이기에 저배율의 접안렌즈라도 기능(機能)은 하지만, 대상을 관측하면서 미세한 조정을 할 수 없기에, 태양을 투영판에 비추는 수고만큼 쓸데없는 시간을 필요로 하는 결점도 가지고 있었다.


"그런가. 나는 뭐가 뭔지 모르겠지만, 영감님이 즐거워 보이니 다행이네"


"코페르니쿠스의 저서를 번역한 것 뿐으로, 원래는 그렇게까지 흥미가 있었던 건 아니지만 말이지. 하지만, 알면 알 수록 재미있다. 게다가, 이게 올바르다고 판명할 수 있으면, 교회 놈들이 울상을 짓게 만들어줄 수 있지"


"즐거워 보이네, 영감님. 하지만, 즐긴다는 건 중요하다고"


"이제 높으신 분들의 안색을 살피며 비굴하게 사는 건 사양이다. 어차피 사람의 삶은 한 번 뿐, 그렇다면 후회없이 죽기 위해서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사는 것도 재미있지"


"맞아맞아, 맛있는 걸 먹고, 햇빛 잘 드는 곳에서 뒹굴거리면서 지내는 것도 즐겁다고. 오늘은 경사가 있으니 맛있는 걸 슬쩍해오는 것도 간단하고 말야"


"뭔가 소란스럽다고 생각햇는데, 그런 걸 하고 있었나. 애숭이, 너는 안 나가도 되는거냐?"


"나는 그런 딱딱한 자리는 질색이야. 서로 뱃속을 탐색하면서 마시는 술 따위 맛도 없잖아"


"그 말이 맞다"


거기서 두 사람은 서로 마주보고 웃고, 그리고 잔에 담긴 술을 비웠다.


"처음에는 기묘한 맛이라고 생각했는데, 익숙해지니 이 술도 맛있군"


"헤헷, 오늘은 경사니까. 좋은 술이 잔뜩 나왔거든. 조금 넉넉하게 슬쩍해도 눈에 띄지 않는다는 셈이지"


"과연. 그런데, 고향의 와인이 몹시 마시고 싶어지는군. 주인에게 말하면 흥미를 끌 수 있으려나…… 아니, 주인이라면 와인을 만드는 법 정도는 알고 있을 것 같군"


"시즛치라면 알고 있어도 이상하진 않지. 지금 마시는 이 술도 시즛치가 지휘(音頭)해서 만들기 시작한 거야. 뭐, 시즛치에게 술을 마시게 하면 이래저래 야단이 나서 다들 시즛치에게 술을 마시지 못하게 하고 있지만 말야"


"술주정(酒乱) 같은 것인가. 그 정도가 딱 좋지. 인간은 너무 완벽하면 재미없으니까"


"음ー, 술주정…… 이려나. 뭐, 술버릇이 나쁘다는 점은 같은 얘기겠네. 어쨌든 술 뿐만 아니라 이런저런 것을 알고 있을테니, 어쩌면 만드는 법도 파악하고 있을지도 몰라"


애매한 대답을 괴이쩍게 생각한 코타로였으나, 그다지 흥미를 끌지는 않았기에 흘려듣기로 했다. 그 이후 두 사람은 이것저것 담소하며 때때로 술을 들이켰다.


"남만은 어떤 느낌이야?"


"어떠냐…… 고 해도. 나는 어떤 학자 밑에서 일하고 있었지. 학자라는 건 세상사에 둔감해서 말야. 그 덕분에, 나도 속세에 대해선 거의 모르는 채로 나이를 먹었지"


"그거 큰일이네. 인생은 즐기지 않으면 손해야. 가끔은 실컷 놀아야지"


"내 경우에는 놀기 시작한 게 좀 늦은 것 뿐이다"


"오, 제법 좋은 말을 하잖아, 영감님"


히죽 웃은 후, 케이지는 잔의 술을 비웠다. 조금 늦게 코타로도 잔을 비웠다. 케이지가 코타로의 잔에 술을 따랐고, 무뚝뚝하게나마 코타로도 케이지에게 술을 따라주었다.


"네가 말하는 남만은, 단적으로 말하면 최악이다. 종교로 백성들을 속박하고, 암흑시대를 나아가고 있지. 주인에게 말했지만, 나는 유태인. 기독교도 놈들이 볼 때는 유태인이라는 것만으로 악(悪)으로 취급받지"


"시답잖은 얘기구만"


"어, 실로 부조리한 얘기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나라가 형성되고, 그 나라의 국교(国教)로서 정착되었다면, 그런 사고방식이 상식이 되지. 뭐, 우리들 유태인들도 배타적인 부분이 있으니, 다수파가 되면 다를 바가 없겠지만 말이다"


"묘한 얘기군. 내가 볼 때, 믿는 신은 똑같은 거잖아? 일본에서도 같은 부처를 섬기면서, 다양한 종파로 갈려 있어. 그리고 자신이 속한 종파 이외에는 이단이라고 배척하지. 가르침은 같으니, 해석의 차이에 불과한 것인데 다투는 건 무의미(不毛)할 뿐이야"


"그렇지. 하지만, 이 나라에서는 종교가(宗教家)가 세력을 떨치지 못하는 게 좋군. 성지 탈환이라느니 이단자 사냥이라느니, 그런 바보같은 소동에 말려드는 건 질색이다"


"우리는 신앙을 강요하는 게 없으니까"


"자신의 수하가 무엇을 믿던 구애받지 않는다는 건가, 그것도 주인의 방침인가. 그것 때문에 생각났는데, 주인은 대체 정체가 뭐지? 저 나이에, 저만큼 달관하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아. 아직까지 밑바닥이 보이지 않는 견식을 가지고 있는 것 같고 말이지"


"글쎄?"


"글쎄…… 라니"


케이지의 성의없이 들리는 대답에 코타로는 어이가 없어졌다. 주인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고, 그뿐만 아니라 흥미도 없다는 태도로 보였기 때문이다.

코타로의 표정을 눈치채고, 케이지는 악의없는 미소를 떠올리며 말했다.


"시즛치의 진짜 정체가 뭔지, 같은 건 알아봤자 의미는 없어. 흥미도 없지. 우리들은……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그건 시즛치에 대해 거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 아니야"


"……"


"시즛치가 하는 일은 재미있고, 다음에 어떤 일을 저지를지, 기대와 흥미로 두근거리지. 그것만으로 충분해"


"과연. 확실히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은 중요하지. 뭐 주인의 경우, 맥락이 없는 일에 너무 폭넓게 손을 대서, 뭘 하고 싶은지 보이지 않는 게 난점이지만 말이지"


"그것조차 즐길 수 있게 되면 영감님도 어른(一人前)이 된 거지"


"연장자를 어린애(半人前) 취급하지 마라!"


그렇게 말하며 두 사람은 마주보고 웃었다. 그 이후에도 두 사람은 술잔을 나누며 대화를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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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

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겐키(元亀) 4년 무로마치 막부(室町幕府)의 종언(終焉)


104 1573년 5월 중순



시즈코는 오다 노부나가라는 인물을 이해했다고 생각했다. 아니, 이해했다고 생각하게 되었었다고 해야 할까.

우에스기 켄신(上杉謙信)으로부터의 항복 수락을 전하는 서신이 도착했다는 소식을 알릴 때, 노부나가의 대응은 빨라도 다음 날 아침이 될 거라고 시즈코는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소식을 전달받은 노부나가는 내용을 파악하자 정무를 중단하고, 정확성이 높은 정보를 입수하기 위해 시즈코가 있는 곳으로 출발한다는 결단을 내렸다.

준비에 시간을 잡아먹는 호위대(馬廻衆)를 놔두고 혼자서 말을 몰아 먼저 달려갔다.

강의과단(剛毅果断). 가장 빠르게 행동하는 노부나가를 따라잡은 사람은 없었다.

통상 한나절은 걸리는 거리를, 말을 바꿔타며 겨우 몇 시간만에 질주한 노부나가가 시즈코가 있는 곳에 도착한 것은, 해가 지고 땅거미가 지는 시간대였다.


"우에스기(上杉) 가문으로부터의 서신에 대해 묻고 싶은 것(疑義)이 있으니, 사자(使者)와 직접 이야기를 하고 싶다"


질풍신뢰(疾風迅雷)처럼 이동했을 노부나가였으나, 그에게서는 피로감 등은 보이지 않고 넘쳐나는 패기에 압도되는 것 같았다. 건네받은 수건으로 흐르는 땀을 거칠게 닦은 후, 다짜고짜 용건을 꺼냈다.

시즈코는 노부나가의 기세에 멍해졌지만, 즉시 그의 요구를 이해하자 카네츠구(兼続)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회견 절차를 갖추었다.

카네츠구 자신도 노부나가를 알현할 것을 예상하고 있었는지 즉시 몸가짐을 바로하고 알현에 임했다.


"사자님께 묻지. 즉시 결단한 이유는 무엇인가"


상대가 설령 어린애(童)라고 해도, 노부나가는 우에스기 가문의 사자로서 취급했다. 카네츠구도 예상보다 꽤나 빠른 알현임에도 불구하고 실로 당당하게 대답을 했다.


"영주님(御実城様)께서 숙고(熟考)하신 결과입니다"


"우에스기의 가신(家臣)들에게 불만은 없었는가"


"불만이 있던 없던, 영주님의 결단에 따르는 것이 가신. 물론 소생에게 불만 따윈 없습니다"


"우에스기가 바라는 요구란 무엇인가"


"그에 대해 소생은 아무 것도 듣지 못햇사옵니다. 다만, 난세(乱世)의 종언(終焉)과 백성들에 충분한 먹거리를 줄 수 있는 것은 지금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시즈코조차 압도되는 노부나가를 앞에 두고 겁먹지 않고 말을 늘어놓은 카네츠구를 노부나가는 마음에 들어했다.

그는 씩 하고 한층 깊은 웃음을 지으며 질문을 계속했다.


"너에게 주어진 역할은 무엇이냐"


"영주님께서 신하의 예를 취하실 때까지 인질이 되는 것입니다. 만약, 영주님께서 약정을 어기신다면, 이 목, 원하는 대로 하십시오"


"그 나이 치고는 훌륭한 각오로군. 흠…… 대략 그쪽의 사정은 파악했다. 수고했다. 물러가도 좋다"


"옛"


"밤도 깊었으니 밖을 돌아다니기는 불편하겠지. 특별히 시즈코의 집에 방을 마련하게 할 테니, 한동안 몸을 쉬도록"


"과분한 배려, 황공하옵니다"


카네츠구 자신도 (요구에 대해) 듣지 못했던 것도 있지만, 노부나가는 그다지 신경쓰는 기색도 아니었다. 질의를 마친 노부나가는 카네츠구를 물러나게 하고 독백했다.


"큭큭큭, 이렇게까지 노린 대로 움직이면 어쩐지 무섭기까지 하군"


사람들을 물리고 혼자 남은 방 안에서 노부나가는 진심으로 즐겁게 웃고 있었다. 그것도 그럴 것이, 타케다 신겐(武田信玄)을 쳐부수고, 쌍벽을 이루는 우에스기 켄신까지 굴복시킨 것이다.

그것들을 겨우 반년만에 해낸 것이니, 노부나가가 아니더라도 웃음이 멈추지 않을 상황이리라.


"아자이(浅井)와 아사쿠라(朝倉)가 초조해하는 모습이 눈에 선하구나! 굼벵이(愚図) 놈들이, 내 서신을 무시한 것을 후회하고 있겠지. 실로 유쾌하구나!"


한발 빨리 시류(時流)를 판단한 우에스기와, 대조적으로 우둔한 아자이, 아사쿠라의 행동을 돌아보고 노부나가는 소리높여 웃었다.

이 때의 노부나가의 모습을 기록한 책에 '각별(格別)한 만족감'이라고 표현되어 있는 것을 볼 때, 얼마나 노부나가가 기뻐했는지를 엿볼 수 있다.

그 정도로 우에스기의 굴복(臣従)이라는 사건은 그의 패도(覇道)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건이며, 천하통일의 시금석(試金石)이 될 수 있는 일이었다.


"시즈코! 술창고를 열고 술을 대접하거라!"


그 후, 겨우 쫓아온 호위대(馬廻衆)나 소성(小姓)들도 함께하여 조촐하지만 연회(宴)가 열렸다. 평소에는 술을 많이 마시지 않는 노부나가도, 이 때 만큼은 모두와 잔을 나누며 술잔을 비워댔다.

그리고 다음 날 이른 아침. 일출과 함께 출발하여, 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돌풍처럼 기후(岐阜)로 돌아갔다.

아무래도 쓸데없이 혼자서 달려가지는 않았지만, 누구나 노부나가의 갑작스런 행동에 겨우 따라가는 것이 고작이었다.


노부나가의 습격(襲来)으로부터 며칠이 지났지만, 그 후 그로부터의 접촉은 없었고, 또 싸움 준비를 하는 것도 아니라, 비교적 평온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카네츠구는 인질이라는 취급이었지만, 케이지는 신경쓰지 않고 그를 데리고 나가서 마을에서 놀며 돌아다녔다. 한가로운 분위기에 기분도 느슨해져, 시즈코도 오랜만에 농사일에 매진하고 있었다.

카카오 나무는 성목(成木)이 되었고, 커피 나무도 70cm 정도까지 성장하였으며, 후추는 순조롭게 포기 수를 늘려서 양산에 기세가 붙었다. 라이치나 망고스틴 등의 남국(南国) 계열 과수(果樹)의 생육도 순조로웠다.

육성 환경이 최적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순조로운 성장을 하고 있는 이유는, 비옥한 토양과 기후 조건 등으로 적당한 스트레스가 걸리는 환경에 있는 것이 식물의 생존 본능을 자극하여, 빠르게 성장하여 자손을 남기려고 하고 있는게 아닐가 하고 시즈코는 추측하고 있었다.


자신이 오다 가문의 중신(重臣)이 된 것 때문에 농사일에만 관여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어서, 각 작물마다 담당자를 배정하고 실제 작업에서는 손을 떼고 있었다.

고생하여 들여온 작물에 관여하지 못하는 불만은 있었으나, 생육이 순조로운 것을 시즈코는 기뻐했다.


"슬슬 바나나의 3배체(倍体)에도 도전해 볼까. 아마도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2배체와 4배체를 조합하면 만들 수 있다고 생각되는데. 역시 바나나는 씨없는 바나나여야지"


자연환경에서 우발적으로 바나나의 3배체가 발생하는 이유는 현대에서도 알려지지 않았으나, 시즈코는 씨없는 수박 등과 마찬가지로 2배체와 4배체의 교배에 의해 3배체 바나나가 발생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인위적으로 3배체를 안정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약제인 콜히친은, 로마 제국 시대에서 통풍(痛風)용의 약으로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다만 부작용도 강하기 때문에, 현대에서는 통풍에 콜히친이 처방되는 경우는 드물다.


"뭐, 뭐든지 시험해봐야 하니까, 4배체 바나나 만듥기 도전부터 시작했지만…… 3배체가 나오려면 몇 년은 걸리겠지"


현대의 씨없는 수박을 만드는 방법과 마찬가지로, 바나나의 싹에 아마도 추출할 수 있었을 콜히친 추출액을 처리햇다.

다만, 이게 성공했는지, 애초에 콜히친이 정상적으로 추출되었는지조차 알지 못한다.

콜히친의 추출 자체는 수입한 콜키쿰(イヌサフラン, Colchicum autumnale, autumn crocus)의 종자(種子)나 인경(鱗茎)을 에탄올로 열처리하면 추출할 수 있을 것이지만, 재결정화하려면 초산(酢酸) 에틸이 필요해지기 때문에 눈대중으로 판단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추출할 수 있었을 것이라 믿고 처리를 하고, 결과는 하늘에 맡긴다는 방식이다.

애초에 4배체가 얻어질 확률 자체가 많아봤자 10퍼센트 정도이므로, 씨없는 바나나를 먹을 수 있게 되려면 아직 먼 것 같았다.


"으ー음, 걱정없이 밭일에 전념할 수 있는 건 즐겁네"


비닐하우스(엄밀히는 비닐이 사용되지 않음)에서 나오자 시즈코는 기세좋게 기지개를 켰다.

오늘은 날씨도 좋으니, 일을 끝내면 툇마루(縁側)에서 더위를 식히면서 수박이라도 먹자, 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 때, 문득 어떤 생각을 떠올렸다.


"아, 맞다. 슬슬 다들 자리가 잡혔을 무렵이니, 집들이(新築祝い)라도 할까"


그 후에 시즈코는 이 발언을 후회하게 된다.




시즈코가 집들이 연회를 연다. 그 정보는 순식간에 노부나가나 노부타다(信忠, 키묘마루(奇妙丸))의 귀에도 들어갔다.

때를 같이하여, 오다 가문 후다이(譜代)의 가신들에게도, 조금 늦게 도쿠가와(徳川) 가문과 주요 가신들에게도 정보가 흘러갔다.

시즈코로서는 한식구끼리 조촐한 연회를 생각하고 있었으나, 그녀의 예상을 뒤엎고 사방천지에서 집들이 축하 선물(新築祝い)이 산더미처럼 도착했다.

급히 참가자 명부를 작성한 쇼우(蕭)가, 씨족(氏族) 별로 정리된 명부를 시즈코에게 건넸는데, 시즈코는 건네받은 명부의 두께를 보고 농담이라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저기ー, 어째서 이렇게 많이 축하 선물을 받은걸까? 그보다 나, 집들이 이야기는 주상 외에는 알리지 않았는데?"


"그건…… 시즈코 님이시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의미를 모르겠어 쇼우 짱. 어쨌든 식재료도 집기(什器)도 부족할테니 잔뜩 사들여와. 이걸 보여주면 돈은 아야 짱이 준비해 줄 테니까"


"옛! 그럼, 사야 할 것들 목록을 준비할테니, 저는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응, 잘 부탁해"


기운좋게 인사를 한 후 쇼우는 방을 나갔다. 그녀가 나가고 시즈코는 다시 한 번 명부를 읽어보았다.

위로는 노부나가나 이에야스(家康)에서 시작하여, 아래로는 정말 어디의 누구냐고 묻고싶어지는 사람들까지 참가자 숫자는 부풀어올라 있었다.

어디서 정보가 샌 걸까, 라고 조금 경계심을 품은 시즈코는 케이지를 불렀다.


"그야 시즛치지. 지금은 나는 새를 떨어뜨릴 기세인 시즛치의 동향. 누구라도 그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하고 있다고. 저택은 눈에 띄니까 감출 방법이 없어"


불려온 이유를 알게 된 케이지는, 반쯤 어이없어하면서도 대답했다.

좋든 나쁘든 시즈코는 감시받고 있다. 당사자가 평상시에는 둔감하기 때문에 깨닫지 못하고 있으나, 그녀가 눈에 보이는 형태로 뭔가를 하면, 적어도 오다 영토 내에서는 전원에게 훤히 알려진다.

다른 영토인 도쿠가와 가문에까지 전해진 것은,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흘린 것이리라.


"으ー음, 그냥 좀 신경쓴 식사회가 될 예정이었는데, 엄청 큰 일이 되어버렸네"


"포기할 수밖에 없어. 무토(武藤) 아저씨도 말했지만, 시즛치에게 줄을 대보려는 놈들은 이런 기회를 노리고 있지. 노골적으로 다가오는 패거리는 조심해야돼"


"작작 좀 했으면 좋겠어요. 권력은 필요하지만, 지나친 권력투쟁은 나라 안을 너덜더덜하게 만들 뿐이라고요"


"그러네. 하지만 시즛치는 여기저기 투자하고 있잖아? 그게 남들이 보기에는 사정이 좋은 것처럼 보이는거야. 돈과 권력, 사람이 길을 잘못 들기에는 충분하지"


"돈도 권력도, 결국 뭔가를 이루기 위한 도구에 불과한데 말이에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녀석들 쪽이 이 세상엔 많은 거야"


시즈코의 말에 케이지는 어깨를 으쓱했다.


"뭐, 이 정도라면 문제없겠지. 주의하는 건 좋지만, 지나치게 신경쓰는 것도 좋지 않아"


"그럴게요. 미안해요, 오래 붙잡아둬서"


"신경쓰지 마. 요로쿠의 상대를 하는 건 재밌거든. 문제가 있다고 하면, 요로쿠가 인질이라는 입장을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는 점일까?"


켄신이 노부나가에게 항복한다는 소식이 전해진 이래, 노부나가는 몇 번인가 켄신과 연락을 했다. 그 때 교환된 문서에 의해, 카네츠구는 정식으로 오다 가문에게 맡겨진 몸이 되어, 켄신이 노부나가가 있는 곳으로 올 때까지의 기간 동안 사실상의 인질로서 취급되게 된다.

이 정도의 중대 안건에 인질이 근시(近習) 한 명이냐고 노부나가는 의심하기도 했지만, 만약 켄신이 약정을 어기면 어린애 한 명에게 책임을 씌워 내버렸다고 선전할 수 있겠다고도 생각하여 카네츠구의 신병을 인수했다.

그리고 지금도 카네츠구는 케이지 감시 하에 시즈코 저택에서 묵고 있었다.

하지만, 감시가 붙어있다고는 해도 행동이 제한되는 경우 같은 건 거의 없고, 때때로 둘이서 함께 거리로 나가서는 밤늦게 돌아온다는 경우도 흔했다.


"그건 케이지 씨에게도 문제가 있는 거 아니에요?"


"실례네. 제대로 감시는 하고 있어"


"감시라는 명목 하에 데리고 놀러다니는 걸로밖에 안 보이는데요"


점심때쯤 일어났다고 생각했더니 카네츠구를 데리고 어딘가로 놀러가고, 돌아와서는 배불리 밥을 먹고 잔다.

케이지는 방심을 유도하여 본성을 보고 있다, 고 하지만 아무리 봐도 놀고 있는 걸로밖엔 보이지 않았다.

카네츠구도 예의가 필요한 장소에서는 무가(武家)다운 태도를 취했다.

그러나 케이지와 어지간히 상성이 좋은지, 둘이 함께 있으면 즉시 정신이 느슨해진다. 얼핏 보기에는 얼빠져 보이지만, 이런저런 입장을 다 배제하고 나이에 맞는 소년다움이 드러난다, 라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뭐, 건강하게 지내고 있으면 된 건가. 좀 있으면 우에스기가 주상께 인사드리러 올 테니, 그 때까지라고 생각하면 눈감아줄 수 있기도 하고요"


"그런 거지. 그럼, 난 이만 실례하겠어"


말이 끝나자마자 케이지는 방을 나갔다. 스킵(skip, ※역주: 한 발씩 번갈아서 껑충껑충 뛰는 것)이라도 할 것 같을 정도로 즐거운 분위기라고 느꼈기에, 또 거리에라도 놀러갈건가 하고 시즈코는 헤아렸다.


"그럼…… 우에스기는 언제쯤 오려나. 뭐, 그건 주상께서 생각하고 계실테니 신경쓸 필요는 없으려나. 나는 집들이 참가자 처리를 하자"


그렇게 말하며 시즈코는 책상 쪽으로 몸을 돌렸다.




시즈코가 집들이 준비에 정신이 없을 무렵, 노부나가는 혼간지(本願寺)와의 강화(和睦)에 관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켄신의 항복이 어지간히 충격이었는지, 혼간지는 다급하게 노부나가에게 강화를 타진해왔다.

아사쿠라(朝倉)나 아자이(浅井)도 충격을 받았지만, 노부나가에게 그들은 이미 의식할 정도의 상대는 아니었다.

노부나가는 혼간지와의 강화 조건으로, 반드시 통화발행권(通貨発行権)을 인정하게 할 생각이었다.


다행히 통화발행권의 중요성을 혼간지는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그것은 통화발행권을 손에 쥐려는 노림수를 이해하고 있지 못했던 것도 있지만, 노부나가가 그 밖에 도저히 허용할 수 없는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한 것이 원인이었다.

노부나가가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혼간지에 제시한 것은 이유가 있다. 소위 말하는 '부풀리기(ふっかけ)'이다.

도어 인 더 페이스 테크닉(door in the face technique)이라고 불리는, 요구의 낙차(落差)를 이용한 교섭술이다. 일본에서는 양보적 요청법(譲歩的要請法)이라고 불린다.

이것은 처음에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한다. 당연히, 상대는 받아들이지 않고 거절한다.

거기서 서서히 요구를 낮추어, 최종적으로 자신이 원한 요구를, 마치 그만큼 양보했다고 생각하게 하여 상대에게 요구를 받아들이게 하는 교섭술이다.

이것은 '은혜는 은혜로 갚는다'라던가 '호의를 보인 상대에게는 호의로 보답한다' 등, 베품(施し)이나 호의를 받았을 경우 뭔가 답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반보성(返報性)의 원리'라고 불리는 심리 법칙을 이용하고 있다.


그런 교섭술을 쓰는 이유는 명백하다. 노부나가는 이제부터 '양보했다'는 시늉을 대외적으로 보이면서 자신이 바라는 요구만을 확실하게 통과시킬 생각이었다.

혼간지는 뭔가 생트집을 잡아서라도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교섭해올 것이다, 라고 노부나가는 생각하고 있었다. 사실, 혼간지 측으로부터는 우는 소리에 가까운 탄원서가 도착했다.


"큭큭큭, 어리석은 놈들"


노부나가는 싱글벙글 웃으며 미리 준비해둔 '2번째'의 강화 조건이 쓰인 서신을 혼간지에 보냈다. 당연히, 그것도 혼간지가 거부할 것은 예상한 바였다.

설령 조건이 받아들여졌다 해도 노부나가에게는 본래의 조건에 덤으로 붙어오는 것이다. 거절당하면 세 통 째의 강화 조건을 보낼 뿐이다. 어느 쪽으로 결과가 나오던 노부나가에게 손해는 없었다.


"곧 비명을 지르겠지. 다른 곳에서 압력이나 항의(苦情)가 들어오면 대답을 늦춰라. 금방 참지 못하고 행동을 일으킬 것이다"


교섭이 난항을 겪어 싸움을 걸어온다면 좋은 일이었다.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노부나가는 두 번이나 양보해보인 것이다.

교섭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싸움을 걸어온다면 혼간지에게 대의(大義)는 없다. 도량을 보인 노부나가와, 자기본위에 도량이 좁은 혼간지. 사람들이 어느 쪽을 지지할지는 명백했다.

당황해서 강화를 신청한 시점에서 혼간지에 승산은 없었다. 노부나가는, 언제 켄뇨(顕如) 등이 강화를 받아들일지, 아니면 자포자기(破れかぶれ)하여 싸움을 걸어올지 남몰래 즐기기까지 하고 있었다.


그런 속이 시커먼 외교와는 인연이 없는 케이지는, 오늘도 카네츠구를 데리고 오와리(尾張)를 여기저기 산책하고 있었다.

카네츠구는 인질의 신분이지만, 감시역인 케이지는 전혀 신경조차 쓰고있지 않았다. 카네츠구를 데리고 온종일 놀러다니고 있었다.


"음…… 소문으로 들은 것처럼, 민초(民草)들의 표정이 밝군. 병자나 말라비틀어진 노인 따윈 어디에도 없어. 어린애들(童子)조차 기운차게 뛰어놀고 있군"


"지금은 이렇지만, 10년 전만 해도 말도 아니었어. 오다 나으리는 이 주변 일대를 갈아엎어버리고 상행위 자리를 만들까, 라고 생각하고 있었을 정도니까"


비옥한 대지가 많은 오와리이지만, 물론 모든 땅이 비옥했던 것은 아니다. 개중에는 말라비틀어진 땅에 사는 사람들도 있었다.


"지금부터 가는 곳은, 시즛치가 처음으로 손을 댄 마을에 살던 녀석들이 있는 곳이야.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거 기대되는군"


그런 대화를 나누며 두 사람은 시즈코가 처음으로 맡았던 마을로 들어갔다.

먼저 카네츠구의 눈에 들어온 것은 괴이한 광경이라는 한 마디로 설명되었다.

늘어서 있는 비닐하우스, 물방앗간(水車小屋)과 연결된 수직농장(垂直農場) 용의 설비 등, 그의 뇌리에 있던 전원풍경과는 전혀 다른 경관이었다.


"이 무슨…… 뭐지 이건?"


카네츠구는 눈 앞의 광경에 혼란스러워져 멍하니 멈춰서 있다가, 비틀거리며 다가갔다.


"인마! 누구야, 밭을 어지럽히는 녀석은!"


옆쪽에서 날아온 노성(怒声)에 카네츠구는 그제서야 제정신이 들었다. 무의식중에 상당한 거리를 걸었던 듯, 그의 발은 밭의 안쪽까지 들어와 있었다.

케이지는 누군가를 찾고 있었던 건지, 카네츠구로부터 시선을 떼고 있었기에 그도 카네츠구가 밭에 걸어들어간 것을 깨닫지 못했다.


"누구야 너희들…… 아니, 케이지 님 아니십니까! 아, 너는 빨리 밭에서 나와!"


간신히 케이지도 현재 상황을 이해했다. 아직 혼란스러워하고 있는 카네츠구를 붙잡아 밭에서 끌어낸 후, 화가 머리 끝까지 나 있는 남성에게 고개를 숙였다.


"미안, 내가 눈을 뗀 바람에 밭을 어지럽혀 버렸네"


"아, 아니아니, 그렇게까지 심하진 않으니 괜찮습니다. 그래서, 이쪽의 어린애는 누굽니까?"


"아ー 시즛치의 손님, 일까?"


인질이라고 하면 듣기에 나쁘다고 생각하여, 케이지는 카네츠구의 정체를 얼버무렸다. 남성도 그렇게까지 카네츠구에게 흥미는 없었는지, 케이지의 말을 듣고 납득한 표정을 떠올렸다.


"미안합니다. 본 적도 없는 광경이었기에, 넋이 나가버려 논밭을 어지럽혀버렸소. 이렇게 사과드립니다"


"아니, 이쪽이야말로 고함쳐서 미안했어. 아, 나는 타고사쿠(田吾作)라고 해. 촌장…… 시즈코 님의 손님이라면, 우리들에게도 손님이야. 아무 것도 없는 곳이지만, 천천히 있다 가라고"


"요로쿠라고 합니다. 그렇진 않습니다. 이쪽에서 보면 하나같이 새로운 것을 뿐이군요"


아까와는 정반대로 타고사쿠는 우호적인 태도가 되었다. 시즈코의 이름을 꺼낸 것만으로도 이렇게 바뀌는 건가, 라고 카네츠구는 새삼 시즈코가 백성들에게 얼마나 사랑받고 있는지 이해했다.


"그건 그렇고, 여전히 수수께끼의 것들이 많구만"


"헤헷, 여긴 시즈코 님이 바쁘셔서 못 하시는 일을 이것저것 맡고 있으니까요. 덕분에 다른 마을에서 온 녀석들은 거의 다 쩔쩔매고 있지요"


"괜찮다면, 구체적으로 뭘 하고 있는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카네츠구의 말에 타고사쿠는 기다렸습니다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을 떠올렸다. 옆에서 케이지가 쓴웃음을 떠올리고 있는 것도 깨닫지 못하고, 카네츠구는 타고사쿠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어, 잠깐 기다려줍쇼…… 있다, 이거군. 우선 이걸 시험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원래 왔던 길을 되돌아간 타고사쿠였으나, 금방 뭔가를 손에 들고 돌아왔다. 카네츠구는 타고사쿠가 들고 있는 것을 지긋이 바라보았지만, 그게 뭔지 알 수 없었다.

왜냐하면 얼핏 보기에는 투명한 상자에 초목(草木)이 떠 있는 걸로밖에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건 수경재배(水耕栽培)라고 하는 새로운 농법이거든요. 시즈코 님은 이 녀석의 연구를 하고 싶으신 것 같지만, 도저히 시간이 나지 않아서 우리가 수경재배의 연구를 맡은 겁니다. 관리가 어렵고, 저는 배운 게 없으니 흙도 없는데 어째서 자라는지 모르지만 말이죠"


수경재배란 종래의 흙에서 재배하는 농법과 달리, 물에 담궈서 재배하는 농법이다. 통상적으로는 무기(無機) 비료(肥料)를 사용하지만, 현대에서는 유기(有機) 액체비료(液肥) 등 유기 비료를 사용한 재배도 이루어지고 있다.


"……확실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전혀 짐작도 안 가는군요"


"그렇지! 뭔지 모르겠지만 자라거든! 정말, 시즈코 님은 머리부터 우리와는 다르다고!"


수경재배에도 놀랐지만, 카네츠구가 가장 놀란 것은 시즈코가 생각한 것을 마치 자신이 칭찬받은 듯 기뻐하는 타고사쿠였다.


"타고사쿠 님은, 시즈코 님을 경애하고 계시군요"


"헤헷, 뭐 지금에야 다들 마찬가지지만, 처음에는 반발이 심했거든. 왜냐하면 갑자기 여자, 그것도 우리보다 나이가 어린 여자애가 촌장이 되었으니까. 아무리 오다 님의 명령이라도 그건 좀…… 이라고 생각하는 녀석이 잔뜩 있었지"


"촌장……? 혹시 시즈코 님은 예전에 이곳의 촌장을 맡으셨던 겁니까?"


"어! 우리 마을은 세금으로 바칠 수확(年貢)의 양이 나빠서 말야. 그 때, 마을을 없애지 않는 대신, 시즈코 님이 파견되었다는 이야기야. 그로부터 몇 년 동안, 순식간에 굶어죽어가던 마을이 부활했다고. 저기 다른 애들보다 나이가 많은(年嵩) 애가 있지? 저 녀석, 예전에는 빼빼 마른 굶주린 꼬맹이였는데, 지금은 배터지게 밥을 먹고 크게 자랐어. 저 녀석 엄마가 밥을 준비하는게 큰일이라고 투덜거릴 정도의 대식가라고"


타고사쿠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방향으로 카네츠구는 얼굴을 돌렸다.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에는 몇 명의 아이들이 놀고 있었다. 다들 혈색이 좋은 피부를 하고 있었다. 타고사쿠가 가리킨 인물은, 그 중에서도 한층 키도 크고 폭도 넓었다.


"어때, 시즛치가 목표로 하는 세상이 조금은 보였어?"


지금까지 조용히 있던 케이지가, 아이들이 노는 광경에 못박혀있는 카네츠구에게 질문했다. 아이들을 홀린 듯 보고 있던 카네츠구가, 케이지의 말에 정신을 차렸다.


"충분해. 하지만, 이래서는 무사(いくさ人)는 필요없어지겠군. 슬픈 이야기지만, 이런 세상에 싸움만을 업으로 하는 자들은 소용없을테니까 말야"


그렇게 말하는 카네츠구는, 말과는 달리 밝은 미소를 떠올리고 있었다.




5월 중순, 노부나가와 혼간지 사이에 강화가 성립했다. 노부나가가 가장 원했던 통화발행권을 그는 보기좋게 획득했다.

그 밖에도 노부나가를 찾아오는 자들에 대해 편의를 제공할 것, 토지의 소유자 정리에 협력할 것, 경제 발전을 목표로 한 도로 정비 등의 인프라 사업에 자금을 출자할 것 등, 그 밖에도 세세한 내용이 정해졌다.

주위에서 보면 노부나가가 토지를 얻은 것도 아니고, 또 배상금을 얻은 것도 아니다. 꽤나 온당한 강화로 보였으나, 혼간지 자체는 노부나가를 경계하는 자세를 보였다.

하지만, 이미 목표를 달성한 노부나가는 신경쓰지 않고 가신들에게 통화의 개발을 서두르도록 명했다.


"교통편이 좋아지면 반드시 경제는 발전한다. 자금은 혼간지가 낼테니, 신경쓰지 말고 많은 사람을 고용해라. 특히 생활이 곤란한 자들에게 우선적으로 일을 주어라"


그와 함께 노부나가는 도로 정비도 가신들에게 명했다. 어찌되었던 도로 정비가 가장 먼저이고 가장 중요하다. 길 없이 사람은 움직이지 않고, 사람이 움직이지 않으면 물건은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물류를 촉진시켜 경제를 활성화시키려면 쿄(京) 주변에만 길이 정비되어 있어서는 부족하다. 일본 각지, 벽지(僻地)에까지도 노부나가는 모든 장소에 길을 낼 생각이었다.

물론, 도로에 관해서는 운용부터 관문(関所)까지 여러 가지 법이 정해져 있었다. 이러한 법들에 대해서는 혼간지도 준수하도록 약속하게 했다.


"토지는 전부 조사(検地)하라. 방해하는 자는 무력으로 침묵시켜도 좋다. 토지의 소유주는 자발적(差出方式)으로 결정하라"


토지의 소유자를 확정시키기 위해, 도로 정리와 함께 가신들에게 명했다. 이것은 두 가지 목적이 있었다. 하나는 토지의 소유자를 명확하게 하여, 지배 체제를 정리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종교 세력(寺社勢力)이나 공가(公家)가 가진 장원(荘園)을 포함하여, 대체 어디에 얼마만한 토지가 있는 정확한 수치를 손에 넣는 것이다.

영토 내부를 일괄 관리하기 위해서는 정확한 수치가 필요 불가결하다. 데이터를 바탕으로 징세(徴税)를 하면 혼란은 적어지고 지역간에 차이가 나는 것에 의한 항쟁도 사라지게 된다.


"알겠느냐, 절대 소홀히 하지 마라. 측량(検地)을 얼버무린 자는 지위를 막론하고 참수(打ち首)할 것이다"


그 한 마디에 가신들의 얼굴이 새파래졌다. 노부나가는 규율을 깨뜨린 자를 지위를 막론하고 참수한 과거가 있다. 따라서 조사를 대충 얼버무렸다간 기다리고 있는 것은 가문 폐쇄(お家取り潰し)에 가까운 징벌이다.

그것을 이해한 가신들은, 노부나가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것을 두려워하여 절대 소홀히하지 않고 맡은 일을 수행해나갔다.


한편, 노부나가와 혼간지가 강화한 것에 의해 켄신은 카가(加賀)나 엣츄(越中)의 일향종(一向宗)과 간접적인 강화를 하게 되었다. 물론, 조부(祖父)의 대부터 싸워온 사이이므로 강화라고는 해도 순순히 풀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혼간지가 강화한 것과, 강화 조건에 '노부나가를 찾아오는 자에게 편의를 제공한다'라는 것이 있었다.

그리고 이 조건을 지키지 않은 자는 오다 측에서 어떻게 처분하던지 혼간지는 간섭하지 않는다, 는 조건도.


"뭔가 이상한 기분이군. 쿄에서 손을 잡았던 사람들이 나란히 오다 님이 있는 곳으로 가다니"


켄신은 정예병 5000을 이끌고 카스가 산성(春日山城)을 나섰다. 아무리 노부나가와 혼간지 사이에 약속이 되었다고 해도, 켄신은 그것을 완전히 믿을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군 중에는 나오에 카게츠나(直江景綱)나 카와다 나가치카(河田長親) 등, 켄신의 측근들이 여럿 있었다.

그리고 혼죠 사네요리(本庄実乃) 등에게 그가 자리를 비운 동안 에치고(越後)를 맡겼다.


"……내 몸은 오다 가문에 있으며, 오래 전부터 이미 쇼군(将軍)이 아니다. 이번은 예외 중의 예외이다"


"핫핫핫, 그렇겠지. 지금은…… 어이쿠, 아직 아무 말도 안 했네만? 그렇게 무서운 얼굴을 하지 말아주게"


아시미츠(足満)는 켄신에 대해 마지못해 대꾸를 했다. 그게 재미있었는지 사키히사(前久)가 아시미츠를 놀렸다.

말하는 도중에 아시미츠가 사키히사를 노려보았기에, 사미히사는 마지막까지 말하지는 않았지만 입가에는 웃음을 떠올리고 있었다.

명백히 재미있어하는 모습이라고 이해한 아시미츠는, 지긋지긋하다는 듯 혀를 찼다.


"너무 신경을 곤두세우지 말게. 이제 곧 만날 수 있을테니"


"……네놈, 무슨 말이 하고 싶은거냐"


"으음? 말해도 좋은가?"


어깨를 으쓱하는 사키히사에게 무슨 말을 해도 소용없다는 것을 이해한 아시미츠는 혀를 찬 후 말의 걸음을 빠르게 했다.


"핫핫, 너무 놀린 모양이군. 기다리게 친구여. 아무 의미도 없이 놀린 게 아닐세. 자네는 짜증스러…… 어흠, 지나치게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네. 좀 더 웃는 게 어떤가"


"쓸데없는 참견이다. 내가 복잡한 표정을 짓던 말던 네놈에겐 관계없지 않느냐"


"친구로부터의 조언일세. 조금은 들어줘도 좋지 않은가?"


"고려할 가치도 없다"


아시미츠와 사키히사의 투닥거림을 켄신은 눈부신 듯 바라보았다. 부럽다고까지 생각했다. 두 사람은 별 뜻 없이 대화를 하고 있지만, 겉치레(建前)를 배제한 채 본심으로 대화할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것이 얻기 힘든 기적인 것처럼 생각되었다.

에치고는 다른 지역에 비해 무사가 토지에 집착하는 경향이 강하고, 그 때문에 내란이나 가신들끼리의 대립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초기의 우에스기 가문에서는 지역별로 파벌이 생길 정도였다.

초기의 켄신의 측근인 오오쿠마 토모히데(大熊朝秀)가 행방을 감추고(出奔), 후에 타케다 가문에 들어간 것도 에치고의 특수한 환경에 정나미가 떨어졌다, 또는 파벌투쟁의 영향으로 쫓겨났다고도 한다.

그런 환경이었기에, 켄신에게는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친구가 없었다. 친구 같은 건 바랄 수 없는 입장이라고는 해도, 이렇게 눈 앞에서 보니 부럽다는 마음이 샘솟았다.


"친구란 좋은 것이다. 거리낌없이 말을 주고받고, 곤란한 길을 걸으려 하면 아무 것도 묻지 않고 곁에 있어주는군"


"영주님(御実城様)"


"미안하다. 단지 내게 없는 것을 부러워한 것 뿐이다"


그 말만 하고 켄신은 말의 걸음을 빠르게 했다. 말을 건 카게츠나는 켄신의 마음 속까지는 헤아리지 못했지만, 그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는 헤아렸다.

하지만, 그 말을 카게츠나는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말하면 켄신의 수고가 물거품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아무리 혼간지에서 독립 경향이 강한 카가나 엣츄의 일향종이라도, 아무래도 켄신의 정예병과 타케다를 쳐부순 오다 군을 동시에 상대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고, 길에 요여(神輿)를 놓는 등 약간의 방해공작을 하면서 본격적인 대치는 피했다.

요여란 단적으로 말하면 신이 계시는 가마(輿)이다. 그렇기에, 요여는 신의 영역으로 생각되고 있었다.


"가져다 버려라"


하지만, 방해공작이라고 해도 아시미츠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었고, 반대로 아시미츠의, 어떤 의미에서는 냉혹하다고도 할 수 있는 현실주의(realism)에 대해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을 뿐이다.

그는 길에 놓인 요여를 쓰레기로 단정하고, 부근의 절벽에서 던져버렸다. 중량이 있는 요여가 낙하의 충격으로 여기저기 박살이 났다.

무참한 모습이 된 요여를 일별조차 하지 않고 아시미츠는 행군을 재개했다. 신벌(神罰)을 두려워하여 가까이 가려 하지 않는 켄신의 병사들과는 정반대의 태도였다.


"무섭군. 그는 신벌을 두려워하지 않은 것인가"


역전의 맹장(猛者)인 카케츠나조차 신벌에 대해서는 두려워한다. 오히려 카게츠나의 태도야말로 전국시대의 무사로서는 보통이었다. 아시미츠처럼 요여를 태연하게 던져버리는 짓이 가능한 쪽이 이단(異端)이었다.


"그에게는 신도 부처도 두려움의 대상은 아니겠지요. 제게는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만. 뭐, 녀석의 생각 따윈 누구도 이해할 수는 없겠죠"


"저런 자를 데리고 있으면서 오다 님은 불안해지지 않는 것입니까"


"아무래도 처음에는 놀랐겠죠. 하지만, 때로는 그와 같은 인물조차 부릴 필요가 있다, 고 오다 님은 생각하고 계시겠죠. 때때로 그에게 임무를 명하고 있습니다. 저 정도로서는 오다 님이 무엇을 목적으로 임무를 맡기고 있는지 헤아릴 수 없습니다만"


말과는 반대로 사키히사가 가벼운 말투로 카게츠나의 의문에 대답했다.

아시미츠는 신불(神仏)에 대한 경의도, 우려움도, 아무런 특별한 감정을 가지지 않는다. 사키히사에게 알 수 있었던 것은, 지금의 아시미츠는 예전에 쇼군(将軍) 시절의 그와는 다르다는 것 뿐이었다.

지금의 아시미츠는 도덕도 윤리도 양심도 내다버린, 얼음처럼 차가운 현실주의자다. 그래도 뿌리 부분이 변하지는 않았기에, 사키히사는 변함없이 아시미츠와 우정을 나누고 있었다.


"고노에 님도 신벌을 두려워하지 않으시는 겁니까"


"한 번은 끊어졌던 인연이 다시 이어졌지요. 이것도 신불의 배려. 그렇다면 이번에는 마지막까지 손득(損得)을 배제하고 우정을 나누는 것이 친구라는 것입니다"


"신벌보다 친구와의 인연을 소중히 하고 계시는 겁니까"


"스스로 원하여 신벌에 말려들려는 것 따위, 세상에서는 어리석음의 극치라고 웃음거리가 되겠지요. 하지만, 이 인연도 그 신불이 내려주신 것. 이것을 소중히 하는 것은 그렇게 우스운 것일까요. 아니, 확실히 우습겠군요"


카게츠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표면상으로는 사이가 나빠 보여도, 사키히사와 아시미츠는 깊은 부분에서 이어져 있었다. 그곳에 손득이나 세상의 소문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단지, 친구를 위해 움직인다. 심플하고, 그리고 전국시대에서는 이단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아니오, 소생은 부럽다고 생각합니다. 친구란 그렇게 고마운 것, 이라고 새삼 생각했습니다"


지금까지의 복잡한 표정이 사라지고, 카게츠나는 사람좋은 밝은 미소를 떠올리며 말했다.




노부나가와 화평을 맺은 혼간지는, 병행하여 정보수집을 하고 있었다. 어째서 타케다(武田) 군은 하룻밤만에 패배했는가, 그 원인을 알지 못하면 노부나가에 대한 대응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수 개월에 걸쳐 알아낸 내용, 그것은 켄뇨(顕如)나 라이렌(頼廉)을 놀라게 하는 내용이었다.


"그럼 오다는, 처음부터 타케다와의 싸움을 생각하여 행동했다는 것인가?"


켄뇨들을 놀라게 한 내용, 그것은 노부나가가 오다 포위망을 공략할 때, 끌려나온 타케다를 쳐부술 것을 전제로 움직였다는 사실이다.

오다 포위망에는 강력한 군이 필요하며, 그리고 그것은 켄신보다 타케다가 맡을 가능성이 높다, 고 노부나가는 예측했다. 그리고 그의 예상대로, 타케다는 카이(甲斐)에서 출진하여, 미카타가하라(三方ヶ原) 전투에서 패배를 맛본다.

타케다가 오다 포위망에 참가한 것도, 그 후의 혼간지나 다른 세력이 한 일도, 처음부터 노부나가가 그렇게 되도록 꾸몄다, 라는 것이 된다.

요약하면, 반 오다 연합은 노부나가의 손바닥 위에서 춤춘 것에 불과하다.


"그럼 강화 내용에도 놈이 뭔가 수작을 부렸다고 생각해야 하는 게 아니오!?"


"기다리시오. 그건 우리도 생각했소. 하지만, 놈은 토지를 요구하거나 우리들에게 퇴거를 요구하거나 하진 않았소. 게다가, 그 이상 버텼다간 오다에게는 우리들에게 강화의 의사가 없다고 보였을것이오"


"우리들에겐 모우리(毛利)의 지원이 있소. 우리들은 농성하며 오직 버티기만 하면 되오. 돈도 쌀도 무진장(無尽蔵)으로 있지. 그 동안 놈들의 자금줄을 포위하면 자동으로 국력을 잃게 될 것이오"


"외람되지만"


간자들의 보고로 당황하는 켄뇨의 측근들이, 라이렌(頼廉)이 말을 꺼내자 뚝 하고 대화를 멈추었다.


"오다의 경제를 봉쇄하는 것보다, 타케다를 쳐부순 오다의 주력인 '고노에 시즈코(近衛静子)'의 대책을 생각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일리가 있지만…… 어차피, 여자 아니오? 뭘 어떻게 할…… 아니, 실례했소"


라이렌의 말에 한 명의 승려가 반론했다. 그러나 라이렌이 노려보자, 그는 다급히 의견을 집어삼켰다. 라이렌은 켄뇨의 측근들을 한 번 둘러본 후 말을 이었다.


"여러분, 여자 상대라고 생각하고 계시는데, 우리들은 그 여자의 계책에 패했습니다. 이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 여기서 변명을 늘어놓아봐야, 우리들의 입장은 전혀 변하지 않습니다. 아니면 얕본 채로 또다시 발목을 잡혀, 손을 쓸 방법도 없을 정도로 패배하는 미래를 바라십니까?"


라이렌의 말에 켄뇨까지 입을 다물었다.

실은 켄뇨로서도 그래봤자 여자라고 약간 얕보고 있었다. 하지만, 군사 지휘관인 동시에 뛰어난 정치가인 라이렌은 시즈코를 얕보지 않았다.

그는 시즈코가 여자이기에 이 정도로 치고 올라올 때까지 누구나 놓치고 있었다는 것을 헤아렸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그녀가 여자인 것 때문에 얕보는 인물이 있다. 그건 무서운 일이라고 라이렌은 깨달았다. 왜냐하면 무얼 해도, 어떤 공적을 세워도 얕보이는 것이다.

상대에게 얕보게 할 수 있으면 불리한 상황을 뒤엎을 수 있다. 그것을 자연스럽게 행할 수 있으니 시즈코의 입장이 대단히 부럽다고 라이렌은 생각할 정도였다.


"여자라고는 해도, 아니, 여자이기에 상대를 방심하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들은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시즈코의 술수에 걸려든 것입니다. 방심은 금물(油断大敵). 우리들은 놈을 여자가 아니라 오다와 어꺠를 나란히 하는 적으로 인식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들을 타케다와 같은 말로를 맞이하게 됩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오다에 대해서는 조사하고 있습니다만, 그 시즈코인지 하는 건 완전히 미지의 존재입니다"


"그것을 위한 강화. 시간을 들여서 차근차근 시즈코에 대해 조사하는 것입니다. 지금, 시즈코 본인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탁월한 지혜를 가진 것, 칼의 수집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 놈은 관리하는 토지에 사는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것, 그리고 놈이 이끌고 있는 군이 달리 유례를 찾아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헛기침을 하여 라이렌은 분위기를 바꾸었다. 그 자신도 여기까지 여자를 적수로 보는 것은 굴욕이기는 했다. 하지만, 그 분노 때문에 눈이 흐려지면 여자에게 어이없게 패한 나약한 놈, 이라고 후세에 웃음거리가 된다.

그렇다면 굴욕보다도 참고 승리를 얻어야 한다, 고 라이렌은 머릿속을 정리했다.


"놈의 군에는 8명의 측근이 있습니다. 모리 카츠조(森勝蔵), 카니 사이조(可児才蔵), 마에다 케이지(前田慶次), 아시미츠(足満), 토우도 요키치(藤堂与吉), 겐로(玄朗), 니스케(仁助), 시키치(四吉). 전원이 이색적인 출신을 가진 자들이오. 보통이라면 군으로서 기능하지 않는, 개성이 강한 자들을 통솔하고 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지휘능력은 뛰어나다고 봐도 좋습니다"


"확실히…… 특히 마에다 케이지는 우리들의 귀에도 들어올 정도의 카부키모노(傾奇者). 자신의 인생관(生き様)을 지키기 위해서는 누구에도 굴하지 않는 사내가, 어째서 얌전히 군에 있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군"


"그거야말로 놈의 강점. 하지만, 어떤 강자에게도 약점은 존재합니다. 그걸 알게 될 때까지는 견딜 수밖에 없습니다"


라이렌의 말에는 설득력이 있었다. 이대로 오다와 정면 충돌해도 승산은 없다. 또, 농성을 하려고 해도 오다 측에는 수수께끼의 발파통(発破筒)이 존재하기에, 성문이 의미를 가지지 못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한 손으로 악수하는 척을 하면서, 반대쪽 손으로 후려갈길 수 있는 시기까지 오로지 기다린다, 이것이 지금의 혼간지가 취할 수 있는 가장 유망한 선택지였다.


"지금의 우리들은 오다의 세력을 꺾을 약점을, 고노에 시즈코의 약점을 찾을 때까지 계속 견디는 것이 최선. 비웃는 자들에게는 마음대로 말하게 놔두면 됩니다. 우리들이 마지막에 이기면, 그런 비웃음은 사라지게 됩니다"


"그렇소! 시모츠마(下間) 형부경법교(刑部卿法橋) 님의 말대로이오!"


작전회의에 참가하고 있던 한 사람의 승려가 일어서며 흥분한 기색으로 외쳤다. 그 목소리에 다른 사람들도 동조하기 시작했다.


"그렇소, 마지막에 이기면 되는 것이오"


"오다에게는 마음대로 말하게 놔두면 되오. 짐승같은 무사에게 구름 위의 존재(雲上人)인 승려가 패할 리가 없소! 마지막에는 부처의 가호가 있는 우리들이 승리할 것이오!"


"당장 농성을 대비해 손을 쓰도록 하지요. 뭐, 돈도 쌀도 무진장으로 있소. 10년이고 20년이고 견뎌내 보이겠소"


지금까지의 침묵이 거짓말인 것처럼, 전원이 의기양양하게 목소리를 높였다. 사기 저하를 신경쓰고 있던 라이렌은 그들의 태도에 약간 안도했다.


하지만 라이렌도, 그리고 켄뇨도 깨닫지 못했다. 애초에 시즈코는 자신의 약점을 감추지 않고 일부러 드러내보이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 보이면서 그것이 약점이 되지 않도록 서로 보완하는 체제를 갖추고 있었다.

그것을 깨달았다면 대응은 또 바뀌었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은 결국 그것을 깨닫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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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

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겐키(元亀) 4년 무로마치 막부(室町幕府)의 종언(終焉)


103 1573년 4월 중순



노부나가와의 회담을 마친 시즈코는, 케이지(慶次) 들을 데리고 귀가길에 올랐다.

오와리(尾張)에 있는 시즈코 저택(静子邸)의 본전(本殿)에서 고용한 노예 네 명을 기다리게 하고 있었기에, 그녀는 급히 옷을 갈아입고 알현실로 걸음을 서둘렀다.


"갑작스럽지만, 네 사람은 각자 일을 맡아줘요. 코타로(虎太郎) 씨는 서적(書物)의 번역을, 야이치(弥一) 씨와 루리(瑠璃) 씨는 각자 금속 가공과 융단(絨毯) 제조법의 전수, 모미지(紅葉) 짱은 어떤 식물의 재배 기록을 관리해 주겠어?"


유럽 각국에서 쓰여진 서적을 일본어로 번역하려면 현대의 사전이 있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시즈코가 가져온 전자사전 종류는 현대어의 그것으로, 중, 근세의 문법이나 어법과는 다를 가능성이 있었다.

그렇다면, 당시의 번역가에게 일본어로 번역하게 하는 게 가장 빠르고 손쉽다.

언어학자이자, 모국에 있을 때부터 번역을 하던 코타로는, 라틴어는 물론이고 프랑스어나 스페인어, 그리스어까지 능통했다.

일본어를 유창하게 할 수 있는 것도 그러한 밑바탕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복수의 언어를 알고 있었기에 교회의 눈에 띄어, 이단 심문을 받게 된 것이지만.


"번역 자체는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뭔가 말씀하시고 싶은 게 있으신 것 같군요"


"보수라고 하긴 뭐하지만, 지동설(地動説)의 근거가 되는 정보를 주지요"


지동설이라는 단어를 듣고 코타로의 눈썹이 꿈틀했다.

당시의 주류는, 우주의 중심에 지구가 있고, 다른 천체는 지구의 주위를 자전하면서 공전하고 있다는 설, 즉 천동설(天動説)이었다.

이에 대해 우주의 중심은 태양이며, 지구나 그 외의 행성(惑星)은 태양 주위를 자전하면서 공전하고 있다고 외친 것이 지동설이다.

지동설로 유명한 것은 갈릴레오 갈릴레이(Galileo Galilei)이지만, 최초로 제창한 것은 고대 그리스의 천문학자 아리스타르코스(Aristarchus)라고도 한다.


기원전 2세기의 천문학자 아리스타르코스는 달의 차고 이지러짐, 달과 태양의 거리, 달과 태양의 크기에서 태양이 지구를 돌고 있다고 생각하기보다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돌고 있다는 쪽이 자연스럽다고 생각했다.

여담이지만 달과 태양의 거리에 관해, 아리스타르코스는 '달이 상현(上弦)이나 하현(下弦) 달일 때, 태양은 바로 옆에서 지구를 비추고 있다. 그리고 지구와 달은 일직선의 위치 관계에 있다. 그렇다면, 그 때의 달과 지구의 앙각(仰角)을 측정하면, 지구로부터 달, 또 지구로부터 태양까지의 거리를 삼각측량으로 측정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는 실제로 계측을 하여, 그 결과로부터 태양은 지구에서 볼 때 달의 19배(실제로는 약 390배) 멀리 있다고 생각했다.


다음으로 그는 월식(月食)으로부터 달의 크기를 계측했다. 월식은 달이 지구의 그림자에 숨기 때문에, 달에 비치는 지구의 그림자로부터 지구의 크기를 구할 수 있다고 생각햇다.

그리고 그것들을 계측하여, 지구의 직경은 달의 3배(실제로는 약 4배)라고 계측 결과를 정리했다.

이러한 데이터로부터 태양은 지구 따위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크다고 그는 결론짓기에 이르렀다.

가설을 세워 실증하고, 그 데이터에서 도출한 결론으로부터 아리스타르코스는 '지구보다 큰 태양이 지구의 주위를 돌고 있다고 생각하기보다,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돌고 있는 쪽이 자연스립다'라며 지동설을 발표했다.

물론, 중세와 마찬가지로 당시의 천문학의 권위자들로부터 '그런 바보같은 이야기가 어디 있나. 신에 대한 모독이다'라고 일축되고 격렬한 비난을 받았다.


그 후, 2천년 가까운 시간이 흘러 16세기의 중세 유럽, 카톨릭 사제인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Nicolaus Copernicus)가 아리스타르코스의 연구 결과에 착안하여, 오차나 결점을 독자적인 계산으로 보완하여 재계측한 결과, 지동설이 올바르다고 확신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당시의 상식인 천동설을 부정하는 것은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었기에, 그것을 두려워한 코페르니쿠스는 죽기 직전에 겨우 발표했다.


어째서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의 발표를 두려워하고,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이단 심문 자리에서 자신의 주장을 철회했는가.

그 이유는 성경에 '신은 대지를 움직이지 않게 했다'라는 한 줄이 있었던 것 뿐이었다.

즉, 천동설을 부정하는 것은 성경이 틀렸다고 규탄하는 것이 되고, 나아가서는 신을 부정한다는, 기독교 국가에서는 사활문제가 되는 위험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그 때문에 카톨릭 교회는 완강하게 지동설을 부정해왔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옹호하고 태양계 같은 천체는 우주에 무수히 있다고 제창했던 조르다노 브루노(Giordano Bruno)는 이단 심문에 넘겨져 이단으로 선고받았음에도 자신의 주장을 철회하지 않았기에 화형에 처해졌다.

화형된 후, 그의 유해는 강에 버려졌고, 교회는 유족에게 장례식이나 묘의 설영(造営)을 금지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교회의 지독한 대응을 알고 있었기에, 이단 심문 자리에서 자신의 주장을 철회했다고 전해진다.


"그게 올바른 것을 증명할 수 있습니까?"


"내가 여기서 올바르다고 주장해봤자 당신은 납득하지 않겠지요. 그렇다면, 올바른지 어떤지는 당신이 증명하면 됩니다. 내가 제시한 근거가 틀렸다면 나를 거짓말장이라고 하면 되겠지"


"과연, 어쨌든 제 눈으로 실험하여 확인해야 하겠군요"


시즈코의 말에 코타로의 웃음이 깊어졌다.


이미 지동설이 상식인 세계에서 살아온 시즈코가 코타로에게 지동설을 확인하게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시즈코가 '결과'밖에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구는 자전하고 있다, 지구는 태양의 주위를 공전하고 있다, 라고 말하는 것은 간단하다.

하지만, 그것을 증명하려고 하면 그녀의 근거는 '그렇게 배웠으니까'가 되어버린다. 따라서 코타로에게 근거를 제시하고, 실제로 계측하게 하여 증명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지동설을 증명할 근거라고 한 마디로 말해도, 상세히 파고들면 여러가지가 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목성에 위성이 있는 것을 발견하여 공전의 근거로 삼았고, 금성이 차고 이지러지는 것이나 태양의 흑점의 움직임에서 행성이 자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케플러의 법칙을 확립한 요하네스 케플러(Johannes Kepler)에 의한 천문표 '루돌프 표(※역주: 루돌프 행성 운행표)'(당시의 행성 운행표(星表)와 비교하여 30배나 되는 정밀도를 가지고 있었다)도 발표되어, 지동설에 유리한 근거는 얼마든지 나와 있었다.


그래도 반론은 적지 않았다. 개중에서도 '지구가 한 번도 정지하지 않고 계속 움직일 수 있는 이유'에 대해서는 정확한 해답이 나오지 않고 있었다.

이 문제를 해결한 것이 아이작 뉴턴(Isaac Newton)이다. 그의 '운동의 법칙'이나 '만유인력의 법칙'이라는 보편적인 법칙으로 관성(慣性)을 정식화한 것에 의해 지동설의 의문이 모두 해소되었다.


다만, 아무리 근거있는 데이터가 나와도, 카톨릭 교회가 지동설을 승인한 것은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 발표로부터 수백년 후인 1992년이었다.


"융단, 인가요"


"그래요. 그게 나중에 단통(緞通, ※역주: (중국·인도·페르샤 등이 원산지인) 여러 가지 무늬의 두꺼운 양탄자)으로 이어지니까요"


"저어…… 단통이라는게 뭔가요"


"말하자면 융단의 친척, 이라고도 할까요. 뭐, 세세한 걸 신경쓸 필요는 없어요. 당신이 알고 있는 융단의 제법을 기술자들에게 전수하면 문제없어요. 나머지는 기술자들이 알아서 멋대로 개조하겠죠"


코타로와의 대화가 끝나자, 이번에는 루리가 시즈코에게 말을 걸었다.

단통이란 깔개(敷物)용 직물의 일종으로 중국제의 융단을 가리킨다. 융단과 혼용되는 경우가 많지만 다른 물건이다. 이런저런 차이점은 있지만, 가장 큰 차이점은 두께이다.


페르시아 융단은 대단히 얇은 융단이지만, 단통은 두께를 준 융단이라고 할 수 있다. 또 제법도 크게 달라서, 페르시아 융단은 날실(経糸)과 씨실(横糸)을 엮지만, 단통은 씨실에 날실을 통과시킬 뿐이다.


"네, 네에……"


"과거를 끄집어내게 되겠지만, 융단 제법의 전수가 끝나면 그 후에는 조언이나 감독을 하는 정도면 문제없어요"


이것은 후에 이야기를 듣고 알게 된 일인데, 루리는 한때 아랍에서 노예로 팔려서 융단을 제조하는 공장에서 허드렛일을 했었다.

때로는 기술자들을 돕는 경우도 있었기에, 제법에 대해서는 대충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 때 알게 된 제법을 오와리의 기술자들에게 전수하는 것이 그녀가 할 일이다.

단, 모든 공정을 파악하고 있는 진짜 기술자와는 다르기에 간략화된 순서 등으로 기억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었지만, 그 부분은 배운 기술자들이 알아서 보완할 거라고 생각하여 시즈코는 그다지 신경쓰지 않았다.


페르시아 융단은 일본과 별로 관련이 없는 듯 생각되지만, 아즈치모모야마(安土桃山) 시대에 이미 일본으로 수입되었다.

당대의 권력자인 토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는 페르시아 융단을 매우 마음에 들어하여, 재단하여 전쟁터에 나갈 때 입는 겉옷(陣羽織)으로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내용은 간단히 들리지만, 융단이나 단통은 외화(外資)를 얻기 위한 귀중한 상품이 될 거에요. 그러니 그 점만은 주의해 주세요"


"네, 알겠, 습니다"


"좋아요. 야이치 씨는 이제와서 이야기할 건 없겠죠. 마음대로 물건을 만들어 주세요. 나머지는 기술자들이 보고 멋대로 대항의식을 불태우며 흉내내서 뭔가를 만들겠죠"


"……그러기만 하면 됩니까?"


루리와 마찬가지로, 야이치가 할 일도 단적으로 말하면 기술의 계승, 그것 뿐이었다. 단지 자신이 만들 수 있는 것을 만들기만 하면 된다, 였으니 그들이 곤혹스러워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상관없어요. 이런 건 위에서 이야기를 해봐야 기술자들은 움직이지 않아요. 대항심을 불태울 상황을 만들면 알아서 움직이는 법이에요"


두 사람에게는 평소에 하던 일이라도, 시즈코에게는 새로운 기술이 들어오는 것이 중요했다. 그걸로 좋은 기술이 확립되고 새로운 것이 만들어질지는 그녀 자신도 판단이 서지 않았다.

하지만, 처음의 방아쇠를 당기지 않으면 이야기가 시작되질 않는다. 따라서 해외의 기술은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도입할 생각이었다.


"알겠습니다"


"잘 부탁해요ー. 그럼 마지막으로 모미지 짱. 너는…… 그렇지, 님 나무(インドセンダン)의 재배 기록이라도 관리해 주겠어?"


"네, 네!"


말을 걸자 깜짝 놀랐는지, 모미지는 허리를 펴며 대답했다. 뭔가 긴장할 만한 말을 했나, 라고 내심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시즈코는 말을 이었다.


"긴장하지 말고 진정해. 어느 정도는 가르쳐주겠지만, 그게 확실한지 어떤지를 확인하는 게 일이야. 별로 어렵지는 않거든? 올바르다면 재배할 수 있는 것이고, 틀렸다면 시들 뿐이니까"


"어, 시들게 해도, 되는 건가요?"


"확실히 검증한 결과라면야. 무의미하게 시들게 할 생각은 없거든? 뭘 어떻게 했더니 시들었다, 라는 기록은 남겨줘. 그런 기록이 쌓이고 쌓이면 언젠가 진실에 도달할 열쇠가 되는거야"


"네. 아, 알겠습니다"


모미지의 대답에 시즈코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시즈코가 모미지에게 재배시키는 님 나무(영어 명칭 Neem, 이후 님으로 표기함)은, 이름 그대로 인도 원산의 식물이다 (※역주: 일본어 명칭인 インドセンダン은 직역하면 인도 멀나무라는 의미).

인도에서는 옛부터 만능약으로서 가정에 상비된 나무인데, 최근에 해충 퇴치 효과가 있는 것이 밝혀졌다.

나무 전체에 뭔가의 효과가 있어, 인도의 전통의학인 아유르베다(आयुर्वेद, Ayurveda)에는 님의 씨앗이나 나무껍질, 잎사귀를 쓴 약이 여럿 기재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특기할 만한 것은, 씨앗이나 나무껍질에 함유되어 있는 오일이다. 아자디락틴(azadirachtin)이라는 성분이 함유되어 있는데, 이것이 수백 종류나 되는 벌레를 쫓는 효과가 있다.

또, 이것을 섭취한 벌레는 성장 호르몬의 작용이 방해받아 죽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이만한 효과가 있는데, 곤충 이외의 동물에는 영향이 없다고 한다.

기름을 짜낸 씨앗 찌꺼기를 가루로 만든 것은 님 파우더(Neem powder)라고 하며, 땅 속에 숨은 해충을 퇴치하는 효과가 있다.

다만 효과는 1, 2개월 정도밖에 지속되지 않기에, 정기적으로 님 파우더를 추가할 필요가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모미지 짱의 일이 제일 힘든 일일지도 모르겠네. 끊임없이 관측하고 기록하는 것 뿐이니까"


화학 농약을 입수할 수 없는 전국시대에서 님 나무나 씨앗에서 얻을 수 있는 오일 등은 화학 농약과 동등한 능력을 가진 편리한 존재이다.

다만 님 나무는 열대지역이 원산이기 때문에, 기온과 습도에 주의하며 재배할 필요가 있다. 내한(耐寒) 온도는 10도로, 그루(株)가 작을 때는 특히 추위에 약하다는 결점이 있다.

재배의 평균 기온은 20도에서 25도, 햇볕이 잘 들면서 물빠짐이 좋은 땅이 필요하다. 물빠짐이 나쁘면 뿌리가 썩는다.


그렇기에 일본에서는 오키나와(沖縄) 등의 아열대 지역에서밖에 야외(戸外) 재배를 할 수 없고, 일본의 혼슈(本州)에서는 겨울이 되면 실내(戸内) 재배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필연적으로 화분에 심어 재배하는 것이 기본이 되어버린다.

나무 그 자체가 해충 대책이기에 질병이나 해충은 거의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이점은 있찌만, 재배 그 자체는 나름 난이도가 높다.


"여, 열심히 하겠습니다"


"잘 부탁해"


한숨 돌린 후 시즈코는 다시 전원을 둘러보았다.


"그럼 대략적인 일의 설명은 했다고 생각해. 이건 전원에게 해당되는 말이지만 맡은 일만 제대로 하면 비는 시간에는 뭘 해도 좋아. 물론, 우리나라를 적대하는 행위를 했을 경우에는 그에 걸맞는 보답을 하겠지만 말야"


보답이라는 단어에 조금 긴장한 네 사람이었으나, 시즈코는 사람 좋은 웃음을 떠올리며 말을 이었다.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어. 평범하게 우리 나라의 법을 지키며 평범하게 생활하면 거의 문제는 없어. 궁금한게 있으면 질문하러 와도 좋아. 중요한 건 혼자서 끌어안지 않는 거야"


네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본 후 소근소근 상의를 했다. 그리고 시즈코 쪽으로 얼굴을 돌리며 잘 알겠다는 듯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의식주에 대해 안내하게 하지. 소성(小姓)들, 안내하도록"


네 사람의 대답에 만족한 시즈코는, 밖에서 대기하고 있는 소성들에게 네 사람을 안내할 것을 명했다.




그들을 맞이한지 3주일이 지났다. 표면적으로는 딱히 말썽도 없었고, 처음에는 기술자들과 다소 삐걱대기는 했으나, 신기함(物珍しさ)에서 오는 서먹함이었기 때문에 2주일이 지나자 사이가 좋아졌다.

루리는 사람이 어려운 모양이라, 오빠인 야이치의 뒤에 숨는 일이 많았다. 물론 기술자들의 부인들에 의한 기관총같은 대화에 대응하지 못한다는 면도 부정할 수 없다.


코타로는 번역을 재빠르게 마친 후, 지동설의 검증에 착수했다. 거의 은둔형 외톨이에 가까웠으나, 가끔 나와서는 케이지들과 술을 마셨다.

와인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중얼거렸다는 걸 듣고, 곧 와인 양조에 손댈 가능성이 있다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야이치는 과묵한 기술자로, 묵묵히 제품 제조에 열중하고 있었다.

결코 기술자들을 거절하는 것은 아니고, 지금까지 기독교도들로부터 계속 거절당해왔기에 어떻게 접해야 할지 모르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기술자들과 술을 마시면서, 무뚝뚝한 분위기는 변하지 않았지만 조금씩 말을 하게 되었다.


모미지는 진지했다. 진지함이 지나쳐 일에 너무 열을 올리게 되어버리는 것이 옥의 티였으나, 그래도 순조롭게 일을 수행하고 있었다.

다만, 다른 세 사람과 달리 타인과 접할 기회가 적었기에, 일본어의 습득은 조금 늦어지는 느낌이었다.


"응, 문제없네"


3주일이 지난 후 시즈코는 아야(彩)로부터 네 사람에 대한 보고를 받았다. 내용은 충분했고, 특별히 문제가 될 점은 보이지 않았다.


"네 사람 모두 기대 이상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문제가 있다고 하면, 시즈코 님이 모미지에게 너무 신경을 쓰셔서 본래의 일이 늦어지고 있는 점이네요"


"아ー 그건, 미안해. 어떻게든 때에 맞출게"


"신경쓰시는 건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너무 지나치게 신경을 쓰시면 모미지가 다른 사람의 질투를 사게 됩니다. 시즈코 님은 많은 사람들을 거느리고 계신 몽입니다. 뭐든지 적당히 부탁드립니다"


"오, 질투일까? 나는 항상 아야 짱이 너무 좋은데?"


말하자마자 시즈코는 아야를 껴안으려 했다. 하지만, 아야는 샥 하고 몸을 젖혀 시즈코의 포옹을 피했다.


"부ー, 아야 짱은 솔직해져야 한다고 생각해"


"바보같은 말씀 마시고, 스스로의 일을 끝내 주십시오. 10만 석을 다스리는 것이니, 지금 이상으로 서류가 늘어납니다"


"그걸 대비한 직원들은 다 준비해놨어. 나는 결재할 뿐이라서 그렇게까지 일은 늘어나지 않아"


시즈코는 노부나가가 10만 석을 다스리라고 했을 때부터 통치에 필요한 재능을 가진 사람을 모으고 있었다.

10만 석 중, 5만 석은 사키히사가 어떻게 다스릴지에도 달렸지만, 남은 5만 석은 시즈코 혼자서 다스려야 한다. 그래서, 시즈코는 5만 석을 세분화하고, 각자 전임(専任)의 대관(代官)을 두었다.

세금 관리의 가장 작은 단위를 다스리는 사람을 시장(市長), 복수의 시장 위에 서는 사람을 구장(区長), 그 구장들을 통솔하여 가장 위에 서는 것이 시즈코이다.

시즈코가 주로 하는 일은 법 정비, 세제 개혁, 시장 개혁, 토지의 소유자 정리, 인프라 개발, 금융 개혁, 예산의 입안과 집행이다.


"금융에는 은행이 필요한데, 그러려면 주상께서 통화 발행권을 얻을 필요가 있지. 뭐, 지금도 은행은 가동시키고 있으니 문제는 없지만"


은행에는 '금융중개(金融仲介)'와 '결제기능(決済機能)'과 '신용창조(信用創造)'의 3대 기능이 필요해진다.

하지만 그보다도, 은행은 백성들로부터의 신용이 중요해진다. 신용이 없이 돈을 빌리고 빌려주는 금융중개는 할 수 없다. 신용없이 결제 기능은 사용되지 않는다. 신용없이 신용창조는 할 수 없다.

뭐든지 백성들로부터 신용이 있을 것, 이것이 없으면 백성들이 돈을 맡기지 않고, 빌려준 돈이 제대로 변제되지도 않는다.


금융중개는 이름 그대로, 돈을 빌려주는 사람과 돈을 빌리는 사람의 중개를 하는 기능이다. 돈을 빌려주는 사람과 돈을 빌리는 사람 사이를 잘 조정하여, 거래의 리스크나 코스트를 경감할 수 있다.

결제기능은 예금을 사용하여 현금을 쓰지 않고 송금이나 지불을 하는 기능이다. 결제기능은 은행의 네트워크와 풍부한 자금이 있어야 처음으로 실현된다.


신용창조는 어렵게 들리지만, 간단히 말하면 예금과 대부를 반복하는 것으로 처음에 은행이 받은 금액의 몇 배나 되는 예금 통화를 창출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A씨와 B씨가 각자 1천만엔씩 은행에 맡겼다고 하자. 이 때, 은행에는 2천만엔의 본원적(本源的) 예금이 존재한다.

이 중, 준비예금(準備預金)이라는 일정한 금액을 남기고, 남은 금액을 대부의 자금으로 돌린다.

그리고 C씨가 은행에서 1천만엔을 빌렸을 때, 은행에는 A씨 예금 1천만엔, B씨 예금 1천만엔, C씨에 빌려준 1천만엔 등 합계 3천만엔이 은행의 계좌예금에 존재하는 것이 된다.

최초의 본원적 예금이 2천만엔이었기에, 은행에는 새롭게 1천만엔의 신용이 창조된 것이 된다.

이것을 반복하는 것으로 사회에 존재하는 통화가 늘어나고 경제활동이 원활해진다. 이 기능을 신용창조라고 한다.

다만 이름 그대로, 은행에 신용이 없으면 성립하지 않는 기능이다.


"뭐ー 은행이라고 해도, 지금은 신용이 없으니 돈을 맡는 것 정도밖에 할 수 없지만"


은행이 생긴다는 것은 즉시 돈을 맡아준다, 라는 게 되지는 않는다. 은행이라는 기능 자체가 처음이며, 돈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것에 저항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

타케다(武田)를 쳐부순 것으로 일정한 신용을 얻었는지 서서히 돈을 맡기는 사람들은 늘어나고 있지만, 그래도 얼마 되지 않는 정도다.

하지만 신용을 얻기 위해서는 막대한 노력이 필요하므로, 고객을 소중히 하며 꾸준히 신용을 획득할 수밖에 없다.


"서서히이긴 하지만 예금자는 늘어나고 있습니다. 역시 출입하는 상인들이 일제히 맡긴 것이 효과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출입하는 상인, 특히 큐지로(久治郎)는 은행의 메리트를 남보다 빨리 깨달았다. 그것은 현금을 은행에 맡겨두면 서류(紙)를 주고받는 것만으로 돈을 처리할 수 있어, 현금을 들고다니는 것보다 몇 배나 안전하다는 것이다.

설령 결제가 실행되지 않더라도, 계좌의 잔고만 확보해 두면 은행의 책임이 되므로 큐지로의 신용에 흠이 가지 않는다.

큰 상담(商談)을 마무리할때도, 자본주(金主)를 찾아서 상대마다 조건을 붙이며 교섭하지 않아도, 은행측이 많은 자본주들을 모아서 중개해 주므로, 많은 자금을 더욱 싸게 조달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돈거래가 빠르고 쉽다, 이 두 가지가 큐지로에게 큰 메리트였다.


"큰 돈이 예금되었네. 이 신용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내외의 적은 용서없이 철저하게 단속해줘. 한패가 있다면 토할 때까지 용서없이 취조하는 것도 허가할게"


"네. 경비에 관해서는 최상위의 상태로 대응하고 있습니다"


시큐리티가 확실한 것, 이게 우선 신용을 얻는 첫걸음이다. 경비하는 사람도 없고 아무 시큐리티 대책도 없는 은행에 돈을 맡기는 바보는 없다.

돈을 약탈하는 자는 용서하지 않는다. 그러한 엄격한 태도를 보이는 것으로 신용은 얻을 수 있다.

특히 전국시대에서는, 은행강도범은 그 자리에서 베어버리고 일가친지를 연좌시켜 효수(晒す)하는 정도의 태도가 아니면 안 된다.


"법적으로도 은행강도범의 살해는 문제없지만, 다 죽여버리면 배후관계를 밝힐 수 없으니까. 그 부분은 확실히 대응하도록 말해줘"


"잘 알고 있습니다"


"잘 부탁해ー. 아마 몇 달 동안은 큰 움직임도 없을거라 생각하니까 천천히 해도 돼"


그런 말을 한 시즈코는 후에 이 때의 발언을 후회한다.

그 빅 뉴스는 눈깜짝할 사이에 일본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그 뉴스를 알게 되었을 때, 누구나 "설마 그럴리가"라고 입을 모았다.

그것은 시즈코도, 계책을 실행한 노부나가조차 예상외의 사건이었다.


전국시대의 세상을 진감시킨 일대 뉴스. 그것은 에치고(越後)의 용, 즉 우에스기 켄신(上杉謙信)이 노부나가의 신하가 될 것을 수락했다는 사실이었다.




그 소식이 처음으로 도착한 곳은 시즈코 저택이었다.


"시즈코 님을 뵙고 싶소!"


자칫하면 뻔뻔한 태도로도 보이는 소년이 문지기에게 그렇게 말한 것은 4월 중순을 조금 지났을 무렵의 일이었다.

소년이라고는 해도 차림새는 훌륭하고 풍채도 어엿한 무사라고 생각되었기에, 문지기는 잠시 머뭇거린 후 사람이 찾아온 것을 시즈코에게 보고했다.

쇼우(蕭)에게 스케줄을 확인했으나, 그녀는 누군가의 방문이 예정되어 있지 않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보통은 돌아가라고 할 상황이지만, 혼자서 찾아온 사람을 함부로 돌려보내는 것도 그렇다고 생각하여 시즈코는 소년을 만나기로 했다.

그리고 알현실에서 소년의 모습을 보고 간신히 시즈코는 소년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어라, 요로쿠(与六) 군이잖아. 이래저래 1년만…… 인가? 이번엔 무슨 용무일까?"


"오늘은 배알할 기회를 주셔서 엎드려 감사드립니다. 오늘 찾아뵌 것은ーー"


가벼운 태도로 방문의 이유를 묻는 시즈코에 대해, 카네츠구(兼続)는 자세를 단정히하고 공손하게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도중에 뱃속의 벌레가 성대하게 울어제꼈다.


침묵이 자리를 지배했다. 다들 뭔가 말을 꺼내려다가 말을 집어삼켰다. 누구의 뱃속 벌레인지는 다들 알고 있었지만, 그걸 입 밖에 꺼내어 말하는 것은 꺼려졌다.

볼을 긁던 시즈코는, 천정을 바라보며 어떻게 할까 생각한 후, 헛기침을 하여 분위기를 바꾸었다.


"급한 이야기가 아니라면, 점심식사를 하면서 하기로 하죠. 오늘은 좋은 생선이 들어왓으니, 맛의 감상을 들려줬으면 하네요"


"……예, 옛. 배려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렇게 말하고 고개를 숙인 카네츠구의 귀는 새빨개져 있었다. 기껏 폼을 잡았는데, 보기좋게 마각을 드러내 버렸으니 창피해하는 것도 어쩔 수 없다.

시즈코는 깊게 지적하지 않고 손뼉을 쳐서 소성들에게 점심식사 준비를 명했다. 잠시 후, 진수성찬에는 거리가 멀지만 따뜻해보이는 식사가 전원의 앞에 놓여졌다.


"그럼 들도록 하죠"


"잘 먹겠습니다"


식전의 인사를 한 후, 다들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뱃속의 벌레가 울어제낀 카네츠구는, 처음에는 천천히 먹었지만, 공복에는 이길 수 없었던 듯 도중부터 퍼넣듯 먹고 있었다.

저번에 우정이 싹텄는지, 그냥 단순히 배가 고팠던건지, 케이지나 나가요시(長可)도 식사를 하는 스피드가 올라갔다.


"밥을 더 줘! 밥그릇(椀)으론 부족해. 나는 밥통(お櫃)째로 가져와!"


"아, 치사해! 야, 소성, 내게도 밥통으로 부탁해! 케이지보다 큰 걸로 말야!"


"케이지 님, 카츠조(勝蔵), 너희들 시즈코 님 앞에서ーー"


"나도 질 수 없군! 가장 큰 밥통으로 밥 추가 부탁해!"


사이조가 쓴소리를 했지만, 그 목소리는 케이지나 나가요시에게는 닿지 않았다. 뭔가 불이 붙었는지, 카네츠구까지 밥통으로 밥 추가를 요구하는 상황이었다.


"……에잇! 소성이여! 나(某)에게도 밥통으로 가져와라!"


드디어 사이조의 경쟁심에도 불이 붙었다. 이렇게 되면 이제 누구도 손을 댈 수 없는 상태였다.


"다 어디에 들어가는 걸까"


눈 앞에서 벌어지는 많이먹기(大食い) 경쟁에 시즈코는 어이없어하며 중얼거렸다.


먼저 나가요시가 탈락하고, 이어서 사이조, 케이지와 카네츠구의 일대일 대결(一騎打ち)이 되었으나, 몸 크기 때문에 케이지가 승리하는 결과가 되었다. 차를 홀짝이면서 그 모습을 뜨뜻미지근한 눈으로 지켜본 시즈코였다.

차를 다 마시고 쟁반 위에 올려놓은 후, 신음소리를 내며 드러누워 있는 카네츠구에게 말을 걸었다.


"그래서, 무슨 용무로 온 걸까?"


"우풉, 편지를 전하러 왔어. 그리고, 빌린 돈의 변제도 겸해서"


뱃속이 괴로운 듯한 모습으로 카네츠구는 편지, 이어서 돈이 든 자루를 내밀었다. 양쪽을 소성이 받아들고 안을 확인한 후 시즈코에게 가져왔다.


"돈은 아야 짱에게 건네줘요. 편지는 내용을 확인하겠어요"


"옛"


명을 받은 소성은 조용히 방을 나갔다.


"이제와서 말하기도 그렇지만 확인하지 않아도 되었던 거야?"


"네가 가져왔으니, 돈자루 내용물을 확인할 필요도 없겠지"


대자로 누워 있는 카네츠구의 질문에 시즈코는 편지를 펼치면서 대답했다. 애초에 돌아올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 돈을 카네츠구는 일부러 가지고 왔다.

그렇다면 내용물을 확인할 필요는 없고, 빌려간 금액이 확실히 들어 있을 것이다, 라고 시즈코는 판단했다.


(돈보다 편지 내용이 뭐냐……가 중요하지. 어디보자……)


드러누워있는 인간들을 내버려두고, 시즈코는 편지의 글자를 좇았다. 읽음에 따라 그녀의 미간에 주름이 지기 시작했다. 마지막까지 읽었을 때 시즈코는 다시 한 번 처음부터 편지를 읽었다.

네 번 정도 편지를 다시 읽은 후, 시즈코는 곱게 편지를 접었다.


"혹시 몰라 확인하는데, 농담이나 뭐 그런 건 아니겠지?"


"농담으로 끝날 내용이 아니겠지. 설령 농담이라면 여기에 오기 전에 내 목이 날아갔을걸"


"그러네…… 미안, 설마 이럴리가, 라는 내용이었거든"


"뭐 편지를 보면, 누구나 처음엔 그렇게 생각하겠지. 내용을 들었을 때 나도 내 귀를 의심했어. 하지만 영주님(御実城様)이 숙고하신 결과로 내리신 결론이야. 나는 그것에 따를 뿐이지"


"그래, 알았어"


카네츠구의 대답을 들은 후, 시즈코는 납득한 듯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필묵을 준비하세요!"


입구로 얼굴을 돌리고 시즈코는 큰 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거의 내지 않는 시즈코의 큰 목소리에 소성이 무슨 일인가 당황하며 지필묵을 준비했다.

준비된 종이에 시즈코는 편지의 내용을 간결하게 요약해서 2통을 썼다. 내용에 문제가 없는지 확인한 후, 화압(花押)을 찍어 곱게 접었다.

그리고 원래 편지를 함께 넣어 나무상자에 봉인한 후 소성을 불렀다.


"빠른 말을 바꿔타면서 주상께 가장 빠르게 전달하도록 전령에게 전하세요"


"옛!"


편지를 소성에게 건네주고 가능한 한 서두를 필요가 있음을 신신당부하도록 명했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낀 소성은 편지를 받아들자마자 뛰쳐나가듯 방을 나갔다.


"……무슨 내용인데?"


지나치게 다급한 모습에 편지가 궁금해진 나가요시가 머리만 들어서 시즈코에게 질문했다.

아래턱(頤)에 손을 대고 생각을 하고 있던 시즈코였으나, 나가요시가 질문해온 것을 깨닫자 요약한 문서를 흔들면서 대답했다.


"여기에는 우에스기(上杉) 가문은 오다 가문의 신하가 되겠으니(臣従), 그것을 주상께 전해달라, 는 내용이 적혀 있어"


"…………으억!?"


처음에는 멍한 표정을 떠올리고, 이어서 머리를 몇 번 흔든 후, 천정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 모습을 보이는 나가요시. 이윽고 그 말이 의미하는 것을 깨달았는지 얼빠진 목소리를 냈다.

너무나도 예상을 벗어난 내용이었는지, 케이지나 사이조조차 입을 반쯤 벌리고 있었다.


"가짜, 는 아니겠지?"


"아시미츠(足満) 아저씨랑 고노에(近衛)님이 함께 이름을 올렸으니(連名), 가짜나 농담 같은 건 아니라고 생각해. 뭣보다 요로쿠 군을 써가면서까지 이쪽을 속일 이유도 없어. 거짓 하나 없이(正真正銘), 이건 우에스기 가문의 항복 문서야"


"진짜냐……"


편지가 진짜라고 이해하자 나가요시가 놀란 목소리를 냈다. 우에스기 켄신은 타케다 신겐(武田信玄)의 호적수라고 평가될 정도의 인물이다.

그런 인물이 전투 한 번 벌이지 않고 항복에 동의하는 것이니 놀라지 말라는 쪽이 무리한 얘기다.


"하지만, 한 번도 전투를 하지 않고 항복한다는 것에 용케 동의했네"


"……만약 오다 가문과 싸울 경우, 우에스기 가문은 에치고를 업고 싸우게 되니까. 무사라면 전력차를 신경쓰지 않고 화려하게 산화한다는 길도 있겠지만, 백성을 업고 그런 짓을 하면 망국의 싸움밖에 되지 않아. 그렇다면 긍지를 버리더라도 에치고에 있어 뭐가 가장 좋을지를 선택할 필요가 있었던 게 아닐까"


노부나가와 켄신이 전투를 벌일 경우, 노부나가는 방면군(方面軍)을 파견하지만 켄신은 본인이 출진하는 본토결전이 된다.

그리고 노부나가는 설령 전투에서 패하더라도 만회할 수 있지만, 켄신은 패하면 거기서 끝이다.

켄신에게 있어 노부나가와 전투를 벌일 경우, 결코 져서는 안 되는 연전(連戦)이 상대의 힘이 다할 때까지 이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나라를 건 싸움에서, 적과의 전력차를 뒤집을 수 없는 경우, 결국 계속 소모되어 마지막에는 반드시 패배한다. 그 때, 에치고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하지만, 한 번 정도는 전투를 벌여도 벌은 받지 않는 거 아냐?"


"우에스기 가문 입장에서는 '지금'이 아니면 안 되거든"


에치고를 최우선으로 생각했을 때, 켄신은 무사로서는 있을 수 없는 소심(臆病)한 행위라는 비난을 외부에서 받고 내부에서 많은 비판이 터져나오더라도 이 시기에 항복하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다.


"주상의 적, 또는 적이 될 것 같은 패거리들은 서쪽에 혼간지(本願寺), 혼간지를 따르는 사이카슈(雑賀衆)나 일향종(一向宗), 모우리(毛利) 가문, 아자이(浅井) 가문, 아사쿠라(朝倉) 가문. 동쪽은 명확하게 적대하고 있지는 않지만 호죠(北条) 가문에 오우슈(奥州, ※역주: 현대의 후쿠시마(福島) 현, 미야기(宮城) 현, 이와테(岩手) 현, 아오모리(青森) 현에 해당)의 영주(国人)들, 등 잔뜩 있어. 이 상태에서 우에스기 가문이 싸움을 벌일 경우, 상황이 나빠진 후에 항복해도 주상께서 받아들이지 않게 돼. 왜냐하면, 타케다 가문에 이어 우에스기 가문을 격파했다, 라는 관록이 붙으니까. 그 쪽이 몇 배나 외교적으로 유리해지거든"


"어, 음"


이해가 잘 안되는지 나가요시는 곤혹스러운 표정을 떠올렸다. 케이지는 일부러 흘려듣고, 사이조는 진지하게 듣고는 있었지만 내용은 절반 정도밖에 이해되지 않았다.

카네츠구는 아까부터 계속 대자로 드러누워있었다. 담력이 있는건지, 아니면 단순히 신경이 굵은건지 판단이 고민스러운 부분이었다.


"하지만 결국, 주상께는 우에스기 가문을 굴복시켰다, 는 관록이 붙겠네. 다만, 그것과 맞바꿔서 우에스기 가문이 무슨 말을 할 지, 가 신경쓰여"


"항복하는 거니까 머리 숙이고 끝, 아냐?"


"아니, 그럴 리 없잖아. 항복한다고 해도 조건은 내걸겠지. 아마도 우에스기 가문에게 항복 조건을 교섭하는 자리야말로 외교라는 이름의 전쟁터가 되겠지"


아래턱에 손을 대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켄신이 항복을 받아들이는 조건으로서 무얼 제시해 올지를.

가장 유력하게 생각되는 것은 토지(土地)다. 에치고의 영주는 토지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 전 영토의 소유권을 인정받는다(安堵)는 조건이 나올 거라고 생각해도 틀림없다.

그 밖에 생각되는 것은 칸토칸레이(関東管領, ※역주: 무로마치(室町) 막부가 칸토(関東)를 다스리기 위해 카마쿠라(鎌倉)에 둔 벼슬)를 유지(固持)하는 것이다. 요시아키(義昭)가 정이대장군(征夷大将軍)을 반납한다고 해도, 무로마치 막부가 내린 모든 직책이 소멸하는 것은 아니다.

다음에 누군가가 정이대장군에 취임할 때까지, 아시카가(足利) 쇼군 가문(将軍家)에 의한 무로마치 막부의 잔재(残滓)는 계속 남는다. 설령 권위와 권력을 잃고 완전히 노부나가의 손아귀에 들어간 상태라고 해도.


"(아니, 칸토칸레이는 인정되지 않으려나. 그걸 인정했다간 우에스기 가문은 오다 가문을 뒷배경으로 삼아서 칸토 일원의 지배권을 확립하려고 하겠지. 아무래도 그건 인정할 수 없어. 가장 유력한 타협안은 켄신의 신변보장과 토지의 소유권 인정이려나) 어쩄든 주상께서 어떻게 판단하실지가 문제네. 내일 아침에는 오시겠지. 주상을 모셔야 하니 오늘중에 식료품을 구입해 둬요"


시즈코는 노부나가에게 낼 요리의 식재료를 사두도록 밖에 있는 소성에게 명했다. 소성은 대답을 한 후 시즈코의 명령을 전당하기 위해 자리를 뜨려 했다.


"그리고 모포를 한 장 가져와요. 호담한 아이지만, 감기라도 걸리면 큰일이니까"


"예? 옛"


조금 곤혹스러워하면서도 소성은 명령을 따랐다. 구매를 담당하는 사람에게 식료품을 구매할 것을 전하고, 모포를 한 장 들고 돌아왔다. 시즈코에게 모포를 건넨 후, 소성은 인사를 하고 방을 나갔다.


"정말로 호담하네"


어이없어하면서 시즈코는 대자로 누운 채 잠들어있는 카네츠구에게 모포를 덮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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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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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겐키(元亀) 4년 무로마치 막부(室町幕府)의 종언(終焉)


102 1573년 3월 중순



3월에 들어서자, 노부나가는 아시미츠(足満)에게 밀명을 내렸다. 내용에 대해서는 시즈코에게까지 비밀이었으며, 아시미츠가 출발하기 직전에 집을 비운다고 말했기에 그 존재를 인식했을 정도였다.

자신의 가족(身内)에게 자신이 파악하지 못한 위험이 미칠 우려는 있다.

하지만 노부나가도 아시미츠도 그걸로 좋다고 생각하고 자신에게 이야기하지 않는다면, 그 편이 낫다고 판단했을 거라 생각하고 일체의 의문을 삼킨 채 전송했다.

타이밍 나쁘게 시즈코도 또한 쿄(京)에 갈 필요가 생겨, 시간적으로 캐물을 여유도 없었다고도 할 수 있다.

설령 물어봤다고 해도 알리지 않는 편이 좋다고 확신하고 있는 아시미츠는 복잡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음이 틀림없다.

왜냐하면 아시미츠가 받은 밀명은, 고노에 사키히사(近衛前久)를 대동하고 우에스기 켄신(上杉謙信)의 거성(居城)인 카스가 산성(春日山城)으로 가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눈이 녹기 전의 잔설(残雪)이 많이 남아있는 시기에 일부러 하는 강행군. 정치적으로도 위험도적으로도 시즈코에게는 덮어두는 편이 그녀의 정신 건강을 생각하면 좋다고 아시미츠는 판단했다.


"이번 길은 목숨을 건 가혹한 것이 된다. 굳이 날 따라올 필요는 없다"


"신경쓰지 말게. 내가 가고 싶다고 생각한 것이니. 가끔은 객기를 부리는 것도 좋겠지"


돌려서 따라오지 말라고 하는 아시미츠였으나, 사키히사는 이해하면서도 흘려들었다. 뜻을 꺾는 것(翻意)은 무리라고 생각한 아시미츠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방한대책은 확실히 해 둬라. 겨울의 산은 사람의 영역이 아니니, 준비를 게을리하면 목숨을 잃는다"


"그렇게 말할거라 생각해서, 사전에 시즈코 님에게 방한 장비의 준비를 의뢰해 두었지"


아시미츠가 사키히사를 노려보는 시선에 위험(剣呑)한 빛이 서렸다. 하지만, 시선을 받는 본인은 표표(飄飄)한 태도를 무너뜨리지 않았다.


"이것을 예측하고 반년이나 전에 의뢰했네. 이번 건과 연결짓지는 못하겠지. 우연히 이번에 처음 쓰는 것 뿐, 설산을 상정한 본격적인 것일세"


"……그런가"


사키히사가 나무 상자에서 꺼내기 시작한 장비를 보고 아시미츠는 납득했다.

두꺼운 가죽으로 만들어진 외투는, 기름과 밀랍으로 처리되어 발수(撥水) 능력을 가진 것을 잘 알 수 있었다. 게다가 안쪽에는 기모(起毛) 처리된 털가죽을 붙여놓아, 보온능력도 높아 보였다.

마찬가지로 가죽제의 장화도 기모 처리는 물론이고, 앞부분에 충진물(詰め物)이 들어 있었고, 바닥면에는 징(鋲)이 박혀있어 미끄럼 방지 가공도 되어 있었다.

게다가 휴대용의 간이 설피(かんじき)까지 들어있어, 상황에 맞춰 구별하여 쓰는 것이 가능하게 되어 있었다.

의류도 두꺼운 천을 주머니 모양으로 꿰매고 안쪽에 솜을 넣은(※역주: 누빔) 실용성이 높은 것이었다.

외견으로 볼때는 조금 뚱뚱해질 정도로 입은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지만, 제품의 질을 알고 있는 아시미츠가 볼 때도 보증할 수 있는 장비였다.


"눈보라가 칠 때 필요해지니, 두건(頭巾)이나 목도리(襟巻)도 준비해 둬라"


"그런가, 충고에 감사하지. 이러니저러니 하면서도 자네가 챙겨주니까 나는 안심할 수 있네"


"웃기지 마라"


사키히사의 대답에 본의가 아니라고 말하는 듯한 아시미츠는 이야기는 여기까지라고 등을 돌리더니 사키히사를 두고 걸어갔다. 사키히사는 쓴웃음을 지으면서도 그의 등 뒤를 쫓아갔다.


아시미츠가 에치고(越後)로 출발하는 한편, 시즈코도 쿄로 출발했다. 병사들을 데리고 쿄에 들어간 후, 그녀는 즉시 최초의 목적인 타지마 소(但馬牛)의 매입을 실시했다.


타지마 소라고 하면 헤이안(平安) 시대에 편찬된 속 일본기(続日本紀)에도 등장하는, 옛날부터 이 나라(本邦)에 뿌리내린 소다.

현대 일본의 와규(和牛) 중 8할 정도가 타지마 소의 계통이라, 와규의 뿌리라고도 할 수 있는 품종이다.

타지마 소의 특징은 뭐라 해도 그 맛에 있다. 물론 통상의 소와 마찬가지로 농경(農耕)이나 하역(荷役)에도 쓰이지만, 수명이 길고 여러 번 새끼를 낳을 수 있으며 번식력이 왕성하다는, 축산에 적합한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옛부터 거론(取り沙汰)되어온 타지마 소는, 이후에도 다양한 기록(書物)에 그 모습을 남기고 있다.

역사적 사실에서 히데요시(秀吉)가 오오사카 성(大阪城)을 축성했을 때, 단 하루 뿐이지만 무사의 신분이 부여된 타지마 소까지 존재한다.

메이지(明治) 시대에 외래종과의 교잡으로 추가적인 품종 개량을 추구한 결과, 순혈종이 격감해버려서 한 떄는 멸종 위기에 빠진 적도 있었다.

하지만, 후에 기적의 네 마리라고 불리는 순혈종이 남아있던 것에 의해 부활하여, 오늘날의 와규를 탄생시킨 것이다.


긴 역사를 가진 타지마 소의 매입을 하는 것은, 노부나가가 타지마 소의 고기를 매우 마음에 들어했기 때문이다.

어용소(御用牛) 같은 취급이 되어, 쿄에 갈 때마다 타지마 소를 사들여서 미츠오(みつお)에게 사육과 품종개량을 맡겼다.

시즈코가 매입해오는 타지마 소는 순혈종이라, 품종개량된 현대의 지식은 그다지 통용되지 않는다.

쉽게 생각하고 외래종과 교잡 같은 걸 하려고 했다가는 메이지 시대의 실패를 반복해버리게 된다.

순혈종의 좋은 점을 남기면서 더욱 좋은 맛을 추구하는 끊임없는 도전이 필요해졌으나, 미츠오는 오히려 그것을 즐기기까지 하고 있었다.


평소에는 사들인 소를 상인이 오와리(尾張)까지 운반하지만, 이번에는 시즈코 자신의 쿄 체재가 단기간이기에 그녀가 오와리로 돌아갈 때 함께 운반하게 되었다.

사전에 교섭은 끝났기에 딱히 다투는 일 없이 거래는 성립되었다. 이후에는 시즈코가 쿄로 오게 된 본래의 목적을 달성할 뿐이었다.


"아무리 지나도 남장은 익숙해지지가 않네"


시즈코가 쿄를 방문한 이유. 그것은 외국의 기사(技師)를 포섭하는 것이다. 포섭한다고 해도, 현대처럼 기술을 가진 개인이 멋대로 망명 같은 걸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국가에 유익한 기사가 국외로 유출되는 것은 국력의 저하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물론 빠져나갈 구석은 있지만, 그러면 빼앗긴 쪽이 경계심을 품게 된다.

정치적인 마찰을 피하기 위해, 시즈코는 맹점이 되어 있는 루트를 통해 기사를 사들였다.


단적으로 말하면 노예 매매이다. 노예로 전락한 기사를 사들인 것이다.

물론 기사가 노예로 전락한 경우, 국가가 그 매각처에 눈을 빛내며 주의를 기울인다. 하지만, 매각처에서 다시 전매(転売)된 경우에는 꼭 그렇지는 않았다.

광산 노동 등의 가혹한 노역으로 소모될 것이라고 알고 있기에, 그 이상의 추적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다.

노예 매매가 본격화되고 대규모화되기 전이기에 가능한 편법(荒業)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대항해시대라고도 하는 전국시대에서도 노예의 매매는 이루어지고 있었다.

특히 일본에서 가까운 중국, 마카오는 아시아 최대의 노예 집적지가 되어 있었다. 높은 기술을 가진 노예를 감추는데는 안성맞춤인 장소가 된다.


"……하지만, 굉장한 이유로 노예로 삼네, 기독교(キリスト教)는"


이번에 사들인 노예 4명의 경력서를 확인하고 시즈코는 메마른 웃음을 떠올렸다. 4명 모두 화형이라는 극형이 내려졌으나, 관대한 처분이라는 명목으로 광산 노동으로 변경되었다.

관대한 처분이라고 말하지만, 조금이라도 돈이 되는 노예로서 팔아치우는 것이니 말은 하기 나름이라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어디어디…… 천동설(天動説)을 부정했다? 허가없이 주님의 우상(偶像)을 만들었다? 교회의 가르침을 비판했다? 뭐야 이게. 바테렌(伴天連)은 바보밖에 없는 거냐?"


시즈코가 보고 있는 경력서를 등 뒤에서 엿보고 있던 나가요시(長可)가 어이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기독교를 모르는 나가요시에게는 그게 죽을 죄라고는 도저히 생각되지 않았다.

역사적 배경도 포함하여 자세히 알고 있는 시즈코조차 바보스럽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을 대단히 진지하게 하고 있던 것이 중, 근세까지의 기독교권(教圏)이다.

 

"저쪽은 대단히 진지해. 사회는 급격한 변혁을 싫어하니까, 우리들에게는 바보스럽게 생각되는 내용이라도, 사회를 뒤흔드는 큰 죄가 되는거야"


"시즈코 님, 노예상인이 왔습니다"


경력서를 쟁반 위에 되돌려놓음과 동시에 소성이 손님이 왔음을 알렸다. 항상 쓰는 두건을 쓰고, 나가요시에게 소정의 위치에서 대기하도록 지시를 내렸다.


"들여보내세요"


소성에서 명령한 후 조금 지나자, 포르투갈인으로 보이는 노예상인과, 그가 데려온 남녀 네 명이 실내로 안내되었다.

야심만만한 포르투갈인 모험가 출신의 상인인 듯, 불손한 태도가 눈에 띄었다. 하지만, 동시에 장사꾼답게 돈줄이 될 수 있는 시즈코의 동향을 파악하려는 듯한 태도도 보였다.


의외로 만만찮네라고 생각하면서도 시즈코는 인사를 나누었다. 쓸데없는 이야기는 좋아하지 않지만, 상인은 이후에도 계속적인 거래를 생각하고 있는지, 자신에 대해 나불나불 떠들며 자신을 선전하려고 했다.


"주군, 아케치(明智) 님께서 오셨습니다"


슬슬 시즈코를 포함한 전원의 노여움이 한계에 달하고 있던 그 때, 겐로(玄朗)가 아케치 미츠히데(明智光秀)의 내방을 알려왔다.


"알겠다"


마침 잘 됐다고 생각한 시즈코는, 그걸 핑계로 상인을 쫓아냈다.

상인으로서는 다음으로 이어지는 언질을 원했겠지만, 주위가 발하는 위험한 분위기를 눈치채고, 후회하는 심정으로 떠나갔다.


"신세를 지네요, 겐로 할아버지"


상인이 나간 후, 시즈코는 성대하게 한숨을 쉬었다. 미츠히데의 내방은 겐로가 즉석에서 꾸며낸 거짓말이었다. 요인(要人)들끼리 사전 연락도 없이 상대를 방문하는 것 따윈 있을 수 없다.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겐로가 눈치챌 정도의 노여움(鬱憤)을 눈치채지 못한 상인의 무신경함(図太さ)은, 어떤 의미에서는 칭찬할 만한 것이었으리라.

그렇다고 해서 도저히 흉내내고 싶다고 생각되는 것도 아니고, 흉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되지도 않았다.


"과분한 말씀입니다. 소생은 이만"


겐로가 인사를 하고 나가는 것을 지켜보며 시즈코는 한번 더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다시 네 사람의 노예에게 시선을 돌렸다.

40줄의 남성, 30줄의 남성과 20대로 보이는 여성, 10대로 보이는 소녀 등 네 명이다.

애초에 시즈코는 외국인과의 접점이 적었기에 외국인의 용모는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10대의 소녀는 대단히 이질적이었기에 그녀의 시선을 강하게 끌었다.

머리를 감지 않았기에 기름으로 떡져있었지만, 촉촉한 검은 머리에 보석이라고 착각할 듯 선명한 녹색 눈(翠眼)이 인상적이었다.


경력서에 따르면 연장자인 남자는 복수의 언어를 다룰 수 있다고 한다. 언어학자라는 전력(肩書)도 있었기에, 통역 겸 번역자로서 채용했다.

30줄의 남성은 금속가공 기술자이며, 여성은 부인이 아니라 남성의 여동생에 해당한다. 기술자는 남성 뿐이고, 여동생은 연좌제로 노예로 전락된 거라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마지막 소녀가 수수께끼였다. 직업의 기재가 없는 대신, 마녀의 자식이라는 기재가 있었다. 이걸 볼 때 아마도 약사(薬師)일 거라고 시즈코는 어림짐작했다.


"………배가 고프겠지. 나는 옷을 갈아입을테니, 그들에게 식사를 주도록"


경력서를 죽 읽어보고 가장 곤혹스러웠던 것은 그들의 이름이 기재되어 있지 않은 점이었다.

노예에게 이름은 필요없다고 생각한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주인이 붙이는 것이 당연한 것인지,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이름이 없어서는 불편하다.

어쨌든, 우선은 배를 채울 필요가 있다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뭣보다 답답한 남장에서 해방되고 싶었다.




자신의 처우를 결정하지 않고 퇴출한 주인에게 곤혹스러워진 그들을 놔두고, 시즈코는 얼른 다른 방으로 이동했다. 평소의 차림새로 갈아입은 후, 다시 실내로 돌아와 상좌에 앉았다.

시즈코의 맨얼굴을 보고 네 사람은 하나같이 놀라고 있었다.

소녀를 제외한 전원에게, 자신들보다 젊은 여자가 주위에 있는 남성들보다도 상좌에 앉아있는 것이다. 놀라지 말라는 것이 무리한 이야기다.


"식사는 입에 맞았나?"


시즈코의 질문에, 처음으로 반응한 것인 소녀였다. 그는 목을 삐끗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연장자인 남자는 시무룩한 표정이었지만, 식사의 내용에 문제는 없는 듯 묵묵히 먹고 있었다. 나머지 두 사람은 곤혹스러워하면서도 제공된 식사의 맛에 놀라며 불만 따위는 있을 수 없었다.


그들에게 주어진 식사는 치킨 크림 스튜에 하얀 빵, 사슴고기 튀김(唐揚げ), 생야채 샐러드, 그리고 맑은 물이었다.

현대의 유럽에서는 육식화가 진행되어 빵이나 야채는 곁들이는 것 취급이다. 하지만, 근대 초기까지는 일본과 다름없이 곡물 중심의 식사를 했다.

서민들 뿐만 아니라 부농(豪農)이나 지방 영주(地方領主), 하급 귀족(下級貴族) 등의 식사도 곡물이 주체였다.

가난한 지역에서는 세금으로서 징수되는 밀(小麦)이 아니라 호밀(ライ麦), 귀리(えん麦)나 보리(大麦), 메밀(蕎麦) 등을 거칠게 갈아서 물이나 우유로 끓인 포리지(porridge)나, 그보다도 옅게 하여 물로만 끓인 그루엘(gruel)이라는 죽으로 먹었다.

빵은 빵가루를 만들 때 제분(製粉)할 필요가 있다. 제분(粉挽き)은 영주의 전권 사업이며, 영주 소유의 제분소(粉挽き所)를 사용하여 사용료를 낼 필요가 있었다.

그 때문에, 가난한 사람은 자택의 돌절구(石臼)를 사용하여 거칠게 가는 방법밖엔 없었던 것이다.

고운 가루로 만들려고 해도 시간을 들이면 마찰열로 변질되어 버리기 때문에 거친 가루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소금(食塩)조차 넣지 않고 물만으로 개어, 보존을 제일로 생각하여 굽기(焼しめる) 때문에 딱딱하고 퍼석퍼석한 빵이 되었다.

이 때문에 빵이라고 하면 스프에 적시거나 음료로 불려서 먹는 것이 통상적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지금 먹고 있는 빵은 놀랄 정도로 하얗고, 그리고 부드러웠다. 함유 수분량도 많고, 소금은 물론이고 계란이나 버터까지 넣어 충분히 발효시킨 극상품이었다.

부드럽고 단맛조차 느껴지는 하얀 빵에 그들이 도연(陶然)한 표정을 떠올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서양에서 사냥(狩猟)은 귀족의 특권으로 취급되었고, 사냥감의 고기들 중에서는 사슴 고기가 가장 선호되었기에, 사슴 고기는 사치스러운 고기로 취급되었다.

그러나, 최상의 사치로 친 것은 생야채였다.

현대 일본에서는 누구나 신선한 야채를 먹을 수 있지만, 이것은 발달된 유통이나 우수한 보존 기술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들이 발달하지 않은 중세에서는, 신선한 생야채 같은 것은 전용의 밭이나 고용인을 집 안에 두고 있는 한정된 왕후(王侯), 귀족(貴族)들의 먹거리였다.

서민들은 설령 생산자라 하더라도 팔고 남은 말라비틀어지고 썩기 시작한 야채를 먹었으며, 생야채를 먹는다는 것은 부와 권력의 상징이 되었다.


"서두르지 않아도, 아무도 안 뺏어간다"


허겁지겁 먹어대는 그들에게 시즈코는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말했지만, 대귀족이라도 쉽게 먹을 수 없는 진수성찬을 앞두고 그들의 손이 멈추는 일은 없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스튜, 튀김에 생야채 샐러드, 산더미처럼 준비된 빵이 위장 속으로 사라져 갔다.


"(저기 시즈코, 정말 괜찮은 거야?)"


그들의 식사가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을 때, 갑자기 나가요시가 시즈코에게 귓말을 했다. 괜찮다, 는 말의 의미를 즉시 이해한 시즈코는, 부채를 펼쳐 입가를 가리고는 나가요시에게 귓말로 대답했다.


"(일정한 조사는 빠짐없이 했어. 그걸 했으니까, 이렇게 오랜 시간을 들였는데 네 명밖에 모으지 못한 거야)"


나가요시가 신경쓰고 있는 것은 그들이 유럽 각국이나 기독교(伴天連)의 스파이가 아닐까 하는 점이다.

노예가 실은 일본 국내의 내정(内情)을 수집하는 역할을 맡은 스파이라는 가능성은 시즈코도 처음부터 생각하고 있던 것이었다. 그 때문에, 이런저런 '조사'를 아시미츠에게 의뢰했다.

그리고 그의 '스크리닝(screening) 검사'를 마치고 문제없다고 인증된 것이 지금 눈 앞에 있는 네 사람이다.


"(뭘 어떻게 '검사'했는지는 모르지만, 그 아시미츠 아저씨가 문제없다고 보증했으니 괜찮다고 생각하거든?)'


"(어…… 확실히 아시미츠 아저씨는 지독(苛烈)하니까. 그럼 괜찮은가)"


아시미츠가 조사했다, 라는 그 한 마디에 나가요시는 납득했다. 나가요시에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시즈코가 문제없다고 판단한 다른 이유는 그들이 '파문(破門)'된 점이다.


파문이란 교의(教義)에 반하는 신도를 종문(宗門)에서 추방하는 것을 말한다. 파문되면 기독교 신자로서의 지위를 잃게 되는데, 중, 근세에서는 그것만으로는 끝나지 않았다.

신자로서 인정받는 권리나 자신이 소유하는 재산, 파문된 사람이 왕족이라면 왕위나 영토, 게다가 적자(嫡子)에게 그것들을 상속할 권리를 잃는다.

게다가 교회에서 종교적 의식을 받을 권리를 잃어, 죽은 후에도 묘에 들어갈 권리조차 잃게 된다. 단적으로 말하면 '사람으로 취급되지 않고, 사회적으로 추방된다', 그것이 중, 근세의 기독교의 파문이다.


중세에서 유명한 사건으로서 '카놋사(Canossa)의 굴욕' 등 공격적인 면도 있지만, 파문은 기본적으로는 이단적 신앙을 막는 교회의 조치이다.

그렇기에 교의의 해석 차이에 의한 성직자끼리의 다툼이 일어났을 경우, 서로 파문되는 상호 파문(相互破門)이라는 결말을 맞는 경우도 있었다.

11세기에 기독교회와 동방정교회(東方正教会)로 분열되었으나, 이 때 쌍방의 최고위 책임자가 상호파문된 것이 분열의 이유이며, 상호파문의 가장 유명한 예로 들어진다.


(이 경력서를 보니, 제일 나이가 어린 소녀는 서자(庶子)인가. 이거 또 엄청나게 고생했을 것 같네)


서자란 기독교 세계에서는 '불의(不義)한 자식'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서자에게는 부모에게서 유산을 상속받을 권리를 시작으로 하는 많은 권리가 처음부터 주어지지 않는다.

또 세간으로부터도 냉랭한(厳しい) 시선을 받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기독교의 교의, 즉 신학적으로 성행위는 원죄(原罪)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당한 혼인의 결과로서 자손을 얻기 위한 성행위는 신에게 인정받은 것이기에 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생각되었다.

그러한 생각 때문에, 정당한 혼인 이외의 성행위는 신의 의지를 거역하고 악마의 유혹에 빠진 죄가 무겁고 사악한 행위로 생각되게 되었다.


(평민의 서자라는 것만으로도 괴로울텐데, 거기에 종교재판에 넘겨져 마녀로 판단된 여자의 딸, 게다가 교회에서 파문이라. 짧은 시간 동안 대체 무슨 짓을 한 걸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가 시즈코는 전원이 식사를 마친 것을 깨달았다. 나도 모르는 새 너무 깊은 생각에 빠졌구나, 라고 생각한 그녀는 머리를 가볍게 흔들어 머릿속을 새로이 했다.


"식사는 만족했으려나? 아무도 남기지 않은 걸 보니 만족했다고 생각하지. 그럼 먼저, 내 말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손을 들어줘"


헛기침을 한 후 시즈코는 그들의 반응을 기다렸다. 잠시 후 전원이 손을 들었다. 적어도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다는 것에 안도했다.


"(뭐 일본어의 공부를 시켰으니 당연한가) 그럼 좋아. 너희들의 경력은 확인했다"


그렇게 말하면서 시즈코는 경력서를 가볍게 흔들었다. 그러자마자 가장 나이많은 남성이 험악한 표정을 떠올렸다.


"하지만, 이런 건 참고 정도다. 우리 나라, 적어도 주상(上様)의 통치 아래 있는 땅에서는 출신이나 피부색으로 차별은 하지 않는다. 기독교에서 파문? 서자? 모두 고려할 가치가 없다. 인종이나 신앙이 다르더라도 유능하기만 하면 된다"


옅게 웃은 후, 시즈코는 경력서를 둘둘 말아 뒤로 던져버렸다. 가장 나이많은 남성은 경악으로 눈을 크게 떴으나, 시즈코는 그들의 반응을 무시하고 말을 이었다.


"원래는 내 입으로 할 말은 아니지만, 나는 나쁜 풍습(因習)을 버리고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일 정도의 도량을 가지고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다. 기독교의 교의에 반하더라도 그게 유익하다면 나는 인정하지. 애초에 나 자신이 기독교도가 아니니 교의에 따른 판단 같은 건 할 수도 없고, 할 생각도 없다"


"……"


"너희들은, 지금 먹은 식사를 다시 한 번 먹고 싶지 않은가? 만약 그렇게 생각한다면, 내게 스스로의 재주를 보여라. 너희들의 재주가 뛰어나다면, 나는 그에 걸맞는 보수를 지급하지. 내가 할 말은 이상이다. 뭔가 질문이 있다면 이 자리에서 사양말고 하도록"


위엄을 보여야 하기 때문에, 시즈코는 약간 거드름을 피우는 말투로 네 사람에게 선언했다.

네 사람은 각자 고민하고, 때로는 넷이서 서로 상의했다. 이윽고 결론이 나왔는지, 가장 나이많은 남성이 헛기침을 했다.


"아ー, 제가 대표로 질문하고 싶습니다"


유창한 일본어로 남성이 말했다. 어쩌면 프로이스보다 일본어를 잘하는게 아닐까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상관없다. 말하라"


"그럼…… 우선 저희들에게 충분한 양식을 내려준 것에 감사드립니다. 이러한 식사는 지금까지 먹어본 적이 없습니다. 이것만으로도 이 나라가 얼마나 부유한지 알 수 있었습니다"


"……"


"아까 당신은 출신이나 피부색을 따지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기에 묻겠습니다. 저희들은 유태인입니다. 그걸 알고도 아까의 말을 번복하지 않겠다고 단언할 수 있습니까?" (※역주: 원문에는 평어와 경어가 뒤섞여있는데, 아마도 일본어가 아직 조금 서투르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지만, 뒷부분은 또 경어가 이어지길래 어째 좀 이상해질 것 같아서 전부 경어체로 통일했음)


유태인. 현대에서는 일부를 제외하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인종이지만, 중, 근세에서 그들의 취급은 탄압이라는 한 마디로는 다 표현할 수 없다.

기본적으로 중세에서는 '유태인은 어떠한 권리도 소유할 수 없다'는 생각이 유럽 전체에 만연해 있었다. 자세한 이유는 생략하겠지만, 유태인은 당시 유럽 전체에서 미움받고 있었다.

가장 흔한 유태인에 대한 비난이 '그들은 고리대금업자(高利貸し)이다'라는 점이다.


오해가 없도록 부연하겠는데, 유태 교에서도 고리대금업은 금지되었고, 종종 지도자들인 랍비들에 의해 고리대금업의 금지가 설파되었다.

하지만, 대부업 이외에는 살아갈 방법이 없다고 하면 유태 교의 랍비들도 고리대금업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어, 유태 교의 경전이라 할 수 있는 탈무드에 있는 금지 내용을 완화시킬 수밖에 없었다.


한편, 중세 기독교(キリスト教)의 성직자들은 자산가들이었으며, 성직자 이외에도 다양한 직업(役割)을 가지고 있었다. 그 중 하나로 대부업이 있었다. 다만, 중세 교회는 성직자의 대부업을 종종 금지했다.

1179년의 제3 라테란(Lateran) 공의회(公会議)에서 '대부업을 하는 기독교도는 기독교도로서 매장하는 것이 합당하지 않다'라는 선언을 했다.

하지만, 돈을 빌리는 쪽인 왕이나 귀족, 상인들은 다양한 이유에서 돈을 빌려줄 존재가 필요했다.


지금까지 돈을 빌려주는 상대가 성직자였기 때문에, 교회의 위광(威光)을 두려워하여 임차(賃借) 문제는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성직자가 대부업에서 구축되고 유태인이 그 뒤를 이었을 때, 유럽인들의 적의는 유태인을 향하게 되었다.

평소에 경시하고 있는 유태인에게서 돈을 빌린다. 그것만으로도 굴욕인데, 높아진 적의를 품은 기독교도들은 돈을 빌렸으면서 유태인 따위에게 돈을 갚고 싶지 않다, 고 생각하는 자들이 생겨났다.

그런 반감을 이용하여, 돈을 갚을 수 없게된 자신들의 어려운 처지를 벗어날 수단, 이라는 핑계를 대고 빚을 갚지 않는 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개중에는 유태인이 무기 휴대 금지, 토지 소유를 금지당한 것에 착안하여, 폭동을 일으켜 유태인들을 학살하고 그 틈에 차용증(借金の証文)를 파기하는 자들도 나타났다.

차용증(借用書)이 파기되면 유태인의 소유자(대부분은 왕)는 변제를 청구할 수 없게되어(※역주: 원문이 조금 이해가 안 가는데, 유태인에게 왕이 있을 리는 없으니 아마도 소유자라는 것은 유태인 채권자를 뜻하고 채무자가 대부분 왕이라는 말이 아닐까 하지만 일단은 직역했음), 결과적으로 채권을 포기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아까도 말했지만, 한번 더 선언하지. 너희들은 유능함을 증명하면 된다. 출신이나 피부색 같은 건 사소한 일이다"


"알겠습니다. 그 말씀을 신용하고, 당신을 섬기겠습니다"


"내가 섬기기에 부족하다고 생각한다면 사양하지 않고 말하도록. 뒤를 쫓거나 하지는 않는다. 내가 그 정도의 인간이었다, 라고 생각할 뿐이다. 하지만 착각하지는 말도록. 자신의 재주에 안주하여 정진(精進)하는 것을 잊었을 때, 나는 용서없이 너희들을 내치겠다"


가장 나이많은 남성이 반응을 보였으나, 시즈코는 무시하고 말을 이었다.


"그것은 너희들이 유태인이기 때문이 아니다. 목표를 가지고 끊임없이 걸어가는 것으로 사람은 사람다운 존재가 되는 것이며, 사는 의미를 갖는다, 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단지 입을 벌리고 먹이를 기다릴 뿐인 가축은 필요없다"


시즈코가 말을 끝냄과 동시에 가장 나이많은 남성은 무릎을 치며 표정이 풀렸다. 그것은 모멸이 아니라 환희의 웃음으로 보였다.


"실례했습니다. 젊으신데도 잘 배우셨군요. 사실을 말하면, 말씀을 나눠보기 전에는 어떤 바보 상대를 해야 하는 건가, 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까지의 주인은 입만 살았지 머리 쪽은 텅 빈 분들이 많았거든요"


웃음을 거둔 남성은 자세를 바로했다. 그걸 본 나머지 세 사람도 그에 따랐다.


"저희들은 당신을 섬기겠습니다. 마음껏 저희들을 부려 주십시오"


"너희들의 주인으로서 합격, 이라고 생각해도 좋을까?"


"만점이라고 하진 않겠습니다만, 최고점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남성은 웃었다. 이번에는 나머지 세 사람도 마찬가지로 웃음을 떠올렸다.

조용히 상황을 듣고 있던 나가요시들은 곤혹스러워했으나, 시즈코와 유태인들 사이에 흐르는 부드러운 분위기를 느끼고 입을 다물었다.


"아, 깜빡할 뻔 했군요. 한 가지, 청이 있습니다"


"말도 안 되는 요구만 아니라면야"


"아니오, 단순한 청입니다. 저희들에게 이름을 주십시오"


남성의 말에 시즈코는 고개를 갸웃했다. 자조스럽게 웃으면서 남성은 말을 이었다.


"저희들은 유태인. 다툼에 져서 기독교로 개종되어, 지금까지 굴욕적인 이름으로 불려왔습니다. 저희들은 태어날 때 받은 이름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새롭게 태어나서 출발지로 삼고 싶습니다"


레콘키스타(Reconquista) 달성 후, 기독교로 개종된 유태인이나 북서아프리카의 이슬람 교도들은 신(新) 기독교도(cristianos nuevos)라고 불렸다.

하지만 개종자라는 의미에서의 콘베르소(converso)나, 심한 경우에는 마라노(marrano, 스페인어로 돼지, 더러운 사람이라는 모욕)으로 멸칭되는 경우가 많았다.


개종하는 이유는 국가에서 강제 개종령이 떨어지거나, 경제적인 곤란이나 사회적인 탄압을 피하기 위해서이거나 했다.

하지만 기독교로 개동하는 것은 희랍어나 아랍어로 된 이름을 버리고 세례명을 쓴다는 것과 같은 의미였다.

또, 개종하는 것으로 유태인 공동체로부터는 비판적인 시선을 받게 되고, 기독교도들로부터는 항상 배교의 의심을 받았다.

개중에는 개종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지금까지 자신들에게 가해졌던 규제의 대상에서 풀려나 권력을 얻어 벼락출세한 유력한 유태인도 있었다.


"그건 이 나라의 백성으로서 살아간다는 의미일까?"


"그 말씀대로입니다. 이제 종교에 휘둘리는 건 사양입니다. 하나같이 자기들에게 유리할 때만 동료 취급을 하고, 곤란할 때는 내쳐버립니다. 그런 놈들과는 결별하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내뱉듯이 남성이 말했다. 시즈코가 시선만을 나가요시들에게 돌리자, 그들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봐도 남성의 말에 거짓은 없다고 판단되었다.

애초에 아시미츠의 조사를 통과한 이상, 어딘가로부터의 스파이일거라고는 생각하고 있지 않았지만.


"흠…… 그럼 나중에 이름을 알려주지. 오늘은 그만 쉬도록"


"주인님으로부터 받게 되는 것이니,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남성은 씩 웃으면서 말했다.

후일, 시즈코는 그들에게 이름을 주었다. 가장 유창하게 일본어를 할 수 있는 가장 나이많은 남성은 '코타로(虎太郎)', 과묵한 30대의 남성에게는 '야이치(弥一)', 그 여동생은 '루리(瑠璃)', 10대의 소녀는 '모미지(紅葉)'라는 이름을 붙였다.




정치적으로도 군사적으로도 패배한 아시카가 요시아키(足利義昭)는, 모우리(毛利) 가문이 받아들이게 되었다.

대외적으로는 몸이 나빠져 정무를 수행할 수 없게 되어 장기 요양을 위해 정이대장군(征夷大将軍)의 지위를 천황(帝)에게 반납한다고 발표되었다.

하지만 쿄의 백성들이나 주변국의 백성들은 거의 믿지 않았고, 노부나가에게 반역했기에 쫓겨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직 짐정리나 인원 확보 등이 남아있기는 했지만, 요시아키가 쿄를 떠나는 때, 그것이 무로마치(室町) 막부(幕府)가 문을 닫는 날이 된다.

그렇다고는 해도 노부나가가 막부를 멸망시켰다는 소문(外聞)이 떠도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하여, 자신의 역할은 요시아키의 자식을 다음 대의 정이대장군에 걸맞는 자로 키워내는 것이라고 선언했다. 물론, 아무도 믿지 않았다.


반 오다 세력에 견제를 날린 후, 시즈코는 오와리로 귀환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기후(岐阜)에 도착했을 무렵 노부나가로부터 호출을 받았기에 시즈코는 기후에 남기로 했다.

새롭게 지어진 시즈코의 기후용 저택에 군을 놔둬도 되었지만, 이렇다 할 목적도 없고, 또 노부나가로부터 지시도 없었기에, 지휘를 겐로(玄朗)에게 맡기고 오와리에 동착하는 대로 군을 해산시키라고 명했다.


"또 변덕이려나"


그런 말을 중얼거리며 시즈코는 노부나가가 있는 곳으로 안내되었다. 이 무렵의 노부나가는 다실(茶室)을 밀회 장소로 삼고 있었기에, 시즈코가 안내된 장소도 다실이었다.

보통의 다실과 다른 점은, 조금 떨어진 장소에 경호하는 사람들이 눈에 띄지 않게 배치되어 있는 점이다.


"주상, 부르셨습니까"


"들어와라"


다실 밖에서 말을 걸자 즉시 노부나가에게서 입실 허가가 떨어졌다. 시즈코는 숨을 한 번 내쉰 후, 조용히 손님용 입구로 걸어갔다.

다실에 있는 손님용 입구는 '무릎걸음입구(躙り口, ※역주: 직역)'라고 불리고 있다. 좁은 입구이기에 무릎을 대고 들어갈 필요가 있고, 기세좋게 발을 들이미는 것은 불가능하여, 급소를 상대에게 보이면서 천천히 들어가는 것으로 적의가 없음을 보일 수 있다. 무릎걸음입구는 센노 리큐(千利休)가 배의 내부구조(舟座敷, ※역주: 검색해봐도 정확한 의미가 걸리지 않아 확실하지 않음)을 보고 떠올린 것이라 한다.

아직 센노 리큐의 와비차(わび茶, ※역주: 다도(茶道)에서, 다구(茶具)나 예법보다는 화경청적(和敬淸寂)의 경지를 중시하는 일)는 대성(大成)하지 않았기에, 손님용의 입구는 약간 낮은 정도로 억제되어 있었다. 물론, 다실에 들어가려면 무기나 방어구를 풀어놓을 필요가 있는 것은 변함이 없다.


"실례합니다"


입구를 조용히 열고 인사를 한 후 시즈코는 다실로 들어갔다. 노부나가는 차를 끓이고 있었다.


"아까 남만의 노예를 샀다고 들었다"


시즈코의 앞에 차가 놓였다. 노예를 산 이유를 말해라, 라는 뜻이라고 헤아린 시즈코는 찻잔(茶碗)을 앞으로 끌어당기며 노예 구입의 이유를 말했다.


"남만의 기술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제가 전할 수 있는 기술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새로운 기술을 퍼뜨리기 위해서는 노예 상인으로부터 기술자를 사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사는 이유로는 약하다"


"그러기 위한 언어학자입니다"


"호오?"


노부나가의 표정이 변했다. 시즈코는 노부나가가 흥미를 보인 것을 확신했다.


"바테렌(伴天連)이 우리 나라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으니, 이쪽도 그들의 언어를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만큼은 저쪽에서 언어의 연구를 하고 있는 사람을 데려와야 합니다. 하지만, 평범하게 끌어들이려 해도 상대가 경계심을 품게 되어버립니다"


본래의 의미에서의 언어학자는, 여러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언어에 대한 연구를 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하지만, 지금은 노부나가에게 설명하기 위해 시즈코는 그런 차이점을 생략했다.


"하지만, 노예라면 그런 쓸데없는 마찰을 회피할 수 있습니다. 물론, 간자가 파고들 가능성은 있으니, 그 점은 아시미츠 아저씨가 검사했습니다"


"흠…… 바테렌 놈들의 언어라. 확실히 알아둬서 손해는 없구나"


턱에 손을 대고 노부나가는 생각했다. 남만의 언어를 알아두어서 손해는 없다. 놈들이 밀담(密談)하고 있는 내용도 알 수 있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아시미츠가 검사했다면 간자로서 끈이 달려있을 가능성은 한없이 낮아진다. 이점이 있다는 걸 알게되자 노부나가는 작게 웃었다.


"차가 식는다"


"잘 마시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시즈코는 노부나가가 끓인 차를 마셨다. 많이 식어서 미지근해졌지만, 그런 말을 할 수는 없었기에 4, 5회에 걸쳐 차를 다 마셨다.


"그럼 남만의 노예의 건은 됐다. 우리 나라 이야기를 하자"


"알겠습니다"


"네가 내놓은 계책대로, 붙잡은 일향종(一向宗) 놈들을 대량으로 이시야마(石山) 혼간지(本願寺)로 보내줬다. 처음에는 효과가 보이지 않았찌만, 최근의 보고를 듣고 겨우 네 속셈을 이해할 수 있었다"


노부나가가 그렇게 말하면서 히죽 웃었다. 시즈코로서는 역사적 사실에서 벌어진 노부나가의 학살을 저지하고 싶었던 것 뿐인데, 그 이외의 효과가 있었나 하고 내심 고개를 갸웃했다.


"혼간지는 지금, 나가시마(長島) 잇코슈(一向衆)를 먹이기만도 벅차지. 교의(教義) 때문에 저버릴 수는 없다. 무구(武具)가 없기에 병사로 삼을 수도 없지. 굶주린 놈들을 받아들이면 치안이 흐트러지고 역병이 유행한다. 아주 좋은 계책이다"


노부나가의 말에 시즈코는 간신히 깨달았다. 나가시마 잇코슈에 얼마만한 인구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역사적 사실에서 2만 명이 타죽었다고 하니 적어도 수만 명이 있었던 것은 확실하다.

그만한 난민이 이시야마 혼간지로 밀어닥친다. 받아들이는 측인 이시야마 혼간지에 있는 켄뇨(顕如)와 측근들은 머리를 감싸쥐었을 것이 틀림없다.

애초에 식량은 거의 소지하지 않았고, 무구는 압수당해서 아무 것도 없고, 돈도 조금밖에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런 사람을 수만 명이나 품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종교의 성질상, 밀어닥치는 난민들을 저버릴 수는 없다. 하지만, 난민을 받아들이니 사기가 떨어지고, 치안은 악화되고, 자칫 잘못하면 역병이 유행한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사재(私財)를 털어서 수만 명의 난민을 먹여살려야 하는 것이다.


"이 계책은 쓸만하다. 이후에도 일향종은 껍질을 홀랑 벗겨서 이시야마 혼간지로 보내라고 각 방면에 전달했다"


"(효과가 있는 걸 알면 용서없이 계책을 실행하는 건 여전하네) 알겠습니다. 저희 군도 일향종과 상대했을 때, 가능한 적을 죽이지 않고 이시야마 혼간지로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음. 자, 다음 이야기인데, 네게 10만 석(石, ※역주: 1석은 한 사람이 1년 동안 먹는 곡식(쌀)의 양을 말하는 단위)의 영지를 내리겠다"


"네? 저어ー, 토지를 받아도 저는 관리할 수 없습니다만……"


아자이(浅井) 멸망 후에 히데요시(秀吉)가 노부나가에게 맡겨진 영지가 약 12만 석이라고 한다. 즉, 10만 석이라고 하면 미츠히데(光秀)나 히데요시, 시바타(柴田)와 어깨를 나란히하는 영지를 소유하는 것이 된다.

명실공히 다이묘(大名)라 할 수 있지만, 시즈코의 입장에서는 토지의 관리 같은 건 하고 싶지 않은 것이 본심이다.


"서두르지 마라. 우선 10만 중에 5만은 고노에(近衛) 가문의 것이다. 이것은 키나이(畿内)의 토지 정비를 했을 경우, 고노에 가문의 장원(荘園)이 줄어드는 것에 따른 조치이다. 이 5만 석에 대해 너는 아무 것도 안 해도 된다"


"하지만, 그래도 5만석인데요. 저, 토지의 관리는 무리일 거라는 느낌이 듭니다……"


"보좌관의 파견은 하겠다. 몇 년만 지나면 토지의 관리에 지장은 없어지겠지"


"(아~, 결정사항인 거군요) 알겠습니다. 이것저것 폐를 끼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잘 부탁드립니다"


노부나가의 안에서 이미 결정된 사항이라고 이해한 시즈코는, 무슨 말을 해도 소용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매번 그렇지만 갑작스런 명령은 좀 자제해줬으면, 이라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하지만 말해봤자 개선될 리도 없다.

왜냐하면 그는 오다 노부나가이므로.


"중간에 낀(板挟み) 보좌관이 위통(胃痛)으로 쓰러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안심해라. 쓰러질 정도라면 목을 날리겠다"


그 목을 날린다는 건 해고라는 말인지, 아니면 참수라는 말인지 조금 신경쓰였다. 하지만, 지적하는 것보다 못 들은 것으로 하는 쪽이 좋다고 생각하여, 시즈코는 노부나가의 말을 흘려들었다.


"그럼, 이제 곧 키나이는 소란스러워지겠군. 각 진영에 복종과 철저 항전,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이냐고 서신을 보냈다. 지금쯤, 놈들은 어떻게 할지 머리를 감싸쥐고 있겠지"


흡족스러운 얼굴고 노부나가는 말했다. 오다 포위망의 앙갚음을 할 수 있게 되어 그는 매우 즐거운 듯 했다. 왜냐하면 반 오다 연합의 생명줄이었던 타케다(武田) 군은 완전히 패배한 것이다.

이 시기, 오다 진영이 일기하성(一気呵成)으로 움직이는 것은 당연하다. 승기가 있을 때 수고를 아끼지 않고 쓸 수 있는 수를 모두 쓰는 것이 노부나가이다.


각 진영에 기치(旗幟)의 선언의 타진을 했다고는 하지만, 시즈코는 노부나가의 목적이 그것뿐이 아닌 것을 헤아렸다.

이 시기에 항복을 권유하면, 자신의 관대함을 널리 날릴 수 있다. 또, 복종을 거부한 경우, 전쟁도 어쩔 수 없다는 분위기를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이것만이라고도 생각되지 않았다. 노부나가가 단순히 그 이유만으로 편지 따윌 보낼 리가 없다. 뭔가 한 가지, 중요한 것이 있다, 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과연"


그리고 시즈코는 헤아렸다. 아시미츠가 급거 단독으로 임무를 수행하는 것, 그 이전에 사키히사가 방한용구를 발주했던 것, 그리고 노부나가가 각 진영에 보낸 복종을 권유하는 편지.

그 모두를 이어붙이자, 노부나가가 각 진영에 복종하라고 요구한 것은 그냥 블러프(bluff)이고 사실은 아무래도 좋은 것이라고 시즈코는 이해했다.

그가 손 안에 넣고 싶은 진영은 단 하나다. 그밖에는 노부나가가 보낸 복종의 편지의 대답으로서 어느 쪽을 선택할지는 노부나가에게 사소한 일이었다.


"차, 잘 마셨습니다"


하지만 대답을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어디서 누가 듣고 있는지 알 수 없고, 노부나가도 시즈코가 입 밖으로 내어 말하는 것을 바라지는 않는다. 차와 함께 말을 삼킨 시즈코는, 빈 찻잔을 내려놓았다.



※ 번역수정공지: 예전에 jerom님이라는 분이 남겨주신 댓글을 바탕으로 지금껏 별 생각 없이 편의상 일괄적으로 '카톨릭'으로 번역해오고 있었는데, 최근 원문에도 구체적으로 'カトリック'라는 용어가 별도로 등장하는 경우가 생기면서, 'キリスト教'과 '伴天連' 등은 카톨릭을 포함하는 상위의 개념으로서의 '기독교'(후자의 경우 상황 등에 따라 그냥 '바테렌'으로 쓰고 한자를 병기하는 식)로 번역하는 것이 맞을 것 같아 이후 번역시에 새로운 기준을 반영하고, 기번역분에 대해서는 전체적으로 수정에 들어갑니다. 물론 지금껏 해온 분량이 있으니 -ㅅ-;; 수십화 분량을 확인하고 수정하는 데는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습니다만, 기번역 분량에서의 수정은 급한 것은 아니니 천천히 수정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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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

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겐키(元亀) 4년 무로마치 막부(室町幕府)의 종언(終焉)


101 1573년 2월 중순



쇼군(将軍), 아시카가 요시아키(足利義昭)는 자업자득에 의해 궁지에 몰려 있었다.

전국시대 최강이라고 평가받으며 반 오다(織田) 사상의 근간이 되었던 타케다(武田) 군은, 한 수 아래라고 생각된 오다-도쿠가와(徳川) 연합군에게 처절할 정도의 패배를 맛보았다.

시류(時流)를 잘못 읽었다. 그것을 깨닫게 된 반 오다 연합의 영주(国人)들은 거미새끼가 흩어지듯 이탈해 갔다.

아사쿠라(朝倉)의 경우에는 2만이나 되는 병력을 가지고 있으면서 한 번도 창칼을 맞대는 일 없이 자기 영토인 에치젠(越前)으로 도망쳐갔다.

반 오다 세력의 급선봉, 혼간지(本願寺)는 나가시마(長島) 일향종(一向宗)의 패잔병 수용으로 자승자박에 빠져 있었다.

노부나가는 패잔병에게 필요 최저한의 식량만 줘서 해방시켰기에, 혼간지에 도달할 무렵에는 굶주려서 살기를 띤 난민으로 화해 있었다.

이것을 저버리면 중생구제(衆生救済)를 외치는 혼간지는 대의명분을 잃는다. 받아들이면 머지않아 식량부족으로 파탄이 날 것이 뻔히 보였다.

교의(教義)를 바탕으로 민중을 동원한 만큼 행동에 제약을 받아, 교의 때문에 파멸로 나아가게 된다는 노부나가의 책략에 항거할 수 없었다.


요시아키 진영의 내부붕괴도 시작되고 있었다. 우선 요시테루(義輝)가 암살되었을 때부터 지지해준 호소카와 후지타카(細川藤孝)가 이탈했다.

그대로 미츠히데(光秀)를 통해 오다에 투항하여, 요시아키 진영의 내부 사정까지 모조리 밝혀지게 되어버렸다.

호소카와 후지타카가 이탈하기 전에 요시아키에게 한 마지막 말이 "이젠 정나미가 다 떨어졌다"였다.

이바라키(茨木) 성주(城主)인 아라키 무라시게(荒木村重)도, 미요시(三好) 가문에서 오다 가문으로 옮긴 것도 있어 새로이 노부나가의 신하가 될 것을 선언했다.


이미 요시아키가 아무리 발버둥쳐도 그의 편을 드는 사람은 없었고, 하물며 이제와서 병력을 내겠다는 말을 하는 기특한 세력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 상황 하에서, 타케다 군을 개수일촉(鎧袖一触)으로 쓰러뜨린 오다 군을 이끄는 노부나가가 쿄(京)로 온다.

요시아키 뿐만 아니라, 반 오다 연합의 편을 들었던 영주들은 잠못드는 밤을 보내며, 도망칠 수 없는 죽음의 기척에 떨며 지내고 있었다.


"후훗, 귀여운 녀석이로다"


일약 화제의 인물(時の人)이 된 노부나가였으나, 그는 서양의 고양이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공가(公家) 필두(筆頭)의 고노에 사키히사(近衛前久), 오다 가문에서 쿄의 중심인 아케치 미츠히데(明智光秀), 그리고 요시아키를 떠난 호소카와 후지타카 등 세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조정을 좌지우지하던 칸파쿠(関白), 니죠 하루요시(二条晴良)는 노부나가로부터 미움받아 세력을 잃었고, 그를 옹호하던 요시아키도 무력화(死に体)되었기에 고립되어, 노부나가가 천황에 올린 상소도 있어 사키히사는 귀락(帰洛)이 허용되었다.

사키히사는 니죠 성(二条城) 앞에 새 집을 지을 예정이었으나, 그때까지는 지금까지처럼 기후(岐阜)에서 지내고 있었다.


"정말로 사랑스러운 몸짓(仕草)이로군……"


오늘은 배에서 온 고양이를 선보인다는 명목으로 세 사람은 특별히 초대받았다.

뭣보다 터키시 앙골라를 노부나가로부터 양도받아 키우고 있었기에, 네 사람의 친교는 생각보다 깊어져 있었다.


"냐ー 냐ー"


"냐옹"


쟁쟁한 멤버들이지만, 고양이에게는 관계없는 이야기다. 고양이들은 자유분방하게 행동하였고, 누구도 그것을 탓하지 않았기에, 발톱질을 당한 다다미는 너덜너덜해지고, 미닫이문(障子)이나 맹장지(襖)는 구멍투성이라는 참상이 벌어져 있었다.

노부나가들은 그걸 탓하기는 커녕, 거리낌없는 표정으로 털을 고르고 있는 모습에 표정이 느슨해져 있었다.

귀인(貴人)을 위한 사치스러운 과자에도 손을 대지 않고, 누구에게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고양이의 모습(生き様)을 사랑했다.


"마치 고양이 카페네요"


현대의 애니멀 카페를 알고 있는 시즈코는 자기도 모르게 말했다. 완전히 풀어진 표정을 보면 그들의 체면(沽券)에 관계된다고 생각하여 뒤쪽으로 물러나있던 그녀였는데, 그 생각은 맞았다.

아마도 네 사람의 현재 상태는, 그들의 수하들에게는 도저히 보일 수 없는 꼴이리라.

매일매일 스스로를 엄격히 다스릴 것을 요구받고, 항상 긴장을 강요받는 생활을 하고 있는 탓인지, 고양이의 사랑스러우면서도 아름다운 자태와, 기품조차 느껴지는 자유분방한 행동에 매료된 것이리라.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고양이들이 크게 기지개를 키더니 웅크리며 자려고 하는 것을 깨달았다. 낮잠 시간이라는 것을 헤아린 시즈코는, 전원에게 들리도록 일어서며 손뼉을 쳤다.


"자, 끝입니다ー"


네 사람은 불만을 감추려고 하지도 않으며 돌아보았다. 아무리 불만이라도, 이 이상은 고양이에게 부담이 되기 때문에 쉬게 할 필요가 있었다.

암묵적으로 좀 더 연장하라고 요구하는 네 사람에게, 시즈코는 손가락을 교차시켜 X자를 만들며 강한 어조로 말했다.


"안 됩니다. 이 이상은 고양이가 싫어한다고요"


고양이가 싫어한다는데야 네 사람도 물러설 수밖에 없다.


"어쩔 수 없군, 고양이를 쉬게 하지. 옆에서 장기라도 둘까?"


"주상(上様), 소생이 상대해 드리겠습니다"


"소생이 기록을 맡지요"


"그럼 저는, 조금 바깥 공기를 쐬고 오지요"


네 사람은 각자 움직이기 시작했는데, 그 행동이 기묘한 것을 깨달은 시즈코는 그들을 제지했다.


"기다리세요! 여러분, 뭘 품속에 넣고 계신 건가요?"


움찔이라는 의태어가 귀에 들리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굳어버린 네 사람은, 시즈코의 시선을 피하듯 노골적으로 등을 돌려 딴청을 부렸다. 그러나, 동시에 어딘가에서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시즈코는 그것으로 모든 것을 깨달았다. 그들은 각자 마음에 드는 한 마리를 품속에 감추고 있었던 것이다. 의외로 나쁜 손버릇에 시즈코는 머리가 아파졌다.


"그럼, 이렇게 하지요. 한 분당 한 마리까지, 양보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입니다"


"좋아! 언질을 받았다. 들어와라 이놈들아"


노부나가의 말과 함께, 입구에서 고양이 운반 전용의 바구니를 든 소성(小姓)들이 들어왔다. 그들은 각자의 소성들에게 품에서 꺼낸 고양이를 맡기며 바구니에 고양이를 재우도록 지시하고 있었다.

그들의 철저한 준비성에 벌린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시즈코였다. 이윽고 네 사람은 노부나가가 사이베리안, 사키히사가 브리티쉬 숏헤어, 미츠히데가 노슈크 스쿠캇, 호소카와 후지타카가 이집션 마우를 데리고 방을 나섰다.

시즈코는 시종(使用人)들과 함께 남은 고양이를 케이지에 넣은 후에 앉아서 한숨 돌렸다.


"이렇게까지 고양이에 열광할 줄이야. 천황(帝)이나 쿄의 백성들도 터키시 앙골라에 푹 빠져있고 말이지"


노부나가에게서 선물받은 터키시 앙골라를 오오기마치(正親町) 천황(天皇)은 깊이 사랑했다. 우다(宇多) 천황과 마찬가지로 고양이 일기를 매일 쓰며, 기회가 있을 때마다 '우리 고양이가 제일 귀엽다!'고 주위에 자랑하고 있었다.

일기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오오기마치 천황은 터키시 앙골라를 위한 '전용의 집(小屋)'을 세우고, 고양이 돌보미(世話役)를 다섯 명을 두고, 가까운 곳에 수의사를 대기시켰다.

그 열광하는 모습은 천황의 총애를 다투는 여성들을 질투하게 하고, 후궁의 여인들(後宮女房)이나 공가의 인물들(公家衆)도 애증이 뒤섞이는 광경에 말을 잃었다.


오오기마치 천황보다 조금 늦게 쿄의 백성들에게도 터키쉬 앙골라가 선물되자, 쿄의 백성들은 '하양이님(お白さま)'이라 부르며 대단히 귀여워했다.

백성들은 누구의 지시를 받을 것도 없이 솔선하여 터키쉬 앙골라를 돌보고, 아이들도 스스로 놀이상대를 해주고 있었다.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시대적 배경이 고양이 같은 애완동물에 심취하는 원인의 하나가 된 게 아닐까 하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개도 마찬가지로 애완동물이긴 하나, 한때 쿄에서 맹위를 떨친 들개의 이미지가 정착되어 있어, 개의 인기의 복권(復権)은 어렵게 느껴졌다.


"그러고보니, 아시미츠(足満) 아저씨가 쇼군과 교섭한다고 햇던가. 고노에 님은 문제없다고 말씀하셨는데, 괜찮으려나"


이번의 교섭에서는, 요시아키에게 아들을 인질로서 노부나가에게 내놓고, 칩거중에 가신들로부터 간언하게 하는 것이 목적이다.

하지만 감정적인 요시아키는 옹고집(意固地)을 부리면 주위를 살피지 앟는다. 처형되지 않는 것을 믿고 철저 항전 태세를 취할 가능성까지 있었다.

이 교섭 자리에서 아시미츠가 어떻게 요시아키를 제어할 수 있을지, 그것이 시험받는 자리가 된다.


"적반하장(逆恨み)으로 한번쯤 더 싸움을 걸어올 것 같네"


그런 미래를 예상하며 투덜대는 시즈코는 모른다. 노부나가가 시즈코에게 말한 목표는 어디까지나 최저한이며, 진정한 노림수는 따로 있다는 것을.

노부나가의 진정한 목적. 그것은 '아시카가 쇼군 가문이 스스로 막부(幕府)를 폐쇄하는' 것이다. 무로마치(室町) 막부의 숨통을 끊는 것, 아시미츠는 그야말로 딱 맞는 인재라고 할 수 있었다.




오다 가문과 아시카가 쇼군 가문의 교섭은, 도저히 교섭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아시미츠는 입을 열자마자 일방적으로 요구를 들이댔다.


"이의가 있으면 말해보아라. 그 시점에서 '나의 적'이 되겠지만 말이다"


정숙이 지배하는 자리에서, 아시미츠가 아시카가 쇼군 가문을 섬기는 자들을 흘겨보았다(睥睨). 그 모습은 비정상적이라고밖에 할 수 없었다.

오다 가문의 교섭역으로서 왔을 터인 아시미츠가, 본래 요시아키가 앉아야 할 상좌(上座)에 앉아 있었다. 정작 요시아키는 아시미츠의 엉덩이 밑에 깔려 방석(座布団) 역할을 맡고 있었다.

요시아키의 얼굴은 훌륭하게 부어올랐고 여기저기에 푸른 멍이 들어있는 것을 볼 때, 아시미츠가 요시아키를 때려서 침묵하게 한 것을 엿볼 수 있었다.


"오다는 이 멍청이의 자식을 쇼군으로 옹립하려 하고 있지. 허나, 나는 그런 이야기를 인정하지 않는다. 아시카가 쇼군 가문은 정이대장군(征夷大将軍)의 자리를 반납하는 것이 세상의 흐름이다"


"혀, 형님…… 그건 너무…… 크헉!"


요시아키가 반론하려고 했으나, 아시미츠는 들을 생각이 없다는 듯 요시아키의 머리를 짓밟아 그의 얼굴을 마룻바닥에 비벼문댔다.

아시미츠의 완력에 저항할 수 있을 리도 없어, 요시아키는 신음소리를 내면서도 마룻바닥에 이마를 비비게 되었다.


"이렇게 되었는데 아직도 모르겠느냐! 어리석은 놈들. 천하가 태평하다면, 네놈들 무능한 놈들이 놀고 있더라도 세상은 돌아간다. 하나 지금은 난세(乱世)이다. 네놈이 쇼군 자리에 연연하여 달라붙어서 무능함을 계속 드러낸다면 백성들은 꾸준히 이어져내려온 쇼군을 가벼이 여기게 된다. 타케다가 오다를 쓰러뜨리면 아시카가의 세상이 돌아온다고? 헛소리하지 마라. 타케다가 오다로 바뀔 뿐 아시카가의 세상 따윈 두 번 다시 오지 않는다. 난세에서 힘이 없는 것은 죄악이다. 힘없는 쇼군을 따르는 자 따윈 없다. 아시카가 쇼군 가문은 지반을 굳힐 때까지의 이음새에 지나지 않으며, 이용가치가 없어지면 죄를 뒤집어쓰고 단죄될 것이 뻔하다"


설령 타케다가 오다-도쿠가와 연합군을 격파하여 상락에 성공했다고 치자. 스스로가 믿는 종교조차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신겐(信玄)이다. 아시카가 쇼군 가문의 권위를 이용하는 데 주저할 리가 없다.

노부나가와 마찬가지로, 아니 더욱 가혹하게 요시아키를 이용하여, 세력 구도를 재편하기 위해 숙청을 거듭하고, 그 모든 것을 요시아키에게 죄를 물어 처단할 것이다.

결국, 싸울 힘을 가지지 못한 아시카가 쇼군 가문은 잡아먹힐 뿐인 약자에 지나지 않는다.


"카미교(上京, ※역주: 교토 일부를 가리키는 지명)와 함께 멸망당하는 것을 바라느냐, 아니면 풍파를 일으키지 않고 떠나겠느냐, 원하는 쪽을 선택해라. 결론을 내리기 전에 한 가지만 알려주마. 네놈들이 다시 오다에 반기를 들었을 때, 그 앞에 서는 것은 '나'다"


아시미츠는 허리에 찬 칼자루에 손을 얹었다. 그 소리에 아시카가 쇼군 가문의 사람들은 아시미츠를 올려다보고, 그리고 말을 삼켰다.


그들은 아시미츠의 표정을 보고 벌벌 떨었다. 예전의 그를 아는 사람은, 변모한 그의 모습에 곤혹스러워졌다. 아시미츠의 표정은 도저히 사람이 떠올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악귀나찰(悪鬼羅刹) 같은 존재의 것이었다.

의견을 말할 것도 없이, 시선을 맞대기만 해도 죽음을 당한다. 기묘한 열기를 띠면서도 등골을 얼어붙게 할 정도로 차가운 시선을 받게 되자, 자신들이 한 칼에 베여버리는 미래를 선명하게 그릴 수 있어, 얼굴을 드는 것조차 할 수 없었다.


아시카가 가문도 무가(武家)의 일문(一門). 개중에는 호담(豪胆)한 자도 있었겠지만, 다들 하나같이 침묵한 채 아래를 내려다보며 떨고 있었다. 그들은 아시미츠를 '두려워하고(畏怖)' 있었다. 사람이 아니라 비명에 간 원령(怨霊)이 현현(顕現)한 것이 아닐까라고조차 생각했다.


"말해두지만, 나는 나를 저버린 아시카가 가문을 원망하거나 하진 않는다. 추호도 말이지. 나는 다양한 요인을 재어보고, 아시카가 가문에게 가장 좋은 길을 선택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농담처럼 말하는 아시미츠였으나 누구도 웃지 않았다. 아니, 웃을 수 없었다.

웃음소리를 내는 순간 아시미츠가 어떤 행동을 취할지 아무도 상상할 수 없었기에, 자신의 목숨을 걸고 도박할 수 있는 자는 없었다.


"나도 악마(鬼)는 아니다. 이쪽의 조건을 받아들인다면, 유종의 미를 거두게 해주지. 아시카가 가문은 타케다의 '부추김을 받았다'라던가 하는 식으로라도 해명을 하라. 내가 오다에게 잘 말해주지"


"알겠, 습니다. 오다 가문으로부터의 조건, 전부 받아들이고 항복하겠습니다"


결국, 이것은 교섭이 아니라 오다 가문으로부터의 항복 조건을 고하는 자리에 지나지 않았다. 아시카가 쇼군 가문에게는 처음부터 항복이냐 죽음이냐 밖에 없었던 것이다.

오다가 타케다를 격파했기에 세상의 흐름은 오다 가문으로 기울었다. 지금까지 반 오다 연합에 가담했던 영주들도 차례차례 이탈하고, 급선봉이었던 혼간지조차 의견이 갈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완전히 고립된 아시카가 쇼군 가문으로서는 애초에 교섭의 무대에 설 수조차 없다.


"그 말, 잊지 마라"


그 말만 하고 아시미츠는 요시아키에게서 일어나서 주위의 시선을 신경조차 쓰지 않고 방을 나갔다.

그의 발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었을 무렵, 아시카가 쇼군 가문 일동이 성대하게 한숨을 내쉰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노부나가가 요시아키에게 내민 조건은 여러 가지였으나, 주된 것은 이하와 같다.

하나, 아시카가 요시아키는 정이대장군에서 '자주적으로 물러나', 그 지위를 조정에 반납한다.

하나, 아시카가 가문에 전해지는 보도(宝刀)나 명도(名刀), 그 외에 사유재산의 전부를 오다 가문(실제로는 아시미츠)에게 양도한다.

하나, 쿄에서 퇴거하여, 이후에는 모우리(毛利) 가문에 의탁한다.

하나, 적자(嫡子)인 아시카가 기진(足利義尋)을 노부나가에게 인질로 바친다.




쇼군 요시아키와의 교섭도 무사히 종료되었다고 듣고 시즈코는 남아도는 시간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었다. 남은 것은 노부나가의 귀국을 따라 돌아갈 뿐이지만, 출발 소식이 영 오지 않았다.

귀로 도중에 이세 신궁(伊勢神宮)에 들러야 하기 떄문에 그 준비를 하고 있었으나, 그것마저 끝나자 본격적으로 할 일이 없어졌다.

노부나가는 권력자로서의 접대(付き合い)나 결재해야 할 안건들이 산처럼 쌓여 있었고, 사키히사는 건설중인 자택을 시찰하거나, 관계자에 인사를 하거나 하는 등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에 반해 시즈코는 노부나가가 엄선한 소수의 인물들밖에 찾아오지 않기 때문에, 농지(農地)가 없는 쿄에서는 시간때우기조차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처음에는 뭘 할까 고민했던 시즈코였으나, 쿄에서만 가능한 조사를 하자는 것에 생각이 미쳤다.


그것은 시장조사(市場調査)였다. 오와리(尾張)-미노(美濃)에 대해서는 말단까지 파악하고 있지만, 교토는 이야기가 다르다.

어느 가게가 무엇을 어디서 얼마만큼 들여와서 그게 얼마나 시장으로 흘러가고, 남은 것은 어디로 흘러가는지 자세히 조사하자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시장의 구조를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디에 종교 세력(寺社勢力)의 돈줄이 있는지를 조사하는 것도 중요한 목적이었다.


혼간지로 대표되는 종교 세력은, 키나이(畿内)에 그물망같은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작물이나 상품의 공급량을 조정하여 높은 시장 가격을 유지하여 폭리를 취한다는 과점기업(寡占企業)같은 사업을 전개하고 있었다.

무장한 승병(僧兵)을 보유하고, 전매품(専売品)에 의한 시장 조작을 자행하는 거대한 조직. 조정이나 많은 무가와 연줄을 가진 그들을 쳐부수려면, 단순히 무력으로만 밀어붙여서는 효율이 나쁘다.


거기서 시즈코가 착안한 것이 경제였다. 경제를 거론하려면 경제학이 나와야 하지만, 고교생이었던 시즈코에게는 버겁다. 그 쪽은 아시미츠가 가장 잘 알고 있다.

하지만 현대 일본의 고등 교육을 받은 시즈코는 방대한 기초 지식을 가지고 있고, 원래부터 역사를 취미로 하고 있었기에, 어느 정도의 경제의 흐름을 파악하고 있었다.

일본 역사과 경제는 일견 관계없는 것처럼 생각되지만, 실제로는 정치와 경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었다.

특히 노부나가가 취한 시책(施策)들은 경제에 기인(根差)한 것이 많았고, 그 때문에 그는 당시 사람들에게 이해받지 못하고 이단으로 취급받았다.

후세에서 노부나가가 신도 두려워하지 않는 인간이라고 불리게 되는 것도, 운부천부(運否天賦)가 좌우하는 상매매를 하면서 그 운명을 관장한다는 신불을 모시는 종교 세력을 정면으로 상대했기 때문이다.


"으ー음, 생활 필수품이 꽤나 비싸네. 특히 기름이 비싸"


전국 시대, 기름은 등유(灯油)로서 수요가 높다.

특히 사찰이나 신사는 야간에 하는 행사가 많았고, 그 때문에 기름을 독점적으로 다루는 아부라자(油座)가 사찰이나 신사에 많았으며, 개중에는 지닌(神人, ※역주: 중세에, 속인(俗人)인 채 신사(神社)에서 잡역을 하던 사람들)의 자격을 가진 아부라지닌(油神人)이라고 불리는 상인들이 있었다.

특히 유명한 아부라자가, 이궁(離宮) 하치만궁(八幡宮)의 오오야마자키(大山崎) 아부라자이다. 물론 오우닌(応仁)의 난(乱)에서 막부의 권위가 실추됨과 동시에 그들의 권력 또한 땅에 떨어졌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 당장 뭘 어떻게 할지는 생각할 수 없으려나"


파고들 틈은 보였다. 하지만, 시기를 잘못 판단하면 생각치 못한 반격을 받게 된다.


"시즈코 님, 주상께서 오셨습니다"


어떤 개입이 바람직할까를 생각하고 있을 때, 소성이 노부나가의 내방을 알렸다. 딱히 급한 용건도 없었기에, 바로 갈테니 먼저 노부나가를 안내하도록 명하고 준비를 갖추었다.


"아시미츠 이외에는 물러나라"


노부나가와 그와 동행한 아시미츠, 그리고 그들을 맞이한 시즈코가 자리에 앉자, 노부나가는 입을 열자마자 사람들에게 물러나도록 명했다. 소성들이 숨을 들이켰지만, 노부나가의 무언의 압력에 저항하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란마루(蘭丸)만이 미묘한 표정을 떠올렸으나, 노부나가의 명령에 거역할 수 있을 리도 없어, 모두와 함께 방을 나갔다.

세 사람만 남은 방에서, 노부나가는 준비된 차를 한 모금 마시고 말했다.


"그래서, 무얼 꾸미고 있느냐"


"네?"


"……요즘, 시장 조사라는 핑계로 여기저기 냄새를 맡고 다니고 있지 않았더냐. 또다시 뭔가 계책을 떠올린 것이겠지. 무엇을 할 셈인지 미리 말하라, 고 하는 거다"


노부나가의 질문에 대해 멍한 대답을 하는 시즈코를 보고, 노부나가는 한숨을 쉬며 경위를 설명했다. 시즈코가 시장 조사를 시작한 것은 바로 노부나가의 귀에 들어왔다.

하지만, 그게 무엇을 목적으로 하는지, 무슨 소용이 있는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왜냐하면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는 매상을 조사하고 있는 것 뿐이다. 웬만한 상인이라면 자신이 취급하는 상품에 대한 정도라면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천하인(天下人)의 심복(懐刀)으로서 이름높은 시즈코가 직접 손댈만한 것이라고는 도저히 생각되지 않았다.


"아…… 네. 단적으로 말하면, 혼간지의 힘을 깎아내기 위해서입니다"


개피리를 불어 개들에게 주위를 경계하게 한 후, 시즈코는 헛기침을 하고 계책을 설명했다.


"혼간지를 시작으로, 종교 세력은 키나이의 경제를 한 손에 쥐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그들의 재력은 막대하여, 우리들이 무력으로 압도하려고 해도, 그들은 경제력을 배경으로 항전을 계속하겠지요. 그렇다면, 보급을 지탱하는 경제력을 끊어버린다는 것이 저의 계책입니다"


"그것과 시장 조사에 무슨 관계가 있는지 말해라"


"그들의 시장 지배는 자(座)에 의해 지탱되고 있습니다. 독점 판매권(独占販売権, 비과세권(非課税権), 불입권(不入権) 등의 특권을 방패삼아 경쟁 원리를 배제하고, 생활 필수품으로 폭리를 취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독점하고 있는 상품을 조사하여, 더욱 싼 가격으로 시장에 푸는 겁니다. 같은 상품을 더 싸게 살 수 있다고 하면, 이익에 밝은 상인이라면 달려들겠지요. 그렇게 되면 그들도 가격을 내릴 수밖에 없어, 원하는대로 자금을 조달할 수 없게 됩니다. 어떤 세상이라도 군사력을 지탱하는 것은 경제력입니다. 경제력을 잃으면 자연스레 유지할 수 있는 병력이 줄어들게 됩니다"


자(座)라는 것은 특권을 가진 일부의 사람들이 상품을 독점하여 비싼 값으로 시장에 유통시키는 구조이다. 이것이 종교 세력에 부를 가져다주는 원천이라고 시즈코는 말하는 것이다.

이 구조를 파괴하고 경쟁 원리가 작용하는 시장을 되찾는 것으로, 기득권익을 갖는 종교 세력의 힘을 깎아내고 활발한 경제 활동을 촉진시켜, 백성들에게까지 그 이익을 환원시킨다.


"흠, 아시미츠와는 다른 방향인가"


"어라, 아시미츠 아저씨도 뭔가 생각했었어?"


"……단적으로 말하면 금융 정책이다. 그러기 위해 화폐 발행권을 손에 넣는다. 이것만 장악하면, 누가 어떤 권리를 휘두르던 관계없다. 돈을 통해 상업이 성립하는 한, 누가 시장을 지배하던간에 그 이익을 가로챌 수 있지. 통화(通貨)를 지배하는 자, 즉 그것이 경제의 지배자가 된다"


신용을 배경으로 무(無)에서 돈(金)을 낳고, 그 돈을 돌게 하는 것으로 더욱 많은 돈을 창출하여 이익을 얻는다. 아시미츠가 노리는 것은 그것이었다.

상거래의 원칙은 물물교환이며, 그것을 편리하게 하기 위해 통화가 존재한다. 모든 상거래가 통화로 이루어지면, 통화를 제조하는 사람이 물건의 가치의 지배자가 된다.

에도(江戸) 시대의 막부 지배가 반석의 체제였던 것도, 화폐 주조(鋳造)는 다른 곳에 위탁하기는 했으나 통화 발행권을 독점하여 경제를 계속 지배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통화 발행권은 지배자의 증거라고 할 수 있다.


"뭐 확실히…… 지폐(紙幣)를 발행하는 거야?"


"그것도 불환지폐(不換紙幣)를 말이지"


불환지폐란 금화(金貨)나 은화(銀貨)의 교환이 보증되지 않는 지폐를 가리킨다. 금은의 가치에 영향을 받지 않고 정부의 신용으로 유통되는 화폐이기에, 신용지폐(信用紙幣)라고도 한다.

현대의 선진국은 불환지폐로, 경제 정책이나 공급량의 조정을 하여 통화 가치의 신용을 유지하고 있다. 이것을 관리통화제도(管理通貨制度)라고 한다.


그에 반해 19세기에서 20세기 전반의 지폐는 태환지폐(兌換紙幣)라고 하여, 금화나 은화로 교환하는 것을 전제로 한 지폐였다.

지폐라기보다, 화폐가 되는 금이나 은 등의 귀금속의 보관증(預かり証)이라는 의미가 강하다. 불환지폐와 달리, 교환할 금은 등의 귀금속의 가치의 영향을 받는다.


"권위와 신용은 조정과 오다 가문이 담보하고, 시장에 유통하는 것은 사찰이나 신사에게도 협조하게 하면 된다. 그놈들이 쓴다고 하면 인지도는 높아지지"


불환지폐는 극단적으로 말하면 그냥 종이쪼가리다. 그 종이쪼가리를 가치있는 것으로 만드는 데는 조건이 있다.

그것은 신용, 인지도, 그리고 충분한 양이 시장이 공급될 것이다.

신용은 조정이 보증하지만, 그것이 통용된 것은 화폐 그 자체에 가치가 있는 귀금속이기 때문이다.

화폐 그 자체에 가치가 없는 불환지폐를 담보하려면 조정만으로는 부족하여, 오다 가문이 뒷받침할 필요가 있었다.


물론 오다 가문에도 부담이 가해지지만, 그 대신 다양한 특권도 얻을 수 있다.

우선 통화 발행을 조정에서 위탁받는다는 형식을 취하면, 통화를 위조한 상대를 역적(朝敵)으로서 대의명분 하에 처벌할 수 있다.


그밖에도 조정으로부터 신용(信認)을 얻을 수 있는 점도 크다. 정치의 실권을 잃은 조정이라 해도, 끊임없이 이어진 천황(帝)의 권위는 비할 데 없는 것이며, 그 뒷배경을 얻는다는 것은 큰 메리트가 된다.


마지막으로 불환지폐를 발행하는 것에 의해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누구도 파악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경제나 금융에 어두운 무가는 물론이고, 공가(公家)나 종교 세력이라도 미지의 사정에 대해서는 대처할 수 없다. 그게 어떠한 메리트를 오다 가문에 가져오는 지 알게 될 때는 이미 늦게 되는 것이다.


"타케다가 패배한 것으로, 혼간지는 오다 가문과 화해하지 않을 수 없다. 안 그래도 대량의 짐덩어리를 끌어안고 있는데, 지금 오다 가문과 다투는 것은 자살행위일 뿐이지. 그 때, 조건으로서 여러가지를 인정하게 하면 된다. 놈들은 언젠가 반기를 들 생각이니, 공수표로서 조건을 받아들이는 시늉을 하겠지"


"송전(宋銭)이나 명전(明銭)은 슬슬 한계다. 새로운 화폐가 필요해지지. 하지만, 그것을 지금처럼 외국(唐)에 의존해서는 외국의 영향을 적지 않게 받게된다. 정전(精銭)과 아전(鐚銭)의 교환 비율을 정했지만(에이로쿠(永禄) 12년에서 이듬해에 발령(発令)된 선전령(撰銭令)), 상인들로부터 번거롭다는 불평도 많다. 그렇다면, 새로운 화폐의 발행을 장악하는 게 가장 좋지"


"화폐의 권위는 조정이 보증하고, 그 가치를 담보하고 제조, 발행을 맡는 것이 오다 가문, 유통을 추진하는 것은 종교 세력이군요. 그렇게 생각하면, 지금 시기에 상대의 경제 기반을 축소시키는 것은 좋은 생각은 아니네요"


"그렇다. 새로운 화폐를 유통시키려면, 종교 세력의 유통을 이용한다. 하지만 시즈코의 계책도 나쁘지는 않다. 지금은 화폐를 우선시해야 하는 것 뿐이다"


과연 하고 시즈코는 납득했다. 노부나가로서도 종교 세력의 경제력을 깎아내고 싶다. 하지만 새로운 화폐를 유통시키려면 종교 세력이 가진 네트워크를 이용하는 쪽이 유리하다.

경제력을 빼앗을 것인가, 새로운 화페의 유통 촉진인가를 저울에 달아보고, 노부나가는 화폐가 유통된 후에도 경제력을 빼앗을 수 있다고 판단하여, 먼저 새 지폐의 유통과 인지도 향상을 우선시하겠다고 결정한 것이다.


"그럼 새 지폐의 유통과 동시에, 장부 기재를 상인들에게 의무화시키는 게 좋겠죠. 위에서 일괄적으로 부과되는 높은 세금을 내는 것이 아니라, 수고는 들지만 매상에 따른 세금을 부과하고, 1년에 한 번 장부를 제출하게 하여 초과 납부한 세금의 환급이나, 세금을 속이는 자들을 처벌하는 데 쓸 수 있습니다. 장부의 기재에 응하지 않는 자들은 미리 많은 세금을 부과하여 뜨거운 맛을 보여주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과연, 장부라. 나쁘지는 않은 생각이다"


"장부가 뭔지는 모르겠다만, 그게 있으면 돈의 흐름이 보인다고 하면 실행하도록 해라"


"나중에 가르쳐주지. 우선은 통화 발행권을 얻는다. 이게 최초이자 최대의 중요 사항이다. 이게 있고 없고로 이야기가 전혀 달라진다. 혼간지가 화평을 청해왔을 때, 이것만큼은 절대로 양보해서는 안 된다"


"알겠다. 혼간지에는 그 밖에도 세제(税制)나 토지 개혁을 인정하게 해야 하지만, 통화 발행권은 확실하게 인정하게 하지"


혼간지가 화평을 청해왔을 때, 노부나가는 몇 가지 조건을 받아들이게 할 생각이었다. 도로 정비, 토지의 소유자 문제, 세제 개혁, 시장 개혁 등이다.

도로 정비는 물론 유통을 정비하기 위해서다. 군용 도로로서 정비해도 평소의 유통에도 대단히 도움이 된다. 지름길이 생기거나 하면 사람이나 물자의 유통이 촉진되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토지의 소유자 문제란, 현재의 토지에는 복수의 소유자가 있는 문제이다.

선조 대대로 토지를 다스려온 사람과 막부로부터 토지를 받은 사람이 서로 소유권을 주장하며 다투어, 무력 충돌로 발전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 상태에서도 각자가 세금을 징수하기 때문에, 백성들은 세금을 낼 곳이 2중, 잘못하면 3중이 되는 경우도 있었다. 이것을 정비하는 것이 노부나가의 토지 개혁이다.

구체적으로는 자발적(差出)으로 측량(検地)을 하게 하여 토지의 소유자를 명확하게 한다. 이 자발적 방식으로의 측량을 전국 규모로 행한 것이 훗날의 '태합검지(太閤検地)'이다.


"하지만 토지 문제는 꽤나 다툴 것 같은데요?"


"그 때는 군대를 보여주어 조용하게 만들겠다"


"아, 그런가요"


시즈코가 지적을 했으나, 노부나가는 이미 생각하고 있었던 것인 듯 막힘없는 대답이 나왔다.

즉 자발적 방식에 따라라, 아니면 죽어라라는 이야기다. 상당히 억지스럽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토지 문제는 평생 해결되지 않는다, 고 노부나가는 생각했다.


"토지의 소유자가 명확히 결정되면, 공가나 종교 세력들은 장원의 권리를 잃는다. 하지만 백성은 복잡한 다중 과세를 생각하지 않아도 되게 되고, 결과적으로 부담이 경감되어 기뻐한다. 오다 가문에도 지배 체계를 간략화할 수 있어 정비하기 쉬워진다, 라는 것인가요"


"그렇다. 시장 개혁은 말할 것도 없이 낙시낙좌령(楽市楽座令)이다. 이것은 현지(地元)의 요청도 있으니 내용은 지역마다 달라지겠지만 말이다"


"그러네요. 우선은 도로 정비를 해서 유통을 촉진시키고, 다음으로 토지 정리를 하고, 마지막으로 시장 개혁일까요. 통화의 발행은 처음부터 계속해갈 필요가 있으니, 순서대로가 아니라 병렬적으로 하게 되겠군요"


"그렇다. 그럼, 이야기는 대충 이것으로 끝이다. 나중에 세부적인 조정을 하도록 하지. 나는 배가 고프다. 뭔가 맛있는 밥을 준비해라"


대화가 끝나자 노부나가는 자세를 풀고 그런 말을 했다. 전환이 빠른 건 여전하구나라고 생각하면서 시즈코는 식사 준비를 하기 위해 방을 나갔다.




노부나가의 정무가 끝남에 따라 시즈코도 기후로 귀국했다. 도중에 이세 신궁에 들려서 식년천궁(式年遷宮)을 위한 자금으로서 3000관문을 기부했다.

갑작스런 오다 군 방문에 이세 신궁의 신관들은 크게 당황했으나, 기부의 이유를 듣고 휴 하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밖에도, 노부나가가 가신들을 격려하면서 귀국했기에 예상보다 시간이 걸렸다. 겨우 기후에 도착한 후, 시즈코는 오와리로 돌아왔을 때 깜짝 놀랐다.


"크다"


그것은 시즈코가 쿄에 가 있는 동안 저택이 완성되어, 이미 새 집으로 이사가 끝난 것에 기인한다. 이사만이라면 문제없다. 아야(彩)에게도 이사에 관한 이야기는 사전에 의뢰해두었다.

문제는 자택의 문이, 이전의 그것과 비해 월등히 거대해진 것이었다. 성이 아니기에 방어시설은 적었으나, 성문을 지키는 병사 등은 이전과 다름없었다.


"크네ー"


집을 보고 시즈코는 그 이외의 감상이 떠오르지 않았다. 집은 크게 세 개로 나뉘어 있었다.

우선 가장 큰 본전(本殿)이다. 집이라기보다 정치적인 시설이라고 하는 쪽이 맞다. 현대에서 말하는 청사(庁舎)에 가까운 역할로, 그녀 이외의 사람이 정치 업무를 하는 경우에도 이용된다.

노부나가가 정치나 정책을 펼칠 때 이용되는 것도 고려되어 있어, 시즈코의 집이라기보다 오다 가문의 통치용 시설이라는 면이 강하다.

물론, 시즈코도 접견하거나 회의를 열거나 하는 경우에 이용하는 시설은 본전이 된다.


다음으로 두 사이즈 정도 작은 후전(裏殿)이다. 이곳이 시즈코의 집이라고 단언할 수 있는, 그녀를 위한 프라이빗 공간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가신이나 그 가족들이 머물거나 하는 경우도 있기에, 전부가 그녀의 공간은 아니다.

본전에도 주방(台所)은 있지만, 후전은 식량 보관 창고에 가깝고, 물터나 목욕탕도 있다. 시즈코는 물론, 아야나 쇼우(蕭)의 방도 있다.

지위가 낮아짐에 따라 방이 좁아져서, 시녀들은 공동으로 방을 쓰게 된다.

그 밖에도 비트만 패밀리나 터키시 앙골라인 타마, 하나. 설표인 윳키, 부채머리 독수리인 시로가네 등, 시즈코가 키우고 있는 동물들의 잠자리도 후전 안에 있다.


마지막이 측전(側殿)이다. 노부나가를 시작으로, 무장들이 머무르는 시설이다. 본전이라는 정치 시설이 있는 관계상, 이러한 시설이 필요해졌다.

다른 것과 달리 무가 저택을 작게 만든 것이 몇 채 늘어서있을 뿐이다. 노부나가용 시설만이 한층 더 큰 것은 알기쉬운 표식이라고 할 수 있다.


이밖에도 비닐하우스들이나 논밭, 식량이나 무구, 시즈코가 수집한 칼, 헌상품 등을 보관하는 창고, 닭이나 집오리 등의 가축을 사육하는 구획, 마굿간, 방어를 담당하는 병사들의 기숙사나 부수 시설, 공방 등 다종다양한 시설이 존재한다.

그것들을 성벽으로 빙 둘러싸고, 바깥쪽에 해자(堀)가 있는 것이 시즈코의 새 집이었다. 집이라기보다는 거점이라고 하는 쪽이 정확할지도 모른다. 새 집에서 일하는 스태프들도 전보다 한층 늘어났다.


"이제 그냥 웃을 수밖에 없네"


그런 말을 중얼거리면서 시즈코는 후전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당신들은 전용의 방이 있을텐데요?"


들어가려다가 뒤에 케이지(慶次)나 사이조(才蔵),나가요시(長可) 등 평소의 멤버가 있는 것을 시즈코는 깨달았다.


"그런 넓은 장소에선 마음이 편하지 않아"


"소생은 호위대(馬廻衆)니까요"


"나, 나는 딱히 상관없는데 말야, 고양이들이 놓아주질 않아서 말이지"


새 집에서도 평소와 다름없나, 라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아시미츠와 타카토라(高虎)는 전체를 둘러보고 오겠다며 갔으나, 언동을 볼 때 그들도 이 거점으로 옮겨살게 될 것일까, 라고 시즈코는 막연하게 생각했다.


"결국, 평소와 다름없나"


그런 말을 중얼거리면서 새로운 자기 집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현관에서 깨달았다. 바로 조금 전까지 대인원이 오락가락한 흔적이 보였다.

안 좋은 예감을 느끼면서 시즈코는 휴식(寛ぐ)을 위한 방으로 이동했다.


"오오, 드디어 돌아온 것이냐"


시즈코의 안 좋은 예감은 적중했다. 후전의 주인이 휴식하기 위한 자기 방에, 주인인 시즈코보다 더 느긋하게 쉬고 있는 노히메(濃姫)가 있었다.

그녀 뿐만이 아니었다. 이치(市)나 마츠(まつ), 네네(ねね) 등, 평소대로의 멤버도 다 모여 있었다.


"……뭘 하고 계신지 여쭈어도 괜찮을까요"


"보면 모르겠느냐. 쉬고 있느니라"


"아니, 그건 알겠습니다. 더 이상 확실할 수 없을 정도로요. 제 질문은, 어째서 제 집에서 쉬고 계신가, 인데요"


"새 집을 축하하러 왔는데, 정작 집 주인이 없더구나. 하여 집 주인이 돌아올 때까지 쉬고 있던 것이니라"


전반과 후반이 지나칠 정도로 전혀 이어지지 않아서, 머리가 아파진 시즈코였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오오, 드디어 왔느냐. 기다리기 지쳤노라"


시즈코가 무거운 한숨을 쉴 때, 아야가 쟁반에 무언가를 받쳐들고 들어왔다. 시즈코에게 인사를 한 후, 아야는 쟁반을 노히메들의 앞에 놓았다.

쟁반에는 푸딩(プリン)이 놓여 있었다. 현대와 같은 노란색이 아니라 백색의 푸딩이었으나 '기포(す)'가 없이 깨끗한 표면을 가지고 있었다.


"남의 집 식재료를 다 먹어치우실 생각이신가요"


"어차피 다 쓰지 못해서 썩히고 있을테니, 내가 유효하게 이용하고 있는 것 뿐이니라"


"윽, 아픈 곳을……"


소비보다 공급이 꽤나 오버하고 있는 시즈코에게, 식재료를 소비해주는 인물은 고마웠다.

하지만, 노히메는 무엇을 얼마만큼 소비하는지 알 수 없었기에, 그 점만이 시즈코의 두통거리였다.

하지만 소비하지 않으면 썩어버릴 공산이 컸기에, 식재료의 소비는 환영할 일이었다.


"그건 그렇고, 전체적으로 다다미(畳)를 깔다니 꽤나 크게 마음을 먹었구나"


"다다미 생산이 따라오질 못해서 아직 다다미가 들어가지 않은 방도 있지만요"


"전부터 하고 있던 연구가 성공해서 대량 생산을 할 수 있게 되었다더구나"


다다미는 에도 시대, 도쿠가와 요시무네(徳川吉宗)가 쿄호(享保) 개혁을 하여, 간척이 적극적으로 진행됨에 따라 재료인 골풀(藺)이 대량 생산되어 가격이 하락했지만, 그때까지는 고급품이었다.


물론, 노부나가도 시즈코의 진언을 따라 간척을 적극적으로 행하여, 골풀의 생산량은 비약적으로 향상되었다.

골풀의 재배는 기본적으로 3단계로 나뉜다. 최초의 전묘(畑苗, 1차 모종). 이것은 다른 것과 다르지 않게 바탕이 되는 모종(苗)을 만드는 밭이다.

12월 무렵에 모종을 심어, 그대로 모가르기(苗わり)를 하는 이듬해 8월까지 기다린다.

시기가 오면 골풀은 모밭에서 2차 모종의 밭으로 이동시킨다. 모종을 뽑아내어 진흙을 털어내고, 모종을 하나하나 갈라서 심어간다.

심은 직후에는 한 그루의 모종이지만, 골풀의 생명력은 강하기 때문에 차례차례 새로운 싹이 난다. 몇 달만 지나면 처음의 연약한 분위기는 어디로 갔는지 몰라볼 정도로 훌륭한 모종으로 성장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모종을 재배할 본밭(本田)에 심는다. 하는 작업은 1차 모종을 2차 모종의 논밭에 옮겨심는 내용과 같지만, 모종이 큰 만큼 재배할 논밭에서 하는 작업에는 숙련된 솜씨가 요구된다.

모종을 심은 지 2년 후인 7월에 골풀은 수확된다. 그 후, 진흙염색(泥染め)이라는 염토(染土)를 녹인 물에 담근 후, 건조시켜서 드디어 완성되는 것이다.


골풀의 재배는 숙련된 솜씨가 필요하지만, 시즈코는 전 공정의 대부분을 기계로 대용하는 연구를 하여 멋지게 성공하였기에, 오와리의 골풀 생산은 비약적으로 향상되었다.


"골풀의 이식기(移植機), 수확기(収穫機), 골풀 돗자리(畳表)의 제직(製織) 등등, 그런 전용의 기계를 개발하여 고품질의 다다미를 대량 생산하는 것이 가능해졌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수요가 폭등하여, 공급이 따라가질 못하고 있습니다"


"대량 생산도 일장일단이 있구나"


"그렇다고 해서, 하지 않으면 언제까지나 생활의 질은 올라가지 않지요"


"그렇구나. 그건 그렇고, 차과자(茶請け)가 없어졌으니, 뭔가 맛있는 것이라도 부탁하자꾸나"


그 말을 듣고 시즈코는 쟁반을 보았다. 쟁반 위에 있던 푸딩은 어느 틈에 전부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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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

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겐키(元亀) 4년 무로마치 막부(室町幕府)의 종언(終焉)


100 1573년 1월 하순



연말(年の瀬). 새해를 맞이하는 사람들은, 속해있는 진영에 따라 뚜렷하게 명암이 갈려 있었다.

오다 가문을 중심으로, 동맹 관계에 있는 도쿠가와(徳川) 가문도 화려한 새해를 기대하며, 바쁘면서도 활기찬 연말을 보내고 있었다.

대조적으로 반 오다 동맹의 면면들은, 장례식 같은 묵직한 분위기 속에 저물어가고 있었다.

왜냐하면 반 오다 동맹의 우두머리(旗頭)였던 타케다(武田) 가문의 패배라는 사실이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국지적인 패배가 아니라, 타케다 가문의 총력을 기울였음에도 완패라고 할 정도로 철저한 패배를 맛본 것이다.


반 오다 세력은, 누구 하나 타케다의 패배를 예상하지 않았으며, 다소의 고전은 할지라도 타케다 군의 상락(上洛)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니 수괴(首魁)인 타케다 신겐(武田信玄)을 시작으로, 바바 노부후사(馬場信房), 야마가타 마사카게(山県昌景), 나이토 마사토요(内藤昌豊)라는 타케다 사천왕(四天王) 중 무려 세 명이나 전사했다.

간신히 스와 시로 카츠요리(諏訪四郎勝頼, 뒷날의 타케다 카츠요리(武田勝頼))는 도망쳤으나, 타케다 가문의 유력한 무장들이 줄줄이 전사하여, 타케다 가문의 존속이 위태로워질 정도의 참상이 벌어졌다.

그에 비해 오다 측의 손해는 경미하여, 오다-도쿠가와 합쳐서 500 정도의 사상자를 내기는 했으나, 유력한 무장이 전사하지는 않았다.


미카타가하라(三方ヶ原) 전투에서 압승하여 천하를 진감(震撼)시킨 오다-도쿠가와 군이었으나, 그 이후의 오다 군의 행동은 반 오다 동맹의 참가자들을 기겁하게 했다.

타케다 군의 역사적 대패로부터 2일. 막심한 혼란에 빠져 있는 오다 포위망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노부나가는 일기하성(一気呵成)으로 나가시마(長島)를 공격해 함락시켰다. 14개에 달하던 방어의 핵심이던 요새들도 하루에 3개라는 비상식적인 속도로 함락되었다.

세상이 타케다 가문의 패배라는 충격에서 깨어나기 전에 나가시마는 깨끗하게 털리고, 오다 군에 의한 나가시마 성(長島城) 침공이 시작되기 전에 항복의 쓰라림(憂き目)을 맛보았다.

이 충격적인 침공을 가능하게 한 것은, 미카타가하라 전투에서 자군의 승리를 확신하고 여력을 남겨두었기 때문이라는 충격적인 사실을 천하에 알린 것이다.


12월 중순 무렵에 도쿠가와 가문에 대한 증원을 결정하고, 겨우 반 달 정도만에 세상은 완전히 바뀌어 버렸다. 역사의 전환점이었겠지만, 그 소용돌이 한복판에 있는 사람은 죽을 맛이다.

특히 상황이 뒤바뀌어 열세에 몰린 반 오다 동맹 편 사람들에게, 이 해의 연말은 다가오는 죽음의 기운에 몸이 얼어붙는, 숨을 돌리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는 가혹한 것이 되었다.

대외적으로는 노부나가가 타케다 신겐을 쳐부수고, 적자(嫡男)인 노부타다(信忠, 키묘마루(奇妙丸))가 나가시마 일향종(一向宗)을 박살낸 것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오다 가문 내에서는 그 모든 대업을 뒷받침한 시즈코의 존재야말로 승리의 핵심이었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었다.

실제로, 도쿠가와에 대한 원군(後詰め)으로서 하마마츠 성(浜松城)으로 가서, 핍박하는 전황을 두려워하는 도쿠가와 가문 가신들까지 설득하여 미카타가하라 전투를 승리로 이끈 것도, 나가시마에서의 쾌진격을 뒷받침한 병사들의 숙련도와 무장을 갖춰낸 것도, 모두 시즈코가 주도면밀하게 세운 계획의 성과였다.


기묘하게도 무토 키헤에(武藤喜兵衛)가 예언했던 것처럼, 오다 가문 안팎으로 그 존재를 드러내고 있는 시즈코는, 평소라면 자택에서 보낼 설날(元日)의 해가 뜨기도 전부터 노부나가의 호출을 받았다.

그것도 첫 해돋이(初日の出)를 볼 테니 함께 와라, 라는 이유에서였다.


"추워……"


"춥다고 생각하니 추운 것이다"


"아니 실제로 춥거든요. 그보다 어째서 저인가요. 일출까지는 따뜻한 집에서 뒹굴게 해 주세요"


노부나가가 천하에 손을 대던, 시즈코가 얼마나 무공을 쌓아올리던, 주위에서 보는 눈길은 변했지만, 두 사람의 관계는 변하지 않았다.


"뭐, 네게 이 광경을 보여주고 싶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이외에 이유 따윈 필요없지"


"그런가요"


너무나도 노부나가다운 말에 시즈코는 납득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해뜨기 전의 추위(冷え込み)에 제아무리 노부나가라도 말수가 적어져, 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거북한 침묵은 아니고, 조용히 시간이 지나기를 기다리고 있자, 밤의 어둠에 한 줄기 광명이 비추었다.

어느 쪽이 먼저랄 것도 없이 빛을 향해 눈을 돌리자, 지평선 너머로부터 주위를 아침햇살(朝焼け)로 물들이며 태양이 떠올랐다.


"와아"


그건 멋진 첫 해돋이 광경이었다. 공기가 맑기 떄문인지, 현대보다도 뚜렷하게 밤이 밝아져가는 모습이 보였다.

여담이지만 설날의 해돋이를 가리키는 말로서 '해맞이(ご来光, ※역주: 우리말에는 ご来光이나 初日の出을 따로 구분하는 명사가 없는 듯 하여 임의로 의역함)'와 '첫 해돋이(初日の出)'가 있으며, 이 두 가지는 혼동되기 쉽다.

하지만 '해맞이'는 높은 산에서 보는 일출을 의미하며, 석존(釈尊, ※역주: 석가세존(釋迦世尊)의 줄임말)이 후광(光背)과 함께 내영(来迎, ※역주: 사람이 죽을 때 부처나 보살이 극락정토로 맞이하러 오는 것)하는 것에 빗대어진 것이다. 즉, 신앙의 대상은 부처(仏陀)이며, 불교 행사 중 하나로 꼽힌다.

그에 반해 '첫 해돋이'는, 일출과 함께 세덕신(年神様)께서 강림하신다고 믿어졌기에 참배 대상이 되었다. 신앙의 대상은 세덕신이며, 신토(神道, ※역주: 일본의 토속 신앙)에서 정월(正月)의 중심 행사가 되었다.


"나쁘지 않은 기분이군"


오랫동안 가로막고 있던 걱정거리가 불식된 후 처음으로 맞이하는 설날(元旦)이라는 것도 맞물려, 노부나가는 재생되는 태양을 평소보다 신성하고 장업한 것으로 마음에 새겨두고 있었다.


"하지만, 정말로 타케다를 쳐부술 줄이야"


노부나가조차 지금도 가끔 꿈을 꾸고 있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진짜 자신은 미카타가하라(三方ヶ原) 전투에서 타케다를 격파하지 못하고 기후 성(岐阜城)에 틀어박혀 다가오는 죽음에 두려워하고 있으며, 지금의 자신은 절망 속에서 꾸는 희망사항으로 가득한(都合の良い) 물거품 같은 꿈이 아닐까 하고.

그러한 일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은 해도, 때때로 확인하게 되어버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저는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있다고는 하지 않습니다. 할 수 있다고 말한 것은 승산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훗…… 그건 그렇고 그 신식총(新式銃)은 흉악하구나. 저쪽의 공격이 닿지 않는 먼 거리에서 일방적으로 노리고 쏠 수 있으니 말이다. 상호간에 총격전(撃ち合い)이 벌어지기 전에 큰 손해를 강요받게 된다면, 아무리 머리가 나쁜 멍청이(撃ち合い)라도 주저하겠지"


"총만의 공적은 아닙니다. 모두가 제 말을 믿고 따라와 주었기에 이 큰 전과를 얻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번의 전공은 저 개인이 받을 것이 아니라, 모두가 받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너는 변함이 없구나. 처음 만났을 때부터, 아무 것도 변함이 없다"


과거를 그리워하듯 말했다. 처음 보았을 때부터 묘한 녀석이라고는 생각했지만, 신비하게도 어딘가 차분한 안정감이 있었다.

끝없이 대지에 도전하는 농업을 생업으로 삼기 때문인지, 굳건하게 대지에 뿌리를 내린 기묘한 존재감을 가지고 있었다.

누구나 부러워하는 큰 전과를 세웠음에도 추호도 흔들리지 않고 처음과 마찬가지로 자연스러운 태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노부나가에게 시즈코는 계속 마음껏 가지를 뻗어내기에, 가지치기를 하는 데 손이 무척 많이 가지만 커다란 열매를 가져오기도 하는 큰 나무와 같은 '이상한 녀석'일 것이다. 지금까지도, 그리고 이제부터도.


"타케다가 옛 기세를 되찾는 일은 이제 없을 것이다. 우에스기(上杉)의 귀추(帰趨)는 모르겠다만, 호죠(北条)는 심하게 동요하고 있지. 혼간지(本願寺)도 믿었던 패가 사라졌기에 내부적으로는 발칵 뒤집히는 대소동이 일어났겠지. 그리고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는 쇼군(将軍)에게는 아시미츠(足満)를 보내겠다"


"아시미츠 아저씨를요?"


"음. 녀석을 보고도 여전히 헛된 꿈을 꿀 수 있을 깜냥이라면 다시 볼 법도 하지만, 그런 기량은 없을게다. 아무래도 이번 건에서 어설픈 대응은 할 수 없지. 아들을 인질로 바치게 하고 녀석 자신은 칩거(蟄居)하도록 하겠다"


강한 어조와는 반대로 노부나가의 모습에서는 진절머리가 난다는 느낌(徒労感)이 엿보였다. 쇼군 요시아키(義昭)에 대한 것은 노부나가에게 두통거리일것이다.

아무리 장식뿐인 요여(神輿)라고는 해도 이렇게까지 정치 감각이 없으면 떠받들고 있는 쪽도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것이다.


"앞으로 1년이다. 네 군은 하나로 합쳐 운용하는 것이 아니라, 소규모로 재편성하여 활약해줘야겠다. 물론, 네 비장(虎の子)의 텟포슈(鉄砲衆)도 포함해서 말이다"


"반석의 지배체재를 확립하기 위해서인가요?"


"지금의 통치로는 각지에서 반기를 들면 그것만으로도 병력의 운용에 지장이 생긴다. 키나이(畿内)의 안정(安堵)은 혼간지를 치기 위해서는 필수적이다. 뭐 너 자신이 나가야 할 일은 그다지 없겠지만 말이다"


"어, 그건 무슨 의미인가요?"


시즈코의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고, 노부나가는 히죽하고 웃음을 떠올릴 뿐이었다. 이런 태도를 취할 떄의 노부나가는 대부분 자비없는 일을 생각하고 있다고 시즈코는 경험적으로 배웠다.


"너 자신이 어찌 생각하던, 타케다와 나가시마(長島)와의 싸움에서 보인 시즈코 군의 활약은 압도적(頭抜け)이었지. 그 시즈코 군의 본대가 움직이지 않고, 각지에 별동대가 파견된다면 적은 어찌 받아들이겠느냐?"


"……별동대의 파견은 경고. 설령 물리쳤다 해도, 그 몇 배의 군세에게 공격받아 멸망당한다는 것일까요"


"좋은 수읽기(読み)다. 간단히 굴복했다고 하면 체면이 서지 않겠지만, 타케다조차 꺾어버린 본대가 상대로는 싸움이 되지 않지. 경고 단계에서 얼마나 잘 대처할지, 목표가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 고생은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엄청난 정신적 중압이라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이제는 부성(付城) 전술이 표준화된 오다 군이다. 눈 깜짝할 사이에 주위를 포위당하여, 치고 나가려고 해도 신식총에 박살나고, 원군이 없는 절망적인 농성을 강요당한다.

사방팔방으로부터 언제 공격받을지도 모른 채 시시각각 줄어가는 병량(兵糧)을 바라보며, 이윽고 찾아올 죽음을 기다리는 완만한 자살. 보통의 신경으로는 견뎌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뭐, 일벌백계(一罰百戒)를 실천하고 있는 것 뿐이다. 죽은 자의 살을 먹고 피로 목을 축이는 참상을 알게되면, 섣불리 대들려는 생각 따윈 하지 않겟지"


"일벌(一罰)이 너무 가혹한 것 같은 생각도 듭니다만, 뭐 그건 어쩔 수 없겠죠. 피아의 차이를 추정하여 최선의 수를 강구하는 것이 영주(国人)의 임무이니까요. 판단을 잘못한 영주를 모신 댓가는 치루어야만 하겠죠"


"그 말대로다. 자, 첫 해돋이도 충분히 만끽했다. 슬슬 돌아가지 않으면, 노(濃, ※역주: 노히메) 녀석이 설날 요리를 다 먹어버리겠다"


말을 마침과 동시에 노부나가는 발을 돌렸다. 멍해져 있던 시즈코였으나, 정신이 들자 당황해서 노부나가의 뒤를 쫓았다.


"올해도 천하를 얻는 데(天下取り) 바쁠 것 같구나"


시즈코가 다가오는 발소리를 들으면서 노부나가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설날(元日) 아침, 노부나가가 처음으로 인사를 하는 것은 그의 일가친지(一族衆)라고 정해져 있다. 이것은 '가족이나 친족을 가벼이 여기는 자는, 가신이나 병사들에게도 마찬가지다'라는 노부나가의 신념에 따른 것이다.

솔선해서 모범을 보이고자, 노부나가는 정월(正月)을 처자나 친족들과 함께 맞이했다. 즉, 그 이전에 시즈코와 일출을 보러 나간 것은, 노부나가에게 시즈코는 가족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노부나가가 그것을 의도했는지, 아니면 무의식적인 것인지는 그 이외에는 알 방법이 없다.


"에취. 우우…… 누가 내 이야기라도 하고 있는 걸까"


첫 해돋이를 본 후에 일단 집으로 돌아온 시즈코였으나, 점심 때가 지났을 무렵 다시 노부나가가 있는 곳으로 갈 필요가 있었다.

그것은 설날에 열리는 노부나가의 다과회(茶会)에 참가하기 위해서다. 항상 참가하지 않았던 시즈코였으나, 아무래도 올해만큼은 참가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귀찮다고는 생각하면서도, 시즈코는 정장으로 갈아입었다. 몸단장을 마친 시즈코는 아야(彩)의 전송을 받으며 노부나가의 거성(居城)으로 출발했다.


아무래도 정월쯤 되면 사람들의 왕래도 줄어들어, 상인들이 빽빽하게 오가는 큰길도 한산했다.

주요 도로(街道)는 물론이고 도로 근처의 큰 길은 모두 포장되어 있는 덕분에, 도중에 아무 일도 없이 기후 성(岐阜城)에 도착할 수 있었다.

천하인(天下人)에 가장 가깝다고 평가되는 노부나가가 있는 기후 성쯤 되면, 노부나가에게 새해 인사를 하러 방문한 사람들이 줄을 짓고 있어, 수행원들도 포함하면 발디딜 틈도 없을 정도로 북적이고 있었다.

시즈코는 낯익은 소성(小姓)에게 말을 맡기고는 만나기로 한 사람들을 찾았다.


"분명히 현지 집합이라는 이야기였는데…… 아, 저기 있네"


사이조(才蔵)나 나가요시(長可)도 정월에는 부름을 받았지만, 그들은 집으로 돌아갔었기에 점심때부터 노부나가에게 인사하러 갈 때 현지에서 집합하기로 되어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자 시즈코는 사이조의 모습을 발견했다. 시즈코가 사이조의 곁으로 달려가자, 사이조도 시즈코를 확인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시즈코 님. 올해도 잘 부탁드립니다"


두 사람은 새해 인사를 나누었다. 그게 끝나자 사이조는 평소대로 시즈코의 뒤에 섰다. 새해 첫날부터 호위대(馬廻衆)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거 아닌가, 라고 생각한 시즈코였으나 사이조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놔두기로 했다.

그 후, 나가요시에 아시미츠(足満), 타카토라(高虎)가 차례차례 합류했다. 놀랐던 것은, 케이지(慶次)가 새해 인사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아무래도 올해는 갔다와라, 고 양부(養父)께서 말씀하셔서 말야"


카부키모노(傾奇者)인 케이지도 은혜를 입은 양부에게는 약하여, 올해는 인사를 드리고 와라, 라는 양부의 말에 거역할 수 없었다. 이것저것 생각하는 바가 있는 듯, 케이지는 미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좋은 양부시잖아요. '효도하고 싶을 때 정작 부모님은 안 계신다'고 하잖아요"


"알고는 있어. 하지만, 아무래도 이 나이가 되면 뭘 해야 좋을지"


지금까지 카부키모노로서 살아온 케이지에게 무엇이 양부에게 효도하는 것이 될지 떠오르지 않았다. 머리를 쥐어뜯어봐도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아, 그는 몹시 괴로워하며 정월을 맞이했다.


"뭐, 천천히 생각하면 되지 않아요? 서두르면 일을 그르친다, 고 하니까요. 슬슬 가죠"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시즈코는 노부나가가 있는 곳으로 가기 위해 모두와 걸음을 맞추어 걸었다. 아시미츠가 옆에 서고, 케이지나 사이조, 나가요시는 시즈코의 뒤를 따랐다.

가는 도중에 여기저기서 속삭이는 소리가 귀에 들렸다. 그 내용은 다양해서, 시즈코의 업적을 칭찬하는 것도 있고, 선망이나 질투, 욕설(悪罵)에 가까운 것까지 있었다.


선망의 대상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전국시대 최강의 자리를 빼앗는 데 성공했다. 최강의 자리에 있는 한, 이 이상의 무공은 존재하지 않는다. 시즈코의 무공에 트집을 잡으면 창피를 당하는 것은 그들 자신이 되는 것이다.

타케다를 패배시켰다는 것은, 시즈코를 기껏해야 뒷바라지 역할(裏方)이라고 가볍게 여기던 사람들이 죽었다 깨어나도 견줄 수 없는 압도적인 무공이었다.


한편, 질투나 악의를 받는 시즈코는, 뉘집 개가 짖느냐는 식으로 태연하게 받아흘리고 있었다.

사람이란 감정의 생물인 이상, 그러한 악의를 받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달관하고는, 상대해봤자 소용없다고 생각하고 신경을 껐다.

건설적인 의견이나 의미있는 비판이라면 받아들이지만, 단순히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비방중상(誹謗中傷) 같은 것은 피곤해질 뿐 얻는 것도 없기에 상대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설날의 노부나가는 오전을 가족이나 일족과 함께 지내기에, 필연적으로 대외적인 인사는 오후에 집중된다.

주요 가신들도 마찬가지지만, 준비를 위해 움직이는 사람들이 바쁘게 뛰어다니고 있어, 설날의 기후 성에서 사람의 기척이 끊기는 일은 없다.

애초에 노부나가의 경우에는 2일 이후에도 방문객이 끊기는 일은 없다. 어쨌든 시즈코도 다른 방문객과 마찬가지로 줄을 서서, 노부나가와의 접견을 허락받고 정월 인사를 올렸다.


"올해도 잘 부탁한다"


시즈코가 정월 인사를 했을 때, 노부나가는 대담한 웃음을 떠올리고 있었다. 뭔가 안 좋은 예감이 든 시즈코는 어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녀의 예감은 적중했다.




(어ー, 그러니까, 어째서 이런 상황이 된 걸까)


시즈코는 내심 머리를 감싸쥐었지만, 눈 앞에 보이는 광경은 변하지 않았다.


"왜 그러느냐. 사양할 필요 없다. 원하는 것을 말해라"


노부나가는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그의 눈 앞에는 요우헨텐모쿠챠완(曜変天目茶碗)이 놓여 있었다.

현대에서는 국보(国宝), 그것도 현존하는 것은 3개 뿐이라는 최상급의 텐모쿠챠완(天目茶碗)인 요우헨텐모쿠챠완이 아까운 기색도 없이 놓여 있었다.

그 뿐만이 아니라, 그 밖에도 노부나가가 애용하는 다기(茶器)가 늘어놓아져 있었다. 다기 뿐만이 아니라 히노모토고우(日本号)나 짓큐미츠타다(実休光忠) 등의 명창(名槍)이나 애용하는 칼까지 놓여 있었다.


명품들을 앞에 두고 시즈코는 한숨을 쉬었다. 노부나가는 미카타가하라 전투에서 타케다를 결정적으로 패배시키고, 또한 나가시마의 잇코슈(一向衆)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그 최대 공로자인 시즈코에게, 노부나가는 원하는 것을 주겠다고 말했다. 저번과는 달리, 이번에는 이런저런 현물(現物)을 시즈코에게 보여주면서 그는 논공행상을 시작했다.


(어쩌지. 다기 같은 건 필요없고, 취급에도 곤란하고…… 그렇다고 해서 칼이나 창이라는 것도 멋대가리가 없겠지)


마음 속으로 신음하면서 시즈코는 생각했다. 갑작스레 정월에 논공행상을 하는 것도 노부나가에 뭔가 생각이 있어서일거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현물이 잔뜩 있는데 땅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는 시점에서, 말로만 하지 않았지 뭔가 속셈이 있는 논공행상이라고 말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잠시 생각한 후 시즈코는 결론을 내렸다. 이거라면 노부나가의 체면을 지키면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손에 넣을 수 있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영…… 어흠, 그러시면 '주상(上様, ※역주: 적당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서 주상(主上)으로 의역)'께 세 가지 청이 있사옵니다"


주상(上様)이란 노부나가의 경칭이 된다. 전까지는 '영주님(お館様)'이었으나, 연말 무렵부터 주위에서는 노부나가를 '주상'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타케다와 나가시마를 쓰러뜨린 것 때문에 호칭이 바뀌었는지, 아니면 단순히 우연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시즈코도 노부나가를 '주상'이라고 고쳐 불렀다.


"말해보아라"


노부나가의 재촉을 받고 시즈코는 자세를 바로했다. 히죽 웃으며 이야기를 들을 자세를 취하는 것을 보니 노부나가는 시즈코의 언동을 재미있어하는 듯 보였다.


"……그럼 첫번째로, 싸움에서 죽은 자들의 영을 진혼(鎮魂)할 신사(社)의 건축 허가를 받고 싶사옵니다. 두번째는 토우시로 요시미츠(藤四郎吉光)의 칼 수집에 조력을 부탁드립니다. 세번째는 히노모토고우를 받고 싶사옵니다"


"좋다, 히노모토고우는 네게 주마"


시즈코의 청을 노부나가는 주저없이 승낙했다. 일순의 망설임조차 보이지 않았던 것에 오히려 시즈코 쪽이 당황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노부나가는 시즈코가 당황하는 것을 보고 히죽 웃을 뿐이었다. 몇 번인가 심호흡을 하여 마음을 가라앉힌 후, 시즈코는 노부나가에게 고개를 숙였다.


"황공하옵니다(有り難き幸せ). 하면, 히노모토고우의 운반 준비를 위해 이만 실례하겠사옵니다"


히노모토고우를 운반할 준비를 한다, 는 명목으로 시즈코는 자리를 벗어날 생각이었다. 너무 신경이 쓰여서 지쳤다고도 할 수 있다. 조금 휴식할 시간이 있었으면 하여 말한 이유였으나, 노부나가는 별로 신경쓰지 않고 승낙했다.


"붙잡히거든 포기하거라"


마지막에 노부나가가 한 말에 시즈코는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히노모토고우의 운반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시즈코는 노부나가가 한 말의 의미를 알게 된다.


"시즈코. 내게 인사도 없이 돌아가려 하다니 꽤나 몰인정(不人情)한 처사로구나?"




"피곤해. 이제 두번다시 가고 싶지 않아"


히노모토고우의 운반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운나쁘게 노히메에게 붙잡혔기에 시즈코는 크게 고생을 했다.

간신히 운반에 관한 지시는 내렸지만, 그 이상 뭔가 말하기 전에 시즈코는 노히에메게 질질 끌려갔다.

도중에 이치(市)와 챠차(茶々)들의 눈에도 띄여서, 그대로 여자들이 모여있는 방으로 강제 연행되었다. 그로부터 시즈코에게는 지옥이었다.

노히메와 이치의 콤비는 전혀 자비가 없었고, 반대로 처음 만나는 사람은 이미 시즈코에 대해 뭔가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지, 대응하는 것만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뭐 주상께 야겐(薬研)이나 란(乱) 같은 것의 하사를 확약받았으니 잘됐다고 생각할까……"


야겐토우시로(薬研藤四郎)는 아시카가(足利) 쇼군 가문(将軍家)의 보물(重宝)이었으나, 마츠나가(松永) 단죠(弾正)가 아시카가 요시테루(足利義輝)를 암살했을 때, 후도우쿠니유키(不動国行) 등과 함께 빼앗아서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겐키(元亀) 4년 1월 10일에, 마츠나가 단죠는 야겐토우시로와 후도우쿠니유키를 노부나가에 헌상했다고 전해진다.


"아, 기왕이면 후도우쿠니유키도 달라고 할 걸 그랬나. 뭐, 애도(愛刀)로 삼으실테니 무리겠지만"


"시즈코 님, 집계가 끝났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하늘을 바라보고 있자니 아야가 말을 걸어왔다. 정월부터 일을 시키게 되어버렸으나, 그걸 생각해도 조금 곤란한 상황이 시즈코에게는 있었다.


"그래서, 얼마나 됐어?"


"'주상'으로부터의 하사금을 합쳐 2만 7500관문(貫文)이 됩니다"


문제는 시즈코가 소지한 돈이었다.


"큰 돈을 받아도 곤란한데 말야"


"어쩔 수 없습니다. 오와리(尾張)나 미노(美濃)의 것은 대부분 시즈코 님이 관여하고 계시니까요. 그러니 돈이 가장 무난한 것이겠죠"


어째서 시즈코가 큰 돈을 소지하고 있냐 하면, 노부나가는 무공을 세운 사람에게는 다기나 돈으로 보수를 지불하고 있었다.

무장들이 다기를 원하는 가운데, 시즈코는 노부나가에서 돈을 받아서 개간(開墾)을 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언제부터인지 시즈코에게는 돈으로 보상을 해주는 것이 당연하게 되었다.


하지만 오와리, 미노에서는, 치타 반도(知多半島)에 농업용수를 끌어오는 등의 국가적 초대형 공사 이외에는 어느 정도 개간은 끝나 있었다.

다른 지역은 각각 지배자가 있기에 시즈코는 개간에 대해 참견할 권리가 없다.

그녀의 영향력은 오와리, 미노에 한정되어 있었다. 그래도 노부나가의 직할지(膝元)에서 이것저것 할 수 있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특권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어쩔까…… 아, 이세(伊勢) 신궁(神宮)이 있었지. 신궁 식년천궁(式年遷宮, ※역주: 신사(神社)에서 일정한 해에 새 신전을 짓고 제신(祭神)을 옮기는 일)을 위해서 기부하자. 일단 3000관 정도면 되려나"


"시즈코 님이시니 가신이나 병사들에게 나누어주실 거라 생각했는데요"


"그것도 좋지만, 슬슬 다른 곳에도 돈을 돌게 해야지. 그러러면 큰 곳에 쓰는 편이 편해. 기부하면 나중에 '오다 가문은 종교 세력(寺社勢力)을 멸망시킬 생각은 없다'는 어필도 되고 말야"


노부나가는 종교 세력에 가혹한 태도를 견지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평등하게 대우하고 있었다. 적대한다면 어떤 종교, 종파를 불문하고 싸우고, 중립이나 아군 진영의 편을 든다면 평등하게 보호했다.

시즈코가 포경(捕鯨)에 활용하고 있는 고래 신사(鯨神社)가 노부나가에게 아무 말도 듣지 않고 활동할 수 있는 것도, 그들은 노부나가와 적대할 생각은 없이 말 그대로 고래에 관한 일에만 종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말하면 무구(武具)를 구입하고 낭인(浪人)을 고용하기 시작하면 노부나가의 눈길을 끌게 된다.


"일단 주상께 이세 신궁에 대한 기부에 대해 허가를 받아줘. 그 이외에는 다른 사람들이 돌아왔을 때 생각하자"


"알겠습니다"


"잘 부탁해ー. 이제 곧 이사인데, 이사가 끝나면 모두에게 직함 같은 걸 줘야겠네. 슬슬 제대로 조직화하지 않으면 누가 뭘 담당하고 있는지 알 수 없게 되니까"


노부나가가 준비한 시즈코의 저택에 이사하면, 지금 이상으로 고용인(家人)이 늘어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지금까지처럼 어정쩡한 조직으로는 운영할 수 없게 된다. 원활하게 가문을 운영하기 위해서도 직함을 정해줄 필요가 있었다.


"이미 생각하신 바가 있으신가요"


"일단 바깥쪽과 안쪽을 구별해야지. 바깥쪽은 케이지 씨나 카츠조(勝蔵) 군들이 정점이고, 안쪽은 아야 짱이나 쇼우(蕭) 짱이 정점이려나"


"……그건……"


아야는 약간 망설였다. 쇼우는 마에다 토시이에(前田利家)와 마츠(まつ)의 딸이다. 집안(家柄)은 흠잡을 데 없고, 실력도 다른 사람들이 인정할 정도다. 지금에 와서는 내용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서류(書状)에 '쇼우(蕭)'라는 도장(印鑑)을 찍어 처리할 권한도 있다.

즉, 시즈코의 집은 쇼우가 관리(切り盛り)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반면 아야의 작업은, 지금도 시즈코가 사적, 공적을 가리지 않고 소유하고 있는 것들의 관리이다. 즉, 창고의 물건과 돈의 관리. 바꿔 말하면 아야의 일은 현대에서 말하는 관재인(管財人)이 된다.


"집안 같은 건 신경쓸 필요 없어. 그렇다기보다 나는 창고의 관리를 누구에게 맡길지가 가장 고민되는 부분이었거든"


"그건 어째서인가요"


"간단해. 내 창고에는 여러가지가 들어있어. 그 중에는 아직 세상에 알리고 싶지 않은 것들도 있어. 그런 것들의 유혹에 지지 않고 제대로 관리하는 사람이 창고를 담당해 줬으면 하는거야. 타케다와의 싸움도, 창고에 보관하고 있는 신식총이 유출되었다면 지금같은 결과가 되지는 않았을 테니까"


돌려 말한 것이지만 시즈코가 하고 싶은 말은, 가장 신용하고 있는 것은 아야라는 것이었다.


"시즈코 님의 믿음에 보답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조금은 편하게(デレ) 가자고, 아야 짱. 지금은 다른 사람도 없으니까, 자! 언니의 가슴에서 감격의 눈물을 흘리거라!"


양손을 펼치고 웰컴(welcome)을 하는 시즈코를 보고, 신용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느꼈던 감사한 마음이 싹 날아간 아야였다.


"그럼 3000관문을 준비해 오겠습니다"


"어~이, 이대로는 나는 꽤나 썰렁한데 말야…… 큭, 아야 짱이 편하게 행동하는 날은 언제가 되는 것이냐"


"바보같은 말씀 하지 마시고, 정월다운 일을 하며 지내 주십시오"


그런 말을 하는 아야는 깨닫지 못했다. 그녀 자신이 희미하게 미소를 떠올리고 있다는 것을.




이제 곧 이사라는 타이밍에 노부나가로부터 쿄(京)로 동행하라는 명령이 시즈코에게 전달되었다.

매사냥을 한다는 것이 표면적인 이유였으나, 진짜 목적은 달리 있다고 시즈코는 이해했다. 애초에 매사냥을 하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무장(武装)을 지시받았기 떄문이다.

명백한 시위(示威) 행위였다. 노부나가는 자신의 기세를 드러내보여, 적대자들의 반항의 싹을 잘라버릴 생각이었다. 그러기 위해서 시즈코 군을 활용할 생각이라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꽤나 심한 생각을 하시네. 뭐 이걸로 싸움이 줄어든다면 좋은 거지만"


명령서를 다 읽은 시즈코는, 아야에게 평소의 멤버를 모으도록 지시했다. 케이지만큼은 어디에 있는지 몰라서 시간은 걸렸지만, 어찌어찌 전원을 모으는 데 성공했다.


"후아아~, 자고 있는데 깨우다니, 시즛치는 너무한데"


"미안해요. 뭐, 일이라고 생각하고 포기해요. 이게 끝나면 아마 한가해질 거라 생각하니까"


크게 하품을 하면서 불평하는 케이지에게 시즈코는 한 손을 세우며(拝む) 사과했다. 케이지도 그렇게까지 불만은 아니었던 듯, 사이조가 팔꿈치로 찌르자 볼을 긁으며 입을 다물었다.


"그럼, 이번에는 단순히 쿄로 가기만 하는 거에요. 다만 이런저런 속셈들이 얽혀 있으니, 제대로 무장을 하고 가는 거에요. 뭐 이쪽은 이만한 힘이 있다, 라고 보여주기 위한 거겠죠"


"그거 참 의욕이 솟지 않는 얘기네.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나갈 필요가 있는거야?"


"자자, 이 정도로 떨어져나가는 상대 같은 건 처음부터 기대하지 않아도 되잖아요. 힘을 보여주고, 그래도 싸울 기개를 가진 상대를 확인한다고 생각하면 나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음, 뭐…… 그건 그렇네"


가장 먼저 불평하던 케이지를 시즈코는 간신히 설득했다. 의욕이 솟지 않는 것은 시즈코도 마찬가지다.

굳이 그런 짓을 하지 않아도, 이미 타케다와의 싸움에서 실컷 실력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이 이상 보란 듯이 뭘 할 필요는 없다고 시즈코도 생각하고 있었다.


"뭐, 쿄에서는 놀아도 문제없지 않겠어요? 비용이라면 어느 정도는 내줄게요"


"휘익ー, 과연 시즛치. 말이 통하잖아"


"이봐, 한심한 소리를 하지 마라. 평범해 보이지만, 시위 행위도 중요한 일이라고"


"알고있어. 알고는 있지만, 재미없는 건 재미없다고"


"뭐ー 나도 내키진 않아요. 하지만, '그것'을 수령해야 하니까, 마침 잘 됐다고 생각하려고 해요"


"오, 그럼 드디어 양도받을 수 있는 건가!!"


시즈코의 말에 나가요시가 반응했다. 나가요시의 질문에 시즈코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두 손을 쳐들며 기뻐했다.

'그것'은 해외의 토종(土着) 고양이였다. 터키시 앙골라에 반한 이후, 노부나가는 다른 해외의 고양이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더 많은 해외의 고양이가 가지고 싶다, 언제부터인지 그런 욕구를 품게 된 노부나가는, 시즈코에게 '돈은 얼마든지 들어도 좋다. 다른 고양이도 모아라'고 명했다.


가지고 있는 연줄을 최대한으로 활용하여 시즈코는 서양 고양이를 모았다.

우선 러시아 동부에서 자연발생한 토종 고양이 사이베리안(Syberian). 서력(西暦) 1천년 무렵부터 존재가 확인되어, 지금은 러시아의 역대 대통령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고양이다.

호기심이 와성하고 두뇌가 명석하면서 온화하고 참을성이 강하며, 그리고 어리광이 많은 성격의 고양이다.

그러면서 탁월한 사냥 능력을 가지고 있어, 물을 기피하는 고양이 종류임에도 물고기를 포획하는 사이베리안까지 확인되었다.


다음으로 영국의 토종 고양이인 브리티쉬 숏헤어(British Shorthair). 그 시작은 고대 로마가 영국을 침공했을 때, 식량을 노리는 쥐 대책으로 데려온 고양이가 시초라고 전해진다.

20세기에 품종의 표준화가 확립되었으나, 그보다 1세기나 전에 영국 국내에서 토종 고양이로서 관심을 받고 있었다.

본종(本種)은 단모종(短毛種)이지만, 장모종(長毛種)으로서 브리티쉬 롱헤어(British Longhair)라는 고양이도 존재한다. 이쪽은 비교적 새로운 고양이 품종이다.


다음으로 노르웨이의 토종 고양이 노슈크 스쿠캇(Norsk skogkatt, ※역주: 구글번역에서 들은 발음대로 적음). 영어로 노르웨지언 포레스트 캣(Norwegian Forest Cat)이라고 불리며, 의미는 노르웨이어와 마찬가지로 노르웨이숲 고양이다.

노르웨이에서는 옛부터 존재하는 토종 고양이인데, 4천년 이상 전부터 존재하는 고양이라거나, 남유럽에 있던 단모종이 노르웨이의 추위에 견디기 위해 장모종으로 변화했다거나, 11세기에 바이킹이 데려온 고양이가 원조라고 하는 등, 지금도 그 기원이 뚜렷히 밝혀지지 않았다.

확실한 것은, 방수기능이 있는 2중 털 등, 노르웨이의 환경에 적응했다는 점이다.

다만 한랭지방에 적응한 품종이기에, 아열대나 열대 지방에서는 열중증(熱中症)에 걸리기 쉽고, 방수를 위한 피부는 피부염에 걸리기 쉬운 문제가 있다.


마지막으로 가장 오래된 집고양이라고 하는 이집트의 토종 고양이 이집션 마우(Egyption Mau). 마우란 고대 이집트어로 고양이를 의미한다.

피라미드의 벽화에도 이집션 마우로 보이는 것이 그려져 있어, 이집션 마우는 고대 이집트 때부터 존재했던 게 아닐까라고 추측되고 있으나 확증은 없다.

반점(斑点) 무늬를 가진 고양이인데, 이 무늬는 고양이 품종들 중에서 유일하게 사람의 손이 닿아 생겨난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반점 무늬가 되었다고 한다.


참고로 현대의 이집션 마우는 가장 오래된 고양이로 유명한데, 러시아 왕녀 나탈리(Natalie Trubetskaya)가 이집트에서 집고양이를 몇 마리 들여와서 미국에 고양이들과 함꼐 망명한 후에 품종개량된 고양이가 정식 품종으로 등록되었기에, 비교적 새로운 미국 원산(原産)이라고도 한다.

시즈코가 들여온 것은 나탈리 왕녀가 이집트에서 들여왔다고 하는 집고양이다. 혼란을 막기 위해 시즈코는 이집션 마우라고 부르기로 했다.


이러한 토종 고양이들을 구입한 시즈코였으나, 그 구입 방법은 조금 특수했다. 일단 이 시대에, 고양이는 짐을 쥐로부터 지키는 중요한 존재였다.

항상 보아 익숙한 토종 고양이라고는 해도, 남만 상인들은 고양이를 간단히 넘겨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시즈코는 고양이를 일시적으로 맡아서, 일본에서 번식시킨 후에 남만의 배에 부모 고양이를 반납한다는 방법을 취했다.

물론, 그 동안 선박은 이동할 수 없게 되지만, 그에 드는 비용은 노부나가(정확히는 사카이(堺)의 상인들)가 부담했다.


이렇게 키워진 새끼 고양이가 드디어 양도될 수 있는 시기가 되었다. 양도는 언제나처럼 쿄에서 이루어진다.

그밖에도 시즈코가 의뢰한 것들이 있지만, 그건 다음으로 미루어도 문제없었다.


"좋아좋아, 나는 의욕이 마구 솟아나는데"


"타산적(現金な)인 녀석이군"


나가요시의 180도 달라진 태도에 사이조는 어이가 없어졌다. 하지만 의욕이 없는 것보다는 있는 쪽이 낫다고 생각하고 그 이상의 쓴소리는 하지 않았다.

케이지는 의욕이 없는 태도이기는 했지만, 시간때우기는 될 거라고 생각했는지 강한 거부반응을 보이지는 않았다.


"뭐, 편한 마음으로 가자고요. 그럼 잘 부탁해요"


시즈코의 마무리에, 각자 나름대로 대답했다.




1월 하순, 쇼군 요시아키는 타케다가 패한 것 때문에 마지못해 노부나가에게 항복했다. 하지만, 노부나가 본인은 요시아키가 오다 가문에 적대하여 거병했던 것조차  몰랐다.

몰랐다, 라기보다 떠오르지조차 않았다. 왜냐하면 그의 머릿속은 시즈코가 타케다를 쳐부술 때까지 계속 그쪽에 집중되어 있었던 것이다.

처음으로 알게 된 미츠히데(光秀)도 보고를 올리기는 했지만, 그 이후에는 타케다에게 집중하고 있었기에 쿄에 돌아왔을 때 요시아키로부터 사자가 와서 겨우 기억해냈다는 상황이었다.


그 정도로 요시아키의 거병은 노부나가에게는 하찮은 일에 불과했다.


이번에, 형식상으로는 경솔하게 거병한 요시아키에 대해 쓴소리를 하는 형태이지만, 쿄의 모든 사람이 노부나가는 요시아키를 징벌하기 위해 왔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실제로 그 생각은 맞았다. 단지 질책할 뿐이라면 군대를 끌고오지는 않는다. 군대는 요시아키에 대한 위압과 위협을 위한 것이라고 쿄의 백성들은 생각했다.


"그러고보니, 이제 곧 오다 군이 오는 모양이야"


"쇼군 님은 거병했다면서 한 번도 싸우기 전에 항복한 건가. 하여간 한심하구만"


"맞아맞아, 하다못해 한 번은 좀 싸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까지의 언동이 겹쳐서, 쇼군 요시아키에 대한 경의 따윈 바랄 수도 없었다. 애초에 경의가 없다면 천하인조차 바보 취급하는 것이 쿄의 백성들이다.

한 번도 싸우지 않고 항복했다고 하면 아무리 쇼군이라고 해도 비웃고, 웃음거리로 삼는다.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그들이 향하고 있던 쪽과는 반대쪽에서 남자가 한 명 달려왔다.


"오, 상황을 보러 간 녀석이 돌아왔네. 어땠어?"


"어, 어어어어떘어가 아냐! 이, 일단 물러나, 너희들!"


무릎에 손을 짚고 호흡을 고른 남자는, 다급하게 밀어내듯이 남자들을 가장자리로 비켜나게 하려 했다. 곤혹스러워진 남자들이었으나, 그 비정상적인 당황함에 투덜거리면서도 그 말을 따랐다.

도로 가장자리로 비켜나고 조금 지나자, 오다 군의 깃발이 보였다. 보려고 목을 길게 뺀 남자를, 상황을 보고 왔던 남자가 다급히 잡아끌었다.


"(뭐, 뭐야. 보는 정도는 문제없잖아)"


"(됐으니까 내 말대로 해!)"


그러고 있을 때 오다 군이 그들의 시야에 들어올 정도로 가까워졌다. 그리고, 상황을 보고 왔던 남자가 비정상적인 모습을 보인 이유를 그들은 알게 되었다.


오다 군의 행진은 대단히 통솔이 잘 잡혀있었다. 5명을 한 줄로 하여, 굵은 나무 같은 열을 짓고 있었다.

보통, 잡병이나 아시가루(足軽)가 뒤섞이면 대열은 모양새를 갖추지 못하고 가늘고 긴 형태가 된다. 그런데 등간격(等間隔)으로 열을 짓고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경악스러운 광경이다.


게다가 무장도 놀라웠다. 양쪽 끝의 사람들은 창을 들고 있었으나, 안쪽의 세 명은 총을 장비하고 있었다. 그게 길게 열을 짓고 있다. 이해력이 좋은 사람이라면 그것만으로도 대량의 화승총을 소지하고 있다, 라고 생각한다.

하물며 멀리서 보고 있던 간자들이라면, 그 광경만으로도 어떻게 보고해야 할지 골머리를 썩을 것이다.


(거 참, 주상께서도 짓궂으시다니까. 분명히 쇼군하고 쿄에 있는 간자들 양쪽에게 보여주려고 하는 거겠지. 현대에서 말하는 군사 퍼레이드일까?)


벌써 몇 번째 본건지 알 수 없는 쿄의 백성들의 놀란 얼굴을 흘려보면서 시즈코는 말고삐를 쥐었다. 도보 행진 훈련은 현대의 자위대도 할 정도로 체력의 향상을 목적으로 한 기본적인 훈련이다.

또 하나, 지형의 파악이라는 목적도 있지만, 시즈코는 체력의 향상을 주 목표로 하고 있었다. 병사 훈련소에서는 기본 중의 기본이며, 입대한 사람 모두가 셀 수 없을 정도로 한다.

훈련에 따라서는 배낭의 무게가 바뀌어, 가벼우면 20kg, 무거우면 60kg를 짊어진다. 거리도 짧으면 몇 km이지만, 길면 오와리에서 기후까지 이동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기에 노부나가는 시즈코 군을 쿄로 데려왔다. 통솔이 잡힌 군대가 많은 화승총(절반 이상은 훈련용의 사격성능이 없는 목업)을 장비하고 있는 광경은 적의 전의를 꺾기에 충분하다.

무장하고 행진하기만 하면 반항의 싹을 자르고, 쓸데없는 싸움을 줄이며, 적을 편드는 자들까지 줄일 수 있다. 게다가, 노부나가를 따르는 것은 타케다를 쓰러뜨린 시즈코 군이다.

노부나가의 입장에서는 이만큼 효율이 좋은 책략은 없었다. 얼핏 보기에는 그냥 걷기만 하는데 적이 줄어드는 것이니.


(뭐, 쓸데없는 싸움이 줄어드는 건 나도 찬성이지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시즈코는 목적지로 향했다.


그들을 놀란 표정으로 바라본 쿄의 백성들은 한동안 멍하니 있었다.


"……뭐, 뭔가, 전에 봤을 때보다 더 강해진 거 아냐? 오다 군은"


누군가가 중얼거리고, 이어서 겨우 실감이 났는지 남자들은 얼굴에서 땀을 흘렸다.


"장난 아닌데…… 저런 놈들에게 거스르려는 건 바보나 하는 짓이야"


"맞아맞아. 게다가 생각해봐. 오다 군이 강하다는 건, 이 도시가 안전하다는 이야기야"


"소문으로는 타케다 군이 전력으로 싸웠는데 박살을 내서 쫓아버렸대"


"으ー음, 오다 군은 굉장하네"


그 후에도 남자들이 이러쿵저러쿵 대화를 하고, 그 대화를 들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를 전해, 어느새 원래 이야기에 꼬리 뿐만이 아니라 다리까지 붙어서 멋대로 부풀려져버렸다.

쿄의 백성들의 오다 군에 대한 소문을 들었을 때, 노부나가는 남의 눈도 신경쓰지 않고 크게 소리내어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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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에피소드 2



08 끓어오르는 피



"다녀와라, 요시나리(可成)"


식사 자리에서 노부나가는 모리 요시나리(森可成)에게 그렇게 말했다. 갑작스런 말에 모리 요시나리는 사고가 따라가지 못해 술잔을 한 손에 든 차로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즉시 노부나가의 말의 의미를 이해했다.


"예, 아니…… 소생(某)은……"


이해했지만 모리 요시나리는 곤혹스러웠다. 은퇴한 노인이 이제와서 어정어정 나갈 자리가 아니다, 라고 그는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심으로는 미련이 막심한 것을 노부나가는 꿰뚫어보고 있었다. 그렇기에 노부나가는 말했다.


"그걸로 네가 납득할 리가 없지 않느냐. 결판을 짓고 와라"


말한 후 노부나가는 잔을 기울였다. 반대로 모리 요시나리는 술잔을 손에 든 채 입을 다물었다.

두 사람이 나누고 있는 대화는, 모리 요시나리에게 타케다(武田)와의 싸움에 따라가라, 는 내용이었다. 모리 요시나리는 어깨의 부상으로 전선에서 물러나, 이후에는 노부나가의 정부를 보좌하는 역할에 충실하고 있었다.

하지만 마음 속 깊숙한 곳에서는 항상 맺힘이 남아 있었다. 나가요시(長可)를 훈련시키고 있을 때 모리 요시나리는 그것을 깨달았지만, 억지로 마음 속 깊숙히 가두어놓았다.


"나는 화려하게 죽으라고 말하는 게 아니다. 네가 생각하고, 어떻게 하고 싶은지만 대답해라. 주위가 무슨 말을 해도 신경쓰지 마라. 내가 입을 다물게 하겠다"


"영주님……"


모리 요시나리는 한 번 예를 올린 후 잔을 비웠다. 단번에 넘어간 강한 주정(酒精)이 목구멍을 태우며, 모리 요시나리는 전신이 뜨거워지는 감각을 느꼈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무시하고 다시 노부나가에게 고개를 숙였다.


"불초(不肖), 모리 산자에몬 요시나리(森三左衛門可成). 미련이 남아있습니다. 그렇기에, 피가 끓는 것에 따르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번뇌하던 태도가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모리 요시나리는 한 조각 망설임조차 보이지 않고 선언했다.

타케다 와의 싸움이라고 하면 살아서 돌아올 수 있는 확률 쪽이 적다. 죽어버리면 노부나가의 보좌를 할 수 없게 된다.

노부나가의 명령이 아니라 자신의 뜻(我)을 관철시키기 위해 주군의 정무에 차질을 줄 지도 모르는 것이다. 모리 요시나리로서는 고민 끝에 낸 결론이었다.


"보고를 기다리고 있겠다"


하지만 노부나가는 신경쓰지 마라, 라고 말하듯 가볍게 대답했다. 모리 요시나리는 노부나가의 대답을 듣고 더욱 깊게 고개를 숙였다.


지금부터 수라(修羅)가 되겠습니다. 그렇게 선언하고 모리 요시나리는 자리를 떴다. 남겨진 노부나가는 잔의 술을 한 입 머금었다.


"……타케다와의 싸움이 끝나면, 지금부터 세상은 철포(鉄砲)가 주체가 되지. 무용을 자랑할 수 있는 것도 이것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


이미 세상은 철포가 주전력(主戦力)이 되어가고 있었다. 얼마나 철포를 소유하는가에 의해 싸움의 승패가 갈린다, 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네고로슈(根来衆)나 사이카슈(雑賀衆)가 대접받고 있었다. 하지만, 시즈코의 작전이 성공하면 오다의 텟포슈(鉄砲衆)가 일본 제일의 자리에 오른다.

이미 혼간지(本願寺)나 우에스기(上杉)조차 두려워할 게 되지 못하게 된다. 아무리 무명이 높은 명장이라 하더라도, 이름없는 병사가 쏘는 한 발의 총탄에 목숨을 잃는다.

개인의 무용이 대접받는 시대는 끝난다. 지금부터는 집단전법이 기본이 되며, 무장은 전투능력이 아니라 지휘능력이나 용병능력을 시험받게 된다.


"하지만, 요시나리도 곤란한 녀석이군. 가고 싶으면 솔직히 말하면 될 것을…… 하여간 손이 많이 가는군"


그렇게 말한 노부나가였으나, 문득 어떤 것을 떠올리고 엷게 웃었다.


"아니…… 지금까지 실컷 녀석을 고생시킨 것은 나인가. 그렇다면, 이것은 요시나리의 충근(忠勤)에 대한 보답이 되겠지"


스스로 술을 잔에 따랐다. 흔들흔들 흔들리는 술의 수면을 노부나가는 가만히 바라보았다.


"요시나리, 실컷 날뛰고 와라. 너를 붙잡는 멍청이(阿呆)가 있다면, 내가 그놈의 목을 날려주마"


그렇게 말하며 노부나가는 잔을 하늘높이 치켜들고, 말이 끝남과 동시에 잔의 술을 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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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에피소드 2



07 죽을 장소를 버렸다



케이지(慶次)는 툇마루(縁側)에서 혼자 달구경(月見)을 하며 술을 즐기고 있었다. 밤하늘을 수놓는 수천만의 별들, 한층 더 밝게 빛나고 있는 달, 현대에서는 결코 맛볼 수 없는 밤하늘의 광채가 술안주였다.

누워서는 밤하늘을 감상하고, 생각난 듯 일어나서는 잔을 기울였다. 느긋한, 그러나 자유로운 시간의 흐름을 케이지는 즐기고 있었다.


"괜찮겠나"


케이지의 귀에 발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그를 향해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의 주인은 처음부터 앉을 생각이었던 듯, 케이지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툇마루에 앉았다.


"예쁜 여자라도 한 명쯤 데려와라, 사이조(才蔵)"


"술을 마시는 데 여자를 데려올 필요는 없잖나"


옆에 앉은 인물, 사이조에게 익살맞게 말을 건 케이지였으나, 사이조의 진지한 대답에 쓴웃음을 지었다.

애초부터 본심은 아니었지만, 사이조는 항상 진지하게 받는다. 하지만, 그게 케이지에게는 마음이 편했다.


"한 가지 묻고 싶다"


잠시 서로 말없이 달구경을 하며 술을 즐기고 있었으나, 그 침묵을 깬 것은 사이조였다. 그는 시선을 달로 향한 채 말을 이었다.


"요즘 아무래도 맥이 빠진 듯 보이더군. 뭔가 걱정거리라도 있는 건가?


"……그게 아냐. 단지, 죽을 장소가 없어졌구나라고 생각한 것 뿐이야"


"그런가"


케이지의 대답에 사이조는 그 말만 하고는 술을 마셨다. 말하고 싶으면 해라, 하기 싫으면 화제를 바꿔라, 라고 케이지는 사이조의 태도를 그렇게 받아들였다.

케이지는 작게 한 번 웃더니, 잔에 있던 술을 비웠다.


"나와 싸운 사나다(真田)는 '지금부터는 철포(鉄砲)의 세상이다'라고 말했어. 그런 건 예전부터 이해하고 있었지. 그 총을 봤을 때 말야"


"그것과 죽을 장소를 잃은 것에 무슨 관계가 있나"


"간단해. 그건 강력한 무기야. 지금부터 칼이나 창으로 싸우는 싸움은 줄어들겠지. 돈의 힘과 그 총의 힘, 그것만으로 적은 항복해. 내가 죽을 장소를 정할 싸움은 이제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아. 그게 굉장히 슬프다"


"죽을 장소인가…… 확실히 그 말대로군. 이제 무사의 세상은 끝을 맞이할지도 모르지. 세상은 돈으로 돌아가고, 돈으로 움직이지 않는 자는 이단자(はみ出し者)로 취급받게 되지"


"쓸쓸한 세상이군. 하지만, 이게 세상의 흐름인지도 몰라"


술을 다 마시자 케이지는 드러누웠다. 그것을 본 사이조도, 자신의 잔에 남아있는 술을 마셔버리고 케이지를 따랐다.

툇마루에 남자 두 명이 드러누워 달을 바라본다. 화려함은 없었지만, 마음이 느슨해지는 편안한 분위기가 있었다.


"철포의 세상이라. 사실은 더 전부터 알고 있었어. 시즛치의 방식은 싸움을 줄여서 세상을 평온하게 하려고 하고 있다는 것도 말야"


"그런가"


"이해한 후, 그래도 생각했어. 시즛치가 그리는 세상은 어떤 걸까 하고. 설령 죽을 장소를 버리게 되어도, 말야. 하핫, 사나다 녀석은 지금쯤 웃고있을지도 모르겠네. 그렇게 죽을 장소를 자주 바꾸지 말라고"


"좋지 않나. 죽을 장소는 꼭 전장이어야 하는 건 아니지"


그렇게 말하며 사이조는 잔을 기울여 술을 입에 머금었다.


"소생은 단순하다. 지금까지도, 그리고 지금부터도 시즈코 님을 섬긴다. 바라자면, 죽어서도 그 분을 섬기고 싶다"


사이조답다, 고 케이지는 생각했다. 시선을 달로 항하고 케이지는 지금까지의 일을 돌이켜보았다.

처음에는 엉망진창인 조합이라고 생각했다. 말썽꾸러기(暴れん坊)인 카츠조(勝蔵), 까다로운 사이조, 그리고 카부키모노(傾奇者)인 자신. 평범하게 생각하면 제대로 기능할 거라 생각되지 않는 조합이다.

그러나 시즈코라는 윤활유가 사이에 들어가게 되자, 아귀가 맞지 않던 톱니바퀴가 함께 돌기 시작했다. 시즈코의 존재를 순수하게 대단하다고 케이지는 생각했다.


"카츠조 녀석은 어떡할까"


"훗, 녀석은 이래저래 말은 하지만, 무슨 일마다 시즈코 님께 어리광을 부리고 있지. 이제와서 녀석이 시즈코 님의 곁을 떠날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데"


"아ー, 그럴거야. 설령 떼어놓으려고 하면 전력으로 투정을 부리겠지"


만약 시즈코의 곁을 떠나게 되었을 때 나가요시(長可)가 어떤 행동을 취할지 상상한 두 사람은, 소리죽여 웃었다.


"뭐, 그런 나도 떠날 생각은 없지만 말야"


"맛있는 밥과 술이 없어지니까 말이지"


"풍요로운 인생을 보내는 데 맛있는 밥과 술은 중요하다고"


"그 말이 맞다. 하지만, 밥 이야기를 하면 배가 고파지는군"


"창고 열쇠는 받아놓았지만, 저번 같은 실수를 하면 문제야"


"그건 그렇군"


케이지가 말하는 저번의 실수란, 술안주를 찾아 창고를 열었을 때, 시즈코가 노부나가에게 헌상하기 위해 준비한 '전복 간 젓갈(塩辛)'을 술에 어울린다며 전부 먹어버린 사건이다.

항아리에 '취식(つまみ食い) 금지'라는 종이가 붙어 있었으나, 꺼냈을 때 떨어진 모양이라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애초에 취해 있었기에 종이가 붙어 있었어도 눈치챘을지는 알 수 없지만.

물론, 다음 날 다 먹어버린 것을 알게 된 시즈코에게 케이지와 사이조, 그리고 이곳에 없는 나가요시가 나란히 사죄한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술을 못 마시면서 시즛치는 어째서 그만한 술안주를 만들 수 있는 걸까"


"듣자 하니 아버님이나 할아버님께 자주 만들어드렸다고 하더군. 그래서 재료만 있으면 어느 정도는 만들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런가. 하지만 오다 나으리에게서 여전히 금주령이 내려져 있잖아? 그만큼 맛있는 술안주를 만들 수 있으면서 술을 못 마신다니 아깝네"


"술안주는 밥에도 어울리지, 그렇게 곤란할 것 같지는 않은데"


"그건 그렇네"


그 후에도 이야기는 끊이지 않았고, 두 사람은 가끔 술을 마시고는 달을 바라보고, 드러누워서 담소하기를 계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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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에피소드 2



06 난월어기(卯月御記, ※역주: 우즈키(卯月) 기록(御記)) (현대어 스타일)



4월 14일


오다(織田) 단죠노죠(弾正忠)로부터 헌상된 고양이는 매우 아름답고, 기품있는 태도에는 눈을 끄는 구석이 있다.

이름을 우즈키(卯月)라 하고, 오늘부터 짐이 돌보게 되었다.

후궁 여인들이나 공가(公家)의 자들은 짐이 돌보는 것에 난색을 표했으나 어쩔 수 없다.

짐은 오다 단죠노죠에 거스를 힘 따위 없다. 헌상된 고양이를 함부로 다룰 수도 없다.

놈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짐이 스스로 돌보는 것이 조정이 살아남을 길이리라.

그건 그렇고 우즈키는 귀엽구나.



5월 23일


우즈키가 온 지 30일은 지났는가. 평소에는 어딘가 어두운 궁궐(御所)이 밝아보인다.

다들, 우즈키의 아름다우면서 자유로운 태도에 미소를 짓고 있다.

귀여우면서도 우쭐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행동하는 모습은 훌륭하도다.



6월 4일


우즈키의 식욕이 나쁘다. 오다 단죠노죠에게 물었더니 흔히 있는 일이라 한다.

신경쓸 필요 없다, 라고 해도 신경쓰인다. 빨리 건강해지도록 짐은 신불(神仏)에게 기도하였다.



6월 6일


뭔가 먹이고 있는 것이 문제, 라고 오다 단죠노죠로부터 회신을 받았다.

당장 평소에 먹이고 있는 것을 그에게 알려주었다.

빨리 건강해졌으면 좋겠구나.



6월 9일


우즈키의 몸이 좋지 않은 이유가 판명되었다.

아무래도 파 종류를 삶았던 냄비로 함께 우즈키의 식사를 만들고 있었던 듯 하다.

고양이에게 파는 안 되는 것인가. 짐은 한 가지를 배웠노라.

당장 우즈키를 위한 냄비를 준비하자, 라고 생각햇더니 오다 단죠노죠가 냄비를 선물로 보내왔다.

처음에는 난폭한 토호(土豪)라 생각했으나, 의외로 알뜰한 듯 하다. 짐은 아직 멀었구나.



6월 15일


우즈키의 몸이 좋아져, 오늘도 힘차게 밖에서 뛰놀고 있다.

아름다운 몸을 가졌으면서, 남의 눈을 신경쓰지 않고 뛰놀 수 있는 자유로움은 부럽기도 하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우즈키의 매력이다.



6월 16일


오늘은 축축하니 비가 내리고 있다. 우즈키가 쓸쓸한 듯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마음이 아파진다. 내일은 맑아지거라, 고 신불에게 기도했다.



7월 1일


지긋지긋한 장마가 지나가고 매일 더위를 느끼는 성하지절(盛夏の候). 제아무리 우즈키라도 더위에는 당할 수 없는 모양이다.

요즘 짐의 차양막(日避け)에 들어와서 더위를 식히고 있다. 귀엽구나.



8월 4일


우즈키가 입을 벌리고 거칠게 숨을 쉰다. 즉시 오다 단죠노죠에게 서신을 보냈다.



8월 6일


열중증(熱中症)이라고 오다 단죠노죠로부터 회신이 왔다. 당장 시원하고 바람이 잘 통하는 방에서 쉬게 했다.



8월 8일


우즈키가 건강해졌다. 짐은 신불에게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8월 15일


오다 단죠노죠로부터 서신이 왔다.

자신이 키우고있는 토라지로(虎次郎)가 얼마나 귀여운지에 대한 자랑이 길게 쓰여 있었다.

이 무슨 굴욕인가. 답신에 우즈키의 사랑스러움을 시(和歌)로 적어보냈다.

결국은 시골(田舎) 호족(豪族)일 뿐인가. 우즈키가 가장 귀여운 게 당연하지 않은가.



9월 10일


평소에는 나무에서 놀지만, 최근 다치지나 않을지 조마조마해지는 경우가 있다.

잠시 생각한 후, 전용의 집(小屋)을 세우는 게 좋다는 결론에 달하였다.

당장 기술자를 부르도록 명했다. 비용은 오다 단죠노죠에게 내도록 명하였다.



9월 18일


우즈키 전용의 집이 완성되었다. 제법 잘 만들어졌다.

우즈키도 마음에 든 듯 벌써부터 놀고 있다. 잘 되었구나.



9월 21일


오다 단죠노죠로부터 시가 도착했다. 내용은 토라지로에 대한 것이었다.

짐에게 거역하다니 어리석구나. 바로 우즈키의 사랑스러움을 시로 적어보냈다.

어리석은 놈이. 우즈키가 가장 귀여운 게 당연하지 않느냐.

어서 포기하거라.



10월 6일


오다 단죠노죠의 말이 바르다면, 우즈키와 똑같은 고양이는 세 마리가 더 있다고 한다.

고노에(近衛)에 아케치(明智), 그리고 호소카와(細川)인가. 다른 고양이도 만나보고 싶은 마음은 있다.



10월 9일


요즘 우즈키가 쌀쌀맞다.

혹시 다른 고양이를 만나보고 싶다, 고 생각한 것이 원인인 것일까.



10월 12일


후궁 여인들이나 공가의 자들이 짐은 고양이를 지나치게 소중히 한다고 쓴소리를 했다.

잊고 있었다. 우즈키는 자유롭고 마음내키는 대로 행동하는 모습이 아름답다는 것을.



10월 13일


또 후궁 여인들이나 공가의 자들이 쓴소리를 했다.



10월 15일


어제와 오늘, 이틀이나 우즈키를 예뻐하지 않았다.



10월 16일


오늘도 지나치게 우즈키를 예뻐하지 않도록 했다.

업무는 차질없이 마쳤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평소보다 피로를 느낀다.



10월 17일


기분이 좋지 않다. 중요한 업무만 마치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10월 18일


몸이 좋지 않다. 우즈키에게 병이 옮지 않도록 떨어져 지낸다.

허탈감이나 피로감이 든다. 현기증이 나고, 뭘 하려고 해도 기력이 솟지를 않는다.

우즈키는 집에 끈으로 매어두었다고 한다.



10월 19일


병이 전혀 낫지를 않는다. 오늘은 죽 밖에 입에 대지 않았다.

이래서는 우즈키를 만날 수 없지 않은가.



10월 20일


오늘은 우즈키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말도 안 된다, 우즈키는 이곳에 없다.

짐의 몸은 어떻게 된 것일까.

아니, 짐보다, 짐이 없어진 후에 우즈키는 어떻게 될 것인가.



10월 21일


오늘도 몸은 좋지 않다. 무리하지 않고 천천히 업무를 끝냈다.

사소한 소리에도 신경이 쓰인다.



10월 23일


자리에 누워 있는데 우즈키가 모습을 보였다. 짐의 모습을 보고 안심했는지 한 번 울었다.

한동안 우즈키를 바라보고 있었다. 달빛에 비춰진 모습에서 신성한 분위기를 느꼈다.



10월 24일


오늘은 몸 상태가 좋다. 밀린 업무를 처리했다. 다들 신기해 했다.

밤에 우즈키가 짐을 만나러 온다. 그것만으로도 마음이 가벼워진다.



10월 25일


신기하다. 신하에게 들으니, 우즈키는 끈으로 매여 있다고 한다.

어째서 짐이 있는 곳을 올 수 있는 것일까.



10월 26일


오늘도 우즈키는 짐이 있는 곳으로 왔다. 이건 이제 신불이 우즈키에게 힘을 빌려주고 있는 증거.

짐은 미리 사람을 대기시켜 두었다. 우즈키가 있는 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니 다들 크게 놀랐다.

역시, 우즈키는 신불에게 축복받은 고양이인 것이겠지.



11월 4일


짐의 침실에서의 사건 이후, 우즈키를 끈으로 매어놓으려는 자는 한 명도 없게 되었다.

후궁 여인들이나 공가의 자들도 신불에게 사랑받고 있는 우즈키를 함부로 대할 수 없게 되었다.

시끄럽게 잔소리를 들을 일도 없어지고, 반대로 짐의 곁에 둬야 한다는 말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11월 24일


오다 단죠노죠의 이야기로는 이제 곧 우즈키의 나이는 (세는 나이(数え年)로) 2살이 된다고 한다.

성대하게 축하해 주어야겠다.



12월 3일


추운 날이다. 요즘, 우즈키는 매일 밤 짐의 침소에 숨어든다. 곤란한 녀석이다.



12월 6일


오다 단죠노죠로부터 이불(布団)이라는 것이 헌상되었다. 푹신푹신하고 따뜻하다.

이거라면 겨울의 추위도 견딜 수 있다. 우즈키도 마음에 들었는지 매일 밤 온다.



12월 14일


조금 이르지만 우즈키의 2살 생일을 미리 축하(前祝い)했다.



12월 28일


이제 연말(年の瀬)이다. 우즈키와 지낸 나날들을 되돌아본다.

대단히 마음이 따뜻해졌다.



12월 30일


이걸 쓰고 있을 무렵, 이미 이듬해가 되어 있으리라.

내년도 잘 부탁한다, 우즈키.



후세에서 우다 천황(宇多天皇), 이치죠 천황(一条天皇), 오오기마치 천황(正親町天皇)은 '3대 고양이 애호 천황'으로 불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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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

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에피소드 2



05 면(麵) 전쟁(戦争)



현대 일본은 세계에서 손꼽을 정도로 면(麺)을 좋아하는 국가라고 할 수 있다.

중국에서 발전한 랍면(拉麺, 중국이나 대만에서는 일본풍의 일본식 라멘과는 구별된다), 이탈리아의 파스타, 일본에 옛부터 있는 소면(素麺)에 소바(ソバ, ※역주: 메밀국수. 여기서는 고유명사 등의 관계로 그냥 소바로 쓰겠음), 우동 등 화양중(和洋中)을 막론하고 일본의 곳곳에서 즐겨지고 있다.

개중에는 본고장에는 존재하지 않는 일본에서 창작된 요리도 존재한다. 면요리에 국한되지 않고, 창작 요리에 대해 듣고 본고장 사람들이 놀라는 것은 종종 있는 일이지만, 일본의 경우에는 압도적으로 창작 요리가 풍부하다.


전국시대, 시즈코의 마을에서는 다양한 면요리가 경쟁하고 있었다. 가장 구하기 쉬운 소바가 가장 강하지만, 우동이나 라멘도 지지 않는다.

라멘이라고 해도 현대 일본처럼 밀가루와 물, 간수(かん水)로 뽑은 면이 아니라, 중국의 랍면인 밀가루와 물, 소금으로 면이 만들어진다. 그렇기에, 쫄깃함이 없고 부드러운 것이 특징인 랍면이 된다.

간수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조합하는 데 비용이 들기에, 기본적으로 오키나와 소바(沖縄そば)처럼 초목(草木)을 태운 잿물을 졸여서 위에 뜬 것을 간수의 대용품으로 사용한다.


"어서옵쇼, 어서옵쇼. 우리 집 소바는 오와리(尾張) 제일입니다ー!"


"까불고 있네! 남자라면 소바가 아니라 우동이지ー!"


"뭐라고! 우동이나 소바보다 당연히 소면이지!"


"새로운 '라아멘'은 어떠십니까? 소바나 소면에는 없는 새로운 맛을 즐기실 수 있습니다ー!"


여기저기서 호객 소리와 함께 다른 면을 깎아내리는 말이 날아다녔다. 이미 이해불가(摩訶不思議), 혼돈에 빠진 세계에 시즈코는 메마른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활기가 있는 건 좋지만, 활기가 지나쳐도 문제네"


시찰할 필요가 있지만, 시즈코는 싸움이 날 듯한 소란스러움을 보고 돌아가고 싶어졌다. 하지만 시찰을 하지 않을 수도 없었기에, 내키지 않았지만 길을 걸었다.

어느 가게나 손님들의 흥미를 끌만한 화려한 깃발(のぼり旗)을 세워놓고 있었다. 종가(宗家)라느니 원조(元祖)라느니 이것저것 쓰여 있었지만, 이미 뭐가 종가인지 쓴 본인도 모를 것이다.


"소바(蕎麦), 소면, 우동, 랍면이 4대 면인 거겠네. 하지만 뭐 토핑에도 집착이 있겠지"


소바 하나만 봐도 덴뿌라에 튀김 찌꺼기(天かす), 파(葱), 개중에는 생선을 얹는 가게도 있었다.

소바도 모리소바(もりそば, ※역주: 국물에 찍어먹는, 김을 올리지 않는 소바), 자루소바(ざるそば, ※역주: 김을 올려먹는 소바), 카케소바(かけそば, ※역주: 국물을 넣어 먹는 소바) 등 종류가 풍부하여, 다양한 조합을 즐길 수 있게 되어 있었다.


"뭔 소리야! 자루소바라고 하면 대나무발(竹ざる)이 당연하지!"


"멍청아! 옛날부터 자루소바는 나무찜통(蒸籠, ※역주: 정확하지 않을 수 있음)에 올리게 되어 있는 거야! 대나무발 따윈 사도(邪道)다!"


"아이고~~~, 너 진짜 모르는구나. 덴뿌라는 마지막에 올리는 거야 등신아!"


"츠키미소바(月見そば)의 계란을 뭉개지 마ー!!"


하지만 조합의 종류가 풍부하다는 것은, 먹는 방법의 파벌이 생기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실제로 여기저기서 먹는 방법에 대해 다투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떠들썩한 건 좋은 일이지만, 그 에너지를 다른 것에 쏟지 못하나, 하고 시즈코는 머리가 아파졌다.

하지만 식사, 특히 맛에 경제적인 리소스를 할애한다는 것은 사람들에게 여유가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사람들에게 여유가 있는 시대는 식사를 포함한 다양한 문화가 조성(醸成)된다. 하지만, 생활에 여유가 없을 경우, 화려한 문화 따윈 태어나지 않고 식사도 심플한 것 투성이가 된다.


"면 만으로 저만큼 난리니까, 다른 것도 마찬가지겠지"


식사라는 것은 문명의 척도이며, 그 나라의 축도(縮図)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람들이 평소에 무엇을 먹고 있는지로 그 나라의 생산력, 경제력을 알 수 있으며, 메뉴의 풍부함은 그만큼 잉여 생산된 것이 많은 사람들에게 돌아가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식재료가 풍부한 것은 유통이 발전되어 있는 것을 알려주며, 요리의 색이나 겉보기는 사람들의 미적 감각이 얼마나 길러졌는지를 엿볼 수 있다.

고작 요리, 하지만 나라의 문화, 문명의 척도를 알려주는 것, 그것이 요리이다.


면요리 가게가 늘어선 길을 빠져나와 시즈코는 다른 요리점 거리를 걸었다.


"다른 데도 별 차이 없네"


"면만이 식사는 아니라는 거지"


머리가 아파진 시즈코에게 케이지(慶次)가 가볍게 대답했다. 면요리점과 다르지 않은 도발적인 깃발,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호객 소리, 식사에 거는 열의는 면요리에 뒤지지 않았다.


"가까운 곳엔 항구가 있지. 그리고 양식을 통해 식재료는 대량 생산되고 있지. 산의 먹거리(山の幸)도 어느 정도는 유통되고 있으니, 이 마을 사람들이 요리에 열의를 보이는 것도 무리는 아니잖아?"


"열의가 지나쳐도 문제에요. 뭐 폭력사태로 번져 싸움을 하거나 가게를 부수는 게 아니라면 딱히 상관없으려나요. 모르는 사람이 보면 불량스러운 거리로밖에 안 보이겠지만요"


애초에 시즈코가 요리점 거리를 시찰하고 있는 이유는 요리점 거리에 불평이 어느 정도 쌓인 것이 이유였다.

사정을 모를 경우 요리점 거리의 다툼은 어쩔 도리가 없는 광경으로 보였다. 그것이 단지 열의가 지나친 것인지 정말로 싸움이 벌어지기 일보 직전인지 확인하기 위해 시즈코가 시찰하게 되었다.

시즈코가 케이지 말고 다른 사람을 데려오지 않은 것도 괜히 시찰이라는 게 알려져서 사람들이 평소와 다르게 행동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나는 자주 이 거리를 돌아다니니까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정말로 위험하면 그 전에 보고가 올라올테니까요. 그렇다고해서 방치해둘 수도 없잖아요. 제대로 자기 눈으로 확인하고 귀로 들어둬야죠"


"그러네. 뭐, 문제없으면 적당히 뭐라도 먹고 가자고"


"나쁘지 않네요. 하지만 돌아가지 않으면 집에서 밥을 짓고 잇는 사람들에게 미안하잖아요"


"그러네"


케이지는 시즈코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로부터 요리점 거리의 시찰을 마친 시즈코는 케이지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갔다. 점심식사 후, 그녀는 요리점 거리에 대한 보고서를 썼다.


개입할 필요 없음, 이라는 내용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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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에피소드 2



04 창고 청소



시즈코가 보유한 창고는 많다. 세금으로 받은 것, 선물받은 것, 시즈코가 직접 구입한 것 등, 많은 물건들이 보관되어 있다.

종류의 풍부함만으로 말하면 사카이(堺)의 상인들에게도 뒤떨어지지 않을 정도다. 하지만, 술 등의 소모품 이외에는 기본적으로 줄어들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무한히 창고를 세울 필요가 생기기에, 시즈코는 반년에 한 번, 쓰지 않는 것들을 창고에서 꺼내 판매하고 있었다.


판매의 형태는, 에도(江戸) 시대에 다이묘(大名)가 상업도시에 설치한 쿠라야시키(蔵屋敷)에 가까웠다. 창고 안에서 장기간 사용하지 않은 것을 선별하여, 품질 체크를 한 후에 쿠라야시키로 내놓는다.


"매번 그렇지만 사람이 많네"


쿠라야시키를 개방하는 날, 멀리서 보고 있던 시즈코는 사람으로 북적대는 쿠라야시키를 보고 감상을 말했다. 진열된 품목은 특산품에서 의류, 식료품에 공예품 등 다방면에 걸쳤다.

서민들에게는 보는 것만으로도 즐길 수 있고, 상인들은 싸게 들여서 비싸게 팔 수 있는 날이다. 필연적으로 사람들이 모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럼, 난 이만 실례"


쿠라야시키에 들어서는 동시에, 케이지(慶次)가 한 손을 들어올리며 빠지려고 했다. 하지만, 그 전에 그를 붙잡는 손이 두 개 있었다. 사이조(才蔵)와 나가요시(長可)였다.


"기다려, 일을 해라"


"술이 있는 곳으로 가게 하진 않겠어"


"놔라 이놈들아! 나는 술을 마실거다ー!"


평소에 사양않고 술을 마시고 있는데 아직도 부족한 건가 하고 머리가 아파진 시즈코였다.

표면적으로 시즈코는 많은 술을 소유하고 있었다. 구입하거나 헌상받거나 다른 뭔가와 교환하거나, 술이 모이는 이유는 몇 가지가 있었다.

하지만 시즈코는 노부나가로부터 금주령이 내려진 몸, 술을 받아도 한 방울도 마실 수 없다. 그렇기에 쿠라야시키에서 저렴하게 판매하고 있었다.


"거기 주당 세 사람, 그만큼 마시고 아직 부족해요?"


"부족해!"


어이없어하며 질문하자, 드잡이질이라도 시작할 것 같던 세 사람이 입을 모아 대답했다. 무슨 말을 할 생각이 사라진 시즈코는 어이없어할 수밖에 없었다.


"뭐 당신들이 마시고 싶은 건 잘 알겠지만, 지금은 일을 해요"


시즈코의 한 마디에 세 사람은 성대하게 낙담했다. 술을 판매하게 되면, 함께 즐기는 안주(肴)도 같이 판매된다. 쿠라야시키에서 조금 떨어진 장소에서 연회가 벌어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술에 취해 난동을 부려도 곤란하기에 시즈코는 마실 장소를 제공했다. 물론 무료는 아니고 오토오시(お通し)라는 자릿세가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장사를 하는 상인도 세금이 있는데, 그것은 자릿세가 아니라 매상세(売上税)라는 것이었다. 매상과 장사한 장소에 따라 세율이 변동하는 구조다.

좋은 장소에서 많은 매상을 올린 사람은 세율이 높아지고, 반대로 장소가 나쁘거나 매상이 그닥인 경우에는 세율이 낮아졌다.


주당들의 자릿세와 상인들의 매상세, 그리고 팔린 물건들을 합산하여, 거기서 각종 경비를 제한 액수가 시즈코의 이익이 된다.

1년에 몇 번 밖에 개최되지 않지만 그런대로 이익은 나오고 있었다. 뭣보다, 이익이 나와도 바로 다른 것에 투자되기에 돈이 쌓이는 기색은 없지만.


"내 눈에 들어오는 것은 적지만, 좋은 물건들이 갖춰져 있구나"


"……또 무얼 하러 오신건가요, 오이치(お市) 님"


쿠라야시키를 시찰하고 있을 때, 갑자기 뒤에서 누가 어꺠를 쳤다. 뒤돌아보자, 그곳에는 다양한 천을 시녀들에게 들려놓고 희색이 만면한 이치가 있었다.

챠챠(茶々)나 하츠(初)가 없는 걸 보니, 집에 놔두고 온 것이겠지, 라고 시즈코는 이해했다. 사람으로 북적이고 있는 곳도 있으니, 어린아이를 데리고 걷기에는 불편하기 때문이다.


"무얼이라니 실례로구나. 좋은 물건을 사러 온 것이지. 내 눈에 드는 물건은 많지 않았지만 말이다"


"그런 것 치곤 꽤나 사들이셨네요"


"챠챠나 하츠에게는 딱 좋은 것도 있었던 것 뿐이니라. 안심해라, 비용을 내는 건 오라버니이시니"


"무엇 하나 안심할 수 있는 요소가 없네요. 너무 많이 사시면 영주님도 화내실텐데요?"


키모노(着物)의 옷감(生地)은 눈을 크게 뜰 정도로 비싼 것도 아니지만, 결코 값싼 것도 아니다. 얼핏 봐도 이치는 옷감을 10종류 이상 들고 있었다. 나름 돈이 꽤 들었을 것은 바로 알 수 있었다.


"오라버니는 이 정도에 화를 내실만큼 도량이 좁은 남자가 아니다. 곤란하면 언니(노히메(濃姫))에게 도움을 요청하면 되느니라"


"아아…… 그러신가요"


오이치의 남편이었던 아자이 나가마사(浅井長政)와 시바타 카츠이에(柴田勝家), 둘 다 천하인(天下人)에 대항했다가 멸망했다. 그리고 이치 자신도 최후에는 세상을 비관하여 자해했으므로, 그 파란만장한 인생 때문에 박복(薄幸)한 미녀라고 불렸다.

하지만, 눈 앞의 인물이 박복한 미녀라는 말을 들어도 시즈코는 고개를 갸웃할 뿐이었다. 진정한 의미에서 자유분방한 인물이기에.

마찬가지로 자유분방한 인물로 보이는 노부나가이지만, 그는 자신의 독자적인 규칙을 지켜, 때로는 완고할 정도로 원칙을 고집하는 면이 있었다.


"적당히 조절해 주세요"


마지막으로 못을 박은 시즈코는 시찰을 계속하려 했다. 하지만, 그 전에 오이치에게 어깨를 붙잡혔다.


"자자, 기다려라, 시즈코. 여기서 만난 것도 뭔가의 인연이지. 나와 함께 돌아보자꾸나"


"뭘 어떻게 하면 그런 결론이 나오는지 대단히 의문입니다만, 저는 일하는 중인데요"


"그렇게 딱딱한 소리를 하지 말거라. 이렇게 험한 세상에서 지금 이 때를 즐기지 않으면 손해이니라"


"오이치 님은 조금은 앞일을 생각해 주세요"


이치와 시즈코의 일진일퇴(一進一退)의 공방이 계속되었다. 시찰은 딱히 의무는 아니지만, 시즈코에게는 이치를 상대하는 것보다 시찰 쪽이 마음이 편하다.

하지만 이치는 한 번 결정하면 어지간해서는 의견을 바꾸지 않는다.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자신의 생각대로 하려고 하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상대를 조종하는 재능이 있다고 할 수 있지만, 말려드는 쪽은 배겨낼 수가 없다.


"괜찮지 않느냐"


"괜찮지 않아요. 애초에ーー"


두 사람의 다툼은 이어졌다. 쿠라야시키에 와 있던 사람들은 그것을 흐뭇하게, 하지만 말려들지 않도록 거리를 두고 구경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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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에피소드 2



03 여자식(女子式) 다도회(茶の湯)



전국시대, 다도회(茶の湯)는 무가(武家)나 공가(公家)에게 필수라고도 할 수 있는 교양이었다. 상락(上洛) 시에 다도회에 착안한 노부나가는, 후에 어차탕어정도(御茶湯御政道)라는 정책을 실시한다.

간단히 말하면 다도회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여, 가신들에게 허가없이 다도회를 여는 것을 금지하는 정책이다.

노부나가는 큰 공적이 있는 사람에게만 허가를 해주는 것으로, 다기(茶器)를 토지와 동등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까지 끌어올린 것이다.


실제로 어차탕어정도라는 이름이 쓰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히데요시(秀吉)의 편지에 '다도회를 처음으로 허락받아 감동하였다'라는 내용이 기재되어 있는 것을 볼 때, 다도회가 허가제였던 것을 엿볼 수 있다.

또, 모반을 일으킨 자에게 다기를 헌상하면 용서해 준 것 등, 다기의 브랜드화나 가치의 창출에 노부나가가 힘을 쏟은 것을 추측할 수 있다.


하지만, 노히메(濃姫)에게 다기는 그냥 그릇이었다. 그녀에게는 좋은 다기를 내놓아봤자 차가 맛있어질 리도 없고, 반대로 어깨가 뻐근해지는 답답함에 진절머리를 내고 있었다.


"남자들은 외국산(唐物) 다기니 뭐니 시끄럽지. 다도회 같은 건 맛있는 차와 차과자가 있으면 되는 것 아니더냐. 딱딱한 예법(手順) 따윈 의미없느니라"


사키히사(前久)의 전차도(煎茶道)에 가깝게, 노히메의 다도회도 자유로웠다.

다도회라고 하면 다기와 차도구(茶道具), 차실(茶室), 그리고 주객(主客)에 이르기까지 일체감을 따지지만, 노히메의 다도회는 일체감 따윈 개나 줘버려였다.

도중에 자리를 떠도 문제없고, 잡담을 하면서 차과자를 집어먹으며 시간을 보낸다. 풍류 같은 것을 즐기는 것이 다도회라면, 노히메의 다도회는 차를 마시며 함께 보내는 시간을 즐기는 것이었다.


노히메 류(流) 다도회는 남자 금지였다. 이유는 단순히 '마음을 터놓고 대화하는' 자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평소에 쌓였던 불만을 노히메의 다도회에서는 당당하게 이야기해도 된다.

당연히 대화는 다른 사람에게 발설하지 않을 수비의무(守秘義務)가 있다. 이것을 지키지 못할 경우 다도회에는 참가할 수 없다. 본심을 말한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끝내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얼핏 보면 무질서해지기 쉬운 노히메의 다도회였으나, 몇 가지 엄격한 규칙이 있었다. 아까의 대화에 관한 수비의무도 글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차와 차과자가 맛있을 것이다.

또, '차과자는 차에 어울릴 것'이라는 규칙도 있다.


차과자는 중요하다. 맛있는 차, 그리고 차에 어울리는 맛있는 과자, 그 두 가지가 있기만 해도 대화는 활발해진다. 반대로 말하면, 차와 과자가 맛없으면, 자연스레 대화도 네거티브한 것이 된다.

계절감을 느낄 수 있다면 더욱 좋지만, 그건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 것이기에, 어디까지나 계절감은 내는 것이 바람직하다, 라는 권장사항에 불과했다.


"오늘의 차도, 차과자도 맛있구나"


"오늘은 좀 맛이 옅은 차라고 하여, 마른과자(干菓子)를 준비했습니다"


차과자로서 쓰이는 일본 과자(和菓子)는 다양한 종류가 있으나, 주로 팥(餡)을 사용한 주과자(主菓子)와, 설탕이나 밀가루(粉) 등을 섞어 굳힌, 수분이 적은 편인 마른과자로 크게 구별된다.

양자를 구별하는 요령은 간단해서, 과자의 수분량이 적은 쪽이 마른과자, 많은 쪽이 주과자이다. 그런 이유로 맛이 진한 편인 차는 주과자, 옅은 편인 차는 마른과자가 좋다고 한다.


"라쿠간(落雁)으로 계절을 표현하다니, 꽤 좋은 취향이로다"


노히메가 접시에 담긴 일본과자를 집어먹었다.


라쿠간이란 건조시킨 쌀가루에 물엿, 설탕을 섞은 후에 반죽하여 틀에 넣어 착색한다. 이후에는 틀로 찍어 모양을 낸 후, 배로(焙炉)로 건조시키거나 자연건조시키면 완성이다.

세세한 공정은 있지만, 전체적인 흐름은 단순하다. 하지만 단순하기에 깊이가 있어, 재료의 질이나 나무틀의 품질, 착색 방법이나 모양 등, 기술자의 기량과 센스가 시험된다.


"작은 새가 동백나무(椿) 가지에 앉아있는 그림인가. 실로 아름답구나. 먹는 게 아깝게 느껴진다"


"눈으로 즐기고, 향을 즐기고, 그리고 맛을 즐긴다. 남자들에게는 불가능한 오락이군요"


"다도회는 딱딱해서 곤란하지요"


"그렇지. 오락으로서 즐기지 못하는 것에 무슨 가치가 있을까. 주군께서도 어깨의 힘을 빼는 오락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잘 이해하지 못하셔서 말이지"


그런 불평을 이야기하면서 노히메들은 다도회를 즐겼다. 차를 마시고 과자를 집어먹으며 담소한다. 그녀들에게는 다도회도 정쟁(政争)의 도구가 아닌 오락이었다.


"그러고보니 시즈코는 어디 있느냐"


"오다 님께 불려가서 자리를 비웠습니다"


"나의 즐거움을 빼앗다니, 주군께서도 멋없는 짓을 하시는군"


노히메의 다도회에 시즈코도 호출되었으나, 그걸 안 노부나가가 기회다 하고 시즈코를 불러냈다.

노부나가에게 어려운 일을 떠넘겨지는지, 아니면 노히메의 장난감이 되는지, 어느 쪽이든 시즈코는 곤란한 상황에 처하지만, 어느 쪽이 나은지는 수수께끼이다.


"하지만, 시즈코가 일했기에 우리들의 오락이 늘어난 거지. 그렇게 생각하면, 지금 이 자리에 없더라도 나중에 재미있는 것이 생겨날 거라고 생각하면 참을 수 있느니라"


"좋지 않습니까. 다른 나라에서는 이러지 못하지요"


"그렇지요. 오락 없는 세상 따윈 참을 수 없습니다. 때로는 동심으로 돌아가 노는 것도 중요하겠지요"


차과자를 먹으면서 그녀들은 담소했다. 매일 집을 지키는 그녀들도 때로는 휴식이 필요하다. 그것이 시즈코 덕분에 다양한 휴식이 가능하게 되었다.

일하는 짬짬이 적당한 휴식이 가능하게 되자, 매일매일에 여유가 생기게 되어, 지금은 이렇게 다도회를 즐기기에 이르렀다.


"그러고보니, 시즈코는 '라아멘(らあめん)'이라는 걸 만들고 있더구나"


"들은 적이 있습니다. 듣자하니 외국(唐)의 면(麺) 요리라고 하더군요. 어떤 맛인지 궁금합니다"


"이미 시즈코의 마을에서는 몇 군데나 '라아멘'을 내놓는 가게가 생겼다더군요"


"그렇군. 다음에 그 녀석에게 만들게 하자"


본인이 없는 것을 기회라고 말하는 듯, 그녀들은 마음대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이야기가 끝날 무렵, 시즈코가 라멘 요리를 만드는 것은 그녀들 안에서 확정 사항이 되었다.


"에취!"


같은 시각, 등골이 서늘해진 시즈코는 크게 재채기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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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

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에피소드 2



02 다채로운 기술자 집단



시즈코가 이끌고 있는 쿠로쿠와슈(黒鍬衆)는 로마 군단을 베이스로 하고 있으나, 전국시대의 풍토에 맞게 세부적인 개량이 더해져 있었다.

로마 군은 우수한 병사인 동시에 뛰어난 공병(工兵)이기도 했다. 토목건축 기술의 기초를 교육받은 그들은, 스스로 수십 km나 되는 도로를 정비하고, 주둔지를 재빠르게 구축했다고 한다.


시즈코의 쿠로쿠와슈도 그에 필적하는 레벨이 되어 있었다. 병사로서의 훈련은 모두 받은 후, 토목건축 기술을 철저히 교육받았다.

로마 군단과의 차이점은, 병사들의 정신상태에 있었다.


"감독님(親方), 오늘은 무슨 일이신가요?"


집합을 명령받은 '코모리(子守)'들이 '감독'이라고 불린 인물에게 소집 이유를 물었다.


당연하지만 쿠로쿠와슈에도 계급은 존재한다. 감독은 어느 정도 규모의 쿠로쿠와슈를 이끌 수 있는 사람, 코모리는 소규모의 쿠로쿠와슈 멤버를 이끌 수 있는 사람을 가리킨다.

말하자면 무장과 부대장의 관계와 닮았다. 그렇기에 감독 밑에는 몇 명의 코모리들이 붙는 것이 기본이다. 다만 현대의 감독과는 달리, 코모리들은 감독의 제자는 아닌 경우도 있다.


"우리들은 물레방아(水車) 제작을 특기로 하고 있지. 그 때문에 시즈코 님께서 직접 일을 맡기셨다"


일, 이라는 단어에 코모리들이 반응했다. 쿠로쿠와슈는 각 방면에서 일을 받는다. 기본적으로 시즈코를 통해 의뢰되지만, 때때로 무장들로부터 직접 의뢰되는 경우도 있었다.


현대에서는 정보가 범람하고 있기에 간단히 원하는 기술자(技術者)를 찾을 수 있지만, 전국시대는 솜씨좋은 기술자(職人)를 찾는 것만 해도 고생인 것이다.

또 직업의 세분화가 이루어져 있기에, 원하는 기술을 가진 기술자를 찾는 것 자체가 대단히 어렵다.

그렇기에 다양한 전문분야의 사람들이 모여서, 그곳에만 의뢰하면 필요한 기술자를 찾아주는 창구가 있다고 하는 것은 획기적인 제도인 것이다.


"물레방아라면 둘이서 3개월만 있으면 충분하잖아요. 전원이 모일 필요는 없는 거 아닌가요?"


"말은 끝까지 들어라. 허둥대는 뭐시기는 동냥이 적다(※역주: 허둥대는 거지는 동냥이 적다(あわてる乞食は貰いが少ない)), 고 하잖아?"


코모리 중 한 명이 의견을 냈으나, 감독이 타이르자 물러섰다. 감독은 다시 코모리들을 둘러보면서 말을 이었다.


"아까의 의견도 있었지만, 물레방아 같은 건 2, 3명이면 충분하지. 재료도 비축분이 있으니, 3개월은 커녕 2개월만 있으면 된다. 그럼에도 일부러 모은 이유는 간단하다. 물레방아를 만들 장소가 많다. 여기까지 말하면 네놈들이라면 알겠지?"


감독의 말에 코모리들이 어떤 생각을 떠올렸다. 즉시 이해한 것에 기분이 좋아진 감독이 히죽 웃었다.


"그래! 이것은 시즈코 님으로부터의 도전장이다! 우리들이 '속도'와 '질'을 모두 갖추고 있는지에 대해서 말이지! 이놈들아 기합을 넣어라! 기간은 3개월이지만, 그렇게나 필요없다! 1개월 안에 모두 끝낸다!"


당연하지만 시즈코에게 기술자들에게 대한 도전, 같은 의도는 없다. 단순히 노후화된 물레방아를 일신하기 위해 기간을 넉넉히 잡고 있는 것 뿐이다.


"우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역시 그런 건가아아아아아아아아!!"


"역시 감독님! 객기가 넘치는구만요!!"


말과는 달리 코모리들은 환희의 함성을 질렀다. 당초에는 그냥 기술자 집단이었으나, 다양한 기술자들이 모이면서 서로 영향을 준 것이리라.

언제부터인가 그들은 '속도'와 '질'을 양립시키게 되었다. 통상 수 개월 걸리는 것을 절반의 기간에 끝내기도 했으나, 결코 대충 하지는 않는다.

빠르게, 하지만 완벽하게, 가 신조가 된 그들에게, 대충 한다는 생각은 존재하지 않는다. 얼마나 빠르게, 하지만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질 좋은 것을 만들지를 목표로 하여, 주야로 기술을 개발하고 절차탁마하고 있었다.

이러한 생각이, 시시각각 상황이 변화하는 싸움터에서 그들이 중히 여겨지고 있는 이유 중 하나가 되었다.


"설치 장소는 11개소다. 재료는 신청하면 부츠류슈(物流衆)가 운반해 줄거다. 그걸 생각해서 1개월! 물론, 데려갈 수 있는 사람은 5명까지다. 보통이라면 불평이 나오겠지만, 네놈들이라면 문제없겠지?"


"괜찮슴다. 우리는 저까지 합쳐서 4명만 있으면 되려나요"


"야야, 물레방아 같은 건 지겨울 정도로 만들어봤잖아. 나는 둘만 있으면 충분해"


"아니, 한명은 밥순이야. 밥을 소홀히 하면 시즈코 님이 엄청 화내시니까"


"어, 제대로 된 것을 먹지 않으면 혼나지. 평소에 형편없는 계획도 웃는 얼굴로 허가해 주시지만, 특히 식사에 관해서는 시즈코 님은 엄격하시니까"


코모리들의 말에 감독은 팔짱을 끼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놈 말대로다. 밥순이는 꼭 데려가라. 바늘처럼 빼빼 말랐다가는 시즈코 님이 펄펄 뛰신다. 그 분, 식사랑 수면을 소홀히하면 일을 빼앗아가시니까 말이다"


"그러네요. 전에 늦어질 것 같아서 무리한 건 알지만 철야를 했더니 작업장에서 쫓겨나서 강제로 잠을 자게 되었으니까요"


"도구를 전부 몰수당한데다 병사들이 둘러싼 집에 밀어넣어졌었죠. 처음에는 이렇게까지 하는거야? 라고 생각했어요"


"아니 하지만 푹 잤더니 머리가 시원해졌고, 결과적으로 납기를 맞출 수 있었으니까 말야. 역시 밥이랑 자는 건 중요해"


"그래. 알겠냐, 철야를 해서 빨리 끝내려고 하지 마라. 평소대로 일하고, 그리고 빨리 끝내라. 뭐, 늦을 것 같으면 내게 말해라. 책임을 지는 건 내 일이니까"


"옙. 뭐 감독님이 고개를 숙이실 일은 없습니다"


"맞아요. 우리들, 그런 실수는 안 합니다"


"멍청아, 익숙하니까 더욱 긴장하라는 거다. 사고라는 건 사소한 방심 때문에 일어나니까 말이다. 너희들도 명심해둬라"


농담조로 말하던 코모리들이었으나, 감독의 말에 정신이 들었는지 긴장을 조였다.


"좋아, 좋은 표정이 되었군. 그럼 이야기는 끝이다. 각자, 담당 위치를 듣고 작업에 착수해라"


"옙!"


코모리들의 대답에 감독은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후, 그들은 평소대로 일하고, 평소대로 물레방아를 1개월만에 제작 및 설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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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

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에피소드 2


이것도 지난번처럼 짤막한 이야기들이 몇 개 나오는 것인데, 최근에 전쟁파트로 이어지는 이유도 있어 한동안 조금 급피치로 번역했더니 피로감이 느껴져서… 한꺼번에 모아서 번역하지 않고 하나씩 올리겠습니다.



01 아버지(父親) 들의 고뇌(苦悩)



사키히사(前久)가 시즈코로부터 양도받은 별저(別邸)에, 세 명의 남자들이 모여 있었다. 노부나가(信長), 사키히사, 아시미츠(足満)  등 세 명은, 요즘 빈번하게 모여서는 어떤 일에 대해 의논하고 있었다.


"하여, 시즈코의 혼사(婿取り)는 어찌하실 것이오?"


시즈코의 혼사, 이것은 피할 수 없는 중대사이며,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이기도 했다.

촌장이었을 때라면 몰라도, 지금의 시즈코는 천하에 가장 가까운 오다 가문의 중신(重臣)이자, 비공식적이긴 해도 오섭가(五摂家)인 고노에 가문(近衛家)의 영애(姫)이기도 하다.

이것만으로도 정치적으로 볼 때, 혼사는 신중에 신중을 거듭해야 할 필요가 있지만, 시즈코 자신도 평범하지 않은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시즈코가 가진 문제란, 그 절대적인 사업 권익이다. 본인은 장부상의 숫자에 의미를 두지 않고 있지만, 그녀가 낳는 이익은 대영지(大領地)의 영주(国人)조차 능가할 정도로 불어나 있었다.

이 시대의 관습상, 시즈코의 남편은 그 막대한 권익을 그대로 받게 된다.

돈, 권력, 무력 등 모든 것이 갑자기 손에 들어오면, 분수에 맞지 않는 힘을 가진 사람은 왕왕 그 자신을 망치게 된다.


"나는 시즈코가 원하는 남편 이외에는 용납하지 않는다. 설령 시즈코가 인정했다고 해도, 시즈코에게 불이익을 가져온다면 베어버린다"


아시미츠의 주장은 일관되고 '시즈코가 인정한 상대'일 것이었다.

시즈코의 주위에 있는 남자들은 항상 아시미츠에게 품평(値踏み)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시즈코의 주위에는 남녀 관계에 관한 소문(浮いた噂)은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다.

전국(戦国)의 세상은 남성 사회이기에, 당연히 남자는 있지만, 시즈코를 여자로 보고 만만하게 여겨 다가오는 패거리는 사전에 아시미츠에 의해 차단되어 버리기에, 그런 관계가 될 가능성은 전무했다.


"아시미츠 님의 이야기도 이해됩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독신으로는 시즈코 님도 불편해지겠지요. 난세(乱世)에서 20세를 넘어서 독신이라고 하면, 퇴물(大年増)이라는 비방을 면할 수 없지요"


사키히사의 지적도 당연했다. 현대 일본이라면 30대의 독신자는 드물지도 않지만, 전국 시대는 뭔가 이유가 있는 여자(※역주: 부정적인 의미임)라고 간주된다.

그건 무사의 존재 의의(在り方)가 '집을 지키는(핏줄을 후세에 남기는)' 것을 가장 우선하고(至上) 있는 것에 기인한다.

배우자를 맞이하지 않고 생애 독신을 고집하는 것은, 그 집안을 번영시켜야 할 당주로서의 자각이 없다고 단정지어지는 것이다.

그래도 여전히 생애 독신을 고집한 우에스키 켄신(上杉謙信)이나 호소카와 마사모토(細川政元), 이이 나오토라(井伊直虎) 같은 예외도 있다.


"문제는, 시즈코의 머릿속에 천하를 뒤엎을 수 있는 비법이 잠자고 있는 것이지. 오다 가문의 재정이 왕성한 것도 시즈코가 가져온 지식이나 기술이 바탕이 된 것이다"


시즈코의 머리에는 다양한 기술이나 미지의 정보가 잠자고 있다. 노부나가 자신이 공개를 명하는 경우도 있었으나, 태반은 스스로 공개했다.

시즈코에게는 별거 아닌 기술이라도, 이 시대에서는 어떤 영향을 끼칠지 헤아릴 수 없다.

노부나가의 눈이 닿지 않는 곳에서 별 생각없이 기술 개혁 같은 걸 했다가는 영지를 통치하는 데 있어 문제가 된다.


"게다가, 시즈코 님은 시집을 가더라도 밭일을 계속할 것 같군요. 그러면, 그 가문은 급격하게 힘을 기르게 되지요"


설령 시즈코가 시집을 가더라도, 얌전히 안방마님 노릇 같은 걸 할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점이 문제였다.

자신이 먹을 정도의 논밭을 꾸리는 정도라면 문제없지만, 시즈코의 성격을 볼 때 주위를 끌어들여 대규모화할 것은 뻔히 보였다.

그렇게 자각 없이 이익을 뿌려대어 주위에 신봉자와 협력자를 끌어들이고, 그러다보면 누구도 무시하지 못할 일대 세력이 된다. 그 범위가 집에서 마을(村)이 되고, 도시(街)를 거쳐 나라가 된다.


"시즈코를 아직 오와리(尾張)에 묶어두고 있는 것도, 녀석이 자리잡은 장소에 뿌리를 내리기 때문이다. 그 몸 하나로 재력과 권력을 모두 창출해 버리기에 아주 골치가 아프지"


"의도하지 않아도 나라를 비옥하게 하고, 그로 인해 생겨난 여유 때문에 영주(国人)들은 착각을 하지요. 그러면 난세(乱世)로 되돌아가는군요"


"수확량이 늘어난 정도로 천하를 손에 쥘 수 있다면 나는 벌써 열 번은 천하인이 되었을거다"


노부나가는 술잔을 기울여 단숨에 비웠다. 노부나가는 시즈코의 의도를 눈치채고 있었다. 시즈코가 많은 기술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걸 조금씩 내놓는 이유.

기술이란 축적하는 것이며, 다 건너뛰고 최첨단의 것만을 주더라도 그걸 뒷받침할 토대가 없으면 붕괴해 버린다.

우선은 땅을 비옥하게 하고, 생활에 여유가 생겼을 때 기술자(職人)들을 모아서, 방향성은 주더라도 다양한 연구를 기초부터 시키고 있다.

오늘 먹을 것도 부족한 상황에서 장기적인 계획을 세울 수 있을 만한 잉여 식량을 창출해낸 것은 훌륭하다, 고 노부나가는 평가하고 있었다.

맨 처음부터 신식총(新式銃)을 만들려고 했다면 머지않아 실패했을 것이다.


"나는 시즈코를 신용하고 있다. 하지만 그 남편은 아니지"


"애초에 시즈코 님이 시집을 가도 좋다고 생각하시는 남자가 있겠습니까? 그녀만한 재주가 있다면 집을 지키는 생활 따위 너무 따분할 거라 생각합니다"


"……일리가 있군. 시즈코라면 남아도는 시간을 안온하게 지내거나 하진 않겠지. 일거리를 효율화시켜 여유를 만들고, 언젠가 제멋대로 뭔가를 시작하지"


"그 부분은 오노(お濃, ※역주: 노히메)와 닮아버린 건지도 모르겠군"


술잔을 기울이며 남자들의 대화는 계속 이어졌다.


"거기에 그녀의 무장이나 병사들이 어떻게 될지, 는 간단히 상상하실 수 있지 않습니까?"


"오다 가문에 남는 녀석은 있겠지만, 태반은 시즈코를 따라가겠지. 특히 쿠로쿠와슈(黒鍬衆)는 시즈코에 대한 충성심이 강하다. 그만큼 공을 들였으니 당연하다고 하면 당연하지만 말이지"


"내가 시즈코 님과 만나기 전부터 키웠던 것 같군. 그 자들은 다양한 기술을 시즈코 님으로부터 계승하고 있어서 평시(平時)에도 쉴 틈이 없을 정도로 인기라고 하던데"


"평시에는 물레바퀴부터 집까지 짓고, 여차하면 진지구축(陣立て) 성채 건설 등, 녀석들이 필요한 곳은 일일이 셀 수가 없지. 한 번은, 적이 틀어박힌 성의 코앞에서 녀석들이 공성병기를 만들기 시작한 적이 있는데, 그건 꽤나 유쾌했다. 성에 있던 놈들은 점점 조립되어가는 거대한 병기에 공포에 질려 일찌감치 항복 의사를 밝혀왔지"


무로마치(室町) 시대부터 직업은 세분화나 전문화가 진행되어, 각자가 최첨단을 달리는 스페셜리스트였다.

하지만 시즈코의 쿠로쿠와슈는 로마 병사들처럼, 토목건축 기술이라는 분야 전체의 기초를 철저히 교육받았다.

완전히 전문직화된 기술도 있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이 수행할 수 있는 작업의 폭이 넓기에, 부대가 여럿으로 나뉘어져도 각 부대가 균일한 기술력을 유지할 수 있다.


"문득 생각났습니다만, 만약 시즈코 님이 어딘가의 가문에 시집가게 되면, 그녀는 군을 해산시켜 버리겠지요. 그렇게 되면 시즈코 님의 후방지원부대가 거의 없어집니다. 현재 상황에서 그녀의 후방지원부대가 없어지게 되면 어렵지 않습니까?"


"어렵지. 이젠 오다 군의 장수들은 시즈코의 후방지원부대를 전제로 움직이고 있다. 길을 정비하고, 물건을 수송하고, 무구(武具)나 성을 수리하고, 진지를 세우는 그 모든 것을 직접 해야 하게 되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지"


"사람은 한 번 편한 걸 알아버리면 고생했던 과거로는 돌아갈 수 없지"


시즈코가 결혼하면 문제가 되는 건 권력 뿐만이 아니다. 그녀가 거느리고 있는 군의 취급 역시, 노부나가에게는 머리가 아파지는 문제였다.

측근인 케이지(慶次)나 사이조(才蔵)는 여러가지 의미에서 평범하지 않은 자들이고, 병사들 또한 시즈코가 독자적인 생각으로 구축했기에 괴짜(色物) 군단이 되어 있었다.

보통이라면 바로 붕괴해버릴 아웃사이더(くせ者) 투성이인 군이 그런대로 군으로서 기능하고 있는 것도 시즈코라는 사람이 정점에 있기 때문이다.

설령 남편이 그대로 이어받더라도 기능하지는 않는다. 자칫하면 공중분해되어 완전히 군이 붕괴한다.


그리고 시즈코의 군이 붕괴하면, 오다 군에게는 대단히 큰 문제가 된다. 전력적인 면도 있지만, 가장 중요한 점은 시즈코 군이 오다 군의 병참을 떠받치고 있는 것에 있다.

무공(武功)을 추구하는 무장들과 달리, 시즈코는 그림자 역할에 철저하면서도 불평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오다 군의 뒷바라지 역할(縁の下の力持ち)을 맡아왔다.

처음에는 삐걱댔으나, 지금은 시즈코의 후방지원부대는 오다 군에게 없어서는 안 될 부대이다.

방면군(方面軍)이 원활하게 적을 제압할 수 있는 것도 병참을 시즈코 군에게 맡기고 자신들은 적을 쓰러뜨리는 것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시즈코 군의 후방지원부대를 잃는다는 것은, 오다 군에게 허용할 수 없는 큰 손실이 된다.


"……역시, 신랑감 고르기는 어려운가"


"현 상황을 생각하면, 결점이 너무 큽니다"


"애초에 시즈코가 누군가와 결혼하고 싶다, 고 말하지 않는다. 나나 오다 님이 무슨 말을 해도 소용없지"


"하지만 말이지, 여자의 행복은 자신의 아이를 안는 것이 아닌가? 그걸 우리들의 편의 때문에 막고 있다고 생각하면 조금 괴롭군"


술이 들어간 탓인지, 아니면 본심을 말해도 문제없는 사람들이라서 그런지, 평소의 노부나가로부터는 상상할 수 없는 감상적인 대사가 나왔다.


"하지만 지금 이대로는 문제다. 시즈코가 주위의 소동에 말려들 가능성은 있지"


"하핫, 오다 님은 걱정이 많으시군요"


"걱정하고 있는 게 아니다. 시즈코가 독신이라는 것 때문에 주위에서 이러쿵저러쿵 말을 듣는 게 싫을 뿐이다. 또 바보 아들놈 같은 놈이 나오면, 이번에는 모가지를 날려버리겠다"


그건 걱정하고 있다는 것과 같은 의미가 아닌가라고 생각한 사키히사와 아시미츠였으나, 지적하면 귀찮아질 것 같기에 흘려듣기로 했다.


"역시 말이지ーー"


"아니, 그건 좀ーー"


"두 분, 그건ーー"


밤이 깊어져도 남자들의 대화는 끝나지 않았다. 결국, 결론은 나지 않았기에 다음으로 미루게 되었다.

하지만 세 사람은 잊고 있었다. 문제를 뒤로 미룬 횟수가 이미 10번을 넘는다는 사실을.







재미있게 보시고 후원(?)해 주실 분은 이쪽으로^^

Posted by 가리아

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겐키(元亀) 3년 결전(決戦), 미카타가하라(三方ヶ原) 전투


099 1572년 12월 하순



이 때, 확실히 역사는 움직였다. 오다(織田)-도쿠가와(徳川) 연합군에 의한 타케다(武田) 군의 괴멸 및 신겐(信玄)의 전사는 일본을 뒤흔들었다.

패권의 세대교체를 고하는 소식은, 토오토우미(遠江)의 서쪽에 위치한 시라스카(白須賀)에 포진하고 있던 노부타다(信忠, 키묘마루(奇妙丸))에게도 새벽이 오기 전에 전해졌다.


"읏샤아아아아아!!!"


들어온 보고를 다 듣기도 전에 노부타다는 쾌재를 불렀다. 노부타다를 따라 수하의 무장들도 큰 소리로 함성을 지르며, 양손을 하늘 높이 치켜올리며 환희했다.

개중에는 감격에 겨워 눈물을 글썽이는 무장도 있었으나, 이번만큼은 무리도 아니었다.


다들 불안했던 것이다. 어려움을 견디며 필사적으로 쌓아 온 모든 것이 타케다라는 압도적 폭력 앞에 손쓸 방법도 없이 빼앗긴다. 그 광경을 누구나 환시(幻視)하고 있었다.

이 시대에서 타케다 군이란 그 정도의 존재였으며, 공포의 상징이었던 것이다. 타케다 신겐(武田信玄)이 카이(甲斐)에서 출진했다는 소식을 들은 이래로 한시도 잊을 수 없었던 공포.

이 길보(吉報)에 의해 공포는 불식되고, 위축되고 억압되어 있던 감정이 폭발했던 것이다.

비탄의 눈물이 아닌, 그만한 위업을 달성해낸 동료들에 대한 자랑스러움이자, 같은 깃발을 아우르는 일원이라는 환희의 눈물이었다.


이 소식은 멀리 떨어진 노부나가에게도 이윽고 도착했다. 밤을 새워 달려간 전령으로부터 보고를 들은 근시(近習)는, 거듭 확인하여 틀림없다는 것을 알자마자 남의 눈도 개의치 않고 달려갔다.

굉장한 기세(剣幕)에 호위병들이 무슨 일인가 하고 눈을 둥그렇게 뜨는 것도 깨닫지 못하고, 발걸음 소리도 요란하게 노부나가가 있는 큰 방(広間)으로 달려들어갔다.


"주, 주군(ご注進)!! 저, 전령이 이것을 가져왔습니다!"


근시는 전속력으로 달렸기 때문에 숨을 헐떡이면서도 서장(書状)을 내밀려 했다.


"내용을 말하라!"


태연한 태도를 취하면서도 누구보다 속앓이를 하고 있던 노부나가는, 근시의 무례함을 일체 탓하지 않고 전령의 내용을 말하라고 명했던 것이다.

근시는 한 번 크게 심호흡을 하여 숨을 고른 후, 무시무시한 중압감을 내뿜는 노부나가의 시선에 견디면서 말을 이었다.


"미, 미카타가하라(三方ヶ原) 대지(台地)에서 우리 군과 도쿠가와 군이, 타케다 군을 격파했습니다!"


일순의 정적이 흐른 후, 기다리고 기다리던 길보라는 걸 알게 된 오다 가문 가신들이 환희의 함성을 질렀다. 노부나가만이 아주 당연하다는 듯 태연한 태도였지만, 품 속에 감추고 있던 손으로 힘있게 주먹을 쥐고 있었다.


"게다가 신겐을 처치했다고 적혀 있습니다! 그밖에도 이름높은 타케다 가문의 장수들의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 우선 타케다 가문 최강의 적비대(赤備え)인 야마가타 마사카게(山県昌景)는, 모리 카츠조(森勝蔵) 님이 일기토 끝에 처치하셨습니다!"


"오옷! 그 야마가타를 처치했다는 건가!"


"카츠조의 수훈에는 보답해줘야 하겠지"


타케다의 적비대라고 하면, 정강무비(精強無比)로 이름이 드높은 부대이며, 붉은 색 일색으로 통일된 갑주를 입는다.

전장에서의 붉은 무사(赤武者, 적비대)와 마주친 적은 전의를 상실하고 자발적으로 타케다의 군문(軍門)에 투신했다고까지 하는 정강함으로 알려져 있다.

그 적비대를 이끌고 있던 것이 야마가타 마사카게다. 그는 '야전(野戦)의 수싸움(駆け引き)에서는 비길 자가 없다'고까지 평가되어, 그 용명(勇名)은 후세에까지 전해졌다. 그야말로 타케다 가문 최강의 사나이였던 것이다.

그 야마가타 마사카게를 처치한 전과는 크다. 노부나가가 바로 포상을 생각할 정도로 큰 공이며, 카츠조의 이름은 야마가타 마사카게를 패배시킨 사람으로서 천하에 울려퍼지게 된다.


"이어서 바바 노부하루(馬場信春)를 카니 사이조(可児才蔵) 님이! 그리고——"


차례차례 타케다의 주력인 무장들의 이름이 거명되고, 처치한 사람의 이름이 그 뒤를 이었다. 이제 미카타가하라 전투에 참전한 사람들의 무공은 하늘을 찌른다고(青天井) 할 수 있었다.

타케다 군을 격퇴시킨 것이 아니라, 피해 규모를 보아도 괴멸시켰다고 하는 것이 마땅하다.


"……정말로 해냈구나. 준비는 갖춰졌으렷다!"


"옛! 일체의 차질 없이!"


보고를 다 들은 노부나가는 씨익 웃은 후, 가신들에게 호령했다.


"지금부터 마지막 대청소를 한다. 다들, 타케다와 싸운 자들에게 지지 않도록 마음껏 무공을 세워라"




천하를 가르는 대전(大戦)에서 승리한 오다-도쿠가와 연합군의 면면은, 부상병들을 데리고 하마마츠 성(浜松城)으로 귀환했다.

전투중에는 흥분상태여서 깨닫지 못했으나, 하마마츠 성에 돌아오자 생환을 실감했는지, 병사들은 서로 껴안으며 무사함을 기뻐했다.


"아ー, 그런데 시즛치,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말야"


시즈코들이 입성을 대기하고 있을 때, 문득 케이지(慶次)가 시즈코에게 말을 걸었다.

보기에도 거북한 듯한 표정을 떠올리는 케이지를 보고 안 좋은 예감이 스쳐간 시즈코는, 케이지에게 가까이 오라고 손짓했다.


"(화내지 않을테니, 정직하게 말해요)"


"(저기, 말이지. 실은 어떤 무장을 붙잡았는데 말야…… 보고하는 걸 까맣게 잊고 있었어)"


"(그거 무토 키헤에(武藤喜兵衛) 님 말이에요?)"


"(아ー 맞아맞아. 본진에 돌아와서 휴식을 취하다보니 깜빡 잊어버렸네)"


정말 심한 이야기로, 생사여탈의 결정을 기다리는 상황에서 적진에 방치되는 건 고문에 가깝다. 몸둘 바 모르는 포로를 지금까지 방치해 둔 사실에, 시즈코는 눈가를 누르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빨리 데려와요. 패군(敗軍)의 장수라고 하지만 신의(信義)에 어긋나요"


"어, 바로 데려올게"


시즈코에게 재촉받고 케이지는 서둘러 무토 키헤에를 부르러 갔다. 본인도 잘못했다고 생각하고 있는 듯 드물게 겸허(殊勝)한 태도였다.


"당신이 총대장이십니까"


기다리다 진이 빠진 무토 키헤에는 찌푸린 얼굴로 물었다. 어떻게 취급되어도 불평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지만, 함부로 취급받고 유쾌하게 생각하는 인물은 없다.


"마에다(前田) 님을 맡고 있다는 의미에서는 그렇게 됩니다. 우선 오래 기다리시게 한 불찰(不手際)을 사과드리겠습니다"


"아니, 이쪽도 태도를 고치도록 하지요. 앞서 약속의 절반은 지켜주었고, 남은 절반도 지금 지켜졌습니다"


시즈코가 케이지의 실수를 자신의 불찰로서 사과한 것에 놀란 무토 키헤에였으나, 즉시 의식을 바로하고 대답했다.


"하여, 참수는 언제쯤이 됩니까"


"네!? 싸움은 끝났습니다. 저는 수급을 원하지는 않고, 이제와서 목을 받아도 곤란한데요. 호송까지 해드릴 수는 없습니다만, 돌아가시겠다면 뜻대로 하세요"


"네?"


시즈코의 너무나 상식에서 벗어난 말이 이해되지 않아 무토 키헤에는 멍한 표정이 되었다. 보통은 포로로 잡은 무장의 취급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정보를 캐낸 후에 참수하여 처치한 수급으로서 무공으로 삼는다. 또 하나는 살려둔 채 수하로 받아들여 자신의 전력으로 하는 것이다.

시즈코가 말한, 포박한 무장에 대해 돌아가고 싶으면 마음대로 하시라는 것은 고생해서 붙잡은 의미가 없다.


"저는 제 목과 맞바꾸어 형님들의 목과 병사들의 목숨을 살려달라고 했습니다. 이미 대가를 받았는데 뻔뻔하게 살아서 수치를 당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게 말씀하셔도, 논공행상은 나중이라고 해도 이미 급한 전후처리는 끝났습니다. 지금부터 승전 축하연(祝勝会)이라고 흥분해 있는 병사들에게 지금부터 지저분한 일을 부탁하는 건 미안하지요. 애초에 케이지 씨가 그 자리에서 목을 베지 않았잖아요?"


실제로 목숨을 걸고 싸운 케이지가 의도적으로 목을 베지 않았으니, 그게 케이지의 판단이고, 그의 의사를 존중할 생각이었다.

출세를 바라지 않는 시즈코에게 수급 같은 건 굳이 바라는 것도 아니라, 부하의 공을 가로채는 것 같은 짓을 하면서까지 얻을 필요가 없었다.

따라서 최종적으로는 케이지가 어떻게 하고 싶은지, 그것만이 문제였다.


"내가 제시하는 길은 두 가지다. 하나는 카이로 귀국하는 것, 아니면 어디까지나 주군에게 충성하고 싶다면 목을 베어주지 못할 것도 없어. 뭐 원하는 대로 선택해"


시즈코의 마음 속을 헤아린 케이지는, 무토 키헤에 자신에게 자신의 길을 선택하게 하기로 했다. 예상외의 선택이 주어진 무토 키헤에는 숙고한 끝에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제 바람을 말씀드리지요. 케이지 님이 말씀하신 두 가지 선택, 그 어느쪽도 선택할 수 없습니다. 우선은 사나다(真田) 가문이 어찌될지 그것을 지켜보고 싶습니다. 사나다 가문이 존속하던 대가 끊기던, 그 결과가 보였을 경우 반드시 당신 밑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이쪽으로 오신다면 환영하겠지만, 배신자라는 비난은 면할 수 없습니다. 이대로 사나다와 운명을 함께한다, 는 길을 선택하시는 것도 지금이라면 가능한데요?"


무토 키헤에의 말에 시즈코는 솔직한 의문을 던졌다. 형 둘을 잃은 사나다가 어떻게 될 지 지켜본 후 시즈코의 밑으로 오겠다고 무토 키헤에는 말했다.

이것은 명백하게 주군 가문(主家)인 타케다에 대한 배신이며, 주군 가문에게 칼을 들이댄 이상 두번다시 카이로 돌아갈 수 없다.

그의 말투를 볼 때, 가족과는 인연을 끊고 단신으로 시즈코에게 투항하는 모양이다. 그렇게 되면 두번다시 가족과 만날 수도 없으며, 최악의 경우에는 가족과 적대하여 서로 죽고 죽여야 하는 수라(修羅)의 길이다.


"무례를 무릅쓰고 말하자면, 당신의 가신들은 다들, 당신을 닮아서 지나치게 바보처럼 정직합니다"


"그게 어쨌다는 것인지?"


무토 키헤에의 거리낌없는 말투에 노기를 띤 병사들을 손으로 제지하며 시즈코는 말을 이을 것을 재촉했다. 대담한 웃음을 떠올린 무토 키헤에는 재촉받은대로 말을 이었다.


"지금의 저에 대한 대응, 그것이 당신을 위험하게 만들 것입니다. 당신의 가신이나 병사들은 당신에게 반하여(心酔) 당신을 위해서라면 기쁘게 목숨조차 내던지겠죠. 지금까지라면 그걸로도 괜찮았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타케다를 패배시켰다는 평가가 붙게 되면 그래서는 안 되지요. 그들의 태도는 알기 쉽고, 거기에 당신이 있다는 것이 쉽게 파악되어 버리는데다, 주위의 반응으로부터 당신의 의도를 읽혀 버립니다. 당신 대신 전면에 나서서 배짱좋게 일을 처리할 수 있는(腹芸) 사람이 필요해지겠지요"


"그게 당신이라는 건가요"


"정직하고 성실하다는 것은 사람으로서는 미덕이겠지요. 허나, 남의 위에 서는 사람으로서는 어떨까요? 이건 무능을 넘어선 해악(害悪)이 됩니다. 당신의 이름은 오다 가문에서 부동(不動)의 것이 되었지요. 이제부터는 알기쉽게 적대해주는 상대들 뿐일거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친근한 태도로 다가와서 당신의 실각을 꾀하는 적들이 반드시 나타나겠지요"


"그 부족함을 당신이 메워주시는 건가요?"


시즈코의 질문에 무토 키헤에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칫하면 오만하다고도 받아들여지게 될 태도였으나, 그 정도의 담력이 없으면 머리좋은 자들(知恵者)을 상대로 속고 속이는 짓은 못 한다.

그에게는 뭐 하나 잃지 않고 고향(国許)으로 돌아간다는 선택지가 있었다. 하지만 일부러 주위가 모두 적이라는 상황에서 자신의 유용함을 어필해 보였다.


무토 키헤에는 이미 이해하고 있었다. 타케다가 패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스스로의 몸을 아끼지 않는 용맹한 장수들에, 그들을 거느리면서도 난세(乱世)梟雄의 효웅(梟雄)이 되는 것이 아니라 덕으로 백성을 다스리는 주군, 타케다의 패배는 필연적이었다.

이제부터도 타케다에게 예전의 힘이 돌아오지는 않으리라. 오다 가문에서 요직(要職)을 맡으면서도 수비가 약한, 스스로의 힘을 살릴 수 있는 장소, 즉 시즈코의 수하가 되는 것이 가장 유망한 미래로 보였다.

단순히 타케다에서 오다로 갈아타봤자, 뒷배경이 없는(根なし草) 사나다 따위 훅 불면 날아가는 존재가 된다.

사나다 가문을 존속시키기 위해서는, 표리부동(表裏比興)한 자라고 경멸받더라도 시즈코의 직속 부하(直参)가 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이것은 단순히 자신의 능력을 파는(売り込み) 것이 아니다. 무토 키헤에와 사나다 일족 전체의 생존을 건 일생일대의 도박이었다.


"(과연 이에야스(家康)조차 두려워한 지장(知将)으로 이름높은 사나다 마사유키(真田昌幸)인가) 좋아요. 이 자리를 떠나는 것을 원하지 않고, 반대로 제게 팔려고 한 당신의 수완을 사들이도록 하죠. 제가 마음대로 고용할 수는 없으니, 영주님(お館様)의 재가를 얻어야 하지만, 일단 반대하시지는 않을 겁니다"


"옛"


만년(晩年)은 불우했으나, 전국시대에 이름높은 지장, 모장(謀将)으로 활약한 그의 실력은 어느 정도인지 시즈코는 기대에 가슴을 부풀렸다.


"그럼 하마마츠 성으로 가죠. 아까까지는 패군의 장수였지만, 지금은 임시라고는 해도 제 객장(客将)입니다. 당신에 대한 부당한 취급을 용납할 정도로 저는 마음이 좁지 않아요"


그렇게 말하고 시즈코는 무토 키헤에의 구속을 풀도록 명령했다. 일순 놀란 병사들이었으나, 명령받은 대로 무토 키헤에의 구속을 풀었다. 그리고 압수했던 칼도 돌려주었다.


"지금까지의 저는 당신의 방심을 이끌어내기 위해 거짓으로 행동했으며, 실은 당신에게 한 칼 먹일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그 때는 너구리에게 한 방 먹고 죽은 얼간이가 있었다, 고 역사에 남는 정도입니다. 하지만 저를 베면 당신은 후회하게 되겠죠. 사나다 가문은 객장이 되었으면서 은혜를 원수로 갚은 비겁자라는 이름을 남기고, 당신 자신은 죽음을 간절히 원할 정도로 괴로움을 당하게 됩니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확정된 미래를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듯한 시즈코에게는 뭐라 말할 수 없는 설득력이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는 묘하게도 그 말대로 될 것이라고 직감해 버렸다.


"하핫, 실례했습니다. 저는 너구리라고 자인(自認)하고 있었습니다만, 당신은 귀신(鬼)을 키우고 계시는 듯 하군요"


무토 키헤에는 쾌활하게 웃으면서 돌려받은 칼을 시즈코에게 내밀었다.


"이것이 저의 당신에 대한 충성심입니다. 만약 수상한 거동을 보였다고 생각하시면 사양하지 마십시오"


조금이라도 수상한 기색을 보이면 사양말고 베어버려도 좋다. 무토 키헤에의 태도는 그것을 웅변적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역시 얕볼 수 없는 너구리라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스스로의 각오를 보이면서도, 실제로는 시즈코를 시험하고 있기도 한 것이다.

하지만 나쁜 기분은 들지 않았다. 세상에 이름높은 지장과 진검승부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역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아무리 바라더라도 불가능한 곳에 시즈코는 지금 서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이렇게 기쁜 일은 없었다.


"맡아두도록 하죠. 하지만 쓸 일 없이 돌려드릴 거라 생각합니다"


"기대하지 않고 기다리도록 하죠"


무토 키헤에의 칼을 시즈코가 받아들었을 때, 입성을 기다리던 행렬이 이동을 개시했다. 이제 곧 하마마츠 성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을 이해한 시즈코는, 사람좋은 미소를 떠올리며 무토 키헤에에게 말했다.


"그럼 우리 나라에서 만든 술을 천천히 음미해 주십시오"




시즈코가 대량으로 수송시킨 것은 농성용의 물자가 아니라, 군수물자를 제외하면 싸움 전후에 열릴 연회를 예상한 식료품이었다.

당연한 듯 승리를 의심치 않고, 대량의 식료품과 술통이 반입되어 있었다.


"다들, 잘 싸워 주었다. 이 자리를 빌려서 감사한다"


오다 군의 아시가루(足軽)나 잡병들을 향해 시즈코는 감사를 표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병사들은 듣지 않고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시즈코는 내심 쓴웃음을 지으면서도 말을 이었다.


"하핫! 다들 내 말보다 얼른 술이 마시고 싶은 것이구나. 모처럼의 축하술이다, 예의 따위는 집어치우자(無礼講). 술도 음식도 잔뜩 준비시켰으니, 다들 실컷 먹고 마시도록!!"


"우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옷!!!"


"좋았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


"오늘만큼은 오다도 도쿠가와도 없다. 함께 강적과 싸운 전우들에게 내가 주는 작은 보답이다. 오늘은 딱딱한 이야기는 하지 않겠다. 실컷 먹고 마시고 떠들도록!"


시즈코의 목소리를 신호로, 병사들은 각자 요리에 달려들어 먹고 마시기 시작했다.

병사들의 취향까지는 모르기 때문에, 탁주(濁り酒)와 청주(清酒) 양쪽이 준비되었으나, 역시 보기 힘든 청주 쪽이 빨리 줄어드는 듯 했다.

후환(後顧の憂い)도 없어진 승리 축하연인 만큼, 싸움 전날의 연회보다도 떠들썩하다고 생각한 시즈코는, 아시미츠(足満)를 대동하고 이에야스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아시미츠 아저씨, 간자분 들에게도 음식과 술을 보내줘요. 눈에 보이는 전과는 없지만, 정확한 정보를 필요할 때에 전해줬으니까, 그에 맞는 보수를 줘야 해요"


"알겠다. 녀석들에겐 내가 말해두지"


"잘 부탁해요. 그럼 나중에 봐요"


거기서 시즈코의 호위는 아시미츠에서 사이조(才蔵)로 바뀌었다. 두 사람의 발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었을 무렵, 아시미츠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시선은 그대로인채 의식만을 토비카토(鳶加藤)에게 향하며 말했다.


"술과 음식을 놓아두었다. 마음껏 먹고 마음껏 마시도록. 오늘만큼은 취해 쓰러져도 뭐라 하지 않겠다"


(……옛)


"……그리고 시즈코로부터의 전언이다. '크게 도움이 됐습니다. 감사합니다'다"


(……)


"두 번은 말하지 않는다. 감사의 말을 실컷 음미해 둬라"


말이 끝남과 동시에 아시미츠는 시즈코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아시미츠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게 되었을 무렵, 토비카토는 슬쩍 중얼거렸다.


(고맙다……라. 두려움의 대상이 된 적은 있어도, 감사의 말은 처음이다. 나쁜 기분은 들지 않는군)


그렇게 중얼거리고 토비카토는 모습을 감추었다. 그가 있던 장소에는 작은 물자국이 생겨나 있었다.


다른 무장들이나 아시미츠와 합류한 시즈코는, 나란히 이에야스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이에야스가 있는 큰 방(広間)에 도착하자, 이미 축하연이 벌어지고 있었다.

가까이 있는 사람들과 담소하고 있던 도쿠가와 가문 가신들이, 시즈코가 들어온 것을 알자마자 대화를 뚝 멈추고 시즈코에게 깊이 머리를 숙였다.


"다들, 당신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이번 싸움에서 우리들은 타케다를 쓰러뜨린 영예를 얻는 동시에 우리 나라를 지켜낼 수 있었기 때문이죠"


깜짝 놀라고 있는 시즈코에게 이에야스가 가신들의 행동을 설명했다. 심히 낯간지러운 태도를 감추지 않고 시즈코는 지정된 자리에 앉았다.

오다 군의 무장들이 모두 앉자, 이에야스는 술잔을 한 손에 들고 말했다.


"우선은 오다 님께서 보내신 원군의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우리들 도쿠가와는 타케다의 침공을 막아낼 수 있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우리들만으로는 타케다의 발을 묶을 수 있었을지조차 의심스럽습니다"


이에야스의 말은 정곡을 찌르고 있었다. 역사적 사실대로라면 미카타가하라 전투에서 이에야스는 참패했다.

하지만 시즈코들의 진력(尽力)에 의해 대패를 맛보지 않았기 때문에, 이에야스의 인물상(人物像)을 상징하는 '찡그린 상(しかみ像)'은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시즈코 님, 이번의 은혜는 반드시 갚겠습니다. 원하시는 게 있으시면 뭐든지 말씀해 주십시오"


"옛, 과분한 말씀에 감사드립니다. 그렇다면, 다짜고짜 죄송합니다만, 한 가지 청이 있습니다"


"뭐든지 말씀하십시오"


시즈코의 대답에 이에야스는 싱긋 웃었다.


"그럼…… 이번 싸움에서 죽은 사람들을 장사지내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미카타가하라 대지에서 죽은 자를 장사지낼 허가를 받고 싶습니다"


"흠? 죽은 사람들은 모두 운구해왔다고 들었습니다만"


오다-도쿠가와 연합군의 사상자 숫자는 적다. 거기에다 죽은 사람은 후에 장사지내기 위해 진으로 운구되었다.

사망자는 한꺼번에 화장된 후, 모발이나 유품의 형태로 고향으로 돌아가 가족들에 의해 정성껏 장례가 치러진다. 대체 누굴 장사지낼 생각인지 몰라서 이에야스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것은 도쿠가와 가문 가신들도 마찬가지라, 시즈코가 장사지낼 상대가 누군지 알 수 없었다.


"이번 싸움에서 우리 측은 경미한 손해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하지만 전장에서 죽은 사람들은 많아서, 지금도 그 유해가 들판에 널려 있습니다. 우리들도 병사들을 잃었지만, 타케다가 잃은 병사들은 우리들과 비할 바가 아닙니다"


많은 시체가 들판에 널려서 부패하게 되면, 썩은 고기를 먹는 동물들이 역병(疫病)을 매개하여 주변 일대가 오염된다. 그것을 피하기 위해서도 죽은 사람들을 반드시 매장해야 한다고 시즈코는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도쿠가와 님과 타케다 사이에 쉽게는 씻을 수 없는 불화(確執)가 있음은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억지로 말씀드릴 생각은 없고, 받아들여주시지 않겠다면 포기할 생각힙니다"


그렇게 말하고 시즈코는 이에야스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녀의 시야에는 눈가를 꾹 누른 채 오열하는 이에야스의 모습이 비쳤다.

이에야스 뿐만이 아니었다. 도쿠가와 가문 가신들이나, 오다 가문 측 무장들조차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다.

울 정도로 원한(確執)이 강했다면, 석회 처리 같은 걸로 어떻게 해볼까 하고 생각했을 때, 결연하게 얼굴을 든 이에야스가 소리쳤다.


"다들 들었느냐! 멋대로 쳐들어온 자들에게도 자비를 보이시다니…… 실로 시즈코 님께서는 자비로우시다. 나는 마음 속으로부터 감동했으며, 나 자신의 도량이 좁음이 부끄럽다"


"어, 저기, 잠깐 기다려 주세요. 뭔가 성대하게 어긋난 느낌이……"


"우리들도 일단 명령이 떨어지면 어디라도 달려가서 그 목숨을 던지는 것이다. 타케다에게도 젊은이가 있었으리라.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처자식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들의 모습은 언젠가 우리들의 모습이기도 한 것이다. 승리한 우리들이 장사지내지 않고 누가 그들을 장사지내겠느냐. 다들 오래된 원한은 있겠지, 하지만 죽으면 다들 곧 부처(仏)인 것이다. 훌륭하게 싸우다 죽은 타케다 가문의 사람들을 장사지내주도록 하자"


현재의 미카타가하라는 곳곳에 시체가 굴러다니며 그야말로 시산혈해(屍山血河)의 양상을 띠고 있다.

시즈코는 위생면(衛生面)의 관점에서, 추위로 시체가 잘 부패하지 않는 지금 매장하고 싶다고 제안한 것이지만, 이에야스에게는 다른 형태로 받아들여져 버렸다.


"(이제와서 아니라고는 말 못하겠지) 그래서, 그…… 매장해도 괜찮을지요?"


"물론입니다. 저희들도 도울테니, 뭐든지 명하십시오"


"각별하신 배려, 감사드립니다"


쓸데없는 말을 해서 긁어 부스럼을 만드느니, 오해가 있어도 그대로 진행하는 쪽이 낫다. 그렇게 생각한 시즈코는 오해를 해소하지 않고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다행히 이에야스는 승리에 취해 있어 시즈코의 속셈을 눈치채지 못하고 이야기를 진행했고, 때를 봐서 이에야스의 선언과 함께 승리의 연회가 개시되었다.




연회는 단시간에 종료되었다.

애초에 시즈코가 대량의 청주를 공출했기 때문에, 청주를 입에 댈 기회가 적은 도쿠가와 가문 가신들이 다투듯 퍼마셨고, 상쾌한 첫맛과는 달리 강한 주정(酒精)에 취해 쓰러져 버렸기 때문이다.

타다카츠(忠勝) 같은 경우에는 시즈코가 직접 잔에 술을 따라주자, 그대로 단숨에 마셔버리고 금방 취해서 쓰러져버렸다.

눈 앞에서 쓰러진 타다카츠에 시즈코는 당황했으나, 한조(半蔵)와 야스마사(康政)가 그녀를 손으로 제지한 후, 타다카츠를 문자 그대로 연회장에서 끌고나가서 빈 방에 던져넣었다.

비몽사몽(夢見心地) 간에 뭔가 중얼거리고 있는 타다카츠를 음식물 쓰레기라도 보는 눈으로 운반한 두 사람은, 빈 방의 맹장지를 열어젖히고는 타다카츠를 던져넣었다.

기둥에라도 부딪힌 것인지 쿵 하고 요란한 소리가 났으나, 타다카츠는 행복한 표정을 떠올리고 있었기에 조용히 맹장지를 닫아 봉인했다.


타다카츠 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차례차례 취해 쓰러져 실려나가서 연회는 순식간에 종료되엇다.

물론, 시즈코는 한 방울도 술을 입에 대지 않고, 도쿠가와 가문 가신들로부터도 술을 권유받지 않도록 아시미츠와 사이조와 타케나카 한베에(竹中半兵衛)와 시바타(柴田)와 미츠히데(光秀)가 번갈아가며 철벽의 방어로 봉쇄했다.


"후우, 끝났다"


밤바람을 쐬며 시즈코는 중얼거렸다. 술을 마신 것은 아니지만, 분위기로 취한 기분이 들었기에, 이렇게 밤바람을 맞으며 기분을 가라앉히고 있었다.


"이쪽이 끝났으니, 이번에는 영주님이 나가시마 잇코잇키슈(長島一向衆)를 공격하게 되겠네"


타케다와 오다-도쿠가와 연합군이 싸워서 승리햇을 때, 시즈코의 최후의 작전이 발동한다.

그것은 타케다의 패배를 알고 주위가 혼란에서 깨어나기 전에, 나가시마를 공겨해서 그들을 쫓아내는 작전이다.

역사적 사실에서는 수만 명이나 죽음을 당했다는 가열(苛烈)찬 나가시마 침공이었으나, 시즈코의 작전은 재빨리, 하지만 확실하게 공격하여 단기간에 결판을 내는 작전이다.

그러기 위한 밑준비를 1년을 들여 했던 것이다. 타케다와의 싸움이 성공한 이상, 나가시마도 성공할 확률은 대단히 높다.

만이르이 사태도 생각되었으나, 그것은 시즈코로서는 어쩔 방법이 없다.


"내일부터 오다 군의 대부분이 이동하겠네. 나는 남아서 토오토우미의 타케다 군 소탕에 협력하겠지만"


오다 군은 내일부터 복수로 나뉘어져 활동한다. 태반의 무장은 나가시마에서의 싸움에 참전하지만, 시즈코나 사이조, 나가요시들은 토오토우미의 성에 들어앉은 타케다 군 소탕을 도쿠가와 군과 공동으로 수행한다.

케이지(慶次)는 피곤하다고 말해서 나가시마 침공에는 참전하지 않고 귀국한다. 타카토라는 가장 많은 쿠로쿠와슈(黒鍬衆)를 거느리고 있었기에 미카타가하라 대지에서의 매장 작업에 종사하게 되었다.

시즈코 직속(肝いり)의 텟포슈(鉄砲衆)는 다른 가신들과 마찬가지로 나가시마로 가서 노부나가의 직할 무대로서 일하게 된다.


예상으로는 노부나가가 준비를 마치고 나가시마에 착진(着陣)하는 것과, 텟포슈나 무장들이 노부타다와 합류해서 나가시마에 도착하는 것은 거의 동시인 24일이나 25일이 된다.

정월(正月)까지의 날짜는 얼마 안 남았지만, 절반 정도의 요새를 함락시킬 수 있으면 감지덕지라고 시즈코는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시즈코의 예상은 크게 빗나가게 된다. 그것을 그녀가 알게 되는 것은 모든 것이 끝난 후였다.


"아ー 관두자 관둬, 쓸데없는 생각을 해봤자 소용없어. 자, 다들 자자ー"


곁에 있는 비트만들에게 말하자, 그들은 꼬리를 흔들며 모여들었다. 시즈코는 비트만 패밀리에게 둥글게 둘러싸여 잠을 청했다.

다음 날 아침, 시즈코를 깨우러 온 도쿠가와의 소성(小姓)이, 그 광경을 보고 질겁한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타케다의 패배와 신겐의 부보(訃報). 노부타다나 노부나가에게 도착하는 것과 동시에, 반 오다 연합 진영, 그리고 중립을 지키고 있던 자들에게도 그 소식은 전해지기 시작했다.

소식을 들은 아사쿠라(朝倉)는 즉각 귀국했다. 겨울이 깊어져 눈이 쌓여서 행군이 늦어진다는게 이유였으나, 누가 봐도 타케다의 패배를 알게 되어 반 오다 연합에서 재빨리 빠져나간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아자이(浅井)는 주요 가신들조차 어쩔 줄 몰랐고, 개중에는 오다와 내통하는 자들도 나오기 시작했다. 중신들이 그런 상태였기에, 병사들 또한 보신을 위해 도망을 꾀했다.

오다니 성(小谷城)에 남겨진 병사들은 부상자들이나 병자들, 도망칠 여유가 없는 자들만 남게 되었다. 성의 방위에 돌릴 수 있는 병사들이 적어졌기에, 몇 개의 방어시설은 포기되었다.

그밖에 반 오다 연합에 참가한 소국의 영주(国人)들도 대응은 비슷비슷했다.


혼간지(本願寺) 등 종교 세력들(寺社勢力)도 충격을 받았다. 쾌진격을 거듭하고 있던 타케다 군이 서서히 패한 것이 아니라, 단 한번의 싸움에서 완벽하게 패배한 것이다.

이시야마 혼간지(石山本願寺)에 있는 켄뇨(顕如)는 전령의 보고를 이해하지 못했다. 시모츠마 라이렌(下間頼廉)도 마찬가지로, 뭐가 어떻게 되어서 타케다가 패했는지 실마리조차 잡지 못했다.

하지만 상황을 이해함에 따라, 그들은 지금 상태에서 오다와 싸우는 건 상책이 아니라고 생각하여 문을 굳게 닫고 농성에 집중하는 한편, 각지에 간자를 풀어 정보수집을 수배했다.

문을 닫는 것 자체가 큰 문제가 될 것도 모른 채.


쇼군 요시아키(義昭)의 경우에는 처음에는 보고를 믿을 수 없어서 전령을 큰 소리로 매도하여 쫓아낼 정도였다.

그러나, 주위의 반응으로부터 전령의 보고가 사실임을 깨닫자, 급격히 소심해져서 머리를 감싸쥐고 벌벌 떨 뿐이었다. 그 한심한 모습에, 쇼군을 따라 오다에게 반역한 가신들도 정나미가 떨어졌다.


오다에 적대한 자들의 동요는 엄청났다. 그 정도로 타케다 신겐이 패배했다는 사실은 무겁다.


반면 노부나가는 이 기세를 최대한 이용하여 나가시마에서 일향종(一向宗)을 구축할 생각이었다.

목구멍에 걸린 생선가시처럼 짜증나는 존재인 일향종을 확실히 구축하려면 지금이 호기였던 것이다.

아사쿠라가 귀국한 것으로 서쪽의 방어망에 여유가 생긴 노부나가는, 당장 병사들을 데리고 나가시마로 향했다. 때를 같이하여, 하마마츠 성에서 출진한 오다 군은 노부타다와 합류하여 나가시마로 향했다.


24일 이른 아침에 노부나가의 본군, 노부타다의 2군, 합계 5만의 군세가 나가시마에 집결했다. 코키에 성(小木江城)에서 작전회의를 가진 후, 점심 전부터 복수의 군으로 나뉘어 침공할 것이 결정되었다.

쿠와나(桑名) 방면에서 지원이 오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 타키카와(滝川)나 쿠키(九鬼) 수군(水軍)이 도착하는 대로 해상봉쇄를 한다.

이리하여 각자의 행동이 확정된 후, 각자 진군을 위한 작업을 개시했다.


뭐니뭐니해도 신식총의 탄약 제조가 급선무였다. 이 신식총을 대량 투입할 수 있는지 아닌지로 전황이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재료는 있어도 뇌관(雷管)을 만드는 것은 통상의 종이 약실(紙薬包)보다 훨씬 시간이 걸린다. 그 때문에, 전투 개시일에는 신식총의 대량 투입을 보류했다. 그래도 오다 군의 쾌진경은 멈추지 않았다.


"키묘(奇妙) 님, 이치노에 요새(一ノ江砦)를 함락시키고, 이어서 우구이우라 요새(鯏浦砦)로 진군중이라 합니다"


"아케치(明智) 님이 오오미나토(大湊)의 에고우슈(会合衆, ※역주: 자치회)로부터 간쇼지(願証寺)의 편을 들지 않겠다는 확약을 받아냈다고 합니다"


"시바타 님이 카토리 요새(香取砦)를 함락시키고 간쇼지로 진군중이라고 합니다"


"쿠키 님의 선단(船団)이 도착. 내일부터 해상 봉쇄에 참가할 수 있다고 합니다"


노부나가의 앞에 차례차례 보고서가 놓였다. 하나같이 노부나가를 만족시키는 것이었으며, 나가시마 잇코잇키슈가 일방적으로 패배하고 있는 것을 시사하는 내용이었다.

그것도 무리는 아니다. 아무리 견고한 문을 만들어도, 작렬통(炸裂筒) 하나만 꽂히면 산산조각으로 날아간다. 비장의 화승총을 꺼내려고 해도, 쏘기도 전에 오다 측의 신식총에 벌집이 된다.

나가시마 잇코슈(一向衆)에 처음부터 승산 따윈 없었다. 오다-도쿠가와 연합군과 타케다는 싸움이었지만, 노부나가와 나가시마 잇코슈로는 싸움조차 되지 않는다.

강자가 약자를 힘으로 사냥하는, 일방적인 유린, 원사이드 게임이었다.


"가슴이 다 후련한 보고들 뿐이구나. 요새를 공격하고 있는 무장들에게 명하라. 적은 가능한 한 많이 살려두라고 말이다. 놈들이 아군에게 우리들의 강함과 무서움을 선전해줄 것이다"


노부나가의 명령은 즉기 각 무장에게 전달되었다. 철저히 짓밟는게 아니라 어느 정도 살려두어서, 도망친 적이 도망친 곳에서 오다의 무서움을 아군에게 이야기하게 한다.

노부나가는 타케다가 도쿠가와를 침공할 때 쓴 수법을 흉내낸 것이다. 결과는 예상 이상이었다. 타케다가 오다에게 패한 것과, 하루만에 요새가 함락된 것, 그것이 요새를 지키는 자들에게 상상 이상의 공포가 되었다.


요새가 하루만에 함락된다. 그것은 원군을 부탁해도 제때 올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요새를 지키는 자들에게 이만한 공포는 달리 없다.

절대로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윤중(輪中) 바깥쪽에 있는 요새는, 가족들의 목숨을 살려주는 것을 조건으로 항복을 타진했다.

노부나가는 무장 해제와 나가시마를 떠나서 곧장 이시야마 혼간지로 갈 것을 조건에 더해 그들의 항복을 받아들였다.

물론, 조금이라도 수상한 짓거리를 하면 그 자리에서 일가친지를 씨몰살시키겠다는 협박도 전했다.


사방팔방에서 오다 군의 맹공에 노출된 간쇼지도 겨우 반나절만에 함락되었다. 이곳은 마지막까지 저항이 거셌으나, 오다 측의 손해는 거의 없었고, 태반이 일향종의 시체들이었다.

이리하여, 겨우 며칠만에 윤중에 있는 나가시마, 야나가시마(屋長島), 나카에(中江), 시노바시(篠橋), 오오토리이(大鳥居)의 다섯 개 성을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함락되었다.


"내일부터 텟포슈가 최전선에 선다. 우선은 시노바시 성과 오오토리이 성이다"


지금까지는 요새였기에 빠르게 공격해서 함락시켰지만, 다음부터는 공성전이 된다. 적도 필사적이 되어 지킬 것이기에, 지금까지보다 어려운 싸움이 될 거라고 누구나 예측했다.


"그렇게 긴장하지 마라. 이미 나가시마는 함락 직전이다. 지나치게 긴장해서 헛발질하지 말도록"


사쿠마(佐久間)나 시바타가 오오토리이 성, 츠다 노부히로(津田信広)나 니와 나가히데(丹羽長秀)가 시노바시 성을 담당하고, 나머지는 주위를 견제하면서 노부나가 본진이 나가시마 성을 공략하는 흐름이 되었다.

타케나카 한베에나 그가 데려온 병사들은, 오우미(近江) 나가하마(長浜)에 있는 히데요시에게 돌아갔다. 미츠히데도 오오미나토의 에고우슈와의 정치적 협상(調略) 후에 쿄(京)에서의 임무를 위해 쿄로 돌아갔다.

다른 세력에 대한 견제를 겸한 포진이었으나, 견제 따위 할 필요도 없었다. 누구 하나 방비가 허술해진 쿄에 손대려 하지 않았고, 노부나가의 쾌진격을 들을 때마다 전전긍긍할 뿐이었다.


히데요시 군이나 아케치 군이 빠져서 병력 수가 좀 줄기는 했으나, 오다 군의 맹공은 멈추지 않았고, 거꾸로 기세가 올라갈 뿐이었다.


"영주님! 나가시마 성 앞에 네고로슈(根来衆)와 사이카슈(雑賀衆)의 철포대(鉄砲隊)가 포진하고 있는 것을 확인! 그 숫자, 2000 정도로 보입니다!"


오시츠케 요새(押付砦)와 토노메 요새(殿名砦)가 있는 장소에 포진한 노부나가에게, 나가시마 성 앞에 철포대가 다 모여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신식총을 쓰는 오다의 텟포슈는 본진에는 300명 정도밖에 배치되어 있지 않다.

시즈코의 텟포슈는 총 1000명 정도밖에 되지 않기에, 2000이라는 숫자는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영주님! 다른 부대에 분산시킨 텟포슈를 도로 데려와야 합니다!"


"필요없다. 300으로 문제없느니라"


진언하는 가신의 말을 노부나가는 일축했다. 깜짝 놀라는 가신을 무시하고, 노부나가는 텟포슈를 이끌고 있는 겐로(玄朗)를 불렀다.


"적은 2000으로 기다리고 있다. 너는 300의 텟포슈를 이끌고 보기좋게 쳐부수고 와라"


"2000입니까. 좀 부족하군요"


"핫핫핫, 잘 말했다!"


노부나가의 명령에 대해 겐로는 씨익 웃더니 너무 쉬워서 재미없다고 은언중에 내비쳤다. 그걸 들은 노부나가는 기분좋게 웃었다.


"그럼 잠시 기다려주십시오. 일 각(刻)만 있으면 결판은 날 것입니다"


"반 각에 끝내라"


"알겠습니다. 사반각(四半刻)에 끝내겠습니다"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 볼 때는 노부나가와 겐로의 대화는 말도 안 되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거짓이나 허풍이 아니라는 것을 그들은 사반각 후에 알게 된다.


"다들, 우리들은 네고로슈와 사이카슈를 쳐부수는 임무를 받았다. 별 것 없다, 사반각만 있으면 충분하다. 얼른 끝내서 우리들의 힘을 알게 해주자!"


"오옷!!"


겐로는 텟포슈를 고무한 후, 네고로슈와 사이카슈가 포진하고 있는 장소로 이동했다. 도착 후, 맞은편 기슭에 네고로슈와 사이카슈가 빽빽히 포진한 것이 보였다.

강폭이 가장 좁은 곳에서 도하하여 진군할 거라고 예상하고, 오다 군이 상륙하기 전에 철포로 섬멸한다는 작전이라고 겐로는 생각했다.


"아마 다른 곳에서 상륙하려고 해도 도하 그 자체가 어렵다. 그리고 감시병을 두고 있을테니, 바로 발각되어 총알비가 쏟아지겠지. 그렇다면 할 일은 하나뿐이다"


"겐로 님, 거리는 250에서 300미터 사이라고 합니다. 충분히 사정거리입니다"


"좋아, 일제 발사다!"


겐로의 호령과 함께 신식총에서 탄이 발사되었다. 강 저편에 있는 네고로슈와 사이카슈가 쓰러져갔지만, 겐로는 신경쓰지 않고 제압사격을 계속했다.

20분도 지나기 전에 결판이 났다. 네고로슈와 사이카슈의 사망자를 합치면 700정도, 부상자 숫자는 1000명 이상은 될 것이다, 그에 반헤 겐로의 텟포슈는 사망자 제로, 부상자 제로였다.

이 결과가 되는 것도 당연했다. 네고로슈와 사이카슈는 탄이 닿지 않는데 반해, 신식총은 여유롭게 살상권에 들어있었던 것이다.

300 이상의 거리에서 사격 훈련이 거의 없었기에 탄의 명중률은 나빴다. 그것은 발사숫자로 커버했다.

명중률은 낮아도 압승이다. 누가 봐도, 어떻게 변명을 하더라도, 전국시대에서 철포 명수(名手)로 이름높던 사이카슈와 네고로슈가 구축된 것에 변함은 없다.


"과연 대단하다"


30분 후, 겐로가 있는 곳으로 온 노부나가는, 반대쪽 강기슭의 참상을 보고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다 군은 파죽의 쾌진격을 거듭하고 있었다. 노부나가는 나가시마를 침공하는 부대를 줄이고, 나가시마에 협력적이었던 호족(豪族) 들에게 채찍과 당근을 사용하여 차례차례 굴복(調略)시켜갔다.


나가시마와의 관계를 끊는다면 지금까지의 일은 없던 것으로 하겠다. 하지만, 끝까지 나가시마에게 협력한다면 풀뿌리를 파뒤집어서라도 찾아내어 일가친지까지 씨몰살시켜버리겠다.


노부나가의 말은 이것뿐이었다. 관계를 끊는다면 관대한 태도로 대응하겠다, 하지만 여전히 나가시마에게 협력한다면 씨를 말려주겠다. 이만큼 알기쉬운 내용은 없었다.

대부분의 호족은 노부나가에게 복종했다. 일부 반역한 호족들도 있었으나, 하루도 지나기 전에 일가친지까지 몰살당했다.


29일 새벽, 최후의 저항이라고 말하든 시모츠마 라이탄(下間頼旦)을 시작으로 나가시마의 일향종을 지휘해온 자들과 정예병 1000이 노부나가 본진에 특공(特攻)을 걸어왔다.

하지만 노부나가의 본진에 도달하기도 전에 시모츠마 라이탄 이하 다수의 지휘관이 사살되는 결과로 끝났다.

이 결과를 알자, 모든 것에 절망한 간쇼지 5세인 켄닌(顕忍, 쇼이(証意)의 적자(嫡子))은 키소가와(木曽川)에 몸을 던져 자살했다.


이 이상의 저항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나가시마 측은, 노부나가에게 성문을 열 테니 전원의 목숨을 살려달라고 부탁했다.

그에 대해 노부나가는 무장해제, 불필요한 재물의 반출 금지, 이쪽의 지시에 따라 나가시마를 퇴거하여 이시야마 혼간지로 곧장 갈 것을 조건으로 항복을 받아들이겠다고 대답했다.

조금 시간은 걸렸으나 나가시마 측은 노부나가가 제시한 조건을 받아들여, 야나가시마와 나카에 두 성에 대해 저항을 멈추고 노부나가의 지시에 따르도록 명했다.


29일 점심때부터, 각 성에 틀어박혀있던 병사들이나 일반인들이 오다 병사들에게 감시받으며 성을 나섰다.

노부나가는 퇴거가 끝난 성이나 요새를 검사했다. 어딘가에 재산이나 무기를 숨겨좋지 않았는지 조사한 것이다.

결과는 노부나가의 예상대로였다. 나가시마 성을 시작으로, 많은 성이나 요새에 금은이나 돈이 감춰져 있었다.

금은이나 돈을 감춰서 남겨놓은 이유, 그것은 그들이 훗날에 요새나 성을 빼앗으러 올 생각이기 때문이다. 즉, 그들의 항복은 이 자리를 면하기 위한 거짓에 불과하다, 고 노부나가는 이해했다.


내심 분노가 치밀어오른 노부나가는, 병사들을 시켜 그것들을 아무렇게나 꺼내서 산처럼 쌓아놓았다. 다 쌓자, 노부나가는 나가시마 잇코잇키와의 싸움에 참전한 무장들을 모았다.


"뭐냐 이것은"


금은이나 돈을 앞에 두고 노부나가는 자군의 무장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대답은 기대하지 않았는지, 아니면 애초에 들을 생각도 없었는지, 노부나가는 무장들의 놀라움을 무시하고 말을 이었다.


"부처를 섬기는 몸이면서 속세에 관여하고, 나아가 불필요하게 재물을 축적한다. 백성의 신심(信心)을 이용하여 앞잡이로 삼으면서, 자신들은 처자를 거느리고 윤택한 생활을 한다. 그런 놈들이 부처의 이름을 말한다는 거냐!"


노부나가는 쌓여있던 금은을 걷어찼다. 일부가 무너지며 여기저기 금이나 은이 굴러갔지만, 누구 하나 그쪽으로 시선을 돌릴 수 없었다. 다들 노부나가가 뿜어내는 노기를 앞두고 꼼짝도 하지 못했다.


"뭐가 부처의 가호냐. 결국, 놈들은 부처가 아니라 놈들 자신이 소중한 것 뿐이다. 추악한 놈들, 구역질이 난다!"


분노를 내뱉듯이 노부나가는 성대하게 한숨을 쉬었다. 어느 정도 진정된 노부나가는, 무장들에게 시선을 돌리며 말을 이었다.


"나는 군에게 약탈(乱取り)을 금지시키고 있다. 그건 어째서인가. 백성에게서 살아갈 양식을 빼앗으면, 백성들은 우리들을 위해 일하지 않게 된다. 백성들의 마음이 떠나면, 나라는 순식간에 기울게 된다. 그렇기에 약탈은 금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용서하겠다!"


"오오오옷!!"


약탈 금지령을 해제하는 명령에 아시가루들이 환호하며 기뻐했다. 무장들도 병사들의 좋은 분풀이가 될 거라고 생각하여 노부나가의 약탈금지 해제를 기뻐했다.


"부처의 재물이라면 나도 약탈을 금하겠다. 하지만 놈들이 축적한 재물은 놈들 자신을 위한 것 뿐이다. 그런 놈들에게서 모조리 빼앗는 것을 주저하지 말아라! 뿌리째 남김없이 빼앗아라!"


약탈 금지 해제의 대호령이 발령되었다. 그날부터 이틀에 걸쳐, 나가시마는 구석구석 샅샅이 조사되었다.

무기 탄약은 물론이고, 금은이나 대량의 돈, 그리고 보존식(保存食) 등이 여기저기 감춰져 있었다.

그것들 모두를 아시가루나 잡병들이 빼앗았다. 개중에는 금괴를 잔뜩 가지고 돌아가는 아시가루나, 정월을 맞이하기 전에 가족에게 좋은 선물이 생겼다고 싱글벙글한 표정으로 기뻐하는 잡병들도 있었다.


역사적 사실에서 수만명이 죽음을 당했다고 하는 나가시마에서의 학살은 일어나지 않았으나, 아시가루나 잡병들이 재물을 서로 빼앗는 인의(仁義)없는 싸움은 벌어졌다.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은 전혀 모른채, 하마마츠 성에 있던 시즈코 군이 오와리(尾張)에 도착했다.


토오토우미의 타케다 군 소탕은 실로 맥없이 끝났다. 간자를 써서 타케다 군이 패배한 사실을 퍼뜨리자, 그때까지 강경 일변도였던 타케다 군은 앞다투어 도망쳤다.

이에야스가 우세해졌기에, 타케다의 군문에 투항했던 토오토우미의 영주들은 도쿠가와로 변절했다. 개중 일부는 선물이라고 말하듯, 카이로 철수중이던 스와 카츠요리(諏訪勝頼)나 코우사카 마사노부(高坂昌信)를 배후에서 습격했다.

그러나 '도망치는 데는 귀신(逃げ弾正)'이라는 별명을 가진 코우사카 마사노부 앞에서 토오토우미의 영주들은 가볍게 농락당했고, 스와 카츠요리는 변변한 피해도 입지 않은 채 카이로 철수하는 데 성공한다.


"결국, 무인(無人)의 나가시마 성을 파괴하기 위해 쓰게 되었네, 최종병기"


저택으로 돌아온 후 나가시마의 보고를 받은 시즈코는, 최종병기가 어떻게 쓰였는지 알게 되었다. 시즈코가 말하는 최종병기는, 알루미늄 분말을 이용한 테르밋(Thermit) 탄 비슷한 것이었다.

알루미늄 우산의 알루미늄 프레임을 분말로 만들어 처리하여, 몇 가지 소재와 혼합하여 연소시키면 테르밋 반응을 일으킨다.

이 떄, 반응의 중심에서는 무려 섭씨 3000도에 달하는 고온이 발생하여, 복사열(輻射熱)이 주위를 덮틴다.

그렇게 되면 유효 범위내에 있는 인간은 '사라진다'. 연소조차 허용하지 않고 즉각 잿더미로 변하는 것이다.

운좋게 중심에 없더라도 반경 수 미터는 고온에 노출되어, 갑자기 불을 뿜으며 타오른다.

게다가 그 바깥쪽에 있더라도 뜨거워진 공기가 폐를 태워서, 한 호흡에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병기였다.


"뭐 당초의 예정과는 다르지만, 사람에게 쏘지 않았다면 괜찮겠지"


애초에 테르밋 탄은 이시야마 혼간지의 성문 등에 사용하여 저항은 소용없다고 깨닫게 하기 위해 사용할 예정이었다.

돌로 만들어진 성문이 일순간에 '녹아'내리면 농성 따윈 무의미하다고 생각할지도, 라고 생각했었다.

물론, 노부나가도 그냥 사용한 것은 아니다. 나가시마 성에서 나가는 일향종에게, 테르밋 탄의 위력을 확실히 눈에 새기게 한 후 풀어주었다.


노부나가 자신이 선전(吹聴)하기보다, 아군으로부터의 보고 쪽이 몇 배나 공포를 부추긴다. 나가시마 일향종과의 싸움에서 노부나가는 그것을 배웠다.

동시에 시즈코가 완강하게 사람에게 쓰면 안 된다, 고 말했던 테르밋 탄의 위력도 인식했다.

그리고 인식한 후, 뒷날 노부나가는 시즈코에게 테르밋 탄을 봉인하도록 명했다.


"자, 새해가 오고 조금 지나면 새 집(新居)으로 이동할테니, 짐정리를 해야 하는데…… 내년 일은 내년에 열심히 하자"


보고서를 다 읽은 시즈코는, 보고서를 테이블 위에 놓고는 방바닥에 누웠다. 가까이 있던 비트만 패밀리는 시즈코가 바닥에 눕자 즉시 일어나서 그녀의 주위에 자리잡았다.

시즈코가 방바닥에 드러눕는다 = 일이 끝났다, 는 것을 최근 비트만들은 학습했다. 그래서 시즈코가 드러눕지 않으면 곁에 자리잡지 않는다.


"후아~아, 내년에는 좀 마음 편하게 지내고 싶네. 내년은 싸움 따위는 잊어버리고 밭일이나 하며 지내고 싶어"


매년 똑같은 것을 연말에 바라고 있지만 시즈코는 잊고 있었다. 그 바람이 한 번도 이루어진 적이 없다는 것을. 오히려 타케다를 쓰러뜨린 주역(主役), 이라는 것으로 더욱 무대 전면에 나서야 하게 되었다.

하지만, 자신의 입장을 의식하지 않는 시즈코는 비트만들과 느긋하게 잠을 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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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

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겐키(元亀) 3년 결전(決戦), 미카타가하라(三方ヶ原) 전투


098 1572년 12월 하순



바바 노부하루(馬場信春), 야마가타 마사카게(山県昌景)의 전사. 그 소식이 신겐(信玄)에게 전해진 것은, 시즈코가 타케다(武田) 군으로의 돌격명령을 내리기 직전이었다.

다들 전령이 가져온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감정이 이해를 거부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사태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타케다는 이 일전에서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는 것을.


타케다 가문 최강으로 이름높은 야마가타 마사카게가 이끄는 적비대(赤備え), 40년이나 되는 긴 세월 동안 전장에서 살아오며 긁힌 상처 하나 입지 않았던 불사신 바바 노부하루. 두 사람을 잃은 타케다는 양 팔이 뜯겨나간 거나 마찬가지였다.


"영주님(お屋形様)! 놈들에게 한 방 먹여주지 않으면 타케다의 이름에 먹칠을 하게 됩니다! 소생에게 돌격을 명해 주십시오!"


이 시점에서라면 타케다에게는 두 개의 선택지가 있었다. 즉, 계전(継戦)이냐 철수(撤退)냐이다. 하지만 주력을 잃었음에도 여전히 타케다와 오다(織田)-도쿠가와(徳川) 연합군의 전력은 비등한 상태였다.

승리할 확률이 있을 때 퇴각한다는 선택은 그들의 긍지가 용납하지 않았다. 뭣보다 여기서 퇴각하면, 지금까지 얻은 전과가 전부 물거품으로 변하는데다, 치른 희생이 무의미하게 되어버린다.

타케다의 명령을 따르기로 한 토오토우미(遠江)의 영주들도 다시 변절할 선물(手土産)로서 타케다를 추격할 것은 뻔했다.

명예만을 위해서라면 굴욕에 견디며 권토중래(捲土重来)의 때를 기다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군을 동원해놓고 전과가 없는 철수는, 오다-도쿠가와 연합군과의 계전보다도 손해가 크다고 판단되었다.


"제 3진을 보내라. 놈들을 이 이상 우쭐하게 만들지 마라"


계전을 결정한 신겐은, 본진을 제외한 전군에 공격명령을 내렸다. 그 호령에 전군에 활기가 돌았다. 오야마다 노부시게(小山田信茂), 야마가타 마사카게, 바바 노부하루의 군은 괴멸되었으나, 타케다에는 용맹한 무장이 부족하지 않았다.

나이토 마사토요(内藤昌豊), 사나다 노부츠나(真田信綱), 마사유키(昌幸) 형제에 스와 카츠요리(諏訪勝頼), 타케다 노부토요(武田信豊), 요네쿠라(米倉) 탄고노카미(丹後守)가 가세하면, 기세가 붙은 오다-도쿠가와 연합군을 되밀어내는 것도 쉬운 일이라 생각되었다.


하지만 신겐은 여기서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른다. 그는 오다-도쿠가와 연합군은 전군이 적비대나 바바 군과 충돌하여 간신히 두 사람을 처치했다고 생각했다.

신겐의 판단을 어긋나게 한 것은 정보 부족이었다. 전장은 극도로 혼란되어, 패인(敗因)은 둘째치고 유력 무장의 전사 보고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우선시되었기에, 신식총(新式銃)이나 작렬통(炸裂筒)의 위협은 아직 신겐에게까지 보고되지 않았다.

그리고 신겐이 자신의 실책을 이해했을 때는, 모든 것이 늦은 상태였다. 전령으로부터 급보가 전해졌다.


"주군(ご注進)!! 증원이…… 오다의 증원이 나타났습니다! 그 숫자는 대략 8000!"


"뭣이라!"


최악의 타이밍에 나타난 증원에 제아무리 신겐이라도 목소리가 거칠어졌다. 노부나가는 방어를 최대한으로 깎아내면서 원군(後詰め)을 보냈을 테니, 추가적인 증원 같은 건 뒤집어 털어봐도 나오지 않는다.

오와리(尾張)를 버리고 구원하러 달려왔다고도 생각했으나, 그렇게 되면 이 자리에서 승리를 거두더라도 오다-도쿠가와는 공멸한다.

어디서 8000이나 되는 전력을 짜냈는가. 신겐의 안목으로도 그 실마리조차 잡지 못했다.


"영주님! 원군이 내건 군기에 시바타(柴田)에 아케치(明智), 니와(丹羽) 등 이름높은 무장들의 문장(旗印)이 있습니다! 이대로는 제 2진이 버티지 못합니다!!"


"주군!! 추가로 삿사(佐々)에 마에다(前田), 하시바(羽柴), 모리(森)의 깃발이 확인되었습니다!"


"영주님! 오다의 맹공을 받고 나이토 님의 군은 괴멸! 나이토 님은 전사하신 것 같습니다!"


"사나다 님의 군도 패했습니다! 사나다 사에몬노죠(真田左衛門尉) 님은 전사! 무토 키헤에(武藤喜兵衛, 사나다 마사유키) 님의 모습도 본 자가 없습니다! 아마도 전사하신 게 아닐까 합니다!"


"일선에서 물러났던 모리 산자에몬(森三左衛門)이 나타났습니다!! 노도의 진격을 거듭하여 병사들이 전의를 잃고 물러나고 있습니다!!"


신겐에게 연달아서 부보(訃報)가 전해졌다. 증원의 출현과 함께 균형을 이루던 천칭(天秤)은 크게 기울었다. 단 하나 말할 수 있는 것은, 이대로 손을 놓고 있다가는 타케다는 패배한다.


(뭐가, 대체 어떻게 되고 있는 거냐!)


신겐은 불가해(不可解)한 증원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관두고, 당장의 대처에 주력했다. 이 상황은 나란히 장기를 두기 시작한 국면에서 상대방만이 많은 장기말을 숨겨 가지고 있었던 거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전장에서 마주치기 전부터 싸움은 시작되었다. 그 계략(絡繰り)을 꿰뚫어보지 못한 스스로의 어리석음(不明)이 부끄러웠다.

역전(歴戦)의 강자(強者)인 신겐은, 동요를 억누르고 몸매무새를 바르게 한 후, 코우사카 마사노부(高坂昌信)를 부르도록 명했다.

즉시 코우사카 마사노부가 나타나자, 신겐은 그에게 가까이 오도록 손짓했다. 이상하게 생각하면서도 코우사카 마사노부는 신겐의 바로 곁에 무릎을 꿇었다.

신겐이 뭔가를 속삭였을 때, 코우사카 마사노부가 놀라움에 눈을 크게 떴다. 그대로 신겐의 얼굴을 응시하는 코우사카에게, 신겐은 결연히 고개를 끄덕였다.


"영주님…… 알겠사옵니다!"


뭔가 머뭇거리듯이 코우사카 마사노부는 눈을 감고, 신겐을 마주본 후에 깊이 고개를 숙이고 그 자리를 떠났다. 신겐은 그 뒷모습을, 감정을 죽인 채 말없이 전송했다.




때는 조금 거슬러올라가, 오다 쪽은 케이지(慶次)와 타카토라(高虎). 타케다 측은 나이토 마사토요에 사나다 노부츠나, 마사테루(昌輝), 마사유키 형제 등이 부딪히고 있을 때, 케이지는 사나다 노부츠나와 일기토를 벌이고 있었다.


"으라차차차차차차차차!!"


경묘(軽妙)한 기합소리와 함께 케이지는 사나다 노부츠나의 맹공을 전부 받아내보였다.

전장에서도 여전히 눈을 끄는 카부키모노(傾奇者)의 차림새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무위(武威). 신겐으로부터 장래를 촉망받은 맹장, 사나다 노부츠나와 호각으로 겨루는 케이지에 사나다 군은 동요를 감추지 못했다.


"핫하ー! 댁의 동생은 조금 부족했는데, 댁하고라면 재미있는 승부를 할 수 있겠어"


동생이란 마사유키가 아니라 사나다 마사테루 쪽이었다. 케이지에게 목숨을 잃은 사나다 마사테루 대신, 지금은 형인 사나다 노부츠나가 명공(名工) 아오에 사다츠구(青江貞次)가 벼려낸, 길이가 1미터는 되는 진태도(陣太刀)로 케이지와 싸우고 있었다.


"괴물같은 놈…… 내 공격을 이렇게 쉽게 받아내다니"


"쉽지는 않지만 말야. 댁의 공격을 받아내는 건 실수가 용납되지 않으니 필사적이라고"


할버드(halberd)를 겨누며 케이지는 사나다 노부츠나를 칭찬했다. 이만한 강적과 만날 수 있었던 행운, 그리고 자신의 힘이 그와 나란히 한다는 현실, 케이지의 가슴이 뛰지 않을 리가 없었다.


"사선을 넘나드는 것을 즐기는 것이냐. 이해할 수 없군"


"죽음을 앞둬야 삶을 실감할 수 있지. 그러니 좋은 거 아니겠어!"


노부츠나에게는 이해할 수 없었으나, 케이지는 이 일기토를 진심으로 즐기고 있었다. 찰나의 순간에 교차되는 목숨의 다툼만큼 재미있는 것은 없다고 말하는 듯한 웃음에, 사나다 노부츠나는 쓴웃음을 떠올렸다.


"카부키모노가…… 무사인 나는 이해할 수 없다"


"간단해. 이해같은 건 안 해도 돼. 댁의 전부를 부딪혀 주면 되는거야"


대화가 끝남과 동시에 날카로운 소리가 울려퍼졌다. 쉬익 하는 칼날이 우는 소리를 내며 할버드와 진태도가 날을 부딪히는 소리였다. 몇 번 울려퍼졌는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한 가지 말할 수 있는 것은, 이 소리가 멎었을 때가 결판이 났을 때라는 것이다.


"이해가 안되는군. 그만한 무용이 있다면, 어디든지 사관할 수 있었을텐데. 타케다에 왔다면 호용(剛勇)한 무사로서 이름을 날릴 수 있었을 것을"


"나는 태어났을 때부터 삐딱해서 말이지. 나는 자유롭게 살고, 스스로 정한 죽을 자리에서 생을 마치고 싶은 거야. 딱딱하고 숨막히는 근시(近習) 같은 건 사양이라고"


"고노에(近衛)의 딸을 섬기면서 근시는 싫다는건가. 완전히 모순이로군"


치고받는 사이사이에 서로 대화를 했다. 보통 사람에게는 거의 불가능한 재주였다. 그걸 어렵잖게 해내는 케이지도 경탄할 만 하지만, 그것을 힘들지 않게 받아내는 사나다 노부츠나도 무서운 무사였다.


"하핫! 확실히 밖에서 보면 근시인가. 지금의 주인은 나를 속박하려고 하지 않지. 물론 최저한의 일은 해야 하지만, 그것만 하면 내 방식을 존중해 주거든. 용맹스러움은 전혀 없지만, 묘하게 사람을 끌어들여서 놔주질 않아. 나와 상성이 좋았던 거겠지"


"핫, 웃기고 있군! 수하를 속박하지 않는 주인에, 속박되지 않음에도 떠나지 않는 수하라. 양쪽 다 모순되어 있으니 상성은 좋겠지"


칼날을 부딪힌 충격으로 양쪽 다 크게 거리를 벌렸다. 간격은 벌어졌으나, 한 발자국만 내딛으면 서로의 참격의 간격이 되는, 긴장감을 품은 위치였다.

다음 일 합이 승부를 가른다. 두 사람 사이에 감도는 분위기에서 주위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것을 이해했다.

죽고 죽이는 와중에서도 계속 웃음을 떠올렸던 케이지도, 시즈코조차 본 적 없는 진지한 표정이 되어 있었다.


갑자기 돌풍이 불었다. 그것은 땅바닥에 쓰러져 있던, 본래 깃발이었을 천쪼가리를 하늘로 날려올려, 두 사람 사이에 그것을 펄럭이며 떨어지게 했다.

펄럭인 천에 서로가 가려진 순간, 두 사람은 움직였다. 양쪽 모두 한 동작에 간격을 좁혀, 손에 든 무기를 상대를 향해 내리쳤다.

케이지의 할버드와, 사나다 노부츠나의 진태도는, 그러나 교차하지 않고 휘둘러졌다. 양쪽 모두 참격의 기세를 타고 땅바닥을 찍고, 그 자세 그대로 정지했다.


정숙이 자리를 지배하며, 누구 하나 소리를 내지 않았다. 이윽고 케이지가 무릎을 꿇고, 조금 간격을 두고 사나다 노부츠나가 땅바닥에 쓰러졌다.


"내…… 생애 최고를 뛰어넘는가"


땅바닥에 박힌 칼을 지팡이삼아 사나다 노부츠나가 몸을 일으켰다. 그는 왼쪽 어깨에서 오른쪽 허리 부근까지 비스듬하게 베여 있었다.

한편 케이지도, 몸에 두른 갑주가 깨지고, 오른쪽 어깨에서 쇄골에 걸쳐 일직선으로 베인 상처가 나서 약간 피를 흘리고 있었다.


"크큭, 끝내주는군. 그런 재주……를 부리면, 무사의 체면이 말이 아니군"


돌진(踏み込み)과 참격은 사나다 노부츠나 쪽이 위였다. 케이지는 사나다 노부츠나보다 한 박자 늦게 움직였다.

사나다 노부츠나는 회피를 버리고, 혼신의 일격을 날렸다. 그에 반해 케이지는 날아오는 참격을 회피하면서 역공을 했다.

케이지라도 쉽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케이지의 상식을 벗어난 반응속도, 무거운 할버드를 나뭇가지처럼 다루는 경이적인 완력, 전력의 돌진이면서 몸을 피할 수 있는 순발력, 생과 사의 갈림길이라는 극한 상태에서의 집중력이 갖춰져 처음으로 가능한 일격이었다.

자기 몸에 새겨진 상흔(傷痕)을 보고 그것을 이해한 사나다 노부츠나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떠올렸다.


"하나 묻고 싶어. 당신, 이게 진 싸움이라고 알고 있었지? 어째서 도망치려고 하지 않은거지?"


입 속에 고인 피를 뱉어내고 사나다 노부츠나가 대답했다.


"……이 싸움에서 깨달았다. 지금부터는 철포(鉄砲)의 시대가 되지. 활이나 칼, 창 밖에 재주가 없는 무사는 언젠가 시류(時流)에 휩쓸려간다. 내가 평생에 걸쳐 닦아올린 기량이 쓸모없는 것이 되지. 나는 그걸 참을 수 없었다!! 그렇기에 이 몸을 던져 저항한 것이다!"


사나다 노부츠나는 이 일전에서 싸움의 양상이 변하여, 철포의 숫자가 승패를 결정할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개인의 무용을 필요로 하지 않는, 무사의 시대의 종언(終焉)임을 이해했다.

이해는 했으나, 사나다 노부츠나는 납득할 수 없었다.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신의 미래를 생각했을 때, 그는 이곳, 미카타가하라(三方ヶ原) 대지(台地)가 자신이 죽을 장소임을 깨달았다.


"철포에 죽는 것 따위 견딜 수 없다! 나는 무사다! 최후에는 싸움터에서, 내가 인정한 남자와의 싸움 끝에 죽고 싶다!"


사나다 노부츠나는 격하게 기침을 하며 입가에서 피를 흘렸다. 근시들이 다가오려 했으나, 그는 그것을 손으로 제지했다. 이미 자신이 살아날 수 없다는 것은 그 자신이 가장 잘 이해하고 있었다.


"사는 법, 죽는 법에 집착하는 네놈이라면 알겠지. 나는 내 숙원(本懐)을 이루었다"


케이지는 대담한 미소를 떠올리더니, 할버드를 힘있게 쥐었다.


"먼저 가 있어. 뭐, 금방 다시 만날거야. 그러면 술이라도 마시자고"


"음! 네놈이 사는 모습, 저 세상에서 구경하며 기다리겠다"


그것이 사나다 노부츠나의 마지막 말이 되었다. 케이지는 할버드로 사나다 노부츠나의 목을 베어 떨어뜨렸다. 사나다 노부츠나의 죽은 얼굴은 평온하여, 이 세상에 후회는 없다고 말하는 듯 맑고 깨끗한 표정이었다.


"사나다 사에몬노죠, 진정한 무사로다"


사나다 마사테루에 이어 사나다 노부츠나까지 전사하자 사나다 군의 사기는 와해되었다. 무릎을 꿇고 엎어져 무기를 버리고 죽은 주인을 애도(偲)했다.


"실례하오"


그런 병사들을 헤치고 말에 탄 한 사람의 무장이 앞으로 나왔다.


"할 건가?"


분위기를 볼 때 무사라는 것을 안 케이지는, 할버드를 가볍게 치켜올리며 물었다. 하지만 무장은 고개를 가로젓고, 허리에 찬 칼을 땅바닥에 던져버렸다.


"내 목숨으로 형님 두 분의 목, 그리고 병사들의 목숨을 구해주시오"


"……당신, 이름은?"


"무토 키헤에. 무토 가문에 양자로 간 몸이지만, 그대에게 쓰러진 사나다 사에몬노죠의 동생이오"


그렇게 말하면서 무토 키헤에, 뒷날의 사나다 마사유키는 갑주를 벗었다. 토시(籠手)와 정강이 보호대(臑当)만 찬 상태가 되자 다시 케이지의 얼굴을 보았다. 대답은 어느 쪽이냐고 그의 눈이 묻고 있었다.


"알았어. 당신의 제안, 받아들이지"


잠시 생각한 후 케이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케이지는 사나다의 목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지금 이상의 지위 따위 족쇄일 뿐이다. 대장의 목 같은 게 없어도 충분한 보수를 얻었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 그 말을 하면, 자기 목숨을 걸고 병사들의 구명을 청한 무토 키헤에에게 창피를 주게 된다.

시즈코가 있는 곳으로 데려가서 적당한 때에 풀어주면 된다고 생각했다.


"감사하오. 다들, 잘 들어라. 이제 이 싸움은 끝이다. 형님들을 잘 장사지내다오. 잘 부탁한다"


"예, 옛!"


사나다의 병사들은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지도 않고 힘있게 대답했다. 재빨리 사나다 마사테루와 사나다 노부츠나의 목을 겉옷(陣羽織)으로 감싸고, 패군(敗軍)의 병사라고는 생각되지 않은 통솔을 보이며 떠나갔다.

병사들의 움직임에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인 무토 키헤에는, 죽음을 각오한 자 특유의 맑은 눈으로 철수하는 병사들을 배웅했다.

이윽고 사나다 가문의 병사들이 모두 떠나게 되자, 케이지가 무토 키헤에에게 말을 걸었다.


"그럼, 그 목을…… 이라고 말해야 하겠지만, 그 전에 당신, 우리 대장을 만나보지 않겠어?"


"뭐라고?"


케이지의 기묘한 제안에 무토 키헤에는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케이지는 신경쓰지 않고 말을 이었다.


"댁을 죽이는 것보다, 우리 대장에게 만나게 하는 편이 재미있을 거라고 내 감이 속삭이고 있거든"


"그것에 무슨 의미가 있지? 내 목을 베어, 무공의 증거로서 제출하면 되지 않나"


"자자, 잠깐 내 농담에 어울려 달라고"


"알았다. 애초에 내 목숨은 네게 맡겨놓았으니, 네 여흥에 어울리도록 하지"


"그렇게 나와야지. 자, 그러면 얼른 가자고"


"잠깐, 지금부터 말인가? 네 앞에는 전장이 있고, 무공을 세울 기회가 여기저기 있는데? 그걸 버리면서까지 해야 할 일인가?"


패주하고 있는 타케다 군이라면 손쉽게 무공을 세울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용명을 떨친 무장이나 지장(智将)을 처치하면, 포상은 원하는 대로 받을 수 있다.

그 기회를 버리고, 무토 키헤에를 시즈코에게 만나게 하려는 의미가 이해되지 않았다.


"이 싸움, 처음에는 어떻게 될지 몰랐어. 그렇기에 재미있지. 하지만, 지금은 당신 말대로, 승기는 이쪽에 있지. 추격은 다른 녀석들에게 맡겨두면 돼. 나는 포상을 원해서 수급을 긁어모으는 얄팍한 짓은 하고 싶지 않아.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거지"


"이…… 삐딱한 놈이"


"자주 듣는 소리야. 자, 병사들이여. 나는 본진으로 돌아간다. 너희들은 마음대로 해도 좋아"


그 말을 들은 케이지의 병사들은 쓴웃음을 지으며 어깨를 움츠렸다.


"대장님, 버리고 가는 건 너무하잖아요"


"맞아요맞아요, 대장님이 돌아가면 같이 갑니다"


"뭣보다 대장님을 따라 돌아가면, 이 이상 싸움에 참가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가 되니까요!"


"야야, 겐로(玄朗) 영감한테 들리면 작살난다"


병사들이 왁 하고 웃었다. 누구 하나 타케다 군을 쫓아가서 공을 세우려고 하지 않았다. 케이지는 뭐라 말할 수 없는 표정을 지은 후, 넉살좋은 미소를 떠올리며 병사들을 돌아본 후 외쳤다.


"좋았어, 나보다 못하지 않은 바보들아. 시즛치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자ー!"


"오ー!"


케이지의 말에 병사들이 무기를 들어 화답했다.

이리하여, 케이지 부대는 다른 군이 승전의 기염을 토하는 가운데 당당히 본진으로 돌아간다는, 보통 사람에겐 이해하기 힘든 행동을 했다.

물론, 케이지의 행동에 후세의 역사가들이 하나같이 골머리를 앓은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쌍안경으로 타케다 군의 움직임을 감시하고 있자니, 시즈코는 기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제 3진에 포진하고 있던 스와 카츠요리의 군이 물러나고, 대신 본진에서 다른 군이 앞으로 나오려 하고 있었다.

이 자리에서 카츠요리를 물러나게 하는 노림수는 뭘까 고민한 시즈코였으나, 그 이유는 금방 깨달았다. 신겐은 패배를 받아들이고, 최후의 일격을 가하려 각오를 굳힌 것이다.


"텟포슈(鉄砲衆) 앞으로! 타케다가 최후의 공세에 나선다!"


"옛!"


전고가 울리고, 텟포슈가 돌출햇다. 시즈코는 폭죽이 매달린 화살을 재더니, 그것을 하늘을 향해 쏘았다.

공중에서 몇 개의 폭죽이 터졌다. 북과 폭죽의 심호를 들은 오다 군이 후퇴했다. 열이 올라서 물러나지 않는 부대도 잇었으나, 시즈코 군이 개입하여 억지로 후퇴시켰다.

그렇게 오다 군은 '소정의 위치까지 이동'했다. 오다 군의 맹공을 받던 타케다 군은, 갑작스레 느슨해진 압력을 괴이쩍게 여겼다.

전장에 찾아온 잠깐의 휴식에, 타케다 군은 반격을 하는 게 아니라 자군의 진형을 재편하는 쪽을 우선시했다.


오다 군이 물러나면서도 좌우로 벌려가는 모습은, 마치 타케다 군을 삼키려고 하는 듯 했다.

그 움직임을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자가 있다면, 오다 군이 학익진(鶴翼陣)으로 변경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신이 아닌 타케다 군은, 지금이야말로 호기라며 전력을 온존하는 것을 우선시하여, 오다 군의 행동에 대해 확인하는 것을 게을리했다.

그거야말로 타케다 군 최후의 일격을 둔화시켜, 결정적인 패배로 이끄는 요인이 되었다.


"텟포슈에게 탄종 전환을 전달! 탄환은 2식 관탄(弐式カ弾)에서 2식 산탄(弐式サ弾)! 탄두의 색으로 구별하여 혼동되지 않도록 철저히 주의시키세요!"


"옛! 지시를 전달하겠습니다!"


전령이 시즈코의 명령을 복창한 후, 즉시 말을 타고 최전선으로 달려갔다. 다시 쌍안경으로 타케다 군을 확인하자, 시즈코의 예상대로 주위의 군이 집결해 있었다.

타케다 군이 패주하여 물러서는 것을 깊게 쫓아들어가 오다-도쿠가와 연합군의 진이 세로로 길게 늘어졌을 때, 뼈아픈 카운터 공격을 걸어 반격한다는 게 타케다의 속셈이었으나, 오다-도쿠가와 연합군이 후방으로 물러났기 때문에 헛물만 켠 셈이 되었다.

하지만 작전을 변경할 기색은 없었으며, 곧 타케다 군의 선봉대가 움직였다. 그에 이어지는 형태로 후속도 차례차례 돌격해왔다.


"주군, 탄종 전환이 끝났습니다"


"수고했다. 이제 놈들이 살상 거리에 도달할 때까지 때를 기다린다. 관측수(高見)는 타케다의 선봉대가 '표식을 넘으면' 알리도록"


"옛!"


적의 움직임을 확인하기 위해 굵은 나무로 만든 사다리를 세웠다. 그걸 주위 사람들이 받치고, 맨 위까지 올라가 거기에서 쌍안경으로 적의 상황을 확인하는 역할을 맡은 사람이 관측수이다.

시력은 물론, 높은 곳에서도 정확한 관측이 가능한 균형감각과, 불확실한 발판에 겁먹지 않는 담력이 요구되었다. 관측수의 보고에 따라서 전황이 판단되기 때문에,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었다.


"주군! 놈들이 표식을 넘었습니다!"


"신호를 보내라! 2식 관탄 일제 사격으로 선봉대의 기세를 저지하는 것이다!"


전고로 신호가 보내짐과 동시에, 좌우 4백 정, 합계 1천 정이나 되는 총성이 울려퍼졌다. 살상 거리에 들어와 있던 타케다의 선봉대는 손에 든 목제(木製) 방패와 함께 관통당하여 차례차례 땅에 쓰러졌다.


"계속 쏴라! 방패수가 없어지면 2식 산탄으로 면제압(面制圧)을 한다. 명중 정밀도는 신경쓰지 마라!"


"옛!"


텟포슈는 차례차례 발포했다. 그 때마다 타케다 군의 병사들이 재미있을 정도로 쓰러져갔다. 종래의 화승총과는 달리 직진성이 뛰어난 신식총이기에, 한데 모여서 사격할 필요가 없다.

장전이 끝나자마자 각자 자의로 사격하기 때문에 사격 간격에는 편차가 발생하고 있었다.

통상적으로는 일제 사격을 하는 쪽이 제압력도 높고 효과적이지만, 지금은 타케다의 기세를 꺾는 것이 최우선이었기에, 끊임없이 총탄이 날아다니는 수시 사격(随時射撃) 쪽이 유리했다.

그리고 떨어진 밀도를 메우기 위한 2식 산탄이었다.


2식탄(弐式弾)이란, 현대에서 말하는 이중장전탄(二重装填弾)으로 분류되는 탄환이다. 대단히 거칠게 말하면 약실 안에 탄두를 두 개 세로로 겹쳐서 장전한 탄환이다.

두 발의 탄두를 날리기 때문에 장약량(装薬量)은 많아지고 탄환도 무거워져서 많은 숫자를 준비할 수는 없다. 그러나 특필할 만한 것은 그 압도적인 관통성능에 있었다.

격발한 화약이 우선 뒤쪽의 탄두에 에너지를 전달하여 앞쪽의 탄두를 밀어내고, 이어서 뒤쪽 탄두도 날아가기 떄문에, 앞의 탄두가 뚫은 구멍에 뒤쪽 탄두가 돌입하여 그 구멍을 더욱 깊게 파며 전진한다.

목제 방패 따위 아랑곳하지 않는 관통성에 특화된 탄종. 그것이 2식 관탄, 관은 관통탄의 관(カ)이다. (※역주: 원문에서는 2식 '카(관통의 일본어 발음인 칸츠으(かんつう)에서의 '카' 부분)'탄으로 되어 있으나, 읽기 편한 쪽을 우선시하여 관탄으로 번역했음. 이하 2식 산탄도 마찬가지로 '사'탄으로 되어 있으나 '산탄'으로 번역)


하지만 관통력이 높아지는 반면, 타격력이 일점에 집중되기에, 어쩔 수 없이 제압 범위라는 면에서는 떨어진다.

그걸 보충하기 위해 개발된 것이 2식 산탄이다. 이것은 앞서의 이중장정탄의 뒤쪽에 위치하는 탄두를 약간 기울여두는 것으로, 한번의 사격으로 두 곳으로 공격을 가능하게 한 탄환이다.

직진하는 것은 앞의 탄두 뿐으로, 뒤쪽의 탄도는 조준점에서 상하좌우로 약간 엇나간 지점에 착탄한다. 당연히 도달거리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2번째 탄두의 어긋남은 커지게 된다.

이에 의해 사선(射線)에서 몸을 피했음에도 그 몸에 총탄이 박히는 타케다 병사들이 속출했다. 참고로 2식 산탄의 산(サ)은 산탄(散弾)의 산이다.


이러한 이중장전탄은 베트남 전쟁 때 개발되었으나, 연발총이 당연한 근대 전투에서 중량 증가라는 디메리트를 덮을 정도의 전과를 올리지는 못했다.

하지만 단발식의 총이라면 평가는 바뀐다. 한 동작에 2발을 쏠 수 있고, 관통력과 공격범위의 각각에 맞춰 대응할 수 있다는 이점은 컸다.

그리고 총성의 숫자보다 많은 탄환을 흩뿌리는 제압력은 대단하여, 타케다 군의 기세는 눈에 보일 정도로 떨어져갔다.


"주군! 타케다의 기세가 멈췄습니다! 잡병들부터 뒤로 도망치기 시작합니다!"


"주군! 해냈습니다!"


관측수가 흥분하며 보고를 올렸다. 그 보고를 듣고 옆에 시립해 잇던 겐로도 환호했다.

하지만 시즈코는 보고를 듣고도 표정을 바꾸지 않고 전황의 변화를 계속 관찰했다.


"우선 승리하고, 그 후에 싸움을 하라. 그런 후, 이긴 후에도 투구의 끈을 조여라"


"옛? 뭐라고 하셨습니까?"


의미를 알 수 없어 겐로가 고개를 갸웃했다. 다른 사람들도 시즈코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건지 알 수 없어 곤혹스러운 표정을 떠올렸다.


"싸움이란, 상대에게 이길 수 있는 준비를 갖추고, 그런 후에 승기(勝機)가 올 때까지 기다린다. 두 가지가 갖춰진 후에야 비로소 싸움을 하여, 승리가 자기 손에 들어오는 거에요. 하지만 승리의 미주(美酒)는 승자를 오만하게 만드는 독이기도 하지요. 그렇기에 승리해도 방심하지 않고, 다음 싸움에 대비하기 위해 투구 끈을 조일 것을 명심하라, 라는 격언이에요. 뭐 저 나름대로의, 싸움에 대한 철학일까요"


"과, 과연. 항상 앞을 내다보시는 혜안이 놀라우십니다. 타케다에게 승리한다는 대승리(大金星)에도 긴장을 늦추지 않고 스스로를 다스리시는 모습에 고개가 숙여집니다. 그보다, 슬슬 어떤 작전이었는지 저희들도 알 수 있도록 개요를 들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겐로는 칭찬했으나, 시즈코는 미묘한 표정을 떠올릴 뿐이었다. 기분이 상했는가, 하고 당황한 겐로는 서둘러 화제를 바꾸었다.

수하의 칭찬을 솔직히 기뻐하지 못하고 있는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시즈코는, 표정을 조이면서 겐로의 질문에 대답했다.


"자세한 것들은 생략하고 한 마디로 하자면, 상대를 공황상태에 빠뜨려서, 조직적인 통솔을 잃어버리게 하여 우위에 선다. 그게 제가 이번에 쓴 계책의 개요에요. 차례차례 예상밖의 상황으로 몰아넣어, 처음 보는 공격(初見殺し)으로 압도하여 상황을 악화시키죠. 영문도 모르고 몰려서 시시각각 악화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면 누구나 착란 상태에 빠져요., 공포나 초조함은 전염되어, 공황에 빠진 병사들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어떤 한 점을 넘어서면 병사들은 통솔에서 이탈하여 군의 지휘계통은 붕괴하죠. 그렇게 되면, 이후에는 숫자만 많은 오합지졸이에요"


"예, 예에…… 하지만 개중에는 이해가 빠른 자나 배짱이 두둑한 자들도 있는 게 아닙니까? 병사들이 겁먹은 정도로 천하의 타케다 군이 붕괴하게 되는 걸까요?"


아직 상황이 잘 이해되지 않는 겐로는 고개를 갸웃했다. 자신이 생각한 의문을 차례차례 시즈코에게 질문했다.


"처음 질문에 대한 대답인데, 그건 있어도 문제없어요. 목숨을 주고받는 전장에서 이성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나요? 천 명 중에 한 손으로 꼽을 정도겠죠. 저들은 총력전을 걸어왔어요. 3만이나 되는 대군 중, 수십명 정도 똑똑한 사람이 있어도, 대다수의 병사들이 공황상태라면 그 목소리는 지워지죠. 그들은 정예무비(精鋭無比)한 대군이 강점이었지만, 이번에는 그게 되려 패착이 된 거에요"


대군이라는 것은 일반적으로 이기고 있는 동안에는 대단히 강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처음 보는 공격을 다수 이용하여 그 강함을 국소적인 승리로 꺾어보였다.

지휘계통이 와해되면, 병사의 숫자가 3만이건 10만이건 별 차이는 없다. 오히려 미쳐 날뛰는 병사들의 절대 숫자가 많아져, 지휘하는 사람이나 똑똑한 사람의 목소리는 병사들에게 전달되지 않게 된다.


"다음 대답인데, 한 번의 패배 뿐이라면 타케다 군은 금방 재기하여 대세를 만회하겠죠. 제 1진의 패배도, 오다 군이 기적적으로 이긴 것이라며 오명을 씻는 것을 노리고 분기할지도 몰라요"


시즈코는 지휘도(指揮刀)를 대신하는 쿠제(kuse)를 전장 쪽으로 향했다. 이미 승패는 결정나서, 타케다 군이라고 부를 만한 집단은 미카타가하라 대지의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연이어서 패배를 맛보았죠. 제 2진의 패배는 오다 군의 실력이 우연이 아니라는 걸 알게 하고, 타케다 병사들의 마음에 의심(猜疑)의 씨를 뿌리게 되죠. 틈을 두지 않고 제 3진까지 패배하면, 씨앗은 싹을 틔우고 의혹은 패배의 공포라는 꽃을 피워요. 죽음의 공포는 병사들을 잠식하고, 몸을 위축시켜, 최종적으로는 반드시 마음이 꺾이죠"


헐레벌떡 도망치는 타케다 병사들이 시즈코의 눈에 들어왔다. 갑주를 벗어던지고, 허리에 찬 칼을 내던지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곧장 도망치는 모습이.

타케다 병사들의 꼴사나운 모습을 보고도 시즈코의 마음은 평온했다. 자칫 잘못하면 저 꼴을 보였을 것은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언제 자신에게도 찾아올지 모른다, 고 생각하면 타케다 병사들의 모습을 도저히 비웃을 수 없었다. 얼른 싸움터에서 은퇴해서 농업에만 종사하면서 여생을 보내고 싶다고조차 생각했다.


"마음이 꺾인 상태에서 여전히 분전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아요. 대부분은 목숨을 아까워하여, 자신의 목숨을 보전하기 위해 도주하는 것을 선택하죠. 지휘계통이 붕괴하고, 병사들이 마음이 죽음에서 도망치는 것으로 가득하면, 설령 신겐 그 사람이라도 흐름을 바꾸거나 할 수는 없겠죠"


누구의 눈에도 알기쉽게 승패가 결정되었을 경우, 잡병들은 보신(保身)을 꾀한다. 그건 당연한 생각이었다. 어지간한 사정이 있지 않는 한, 잡병들은 무장을 위해 순사(殉死)한다는 선택은 하지 않는다.

공포에 휩싸인 잡병들은 앞다투어 도망치고, 그걸 본 자들도 나도나도 하며 도망치기 시작한다. 잡병에 이어 아시가루(足軽) 들조차 도망치기 시작하면, 붕괴는 결정적이 된다.

그렇게 되면 이미 군이라고 부를 수 없으며, 무장들은 어쩔 수 없이 패배를 받아들이게 된다.


"과연…… 아! 주군! 도쿠가와의 군기가 타케다의 후방에 나타났습니다!"


타케다 군의 배후에, 지금까지 모습을 감추고 있던 도쿠가와 군 8000이 갑자기 나타났다. 도주하던 타케다 군(이었던 자들)은 동요를 감추지 못했다.

유일한 퇴로인 배후를 차단당했다는 것이, 그들의 마음 속에서 아슬아슬하게 유지되고 있던 이성을 붕괴시켰다. 잡병들은 조금이라도 적병이 적은 쪽으로 가려고 뿔뿔이 흩어져 도망쳤다. 그것은 타케타 일족의 사람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예정보다 조금 늦었지만, 별 문제는 없네요"


이것이야말로 1년에 걸쳐 시즈코가 미카타가하라 대지의 지형을 조사했던 이유이다.

도쿠가와 군이 '어떤 장소'에서 타케다 군의 배후로 돌아들어가는 시간. 그 때에 오다 군이 어디에 있어야 포위가 완성되는가, 타케다 군을 어디로 유인하면 좋은가, 그걸 알기 위한 조사였다.

많은 비용을 들인 것 치고는 평범한 내용으로 생각되지만, 이 포위의 유무가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러기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조사였다.


오다 군이 학익진(鶴翼陣)을 펼치고, 타케다 군이 중앙의 일점돌파를 꾀한다. 거기서 학익의 군은 투입하지 않고 중앙군만으로 타케다 군을 막아내어 그 기세를 꺾는다. 타케다 군의 진격이 멈췄을 때, 유일한 퇴로인 후방을 도쿠가와 군이 틀어막는다.

하늘에서 보면 오다 군의 중앙을 정점으로 한 이등변삼각형 안에 타케다 군이 갇힌 것이 된다. 어느 방향을 향하더라도 두터운 적병에 가로막혀 이제 도주조차 할 수 없다.

신겐 정도의 인물이 자신이 놓인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을 리가 없다.

상황을 헤아렸기 때문에야말로 타케다 군은 움직임을 멈추었다. 어떤 수를 짜내던 자신들이 살아남는 미래는 없다고 이해하고 있었다.


"잡병이나 아시가루 뿐만이 아니라, 무장들도 인정했습니다. 자신들의 패배를"


타케다 군은 격퇴된 것이 아니라, 처음으로 완벽한 패배를 맛보았다고 인식했다.

타케다 스스로가 패배를 인정했다는 사실은, 반 오다 연합의 각 세력(諸氏)들에 격진을 일으키리라. 타케다의 깃발 아래 모였던 반 오다 연합의 의도는 근본부터 뒤엎어진 것이다.


"이걸로 외통수에요. 이 이상 싸워봤자 타케다에게 승리는 없어요. 쓸데없는 희생을 내지 않기 위해서도 타케다에게 투항하라고 권고하세요"


"옛!"


4박자로 전고가 울렸다. 그것은 승리가 확정되어 적병에게 투항을 권고하라는 신호(符丁)였다. 포위당했으면서도 저항하는 타케다 군에게 오다-도쿠가와 연합군이 투항을 권고했다.

일부는 여전히 저항하려 했으나, 대부분은 권고에 응하여 무장을 해제했다. 강하게 저항하던 집단도, 신식총의 총구를 들이대고 발밑에 총탄을 쏘아넣자, 만사 포기한 표정으로 투항했다.


"다들! 함성을 질러라! 우리들의 승리다!!"


시즈코가 승리의 함성(勝ち鬨)을 지르자, 여기저기서 병사들이 뒤를 따랐다. 타케다 군은 차례차례 무기를 땅바닥에 떨어뜨렸고, 큰 혼란도 일어나지 않은 채 역사에 이름높은 미카타가하라 전투는 막을 내렸다.




도쿠가와 군의 도착이 약간 늦었기에, 아깝게도 스와 카츠요리와 코우사카 마사노부를 놓쳤다. 하지만 신겐의 신병을 확보할 수 있었기에, 그들의 도망은 사소한 일이라고 시즈코는 판단했다.


신겐이 포박되었다는 보고를 받고 시즈코는 포박된 것은 대역(影武者)인 타케다 노부카도(武田信廉)가 아닌가 조금 의심했다.

하지만 간자(토비카토(鳶加藤))가 입수한 타케다 신겐의 의류(衣類)와 포박한 타케다 신겐의 냄새가 일치한 것에 따라 타케다 신겐 본인이라고 단정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대역인 노부카도도 포박되었다. 갑양군감(甲陽軍鑑)대로 신겐과 대단히 닮았기에, 구별하기 위해 대역 쪽에는 색깔 있는 천으로 팔을 묶고, 그만은 신겐이나 근시(近習)들과 다른 장소로 이동시켰다.


실은 시즈코는 신겐을 죽일지, 아니면 포박할지 마지막까지 판단하지 못했다. 이것은 노부나가나 이에야스(家康)의 정치적 의도가 얽힌 것이 원인이었다.

신겐이 침공한 것은 어디까지나 토오토우미(遠江)이며, 그곳은 노부나가가 아니라 이에야스의 영토이다.

신겐과 이에야스의 싸움에서 오다 군이 필요 이상으로 활약하면, 이에야스는 그렇다치고 도쿠가와 가문 가신들 사이에 불만이 남는다.

따라서 타케다 가문 가신들은 오다 군이 처치하지만, 신겐의 수급(首級)은 이에야스에게 일임한다는 것이 가장 타당한 판단이었다. 이에야스가 어느 쪽을 선택할지는 계책이 전달될 때까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이에야스가 고른 선택지는 포박이었다.

신겐을 죽이지 않고 포박한 이유는, 역시 정치적인 의도 때문이었다. 도망치는 신겐을 처치하면, 진짜 신겐은 도망쳤을 가능성이 있다고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타케다 군을 붕괴시킬 준비는 오다 군이 갖추었기 때문에, 이에야스는 노부나가의 부록(添え物)이라고 생각될 가능성도 있었다.

그러한 판단들을 방지하기 위해서도, 살아있는 신겐을 포박하여 스스로 패배를 인정하게 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포박까지의 일련의 흐름은, 처음부터 끝까지 오다와 도쿠가와 양쪽이 짠 계책이었다고 강변할 수 있다.

누가 봐도 이에야스는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병력을 온존시켰다가 가장 중요한 부분만을 채가는 모양새지만, 그렇게 중요한 부분을 선뜻 내주는 영주(国人)는 없다.

중요한 부분을 취할 수 있을 만한 공헌이 있었다고 세상은 판단한다. 승자만이 역사를 이어갈 권리를 얻는다. 아무리 타케다 측이 아니라고 외쳐도, 싸움에 진 개가 짖는 것이라고 단정되어 버리는 것이다.


따라서 신겐만큼은 싸움에서 단순히 처치한다, 는 결론은 되지 않는다. 그 후의 외교 카드, 국내에서의 정치적 의도 등, 다양한 것들이 어쩔 수 없이 얽히게 되는 것이다.

애초에 이것은 신겐 뿐만이 아니라 노부나가아 이에야스도 마찬가지지만.


어쨌든 신겐이 포박되었기에 타케다에게 싸울 힘은 거의 남지 않았다. 스와 카츠요리가 타케다 가문을 계승하더라도, 점점 포위망이 좁혀져 으깨질 것이 뻔하다.

뭣보다 카츠요리는 지금부터 딜레마에 빠진다. 타케다의 힘을 되찾으려면 돈이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까지 터무니없은 징수를 했기에, 이미 카이(甲斐)에 남은 돈은 거의 없다.

돈이 없으면 힘을 되찾을 수 없다. 하지만, 돈을 지금 이상으로 터무니없는 방법으로 모으면 타케다 가문은 붕괴한다. 답이 안 나오는 이율배반이 지금부터 카츠요리를 덮치게 된다.


"휘이, 끝났다. 전부 외줄타기였지만, 어찌어찌 이쪽의 예상대로 진행됐네"


피로를 토해내려는 듯, 시즈코는 성대하게 한숨을 쉬며 어깨의 힘을 뺐다. 얼핏 보기엔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처음부터 끝까지 외줄타기의 작전이었다.


먼저 타케다가 호우다 언덕(祝田の坂) 입구에 진을 치는 것이 절대적인 조건이었다. 이것에 실패했을 경우, 지금의 상황이 되었을지는 대단히 의문이다.

왜냐하면 도쿠가와 군은 같이 출진한 척 하며 사실은 하마마츠 성(浜松城)에서 미카타가하라 대지를 크게 우회하여 호우다 언덕 출구로 이동, 시즈코의 신호를 받고 입구로 돌입했기 때문이다.

도쿠가와 군의 이동 루트 및 행군 시간까지 시즈코는 면밀하게 조사했으나, 도쿠가와 군이 호우다 언덕 출구에 도착하는 시각과 오다 군이 타케다 군을 상대하는 시각은 거의 같은 시각이 아니면 신겐에게 계책을 간파당할 위험이 있었다.

그 때문에, 만약 호우다 언덕 출구에 타케다 군이 기다리고 있었다면, 어슬렁어슬렁 나타난 도쿠가와 군은 순식간에 박살나고, 시간은 걸릴지언정 시즈코의 계책도 간파당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렇게 되면 시즈코의 계책은 근본부터 뒤엎어졌다. 만약을 위해 시즈코는 호우다 언덕을 파뒤집어서 타케다 군이 행군하기 어렵게 해놓았다.

다만, 신겐이 그걸 무시하고 진군할 가능성이 있었기에, 호우다 언덕 입구에서 타케다 군이 진을 쳤다는 보고를 들었을 때 시즈코는 내심 쾌재를 올렸다.

단, 호우다 언덕을 파뒤집은 것 때문에 도쿠가와 군의 도착이 약간 늦어졌다, 는 실패도 발생시켰다.


다음으로 갑자기 나타난 오다 군의 무장들은 어디서 어떻게 이동시켰는가.

그건 단순명쾌한 이야기로, 아시미츠(足満)가 싸움 전에 물자를 피스톤 수송했을 때 수송의 호위병으로서 하마마츠 성에 들어가 있었다.

그 후에는 시즈코의 군에 있던 본래의 물자수송 병사들을 호위병과 바꿔치기하면, 다소 인원수가 증감한 정도로 얼핏 봐서는 차이를 알 수 없다.

뭣보다 피스톤 수송을 하여 인원의 출입이 빈번하게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들어왔을 때와 나갈 때의 인원이 다르다는 건 쉽게 눈치챌 수 있는 게 아니다.

이리하여 비밀리에 하마마츠 성에 오다 군의 정예들이 포진하게 되었다.


물론, 그들은 급거 불려온 것이 아니라, 시즈코가 병사들을 융통해달라고 사전에 부탁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시바타 카츠이에(柴田勝家)나 아케치 미츠히데(明智光秀) 등 무장들 본인이 나올줄은 시즈코도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들을 부른 가장 큰 이유는 타케다 군에게 놀라움을 주기 위해서다. 싸움에서 혼란으로 사고가 정지하는 것은, 때때로 치명적인 패배를 불러오는 경우가 있다.

특히 타케다 신겐처럼, 직감이 아니라 이론으로 싸움의 흐름을 설계하는 사람에게 예상 외의 상황이 벌어지는 것은 사고(思考)의 구렁텅이에 빠지기 쉽다.


실제로, 바바 노부하루와 야마가타 마사카게가 전사하고 갑자기 오다 군의 증원이 나타난 것에 의해 혼란스러워진 신겐은, 차례차례 군이 와해되어 가는 것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간신히 신겐의 사고가 정상화되어 타케다 군을 재편하기는 했으나, 상황을 바꾸려고 시도한 일점돌파는 신식총에 의한 면제압 앞에 맥없이 무너졌다.


하지만 신겐도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코우사카 마사노부에게 일점돌파가 실패했을 경우, 스와 카츠요리를 데리고 후퇴하라고 명령했다. 그 때문에, 오다-도쿠가와 연합군은 스와 카츠요리를 놓치게 되었다.

미카타가하라 전투에서 완전히 타케다를 괴멸시킨다는 노부나가의 의도는 달성하지 못했으나, 그래도 이 이후에 타케다가 오다에게 이기는 것은 불가능해졌다.

다만 타케다의 멸망은 노부나가의 비원(悲願)이기에, 설령 타케다가 약간의 병사밖에 움직이지 못하게 되더라도 완전히 멸망시킬 것이리라.


"훌륭합니다. 계책이 깨끗하게 들어맞으면 이토록 아름다울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습니다"


투항병의 처리를 마친 타케나카 한베에(竹中半兵衛)가 시즈코를 치하했다.


"수고하셨습니다. 저, 사상자는 얼마나 나왔나요?"


타케다 군의 사상자는 상상도 되지 않지만, 오다-도쿠가와 연합군에 얼마만한 사상자가 나왔는지 그것은 시즈코도 파악하고 있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런 걸 파악하기 전에 차례차례 계책을 실행해야 했기 때문이다. 상황이 진정된 지금, 타케나카 한베에가 조사하여 겨우 사상자의 숫자가 판명되었다.


"후훗, 놀라운 일입니다. 우리들의 사상자는 100 정도입니다. 도쿠가와와 함치면 300에서 400이 되겠지만, 이건 코우사카나 스와의 저항이 예상 이상으로 격렬했기 때문이겠죠. 하지만 타케다의 총 전력을 상대로 이 숫자는 놀랍다고밖에 할 수 없습니다"


과장스러운 손짓이나 몸짓을 하며 놀라는 타케나카 한베에였는데, 냉정한 그도 이번의 사상자의 숫자는 놀라운 결과였다. 동시에, 신식총이 싸움의 승패를 결정지어 부상자의 숫자를 늘리는 것도 이해했다.


"카하하하, 타케다가 꼬리를 말고 내빼는 모습은 두 번 다시 볼 수 없겠지! 그 우에스기(上杉)조차 본 적이 없는 광경, 정말로 속이 다 시원하군!"


"두 번 다시 볼 수 없는 광경이라는 건 찬성하겠지만, 너무 품위없이 떠드는 게 아니다"


"뭐 어떠냐. 이럴 때는 요란하게 떠드는 편이 다들 실감이 나는 법이다"


뒷정리를 마친 시바타나 미츠히데, 삿사 등 오다 가문의 무장들이 시즈코가 있는 본진으로 돌아왔다. 조금 늦게 모리 요시나리(森可成)나 마에다 토시이에(前田利家)가 돌아왔다.

그리고 타케다의 배후에 위치했던 도쿠가와 군이 돌아오게 되어 겨우 오다-도쿠가와 연합군이 집결하게 되었다.

나가요시(長可)나 케이지는 그들보다 먼저 돌아와 있었으나, 모리 요시나리에게 칭찬받아서 감격에 겨워있는 나가요시를 진정시키기 위해 현재 시즈코의 곁에는 없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시즈코 님. 우선 저희 도쿠가와의 위기를 구해주셔서 어떻게 감사드려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돌아온 이에야스가 시즈코를 보자마자 머리를 숙이고 감사의 말을 했다. 뒤에 있던 타다카츠(忠勝)나 한조(半蔵)도 이에야스를 따랐다.

그들 뿐만이 아니었다. 별로 면식이 없는 도쿠가와 가문 가신들이나, 그들의 근시들, 거기에 병사들까지 마찬가지였다.


"머, 머리를 드십시오, 도쿠가와 님. 저 같은 것에게 숙여도 되는 머리가 아닙니다"


"아니오. 당신이 없었다면 우리 나라는 타케다에게 유린당했을 겁니다. 이 이에야스의 머리로 괜찮다면 얼마든지 숙이겠습니다"


곤란하네, 라고 생각한 시즈코는 시선을 돌렸으나, 보기좋게 전원이 그 시선을 피했다. 배신자들, 이라고 내심 우는 소리를 하면서 이에야스가 머리를 들기를 기다렸다.


"도쿠가와 님"


이윽고 이에야스가 머리를 들었을 때, 사쿠마(佐久間)와 히라테(平手), 미즈노(水野)가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섰다. 그들은 투구를 벗더니 이에야스에게 깊이 머리를 숙였다.


"도쿠가와 님이 타케다와 내통했다는 의심을 한 저희들의 무례, 진심으로 사죄드립니다"


"도쿠가와 님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고 스스로의 얄팍한 생각(浅慮)으로 도쿠가와 님과 가신 분들을 모욕한 저희들의 죄, 깊이 사죄드립니다"


"도쿠가와 님의 뜻에 따라 어떠한 처분도 달게 받겠습니다"


"그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지요. 결과가 좋으면 다 좋은 법, 입니다. 그런 것들은 다 흘려버리십시다"


"도쿠가와 님의 관대하신 뜻, 감사드립니다"


오다와 도쿠가와 사이에 있던 앙금이 사라지고 동맹이 굳건해졌다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하늘은 꼭두서니 빛(あかね色)으로 물들어 있었다.

싸움을 시작한 것이 점심 무렵이었으니, 이래저래 몇 시간은 싸웠다는 것을 시즈코는 새삼 인식했다.

하지만 시즈코에게는 타케다와의 싸움 후에 할 일이 하나 더 남아 있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지금은 그걸 잊고 승리에 취해서 떠들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그럼 하마마츠 성으로 돌아갈까요"


"아, 그 전에 한 가지 상의드릴 게 있습니다"


"네? 무슨 일이 있었나요?"


바로 의논해야 할 일이 있었나, 하고 시즈코는 고개를 갸웃했다.

평소와 달리 귀여운 몸짓(仕草)에 타다카츠가 기절하려고 했으나, 뜨뜻미지근한 표정을 떠올린 한조와 야스마사(康政)가 재빨리 시즈코의 시야에 들어오지 않도록 가렸다.

이에야스의 뒤쪽에서 수수께끼의 공방이 펼쳐지고 있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 시즈코는 이에야스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포박한 신겐이 당신을 만나게 해달라고 난리라서 말입니다"


"아하, 네? 저를요?"


"예. 아무래도 저희들만으로 결정할 수 없어서, 판단을 여쭈러 왔습니다"


이에야스 왈, 신겐은 입에서 피를 흘리면서도 시즈코와 만나게 해달라고 하고 있다는 것이다. 시즈코는 어디까지나 노부나가의 가신이기에, 이에야스의 의향만으로 만나게 할 수도 없었다.


"만날 필요는 없다. 어차피 패전의 원한을 말할 뿐일 것이다. 그런 헛소리를 들어줄 필요는 없겠지"


시즈코가 생각하기 전에 아시미츠가 즉각적으로 거절의 의사를 드러냈다. 다들 판단을 망설이는 상황에서 순식간에 결론을 내리는 건 역시 대단하다고 할 수 있었다.


"으ー음, 딱히 상관없을 것 같긴 한데, 마지막에 만나는 게 나라면 나중에 불명예가 되지 않을까요?"


목이 잘리기 직전에 여자와 만났습니다, 라는 소리를 들으면 신겐의 명예가 상처를 입지 않을까 시즈코는 생각했다. 아무래도 자기 때문에 신겐이 조롱거리가 되는 것은 사양하고 싶었다.


"문제없을 것이다. 본인이 선택한 길인데, 그 결과를 본인이 달게 받아들이지 못하면 어쩔 것이냐"


"그런가요. 뭐 저쪽이 바란다면, 나는 딱히 문제없지만 말이에요"


시즈코의 한 마디로 면회가 실현되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최대의 공로자를 혼자 가게 할 수는 없었다. 사후처리에 몇 명 남겨놓기는 했으나, 태반의 사람들이 호위로서 시즈코를 따라가게 되었다.


(엄청난 상황이 되었네)


평소 이상으로 주위가 엄중하게 굳혀져 있는 것에 시즈코는 웃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제와서 자신이 얼빠진 짓을 하면 그건 다른 사람의 불명예도 되기 때문에 호위를 받아들였다.

이동이라고는 해도 그리 긴 거리를 걷는 것은 아니었다. 신겐은 포로로 잡혔지만, 병 때문에 이동시킬 수 없어서 미카타가하라 대지에 임시로 세워진 진 안에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근시들도 또한 마찬가지로 포박되어 있었다.


지위도 고려하여 중앙에 이에야스, 좌측에 타다카츠 등의 도쿠가와 가문 가신들, 우측에 시즈코와 사이조(才蔵), 아시미츠, 그리고 시바타와 삿사 등의 오다 가문 가신들이 위치하게 되었다.

각자가 소정의 위치에 자리잡자 이에야스는 신겐을 데려오도록 명했다. 잠시 후 손이 뒤로 묶인 신겐을 병사들이 데리고 왔다.


신겐은 트레이드 마크라고도 할 수 있는 갑주나 투구는 착용하고 있지 않고 중(坊主)을 방불케 하는 복장이었다. 호흡 소리는 거칠어서 한눈에도 상태가 나쁜 것을 엿볼 수 있었다.


"기다리셨습니다. 당신의 요청대로, 고노에(近衛) 님의 따님을 모셔왔습니다"


신겐의 눈이 희번득거리며 시즈코를 포착했다. 모든 것을 꿰뚫어보려는 그 눈에, 시즈코는 자기도 모르게 움찔할 뻔 했다. 하지만 그 전에 아시미츠가 앞으로 나와 신겐에게서 시즈코를 가렸다.


"살기를 뿜는다면 용서하지 않겠다"


"아니, 괜찮아요. 그보다 안 보이니까 비켜줘요"


신겐을 마주 노려보는 아시미츠였으나, 시즈코에게 거칠게 취급받고 맥없이(悄然) 물러났다. 자신에게 기합을 넣은 후, 시즈코는 한 호흡을 두고 신겐을 마주 바라보았다.

잠시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으나, 문득 신겐이 웃음을 떠올렸다.


"훗, 이런 맹한 계집에게 나는 패한 것인가. 하지만, 뭐라 말할 수 없는 심정이로다"


그건 신겐 나름의 칭찬이었으나, 시즈코는 누구와 만나더라도 매번 맹하다는 소리를 듣는 것에 울고 싶어졌다.

어째서 그런 평가가 되는 것인지 이상하게 생각한 시즈코였으나, 다른 무장들처럼 기백이 없고, 자칫 겁이라도 주면 순순히 말을 들을 것 같은 외모와 분위기를 가진 것이 원인이라고 본인은 깨닫지 못했다.


"고노에의 딸이여, 이름은 뭐라고 하느냐"


"어, 아, 네. 시즈코라고 합니다"


"그렇게 긴장할 필요는 없다. 그대는 이 나를 쓰러뜨렸다. 당당하게 행동해주지 않으면 내 이름의 체면이 말이 아니지"


그렇게 말하며 신겐은 웃었다. 그는 그저 기분이 좋았다. 인생에서 최초이자 최후의 대패배, 그것이 시즈코 같은 사람에게 당한 것이다.

다른 사람으로는 이런 기분이 들지 않았을 것이라고 신겐은 막연히 생각했다.


"아니, 저 뿐만이 아니라, 다들 따라와 준 덕분입니다. 저는 뒤에서 이것저것 말하기만 한 것 뿐이에요"


"후하하핫! 천하의 타케다와의 승리를 우쭐해하지 않다니. 어디까지나 눈에 띄는 게 싫다, 인가. 너는 뭘 하더라도 스스로를 과시하려고 하지 않았지. 그렇기에 주위에서도 놓쳐버렸다. 나 자신도, 안 좋은 예감만 들었지 설명이 되지 않았기에 무시해 버렸지. 후훗, 완패로다"


그건 누구나 귀를 의심할 말이었다. 신겐이 명확히 패배를 인정했다. 그것도 완패라는 말로. 말을 꺼낸 신겐보다도, 오다-도쿠가와의 무장들 쪽이 동요했다.

주위의 놀라움을 무시하고, 신겐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말을 꺼낼 때마다 그는 마음 속에서 매듭을 짓고 있는 듯 했다. 신겐의 표정이 서서히 의연(毅然)한 표정으로 바뀌어 갔다.


"도쿠가와의 꼬맹아. 내게서 훔쳐간 지휘부채(軍配団扇)를 시즈코 님께 넘겨라. 그건 네놈 따위가 가져도 되는 물건이 아니다"


불손한 태도로 신겐은 이에야스에게 명령했다. 신겐의 당당한 태도에, 승자 측인 이에야스가 당황하고 있었다.

자리의 분위기에 휩쓸린 이에야스는 병사에게 명하여 신겐의 지휘부채를 가져오도록 했다. 잠시 후 병사가 신겐의 지휘부채를 쟁반에 얹어 돌아왔다.


"그거다, 틀림없군. 어서 넘겨라"


"저어ー, 분위기가 고조된 상황에서 죄송한데, 지휘부채보다 라이쿠니나가(来國長)라던가 이즈미노카미카네사다(和泉守兼定) 쪽이 좋은데요……"


시즈코가 작게 손을 들며 머뭇머뭇 신겐에게 말했다. 라이쿠니나가란 타케다 신겐이 애용했던 패도(佩刀)다.

역사적 사실에서는 신겐이 죽은 후, 우여곡절을 거쳐 에도(江戸) 시대에 야나기사와(柳沢) 미노노카미(美濃守) 요시야스(吉保)가 신겐의 선조 대대의 위패를 모신 절(菩提寺)인 에린지(恵林寺)에 봉납했다. 그 밖에도 (2대째) 이즈미노카미카네사다라고 신겐이 사용했던 애도(愛刀)가 있다.

시즈코에게는 신겐의 지휘부채를 받아도 쓸 데가 없었기에, 받을 수 있다면 그가 애용한 칼 쪽이 좋았다.


"……크, 큭큭큭, 하하하핫! 소문대로 칼 수집가라는 건가. 상관없다, 가져가라. 네가 가진다면 안심이다"


무슨 이유로 시즈코가 맘에 들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신겐은 배포좋게 칼까지 시즈코에게 주었다. 이리하여 시즈코 앞에 신겐이 사용했던 지휘부채와 애도가 놓였다.

일순간 칼을 보고 눈을 반짝인 시즈코였으나,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이해하자 즉시 표정을 조였다.


"다음에는 천하(泉下, 저세상)에서 싸워보자"


이 세상에서 할 일이 끝난 신겐은, 이제부터 참수될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평온하고 태연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제 이렇게 피곤한 건 사양이에요"


"웃기지 마라, 이기고 도망치는 것 따위 용납할 수 없다. 천하에서 가신들과 절차탁마하여, 이번엔 내가 네 간담을 서늘하게 해 주마"


시즈코의 대답이 히죽 웃은 신겐이었으나, 갑자기 그 얼굴이 일그러지더니 격하게 기침을 했다. 세 번째의 기침에서 그는 입에서 피를 토했다.

신겐은 위암을 앓고 있었다고 전해지지만 진상은 알 수 없다. 그 병세가 악화되었다고 판단한 시즈코는 위생병을 부르려고 했다.


"됐다, 내 몸이다. 내가 제일 잘 알고 있지"


입 안의 피를 뱉어버린 후, 신겐은 호흡을 정돈했다. 침착함을 되찾자, 그는 주위의 놀라움을 무시하고 일어섰다.


"또 만나자"


그것이 신겐의 마지막 말이 되었다. 해가 지기 전, 그는 타다카츠의 손에 의해 목이 떨어졌다.

타다카츠가 신겐의 목을 벤 이유는, 신겐이 포박당했음에도 전혀 당황하지 않고 전국시대 최강의 이름에 걸맞는 최후를 보여준 데 대한, 오다-도쿠가와 연합군의 무장들 나름의 배려(手向け)였다.

그리고 신겐의 목은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일 없이, 신겐의 근시들의 손에 의해 카이로 귀국했다.

타케다(武田) 토쿠에이켄(徳栄軒) 신겐(信玄), 미카타가하라 전투에서 '전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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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

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겐키(元亀) 3년 결전(決戦), 미카타가하라(三方ヶ原) 전투


097 1572년 12월 하순



타케다(武田) 군의 돌격을 본 오다(織田)-도쿠가와(徳川) 군도 지지 않으려는 듯 포효를 올리며 타케다 군을 맞아 싸우려 돌격했다.

타케다의 기마대(騎馬隊)는 유명하지만, 기마대란 기마병만으로 구성되는 것은 아니다. 기마의 이점은 그 돌파력과 기동력에 있다.

상대에 재빠르게 접근하여 일격을 먹이고 이탈하는 것에 의미가 있다. 물론 기마대만으로 돌격해서는 의미가 없다.

모처럼 박아넣은 쐐기는 밀어넣지 않으면 진가가 발휘되지 않는다. 후속 부대가 무너진 곳을 넓혀야 전과가 올라간다.


아직 일본에서는 말에게 거세수술(去勢手術)을 하지 않고 눈가리개도 하지 않기 때문에, 말이 밀집해서 나란히 달리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말은 시야가 350도나 되고, 원래 겁이 많은 성질을 가지고 있기에 밀집하는 것을 싫어한다. 오늘날의 경마 등에서는 블링커(blinkers)라고 불리는 눈가리개를 장착하는 경우가 있다.

설령 타케다가 말을 나란히 달리게 할 수 있다 해도, 미카타가하라(三方ヶ原) 대지(台地) 같은 장애물이 적은 장소에서조차 기마만으로의 운용은 하지 않으리라.

그걸 증명하듯, 타케다의 군학서(軍学書)인 갑양군감(甲陽軍鑑)에도 기병 운용에 관한 기재가 있다.

상세한 내용은 생략하겠지만, 말은 대장과 소수의 기병만으로 문제없고, 싸움의 주력은 보병이다.

말을 다수 나란히 하여 상대에게 돌진하는 것 따위는 싸움을 모르는 어리석은 자의 헛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는 기술이 보인다.


그렇기에 피아를 불문하고 군의 주력은 보병이 된다.

돌격의 기세 그대로 백병전으로 돌입하는 건가라고 생각되었으나, 양군 모두 활의 사정거리에 들어서자 방패를 나란히 세워 사격의 응수가 되었다.

선봉을 맡은 자들이 서로 화살을 쏘아대며 교착 상태에 빠지는가 싶었을 때, 문득 메마른 총성이 공기를 찢어발겼다.


갑작스런 총성에 놀란 타케다 군이었으나, 총알이 닿지 않는다는 것을 알자 맹렬히 화살을 퍼부어왔다. 그 이후에도 몇 번 총성이 울려퍼졌으나, 이미 타케다 군은 신경쓰지 않았다.


"좋은 경향이네"


쌍안경으로 타케다 군의 움직임을 확인하고 있던 시즈코는, 그들이 소리의 인식에 실수를 범했다고 판단했다. 이어서 자군과 타케다 군을 번갈아가며 비교했다.


"좋아좋아, 우선은 '팽팽한' 게 중요해. 처음부터 '이길 수' 있지만, 그러면 상대가 경계를 하니까. 우선은 타케다 군에게 이기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게 만들어야지"


그로부터 한동안 시즈코는 쌍안경으로 최전선을 확인했다.

오다 군과 타케다 군의 소규모 충돌이 교착되고 있는 상황이 사반각(四半刻) 정도 이어졌을 무렵, 시즈코는 쌍안경을 내리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찾던 인물을 발견하자 그녀는 말을 걸었다.


"끝났어요?"


"예, 주군. 신식총(新式銃)의 교정은 완료했습니다. 이걸로 명중 정밀도가 비약적으로 향상될 것입니다"


"좋아요. 각자에게 전달, 준비가 끝나는 대로 최전선으로 나가라고 하세요. 전원 다 모이면 저도 앞으로 나갑니다"


"그, 그건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최전선에서는 지금도 격렬한 화살의 응수가 벌어지고 있다. 아무리 시즈코의 갑주가 특제품이라고 해도 갑주가 가리지 못하는 부분은 존재한다.


"상관없어요. 장수가 목숨을 걸지 않는데 병사가 따라오겠어요?"


"주군…… 옛! 주군은 이 목숨과 바꿔서라도 반드시 지켜내겠습니다"


"부탁해요"


짧은 대화를 마친 후 시즈코는 신호를 보냈다. 시즈코의 신호를 확인한 장수들은 휘하의 병사들을 소정의 위치로 이동시켰다. 텟포슈(鉄砲衆)가 앞으로, 그리고 그 뒤로 나가요시(長可) 부대가 이동했다.

시즈코는 텟포슈와 나가요시 부대 사이에 위치하고 있었다. 텟포슈들은 머리 위에 방패를 들고 있었으며, 이미 화살이 날아오는 위치에 있었다. 시즈코의 위치도 조금만 벗어나면 화살이 날아올 위험한 장소라고 할 수 있다.


시즈코는 하늘을 올려다보고 태양의 위치를 확인했다. '거의 예정대로'의 위치에 있었다. 순조롭게 계획이 진행되는 것에 시즈코는 옅은 미소를 떠올렸다.


"텟포슈들이여! 힘들고 괴로운 훈련에 잘 견뎌주었다!"


기분을 고쳐먹고 시즈코는 총탄을 장전하고 사격 준비에 들어가 있는 텟포슈를 고무시켰다.


"자랑스러워하도록! 훈련에 견딘 그대들은 지금, 영광스러운 역사의 기로에 서 있다! 이후 수천, 수만이나 되는 사람들이 제군들의 등 뒤를 쫓겠지! 그야말로 어둠을 헤치는 광명이니라!"


지휘용 부채(軍配)를 대신한 쿠제(kuse)를 하늘높이 치켜들고 시즈코는 말을 이었다.


"첫 한 걸음을 내딛는 정예들이여! 타케다에게, 이 일본에 있는 사람들에게, 혼신의 일격을 보여주도록 하자! 전원 조주운ー! ……일제 발사아(斉射)ーーーーー!!"


시즈코가 쿠제를 타케다 군을 향해 내리침과 동시에, 최전선에 늘어서 있던 텟포슈가 일제히 사격했다.

그와 거의 동시에, 타케다 군의 최전선을 구성하는 오야마다 노부시게(小山田信茂) 군의 방패수들이 벌집으로 화했다.




그 광경은 타케다 군은 물론, 사격을 한 텟포슈들조차 숨을 들이킬 정도였다.

약간 어긋났기에 증폭된 파열음이 울려퍼졌나 싶더니, 전선을 지탱하고 있던 방패수들이 일제히 쓰러졌다.

어린 대나무를 태우는 듯한 소리가 났나 싶더니, 방패로 몸을 지키고 있었을 병사들이 방패와 함께 쓰러지는 광경은 누구의 눈에도 비정상으로 보였다.


텟포슈가 놀라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쓰는 총에 수백 미터를 노릴 수 있는 포텐셜이 있는 것을 몰랐다.

훈련에서는 근거리에서 작은 과녁을 노리고 사격을 반복했기에, 이만한 거리조차 살상범위일 줄은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차탄(次弾) 장전!"


시즈코의 호령에 의해 텟포슈들의 몸은 반사적으로 움직였다. 피해를 입은 타케다 군보다는 훈련을 거듭하여 머리보다 먼저 몸이 움직이게 된 텟포슈들이 회복이 훨씬 빨랐다.

반사적으로 총탄을 장전한 텟포슈는, 그대로 조준을 하고 사격태세를 취했다.


"일제 발사아ーー!"


이번에는 총성이 나란히 뇌명(雷鳴)처럼 울려퍼졌다. 또다시 타케다 군이 크게 줄어들었다. 세번째의 장전은 침착함을 되찾아서 사격후에 즉시 완료되어, 곧장 사격태세가 갖춰졌다.


"일제히 발사하라!"


시즈코의 목소리와 함께 오야마다 노부시게 군의 병사들은 빗(櫛)의 이빨이 빠지듯 털썩털썩 쓰러져갔다.

공격력과 방어력이 균형을 이루어 소규모 충돌이 계속되고 있던 상황이, 순식간에 오다 군의 우세로 기울었다.

하지만, 오야마다 노부시게 군이 열세를 인식할 틈은 없었다. 총성이 진동할 때마다 무수한 시체가 양산되는 것이다. 화승총이 쓰이고 있다는 것은 총성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종래의 화승총에게 방패를 관통할 정도의 위력은 없었다. 그리고 말도 안 되게 빠른 발사간격이 혼란에 박차를 가했다.


하지만 타케다 군은 역전(歴戦)의 부대. 원인은 몰라도 결과로부터 판단할 수는 있었다.


"으,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 죽고싶지 않아ーー!!"


그것은 총성과 함께 병사가 죽는다. 총성이 들렸을 때는 이미 늦었다라는 공포였다. 그리고 그 죽음에는 방패도 갑옷도 소용없어, 풀처럼 단지 베여나갈 뿐이라는 사실이 간담(心胆)을 얼어붙게 했다.

하지만 적에게 등을 돌리고 도망치려 해도 밀집해 있었기에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어, 총탄은 차례차례 목숨을 앗아가고 있었다.


(ーーーー보였다!)


쌍안경으로 상황을 확인하던 시즈코의 눈에, 오야마다 노부시게 군이 완전히 와해된 것, 그리고 배후에 있는 타케다 군 최강의 적비대(赤備え), 야마가타 마사카게(山県昌景) 군이 들어왔다.

재빠르게 쌍안경에서 눈을 뗀 후, 시즈코는 의욕이 넘치고 있는 나가요시(長可) 군 쪽으로 몸을 돌렸다.


"오래 기다렸다, 용사(猛者)들이여! 오야마다 군은 붕괴했다! 이제 야마가타 마사카게를 처치하는 데 방해되는 것은 없다! 자 너희들이 나갈 차례다! 함성을 질러라! 그리고 훌륭하게 야마가타 마사카게를 처치하고 와라! 적비대를 처치하면 후세까지의 영광이니라!!"


"우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가장 선두에 있던 나가요시가 시즈코 이상으로 포효했다. 그것은 뱃속까지 울리는 사나운 짐승의 포효였다. 그리고 나가요시 나름의 독려이기도 했다.

나가요시의 포효를 들은 병사들이 고함을 지르면서 사기를 돋우었다. 이윽고 포효가 최고조에 달했을 때, 나가요시는 무기를 타케다 군 쪽으로 향했다.


"전원, 돌격이다아ーー!!!"


나가요시 군이 달리기 시작했다. 시즈코와 텟포슈들은 나가요시들이 포효를 지르고 있는 동안 그들이 지나갈 길을 터주기 위해 옆으로 비켜서 있었다.

땅을 울리며 함성을 지르고 나가요시 군은 나케다 군의 최전선이 된 야마가타 마사카게 군에게 돌격했다.

귀기(鬼気)가 감도는 기세로 돌진해오는 나가요시 부대를 보고, 약간 남아있던 오야마다 노부시게 군의 병사들이 엉금엉금 기어 도망쳤다.


오야마다 노부시게 군의 배후에 있던 야마가타 마사카게는, 갑자기 전위(前衛)가 무너진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눈 앞으로 다가온 적을 보고 그는 즉시 작은 학익진(鶴翼陣)을 전개하여 맞아싸우도록 병사들에게 명했다.

그의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돌출한 적에 대해 대군의 유리함을 살릴 수 있는 학익진은 이치에 맞다. 포위하여 두들겨버리면 보병의 돌격 따윈 뻔한 것이다.


그 판단은 나가요시 부대가 통사의 보병이었을 경우에 한정한다면 올바른 것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시즈코가 준비한 대 타케다용 병기는 신식총 뿐만이 아니었다. 잠시 후, 그들은 믿기지 않는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뭐냐, 저놈들은!"


야마가타의 학익진 중앙을 향해 돌진해오는 나가요시 부대는, 얼핏 보기엔 무턱대고 돌진하기만 하는 무사들의 자살행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좌우의 날개에 해당하는 부대에서 화살비가 퍼부어져, 중앙에 도착하기 전에 힘이 다할 거라고 적비대는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가요시 부대는 쏟아지는 화살비를 아랑곳하지 않고 기세를 유지한 채 달렸다.

눈이 좋은 사람은 눈치챘으리라. 나가요시 부대에 쏟아진 화살은 대부분이 튕겨나가서 갑주에 꽂혀잇는 화살조차 거의 없었다는 것을.


"핫! 엄청나구만, 이 갑주는. 버드나무에 바람부는 듯(柳に風) 화살을 받아넘기는데"


선두에서 말로 질주하는 나가요시가 우스꽝스럽다는 듯 말했다. 그가 말하고 잇는 동안에도 오른팔의 토시(篭手)에 화살이 명중했다. 그러나 날카로운 화살촉이 달려있을 화살은, 곡면을 미끄러지더니 꽂히지 않고 빗겨갔다.

대장격인 나가요시만이 특별한 게 아니다. 말단의 아시가루(足軽)에 이르기까지 마찬가지의 광경이 여기저기서 벌어지고 있었다.


이거야말로 노부타다(信忠, 키묘마루(奇妙丸))의 갑주에도 채용되어 있는 2식 장비(弐号装備)였다. 석영(石英) 유리를 고열로 처리하여, 섬유가 될 때까지 잡아늘린 유리섬유를 짜넣은 갑주였다.

현대에서는 FRP(유리섬유 강화 플라스틱)에도 사용되고 있는 유리섬유이지만, 전국시대에서는 강화 플라스틱을 손에 넣을 수 없다.

쌀과 삼베를 사용한 바이오 플라스틱은 실용화되어 있지만, 갑주를 만들 정도의 강도를 가지지는 못했다.

그래서 금속섬유와 유리섬유를 교차로 짜넣어 갑주의 표면을 형성하고, 갑주 아래에 입는 홑옷(帷子) 부분에도 유리섬유를 짜넣어 가벼우면서 강인한 갑주를 실형했다.

다만 고전적인 제법으로 유리섬유를 만들고 있기에 불순물도 많은데다 강도를 우선시했기에 수명이 짧다.

전국시대 기준으로는 무서운 방어력을 자랑하는 반면, 2~3년이면 열화되어버리는 쓰고 버리는 물건(使い捨て)이라고도 할 수 있는 장비가 되었다.

물론 강성(剛性)만 높아서는 충격이 침투하여 병사가 대미지를 입게 된다.

하지만 팩티스(factice)를 충격흡수재로 끼워넣거나, 메쉬(mesh) 형태로 섬유를 짜넣거나 해서 인성(靭性)을 향상시켜, 비로소 화살 정도라면 끄떡도 없는 강도를 실현했다.


"이놈들, 요술(妖術) 같은 것인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만, 이대로는 끝나지 않는다!"


외침과 동시에 야마가타 마사카게는 지휘봉을 특정한 패턴으로 휘둘러 신호를 보냈다.

그것은 제 2진에 대기하고 있는 타케다 군의 제장(諸将)들에게 전선의 이상 상황을 알림과 동시에, 어떤 작전의 실행을 알리는 신호이기도 했다.


"저건…… 다들, 물러난다!"


야마가타 마사카게의 신호가 무엇인지 이해한 적비대는, 일제히 뒤로 물러났다. 그 질서있는 훌륭한 철수 행동은 나가요시들에게도 전황의 변화를 알려주었다. 하지만 발을 멈출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나가요시에게는 야마가타 마사카게가 학익진을 펼치는 것도, 2호 장비에 놀라 부대를 물리는 것도 상정한 대로의 전개였으므로.


적비대들이 야마가타 마사카게의 명령에 따라 좌우의 날개를 남기면서 중앙만이 후퇴해갔다. 중앙이 후퇴하면 어떻게 되는가.

적의 전선은 후퇴와 함께 세로로 늘어지고 V자의 안쪽으로 유인되어, 간격이 벌어진 좌우 양익으로부터의 장시간의 공격에 노출되게 된다.

장시간의 맹공에 노출되어 궁지를 벗어나고자 후방이나 좌우로 도망치는 패거리를 친다. 실제로 제 2진의 바바 노부하루(馬場信春)나 나이토 마사토요(内藤昌豊) 등이 가세하고자 달려와서 나가요시 부대를 포위하려고 하고 있었다.


"좋았어! 저놈들이 걸려들었다! 용기병(竜騎兵)들, 부탁한다!"


하지만 나가요시에게는 포위망이 닫히려고 하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호기였다. 그는 함께 따라온 용기병, 니스케(仁助)나 시키치(四吉)들에게 호령을 내렸다.

그들은 나가요시의 호령 하에 일제히 컴파운드 보우를 조준하더니, 학익진의 좌우 날개를 담당하는 병사들이 밀집한 지대에 활을 쏘았다.

포물선을 그리며 상대의 중심으로 날아간 화살의 숫자는 약 30대. 적병의 숫자에 비하면 한 대에 한 명을 죽이더라도 새발의 피에 불과했으리라.


화살은 피리 같은 소리를 내며 날아가, 중력에 따라 낙하했다. 통상의 화살이라면 기세를 잃으면 끝이지만, 그 화살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귀를 찢는 굉음과 함께 병사들이 하늘을 날았다.

폭심지(爆心地) 부근에 있던 적비대는 지금까지 경험해본 적 없는 굉음과, 이해의 범주를 넘어선 충격을 온몸으로 받게 되었다.

너무나 큰 충격에 버티지도 못하고 날아가고,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흙먼지와 두통을 수반하는 이명(耳鳴り)이 적비대의 시각과 청각을 빼앗았다.


시야가 트였을 무렵, 그들은 오늘 몇번째가 될 지 모르는 충격을 받았다. 충격의 발생원(発生源)이라고 생각되는 장소는, 절구 모양의 큰 구덩이가 되어 있었다.

끔찍한 이명 사이사이로 간신히 들리기 시작한 귀에 들리는 것은 병사들의 절규였다. 주위는 아비규환의 지옥도로 변해 있었다.

직격을 당해 몸의 일부를 잃은 사람, 파편을 맞고 몸 속에서 피를 흘리는 사람, 눈이나 귀에서 피를 흘리고 구토하면서 가늘게 꿈틀대는 사람.

말조차 갈기갈기 찢겨 검붉은 내장을 드러낸 채 쓰러져 있었다. 주위에 멀쩡한 사람을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참상이 펼쳐져 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하게 새겨진 것은, 피리 소리와 함께 지옥문이 열린다.

그리고 그들의 귀에, 무자비한 죽음을 선고하는 피리 소리가 들려왔다. 도망친다, 라는 생각을 행동에 옮기기 전에, 운좋게 경상이었던 적비대가 고깃조각(肉片)으로 변했다.

폭풍과 함께 휘말려올라가, 예전에 적비대였던 자들의 팔이나 다리가 긴 체공시간을 마치고 땅바닥에 떨어졌다.

뒤늦게 피와 내장과 분뇨의 비가 쏟아져, 정지된 사고가 격렬한 취기(臭気)에 노출되어 강제적으로 되돌려져, 심장을 움켜잡힌 듯한 공포에 절규했다.


"자, 장난 아닌데, 저 작렬통(炸裂筒). 확실히 시즈코가 사용할 곳을 잘못 판단하지 말라고 몇 번이나 신신당부한 것도 납득이 간다"


작렬통이란, 다이너마이트를 봉입(封入)한 통을 매단 특수한 화살을 가리킨다.

본래 다이너마이트 같은 폭발물은 밀폐된 공간에서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밀폐공간 쪽이 충격을 분산시키지 않아서 높은 위력이 기대되기 때문이다.

개방 공간에서 사용했을 경우, 충격의 대부분이 개방 공간으로 방출되어 효과가 격감한다.

알기 쉬운 예를 들자면, 손바닥에서 폭발하면 화상으로 끝나는 폭죽(爆竹)도, 주먹을 쥔 상태에서 폭발하면 손가락을 뿌리째 날려버리는 위력이 된다.

하지만 본래는 바위를 파쇄하고 산을 무너뜨리는 다이너마이트이다. 지근거리(至近距離)에서 터질 경우 아무리 위력이 감소되더라도 인간 정도는 남아나지 않을 것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하지만 폭풍보다도 큰 효과를 내는 것이 소리다. 신식총도 그렇지만, 작렬통도 소리의 효과를 계산하여 설계되어 있다.

특징적인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죽는다. 상대에게 그렇게 각인시키면, 소리 그 자체가 공포의 대상이 된다.

소리가 나기만 해도 몸이 얼어붙어 전투같은 건 도저히 불가능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이 미지의 것이라면 효과는 더욱 높아진다.

어떤 원리로 죽는지 이해할 수 있다면 대처도 할 수 있겠지만, 미지의 것에 대한 대처는 때때로 어렵다.

거기에 공포가 더욱 판단을 둔하게 한다. 소리 공포증(音恐怖症)이라는 병명도 있을 정도로, 정체불명의 소리는 공포감이나 불안감을 준다. 사람에 따라서는 정체불명의 소리를 듣기만 해도 발광하고 실신하는 경우도 있다.


"자…… 드디어 보였다, 야마가타 마사카게에에에에에!!!!"


학익진을 전개하고 다시 양 날개를 두텁게 했기에 정면의 방어가 얇아져 있었다. 이거야말로 나가요시가 기다리고 있던 상태였다. 나가요시는 포효하더니 뒤의 보병들의 속도를 무시하고 말의 속도를 올렸다.

갑자기 나가요시가 돌출한 것을 깨달은 직속 병사들(随伴兵)도 당황해서 속도를 올렸으나 반응이 늦었다. 한편, 적비대들은 양 날개의 괴멸의 충격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동안에도 나가요시가 육박하여 드디어 교전권(交戦圏) 안에 들어왔음에도, 적비대들은 사고가 마비되어 있었다.


"야마가타 마사카게에에에에에에!!!! 네놈의 목을 받으러 왔다아아아!! 얼른 내게 목을 내놔라아아아!!!"


지금까지 본 적도 없는 거대한 무기——바디시(bardiche)——가 최전열에 있던 적비대들을 휩쓸었다. 나가요시가 송곳(錐)이라고 부르기에는 좀 광범위하게 뚫린 구멍을 넓히기 위해 후속 병사들도 돌격했다.

날려져가서 땅바닥을 기게 되어 간신히 궁지(窮地)에 몰렸음을 깨달은 적비대들이었으니, 이미 마음이 꺾여 있었다.

위축된 마음으로는 본래의 힘을 절반도 내지 못하여, 정강무비(精強無比)하다는 적비대들이 차례차례 목숨을 잃었다.


"돈이 굴러다니는 거나 마찬가지구만ー!"


"적비대를 죽여라! 썩어도 타케다의 적비대다. 목의 가치는 높다고!"


나가요시 부대의 아시가루나 잡병들이 제각기 외치면서 적비대를 처치해갔다. 눈을 번들거리며 적비대를 노리는 광경은 비정상적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적비대를 노리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적비대의 목은 말단의 아시가루라고 해도 제법 보상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방어력이 뛰어난 갑주를 몸에 두르더라도, 작렬통이라는 광범위 파괴병기가 있더라도, 죽음의 공포는 간단히 극복할 수 없다.

그 공포를 극복하는 데는 명예만으로는 무리가 있다. 나가요시라는 선두를 달리며 견인하는 존재, 그리고 처치하면 많은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욕망이, 그들에게 죽음의 공포를 극복하게 하고 있었다.

죽음을 당하는 적비대의 입장에서는 명예나 체면은 없는거냐, 라고 분개할지도 모르지만, 아시가루나 잡병들의 입장에서는 명예가 밥먹여주지는 않는다.


"목이다! 목을 내놔라아아아아!!!!"


"포상을 위해 목을 내놔라아아아아!!!!!"


이렇게 여러가지 생각들이 뒤섞여, 나가요시와 그를 따르는 병사들은 야마가타 마사카게의 목을 노리고 돌격하고, 그 이외의 사람들은 눈에 들어오는 적비대를 처치한다는 혼돈스러운 전장이 출현했다.




"거 참…… 요란하네"


상황을 살피고 온 척후의 보고에, 시즈코는 메마른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아시가루라도 목 하나당 넉넉한 포상을 주겠다고 했지만, 예상 이상으로 효과가 있었다.

쌍안경으로 다른 장소를 보니, 사이조와 아시미츠의 군이 바바 노부하루 군, 케이지와 타카토라의 군이 나이토 마사토요와 사나다(真田) 형제와 싸우고 있었다.

야마가타 마사카게가 제 2진의 보좌를 요구한 것처럼, 시즈코도 남은 네 명에게 나가요시의 보좌를 명했다. 작렬통으로 제 2진의 발을 묶는 데 성공하고, 그 옆구리에 각자 구멍을 뚫는 형태로 돌격했다.


텟포슈도 각각 300씩 데리고 있었기에, 타케다 군 제 2진은 야마가타 마사카게의 보좌에 참가하지 못했다. 아니, 그러기는 커녕 케이지나 사이조, 아시미츠, 타카토라와 싸우기만도 벅찼다.

특히 아시미츠의 부대가 이질적이었다. 전신에 화살이 꽂혀있는 상태에서도, 들리지 않는 목소리를 내며 적진에 돌격하는 병사들이 있었다.

입에서 침을 흘리고, 어딜 보는지 알 수 없는 멍한 눈에, 인간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힘으로 철봉을 휘둘렀다. 그런 자들이 100명 가까이 되었다.


"쏴라"


아시미츠의 명령에 텟포슈가 일제히 사격했다. 철봉을 휘두르는 자들과 함께 바바 노부하루의 병사들이 쓰러졌다. 하지만 멍한 눈을 한 자들은, 비틀비틀 일어서더니 다시 철봉을 휘두르고 있었다.

비정상적인 광경에 바바 노부하루의 병사들은 공포에 떨었다. 적과 아군을 한꺼번에 쏘는 것도 비정상적이지만, 뭣보다 철봉을 휘두르는 자들이 전혀 이해되지 않았다.


"놈들은 아군이 아니다. 타케다의 간자이지. 놈들과 함께 바바 노부하루의 병사들을 죽여라"


철봉을 휘두르는 자들의 정체, 그것은 노부나가가 포박한 타케다의 간자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아시미츠는 무서운 짓을 했다.

다투라(Datura)에서 추출한 마약 성분을 기반으로, 의식 혼탁이나 섬망 상태가 강하게 발현되도록 개량한 약을 정제하여, 간자들에게 투여하여 마인드 컨트롤을 실시했다.

반복적인 약의 투여와 세뇌에 의해, 간자들은 인격이 붕괴하여 단지 명령받은 대로 싸우는 살육 기계로 전락해 있었다.

지금 바바 노부하루 군을 덮쳐가고 있는 자들도, 약물 투여에 의한 황홀감으로 고통을 느끼지 않고 있었기에, 총격을 받아도 쇼크사하지 않는다.

하지만 출혈은 확실히 몸의 힘을 빼앗고, 육체의 손실은 그 수명을 줄이고 있었다.

비정(非道)한 작전이지만 아시미츠가 볼 때는 쓰고 버리는 간자를 재활용하고 있는 정도의 인식이었다.


"좋아, 돌격이다"


대충 처리된 시점에서 아시미츠는 병사들에게 호령을 내렸다. 병사들은 일순 주저했으나, 아시미츠가 달리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 당황하여 그 뒤를 쫓았다.

휘하의 병사들이 공포에 질려, 바바 노부하루가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아무도 응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돌격해오는 오다 군에 대해 손쓸 방법이 없어, 차례차례 병사들이 유린되어 갔다.


"치잇! 저렇게까지 사악한 계책을 쓰다니!"


군의 재편은 이미 불가능하다고 생각되었지만, 바바 노부하루는 그래도 물러서지 않고 분기(奮起)할 것을 촉구했다. 하지만 그의 생명의 등불은 지금 막 꺼지려 하고 있었다.


"소용없다. 이 싸움, 이긴 것은 우리들이라고 선언했지 않았더냐"


바바 노부하루의 앞을 아시미츠가 가로막았다. 직속 부하(子飼い)가 아시미츠의 발을 묶으려 했으나 일격에 베여죽었다.


"하지만 과연 바바 노부하루, 여기까지 버틴 건 칭찬해주지"


"네 이놈…… 이렇게까지 해서 이기고 싶은 것이냐. 네놈에게는 무사의 긍지라는 것이 없는 것이냐!"


약물로 미치게 한 병사를 돌격시키고, 그 등 뒤에서 아군과 함께 적을 쓸어버린다. 그야말로 악귀나찰(悪鬼羅刹)의 소행이라고 바바는 생각했다.


"흥, 네놈은 아직도 그런 말을 하는 거냐. 알겠느냐, 바바 노부하루. 나는 정이대장군(征夷大将軍)이었다. 하지만 쿄(京) 패거리들은 내가 방해된다고 생각했을 때, 암살이라는 수단을 취했지"


"그것과 지금 이것에 무슨 관계가 있나!"


"모르겠느냐, 어리석은 놈아. 뭐가 어쨌든 무가(武家)의 두령(棟梁)인 정이대장군을 암살한 것이다. 암살의 어디에 정도(正道)가 있느냐. 하지만 암살된 것을 아무도 비난하지 않고, 그러긴 커녕 다음 정이대장군을 세웠지. 자, 대답해봐라, 바바 노부하루. 정론을 이야기하겠다면, 어째서 내가 암살당했을 때 잘못된 것을 바로잡으려 하지 않았느냐!"


"큭!"


"이해되었느냐. 네놈의 정도는, 네놈에게 편리한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암살당했을 때 이해했다. 이 세상에는 정도도 사도(邪道)도 없다. 굳이 말하자면ーーーー"


칼 끝부분을 바바 노부하루에게 향하더니, 아시미츠는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차가운 말을 이었다.


"승자에게만 정도가 있으며, 패자에게는 정도를 입에 올릴 자격은 없다"


"이 놈, 궤변을…… 큭!"


어떻게든 되받아치려고 바바 노부하루가 아시미츠를 마주 노려보았을 때, 그는 이상한 것을 느꼈다. 아시미츠는 웃고 있었다.

그것은 승리를 확신하고 패자인 바바 노부하루를 조소하는 웃음이 아니었다.

비정상적인 아시미츠의 태도를 괴이쩍게 생각한 바바 노부하루의 귀에 말이 달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가 나는 곳을 찾아 주위를 둘러보려 한 순간, 그의 눈에 사이조가 창을 겨누고 돌격해오는 광경이 비쳤다.


"바바 노부하루!! 그 목, 받아가겠다!"


주위의 병사들도 아시미츠에게 의식이 집중되어 있었기에 사이조의 존재를 눈치채는 것이 늦었다.


처음부터 아시미츠는 바바 노부하루를 처치할 생각은 없었다. 사이조가 바바를 처치하기 위한 미끼 역할에 철저했던 것이다.


타케다의 이야기를 아시미츠가 몇 번이나 걷어찬 것은, 바바 노부하루가 나올 시기까지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바 노부하루와 회담했을 때, 필요 이상으로 그를 도발하고 모멸한 것도, 자신을 보면 바바 노부하루가 반드시 싸움을 걸어올 거라고 아시미츠가 판단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냉정해지려고 노력해도, 그만한 사람들 앞에서 더 이상 지독할 수 없는 욕을 먹으면 박살내버리고 싶은 감정이 생겨난다.

그렇게 내심 분노에 떠는 바바 노부하루를 최전선으로 끌어내, 깊게 파고들어왓을 때 바바 노부하루를 사이조가 처치한다는 작전이다.

도중까지 사이조의 군이 전혀 눈에 띄지 않고 뒷받침 역할(陰役)에 철저했던 것도, 바바 노부하루와 그의 병사들에게 사이조의 군은 두려워할 게 못된다고 방심시키기 위해서다.


이렇게까지 하면서 일찌감치 바바 노부하루를 처치하려고 생각한 것은, 딱히 그가 맨 처음 처치하기 좋은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 아니다.

그는 지휘능력이나 전황의 분석 능력이 뛰어나다. 바로 그렇기에 수십년 동안이나 긁힌 상처 하나 입지 않고 전쟁터에서 날뛰어 왔다.

그리고 전황의 분석 능력이 뛰어난 사람은, 싸움의 후반이 되면 될수록 성가신 존재가 된다.


타케다 사천왕(武田四天王)이나 타케다 24장(武田二十四将)을 아무리 많이 처치하더라도, 중요한 타케다 신겐을 처치하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

반대로 말하면 타케다 군이 아무리 많이 살아남더라도, 신겐의 목만 취하면 남는 장사다.

그 정도로 신겐의 목은 중요했으며, 그 최대의 장애물이 되는 인물이 바바 노부하루였다. 첫 싸움에서 그를 처치하려고 생각한 것은 전략상 지극히 당연한 판단이다.


하지만 통상의 전투를 걸어봤자 다소 피해를 줄 뿐이지 상대가 재편을 꾀하게 될 게 뻔하다.

그렇기에 사악하고 비정하다는 비난을 두려워하지 않고, 상대의 목을 베기 위해서 무엇이든 하는 아시미츠가 채용되었다.

심리적인 동요가 전혀 없이 사람을 당연하다는 듯 쓰고 버리는 아시미츠의 작전을 실행하여, 처음으로 바바 노부하루는 적의 진의를 깨닫지 못하고 싸우는 상황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이런저런 분노를 느끼며 아시미츠에게 의식을 집중했기 때문에, 최초이자 최후라고도 할 수 있는 바바 노부하루를 처치할 호기가 생겨난 것이다.


순식간에 지금까지의 아시미츠의 언동은 자신을 처치하기 위한 계책이었다, 라고 바바 노부하루는 깨달았다. 하지만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었다.

칼로 사이조의 공격을 막으려 했으나 이미 때가 늦어, 바바 노부하루가 칼을 뽑는 것보다 빠르게 사이조의 창이 번쩍했다.


바바 노부하루의 목이 허공에 날았다. 날아간 목은 몸통과 분리된 덧을 모른 채 공중에서 여전히 악귀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이윽고 땅바닥에 떨어져 데굴데굴 땅바닥을 굴렀다. 바바의 머리는 이윽고 뭔가에 부딪혀서 굴러가는 걸 멈추었다. 바바의 머리가 부딪힌 것은 사이조의 발이었다.

그는 바바의 머리를 잡더니 하늘높이 치켜들며 선언했다.


"바바 미노노카미(美濃守)의 목, 카니 사이조(可児才蔵)가 베었다아!!"




때는 조금 거슬러올라가, 바바 노부하루와 아시미츠, 사이조가 싸우고 있는 동안, 나가요시는 일직선으로 야마가타 마사카게를 노리고 있었다. 지금은 곁에 따르는 병사는 30명 정도밖에 되지 않았으나, 그걸로 충분했다.

그들은 나가요시의 직속 부하이며, 정예 중의 정예다. 설령 마음이 꺾이지 않았더라도 적비대에 밀릴 자들이 아니다.

직속 부하들이 무기를 한 번 휘두를 때마다 적비대가 베여 쓰러졌다. 냉정하게 생각하면 숫자로 밀어붙이면 어떻게든 되었겠지만, 심리적으로 패배한 상태인 적비대는 나가요시에게 가까이 가려고조차 하지 않았다.


"야마가타 마사카게에에에에에에!!!!"


나가요시가 외쳤다. 그게 직속 부하들에게 힘이 되는지, 그가 고함칠 때마다 직속 부하들에게 기력이 넘쳤다.

바디시를 휘두르며 방해되는 적병들을 쳐 쓰러뜨려갔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게 되었을 무렵, 드디어 나가요시는 적비대의 포위를 돌파했다.

적비대의 후방에 있던 야마가타 마사카게를 시야에 포착하자, 나가요시는 바디시를 고쳐잡았다. 여기까지 오면 이제 퇴로나 주위를 신경쓸 여유 따위는 머릿속 한 구석에조차 없었다.

다만 일직선으로 야마가타 마사카게를 노렸다. 야마가타 마사카게 쪽도 나가요시를 확인했으나, 그는 후퇴라는 선택을 하지 않았다.


지금도 후방에 위치한다는 꼴사나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거기에 적에게 목젖을 찔려 도망쳤다고 하면 적비대의 이름은 땅에 떨어진다. 그뿐만이 아니다.

병사는 물론이고, 그 가족들까지 고개를 들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중요할 때 겁먹고 도망쳤다고 후세에까지 전해지게 된다.

이미 야마가타 마사카게만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그의 양 어깨에는 지금까지의 적비대의 명예와 일족의 명예, 그리고 적비대에 관련된 모든 사람들의 명예가 얹혀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후퇴하지 않았다. 도망친다는 생각조차 떠오르지 않는 것이다. 설령 파멸이 기다리고 있더라도.


"꼬맹이가! 내 이름을 부르기에 십 년은 이르다!"


나가요시에게 지지 않으려는 듯 되받아친 후, 야마가타 마사카게는 고삐를 쥐고 돌격했다. 설마 하던 단기(単騎) 돌격에 야마가타 마사카게의 측근들은 깜짝 놀란 후 다급하게 그를 뒤쫓았다.


"꼬맹이가 아니야! 내 이름은 카츠조(勝蔵)! 모리(森) 카츠조(勝蔵) 나가요시(長可)다! 자알 기억하고 지옥에 떨어져라!!"


"주둥이는 살았구나! 내 이름은 야마가타(山県) 사부로(三郎) 효에노죠(兵衛尉) 마사카게(昌景)!! 네놈을 명부(冥府)로 보낼 사람의 이름이다!!"


일기토가 된다. 쌍방의 직속 부하들은 누가 말할 것도 없이 그 사실을 이해하자, 일기토의 방해가 되지 않도록 물러났다.

그 외에 달려온 타케다의 적비대나 나가요시의 병사들도, 일기토가 시작될 거라는 걸 이해하자 각자의 등 뒤에 위치했다.


[알겠느냐 카츠조. 네놈이 야마가타와 상대할 때, 압도적으로 불리하다는 걸 명심해라. 수많은 전쟁터를 겪어온 야마가타와 네놈은 압도적으로 경험이 다르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불리해져서 경험이 많은 쪽이 압도하게 되지]


나가요시는 아버지인 모리 요시나리(森可成)의 말을 떠올렸다. 들었을 때는 몰랐지만, 이렇게 야마가타 마사카게와 상대해보니 처음으로 깨달았다.

야마가타 마사카게는 비할 데 없이 강한(大剛) 무사인 것을. 상대하는 것만으로도 짓눌려 버릴 듯한 중압감, 피부가 찌릿찌릿할 정도의 기백, 하나같이 지금의 나가요시에게는 없는 것들 뿐이었다.


[젊음에 맡긴 기세 따위, 역전의 강자(猛者) 앞에서는 바람 앞의 등불, 아무 짝에도 소용없다. 게다가 야마가타는 궁지에 몰린 상태다. 단순한 장수가 아니라, 일기당천의 사병(死兵)인 점을 명심해라]


(알겠어, 아버지…… 지금까지 경험한 적이 없는…… 진짜 강적이라는 걸 말야!!)


바디시를 쥔 손에 힘을 넣었다. 나가요시는 최초의 일격에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성공하면 야마가타 마사카게를 처치할 수 있지만, 실패하면 나가요시가 전사하는 것은 확정이다.

이미 큰 전과를 올린 나가요시에게는 불리한 도박이 된다.

하지만 야마가타 마사카게의 목을 베지 못하면 승리는 없다. 이렇게까지 해서 간신히 나가요시들은 이름높은 타케다의 적비대를 자신들의 무대로 끌어들일 수 있었던 것이다.

만약 나가요시가 패한다면, 지금까지의 수고는 전부 물거품이 된다. 한 때의 승리 따위 야마가타 마사카게를 놓치면 즉시 도로아미타불이 된다.


"야마가타 마사카게에에에!! 그 목, 받았다아아아아!!!"


(흥, 애숭이가. 마상창(馬上槍)의 어려움을 되씹으며 죽거라!)


마상창을 다루려면 상당한 수련을 필요로 한다. 타케다 군조차 대부분의 무장은 마상창을 쓰지 않고 돌격 후에는 항상 말에서 내려 보병으로서 싸운다.

애초에 말은 싸움터를 빠르게 이동하기 위한 수단이며, 높은 위치에 있는 것이나 기세의 유리함을 이용한 돌격이나, 기동력을 살려 보병으로서는 불가능한 우회 후의 측면 공격이라는 후방 교란이 주된 운용이 된다.

그렇기에 전장의 꽃이기는 하나, 말의 발이 멎으면 단숨에 우위성을 잃는다. 마상창에는, 한 번 기세가 죽으면 모든 행동이 허점이 되는 치명적인 결점이 있었다.


"이 팔, 네놈에게 주마!"


한 팔을 희생하여 나가요시의 공격을 막고, 말의 조작이 흐트러진 틈에 나가요시를 처치한다.

그것이 야마가타 마사카게가 취한 작전이었다. 최상이라고는 할 수 없어도 대단히 유효한 전법이었다. 야마가타 마사카게가 아니라 누구라도 그렇게 했으리라.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앗!!!"


고함 소리와 함께 나가요시가 바디시를 휘둘렀다. 야마가타 마사카게는 한 발로 나가요시의 공격을 막으려 했다. 바디시의 공격을 받은 순간, 그는 토시(篭手)와 함께 자신의 팔이 분쇄되는 소리를 들었다.


(뼈가 부서졌나. 하지만…… 뭣!)


뼈가 부서졌으나 팔 자체는 무사,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야마가타 마사카게는 치명적인 착각을 했다. 나가요시의 완력은 그가 알고 있는 젊은이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강하다는 것을.


"나를, 얕보지 마라아아아아!!!!"


고함 소리와 함께 나가요시는 한계를 넘어선 힘을 발휘했다.

바디시의 기세는 멈추지 않아, 야마가타 마사카게의 팔을 절단하고, 그 칼날은 그의 목으로 육박했다. 아래에서 휘둘러 쳐올리는 칼날에 갑옷째로 팔이 잘린다는 예상 외의 사태에 야마가타 마사카게는 방어하지 못한 채 나가요시의 공격을 받았다.


"우오옷!"


기세가 지나친 나가요시는, 야마가타 마사카게를 베는 것과 동시에 낙마했다. 말은 기세를 유지한 채로 달려가더니, 조금 달리다 발을 멈추었다. 반면에 나가요시는 욱신거리는 몸을 억지로 일으켜 야마가타 마사카게의 모습을 확인했다.


"이, 이럴 수가…… 커흑…… 이런 꼬맹이의…… 어디에 이런 힘이……"


목에서 피를 뿜으며, 입에서도 피를 흘리는 야마가타 마사카게가 경악한 표정으로 나가요시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가요시의 일격은 야마가타 마사카게의 팔과 함꼐, 왼쪽 옆구리를 통과하여 옆으로 빗겨나 있던 목까지 갈라 놓았다.

누가 봐도 살아날 수 없을 거라 알 수 있는 상처였다. 자신의 상황을 직감한 야마가타 마사카게는, 히죽하고 태연한 미소를 떠올리더니, 무사한 오른팔로 칼을 쥐었다.


"꼬맹이…… 아니, 모리 카츠조 나가요시여! 훌륭하다. 하지만 이 야마가타 마사카게는 네놈의 손에 죽진 않는다. 내가 죽는 모습을…… 똑똑히 보아라!"


말이 끝나마자마 야마가타 마사카게는 스스로 자신의 목을 베어 떨어뜨렸다. 베여 떨어진 머리에서 선혈이 뿜어졌다. 나가요시는 호흡을 정돈하고, 야마가타 마사카게의 머리에 합장했다.


"야마가타 사부로 효에노죠의 죽음, 훌륭하다. 비할 데 없이 강한 무사란, 그를 위해 있는 말일 것이다"


나가요시는 야마가타 마사카게를 칭찬했다. 자신의 공격이 닿지 않았다면 목이 떨어진 것은 자신 쪽이었다. 합장을 마치자, 나가요시에게는 야마가타 마사카게가 씨익 웃은 것처럼 보였다.

나를 처치한 것을 자랑스럽게 여겨라, 그렇게 말하는 듯한 웃음이었다. 나가요시는 웃음을 떠올리더니 야마가타 마사카게의 목을 하늘높이 치켜들었다.


"야마가타 사부로 효에노조의 목, 모리 카츠조 나가요시가 베었다아!!"




나가요시가 야마가타 마사카게를, 사이조가 바바 노부하루를 처치한 시간은 거의 동시였다. 약간 시즈코 쪽에 보고가 도착하는 게 빨랐다. 그게 승부를 결정지었다.


"북을 울려라!!"


"옛!!"


전고(陣太鼓)가 둥둥둥하고 울려퍼졌다. 한번만이 아니라, 세 박자가 두 번, 세 번 이어졌다.

그걸 들은 시즈코 군은 물론, 좌우에 있는 사쿠마(佐久間), 히라테(平手), 미즈노(水野), 그리고 후방의 도쿠가와 군에 변화가 일어났다.


"기다렸다, 제군들! 눈 앞에 무공이 굴러다니는데도 지금까지 참아준 것에 감사한다!! 하지만 이제 참을 필요는 없다!!"


"우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시즈코의 말에 병사들이 포효를 내질렀다. 시즈코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쿠제를 하늘 높이 치켜들었다. 약간 늦게 병사들이 그에 따랐다.

군기(軍旗) 등 이런저런 것들을 치켜들었기에, 타케다 측에서는 오다-도쿠가와 군의 후방이 잘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후방에서 일어나는 일을 눈치채지 못했다.


도쿠가와의 군기가 하나도 없다, 라는 상황을.


도쿠가와의 군기는 없어졌으나 병사들은 그대로였다. 그리고 병사들이 들고 있는 군기는 전혀 다른 것들이었다.


"이런이런, 드디어 나설 차례군요"


그런 말을 중얼거리며, 깃털부채(羽扇)로 부채질하는 인물은 타케나카 한베에(竹中半兵衛)였다. 그만이 참가한 것이 아니라, 주위에 있는 병사들은 히데요시(秀吉)의 군기를 들고 있었다.

틀림없는 히데요시의 군이다. 그리고 히데요시의 군만이 아니다. 그들로부터 조금 떨어진 장소에 위치한 군은, 시바타(柴田) 군의 군기를 들고 있었다.


"설마 정말로 해치울 줄이야. 다들!! 여자한테 질 수는 없다!!"


이끌고 있는 무장은 설마하던 시바타 카츠이에(柴田勝家)였다. 그들 이외에도 삿사 나리마사(佐々成政), 아케치 미츠히데(明智光秀), 니와 나가히데(丹羽長秀), 마에다 토시이에(前田利家) 등, 이런저런 오다 가문 가신들의 군기가 세워져 있었다.


"처음에는 말도 안 되는 얘기라고 생각했지만, 그 정도가 아니면 타케다에게는 이길 수 없는 것인가"


"다들!! 타케다를 처치하면 후세까지의 영광이다! 베고, 베고, 닥치는 대로 베어라!"


여기저기서 무장들에 의한 고무(鼓舞)가 들려왔다. 타케다의 측근 중의 측근을 처치한 것은 이미 전군에 퍼져 있었기에, 타케다라고 듣고 겁먹는 병사는 한 명도 없었다.


"정말로 야마가타를 처치할 줄이야. 훌륭하다고밖에 할 수 없다"


그리고 후방의 오다 군 속에 모리 요시나리(森可成)의 모습이 있었다. 그는 평소의 갑주를 입고, 지금까지 몇 번이나 적을 해치웠는지 알 수 없는, 애용하는 십자창(十文字槍)을 쥐고 있었다.


"아버지. 무리를 하시면 몸이 상하십니다"


장남인 모리 요시타카(森可隆)가 모리 요시나리의 몸을 걱정했다. 하지만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걱정을 끼져서 미안하다. 하지만, 피가…… 내 피가 끓고 있단다. 어깨의 부상으로 포기하려고 몇 번이나 생각했다. 하지만 피가 끓는 것에는 이길 수 없다. 안심해라, 이걸로 마지막이니라"


"아버지…… 알겠습니다. 저는 더 이상 아무 말씀도 드리지 않겠습니다. 마음껏 싸워 주십시오"


"내가 유종의 미를 거두는 데 타케다는 지나치게 사치스럽지만 말이다. 하지만 내가 싸우는 것은 정말로 이게 마지막이 된다. 그러니 내 무용을 그 눈에 똑똑히 새겨 두어라"


"옛! 아버지의 웅자(雄姿), 제 눈에 똑똑히 새겨 두겠습니다!"


요시타카의 대답에 모리 요시나리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전군의 사기는 열기처럼 흘러넘쳐 아지랑이처럼 흔들려보였다. 남은 것은 시즈코가 전군 돌격을 명령하는 것 뿐으로, 그게 언제인지 목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었다.


"다들!! 나를 따르라!! 전군, 돌격ーーーーーー!!!"


그리고 그 때는 왔다. 시즈코의 호령과 함께, 오다 군은 포효를 내지르며 타케다 군에게 돌격했다.


돌격하는 것은 오다 군 뿐이었다. 그럼 도쿠가와 군은 어디에 있는가. 홀연히 사라진 도쿠가와 군이, 대체 어디에서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신겐이 그걸 알게 되는 것은 조금 뒤의 일이다.







재미있게 보시고 후원(?)해 주실 분은 이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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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

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겐키(元亀) 3년 결전(決戦), 미카타가하라(三方ヶ原) 전투


096 1572년 12월 하순



12월 22일. 후세에 '전국시대의 종언(終焉)' 단서(端緒)로 불리게 되는 역사적 변곡점의 아침.

시즈코는 목욕재계(禊)를 하고 있었다. 냉수로 몸을 깨끗하게 씻은 후 흰 옷(白装束)으로 몸을 감쌌다.

흰 옷은 다른 이름으로 '수의(死に装束)'라고도 하며, 옛날에는 산실(産室)에서 착용했고, 후에 할복(切腹) 등의 흉사(凶事)에 입는 옷으로 정착되었다.

다테 마사무네(伊達政宗)가 히데요시(秀吉)에 대해 오다와라 성(小田原城) 공격에 지각한 것에 대한 해명을 할 때 입고 죽음을 각오한 상태에서 해명하여 할복을 면했다는 일화도 있다.

어느 쪽이든, 흰 옷은 결사의 각오를 나타낸다. 따라서 시즈코 스스로 흰 옷을 입는다는 것은 누구의 눈에도 명확한 결의표명이 되었다.


"오늘이라는 날이 언젠가는 올 것이다. 저는 전부터 그런 예감이 들었어요"


흰 옷을 입은 시즈코는 병사들 앞에 섰다. 그녀는 복장은 달랐지만 그 태도에는 아무 변화가 없었다. 태연자약한 태도는 병사들에게 안도감을 주고 있었다.


"이제 곧 타케다(武田)가 하마마츠 성(浜松城)으로 들이닥치겠죠. 그렇다면 우리들의 사명은 단 하나. 누구에게 이빨을 드러낸 것인지 그들에게 뼈저리게 알게 해주어, 두번다시 우쭐하지 못하도록 쳐부술 뿐!"


가상(仮想)의 적을 쳐 쓰러뜨리는 듯한 손동작을 하며 시즈코는 호령했다.


"이곳은 도쿠가와(徳川) 영토이지만, 놈들은 반드시 오다 영토에도 침공할 것이다! 우리들의 본토(本土)인 오다 영토에 놈들의 침입을 허용하면, 곳곳에서 약탈, 살육, 악독한 짓거리(乱妨取り)를 자행하겠지. 결코 그런 행패를 용납해서는 안 된다! 지금부터 우리들은 불퇴전(不退転). 설령 이 몸이 썩어문드러지더라도, 죽어서 호국(護国)의 귀신이 되리라!"


"오오!"


"우리들은 물러서지 않는다! 우리들의 부모를! 처자를! 미래를 지키기 위해 싸우는 것이다! 제 분수를 모르고, 우리들이 유유낙낙(唯々諾々) 따를 거라 생각하는 그 헛된 자만심(増上慢)! 결코 용납해서는 안 된다! 타케다의 위광을 휘두르면 뭐든지 뜻대로 될 거라 생각하는 산골 원숭이(山猿) 따위, 사지(死地)를 기고, 흙탕물을 마시고, 돌을 씹으면서도 견뎌낸 강병들에게는 두려워할 것이 못 된다! 승리는 이미… 우리 손에 있다! 다들! 함성을 질러라! 놈들에게 본때를 보여주자!"


"우오오오오오오오오오!!"


시즈코가 포효하며 병사들을 고무했다. 마지막 말에 화답하듯, 땅을 울릴 듯한 함성이 터져나왔다.

이른 아침부터 대대적으로 동원했기에 무슨 일인가 하고 지켜보고 있던 도쿠가와 가문 가신들도 그 대호령에 경악했다.

침묵을 찢는 거대한 목소리도 그렇지만, 뭣보다 병사들의 표정이 달리 보였다. 연회에서의 느슨한 표정이 아니라, 세차게 날뛰는 무사의 표정이 되어 있었다.


"전원에게 2호 장비(弐号装備)를 명합니다. 그리고 겐로(玄朗) 할아버지, 사격 정밀도가 높은 사람을 200명 모아주세요. 별도의 임무를 하달합니다"


"옛!"


2호 장비란 중무장이 아니라 기동력에 중점을 둔 장비이다. 숫자는 형식번호에 지나지 않아, 1호 장비(壱号装備) 쪽이 뛰어나다는 것은 아니다.


"당신들을 필요로 하는 때는 금방 옵니다. 그 때까지 각자 예기를 돋구어 주세요"


기염을 토하는 병사들에게서 등을 돌려 시즈코는 부대장인 겐로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시즈코로부터 명령을 받은 그들은, 각자의 사명을 수행하러 달려나갔다.

병사들의 사기나, 정연히 행동하는 높은 통솔력에 도쿠가와 가문 가신들은 시종 압도되어 있었다.

농성전은 수비적이 되어, 전황의 악화에 따라 사기는 떨어져간다. 무장들은 어떻게 사기를 유지할지에 부심해온 것이다.

그런데 시즈코 군은 참전 직후라는 점을 감안해도 압도적으로 사기가 높았다. 자군과의 차이는 무엇이냐는 의문이 가로놓였다.


"당신은 무언가를 꾸미고 있군요"


시즈코의 연설을 멀리서 보고 있던 야스마사(康政)는 확신에 가까운 예감을 받았다.




타케다 군은 하마마츠 성을 목표로 진군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공성전을 벌일 생각 따윈 조금도 없었다. 하마마츠 성은 견고한 성이다. 신겐은 오다와의 결전을 앞두고 쓸데없이 병력을 소모시키고 싶지 않았다.

책략을 써서 도쿠가와를 성에서 끌어내어 미카타가하라(三方ヶ原方)에서 야전(野戦)으로 끌어들여 조기 결전으로 박살내버리는 것이 타케다에게는 상책(上策).

굳게 문을 걸어잠그고 농성하고 있는 적이 스스로 치고나오게 한다. 보통은 쉽지 않지만, 이번에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대답은 단순했다. 하마마츠 성을 우회해서 다음 성을 노린다.

타케다의 진군을 성에 틀어박혀서 멀거니 보고만 있으면, 원군을 받아놓고 오다를 저버린 배신자라고 후대(末代)에까지 전해지리라.

그런 상대와 손을 잡을 사람은 없고, 또 가신들도 내일은 자기가 그렇게 당할 것이라며 떠나간다.

결과적으로 이에야스(家康)는 불리한 것을 잘 알면서도 치고 나올 수밖에 없어, 타케다는 전장을 스스로 설정할 수 있다는 우위를 얻는다.

신겐(信玄)은 하마마츠 성을 목표로 하지 않고 미카타가하라로 향하여, 호우다(祝田) 언덕(坂) 바로 앞에 진을 치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호우다 언덕은 출구로 갈수록 좁아진다.

대군을 상대로 습격하기에는 안성맞춤인 지형이며, 이에야스가 적은 병력(寡兵)의 불리함을 메꾸어 작은 승리를 거두러 움직일 것으로 신겐은 내다보고 있었다.

이에야스의 선택지를 좁히기 위해, 신겐은 또 하나의 계책을 추가했다.


"오야마다(小山田)를 불러라"


신겐에게 호출된 인물은 오야마다 노부시게(小山田信茂)였다. 그는 후다이카로우슈(譜代家老衆, ※역주: 대대로 섬겨온 가신 가문 출신의 가신들) 중 한 명으로, 신겐의 종조카(従甥, 사촌의 아들)이다.


"가까이 와라. 네게 한 가지 일을 맡기겠다"


신겐의 곁으로 다가가 오야마다는 귀를 기울였다. 신겐은 그에게 뭔가를 속삭였는데, 곁에 대기하고 있던 소성(小姓)에게조차 들리지 않는 작은 목소리였다.

신겐의 지시를 다 듣자, 오야마다는 대담한 미소를 떠올리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한 수로 도쿠가와는 외통수에 몰린다. 우리들의 수(手番)를 놓도록 하자"


오야마다에게 계책을 내린 후, 신겐은 정지시켜놓았던 군을 다시 진군하게 했다.


한편, 하마마츠 성에 있는 이에야스는 신겐의 행동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타케다가 하마마츠 성을 목표로 한 것 까지는 예상한 대로다. 하지만, 미카타가하라 부근에서 행군을 멈추었다. 여기에서 성을 공격할지, 아니면 병력을 나누어 길을 재촉할지, 상대가 어떻게 나올지를 볼 필요가 있다"


이에야스는 아침부터 작전회의를 열어, 신겐의 행동에 과민해져 있었다. 뭐라 해도 이건 일생일대의 무대(大一番). 나라가 멸망하느냐 살아남느냐의 기로에 서 있는 것이다.

사소한 정보라도 놓치지 않겠다고 혈안이 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 긴장은 가신들에게도 전염되어, 진 안은 묘한 긴장감에 휩싸여 있었다.


그런 와중에 시즈코만큼은 부채를 부치며 느긋한 태도였다. 분위기에 휩싸여 긴장해서 시야가 좁아지면 이길 수 있는 싸움도 이기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오다와 도쿠가와의 협공을 피해 타케타가 철수할지도 모릅니다"


"지나치게 낙관적이오. 만약 철수한다면 지금까지 항복시킨 영지는 반기를 들겠지. 뭔가의 계책을 부려 우리들을 칠 거라 생각하는 게 이치에 맞소"


도쿠가와 가문 가신들은 결론이 나지 않는 의논을 반복하고 있었다. 뭔가를 하지 않으면 불안에 깔려죽어버리겠지라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그들의 야단법석을 신경쓰지 않고 시즈코는 가만히 시간이 되기를 기다렸다. 조금 후면 타케다 군이 공격해온다. 그 때부터 시즈코의 타케다 전투의 계책이 시작된다.


"주군(ご注進)! 타케다 군이 진군을 개시! 그 때 병력을 나누었다고 합니다!"


"두 번째 도박도 우리들의 승리다!"


보고를 들은 이에야스는 자기도 모르게 무릎을 쳤다. 이에야스에게 타케다 군의 분할은 문제가 아니었다. 대단히 신중한 계책을 취하는 타케다가, 하마마츠 성을 공격하지 않고 철수하는 쪽이 더 불리했다.

애초에 결과만 놓고 보면, 이에야스는 후타마타 성(二俣城)을 저버리기만 한 것이 되기 떄문이다. 물론 신겐에게도 철수는 손해를 보겠지만 이에야스 만큼은 아니다. 철수를 선택할 가능성은 적지 않았다.


"지금부터 농성전이 된다. 다들, 긴장하도록!"


갑주로 몸을 감싼 이에야스가 휘하의 무장들에게 호령했다. 이 때 그는 대망의 승기(勝機)에 눈이 멀어, 척후의 보고 후에 시즈코의 모습이 사라진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다른 사람들도 타케다 전군을 상대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 떄문에 눈앞의 준비로 주의가 소홀해져, 타다카츠(忠勝)조차 시즈코의 존재에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음? 시즈코 님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군)


처음으로 깨달은 것은 한조(半蔵)였다. 그는 신뢰할 수 있는 부하 한 명을 불러서 시즈코를 찾도록 가만히 명했다.

이제와서 도망쳤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모습을 감출 이유도 떠오르지 않았던 한조는, 시즈코의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 부하에게 조사를 명했다.


"아ー, 슬슬 시작되려나"


작전회의에서 무단으로 모습을 감춘 시즈코는, 겐로(玄朗)와 정예 총병(銃兵) 200을 이끌고 어떤 장소에 진을 치고 있었다. 시즈코 이외에는 진을 친 장소의 이점을 알지 못해 곤혹스러워하면서도 따르고 있었다.

감시와 호위를 맡은 도쿠가와 병사들도 마찬가지였으나, 시즈코는 생긋 웃을 뿐 그들에게도 설명은 하지 않았다.

그렇게 잠시 기다리고 있자니 누군가가 타케다 군을 발견했다고 외쳤다. 자신도 모르게 뛰쳐나갈 뻔한 겐로였으나, 시즈코의 가냘픈 손(繊手)이 그의 어깨에 얹혀져 제지하고 있었다.


"아직이에요. 당신들이 나갈 차례는 좀 더 뒤에요"


"하, 하지만 적을 앞에 두고 싸우지 않으면, 여기에 잠복하고 있는 의미가 없습니다"


그런 문답을 하고 있을 때, 타케다 군의 공성부대가 하마마츠 성에 투석(投石)을 개시했다. 방패에 등을 맡기고, 시즈코는 투석의 간격을 재고 있었다.


"나갈 차례는 있어요. 하지만, 아직 안 돼요. 투석은 위력을 무시할 수 없으니까요. 탄이나 체력을 좀 더 소모했을 때가 호기(好機)에요"


옜부터 투석은 검이나 창, 활과 어꺠를 나란히 하는 훌륭한 병기였다. 그냥 던지기만 하는 것뿐이라면 기술도 필요없고, 값싸면서 나름대로 위력도 있으며, 탄은 어디든지 굴러다니고 있다.

숙련자가 다루면 활보다도 멀리 돌을 던지는 경우도 있었다.

일본에서는 투석을 인지(印地)라고 부르며, 손으로 던지거나 투석기를 사용하거나 수건으로 던지는 등, 다양한 형태의 투석 기술이 있었다.


미카타가하라 전투에서 오야마다 노부시게가 투석병들(投石衆)을 이끌고 하마마츠 성을 공격했다고 한다.

그러나, 신장공기(信長公記)나 미카와 이야기(三河物語)에서는 '수역지자(水役之者)' 등의 투석부대에 관한 기재는 있으나, 오야마다 노부시게가 투석부대를 이끌고 하마마츠 성을 공격했다는 기재는 없다.

에도(江戸) 시대에 오독(誤読)된 것은 계기로, 오늘날까지 오야마다 노부시게가 투석부대를 이끌었다는 명확한 증가가 없었기에, 지금에 와서는 속설(俗説)로 정착되었다고 생각되고 있다.


"오호, 이런 돌을 쓰고 있구나"


던져진 돌을 몇 개 주워들어 시즈코는 방패에 숨어 확인했다. 돌이 방패를 때리는 격렬한 소리가 들려왔으나, 방패에는 특별한 가공을 해 두었기에 꿈쩍도 하지 않았다.


"주군! 느긋하게 관찰하고 있을 상황이 아닙니다. 슬슬 도쿠가와 군도 수상하게 생각할 것입니다"


"그래요? 그럼 시작할까요. 나는 좀 더 상대를 '띄워주고' 싶었지만요"


돌을 한 곳에 모은 후, 시즈코는 지휘채(采配) 대신 큰 나기나타(長刀)처럼 보이기도 하는 쿠제(kuse)를 들었다.


"점점 투석 간격이 길어지고 있어요. 상대의 탄이 줄어들고 있으니, 다음 투석을 기다려 투석병을 저격해 주세요"


"예, 옛. 알겠습니다"


"우선 100명이 일제히 사격(斉射)하고, 즉시 교대해서 다음 100명이 쏘는 거에요. 그 동안 처음의 100명은 장전하고 대기. 이걸 반복해서, 마지막에는 전원이 일제히 사격하는 게 작전이에요. 이제 곧… 좋아, 투석이 이제 곧 끝난다…… 지금이에요!"


선언함과 동시에 시즈코는 힘차게 일어섰다. 겐로들도 따라서 일어서서 타케다 군의 투석병들을 시야에 포작했다.


"발사!"


시즈코가 쿠제의 창끝을 타케다 군 쪽을 향해 내려치자, 죽 늘어선 100자루의 총구가 일제히 불을 뿜었다.




100명에 의한 일제 사격이었으나, 그 사격 타이밍은 완전히 딱 맞지는 않았다. 그 때문에 기관총 같은 단속적(断続的)인 총성이 하마마츠 성의 한켠에 울려퍼졌다.

갑작스런 총격에 놀란 도쿠가와 병사들이었으나, 곧 그 경악은 다른 색깔로 칠해졌다. 타케다 군의 투석병들 중, 앞열을 맡고 있던 100명 중 4할이 쓰러져 있었다.

감시병(物見)에게서 보고된 투석병들의 총 숫자는 약 300. 한 번의 사격으로 부대의 1할이 소모된 셈이다.


100발 중 40발 명중으로는 절반 이상 빗나간 것이지만, 처음 사격인 것과, 상대를 시인(視認)하고 있지 않았던 것이 원인이었기에 시즈코는 신경쓰지 않고 다음 호령을 내렸다.


"다음, 발사!"


"예…… 옛!"


처음으로 실전 투입된 신식총(新式銃)의 위력을 인식한 텟포슈(鉄砲衆)는, 엄청난 위력이 입을 벌리고 멍해 있었다. 그러나 시즈코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리고는 그 자리를 물러났고, 후열(後列)이 재빠르게 총을 겨누고 발포했다.

지나치게 빠른 후속 사격에 대응하지 못한 타케다 군의 투석병들은, 몸을 피할 수조차 없이 다시 많은 병사들을 잃었다.

거기에 숨통을 끊듯 제 3차 사격이 덮쳐갔다. 결국 부대를 수습하지조차 못한 채 대부분의 투석병들이 목숨을 잃었다.


"당신들은 약하지 않아. 다만 시류(時流)를 타지 못했어. 그 뿐이야"


말과 동시에 시즈코는 쿠제를 내리쳤다. 제 4차 사격은 총공격이 되어, 200개나 되는 총탄이 겨우 십수명의 타케다 병사들을 관통했다.

아군의 시체에 가로막혀 나아가지도 물러서지도 못한 채, 납탄의 폭풍 앞에서 타케다 병사들은 벌집이 되어 목숨을 잃었다.

그들이 쓰러짐과 동시에 시즈코는 개피리(犬笛)를 불었다. 반드시 전황을 지켜보는 군감(軍監)이 있을거라 생각해서, 시즈코는 그들을 습격하기 위한 병사들을 배치해두고 있었다.


"으아악!"


멀리서 희미한 비명 같은 소리가 들렸다. 매복하고 있던 것은 비트만 패밀리와, 그들의 명령에 따르도록 조교된 개(犬) 군단이다.

깊고 빽빽한 수풀이나 뒤쪽이 보이지 않는 나무 뒤에 숨어도 늑대나 개는 속일 수 없다.

아무리 주의깊게 숨어있어도, 체취로 위치를 들키게 된다. 아무리 발이 빠른 사람이라도, 늑대나 개에는 도저히 당할 수 없고, 전속력으로 계속 달릴 수 있는 한계도 슬플 정도로 차이가 있었다.

사냥개로서 교육된 개들은, 목표가 되는 인간이 지칠 때까지 추격하고, 빈틈이 생길 때까지 몰아붙인다.

피로 때문에 달릴 수 없게 된 사람을 집단으로 덮쳐서, 상대의 숨이 끊어질 때까지 방심하지 않는다.

존재가 노출된 시점에서 타케다 군의 군감들의 운명은 결정되었다.


"목이 있으면 설득력이 있을텐데… 저 안에서 목을 찾을 수 있을까?"


"무리라고 생각합니다"


메마른 웃음을 떠올리며 시즈코는 타케다 군의 시체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겐로는 그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을 일별하더니, 한숨과 함께 고개를 가로저었다.

투석병들을 이끌고 있던 장수를 확인하지 않고 공격했기 때문에, 어디에 장수들과 사병들이 있었는지 아무도 몰랐다.

거기에 겹쳐 쓰러진 시체는 300구 가까이나 되었다. 어슬렁어슬렁 나가서 원하는 수급을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

팔짱을 끼고 신음한 시즈코였으나, 결국 수지가 맞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수급을 포기했다.


"그럼, 일생일대의 연기를 해볼까요"


기지개를 한 번 켠 후, 시즈코는 쿠제를 걸머지고 이에야스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때를 조금 거슬러올라가, 작전회의 장소에 있던 이에야스는 혼란스러워하고 잇었다.


"한번 더 묻겠다. 적의 숫자는 300, 이 틀림없느냐?"


"예, 옛. 놈들은 단속적으로 투석을 하고 있습니다. 어찌할까요"


다시 확인한 이에야스였으나, 척후로부터의 대답은 전과 다름없었다. 이에야스는 팔짱을 끼고 깊은 생각에 빠졌다.


(타케다 군이 300이라고? 어떻게 된 거냐, 300은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적다. 그 정도의 병력으로는 하마마츠 성에 제대로 된 피해조차 줄 수 없지. 신겐 땡중놈(坊主)이 노리는 것은 무엇이냐? 겨우 300으로 뭘 하고 싶은거냐?)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적의 노림수를 알 수 없었다. 그 때문에 이에야스는 초조해져서, 비지땀을 흘리며 더욱 깊은 생각에 잠겼다.

이윽고 이에야스는 혼란시키는 것이말로 노림수가 아닐까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아주 웃기고 있군! 내가 병사를 이끌고 박살내주겠다! 겨우 300 정도, 개수일촉(鎧袖一触)이다"


"잠깐 기다리게. 300뿐이라고 장담은 못하지. 버리는 말에 낚여서 나갔다가 본대가 버티고 있을 경우 무의미하게 병력을 소모할 뿐이다"


"하지만 이대로 보고만 있으면 우리들의 체면 문제가 있네"


도쿠가와 가문 가신들도 적의 노림수를 알 수 없어 의견이 갈려 방침이 정해지지 않았다. 한편, 오다 가문 가신들은 그 분규(紛糾)를 조용히 바라볼 뿐, 적극적으로 의논에 참가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어흠, 도쿠가와 님. 물론, 치고 나가시겠죠? 아니면 지성(支城)을 지탱하고 있는 사람들이 버티지 못합니다. 설마 타케다가 다른 곳으로 갔을 때 우리들이 등뒤를 찌르는 작전을 잊으신 겁니까?"


도쿠가와 가문 가신들 사이에서 결론이 나오지 않는 것이 서서히 초조함을 느낀 사쿠마(佐久間)가 이에야스에게 진언했다. 사쿠마도 300명의 뒤에 대군이 버티고 있을 가능성은 이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기다려봤자 확증은 얻을 수 없는 이상, 300명의 병사들을 박살내는 것 이외에 방법은 없다.

대군이 버티고 있을 경우에는 즉시 철수할 필요가 있지만, 그 때에 나올 희생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기다리시오. 아무래도 타케다의 속셈이 보이질 않소. 1만의 병력이 지키고 있는 하마마츠 성에, 뭣 때문에 300 정도를 파견했는지…… 그렇군!"


간신히 이에야스는 타케다의 노림수를 눈치챘다. 그리고 눈치챔과 동시에, 이미 승패는 결정지어져 버린 것을 깨달았다.

이대로 농성하면 300 정도에 겁먹고 틀어박혀 아군을 저버렸다는 오명이 후세까지 따라붙는다.

이에야스가 판단을 망설이고 있는 동안, 타케다는 유유히 미카와(三河)를 침략한다. 그렇게 되면 미카와와 토오토우미(遠江)는 분단되어, 미카와의 탈환은 절망적이 된다.

타케다에게 미카와를 빼앗긴다. 그것은 도쿠가와가 본거지를 잃는 것과 동시에, 오다 가문과도 분단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대로 치고나가서 만약 300의 배후에 본대가 버티고 있다면 유린당한다. 타케다는 이에야스가 치고 나올 것을 계산에 넣고 간단히 철수를 허용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에야스는 당분간 군으로서 움직일 수 없게 된다. 그 동안 타케다는 미카와로 병력을 진군시키리라.


어느 쪽을 선택해도 승리는 없다. 그것에 이에야스는 떄가 늦었음을 이해했다.

그리고 도쿠가와와 오다가 분단되면, 어느 쪽인가가 먼저 멸망당하고, 그 후에 남은 한 쪽이 멸망당하는 미래밖에 없다는 것도.


"도쿠가와 님, 무엇을 망설이십니까! 이대로는 우리들의 패배는 필연적! 어서 출진 명령을!"


"기, 기다려 주시오, 사쿠마 님. 알 수가 없습니다. 타케다의 속셈을 알지 못하여, 우리들은 타케다의 기보(棋譜) 대로 움직이고 있는게 아닌가, 라고밖에 생각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망설이고 있을 틈은 없습니다. 타케다의 속셈은 알 수 없습니다만, 300 정도에 농성을 계속하면 후세에까지 비웃음당할 것이 뻔합니다"


"그렇…… 소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대답이 궁한 이에야스에게 사쿠마나 히라테(平手)가 짜증을 느꼈다. 잠시 기다렸으나 대답을 내놓지 못하는 이에야스에게, 사쿠마의 짜증이 정점에 달했다.


"어째서, 망설하시는 겁니까. 혹시…… 처음부터 타케다의 움직임을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니겠지요!"


사쿠마가 말한 순간, 그 때까지 분규하고 있던 장내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터질 듯이 긴장된 것으로 변화했다. 도쿠가와 가문 가신들은 주군이 우롱당한 것에 격분하여 사쿠마를 노려보았다.


"웃기지 마라! 우리들이 얼마나 오다를 위해 진력해왔다고 생각하는 거냐!"


격앙하는 것도 당연한 반응이다. 사쿠마의 대사는, 도쿠가와가 오다를 배신했다고 단정하고 있었다.

배신자라는 욕을 먹고 분노를 느끼지 않는 사람은 없다. 게다가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는 그 자리에서 의심받으면 더욱 그렇다.

무수한 적의에 노출된 사쿠마였으나, 겁먹는 기색도 없이 다시 말을 하려 했다. 하지만, 그 전에 갑자기 사쿠마가 앞으로 기울더니 기세좋게 바닥을 굴렀다.


"시끄럽다, 멍청이가 재잘대지 마라"


사쿠마가 바닥을 구른 이유는, 소리도 없이 사쿠마의 등 뒤로 돌아간 아시미츠(足満)가 용서없이 걷어찼기 때문이다. 낙법이고 뭐고 없이 이마를 바닥에 처박은 사쿠마는, 아픈 곳을 손으로 눌렀다.


"아시미츠 님, 이게 무슨 짓이오! 아무리 시즈코 님의 가신이라고 하나, 이러한 행패는 용납되지 않소!"


"멍청이가 멍청한 소리를 하니까 멈춘 것 뿐이다. 어리석은 자로서 이름을 남기고 싶다면 다른 곳에서 해라!"


히라테의 격앙도 아시미츠는 태연한 표정으로 흘려넘겼다. 이번에는 오다 가문 가신들 사이에서 다툼이 일어날 뻔 했으나, 그 전에 시즈코가 작전회의 장소로 들어왔다.


"아ー, 여러분 기다리셨…… 아니 뭔가요, 이 분위기는"


도쿠가와 가문 가신들은 자신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사쿠마가 이마를 손으로 감싸면서 히라테와 함께 아시미츠에게 따지고 있었으나, 아시미츠는 태연한 표정으로 흘려듣고 있었다.

일촉즉발(一触即発)의 분위기이면서 뭐가 어떻게 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혼돈스러운 상황에 시즈코는 고개를 갸웃했다.


"상황은 잘 모르겠습니다만, 일단 사쿠마 님, 히라테 님, 미즈노(水野) 님. 여기 이것, 영주님으로부터의 명령서(指示書)입니다"


상황을 이해하기보다 작전대로 진행하는 쪽이 우선이라고 판단한 시즈코는, 노부나가로부터 받아온 주인장(朱印状)을 사쿠마들에게 건넸다.

내용은 '시즈코의 명령에 따라라, 아니면 일가족 몰살(根切り)이다'로 대단히 알기 쉬웠다. 내용을 알고 놀랐으나, 노부나가의 명령이라면 따르지 않을 수는 없어, 사쿠마들은 입을 다물었다.


"그럼, 우선 보고를. 하마마츠 성에 온 타케다 병 300명은 처리했습니다. 그리고 뒤에 대군은 버티고 있지 않습니다"


"……그 전에 한 가지 질문해도 괜찮겠소?"


"네, 괜찮습니다"


지금까지 본 적도 없을 정도로 진지한 표정의 이에야스에게 내심 겁을 먹은 시즈코였으나, 표정에는 드러내지 않고 태연한 태도를 취했다.


"방금, 사쿠마 님께 우리들 도쿠가와 가문이 오다를 타케다에게 팔아넘긴 것인가, 라는 추궁을 받았소.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솔직한 의견을 듣고 싶소"


"저는 도쿠가와 님의 배신 따위 전혀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다"


"어째서 그렇게 단언할 수 있으십니까"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원군을 보내겠다고 결단하신 영주님을. 만약 도쿠가와 님이 배신했다면, 영주님꼐서는 원군을 보내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다. 도쿠가와 님을 믿으셨기에 영주님께서는 원군을 보내셨습니다. 그렇다면, 가신인 제가 영주님을 믿는 것은 당연한 도리가 아닙니까"


시즈코의 말에 이에야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노부나가가 이에야스를 믿었으니, 시즈코는 이에야스를 믿는다.

하극상이 당연하고 부모가 자식을, 자식이 부모를 팔아넘기는 시대에서, 이에야스는 그렇게까지 노부나가를 신뢰하고 있는 시즈코에 놀라는 것과 동시에, 그렇게까지 신뢰받는 노부나가가 부러웠다.


"당신에게 그렇게까지 신뢰받는 오다 님에게, 약간이지만 질투를 했습니다. 어흠… 거짓이 없는 당신의 눈을 믿도록 하지요"


"감사합니다. 다짜고자 죄송합니다만, 지금부터 어떤 계책을 실행합니다. 한 번만 말씀드릴테니, 잘 들어 주십시오"


그리고 시즈코는 년 단위로 덥혀온 계책을 말했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했던 이에야스도, 도중부터 시즈코의 계책에 죽죽 빨려들어갔다.

이에야스가 그렇게 되었기 때문인지, 가신들도 빨려들어가고 있는 것은 간단히 알 수 있었다.


"……정말로 가능한 건가?"


마지막까지 들은 이에야스는 의문을 중얼거렸다. 지금까지 노부나가나 시즈코의 행동이, 계책을 듣고 겨우 전체가 이어져 있는 것을 이에야스는 이해했다.

하지만, 최종적인 도달지점이, 작전이 성공할지는 아직 확신을 가지지 못하고 있었다.


"가능하다 불가능하다가 아닙니다. 하는 겁니다. 불안하시면 도쿠가와 님께서는 농성하고 계셔도 괜찮습니다. 오다 군 만으로…… 아니, 제 군만으로도 작전을 실행합니다"


잠시 생각한 후, 이에야스는 시즈코의 눈을 보았다. 망설임 없이 일직선으로 나아가는 눈이었다. 여기서 자신이 계책에 찬성하지 않더라도 시즈코는 자신의 군 만으로 실행할 것이다. 말로 하지 않아도 눈으로 또렷하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천정 쪽으로 고개를 든 이에야스는 눈을 감았다. 10초 정도 지났을 무렵, 이에야스는 눈을 뜨고 시즈코를 바라보았다.


"알겠습니다. 도쿠가와 가문의 운명, 당신에게 맡기지요!"


뺨을 힘껏 후려쳐 기합을 넣은 후, 이에야스는 시즈코의 계책에 찬성한다고 선언했다.


"다들! 준비하라! 우리들 미카와 무사의 의지를 보여주자!"


"주군…… 옛!"


멍하니 있던 도쿠가와 가문 가신들이었으나, 이에야스의 선언을 듣자마자 표정이 변했다. 전사(いくさ人)의 표정이 된 도쿠가와 가문 가신들은, 공기가 찌릿찌릿 진동할 정도로 큰 목소리로 기합을 넣었다.

이에야스도 지지 않겠다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그가 목소리를 높일 떄마다 가신들의 사기가 올라갔다.


"말을 끌고와라! 우리들 도쿠가와의 힘, 저놈들의 눈에 똑똑히 새겨주자!"




싸움 준비가 끝나자, 오다-도쿠가와 연합군 2만은 하마마츠 성에서 출진했다. 전군은 미카타가하라 대지(台地)를 북상하여, 몇 갈래의 길을 통해 북쪽 끝에 있는 네아라이마츠(根洗松) 부근으로 향했다.

시즈코들은 도착하기 전부터 범상치않은 압박감을 느끼고 있었다. 말로 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야마가타 마사카게(山県昌景)가 합류한 신겐의 본대 2만 7000이 기다리고 있는 것을.

도중에 복병의 습격이 없었던 것은 자신감의 발로인지, 아니면 복병을 알게되어 오다-도쿠가와 군이 철수할 가능성을 고려한 것인지, 어쨌든 타케다 군의 깃발이 보일 때까지 습격은 받지 않았다.


"도착했네요"


시즈코의 예상대로, 그리고 지형을 바탕으로 계산한 지점에 타케다 군은 포진하고 있었다.


"이것이…… 타케다 군인가"


타케다 군에게서 뿜어지는 위압감에 나가요시(長可)는 침을 삼켰다. 하지만 즉시 얼굴을 후려쳐 기합을 넣으며, 위압감에 삼켜질 뻔 했던 마음을 다잡았다.


"좋았어! 쳐부숴주마!!"


"기합을 넣는 건 좋지만, 도가 지나쳐서 쓸데없이 힘을 빼지 마라"


"지금부터 즐거운 싸움이 시작된다고. 촌스러운 소리는 하는 게 아니지"


"……내 생애에서 가장 가혹한 하루가 되겠지"


나가요시, 사이조(才蔵), 케이지(慶次), 타카토라(高虎)가 각자 나름대로 기합을 넣으면서 시즈코의 곁을 떠나 지정된 배치에 당했다.

그들의 뒷모습을 전송한 후, 시즈코는 신호를 보내 각 부대에 빠르게 배치에 당하도록 명했다.


중핵은 시즈코 군, 좌우에 사쿠마, 히라테, 미즈노, 후방을 도쿠가와 군이 담당했다.

진형은 봉시진(鋒矢陣)에 가깝지만, 화살표 끝부분에 텟포슈가 배치되고, 게다가 화살표 중앙에 시즈코가 있는 점이 종래의 봉시진과 달랐다.


"오늘만큼은 이것저것 따질 여유는 없네"


말 위에서 시즈코는 몸을 가볍게 움직여 풀어준 후, 몇 번인가 심호흡을 했다. 시즈코에게는 병사들을 고무하기 위해 목소리를 높일 의무가 있다. 손동작이 잘 보이도록 하얀 장갑을 착용했다.


"들어라!! 우리 병사들아!!"


병사들이 일제히 시즈코 쪽으로 몸을 돌렸다. 잠깐 간격을 둔 후, 시즈코는 말을 이었다.


"우리들의 앞에 있는 것은, 일본 최강으로 이름높은 타케다 군이다! 그리고 이름높은 무장들이 모두 모여 있다! 그야말로 타케다 군의 총력이 결집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총력이 결집이라는 말에 병사들의 표정이 변했다. 상대는 일본 최강의 군대, 그 군대의 모든 것이 결집되어 있는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불안이 병사들에게 엄습했다.


"하지만 그들을 앞에 두고 말하겠다! 그들은 어제까지 상대가 약했던 덕을 본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을 마침과 동시에, 시즈코는 쿠제를 하늘높이 치켜들었다.


"나는 믿는다! 우리들은 타케다에게 뒤떨어지지 않는 정예인 것을! 놈들에게 보여주자꾸나! 일본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보여주자꾸나! 우리들의 진짜 힘을!!"


"오, 오오오오!!"


불안을 날려버리려는 듯 병사들이 목소리를 높였다. 손에 든 무기를 치켜들며 고함을 지르자, 그걸 본 뒤의 병사들이 뒤를 잇듯이 목소리를 높였다.


"놈들을 얕보지 마라! 하지만 두려워하지 마라! 놈들은 강자가 아니다. 우리들의 무공(武功)의 초석이다! 제군들! 무공을 세워 이름을 높여라!"


"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이 싸움, 이긴… 것은 우리들이다!!"


"우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거의 모든 병사들이 고함을 질렀다. 그것은 떨어져 있떤 타케다 군의, 신겐이 있는 장소까지 들릴 정도였다.




오다-도쿠가와 군의 목소리를 허세라고 보았는지, 타케다 군 사이에는 조용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꽤나 허세를 부리는군"


"우리들 적비대를 앞두고 여전히 기염을 토한 것은 칭찬해 줄만 하지. 오다-도구카와 연합군을 칭찬해주자!"


"사기만으로 우리들에게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어설프다고밖에 할 수 없지!"


타케다 군에게는 고무(鼓舞)의 내용까지 들리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방심과도 닮은 과소평가에, 개중에는 모멸적인 말까지 들려왔다.


타케다 군은 어린진(魚鱗陣)을 전개하고 있었다.

선봉에 오야마다 노부시게, 그 배후에 야마가타 마사카게의 두 군이 제 1진.

좌익에 바바 노부하루(馬場信春), 중앙에 나이토 마사토요(内藤昌豊), 우익에 사나다 노부츠나(真田信綱), 마사테루(昌輝), 마사유키(昌幸) 3형제의 세 군이 제 2진.

좌익에 스와 카츠요리(諏訪勝頼, 뒷날의 타케다 카츠요리(武田勝頼)), 중앙에 타케다 노부토요(武田信豊), 우익에 요네쿠라(米倉) 탄고노카미(丹後守)의 세 군이 제 3진.

그리고 가장 뒤에 타케다 가문 일족이나 코사카 마사노부(高坂昌信)와 타케다 신겐(武田信玄)이 이끄는 본진이 있었다.

합계 4진으로 구성되는 타케다 가문 최강의 포진은, 불꽃처럼 공격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기다리고 있는 것은 타케다 신겐이 내릴 공격명령 뿐이었다.


(역시 그 불안(胸騒ぎ)은 기우(気の迷い)였나. 하지만, 사기가 높은 상대는 방심할 수 없지)


오다-도쿠가와 군의 목소리를 얕보는 사람이 많은 타케다 군에서, 신겐만이 목소리를 듣고 반대로 긴장을 조였다. 적은 한 번 떨어지려던 사기를 드높인 것이다. 긴장하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다소의 장애가 될 뿐 신겐은 승리를 의심하고 있지 않았다. 왜냐하면 오다-도쿠가와 군은 유리한 농성을 버리고, 신겐이 가장 자신있는 야전(野戦)에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옛부터 야전은 병사의 숫자가 많은 쪽이 우세하다. 오다-도쿠가와 연합군은 많이 잡아도 2만 몇천 정도. 그에 반해 타케다 군은 3만에 달하는 병력으로 포진하고 있다.

숫자상으로는 수천의 차이지만, 수천의 차이는 간단히 메울 수 있는 차이가 아니다. 승리를 확신한 신겐은, 불안했던 것은 기우라고 단정하고 지휘채를 손에 들었다.


공격명력이 떨어진다. 그 정보는 신겐이 말로 하지 않아도 눈 깜짝할 사이에 타케다 군 전체에 퍼졌다.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으나, 신겐은 신경쓰지 않고 지휘채를 하늘높이 들어올렸다.


"외통수이니라"


그렇게 말하며 신겐은 지휘채를 오다-도쿠가와 군으로 향했다. 그것이 공격명령이라고 이해한 순간, 신호병(貝役)이 소라고둥(法螺貝)을 불고, 북치는 병사가 전고(陣太鼓)를 힘있게 두들겼다.

그 소리를 들은 타케다 병사들은 공기를 뒤흔드는 포효를 내지르며 오다-도쿠가와 군에 돌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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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

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겐키(元亀) 3년 결전(決戦), 미카타가하라(三方ヶ原) 전투


095 1572년 12월 중순



12월 1일, 드디어 노부나가가 움직였다. 그는 주요 가신들을 모아서, 그들에게 큰 목소리로 말했다.


"타케다(武田)를 쳐부순다. 도쿠가와(徳川)로 보내는 원군으로 우리들의 힘을 천하에 알리는 것이다!"


지금까지 기치(旗幟)를 명확히 하지 않았던 노부나가가, 드디어 명확한 방침을 내보였다. 이 말에 의기헌앙(意気軒昂)한 모습을 보이는 가신들이었으나, 결전의 자리가 될 장소에 대해 생각했다.

이에야스(家康)의 거성(居城)인 하마마츠 성(浜松城)은 남북 약 500m, 동서 약 450m에 달하는 거대한 구조물이다.

미카타가하라(三方ヶ原) 대지(台地)의 사면(斜面)을 따라 일직선으로 곡륜(曲輪)이 늘어선 특징적인 '제곽식(梯郭式)'이라는 건축 양식을 채용하고 있었다.

그 고저차(高低差) 때문에 본채(本丸)의 뒤쪽은 천연의 방어선이 되어, 공격하기 어렵고 지키기 쉽다는 방어력이 우수한 성이었다.


그 때문에 가신들은 타케다 전은 농성전이 주가 될 것으로 예측했다.

옛부터 농성전은 힘든 것이다. 수비를 굳히고 상대에게 출혈을 강요하는 소모전이 되기 때문에, 서로의 인내를 겨루는 양상을 띠게 되어 양쪽 모두 물리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피로해진다.

게다가 상대는 천하에 이름을 떨친 타케다였다. 처음부터 어려운 싸움이 될 것은 뻔히 보였다.

누가 파견될 것인지, 가신들의 관심사는 그곳에 집약되어, 노부나가의 말을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고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다.


"원군은ーー"


가신들 일동이 몸을 앞으로 내미는 가운데, 노부나가는 작게 웃음을 떠올리며 누구도 예상조차 하지 못한 인사(人事)를 발표했다.


"이거 참, 놀랍군요"


노부나가의 작전(采配)에 따라 요코야마 성(横山城)으로 돌아가던 도중, 문득 히데나가(秀長)가 입을 열었다.

히데나가의 말에 히데요시(秀吉)나 타케나카 한베에(竹中半兵衛)는 쓴웃음을 지었다. 노부나가가 발표한 인사는 그만큼 의표를 찌르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노부나가는, 도쿠가와에게 보내는 원군으로서 후계자인 키묘마루(奇妙丸)를 총대장으로 삼고, 시즈코, 사쿠마(佐久間), 히라테(平手), 미즈노(水野)의 군을 그 휘하에 배속시켜, 도합 수만 명이나 되는 대군단을 조직한다고 선언했던 것이다.

원군으로서는 나무랄 데 없는 병력이다. 그리고 하마마츠 성 뿐만이 아니라, 사쿠마나 히라테, 미즈노의 군을 주위의 성에 배치하여, 하마마츠 성이 공격받았을 때의 보좌역을 수행할 것을 명했다.


하마마츠 성에는 노부나가가 지금까지 움직이지 않았던 시즈코 군을 거의 전부 보낸다. 사쿠마나 히라테, 미즈노도 도합 수천의 군을 이끌지만, 실질적인 주력은 시즈코 군이었다.

도쿠가와 군 8000과 합치면, 숫자상으로는 타케다에 필적한다.


"저도 놀랐습니다. 설마 키묘 님을 총대장으로 세우실 줄이야. 하지만, 도쿠가와에게는 확실히 전해지겠지요. 영주님께서 이 싸움에 거시는 기세(意気込み)를. 이마가와(今川)와의 결전 이래 처음으로 목숨을 건 대승부가 되겠군요"


"나는 영주님께 요코야마 성에서의 활약을 직접 칭찬받았다. 영주님이 모두의 앞에서 공이 있다고 말씀하신 건 이마가와 때 이후 처음이다. 바로 그렇기에 이길 수 있다. 그런 생각이 든다"


근거는 없지만 이상하게도 히데요시는 승리를 의심하지 않았다. 이마가와의 상락 떄에도 붙으면 필패(必敗)일 거라 했었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이쪽이 승리했다. 이번의 타케다 전도 반드시 이길 수 있다, 그런 생각이 드는 히데요시였다.


"하지만 유감이군요. 타케다를 깨부수면, 그 무위(武威)는 천하에 울려퍼지겠죠. 그 무공에는 누구던 한 수 물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놈아! 분별없는 소리 하지 마라. 요코야마에서 아자이-아사쿠라를 견제하는 것도 중요한 역할이다"


"그렇군요"


농담을 하는 히데나가를 히데요시가 꾸짖었다. 히데나가는 면종복배(面従腹背)라는 태도였으며, 그 모습에 어이가 없어진 히데요시는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형님께서도 조금은 생각이 있지 않으셨습니까?"


"음, 뭐, 그렇지. 그렇기에 계책을 받아들인 것이다"


옅은 웃음을 띄우며 히데나가가 찔러보았다. 히데요시는 헛기침을 하여 동요를 얼버무린 후, 내심을 읽힌 것을 들키지 않으려고 했다.

그 모습에 한층 더 웃음이 깊어진 히데나가였으나, 히데요시는 의식적으로 무시하면서 말의 걸음을 재촉했다.


"핫핫핫, 형님은 도망쳐버리셨군"


"너무 놀리면 안 됩니다. 하시바(羽柴)님도 애태우고 계시겠죠"


"그렇겠지요. 뭐, 어떻게 되겠지요. 그놈은 끈질기니까요"


그런 대화를 나눈 후, 히데나가와 타케나카 한베에는 히데요시를 따라잡기 위해 말의 속도를 올렸다.




노부나가로부터 도쿠가와의 원군을 명받은 시즈코는, 케이지(慶次)들에 그치지 않고 부대장들까지 집합시켰다. 시즈코로부터 전달받을 것도 없이, 도쿠가와에 원군으로 파견된다는 이야기는 다 퍼져 있었다.

하지만 새삼스레 시즈코에게 듣게 되면 군으로서의 방향성을 확인할 수 있기에 여기서 선언하기로 했다.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고 생각하지만, 우리 군은 도쿠가와의 원군으로서 출진하는 것이 결정되었습니다"


시즈코의 말을 듣고 동요하는 사람도 있었으나, 태반은 예측했던 대로라는 태도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길게 이것저것 말해봤자 소용없으니 간결하게 정리합니다. 원군이라고 해서 뭔가 특별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평소대로 출진해서, 평소대로 싸우고, 그리고 평소대로 승리합니다. 이상"


간결하기 짝이 없는 말에 불안을 떠올리는 사람도 있었으나, 시즈코는 그 이상 말하지 않고 모두를 해산시켰다.

대장이 평소대로 하면 이길 수 있다고 말하는 이상, 자신들은 스스로의 역할을 평소대로 하면 된다고 결론짓고 각자 그 자리를 떠났다.

남은 것은 케이지와 사이조(才蔵), 나가요시(長可), 타카토라(高虎), 아시미츠(足満) 등 다섯 사람 뿐이었다.


"그럼 아시미츠 아저씨에게는 물류(物流)를 맡겼어요. 남은 사람들은 평소대로 지내 주세요. 출진하는 날은 나중에 다시 연락할게요"


"알겠습니다"


시즈코의 말에 다섯 명도 해산했다. 그로부터 1주일 정도는 각자 주어진 일을 했다. 나가요시나 사이조, 타카토라는 훈련, 케이지는 변함없이 지내면서 간자의 처치, 아시미츠는 물류를 모았다.

시즈코도 평소처럼 서류를 처리하고, 틈나는 대로 농작물의 상태를 확인했다. 사쿠마나 히라테와 달리, 시즈코들은 지나치게 평소대로라서 주위가 안달복달할 정도였다.


그리고 출진하기 사흘 전, 후타마타 성(二俣城)의 공략에 고전하고 있던 타케다 군과 도쿠가와 군의 공방전이 점입가경에 들 무렵, 시즈코는 텟포슈(鉄砲衆)를 모았다.

이유는 훈련의 성과를 확인하기 위해서이다. 겐로(玄朗)는 시즈코의 명령대로 가장 숙달된 그룹과 가장 서투른 그룹을 모았다.

각자 그룹별로 준비된 과녁에 사격을 시켰다. 결과는 과연 수위(首位) 그룹이라고 감탄하게 되었다.

흔들림없이 사격을 반복하고, 장전 속도도 아주 좋았다. 그에 반해 최하위 그룹은 장전은 문제없었지만, 사격태세에 들어갈 때까지 애를 먹고, 발사 간격이 길었다.


"흠, 조금 신경쓰였지만 문제는 없네"


최하위 그룹의 결과를 본 시즈코는 안심했다.

수위 그룹은 매분 9에서 10발을 발사하고, 최하위 그룹은 6에서 7발이었다. 확실히 결과를 보면 실력은 상당히 편차가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매분 5발을 밑돌지 않는다면 문제없다. 겐로가 너무 형편없다고 말하길래 시즈코는 매분 4발 이하인가 하고 초조해했으나, 이 결과라면 충분히 허용범위였다.


"하지만 주군, 이래서는 너무 차이가 나는 게 아닙니까?"


겐로가 진언하자 시즈코는 손가락으로 과녁을 가리켰다.


"사격 횟수에서는 떨어지지만, 사격 정밀도는 높은 것 같아요"


그 말을 듣고 전원이 과녁을 보았다. 시즈코의 지적대로, 수위 그룹의 착탄 위치는 흩어져 있었으나, 최하위 그룹 쪽은 중심점에 집중되어 있었다.


"어느 쪽이 좋을지는 쓰기 나름. 그러니까 단순히 사격 속도만으로 잘하고 못하고를 정하는 건 성급해요. 단점을 탓해서 위축시키기보다, 장점을 발견해서 칭찬해서 성장시키는 편이 좋아요"


"예, 옛! 주군이 말씀하시는 대로입니다. 제 얕은 소견이 부끄럽습니다"


"그렇게 송구해할 것 없어요. 그럼 정밀 사격이 가능하다고 하면…… 스코프로 사격이 가능하려나. 하지만 많이 준비할 수는 없으니, 이번에는 무리려나"


스코프를 단 볼트액션 라이플에 의한 원거리 저격으로 전령을 처치하는 것을 시즈코는 생각하고 있었다. 전령이 줄어들면 지휘계통은 유지할 수 없게 되어, 대군의 유리함을 살릴 수 없게 된다.

이번의 타케다 전에서는 사격 정밀보도다 사격 횟수에 의한 면제압(面制圧)을 우선시했기에, 정밀도가 높은 저격총은 상정하지 않았다. 약간 후회한 시즈코였으나, 없는 건 포기할 수밖에 없다.


"과도한 자신감은 오만으로 이어지지만, 자신이 없으면 각오가 서지 않으니까요. 어쨌든 이걸로 문제는 없어요. 얼마 있으면 출진할테니, 그 때까지 훈련을 게을리하지 말도록 해요"


"옛!"


전원의 대답에 시즈코는 만족했다. 그 후, 겐로에게 모든 걸 맡기고 시즈코는 그 자리를 떠났다.


"단점을 탓해서 위축시키기보다, 장점을 발견해서 칭찬해서 성장시키는 편이 좋다, 라"


형편없다고 매일 갈굼당하던 그룹 중 한 명, 나가마사(長政)는 시즈코의 말을 되씹고 있었다. 그런 사고방식은 여태까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군, 이라고 나가마사는 생각했다.

동시에 노부나가가 시즈코를 중용하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수위 그룹과 최하위 그룹 모두 스스로의 장점과 단점을 눈으로 보고, 반대로 의역이 넘치는 상태가 되었다.


"주…… 야차(夜叉) 님. 왜 그러십니까"


멍하니 서 있는 나가마사가 걱정된 엔도(遠藤)가 말을 걸었다. 그 목소리에 제정신이 든 나가마사는, 일단 머리 속에 있던 이런저런 생각을 털어냈다.


"아무 것도 아니다. 그보다, 이제 곧 타케다와의 싸움이다. 기합을 넣어야겠지"


"예. 하지만…… 정말로 타케다에게 이길 수 있을까요. 저 아이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 말했습니다만, 솔직히 소생은 그런 결과가 될 거라 생각되지 않습니다"


"글쎄. 시즈코 님이 무얼 생각하고, 무얼 보고 있는지, 그건 형님(義兄上)처럼 멀어서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까지 저만한 일을 해내왔는데, 이제와서 타케다만 무리였습니다, 라고는 하지 않겠지. 실제로 이런 총을 준비해두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말하면서 나가마사는 신식총(新式銃)을 가볍게 들어올렸다. 처음으로 그 사격을 보았을 때는 누구나 간 떨어질 정도로 놀랐다.

총의 명수라고 하는 사람조차 맞히는 게 어려운 거리를, 기초훈련을 마쳤을 뿐인 신병이 맞혀버렸기 때문이다.

개중에는 우연히 실력이 좋은 사람이 사격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으나, 직접 사격을 할 때마다 신식총의 무서움을 이해하게 되었다.

일단 장전 속도가 빠르다. 종래의 화승총으로는 숙련자조차 1분에 1발 쏘는 게 고작이다.

그게 익숙하지 않은 병사조차 6발을 쏠 수 있다. 공격 횟수(手数)가 6배인 것이다. 거리를 좁히기 전에 벌집이 될 것이 뻔하다.


"확실히 그건……"


엔도나 미타무라(三田村)도 신식총의 성능은 싫을 정도로 이해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텟포슈에 배속되어 있었으니까.


"확실히 55간(間)…이나 되는 거리에서 맞힐 수 있으니 경이적입니다"


미타무라의 말에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55간이란 약 100m이다. 여기서 신식총의 성능을 아는 사람이 있다면 이상한 것을 눈치채게 된다.

신식총의 사정거리는 800m이다. 100m로는 성능을 충분히 살리지 못한다.


이것이야말로 시즈코의 책략이었다.

과녁의 높이나 중심점의 크기를 변경하는 것으로, 실제는 800m 거리라도 노릴 수 있는 훈련을 하면서, 겉보기에는 100m 정도밖에 날아가지 않는 총이라고 간자들에게 오인시킨다.

100m라면 현행의 화승총으로도 닿는 거리다. 연사 속도는 눈을 크게 뜰 정도이지만, 싸움을 근본적으로 뒤엎을 병기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지금은 말해봤자 소용없다. 훈련을 하자"


이리하여 사용하고 있는 본인들조차 총의 성능을 모르고, 자신이 얼마만한 실력을 가지게 되었는지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신식총의 진가는 아직 누구에게도 이해되지 않고 있었다.




오다가 도쿠가와에 원군을 보낸다. 그 소식은 각 방면으로 눈 깜짝할 사이에 퍼져나갔다. 사방을 적에게 포위당했으면서 여전히 병력을 보낼 여력을 남기고 있었나 하고 적들은 놀랐다.

하지만 신겐(信玄)은 당초부터 예상하고 있었으며, 기후(岐阜)에도 여전히 2만에서 3만 정도의 병력이 남아있을거라 예측하고 있었다. 그 예측은 올바른 것이어서, 오와리(尾張), 미노(美濃)에는 2만 정도의 병력이 국방을 위해 남겨져 있었다.


"흠, 역시 그렇게 나왔나"


오다 군의 원군의 진용을 알게 된 신겐은 보고를 받고 그렇게 중얼거렸다.

후타마타 성을 힘으로 공격해서는 손해가 크다고 본 신겐은, 그 수원(水源)을 끊기로 했다.

후타마타 성의 수원인 텐류가와(天竜川)에 튀어나온 정루(井楼, 취수시설(取水施設))을 대량의 뗏목을 흘려보내 파괴하여 외부로부터의 물 공급을 끊었다.

후타마타 성에는 우물이 없어, 저장되어 있는 빗물만으로는 병사들의 음용수를 댈 수 없다. 성주인 나카네 마사테루(中根正照)는 병사들의 목숨을 살려주는 조건으로 신겐에게 항복했다.


때를 같이하여, 오다 군의 원군이 하마마츠 성에 도착했다. 내용은 시즈코 군 1만, 사쿠마나 히라테, 미즈노들은 각자 1500 정도의 수하들(手勢)을 이끌고 있어, 합계 1만 5천 정도가 되었다.

사쿠마나 히라테, 미즈노의 병력이 적은 것은, 하마마츠 성 뿐만 아니라 다른 성에 수하들을 분산 배치했기 때문이다. 하마마츠 성에서 농성하고 있는 동안, 다른 성으로부터 타케다 군의 배후를 찔러 협공하는 작전이다.

그 외에 키묘마루가 이끄는 병력 1만이 시라스카(白須賀, 현재의 시즈오카(静岡) 현(県) 코사이(湖西) 시(市) 주변)에 대기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지긋지긋하게 애먹었던 포위전을 반대로 타케다 군에게 걸겠다는 보복(意趣返し)이다.

어쨌든 타케다 군의 전력의 집중을 용납하지 않는다. 소극적이지만 가장 승률이 높은 책략이었다. 문제라고 하면 그 작전을 취하는 것이 처음부터 신겐에게 예측되었던 점이다.


하마마츠 성에 도착한 시즈코는, 성 전체에 감도는 무거운 분위기를 느꼈다. 섣부른 소리는 할 수 없다고 생각한 시즈코는 사이조를 대동하고 사쿠마들과 함께 이에야스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어흠, 솔직히 말해, 시즈코 님의 예측으로는 승률이 어느 정도이오?"


도중에 부채로 입가를 가리면서 사쿠마가 질문했다. 들리지 않는 척 하고 있는 히라테나 미즈노였으나, 열심히 사쿠마와 시즈코의 대화를 의식하고 있었다.


"으ー음, 뭐 지금 상태로는 8할이려나요"


"……그건 패할 확률이 8할이라는 것이오?"


불안해진 사쿠마가 다시 질문했다. 어째서 자신의 발언에 그렇게 주의를 기울이는지 이상했지만, 딱히 알려져도 상관없기에 시즈코는 대답했다.


"아니에요. 지금 상황으로는 8할은 이겼다고 봐도 좋습니다"


"뭐요?"


의미를 알 수 없어 시즈코에게 캐물으려 했던 사쿠마였으나, 그 이상 질문할 기회는 없었다. 이에야스가 있는 방에 도착했기 때문이다. 조용히 입구가 열리고 시즈코들은 안으로 들어갔다.

공기가 무거웠다. 그 원인은 이에야스가 고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불안이나 공포가 가신들에게 전달되고, 그걸 느낀 가신들도 고뇌하고 있었기에, 방 전체가 음울한 분위기에 지배되고 있었다.


"저희들, 도쿠가와의 원군으로 왔습니다"


병력으로는 시즈코 군이 최대규무이지만, 오다 가문 가신으로서 이름이 알려진 것은 사쿠마였기에, 그가 전군을 대표하여 이에야스에게 인사를 했다.

하지만 이에야스로부터의 대답은 없었다. 그는 시즈코나 사쿠마들이 들어온 것조차 깨닫지 못하고, 머리를 감싸안고 뭐라고 중얼중얼거리고 있었다.


(이건 꽤나 중증인가)


한가한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가신 중 한 명이 이에야스에게 귓말을 했다. 그제서야 겨우 사쿠마들을 알아챈 이에야스는 서둘러 차림새를 바로하고는 입을 열었다.


"실례, 생각을 좀 하고 있었소. 다짜고짜 죄송하지만 작전회의를 열고 싶소. 다들, 모여 주시오"


그 말만 하고 이에야스는 다급히 방을 나갔다. 1분 1초라도 아깝다고 생각하고 있는 이에야스의 표정에 불안의 어두운 그림자가 또렷하게 떠올라 있었다.

사쿠마가 시즈코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이쪽으로 화제를 돌리지 말아줘, 라고 생각하면서 시즈코는 가볍게 어깨를 움츠렸다.


"가죠"


"음"


도쿠가와 가문 가신들이 이동하는 데 섞여서 시즈코와 사쿠마들도 작전회의 장소로 이동했다. 여전히 무거운 분위기는 있었으나, 그래도 옥외로 나왔기에 약간 개방감이 느껴졌다.


"지금 상황을 상세히 설명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고 있소. 그보다 우선 타케다가 포위하고 있는 후타마타 성의 원군에 대해 상의하고 싶소"


작전회의 장소에서 입을 열자마자 이에야스는 후타마타 성의 원군을 의제로 올렸다. 현재 상황에서 코앞에 있는 후타마타 성의 원군을 소홀히 하면, 도쿠가와 가문 가신들의 결속을 유지할 수 없다.

무모하다는 말을 들어도 이에야스에게는 후타마타 성에 원군으로 갈 필요가 있었다.


"도쿠가와 님, 실은 저희들은 영주님으로부터 계책을 받아왔습니다. 자세한 것은 이쪽의 시즈코로부터 들어주십시오"


"(너무해, 통째로 떠넘겼어) 어흠, 그럼 이후에는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사쿠마로부터 설명을 통째로 떠넘겨진 시즈코였으나, 딱히 불만은 없었다. 오히려 언제 대화에 참가할지 고민하고 있었던 참이었다.


"우선 후타마타 성으로 원군은 보내지 않습니다"


"그건 받아들일 수 없소"


시즈코가 말을 끝냄과 동시에 이에야스는 즉각 거절을 표명했다. 도쿠가와 가문 가신들도 웅성거리긴 했으나 이에야스의 의견을 지지했다.


"기다려 주세요, 딱히 아무 의미 없이 원군을 보내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원군을 보내지 않는다고 말한 이유는, 이미 후타마타 성은 함락되었기 때문입니다"


시즈코의 말을 믿을 수 없어, 이에야스의 표정이 얼어붙었다. 후타마타 성은 하마마츠 성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이다. 견고한 후타마타 성이 함락되었다고 하면, 하마마츠 성은 거의 알몸을 드러낸 것이라 해도 좋다.

특히 원군을 보내지 못하고 후타마타 성이 함락되는 걸 방관한 것처럼 보이는 것이 이에야스에게는 뼈아팠다.


"하마마츠 성에 농성하여, 저쪽이 포위한다면 다른 오다 군이 배후를 찌르고, 하마마츠 성을 떠나 다른 장소를 친다면 우리들이 타케다의 배후를 칩니다. 신겐 땡중(坊主)이 공성에 집중할 수 없게 하는 것이 영주님의 계책입니다"


"으, 음…… 전군으로 이동하면 배후를 공격받을테니, 신겐은 반드시 병력을 남길 것이오. 그렇게 되면 다른 장소에 가는 병력이 줄어들지. 이 성은 쉽게는 함락되지 않소. 과연, 신겐은 병력을 크게 쪼개야 하는 것인가"


어느 정도 납득한 이에야스였으나 불안은 남아 있었다. 과연 신겐이 이쪽의 계책에 걸려들 것인가, 였다.

만약 신겐이 하마마츠 성을 포위하지 않았을 경우, 배후는 찌를 수 있으나 지성(支城)을 저버렸다는 소리를 들어도 이상하지 않다. 변절하는 자가 속출할 위험성이 있었다.


"주군, 이건 지나치게 위험한 도박입니다"


"하지만 이미 후타마타 성이 함락되었다면, 이 계책에 걸어볼 수밖에 없다"


이에야스의 말대로, 도쿠가와 가문이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적다. 그 중에서 가장 가능성이 있는 것이 노부나가의 계책이 된다. 이 이상 많은 걸 바랄 여유는 없었다.


"그러하면 농성을 대비하여 저희 군에서 군비를 반입하려고 합니다. 후타마타 성 공략으로부터 생각하면 2일 정도입니다만, 그 동안에 대량의 물자를 반입할 허가를 받고 싶습니다"


"그건 문제없소. 죄송하지만 지금의 비축량만으로는 불안하지. 그쪽에서 준비해 주신다면 그건 고마운 제안이오"


"알겠습니다. 그럼, 시간이 아까우니 바로 수배하겠습니다 (여기까지는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네)"


시즈코는 순조롭게 일이 진행되는 것에 내심 만족하며, 아시미츠에게 수송작전 개시의 연락을 할 것을 사이조에게 명했다. 사이조는 고개를 한 번 숙이고는 조용히 방을 나갔다.


"그럼 다른 걱정거리에 대해 이야기를 하죠"


그 후에는 신겐이 미카타가하라 대지에 오는 것을 기다릴 뿐, 이라고 생각하면서 시즈코는 다른 의제는 없는지 물었다.




달리 명확한 의제가 없었기에, 작전회의는 금방 끝났다. 아시미츠는 명령을 받는 것과 동시에 병사들을 이끌고 하마마츠 성을 나가서 키묘마루가 있는 시라스카로 향했다.

이에야스의 대답을 듣기 전부터 시즈코는 보급병들을 시라스카에 대기시켜놓고 있었다. 그 후에는 피스톤 수송을 반복하여 가능한 한 많은 물자를 하마마츠 성으로 운반할 뿐이다.

아시미츠의 행동은 신속했다. 필드 스코프와 깃발을 이용하여 겨우 30분 만에 시라스카의 보급부대에 연락을 취했다. 보급부대는 연락을 받음과 동시에 행군을 개시했다.

하마마츠 성으로 컨테이너를 실은 보급부대가 열을 지어 이동했다. 보급병들은 하마마츠 성에 도착한 후, 지정된 장소에 컨테이너의 내용물을 하역하고, 그 동안 보급부대의 호위병들이 잡무를 처리했다.


장사진을 이루는 컨테이너를 멀리서 본 도쿠가와 가문 가신들은 압도적인 물량에 기겁했다. 그리고, 이거라면 장기간 농성에도 견딜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다만 컨테이너의 내용물은 대부분이 타케다 군을 무찌르기 위한 군수물자이지 농성을 위한 생활물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시즈코와 그들은 약간 생각이 어긋나고 있었다.


"실로 장대한 광경이군"


멀리서 보고있던 한조(半蔵)가 중얼거렸다. 컨테이너의 열은 끊길 기색이 없어, 이 뒤로 얼마나 더 운반되어 올지 예상도 되지 않았다.

오늘은 12월 21일, 원군으로 온 지 이틀 동안 반입된 물자를 생각하면, 시즈코가 다른 영주(国人)들에게 뒤지지 않는 존재라는 소문이 나 있는 것도 납득이 갔다.


"이거라면 잘 될거다, 한조!"


"알았다. 알았으니까 남의 등을 치지 마라. 네놈은 적당히라는 걸 좀 배워라"


팡팡하고 등을 치는 타다카츠에게 한조는 얼굴을 찡그리며 불평했다. 다른 사람들은 타다카츠의 흥분한 모습에 쓴웃음을 지었다.


"기뻐서 어쩔 줄을 모르는군"


"뭐 호의를 가진 여자에게 '이 싸움, 승리의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은 혼다(本多)님이에요'라는 말을 들으면, 헤이하치로(平八郎)가 우쭐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우하하하하! 질투냐? 남자의 질투는 꼴사납다고!"


거 성가시네, 그것이 그 자리에 있는 전원이 받은 느낌이었다. 조금 격려해달라고 부탁한 야스마사(康政)는 새삼 후회했다. 좀 더 완곡적으로 말해달라, 고 말했어야 했다고.


"하여, 주군께선 어디 계신가?"


"시즈코 님이 데려온 짐승이 궁금하다고 하시며 시즈코 님이 있는 곳에 계시네"


"음, 그건가. 확실히 놀라웠지. 주군께서 흥미를 가지시는 것도 어쩔 수 없군"


시즈코는 생각하는 바가 있어 비트만 패밀리를 하마마츠 성으로 데려왔다. 평소에는 카이저와 쾨니히 뿐이지만, 이번에는 패밀리 전원이다.

카이저만으로도 놀라운데, 그게 전원 집함이 되면 신화적으로까지 보일 광경이다. 그리고, 그 거구의 짐승들을 간단히 부리는 시즈코에게도 일말의 두려움을 느꼈다.


"이 싸움, 결과를 알 수 없게 되었군"


야스마사는 작게 중얼거렸다. 그에게는 직감이긴 하나, 어떤 확신이 있었다. 타케다와의 싸움, 농성만으로 끝날 리가 없다, 고.




이에야스는 비트만 패밀리가 집합해있는 광경에 경악하고 있었다. 크다 크다 하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설마 이만한 거구들이 모여있을 줄은 생각도 못했기 때문이다.

담력시험도 겸하여 이에야스는 비트만들에게 다가갔다. 처음으로 반응한 것은 쾨니히였으나, 거의 시간차 없이 다른 늑대들도 이에야스의 행동을 감지했다.

얼핏보면 딴청을 부리고 있었으나, 귀는 빈틈없이 이에야스 쪽을 향하고 있었다.


"여기까지인 모양이군"


한 발자국만 더 다가가면 비트만 패밀리가 움직인다. 그 아슬아슬한 위치에서 이에야스는 발을 멈췄다. 늑대에 대해 잘 알지 못해도, 전쟁에서 다져진 감이 이에야스에게 위험한 라인을 알려주었다.


"하지만, 훌륭한 체구로군. 성스러움까지 느껴진다"


이에야스의 평가에 시즈코는 쓴웃음을 떠올렸다. 시즈코에게는 언제까지나 어리광쟁이인 아이들이다. 하지만 평가가 높은 것은 주인으로서 자랑스러웠다.


"죄송합니다. 익숙하지 않은 장소라서 당황하고 있는 것도 있어서, 평소보다 경계심이 강하네요"


"하핫, 괜찮습니다. 무리한 이야기를 한 건 이쪽이니까요"


조금 잡담을 나눈 후, 시즈코와 이에야스는 아시미츠가 운반해온 물자를 시찰하러 갔다. 이틀 뿐이라는 점도 맞물려 현장은 상상 이상으로 혼잡했다.

운반된 컨테이너에서 여러 개의 카트(カゴ台車)가 꺼내졌고, 그것들이 분류에 따라 손으로 미는 카트(手押し台車)에 실려 보관 장소로 운반되어갔다.

내용물을 전부 꺼낸 컨테이너는 빈 카트를 수납하여 되돌아갔다. 연이어서 들어오니 정리하는 담당자들은 정신없이 바빴다.


운반되어온 물자는 상자에 식별변호만이 적혀 있었기에,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 얼핏 봐서는 알 수 없었다.

시즈코는 식별번호의 의미를 알고 있지만, 이에야스 등 도쿠가와 가문 인물들에게는 그냥 나무상자를 어떤 이유로 구별해놓았는지 전혀 짐작도 가지 않았다.


"왜 그러냐 시즈코, 뭔가 문제라도 있느냐?"


작업원들의 방해가 되지 않도록 시찰하고 있으니, 총책임자인 아시미츠가 시즈코들이 온 것을 깨달았다.


"좀 신경쓰여서, 도쿠가와 님과 시찰하고 있어"


"그러냐. 뭐, 신경쓸 필요는 없다. 하나같이 순조롭다"


그렇게 말하며 아시미츠는 시즈코에게 보드를 내밀었다. 받아들고 내용을 확인하니 순조롭게 물자가 반입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어서 시즈코는 물자 수송의 호위병의 흐름에 눈을 돌렸다. 물자의 반입과 함께 속속 입성하여, 반출과 함께 조용히 퇴출했다. 이쪽도 순조… 로웠다.


"문제없네"


뒤에서 홀로 남겨진 이에야스였으나, 시즈코 본인이 문제없다고 말하는 이상 뭔가 말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다. 어떤 기준으로 무엇이 얼마만큼 운반되어오고 있는지 여전히 알 수 없었지만.


"오늘밤은 이걸 병사들에게 나누어줘"


시즈코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것이 무엇인지 이해한 아시미츠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시즈코가 병사들에게 나누어준 것, 그것은 술이다. 내일은 농밀(濃密)한 하루를 보내게 된다. 어쩌면 오늘밤이 달을 보는 마지막 날이 될 경우도 있다.

그렇기에 째째한 소리를 하는 법 없이, 저녁식사는 대단히 푸짐하게 내놓았다. 병에 담겨있던 요리들이 차례차례 개봉되어 병사들의 뱃속으로 들어가고, 텅 빈 술통이 자리가 비좁을 정도로 굴러다녔다.


"마치 축제로군"


한조와 타다카츠, 야스마사가 시즈코 군의 떠들썩함에 놀랐다. 얼핏 보면 타케다와 싸우기 전의 최후의 만찬으로도 보이지만, 세 사람에게는 그렇게 생각되지 않았다.

며칠 정도지만, 시즈코들에게는 뭔가 다른 생각이 있는게 아닌가, 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세 사람이 눈치챌 정도니, 주인인 이에야스도 눈치채고 있을거라고 이해했다.

왜냐 하면 시즈코 군이 떠들썩하게 노는 것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오히려 가서 낄 수 있으면 끼어서 놀고 와라, 고 가신들에게 선언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말이 끝나자마자 본인은 그대로 시즈코 군이 있는 곳으로 끼어들러 갔다.


"하여간 괘씸하군…… 우물우물…… 내일부터 농성인데, 후우후우…… 이래서는 맥이 빠지는 게 아닐까"


"헤이하치로, 산처럼 요리를 쌓아놓고 먹으면서 말해도 설득력은 전혀 없다"


"네놈들도 요리를 손에 들고 있지 않느냐"


맛있을 듯한 냄새에 이기지 못하고 세 사람 모두 한 손에 요리를 들고 걷고 있었다. 타다카츠 같은 경우에는 접시에 밥을 얹더니, 그 위에 산더미같은 반찬을 올려놓고 있었다. 한조나 야스마사도 접시에 몇 가지 요리가 빽빽하게 놓여 있었다.

게다가, 요리는 별로 먹지 않았지만, 이에야스는 사카이(酒井)와 함께 고주망태가 될 때까지 마시고 있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다들 불안한 것이겠지. 그러니 떠들썩하게 놀 수 있을 때는 노는거다"


타케다의 행군 속도를 볼 때 농성전은 내일부터 시작된다, 고 다들 직감적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옛부터 농성전은 비참한 상태가 되기 쉽다.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싸움, 시시각각으로 줄어가는 군비, 부상당해도 도망칠 곳조차 없는 상황은 정신을 마모시킨다.

게다가 타케다는 월동 장비를 가지고 있다. 장기간에 걸친 농성전은 어떻게 될지 상상도 되지 않았다. 그런 불안에서 도망치기 위해, 다들 떠들썩하게 즐기며 내일을 잊는다.


"이제와서 말해봤자 소용없다. 할 수 있는 일은 할 것이다"


"지금은 네놈의 속편함이 위안이로군. 충분히 마음편하게 준비해둬라"


"이봐, 사람을 만사태평한 인간 취급하지 마라"


"아니냐?


"아니야!"


한조의 지적에 타다카츠는 반론했다. 하지만 곧 세 사람 모두 뿜었다. 그들은 이 때만큼은 시시각각 밤이 지나 내일이 다가오는 것을 잊고 떠들썩하게 즐겼다.




도쿠가와 가문 가신들과는 조금 상황이 달랐으나, 시즈코들도 크게 흥분해 있었다.

이럴 때 대장이 불안한 표정을 지으면 그야말로 장례식(お通夜) 같은 청승맞은 밤을 보내게 된다. 억지 기운으로 보이더라도 위에 서는 사람은 솔선하여 즐거워해보일 필요가 있었다.


"좋았어ー!"


큰 모닥불을 앞두고, 케이지의 원숭이춤이나 사이조의 연무(演武), 거의 알려져있지 않은 춤 등이 선보여졌다.

모닥불은 캠프 파이어라고도, '친목(親睦)의 불'이라고도 하며, 결속력을 높이는 데는 안성맞춤이다.

다들 모닥불을 둘러싸고 떠들썩하니 즐기고 있었다.


"아ー 내가 바로…… 다음이 뭐더라?"


"이 등신!"


만담(漫才) 같기도 하고 카부키(歌舞伎) 같기도 한 쇼에 다들 큰 소리로 웃었다. 술기운도 있지만, 누군가가 모닥불 앞으로 뛰쳐나와 잘 이해되지 않는 행동을 선보이고 있었다.


"술기운이라는 건 무시 못하겠네"


열기가 버거워진 시즈코는, 모닥불에서 조금 떨어져서 시원한 밤바람을 쐬고 있었다. 매번 그렇지만 술을 마실 수 없는 그녀였으나, 분위기만으로도 취한 기분이 들었다.


"물이다"


"고마워"


아시미츠에게서 찬물을 받아들었다. 불기운에 뜨거워진 몸에 차가운 물이 구석구석 스며들었다. 휴 하고 한숨을 돌린 시즈코는, 컵을 한 손에 쥔 채로 병사들의 난리법석을 보았다.


"내일은 드디어 결전이니, 미련이 없도록 실컷 떠들썩하게 놀게 할 필요가 있지"


"그런 불길한 말은 하지 마. 무혈(無血)의 승리는 무리라도, 피해를 줄일 수 있으면 훌륭한 선전이 되니까. 내일은 압도해 보이겠어"


주위는 내일부터 길고 괴로운 농성전이 시작될거라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시즈코를 필두로 한 몇 명 만은, 내일은 개수일촉(鎧袖一触)으로 타케다를 쓰러뜨릴 날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걸 위해서 고생하며 이것저것 준비해온 것이다. 최소한 타케다의 주력이 괴멸하는 결과를 내지 못하면, 지금까지 피가 배어내는 훈련에 따라와 준 사람들에게 면목이 없다.


"예상으로는 사상자는 거의 200. 그 정도는 나올 거라 생각해둬라"


"200이라…… 좀 더 줄이고 싶지만, 타케다 군 상대로 그 숫자라면 감지덕지려나"


"감지덕지는 커녕, 타케다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라면 자기 귀를 의심할 거다. 켄신(謙信)조차 비기는 게 고작이었던 타케다, 그 군이 완전히 괴멸하는 것을 생각하면 말이지"


아시미츠의 말에 시즈코는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준비는 갖춰졌다. 이번의 책략에는 다른 오다 가문 중진(重鎮)들도 찬동해 주었다.

각 진영에 이런저런 속셈은 있지만, 타케다를 쳐부순다는 목적이 일치한다면 시즈코로서는 문제없었다.

그 후, 어떤 특권이나 명예가 따라올지도, 그녀는 전혀 흥미가 없었다. 다만 이 싸움의 결과로서 쓸데없는 싸움이 줄어드는 것을 바랄 뿐이었다.


"안심해라. 타케다를 쳐부순 군, 이라는 게 되면 쓸데없이 다투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켄신이 어떻게 나올지는 모르지만, 호죠(北条)와 결탁해서까지 싸우려고 들진 않겠지"


"그러기를 바래. 이 이상, 싸움이 계속되어서 나라가 피폐해져가면 곤란하니까. 다들 이런저런 생각은 있어. 하지만, 나로서는 영주님에 의한 오다 막부(幕府)의 천하통일이 가장 나은 미래라고 생각해"


"누구나 납득하는 미래 같은 건 없다. 나는 시즈코를 믿는다. 그러니 시즈코는 스스로가 믿는 길을 가라. 그게 설령 잘못되었다고 해도 말이지. 잘못되었는지 올바른지는, 후세의 역사가들에게 판단을 맡겨라"


"응, 힘낼게. 하지만, 아무리 봐도 이건 아니다, 싶을 때는 꼭 말려줘"


"그걸 시즈코가 바란다면, 나는 목숨과 바꿔서라도 말려보이지"


"그렇게까지 긴장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오버라고 생각한 시즈코는 걱정없는 미소를 떠올렸다. 하지만 아시미츠는 일말의 불안을 느끼고 있었다.

타케다와의 싸움이 끝나면, 그녀가 바라던 바라지 않던 관계없이, 시즈코는 정치의 세계에서 발판을 갖추게 된다.

그리고 타케다라는 위험이 사라지만, 오다 가문 내분에서도 권력투쟁이 시작될 것은 뻔히 보였다.


(타케다를 깨부수고, 나가시마 잇코잇키(長島一向一揆)를 멸망시키고, 아자이(浅井)을 멸망시키고, 아사쿠라(朝倉)를 멸망시킨다. 바보 동생놈은 모리(毛利)가 있는 곳으로 날려버리면, 이제 일본은 오다 가문이 거의 장악한 셈이 되지. 그렇게 되면, 혼간지(本願寺)도 시간은 걸리겠지만 오다에게 복종하는 것 외에 길은 없다. 천하가 보이는 위치에 노부나가는 서게 되지. 그렇게 되면, 시즈코의 힘을 노리고 몰려드는 잡초들은 얼마든지 생겨난다)


원하지 않는 권력투쟁에 말려들게 되면, 과연 시즈코는 변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것만큼은 아시미츠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설령 시즈코가 변하더라도 아시미츠가 할 일은 변하지 않는다. 시즈코를 지킨다, 적은 멸망시킨다, 그것이 자신의 역할이라고 아시미츠는 확신하고 있었다.


"긴장할 생각은 없는데 말이지. 뭐, 나중 일은 일단 제쳐두지. 지금은 내일 일을 생각하자"


"……그러네. 내일, 이네"


컵에 남은 물을 다 마신 후, 시즈코는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공기가 맑은 덕분에 하늘을 가득 메운 별들이 보였다.


"내일, 역사가 크게 바뀐다"


시즈코의 작은 중얼거림은 가까이 있던 아시미츠에게조차 들리지 않고,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은 채 밤하늘로 빨려들어가 사라져갔다. 그로부터 한동안 소란은 계속되었으나, 밤이 깊었을 무렵, 내일을 대비해 다들 곯아떨어졌다.


12월 22일, 운명의 날이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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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

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겐키(元亀) 3년 결전(決戦), 미카타가하라(三方ヶ原) 전투


094 1572년 11월 하순



10월 3일, 오다 가문에 격진(激震)이 흘렀다.

타케다(武田)가 움직였다. 신겐(信玄)이 이끄는 2만 2천의 군세가, 본거지인 코우후(甲府)에서 출진했다는 보고가 도착한 것이다.

신겐이 출진하기 전에, 야마가타 마사카게(山県昌景)와 아키야마 토라시게(秋山虎繁)가 각각 5000의 병사를 이끌고 진군하고 있는 걸 볼 때, 타케다가 가진 힘을 총동원하여 싸움에 임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진용을 볼 때도 명확히 알 수 있듯이 목표는 도쿠가와(徳川) 뿐만이 아니다. 그 배후에 있는 오다 가문을 노리고 있다는 것을 누구나 이해했다.


노부나가는 기후(岐阜)를 떠나 오우미(近江)에 있는 요코야마 성(横山城)에서 아자이(浅井)-아사쿠라(朝倉)에 대비한 상황을 확인하고 있을 때 타케다에 대한 보고를 받았다.


"말의 숫자, 마바리(小荷駄)의 규모를 볼 때 겨울을 나는 것을 상정한 대원정(大遠征)입니다. 병사의 숫자에서도 도쿠가와와의 소규모 충돌이 아니라, 타케다 가문이 가진 전력을 총동원하고 있습니다!"


타케다의 모든 전력. 그 말에 제장(諸将)들의 표정이 굳었다. 그리고 그들이 품고 있던 의심은 확신으로 바뀌었다.

아자이-아사쿠라가 계속 성에 틀어박혀 있던 이유를, 쇼군(将軍) 요시아키(義昭)가 오다 가문과의 관계를 끊은 이유를, 지금까지 침묵을 지켜왔던 혼간지(本願寺)가 활발해진 이유를.

그 대답이 타케다 가문의 대원정이었다.


감이 좋은 자들은, 한 번은 풀어졌던 오다 포위망이 다시 닫히려 하고 있다는 것을 이해했다. 사냥감을 몰아넣고, 숨통을 끊는 것은 타케다가 해 준다.

오다 포위망에 참가하는 면면들은 사냥감이 도망칠 수 없도록 하고 기다리면 된다. 그들이 활발하게 활동하기 시작하는 데는 충분한 이유였다.

노부나가만은 태연했으나, 맹장(猛将)으로 이름높은 시바타(柴田)조차 긴장 때문인지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화, 황공합니다만 아뢰옵니다. 이 사실에 의해 타케다와 오다의 우호 관계는 깨졌습니다. 즉시 도쿠가와에 원군(後詰め)을 보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원군은 보내지 않는다"


미츠히데(光秀)가 현 상황에서 취할 수 있는 상식적인 대책을 상신했으나, 노부나가는 단박에 기각했다. 그 말을 듣고 제장들에게도 동요가 흘렀다.


"하지만 도쿠가가와 깨지면 다음은 우리 오다 가문. 그렇게 되면 우리들에게 승산은 없습니다. 이 상황 하에서 보낼 수 있는 병력은 한계가 있겠지요. 하지만 도쿠가와만으로는 패배할 것이 틀림없습니다"


"당황하지 마라. 아무도 버린다고 하지는 않았다"


노부나가의 말에 제장들은 더욱 당황했다. 하지만 노부나가는 그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타케다 군이 코우후에서 출진했다는 보고는, 오와리(尾張)에 있는 시즈코에게도 도착했다.


"아, 그렇구나"


하지만 보고를 받은 아야(彩)의 당황과는 대조적으로, 시즈코는 평소와 다름없는 태도였다. 그 부동(不動)의 태도를 보고, 시즈코와 장기를 두고 있던 케이지(慶次) 쪽이 놀라고 있었다.


"그렇구나, 가 아닙니다! 타케다라고요!!"


"워워, 진정해. 당황해봤자 상황은 변하지 않아. 아, 아시미츠(足満) 아저씨에게 이리로 오도록 전해줘. 가는 김에 창고에서 그걸 가져와 줬으면 좋겠다고 전해주겠어?"


"어, 아, 네"


"이 판이 끝나면 케이지 씨는 평소의 면면을 불러와줘요. 뭐 아시미츠 아저씨가 도착하지 않으면 자세한 이야기는 못 하지만"


"어, 음"


시즈코의 흔들림없는 모습에 아야는 약간 냉정함을 되찾았다. 대답하고 즉시 곳곳에 지시를 내리기 위해 그 자리를 떠났다. 다급한 발소리에 쓴웃음을 지으면서 시즈코는 자기 차례에 수를 두었다.


"당황하다 넘어지지 않으면 좋겠네"


"나는 시즛치의 침착함이 이해가 안 되는데. 타케다라고 듣고 눈썹 하나 까딱 안 한 녀석은 시즛치 정도라고"


"아까도 말했지만, 당황해서 상황이 변한다면 얼마든지 당황해보이겠어. 하지만 현실은 변하지 않아. 그럼 당황해봤자 손해잖아? 어이쿠, 감사!"


"앗"


케이지도 내심으로는 동요하고 있었기 떄문인지, 평소에는 놓치지 않는 수를 놓쳐 중요한 말(大駒)인 비차(飛車)를 간단히 먹혀 버렸다.

자신의 각(角)과 교환하여 시즈코의 비차를 잡아 시즈코의 행동력을 빼앗을 방침이었기에, 전황은 열세는 커녕 괴멸 상태로 몰려버렸다.


"……틀렸군, 지금 상황으론 제대로 싸울 수 없어. 항복이야"


"동요하면 빈틈이 생겨버리니까요. 자, 케이지 씨. 그 사람들에게 연락을 부탁해요"


장기말을 한 손으로 가지고 놀면서 시즈코는 케이지에게 연락 담당을 의뢰했다. 케이지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머리를 긁으면서 방을 나갔다.

아무도 없어진 방에서 시즈코는 확신했다. 이미 분수령은 넘었고, 활로는 타케다를 쳐부순 뒤에만 생기는 것이다.


"후훗, 딱히 불안이 없…… 는 건 아니지만 말야"


인간의 감정은 체취(体臭)에도 나타난다. 시즈코의 불안을 냄새로 눈치챈 비트만들이 몸을 부벼댔다.

시즈코는 괜찮다고 말하듯 쓰다듬었지만, 비트만들은 그대로 시즈코의 곁을 떠나려 하지 않았다.

잠시 후 최초로 아시미츠가 도착하고, 이어서 케이지가 다른 멤버들을 데리고 돌아왔다. 멤버들은 평소와 마찬가지로 무장인 케이지, 나가요시(長可), 사이조(才蔵), 타카토라(高虎), 아시미츠, 시즈코 군 본대의 부대를 이끄는 겐로(玄朗), 니스케(仁助), 시키치(四吉)였다.

시즈코 군 본대에는 이밖에도 대장급 사람들은 있지만, 시즈코가 처음에 이야기를 터놓는 것은 이 8명이라고 정해두었기에, 최초의 작전회의는 이 멤버로 고정되어 있었다.


"그럼, 이미 들었을거라 생각하지만, 타케다 군이 코우후에서 출진했습니다"


회의용의 방으로 이동해서 처음으로 입을 연 시즈코는 전원을 향해 타케다 신겐(武田信玄)의 서상 작전(西上作戦)이 개시되었음을 알렸다.

타케다 군의 출진에 놀라는 사람, 반대로 투지를 불태우는 사람, 평소와 다름없는 사람,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하지만 아시미츠 이외에는 다들 어떤 공통의 의문을 품고 있었다.


"주군, 타케다의 출진은 알겠습니다. 그것과 저희들이 모인 것에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타케다의 출진은 확실히 오다 가문 존망의 위기이다. 하지만 노부나가로부터 지령이 없는 상태에서 작전회의를 여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것이 전원의 공통된 의문이었다.


"아ー…… 벌써 얘기해버려되 되려나요? 거의 확정인데, 도쿠가와의 원군으로 가는 건 우리들이거든요"


"네에엣!?"


"어이쿠, 진정해요. 자세한 이야기는 지금부터 할게요"


당황하는 면면들을 진정시키면서, 시즈코는 아야에게 사람들을 물리도록 지시했다. 아야의 움직임에 맞춰 비트만들도 시즈코의 뜻을 따라 소정 범위를 감시하기 위해 달려나갔다.

잠시 후 저택에서 사람들의 기척이 사라졌다. 기밀이 샐 위험이 없어진 단계에서 시즈코는 한 번 심호흡을 하고는 품에서 지도를 꺼내 펼쳤다.


"대략적인 하마마츠 성(浜松城) 주변 지도에요. 타케다는 가진 전력을 총동원하고 있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도쿠가와와 소규모 충돌을 할 생각은 아니지요"


"대략적인 병력수는?"


"야마가타(山県) 사부로(三郎) 효에노죠(兵衛尉)는 병력 5000을 이끌고 시나노(信濃)에서 미카와(三河)로, 아키야마(秋山) 호우키노카미(伯耆守)는 병력 5000을 이끌고 동(東) 미노(美濃)로, 타케다 군 본대는 병력 2만 2000을 이끌고 코우후에서 출진하여 미카와를 향해 진군하고 있어요. 아키야마는 동 미노의 견제 역할이라고 생각하면, 병력수는 2만 7000이네요"


"약 3만입니까. 그만한 병력을 상대로 우리들만으로는……"


겐로의 표정이 절망으로 흐려졌다. 그가 의기소침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시즈코 군의 전군을 동원해도 1만 정도, 도쿠가와의 진용은 확실하지 않지만 국력으로 볼 때 마찬가지로 총동원해봤자 1만이라고 하면, 양 군을 합쳐 2만 가까이 되기는 한다.

숫자의 단계에서 지고 있는데다, 상대는 두 배가 되는 병력과 호각을 이룬다는 정강무비(精強無比)한 타케다 군이다. 승산이 없다는 수준의 이야기가 아니다.


"숫자의 불리는 어떻게 해도 뒤집을 수 없지요. 그러니 무기의 질로 숫자를 보충합니다"


망을 끝냄과 동시에 시즈코는 아시미츠에게 가져오게 한 신형 화승총을 테이블 위에 놓았다.

전원의 시선이 거기에 쏟아졌으나, 얼핏 봐서는 눈에 익지 않은 부품이 몇 개 달린 화승총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야야, 화승총만으로는 방법이 없어. 아니면 뭐야, 이건 굉장한 성능을 숨기고 있는거야?"


나가요시가 화승총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시즈코에게 의문을 표했다. 다른 사람들도 말은 안 했지만 나가요시와 같은 생각이었다.


"겉보기에는 기묘한 화승총으로밖에 안 보이니까. 화승(火縄, ※역주: 도화선)을 쓰지 않게 되었으니 화승총이 아니야. 일단 명칭은 나중에 붙이기로 하고, 신식총(新式銃)이라고 부르기로 할게. 어쨌든 타케다 전의 분리를 뒤집을 장비 중 첫번째야"


"무기 성능만으로 어떻게 되는 거야?"


"문제없어. 싸움에도 법칙성이 있거든.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겠지만, 무기 성능에 병력수의 2승(乗)을 곱한 숫자를 전투능력으로 대입하는거야. 그 계산에 따르면, 숫자의 우위를 뒤집으려면 무기 성능으로 크게 앞설 수밖에 없어. 카츠조(勝蔵) 군의 의문은 당연하지만, 백문은 불여일견. 그 성능을 보면 의문 같은 건 날아갈거야"


시즈코가 말하는 싸움의 법칙이란, 란체스터의 제2 법칙을 가리킨다.

현대에서는 비즈니스 전략 등에 인용되며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되고 있으나, 원래는 전투의 수리(数理) 모델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란체스터의 제2 법칙을 꺼내려면, 기관총같이 혼자서 복수의 인간을 공격할 수 있는 병기가 전제로서 필요해진다.

따라서 신식총이라도 단발식(単発式)이라, 타케다 군과의 싸움에서 란제스터의 제2 법칙을 적용하기에는 좀 불안하다.

즉, 모두의 불안을 떨쳐내기 위한 허풍이다.


"뭐, 말보다 보는 게 빠르지. 지금부터 아시미츠 아저씨가 성능을 보여줄거야. 그럼 부탁해"


"알았다. 다들, 따라와라"


테이블에 놓인 신식총을 집어들고, 아시미츠는 전원에게 말하며 일어섰다. 남겨진 면면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본 후, 시즈코에게 시선을 보냈다.

모두의 시선을 받은 시즈코는 수통의 물을 입에 머금고 삼킨 후에 웃는 얼굴로 손을 흔들었다.

입으로 아무리 말해봐야, 자신의 눈으로 보았다는 사실 쪽이 설득력에서 우위를 가진다. 시즈코에게 재촉받고는 각자 아시미츠의 뒤를 따랐다.


"자, 다들 어떤 표정을 하고 돌아오려나"


그런 말을 중얼거리며 한숨 돌리고 있을 때 건조한 총성(銃声)이 높이 울려퍼졌다. 다들 멍해 있으려나, 아니면 환희하고 있으려나, 어느 쪽일까 하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각자의 성격에서 반응을 상상한 시즈코는 혼자서 깔깔 웃었다.


"타케다 전이 끝나면 오퍼레이션 리서치도 도입할 수 있으려나?"


먼 곳을 바라보는 눈을 하며 시즈코는 중얼거렸다. 오퍼레이션 리서치(Operation Research)——줄여서 OR이라고 부르는 것——이란, 모든 문제를 과학적, 즉, '이치에 맞는 방법'을 사용하여 해결하기 위한 '문제 해결학(問題解決学)'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제2차 세계대전 전에 미국이 독일, 일본에 대해 효과적으로 승리를 얻기 위해 연구했을 때 태어난 학문이다.

란체스터의 법칙이나 게임 이론을 조합하여, 효율적으로 승리를 얻을 방법을 모색했다.

최근에는 누구나 일상적으로 이용하는 '시뮬레이션'도 OR이 의식적으로 받아들인 방법론이라 할 수 있다.


OR는 군사에 발단을 두고 있으나, 그것에 그치는 학문은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 응용이 가능하다.

왜냐하면 OR을 이용하여 문제를 해결한 역사 그 자체가 재산이 되기 때문이다.

다양한 분야의 문제를 분석하여 의사결정으로 이어지게 하는 수법, 소위 말하는 '능숙한 방법'의 축적. 그것이 OR의 정석이 되기 때문이다.

현대에서도 전 세계의 OR 연구자들이 매일 새로운 문제를 발굴하여 그에 대한 문제 해결의 수법을 연구하고 발표하고 있는 'OR학회' 같은 것까지 존재하고 있다.

이 '분석과 의사결정'에 대한 효과적이 어프로치가 가능하다는 것은 대단히 폭넓은 응용력을 갖는다고 평가되는 근거이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 표준적인 사고방식으로 만들고 싶네. 여러가지 분야를 자극받을테도, 축적해가기만 해도 재산이 되니까"


보급시키고 싶은 목적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가장 큰 것은 OR 수법이 보급되는 것에 의한 각종 산업 업계에 대한 자극이다.

오다 가문이 발전시킨 산업은 이색적이며, 외부에서 자극을 받는 경우가 극히 적다.

내부에서만 굳어져버리면 문제가 발생해도, 그건 원래 그런 것이다라는 고정관념에 붙잡혀서, 이윽고 벽에 부딪혀서 동맥경화처럼 언젠가는 파열된다.

그러한 것들을 타개하기 위해서도 OR을 도입하여, 적극적으로 문제 해결에 착수했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다.


어떤 식으로 보급시킬지를 생각하고 있자니, 다급한 발소리가 여럿 다가오는 것을 깨달았다.

서둘러서 돌아온 걸까, 하고 생각한 순간, 입구의 맹장지가 본래 움직이는 것과 다른 방향으로 날아갔다.


"시즈코오! 저건 뭐냐!!"


예상대로 맨 먼저 뛰쳐들어온 것은 나가요시였다. 케이지, 사이조와 다른 사람들도 그 뒤를 이었다.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 맹장지는, 반대측에 맹장지에 꽂혀 무참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이건 통째로 한 세트 새로 사야겠네라고 생각하며, 시즈코는 수통의 물을 들이키고 냉수를 끼얹는 듯한 말을 했다.


"일단 전원의 급료에서 맹장지 수리비를 빼겠어요"


"어!? 저, 저건 맹장지가 멋대로 날아간 것 뿐이거든"


"농담이에요. 다들 의문은 있겠지만, 일단 얌전히 앉아요"


닫을 수 없게 된 입구를 일별하면서 전원이 소정의 위치에 앚았다. 아야에게 부탁해서 예비 맹장지를 세워걸어 급한 불을 껐을 때 아시미츠도 돌아왔다.

그가 앉은 것을 확인한 후, 시즈코는 이야기를 재개했다.


"뭐 본 대로에요. 자세한 설명은 하지 않아도, 내가 이것저것 준비했던 것은 알았겠죠?"


"어, 뭐. 저런 거, 어떻게 만든 건지 전혀 모르겠지만, 시즈코가 뭔가 준비하고 있었던 것만은 알겠어"


"그거면 됐어요. 나는 어디까지나 상황을 준비한 것 뿐이에요. 마지막에 붙잡는 건 당신들의 의욕에 달렸어요"


다 말하지 않아도 전원이 이해하고 있었다. 대외적으로는 원군이지만, 시즈코는 다른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원정에서 패한 적이 없는 타케다 군. 그 최초이자 최후의 패배를 우리들이 안겨주는 거에요. 어때요? 누구도 하지 못했던 대박(大金星)이에요. 압도적 불리함을 뒤집은 승리, 이거야말로 원군의 진면목(真骨頂) 아니겠어요?"


오다를 쳐부수려고 전군을 총동원하여 원정하고 있는 타케다 군을, 반대로 오다 군——정확히는 오다-도쿠가와 연합군——이 쳐부순다.

병력수도 숙련도도 압도적으로 열세인 상황에서, 이 작전이 성공하면 오다 가문의 이름은 천하에 울려퍼진다.


"카츠조 군, 슬슬 자신의 힘을 시험하고 싶겠지. 그러니까 너는 야마가타 사부로 효에노조를 처치해 줘"


"야마가타……인가!"


타케다 군의 선봉장(先駆け武将)으로, 타케다 군 최강의 적비대(赤備え)를 이끄는 야마가타 마사카게에게 시즈코는 나가요시를 부딪힐 생각이었다.


"무서워?"


"당연하지! 하지만, 그 이상으로 야마가타의 목을 딸 의욕이 넘치기 시작했어!"


나가요시의 군은 젊은이들이 많아 경험이 부족하다. 하지만, 젊은이들이 많기에 무서운 걸 모르는 사람들이 많아서, 적비대에 대한 공포심이 적다. 즉, 적비대를 봐도 기세를 유지한 채 싸울 수 있다.


"사이조 씨는 바바(馬場)를 처치해 줬으면 해요. 현재 상황을 고려할 때, 바바에게 가장 잘 대항할 수 있는 것은 사이조 씨의 군이라고 생각해요. 케이지 씨, 요키치(与吉) 군, 아시미츠 아저씨는 돌격 신호만 내리겠지만, 그 이후에는 각자의 판단으로 자유롭게 움직여줘요"


"하지만, 그래서는 시즈코 님의 주변이……"


"사이조가 말하고 싶은 것을 시즈코는 이해했다. 이해한 상황에서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번에는 전원이 목숨을 거는 거에요. 나 혼자 안전한 장소에 있어도 사기가 떨어질 뿐이에요. 처음에 지시를 내리면 총지휘관은 불필요. 게다가 상대는 타케다, 내가 선두에 서지 않으면 아무도 따라오지 않아요. 대장이 선두에 서게 되면 병사들은 분발하여 승리를 믿을 수 있게 되니까요"


"시즈코 님…… 옛! 소생은 목숨을 걸고 바바를 처치하겠습니다!"


"잘 부탁해요. 그리고 겐로 할아버지,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을 모아줘요"


"옛! 모아서 어찌할까요?"


겐로의 질문에 시즈코는 아시미츠가 사용한 신식총을 손에 들더니 그걸 겐로에게 건네주었다.


"이번의 타케다 전, 기세를 바꾸는 것은 텟포슈(鉄砲衆)가 될 거에요. 겐로 할아버지의 역할은 텟포슈를 이끄는 거에요. 니스케 씨나 시키치 씨도 마찬가지지만, 말을 타면서 총을 사용하니까 느낌은 좀 다르려나요"


"예? 어, 옛!?"


세 사람이 나란히 얼빠진 목소리를 냈다. 총(鉄砲)을 다루는 집단이라고 하면 사이카슈(雑賀衆)나 네고로슈(根来衆)처럼, 그것만으로도 용병집단으로 성립할 정도의 무장집단이 된다.

그걸 이끈다고 하면 대단한 출세라고 할 수 있다. 그것도 시즈코 군 내부에서만이 아니다. 외부에도 어느 정도 이름을 날릴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주는 것은 기회 뿐이에요. 이름을 드높일지, 아니면 웃음거리가 될지, 그건 당신들에게 달렸어요"


"으……"


"나는 당신들을 믿고 있어요. 이 총을 다루는 선구자가 될 것을. 역사에 이름을 남길 인물이 될 수 있을 것을"


절묘하다, 고 케이지는 생각했다. 겐로들은 내력이 파란만장하기에, 시즈코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다는 마음이 다른 사람보다 강하다. 바로 그렇기에 시즈코 군 안에서 순조롭게 출세하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시즈코 군 내부에서의 평가에 그치고, 다른 오다 군에서는 어차피 잡병이라는 취급이었다. 이름있는 부모로부터 지위를 물려받은 패거리와 전혀 무명인 사람들은 대접에 차이가 있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이번의 싸움에서 텟포슈의 존재감을 드러내면, 그 명성은 만민(万民)이 알게 된다.

전과에 따라서는 아군이 그 이름을 듣고 안도하고, 적은 그 이름을 듣고 공포에 떠는 존재조차 될 수 있다.

지금까지 불우한 대우를 감수하고 있던 그들에게는 시즈코의 신뢰에 부응하지 않는다는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게까지 저를…… 알겠습니다, 주군. 저는 주군의 믿음에 부응하겠습니다!"


"저, 저희들도입니다. 주군, 저희들 일동, 분투하여 믿음에 부응하겠습니다!"


세 사람은 감격에 겨워 시즈코를 향해 깊이 절했다. 조금 오버라는 느낌은 들었지만, 무명은 커녕 마이너스에서 시작해서 여기까지 올라온 그들이다.

이번에는 일생일대의 대승부, 전에 없던 무공을 올릴 찬스이며, 이걸 놓치면 이제 희망은 없다. 그만큼 큰 기회라는 것을 세 사람은 이해했다.


"사람을 다 모으면 아시미츠 아저씨에게 신식총을 다루는 방법을 배우세요"


"옛!"


"그밖에도 의문이 있으면 말해요. 가능한 한 대답해줄게요"


전원을 둘러보며 물었으나, 아무도 의문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전원의 눈에는 투지가 깃들어, 스스로의 역할을 파악하고 있는 사람 특유의 패기가 넘치고 있었다. 충분한 반응을 느낀 시즈코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모두의 기합은 충분하네요. 그럼 오늘은 이걸로 해산, 각자 훈련과 휴식을 충분히 취하면서 그 때가 오기를 기다려줘요"


"오오!"


시즈코의 마무리 말에 전원 기백이 담긴 목소리로 화답했다.




회의가 끝남과 동시에, 나가요시는 가장 먼저 방을 나갔다. 이어서 겐로, 니스케, 시키치가 뒤를 이었다.

하지만 케이지만은 자리를 뜨지 않고 앉은 채로 시즈코를 보고 있었다. 뭔가 할 말이 있는 걸까, 라고 느낀 시즈코는, 상황을 살피고 있던 아시미츠에게 자리를 비켜달라고 부탁했다.

조금 고민했으나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서, 스쳐지나갈 때 케이지와 뭔가 이야기를 한 후 아시미츠는 방을 나갔다. 남은 것은 시즈코와 케이지 뿐이었으나, 케이지는 바로 입을 열려고 하지는 않았다.


"꽤나 전부터 궁금했는데, 시즛치는 어쨰서 겐로 할아범을 높게 평가하는 거야?"


이것저것 정리하고 있자니, 문득 케이지가 입을 열었다. 손을 멈추고 다시 케이지를 바라본 후, 시즈코는 조용히 웃음을 떠올렸다.


"주인(主人)에게 간언(諌言)할 수 있는 사람은 전장에서 가장 먼저 창을 내지르는 사람보다 소중한 법"


"……"


시즈코의 말은 도쿠가와 이에야스(徳川家康)의 명언인 "주인의 악행(悪事)을 보고 간언하는 가노(家老)는, 전장(戦場)에서 가장 앞장서 창을 찌르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마음을 먹은 것(※역주: 의역 내용이 정확한지 모르겠음)"이 베이스가 되었다.

주인의 지위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힘이 강하면 강할수록, 본인이나 주위에서는 힘을 과신하기 쉬워진다. 그 상태에서는 주인의 악행이나 잘못을 지적하고 충고하는 것은 어렵다.

또, 주인 쪽도 창피를 당했다는 생각이 앞서기에, 아무리 올바른 의견이라도 간언을 싫어하게 된다.


"스스로 말하기도 뭣하지만, 내 지위가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잘못을 지적해주는 사람은 줄어들거야. 그리고 충고하는 사람이 없으면 내가 하는 말을 듣기만 하면 틀림없다, 라는 인식이 만연해져. 그런 걸 막기 위해서도, 겐로 할아버지는 귀중한 사람이야. 중용하지 않는 쪽이 이상해"


"과연. 그런 이유가 있었나"


"확실히 겐로 할아버지의 무공은 미묘해. 이번에 텟포슈의 두령으로 발탁한 것은 적지않은 반발이 있을거야. 하지만, 타케다 전이 끝나면 텟포슈의 존재는 유력자들의 눈에 들게 될 거야. 그렇게 되었을 때 강자에게 굽실거리는 것밖에 못하는 사람으로는 곤란해. 설령 윗사람에 대해서라도 잘못이 있으면 지적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면 안 돼"


"스스로의 안위를 걱정하지 않고, 주인(使う側, ※역주: 사용자나 고용주라고 하자니 조금 이상하여 의역함)의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어서인가"


"맞아. 물론 나도 모든 의견을 받아들이는 건 아니거든? 하지만, 간언을 받는다는 건, 적지않게 문제 의식을 주고 있다는 거야. 그러니까 발을 멈추고 한 발 물러서서,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는거야. 그렇게 하면 대실패를 하기 전에 방향수정을 할 수 있잖아?"


시즈코의 말에 케이지는 미소가 깊어졌다. 누구든 잔소리를 하는 사람은 귀찮은 법이다.

자신과 동조하여 듣기 좋은 소리를 하는 패거리를 중용하게 되어, 이윽고 간언은 귀에 닿지 않게 된다.


(과연. 그래서 겐로 할아범이 가장 높이 평가받는 거군. 다른 사람들은 자신의 입신출세를 위해 생각하는 바가 있어도 말로 꺼내지 않지. 하지만 겐로 할아범은 보신(保身)보다도 시즛치를 우선시하여 간언하지. 그 차이를 시즛치는 이해하고 있는건가)


단순히 겐로의 처지를 알고 동정하는 건가 생각했으나, 그렇지 않았던 점에 케이지는 안도했다.

시즈코는 철저히 비정해지지 못하는 어설픈 면이 있기에, 그게 나쁜 결과를 낳지 않을까 하고 항상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번에 겐로의 대발탁은 과거의 헌신에 대한 온정인가 하고 생각햇으나, 내심을 듣고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이해했다.

조금 안심했으나, 금후에도 그렇게 되지 않으리라고 단언할 수는 없었기에, 이제부터도 시즈코의 행동은 항상 지켜보자고 그는 생각했다.


"맙소사, 그냥 어설픈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이것저것 생각하고 있었네"


"어째서 나는, 아무 생각도 없다고 생각되는 걸까"


"어쩔 수 없어. 시즛치의 행동은, 결과가 보여야 처음으로 이해되는 경우가 많으니까. 잘 모르면 기세만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거든"


"에엑~, 꽤 알기쉽게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케이지의 말에 시즈코는 불평했다. 하지만 시즈코 기준의 시점에서 보면 알기 쉬운 것이지, 부감(俯瞰)적인(※역주: 위에서 내려다본다는 뜻, 여기서는 (시즈코가) 역사나 미래의 각종 지식을 가진 것을 바탕으로 한) 시점을 갖지 못하는 보통 사람들에게는 알기 어렵기 짝이 없다.


"그건 시즛치 뿐이겠지. 자, 의문도 해소되었으니, 마을에서 놀다 올까"


원하는 때 원하는 일을 한다. 타케다와의 싸움을 앞두고 주위가 필사적으로 훈련을 하고 있던 어쨌던, 놀고 싶으니까 논다. 그것이 마에다 케이지(前田慶次)라는 존재이다.


"늦어지면 저녁밥 못 먹을거야"


"그거 큰일이네. 뭐, 지나치지 않게 놀고 올게"


케이지는 시즈코에게 손을 살랑살랑 흔들면서 방을 나갔다. 쓴웃음을 지은 시즈코였으나, 케이지를 따라 손을 흔들어 그를 배웅했다.

케이지의 발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자, 방에 남은 것은 시즈코 뿐이었다.

정리를 마친 후 시즈코도 방을 나와서 그 길로 자기 방으로 갔다. 방에 돌아오자 미리 내용을 적어둔 서신을 노부나가에게 보내도록 수배했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인가)


서상 작전이 실시된 이상, 이제 시즈코는 멈춰서는 것이 용납되지 않는다. 마지막까지 가는 것 외에 길은 없다.

타케다가 멸망할지, 아니면 시즈코 군이 전멸할지, 찾아올 미래는 둘 중 하나이다. 물론, 호락호락 져줄 생각은 조금도 없다. 타케다가 출진한 이상, 치고 나갈 각오였다.


(생각해봤자 소용없지만, 지금부터 여러 사람에게 거짓말을 해야 해. 그걸 생각하니 좀 우울하네)


책략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때로는 아군조차 기만할 필요가 있다.

대체적으로 기만하는 상대의 지위가 높으면 높을수록 얻을 수 있는 효과도 그에 비례해 커진다. 하지만, 거짓말이 서투른 자신이 타인을 기만할 수 있을 것인가, 시즈코의 고난은 이어진다.

표정에 드러나지 않는지, 말의 앞뒤가 맞는지, 의식해서 사람을 속여본 적이 적은 시즈코에게는 허들이 높은 난제였다.


"……뭐, 어떻게 되겠지"


생각해도 소용없다고 결론지은 시즈코는 생각하는 것을 포기했다.




타케다 군은 파죽지세로 침공하고 있었다. 사흘에 하나의 성을 함락시키며, 이에야스의 거성(居城)을 목표로 맹렬히 진격하고 있었다.

타케다 군 본대와는 별대로, 야마가타가 미카와로부터도 침공하고 있었기에 미카와의 군을 움직일 수 없어, 이에야스는 토오토우미(遠江)의 병력 8000밖에 쓸 수 없는 상황이었다.

손을 놓고 있는 동안에도 같은 편의 영주(国人)들이 타케다 측으로 변절하는 것을 두려워한 이에야스는, 10월 14일에 출진하여 미카노가와(三箇野川)나 히토코토자카(一言坂)에서 타케다 군과 싸웠으나, 병력이 열세였기에 자연스레 패퇴했다.


하지만 타다카츠(忠勝) 등 충신들의 활약도 있어, 주요 무장은 싸움터에서 탈출하여 하마마츠 성으로 철수할 수 있었다.

이 때의 타다카츠의 활약상에 신겐이나 타케다 가문 가신들은 감탄하여, 혼다 타다카츠(本多忠勝)는 도쿠가와에게는 과분한 자라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그 후에도 타케다 군의 기세는 멈추지 않아, 11월에 들어서도 전황은 전혀 호전되지 않았다.


"손쓸 방법은 없는 건가"


이에야스는 절망적인 말을 내뱉았다. 그 물음에 대답할 수 있는 자는 한 명도 없었다. 히토코토자카의 일전에서 피아의 전력차를 어쩔 수 없이 알게 되었던 것이다.

지금의 도쿠가와에 타케다와 싸워 이길 수 있는 희망 따윈 없었다.


"오다에 원군을 요청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무리다. 오다도 사방을 적에게 포위당했다. 우리들에게 병력을 보낼 여유는 없다"


가신 중 한 명이 오다에 원군을 요청하는 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아자이에 아사쿠라, 혼간지 등 오다 포위망에 관여한 자들로부터 집요한 공세를 받고 있는 노부나가에게, 이에야스에게 병력을 보낼 여력은 없다.

그걸 알고있기 때문에 오다에 원군을 요청하는 안은 실현 불가능하다고 생각되었다.


"주군, 이대로는 도쿠가와는 끝장입니다. 이제는 타케다에게 투항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야기도 이제와서 무리다. 타케다는 미카와와 토오토우미를 유린할 때까지 손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항복하자는 안도 나왔으나, 이제와서 항복이 받아들여지진 않을거라고 그들은 생각하고 있었다.

설령 항복이 이루어져도, 땅을 뺏기고 오다에 대한 첨병으로서 이용당하고 소모될 것은 뻔히 보였다. 어느 쪽으로 가도 지옥(行くも地獄戻るも地獄)이라는 말이 그야말로 딱 맞았다.


"주군, 한 가지 신경쓰이는 점이 있습니다"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한조(半蔵)가 이에야스에게 진언했다. 어쨌든 분위기를 바꾸고 싶었던 이에야스는 한조의 발언을 허가했다.


"혼다 님이 대단히 집착(執心)하고 있는 시즈코 님이, 전군을 오와리에 배치한 채 움직이지 않고 있습니다"


"누, 누누누누누누가 지지집착한다고!"


눈에 띄게 동요하는 타다카츠였으나 한조는 상대도 하지 않았다. 어떤 의미에서는 우스운 광경에, 가신들은 저도 모르게 웃음을 떠올렸다. 무거운 분위기가 약간은 가벼워졌다고 이에야스는 생각했다.


"그건 기묘한 이야기군. 지금 오다 님에게 병력을 놀려둘 여유는 없지. 그런데 그 상황에서도 군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건, 뭔가를 노리고 있는 것인가……?"


"이와무라 성(岩村城)으로 갈 병력이 아닐까요?"


동(東) 미노(美濃)에서 권위를 휘둘렀던 이와무라 성의 성주 토오야마 카게토우(遠山景任)가 5월에 병으로 죽었다. 노부나가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동 미노에 가신을 파견하여 이와무라 성을 점령했다.

카게토우의 처이자 노부나가의 숙모(叔母)인 오츠야노카타(おつやの方)는, 노부나가의 5남인 오다 카츠나가(織田勝長)를 양사자(養嗣子, ※역주: 구민법에서, 호주 승계인의 신분을 가진 양자)로 삼았다.

그리고 자신은 당주의 자리를 이어 오다 카츠나가의 후견인(後見人)이 되었다.


그러나, 타케다의 서상 작전이 개시되자, 오츠야노카타는 타케다 군의 움직임에 호응하여, 이와무라 성에 있던 노부나가의 군을 쫓아내고 타케다로 변절했다.

이 갑작스런 배신에 노부나가는 격노했다. 노부나가 뿐만이 아니라, 오츠야노카타의 배신에는 동 미노에 있던 토오야마 씨족(諸氏)들도 반발했다.

같은 해 12월에는 카미무라(上村) 전투가 벌어졌다고 하는데, 카미무라 전투는 겐키(元亀) 원년(元年)과 겐키 3년이라는 두 가지 설이 있으며 아직까지 명확하지 않다.


"일족의 배신이니, 철저하게 짓밟겠지요. 동 미노의 지배도 확립할 수 있으니까요"


"확실한 증거는 있느냐?"


"예. 시즈코 군은 싸움 준비를 진행하고 있다는 보고가 올라왔습니다. 병사의 단련도 하고 있으니, 틀림없을거라 생각됩니다"


얼핏 앞뒤가 맞는 이야기였으나, 이에야스는 쉽게 믿을 수 없었다. 한조의 보고에 따르면 시즈코 군은 시즈코와 노부나가가 공들여 키워낸 군이다.

눈앞에 타케다라는 위협이 닥쳐오는 가운데, 일족의 뒷처리에 시즈코 군을 투입할 거라고는 도저히 생각되지 않았다.


"알았다. 일단 타케다를 해결한다. 일단은 그걸 생각하자"


하지만 말과는 반대로, 타케다를 해결할 계책은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11월 하순쯤 되니 오다 가문 내에는 긴박한 분위기가 만연해 있었다. 들려오는 것은 타케다 군의 쾌진격에 대한 보고 뿐으로, 그 이외에 희망적인 화제가 전무했기 때문이다.

이대로는 타케다라는 괴물에게 모든 것이 삼켜진다. 성질이 급한 사람은 절망에 가까운 느낌을 받고 있었다. 이 무렵이 되어서도 노부나가는 명확하게 타케다와 싸울 의사를 보이지 않았다.

얼핏 노부나가의 행동은 소심해보인다. 하지만 상대가 타케다라면, 아무리 노부나가라도 신중해지지 않을 수 없다고 다들 이해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시즈코는 서류와 격투를 벌이고 있었다. 차례차례 운반되어오는 물자의 체크에 눈코뜰새없이 바빴다. 하지만 하나같이 중요한 물자였기에, 하나라도 소홀히 할 수 없었다.


(총의 부품이 아직 부족해. 이대로 계산하면 500개 정도 부족할 거야)


고민 끝에, 시즈코는 할당량을 두 배로 해서 달성한 사람에게는 평소보다 많은 포상금을 주기로 했다.

일부 숙련공이라면 기대에 부응해 줄 것이다. 이걸로 아슬아슬하게 부품이 필요수에 달할 거라 예상되었다.

소성(小姓)에게 돈이 보관되어 있는 창고의 열쇠와 증산(増産) 지시서를 함께 던져주고는 시즈코는 다음 서류에 달라붙었다.

갑주 아래에 입는 장비에 관해서, 생산 자체는 늦어지지 않았으나 여유가 전혀 없는 상태였다.

고민하고 고민한 끝에, 역시 예비는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수 주일 간의 증산을 지시했다. 이쪽도 할당량의 배를 달성한 사람에게는 많은 포상금을 약속했다.


"보통이 아닌 블랙 노동이 되겠지만, 이 몇 주일 동안은 참아달라고 할 수밖에 없네"


나쁜 소문은 빨리 퍼진다. 타케다가 총력을 기울여 도쿠가와 영토를 공격하고 있다는 소문은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그리고 도쿠가와 다음은 오다가 될거라고 백성들이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렇기에 타케다와의 결전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은 오다 영토 내에서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이제와서 감춰봐야 의미가 없기에, 시즈코는 거꾸로 그것을 이용해서 전시동원(戦時動員)이나 마찬가지의 무리를 떠넘기고 있었다.

무리를 강요하고 있는 것은 이해하고 있으나, 타케다에게 유린당하면 죽을 수밖에 없다. 그야말로 죽을 각오로 일하게 할 수 밖에 없었다.


"아~, 이걸로 때에 맞출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 저쪽은 더 힘들겠지만"


모든 서류의 결재를 마친 시즈코는 책상 위에 엎어졌다. 병사들에 대한 훈련은 모리 요시나리(森可成)가 담당하고 있었기에, 그쪽은 다른 의미에서 지옥을 맛보고 있었다.

평소에 가혹한 훈련을 받고 있는 시즈코 직할 부대에서조차, 요시나리의 훈련은 훈련이 아니라 죽이려고 드는 거다, 라고 투덜댈 정도였다.

나가요시의 경우에는 평소에는 밤에 만큼은 기운이 넘쳤는데, 요시나리의 훈련에 참가한 이래로는 저녁식사 전에 돌아와서 목욕과 식사를 마치면 그대로 이불 위로 쓰러졌다.


"겐로 할아버지는 고생할 것 같네"


겐로는 재능이 있는 병사 1000명을 엄선하여 텟포슈로 조직했다.

하지만 창설 당시부터의 인원으로 결속력이 강한 궁기병대(弓騎兵隊)와는 달리, 여러 부대에서 뽑아온 통일성 없는 부대였기에, 처음에는 삐걱대면서 제대로 부대 운용을 할 수 없었다.

요즘 들어 간신히 결속을 보이기 시작했으나, 지금도 문제가 끊이지 않았다. 그것도 이유가 되어 훈련에 대폭 지연이 발생했다. 예정으로는 다 끝났어야 할 훈련이, 아직 반 이상이나 남아있었다.

그 때문에 골머리를 썩히던 시즈코였으나, 문득 묘안이 떠올랐다. 간자 대책도 될 거라 생각한 시즈코는, 훈련 예정을 크게 변경했다.

진보가 늦은 것이 거꾸로 유리하게 작용하여, 훈련 내용을 바꾼 영향은 거의 없었다.


"이제는 때가 되기를 기다릴 뿐, 인가"


조금 계획을 수정했으나, 이대로 가면 모양새가 갖춰지는 것은 12월 10일 전후가 될 예정이었다. 그 무렵이 되면, 타케다는 이미 미카타가하라(三方ヶ原)로 향하는 것 이외의 선택지는 없다.

이후에는 승리의 여신이 이쪽에 미소를 지어준다면, 오다 가문이 승리를 주울 수 있다.

하지만 싸움에는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난다. 그걸 어떻게 받아넘겨서 자신들에게 유리하도록 궤도 수정을 할지, 마음에 걸리는 점은 그것 뿐이었다.


(아, 그리고 보니 벌써 11월도 끝이네. 슬슬 영주님에게서 도쿠가와에 원군을 보낸다는 이야기가 올 것 같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문득 다급한 발소리가 시즈코의 귀에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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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

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겐키(元亀) 3년 결전(決戦), 미카타가하라(三方ヶ原) 전투


093 1572년 9월 하순



오다 가문과 맺은 약정(約定)도 있어, 츠루히메(鶴姫)는 아기의 목이 꼿꼿해지는 4개월 무렵까지 입원생활을 해야 했다.

미츠오도 가끔은 혼자서 생활하는 것도 속편하니 좋다고 생각했으나, 곧 잘못 생각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은 지금까지 어떻게 혼자서 살았던 것일까, 라고. 가족을 얻고 함께 생활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 되어, 예전의 고독한 생활을 전혀 떠올리지 못했다.


"네놈, 홀몸(独身)을 놀리는 거냐"


"아저씨, 자랑질(惚気)이라면 오다 나으리 상대로 해줘"


"타진(たじん鍋, ※역주: Tajine(طاجين))이란 그릇 모양도 그렇고 물도 넣지 않는 해괴(面妖)한 요리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맛있군요. 야채가 이렇게 달아지다니"


아시미츠(足満), 고로(五郎), 그리고 최근 알게 된 시로(四郎)에게 상담했다. 하지만, 세 사람으로부터의 대답은 도저히 미츠오를 만족시키는 것이 아니었다.


"심한 말이군요. 시로 씨는 아예 이야기조차 듣지 않으시잖습니까"


"이야기는 들었습니다만, 소생이 드릴 조언은 없습니다"


"그러네. 그보다 아저씨는 자랑질이 취미인 건가. 듣고 있는 이쪽이 다 부끄럽네"


"자각 증상이 없기 때문이다. 이쪽은 여자하곤 인연이 없는 생활인데, 용서없이 자랑질하러 오는군"


아주 냉담(けんもほろろ)했다. 그러면서 미츠오가 준비한 요리는 사양않고 먹는 세 사람이었다.


"하지만, 여러분 의외로 사이가 좋아졌군요"


"네놈이 우의(友誼)을 맺었으니, 나쁜 사람은 아니겠지. 뭐 처음의 고로만큼 멍청한 짓은 하지 않았지만"


"잠깐만, 아시미츠 씨. 나를 처음엔 어떻게 생각했는데?"


"그대로도 먹을 수 있는 식재료를 먹을 수 있을지 아닐지 아슬아슬한 존재로 바꾸는 가짜(似非) 요리사"


"너무해! 요리에 실패는 항상 있는 법이라고!"


"시끄럽다. 생선 초조림(酢煮魚)을 가르쳤을 때, 조금만 넣으면 된다고 했는데 식초만 가지고 조린 건 용서할 수 없어"


"윽, 그건…… 그"


"뭐ー 그건 우리가 가르치는 방법에도 문제가 있었으니까요, 네"


맛국물(出汁)에 식초를 작은술로 1~2술 정도 넣고 생선을 조리면 풍미가 확 좋아진다.

초절임(酢締め) 생선과 마찬가지로 비린내가 옅어지고 단백질의 응고작용도 있어 조릴 때 형태가 망가지는 것을 막아주는 일석이조의 조리법이다.

하지만 고로는 요리 이름밖에 기억하지 못해서, 차가운 식초에 생선을 집어넣고 조린다는 폭거를 감행했다.

비린내가 나는데다 목이 멜 정도로 신맛도 강하여, 입으로 가져가도 삼키는 것은 극히 어렵다는 독극물(劇物)이 탄생했다. 거부하는 고로에게 억지로 먹였지만.


"에잇, 술이다! 술을 가져와라ー! 마시지 않고는 못해먹겠다"


"에에엑…… 뭐 괜찮습니다만"


아시미츠의 될 대로 되라는 식의 말에 미츠오는 곤혹스러운 표정을 떠올렸다.


"오, 아저씨. 뭔가 만들테니 주방을 빌릴게"


한숨을 쉬며 미츠오가 일어서자, 고로가 술안주라도 떠올렸는지 주방을 빌려달라고 부탁했다. 거절할 이유가 없는 미츠오는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이 나가자, 아시미츠와 시로만이 남았다. 알고 지낸 기간이 짧은 시로는 대화의 주제를 열심히 생각했고, 아시미츠는 그다지 수다스럽지는 않았기에 고요함이 자리를 지배했다.


"……아시미츠 님은 특이하시군요"


침묵을 깬 것은 시로였다. 그는 묵묵히 식사를 하는 아시미츠에게 의문으로 생각하고 있던 점을 말했다.


"그리 보이느냐"


"식사하실 때조차 당신은 토시(篭手)를 벗지 않으십니다"


"과연 랍파(乱波, 역주: 닌자를 가리키는 말 중 하나로, 여기서는 타케다(武田)의 닌자라는 의미)라는 건가. 보통은 눈치채지 못하는 것을 눈치채는군"


순간 시로의 표정이 굳었다. 하지만 아시미츠는 그다지 신경쓰지 않고 식사를 하며 말을 이었다.


"이상할 건 없지. 타케다로부터 도망쳐온 랍파의 이야기는 내 귀에도 들어왔다. 어째서 도망쳤는지는 모르나, 흥미도 없다"


"그렇, 습니까. 처음부터 정체를 알고 계셨군요. 하지만, 어째서 당신께서는 저를 못 본 척 하시는 겁니까"


"내게는 벨 이유가 없다. 네놈이 오다를 조사하던 말던, 나와는 관계없지. 타케다 밑이 싫어서 도망처왔다고 해도 말이다. 내게 베이고 싶으면 친구에게 손을 대 봐라. 그럴 기색을 보인 순간에는 그 목을 날려주지"


"그건 불가능한 이야기군요. 미츠오 님은 제게 잘 대해주십니다. 은혜를 원수로 갚은 파렴치한이 될 생각은 없습니다"


"역시, 카이(甲斐)에서는 세금이 무겁더냐"


아시미츠는 카이에 대해 현대에서 얻은 정보가 있다. 융성(隆盛)함을 자랑하는 강국으로서 이름을 떨친 카이도, 매년같이 전쟁을 벌인 덕분에, 전비(戦費)를 메꾸기 위해 무거운 세금이 부과되었던 것이다.

특히 유명한 것이 신겐(信玄)의 아버지인 노부토라(信虎)와 신겐의 서자(庶子)인 카츠요리(勝頼)다. 노부토라의 낭비는 그렇다치고, 카츠요리는 금광(金山)이 고갈되었기 때문에, 세금을 다른 곳에 쓸 수 밖에 없어, 결과적으로 무거운 세금이 된 것이지만.

또, 타케다 가문에서는 세금의 징수를 가신들이 하고, 가신들에게는 그럴 재량이 부여되어 있었기에 신겐이라도 참견할 수 없는 상태였다.

그 때문에 영지마다 세금이 제각각이었으며, 장소에 따라서는 곤궁해질 정도의 무거운 세금이 부과되었다.

시로가 예전에 어디에 있었는지는 흥미가 없는 아시미츠였으나, 출분(出奔, ※역주: 도망쳐서 행방을 감춤)할 정도라는 상황을 볼 때 타케다에게 지배되는 땅에서 살고 있었을 거라고 어림짐작했던 것이다.


이것은 타케다에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라, 이에야스(家康)나 노부나가도 마찬가지이다. 대체적으로 국주(国主)의 직할령(お膝元)에서는 측량(検地)도 엄격하지 않고 세율도 낮게 억제되어 있었다.

하지만 새롭게 지배한 땅에는 엄격한 측량이 이루어졌고, 소비된 전비를 보충하기 위해 무거운 세금이 부과되는 것이 예상사였다.

지배 체재를 쇄신(刷新)하는 이상 비용도 들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면도 있지만, 신참자(新参者)에게는 대체적으로 무거운 세금이 부과되고, 노역이나 병역 등 그 외의 봉사까지 요구되는 가혹한 징세를 받는 경우가 많다.

도쿠가와(徳川)에서 타케다로 변절하려 한 가신들의 영지에서는, 세금이 지금 이상으로 무거워질 것을 이해한 영민들이 반대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세금을 바치면 굶어죽을 수밖에 없어, 그렇다면 아예 한 가닥 희망에 걸어보았다고 하면 이해해 주시겠습니까?"


"어느 세상이던 신참자는 엄격한 취급을 받지. 하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세금이 너무 무겁다. 역시 금의 생산량이 떨어졌기 때문인가"


신겐이라고 하면 금광 개발이 유명하지만, 만년에는 생산되는 금이 고갈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것은 정확하지 않다. 신겐의 금광인 쿠로카와 금광(黒川金山)이나 카이오쿠 금광(湯之奥金山)은 에도(江戸) 시대에 들어선 후에도 금을 계속 산출했다.

그렇기에 금광에서 금이 고갈된 게 아니라, 실제로는 타케다 가문의 재정난이나 기술적인 문제에 의해 채굴이 틀어졌던 것이다.


금광에서 금을 파내려면 인건비가 엄청나게 들어간다. 그리고 금광에서 파낸 금광석은 그대로는 가치가 없다. 제련(精錬)하여 금으로서의 형태를 갖출 필요가 있다. 이렇게 해야 겨우 금으로 취급받는 것이다.

카이의 금광은 광맥이 노출되어있는 경우가 많았기에, 지표면을 조금 파는 것만으로 금을 산출할 수 있었다.

하지만 땅 속 깊이 파내려가면 상황이 달라진다. 금광에는 낙반(落盤), 붕괴(崩落), 함몰(陥没)이 늘 따라붙는다. 이 때문에 갱도를 보강하면서 파내려갈 필요가 생겼다.

갱도가 뻗어나갈 때마다 채산성은 악화되고, 게다가 타케다 가문은 채굴하는 이상의 페이스로 금을 필요로 했기에, 서서히 카네호리슈(金堀衆, ※역주: 타케다 가문에서 금 채굴을 전담하던 집단)에게 줄 임금이 부족해졌다.

그로 인해 카네호리슈가 명령에 따르지 않게 되어, 금의 산출량이 떨어진다는 악순환에 빠져들었다. 즉, 금광이 고갈된 것이 아니라, 재정난과 기술부족이 금 고갈의 원인이다.


에도 시대에 들어서 카이의 금광이 부활한 것은, 갱도를 파는 법이나 금은 개주(金銀吹替え) 등, 광산에서의 채광과 제련 기술이 비약적으로 진보했기 때문이다.

가장 진보한 것은 '수평 갱도(横相(요코아이)라고도 부름)'라는 수법이다.

종래의 채굴법은 아래쪽으로 비스듬히 하들어간다. 이 때문에 지하수가 용출되면 배수(排水)를 할 수 없어, 우량 광맥이라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수평 갱도는 사전에 시험적으로 파서, 광맥이 있는 부분을 찾아 수평적으로 파들어간다. 이에 의해, 갱도를 굴착했을 때 지하수가 나와도 배수가 용이해졌다.

반면, 광맥이 뻗어 있는 방향을 시험적으로 파서 조사할 수 없을 경우 이 채굴법은 쓸 수 없다. 고도의 측량기술이 있어야 가능한 채굴법이라고 할 수 있다.


"다들, 세금을 내지 못하고 차례차례 굶어죽어갔습니다. 일이 이렇게 되면 어쩔 수 없다, 고 소생은 어머니와 처자식을 데리고 도망쳤습니다. 오다 영토로 도망친 것도, 나는 새도 떨어뜨릴 기세의 이곳이라면 그렇게 간단히 소란을 일으키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조금 어설펐군. 놈들은 오다 영토라도 개의치 않았다. 덕분에 실험체가 늘어났으니 결과적으로 네놈들 랍파들의 행동은 내게 이득이 되었지"


실험체, 라는 말에 시로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공포를 느꼈다. 그것을 꿰뚫어본 아시미츠였으나, 그는 작게 웃음을 떠올릴 뿐, 그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기다리셨습니다. 아니, 뭡니까, 이 미묘한 분위기. 아시미츠 씨, 또 뭔가 무서운 소리를 해서 겁주거나 한 건 아니겠죠"


조금 긴장을 품은 침묵이 내려앉았으나, 악의 없는 미츠오의 말로 단번에 흩어졌다. 시로는 휴 하고 가슴을 쓸어내렸고, 아시미츠는 방금 전의 미소를 거두어들였다.


"무례한 녀석이군. 나도 장소를 구별하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맞아맞아. 문병에 따라간 우리들을 내버려두고 부인과 둘만의 세계를 만드는 아저씨가 아니라고"


미츠오에 이어 고로도 되돌아왔다. 고로는 큰 접시에 몇 가지 안주를 담아왔다. 큰 접시를 테이블 가운데 놓고 그는 자리에 앉았다.


'그건 죄송합니다, 라고 사과했잖습니까"


"첫번째니 용서했지만, 두번째는 없다. 네놈의 문병에는 두번다시 따라가지 않는다"


"호오…… 미츠오 님은 그 정도로 애처가(愛妻家)이신 겁니까"


테이블 한켠에 놓인 술을 잔에 따르면서 시로가 의문점을 말했다.


"잘 물어봤어 시로 씨. 아저씨는 말야, 따라간 우리들을 방치하고 부인을 포옹하질 않나, 사랑을 속삭이질 않나, 나중에는 우리들의 존재를 잊지 않나, 정말 장난이 아니었어. 게다가 따라가달라고 부탁한 건 아저씨라고"


"하지만 부부 사이를 길게 유지하는 비결은 원활한 소통과 피부의 접촉(※역주: 스킨십)이니까요. 나이가 몇 살이 되더라도 피부의 접촉은 마음을 진정시키는 효과가 있습니다"


"이렇다니까. 나는 두번째부터는 안 따라갔지. 고로는 따라간 모양이지만, 결과는 내 예상대로였다"


"아저씨를 뒤에서 걷어차버리고 싶어졌지만, 부인의 눈이 무서워서 얼른 물러났어"


"무슨 말씀이신가요. 츠루히메 씨는 그렇게 무서운 사람이 아닙니다"


(안 되겠군 이 놈)


세 사람이 나란히 한숨을 쉬었다. 시로는 츠루히메와 만난 적은 없지만, 미츠오의 태도로 볼 때 츠루히메가 미츠오에게 상당히 반해있다는 사실을 엿볼 수 있었다.

어처구니없어 말도 안 나온다는 듯, 각자 잔에 술을 따르고 고로 특제의 술안주를 집어먹었다.


"애초에 시로 씨도 부인이 있잖습니까"


"소생, 미츠오 님처럼 적나라한 사정은 밝히지 않슴돠"


"시로 씨, 혀가 꼬이는데"


고로가 지적하자 시로는 좌우로 몸을 흔드는가 싶더니, 갑자기 탁자에 얼굴을 처박았다. 아플 것 같은 소리가 났으나 시로는 고통을 호소하지 않았다. 대신 기분좋게 자는 숨소리가 들려왔다.


"시로 씨 술 못 마시는 거였나! 아저씨, 시로 씨를 눕히자고"


"술은 셀 거라 생각했는데 말이죠. 일단 토해도 괜찮도록 옆으로 눕히죠…… 어, 이거 알코올 도수가 높은 술이었어요! 급성 알코올 중독일지도 몰라요! 어서 응급처치를 해야 합니다!"


"맙소사, 소란스럽구만"


서둘러서 시로에게 달려가는 고로와 미츠오를 바라보며 아시미츠는 술잔을 기울였다.




9월 하순, 이미 타케다 군은 싸움 준비를 마쳐놓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약간의 부하들을 데리고 이에야스의 거성(居城), 하마마츠 성(浜松城)으로 향하는 일행이 있었다.

타케다 사천왕 중 한 명, 바바 노부하루(馬場信春)였다. 후세에 '지용(智勇)이 항상 제장(諸将)들 가운데 가장 뛰어났다'고 평가되며 영주(国人)가 될 수 있는 기량을 가졌다고 전해진 인물이다.

그 최후에 대해서도, 신장공기(信長公記)에 비할 데 없는 활약을 한 인물로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미요시 씨(三好氏) 본가(本家) 최후의 당주 미요시 요시츠구(三好義継)의 최후에 대해서와 같은 평가이다.

70회 이상 전쟁터에 나섰으면서 최후의 나가시노(長篠) 전투에서까지 단 한 번도 긁힌 상처조차 입지 않았기에, 현대에서는 '불사신의 오니미노(鬼美濃)'라고 평가된다.

다른 타케다 가문 사천왕보다 출세는 늦었지만, 후세에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무장이다.


그런 그는 타케다 가문에 대한 반골심(反骨心)이 격화되고 있는 하마마츠 성에 도착했다. 신겐은 보고를 받았을 때 "과연 바바 미노노카미(馬場美濃守)"라고 한 마디 했을 뿐이었다.

한편, 이에야스는 바바의 방문에 깜짝 놀라 벌벌 떨고 있었다.

노부나가로부터의 지시도 있어, 곧바로 대응할 수 없다고 말하자, 바바는 미카타가하라(三方原) 대지(台地)의 북쪽 끝에 있는 네아라이마츠(根洗松)에 있겠다는 말을 남기고 떠나갔다.

미카타가하라 전투에서 타케다 군이 도쿠가와 군을 기다렸다고 전해지는 장소가 네아라이마츠라고 하는데, 그곳을 바바가 지정한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할 수 있겠다.


"주군, 만나실 필요는 없습니다. 이미 타케다와는 전쟁을 한 지 수 년째, 이제와서 나눌 이야기 따위 없습니다"


가신 중 한 명이 진언했으나, 이에야스는 마음 속에서 신음하고 있었다. 가신의 말대로, 타케다와 이제와서 나눌 이야기는 없다. 동맹 파기도 타케다가 일방적으로 했던 것이다.

동맹 파기로부터 소규모 충돌(小競り合い)을 거듭한지 수 년이 지났다. 전황은 일진일퇴의 상태로, 타케다가 다시 동맹을 맺으려 한다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었다.


"아니, 만나지. 여기서 도망치면 웃음거리가 된다. 겁쟁이라고 비난받는 것은 참을 수 없다"


"주군…… 옛!"


생각 끝에 이에야스는 바바를 만나기로 했다. 이 회담 신청에서 도망치면, 미카와(三河)는 겁쟁이들의 무리라고 타케다가 선전할 것은 뻔히 보였다.

이러한 조롱은 오래 간다. 지금까지 같은 편이었던 지방 유력자들이, 타케다로 변절할 가능성도 있다.

으스스하고 무서운 회담이 되겠지만, 이에야스는 거절한 후에 받게 될 디메리트가 너무 크다고 판단했다.


이에야스는 사카이 타다츠구(酒井忠次)를 성에 남겨, 만에 하나의 일이 있을 경우 타케다 가문은 암살이나 꾀하는 겁쟁이, 라는 선전을 하라고 지시했다.

죽을 생각은 전혀 없었으나, 그 후에 미카와가 부당한 취급을 받는 것만큼은 결코 인정하지 않겠다는 이에야스의 의사였다.


타다카츠(忠勝)나 야스마사(康政), 한조(半蔵) 등 측근들을 이끌고 이에야스는 네아라이마츠에 도착했다. 거기서 일행은 놀랄만한 광경을 목격했다.

바바는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병사는 후방으로 물려놓고, 자신은 윗옷은 벗은 채로 칼도 좀 떨어진 곳에 아무렇게나 놓여 있었다.

후방에 있는 병사들도, 맨 앞열은 무기를 땅바닥에 내려놓고 있었다.

누가 봐도 빈손(丸腰)이며, 호위하는 자들조차 없었고, 병사들도 만일의 사태 때 즉시 달려올 수 없는 거리에 있었다. 그게 한층 더 바바에게 으스스한 느낌을 받게 했다.

타케다를 증오하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 빈손인 상태로 회담에 임하고 있으니.


"어이쿠, 의외로 허리가 가벼웠군. 얼마간 더 시간이 필요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오 춥군. 아무래도 늙은 뼈에 맨몸은 힘들구먼"


이에야스가 도착한 것을 안 바바가, 표표(飄々)한 태도로 말했다. 그는 추위에 몸을 떨더니, 벗어놓았던 웃옷을 입었다.


"주군, 놈은 빈손입니다"


한조가 이에야스에게 귓말을 했다. 한조의 말을 들을 것도 없이, 이에야스는 알고 있었다. 이만한 담력과 여유가 어디에 있는 것인가, 이에야스는 도무지 알 수 없었다.

한 가지 알 수 있었던 것은, 바바의 여유는 이에야스를 얕보고 하는 행동은 아니다, 라는 점이었다.


"먼저 말해두겠소. 회담이라고 했으나, 사실은 한 사람 더, 이 자리에 불렀소. 그 인물이 도착할 때까지 잠시 기다리시오"


바바는 그렇게 말하더니 등지고 있던 나무에 기대어섰다. 정중한 말투도 반대로 바바의 으스스한 분위기를 더하고 있었다.

조금 망설인 이에야스였으나, 허리에 차고 있던 칼을 던져버리더니 바바와 마찬가지로 나무를 등지는 형태로 앉았다. 가신들은 당황했으나, 이에야스의 표정을 본 순간 그의 각오를 이해했기에 침묵했다.


"홋홋홋, 여차하면 대담해지는군. 정말로 영주님(屋形様)의 사람보는 눈은 무섭군"


"뭣이?"


"서두르지 마시오. 곧 기다리는 사람이 도착할테니"


바바의 말대로, 말발굽 소리가 이에야스의 귀에 들렸다. 하지만 들려오는 것은 말발굽 소리 하나 뿐으로, 그 이외의 소리가 들리지 않아, 그는 처음에는 파발마라도 온 건가 생각했다.

이윽고 말발굽 소리의 주인이 시야에 들어오자, 이에야스는 자신의 생각이 틀렸음을 깨달았다.


"아, 네놈은!"


맨 먼저 반응한 것은 이에야스가 아니라 타다카츠였다. 왜냐하면 말에 타고 나타난 것은 아시미츠였기 때문이다. 다른 인물은 아시미츠, 정확히는 아시미츠가 타고 있는 말에 놀랐다.


현대에서는 맥이 끊어졌다고 하는 데스트리어는, 큰 체격과 중무장을 견딜 수 있는 명마로 이름높다. 하지만 그것은 순혈종의 맥이 끊어진 것 뿐이며, 중세나 근세에서 교잡도 이루어졌다.

마종의 취급에 대해서도 현대와 같은 DNA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용도에 따라 대략적으로 마종을 정했다. 그 떄문에 전혀 다른 복수의 품종을 하나의 마종으로서 취급한 경우도 있다.

즉, 오늘날까지 이어진 마종에도 데스트리어의 혈통이 남아있을 가능성은 높다.

하지만 당시에도 전쟁 이외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말이라는 평가였으며, 말이 전쟁의 꽃이 아니게 된 시대에 남아있었다고 하기에도 미묘한 부분이긴 하다.


"계속 거절당했지만, 드디어 이야기를 들어주시는 것이군요, 아시미츠 님. 아니…… 쇼군 각하(公方様)"


쇼군(公方)이라는 단어에 이에야스의 표정이 경직되었다. 하지만 아시미츠는 주위의 시선 따윈 전혀 개의치 않고 말에서 내려 적당한 곳에 앉았다.


"이야기는 들어주마"


그 말만 하고 아시미츠는 입을 다물었다. 거만한 태도였으나, 바바는 신경쓰지 않고 쓴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아직까지 상황이 파악되지 않는 이에야스였으나, 질문해봤자 대답이 나올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아, 바바가 어떻게 나오는지 지켜보기로 했다.


"미카와와 전쟁을 시작한 지 수 년, 타케다와 도쿠가와 사이에는 원망(怨嗟)이 소용돌이치고 있겠지. 하지만, 나는 그것을 알면서도 어떤 제안을 하겠소"


"제안이라고……?"


"우리들을 상대로 이렇게까지 길게 싸우고 있는 그대를, 영주님도 우리들도 높이 평가하고 있소. 그렇기에 그대를 전쟁에서 죽게 하는 것은 아깝지"


"이제와서 우리들 상대로 정치적인 공작(調略)이라고?"


"그렇소. 나는 도쿠가와 님이 타케다 가문의 편을 들도록 설득하러 왔소"


"그런 제안, 받아들일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이에야스는 노성을 지르며 바바의 제안을 거절했다. 하지만 바바는 이에야스의 분노를 보고도 태도를 바꾸지 않았다.


"알고 있소. 만약 도쿠가와 님이 타케다 가문의 편을 들면, 오다 가문이 가만있지 않겠지. 그대는 그것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겠지? 하지만, 그 오다 가문이 존재하지 않게 되면, 문제는 없어지지 않소?"


그 대사로 이에야스는 깨달았다. 타케다의 목적은 도쿠가와 영토가 아니라 오다 영토라는 것을. 그리고 그 말이 의미하는 것을.

이해한 이에야스는 경악한 표정을 떠올렸다. 그에 반해 바바는 즐거운 듯한 미소를 떠올렸다.

다만 아시미츠만은 표정이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


"설마!"


"생각하신 대로요. 이번에 우리는 전쟁을 할 것이오. 하지만 우리들의 목적은 도쿠가와 님, 그대의 목이 아니오. 오다 가문…… 오다 단죠노죠(織田弾正忠)를 쓰러뜨리는 것이오"


노부나가를 쓰러뜨린다. 그것이 과장도 뭣도 아니라 가능하다고 생각하게 할 만한 힘이 타케다 가문에는 있었다.

그렇기에, 정말로 쓰러뜨릴 것인가, 라는 생각이 이에야스의 뇌리에 떠올랐다. 하지만 즉시 머리에서 털어내고 이에야스는 바바를 노려보았다.


"우리들이 오다를 치려면, 우선 배후에 위치하는 도쿠가와 님을 어떻게 할 필요가 있지. 하지만, 그대를 전쟁에서 죽게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 영주님의 생각이오"


받아들이기에 따라서는 타케다 가문에게 도쿠가와 가문은 상대가 되지 않는다, 라고도 들리는 말이었다. 설령 전쟁이 벌어져도, 언제든지 이에야스를 쳐부술 자신이 있기에 나오는 말이다.

하지만 이에야스는 바바의 말을 부정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 소규모 충돌을 거듭해온 전쟁이지만, 승리라 할 만한 것은 얼마 안 되었다.

그리고 오다를 친다면, 타케다 가문은 총력전을 걸 가능성이 높다. 지금까지처럼, 타케다 가문이 목적을 이루었다고 병사를 물릴 가능성은 한없이 낮다.

이에야스는 그 상태에서 타케다 가문에게 이길 자신은 없었다.


"쇼군 각하도 전쟁에서 죽이게 되면 우리들은 역적이라는 비난을 받겠지. 그렇기에, 타케다 가문으로 오실 것을 권하러 왔습니다"


"……"


"그리고 우리들은 히에이 산(比叡山)을 품고 있소. 우리들의 대의(大義)는 부동(不動)입니다"


바바의 말을 정리하면, 타케다 가문이 오다 가문을 치려면, 우선 오다 영토의 배후에 위치하는 도쿠가와 영토에 대해 대처해야 한다.

하지만, 타케다 가문은 이에야스를 높이 평가하고 있기에, 전쟁에서 쓰러뜨리기엔 아깝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이에야스를 한 편으로 끌어들인다. 그 경우 걱정되는 오다 가문을 타케다 가문이 쳐부순다고 확약하면, 타케다 가문 아래로 들어오는 데 망설일 것은 없어진다.

아시미츠도 마찬가지다. 만에 하나, 쇼군을 죽이면 이유를 불문하고 타케다 가문의 명예, 그리고 신겐의 패도(覇道)에 상처가 생긴다. 그렇기에 타케다 가문으로 들어오던가, 아니면 전쟁이 벌어지는 도중에 어딘가에 몸을 숨겼으면 한다는 것이다.


"내가 하는 말을 받아들여 주시겠소? 이대로 오다 가문의 편을 들면, 천하의 대역적(悪逆人) 편을 든 영주라는 비난을 후세(末代)에까지 받게 될 것이오"


"네 이놈!"


"분노는 눈을 흐리지. 한번 더 냉정하게 생각해보시오. 오다 가문은 지금까지 그대에게 무언가 해 주었소? 오다 가문은 그대들 미카와가 금후(今後)를 맡길 만한 상대이오?"


초조함과 분노한 표정의 이에야스, 그에 반해 냉정하게 타이르는 듯한 바바, 이 자리에서 아시미츠는 공기처럼 존재감이 없었다. 아니, 단순히 공기처럼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았다고도 할 수 있다.


"이야기는 끝난 것 같군"


그 말만 하더니 아시미츠는 조용히 일어서서, 몸에 붙은 먼지를 털어내고는 말에 올랐다.


"어디로 가실 셈입니까?"


"나는 처음에 말했다. 이야기는 들어주겠다…… 고. 이야기가 끝난 이상, 내가 여기에 있을 이유는 없다"


고삐를 잡더니 아시미츠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일단, 아까의 대답만은 해주지. 네놈이 말하는 쇼군은 죽었다. 그 찌꺼기(搾り滓)는 아직 현세에 머물러있지만 말이다. 하지만 사소한 일이다. 그리고, 나는 오다를 신용하고 있지는 않다"


바바는 아시미츠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제서야 어떤 것을 깨달았다. 아시미츠의 눈은 얼음처럽 차갑고, 그리고 광기의 색을 띠고 있었다. 도저히 사람이 가질 수 있는 눈빛이 아니고, 괴물이나 가질 수 있는 눈빛이라는 것을 바바는 순간적으로 깨달았다.


"내가 현세에서 믿음을 두는 상대는 단 한명. 나는 그 사람이 바란다면 만 명의 적과도 싸우고, 죽으라고 한다면 그 자리에서 내 목을 베겠다.  그 사람을 위해 살고, 그 사람을 위해 죽는다. 그리고, 그 사람 이외에는 모두 이용가치가 있느냐, 없느냐, 그것 뿐이다"


고삐를 놓더니 아시미츠는 손가락으로 바바를 가리켰다.


"그리고 네놈들에게 이용가치는 없다. 이용가치가 생길 가능성도 없다. 기껏해야 흰소리(大言壮語)만 했다가 꼴사납게 웃음거리가 되는 게 고작이다"


"뭣이라고요"


이번에는 바바의 표정이 변했다. 바바 뿐만이 아니라, 바바의 뒤에 있던 병사들의 안색도 변했다. 아시미츠의 말을 도발, 모욕이라고 받아들인 것이다. 하지만, 쏘아져오는 시선을 받아도 아시미츠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흥, 세상을 모르는 어리석은 놈들이. 후세에 수치를 남기고 싶지 않다면, 고향으로 돌아가 벌벌 떨고 있어라"


다시 고삐를 잡더니, 아시미츠는 말을 돌렸다. 바바나 이에야스를 등졌을 때, 그는 한 마디를 중얼거렸다.


"이 전쟁, 이긴…… 것은 우리들이다"




아시미츠는 바바의 대답을 듣지 않고 말을 달려 가버렸다. 남겨진 것은 긍지에 심각한 상처를 입은 바바 등 타케다 가문과, 마지막까지 사정을 이해하지 못한 이에야스 등 도쿠가와 가문 뿐이었다.

미묘한 공기가 흐르는 가운데, 이에야스도 바바의 제안을 거절했다. 바바는 딱히 신경쓰는 기색도 없이 이에야스의 대답을 듣고 바로 떠났다.

바바가 사라진 이상, 이에야스도 네아라이마츠에 있을 필요도 없어, 가신들을 데리고 거성으로 돌아갔다.


이에야스가 바바의 제안을 거절한 것은, 노부나가를 신용했기 때문이 아니다. 고집(意地)과 긍지는 있었으나, 무엇보다 아시미츠의 느낌이 으스스했던 것이 큰 이유였다.

마지막에 아시미츠가 중얼거린 말을 이에야스는 떠올렸다. "이기는"가 아니라 "이긴"이라고 그는 말했다. 어디에 타케다 가문에 '이긴' 것이라는 요소가 있는지, 이에야스에게는 그게 걸렸다.

허풍일 가능성은 생각되었다. 하지만, 아시미츠의 태도로 볼 때 도저히 허풍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한조, 쇼군…… 아니, 아시미츠 님이 그렇게까지 단언할 수 있었던 이유를 조사해다오"


"옛!"


명을 받은 한조였으나, 쉽지 않을 것을 느꼈다. 하지만 미카와의 명운(命運)을 결정할 중요한 일이기에, 지레 약해질 수는 없다고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한편, 아시미츠는 스스로의 역할을 다했기에, 매일 취미에 몰두하고 있었다. 시즈코에게 보고를 하고, 약의 효과도 아주 좋은 데이터를 얻을 수 있었다. 타케다를 포함한 전원의 행동이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었다.

여기서부터 장기를 두는 것은 시즈코가 할 일이고, 금후의 자신의 역할은 간자의 시선을 모으는 일이기에 놀고 있어도 문제없었다.


수확 시기도 겹쳤기에, 다양한 식재료를 미츠오의 집에 가져가서 연회를 열었다. 각자 일이 있지만, 아니, 일 때문에 평소에 만나지 못하기에, 더욱 자주 연회를 열게 되었다.


"술이 부족하다, 술이 부족해"


"오늘밤은 마시고 떠들고, 춤추고 노래하는 거다ー"


기묘한 노래를 부르면서, 아시미츠는 고로(五郎)와 어깨동무를 하고 수수께끼의 댄스를 선보였다. 그걸 시로(四郎)와 미츠오(みつお)가 장단(音頭)을 맞추며 부추겼다. 전원이 보기좋게 만취해 있었다.

조금 있으면 미츠오의 딸의 목이 자리를 잡기 때문에, 그에 따라 츠루히메(鶴姫)도 집으로 돌아온다. 그렇기에, 신나게 떠들고 놀 수 있는 게 지금뿐이라는 점도 있어, 네 명의 술판(どんちゃん騒ぎ)은 실로 떠들썩했다.

목장(牧場)이 있기 때문에, 이웃 사람이 시끄럽다고 항의할 일도 없다.


"여기여차, 여기여차, 둥둥둥, 슥슥, 보물이 나온다. 어기여차, 어기여차, 둥둥둥"


이번에는 미츠오와 시로가 소쿠리(ざる)를 양손으로 잡고 땅을 파는 동작을 하며 춤을 추었다.


"좋았어, 아저씨ー!"


참으로 초현실적(シュール)인 광경이었으나, 만취해있는 사람에게는 관계없다. 재미있으면 다른 건 모두 무시된다.

그 후에도 흉내를 내거나, 미츠오가 자랑질(惚気)을 해서 세 사람이 야유를 하거나, 기묘한 마임-마임 비슷한 춤을 추어 전원이 구토하거나 하는 등, 여러가지 의미에서 카오스적인 연회가 되었다.


"자, 슬슬 해도 지겠군. 미츠오를 병원으로 데려다줄까"


밖을 보니 일 각(刻)만 있으면 해가 질 것 같았다. 연회라고는 해도 현대와는 달리 대낮부터 하기 때문에 해가 지면 연회는 끝난다.

요즘 미츠오는 집이 아니라 츠루히메가 입원해있는 곳에서 밤을 보내고 있다. 새벽에는 집에 돌아가 일을 하고, 다시 밤이 되면 츠루히메가 있는 곳으로 간다.

애처가(愛妻家)의 모습에 시즈코도 쓴웃음을 지었을 정도지만, 말릴 이유도 없기에 미츠오용의 침대를 준비했다. 현재까지는 미츠오가 사용하고 있는 것 같진 않았지만.


"정리 끝났다. 그럼 갈까. 나와 고로는 병원에 갔다가 지옥거리(地獄通り)를 구경(冷やかし)하러 갈 건데, 시로 님은 어쩌실 건가"


지옥거리란, 소위 말하는 유곽(遊郭)이 모인 거리를 가리킨다. 유곽 거리에서는 분수에 맞는 가게를 고르지 못해서 엄청난 대금을 물게 되는 바람에 전 재산을 빼앗겼다는 이야기가 얼마든지 있다.

그러한 소문들에 꼬리가 붙어, 언제부터인가 유곽 거리는 실패하면 지옥으로 떨어진다고 해서 경계의 의미도 담아 지옥거리라고 불리게 되었다.


"모처럼 권유해주셨지만, 처자가 있는 몸이니 지옥거리는 사양하겠습니다"


"뭐, 그렇네. 나랑 아시미츠 씨만 구경하러 갔다올게"


그런 대화를 나누면서 외출 준비를 마친 네 사람은 각자의 목적지를 향했다. 도중까지는 함께였으나, 마을에 들어섰을 때 미츠오와 시로, 아시미츠와 고로의 두 패로 나뉘었다.

아시미츠와 고로는 두 사람과 헤어진 후, 그대로 지옥거리를 구경하러 갔다. 여기저기서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두 사람은 그대로 흘려들으며 걸었다.

충분히 구경했을 때 지옥거리를 빠져나와 음식점들이 모여있는 거리로 이동했다. 한 잔 걸치고 돌아갈 속셈이었다.


"그럼, 또 봐ー"


"음, 조심해서 돌아가라"


적당한 포장마차(屋台)에서 간단한 안주로 한 잔 걸친 후, 아시미츠는 고로와 헤어졌다. 비틀거리며 걷는 고로를 등 뒤에서 배웅한 후, 아시미츠는 술을 마셨다고는 생각되지 않는 걸음걸이로 귀가했다.




아시미츠로부터 보고를 받은 시즈코는, 한층 더 신겐이 계책에 휘말렸다는 것을 확신했다. 신겐이 오다 영토에 간자를 풀어 조사하고 있는 것은 시즈코도 알고 있었다.

오다 영토의 정보를 바탕으로 신겐이 상락(上洛)할 시기를 변경할 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아시미츠의 보고에 의해 시기가 변경될 가능성은 사라졌다.

신겐은 가신들의 의견을 일치시키려고 고심하고 있다. 아시미츠가 그만큼 도발했는데 공격할 시기를 바꾼다고 말하면 가신들이 반발할 가능성이 높다.


(여기서 이렇게 빼서…… 대충 이렇게 되려나…… 역시 네아라이마츠 주변이 포진지(布陣地)려나)


지형조사 데이터를 바탕으로 만든 지도를 보고, 시즈코는 타케다 군이 포진할 장소를 네아라이마츠라고 생각했다.


현대의 네아라이마츠는 당시의 흔적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 하지만, 그 너머에 있는 호우다 언덕(祝田の坂, 현대에는 호우다 옛 언덕(旧坂)이라고 부름)에는 당시의 흔적이 남아 있다.

통설(通説)에 따르면, 이에야스가 농성하는 하마마츠 성을 무시하고 타케다 군은 미카타가하라 방면으로 진로를 변경했다. 그 이동선상에 호우다 언덕이 있다는 것을 알게된 도쿠가와 군은 농성에서 타케다를 치고 나가는 것으로 작전을 변경한다.

하지만 호우다 언덕을 이동중이었던 타케다 군은, 도쿠가와 군이 배후를 습격하려고 했을 때 갑자기 반전해서 정면 충돌했다고 한다.


이 통설에는 이상한 점이 몇 가지 있다. 우선, 지금도 당시의 흔적이 남아있는 호우다 언덕은 어두컴컴하고 출구로 다가갈수록 좁아진다.

이러한 장소에서 일제히 반전하여, 거기에 3만이나 되는 군세가 조금도 흐트러짐없이 어린진(魚鱗陣)을 전개하는 것은, 당시의 군 사정을 고려하면 불가능한 이야기이다.

만약 신겐이 일제 반전을 가능하게 했다 하더라도, 손자병법(孫子兵法)에 기재되어 있는 피해야 할 지형에 가까운 호우다 언덕을 싸움터로 삼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또, 농성에서 공격으로 작전을 갑자기 변경했을 때, 원군(後詰め)의 역할을 맡고 있는 사쿠마(佐久間) 등이 같이 따라갔다는 점도 이해할 수 없다.

원군이라고는 해도, 오다 군에게 이에야스가 타케다 군을 적극적으로 공격하는 것에 이점이 있지 않는 한 반대하게 된다. 하지만 사쿠마 등이 타케다 군의 배후를 치는 것에 반대했다는 자료는 없다.


원군이 3천이라는 점도 이해할 수 없다. 원군의 장수인 사쿠마, 히라테(平手), 미즈노(水野)는 각각 유력한 무장들이다.

특히 사쿠마는 미츠히데(光秀)와 히데요시(秀吉)가 태두(台頭)하기 전까지 오다 군 내에서 가장 유력한 무장의 지위에 있었다.

그만한 인원들을 파견하면서 합계 병력이 고작 3천으로는 농성을 전제로 하더라도 불안하다. 애초에 신장공기에 병력수의 기재가 없고, 다른 자료는 병력수가 일치하지 않는다.


그러한 것들을 고려한 결과, 시즈코는 어떤 하나의 결론에 도달했다.


(애초에 만 단위로 파견했지만, 타케다가 함락한 성에서 농성을 하더라도 공성(城攻め)조차 하지 않고 지나가도 문제없도록 이중의 계책을 세운 게 아닐까)


그것은 오다의 원군은 여럿이었다, 라는 것이다. 오다 군의 원군은 2만 가까이 파견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하마마츠 성 하나가 아니라, 하마마츠 성을 포함하는 여러 성에 나누어 파견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타케다 군은 하마마츠 성을 함락시키지 않으면 오와리(尾張), 미노(美濃)를 공격해 들어가도 항상 등 뒤의 도쿠가와 군을 신경쓸 필요가 있다.

따라서 타케다 군으로서는 이에야스가 간단히 군사행동을 일으킬 수 없을 정도로는 두들겨놓을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하마마츠 성은 견고하기에, 농성을 하게 되면 간단히 함락시킬 수는 없다.


성이 공격받으면, 다른 성에 있는 오다 군이 구원하러 달려갈 수 있도록 원군을 분산배치했다.

그리고 상황을 이해한 타케다 군이 행동을 취하지 못하고 못박힌 상태로 만들어 시간을 버는 것이 노부나가의 작전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아무리 월동 장비가 있다고 해도, 타케다 군에게는 끊임없이 싸울 수 있는 체력이 없다. 군비(軍備)가 고갈되면 귀환하는 것 외에 선택지가 없는 것이다.


이거라면 만 단위로 원군이 파견되었다, 고 기재되어 있는 갑양군감(甲陽軍鑑)이나 도쿠가와 가문 가신들의 자료와 아귀가 맞는다. 겨우 3천으로 무장들이 하마마츠 성에 있었던 것도 어느 정도 설명된다.

호우다 언덕에 있는 타케다 군을 배후에서 급습하는 작전을 이에야스가 내더라도 사쿠마들이 반대할 이유는 없다.

타케다의 병력이 줄면 그만큼 기후(岐阜)에 있는 노부나가의 부담이 줄어들고, 타케다도 움직이기 힘들어진다.


오로지 견디고 견뎌서, 타케다가 허용된 시간을 다 쓰기를 기다린다, 라고 하면 한심하게 들린다.

하지만 사방팔방이 적으로 둘러싸인 노부나가에게는 이 작전이 가장 안전한 것이다. 한심한 상태 쪽이, 어설프게 타케다의 긍지를 상처입혀 또다시 여세를 몰아 공격받는 사태가 되지는 않는다.

몸을 낮춰 상대가 강하다고 띄워서 우쭐하게 하는 편이 노부나가에게는 안전하다.


(음ー, 역시 어렵네)


생각하면서 시즈코는 장기말을 움직였다. 타케다 군이 어린진을 전개할 가능성은 높다. 배후를 칠 수 있을거라 생각한 상대가 놀라고 있을 때 단번에 박살내 버린다는 작전이라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이에 대해 이에야스가 학익진(鶴翼陣)을 펼친 것은 잘못이라고 종종 이야기된다. 하지만 시즈코는 반드시 잘못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학익진은 정면에서 적의 공격을 받아낼 수 있기만 하면 공방 양쪽으로 우수한 진이기 때문이다. 물론, 보통은 열세인 쪽이 학익진을 펼치는 것은 어리석은 작전일 뿐이다.

적의 움직임을 제한할 수 있는 애로(隘路, ※역주: 좁고 험한 길)였고, 미카타가하라 전투 후에 하마마츠 성에서 농성전을 벌이는 것을 생각하면, 소모를 줄일 수 있는, 최선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차선이라고는 할 수 있는 선택이었다.


(이쪽은 이런 작전으로…… 이런 식으로…… 좋아, 이걸로 완성이네)


모든 기보(棋譜)의 기록을 마치자, 시즈코는 그것들을 정리해서 타케나카 한베에(竹中半兵衛)에게 보냈다. 조금 기다리면 타케나카 한베에로부터 지적이 들어간 것이 돌아온다.

이것을 몇 번이나 반복하여, 미카타가하라의 전투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는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몇 번이나 반복했는지 시즈코도 기억하지 못한다.


"아~~, 피곤해. 두 번 다시 안 할거야, 이런 거"


육체적인 피로도 그렀지만, 사람이 잔뜩 죽는 작전을 생각하는 것은 정신적으로 피로한 시즈코였다. 그러나 미카타가하라 전투에서 어떤 결과를 낼 지에 따라 오다 군의 미래가 결정된다.

노부나가를 위해서도, 그리고 그녀 자신을 위해서도, 미카타가하라 전투는 결코 피할 수 없었다. 시즈코는 손으로 턱을 괴고는 성대하게 한숨을 쉬었다.


(작전대로 되면 상황은 일변하지. 바깥쪽 뿐만이 아니라, 오다 가문 내부도 이것저것 바뀌게 돼. 하아~~, 만약 지금 상태에서 현대로 돌아가도 위험한 인간 코스가 아닐까)


시즈코는 이미 현대에 돌아가는 것을 포기하고 있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갑자기 현대로 되돌려질 가능성은 제로는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미 오와리에 와서 7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양복(洋服, ※역주: 현대의 서양식 옷을 통칭함) 같은 건 이제와서 입을 생각도 들지 않고 키모노(着物)가 아니면 어색했다. 그리고 품 속이나 허리에 칼을 차지 않으면 어딜 가더라도 침착하지 못하게 되어버렸다.

전국시대라면 문제없지만, 현대에서 키모노에 칼을 차고 있으면 틀림없이 경찰서 신세를 진다. 잘못하면 정신병을 의심받아 입원 조치이다.


"(덮어놓고 일하다보니 생각하지 못했는데, 다들 어쩌고 있으려나) 엄마, 걱정하고 있으려나"


"어머니가 어쨌느냐?"


"으엑!"


갑자기 귓가에서 목소리가 들려 놀란 시즈코는 얼빠진 비명을 질렀다. 당황해서 목소리가 난 쪽을 돌아보니, 짓궃은 장난이 성공하여 즐거워보이는 노히메(濃姫)가 있었다.


"멍하니 있던데, 뭔가 생각할 일이 있었느냐?"


"남의 방에 함부로 들어오지 말아 주세요"


"몇 번이나 불렀지만 대답히 전혀 없기에, 방에서 쓰러져 있는게 아닌가 걱정했느니라. 들어와보니 뭔가 중얼거리고 있기에 귀를 기울인 것 뿐이니라"


"하아, 이제 됐습니다. 고민하는 게 바보스러워졌어요"


노히메를 보고 있자, 자신의 고민이 사소하게 생각되기 시작한 시즈코였다. 머리를 가볍게 흔들어 잡념을 털어버린 후, 다시 노히메를 바라보았다.


"그래서, 무슨 용무이신가요? 또 뭔가 드시러 오셨나요?"


"밥을 먹으러 온 건 아니다만, 뭐, 마츠(濃姫)들과 차를 마실 것이니 시즈코도 어떠냐 하고 부르러 왔느니라"


"그거 거절할 수 있는 건가요?"


"거절해도 좋느니라. 그 경우에는 끌고갈 뿐이니 말이다"


그건 사실 거절할 수 없다는 거나 마찬가지잖아, 라고 시즈코는 마음 속에서 지적했다. 아예 어린애처럼 땡깡을 부려볼까 하고 생각했으나, 이상한 모습으로 끌려가도 곤란하기에 생각하는 데만 그쳤다.


"알겠습니다, 가겠어요. 그러니까 달라붙지 말아 주세요"


"시즈코가 말하는 수킨싶, 이라는 것이니라"


어느 틈에 시즈코의 뒤로 돌아간 노히메가 시즈코를 부드럽게 감싸안았다. 노히메는 시즈코의 어깨에 턱을 올리더니, 고양이처럼 볼을 부볐다.


"처음에는 무슨 바보같은 짓을, 이라고 생각했다만, 이게 의외로 좋더구나. 주군께서는 창피하신지 두번다시 못하게 하신다만"


"뭐, 적극적인 애정 표현이니까요. 저도 꽤나 창피하거든요"


"창피해할 것은 아무 것도 없느니라. 나는 시즈코를 좋아하고 있으니. 그렇군, 아까 뭔가 어머니를 생각하던 모양인데, 쓸쓸하다면 나를 어머니라고 생각해도 좋느니라"


"……못 당하겠네요, 노히메 님께는. 하지만, 저희 어머니는 노히메 님과는 전혀 닮지 않았기에 그건 무리한 이야기네요"


"시즈코도 제법 컸구나. 자, 그럼 갈까"


등 뒤에서 떨어지더니, 노히메는 일어나서 다실(茶の間)로 향했다. 너무나 빠른 움직임에 시즈코는 일순 멍해졌으나, 금방 머리로 이해되자 일어서서 노히메의 뒤를 쫓았다.


"오늘의 차과자(茶菓子)는 무엇일고?"


등 뒤에서 쫓아오는 시즈코의 발소리를 들으면서 노히메는 그런 말을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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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

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겐키(元亀) 3년 결전(決戦), 미카타가하라(三方ヶ原) 전투


092 1572년 9월 상순



미츠오(みつお)는 쇼핑을 하고 있었다. 그는 예전에 아이를 키워본 경험이 있어, 육아에 필요해질 것을 사전에 파악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필요해졌을 때 허둥대지 말고 사전에 사두자고 생각한 것이다.


"최우선은 아기끈(抱っこ紐)일까요. 그게 있기만 해도 아기를 안은 채로 양손을 쓸 수 있어서 비약적으로 편해지니까요"


쇼핑이라고 해도 현대처럼 풍부한 품목이 갖춰져 있을 리도 없어, 필연적으로 구입하는 물품 수도 제한적이다.

하지만 오와리(尾張)에만 있는 육아의 수고를 경감해주는 획기적인 제품, 아기끈(子守帯(아기띠)라고도 함, ※역주: 아기끈, 아기띠 모두 의역입니다)과 분무기(霧吹き) 등 두 가지 만큼은 구입할 예정이었다.

아기끈은 부모가 장착하여, 아기를 안을 때 양손을 쓸 수 없게 되지 않기 위한 도구이며, 분무기는 아기의 하반신을 씻기 위한 도구이다.

당연하지만 아기는 스스로 변의(便意)를 제어할 수 없다.

현대같은 고성능 기저귀 같은 건 바랄 수도 없으니 실례(粗相)를 할 때마다 갈아줄 필요가 있지만, 매번 따뜻한 물에 담궈서 씻어주기에는 부담이 너무 크다.

그럴 때 분무기가 활약한다. 기저귀를 갈아줄 때 미지근한 물을 넣은 분무기로 아기를 씻어주고 새 기저귀로 갈아주는 것이다.


"점주(店主), 이것 주십시오"


"매번 감사합니다"


아기끈 쪽은 간단히 구입할 수 있었다. 화폐경제가 침투하여 물물교환이 아니라 돈(金子)으로 물건을 살 수 있는 것은 누구에게나 편리했다.

물물교환으로는 양쪽이 원하는 물건의 가치가 맞도록 밸런스를 맞춰야 하기에, 본래 필요없는 것까지 구입하게 되는데다, 무엇을 등가(等価)로 볼지 파악하는 눈썰미가 필요해지기 때문이다.

돈을 건네고 상품을 받아서 가방에 넣고 가방을 메었다. 다음으로 찾을 것은 분무기다.

아기끈은 용도가 한 가지라서 취급하는 가게를 파악하기 쉽지만, 분무기는 다르다. 원예(園芸)에도 사용하고, 화장(化粧)에도 쓰인다.

가게의 분류가 거리(街道) 별로 구별되어 있다고 해도, 분무기를 뭐에 분류할 지는 점주 마음이다.


"물건이 가득하네요. 처음으로 쿄(京)에 갔을 때는 농담인가 싶었을 정도로 썰렁했으니까요, 이 북적임은 좋은 일이군요"


줄지어 서 있는 가게들을 구경하면서 목표한 물건을 찾았다. 사반각(四半刻) 후, 농기구를 취급하는 가게에서 원하는 물건을 발견했다. 크기에 따라 세 종류로 나뉘어 있어, 대, 중, 소 중에 대자와 중자 분무기를 골랐다.

대자는 자신이 쓰는 것이며, 중자는 츠루히메(鶴姫) 용으로 고른 것이다.

육아에서 아버지와 어머니에게는 각자 다른 책임이 있다. 아버지와 어머니에게는 요구되는 역할이 다르며, 어머니만이 아기를 돌보게 해서는 의미가 없다.

첫째 아이였던 딸 때는 뭐가 뭔지 몰라 우왕좌왕하다 실패했지만, 지금은 확실히 알고 있다.

배를 아파하며 자기 아이를 낳는 어머니와 달리, 남자 부모는 자기 아이와 교류를 통해서 아버지의 자각을 가지는 것이라는 것을.


(세상은 난세, 내일도 알 수 없는 시대에 희롱당하는 아이도 있겠지요. 하지만, 저와 츠루히메 씨의 육아가 서서히라도 퍼져나가면, 그런 불행한 아이들이 줄어들지도…… 모르겠네요)


오와리, 미노(美濃)에 한정되긴 하나, 어린아이의 사망률은 조금씩 낮아지고 있다. 버려지는 아이들도 다소 줄었다.

설령 아이를 버려야 하는 상황에 빠지더라도, 어느 정도는 오다 가문이 거두어서 시설에서 어릴 때 부터 가신(家臣)으로 키우고 있다.

물론 아무리 오다 가문이라도 무제한으로 거두어들였다간 파탄이 나기 때문에, 일정한 기준을 두고는 있다.

그리고 한 번 오다 가문에 거두어진 아이는 어떠한 경우라도 부모에게 돌려주지 않는다. 애초에 선발에서 떨어지면 죽었을 목숨이다. 그런 부모에게 맡길 수는 없다.

하지만 오다 영토 내로 한정하면 위생 환경도 좋고, 영양 상태도 비교적 좋기 때문에 일찍 죽어버리는 아이들은 줄어들었다.

물론 현대와 비교하면 의료 기술이 떨어지므로, 운없이 병을 얻어 쉽게 죽어버리는 경우도 있지만.

멍하니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가 미츠오는 누군가와 부딪혔다.


"아, 실례했습니다"


당황해서 앞을 보자, 부딪힌 상대가 안고 있던 짐이 땅바닥에 흩어졌다.

땅에 떨어진 것은 야채 종류였다. 밟혀버리면 큰일이라고 생각한 미츠오는, 순간적으로 쭈그려앉아 서둘러 야채를 주워모았다.


"아니, 이쪽이야말로 실례했습니다. 생각을 하다보니 앞을 보고 있지 않았군요"


상대도 사죄의 말을 하며 미츠오와 마찬가지로 야채 줍는 것을 도왔다. 다행히 오가는 사람들이 적어서 누구에게도 밟히지 않고 야채들을 모을 수 있었다.

군데군데 흙먼지가 묻었지만, 주인은 가볍게 손으로 털 뿐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정말 죄송합니다. 못쓰게 되었으면 변상해드릴테니, 사양말고 말씀해 주십시오"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이쪽의 잘못이기도 하니…… 꼭 보상을 해주시겠다고 하면, 차라도 한 잔 하시겠습니까"


"차 말입니까? 딱히 상관없습니다"


"그거 다행이군요. 이 근처는 잘 알지 못하여, 어딘가 쉴 수 있는 장소를 찾고 있었습니다"


미츠오의 안내로 근처에 있는 찻집(茶屋)으로 이동해 한숨 돌린 후, 미츠오는 그 남자에게 여러가지를 물었다. 그 남자는 시로(四郎), 병에 걸린 어머니의 요양을 위해 최근에 오와리로 왔다고 한다.


"모든 것을 버리고 이쪽으로 오는 것은 일종의 도박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쪽에 온 이후로 어머니의 용태가 조금씩 좋아지고 있습니다. 한 때는 금생(今生)의 이별을 각오했습니다만 안도했습니다. 처자식에게도 고생을 시켰지만, 겨우 안심시킬 수 있을 듯 합니다"


시로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자신도 처음에는 츠루히메에게 고생을 시켰기에, 미츠오는 시로에게 공감을 느꼈다.


"자녀분은 나이가 어떻게 되시지요?"


"(세는 나이(数え年)로) 4살이 됩니다. 예전에 살던 곳에서는 항상 어두운 표정을 하고 있었는데, 이쪽으로 온 후로는 개구쟁이가 되어서 골치를 썩고 있습니다"


"하핫, 하지만 귀엽지요. 저도 바로 얼마 전에 딸이 태어났습니다"


"그거 축하할 일이군요"


그 말과 동시에 시로는 찻잔(茶碗)을 들었다. 의도를 헤아린 미츠오는, 찻잔을 손에 들고 시로의 찻잔과 건배했다.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기를 바라며"


"우리들의 친교가 오랫동안 계속되기를 바라며"


말이 끝남과 동시에 두 사람은 차를 단숨에 마셨다. 다 마시자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로부터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다. 하지만 즐거운 시간이라는 것은 빨리 지나가는 법으로, 순식간에 반 각(刻)이 흘렀다.

아무래도 차 한잔으로 죽치기에는 조금 거북하다고 느낀 두 사람은, 점주에게 오래 자리를 차지한 것을 사과하고 가게를 나섰다.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인연이 있다면 또 만나죠"


"조심해 가십시오. 인연이 있어 또 만나게 된다면, 이번에는 맛있는 술이라도 마시면서 이야기하도록 하지요"


"그럼, 이만"


한 손을 들더니 시로는 뒤돌아보지도 않고 떠나갔다. 그야말로 담백한 이별이었으나, 미츠오는 이상하게도 시원한 바람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고로(五郎) 씨 이외에는 처음이네요. 이쪽의 친구가 생긴 것은)


이러니저러니 해도 그다지 타인과 접하지 않았구나라고 미츠오는 생각했다. 그만큼 매일이 충실했다고도 할 수 있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조금 판단이 서지 않았다.


"뭐, 괜찮겠지. 츠루히메 씨에게 돌아갈까요"


가방을 고쳐 메고는 미츠오는 츠루히메가 있는 병원으로 발을 옮겼다.




9월에 들어서도 아자이(浅井)-아사쿠라(朝倉)는 성에 틀어박힌 상태였다.

그 침묵은 오다를 두려워하고 있다기보다,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닐까, 라고 제장(諸将)들이 생각하기 시작했을 무렵, 돌연 노부나가는 히데요시(秀吉)에게 성을 맡기고 자신은 기후(岐阜)로 귀국했다.

그 때까지 계속 아자이-아사쿠라 포위를 지휘하고 있던 노부나가가 9월도 반이 지난 16일에 돌연 귀국한 것을 주요 무장들은 괴이쩍게 생각했다.

하지만 동시에 의문도 품었다. 뭔가 좋지 않은 정보가 들어와서 그것 때문에 귀국한 게 아닐까 하고.

그것을 시사(示唆)하듯, 가신들은 일단 풀렸던 포위망이 서서히 재결성되고 있다는 정보를 얻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저번과 달리, 퇴로(退路)가 끊긴 것은 아니고, 쿄(京)가 적의 손아귀에 떨어질 기색도 없다. 그리고 노부나가는 기후로 귀국했다. 이 상태에서 포위망을 형성해봤자 오다에게 치명타를 가할 수는 없다.

그래도 포위망이 형성되어가는 이유는 무엇인가. 오다 측 무장들이 그에 대해 이런저런 예상을 하고 있을 때, 하나의 중대한 위기에 생각이 미쳤다.


"타케다(武田)가 공격한다, 입니까"


그 중대한 일을 걱정한 히데나가(秀長)는, 단도직입적으로 타케나카 한베에(竹中半兵衛)에게 질문했다.


"그렇습니다. 지금, 오다 포위망을 구축해봤자, 오다를 상대로 뼈아픈 일격을 줄 수 있는 전력 따윈 없습니다. 하지만, 놈들은 한 번 무너진 포위망을 다시 한 번 구축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어째서인가? 라고 생각하면 자연스레 대답이 나오겠지요?"


"흠…… 확실히 타케다의 움직임은 최근에 수상쩍으니까요. 그렇게 생각하시는 것도 무리는 아니겠지요"


"실례지만, 뭔가 생각이 있으십니까?"


"설마요. 하지만 약간, 낙관적으로 보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타케나카 한베에에게 타케다의 오다 침공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그에 대해서는 조금도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뭔가를 탐색하듯 눈을 가늘게 뜬 히데나가였으나, 곧 사람좋은 미소를 떠올렸다.


"가능하면 학문이 얕은(浅学) 소생도 이해할 수 있도록 가르쳐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까지 어려운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들은 우리처럼 많은 군자금을 준비할 수 없습니다, 라고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공격해와도, 성에 틀어박혀 계속 저항하면 됩니다. 언젠가 그들의 군자금은 바닥나서 고향(国許)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게 됩니다"


"혼간지(本願寺)가 있습니다. 그들이 자금을 제공하면, 타케다는 몇 년이고 싸울 수 있을 겁니다"


"설령 혼간지가 자금원조를 하더라도, 병사들의 마음까지는 살 수 없을 겁니다"


"확실히 그렇군요"


그걸로 표면적으로는 납득한 히데나가였다. 하지만 이 때, 타케나카 한베에가 시즈코와 비밀스런 회담을 가졌던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자신의 형인 히데요시는, 전투식(戦闘食)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것으로 납득하고 있다. 하지만, 그거라면 어째서 회담을 비밀로 하고 있는가, 그것이 히데나가에게는 걸리는 부분이었다.


(그렇게 간단히 말할 리는 없겠지요. 뭐, 상황을 보니 배신이라던가 하는 이야기는 아닌 것 같군요. 기회가 있다면 알 수도 있겠죠)


모르는 걸 아는 것은 즐겁지만, 모르는 걸 이것저것 생각하는 것도 즐겁다. 히데나가는 그렇게 생각하고, 이 이상 타케나카 한베에에게 깊게 캐물으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시즈코 님에겐 언제나 놀라는군요. 저번의 포위망, 상대의 노림수를 정확히 읽고 오다 가문에 유익한 가신은 빈틈없이 살려낸 수완은 훌륭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지요. 과연 이번의 침묵도 또한, 뭔가의 묘안(妙案)이 있어서의 행동일지도 모르겠군요. 후훗…… 시시한 결말은 용서하지 않겠습니다, 시즈코 님)




오다 가문 가신들이 각자 생각과 의혹을 품고 있을 무렵, 신겐(信玄)은 거의 모든 가신을 불러모았다. 그 중에는 뒷날의 타케다 사천왕(武田四天王)이라고 불린 바바 노부후사(馬場信房)나 야마가타 마사카게(山県昌景)의 모습도 있었다.


"우리들까지 소집이라니, 영주님(御屋形様)께서는 진심이신 모양이군"


"오다의 꼬맹이를 비틀어버리는 데 우리들이 전군(全軍)으로 달려들 필요도 없지만, 땡중(坊主)들이 귀찮게 하는 것이겠지"


"그러고보니 아키야마(秋山) 님, 그대는 오다가 오우미(近江)에 눈을 돌리고 있는 동안 놈의 지성(支城)을 공격하고 있다고 하는데, 어떤 상황인가?"


"이봐, 아무리 영주님의 저택이라고는 해도, 큰 소리로 말할 내용은 아니지 않나"


각자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있었으나, 신겐이 들어오자마자 대화는 딱 멈추었다. 신겐은 평소처럼 앉더니, 입을 열자마자 이렇게 말했다.


"신무월(神無月, 음력 10월) 초부터 오다 영토를 공격한다"


말이 끝남과 동시에 가신 일동이 엎드려 절했다(平伏). 이미 필요한 대화는 끝난 상태였다. 이후로는 준비를 갖추고 오다 영토로 침공하는 것 뿐이기에, 작전회의(軍議)는 금방 끝났다.


"그야말로 신속(神速). 허나 오다의 꼬맹이 정도에 쓸데없이 작전회의를 여러 번 열 필요도 없지"


"음. 영주님의 기보(棋譜)대로 움직이면 문제없지. 항상 승리는 확정되었으니, 이후에는 외통 장기(詰め将棋)를 둘 뿐"


이에야스(家康)와 노부나가를 쳐부술 계획은 세워져 있었다. 어느 정도 오만하게 보이기도 하지만, 그들은 병법의 "이기는 군대는 승리를 얻은 후에 개전한다(勝軍は勝利を得てから開戦する)"를 실천하고 있는 데 지나지 않았다.

전투를 시작하기 전부터 승리하고 있는 상태를 만들어 두면, 어떻게 진행되던 지지는 않는다.

그건 잘못되지 않았다. 처음부터 외통수로 몰아놓은 바둑판이라면, 전투를 개시한 순간 승리는 확정된다. 단, 신겐을 제외한 그들은 매우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었다.

자신들이 "외통수로 몰아놓은 바둑판"을 얻으려 한다면, 당연히 상대도 "더욱 빨리 상대를 외통수로 몰아놓은 바둑판"을 얻으려 한다는 것을.


"각자, 실수 없이 싸울 준비를 해 두어라"


가신들에게 못을 박는 의미에서 신겐은 약간 강한 어조로 경고했다.


한편, 기후로 돌아간 노부나가는, 각 방면의 정보 수집을 비밀리에 하고 있었다. 사전에 알고 있었다고는 해도, 타케다가 공격해온다, 라는 사실에 그는 약간 긴장하고 있었다.

그는 이미 지성 중 하나, 이와무라 성(岩村城)에서 타케다와 국지전(小競り合い)이 벌어지고 있다는 정보를 받았다. 명백한 도발 행위, 하지만 노부나가에게는 원군을 보낼 여유는 없다.

지금, 여기서 원군을 보내면 대(対) 타케다 전투에서 필요한 병력이 더욱 줄어든다. 그렇다고는 해도 원군을 보내지 않으면 다른 자들도 타케다에게 기울어져버린다.


(알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시즈코의 작전이라는 것을…… 하지만, 역시 답답하군(重苦しい). 이런 기분은 이마가와(今川)의 상락(上洛) 보고를 들었을 때 이후 처음이다)


이미 신형 화승총, 이미 화승총이 아니라 다른 계통의 총으로까지 진화한 총이 수백정 제조되고 있다는 보고는 받았다.

그래도 노부나가는 불안을 불식시키지 못하고 있었다. 그 총은 강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타케다를 굴복시킬 수 있을지 노부나가는 의문으로 생각하고는 있었으나, 그걸 시즈코에게 묻거나 하지는 않았다.


애초에 '모두 맡기겠다'라는 선언에 그녀는 '할 수 있다'라고 대답했다. 그 물음을 던지면 자신은 시즈코를 신용하고 있지 않다, 라고 말하는 거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걸로 시즈코와의 사이가 어떻게 되는 건 아니지만, 노부나가의 전권 위임은 그 정도로 가벼운 것이 아니다.

한 번 보낸 신뢰를 의심하는 것은 솥의 무게를 묻는 (鼎の軽重を問う, 실력자의 실력이나 능력을 의심하는 것, ※역주: 초(楚) 장왕(莊王)의 고사인 문정경중(問鼎輕重)) 어리석은 행동, 이라고 그는 생각하고 있었다.


(어찌되었던, 내가 아무리 생각해봤자, 타케다를 무찌를 계책을 찾지 못했지. 그 총과 시즈코의 작전, 그리고 녀석이 말한 '새로운 기술'에 걸어볼 수밖에 없다. 저번의 포위망에서도 녀석은 훌륭하게 해냈지. 여기서는 믿고 기다릴 수밖에 없다)


그 때, 자유분방하게 자고 있던 터키시 앙골라 토라지로(虎次郎)가 노부나가의 시야에 들어왔다. 잠깐 토라지로를 보더니, 그는 표정을 풀었다.


(그래, 초조해봤자 아무 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시즈코는 나보다, 아니, 오다 가문의 누구보다도 가장 위험한 곳에 뛰어드는 것이다. 녀석이 목숨을 걸고 있는데, 내가 우왕좌왕해서 어쩌겠다는 거냐. 평소처럼 듬직하게(どっしり) 행동하면 되는 것이다)


노부나가는 토라지로의 등을 쓰다듬었다. 기분좋다고 말하는 듯, 토라지로는 표정을 풀었다. 눈을 가늘게 뜨고 데굴거리면서 더 쓰다듬으라고 재촉했다.

턱 아래나 머리 등을 쓰다듬자, 토라지로는 완전히 흐늘흐늘해진 상태였다. 그 무렵에는 노부나가의 불안은 깨끗하게 사라졌다.


"음. 처음에는 짐승 따위, 라고 생각했는데, 고양이를 쓰다듬는 것은 기분이 좋구나. 뭐였더라…… 분명히 마음의 불안을, 시즈코는 스투레수? 라고 했었지. 좋구나, 마음이 가벼워진다"


고양이를 귀여워하는 노부나가였으나, 그만이 특별한 것은 아니다.

오다 가문은 성이나 요새(砦) 안에 있는 식량 창고 부근에 고양이를 풀어서 키우고 있다. 이것은 식량 창고에 있는 식량을 노리는 쥐에 대한 대책이다.

옜부터 일본, 아니, 세계의 위정자들은 식량 창고에 침입하는 쥐 때문에 골머리를 썩혔다. 그 쥐 대책 중 가장 효율이 좋은 방법이 고양이를 풀어 키우는 것이다.

일설에는 기원전 4000년 전부터, 집고양이의 조상이라 할 수 있는 리비아 살쾡이(リビアヤマネコ)를 식량 창고 주위에 풀어 키우고, 다른 장소로 식량을 운반하는 배에도 동승시켰다고 전해진다.


고양이는 쥐 사냥 능력이 높고, 또 식량 창고에 있는 식량을 먹어치우거나 하지 않는다. 생후 2개월부터 적절한 훈련을 시키면 사람에게 적의를 보이는 일도 없다.

수컷보다 암컷이 대접받는데, 고양이과는 암컷이 사냥을 하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주의해야할 점은 부모가 쥐 사냥의 경험을 쌓았을 것과, 새끼는 클 때까지 부모에게서 떨어뜨리지 않을 것이다.


고양이는 기본적으로 부모에서 자식으로 사냥 수법이 전해진다. 전술한 대로 어미 고양이가 새끼 고양이를 키우는 과정에서 사냥의 수법을 보여주고 기억하게 하는 것이다.

육아기의 어미 고양이는 특히 우수한 사냥꾼으로 변모한다. 이것은 모성본능이 강한 어미 고양이가, 둥지(巣)에서 자신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자기 자식들을 위해 조금이라도 많은 사냥감을 잡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현대에서도 키우는 고양이가 주인에게 자신이 사냥한 쥐나 곤충의 시체를 가져오는 것은, 주인을 사냥을 못하는 미숙한 새끼 고양이라고 생각해서 식량을 나눠주려고 하는 것이라고 생각되고 있다.


오다 가문에서도 식량 창고를 노리는 쥐 대책을, 고양이를 풀어 키우는 것으로 해결했다. 쥐 대책으로 사람을 고용하는 것보다 싸고, 간자 등의 걱정을 할 필요도 없다.

먹이도 사냥하는 쥐만으로도 문제없고, 괜히 사람이 손을 대어 수렵 본능을 둔하게 만들 수도 없다. 물론, 사냥 성과가 나쁘면 먹이를 주기도 하지만.


"하하핫, 귀여운 녀석"


손을 끌어안고 부비부비거리는 토라지로를 보고, 노부나가의 뺨이 자연스레 늘어졌다. 하지만, 토라지로를 예뻐하는 것에 너무 집중하여, 그는 자신에게 향해진 시선을 알아채지 못했다.

노부나가는 자신에게 달라붙는 시선을 눈치채자, 재빨리 토라지로를 안아들고 거리를 벌렸다. 뒤로 물러섬과 동시에 작은 칼(小刀)을 품에서 꺼내 던지려고 했다.

그러나, 시선의 주인이 누군지 깨닫자, 노부나가는 손의 움직임을 멈추었다.


"무얼 하고 있느냐"


아까까지의 긴박한 분위기는 사라지고, 노부나가의 표정에 어이없음이 떠올랐다. 입구가 약간 열리고, 거기서 얼굴을 비추고 있는 인물은 노히메(濃姫)였다.

그녀는 작게 미소를 짓더니, 입구를 조용히 열었다.


"주군께서 사랑스러운 여아라도 희롱하고 계신가 하여, 이렇게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사옵니다"


"멍청한 것. 애초에 그런 생각 따윈 하지 않았지 않으냐"


노히메의 태도를 볼 때, 딱장대(堅物)인 노부나가가 토라지로와 놀고 있는 것을 재미있게 구경하고 있었다고 추측할 수 있었다.

짜증난다고 생각한 노부나가였으나, 추태를 보인 것은 그였기에 이제와서 무슨 말을 해봤자 창피만 더 당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입을 다물었다.


"하여, 무슨 용무냐"


노부나가는 토라지로를 어깨에 태우고 있는 동안 옆에 앉은 노히메에게 질문했다. 상식을 초월한 자유를 만끽하고 있는 노히메였으나, 이유도 없이 노부나가가 있는 곳을 찾아오는 경우는 없다.


"재미없어서 그럽니다"


"뭣이?"


"대단히 큰일(一大事)이 벌어지고 있는데, 주군께선 전혀 변함이 없으십니다. 그야말로 둔감할 정도로 동요하지 않으십니다. 조금은 우왕좌왕해서 소첩을 즐겁게 해주시옵소서"


"네 악취미에 대해서는 말해봐야 소용없다고 하고, 이제와서 우왕좌왕해봤자 무슨 의미가 있느냐.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이후에는 결과가 나오기를 기다릴 뿐이다"


"어머나, 매일 밤 그렇게 고민하시던 주군께서, 이제와서 묘안이라도 떠오르신 건가요"


"알고 싶으면 스스로 답을 찾아라"


"후훗, 확실히 답을 간단히 알게되면 재미없지요. 조각을 하나 찾아서 이것저것 생각하는 것 또한 재미이겠지요"


거의 부부간의 대화라고 하기 힘들었으나, 이번이 특별한 것이 아니라 노부나가와 노히메의 대화는 기본적으로 이런 느낌이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심정이기에, 다른 나라에서는 부부 사이는 최악이라고 생각되고 있었다.

그렇기에 노히메에게 다가가는 간자들은 많지만, 그게 잘못된 선택이라는 것을 간자들은 몸으로 알게 된다.


"그렇다고는 하나, 실마리(足懸かり)는 간단히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말하지 않고 소첩의 가슴속에 묻어두지요. 주군, 소첩의 생각을 알고 싶으시면, 스스로 대답을 찾아 주세요"


"아까의 되갚음이냐. 흥, 멍청이가. 네 생각은 훤히 알고 있다. 몇 년동안 너와 부부로 지냈다고 생각하는 거냐"


"어머나, 이거 기쁜 이야기네요. 주군께선 그토록 소첩을 생각해주시고 계신 건가요"


"좋을대로 생각해라"


"그럼 좋을대로 생각하지요. 자, 그럼 주군, 소첩은 시즈코에게 가겠습니다. 곧 맛있는 것이 많이 손에 들어오는 시기. 마츠(まつ)나 네네(ねね)도 불러서 식도락을 즐기고 오겠사옵니다"


달력으로는 가을에 들어서, 쌀을 포함한 많은 식재료가 모이는 시기이다. 시즈코 군은 직업군인이므로 농사일은 관계없지만, 백성(百姓)이었던 때가 그리운지 가까운 마을의 수확을 돕는 경우는 있다.

시즈코 자신도 중진(重鎮)으로 한계까지 출세하였지만 농사일은 하고 있다. 특히 동남아시아 각국의 과일들은 지금 시즈코가 있는 곳 외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최근, 망고에 이어 바나나라는 작물을 수확하기 시작했다는 정보가 노히메에게 들어왔다.


"……좋을대로 해라"


노부나가는 노히메의 목적이 바나나인 것을 헤아렸으나, 그 질문을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바나나는 재배 시기에 따라 수확 시기가 달라진다. 또, 현대의 씨없는 바나나와 달리, 전국시대에는 원종(原種)이라고도 할 수 있는 씨있는 바나나밖에 없다.

현대 일본의 농림수산성(農林水産省)에 의한 정의(定義)로는, 바나나는 과수(果樹)로 분류된다. 농림수산성의 기준으로는 1년초를 야채(野菜), 다년초를 과수로 정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정의에 따르면 유통상으로서는 과일로 분류되고 있는 수박이나 멜론 등도 1년생 식물이며, 야채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야채 중에서도 특별한 위치로서 '주식(主食)'이 있으며, 일본에서는 쌀이 주식으로 지정되어 있으나, 구미(欧米)에서는 쌀은 야채로 분류된다.

무엇을 야채로 하고, 무엇을 과실(果実)로 할지는 지역에 따라 정의가 달라진다.


"바나나라고 해도, 씨앗이 딱딱한데다 많아서 먹기 힘들어. 거기에 현대의 품종만큼 달지 않아"


현대의 바나나는 당분이 높지만, 야생 바나나는 말처럼 달지 않다.

개중에는 매쉬 포테이토에 가까운 식감을 주는 품종도 있으며, 과실이라기보다는 굽거나 튀겨서 요리의 재료로 쓰이는 경우가 있다.

또, 얼핏 보면 과실 이외에 이용할 수 있는 부위가 없을 것 같은 바나나이지만, 바나나를 수확할 후의 줄기 부분에서 튼튼한 섬유를 얻을 수 있다.

이 섬유는 성질이 삼베(麻)와 흡사하여, 대용품으로서 다양한 제품에 이용되고 있다.

바나나의 줄기에서 섬유를 뽑아내는 해섬(解繊) 공정에서, 화학약품에 의한 처리가 불필요한데다 수고가 별로 들지 않는 점도 높이 평가된다.

현대에서는 그 재배량 때문에 산업폐기물 취급인 바나나 줄기이지만, 전국시대의 일본에서는 시즈코가 있는 곳에서만 소량 생산될 뿐이다.

따라서 따로 수고를 들여서까지 섬유를 얻을 필요는 없고, 기후를 타지 않는 삼베로 충분하다.


그 밖에도 파인애플의 잎사귀로부터도 섬유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하는 것 치고는 얻을 수 있는 섬유량이 적어 생산성이 낮은 경향이 있다.

파인애플의 잎사귀에서 얻을 수 있는 섬유로 만들어지는 천은 필리핀에서 피냐(piña)라고 불리며, 우의(羽衣) 같이 얇고 섬세한 직물로 전해지고 있다.

피냐의 생산성이 낮은 하나의 원인은 엽맥 섬유(葉脈繊維)이기에 끊어지기 쉬워서, 필요한 길이로 자아내려면 고도의 기술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라고 전해진다.

참고로, 현대에서는 다루기 쉬운 견사(絹糸)를 날실(経糸)로 이용한 실크 피냐(piña silk)가 개발되어, 생산성과 수요가 늘어났다.


"꽃봉오리(つぼみ)도 먹어봤지만, 의외로 보통이네"


바나나는 보라색 꽃이 피고, 그게 시든 후에 위에서 순서대로 과일로 변한다. 하지만, 끝부분에 큰 수술(雄しべ)이 남고, 이 수술은 과일로 변하지 않기 때문에, 적절한 시기에 잘라낸다.

내버려둬도 알아서 땅으로 떨어지지만, 잘라내면 과일에 더욱 많은 양분이 보내어진다. 또, 일본에서는 익숙하지 않지만, 동남아시아에서는 꽃봉우리도 야채로 취급되어 식용으로 쓰이고 있다.

바나나의 꽃봉우리는, 죽순처럼 껍질을 벗겨서 안쪽 부분만을 먹는다. 식감은 꽃봉우리와 닮았으나, 생으로는 조금 먹기 힘들고, 위생상의 관점에서도 끓는 물에 데쳐먹는 쪽이 좋다.

동남아시아에서는 갱 후어플리(แกงหัวปลี, 이름 그대로 바나나 꽃봉우리 스프, ※역주: 발음은 구글번역에서 들리는 대로 적었는데, 정확한 발음명칭을 아시는 분이 계시면 지적 바람)가 정석이다.


"뭐 내버려뒀다 썩어도 아까우니, 바나나를 수확해서 돌아가자"


벌레가 붙지 않도록 자루를 씌워놓은 바나나에서, 잘 익어서 먹을 수 있는 것을 선별해서 수확했다. 현대에서는 익기 전에 수확해서 운반 도중에 후숙시키는 방법이 일반적이지만, 상품이 아니기에 익을 때까지 기다릴 수 있다.

씨앗으로부터도 재배할 수 있지만, 바나나는 뿌리에서 나오는 흡아(吸芽)를 분주(株分け)하여 늘리는 쪽이 좋다. 그렇다고는 해도, 씨앗이나 흡아나 성장 스피드나 수확 시기는 별 차이가 없다.

단순히 조리에 쓰이는 일이 많기 때문에 씨앗은 별로 기대하지 않는 것 뿐이다.

다만 분주는 클론이 늘어날 뿐으로, 품종개량을 하기 위해서는 씨앗을 채취할 필요가 있다. 이 때문에 우량개체의 과일은 식용으로 쓸 수 없다.

씨앗과 흡아, 양쪽 모두 재배하여 인간에게 유용한 유전 형질을 고정시켜가는 것이다. 이 점은 다른 작물과 다르지 않다.


"좋아, 돌아가자"


바나나가 든 바구니를 메고 시즈코는 비날하우스를 나섰다. 하지만, 집에 돌아가는 도중에 눈에 익은 가마(駕籠)가 보였다. 반사적으로 시즈코는 몸을 돌렸다.


"에잇, 도망치다니 어떻게 된 것이냐"


하지만 몸을 돌린 순간, 등 뒤에서 양 어깨를 붙잡혔다. 어느 틈에 다가와서 등 뒤로 돌아갔는지 시즈코는 전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런 짓을 할 사람은 한 명밖에 모른다.


"도망친 게 아니에요ー. 준비가 필요하려나ー 라고 생각한 것 뿐이에요ー"


약간 교과서를 읽는 듯한 말투로 시즈코는 변명했다. 변명은 통하지 않은 듯, 대답 대신 볼이 잡아당겨졌다.


"그쪽에는 부엌도 창고도 없느니라. 나를 피하다니 쓸쓸하구나"


"아아으이, 아우에어(알겠으니, 놔 주세요)"


"오오, 그랬지. 그래서, 바구니에 든 것은 무엇이냐?"


시즈코의 볼을 잡아당기는 것을 그만둔 직후, 노히메는 재빠르게 시즈코가 바구니를 가지고 있는 것을 깨달았다. 안에는 본 적도 없는 형상을 한 것이 들어있어, 노히메는 즉시 흥미가 일었다.


"남만의 과일인 바나나에요. 전에 카톨릭(伴天連)에게 헌상받아서 영주님께서도 드셨던 걸로 기억하는데요"


기록으로서 남아있는 것 중에는, 일본에서 최초로 바나나를 먹은 것이 노부나가라고 한다.

어쩌면, 그 이전에 바나나를 먹은 일본인이 있을 가능성은 있지만, 기록에 없는 것은 고려되지 않는다.

현대의 씨없는 바나나는 돌연변이로 태어난 것이기에, 당시에 노부나가가 먹은 것은 씨가 잔뜩 들어있는 바나나라고 생각되고 있다.


"오오, 그랬지. 뭔가 씨가 잔뜩 들어서 먹기 힘들다, 라고 불평하셨었지"


"뭐 그렇네요…… 아무리 봐도, 그대로 먹는 것은 아니죠"


원종 바나나에는 단단한 씨가 가득 들어있다. 이걸 씨없는 바나나로 만들려면, 원종 바나나를 '2배체(二倍体, diploid)'(염색체 숫자가 2의 배수로 되어 있음) 상태에서 '3배체(三倍体, triploid)'(염색체 숫자가 3의 배수로 되어 있음) 상태로 변화시킬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염색체가 3배체로 변이하면 세포 분열이 불규칙해진다. 그에 따라 씨앗이 잘 생기지 않는 성질을 가지게 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성숙하지 않고 계속 성장하는 경우도 있다.


현대에서는 작물 뿐만 아니라 물고기 등도 3배체로 만드는 방법이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 히다오오아마고(飛騨大天女魚, ※역주: 검색해봐도 한글 명칭이나 영어 명칭 등을 찾을 수 없어 그대로 적음) 등 일부에서는 방법이 확립되어 실용화되어 있다.

그 이유는 성적으로 성숙하지 않기 때문에 산란에 영양을 빼앗기지 않게 되고, 육질도 변하지 않은 채 계속 성장하기 때문이다.

그 밖에도 몇 가지 이유는 있으나, 3배체의 동식물의 최대의 이점은, 인간이 식용하는 데 편리하고, 자손을 남길 수 없기에 생태계에 대미지를 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다만 3배체 물고기의 자연 수역(水域)으로의 방류는 수산청(水産庁)의 요강(要綱)으로 금지되어 있음)


"생선처럼 씨앗을 지우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냐?"


"아마고(アマゴ) 말인가요? 그건 알을 미지근한 물에 담그기만 하면 환경변화를 일으킬 수 있지만, 바나나는 방법이……"


아마고의 수정란을 통상적인 환경에서 키우면 2배체의 염색체를 갖는 아마고가 탄생한다. 하지만, 수정란을 미지근한 물에 담근다는 환경변화를 일으키면, 3배체의 아마고가 탄생한다.

인간이 볼 때는 찬물이나 미지근한 물이나 별 차이는 없지만, 물고기에게는 따뜻한 물이라는 시점에서 큰 환경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그에 의해 3배체의 아마고가 탄생한다. 통상 1년이면 산란하고 수명을 다하는 아마고가, 3배체가 되면 산란하지 않고 몇 년 동안 계속 성장한다.


염색체의 변화, 라고 하면 유전자 조작을 하고 있다고 생각되기 쉽다.

하지만 실제는 미지근한 물에 담그거나 통상적인 환경에는 없는 수압을 가하는 등, 동식물에게 환경 변화라고 인식시켜서 본래 배제되는 염색체를 유지시켜 3배체로 만들고 있는 것 뿐이다.

또 '초남성 증후군(supermale syndrome)'이나 '초여성 증후군(triple X syndrome)', '클라인펠터 증후군(Klinefelter's syndrome)' 등, 인간에게도 3배체 같은 염색체의 돌연변이는 일어난다.


"아마고는 연어(鮭)의 부록 같은 거였고, 3배체로 하는 쪽이 이득이니까요"


"처음에 그게 아마고라고 했을 때는 나를 놀리는 줄 알았느니라"


3배체 아마고는 성장 상황에 따라 무려 1kg까지 성장한다. 평균 100g인 2배체 아마고와 비교하면 다른 물고기라고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다.

실제로, 600g의 3배체 아마고를 내놓았을 때 시즈코는 노부나가에게 꿀밤을 맞을 뻔 했다.


"약간의 환경 변화로 본래와는 다른 성질을 가지게 되니, 생물이란 건 참 신비하지요"


"그럴듯한 말을 해서 내 질문을 피해가지 말거라"


"들켰나요. 바나나로도 가능하지만, 식물은 꽤 어렵거든요. 그래서 3배체가 생길 거라고는 생각하지만, 언제 생길지는 확답을 드릴 수가 없습니다"


현대에서는 2배체의 씨앗 없는 바나나도 존재하지만, 그건 끊임없는 노력의 결정체이다. 그렇게 간단히 3배체, 2배체의 씨없는 바나나가 생기면 고생할 일이 없다.


현대에서는 씨없는 수박 등도 나돌고 있지만, 아마고나 은어(鮎)보다 손이 많이 간다. 우선 통상적인 수박을 재배하고, 싹이 날 시기에 콜히친(Kolchizin) 등의 약품을 싹에 바른다.

이걸 그대로 키우면 4배체(tetraploid)의 수박이 된다. 이듬해, 4배체의 수박에서 채취한 씨앗을 뿌려, 2배체의 수박과 수분(受粉)시켜 키운다.

키운 수박에서 씨앗을 채취하면, 그 씨앗은 3배체의 씨앗이 되어 있다. 그걸 키우면 3배체, 즉 씨없는 수박이 탄생한다. 단순 계산으로 3년이나 걸리는 셈이다.

그동안의 수고와 시간을 생각하면, 씨없는 수박이 시장에 많이 나오지 않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기대하지 않고 기다리마. 우선은 시즈코가 들고 있는 바나나인가 하는 걸 즐겨보도록 하지"


"(아, 역시 먹는구나) 그럼, 여기 있습니다"


시즈코는 바구니에 들어있던 바나나에서 한 송이를 골라, 가장 끝의 바나나를 하나 뗴어냈다. 노히메에게 건네자, 그녀는 바나나를 받아들고 껍질을 벗겼다. 잠시 열매를 감상한 후, 한 입 먹었다.


"단맛 속에 아련한 신맛이 있다. 그게 단맛을 돋우는구나. 씨앗의 처리가 조금 번거롭다만"


씨있는 바나나는 으름(アケビ)과 마찬가지로, 씨앗째로 입에 넣어 가식부(可食部)와 씨앗을 입 안에서 분리한다. 조금 먹기 피곤한 방법이지만, 씨앗이 단단해서 씹어부수는 것보다는 편하다.

씨앗을 씹어부술 정도로 노히메의 턱힘은 강하지 않다. 필연적으로 먹으면서 가식부와 씨앗을 입 안에서 분리하여 씨앗을 뱉어낸 후 가식부를 즐기고 있었다.


"주군께서 먹기 힘들다고 하신 것도 납득이 가는구나"


그런 말을 하면서도 바나나를 세 개 먹어치운 노히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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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

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겐키(元亀) 3년 결전(決戦), 미카타가하라(三方ヶ原) 전투


091 1572년 8월 중순



7월 19일, 노부나가는 거의 모든 가신들을 모아서 노부타다(信忠, 키묘마루(奇妙丸))의 첫 갑주 착용식(具足始の儀)을 치렀다.

다른 말로 요로이키조메(鎧着初)라고도 하며, 무가(武家)의 남자아이가 처음으로 갑주를 착용하는 의식을 말한다. 보통은 성인식(元服)과 겹치는 경우가 많지만 정식 규정은 아니라서 키묘마루처럼 성인식 전에 하는 경우도 있다.

반대로 타케다 요시노부(武田義信)처럼 13세에 성인식을 치르고 2년 후인 15세 때 하는 케이스도 있다.

그렇기에 첫 갑주 착용식과 성인식은 동일시되기 일쑤이지만 별개의 것이다.


첫 갑주 착용식이 끝난 다음에는 오다니 성(小谷城)에 틀어박힌 아자이 히사마사(浅井久政)를 토벌하기 위해 노부나가는 약 5만의 군세를 이끌고 출진했다.

북 오우미(北近江)에 도착한 후 노부타다의 첫 출전식(初陣式)을 치렀다. 이로써 노부타다에 관한 일련의 의식들은 종료된 것이 된다.


"이 정세 하에서 이름있는 무장들이 잘 모여주었다"


노부나가가 첫 출전식에서 모두에게 말했다.


"우리들 신하 일동, 굳게 단결하여 키묘(奇妙) 님을 지켜내고 아자이 가문을 쳐부숴보이겠습니다"


아직 성인식을 치르지 않았기에 아명(幼名)인 키묘로 불리고 있지만, 갑주를 입은 모습은 늠름한 무장이었다.

평소에는 엄한 표정을 짓는 노부나가도, 후계자인 키묘마루의 첫 출전식이 무사히 치러진 것이 기뻤는지, 어느 정도 표정이 누그러져 있었다.


"다들, 마시도록"


노부나가의 말에 무장들은 축하주를 마셨다. 지금부터 아자이를 침공하게 되는데, 그들에게 긴장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미 아자이 가문에 예전같은 힘은 없고, 당장이라도 꺼질 바람 앞의 등불 상태였다.

아사쿠라(朝倉)도 지금까지 도망치던 태도 때문에 오다 가문 가신들 사이에서는 이름높은 명가(名家)가 아니라 그냥 얼간이(腰抜け)로까지 평가가 추락한 상태였다.

노부나가는 적대하는 영주(国人)들과 혼간지(本願寺), 엔랴쿠지(延暦寺)에 의한 포위망도 풀려서 아자이 공격에 집중할 수 있을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제 2차 포위망이 착착 형성되고 있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아자이와 아사쿠라를 당분간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두들겨놓을 필요가 있었다.


"영주님, 각국에서 축하 선물이 도착했습니다"


소성(小姓)으로부터 선물(贈答品) 목록을 받아들고 노부나가는 그것을 읽었다. 다 읽자 노부나가는 작게 웃었다.


"켄뇨(顕如)도 타케다(武田)도 교활한(食えぬ) 너구리로다"


포위망으로 뭉개버리려는 상대에게 보란 듯 축의(祝儀)를 보낸다. 그건 언제든지 되찾을 수 있다는 자신감의 발로인지, 아니면 외교적 의례와 정치적 스탠스는 별개라고 하는 건지, 어느 쪽이든 노부나가에게는 재미있는 이야기였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놈들의 발밑을 무너뜨려서 이쪽이 내려다봐 준다, 라. 과연, 확실히 오노(お濃, ※역주: 노히메)의 말에도 일리가 있군. 모든 것이 끝났을 때, 놈들의 얼굴이 볼만하겠다)


"영주님, 뭔가 문제라도 있으십니까?"


축의 목록에 있는 이름을 보며 노부나가가 사악한 표정으로 웃음을 떠올리고 있는 것이 신경쓰인 호리(堀)가 머뭇거리며 질문했다.


"켄뇨도 타케다도 교활한 너구리로다"


그에 반해 노부나가는 종이를 말아 호리에게 던져주며 아까와 똑같은 말을 했다. 둥글게 말린 종이를 받아든 호리였으나, 노부나가의 진의를 알 수 없어 곤혹스러워했다.

하지만 그에 대해 노부나가가 뭔가 말을 하지는 않았다.


"……이렇게 큰 잔인데 바닥에 조금 고일 정도밖에 술이 없다니 거 참 멋대가리 없네"


한편, 노부타다의 첫 출전식에 있던 시즈코는, 잔에 병아리 눈물만큼 따라진 술을 마시고 있었다.

금주령이 아직 풀리지 않은 그녀는, 형식상으로 술이 나오는 자리에서도 술이 아닌 물을 받았었다. 하지만 물잔은 재수(縁起)가 나쁘기에, 절대로 취하지 않을 양으로 제한되어 있는 것을 시즈코는 몰랐다.

노부나가가 완고하게 술을 마시지 못하게 하는 이유가 약간 궁금해졌지만, 딱히 술이 마시고 싶은 이유도 없었기에 궁금해 하는데만 그치고 있었다.


"후훗, 하지만 포위망도 풀려서 다행이군"


"그렇지. 아니면 이렇게 평화롭게 치를 수는 없었겠지"


"하지만 방심은 금물. 아자이도 아사쿠라도 여전히 건재하니, 긴장을 풀었다간 단번에 영토를 잃게 되겠지"


무장들의 대화가 시즈코의 귀에 들어왔다. 현 상황을 보는 한, 오다 가문에 위기는 닥치지 않았기에, 그들의 목소리에 어느 정도 긴장감이 부족한 것은 당연했다.

오히려 이 평화로운 표정과 말투 쪽이 각 방면의 간자를 속일 수 있어 좋다고까지 생각했다.


(슬슬 진지하게 간자들을 파악해 둬야겠네. 하지만 내가 해봤자 무리일테고…… 누가 적임일까)


아시미츠(足満)가 가장 적임이지만, 군사 방면은 다 떠넘기고 있었기에 아시미츠의 부담이 너무 커지지 않을까 하고 시즈코는 걱정하고 있었다.

아시미츠 본인은 무리라면 무리라고 말을 하는 성격이기에 쓸데없는 배려는 필요없지만, 시즈코에게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족이기에 그에게 부담이 집중되는 것은 가능한 한 피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다.


(나중에 상담해볼까. 그래서 이후의 방침을 결정하자)


결론을 낸 시즈코는, 이후에는 첫 출전식이 끝나기를 기다릴 뿐이었다. 첫 출전식이 끝나면, 그녀는 아자이 침공에 참가, 가 아니라 오와리(尾張)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물론 타케다 전(戦)을 위한 준비에 착수하기 위해서이다. 이미 몇 가지 물자가 그녀의 창고에 모여 있었다.

개중에는 신형 화승총의 부품까지 들어있었으나, 그것들은 케이지(慶次)들에게까지 비밀로 하고 있었다. 화물의 관리(差配)를 하고 있는 아야(彩)도 내용물이 무엇인지까지는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애초에 얼핏 봐서는 철봉이나 나무 틀로밖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들을 제조하고 있는 사람들조차 최종적인 형태가 무엇이 될지에 대해 듣지 못했다.


(방심은 금물이지만 아무래도 수백 년이나 들여서 탄생시킨 기술이나 연구 끝에 세련된 도달점이니까. 그 기초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봐도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알 수 없겠지)


애초에 화승총을 기능별로 부품으로 분해하여 각각 부품 단위로 대량으로 제조한다는 생각조차 지나치게 이단적이라 전국시대의 사람들은 아무도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제조 기술은 극비 중의 극비, 구조도 간단히는 알려지지 않는 시대이다. 완성형을 보지 못하면 그것은 뭔가의 도구 정도라고 생각되기 쉽다.


(간자에게 교양(教養)이 있으면 곤라한 사람들이 참 많지. 그러니까 간단한 것조차 생각하지 못하는 거지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시즈코는 잔에 담긴 술을 비웠다. 술이라고 해봐야 입을 약간 적실 정도로는 마신 느낌조차 나지 않았다.


멍한 상태로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축하 선물들이 운반되어 왔다. 적대하고 있는 켄뇨나 타케다 신겐(武田信玄의 6녀 마츠히메(松姫), 도쿠가와(徳川) 등등 각 방면으로부터 다양한 선물들이 도착했다.

선물은 국내, 국외를 가리지 않고 대단히 값비싼 것들이었으나, 선물받은 본인인 키묘마루는 그다지 기뻐하지는 않았다.


"키묘, 뱃속(腹の中)은 보이지 마라"


"아버지…… 옛, 죄송합니다"


적으로부터의 시혜(施惠)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아직 풋내기로군이라고 생각하며 옆에서 보고있던 노부나가가 쓴소리를 했다. 지적받고 깨달았는지, 그 이후 키묘마루는 속마음을 표정에 드려내지 않았다.




첫 출전식이 끝나고, 드디어 아자이 침공이라는 상황이 되었을 무렵, 시즈코는 전군을 이끌고 공성, 이 아니라 오와리로 귀환할 것을 노부나가에게 명령받았다.

이유는 동쪽이 수상하기에 견제(抑え)하라, 이다. 다른 무장들이 볼 때는 무공을 세울 수 있는 기회를 빼앗긴 상황이지만, 시즈코는 딱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대로 돌아가 준비에 착수했다.

단, 토라고젠 산(虎御前山)에 축성(築城) 예정이 있었기에, 후방 지원부대 중 쿠로쿠와슈(黒鍬衆)와 일부의 부대만 남기게 되었다.


"아ー,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귀가라니 김새는걸"


"어쩔 수 없지. 오다 나으리는 우리들을 쓰고 싶지만, 우리들만 써서 다른 사람이 무공을 세울 자리를 빼앗는 것도 문제니까"


"알고 있지만 말야. 모처럼 날뛸 수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견제 역할이라니 할 맛이 안 나"


불평불만을 말하는 나가요시(長可)를 케이지가 달랬다. 이제와서 무슨 소리를 해도 결정은 뒤집어지지 않지만, 그로서는 불평을 말하는 것이 스트레스 발산을 위한 것이리라. 시즈코는 나가요시가 실컷 투덜거리게 놔두기로 했다.

이럴 때, 여자보다는 같은 남자끼리 이해가 잘 통한다는 점도 있다.


"그럼, 준비가 끝나면 오와리로 귀환. 그 후에 우리들은 평소와 같이 훈련. 달라질 것 없는 나날들이 되겠지만, 이 훈련이 언젠가 도움이 될 테니 열심히 하도록 하죠"


"옛!"


나가요시와 케이지 이외의 무장급 사람들이 대답했다. 시즈코 군도 우사 산성(宇佐山城) 전투에서 꽤나 회복되어, 지금은 1만에 달하는 군이 되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시즈코 본인이 움직이는 군은 2000에서 3000 정도로, 나가요시, 케이지, 사이조(才蔵), 타카토라(高虎), 아시미츠 등 5명이 각각 1000에서 2000의 병사들을 움직이고 있다.

거기에 후방 지원부대를 더하면, 다른 유력 무장들과 동등한 세력이 된다. 노부나가가 무공을 세울 자리를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라고 한 것도 납득할 수 있는 세력이었다.


"여어, 시즈코. 배웅하러 왔다"


회의가 끝남과 동시에 시즈코에게 키묘마루가 찾아왔다.


"이런, 키묘 님. 배웅해주시다니 황공하옵니다. 하지만, 수행원도 없이 다니시는 건 부주의하십니다"


"그만둬, 딱딱하게 대하지 마. 너한테 그런 소릴 들으면…… 그, 뭐냐, 소름이 끼친다고"


"심한 말이네. 하지만 호위 정도는 데리고 와. 우리 쪽에서 몇 명 붙여줄테니, 돌아갈 때는 호위랑 같이 가라고"


말이 끝나자마자 시즈코는 겐로(玄朗)에게 호위병을 몇 명 차출하도록 지시했다. 그걸 듣고있던 키묘마루는 지긋지긋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호위라니 숨이 막혀. 나는 좀 느긋하게 있고 싶다고"


"영주님의 후계자가 첫 전투에서 쓰러지기라도 하면, 영주님은 물론이고 주변의 무장들도 한심하다고 욕먹고 불명예를 얻게 되는데?"


첫 출전식은 화려하게 치렀기에, 노부나가에 적대하는 면면들이 키묘마루의 암살을 꾀해도 이상하지 않다.

애초에 키묘마루는 태어났을 때부터 노부나가의 후계자가 될 것이 내정되어 있었으나, 오늘 처음으로 확정된 것이다.

후계자를 잃는 것은, 전국시대에 있어 사활문제(死活問題)가 된다. 아무리 노부나가가 자식이 많더라도, 말하긴 뭐하지만 키묘마루를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알ー았어, 알ー았다고. 하여튼, 그렇게까지 내 실력은 믿음이 가질 않는거냐. 이 갑주, 네 신기술…… 이 도입되어 있잖아?"


"……뭐 그렇긴 한데. 하지만 과신은 금물이야. 죽을 때는 정말 어이없이 죽으니까"


역사적 사실대로라면, 키묘마루는 혼노지(本能寺) 사변 때까지 살아있다. 하지만, 지금의 역사는 이미 시즈코가 배운 역사와는 달라져 있다.

사소한 계기로 본래 죽어야 했을 사람이 살고, 살아있어야 할 사람이 죽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그걸 생각하면 키묘마루가 멋대로 움직이는 것도 시즈코에게는 쉽게 간과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뭐, 나도 첫 출전에서 멍청하게 죽고 싶지는 않아. 여기는 시즈코의 조언을 받아들이지"


드물게 시즈코가 신신당부를 하는 점이 신경쓰여, 키묘마루는 시즈코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그는 그 후, 자유분방한 태도를 거두고 겐로가 데려온 호위에 둘러싸여 본진으로 돌아갔다.


"자, 이쪽은 오와리로 돌아가죠"


"그 전에, 잠시 시간을 내주실 수 있겠습니까, 시즈코 님"


이번에야말로 귀가, 라는 상황에 또 방해가 들어왔다. 어이없는 느낌을 받으며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얼굴을 돌리니, 거기에는 싱긋 웃는 표정의 타케나카 한베에(竹中半兵衛)가 있었다.


"조금 신경쓰이는 게 있어서 말입니다"


시즈코의 시선을 신경쓰지 않고 타케나카 한베에는 손에 들고있던 종이를 팔랑거리며 중얼거렸다.




타케나카 한베에와 '대화'를 했기 때문에, 시즈코는 오와리로 귀환하는 것이 반나절 정도 늦어졌다. 하지만, 지금은 딱히 눈에 뜨일 정도로 타케다나 혼간지가 움직이지 않고 있었기에, 특별히 영향은 없었다.


7월 21일, 노부나가는 준비가 갖춰지자 시바타(柴田)나 사쿠마(佐久間), 니와(丹羽), 히데요시(秀吉)에게 히바리 산(雲雀山)과 토라코젠 산(虎御前山)을 공격하도록 명했다. 그들은 마을을 불태우며 불꽃처럼 공격해 들어갔다.

아츠지 사다유키(阿閉貞征)가 지키는 야마모토 산성(山本山城)에도 병사를 보냈으나, 이미 아츠지 사다유키는 오다 측과 내통하고 있었기에 이것은 내통을 들키지 않기 위한 기만 공작에 지나지 않았다.


23, 24일에는 에치젠(越前)과의 국경 부근을 중심으로, 잇코잇키(一向一揆)를 꾀한 사찰 및 신사(寺社)나 마을들을 모두 불태웠다. 이 싸움에서 근처의 주민들이나 승려들이 오다 군에게 죽음을 당했다.

동시에 미츠히데(光秀)가 중심이 되어, 비와 호(琵琶湖) 방면에서 공격해 올라가 일향종(一向宗)들의 증원을 막았다.


순조롭게 적 세력을 무찔러간 노부나가는, 27일에 토라코젠 산에 축성을 명했다. 재빠르게 주변 탐색을 마친 후, 쿠로쿠와슈가 토라코젠 산에 들어가 축성 작업을 시작했다.

하루가 지날 때마다 성이 형태를 갖춰가는 모습을 보면서도, 히사마사(久政)는 손가락을 빨며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이미 오다 군을 쫓아낼 수 있는 병력은 없어, 공격해봤자 박살날 것이 뻔히 보였기 때문이다.

다른 세력과도 차단된 고립 상태의 그는, 사태가 여기까지 이르러서는 어쩔 수 없다고 판단하고 아사쿠라에게 거짓 정보를 흘려 원군을 요청했다.


노부나가는 나가시마(長島) 잇코잇키의 봉기로 위기에 처해 있다, 라는 히사마사의 거짓 정보에 속은 아사쿠라 요시카게(朝倉義景)는 직접 1만 5천의 군을 이끌고 에치젠을 출발했다.

하지만, 오우미(近江)에 도착하여 오다 군이 건재한 사실을 알게되자마자 오오즈쿠 산(大嶽山)에 진을 치고 그대로 틀어박혀 버렸다.


그들이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동안에도, 토라코젠 산의 축성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몇 가지 시설이 완성되지 않았지만, 견고한 방어벽 등 주요 설비는 이미 기능하고 있었다.

재빠르게, 하지만 착실하게 마무리해가는 쿠로쿠와슈의 솜씨를 보고 노부나가는 희색이 만면했다. 한편, 아자이도 아사쿠라도 끼어들 틈이 보이지 않는 것에 발을 구르고 있었다.


대치 상태(睨み合い)가 계속되던 도중, 아사쿠라 측에 움직임이 있었다. 8월에 들어섰는데도 축성의 방해, 저지를 하지 않는 아사쿠라 요시카게에게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고 단념했는지, 아사쿠라 가문 가신인 마에바 나가토시(前波長俊) 부자가 오다 측으로 변절했다.

마에바 나가토시가 변절한 다음 날, 기회주의적(日和見) 태도를 취하는 아사쿠라 요시카게에게 진절머리가 났는지, 아니면 변절한 마에바 나가토시를 이용하여 정치적 공작(調略)을 했는지, 토다 나가시게(富田長繁)나 토다 요지(戸田与次), 케야 이노스케(毛屋猪介) 등 아사쿠라 가문 가신들이 차례차례 오다 측으로 변절했다.


"이렇게 변절이 많아지면 재미가 없군요, 아버지"


첫 출전식 이후 눈에 띄는 출격은 없었으나, 예정대로의 쾌진격을 거듭하고 있는 것에 키묘마루는 기문이 좋았다. 하지만, 노부나가는 키묘마루의 발언을 듣고 작게 미소를 떠올렸다.


"아직 젊구나, 키묘. 상대가 궁지에 몰렸을 때가 가장 위험한 것이다. 궁지에 몰린 쥐는 고양이를 무는 법이지"


"하지만, 아사쿠라는 틀어박힌 상태고, 아자이도 눈에 띄는 움직임은 보이지 않습니다. 일방적인 승리라고 생각해도 좋지 않습니까"


"바로 그래서이다"


노부나가의 말의 의미를 알지 못해 키묘마루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러한 부분(勘所)을 판단하는 것은 실전 경험을 쌓지 않으면 터득할 수 없는 것인가, 하고 노부나가는 쓴웃음을 지었다.


"아자이도 아사쿠라도 도망치는 병사들은 나오겠지. 허나, 남은 병사들은 이미 배수(背水)의 진, 사병(死兵)이 되어 우리들을 덮쳐올 것이다. 사병의 강함은 네놈도 알고 있겠지. 예전에, 우리 군에서도 사병이 되어 싸운 자들이 있으니 말이다"


"아……"


그제야 겨우 키묘마루는 노부나가의 진의를 깨달았다. 제대로 준비하지 않고 상대를 지나치게 몰아붙이면, 단지 앞쪽에만 활로(活路)를 찾아 필사적이 되기 때문에 뼈아픈 반격을 당하는 경우도 있다.

고금동서를 막론하고 사병이라는 것은 아군이라면 든든하지만, 적이 되면 까다롭기 그지없는 존재이다.


"그렇다. 아사쿠라나 아자이의 병사들이 사병이 되어 우리들을 덮쳐올 가능성이 있다. 적이 적어지면 적어질수록 적을 두려워해야 한다. 그 두려움은 겁장이의 증거가 아니다. 그 두려움이 승리를 가져오게 되는 것이다"


"아버지의 심모원려(深謀遠慮)는 놀라울 뿐입니다. 천학비재(浅学非才)한 제 자신을 부끄러워하며 한층 더 정진하겠습니다"


"됐다, 누구나 잘못은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잘못을 인정하고, 스스로의 미숙함을 알고, 그것을 바탕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스스로의 실수를 감추고, 더군다나 남에게 떠넘기는 놈들은 평생 성장하지 못한다. 그런 놈은 일찌감치 베어버리는 쪽이 좋지"


거기서 이야기를 끝내더니, 노부나가는 무장들을 모아서 그들에게 선언했다.


"한동안 대치가 계속되겠지만 걱정하지 말아라. 곧 기회는 온다"




8월에 들어서 조금 상황이 움직였으나, 여전히 오다와 아자이-아사쿠라 사이는 교착상태에 빠져 있었다.

노부나가는 몇 번인가 아사쿠라에게 결전을 신청했으나, 요시카게는 전혀 응하지 않았다. 그 소심함(臆病っぷり)을 야유하면서 노부나가는 히데요시를 남기고 요코야마 성(横山城)으로 이동했다.

히데요시 군만 남았음에도 여전히 아자이-아사쿠라에게 움직임은 없었다.


"이거 참, 아자이도 아사쿠라도 틀어박혀만 있으니 재미없군요"


정시 보고(定時報告)를 받아든 히데나가(秀長)가 어깨를 으쓱하며 중얼거렸다. 단순한 대치도 지겨워지기 시작했다고 그는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그뿐만은 아니다.


"영주님은 뭐라고 하시더냐"


"여전히 감시만 하라, 주의를 게을리하지 마라, 입니다. 어째서 한번에 공격해 함락시키지 않는 걸까요"


마찬가지로 정시 보고를 받은 타케나카 한베에를 보면서 히데나가는 팔짱을 꼈다. 뭔가를 묻고 싶은 듯 보였지만, 타케나카 한베에는 그에 대해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노부나가로서는 지금부터 일어날 큰 일을 앞두고 가능한 한 병력을 줄이고 싶지 않았다. 그걸 알고 있었기에, 타케나카 한베에는 일부러 소극적으로 보이는 작전을 계속 취했다.


"이쪽이 약한 면을 보이면 그들은 얕보고 치고 나올거라 생각했습니다만…… 생각한 것보다 아사쿠사는 주위가 보이지 않는 듯 합니다"


"하핫, 이거 엄격하시군요. 하지만, 그의 소심함(弱腰) 덕분에 이쪽으로 변절한 사람은 몇 명이나 있습니다. 여긴 일단 계속 그대로 있어줫으면 하는군요. 물론, 무장으로서 전공은 세우고 싶습니다만"


"그 마음은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ーーーー"


타케나카 한베에게 뭔가를 말하려 했을 때, 거친 발소리가 그의 귀에 들려왔다. 그 뿐만이 아니라 히데나가 쪽도 발소리를 들었다.

지금 있는 장소에서 누군가의 귀에 들릴 정도로 거친 발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은 한 명 뿐이다.


"지금 돌아왔다ー. 하여튼, 인사하러 돌아다니는 건 피곤하구만"


"어서 오십시오, 형님"


히데요시였다. 그는 적당한 장소에 앉더니, 소성에게 차를 가져오도록 명했다.


"그래서, 아자이-아사쿠라에 움직임은 없느냐?"


묻지 않아도 알고 있는 것일까, 히데요시는 쓴웃음을 지으며 질문했다. 그 물음에 히데나가가 고개를 끄덕여 대답했다. 그걸 본 히데요시는 보라는 듯이 한숨을 쉬었다.


"아자이는 알겠지만, 아사쿠라는 뭘 하러 왔냐는 게다. 저놈들, 이대로 틀어박혔다가 겨울이 되면 에치젠으로 돌아갈 생각일까?"


"그 가능성이 가장 높겠지요. 겨울이 되면 길이 눈으로 막혀버리니까요. 그렇게 되면 그들은 눈이 녹을 때까지 귀국할 수 없게 됩니다"


"못해먹겠구만. 오, 수고했다. 차를 놔두고 물러가도 좋다"


이야기 도중에 소성이 차를 가져왔다. 히데요시는 쟁반에서 찻잔을 들어올리더니 그대로 한입 마셨다. 차갑다고 하긴 어렵지만, 여기저기 걸어다닌 몸에는 미지근한 차라도 맛있었다.


"뭐, 영주님께서는 감시만큼은 게을리하지 마라, 고 하셨다. 우리들은 그 명령을 따라 움직일 뿐. 몸이 녹슬지도 모르겠지만, 그건 그 뭐냐, 적당히 운동을 하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알겠습니다, 형님"


"좋아, 이야기는 이걸로 끝이다. 자, 오늘 저녁식사는 뭘까. 오랜만에 시즈코의 다이도코로슈(台所衆)가 있으니, 기대해버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겠지?"


히데요시의 말에 히데나가와 타케나카 한베에는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한편, 아자이-아사쿠라 침공에서 제외된 시즈코는, 오와리로 귀국하자 군을 해산시켰다. 8월은 더운 시기이기에, 훈련 자체는 느긋하지만 가볍다고는 하기 어렵다.

하지만, 케이지나 나가요시 등 무장급은 이야기가 다르다. 그들은 책임이 있는 입장이므로, 항상 혹독한 훈련을 받게 해둘 필요가 있다. 하지만 내용은 훈련이라기보다는 기합(シゴキ)에 가까웠다.

특히 나가요시는 모리 요시나리(森可成)가 직접 훈련을 시키고 있었다. 그 무시무시함은 보고있는 쪽이 불안해질 정도였다.


"뭐냐, 그 엉거주춤한 꼬락서니는! 그런 자세로 적을 처치할 수 있을거라 생각하느냐!!"


"주, 죽겠다…… 아니, 죽을소냐!"


"겨드랑이가 어설프다!"


"쿠엑!"


필사적으로 달라붙는 나가요시였으나, 요시나리는 용서없이 그를 때려눕혔다. 짜부러진 개구리 같은 소리를 내며 나가요시는 땅바닥에 쓰러졌다.


"몇 번이나 똑같은 실패를 하고 있는데, 네놈은 머리로 기억할 수 있을 정도로 똑똑한 짓은 못 한다. 모두 몸으로 기억해라. 안심해라, 몇 번을 잊어버리던 그 때마다 내가 몸에 새겨주마"


"어, 어디에 안심할 수 있는 요소가…… 제길! 이렇게 되면 오기로라도 아버지에게서 한 판을 따겠어!"


"좋은 기백이다. 하지만 몸이 따라오질 못하는구나!!"


"커흑!"


나가요시의 공격을 가볍게 피하더니 요시나리는 빈틈투성이가 된 그의 몸에 통렬한 일격을 후려쳤다. 치명적인 타격이었는지, 나가요시는 주위의 눈도 신경쓰지 않고 땅바닥에서 몸부림치며 굴렀다.

하지만 요시나리는 별로 신경쓰지 않고 추가 공격을 넣었다. 간발의 차로 회피한 나가요시였으나, 누가 봐도 만신창이인 것은 명백했다.

요시나리는 어깨를 다친 후 일선에서 물러난 몸이지만, 지금의 광경을 보면 지금이라도 전쟁터를 맡을 수 있는 게 아닐까 싶었다.


"어떻게 된 거냐, 늙어빠진 영감(耄碌爺) 한 명 쓰러뜨리지 못해서야, 네놈은 일개 병졸조차 되지 못한다"


"어, 어디가 늙어빠졌는지 묻고 싶은데. 하지만, 지금은 우슨 소릴 해봐야 소용없어…… 오늘이야말로 한 판을 따겠어어어어어!!!"


입 속에 고인 피를 뱉어내더니, 나가요시는 요시나리에게 돌격했다. 조금씩이긴 하지만 요시나리와 오래 치고받고는 있었다. 하지만 일기토의 응수(駆け引き)에서는 요시나리가 한 수 위였다.


"어설프다!!"


"크어억!"


결국, 오늘도 나가요시는 요시나리에게서 한 판도 따지 못하고 훈련을 마쳤다.




노부나가가 아자이-아사쿠라 침공을 하고 있을 무렵, 타케다는 열심히 정보수집을 하고 있었다. 적인 오다 군은 물론이고, 아군 측의 혼간지나 아자이-아사쿠라도 마찬가지로 조사하고 있었다.


"모두 영주님(御屋形様)이 예측하신 대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혜안이 정말 놀라우십니다"


"놈들은 내게 있어 장기의 말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게 말하면서 신겐(信玄)은 보고서를 근처로 하나씩 던져버렸다. 이미 알고 잇는 보고를 그는 새삼 확인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차례차례 보고서를 읽고 버리는 신겐에게 가신들은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아무리 열심히 조사한 내용도, '그 내용으로 보고가 올라올 것'이 마치 정해져 있었던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모두 버려질거래 생각했을 때, 신겐은 하나의 보고서를 손에 들었을 떄 움직임을 멈추고, 그대로 보고서를 펼쳐 내용을 확인했다.

신겐의 평소답지 않은 행동에 가신들 사이에 동요가 퍼져나갔다. 그러나, 신겐은 주위의 반응을 무시하고 말했다.


"귀국했다, 고?"


"예? 옛, 이번의 오다의 아자이 침공, 고노에(近衛)의 딸은 제외되었습니다. 적자의 첫 출전식에는 참가했습니다만, 그게 끝남과 동시에……"


"귀국시킨 이유는 무엇이냐"


"고노에의 딸은 너무 많은 무공을 세웠기에, 주위의 불만을 해소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가신이 말한 이유에 신겐은 납득하지 않았다. 노부나가의 성격이라면 반대로 시즈코에게 더 무공을 세우게 해서 주위의 무장들을 닥달하는 쪽이다.

무공을 너무 많이 세워서 전선에서 뺐다, 라는 건 표면적 이유(建前)이고 본심이 어딘가 감춰져있다고 생각하는 게 당연, 이라고 신겐은 생각했다.


(또 고노에의 딸인가. 오다 놈…… 무얼 생각하고 있느냐. 그리고 그 딸에게 어떤 힘이 숨겨져 있다는 거냐)


간자들을 닥달하여 시즈코의 정보를 수집하게 했으나,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어디를 찔러봐도, 하나같이 중요한 정보가 손에 들어오지 않았다.

주위에서는 니히메(仁比売)의 후계자라고 말하고 있으나, 니히메의 존재 자체가 노부나가의 정치적 공작이라고 신겐은 꿰뚫어보고 있었다.


"(오다의 꼬맹이치곤 제법이군. 하지만, 쓸데없는 짓을 하면 그건 반대로 주위에 의혹을 키우게 되지) 아시미츠인가 하는 쪽은 어떻게 되었나"


"옛…… 이게 도무지 어찌할 수 없는 자라서, 전혀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탁월한 기예의 소유주로, 힘으로 제압하려 했다가 반대로 당했습니다"


"빨리 처리하라. 아시미츠가 그 자라면 장기말의 가치가 올라간다"


그 말만 하고 신겐은 가신을 물리쳤다. 가신은 서둘러 물러나고, 그와 교대하듯 다른 가신이 신겐에게 다가왔다.


"영주님께 보고드립니다!"


"다 말할 필요 없다. 알고 있으니"


"예, 옛!"


보고를 하기 전에 모든 것을 꿰뚫려보인 것에 가신은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즉시 절을 하고는, 보고서를 쟁반 위에 놓고 서둘러 방에서 나갔다.

놓여진 보고서를 쳐다보지도 않으며 신겐은 생각에 잠겼다.


(뭐든지 기보(棋譜) 대로일 터이다. 그런데 무엇이냐, 이 불길한 설레임(胸騒ぎ)은)


신겐은 목구멍에 걸린 생선가시 같은 위화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걸 없애려고 그는 원인을 찾았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가슴의 답답함이 풀리지 않았다.




아시미츠는 동행(伴)도 없이 혼자 걷고 있었다. 최근에는 자신의 주위에조차 간자가 얼쩡거리고 있었기에, 그놈들을 처분하는데는 혼자인 쪽이 편하기 때문이다.

한동안 정비된 길을 걷고 있자, 전방에 사람 그림자가 보였다. 눈을 가늘게 뜨고 자세히 보자, 여자가 한 명 주저앉아 울고 있었다.

하지만, 아시미츠가 볼 때는 길바닥에 굴러다니는 돌멩이 레벨이었다. 안색 하나 바꾸지 않고 그는 걸음걸이를 늦추지 않고 걸었다. 그리고 훌쩍훌쩍 울고 있는 여자의 옆을 그냥 지나쳤다.

10발자국 걸었을 때 여자의 울음소리가 사라졌다. 정확히는 거짓 울음을 그쳤다, 라는 것이다.


"여자의 눈물조차 그냥 지나치는 건가. 소문대로의 남자네"


아시미츠는 발을 멈추었으나 뒤돌아보지는 않았다. 하지만 등 뒤에서 땅바닥에 앉아있던 여자가 천천히 일어서는 것을 감지했다. 여자는 뒤돌아보지 않는 아시미츠에게 딱히 불만을 느끼지도 않고 말을 이었다.


"우리 영주님께서 하실 말씀이 있으시다. 슬슬 좀 편지를 받아줬으면 하는데"


그제서야 아시미츠는 뒤를 돌아보았다. 여자는 뒤돌아본 아시미츠에게 만족스러운 웃음을 띄우면서 품 속에 넣어두었던 편지를 꺼내 그에게 내밀었다.

빼앗듯이 편지를 손에 쥐더니, 아시미츠는 곧장 편지를 찢어버렸다. 갈기갈기 찢어진 편지의 파편을 버리더니, 깜짝 놀란 여자의 얼굴에 주먹을 후려쳤다.


"뭐냐, 이 쓰레기는. 쓰레기 주제에 사람의 말을 하는 건가"


맞고 날아가서 고통으로 신음하는 여자의 머리카락을 잡더니, 가까이 있던 나무 등걸까지 끌고갔다.

이빨이 부러지도, 코에서 피를 흘리며, 머리카락을 잡아끌리는 고통을 겪고 있던 여자였으나, 시야에 들어온 나무 등걸을 보고 지금부터 그가 무엇을 할지 이해했는지, 안색이 순식간에 새파래졌다.


"그, 그만……"


여자는 마지막까지 말을 맺지 못했다. 그 전에 아시미츠가 여자의 얼굴을 나무 등걸에 내려찍었다. 한 번 뿐만이 아니었다. 두 번, 세 번, 여자의 얼굴을 나무 등걸에 내려찍었다.

파열음이 축축한 소리로 바뀌었을 무렵, 붙잡고 있던 여자의 머리카락을 놓았다. 피와 체액과 육편이 뒤섞인 웅덩이에 여자는 얼굴을 처박았다.

그 자리에서 경련하고만 있는 여자를 아시미츠는 차가운 눈으로 내려다보았다. 이윽고 여자의 경련이 멈추었을 무렵, 아시미츠는 여자에게 흥미를 잃고 그대로 방치한 채 자리를 떴다.


아시미츠가 떠나가고 잠시 시간이 흘렀을 무렵, 어딘가에서 두 명의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남자들은 조용히 여자가 있는 곳까지 걸어왔다.

한 명이 여자의 목에 손을 대고, 그리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틀렸군"


"들은 것보다 더한 냉혹함이군. 여자라고 해도 적이라면 관계없다, 는 건가"


남자들은 서로 마주보고 고개를 끄덕인 후, 여자의 시체를 눈에 띄지 않은 위치로 이동시켰다. 신분을 나타내는 것은 무엇 하나 가지고 있지 않게 했지만, 시체를 방치해 둘 수도 없었다.


"다음 방법을 생각해야겠군"


시체를 치운 남자들 중 한 명이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 말에 다른 한 명의 남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상하게 생각한 남자가 동료 쪽으로 얼굴을 돌리자, 그곳에는 경악스러운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작전이 실패했을 경우, 얼마나 재빨리 현장에서 도망칠 수 있는가가 생존의 비결이다"


경악한 표정을 짓는 남자에게, 아시미츠는 안색 하나 바꾸지 않고 말했다. 남자의 동료는 목이 정상적이지 않은 방향으로 꺾여 있었다.


"타케다의 쓰레기냐, 아니면 호죠(北条)의 버러지냐. 어느 쪽이든, 내 주위를 캐고 다니는 놈은"


말이 끝남과 동시에 아시미츠는 남자를 베어버렸다. 전광석화 같은 발도가, 아직도 멍해 잇던 남자의 몸을 뼈까지 갈라버렸다.


"예외없이 벤다. 언젠가 동료들도 뒤따라갈 것이다. 안심하고 죽어라"


남자의 몸에서 피가 간헐천처럼 뿜어져나왔으나, 아시미츠는 말없이 칼을 집어넣고는 조용히 떠나갔다. 뒤에 남겨진 것은 세 구의 시체 뿐이었다.




시즈코 군의 면면은 순조롭게 훈련을 하고 있었다. 멀리서 간자들이 감시하고 있는 것은 알고 있지만, 훈련 내용 자체가 알려져봤자 큰 문제는 되지 않을 거라고 시즈코는 생각하고 있었다.

애초에 간자들은 시즈코가 병사들에게 시키고 있는 훈련이 대체 뭘 목적으로 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위에 보고해봤자, 쓸데없이 혼란을 가중시킬 뿐 요령부득이다.

이건 예언자(予言者)가 어떻게라도 받아들여질 수 있는 애매한 표현을 쓰는 것과 비슷하다.

그들이 설령 미래를 엿보았다고 해도,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것을 표현하려면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예로 든 요령부득의 표현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좋은 경향이네. 이거라면 12월까지는 맞출 수 있겠어"


병사의 체력 측정 데이터를 확인한 시즈코는, 12월까지는 충분한 성과가 있을 것을 확신했다. 다른 데이터도 문제없어서, 병사들의 기초체력 향상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병사들 측에서 보면 다소 수수께끼로 느껴지기도 했지만, 매일 훈련하는 것만으로 돈을 받을 수 있으니 불만을 말하는 일은 없었다.


이 무렵, 시즈코는 병사들 같은 훈련은 하고 있지 않았다. 물론, 몸이 녹슬지 않을 정도로는 훈련을 하고는 있었으나, 무장들이 하고 있는 힘든 훈련은 받고 있지 않았다.

병사들이나 무장들이 볼 때는, 시즈코가 앞으로 나서는 건 심장에 좋지 않으니 가능하면 후방에서 지휘를 했으면 좋겠다, 라는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 판단이 서지 않았으나, 어쨌든 태반의 무장들이 바란다면 어쩔 수 없지, 라고 생각하여 시즈코는 후방에서 지시를 내리는 방향으로 조정했다.


"뭐 수수께끼지만, 깊이 생각하는 건 그만두자"


시즈코가 할 일은 그 밖에도 많아서, 그 중의 하나인 쌓여있는 서류를 처리했다. 화압(花押)을 가지고 있는 시즈코였으나, 역시 인감(印鑑)쪽이 간편했기에 오직 도장(押印)만 찍고 있었다.

하지만 영주(国人)나 공가(公家)와는 달리, 시즈코는 먹으로 날인하는 흑인장(黒印状) 쪽이었다. 인판장(印判状)이라고는 해도 정식 서류로 취급된다.

서류의 내용을 확인하고, 문제가 없으면 날인, 문제가 있으면 의문점을 기재하여 되돌려보냈다. 대량으로 쌓여 있던 서류가 순식간에 처리되었다.

처리가 끝난 서류를 소성들에게 명하여 다음 공정으로 넘겼다.


"아ー, 끝났다 끝났어. 사무처리라는 건 피곤하네"


어깨를 통통 두드리면서 시즈코는 굳어버린 몸을 풀었다. 일이 끝나자마자 입구를 재주좋게 열어젖히고 비트만들이 들어왔다.

시즈코가 일하는 중에는 방해하지 않지만, 일이 끝나면 사양할 필요없이 마음껏 시즈코에게 어리광을 부리는 비트만들이었다.

일하는 중이던 말던 마이웨이를 관철하는 마눌고양이 마루타(丸太)는 언제나의 정위치(定位置)에서 대자로 뻗어 자고 있었다.

터키시 앙골라인 타마나 하나, 설표인 윳키, 시로초코는 고양이과답게, 들어오고 말고는 자기 마음대로였다. 오늘은 웬일로 시로초코가 들어왔다.

들어왔다고는 해도, 적당한 곳에 앉더니 내키는대로 쉬고 있는 것 뿐이지만.


"내 방은 휴게소가 아니거든"


그렇게 말하면서 카이저의 등에 엎드려 북슬거림을 만끽하는 시즈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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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

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겐키(元亀) 3년 결전(決戦), 미카타가하라(三方ヶ原) 전투


090 1572년 7월 하순



스크류 선박에는 과제가 남았지만, 스털링 엔진, 고로(高炉) 및 그에 부수되는 시설들 모두 큰 트러블 없이 무사히 시운전을 완료했다.

그 때문에 시즈코는 휴 하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중대 안건이 일단락되자 마음에 약간 여유가 생겼기 때문인지, 미뤄두고 있던 어떤 시설의 시찰 시기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 떠올랐다.

이쪽은 이미 본격 가동되고 있었기에 무슨 일이 있어도 시찰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조직의 수장이라는 입장상 방치해둘 수도 없어 시즈코는 케이지(慶次) 들을 데리고 공장으로 향했다.


"휘익ー, 이쪽도 크구만"


고로의 시설도 거대했지만, 이번에 시찰하는 시설ー오다 가문이 설립한 '제사(製糸) 공장'ー은 광대한 부지를 가진, 다른 의미에서 거대한 시설이었다.

공장의 부지는 네 개의 구획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종업원들이 사는 거주구획(居住区画), 학교에 병원, 보육소, 상점, 음식점 등이 있는 상업구(商業区)라고도 불리는 지원구획(支援区画), 누에(蚕)의 사육에서 누에고치(繭)의 건조까지의 공정을 담당하는 누에 생산구획(蚕生産区画), 외부에서 반입되는 삼베(麻)나 목면(木綿)의 섬유, 건조를 마친 누에고치로부터 실을 뽑아내는 조사구획(繰糸区画)이다.


"유리랑은 달라서 양산이 절대적 요건이었으니 년 단위로 시간이 걸렸는데…… 지금은 오와리(尾張) 굴지의 대규모 시설로 오다 가문 내에서는 유명한 장소야"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시즈코 일행은 공장의 정문을 통과했다.

이미 하나의 마을(街)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규모의 공장이었으나, 다른 사람들의 출입이 전제된 마을과는 달리 관계자 이외에는 출입이 허용되지 않는다.

그 중에서도 정문을 이용할 수 있는 것은 노부나가나 시즈코 등 공장 운영에 관계하고 있는 사람들 뿐이다.

시설 내에서 살고 있는 종업원들이나 물자의 반입/반출을 담당하는 사람들도 뒷문이나 옆문을 이용해서 출입하는 것이다.


"우선 누에치는 방(蚕室) 부터 보도록 하죠"


시즈코가 그렇게 말하자, 공장의 책임자인 공장장이 직접 누에치는 방이 있는 구역으로 안내했다.

노부나가를 창업자 겸 사장으로 친다면 시즈코는 영업 총괄 본부장에 필적하는 입장이기에, 공장에서는 최종 책임자인 공장장도 다급하게 달려와 안내역을 맡고 있는 것이다.


누에치는 방은 합계 14동(棟)이 있었다.

10개 동이 통상의 누에를 사육하는 동, 2개 동이 누에 알을 부화시켜 2령(齢)이 될 때까지 사육하는 동, 1개 동이 인공 사료나 품종 개량의 연구를 하는 연구동, 그리고 마지막 1개 동이 특수한 누에 품종인 '코이시마루(小石丸)'를 사육하는 동이다.

누에는 발육 정도를 나타나는 말로서 '잠령(蚕齢)'이라는 것이 있다.


알에서 부화한 누에는 전신에 털이 나 있어 애누에(毛蚕)나 까만 색이라 개미(蟻)처럼 보이기 때문에 애누에(蟻蚕, ※역주: 蟻는 개미라는 뜻의 한자)라고도 불리는 상태를 1령으로 세고, 첫 탈피(脱皮)를 마친 것을 2령, 이후 탈피를 거듭할 때마다 3령, 4령으로 부르며, 누에고치를 만드는 단계까지 성숙한 개체를 5령이라고 부른다.


1개 동마다의 사육 수는 무려 2만에서 3만에 달한다. 5월부터 11월이라는 한정된 기간에 1년분의 견사(絹糸)를 확보하려면, 그만큼 많은 누에고치를 준비할 필요가 있기 떄문이다.

누에의 먹이라고 하면 뽕나무(桑) 잎이지만, 여기서는 시험적으로 인공 사료도 사용하고 있다.

인공 사료는 건조시킨 뽕나무 잎을 가루로 만든 것을 주재료로 하여, 옥수수의 전분이나 기름을 짜낸 후의 탈지대두(脱脂大豆)를 가루로 만든 것, 비타민 종류를 보충하기 위한 메밀(蕎麦) 가루, 유자(柚子) 껍질을 건조분쇄한 가루 등을 혼합했다.

신선한 뽕나무 잎을 얻을 수 있는 현재 상황에서는 필요성이 낮지만, 만에 하나를 대비하여 연구를 하고 있는 것이다.

가루 상태로 되어 있기에 장기 보존이 가능하며, 저장 장소도 크게는 차지하지 않는 이점이 있다.

인공 사료로의 사육과 병행하여, 누에의 생태에 관해서도 자세히 연구되고 있다. 생산성 향상이나 품종 개량을 위해서는 빼놓을 수 없는 연구이다.


그리고 통상 품종과는 다른 계열에서 사육되고 있는 코이시마루는, 나라(奈良) 시대 때부터 사육되기 시작한 누에의 품종이며, 현재의 품종의 선조라고도 할 수 있는 존재이다.

일본에 옛부터 있는 재래종(在来種)인 코이시마루는, 대단히 가늘면서도 질 좋은 실을 자아낸다. 그 실은 힘있는 탄력과 비할 데 없는 광택을 겸비하여, 현대에서도 최고급의 견사로 친다.

반면, 통상의 누에보다 누에고치 하나당 채취할 수 있는 실이 짧아, 통상 품종이라면 평균 1300m에서 1500m 정도가 되는 데 반해, 코이시마루는 길어봤자 500m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게다가 산란수도 적고 질병에 약하기 때문에 다른 누에와는 환경을 구별하여 사육해야 하므로, 대량 생산에는 적합하지 않은 품종이기도 하다.

이러한 디메리트만 눈에 띄는 코이시마루지만, 그 견사로 짠 직물은 다른 것과는 한 획을 긋는 광택과 탄력을 가지기 떄문에, 최고급품으로서 항상 수요가 끊이지 않는다.


"점심때라서 아무도 없네요"


누에는 2령이 되면 아침과 저녁에 두 번, 먹이의 교환과 사육상자의 청소를 한다.

누에의 사육상자는 뚜껑이 없는 나무 상자의 바닥에 누에섶(蚕籠)을 놓고, 잠망(蚕網)을 덮어씌우고, 그 위에 먹이가 되는 뽕나무 잎을 빽빡히 깔고, 마지막으로 누에를 올려놓는다.

누에의 사육방법은 잠령에 따라 구별되며, 1령에서 3령의 누에에게는 뽕나무 잎을 가로세로 1cm 크기로 잘라준다.

청소 방법도 간단하여, 누에 위에 새로운 뽕나무 잎을 놓은 잠망을 덮어씌운다. 그 상태로 30분 정도 기다리면, 누에는 새로운 먹이가 있는 잠망으로 이동한다.

이 새로운 잠망을 다른 누에섶 위에 덮어씌우고, 이동하지 않은 누에를 옮긴 후, 오래된 뽕나무 잎이나 탈피한 껍데기, 똥이 쌓인 누에섶을 청소하고 다음 이동에 대비하면 된다.


4령부터는 가지뽕 사육(条桑育)이라는 방법을 채용하고 있다. 뽕나무를 가지째로 잘라, 그 상태 그대로 누에의 먹이로 주는 사육법이다.

먹이주기와 청소는 아침저녁 두 번으로 변함이 없지만, 4령에서 5령에 걸쳐 몸 길이가 단번에 커지기 때문에 과밀함을 피하여 사육 상자를 2개 사용해 사육을 계속한다.

청소 방법은 2령부터 변하지 않지만 먹는 먹이의 양이 늘어나므로, 점심때 먹이의 양을 체크할 필요가 있다.


통상의 양잠농가(養蚕農家)라면 아침저녁은 누에를 돌보고, 낮에도 뽕나무에 달라붙어야 하기 때문에 한산한 시기 이외에는 하루종일 바쁘게 일하게 된다.

그러나 뽕나무 밭을 밖에 두고 매일 신선한 뽕나무 잎이 운반되어오는 이곳은 다르다.

아침저녁은 변함없이 바쁘지만, 점심때는 먹이가 남은 상황을 확인하고, 적을 경우 보충하는 정도 외에는 거의 할 일이 없다.

5령쯤 되면 영견(営繭, 누에고치 만들기)에 대비해 성대한 식욕을 발휘하기 때문에, 빈번하게 먹이를 보충해주고 영견을 시작하려고 하는 누에가 없는지도 체크할 필요가 있다.

현재 시즈코들이 시찰하고 있는 장소는 4령의 누에가 사육되고 있는 구역이다. 그리고 얼핏 보기에는 저녁 때까지 충분한 먹이가 사육 상자에 준비되어 있었다.

딱히 문제가 없는 상황이었으나, 공장장은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아, 아하하, 이게 참, 갑작스럽게 이야기를 들어서…… 말입니다"


공장장이 비지땀을 닦으며 변명했다. 그가 쩔쩔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왜냐하면 시즈코가 시찰하기 전에 기습적으로 공장을 시찰했던 노부나가가, 공장 내에 감도는 이완(弛緩)된 분위기에 불쾌감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덕분에 공장장 이하 몇 명의 책임자들은 노부나가에게 직접 설교를 듣고, 더 긴장감을 가지고 일에 종사하라는 꾸중을 들은 참이었다.

시즈코가 정한 복무규정에 일정한 품질과 생산 숫자를 유지한다면 근무 태도는 불문에 붙인다는 조항이 없었다면, 몇 명의 목이 물리적으로 날아갔을 가능성까지 있었다.


"딱히 신경쓰진 않아요. 생산량을 유지한다면, 의 이야기지만요"


안도한 공장장에게 못을 박아두면서도 시즈코는 다음 사육 공정으로 이동했다.

누에는 부화한지 약 3주일 후에 영견을 시작할 시기에 도달한다.

그 무렵의 누에를 숙잠(熟蚕)이라고 부르며, 먹이를 전혀 먹지 않게 된다. 몸은 체내의 견사선(絹糸腺)에 모인 견물질(絹物質)이 체표(体表)를 통해 보이면서 암황색(暗黄色)으로 보이게 되며, 그 때 약간이지만 몸이 줄어든다.

그렇게 된 개체는 뽕나무 잎째로 이동시킨 후, 위에서 그물망을 덮어놓는다. 그렇게 되면 답답한 공간에서 도망치려고 누에가 그물망 사이를 통해 위로 이동하나다.

딱 좋게 이동했을 때 그물망째로 걷어올리면, 누에의 배설물과 뽕나무 잎, 그리고 그물망에 얽힌 누에를 분리할 수 있다.


영견하는 누에와 쓰레기의 분리가 끝나면, 다음은 상족(上蔟)을 한다. 짚 등으로 엮은 섶(蔟, ※역주: 잠족(蠶蔟)이라고도 함)이라 불리는 그물망에 누에를 옮기는 작업이다.

수십마리 정도라면 한 마리 한 마리 수작업으로 옮겨도 문제없지만, 수만 마리를 상족시키는 경우에는 방대한 노력을 필요로 한다. 이것을 줄이는 방법이 회전족(回転蔟) 이다.

회전족에는 특수한 섶을 사용한다.

바깥틀과 안틀이라는 크기가 약간 다른 두 개의 나무 틀을 금속 부품(金具)으로 십자로 교차하도록 고정하고, 거기에 미닫이문(障子) 처럼 격자 형태로 짜인 섶을 여러 단 설치하여 금속 부품으로 고정한다.

이 격자 하나하나에 누에가 들어가 누에고치를 만들게 된다.

회전족의 핵심은, 섶을 매달아서 누에 자신에게 격자 틀 속으로 이동하게 하는 점이다. 원리는 단순하여, 우선 회전족에 일정 숫자의 누에를 올려놓고 매단다.

누에는 안전한 영견 장소를 찾아 섶 안의 칸에 한 마리씩 들어간다.

칸에 들어가지 않은 누에는 안전한 장소를 찾아 위로 이동하고, 누에가 한 곳에 너무 많이 모이면 누에 자신의 무게로 중심이 이동하여, 이윽고 회전족 자체가 바깥틀과 안틀을 고정하고 있는 금속 부품 겸 회전축을 중심으로 빙글 하고 반회전한다.

그렇게 되면 위에 있어야 할 누에들은 자신이 아래로 이동한 것을 깨닫고, 다시 위를 향해 올라가는 과정에서 칸을 발견해 영견을 시작한다. 이것이 반복되며 모든 누에가 균등하게 칸에 들어간다.

물론 회전하는 기세로 떨어지는 누에도 있지만, 회전족 아래에는 약간 떨어진 곳에 천(布)이 펼쳐져 있어, 떨어져도 다시 사람이 회전족으로 옮겨주면 문제없이 영견을 해준다는 구조이다.


떨어진 누에를 보조하는 것 이외에는 내버려둬도 문제없는 것처럼 보이는 작업이지만, 이 때의 온도와 습도 관리가 대단히 어렵다.

누에고치의 품질은 상족 후 3일에서 4일째에 결정되기 때문에, 이 작업이 가장 신경을 소모한다.

상족하는 계절에 따라 적절한 기온과 습도가 변하기 때문에 주의할 필요는 있지만, 대략 7일에서 8일째에 고추따기(収繭)라고 부르는, 섶에서 누에고치를 뗴어내는 작업을 한다.

누에고치를 만드는 게 느린 누에도 있기에, 공장에서는 누에가 누에고치를 만들기 시작한지 10일 후에 고추따기를 하는 것으로 정해져 있다.


누에고치를 떼어내는 작업은 풀솜벗김틀(毛羽取り機)이라는 기계를 사용한다. 이것은 섶에서 누에고치를 떼어내고 누에고치에 붙어있는 보풀(毛羽)을 제거하는 기계이다.

누에고치의 보풀이란, 누에가 섶에 누에고치를 만들 때, 발판(足がかり) 삼아 뱉어낸 실이나 쓰레기 등을 가리킨다. 이것을 남겨두면 누에고치끼리 엉키거나 하기 때문에 제거할 필요가 있다.

역사적 사실에서도 기계가 존재하지 않던 시대에는 누에고치 긁개(繭掻棒, ※역주: 의역임)라고 불리는 도구로 섶에서 누에고치를 떼어내고, 누에고치에 붙어있는 보풀을 손으로 돌리는 방식의 풀솜벗김틀(毛羽取り器, ※역주: 한자가 달라 구별하기 위해 원어를 병기함)로 제거했다.

이 공장에서도 수동이기는 하나 누에고치 긁개와 풀솜벗김틀(毛羽取り器)을 준비해두고 누에고치의 회수와 섶에 붙어있는 보풀을 제거하는 공정을 한 번에 수행하기 떄문에 효율은 비약적으로 높아졌다.

제거된 보풀은 삶아서 씻은 후 이불 솜(中綿) 등에 쓰인다.


"현재는 마침 누에고치가 만들어지고 있는 시기네요. 가동 상황을 확인하려고 생각했는데 어쩔 수 없네요. 마지막 건조실로 가죠"


섶에 누에를 올려놓은 날짜를 확인하자, 아직 고추따기를 할 날이 아니었다. 설정된 날자는 며칠 후였기에, 지금부터 보여달라고 할 수도 없었다.

올라오는 견사의 품질에 문제는 없었기에, 특별히 문제는 없을거라 판단하고 시즈코는 마지막 작업인 건조실로 향했다.


"예, 옛!"


공장장이 식은땀을 흘리며 대답했다.


건물(棟)에서 나오자, 시즈코는 근처에 있는 굴뚝이 있는 건물로 들어갔다.

누에고치는 그냥 놔두면 안쪽의 번데기(蛹)에서 성충(成虫)이 누에고치에 구멍을 내고 나와버린다. 이걸 막기 위해 약 100도 가까운 열풍을 6시간 정도 쬐어 건조시킬 필요가 있다.

이에 따라 누에고치 안의 누에가 죽고, 누에고치인 상태로 장기 보존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참고로, 열풍을 쬐는 설비가 없는 경우에는, 며칠 냉동시켜서 누에를 죽게 한 다음 천일(天日) 건조하는 방법도 있다.


"흠흠, 여기서 건조시킨 걸 자루에 담아서, 마지막으로 저온에 습기가 적은 창고(蔵)에 보관되는 거군요"


"예, 옛. 그런 순서로 하고 있습니다, 예"


건조를 마친 누에고치는 일단 창고에 보관된다. 양잠(養蚕)은 5월에서 11월까지 동안만 할 수 있기에, 그 동안에 1년 내내 견사를 생산할 수 있도록 1년분의 누에고치가 준비된다.

따라서 누에를 키우기만 하는 것이라면 공장 외의 장소에서도 하고 있다.

생산 거점을 늘리지 않고 집중형의 공장으로 만든 이유는, 완전히 폐쇄된 환경에서 일관적인 생산이 가능하고, 그리고 생산 공정에서 발생하는 여러가지 것들을 순환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순환형 공장에서는 생산물에 부산물, 폐기물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남김없이 재활용한다. 특히 누에는 '누에님'이라고 부를 정도로 버릴 게 없다.

평소라면 폐기되는 먹고 남은 먹이나 똥, 탈피한 껍질, 수확했을 때의 뽕나무 부스러기 등은, 건조시켜서 섞으면 비료나 가축의 사료가 된다.

특히 누에의 똥을 건조시킨 것은 잠사(蚕沙)라고 하는 한방약(漢方薬)이 되기도 한다. 현대의 아이스크림이나 녹색 껌(gum)의 녹색 색소는 잠사에서 엽록소를 추출하여 이용하고 있다.


재활용하는 것은 딱히 누에나 뽕나무 뿐만은 아니다. 사람의 배설물이나 남은 식재료도 재활용한다. 기본적으로는 비료로서 재활용한다. 견사를 뽑은 후에 나오는 누에의 번데기는 잉어(鯉)의 먹이로 이용한다.

비료는 공장 밖에 있는 논밭에 이용되거나, 또는 다른 마을에 낮은 가격으로 판매하거나 한다.


공장은 그밖에도 누에고치나 목면(木綿), 삼베에서 실을 뽑는 구역이나, 기직(機械織り) 등으로 천을 짜는 구역도 있지만 이번에는 양잠 구역만 시찰하였다.

시즈코는 서류가 보관되어 있는 공장장들의 공장장관(工場長館)으로 이동했다. 그곳에서 작업 보고서나 일지(日誌), 대장(台帳), 문제가 발생했을 때의 원인과 대책을 정리한 것 등, 다양한 서류를 확인했다.


"공장 내부의 청소 상태 등의 직장 환경, 도구 손질, 서류 기록을 확인하는 한 딱히 문제는 없습니다"


그 순간, 공장장 이하 간부들은 휴 하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개중에는 성대하게 한숨을 쉬며 안도하는 자도 있었다.

저번의 노부나가의 시찰이 어지간히 무서웠던 걸까, 하고 시즈코는 내심 생각했으나 입 밖으로 내어 물어보면 그들이 곤란해하기에 의문을 도로 삼켰다.


"이번에는 양잠 구획만 하고, 다른 구획은 나중에 시찰하기로 할게요"


"예, 옛.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아 맞다. 현 시점에서의 견본장(見本帳)을 꺼내 주세요. 영주님께 문양(文様)이나 무늬(柄)의 설계를 검토받겠습니다"


하지만 안도한 것도 순간, 다시 그들은 긴장 상태로 빠져들었다.

견본장이란 공장에서 생산되는 견사나 목면, 삼베 등으로부터 만들어지는 천(生地)을 작게 잘라서 대지(台紙)에 붙인 장부(帳面)이다.

현대의 컬러 인쇄된 카탈로그나 리플릿(leaflet)과 달리, 진짜 천이 붙어 있기에 색감(色合い)이나 촉감, 소재의 질감을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아무리 고품질의 소재를 사용해서 옷을 만들어도 팔리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하지만 견본이라고는 해도 옷 한벌쯤 되면 방대한 양의 실을 소비하게 된다.

그래서 색감이나 질감, 무늬(図柄) 등을 확인할 수 있는 최소 단위의 작은 조각을 여러 개 준비하여, 견본장으로서 제시하여 디자인을 확인한 후에 주문을 받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고객은 생각한 대로의 옷을 얻을 수 있고, 제작하는 쪽은 쓸데없는 소비가 없어 양쪽에 이득이 되는 구조라고 할 수 있다.

그 때문에 견본장은 옷, 나아가서는 소재인 실의 매상을 좌우하는 중요한 자료로 간주되며, 1년에 최저 한 번은 갱신된다.

견본장에 없는 디자인의 옷도 만들어지고는 있지만, 주문을 받은 장인이 처음부터 만들기 때문에 납품될 때까지 긴 시간이 걸린다는 결점이 있었다.


"이쪽이 견본장입니다"


"고마워요"


공장장으로부터 견본장을 받아든 시즈코는 가볍게 안을 확인했다. 이미 디자인 패턴은 200종류를 넘고 있었다.

실제로 얼마나 팔리고 있는지는 다른 이야기지만, 적어도 그만한 숫자의 디자인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점을 증명하고 있다.


"그럼 오늘 시찰은 이걸로 종료합니다"


견본장을 품에 안고, 굳어 있는 공장장들에게 시즈코는 그렇게 말했다.




저택으로 귀가한 시즈코는 견본장의 내용을 확인했다. 모양은 물론이지만 염색의 견본장이기도 하다.

이건 사람에 따라 '짙은 색'이나 '옅은 색'에 대한 이미지가 다른 것이 원인이다. 하얀 천과 색(色) 견본장을 사용하면, 필연적으로 완성된 것이 '생각했던 것과 다르다'는 '색의 미스매치'가 발생한다.

이것을 피하기 위해, 색 견본장은 염색한 천을 붙여놓았다. 하지만, 이래도 색의 미스매치는 발생해버린다.


천의 염색방법에는 다양한 수법이 있으며, 그에 따라 색감이 미묘하게 달라지므로 생각했던 색과 다른 색감으로 보여버린다.

또, 사람의 눈은 같은 색이라도 작은 천쪼가리를 본 후에 옷감(反物)을 보게 되면 농염(濃淡)이 다르게 느껴버린다.

이런 요소들이 겹쳐서 완성된 옷감에 대해 구매자는 생각했던 것과 다르다고 느끼게 되어버리는 것이다.

현재, 하얀 천과 색 견본장이 아니라, 완성된 옷감을 구매자에게 고르게 하는 이유는, 완성된 것에 대해 구매자가 색감이 다르다고 느끼게 하는 것을 최대한 방지하기 위한 대책이다.


"뭐ー, 이 시대에선 색감이 다르다느니 뭐니 하는 소리 할 상황은 아니지만 말야"


색의 미스매치라고 했지만, 바꾸어 말하면 구매자에게는 '약간의 색의 차이'를 구별할 수 있는 섬세함이 있다고도 할 수 있다.

현재 시즈코의 고객 중 그만큼 섬세한 인물은 없지만, 이후에도 없을 거라고는 단언할 수 없다.


"그러고보니, 저번에 완성된 옷, 착용감(着心地)을 확인하지 않았었던가"


시즈코는 옷(着物), 정확히는 화복(和服)의 기원이 된 코소데(小袖)의 착용감을 확인했다. 갈아입고 잠시 음음거리며 살핀 후, 겉옷(羽織)을 입고 다시 상태를 확인했다.


"어ー이, 시즈코. 심심하구나, 같이 심심풀이를 하거라"


큰 거울(姿見) 앞에서 옷의 완성도를 확인하고 있짜니, 오이치(お市)가 사양하는 법도 없이 출입문을 열어젖혔다.

시즈코에 대한 배려고 나발이고 없었지만, 지적해봤자 개선될 리도 없다. 애초에 오이치의 자유분방함은 노부나가도 포기하고 있는 것이므로.


"뭐냐, 그 희한(珍妙)한 차림새는"


수수(地味)한 화살깃(矢羽根) 문양(矢絣(야가스리)라고도 함) 코소데, 그 위에 감색(紺色)에 꽃잎을 수놓은 금자수(金刺繍)의 겉옷(羽織)을 입고 있는 시즈코를 보고 오이치가 괴이쩍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금자수라고 해도 선명하게 빛나는 것은 아니고, 나쁘게 말하면 칙칙한 색감, 좋게 말하면 침착한 색감이었다.


"희한하다니 실례네요. 세상의 유행을 앞서가는 복장이라고요"


"그러냐. 하지만 지금은 유행하고 있지 않는 것이지? 그러니 희한한 차림새라고 할 수 있겠구나"


"큭, 아픈 곳을. 그래서, 무슨 용무이신가요?"


냉정한 지적에 반론할 수 없었던 시즈코는, 머리를 긁으며 화제를 돌렸다.

오이치도 그렇게까지 신경쓰던 것은 아닌 듯, 용무를 묻자 그제서야 생각났다는 듯한 표정으로 양손을 짝 하고 쳤다.


"오오, 그랬지. 심심하니 함께 심심풀이를 하거라"


"바쁘니까 사양하겠습니다. 지금부터 서신의 확인을 해야 하니까요"


"뭐냐, 재미없구나. 가끔은 일을 잊고 노는 것도 중요하노라"


"그냥 본인께서 놀고 싶으신 거죠? 어쨌든, 일을 처리하지 않으면 아야(彩) 짱에게 혼나니까, 놀이 상대는 다른 사람을 찾아주세요"


"안 된다, 나는 심심하느니라"


이 자기본위를 지탱하는 절대적인 자신감은 어디서 오는 것인지 머리가 아파진 시즈코였다.

하지만 입씨름(押し問答)을 해봤자 오이치가 포기할 거라고는 도저히 생각되지 않았다. 그건 1년 가까이 알고 지낸 시즈코에게도 충분히 짐작되었다.


"애초에 한가하시다면 자녀분들 상대를 해 주세요"


"아무 걱정도 필요없다. 유모에게 맡겨놓았느니라"


"아…… 그러신가요"


무슨 말을 해도 무리라는 것을 깨달은 시즈코는, 포기하고 오이치의 심심풀이에 함께하기로 했다.




7월 10일, 시즈코는 어떤 용무로 쿄(京)로 향했다. 노부타다(信忠, 키묘마루(奇妙丸))의 첫 갑주 착용식(具足始の儀)이 19일로 결정되었기에, 그 전에 어떤 거래를 처리해두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진주(真珠)의 거래였다. 진주의 질과 생산량을 계산한 결과, 이듬해부터 안정적인 공급이 가능하다고 시즈코는 판단했다.

지금까지는 상인에게 매각하고, 그 후 종교 세력(寺社)이나 무가(武家)들을 상대로 판매되었다. 그러나, 이번에 시즈코가 손에 넣고 싶은 판로는 해외, 즉 유럽 각국이었다.


진주는 인류가 최초로 마주친 보석이라고 한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진주는 '토리하마 펄(Torihama Pearl)'이라고 불리는 약 5500년 전의 죠몬(縄文)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위지왜인전(魏志倭人伝), 고사기(古事記), 일본서기(日本書紀), 만엽집(万葉集) 등에도 진주의 기술이 보이며, 나라(奈良) 시대의 보물로서 쇼소인(正倉院)에 보존 상태가 좋은 진주가 4000개 이상이나 보관되어 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진주는 페르시아 만이나 홍해(紅海), 스리랑카 주변에서 나는 천연 진주인 오리엔탈 펄(Oriental Pearl)이다.

이쪽도 기원전부터 역사가 있으며, 20세기에 양식 진주가 태두할 때까지 진주의 일대 산지였다.

그밖에도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캘리포니아 반도에서 남미 페루, 유럽에서는 스코틀랜드나 옥일의 강에서 채취할 수 있는 담수(淡水) 진주가 유명하다. 채취된 진주는 왕후귀족이나 교회에 공급되었다.


즉, 시즈코의 비즈니스 상대는 교회, 구체적으로 말하면 예수회였다. 이유는 기독교(キリスト教)는 진주를 종교적인 장식으로 많이 이용하기 때문이다.

또 기독교에는 예수 그리스도와 진주를 동일시하는 사상이 옛부터 있었다. 기독교의 이단인 그노시스 파(Gnostics)도 진주는 가장 이상적인 완성형의 상징으로 삼았다.

진주를 귀하게 여기는 것은 기독교 뿐만이 아니다. 이슬람교나 불교에서도 진주는 귀중한 보물로서 취급된다.

또 종교 뿐만이 아니다. 유럽 각국의 중세, 르네상스 시대의 왕후귀족들은, 진주를 가장 희소한 보석으로 생각하여 권력의 상징으로 이용했다.

종교나 권력자의 권위를 더하기 위해서 뿐만이 아니다. 진주는 전세계적으로 장수(長寿)의 약이라고 생각되어, 다양한 효능이 있다고 믿어져 왔다.

엄밀하게 말하면 광석은 아니지만, 인류가 처음으로 마주친 보석이며, 고대로부터 사람들을 계속 매료시켜온 것이다.


"이 동그란 구슬 따위에 남만인이 비싼 돈을 낼 가치가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데 말야"


나가요시(長可)는 해열제(解熱剤) 삼아 가지고 있는 진주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무리도 아니다. 일본에서도 진주는 귀하게 취급받고는 있지만, 유럽처럼 장식품으로서 사용된 적이 거의 없다.

따라서 나가요시가 비싸게 팔 수 있는 물건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시즈코가 크고작은 걸 합쳐서 많은 진주를 생산하고 있는 관계로, 도저히 값이 나가는 것으로 보이지 않았다.


"진주는 옛부터 달이랑 관계가 있다고 해서 물의 심벌 취급이니까. 카톨릭(伴天連)의 성경에도 진주는 여러 번 등장하고, 영적(霊的)으로 완성된 물건이라고 보고 있거든. 그러니까 거절할 일은 없을거라 생각해"


나가요시의 의문에 시즈코가 대답했다. 하지만, 영적이라느니 물의 심벌이라느니 하는 소리를 들어도 나가요시에게는 영 감이 오질 않았다. 그러던 도중에 귀찮아졌는지 진주를 허리에 찬 주머니에 집어넣고 생각하는 것을 포기했다.


쿄에 도착한 다음날, 시즈코는 항상 입는 남장으로 갈아입었다. 갈아입는 것을 마침과 동시에, 오르간티노를 필두로 프로이스나 수도사 등 많은 예수회 멤버들이 시즈코의 저택을 방문했다.

무리도 아니다. 상담(商談) 인사 대신으로 특팔갑(特八甲)의 진주를 30알 정도 보냈던 것이다. 총명한 오르간티노라면 그것 만으로도 무슨 이야기인지 이해했으리라.


"갑작스런 내방에도 불구하고 알현의 기회를 마련해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오르간티노가 대표로 머리를 숙였다. 과연 오르간티노, 라고 시즈코는 감탄했다. 내심으로는 비즈니스 이야기를 하고 싶으면서도 그걸 표정에 전혀 내보이지 않고 평소의 부드러운(柔和) 분위기를 하고 있었다.


"얼굴을 드십시오. 이번에는 딱딱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하지만 장사 이야기이니, 조금 차가운(厳しい) 면이 나올지도 모르겠군요"


"하핫, 그건 알고 있습니다"


"그럼, 잡담도 좋지만 지나치게 기다리시게 하는 것도 문제군요. 우선 저희들의 상품을 보아 주십시오"


양손을 쳐 신호를 하자, 소성(小姓) 들이 한 손에 쟁반(膳)을 들고 방으로 들어왔다.

쟁반에는 진주가 몇 알 놓여 있었으며, 소성들은 그것을 오르간티노들의 앞에 놓고는 인사를 한 후 방을 나갔다.


"충분히 보아 주십시오. 우리 나라에서 생산된・・・・・ 진주입니다"


생산이라는 말에 순간 반응한 오르간티노였으나, 질문을 입에 올리지 않고 쟁반에 놓여진 진주를 아래에 깔린 천째로 손에 들었다. 색이나 광택은 지금까지 본 적이 없을 정도로 완벽하다고 그는 생각했다.

또 형태도 완벽한 원에 가까워서, 천으로 감싸 한 알을 들어올리자 천 위에서 데굴데굴 굴러다녔다. 지금까지 보아 온 진주는 형태가 어그러져서, 동그란 건 거의 본 적이 없었다.


"훌륭한 품질의 진주입니다"


진주의 질은 장식품에 둔한 오르간티노도 감탄할 정도의 완성도였다. 다만, 둔하다고 해도 진주를 보는 오르간티노는 어떤 것을 눈치챘다.


"하지만, 이것은 제가 알고 있는 것과는 다른 것 같습니다. 그리고 훌륭할 정도의 완벽한 원형, 하나라면 기적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이만한 숫자를 모으려면 뭔가 사람의 손을 타지 않으면 불가능합니다"


유럽에서는 담수산(淡水産) 진주를 사용하고 있기에, 해수산(海水産) 진주와는 색감이나 광택이 다르다. 그 뿐만이 아니라, 형태가 거의 균일한 점에 그는 위화감을 느꼈다.

보통은 조금은 형태가 다른 것이 섞여있어도 이상하지 않은 진주가, 오싹할 정도로 형태가 색이 통일되어 있었다. 이 위화감과 시즈코의 행동에서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진주라고 추측했다.


"혜안(慧眼)이 놀라우십니다. 이웃 나라에서 진주의 기술을 습득하여 드디어 우리 나라에서의 진주 생산이 가능해졌습니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사람의 손을 탄 것을 저희 주님께 바칠 수는 없습니다"


오르간티노의 반응은 당연하다고 시즈코는 이해하고 있었다. 숭배하는 대상에게 천연의 것이 아닌 양식산을 바치는 것은, 설령 알맹이가 똑같다고 이해하고 있더라도 저항감이 있으리라.

바로 그렇기에 시즈코는 진주를 예수회가 아니라 그들의 뒤에 있는 사람들에게 공급하기로 목표를 정했다.


"그건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희들이 쓰라, 고 강요하는 것은 무례라는 것도요. 하지만, 왕후귀족들은 어떨까요?"


그 한 마디에 오르간티노는 시즈코가 말하고 싶은 것을 대충 헤아렸다.


"실례했습니다. 두건재상님께서는 저희들이 아니라, 저희들을 지원해주고 있는 왕후귀족들에게 팔려고 생각하신 건가요"


"실례인 것은 알지만, 우리나라를 방문하는 이국의 상인들 중 본국에 있는 왕후귀족들의 신뢰를 얻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따라서 저희들은 당신들에게 진주를 팔려고 생각했습니다"


"과연, 사정은 이해했습니다. 결(キメ)이 곱고, 다른 진주에는 없는 투명감이 있는 광택은 아름답다, 고 저 개인은 좋은 진주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판매를 하게 되면 이야기는 다릅니다. 그리고 이 진주가 왕후귀족들에게 받아들여질지도 다른 문제입니다"


"물론입니다. 아무리 좋은 품질이라고 저희들이 역설해도, 당신들이 볼 때는 정체를 알수없는 진주 비슷한 무언가, 라고 생각하는 건 당연합니다. 판매 이야기, 라고 말했습니다만 이 자리는 말하자면 사전 거래입니다"


지금에야 세계에서 가장 일반적인 아코야 진주지만, 전국시대에는 아코야 진주의 거래 따위 전무한 거나 다름없다. 유럽의 왕후귀족들이 기피할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하지만 시즈코에게는 승산이 있었다. 중세나 근대 유럽은 진주 조개를 지나치게 남획하여, 진주의 유통량이 극단적으로 줄어든 것, 콜롬부스가 일본의 진주에 열을 올렸던 것이라는 두 가지 사실이다.

따라서 예수회가 교회의 장식품으로서 쓰지 않더라도, 왕후귀족들은 진주를 귀하게 칠 가능성은 있다고 시즈코는 판단했다.


"거기까지 생각하셨다면, 제가 다음에 무슨 말씀을 드릴지도 이해하시겠군요"


시즈코를 시험하듯이 오르간티노가 말했다. 생긋 웃는 분위기는 무너뜨리지 않았으나, 그것이 마음 속에서 뭘 생각하고 있는지 추측조차 할 수 없게 했다.

그가 뭘 말하고 싶은지 이해한 시즈코는, 입구에 있던 소성에게 신호하여 어떤 것을 가져오게 했다. 잠시 후 몇 개의 오동나무(桐) 상자가 올려진 쟁반이 오르간티노 앞에 놓였다.


"왕후귀족들에게 보이기 위한 진주와, 그 진주를 사용한 장식품을 드리겠습니다. 그들에게 충분히 구경시켜 주십시오"


시즈코의 말을 들은 오르간티노는 웃음을 떠올렸다. 그녀의 대답은 오르간티노에게 있어 완벽하다고 할 수 있었다.

아무리 좋다는 말을 들어도, 일본에 있는 오르간티노에게 큰 돈을 움직일 정도의 힘은 없다. 또, 설령 진주를 구입해도 진주가 좋고 나쁜 것은 장식품으로 만들어보기 전에는 판단할 수 없다.

진주와 진주를 사용한 장식품, 두 가지가 있으면 유럽의 왕후귀족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알 수 있다. 물론, 개인적인 취향에 따라 호오가 갈리겠지만, 그건 어쩔 수 없다고 포기할 수밖에 없다.


"과연 총명하신 두건재상님이십니다. 그럼 이것들을 이용하여 왕후귀족들의 반응을 살피도록 하지요. 만약, 그들의 마음에 든다면 다시 상담(商談)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본국은 여기서 아득히 먼 장소, 시간이 걸리는 것은 양해해 주십시오"


"잘 알고 있습니다"


이 대화를 끝으로 시즈코와 오르간티노의 상담은 끝났다. 상담이 끝난 후, 잠시 대화를 나누고 오르간티노는 교회의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시즈코의 저택을 떠났다.

그들이 떠난 후 반 각(刻) 정도 지나자, 시즈코는 남장을 풀고 평상복으로 갈아입었다.


"으아~, 피곤해. 덥썩 물거라고 생각했는데, 꽤나 신중한 태도를 보였네"


시즈코는 기지개를 켜서 몸을 풀었다. 남장은 몸의 여기저기를 고정하기 때문에 몸이 굳어버린다. 끝난 후, 몸을 풀어두지 않으면 다음 날에는 비참한 상태가 된다.


"카톨릭(伴天連)은 장사를 싫어한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꽤나 이야기에 잘 따라왔네"


나가요시도 기지개를 켜서 몸을 풀었다. 딱딱한 이야기가 영 맞지 않는 그는, 비즈니스 이야기조차 어깨가 뻣뻣해졌다. 어깨를 주무르고 있었으나, 그 시선은 항상 주위를 경계하고 있었다.

사이조(才蔵)는 항상 시즈코를 감쌀 수 있는 위치에 몸을 두고, 전신의 힘만을 뺀 탈력(脱力) 상태였다. 케이지는 얼핏 빈틈투성이로 보였으나, 한 손이 항상 칼을 쥐고 있었다.

이 상태에서 시즈코를 습격해도 잘해봐야 세 사람 중 누군가가 부상을 당하는 정도이고, 운이 나쁘면 반대로 습격한 사람이 베이는 게 고작이다.


그들이 주위를 경계하고 있는데는 이유가 있다. 상담이 끝났을 무렵부터 세 사람은 간자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다.

하지만 상대로부터는 살의(殺意)도 적의(敵意)도 느껴지지 않고, 그냥 흐릿한 안개같은 기척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적지에 들어와 있으면서 이 정도로 존재를 지울 수 있는 실력에 세 사람은 혀를 내둘렀다.

세 사람은 경계하면서도 상대가 있는 곳을 찾았지만 특정할 수 없었다. 그것도 어쩔 수 없었다. 상대는 토비카토(鳶加藤)이므로.

세 사람이 쓸데없는 경계심을 품고 있다는 것을 안 토비카토는, 그대로 사라지듯 시즈코의 저택에서 물러났다. 간자가 떠난 것을 알게 되자 세 사람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럼, 일을 하나 더 처리할까요"


아무 것도 모르는 시즈코는 편지를 꺼내면서 세 사람에게 말했다.




한편, 오르간티노는 교회로 돌아가서 같은 파벌 사람들을 모았다. 예수회는 하나로 뭉친 듯 보이지만 비둘기파와 매파의 두 파벌이 존재한다.

예수회의 비원은 중국(中国, ※역주: 아래 내용을 볼 때 츄고쿠가 아니라 중국을 말하는 듯)에서의 카톨릭(キリスト教) 포교이지만, 기본적으로 '로마에서는 로마 법을 따르라'가 활동의 기본 방침이다. 하지만 그 의견에 찬동하지 않는 인물도 있어, 일본 포교는 항상 의견이 갈렸다.


그런 예수회의 불행은, 매파에 속하는 카브랄(Francisco Cabral)이 일본의 포교 총책임자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오르간티노는 금후의 포교가 불안하다고 한탄했다고도 전해진다.

그 외에 매파에 속하는 인물이 가스파르 코엘료(Gaspar Coelho)이다. 그는 일본인을 카톨릭(キリスト教)으로 개종시켜 일본을 카톨릭 국가로 만들어, 이웃나라인 중국 침공의 첨병으로 삼을 계획까지 세웠다.

그렇기에 코엘료는 특히 나쁜 평가를 받아서, 같은 예수회에서도 '카톨릭(伴天連) 추방령이 내려진 건 그 사람 탓'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프란치스코 회(※역주: Ordo Fratrum Minorum)나 도미니코 수도회(※역주: Ordo fratrum Praedicatorum)에서 볼 때, 예수회는 온건파, 나쁘게 말하면 겁쟁이들의 모임 취급으로, 코엘료가 딱히 별난 사람이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코엘료 같은 인물이 다수파를 점하는 수도회 쪽이 많았다. 하지만, 처음부터 도미니코 수도회의 수도사가 왔을 경우, 일본에서 이만큼 포교가 퍼지지는 않았으리라.


"두건재상님에게 진주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의 말을 빌리면, 이것은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진 듯 합니다"


모여든 비둘기파의 사람들에게 오르간티노는 아코야 진주를 보여주었다. 아코야 진주의 광채에 다들 감탄성을 발했다.


"이러한 것을 만들어내다니, 두건재상님은 신의 영지(英知)을 얻은 사람입니까"


"카브랄 님이 경계하여 만나지 않는 것도 납득이 갑니다. 지금까지 만난 일본인과는 전혀 달라요"


아무리 인공물(人工物)이라는 말을 들어도, 그들은 진주의 우아하고 아름다운 광채에 매료되어 있었다. 성급한 사람은 이미 어떤 방법으로 시즈코에게 진주를 얻어낼지 계산하고 있었다.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진 것이기에 신에게 바칠 수는 없다, 고 저는 그에게 말했습니다만, 이 진주는 매력적인 보석입니다"


천을 사이에 두고 손바닥에서 진주를 굴리면서 오르간티노는 말했다. 양식(養殖) 진주를 교회에서 사용하는 것은 주저하는 그였으나, 유럽의 왕후귀족들에게 파는 것에 대해서는 기피감을 느끼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로부터 활동자금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고 현실적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오르간티노 님의 말씀대로입니다. 우리들의 활동자금을 얻기 위해서도 이 진주는 유용합니다"


"이 나라의 권력자들은 청결한 인물이 아니면 만날 수조차 없습니다. 하지만 몸을 깨끗하게 유지하고 화려한 의상을 입는데도 자금이 필요합니다"


"슬픈 일이지만, 이 나라에서 포교하기 위해서는 많은 활동자금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고아(Goa)에 자금을 신청해도 잘 납득해 주질 않습니다"


오르간티노의 말에 수도사들이 각자 생각을 말했다. 누더기를 입고 포교하는 것은 카톨릭(キリスト教)에서 올바른 포교 스타일이지만, 일본에서는 대부분 문전박대당했다.

다양한 요인이 있지만 가장 큰 요인은 냄새다. 냄새는 습도에 의해 증폭되기 때문에, 건조한 유럽에서는 문제없더라도, 고온다습한 일본에서는 몸을 청결하게 하지 않으면 심하게 냄새가 난다.

태어났을 때(産湯) 이후로는 한 번도 목욕을 하지 않았던 미야모토 무사시(宮本武蔵)는 100미터 이상 떨어져 있어도 냄새로 위치를 알 수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에 반해 유럽에서는 목욕하면 병에 걸리기 쉽다는 믿음이 있었다. 지금은 선교사인 그들도 원래는 상류 계급 사람들로, 개중에는 군인이나 의사에서 선교사가 된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지나치게 화려한 복장은 카브랄 님을 화나게 합니다"


적응주의(適応主義)에 의해 입욕에 대한 혐오감은 옅어졌으나, 결코 없어진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일본 포교의 수장인 카브랄이 적응주의에 부정적이라, 선교사들이 청결한 차림새를 하는 것을 혐오하고 있었다.


"포교하기 위해서는 현지 협력자가 필요합니다. 권력자의 비호를 얻지 못하면, 포교도 잘 되지 않지요. 어째서 카브랄 님은 그것을 이해하려 하지 않으시는지"


"그렇습니다. 포교를 위해서 다양한 방법을 강구하고 있는데, 모든 것을 부정당하는 것은 참을 수 없습니다"


포교를 위해서라면 설령 혐오하는 것이라도 신의 시련이라고 생각하고 극복한다. 그 각오로 일을 하고 있는데, 카브랄은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은 것은 모두 부정했다.

그 때문에 선교사들 사이에서도 카브랄에 대한 불만이 쌓여 있었다.


"자자, 여러분. 남의 험담을 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숨을 고르고 일단 진정하지요"


"하지만 오르간티노 님……"


"여러분의 불만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라. 미운 상대를 용서하라, 고요. 카브랄 님은 우리들이 깨닫지 못한 점을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감사할 지언정, 미워할 분은 아닙니다"


오르간티노의 말에 전원이 침묵했다. 그가 그렇게까지 말하면 이 이상의 불평은 그냥 화풀이하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우선 진주에 관해서는 보류하죠. 몇 개를 고아에 보내서 그 대답을 받은 후 다시 취급에 대해 의논하도록 하지요"


이 이상의 대화는 카브랄에 대한 불만을 성토하는 자리가 된다. 그렇게 생각한 오르간티노는, 약간 억지스럽긴 했으나 대화를 종료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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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

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겐키(元亀) 3년 결전(決戦), 미카타가하라(三方ヶ原) 전투


089 1572년 7월 상순



혼간지(本願寺)와 타케다(武田)가 주도하는 포위망은 점점 완성되어가고 있었으나, 포위되어 있을 터인 오다 영내에는 전시(戦時) 특유의 긴장감이 존재하지 않았다.

오다 영내에 잠복하고 있는 혼간지의 간자들로부터는, 오다 가문은 타케타의 배신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고, 포위망이 좁혀져오고 있다는 것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그 보고를 들은 켄뇨(顕如)나 그의 측근들은 계책이 성공한 것에 득의의 미소를 지었다. 후세에 '오오사카노사유우오타이쇼(大坂之左右之大将)'라고 불리는 시모츠마 라이렌(下間頼廉)의 경우에는 보고를 듣자마자 "이겼다"고 중얼거렸을 정도였다.


"약병(弱兵) 투성이인 오다가 천하에 그 이름을 떨치는 타케다와 백 번을 싸워봐야 한 번이라도 이길 수 있을 리 없다. 저번에는 아사쿠라(朝倉)의 멍청이(阿呆)가 발목을 잡아 오다가 도망치게 해버렸지만, 이번에는 패배를 모르는 타케다다. 놓친다는 만에 하나도 있을 리가 없다"


이 인식은 혼간지 뿐만 아니라 반 오다를 표방한 영주나 쇼군(将軍) 요시아키(義昭)도 마찬가지였다.

실제로 타케다는 30년 이상 다른 나라에게 국토를 침략당한 적이 없고, 반대로 다른 나라를 침공하여 승리를 거두었으며, 최악의 경우라도 비기는 싸움으로 끝냈다.

반대로 오다 가문이 보유하고 있는 오와리(尾張) 병사들은 약졸(弱卒)로서 유명하며, 타케다가 보유한 카이(甲斐) 병사 한 명은 오와리 병사 다섯 명에 필적한다고 야유받을 정도의 평가였다.


"이번에는 타케다에게 맡기자. 우리들이 괜히 설쳤다가 타케다의 행보를 어지럽히는 건 좋은 생각이 아니다. 타케다로부터의 요청에 응하여 움직이고, 우리들은 제후(諸侯) 들의 중재(取りまとめ)나 뒷받침 역할(裏方仕事)에 충실하도록 하자"


"옛!"


켄뇨의 지시(下知)를 받은 측근들은 각자 해야 할 일에 착수했다.

그들의 머리에는 타케다가 천하를 통일한 후에 자신들이 어떻게 행동해야 할 것인지밖에 없어, 예측하지 못한(不測) 사태에 대한 대비 따윈 뇌리를 스치지조차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방심하고 있었다.

아무리 약병이라도 사지(死地)에 몰리면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窮鼠猫を噛む)'라는 속담이 말하듯, 포식자에 대해 이빨을 드러내고 그 목젖을 물어뜯는 경우조차 있다는 것을.


게다가 또 하나의 오산이 있었다. 오와리 병사들은 결코 약병 따위가 아니다. 예전에는 그랬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확실히 다르다.

애초에 오와리에는 비옥한 토지가 많아 일용할 양식을 얻는 것이 용이했다.

한편, 험준한 산악부에 있는 카이에서는 입에 풀칠하는 데도 상당한 실력을 요구받았다. 즉, 생존 경쟁으로 단련되어 있기에 기초가 되는 저력(地力)이 다른 것이다.

이것에 기인하는 병사 한 명 한 명의 실력차이가 약병의 오와리와 정강(精強)한 타케다라는 평가를 얻는 한 요인이 되었다. 하지만 이것은 일반인을 전쟁터로 끌어내는, 비상비군(非常備軍)을 비교한 경우에 한한다.


일반인이라도 훈련에 따라서는 운동선수에 필적하는 신체능력을 얻을 수 있듯이, 기초 능력이라는 건은 단련을 거듭하여 높일 수 있다.

하지만 농민을 징병하여 아시가루(足軽)로 삼는 전국 시대에, 그들을 훈련시킨다는 생각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직속 수하나 가신들의 친족 등, 제한된 장병 후보들로 한정시킨다면 전투 훈련도 실시되고는 있었다.

이 상식을 노부나가는 깨버렸다. 풍부한 재력을 배경으로 병농분리(兵農分離)를 시행하여, 상비군을 보유하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시즈코는 이것에 한술을 더 떴다. 신병의 소모율을 낮추기 위해, 대규모의 병사 훈련소를 건설하고, 철저한 신병 훈련을 실시하도록 진언했던 것이다.

그 결과, 약병이라고 조롱받던 오와리 병사들은 일변(一変)했다.

가혹하기 짝이 없는 기초 훈련은, 그것을 수료한 병사들 사이에서 '부처(仏)의 1주일, 수라(修羅)의 3개월, 지옥의 반년, 죽음을 바라는 3개월'이라며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 있었다.


다만 시즈코의 병사훈련소를 수료한 사람은, 가혹한 경험에 걸맞는 이익을 향유할 수 있었다.

가장 먼저, 훈련 수료자는 사관할 곳이 부족하지 않다. 그들의 고용주가 되는 무장들은, 그 훈련이 얼마나 가혹한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육친의 정이 끼어드는 부모 밑에서 끌어내 적자(嫡子)를 훈련소에 집어넣는 사람까지 있었다.


두번째로 기본적인 수준의 문답이 가능하고 범죄에 가담하지 않았다면 일체 신분을 묻지 않는 점이다.

장자 상속이 상식인 전국 시대나 에도 시대에서, 가문을 이을 적자(嫡男) 이외의 사람은 사실대로 말하면 불우한 취급이었다.

적자에게 만약의 일이 있을 경우의 예비로서, 집안의 한 방에 감금되어(留め置かれ) '방살이(部屋住み)'라고 불리게 된다.

자신의 가문을 세우는 것은 물론이고 아내를 맞아들이는 것도 허락되지 않으며, 가장의 안색을 살피는 더부살이 같은 취급을 받았다.

대가 바뀌어 적자가 가문을 이어도 방살이는 변하지 않는다. 당주가 된 적자에게 키워지면서 당주에게 만에 하나의 일이 있을 경우를 대비할 뿐인 인생을 보내게 되는 것이다.


그 때문에 평생 썩는(飼い殺し) 인생이 싫어서 봉공(奉公, ※역주: 다른 사람 밑으로 일하러 감)이나 양자(養子)로 가는 차남 이하의 사람들도 많았다. 예비는 한 명만 있으면 되기에 3남 이하는 '방살이'조차 될 수 없다.

그렇다고는 해도 적자의 입장에는 책임이 따른다.

부모로부터 재산을 모두 물려받는 대신, 자신의 가족은 물론이고 형제자매를 먹여살리며, 형제가 봉공할 곳이나 양자로 갈 곳을 찾고, 자매가 시집가게 되면 지참금을 줄 책임이 있었다.


세계적으로 보면 양자나 봉공이라는 선택지가 있는만큼 일본은 나은 축이었다.

세계, 특히 유럽에서는 봉공이나 양자로 간다는 생각은 독일의 일부 지역밖에 없었고, 기본적으로 가장에게 평생 키워지며 썩어가던가 약간의 손절금(手切れ金)을 받고 쫓겨나는 게 보통이다.

그 때문에 친지들 사이에 후계자 싸움이 벌어지기 쉽고, 가장이 사망했을 경우에 죽음을 애도하기는 커녕 축복하는 경우조차 있었다.

다만 재산을 상속받은 자에게는 일본과 마찬가지로 형제자매에 대한 책임이 주어졌다.

그 밖에도 성직자가 되는 길이나, 기사로서 왕을 섬기는 길도 있지만, 특권은 유력자들이 독점하고 있어, 자신이 속하는 일족이 어느 정도 실력을 가지고 있는지가 크게 영향을 끼쳤다.


이야기를 되돌려서 마지막 장점은, 훈련 기간중에는 식사와 거처가 보장되는 점이다. 병사로서의 적성이 없어 탈락하더라도, 최종 판단까지의 확인 기간이 존재한다.

그 동안에는 하루 세 번의 식사와 따뜻한 잠자리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주어지는 훈련은 가혹하기 짝이 없기에, 단순히 숙식을 위해 지원하는 것은 도저히 수지가 맞지 않는다.


반 오다 필두인 혼간지나 아사쿠라, 아자이(浅井)가 암약하고 있을 무렵, 쇼군 요시아키도 또한 비밀리에 획책을 하고 있었다.

죽이 맞지 않아 미묘한 사이가 되어 있긴 하나, 표면상으로는 생글거리며 노부나가를 상대하면서 뒤로는 대결 준비를 진행하고 있었다.

1570년의 제 1차 오다 포위망이 붕괴한 지 2년, 제 2차 오다 포위망이 착실히, 그리고 조용히 노부나가의 발 밑으로 다가들고 있었다.




6월 하순, 스크류 선박 시운전을 위해 시즈코는 치타 반도(知多半島) 방면으로 향했다. 시운전이기에 나가라가와(長良川)에서도 문제없었으나, 스크류 선박은 외양(外洋)에서 활약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설계되어 있다.

따라서 바다에서 시운전하는 편이 이치에 맞는다. 반대로 말하면 하천은 스크류 선박을 고집할 필요는 없고, 현재의 일본 배(和船)로 충분히 커버되었다.


"그럼 시작해 주세요"


노부나가로부터 시찰의 전권을 부여받은 시즈코가, 시운전 개시의 신호를 보냈다.

이번에 시운전하는 스크류 선박은 2가지 타입을 준비했다. 1인승과 2인승의 2종류이다.

1인승은 그 이름 그대로 오직 한 명의 승무원이 모든 것을 조작한다.

조타장치와 스크류가 일체화된 현대의 모터 보트처럼 되어있어, 조타와 출력 조정을 모두 혼자서 할 필요가 있다.

2인승은 장치가 나뉘어 있어, 조타수와 출력조정수가 서로 연대하며 배를 조작한다.

3인승 이상으로 만들지 않는 이유는, 장치가 단순하기에 전임(専任) 이외의 승무원은 방해되기 떄문이다. 애초에 조종에 가혹한 훈련을 요구하기 떄문에 잉여 인원 같은 건 둘 여유가 없다.


배의 기본 구조는 양쪽 모두 공통되어 있다. 외연기관(外燃機関)인 스털링 엔진의 회전을 크랭크 기구를 통해 전달하여, 수지(樹脂)로 된 스크류를 회전시키는 구조이다.

각 타입의 차이점은 그 엔진 출력에 있다. 전임의 조종수를 준비할 필요가 있는 대신 장치를 대형화시킬 수 있고, 대형화에 수반하여 출력이 크게 증강된다.

탑재되는 시스템 및 파츠 종류가 공통되어있음에도 불구하고 개발 기간이 장기화된 것은, 기어박스와 토크 컨버터에 원인이 있었다.

스크류 선박을 효율적으로 운용하려면 스크류의 회전 속도와 회전력을 동적으로 재빨리 변경할 필요가 있다.

이것을 실현하기 위해 변속 기구인 기어박스와 토크 컨버터가 필요해졌다.


탈건 전반에 걸쳐 할 수 있는 이야기인데, 정지 상태에서 초동(初動)으로 이행하기 위해서는 속도는 늦더라도 강한 힘(토크)가 필요해진다.

한편, 스피드가 실린 상태에서는 회전수가 적으면 그게 저항이 되어버리기에, 작은 힘이라도 고속으로 회전할 필요가 생긴다.

이 상태를 전환하기 위해 기어박스가 필요해지며, 그 전환을 스무스하게 하기 위해 토크 컨버터가 필요해졌다.


다만 토크 컨버터의 개발은 대단히 힘들어서 아직 개발 전망이 서 있지 않았다. 그 때문에 기어의 변경은 클러치 방식으로 조작하게 해 놓았다.

유압(油圧)에 의한 배력(倍力) 기구가 없기 때문에 기어 체인지에는 힘이 필요하여, 전문의 인원을 필요로 했다.


"이(イ) 형부터 시작해 주세요"


타입의 명칭이 길었기에, 시즈코는 1인승 타입을 이 형, 2인승 타입을 로(ロ) 형이라고 개발 코드네임을 붙였다. 그게 그대로 명칭으로 채용되어 지금까지 쓰이고 있다.


"이 형, 시험 시작!"


구호를 맡은 아시가루가 북을 쳤다. 그에 호응하여 이 형의 배는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론 수업(座学)이나 모의 기계로 훈련하고 있다고는 해도, 실기(実機)를 만지는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인지 움직임이 어색했다.

개중에는 기어 체인지에 애를 먹어 개시 위치에서 거의 움직이지 못한 배도 있었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가속이 붙기 시작했다.


"이어서 로 형을 시작해 주세요"


"로 형, 시험 시작!"


이 형이 순항 속도에 달했을 무렵, 2인승인 로 형이 시험을 시작했다. 아무래도 전임 담당자가 있었기에 스무스하게 속도가 올라갔다.


"순조로운가?"


이 형, 로 형 모두 순조롭게 시험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즉시 실전 투입할 수 있으려나, 하고 시즈코는 낙관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기술 시험에는 따라붙기 마련인 함정에 빠지게 된다.


"……응? 경고 호루라기(警笛)? 무슨 일이 있었나?"


시험이 반쯤 진행되었을 무렵, 갑자기 비상 사태(異常)를 알리는 경고 호루라기가 울려퍼졌다.

즉시 전령이 달려가서 비상 사태의 이유를 시즈코에게 보고했다. 그것은 시즈코도, 개발에 관여하고 있는 쿠키(九鬼) 수군(水軍)도 상상하지 못했던 이유였다.


"동력이 정지했다고요?"


"옛. 고속 운전중에 돌연 기관이 정지햇습니다. 현재 기술자들이 원인을 특정하는 중입니다"


기어를 고속 회전시킨 상태에서의 이동 시험중, 이 형과 로 형 모두 엔진이 정지하는 트러블이 발생했다. 그것도 한두번이 아니고, 몇 번이나 일어나고 있는 상태였다. 시즈코도 비상 사태라는 것을 이해했다.


(엔진 정지를 일으켜? 기어 개발에서 놓친 게 있었나?

아니, 그럴 리는 없어. 기어박스의 설계도를 확인했지만, 초짜가 보기에도 비정상이라고 할 만한 기구는 없었어. 게다가 저속 상태에서는 문제없이 동작하고 있어. 기어가 바뀌고 있는 이상 기어비의 차이에 따른 트러블이 생길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아)


개발자가 한 척의 기어박스를 분해해서 조사중이었기에, 그 결과에 따라 방침이 바뀐다. 만약, 기어박스에 문제가 있다면, 개수에 얼마만큼 시간이 필요할지 모른다.

긴박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다들,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지만 보고를 목매어 기다리고 있었다. 무거운 분위기가 흩어진 것은 그로부터 1각(刻) 후였다.


"……즉, 회전수가 모자라서 기관이 정지했다, 는 건가요?"


보고를 들은 시즈코는 휴 하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엔진 정지가 반복된 이유는, 스크류 프로펠러의 변형이 상정한 것보다 커서 물의 저항이 커졌기 때문에 고속 기어에서의 토크 부족으로 회전수가 낮아져, 지정된 회전수를 유지할 수 없게 된 것이 원인이었다.

달리 원인은 없는지 기어박스를 분해해서 조사했으나, 모든 파츠에 고장난 부분은 없었고, 연결부에도 문제는 없었다.


즉시 청취 조사(聞き取り調査)를 했다. 해가 지기 조금 전에 청취 조사를 마친 시즈코들은, 결론은 내일 내기로 하고 그 날은 해산했다.

다음 날, 청취 조사 결과를 확인한 일동은, 금후의 방침을 의논했다.


"이번 시험에서 스크류 선박의 유용성을 실증할 수 있었습니다. 이 형, 로 형 모두 저속 회전에서의 시험밖에 하지 못했습니다만, 검증 결과 노(櫂)로 낼 수 있는 속도를 상회하는 것이 판명되었습니다. 이번에 발생한 고속 회전시의 문제는 기어비를 조정해서 토크 폭에 여유를 주면 해결할 수 있습니다. 이상으로, 스크류 선박은 실용 단계에 들어섰다는 결론을 내리겠습니다"


모인 일동에게 시즈코가 선언했다. 청취 조사나 기구의 조사 보고서를 확인한 결과, 스크류 프로펠러의 변형은 소재를 바꿀 수밖에 없고, 금속으로 만들면 무거워지며 가공도 어렵다.

기어박스의 구조에는 문제점이 없었기에, 저속 기어와 고속 기어 사이에 중간 속도의 기어를 끼워놓는 것으로 해결을 꾀하자는 결론이 나왔다.

기구 자체에 큰 트러블이 존재하여 발생한 것이 아니다, 라는 점에 일동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스크류 프로펠러는 외양에 나가기 위해 필요한 기구이다.

그렇기에 노부나가의 기대는 크다. 수 년의 개발을 거쳐 행하는 시험에서 꼴사나운 결과를 냈다간 어떤 벌이 내려질지 다들 전전긍긍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후, 고속 회전시의 시험 항목은 전부 제외하고, 저속 회전시의 시험만을 재개했으나, 작은 트러블이나 인원의 숙련도에 기인한 조작 미스 등이 발생하긴 했지만 치명적인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다.

시운전의 시험 결과를 노부나가에게 보고하기 위해 시즈코는 시험 결과서를 정리했다. 노부나가 용이기에 비즈니스 보고서와 마찬가지로 맨 처음에 결론을 기재한다.


하천에서의 소규모 운용에 한정할 경우 현재의 추진기인 노를 사용하는 편이 효율적임.

단, 노젓는 배(艪櫂船)는 대형화나 일정한 속도에 달하면 즉시 효율이 떨어지기 때문에 대형선을 적은 인원으로 운용하여 대량 수송을 실현할 경우에는 원동기 엔진식 스크류 선박이 유리함, 이라는 결론이 되었다.

참고로 노와 스크류 프로펠러 모두 물을 밀어내어 추진력을 얻는다는 원리는 같지만, 노의 경우 저속 소형선에는 적성이 높은 데 반해, 스크류 프로펠러는 레저 보트에서 수송 탱커까지 폭넓게 커버할 수 있다.


"현재의 하천 수송에서는 이점은 적다. 해운에서의 대량 및 고속 수송을 실현하는 것으로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다……"


노부나가가 떠올릴 의문의 대답을 시즈코는 가능한 한 시험 결과서에 기재했다. 그는 조금이라도 의문을 느끼면 폭풍처럼 질문을 던져오기 때문이다.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피곤하기 때문에, 노부나에게 대한 보고서를 쓰는 것은 다들 피하는 경향이 있었다.

나도 할 수 있다고 보고서를 스스로 제출한 기술자도 몇 명 있었으나, 보고서가 퇴짜를 맞은데다 질문으로 뒤덮인 종이 다발도 따라오고, 거기에 대답은 아직이냐 하고 화살같은 재촉이 날아왔다는 이야기가 퍼진 후, 시즈코가 쓰는 것이 불문율(暗黙の了解)이 되어 버렸다.

그렇기에 기술자들은 의외로 시즈코에게 꼼짝도 못 한다.

어떤 기술자는 말한다. 노부나가의 질문은 단순히 대답을 말하면 되는 게 아니라, 노부나가 본인을 납득시킬 이론을 세워서 말해야 한다, 고.

본인이 기술을 완벽히 습득해도, 그것읋 타인이 이애할 수 있게 설명할 수 있는가는 다른 재능이다.


"으ー음, 이 정도면 되러냐. 왠지 요즘, 중간 관리직 같은 입장이라는 느낌이 드는데, 기분 탓이라고 해두는 게 좋겠지"


다 쓴 두꺼운 보고서를 시즈코는 운반용의 목제 서류 케이스에 넣었다. 이후에는 몸종(小間使い)들이 노부나가에게 전달될 때까지의 처리를 맡아준다.

서류 케이스를 쇼우(蕭)에게 건네며 노부나가에게 발송할 것을 의뢰한 후, 시즈코는 기지개를 켜 몸을 풀었다.


"후이~, 다음은 개량형 스털링 엔진과 고로(高炉)의 확인이네. 그쪽은 아시미츠(足満) 아저씨가 이것저것 준비하고 있으니, 나는 시험 날짜까지 느긋하게 지낼 수 있겠어"


"손이 비셨다면, 이 서류의 처리를 부탁드립니다"


몸을 쭉 펴고 있던 시즈코의 어깨에 손을 얹는 것과 동시에, 어느 틈에 바로 옆에 서 있던 아야(彩)가 산더미같은 서류를 내밀었다.




한 마디로 고로라고 해도, 선철(銑鉄)을 만드는 '제철(製鉄)'과, 제철된 철을 강철(鋼)로 제련(精錬)하는 '제강(製鋼)'의 2단계 운용 공정이 존재한다.

'선철'은 기본적으로 가늘고 긴 자라목(とっくり) 틀(型)의 머리 부분(頂)부터 코크스와 철광석을 번갈아가며 투입해 고로 내부의 열로 철광석을 녹이는 작업이다.


고로에 투입된 코크스는, 고로 하부에서 유입되는 열풍에 의해 연소한다. 고로에 따라서는 보관 환원제(保管還元剤)로서 미분탄(微粉炭) 등을 투입하는 경우도 있다.

연소된 코크스는 환원 가스가 되는 일산화탄소나 수소를 발생시킨다. 이 환원 가스가 고로 내부의 상승기류가 되어 철광석을 녹임과 동시에 철광석에 포함되는 불순물을 제거(환원)한다.

즉, 코크스는 철광석을 녹일 수 있는 온도를 고로 내부에 형성하는 것과, 철광석에 있는 불순물을 제거하는 환원제라는 두 가지 역할을 맡고 있다.


환원 가스에 의해 불순물이 제거된 용선(溶銑, 녹은 철)은, 그대로 중력을 따라 고로 바닥으로 흐른다.

그리고 고로 하부에 있는 연소중의 코크스와 접촉하여, 코크스가 발열할 때 발생하는 탄소와 반응하여, 탄소를 수 퍼센트 포함하는 철이 되어 고로 바닥 부분(湯溜まり部)에 모인다.,

이 때, 철광석에 포함되는 불순물은 용선 위에 층이 되어 모인다. 이것을 슬래그(slag)라고 하며, 녹은 철과는 별도로 고로에서 배출된다. 슬래그는 제철시의 부산물로서 재이용된다.


철광석에 포함되는 산소 등의 불순물을 제거하고 용해(溶解)까지의 프로세스를 일거에 처리할 수 있는 고로의 원형은, 14~15세기에 독일의 라인 강 지류에서 탄생했다.

초기에는 물레방아(水車)로 풀무(ふいご)를 움직여 송풍량(送風量)을 늘리고, 열원(熱源)과 환원제(還元剤)로 목탄(木炭)을 이용했다.

연료로서 코크스가 이용된 것은 18세기 초엽이기에, 그 때까지 많은 나무가 벌채되었고, 결과적으로 삼림이 파괴되어갔다.

그 밖에도 경작지(田畑) 개간(開墾) 등의 이유는 있으나, 고로에 의한 철 생산이 유럽의 삼림 감소에 박차를 가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근대 고로가 탄생한 지 약 300년이 흘렀으나, 여전히 고로가 근대적인 화학 플랜트보다 우위성을 유지하고 있는 이유는, 단순한 설비로 불순물의 제거를 하면서 용선을 일거에 수행할 수 있는 점이다.

또, 고로는 다른 화학 플랜트와 달리 수명이 길다. 매일 고온 환경에 24시간 노출되는 고로이지만, 고로 내부의 벽돌을 십수년마다 갈아주기만 하면 조업(操業)을 계속할 수 있다.

24시간 365일 연속 조업하는 고로에 있어, 수명이 길다는 것은 필수라고도 할 수 있는 요구이다.

다른 화학 플랜트의 경우, 파손 부분에 따라서는 새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이 점에서도 고로는 우위성을 가지고 있다.


"생각보다 걱정되네"


걱정으로 가슴이 답답해진 시즈코는 불안을 감추지 않고 말했다. 고로의 시운전은 한번에 하는 것이 아니라, 몇 번의 단독 시험이 수행된 후, 마지막으로 결합 시험이 수행될 예정이다.

오늘은 고로에서 중요한 설비인 송풍기(送風機), 그 동력이 되는 스털링 엔진의 시운전 날이다.

스케줄에 여유를 두고 있다고는 해도, 시운전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이후의 시험 날짜가 밀리게 되어, 마지막 시험 공정인 고로의 결합 시험 날짜가 늦어져 버린다.

하나라도 스케줄이 늦어지면 전체가 늦어지는 크리티컬 패스(critical path)이기에, 지금까지와 달리 시즈코도 마음의 여유가 별로 없었다.


"대장(大将)이 불안해하면 아랫사람도 진정하지 못한다. 듬직한(どっしり) 태도를 보여라"


안절부절 못하는 시즈코를 아시미츠가 다독였다. 그는 시즈코와는 반대로 평소의 침착냉정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내심은 누구도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아시미츠 쪽이 침착해보였다.


"그렇게 말해도. 아, 맞다. 그쪽의 소결(焼結) 시험은 끝났어?"


"……그건 내가 없어도 문제없다. 게다가 철광석의 분쇄부터 시작하니까 결과가 나오려면 아직 멀었지"


철광석은 사이즈가 획일적이지 않기에, 그대로 고로에 장입(装入)하면 막힘(目づまり)을 일으킨다.

그걸 방지하기 위해, 철광석을 일단 분쇄하여 가루로 만들고, 마찬가지로 가루로 만든 코크스와 십수 퍼센트의 석회석(石灰石)을 섞어 구워서 형태를 통일하는 공정을 소결이라고 한다.

소결은 하지 않지만 형태를 맞추는 것은 석탄 코크스나 바이오 코크스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밑준비들을 끝낸 후에야 철광석이나 코코스 종류가 고로에 투입된다.


"바이오 코크스의 이용가치가 얼마나 될지, 는 일찌감치 실증시험을 마쳐두고 싶네"


환원제가 되지는 않지만 열분해 가스의 연소 효과로 고로 내부의 온도를 석탄 코크스만 쓸 때보다도 높게 올릴 수 있어, 결과적으로 용해하는 시간을 단축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다만 어떤 비율로 대체할 수 있는지, 이것만큼은 실증시험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 다행히 현대와는 달리 시험용의 고로를 제조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그것 뿐만이 아니겠지. 바이오 코크스가 있으면 스털링 엔진의 열원으로도 쓸 수 있다. 작동 가스가 공기일 때 1kw의 발전이 가능한 독일제만큼 고품질의 것은 바랄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헬륨 가스가 대세인 와중에 독일은 공기로 하고 있으니 꽤나 대단하다고 생각해"


"그 덕분에 우리들은 편하게 된 거지. 이 자리에서 헬륨 가스의 생성은 너무 번거로우니까"


최대 출력 1kw 클래스에서 작동 가스가 공기인 스털링 엔진은 실용화되기 시작하고 있다. 물론, 스펙 그대로의 수치를 낼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출력은 얼마간 떨어질 것이다.

약 2백 년 전의 설계인 엔진이 현재, 특히 군용 잠수함에서 주목받고 있는 것은, 디젤 기관이나 원자로보다 정숙하고, 그것들이 내는 폐열(廃熱)로 동작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현대 일본의 소류(そうりゅう)형 잠수함에는 AIP(비대기의존(非大気依存)) 추진기관이라 불리는 스털링 엔진이 탑재되어 있다.

하지만, 소류형 잠수함에 스털링 엔진이 탑재된 이유는, 효율적인 연료전지가 없어서 수소를 저장할 좋은 방법이 없었기에 만에 하나의 사고를 고려하여 연료전지의 탑재가 보류되었기 때문이지만.


"고로가 완성되면, 드디어 강철(鋼)의 생산에 착수할 수 있어. 공업품은 철보다 단단한 강철이 필수니까 큰일이야. 그리고, 부품을 만드는 건 처음에는 수작업이라는 부분도…… 호브(hob) 판이라던가"


호브 판이란 톱니바퀴의 톱니 절삭(歯切り) 가공에 쓰이는 톱니 절삭기(歯切り盤)의 일종이다. 톱니 절삭 가공이란 호브라고 불리는 전용의 절삭공구를 회전시켜, 톱니 가공전의 부재(톱니바퀴 블랭크(blank)라고도 한다)에 톱니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옛부터 톱니바퀴는 중요한 부품이긴 했으나, 호브 판을 사용한 공업적인 생산이 가능하게 된 것은 19세기 후반의 일이다. 그 때까지 톱니바퀴의 제조는 수작업으로 이루어졌다.


"지금은 수작업이니까. 균일한 사이즈의 톱니바퀴를 대량으로 원한다면 꼭 호브 판이 필요해지지"


"톱니바퀴는 중요한 부품이니까. 철제의 호브로 놋쇠(真鍮) 절삭용의 호브 판 제작은 성공했지만, 역시 철제 톱니바퀴가 필요해. 목제 톱니바퀴는…… 호브 판보다 실톱(糸鋸)이지만"


철제의 호브로 놋쇠 톱니바퀴를 제조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철제의 톱니바퀴는 강철제의 호브가 필요해진다. 목제는 강도가 다르기에, 호브 판을 쓰기보다 실톱으로 자르는 쪽이 낫다.


"지금은 수작업이 많으니까, 덕분에 기어박스를 양산할 때는 꽤나 부담을 줘버렸어. 뭐, 고로가 완성되면 철제 호브와 같은 걸 강철로 만들어주기만 하면 되는 거니까, 여전히 편하다고 하면 편한 걸까"


(그 최초의 수작업이 제일 고생스러운 건데…… 뭐 시즈코가 고생하는 건 아니니 괜찮은가)


어떤 업계에서도 선구자는 항상 고생한다. 하지만 호브 판이 있으면 톱니바퀴의 양산이 가능해져서 장인들이 하나하나 수작업으로 만드는 것보다 압도적으로 효율이 올라가기 때문에, 앞을 내다본다면 필요불가결한 공작기계다.


"공작기계는 만드는 것보다 사양 통일이 귀찮지만 말야. 자, 슬슬 스털링 엔진 준비가 끝난 걸까?"


헛기침을 한 시즈코는 억지로 화제를 바꾸어, 호브 판 등을 표준화나 규격화했을 때의 지긋지긋한 기억을 머릿속에서 억지로 털어냈다.

뒤를 잇는 사람들이 곤란하지 않도록, 시즈코는 기술자 마을에서 쓰이는 것은 전부 표준화나 규격화시켰다.

이에 의해 다음 세대는 기술의 습득을 효율좋게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도 마지막에는 오감이나 몸으로 기억한 것이 중요하지만.

하지만 매일, 아침부터 밤까지 책상에 앉아 서류를 쓰는 것은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지친다.

중요하다고는 해도, 시즈코에게 그런 작업은 처음에 가까운 체험이라는 것도 지치는 원인이 되었다.

결국, 표준화나 규격화의 서류를 써서 장인들과 회의, 피드백을 반영하여 다시 회의, 라는 정신이 아득해지는 작업의 반복이었다.

그리고 이 고생이 하나가 아니라 여러번이었기에, 시즈코의 마음고생은 헤아릴 수 없다. 그녀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이제 싫다는 딜레마를 품어버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주군, 방금 보고가 들어왔는데, 사반각(四半刻, 약 30분) 후에 시험을 시작할 수 있다고 합니다"


약간 뾰로통해(やさぐれ) 있을 때, 시즈코의 의문을 들은 겐로(玄朗)가 그녀의 지시를 받기도 전에 곳곳에 확인하러 가서 그 결과를 시즈코에게 보고해왔다.

우수한 부하가 있어서 행복하네, 라고 생각하며 시즈코는 표정을 조였다.


"좋아요. 그럼 시간이 되면 이동하죠"


사반각 후, 시즈코들은 시험장으로 이동했다.

그 무렵에는 어딘가 가 있던 케이지(慶次)나 사이조(才蔵)도 돌아와 있었다. 나가요시(長可)의 옷이 약간 피로 지저분해져 있었는데, 씨름(角力)할 때 묻었다는 이유에 시즈코는 납득하고 그 이상 묻지 않았다.

실제로는 여기저기 숨어있던 간자들을 찾아내서 샌드백처럼 두들겨패며 심문했을 뿐이었지만.


시험장에 도착하자, 이미 스털링 엔진의 실린더가 덥혀져 있었다.

이번에 시험에 쓰이는 스털링 엔진은 2피스톤 엔진이었다.

2개의 피스톤과 각각에 연결되어 있는 가열부(加熱部)와 냉각부(冷却部), 그리고 일시적으로 작동 유체(作動流体)를 저장하는 재생기(再生器) 등 네 가지가 주된 부품이다.

작동 유체란 다른 이름으로 동작 가스(動作ガス)라고도 불린다. 외연기관은 외부에서 얻은 열 에너지를 운동 에너지로 변환할 필요가 있으며, 이 변환시에 쓰이는 물질이 작동 유체라고 불리는 것이다.

스털링 엔진에서는 기본적으로 대기압(大気圧)의 공기, 고성능의 경우에는 압축한 헬륨 가스나 수소 가스가 이용된다.


이번에는 헬륨 가스나 수소 가스가 아니라 공기 가스를 이용한 스털링 엔진이다.

동작은 우선 가열부에서 가열된 공기가 크랭크 기구 중 고온(高温) 측에 있는 피스톤과 실린더를 움직이고, 이어서 고온의 공기가 냉각부로 이동하여 냉각(冷却) 측에 있는 피스톤과 실린더를 움직인다.

그 후에는 작동 유체가 가열과 냉각을 반복하는 것으로 고온 측과 냉각 측 각각의 피스놑의 왕복 운동이 커넥팅 로드(connecting rod)를 통해 크랭크의 회전 운동으로 변환된다.


크랭크의 회전 운동은, 출력축(出力軸)을 통해 기어박스로 전달된다.

기어박스는 속도를 낮추어서 토크를 올리거나, 속도를 높여 토크를 낮추는 등 용도에 따라 구별하여 사용할 수 있다. 이번에는 송풍기를 위해 고속의 저 토크 기어박스가 필요하다.

기어박스의 톱니바퀴의 조합을 송풍기용으로 설정하고, 마지막으로 기어박스의 출력축에서 날개(羽根車)에 회전 운동을 전달하여 고로 내부로 열풍을 보낸다.


이만큼 대규모의 설비를 투입해서 가능해지는 것이 고로에 병설(併設)되는 열풍로(熱風炉)이다. 열풍로에 의해 고로 내부의 온도가 높아져, 출선량(出銑量)이 비약적으로 증대된다.

송풍하는 온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좋지만, 현대처럼 1천 도를 넘는 열풍을 송풍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도 하루에 수 톤의 철을 생산할 수 있으니, 전국 시대에서는 파격적인 생산력이다.


고로는 고성능이지만 사철(砂鉄)을 쓸 수 없는 결점이 있다.

이것은 사철에 포함된 티타늄이 고로 내부에서 가열되면 산화 티타늄이 되어, 녹은 철의 흐름을 저해시켜 버리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고로에는 티타늄이 적은 철광석 밖에 쓸 수 없다.

하지만 철광석은 일본에서는 산출량이 적어서 해외의 산출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가장 가까운 산출국은 중국이지만, 중국의 철광석은 철 함유량이 적기 때문에 가성비가 나쁘다.

따라서 인도, 베트남, 태국 등 복수의 국가에서 철광석을 수입했다.

전국 시대에 일본으로 철광석 및 석탄의 수입을 할 수 있었던 것도, 남만(南蛮) 무역에 큰 권리를 가지고 있는 예수회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에 걸맞는 은(銀) 막대기(延べ棒) 필요해졌지만.


"의외로 은이 많이 들었네. 뭐 고로가 성공하면 그들에게도 이익이 있으니, 선행투자라는 거겠지만"


얼핏 장사와는 관계없어보이는 예수회였으나, 확실히 남만 무역에서 이익을 얻고 있다.

인도나 동남아시아 각국과 유럽, 또는 일본과의 교역로는 예수회와 그들의 뒤에 있는 카톨릭 교회가 움켜쥐고 있다.

따라서 교역으로 배가 나갈 때마다 상인들은 그들에게 돈을 내야 한다. 좋게 말하면 헌금, 나쁘게 말하면 교역료를 이용하는 보호비(みかじめ料)이다.

게다가 그들은 아시아에 점재(点在)하는 항구나, 아시아 지역 최대의 노예시장인 마카오 등에서 일정한 권익을 가지고 있었다.

즉, 시즈코가 남만 무역을 하면 할수록, 예수회는 상인들로부터 헌금을 징수할 기회가 생기는 것이다.

가만히 앉아있기만 해도 큰 돈이 품에 들어오니, 교역이 왕성해지게 하기 위해서라면 배포좋게 투자하는 것이다.

실제로, 시즈코가 수출품을 늘렸기에 교역이 늘어나, 결과적으로 예수회의 재정은 점점 좋아졌던(右肩上がり) 것이다.


"그런 것보다, 슬슬 스털링 엔진이 움직인다"


"어이쿠 이런. 지금은 눈앞에 집중해야지"


아시미츠의 지적에 사고의 늪에서 되돌아온 시즈코는, 쓸데없는 잡념을 머리에서 털어버렸다. 시선을 스털링 엔진 쪽으로 돌리자, 몇 명이 출력축에 있는 핸들을 돌리고 있었다.

스털링 엔진은 작동 유체를 덥히기만 해서는 움직이지 않는다. 피스톤을 움직여 작동 유체의 흐름을 만들어줄 필요가 있다.

그리고 작동 유체가 일정한 온도차에 도달하지 않으면 스털링 엔진은 외연기관으로서 기능하지 않는다.


"조금 시간이 걸릴 것 같네"


턱에 손을 대고 기술자(職人)들을 지켜보았다. 그게 약간 압박감을 주었는지, 기술자들은 작은 목소리로 뭔가 이야기를 나누며 핸들을 돌렸다.

그리고 30회 정도 핸들을 돌렸을 무렵, 드디어 스털링 엔진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오옷"


나가요시가 감탄성을 발했다. 케이지나 사이조도 말은 하지 않았지만 스털링 엔진에 시선이 못박혀있었다. 조금 후 출력이 필요 수치에 도달했을 무렵, 기어박스를 통해 송풍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느릿했던 풍력이, 금방 땅바닥의 흙먼지를 날려버릴 정도의 파워가 되었다. 실제로 열풍을 보내는 시험은 다른 날에 할 예정이었으나, 현재 상황을 보는 한 딱히 문제는 없을 거라 확신했다.

그리고 그녀의 확신은 옳았다. 고로의 온도를 높이는 열풍로의 시험은, 최종 시험까지 큰 문제없이 성공적으로 끝났다.




고로에 관한 시운전을 했으나, 하나같이 큰 문제 없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작은 문제가 쌓여서 며칠 시험 예정이 어긋났으나, 만회할 수 있는 범위였다.

스크류 선박의 트러블에 비하면 무서울 정도로 문제랄 만한 문제가 일어나지 않는 고로의 시험은 최종 시험까지 종료되었다.

관계자들에게 치하의 말을 하고 성대한 기념 파티를 연 후, 모든 보고서를 노부나가에게 제출한 시즈코는 잠시간의 휴식을 만끽하고 있었다.


"휘이ー, 한때는 어떻게 되나 싶었어"


"고생했다, 시즈코"


자기 방의 책상에 엎드려서 휴식을 취하는 시즈코에게 아시미츠가 위로의 말을 했다.

고로의 시험이 끝나면, 키묘마루(奇妙丸)의 첫 출전식(初陣式)까지 딱히 할 일은 없다.

그는 할아범(爺)에게서 스파르타 식의 특훈을 받고 있기에 이 자리에는 없지만, 소문(風の噂)으로는 그런대로 봐줄만해지고 있다고 한다.

오다 가문의 적자(嫡男)로서 훌륭하게 소임을 다 하기를, 이라고 시즈코는 마음 속으로 응원했다.


"아시미츠 아저씨도 수고했어요ー. 이것저것 손이 미치지 않는 부분을 도와줘서 고마워요ー"


시즈코도 아시미츠에게 치하의 말을 건넸다.


"신경쓰지 마라.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니"


아무 것도 아니라는 태도였으나, 그의 입가에는 작은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다시 책상에 엎드린 시즈코는 머리를 이리저리 굴리며 고로에 대한 향후의 일을 생각했다.


제철이 가능해지면 다음에는 제강(製鋼)을 하고 싶지만, 시즈코에게는 그럴 수 없는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제철을 하기 위한 전로(転炉)는 내화(耐火) 벽돌과 마찬가지로 딜레마를 품고 있다.

즉, 강철을 만드는 전로를 위해 강철이 필요해지는 것이다. 정확하게는 전로를 받치는 지주(支柱)와 움직이기 위한 횡봉(横棒)이 강철이 아니면 강도가 부족하여 쪼개져 버리기 때문이다.


이 딜레마 때문에 시즈코는 한 가지 궁리를 해야 했다. 고로에서 만든 철을 일단 성형하여, 일본도처럼 두들겨서 필요한 탄소량을 함유한 강철로 바꾼다.

하지만 용선(溶銑)을 그대로 성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인(phosphor)이나 유황이 섞여 있어, 강철로 만들어도 약해져 버린다. 이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용선 예비처리(溶銑予備処理)라고 하는 공정을 수행할 필요가 있다.

간단히 말하면 용선에 함유된 불순물을 제거하는 작업이다. 기본적으로는 탈규(脱珪), 탈인(脱リン), 탈유황(脱硫黄) 세 가지를 한다. 그러기 위해 투입되는 재료는 석회(石灰), 산화철(酸化鉄), 형석(蛍石) 등이다.

이것들을 용선에 투입하여 교반(攪拌, ※역주: 휘저어 섞음)한다. 이 때, 산소는 투입하지 않는다. 산소를 투입하면 용선이 고온이 되어 결과적으로 탈인 반응이 둔해져 버리기 때문이다.

석회나 산화철은 입수하기 쉽고, 형석도 일본에서 산출(기후(岐阜) 현(県) 히라이와(平岩) 광산(鉱山) 등)되기 때문에 어려움은 없다.


용선 예비처리를 한 철을, 일본도의 기술로 제련하여 강철로 만든다. 그것들로 전로를 만들어야 간신히 강철의 대량 생산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고품질의 강철을 추구한다면 전로로 제련한 후, 강철에 함유된 성분의 농도를 조정하는 2차 제련 공정을 할 필요가 있다.

2차 제련은 제강의 최종 공정에 해당하며, 그리고 강재(鋼材)의 품질을 결정하는 중요한 공정이다.

현대에서는 고로에서 제련, 용선 예비처리, 전로에서 제련, 2차 제련이라는 4공정이 고급 강철을 제조하는 표준적인 공정이다.


"고로에서 제조한 철을 제련해서 만든 강철이라"


고로의 시험은 문제없이 종료되었다. 슬래그가 꽤 나왔지만, 처음부터 슬래그를 줄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문제없이 철을 녹여서, 전로는 아니라도 제련하여 강철을 만들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기적이라고 할 수 있다.

석탄을 코크스로 변경하는 코크스 로(炉)나, 고로에서 나오는 슬래그도 부산물로서 재이용된다.

특히 코크스 로는 다양한 부산물이 손에 들어온다. 연소 배기가스(燃焼排ガス)를 그대로 밖으로 내보내면 공해를 일으키기에, 배출된 가스는 정제(精錬)하여 깨끗한 배기가스로 만들 필요가 있다.


코크스 로의 구조는 기본적으로 연소실(燃焼室), 벽돌로 된 벽으로 만들어진 탄화실(炭化室)이 교차로 배치된 로이다.

연소실에서의 열이 탄화실에 있는 석탄을 가열한다(蒸し焼き). 생성된 코크스는 고온이기에 고로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냉각된다.

냉각에 물을 사용하면 품질이 떨어지므로, 건식(乾式) 소화설비(消火設備)라 불리는 장소에서 불활성(不活性) 가스(질소 등 화학 반응이 잘 일어나지 않는 기체)를 사용하여 냉각시킨다.

이 때 발생하는 고온 가스를 사용하여 발전용의 터빈을 돌리는 증기를 생성하는 시스템도 있다.


석탄을 가열하면 휘발 성분이 가스가 되어 방출된다. 가스에는 거친(粗) 경유(軽油)나 황산(硫酸), 암모니아 등의 유효 성분이 함유되어 있기에, 그대로 밖으로 방출하는 것은 위험하다.

먼저 고온의 가스를 암모니아수로 냉각시킨다. 코크스 로 가스에 함유된 황화수소(硫化水素)나 염소(塩素) 가스를 효율적으로 제거하는 데는 농도가 옅은(希薄) 암모니아수가 가장 좋다.

그 후에는 극약(劇薬)이 제거된 가스에서 타르나 거친 경유, 황산, 암모니아를 정제하고, 남은 가스는 코크스 로의 연료로 재이용한다.

참고로 황산과 암모니아를 사용하여 질소 비료의 황산 암모늄(다른 명칭은 유안(硫安))을 생성하거나, 그것들을 재료로 질산(硝酸) 암모늄(다른 명칭은 초안(硝安))을 생성할 수 있다.


유안은 비료로서 중요하지만, 초안은 비료 외에도 다양한 쓰임새가 있다.

초안은 물과 섞으면 흡열(吸熱) 반응을 일으키기 떄문에, 순도(純度)를 일부러 낮춘 초안과 물을 섞어서 얼리면 휴대용 보냉제(保冷剤)를 만들 수 있다.

다만 초안은 조금만 취급에 실수하면 폭발하여 주위에 막대한 피해를 일으킨다. 그 떄문에 시즈코는 순도를 극도로 낮춘 초안을, 휴대용 보냉제로서 취급하는 것에만 한정시키려고 생각했다.


"완성도는 좋은 느낌이네. 이거라면 전로의 지주도 반년 정도면 완성될까?"


"글쎄. 소량은 잘 풀려도 대량 생산이 되면 성공하지 못하는 케이스는 자주 있지"


"뭐, 그건 조금씩 생산량을 늘려가며 문제가 생기지 않는지 확인해 봐야지"


고로의 시험은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이걸로 완료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기술은 나날이 진보한다. 지금의 고로로는 철의 품질이 나쁘다. 지금부터 수십년, 어쩌면 백년 이상을 들여 천천히 연구하며 고품질의 철이나 강철을 생산하게 된다.

철이나 강철의 품질이 높아지면, 지금은 나무로 만든 배도 언젠가 철로 바뀐다. 철로 바뀌면 지금보다 더욱 대형의 배를 건조할 수 있어, 물류도 크게 변하게 된다.

그러나 고품질의 강철은 동시에 강력한 대포를 제조하는 것도 가능하게 한다. 게다가 고로나 전로의 기술을 응용하여 폭약(爆薬)을 제조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하지만 기술이란 건 어차피 도구이며, 평화를 위해 쓰일지, 아니면 인류의 역사 속에서 위험한 것이 될 것인지, 그것은 쓰는 쪽의 의사에 의해 좌우된다.


한 가지 예를 들면 하버-보쉬 법(Haber-Bosch Process)이 있겠다.

하버 보쉬 법이 탄생하기 전까지, 인류는 "맬서스 트랩(Malthusian Trap, 토지의 생산력에 맞는 인구로 억제하지 않으면 등차수열(等差数列) 적으로 증가하는 생활 자원이 반드시 부족해진다는 생각)"에 의한 빈곤에 신음하고 있었다.

하지만, 하버-보쉬 법에 의해 암모니아의 합성이 가능해지자 많은 화학 비료가 탄생하여, 농작물의 수확량 등 생활 자원은 비약적으로 증가하게 되었다.

이에 의해 인류는 처음으로 '맬서스 트랩'을 극복, 인구는 역사상 유례없을 정도로 비약적으로 증가했다.

만약 현대에서 하버-보쉬 법에 의한 암모니아 합성이 불가능해졌을 경우, 약 30억 명이 굶어죽을 것이라고 한다.


인류의 번영에 크게 공헌한 하버-보쉬 법이지만, 암모니아의 합성은 동시에 폭약의 원료가 되는 질산의 대량 생산도 가능하게 했다.

현대에서는 '오스왈트(Ostwald) 법(암모니아 산화법(酸化法)이라고도 한다)'에 의한 공업적 제법이 쓰이고 있는데, 이 때 암모니아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오스왈트 법이란 암모니아를 산소와의 혼합 기체로 만들어, 백금과 백금 광석에 함유된 불순물의 하나인 로듐(rhodium)을 1할 정도 섞은 것을 촉매(触媒)로서 가열한다.

그렇게 하면 일산화질소가 발생하고, 이것이 공기중의 산소와 결합하여 이산화질소로 변한다. 이 이산화질소를 온수(温水)와 반응시켜 질산과 일산화질소를 발생시킨다.

마지막 공정에서 발생한 일산화질소는 다시 이용되어, 다시 이산화질소가 되어 질산과 일산화질소가 된다.


이렇게 오스왈트 법을 이용하면 암모니아와 공기(순수한 산소 쪽이 생산량은 늘어난다), 온수가 있으면 폭약을 제조할 수 있다.

다른 나라의 정세에 영향받지 않고 자국내에서 질산의 대량 생산이 가능해졌기에, 지금까지 자원이 떨어지면 끝났던 전쟁이 장기화되게 되었다.

이 떄문에 하버-보쉬 법은 '평시(平時)에는 비료를, 전시(戦時)에는 화약을 공기에서 만든다'고 형용되게 되었다.


"일단 품질을 향상시키는 건 당연하다 치고, 당분간은 민간에서 사용해서 검증한 후에 군사적으로 이용하면 되려나ー"


그걸로 문제없다고 말하듯 아시미츠는 시즈코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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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

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겐키(元亀) 3년 결전(決戦), 미카타가하라(三方ヶ原) 전투


088 1572년 5월 상순



피자의 역사는 의외로 얼마 되지 않았다. 정확히는 피짜라고 불리는 그 요리는 이탈리아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평평하게 늘린 빵반죽 위에 다양한 토핑을 얹어 구워내는 심플한 요리다.

원반 모양의 평평한 빵은 세계 각국에 보이지만, 위에 토핑을 얹어 굽는다는 방법이 현재의 피자의 조리법과 닮은 것 때문에 이집트에서 전래되었다는 설도 있다.

현재의 피자에 가까운 요리가 등장하는 것은 18세기 후반, 나폴리의 노점이었다.

당초에는 서민의 음식으로서 친숙해진 피자였으나 세련되고 세분화되어가서, 19세기 초에는 피자 전문점이라는 의미의 피체리아(pizzeria)가 등장하는 등, 이탈리아의 폭넓은 층에 침투해 갔다.

피자의 역사가 오래되지 않은 요인은 토마토에 있다. 피자에 빠질 수 없는 재료인 토마토는, 스페인 인이 대항해 끝에 남미의 잉카에서 가지고 돌아온 것이다.

하지만 16세기에는 유럽에 토마토를 가지고 돌아갔으나, 당초에는 식용으로 생각되지 않았었다.

토마토와 같은 가지과의 식물 벨라도나(Belladonna)가 유럽에서는 유독 식물로 유명했기에 오로지 관상용으로 재배되었다.

여기서 기근이 이탈리아를 덮친다. 식량 확보에 고심하던 서민들은, 누구도 쳐다보지도 않던 토마토의 열매를 먹을 수밖에 없었다.

굶어죽는 것보다야 낫다고 생각해 토마토를 먹어보니 정말 맛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 이후, 이탈리아 요리에 붉은색을 곁들이는 빼놓을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이야기를 피자로 되돌리자. 당초에는 나폴리의 빈민층이 먹는 것이라는 위치였던 피자였으나, 이탈리아 왕비 마르게리타(Margherita)에게 헌상되어, 그녀가 사랑했기에 일반에 퍼져나갔다.

왕비가 좋아하여 자신의 이름을 붙인 마르게리타 피짜는 나폴리 피짜의 대표이다. 토핑은 심플하니 세 종류, 바실리코(basilico, 바질(basil)), 모차렐라 치즈, 토마토 소스만을 사용한다.

그녀가 이 요리를 사랑한 이유로, 세 가지 토핑이 갖는 색깔이 이탈리아 국기를 연상케 한 점이다. 심플하기에 얼버무림이 통하지 않는, 만드는 사람의 실력이 시험받는 나폴리 피짜의 임금님이다.


여담이지만, 피자와 피짜는 전혀 다른 요리이다. 그냥 본국풍의 발음이 피짜인 것이 아니라, 재료부터 먹는 방법까지 다르다.

피짜가 이탈리아 요리인 데 반해, 피자는 피짜를 기초로 미국에서 개량된 미국 요리이다.

피짜가 원칙적으로 한 사람당 한 장을 먹는데 대해, 피자는 한 장을 여러 사람이 나누어 먹는 일이 많다.

도우(dow)라고 불리는 반죽의 맛과 식감을 주역으로 삼는 피짜에 대해, 피자는 토핑이야말로 메인이며, 반죽은 곁들이는 것이다.

참고로 일본의 피자에서는 정석적 토핑인 옥수수나 감자, 마요네즈는 미국에서조차 이질적으로 비치는 듯 하다. 원조인 이탈리아인이 일본의 피자를 피짜라고 인정하지 않겠다고 강변하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이야기다.


그런 피짜를 16세기의 일본에서 재현해보인 것이 시즈코였다. 이유는 물론 노부나가이다. 시대의 최첨단을 달리는 오와리(尾張)에서 나는 식재료를 활용한 요리를 의논한 결과, 노부나가의 절대적 명령(鶴の一声)으로 시작되었다.

현대에서는 다양한 토핑이 올라가 있는 피자였으나, 그만한 재료를 준비하는 데는 수고가 든다. 그래서 나폴리 피짜의 대표이자 심플하고 맛있는 마르게리타 피짜가 선택되었다.


그래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바질은 재배가 쉽기 때문에 그다지 수고가 들지 않지만 문제는 모짜렐라 치즈와 토마토 소스이다. 특히 모짜렐라 치즈는 어렵다.

모짜렐라 치즈는 물소(水牛)의 젖을 원료로 만들지만, 전국시대의 일본에 물소는 존재하지 않는다. 또 수입해서 사육하려고 해도, 다습한 환경인 일본에서는 대단히 손이 많이 가서 어렵다.

하지만 물소 젖을 고집하지 않는다면 대용은 가능하다. 소에서 짠 우유에 레몬즙과 약간의 소금을 넣어 끓이면 모짜렐라 치즈의 대용품은 얻을 수 있다.

어느 쪽이냐 하면 리코타(Ricota) 치즈에 가깝지만, 이것저것 따질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1년 내내 토마토를 입수 가능한 현대와 달리 딱 좋게 익은 토마토가 열매를 맺고 있을 리도 없어서, 케첩에 양파와 마늘, 가루치즈, 소금과 후추를 섞어 토마토 소스의 대용품을 만들었다.

하지만, 마지막이자 최대의 문제가 하나 있었다. 시즈코는 피자의 반죽을 만들어 본 경험이 없었다.


"설마 이 나이에 피짜를 구울 줄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셈으로 미츠오(みつお)에게 물어봤더니, 운좋게도 그는 피짜를 만들어 본 경험이 있었다. 어째서 경험이 있냐고 하면, 매번 그렇지만 부업의 아르바이트로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도 일했었기 때문이다.

그 밖에도 어업을 돕거나, 농가에서 수확을 돕거나, 실로 경험이 풍부한 미츠오였다.


"하지만, 피짜 아궁이에서 굽는 쪽을 경험하셨을 줄은 몰랐어요"


"그 가게는 본격적인 이탈리안 레스토랑이라서요. 사장이 일부러 이탈리아까지 벽돌을 사러 갔었다고 합니다. 바질도 자택에서 재배하고, 모짜렐라 치즈를 들여올 곳을 찾는 등, 꽤나 진지했죠ー"


"이것저것 경험하셨군요"


"……그 시절은 불경기였거든요. 샐러리맨의 박봉으로는 딸을 고생시키지 않을 만한 수입을 얻을 수 없었습니다"


말이 끝남과 동시에 미츠오는 한숨을 쉬었다. 그의 어깨에 아시미츠(足満)가 손을 얹고 위로했다. 시즈코 자신은 현대의 노동을 거의 해본 적이 없지만, 생계를 위해 일한다는 것은 힘들겠구나라고 생각했다.


"뭐, 이런저런 일이 있었습니다만, 이쪽에서 가장 좋은 점이라고 하면 이것저것 먹을 수 있다는 거군요. 대뱃살(大トロ)을 마음껏 먹다니, 저쪽에선 돈이 아무리 많아도 부족하니까요"


"참치도 그렇지만, 다양한 생선이 적당한 가격으로 손에 들어오는 건 좋지"


어두운 화제로 분위기가 나빠졌다고 생각했는지, 미츠오는 일부러 밝은 분위기로 말했다. 아시미츠도 시즈코도 쓸데없니 무거운 분위기를 끌고 갈 생각은 없었기에, 그에게 맞장구를 쳤다.


"참치는 인기가 없으니까요. 뭐 피빼기와 신경빼기(神経抜き), 그 후에 바닷물로 만든 얼음을 만들지 못하면 속살이 익어서 맛없어지니까요"


참치는 도미(鯛) 등 다른 생선과 마찬가지로, 죠몬(縄文) 시대부터 식용으로 쓰인 친숙한 생선이다. 하지만, 참치는 에도(江戸) 시대 중반까지는 인기없는 생선이었다. 그것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쿄(京)는 도미 등 흰살생선을 최고로 치고, 그 이외의 생선은 하급어(下魚)로 취급했다. 참치는 붉은살 생선이기에 당연하지만 저급어(低級魚)로 보았다.

다음으로 에도 시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참치는 '시비우오(鮪)'나 '시비(宍魚)'였는데, '죽는 날(死日)' 등 죽음을 연상시키는 단어와 발음이 겹쳐, 싸움 전에 길흉을 따지는(験を担ぐ) 무사들에게 인기가 없었다.

또, 붉은 살이기에 짐승 고기와 닮았다고 하여 '육(宍, 짐승 고기라는 의미)'의 한자가 쓰여, 옛부터 있는 육식 금지의 사상 때문에 기피되기 일쑤였다.

에도 시대에 들어서도 참치는 저급어 취급으로, 당시의 시(川柳) 중에 '참치장수(鮪売り)가 간단하다며(安いものさと) 나타(鉈)를 꺼내(鉈を出し)' (※역주: 제대로 된 식칼이 아니라 나타, 그러니까 마체테 비슷한 칼로 마구 썰어 팔았다는 의미로 보임)라는 것이 남아있는 것을 볼 때, 얼마나 참치가 값싼 생선이었는지 알 수 있다.


에도 시대 후기가 되어 쥠초밥(握り寿司)이 등장하자, 그 때까지 밭의 비료로 취급받던 참치의 지위가 겨우 향상되었다. 그리고, 냉동기술이 발달하면서 고급어(高級魚)의 반열에 합류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때까지 고급어의 반열에 들지 못했던 것은, 참치를 적절하게 처리하지 못했던 것이 원인으로 '야케(やけ)'라 불리는 선도 열화가 발생한 것이 원인이다.


참치는 배 위로 올라오면 심하게 난동을 부려 체온이 금방 40도까지 올라간다. 그렇게 되면 참치의 살이 변색되어버려, 겉보기와 맛이 열화된다.

또 피빼기와 신경빼기를 한 후 차게 식히지 않으면 피 속의 효소(酵素)가 근육을 분해하여 산화가 촉진되어 시큼한 맛이 된다.

에도에 도착할 무렵에는 겉보기에는 변함이 없지만 내부는 상온(常温)에서 며칠 방치된 것처럼 변한다. 이 때문에 참치는 '맛없는 생선'이라 생각되었다.


전국시대, 참치의 미야케(身焼け)를 일으키지 않고 운반하려면, 주낙(延縄) 어법으로 낚아올린 참치에 피빼기와 신경빼기를 한 후, 바닷물 얼음에 재워 항구로 가지고 돌아올 필요가 있다.

항구에 가지고 돌아온 후에도 처리는 계속된다. 바닷물 얼음에 재운 채로 운반하여, 시즈코 전용이자 전국시대에 유일하게 존재하는 냉동고에 넣어 2~3일 냉동 보존한다.

이렇게 하면 참치 내부에 있는 기생충을 사멸시킬 수 있다. 냉동처리가 끝난 후에도, 수고를 아끼지 않고 얼음물 해동을 하여 참치의 살을 숙성시킨다.

여기까지 하면 간신히 현대와 동등한 생식(生食)이 가능한 참치로서 취급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현대의 최신 시설을 이용한 -60도 이상으로 급속 냉동하여 세포의 변화를 방지한 참치와 비교하면 약간씩 세포의 열화는 발생하지만, 그래도 평범하게 낚아올린 참치보다 훨씬 맛은 좋다.


"급속 냉동이 가능하면 좋겠지만요ー. 아무래도 무리겠죠. 뭐, 대뱃살을 마음껏 먹을 수 있는 건 행복합니다. 술에도 잘 어울리고요. 그렇다고는 해도, 수백 kg짜리 참치는 잘 걸리지 않네요. 잘해봐야 100kg면 큰 편입니다"


"근해에도 흑참치 같은 건 있는 모양이니까. 의외로 근해에 생선이 풍부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


잡담을 하며 다 구워진 피짜를 그릇에 담고, 그것을 근처에서 기다리고 있던 호리들에게 건넸다. 받아든 호리들은 그것들을 노부나가들이 있는 큰 방(広間)으로 날랐다.

아무래도 수십인분의 피짜를 굽는 것은 굉장한 중노동이었다. 다 구워진 피짜는 차례차례 무장들의 위장 속으로 사라져갔다. 몇 장을 구워도 끝날 기색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후ー, 아무래도 슬슬 더워졌어"


피짜 아궁이의 불이 줄어들 기색은 없고, 설령 화력이 떨어지면 장작이 차례차례 투입되었다. 그 열기가 새어나와 주위에는 봄을 넘어서 한여름 같은 더위였다.

장시간 열기에 노출된 몸은 수분을 요구했다. 시즈코는 물에 설탕과 소금, 레몬즙을 넣은 스포츠 드링크를 한 모금 마셨다.

뜨겁게 달아오른 몸에 깊이 스며드는 차가운 스포츠 드링크는 최고였다.


"……저녁 식사인 참치는 속편하게 끝났으면 좋겠네. 근데, 어째서 내가 이런 걸 들여오면 다들 아무 말도 안해도 모여드는 걸까"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시즈코였으나, 그 이유를 그녀가 알게 되는 일은 없었다.




시즈코가 아무 말도 안 해도 노부나가나 무장들이 식재료의 반입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시즈코의 저택에 때를 같이하여 모여드는 데는 간단한 까닭이 있었다.

그녀의 임시 저택이 정해졌을 때부터, 시즈코 저택의 주위에는 노부나가나 주요 무장들의 친족으로 둘러싸였기 때문이다.

표면상으로는 시종(側仕え)이나 고용인이었으나, 그들은 평소부터 시즈코의 동향을 면밀히 관찰하여 그것을 자세히 주인에게 보고할 의무를 가지고 있었다.

원래는 아야가 그 임무를 맡았지만, 아야의 지위도 높아지며 다양한 일거리를 맡게 되어, 시기 적절한 보고를 올리는 것이 어려워졌기에 급거 대역으로서 친족들의 고용인이 선발된 것이다.


동향이라고 해도 전부는 아니고, 오직 먹을 것에 관한 것이었다.

시즈코는 현대의 요리를 미츠오나 아시미츠, 때로는 고로(五郎)와 함께 재현해고, 그것들의 레시피를 정기적으로 자신이 관리하는 마을의 식당가조합(飲食街組合)에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레시피를 기본으로, 각 요리사들이 나름대로의 개조를 했기에, 언제부터인가 식당가는 일식, 양식, 중식이 뒤섞인, 무국적 요리나 창작 요리에 가까운 것들이 넘쳐나게 되었다.


식욕이라는 것은 무시할 수 없다. 맛있는 요리라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마음을 풍요롭게 해준다.

예를 들면 해삼(ナマコ)이다. 현대에서도 일본산의 말린 해삼은 세계 최고급품이다. 전국시대에는 말할 것도 없고, 현대에서도 해삼이 얼마나 맛있는지 아는 사람은 적다.

하지만 바로 가까운 곳에 재료가 있고, 그 조리법이나 맛이 널리 알려지면 평가는 뒤바뀐다. 해삼 식초(ナマコ酢)나 해삼 내장(고노와다) 등이 술안주로 서민에게 알려지자 단번에 수요가 뛰어올랐다. (※역주: 일본이 이 고노와다에 아주 환장을 하기 때문에, 예전에 한국에서 나는 해삼의 고노와다는 외화벌이를 위해 전량 일본으로 수출되고 국내 유통이 금지된 적이 있었다고 하여, 산지에서나 조금(정말 조금) 맛볼 수 있는 정도였다고 함)


아무도 쳐다보지도 않던 재료의 수요가 높아지면 남획되어 숫자가 줄어드는 것이 세상의 이치이지만, 시즈코가 대대적으로 양식업을 하고 있었기에 '해삼도 양식이 가능한 게 아닐까?'라고 생각되어, 뜻이 맞는 사람들끼리 조합을 만들어 해삼의 연구가 수행되게 되었다.

해삼의 양식은 시즈코가 계획하고 실행에 옮긴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연구를 시즈코는 대대적으로 장려하여, 자금은 말할 것도 없고 기술 원조까지 했다.


해삼은 빛을 싫어하기 때문에 어두운 환경과 쾌적한 수온을 유지해줘야 하지만, 먹이는 다른 양식어가 먹고 남긴 것이나 배양한 돌말류(珪藻), 적당한 해초 분말이면 문제없다.

이러한 해삼의 양식업 착수가 다른 사람들을 자극하여, 방어나 참돔, 잿방어, 넙치(광어), 참전갱이, 참고등어, 보리새우 등 생선이나 새우의 양식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나오게 되었다.

다만, 의욕적으로 양식이 이루어지는 것은 식용 가능한 생물 뿐이며, 관상용 잉어(緋鯉) 같은 관상용 품종을 키우는 것 같은 별난 짓을 하는 것은 시즈코 뿐이었다.


양식업의 발달에 따라, 시즈코의 마을이나 항구 마을에는 다종다양한 식재료가 식탁에 올라오게 되고, 그 여파가 다른 마을까지 퍼져나가, 결과적으로 오와리의 구석구석까지 경제효과가 파급되었다.

땅을 지배하는 노부나가나 무장들은 아무 것도 안 해도 세수(税収)가 올라가니까 쓸데없는 참견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무장들도 인간이다. 맛있는 것을 먹고 싶다는 욕구는 있다. 아니 오히려 남들보다 배는 강하다고 할 수 있다.

특히 기폭제인 시즈코들이 가까이 있으니, 그녀들을 감시하면 한발 빨리 요리를 접할 수 있다. 그런 속셈이 맞물려 시즈코의 동향은 감시되고 있는 것이다.

본인이 알게되면 "무슨 짓을 하는거야"라고 어이없어할 이야기이긴 하지만.


"피짜인가 하는 것은 잘 먹었다. 하지만 역시 나는 쌀이 좋구나. 남만인들은 저런 것을 매일 먹고 질리지 않는 것이냐"


마르게리타 피짜를 맛본 노부나가는 감상을 말했다.

다들 그의 감상에 고개를 끄덕였지만, 매일 쌀을 먹고 있는 일본인을 보고 서양인도 같은 감상을 느끼지 않을까, 하고 시즈코는 마음 속으로 지적했다.

한동안 담소한 후 해산되었으나, 저녁식사에 참치가 나올 것이기에 다들 귀가하지 않고 각자 휴식을 만끽하고 있었다.


시즈코와 미츠오, 아시미츠, 고로에게 휴식 시간은 없다. 다음은 저녁 식사인 참치의 밑준비를 해야 한다.

아무리 고로가 미리 밑준비를 한다고 해도 그 혼자서 처리할 수 있을리가 없다. 피짜의 작업이 끝나자, 그대로 고로의 보조를 맡았다.

잠시 휴식한 후 조리장으로 이동하였는데, 설실(雪室)에서 숙성된 참치의 살을 앞에 두고 고로가 신음했다.


"시비…… 참치라는 건 부위가 많구만. 뭘 만들어야 할지 떠오르질 않아"


한마디로 참치의 살이라고 해도 배와 등, 볼, 정수리(脳天), 꼬리 등 다양한 부위에서 고기를 얻을 수 있다. 부위별로 명칭은 다르지만, 기름이 오른 정도에 따라 대뱃살(大トロ), 중뱃살(中トロ), 살코기(赤身)로 분류된다.

확실히 밑처리를 해두었기에, 미야케가 발생한 갈색이 아니라 깨끗한 붉은색 고기였다. 대뱃살도 기름이 듬뿍 올라 있었다.


"회(刺身)와 초밥(寿司)으로 참치의 맛을 느끼게 한다고 치고…… 그밖엔 뭐가 좋을까요?"


메뉴가 고민된 시즈코가 미츠오에게 물었다. 솔직히 시즈코도 고로와 마찬가지로 회와 초밥 이외에 이렇다 할 요리가 떠오르지 않았다.

시식할 때도 회와 초밥 정도밖에 떠오르지 않아, 결국 그걸로 끝내 버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노부나가들이 먹을 차례따. 회와 초밥만으로는 심심하다.


"으ー음, 이만큼 많이 있으니, 야마카케(山かけ丼, ※역주: 다랑어회에 산마즙을 곁들인 요리) 덮밥일까요. 와사비나 본양조(本醸造) 간장도 있으니 맛있을거라 생각합니다"


"아, 선물로 참치 병조림(ツナ, ※역주: 흔히 말하는 참치캔의 참치인데, 적당한 단어가 없어 문맥상 참치 병조림이라고 의역했음)을 만들죠"


"참치 병조림이라고 하면 마요네즈를 뺄 수 없지. 하지만 참치마요는 위험하다, 밥이 지나치게 당겨"


"아시미츠 씨는 참치마요를 원하시는군요. 본양조의 쌀식초에 갓 낳은 계란, 갓 짜낸 유채기름(菜種油)이 있군요. 마요네즈는 충분히 만들 수 있습니다"


"아저씨가 말하는 마, 마욘네-즈? 가 뭔진 모르겠지만, 재미있을 것 같으니 만들어줘"


"아저씨가 아니라 미츠오입니다. 참치 병조림은 마늘에 생강, 소금, 유채기름이군요. 아, 그러고보니 후추가 있었죠. 이걸로 맛에 깊이를 낼 수 있습니다"


"후추는 아직 귀중하니까, 너무 많이 쓰지 마라?"


미츠오, 고로, 아시미츠 등 세 명은 참치를 앞에 두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요리를 했다. 끼어들 여지가 없네라고 생각한 시즈코는 쓴웃음을 지으며 볼을 긁었다.


"그럼 요리는 세 사람에게 맡길게요. 나는——"


"그럼 그 동안, 저와 같이 차라도 한 잔 어떠시겠소?"


"우와악!"


어느 틈에 등 뒤에 서 있었는지, 상쾌한 미소를 떠올린 사키히사(前久)가 시즈코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그렇게 말했다. 너무나도 예상밖이었기에 시즈코는 얼빠진 비명을 질렀다.


"핫핫핫, 놀라게 해버린 듯 하군요"


"……무얼 하러 왔느냐"


갑작스런 사키히사 등장에 놀란 고로와 미츠오였으나, 아시미츠는 꿍한 표정으로 질문했다. 아시미츠의 노려보는 듯한 시선을 받고도 사키히사는 표표(飄々)한 태도로 대답했다.


"아니, 저녁식사가 좀 궁금해져서 말이지. 잠깐 놀려주러 왔네. 그랬더니 뭔가 즐거운 듯한 목소리가 들려서 말이지. 방해하는 것도 미안하다고 생각하여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기다린 게지"


생글거리며 대답한 후 사키히사는 시즈코 쪽을 보았다.


"실례했소이다. 놀라게 할 생각은 없었는데, 결과적으로 놀래킨 상황이 되어버렸군요"


"어, 아뇨, 이쪽이야말로 이상한 소리를 내서 죄송합니다. 아, 차라면 기쁘게 함께하지요"


"그거 고맙군요. 그럼 나와 시즈코 님은 이만 실례하지. 세 사람 모두, 맛있는 저녁 식사를 기대하고 있겠네"


승락을 얻은 사키히사는 시즈코의 어깨에 손을 얹고 그녀를 에스코트했다.

사키히사는 멍해있는 표정의 고로와 미츠오, 불쾌한 듯한 표정의 아시미츠에게 사람좋은 웃음을 던지고는 주방에서 나갔다.




그 날의 참치 잔치(マグロ尽くし)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에도 시대의 사람들은 지방살(脂身)에 약하지만, 전국시대의 사람들은 전쟁이 계속되기 떄문에 에너지를 많이 필요로 한다.

필연적으로 에너지가 되는 지방살도 많이 섭취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복잡한 얘기는 관계없이, 지금까지 맛없어서 먹을게 못 된다고 하던 참치가, 실은 어느 정도의 처리를 하면 맛있는 생선이 된다는 쪽이 충격적이었다.

시비라는 불길한 이름을 완전히 무시하고 노부나가를 시작으로 오다 가문 가신들은 정신없이 참치 요리를 즐겼다.


"맛있었다. 하지만, 시비로는 이름이 영 좋지 않군. 이후에는 시비가 아니라 참치라고 부르도록"


이름의 불길함은 노부나가의 절대적 명령 한 마디로 해결되었다. 하지만 지금 이 상태로는 참치의 사치스러운 부분밖에 맛보지 못했다. 좀 더 참치의 장점을 맛보았으면 하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그래서 그녀는 한 수를 준비했다. 현대에서도 대인기인 참치 병조림을 준비하여 노부나가들에게 뿌렸던 것이다.

참치 병조림은 굴(牡蠣)의 기름절임처럼 기름으로 저온 가열하는 요리이다. 모양도 신경쓸 필요 없고, 참치의 남은 부분을 기름으로 가열해서 기름과 함께 병에 담으면 된다.

다음날 아침 식사에 참치마요 주먹밥을 내자, 그야말로 광희난무(狂喜乱舞)가 벌어져, 다들 참치마요 주먹밥을 탐닉했다.

아침식사 후에 병에 담은 참치 병조림을 나누어주었는데, 수십개나 되던 참치 병조림은 하나도 남김없이 노부나가나 오다 가문 가신들이 가지고 돌아가 버렸다.


"무, 무서운 참치마요!"


잔뜩 있던 참치 병조림이 깨끗하게 사라진 것에 고로는 아연실색했다. 참치 병조림이 남으면 술안주로 삼으려 했던 고로의 생각은 허무하게 무너졌다.

남은 것이라고 하면, 시즈코가 등사판 인쇄한 참치마요의 레시피와 마요네즈의 레시피 뿐이었다.

팥소(餡) 때처럼 주먹밥 내용물의 논쟁이 벌어지지 않아 시즈코는 만만세였으나, 고로는 그렇지 못했다.


"말했잖나. 참치마요는 위험하다고"


그런 그에게 아시미츠는 어깨에 손을 얹고 위로의 말을 했다. 미츠오는 뭐라 말할 수 없는 표정으로 볼을 긁고 있었다.


"뭐ー, 이후에는 참치도 잔뜩 들여올 수 있을테니, 다음 기회를 기대하시죠, 네?"


"그렇다, 고로. 오다 나으리는 마음에 들어하셨으니, 이후에는 얼마든지 기회는 있을거다"


심하게 낙담한 고로를 아시미츠와 미츠오가 달랬다. 처음에는 낙담했던 고로도, 다음 기회가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마음을 다잡았다.


참치 시식회가 끝난 지 며칠 후, 시즈코의 저택은 며칠 전의 떠들썩함이 거짓말 같은 고요함에 휩싸여 있었다. 작물의 재배 상황을 차분히 확인할 수 있었기에 시즈코는 조용한 것을 기뻐했다.

재배하고 있는 남국의 과일 중 가장 수확 시기가 가까워진 것이 망고였다. 둥그런 망고가 잔뜩 있었으며, 앞으로 몇 달만 지나면 잘 익은 과실이 된다. 수확 후에는 접붙이기(接木)로 묘목을 만들어 늘리면 된다.

씨앗부터 키우면 최소라도 6년, 길면 10년 가까이 걸리므로 씨앗부터 재배하지는 않는다.

망고스틴이나 라이치, 람부탄, 드래곤 프루츠 등은 재배에 성공했을 뿐, 아직 열매를 맺는 데 이르지는 못했다.

뭣보다 이 품종들은 접붙이기나 꺽꽂이(挿し木) 기술을 사용해도 열매를 맺을 때까지 몇 년은 걸리는 것이다. 특히 직사광선에 약한 망고스틴과, 직사광선이 필요한 라이치의 상성이 나쁘다.

한 쪽은 햇빛에 주의하고, 한 쪽은 햇빛을 쪼이게 할 필요가 있어, 묘목이 작은 상태에서는 혼동하여 실패할 우려도 있었다.

운좋게 성공했지만, 다음에는 수확하기 위한 높이에 주의해야 한다.


"무화과는 분명히 첫 해에는 수확하면 안됐지. 게다가 물을 좋아하는 성질…… 요즘 들어 생각이 드는데, 이만한 숫자를 한번에 재배하려고 생각한 건 실패였을지도"


카카오나 커피만으로 만족하면 좋았을걸, 이라고 시즈코는 최근들어 생각하게 되었다.

아무래도 필요한 대응이 너무 뒤죽박죽이라, 각자의 재배 구획에 정보를 정리한 서류를 놓게 했다.

손질이나 육성 상황을 파악하기 전에 그것들을 읽고 혼란되지 않게 한 덕분에 지금까지 착오는 발생하지 않았다.


하지만 커피는 수확할 수 있는 것이 빨라도 내년, 카카오에 이르러서는 3년 이상을 예상하고 있었다.

드래곤 프루츠나 무화과는, 첫해째의 열매에서 씨앗을 빼기 때문에 먹을 수 없다. 두 품종 모두 식용으로 쓸 수 있는 것은 내년부터다.

망고스틴이나 라이치, 람부탄은 열매를 맺기까지 몇 년이 걸리기 때문에, 빨라도 심은 후 3년째 정도로 예상하고 있다.


남만 과일 중에서 가장 간단한 작물이 드래곤 프루츠다.

드래곤 프루츠는 선인장류에 속하기 떄문에 재배 자체는 어렵지 않으며, 병충해나 불량환경에도 강하기 때문에 딱히 농약을 쓰지 않고 1년에서 2년이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게다가 과실 뿐만이 아니라 꽃봉우리(蕾)나 꽃도 식용할 수 있고, 특별히 관리를 해주지 않아도 잘 자라는 왕성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

그 때문에 남만 과실을 재배하고 있는 비닐하우스에서는 상당히 함부로 취급되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흙에서 양분을 빨아들여 성장을 계속하고 있었다.

늘리는 방법도 씨앗과 꺽꽂이 두 가지 방법이 있으며, 뭣보다 씨앗으로부터도 발아율이 좋기에 금방 늘어난다. 다만 추위에는 약하므로 밖에서 재배할 수는 없어 비닐하우스에서 꺼내서 키우는 일은 없다.


"파인애플도 잔뜩 늘어났는데, 슬슬 소비량에 맞지 않으니 숫자를 줄여볼까"


지금까지는 두 개 정도의 비닐하우스가 있었으나, 새로운 저택을 짓게 된 관계로 두자릿수에 달하는 숫자가 건축되게 되었다.

온천의 수량(湯量) 관계로 온실 하우스로 만들 수 있는 숫자는 제한되지만, 그래도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숫자를 재배할 수 있다.

확장되는 것은 비닐하우스 뿐만이 아니다. 논밭이나 닭이나 집오리, 거위(鵞鳥)에 오골계(烏骨鶏) 등을 사육하는 구획도 새롭게 정비된다. 물론 확장 규모 때문에 이전하는 것은 아직 나중의 이야기였지만.


"후추가 순조롭게 겨울을 나서 안심했어. 이거라면 묘목을 늘리는 것도 문제없네"


마지막으로 후추 나무를 확인하여, 순조롭게 겨울을 나고 있는 것을 확인한 시즈코는 비닐하우스를 떠났다.




노부나가가 시즈코의 집을 방문한 이후, 카네츠구(兼続)의 활동은 눈에 띄게 줄었다. 가끔 케이지(慶次)와 함께 시즈코가 관리하는 마을에 외출하는 정도로, 하루종일 방에서 데굴거리는 경우가 많았다.

시즈코 관찰에 질린 건지, 아니면 단순히 아무 것도 할 생각이 들지 않는건지, 어떤 마음으로 카네츠구가 활동을 삼가고 있는지는 모른다.

다만, 시즈코로서는 초기의 감시에 가까운 행동이 없어져서 꽤나 속이 편해지긴 했다.


"신세졌소. 인연이 있다면 다시 만나지"


그리고 세월은 순식간에 흘러서 4월, 완전히 눈이 녹았다고는 하기 어렵지만 에치고(越後)로 귀환하는데 문제없는 시기가 되자, 카네츠구는 그 말만 남기고 시즈코의 집에서 떠나갔다.

침울한 이별도 없이, 바람에 흐르는 구름 같은 느낌이었다. 시즈코는 또 홀연히 나타나서 대충 집에 죽치고 앉았다가 바람같이 떠나가는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즈코가 준비한 선물을 빼먹지 않고 가지고 돌아간 것에는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지만.


"뭐랄까, 자유로운 바람의 아들이라는 느낌이었네"


살짝 중얼거린 시즈코의 카네츠구에 대한 인물 평가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 평가를 받은 카네츠구는 일향종(一向宗)을 가볍게 따돌리고 며칠 후에 켄신(謙信)의 거성(居城)인 카스가 산성(春日山城)으로 귀환했다.


"지금 돌아왔습니다, 영주님(お実城様)"


성으로 돌아오자 켄신으로부터 즉시 호출이 떨어졌다.


"잘 돌아왔다. 여행길에 피곤할텐데 미안하지만, 바로 오와리의 이야기를 들려주겠느냐"


싱긋 웃는 표정으로 말하는 켄신이었으나, 반대로 사네츠나(実綱)는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그것도 어쩔 수 없는 것이, 카네츠구는 카게카츠(景勝)의 근시(近習)이다. 그 역할을 잊고 혼자서 오다가 있는 곳으로 갔으니 불쾌하게 생각해도 어쩔 수 없다.

카게카츠 본인은 "요로쿠(与六)는 바람의 아들이니까요"라며 별로 신경쓰지 않았지만.


"옛, 영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백성들은 느긋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작은 분쟁은 종종 일어났습니다만, 그것을 전문으로 다루는 자들이 있었기에 큰 소동으로 발전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그러한 틀에 박힌 보고는 필요없다. 요로쿠, 네가 느낀 것을 솔직히 말해라"


노키자루(軒猿)가 올리는 것 같은 보고를 켄신은 원하지 않았다. 필요한 것은 카네츠구가 무엇을 보고, 어떻게 느꼈는지였다. 켄신의 진의를 이해한 카네츠구는 자세를 바로했다.


"실례했습니다. 그럼…… 시즈코 님은 한 마디로 말하면 신비(不思議), 합니다. 소생도 이런저런 소리를 듣습니다만, 시즈코 님은 그보다 한층 더 불가사의한 존재입니다. 무욕…… 은 아니군요. 타인의 욕심은 민감하게 알아챕니다. 그 욕심을 잘 자극해서, 원하는 대로 일을 시키는 수완은 훌륭하다고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듣기좋은 소리만으로 사람이 움직인다면 정치하는 자들이 고생할 일은 없다. 명예, 땅, 명품(名物), 돈 등, 인간이라는 존재는 동기에 사리사욕, 말하자면 이득을 얻지 못하면 움직이지 않는다.

상대의 의견에 찬동하고 편을 들더라도, 결국 그 인물을 움직이는 것은 자신이 얻을 수 있는 이익이다.

노부나가는 당연하지만 시즈코도 이 점을 충분히 이해하고, 자신을 편드는 자들에게 이익을 주고 있다. 물론, 주기만 하는 것은 아니고 준 이익에 걸맞는 일은 시키고 있다.

일도 하면서 쌍방에 이익이 늘어나는 것이니, 일을 맡게 된 자들은 필사적으로 성과를 낸다.


"호오, 시즈코 님은 사람의 욕망 따위 이해하지 않는 듯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만"


"겉보기와 생각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 여인입니다. 그녀는 자신을 이롭게 하는 자에게는 이익으로 보답합니다. 하지만, 자신을 해하려 들거나, 얕보고 속이려 들면, 그러한 의도의 정도에 관계없이 치명적인 보복을 합니다. 예를 들면 어제 술잔을 나누던 상대라도, 마치 표정이 뒤집히는 것처럼 대응이 바뀝니다"


"단념(思い切り)이 빠른 구석이 있는 것인가. 때와 장소에 따라서는 강점이 되지. 하여, 배신한 상대에게는 어떠한 처분을 내리더냐"


"배신한 상대가 개심(改心)한다면 용서합니다. 물론, 배신에 걸맞는 가혹한 노역이 주어집니다만, 몇 번인가 항복 권고를 하고, 그래도 태도를 바꾸지 않는다면 씨를 말립니다(몰살)"


"잘 알았다"


"옛"


카네츠구의 보고는 충분한 내용이었다. 켄신은 머릿속으로 카네츠구의 보고를 하나하나 음미하며, 지금부터 어떠한 행동이 에치고에게 좋을지 생각했다.


(타케다(武田)는 움직인다. 북쪽으로는 에치고 일향종, 동쪽으로는 타케다, 남쪽으로는 나가시마 잇코잇키(長島一向宗), 서쪽으로는 혼간지(本願寺). 아사쿠라(朝倉)나 아자이(浅井)도 있지만, 크게 나누면 이 네 군데가 오다를 포위하고 있지)


제 2차 오다 포위망은 조용히, 착실하게 노부나가를 둘러싸고 있었다. 저번같은 이런저런 세력이 아니라, 이번에는 모두 혼간지가 주도하여 포위망을 형성하고 있었다.


(보통이라면 오다의 패배는 필연. 우리 에치고라도 타케다와 전쟁을 하면 잘해봐야 비기겠지. 하지만 내게는 도저히 오다의 패배가 보이질 않는다. 타케다도, 혼간지도, 그리고 우리들도, 이 포위망에 숨겨져 있는 작은 비틀림이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닐까)


일본 최강의 타케다 군은 과장은 아니다. 신겐(信玄)은 통산 72회의 전투를 벌여, 개중 3번밖에 패배하지 않았다. 그 3번도 젊었던 시절, 유명한 토이시 함락전(戸石崩れ)에서 무라카미(村上) 세력에게 패배한 것 뿐이다.

그 이후로는 이겼던가 아니면 비겼던가 둘 중 하나였다. 이 승리에서 무서운 점은, 자국이 공격받았을 때의 승리는 하나도 없이, 모두 신겐이 다른 나라를 침공했을 때의 승리라는 것이다.

즉 타케다 신겐은 평생 다른 나라에게 공격받은 적이 없다. 타케다 군의 강력함을 다른 나라가 두려워하여 주저했던 것이다. 그야말로 신겐이 이끄는 타케다 군은 일본 최강의 군단이라고 할 수 있는 존재이다.


이 인식은 켄신 뿐만이 아니다. 제 2차 오다 포위망을 주도하고 있는 혼간지, 불태워진 엔랴쿠지(延暦寺), 요시아키(義昭)에 아사쿠라, 아자이도 같은 인식이다.

다들 타케다가 오다 영토를 공격하면 모든 것이 끝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 때문에 이번의 오다 포위망은 어떻게 노부나가를 괴롭혀서(信長) 타케타 대책에 집중하게 하지 못하는가가 핵심이라고 파악하고 있었다.


(뭔가 아귀가 맞지 않는다. 무엇이, 이라고 하면 대답할 수 없지만, 내 감이 아니라고 속삭인다)


켄신은 타케다가 움직이면 모든 것이 끝난다는 생각에 의문을 품고 있었다. 무언가 확증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단순히 자신의 감이, 오다가 타케다에게 패한다는 생각을 납득하지 못하고 있는 것 뿐이다.


"한 가지 묻겠다만, 시즈코 님은 전쟁 준비를 하고 있더냐"


"예? 아뇨, 그런 기색은 없었으며, 수하들도 딱히 이렇다 할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가…… 그만 물러가도 좋다"


카네츠구를 물러나게 한 후 켄신은 턱에 손을 대고 다시 생각했다. 그의 머릿속에서 몇 가지 예측이 세워져갔다. 켄신에게 있어 타케다가 멸망하던 오다가 멸망하던 어느 쪽이라도 상관없다.

어떠한 선택지가 에치고에 가장 좋을 것인가, 그것이 켄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다.


(조금 더 상황을 살필 필요가 있군. 타케다가 움직인다면 호죠(北条)나 우리 중 어느 쪽과 동맹을 맺어 배후 걱정을 없애려 들겠지. 그 때, 시즈코 님이 어떻게 움직일 것인가, 그 이후에 결정해도 늦지는 않을 것이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시즈코를 강하게 의식하고 있는 것을 깨달은 켄신은, 놀라면서도 작게 미소를 지었다.

한편, 켄신에게 보고를 마친 카네츠구는, 팔짱을 끼고 고민하고 있었다.


"그럼…… 시즈코 님에게 빌린 돈을 변제할 방법을 모색해 볼까"




5월 상순을 지났을 무렵, 제 2차 미카타가하라(三方ヶ原) 대지(台地)의 지형 조사팀으로부터 보고서가 올라왔다. 면밀한 지형에 더해 표고(標高), 각 지점(地点)마다 온도와 습도까지 데이터로서 정리되어 있었다.

이미 데이터로서는 완성되어 있었으나, 미카타가하라 대지의 지형 조사는 나중에 한번 더 할 예정이었다. 제 3차 미카타가하라 대지의 지형 조사는, 좀 더 군사적인 면에서의 조사가 된다.

타케다 군이 포진할 장소는 어디인가, 오다-도쿠가와(徳川) 연합군은 어떻게 이동하는 것이 최적인가 등, 대(対) 타케다 전에서 필요한 조사를 전부 수행한다.


"뭔가 열심히 조사하고 있다만, 잊어버리지는 말거라?"


조사 보고서를 숙독하고 있을 때, 갑자기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료에서 얼굴을 들고 목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팔짱을 끼고 으스대고 있는 키묘마루(奇妙丸)가 있었다.


"잊다니 뭐를?"


뭔가 예정이 있었나, 라고 시즈코는 고개를 갸웃했다.


"잠깐 기다려! 알겠냐, 이제 곧 내 첫 출전식(初陣式)이 있다. 시즈코, 꼭 참가해라"


"아아……"


지적받은 시즈코는 겨우 떠올렸다. 역사적 사실에서는 타케다 상대를 이에야스(家康)에게 떠넘긴 노부나가는, 겐키(元亀) 3년 7월에 전군을 오우미(近江) 방면에 소집시켰다. 거기서 노부나가는 적자(嫡男)인 노부타다(信忠)의 첫 출전식을 치렀다.


"7월인가. 좀 이것저것 겹치니까 될 지 모르겠네"


팔짱을 끼고 시즈코는 중얼거렸다. 아직 결정사항이라고 하긴 어렵지만, 올라온 보고서들을 볼 때 6월과 7월은 중요한 계획의 시제품(試作品)이 선보이게 된다.

그중 하나는 개발에 몇 년이나 걸렸지만 겨우 6월 하순에 완성이 예정된 수동식의 스크류 선박, 그리고 7월 상순에 내화(耐火) 벽돌이나 코크스로 철을 녹이는 고로(高炉)가 있다.

특히 고로는 스털링 엔진의 시제품의 시험과 세트로 수행된다. 스크류 선박은 아직 여유가 있지만, 고로와 스털링 엔진의 시운전은 반드시 성공시켜야 한다.

역사적 사실에서는 7월 하순의 아자이 공격이 노부타다의 첫 출전이라고 한다.

그리고 아자이 공격에 대해서는 시즈코의 귀에도 들어와 있다. 즉, 7월 하순에 노부타다의 첫 출전식이 치러질 가능성은 대단히 높다.


(자 어떡한다. 아시미츠 아저씨에게 맡겨도 되지만, 전군을 이끌고 가지 않으면 챠마루(茶丸)군은 삐질 것 같으니까 말야)


아무래도 키묘마루의 첫 출전식을 제끼고 연구 개발 쪽에 집중하는 건 좋지 않다. 하지만, 노부나가로부터는 모든 것에 우선하여 성공시키라는 엄명을 받았다.


(어라, 이거 오랜만에 위험ー한 상황 아니야?)


시운전이기에 실패할 가능성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트러블이 발생하여 잘 동작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것들을 첫 출전식까지 처리하고 참가하라, 는 것이 지금의 시즈코의 임무이다.

그것에 생각이 미친 시즈코는 얼굴에서 식은땀을 흘렸다.


"야야, 아무래도 내 첫 출전식을 제낀다고는 하지 마라?

어째서인지 성인식(元服)은 아직이지만, 첫 출전식은 최초의 영광스런 자리라고. 그곳에 네가 없으면 재미없잖아"


"알고 있어. 제끼거나 하진 않지만, 지금 떠안고 있는 안건들을 처리한 후 참가해야 하니 꽤나 빡빡힌 예정이라는 생각이라 그래"


"그럼 좋아. 다른 이야기인데, 너는 뭘 하고 있는 것이냐?'


"음ー, 새로운 공장의 지형 조사. 버섯 재배를 공업화시킬 거거든"


미카타가하라 대지의 지형 조사를 하고 있는 시즈코였으나, 진짜 목적은 노부나가 이외에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 이에야스에게조차도 가짜 목적을 말하고 본의(本意)를 밝히지는 않았다.

그들이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은 모든 것이 끝난 후면 된다. 지금은 괜히 비밀을 아는 사람을 늘리지 않고 정보를 은폐하는 것이 선결이다. 그러기 위해서라면 키묘마루조차 속인다는 것이 시즈코의 생각이었다.


"버섯 재배?"


시즈코의 꿍꿍이에 보기좋게 걸려든 키묘마루가 질문했다. 서류를 뒤적이는 척을 하며 미카타가하라 대지의 조사 보고서를 치운 후, 시즈코는 헛기침을 한 번 하여 분위기를 바꾸었다.


"종류에 따라 다르긴 한데 버섯은 재배가 가능한 게 있거든. 물론, 사람이 키운 버섯은 자연 속에서 자란 버싯이랑은 맛이나 향이 다르지만 말야"


버섯은 발생 조건에 따라 재배 방법이 다르지만 원목(原木), 균상(菌床), 퇴비(堆肥)、임지(林地) 재배의 네 종류를 기본으로 재배를 한다.

인공 재배의 역사는 그다지 오래되지 않아서, 16세기에 유럽에서 멜론 재배가 행해졌을 때, 동시에 주름버섯(ハラタケ) 종류의 버섯이 발생한 것을 계기로 버섯의 인공 재배가 시작되었다.

가장 빨리 버섯의 인공 재배에 성공한 나라는 프랑스로, 17세기에 머쉬룸(mushroom, ※역주: 보통 영어로 '버섯'을 뜻하지만, 이 경우에는 특정한 품종을 가리키는 듯함)의 인공 재배를 성공시키고, 18세기 초엽에 식물학자가 인공 재배의 기본적인 방법을 확립시켰다.

그로부터 1세기에 걸쳐, 19세기에 프랑스로부터 유럽이나 미합중국으로 인공 재배의 기술이 전해졌다.

한편, 일본은 에도 시대에 표고버섯의 인공 재배를 했지만, 종균(種菌)을 인공적으로 배양한다는 생각에 이르지 못했기에, 그다지 안정적으로 버섯을 얻을 수는 없었다.


"만가닥버섯(ブナシメジ) 같은 건 꽤 간단하니까 성공했지만, 다른 건 좀 더 시간이 걸릴 것 같아서 말야"


만가닥버섯이나 팽이버섯(エノキタケ), 맛버섯(ナメコ)은 일본에서 가장 많이 재배되고 있는 버섯류이다.

인공 재배가 대단히 용이하고 대량 생산하기 쉬운 이점이 있다. 현대와 같은 시설은 없어도 인공 재배 가능한 이점도 있다.

하지만 버섯균은 다른 균보다 약하기 때문에, 경합균(競合菌)을 차단할 수 있는 현대의 시설에서 재배하는 것과는 달리, 전국 시대의 인공 재배는 실패의 가능성을 품고 있다.

다만 맛버섯은 해로운 균에 대한 저항력이 다른 것에 비해 강하고, 그 때문에 가정에서도 쉽게 재배할 수 있다.


버섯균의 조직 배양은, 버섯의 일부를 잘라서 배양하는 조직 분리라는 수법을 사용한다.

우선 신선한 버섯을 준비하고, 멸균 처리한 날붙이로 버섯을 반으로 가른다. 오래된 버섯을 쓰지 않는 이유는 잡균에 오염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버섯의 내부 조직을 채취하여, 그것을 한천(寒天) 배지(培地)에 올려놓는다(置床). 그 후에는 성공할 경우 조직에서 버섯 균이 자란다.

본래는 무균 상태에서 접종(接種)을 하지만, 전국 시대에는 무균 환경을 만드는 것이 불가능하기에, 시즈코는 모닥불 옆에서 접종을 했다.

불에 의한 상승기류가 발생하여, 그것이 배지(培地)에 균이 달라붙은 것을 막아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팽이버섯의 폐배지(廃培地)에서 독황토버섯(コレラタケ, 독버섯)이 자라는 일이 많다.

따라서 식용 버섯의 배지니까 문제없다고 오해하고 먹었다간 큰일나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하다.


"네가 키운 표고버섯은 맛있지만, 버섯은 영 먹은 것 같지 않은 게 문제다"


"뭐 버섯이라는 건 많이 먹는 것도 아니니까"


만가닥버섯은 어떤 요리에도 잘 어울리며, 팽이버섯은 냄비요리(鍋物)나 끓인 요리(煮物)에 쓰이고, 맛버섯은 된장국이나 볶음 요리의 건더기로 쓰이는 등, 시즈코가 인공 재배하고 있는 버섯은 이용 범위가 넓다.

다만 표고버섯은 달라서, 이 버섯만큼은 영주나 무장 등, 지배 계급 사람들이 스테이터스 심볼(status symbol)로서 이용하고 있다.


식량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것이 시즈코의 기본적인 생각이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일반 사람들이 먹는 식재료와, 지배 계급 사람들이 자신의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 쓰는 식재료로 필연적으로 갈리게 된다. 버섯으로 말하자면 전자는 만가닥버섯, 후자는 표고버섯이 된다.

특히 표고버섯은 해외로 수출되는 중요한 상품이기에, 막대한 숫자를 생산하려고 해도 유통되는 양은 노부나가에 의해 완전히 컨트롤되고 있었다.


"쌀에 야채, 생선에 버섯, 정말 이것저것 손대고 있구나. 뭐, 그 덕분에 나는 매일 맛있는 밥을 먹을 수 있지만"


"나 혼자만으로는 창고에서 썩어버리니까 상관없지만 말야. 네 경우에는 너무 거리낌이 없어. 조직을 채취하기 위한 버섯까지 먹어버릴 줄은 몰랐다고"


인공 재배가 확립된 버섯이라면, 조직을 얻을 수 있다면 재배하는 것은 가능하다. 물론, 잡균에 오염되어 있을 가능성은 높기에, 숫자로 밀어버리는(下手な鉄砲も数撃ちゃ当たる) 작전으로 커버할 수밖에 없다.

현재, 시즈코가 아시아에서 수입한 새송이버섯(エリンギ)을 일본에서 재배하려 하고 있는데, 그게 그야말로 숫자로 밀어버리는 식으로 시도하고 있다.

톱밥에 묻어서 운반하더라도 수입에는 몇 개월 가까이 걸린다. 시즈코의 손에 들어올 무렵에는 썩어버릴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시즈코가 새송이버섯을 일본에서 채취하지 않고 해외에서 수입하는 이유는, 새송이버섯은 일본에는 존재하지 않는 버섯이기 때문이다. 지중해(地中海)의 기후 지대에서 중앙 아시아의 초원(ステップ) 기후 지대가 원산지이다.

프랑스나 이탈리아 등 유럽에서는 옛부터 인기있는 식용 버섯이지만, 일본에서는 최초로 인공 재배된 것이 1990년대로 비교적 새로운 버섯이다.

하지만 금방 재배 기술이 일본 전역에 보급되어, 지금은 대량 재배가 이루어져 적당한 가격으로 시장에 나돌고 있다.

일본에서는 자루(柄) 부분이 굵고 긴 것이 선호되는 데 반해, 유럽에서는 갓(傘)이 펼쳐진 상태가 선호되는 등, 같은 버섯이라도 선호되는 크기나 굵기, 상태가 다르다.


"미안, 술안주로 딱 좋길래 말야"


"뭐가 술안주야. 말린 버섯만 골라 먹고 있는 걸 보니 노리고 한 거나 마찬가지잖아"


버섯은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건조시키는 편이 오래 보존할 수 있다.

날것인채로는 냉장고에 넣고 1주일 정도지만, 적절한 순서를 지켜 말린 버섯은 통풍이 잘 되는 어두운 곳에 보존하면 최장 1년은 간다.

말리는 것은 딱히 장기보존만이 이유는 아니다. 태양광을 쬐어 말리는 천일건조(天日干し)라면, 에르고스테롤(ergosterol)이 비타민 D로 변화하기 떄문에 날버섯보다 비타민 D가 늘어난다.

또, 말리면 맛이 응축되고, 그 후에 물로 불리거나 하면 맛성분이 물에 녹아나와 좋은 맛국물을 낼 수 있다.


"글쎄. 그 때는 어두웠고, 적당한 걸 가져간 것 뿐이라고"


끝까지 시치미를 떼는 키묘마루였다.


"그래…… 뭐 이후를 생각해서 윳키랑 시로초코에게 입구를 경비시키고 있으니까 다음부터 길을 잘못 들 일은 없을거야"


"아! 비겁하다!"


"비겁하다니 실례네. 작전이라고 해줘"


키묘마루와 그런 대화를 하고 있을 때, 입구 쪽에서 사람 기척이 났다. 궁금해져서 그쪽으로 얼굴을 돌리니, 맹장지가 조용히 열렸다.


"이야기는 전부 들었습니다, 키묘 님"


"헉! 할아범(爺)!"


제일 들키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 들켜버린 키묘마루가 정말로 난리났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에 반해 할아범은 전혀 동요하지도 않고, 눈을 감은 채 조용히 말을 이었다.


"영주님의 뒤를 이으실 분이 어찌 이렇게 한심하실 수가. 이 할아범, 오늘만큼은 절대로 넘어가지 않겠습니다. 키묘 님의 응석을 받아드린 것을 오늘만큼 후회한 적은 없습니다"


"아니, 딱히 응석을 받아줬던 기억은 없는데……?"


태클을 걸어 분위기를 바꾸려고 했으나, 할아범은 키묘마루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손수건으로 눈가를 눌렀다. 어디서 손수건을 꺼낸거냐, 라는 태클은 걸지 않은 키묘마루였다.


"이제 곧 첫 출전식인데, 이래서는 다른 사람들에게 본보기가 서질 않습니다. 키묘 님! 할아범은 마음을 고쳐먹고 악마가 되겠습니다!

지금부터 차근차근 다시 교육시켜드릴테니 안심하십시오! 자, 가십시다!"


"어이 잠깐! 놔라 할아범! 일단 냉정하게 이야기를 좀 말야아아아아아아아아ーーーーーーーーー!!"


눈에도 보이지 않는 속도로 키묘마루를 포획하더니, 반론을 용납치 않는 분위기로 할아범은 키묘마루를 끌고갔다.

그의 단말마(断末魔) 같은 고함소리가 들려오지 않게 되었을 무렵, 시즈코는 서류를 꺼내서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자, 일을 계속 하자"


난 아무 것도 못 봤어, 그게 그녀가 내린 결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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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

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겐키(元亀) 3년 결전(決戦), 미카타가하라(三方ヶ原) 전투


087 1572년 3월 상순



※역자 코멘트: 카네츠구의 시즈코에 대한 말투가 평어에서 경어로 바뀌는데, 항상 그렇지만 이 경어법 관련한 처리가 매우 골치아픕니다-ㅅ-. 시즈코와 그 일행들 사이의 대화도 경어법이 일관적이지 않고, 단순히 공적인 대화와 사적인 대화의 차이를 넘어선 수준이라, 일단 시즈코는 나가요시를 제외한 자기 수하들에게는 반경어, 나가요시나 아야, 쇼우 등에게는 평어를 쓰는 것으로 통일하고, 카네츠구에게는 시즈코가 기본적으로 평어를 쓰고, 카네츠구가 시즈코에게 하는 말은 그냥 그대로 번역하겠습니다.



"머리가 아파"


이마에 손을 대고 시즈코는 신음했다. 카네츠구(兼続)가 간단히 정체를 밝혀버린 덕분에, 시즈코의 호위들은 경계심을 높이고 있었으나, 본인은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사이조(才蔵) 같은 경우에는 조금이라도 수상한 기색을 보일 경우 손을 쓸 분위기였다. 하지만, 카네츠구 쪽은 주위의 반응은 당연하다고 말하는 듯 받아들이고 있었다.


"나는 있는 그대로의 시즈코 님을 보러 왔어. 정체를 감추고 엿보는 것 따윈 성격에 맞지 않아. 뭣보다 나는 간자가 아니야"


머리를 감싸쥐는 시즈코에게, 두통의 씨앗은 태연하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여전히 경계는 풀지 않았지만, 돌봐줄 역할로 임명된 케이지(慶次)는 평소처럼 웃고 있었다.


"자칫 잘못하면 오다와 우에스기(上杉)의 전쟁이 될 뻔 했어, 정말로"


"전쟁이 벌어지면 어쩔 수 없다. 전쟁터에서 모든 결판을 짓겠다, 라고 영주님(お実城様)이라면 말씀하시겠지. 전쟁을 터지게 한 내가 화려하게 산화한다면 더욱 좋고"


"그렇게 '잠깐 나갔다 올게'라고 하는 분위기로 죽는다는 소리 하지 말아줘. 네가 일찍 죽으면 이래저래 곤란하거든"


우에스기 가문의 후계자 다툼에서, 라고 시즈코는 마음 속으로 덧붙였다.


요로쿠, 훗날의 나오에 카네츠구(直江兼続)는 우에스기 켄신(上杉謙信)이 죽은 후, 우에스기 카게카츠(上杉景勝)와 우에스기 카게토라(上杉景虎) 사이에 벌어진 내란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

오타테의 난(御館の乱) 이후, 포상과 맞바꾸어 카게카츠 진영으로 변절해 큰 공적을 남긴 모우리 히데히로(毛利秀広)가, 야마자키 슈우센(山崎秀仙)의 의견에 의해 포상이 취소된 것에 격분하여, 나오에 노부츠나(直江信綱)와의 회담 도중에 야마자키 슈우센 및 나오에 노부츠나를 살해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후계자를 잃은 나오에 가문은, 카네츠구를 나오에 노부츠나의 처 오센(お船)의 데릴사위로 맞아들인다. 카네츠구는 나오에 가문을 잇게 되자 카노우 히데하루(狩野秀治)와 함께 우에스기 가문을 계속 뒷받침했다.


"아, 혹시 그 때, 같이 있었던 연상의 아이는 나가오 키헤이지(長尾喜平次) 씨(氏) (나가오 키헤이지 아키카게(顕景) 훗날의 우에스기 카게카츠)?"


"용케 맞췄네. 설마 그런 장소에서 수행원도 없이 다닐 줄은 생각도 못했던 것 같아. 그 때의 간자들의 놀란 표정은 볼만했다고"


"장난이 너무 심한데"


"주군께서는 그 때의 일에 감사하시고 싶다고 하셨지만, 이번에는 내가 멋대로 온 거라서 기다려 달라고 말씀드렸지"


뭘 생각하고 쿄(京)에 파견했는지 알 수도 없었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자칫 긁어 부스럼을 만들지도 모르는 짓은 하고 싶지 않았다.

어쨌든 우에스기 가문과 얽힐 생각이 없는 시즈코였으나, 저쪽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다.


(우에스기 가문은 꽤 으스스하지. 깊게 얽혔다간 데이는 정도론 끝나지 않을 것 같고, 여기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게 나으려나)


전국시대의 상식을 뒤엎은 것은 오다 노부나가라고 할 수 있지만, 그에게 비견될 수 있는 괴짜가 우에스기 켄신이다.

독자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당시의 사상, 신조, 도덕관에 구애받지 않는 행동을 여럿 했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있는 도중 시즈코 일행은 어떤 마을로 들어갔다.

작년부터 노부나가가 운영, 관리를 맡긴 마을로, 시즈코의 저택에서도 적당히 가까우면서 항구 마을로 통하는 주간 도로(主幹道路, ※역주: main street)가 정비되어 있었다.

항구 마을에서 각 방면을 잇는 도상에 마을이 있었기에, 마을 안에는 상인들의 모습이 많았다.

시즈코의 저택이 가깝다는 입지상, 시즈코 군의 태반이 이 마을에 기거하고 있어, 병사들이나 그 친지들도 상인들에 뒤지지 않는 세력이 되어 있었다.

사람이 모이고 물건이 있다고 하면 당연히 돈이 굴러들어온다. 상인들이 항구 마을에서 기후(岐阜)나 쿄(京)로 갈 때, 우선 이 마을에서 숙박하기 때문에 오와리(尾張) 령에서도 굴지의 번화함을 보이고 있었다.


시즈코의 저택이 있고 시즈코 군이 집결해 있기에, 주민들의 태반은 시즈코가 이 땅의 영주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나, 실제로는 대관(代官)도 아니다.

원칙적으로 도시 계획은 지배자인 노부나가가 하지만, 이 마을에 한해서는 모든 권한을 시즈코에게 부여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근대적 설계가 포함된 마을은 다른 마을과는 한 획을 긋는 완성도를 보이고 있었다.


가장 이채를 발하는 것은 도로, 그것도 가도(街道)를 그대로 끌어들인 중심가(目抜き通り)였다.

중세, 근세의 일본에서는 주로 군사적인 이유로 도로가 정비되지 않았다. 길이 없는 곳을 진군할 것을 강요하면 적을 소모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예외 중의 예외가 타케다 신겐(武田信玄)이 개발한 신겐 제방(信玄堤)이나 봉도(棒道)다. 이것은 신겐이 갖는 카리스마, 자금력, 인심 장악술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대규모 공공 사업이다.

다른 나라에서는 큰 제방이나 가도 정비 등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고, 성시(城下町)를 벗어나면 논두렁길(あぜ道) 정도, 그것도 구불구불 구부러져서 대단히 이동하기 힘든 길들 뿐이었다.


이러한 길은 물류가 정체되기 쉽고, 또 교차점(십자로(辻))에서의 유괴가 발생하기 쉽다. 그런 것들을 해결하기 위해, 시즈코는 폭이 넓은 직선의 주간도로를 정비했다.

또 가드레일에 해당하는 목제의 방호 울타리를 설치하여 보행자와 우마차나 마차를 분리, 보도와 차도의 경계를 설정했다.

이 덕분에 항구 마을과의 물류가 대폭 증가, 오와리는 물론이고 미노(美濃)에까지 다양한 물자들이 흘러들게 되었다.

물론, 사람의 이동이나 물류가 증가한다는 것은, 그대로 다른 나라의 간자들이 들어오기 쉬워지지만, 그것은 엄격한 법으로 대응하고 있었다.


"시즈코 님, 저건 무엇이지?"


시즈코의 옆을 걷고 있던 카네츠구가, 길 옆에 있는 것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으로 시선을 돌린 시즈코는 그게 뭔지 이해했다.


"저건 우마음수조(牛馬飲水槽). 문자 그대로, 소나 말을 위한 급수장(給水場)이야"


우마음수조란 문자 그대로 우마용의 수조(水槽)이다. 마시는 물이므로 사람이 마셔도 문제없지만, 소나 말에 맞춰 수조의 높이나 폭이 설계되어 있기에 사람이 마시기엔 맞지 않았다.


"우마용의 급수조라니 희한하군"


"상인들에게는 꽤 인기거든. 그 때문에 이상한 짓을 하려고 하면 주위 사람들한테 몰매를 맞으니까 나쁜 장난은 치지 않는 게 좋아. 어이쿠"


카네츠구에게 설명하고 있던 도중, 시즈코의 말이 우마음수조 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항구 마을로 갔었기에 수분 보급이 불충분했던 걸까, 라고 생각한 시즈코는 말이 좋을대로 하게 놔두었다.

우마음수조에 도착하자, 말은 머리를 움직여 물을 마시고 싶다고 어필했다. 시즈코가 우마음수조를 보니, 내용물이 거의 없었기에 물을 퍼올릴 필요가 있었다.


"알았어. 지금 물을 넣어 줄게"


말을 쓰다듬어 진정시킨 후, 시즈코는 우마음수조 옆에 있던 수동식 펌프를 움직여 물을 퍼올렸다. 물이 적당히 받아졌을 때 말이 얼굴을 들이밀고 물을 마시기 시작했다.


"잠깐 기다려 줘. 심심하면 근처를 관광하고 와도 좋아"


가신이 가져다놓은 걸상(床几)에 앉아서 시즈코는 어꺠의 힘을 뺐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던 카네츠구였으나, 시즈코를 관찰하러 온 것이기에 시즈코의 곁을 떠나는 건 본말전도(本末転倒)라고 생각하고 그녀의 옆에 앉았다.

지나치게 무방비한 그녀가 걱정된 것도 이유였다. 하지만, 그의 걱정은 기우로 끝났다.


"오, 시즈코 님 아니십니까. 이런 데서 휴식이라니, 부디 저희 찻집을 이용해 주세요"


"아쉽지만 내가 아니라 말이 휴식중이야"


보도를 걷고 있던 남자가 멈춰서더니 시즈코에게 싹싹하게 말을 걸었다. 너무 자연스러워서 카네츠구는 깜짝 놀랐지만 주위는 익숙한 기색으로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다.


"유감이네요. 어이쿠 이런, 얼른 돌아가지 않으면 애엄마에게 혼나겠네요. 부디 애용해주십쇼"


말하자마자 남자는 뛰는 듯한 걸음걸이로 떠나갔다. 그 이후에도 여러 사람들이 시즈코에게 말을 걸어왔다. 그에 대해 시즈코는 떄로는 유머를 섞어가며 대답했다.


"시즈코 님, 이런 데서 한가하게 계시면 겐로(玄朗) 님의 벼락이 떨어집니다요"


"그 때는 도망칠테니 안심하세요"


"그런 데서 뭉개지 마시고 제 가게에서 돈 좀 쓰고 가 주세요―"


"핫핫핫, 내게 돈을 내게 할 만한 것을 가지고 오거라―"


눈 앞의 광경이 믿겨지지 않아 카네츠구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동안에도 차도는 그가 처음 보는 인력거나 마차가 속속 통과해 갔다.

그들은 시즈코의 옆을 지나갈 때, 머리를 숙이거나 쓰고 있던 모자를 벗거나 하며 인사했다. 그에 대해 시즈코는 가볍게 손을 흔들어 대답했다.

지배하는 자와 지배받는 자라기보다, 서로 얼굴을 아는 사람끼리 인사하는 걸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뭐가 뭔지 알 수 없어 멍해져 있는 그에게, 히죽히죽 웃음을 떠올린 케이지가 한 마디 했다.


"자알 구경해 두라고, 저게 시즛치다"




결국, 마을이 궁금해진 카네츠구는 일단 시즈코와 헤어져 마을을 구경하기로 계획을 변경했다. 시즈코는 딱히 신경쓰지 않고 케이지에게 길안내를 맡긴 후, 그대로 수하들을 데리고 떠나갔다.

그 케이지도 시즈코 일행이 보이지 않게 되자, 어디의 가게에 있겠다고 카네츠구에게 알려준 후 그에게 등을 돌리고 떠나갔다.

시즈코들에게서 신뢰받고 있는 건지, 아니면 업신여겨지고 있는건지 종잡을 수 없다고 카네츠구는 생각했다.


"괜찮은 건가 저거. 사이조 님은 내 행동을 계속 보고 있었는데…… 저래뵈도 케이지 님도 시즈코 님의 호위대(馬廻衆)였지? 전혀 정반대인데 용케 다투지 않는군"


케이지로부터 건네받은 돈주머니를 품 속에 넣고, 카네츠구는 아까부터 궁금했던 것으로 향했다. 가까이 가자 그것은 종이 무더기가 들어 있는 나무 상자였다.


"어째서, 이런 장소에 종이 무더기가……?"


고개를 갸웃하면서 카네츠구는 가장 위에 있는 종이를 집어들었다. 종이에 쓰인 내용은, 이 마을에 있는 숙박시설의 정보 잡지였다.

마을에는 몇 군데 여관(旅籠)이 있어, 혼자 여행하는 행상(行商)부터 대인원으로 이동하고 있는 호상(豪商)까지 폭넓은 사람들에게 대응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마을의 어디쯤에 숙박 시설이 있고, 얼마만한 가격으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지, 처음 오는 상인들에게는 알 방법이 없다.

아무리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더라도 이용자가 모르면 의미가 없다. 좋은 것이 알아서 퍼지는 것은 아니다. 제대로 된 정보를 발신하지 않으면 돼지 목에 진주목걸이인 것이다.


그것들을 해소하는 것이, 마을 곳곳에 배치된 여관 안내 잡지였다. 카네츠구가 집어든 것은 그 중 한 권이다.

물론 정보 잡지는 무료 배포다. 한 권에 얼마를 내라, 라는 째째한 짓은 안 한다. 하지만, 뒷면에 '아는 사람에게 책자를 양도하여 퍼뜨려 주세요'라는 내용이 적혀 있다.


"흐ー음, 저녁 식사(夕餉)는 없지만 요리점이 늘어서 있는 도로가 있으니, 그쪽을 이용하라는 건가. 내일 아침 식사(朝餉)는 나오는 거군. 그걸로 숙박료를 낮추고 있는 건가. 오오! 요금을 내면 창고에 짐을 맡아주는 건가.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군"


카네츠구는 통행인의 방해가 되지 않는 장소까지 이동하더니 여관 정보 잡지를 다시 펼쳐들었다.

내용은 모두 새로운 것들 뿐이었다. 카네츠구는 감탄성을 내며 정보 잡지를 읽어나갔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그를 수상쩍은 듯 보는 것도 신경쓰지 않았다.


"뭐냐, 이 점수표라는 건…… 호호, 자주 이용하는 손님에게는 이런저런 특전을 붙여주는 거군. 여관에 따라서 바뀌고, 손님은 어디에 숙박할지 고민하겠군"


여관에는 조합(組合)이 있고, 그 조합은 포인트 카드를 발행하고 있다. 가입한 여관에 숙박하면 포인트가 붙어, 점수에 따라 다양한 특전이 제공된다.

포인트로 얻을 수 있는 특전은 각 여관이 마음대로 정하고 있다.

다양한 특전이 준비되어 있어, 비교적 낮은 포인트라도 오와리(尾張)의 특산품을 받을 수 있는 등, 외부인에게는 탐나서 견딜 수 없는 품목들이었다.


"과연. 밥은 식당(飯屋), 숙박은 여관으로 구별해 놓았으니 숙박료를 낮출 수 있군. 게다가 상부상조(持ちつ持たれつ)하는 관계이니, 어딘가의 조합에 계속 돈이 모이는 일도 없겠군"


중얼거리면서 카네츠구는 요리점이 늘어선 도로로 발길을 옮겼다. 요리점이 나란히 늘어서있는 것에 신기함을 느꼈지만, 그 이상으로 술이 저렴하다는 것이 카네츠구에게는 중요했다.

게다가 오와리나 미노의 술은, 주군인 켄신이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던 술이다. 뭣보다 술고래인 에치고(越後) 사람으로서 다른 나라의 술을 궁금해하지 말라는 것이 무리한 이야기다.

그러나 거의 다 간 시점에서 그는 발을 멈추었다. 술을 마시면 과연 자제를 할 수 있을 것인가, 그는 자문자답했다. 답은 금방 나왔다.


(다, 다음에 오자. 아무래도 연이어서 돈을 요구하는 건 파락호(破落戸)나 다름없지)


유곽에서 아픈 맛을 본 카네츠구는 단장(断腸)의 심정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 후에는 머릿속에서 술 생각을 털어내고 냉정하게 마을을 둘러보았다.

마을은 크게 5개의 구획이 설정되어 있었다. 마을 중심에는 다양한 공공 시설이 늘어서 있었다. 중심에서 우측으로 농업 관계의 구획이 2개, 좌측은 위쪽이 상업, 아래쪽이 공업지구로 되어 있었다.


가장 떠들썩한 장소는 상거래가 이루어지는 상업지구였다. 다양한 상품이 늘어서 있고, 손님을 부르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이만큼 물건이 넘치면, 강도(夜盗)나 도둑(物取り)이 빈발하는 게 아닌가 하고 카네츠구는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가까이 있던 사람을 붙잡고 질문했을 떄 해결되었다.

마을에서는 범죄에 대한 엄격한 규제가 있어, 정기적으로 병사들이 순찰하고 있었다. 게다가 마을에서 범죄를 저지른 자를 쫓는 전문 추적부대까지 있다는 것이었다.

대장장이(鍛冶) 일가를 살해한 범인을 쫓아 아즈치(安土) 근처까지 쫓아가 포박했다는 소문도 있을 정도로 추적 능력이 뛰어나다고 했다.


범죄자가 자포자기하게 되기 쉽지만 재범이 일어나지 않는 점, 범죄에 대해 엄격한 태도가 강한 억지력이 되어 상인이나 여행자들의 신뢰를 얻고 있었다.

게다가 기후(岐阜)의 시장과 달리, 시끄럽다기보다는 활기찬 분위기였다. 자세히 조사하지 않아도 활발한 매매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영주(国人)를 알고 싶으면 백성을 보아라, 켄신의 말을 카네츠구는 떠올렸다.


(다들 생기가 넘치는군. 오다 가문이 사방팔방에 적 투성이가 되어도 계속 싸울 수 있는 이유는 이것인가)


대부분의 지배자는 백성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는다. 하지만, 오다 가문이 지배하는 오와리, 미노는 빼앗는 것이 아니라 공존한다. 백성은 안심하고 살 수 있는 대신 세금을 낸다. 세금을 받은 오다 가문은 백성을 지킨다.

백성이 없으면 오다 가문은 먹고 살 수 없고, 그렇다고 백성들만으로는 평화를 향유하는 것은 불가능.


(이거 영주님(お実城様)이 버겁다고 생각하실만 하군. 우리들과 같은 힘…… 아니, 그 이상이다)


무사(いくさ人)이기에 오다 가문과의 전쟁은 기대하고 있던 카네츠구였다. 하지만, 전쟁을 하지 않아도 오다 가문과 우에스기 가문이 손을 맞잡으면, 많은 백성들이 구원받을 수 있는 게 아닌가, 라고도 생각했다.


(어떻게 보고할지, 이야기가 까다롭게 되어 버렸군)


쓴웃음을 지으며 카네츠구는 케이지가 있는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시즈코 관찰은 지금부터다, 느긋하게 즐기자고 생각하면서 그는 한 발을 내딛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카네츠구와 헤어져 먼저 집으로 귀가한 시즈코는 그에 대해 아야(彩)에게 이야기했다. 그에 대한 아야의 대답은 지극히 단순했다.

오다와 우에스기는 동맹이지만, 가신이 교류할 정도로 친밀한 관계는 아니다. 그걸 멋대로 자택에 끌어들여도 문제가 생기지 않을것인가가 아야에게는 의문이었다.


"어차피 영주님(お館様)이시니까 그의 행동도 빈틈없이 조사하고 계시겠지. 거기다 지금 그는 중요한 안건에 관계하고 있지 않으니까. 뭐, 영주님에게는 어떻게 할지 확인은 하겠지만"


"그건 그렇습니다만……"


"뭐, 신경쓰지 않아도 문제없어. 어설프게 몰래몰래 하는 것 같으면 '우에스기 가문의 무사가 간자 흉내라니 언어도단(言語道断)'이라고 말할 수 있고, 당당하게 한다면 비트만들의 감시에서 벗어나는 건 불가능하니까"


시즈코의 저택은 말할 필요도 없이 비트만 패밀리의 영역이다. 사람에 의한 감시와 동물에 의한 감시를 양쪽 다 돌파하는 것은 지극히 어렵다.

만약 카네츠구가 몰래 간자 흉내를 낸다면, 그 점을 찔러 주도권을 쥐면 된다. 그러지 않고 당당하게 하더라도, 지금의 시즈코에게 감춰야 할 비밀은 없다.


"그렇다곤 해도 방심은 금물. 당분간 비트만들이나 마루타(丸太) 정도를 방에 들여놓을까. 꽤나 경계심이 강하니까, 마루타는"


아야는 흘깃 마루타가 있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경계심 제로로 배를 다 드러낸 채, 게다가 대자로 누워 자고 있는 마루타를 보고 경계심이 높다는 말을 들어도 머릿속에서 이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비트만들이 있다면 문제없다고 생각하여, 아야는 마루타에 대해서는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그렇게 해 주십시오. 저는 영주님께 편지를 보낼 준비를 해 오겠습니다"


처음에는 읽고 쓰는 것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던 아야였으나, 시즈코가 확실히 교육시킨 덕분에, 지금은 읽기, 쓰기, 주판이 가능한 재녀(才女)가 되었다.

지기 싫어하는 쇼우(蕭)도 분투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공부(勉学)한 시간이 다르기 때문에 아직 읽고 쓰기밖에 할 수 없었다. 그래도 마에다 토시이에(前田利家)의 피를 이었기 때문인지, 주판 실력은 쑥쑥 늘고 있었다.


"잘 부탁해ー"


"다른 사람들에겐 쇼우 님이 연락하시게 하겠습니다. 저보다는 나을 테니까요"


임시 주택에 옮겨살기 시작한 이후인지, 아니면 새로운 저택은 대인원을 전제로 한 것인지, 오다 가문 가신들은 자신들의 자식들을 시즈코의 시녀 또는 저택의 고용인, 허드렛일꾼(下働き) 등으로 파견하게 되었다.

임시 저택이라고는 해도 아야나 쇼우만으로는 다 관리할 수 없어, 그것 자체는 고마운 이야기였다. 하지만 다른 문제가 생겼다. 아야가 평민 출신이라는 것이 집의 관리에서 걸림돌이 되어 버렸다.


시즈코가 있는 곳은 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든 실력과 운이 필요불가결하다.

지금에야 수백의 병사를 맡고 있는 겐로(玄朗)였으나, 처음에는 대장장이였으며 마을을 습격당해 노예가 되었고, 그 후에 노예로 구매한 주인에게서 도망쳐 강도가 되었으나 시즈코의 부대에게 진압당했다.

간신히 처벌은 면했으나, 이번에는 고기방패(肉盾)에 가까운 일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어찌어찌 살아남아, 다양한 무공을 세워 간신히 시즈코 부대에 편입된 경력의 소유주이다.

궁기병대(弓騎兵隊)의 대장격인 니스케(仁助)와 요키치(四吉)도 파란만장(波瀾万丈)한 인생을 살고 있다.

그들이 시즈코를 신봉하는 것도, 나락(どん底)을 경험하고 밑바닥(最底辺)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실력만을 평가해주기 때문이다.


저택 안에서도 시즈코의 실력주의는 변함이 없어, 재녀가 된 아야를 곁에 두고 집안의 관리 총괄역(取りまとめ)으로 채용하고 있다.

다만, 이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인물이 있었다.

인사(人事)에 신분은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고 사전에 들어도, 지금까지 신분 사회에서 살아온 사람에게는 그리 간단히 의식을 바꿀 수 없는 걸까라고 시즈코는 약간 포기하고 있는 기색이었다.

애초에, 어설픈 짓을 했다간 가장(家長)으로부터 호된 질책이 기다리고 있기에,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자들도 생각하는 것으로만 그치고 있었지만.


"딱히 신경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데. 뭐하면 아야 짱을 내 여동생으로 삼는 방법도 있어"


"……저 같은 것에겐 감사한 말씀입니다만, 그래서는 시즈코 님께 모두 의존하는 것이 됩니다. 조금 더 제 몸 하나로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그래? 뭐 생각이 바뀌면 언제든지 말해"


"감사합니다. 그 때는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럼, 이야기는 이만 마치고, 이쪽의 서류 처리를 부탁드립니다"


깊이 예를 올린 후, 아야는 시즈코의 눈 앞에 서류를 쌓아올렸다. 끼익, 하고 책상이 비명을 지른 것은 결코 환청이 아닐거라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메마른 웃음을 떠올리면서 첫 서류를 한 장 들어올렸다.


"하, 하핫, 꽤 많네"


"금년도의 계획을 세우는 달이기에, 이것저것 처리할 서류가 많습니다. 죄송합니다만, 오늘 중으로 검토(精査)를 부탁드립니다"


"에엑ー, 뭐 하긴 하겠지만 말야, 너무 기대는 하지 말아줘"


"오늘 중에 검토를 부탁드립니다"


당부하듯 다시 말한 후, 아야는 노부나가에게 카네츠구에 대해 보고하기 위해 방을 나갔다. 남겨진 시즈코는 무거운 한숨을 쉰 후, 다시 종이로 눈을 돌렸다.


"……흐ー음, 꽤나 착안점이 좋은 계획이네"


"오, 이런 곳에 있었구나 시즛치"


서류와 부속된 자료를 훑어보고 있을 때, 생긋 미소를 띤 케이지가 들어왔다. 예의고 나발이고 없이 입구의 맹장지를 기세좋게 열어젖히거는, 그 기세 그대로 방 안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그걸 보고도 시즈코는 맹장지가 망가지지 않을지 걱정할 뿐이었다.


"요로쿠(与六) 님 때문이죠"


"정답. 그래서ーーー"


"밤새 대화를 나누고 싶으니 술을 내달라, 고는 하지 않겠죠?"


순간, 케이지가 웃는 표정 그대로 굳었다. 손으로 얼굴을 괴고 시즈코는 생긋 미소를 떠올리며 식은땀을 흘리는 케이지를 향해 말을 이었다.


"안주로 카라스미가 좋겠다, 고도 하지 않겠죠?"


"아, 아니 그 말이 맞아. 역시 시즛치, 잘 알고 있네ー. 그러니 부탁해, 응?"


전부 꿰뚫어보여진 것을 안 케이지는, 양손을 모아 시즈코에게 합장했다. 잠시 눈을 가늘게 뜨고 노려보던 시즈코였으나, 생각하는 것도 바보스러워져서 한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저녁 식사는 방어(ブリ)와 야채의 냄비요리에요. 그 때 술을 마시지 않겠다면 허가할게요"


"윽, 냄비요리에 술 금지는 가혹한데"


"이래뵈도 꽤 양보하고 있는 거에요. 원래는 안 된다고 할 상황이니까요"


팔짱을 끼고 신음한 케이지였으나, 아무래도 이 이상의 양보는 불가능했다.

시즈코가 돈을 대신 내준 것(立て替え) 때문에도 꽤나 고생했으니, 여기는 시즈코의 제안을 받아들일지 받아들이지 않을지 이외에 케이지가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없었다.


"할 수 없지, 그 조건을 받아들일게"


"그럼 저녁 식사 후에 열쇠를 받으러 와요. 창고 지하실로 가는 열쇠도 같이 줄테니까"


창고(蔵)는 지상 2층이 기본이지만, 술을 보관하는 창고만은 지하 1층이 만들어져 있다. 이것은 지하 쪽이 보존에 적합한 온도와 습도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 이유이다.

1층이나 2층의 경우, 사람이 창고의 문을 열 때 습도나 온도가 변화해 버린다. 그 점에서, 지하는 설비가 갖춰져 있다면 문을 여닫는 정도로는 기온이나 습도가 크게 변화하지 않는다.

품질 유지, 그리고 간단히 가지고 나갈 수 없게 하기 위해, 일부러 술은 지하 창고에 보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 그렇게 잘 부탁해ー"


대화가 끝나자 케이지는 손을 살래살래 흔들고 나갔다. 한 번 한숨을 쉰 후, 시즈코는 손에 들고 있는 서류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그 후 저녁 식사 시간이 될 때까지, 그녀는 서류의 처리를 계속할 뿐이었다.




카네츠구에게는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집 안에 많은 짐승들이 살고 있는 것도 놀랐지만, 무엇보다 놀란 것은 시즈코가 케이지들과 식탁을 함께 둘러앉은 것이었다.

무사의 식사라고 하면 현미(玄米)가 듬뿍, 그것도 적미(赤米)나 흑미(黒米)가 기본이다. 반찬(副食)도 절임(漬け物)이나 매실장아찌(梅干し) 등 짠 것들 뿐이고, 잘해봐야 야채를 익힌 것(煮物)이 나오는 정도였다.

그런데 밥은 백반(白飯), 된장국은 겨된장(糠味噌)이 아니라 콩된장(豆味噌), 주찬은 야채와 방어의 냄비요리였다. 그것도 백반을 먹고 있는 것은 시즈코 뿐만이 아니라, 케이지나 사이조 등의 가신들, 그리고 시녀인 아야까지 백반이었다.

밥 뿐만 아니라 반찬도 하나같이 같은 것을 먹고 있었다. 독이 어쩌니 하기 이전의 이야기라고 카네츠구는 경악했다.


"어라, 입에 맞지 않았나?"


카네츠구의 젓가락이 잘 움직이지 않는 것을 깨달은 시즈코가 식사를 멈추고 질문했다. 그 말에 정신이 든 카네츠구는 다급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백반 같은 건 쉽게 먹을 수 있는 게 아닌데 놀랍군요"


"일단 영양가를 생각해서 가끔 적미나 흑미를 섞는 경우는 있어. 저쪽의 결식아동들에게는 인기가 없지만"


어이없는 표정으로 시즈코는 어떤 방향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녀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을 보자, 케이지와 사이조, 나가요시(長可)가 떠들썩하게 밥을 먹고 있었다.

하지만, 자세히 보니 서로 다투듯 냄비 요리를 집어 밥과 함께 퍼먹고는 추가 주문을 하고 있었다.


매일매일 백반만으로도 충분한 양을 확보하고 있는 시즈코였으나, 영양가를 생각해서 현미식이나 백반이라도 5% 정도의 적미나 흑미를 섞어서 비타민이나 미네랄 종류를 보충하고 있었다.

또 적미나 현미는 백미(白米)와 함께 밥을 지으면 보기에 아름다워지고, 적미나 흑미의 독특한 향기를 즐길 수 있는 밥이 된다.

전부 적미나 흑미로 하면 맛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 밥이 되지만, 이런 '카야쿠(かやく) 밥'으로 만들어서 밥에도 다양한 배리에이션을 주고 있었다.

물론, 항상 백반을 먹는 케이지들에게는 적미나 흑미 같은 걸 섞은 밥이나 현미밥은 별로 평가가 좋지 않았지만.


"그건 그렇고, 시녀까지 밥을 먹을 수 있다니, 상당한 재력을 가지고 계시군요"


"응? 방어는 그렇다치고, 냄비요리의 야채나 쌀은 내가 재배한 거고, 된장은 내가 만든 거야. 그러니까 그다지 돈은 안 들었어"


"네?"


시즈코의 말을 듣고 카네츠구는 더욱 고민했다.


(잠깐잠깐, 재배라고?

어째서 오다 가문의 중진(重鎮)이 백성(百姓) 흉내를 내는 거냐. 이건 그녀 나름대로 재력을 알리지 않게 하기 위해 얼버무리는 건가? 아니, 아냐. 아무리 봐도 진심인 눈빛이다. 도저히 사람을 속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아)


그 자신도 우에스기 가문에서 카부키모노(傾奇者)라느니 비상식적(常識知らず)이라느니 하는 소리를 들었지만, 시즈코의 언동은 그런 카네츠구조차 곤혹스러워지는 것이었다.


(달리 생각하자, 요로쿠. 재배하고 있다고는 했지만, 그냥 관리하고 있을 뿐이겠지)


"그러고보니 시즛치, 최근에 만든 시설은 뭣 때문에 만든 거야?"


"그건 방류할 연어(鮭)의 치어(稚魚)를 키우고 있는 곳이에요"


억지로 납득하려던 카네츠구였으나, 케이지와 시즈코의 아무렇지도 않은 대화로 다시 사고가 나락으로 떨구어졌다.


(잠깐잠깐, 방류라고?

연어의 치어라니, 대체 뭣 떄문에 그런 짓을 하는 거지. 아니 그보다, 어째서 시즈코 님이 직접 키우고 있는거냐. 아니, 가신이라고 해도 언제 배신당할지 모르는 판인데, 자신의 기술은 가급적 숨겨야 하는 것 아닌가)


연어나 송어(マス) 류의 인공 부화는, 단적으로 말하면 산란 시기의 물고기를 잡아서 물이 묻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채란(採卵)하여 수정(受精)시킨 후, 부화에 적합한 환경의 수조(水槽)에 담근다.

이것이 근년에 연어나 송어 류의 인공부화에 쓰이고 있는 건도법(乾導法)이라는 기술이다. 이 기술은 19세기 후반에 C.G. 앳킨스(Atkins) 박사에 의해 확립되었다.

참고로, 물이 묻지 않게 하는 이유는, 물이 묻으면 알이 수정되었다고 생각하여 수정된 알과 똑같이 성장하지만, 결코 부화하지 않는 미수정란(未受精卵)이 되기 때문이다.


"조금만 더 있으면 다른 사람이 키우고 있는 치어랑 함께 방류할거에요. 재작년부터 하고 있으니, 앞으로 1년이나 2년은 성과가 나오지 않겠지만. 뭐, 내년 쯤에 잔뜩 돌아올거라고 생각해요, 연어"


(아니아니아니아니, 잠깐잠깐. 연어가 잡히는 강은 봉토(知行地)로 내려질 정도의 강이라고. 타케다는 잡은 연어의 절반 가까이나 세금으로 내게 하고 있어. 그 연어를 늘리는 기술을, 어째서 쉽게 다른 사람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거냐!)


그가 고민하는 것도 어쩔 수 없지만, 실은 시즈코는 어떤 정책을 펼치고 있어, 그녀의 기술을 다른 사람이 알더라도 딱히 문제없게 하고 있다.

그것이 특허(特許)이다. 특허란 사회에 유익한 발명을 한 인물이나 조직이, 일정기간 독점적인 권리를 보유하는 것을 보장하는 제도이다.

상공업을 독점하거나, 특허를 이요하고 싶은 사람들로부터 특허료를 징수하거나 할 수 있다. 특허는 양날의 검이기는 하나, 장인들이 유익한 기술을 감춘 채 기술이 소실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또, 발명자가 개발 의욕을 잃거나, 새로운 사업, 새로운 시장의 개척에 대한 의욕을 잃는 것도 막을 수 있다.

물론, 제한없는 우선권(優先権)은 아니다. 시장 독점에는 일정한 제한이 걸리며, 특허료에 대해서도 지불하는 쪽이 불복할 경우 이의 신청이 가능하게 되어있다.


가장 중요한 것인데, 특허로 인정된 내용을 다른 나라에 팔면 엄격한 처벌이 가해진다.

기술의 랭크에 따라 달라지긴 하나 최저한이라도 일가 전원 참수, 기초 연구 등의 근간기술(根幹技術)일 경우 멸족(族滅), 소위 말하는 일가친지(一族郎党) 전원이 참수에 처해지는 경우도 있다.

일족 이외의 관계자가 있다면, 관계자에게도 고문을 포함한 심문이 가해진다.

특허에 관해서는 다양한 형법이 제정되어 있지만, 정보 누설이나 스파이 행위는 특히 엄격한 대응이 취해지도록 되어 있다.


(으음ー, 모르겠군)


그러한 사정을 모르는 카네츠구는 실컷 고민하고, 마지막으로 생각하는 것을 포기했다. 얌전히 백반을 먹으려고 밥을 입에 넣은 순간, 입구의 맹장지가 기세좋게 열어젖혀졌다.


"시즈코오…… 하리하리나베가 연기라는 건 어떻게 된 일이냐~!"


기세좋게 맹장지를 열어젖힌 것은 오이치(お市)였다. 뒤에서 챠챠(茶々)와 하츠(初)가 양손을 펼쳐 맹장지를 기세좋게 열어젖히는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기세좋게 맹장지를 열어젖히는 것이 예법인가, 라고 카네츠구는 반쯤 어이가 없어졌다.


"아니, 그러니까 말씀드렸잖아요. 고기를 숙성시키기 때문에 조금 기다려야 한다고요"


"음, 듣지 못했다. 그러니 나는 모른다"


"그걸 그렇게 당당하게 말씀하지 말아 주세요. 아무리 해체 전에 숙성되어 있다고는 해도, 조금 더 기다릴 필요가 있다고요. 괜찮습니다, 내일은 먹을 수 있으니까요"


고래는 인간보다 다소 체온이 높다. 그 때문에, 높은 온도에서 부패하지 않도록 복부를 갈라(내장은 버리지 않고 남겨둠), 16시간 정도 바닷속에 넣어 온도를 저온으로 유지하여 고기를 숙성시킨다.

포경 후, 항구로 운반된 고래는 신사(神事)를 치른 후에 이 작업을 반드시 거친다. 따라서 신사가 끝난 후, 하루를 기다리지 않으면 고래 고기는 손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건 사전에 전달했을텐데, 오이치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던 모양이다.


"크윽, 어쩔 수 없지. 그럼 오늘은 그 냄비요리로 용서해주마"


"용서해주시고 뭐고, 이건 제 저녁 식사인데요…… 아니 그보다 그쪽에도 저녁 식사가 준비되어 있을텐데요"


"식어빠진 밥 따윈 먹을 게 못 된다. 게다가 맛있는 것은 다 같이 둘러앉아 먹는 거다, 라고 노히메(濃姫) 님도 말씀하셨지. 에잇, 이 어미는 너희들을 돌봐주지 않을 것이다. 시즈코에게 돌봐달라고 해라"


말이 끝나자마자 오이치는 비어 있는 자리에 앉았다. 챠챠나 하츠도 옆에 앉으려 했으나, 오이치는 무정하게도 자기 자식을 내쳤다.

하지만 익숙한 듯, 챠챠와 하츠는 그대로 시즈코 쪽으로 가서 적당한 장소에 자리잡았다.


(남자도 여자도 관계없다. 맛있는 것은 다 같이 둘러앉아 먹는 것, 인가. 정말로 파격적인 이야기군…… 하지만 나쁘지 않아)


자신도 모르는 사이 카네츠구는 미소를 떠올리고 있었다.




"목욕(風呂)이란 좋은 것이군"


인생 첫 입욕(入浴)을 경험한 카네츠구는 아주 기분이 좋았다. 전신이 뜨끈뜨끈한 상태인 카네츠구는, 케이지가 머물고 있는 암자로 향했다.

임시 저택의 뜰에 있는 암자는 크게 잡아도 6첩(畳, ※역주: 6첩은 약 3평 정도)로, 넓다고는 할 수 없지만 속세에서 동떨어진 정숙한 분위기(風情)가 있었다.


"우선 한잔(一献) 하지"


케이지가 준비한 찻잔(茶碗) 두 개에 술을 따르더니, 하나를 카네츠구에게 내밀었다. 카네츠구가 받아들자, 케이지는 씩 웃으며 책상다리를 하고 앉았다. 카네츠구도 그에 따랐다.


"특이한 그릇이로군"


"시즛치 말에 따르면 대폿술(茶碗酒)이라는 거지. 본래는 차를 마시는 그릇으로 술을 마시다니, 대단히 통쾌하지 않나"


"확실히 그렇군"


다도회(茶の湯)는 상류 계급의 오락으로 정착되어 있지만, 그것을 위해 쓰이는 그릇으로 일부러 술을 마신다. 파격적인 이야기지만, 실로 시원스러운(小気味よい) 이야기라고 카네츠구는 생각했다.

술이 달빛을 반사하는 것을 꺠달은 카네츠구는, 찻잔 속을 들여다보았다.


"물처럼 맑군. 달빛을 비추는 것도 당연하다고 하겠어"


"구경하는 건 거기까지 하고, 일단은 마시자고"


말이 끝나자마자 케이지는 찻잔을 기울여 단번에 잔을 비웠다. 조금 늦게 카네츠구도 케이지와 마찬가지로 찻잔의 술을 단번에 마셨다.


"……맛있군! 그 말밖에 못 하겠어"


"좋은 것에 말은 필요없지"


빈 찻잔에 서로 술을 따라주었다.


"그렇군…… 음, 이 안주도 맛있군. 술이 계속 당기는데"


카라스미를 한 조각 입에 넣고, 이어서 술을 입 안에 흘려넣었다. 뭐라 말할 수 없는 맛이 입 안에 퍼져나갔다.

술안주 같은 건 항상 소금절이(塩)로, 그것도 몇 번 마실 때마다 한 번 먹으면 다행이었던 카네츠구에게 카라스미는 기대하지도 못했던 절품(逸品)이었다.

그 이후로는 술맛이 뛰어남을 인정하며 두 사람은 담소했다. 이야기하는 내용은 다양했다. 물론, 기밀에 관한 것은 서로 가볍게 이야기할 수는 없었지만.


"아니, 하지만 정말로 부럽군. 이런 술을 마실 수 있는 기회는 거의 없지. 우리 주군께서 칭찬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야"


"시즛치는 봉토가 없으니까. 땅을 주지 못하는 대신, 이라고 하면서 이것저것 융통해주지. 뭐 가끔 과하게 마셨다가 혼나는 경우도 있지만"


혼나고 있는 것치고는 전혀 변함이 없는 분위기의 케이지였다. 웃으면서 카네츠구가 찻잔을 입에 가져갔을 때, 어디선가 좋은 냄새가 풍겨왔다.

궁금해져서 주위를 둘러보자, 케이지도 냄새를 알아챈 듯 열심히 냄새가 어디서 풍겨오는 지 찾았다.


"들어가겠다"


그 말과 함꼐 맹장지가 열렸다. 이어서 큰 접시를 한 손에 들고 사이조와 나가요시가 방에 들어왔다. 냄새가 풍겨오는 곳은 사이조가 들고있는 그릇인 것을 두 사람은 깨달았다.

큰 접시를 중앙에 놓더니 사이조는 적당한 장소에 앉았다. 가지고 있던 술병을 큰 접시 옆에 놓고는 나가요시도 마찬가지로 앉았다.


"네가 이쪽으로 오다니 별일이군. 오, 구운 닭(焼き鳥)이라니 호화롭잖아"


"……시즈코 님께서 '남자들이 이야기할 떄는 이거잖아요?'라고 말씀하시면서 우리에게 술과 안주를 내려주셨다"


"꽤나 멋진 배려잖아. 그럼 당장…… 음, 맛있군"


지금도 카네츠구를 경계하는 사이조에게, 시즈코는 속을 터놓고 이야기하라고 그를 이곳으로 보낸 것이라는 걸 케이지는 이해했다.

나가요시는 신경쓰지 않고 있는 건지, 재빨리 술을 자신의 찻잔에 따르더니 구운 닭을 한 손에 들고 사이조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었다.


"일단 마셔라. 더 못 마시겠다는 말은 못할 거다"


말이 끝나자마자 비어 있는 카네츠구의 찻잔에 사이조가 술을 찰랑거리게 따랐다. 꽤나 마신 카네츠구였으나 그는 웃음을 떠올리고 있었다.


"어이, 에치고 사람을 얕보지 말라고. 이 정도는 아무 것도 아냐!"


따라진 술 따위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 카네츠구는 술을 단번에 비웠다. 씩 웃더니, 사이조는 자신의 찻잔을 내밀었다. 따라봐라, 라는 의미라고 이해한 카네츠구는, 마찬가지로 술을 찰랑거리게 따랐다.

사이조도 카네츠구와 마찬가지로 술을 단번에 비웠다.


"얕보지 마라, 꼬마야. 이쪽은 술고래(大酒飲み)와 항상 상대하고 있지. 에치고 사람 따위 한 손으로 비틀어주마"


"그쪽이야말로 에치고 사람을 얕보지 말라고. 케이지 님과 먼저 마셨던 정도로 내가 불리해지지 않는다는 걸 증명해주지"


그 이후에는 서로 술을 단번에 마시고, 케이지와 나가요시가 이래저래 부추기면서 자신들도 열심히 마셔댔다.

페이스를 생각하지 않고 분위기와 기세로 떠들썩하게 마셔댔기에, 다음 날 네 사람은 나란히 숙취(二日酔い)에 가까운 상태가 된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기술자 마을이나 양조 마을(醸造街)은 설령 우에스기 가문 사람이라도 들어갈 수 없지만, 항구 마을과 시즈코가 관여하고 있는 마을은 평범하게 출입할 수 있었다.

양쪽 모두 해당되는 것이지만, 요리점이 늘어선 장소는 위장이 자극받는 향기가 감돌고 있었다. 특히 항구 마을은 해산물이 풍부하게 모이는 관계로 요리점이 많았고, 그 때문에 각 가게가 치열하게 경쟁을 하고 있었다.


"어느 가게나 뱃속에 호소하는 냄새로군"


주위에 감도는 냄새를 맡으며 카네츠구는 중얼거렸다. 그렇게까지 배가 고픈 건 아니지만, 그래도 뭔가 먹고 싶어질 정도로 향기로운 요리의 향기였다.


"하핫, 여기는 시즛치가 관리하는 장소니까. 하나같이 맛있찌만, 역시 제일 인기 있는 건 장어집(鰻静)이겠지. 거기는 시즛치에게서 비전의 소스(タレ)인가 하는 걸 받아서 장어덮밥(鰻丼)이나 장어찬합(鰻重)을 시작한 모양인데 이게 엄청나게 유행이야. 장어가 잔뜩 잡힌 날에는 장사진이 생긴다고"


옆을 걷고 있던 케이지가 어느 가게에 들어갈 지 고민하면서 카네츠구에게 설명했다.


"먹어보고 싶지만, 그렇게까지 인기라면 줄을 서는 것도 큰일이겠군"


"유행이 지나차서 종종 싸움까지 벌어질 정도지. 덕분에 시즛치가 장어의 양식까지 계획하게 되었어"


"……전에도 들었지만, 어째서 굳이 늘리려고 하지? 생선 같은 건 얼마든지 잡힐텐데"


양식이란 대상의 생물을 인공적으로 키우는 산업이다. 현대처럼 해양자원의 고갈이 걱정된다면 몰라도, 외양(外洋)에도 나가지 못하는 시대에서는 해양자원이 고갈되는 일은 어지간해서는 일어나지 않는다.

수백년에 한 번 꼴의 기상이변이 일어난다면 이야기는 다르지만, 전국시대의 기후는 현대보다 춥기는 해도 안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해양자원이 위험에 빠질 일은 없다.


"잡혔다고 해서, 백성들의 입에 얼마나 들어갈까"


"뭐?"


일순, 카네츠구는 케이지의 질문의 의도를 알 수 없었다. 케이지는 담배가 들어 있지 않은 담뱃대를 입으로 아래위로 움직이면서도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생선이 풍족하게 잡혀봤자, 백성들이 그 생선을 얼마나 먹을 수 있겠어. 높은 양반들만 먹고 아랫사람들이 먹지 못한다면 아무 것도 바뀌지 않아"


"……즉, 운이 필요한 바다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확실히 잡을 수 있는 먹거리(食い扶持)를 늘린다, 라는 건가"


"오다 나으리가 천하를 통일하면, 자연스럽게 싸움은 사라져 가겠지. 지금까지처럼 먹거리를 확보하기 위한 싸움은 할 수 없게 되지. 그렇게 되면 서로 뺏고 빼앗게 되는 거야. 쟁탈전을 벌이면 이윽고 모든 것을 다 먹어치워버리게 되지"


조금 쓸쓸한 듯한 목소리로 케이지는 말을 이었다. 그는 순수(生粋)한 무사(いくさ人)이다. 싸움이 사라지면 그는 죽을 장소를 잃어버린다. 무사에게 있어 죽을 장소를 잃는 것만큼 괴로운 것은 없다.

그래도 그는 시즈코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설령 싸움터를 잃게 되더라도, 그녀가 노부나가 밑에서 만들려고 하는 새로운 세상을 보고 싶은 것이다.

자기가 생각해도 복잡(難儀)한 성격이라고 케이지는 생각했다. 무사로서 죽을 장소를 찾으면서, 새로운 세상이 어떤 모습이 될 것인지 보고 싶다, 그런 모순된 마음을 가지고 있으니까.


"어이쿠, 거기 계신 건 케이지 님 아니십니까"


갑자기 누군가 말을 걸었기에 케이지는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살집이 좋은 뚱뚱한 여성이 있었다. 종자(お供)인 여성이 뒤에 서 있는 것을 보니 높은 지위의 사람이라는 것을 엿볼 수 있었다.


"사키(咲)님인가. 별일이군, 이쪽까지 나오다니"


"호호홋, 겨우 이쪽에 가게를 내도 좋다는 허가가 떨어졌거든요. 예비 조사(下見)도 겸해서 견학을 왔지요"


본명은 불명, 창녀(女郎) 들로부터는 사키라고 불리는 여성은, 항구 마을에 있는 유곽, 제 2구(二之区)의 유력자였다. 코토(琴)와 오토(音)가 날씬하고 미인인데 반해, 사키는 살이 찐 편인데다 결코 미인이라고는 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항상 상냥하고, 때로는 엄하면서도 애정 있는 질타를 하는 사키는, 제 2구의 창녀들로부터 '엄마'라고 불릴 정도로 사랑받고 있었다.


"아, 당신 쪽은 창독(瘡毒) 환자가 나왔었지"


예전에 사키가 관리하던 제 2구에서 창독, 다른 명칭은 매독(梅毒)이라고 하는 감염증에 걸린 사람이 나와버렸다. 그것도 시즈코의 마을에 지점을 낼 허가를 내주기 직전이었다.

기본적으로 성행위로 감염되는 병이기에, 시즈코가 관리하는 마을에 지점을 낼 허가는 취소되고, 새로운 환자가 나오지 않을 것이 조건에 더해졌다.


"한 때는 정말 힘들었지만, 시즈코님 덕분에 겨우 나았습니다"


"오ー, 그렇다는 건 제 2구 폐쇄는 해제된 건가"


매독이 발생한 이상, 감염 확대를 막기 위해 시즈코는 제 2구를 일시적으로 봉쇄했다. 장사는 끝장이었지만, 이것만큼은 계약 관계상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호호홋, 겨우 다시 장사 시작이지요. 지금부터 손해본 걸 메꿔야 하니까요. 그럼, 전 이만 실례하지요"


케이지들에게 작별인사를 한 후, 사키는 동행들을 데리고 어딘가로 가버렸다.


"흐ー음, 이런저런 일이 있군. 어이쿠, 이런. 우리도 술을 사서 돌아가지"


"꽤나 흥미깊은 얘기였어. 오늘 밤 술안주로 삼자고"


웃으면서 두 사람은 술가게로 갔다. 시즈코의 창고에 술은 잔뜩 있지만, 가끔은 밖에서 파는 술도 마시고 싶어진 두 사람은, 적당한 술을 몇 종류 구입해서 귀로에 올랐다.

도중에 아무 일도 없이 귀가한 두 사람이었으나, 시즈코의 저택 앞까지 왔을때 이변을 눈치챘다.


"엉? 왠지 사람이 많은 거 아닌가"


평소에는 그다지 사람이 많은 편은 아니며 사람의 출입도 적은 편인 시즈코의 저택 앞이 사람으로 붐비고 있었다. 차림새를 보니 신분이 높은 사람의 종자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두 사람은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그들을 피해 집으로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즉시 맡아본 적이 없는 향기가 콧구멍을 간지럽혔다. 잘 맡아보니 발효 식품 같은 시큼한 느낌이었는데, 상당히 특이한 향기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아, 설마!"


뭔가에 생각이 미친 케이지가 서둘러 달려나갔다. 순간 놀란 카네츠구였으나 즉시 그의 뒤를 쫓았다. 예민한 후각으로 향기가 나는 곳으로 달려가던 케이지였으나, 잠시 후 그는 발을 멈추게 되었다.


"이 앞에는 주군께서 계시오. 누구라도 지나갈 수 없소"


케이지 앞을 가로막고 선 것은 호리(堀)였다. 그를 보고 케이지는 발을 굴렀다. 누가 이 집에 와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이해했기 때문이다.


"제길, 뭔가 하려고 하던 것은 알고 있었는데, 설마 오늘이었을 줄이야!"


"포기하시오"


이야기의 흐름에 따라가지 못하는 카네츠구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괜찮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케이지에게 물으려고 카네츠구가 입을 벌리려던 순간, 복도(廊下) 안쪽에서 반론을 허용치 않는(有無を言わせぬ) 박력이 담긴 목소리가 날아왔다.

그 목소리를 들은 순간, 호리는 옆으로 비켜나서 무릎을 꿇었다. 케이지도 속이 거북한 표정을 지으며 복도 옆으로 비켜섰다.


"맛있는 것은 다 같이 공유해야 하는 것이다. 단, 내가 가장 먼저 맛보는 것이지만 말이다"


안쪽에서 나타난 것은 노부나가였다. 그는 여전히 어쩔 줄 모르고 잇는 카네츠구를 쳐다보더니, 입술 끝을 치켜올리며 말했다.


"네놈이 우에스기에서 온 녀석이냐"


그 한 마디에 그 자리를 고요함이 지배했다.

식은땀을 흘린 카네츠구는 뭔가를 말하려 했다. 하지만,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지금의 카네츠구는 노부나가에게서 느껴지는 중압감을 겨우 버티는 것이 고작이었다. 우에스기 카게카츠의 오른팔이 되었을 때라면 몰라도, 지금은 근시, 그것도 12세 정도의 풋내기다.

수많은 전장을 달리며 이매망량(魑魅魍魎)이 발호(跋扈)하는 쿄에서 몇 년이나 공가(公家)나 불가(仏家)와 싸우고, 때로는 협력하며 정치를 휘어잡고 있는 노부나가를 앞에 두고, 그는 자신도 모르게 발이 굳어 있었다.

하지만 그걸 들키지 않으려고 카네츠구는 최대한 허세를 부렸다.


"훗…… 호리, 곧 시즈코가 남만의 음식인 '피자'라는 걸 구울 것이다. 너는 사람들을 데리고 그걸 나르게 해라. 갓 구운 것이 맛있다는 것 같으니, 빨리 날라오도록 엄히 명해라"


모든 것을 꿰뚫어본 노부나가였으나, 카네츠구의 허세는 지적하지 않고 호리에게 명령을 내렸다. 일순 카네츠구를 본 호리였으나, 곧 정중하게 노부나가에게 예를 올리고 조용히 떠나갔다.


"내가 뭘 하고 싶은지 알고 싶다면 시즈코와 백성들을 잘 봐두어라. 그곳에 네놈이 원하는 답이 있다"


그 말만 하고 노부나가는 한 번 돌아보는 법도 없이 카네츠구의 옆을 지나쳐 복도 저편으로 사라졌다. 노부나가가 사라지고 잠시 후, 카네츠구는 겨우 숨을 내쉬었다.

자기도 모르게 긴장하여 호흡하는 것조차 잊고 있었다. 그 정도로 노부나가의 존재는 이질적이었다. 극히 자연스러우면서도 방심하면 목젖을 물어뜯길 듯한 분위기를 느꼈다.


(저것이…… 적이라면 불가조차 멸망시키는 제육천마(第六天魔))


노부나가의 별명이 되어 있기도 한 제육천마. 하지만, 이 이름이 붙여진 것은 노부나가가 처음은 아니다.

유명한 인물로서는 최초로는 엔랴쿠지(延暦寺)의 천태좌주(天台座主)에 올랐으나, 후에 환속(還俗)하여 아시카가 쇼군(足利将軍)이 된 아시카가 요시노리(足利義教)도, 엔랴쿠지와 적대했을 때 제육천마의 이름으로 불렸었다.

그 밖에도 두 번째로 엔랴쿠지를 불태웠던 호소카와 마사모토(細川政元) 등, 엔랴쿠지와 적대하면 엔랴쿠지 관계자나 민중들로부터 제육천마의 이름으로 불리는 경우가 많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뭐라 말할 수 없는 사람이군)


카네츠구는 잠시 홀린 듯이 노부나가가 떠나간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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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

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겐키(元亀) 3년 결전(決戦), 미카타가하라(三方ヶ原) 전투


086 1572년 1월 상순



시즈코는 예년과 마찬가지로 정월을 보내고, 2일째의 연회에도 얼굴을 내밀고, 3일째 이후에 오다 가문 가신들에게 인사하러 다니는 것을 마쳤다.

평소에는 시즈코의 곁을 떠나지 않는 호위대(馬廻衆)인 케이지(慶次)나 사이조(才蔵), 나가요시(長可), 타카토라(高虎), 곁에서 시중드는 쇼우(蕭)도 친족이 있는 곳으로 귀성하여, 항상 소란스러운 시즈코의 저택도 잠시간의 고요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한가롭네"


아야(彩)가 끓여준 차를 마시면서 시즈코는 멍하니 중얼거렸다. 밖은 눈으로 뒤덮여 있었지만, 추위에 강한 동물들은 뜰에서 활기차게 놀고 있었다.

얼음이 언 연못을 미끄러지며 노는 녀석도 있었다. 가끔 넘어져서 엉뚱한 방향으로 미끄러져가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것도 애교였다.


정월만큼은 세상의 소란스러움(喧噪)도 잊고 느긋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시대는 그녀에게 많은 시간을 주지 않았다.

아직 마츠노우치(松の内, ※역주: 설에 門松(=대문 앞에 세우는 소나무 장식)를 세워 두는 동안(설날부터 7일 혹은 15일까지))인 10일 미명(未明), 미츠히데(光秀)에게서 편지가 도착했다. 내용은 사카모토 성(坂本城) 축성(築城)을 위해 파견한 쿠로쿠와슈(黒鍬衆)에 대해서였다.

직속(子飼い)의 쿠로쿠와슈에서 축성(築城) 전문의 장인들을 선발하여, 얼마간의 자재와 함께 사카모토 성으로 파견했는데, 뭔가 문제가 발생한 건지 미츠히데로부터 장인들의 파견 기간을 연장해달라는 탄원이 온 것이다.

사카모토 성은 엔랴쿠지(延暦寺)의 감시라는 중요한 역할을 맡는 성이다. 어설픈 성으로는 문제가 생기기 떄문에, 시즈코는 예정을 조정하여 본래 연말이었던 파견 기간을 해가 바뀌고 연초의 일들이 일단락될 때까지 연장했다.


미츠히데의 건이 끝나자, 그와 교차하듯 노부나가로부터 주인장(朱印状)이 도착했다. 시가(志賀) 군(郡) 북부(北部)의 성을 공격할 것이므로 무구(武具)의 생산을 명하는 내용이었다.

기술자 마을과 후방 부대인 부츠류슈(物流衆, ※역주: 물류팀)에 무구류를 '컨테이너'로 운반하도록 명했다. 최근의 부츠류슈 컨테이너 수송을 주로 하고 있었다.

컨테이너의 이점은 뭐라 해도 수송 코스트가 대폭 낮아지는 점이다. 규격화된 용기를 사용하는 것으로 한번에 운반할 수 있는 양을 컨테이너의 숫자만으로 간단히 계산할 수 있는 점도 장점이었다.


후방지원 작업은 가볍게 보여지기 쉽지만, 노부나가와 미츠히데, 그리고 히데요시(秀吉)만은 후방지원 작업은 전쟁을 하기 위해 중요하며 가볍게 보아서는 안 되는 작업이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하지만, 전국시대에서 후방지원 작업을 하라고 명령하는 것은, 무공을 세울 자리를 빼앗는 것을 의미한다. 아무리 필요하다고 설득해도, 때와 장소에 따라서는 주종관계에 깊은 골이 생기게 된다.

그런 것들을 전혀 고려하지 않아도 되는 시즈코는, 노부나가에게 대단히 중요한 존재였다. 노부나가의 방어망이 유지되고 있는 것도 시즈코의 물자 수송 부대인 부츠류슈의 존재가 크다.


시즈코는 노부나가에게 받은 정보와 자신이 수집한 정보를 바탕으로 물자 운반에 관한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그것을 방해하는 존재가 있었다. 정월부터 시간이 남아돌고 있는 오이치(お市)였다.


"심심하구나, 뭔가 없느냐 시즈코"


"책장에 도연초(徒然草)의 사본(写本)이 있습니다"


당연한 듯 죽치고 있는 이치에게 시즈코는 건성으로 대답했다. 도연초는 일본 3대 수필의 하나로 평가받을 정도로 뛰어난 작품이지만, 이치에게는 따분한 것으로밖에 비치지 않았다.

딱 봐도 건성인 것이 티가 나는 시즈코를 보고 이치는 볼을 부풀렸다. 하지만, 눈 앞의 서류 정리에 바쁜 시즈코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시즈코―, 심심해―"


"심심해―"


챠챠(茶々)가 두 팔을 벌리며 말하자, 조금 늦게 하츠(初)가 챠챠의 포즈를 흉내냈다.


"비싸게 주고 산 조수인물희화(鳥獣人物戯画)의 사본 전권(全巻)이라면 윗칸에 놔뒀습니다"


조수인물희화란, 당시의 세상이나 풍자 등이 동물이나 인간을 이용해 희화적으로 그려진 두루마리다.


지본묵화(紙本墨画, ※역주: 수묵화나 뭐 그런 의미 같은데 검색해봐도 정확하게는 모르겠음) 작품으로 갑(甲), 을(乙), 병(丙), 정(丁)의 4권으로 구성되며, 토끼와 개구리가 씨름(相撲)을 하고 있는 묘사가 있는 갑권이 특히 유명하다.

동물을 의인화하여 현대의 만화(漫画)에 통하는 효과 등도 포함된 작풍(作風) 때문에,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만화"라고 평가되기도 한다.

유래(成立)에 대해서는 확실하지 않으며, 각권에 이어지는 내용이 없고 필치(筆致)나 화풍(画風)도 다르기 때문에, 12~13세기에 걸친 폭넓은 연대에 복수의 작가에 의해 쓰여진 다른 작품을 집대성한 결과, 조수인물희화가 완성되었다고 생각된다.


"겐지 이야기(源氏物語), 청소납언사(清少納言抄=침초자(枕草子), ※역주: 세이쇼나곤(清少納言)이라는 여류작가의 수필작품), 방장기(方丈記) 같은 건―"


"에잇, 그게 아니다. 따분한데 뭔가 재미있는 건 없느냐고 묻고 있는게다"


"친정에 가셔서 느긋하게 지내시는 건 어떠신가요"


"흥, 나는 아자이(浅井) 가문의 배신을 저지하지 못했단 말이다. 친족들은 다들 나를 꺼리고 있지. 오라버니 이외에는 다들 서먹서먹하더구나"


이치의 말을 들은 시즈코는 자신의 실언(失言)을 깨달았다. 이치는 아자이 가문과 오다 가문이 동맹을 맺기 위해 아자이 가문에 시집갔다. 그러나 아자이 가문은 집안 소동 끝에 가장(家長)인 아자이 나가마사(浅井長政)가 쫓겨나 버렸다.

동시에 아자이 가문과 오다 가문의 동맹은 파기되었다. 그것을 막지 못했다는 이유로 이치가 친족들로부터 백안시당해도 이상하지는 않다.


"뭐랄까…… 죄송합니다"


"상관없다. 오라버니의 위광(威光)을 등에 업고 지껄이는 놈들 따윈 내버려두면 된다. 그런 치졸한 놈들 따윈 놔두고 말이다, 시즈코는 내 심심풀이를 돕거라"


"돕거라―"


"돕거라―"


이치, 그리고 딸들인 챠챠와 하츠가 나란히 재촉했다. 이 이상 화제를 돌리는 건 무리라고 판단한 시즈코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본심을 말하면 조금 더 지금의 상태를 유지하고 싶었다. 뭐라 해도 얼핏 보기에는 그냥 적당한 사무처리를 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으니.

중요한 처리를 중요한 듯 하면 사람의 인상에 남기 쉽다. 하지만, 지금처럼 잡담을 섞어가며 하면 중요한 안건을 처리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어렵다.

즉, 타인의 인상에 남지 않기에 정보가 새어나갈 우려가 적다. 결점이 있다고 하면, 지금의 이치처럼 작업에 끼어들어버리는 경우를 들 수 있다.


"(고로(高炉)의 주역은 아시미츠(足満) 아저씨고 나는 재료를 갖추기만 하는 거니까, 그렇게까지 신경쓸 필요도 없나) 알겠습니다, 알겠어요. 그럼 어젯밤 눈이 많이 내렸으니 썰매(ソリ)라도 타죠"


썰매라는 생소한 단어를 들은 순간 이치가 눈을 빛냈다. 시작하기도 전부터 머리가 아파진 시즈코였으나, 어찌어찌 참으며 준비를 했다.

필요한 것을 갖춘 후, 시즈코는 이치들을 데리고 병사 훈련소로 왔다. 지금은 정월 휴가도 겹쳐 아무도 없었다.


(훈련용의 언덕이지만, 여기면 되겠지)


본래는 앞으로 수그린 자세로 언덕을 오르는 것으로 병사들의 다리와 허리를 단련하기 위한 시설이었지만 이것저것 다 따질 수는 없었다. 정비된 언덕 같은건 잘 없고, 설령 있다 해도 보도(歩道)이므로 다른 사람에게 민폐가 된다.


"겨, 겨우 다 올라온 것이냐. 후―, 피곤하구나"


설피(雪皮, かんじき)를 장비하고 있다고는 해도, 훈련받지 않은 이치들에게는 언덕을 오르는 것은 중노동이다. 정월 휴가라서 사람이 없기 때문에 가마(駕籠)로 오르는 것은 포기하게 할 수 밖에 없다.


"체력을 길러 주세요. 뭐, 일단 이것에 타십시오"


"으, 음. 이러면 되느냐?"


들은 대로 시즈코는 썰매에 탔다. 삐져나온 의복을 썰매 안으로 밀어넣은 후, 시즈코는 이치의 등에 손을 댔다.


"그럼, 다녀오세요―"


말이 끝나자마자 이치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시즈코는 이치의 등을 강하게 밀었다. 기세가 붙은 썰매는 눈 위를 시원스럽게 미끄러져 가속해갔다.


"오, 오, 오~~~~~~~~~~~~~!"


썰매가 미끄러지는 동안 이치는 이상한 소리를 질렀다. 급경사는 아니지만 완만하지도 않은 언덕이라, 딱히 설명도 없이 미끄러지게 했기에 어떤 의미에서는 무서운 놀이기구(絶叫マシン)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그럼 아야 짱은 하츠 님을, 나는 챠챠 님을 테우고 미끄러질게―"


"알겠습니다"


대답은 했지만 생각보다 속도가 나는 것을 직접 본 탓인지, 아야의 표정이 약간 굳어져 있었다. 그에 반해 하츠는 기대에 부풀어 있었기에, 아야는 작게 한숨을 쉬고 썰매에 탔다.

이치와 마찬가지로 아야의 등을 밀어 미끄러지게 했다. 그게 끝나자 챠챠를 썰매에 태우고, 시즈코는 발로 땅바닥을 걷어차 기세를 붙인 후 썰매에 올라타고 미끄러져 내려갔다.


"햐아아―――!"


"햐―――!"


시즈코와 챠챠, 둘 다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 미끄러졌다. 약 100m 정도 미끄러지자 언덕을 다 내려오게 되었다.


"후―, 재밌었어. 어라, 오이치 님은?"


이마의 땀을 닦은 시즈코는, 먼저 미끄러져 내려왔을 이치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을 깨달았다. 주위를 둘러보자, 썰매를 안고 언덕을 오르고 있는 이치의 등이 보였다.


"대단히 마음에 드신 모양이라, 한번 더 미끄러지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거 다행이네"


"시즈코―, 한번 더―"


"한번 더―"


이치의 행동력에 어꺠를 움츠렸을 때, 챠챠와 하츠가 썰매를 태워달라고 재촉해왔다. 이래서는 어느 쪽이 소성(小姓)인지 모르겠네, 라고 쓴웃음을 지으며 시즈코는 두 대의 썰매를 짊어졌다.




30번 정도 미끄러지자 몸이 차가워졌기에, 시즈코들은 썰매타기를 마치고 차가워진 몸을 덥히기 위해 온천에 들어갔다.


"후~, 극락이로다"


이치는 가장자리에 턱을 올리고 온천을 만끽했다. 챠챠나 하츠는 유모에게 보조를 받으며 탕에 들어가 있었다.


"(하― 치유된다) 아야 짱도 충분히 몸을 덥혀"


"네, 잘 알고 있습니다"


시즈코도 아야를 데리고 온천을 만끽하고 있었다. 당초에 신분이 다른 자신이 함께 들어갈 수는 없다며 사양한 아야였으나, 차가워진 몸 때문에 건강을 해치게 되면 큰일이라고 생각한 시즈코가 억지로 데려왔다.


(새로운 온천이 발견되어서 이용하기 편해진 게 다행이네―. 뭔가 계획서를 보니, 내 새 집은 데지마(出島) 처럼 되어 있는데…… 뭐 괜찮으려나)


본래, 온천관(温泉館)은 시즈코의 집이 대개조되고 있었기 때문에 거의 사용불가에 가까웠다. 하지만, 물 확보를 위해 우물을 팠을 때, 어떤 지점에서 현재 솟아나고 있는 온천과 동등한 온천이 솟아났다.

처음부터 온천이 솟아나던 곳와 새로 솟아난 온천은 거리가 떨어져 있었기에, 노부나가는 계획을 변경하여 새롭게 솟아난 온천을 시즈초의 집 안에 포함시키도록 설계를 변경했다.

지금까지 최초의 온천을 기점으로 저택이 증개축되고 있었으나, 새롭게 솟아난 온천을 중심으로 새로운 저택을 건축하도록 변경되었기 때문에, 최초의 온천관을 자유롭게 쓸 수 있게 되었다.


"후우, 기분좋구나. 시즈코의 새 저택이 완성되면 나는 자유롭게 쓸 수 없게 되는 것이 유감이다만"


시즈코의 새 집이 완성되면, 원래의 온천관은 노부나가가 관리, 새로운 온천은 시츠코 일동의 것이 된다. 그렇게 되면 이치도 마음 편하게 이용할 수 없게 된다.

애초에 이치가 노부나가의 별장에 사는 것은 일시적인 조치다. 사정이 바뀌면 어딘가의 성으로 이동하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은 아니다.


"그런가요?"


"오라버니는 친족들의 입을 다물게 하기 위해 나를 이리로 보내셨지. 하지만, 언제까지나 있을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말이다. 머지 않아 챠챠나 하츠는 어딘가로 시집가겠지. 그렇게 되면 나도 이곳에 있을 이유가 없어진다. 게다가 오라버니께서 아자이 가문을 멸망시키면, 나도 신쿠로(新九郎, ※역주: 여기서는 아자이 나가마사를 말함) 님과 계속 부부로 있을 수 있을지 어떨지 모른다"


상락(上洛)을 위해 아자이 가문과 오다 가문의 동맹을 맺기 위해 이치는 나가마사에게 시집갔다. 그러나, 히사마사(久政)가 배신한 시점에서 아자이 가문과 오다 가문의 동맹은 파기되었다.

현재는 히사마사가 추방한 나가마사를 노부나가가 보호하고 있는 관계상, 나가마사와 이치의 혼인 관계는 계속되고 있다. 그렇다고는 해도, 노부나가가 히사마사의 본거지인 오다니 성(小谷城)을 합락시킨 이후에는 어떻게 될지 확실치 않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이치와 나가마사의 혼인은 끝나고, 이치는 다른 누군가에게 시집가게 되리라.

뭐라 해도 오이치는 절세의 미인이다. 시집갈 곳은 얼마든지 있으리라. 하지만 오이치는 그것으로 행복할 것인가, 는 본인 밖에 알 수 없다.


"그건 어떨까요. 쓸모없어졌으니 함부로 버린다, 라는 인상은 별로 좋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타인의 평가 따위 오라버니가 신경쓰실 리가 없다. 항상 어딜 보고 계신지 알 수 없는 눈으로, 머나먼 무언가를 이야기하시듯 말씀하시지. 보통 사람에게는 거의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오라버니는"


"단순히 당대 제일의 자유분방한 분(気儘人, ※역주: 내키는 대로 충동적으로, 다소 독선적으로 행동한다는 사람이란 의미인데, 적당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 의역함)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만"


"핫핫핫, 그건 시즈코가 오라버니와 같은 "것"이 보이기 때문이겠지. 우리들 범인(凡人)에겐 무리다. 그렇기에 오라버니는 시즈코를 매우 마음에 들어하시지"


"항상 굉장히 어려운(無茶) 일만 맡기시니, 조금은 치하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건 오라버니가 '시즈코라면 할 수 있다'라고 생각하시기 때문이다. 오라버니는 재능이 넘치시기에 뭐든지 혼자서 결정하고, 가신들에게는 지시대로 움직일 것을 요구하시지. 그렇지 않고 모든 것을 시즈코에게 맡기고 계시니, 오라버니께서 마음에 들어하신다고 생각하는 건 지극히 당연하다고 본다만"


그런 걸까, 라고 시즈코는 막연하게 생각했다. 이치의 말대로, 나름 자유롭게 일을 떠맡고 있지만, 다른 사람이 어떻게 노부나가가 맡긴 일을 처리하고 있는지를 모르기 떄문에 영 실감이 되지 않았다.

결국 우쭐하지 않고, 그렇다고 해서 비굴해지지 않고, 평소대로 하는 것이 제일이라고 시즈코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고보니 이제 곧 포경선(捕鯨船)이 돌아오는구나. 그 날 저녁은 냄비 요리(鍋), 그것도 하리하리나베(はりはり鍋)이려나"


"……쿄우나(京菜, ※역주: 가짓과의 야채)와 다시마(昆布)를 요구하신 건 그 때문인가요"


옛부터 교토(京都)에서 재배되었기에 쿄우나라고 불리며, 현대에서는 미즈나(水菜)라고 불리는 가지과의 작물과 고래고개를 사용한 냄비 요리가 하리하리나베이다.

하리하리의 유래는, 미즈나의 아삭아삭한 식감을 표현했다고 전해진다. 또, 다른 냄비요리와 달리 다시마로 맛국물을 내고 고래고기와 미즈나만 넣는 간소한 냄비요리이다.


"후훗, 시즈코가 항구마을에서 어업 관계에 관여하고 있으니 다양한 것을 먹을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고보니 이상한 것을 생선에 하더구나. 뭐라고 했더냐…… 처리(絞め)?"


"이케지메(活け締め)와 신케이지메(神経絞め) 말씀이신가요?"


"그래, 그것이다"


생각이 난 듯 이치는 양손으로 가볍게 손뼉을 쳤다.

이케지메란 어획한 후에 생선에 하는 처리법 중 하나다. 일반적으로는 피를 뺴어 선도를 유지하는 처리법을 말하지만, 단순히 생선을 죽이는 것을 이케지메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기본적으로는 식칼로 하지만 '손갈고리(手カギ)'라고 하는 도구 쪽이 범용성이 높기 때문에, 항구 마을에서는 '손갈고리'로만 이케지메를 하고 있었다.


신케이지메란 이름 그대로, 생선의 숨골(延髄) 및 중추신경(中枢神経)을 파괴하는 처리법이다. 지방에 따라서는 연수베기(延髄斬り), 신경뽑기(神経抜き)라고도 한다.

이케지메와 달리, 신케이지메는 송곳(錐)으로 뇌와 연수를 파괴하고, 등뼈를 따라 피아노줄이나 철사(針金) 등을 넣어 충추신경을 파괴한다는 숙련된 기술이 요구된다.

이 처리를 하는 이유는, 생선의 사후경직을 늦추어 선도(鮮度)를 유지하기 위해서이다. 다만, 신케이지메는 작은 생선이나 중형의 생선에는 하지 않는다. 신케이지메 처리를 하면 살이 물러져버리기 때문이다.


이케지메는 일본에서 발상된 기술이지만, 이케지메가 꽃을 파운 것은 냉동기술이나 수송기술이 눈부시게 진보한 쇼와(昭和) 버블 시대 이후가 되어 의외로 역사는 짧다.

그것은 옛날에는 소금에 절인 생선이 중심이었기에, 생선의 선도를 유지하는 기술이 발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근대에서는 선도가 높은 생선의 수요가 생겨났다. 그 때문에 이케지메나 신케이지메라는 기술이 태어나게 되었다.


"단순히 생선의 부패를 막기 위해서입니다. 생선의 피가 남아있으면, 그게 원인이 되어 부패가 빨라지거든요"


"과연. 아무 생각도 없는 것처럼 보이면서 이것저것 다 생각한 행동인 것이냐"


"……자주 듣는 말인데, 저는 그렇게 아무 생각도 없는 것처럼 보이는 건가요"


"그럼, 슬슬 나갈까. 현기증을 일으켜도 좋지 않으니 말이다"


눈을 반쯤 뜨고 노려보는 시즈코를 무시하고, 이치는 재빨리 온천에서 나갔다. 시즈코는 작게 한숨을 쉰 후 이치를 따라 온천에서 나갔다.

몸을 닦고 욕의(浴衣)로 갈아입은 후, 시즈코는 얼음을 넣은 보리차(麦茶)를 마시며 한숨 돌렸다.


(의외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물에 초석(硝石)을 넣으면 열을 빼앗으니까 얼음을 만드는 건 의외로 간단하지. 뭐, 공기식 제빙기가 있으니 우리 집은 그런 고생은 필요없지만)


물에 초석을 넣으면 초석이 물의 열을 빼앗아 온도를 낮춘다. 그렇게 생겨난 초석이 들어간 얼음에 초석을 더 섞어서, 아무 것도 넣지 않은 물을 식히면 얼음이 만들어진다.

그 후에는 초석이 든 얼음을 물과 초석으로 분리하여 초석을 회수한다. 이렇게 하면 시기에 관계없이 몇 번이고 초석을 사용하여 얼음을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


애초에 초석을 쓰지 않고 공기만으로도 제빙기나 냉동고를 만드는 것은 가능하다. 실제로 시즈코는 효율은 좋다고 하기 어렵지만, 초기형의 공기식 제빙기를 개발했다. 그러나, 제빙기에는 여러가지 문제가 있다.

그 문제는 제빙기 자체가 아니라, 얼음의 가치가 변화하는 것에 기인한다.

제빙기가 일반적이 되면 얼음의 가치는 격감하여, 현재 제빙업에 종사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고, 얼음을 유통시키는 물류에도 영향이 미친다.

결과적으로 경제가 정체되고, 많은 경제적 손실이 예상되는 것이다. 얼음은 사치품이라는 위치가 딱 좋은 것이다.


공기식 제빙기는 단순한 원리로 되어 있으나, 효율은 좋다고는 하기 어렵다. 얼음판 한 장 만드는 데 현대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작은 얼음을 만드는 것에 한정하면 이 문제는 해결할 수 있다. 오거(auger) 방식이라는 구조로, 차게 식힌 원기둥의 벽에 물을 천천히 흘린다.

원기둥의 벽에 생긴 얼음막을 깎아서 모은 후, 마지막에 압력을 가해 원하는 형태의 얼음을 만드는 것 뿐이다. 흘려넣는 작업으로 하는 것이라서 대량의 얼음을 만드는 데 적합하지만, 투명하고 아름다운 얼음은 만들 수 없다.


(스털링 엔진의 완성은 아직인가―. 저번의 보고로는 겨우 검증기(検証機) 개발에 돌입했다고 했는데, 그렇다고 해도 유압이나 공기압이 있는 것만으로 이만큼 작업 효율이 올라갈 줄은 몰랐어)


시즈코는 잊고 있지만, 엔진의 발명은 산업혁명의 상징이다. 엔진이라는 기관이 탄생된 것이 산업혁명의 시작이기도 한 것이다.

원시적인 엔진이라고는 해도, 스털링 엔진이 완성되면 가능한 일은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많아진다.

코스트를 무시한다면 발전기나 냉장고, 에어컨 등도 가능해진다.

물론 개발했다고 해도 코스트가 무시하지 못할 정도였기에, 잘해봐야 노부나가같은 한정된 권력자가 이용하는 데 그치겠지만.


"시즈코―, 차―"


두 손을 펼쳐 챠챠는 시즈코가 들고 있는 차를 요구했다. 이래서는 어느 쪽이 소성인지 모르겠네, 라고 쓴웃음을 지으며 시즈코는 챠챠에게 찻잔을 건네주었다.

기쁜 듯 받아들더니 챠챠는 단숨에 차를 마셔버렸다. 온천에서 뜨거워진 몸에는 딱 좋았던 듯,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찻잔을 시즈코에게 내밀었다.


"한잔 더―"


"……찻잔, 두 개 정도 더 필요하겠네"


시즈코의 예상은 적중하여, 챠챠를 발견한 이치와 하츠도 마찬가지로 얼음을 넣은 차를 요구했다. 한숨밖에 나오지 않는 시즈코였다.




예년과 마찬가지로 케이지 이외에는 설날에서 7일이 지나면 시즈코의 저택으로 돌아왔다. 전원이 한숨 돌린 지 며칠 후, 시즈코는 항구마을로 갔다.

새해 첫 포경선이 귀환한 것을 맞이하는 것이 그 이유였다.


항구마을에서는 포경이 성행하고 있었으나, 다른 것과 달리 포경에는 다양한 조직이나 규칙이 존재한다. 우선 포경을 하는 사람은 모두 포경조합(捕鯨組合)에 가입해야 한다.

가입 날짜는 물론이고 신장이나 체중, 연령이나 건강 상태 등이 기록된다. 그러한 정보들은 모두 고래절(鯨寺)에 보관된다.


고래절이란 포경한 고래를 위한 위패(位牌)를 만들고, 계명(戒名)을 붙여 공양탑(供養塔)을 건립 및 관할하는 절이다. 일본에는 몇 개가 있으며, 가장 유명한 절은 시코쿠(四国) 하치쥬핫카쇼(八十八箇所)의 류우즈 산(龍頭山) 콘고쵸지(金剛頂寺)이다.

절에는 고래를 위한 위패나 공양탑, 포경조합의 명부(名簿) 외에, 포경장(捕鯨帳)이라고 불리는 포경에 관한 서류가 보관되어 있다.

포경장에는 포경한 날짜와 시간, 잡힌 고래의 크기, 대략적인 장소, 관여한 포경조합의 멤버 리스트, 해체한 부위의 매각처나 처분 방법 등, 포경에 관한 상세한 정보가 기록되어 있다.


생선과 달리 고래에는 세세한 규칙이 존재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포경장에 기록되지 않으면 예를 들어 운좋게 해안가로 떠밀려온 고래라 하더라도 일체 손을 대서는 안 된다는 규칙이다.

이것은 고래가 해안가로 떠밀려온다는 것은 바다에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생각에서 기인한다.

그밖에도 포경한 고래는 바로 해체하지는 않고, 일정한 순서에 따른 신사(神事)를 치른다는 규칙이 있다.


우선 고래절에 포경 보고를 하고, 주지(住職)가 고래에 계명을 붙인다.

그 후, 고래의 혓바닥을 잘라내어 바다에 흘려보낸다. 이것은 '우리들은 고래에 감사하며 남김없이 활용하겠습니다'라는 서약을 해신(海神)에게 전하기 위함이다.

혓바닥을 바다에 흘려보내고, 해신의 사자라고 간주되는 범고래(シャチ)가 고래의 혓바닥을 먹은 경우, 해신에 대한 서약은 전달되었다고 해석한다.

이 때, 만에 하나 범고래가 혓바닥을 먹지 않은 경우, 해신이 마음 속으로 켕기는 구석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하여, 포경된 고래는 공양탑을 세운 후에 정중하게 장사지낸다.


"혓바닥이라고 해도 꽤 무거워……"


지구에 존재하는 최대의 동물인 대왕고래(シロナガスクジラ)는, 혓바닥만으로도 중량이 약 4톤이나 된다. 그보다 작은 개체라고는 해도, 수백 kg의 무게가 나가는 혓바닥을 운반하는 것은 쉽지 않다.

전용의 운반차가 없으면 바다에 흘려보내는 것은 물론이고 움직이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미안하군요, 설날에 허리를 다쳐서 말입니다. 허허허"


허리를 통통 가볍게 두드리면서 고래절의 주지가 사과했다. 본래는 고래절의 주지가 운반차를 밀지만, 허리를 삐끗했기에 불가능하게 되었다.

그래서 대리로서 시즈코가 선택되었다. 나 아니라도 되는 거 아닌가, 하고 생각했으나 지위니 뭐니 성가신 것들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


"신사니까 도와달라, 고 할 수도 없고. 아아, 벌써 혓바닥을 노리고 범고래가 모여들기 시작했네"


몇 마리인가 머리를 수면 위로 내밀고 주위를 정찰하는 '스파이 호핑'이라고 불리는 동작을 하고 있었다. 식량을 운반해오는 운반차를 발견한 것이 무리에 전달된 듯 하다.

처음에는 3마리 정도밖에 없었던 항구에, 10마리 이상의 범고래가 모여들었다. 범고래는 한 종류밖에 존재하지 않는 종이지만, 식성이나 사이즈에 따라 대략 4가지로 분류된다.

큰 개체라면 고래조차 사냥하는 범고래로, 그런 그들이 좋아하는 고래의 부위는 혓바닥과 입이다.

여담이지만 범고래라고 하면 귀엽게 들리는데 영문 명칭은 '킬러 웨일(Killer Whale)', 학명은 '명계(冥界)의 마물(魔物)'이라는 무서운 이름이 붙어 있다.


"뀨잉뀨잉"


거체에 어울리지 않게 귀여운 울음소리로 우는 범고래들. 남은 건 운반차를 소정의 위치까지 이동시키고, 주지가 공양의 기도(祈祷)를 올린 후, 고래의 혓바닥을 바다로 흘려보내면 완료된다.


"앗! 이놈이!"


운반차를 다 옮겼을 때, 갑자기 등 뒤에서 누군가의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안 좋은 예감이 든 시즈코는 재빨리 뒤를 돌아보았다. 작은 칼을 한 손에 들고 이쪽으로 달려오는 남자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주지스님, 물러나세요!"


시즈코의 목소리에 주지도 비상 상태임을 깨달았는지, 깜짝 놀란 목소리를 내며 운반차 뒤로 숨었다. 그걸 보고도 남자의 행동이 조금도 변하지 않는 것을 보니, 목표는 시즈코 자신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 어쩌지. 신사라서 날붙이 종류는 전부 두고와 버렸어!)


날붙이 종류는 '벤다'라는 것 때문에 불길하다고 여겨져, 신사에서는 기본적으로 쓰지 않고 휴대가 허용되지 않는다. 평소에는 주위를 둘러싸는 호위들도 신사라는 것 때문에 떨어져 있던 것도 불행이었다.

상대는 작은 칼만 보이고 있었으나, 그 이외에도 뭔가를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불리한 상황을 어떻게 할까 고민하고 있을 때, 어딘가에서 그 남자를 노리고 돌이 날아왔다.

시야의 바깥에서 날아온 돌을 피하지 못하고, 남자는 두 개의 돌에 맞은 충격으로 밸런스를 잃고 앞으로 고꾸라졌다.


고꾸라졌을 때 작은 칼을 놓친 듯 하여, 작은 칼은 땅바닥을 굴러 시즈코의 발 밑으로 미끄러져왔다. 찬스라고 판단한 시즈코는, 작은 칼을 빼앗으려 달려나갔다.

한편, 몸을 일으킨 남자도 작은 칼이 앞에 굴러가고 있는 걸 깨닫고 당황해서 일어나더니 달리기 시작했다.


"으라차―!"


약간의 차이였으나 남자 쪽이 빠르게 작은 칼을 붙잡았다. 하지만, 남자가 일어서기 전에, 시즈코가 남자의 얼굴을 힘껏 걷어찼다.

작은 칼을 잡는 것에만 의식을 집중하고 있던 남자는, 시즈코의 발차기를 피하지 못하고 정통으로 얻어맞아 그 기세대로 땅바닥을 굴렀다.

아무리 시즈코가 여자라도 의식의 바깥쪽에서 발차기를 맞으면 뼈아픈 일격이 된다. 특히 머리는 잘만 맞추면 뇌를 뒤흔들러 행동불능으로 만들 수 있다.

시즈코의 발차기가 뇌까지 대미지를 주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남자가 일어나지 않는 걸 보고 용케 의식을 끊을 수 있었던 것을 기뻐했다.


"작은 칼이라니 위험하네 위험해. 자, 얼른―――――――――"


말을 하고 있는 도중에 경련하고 있던 남자가 상반신을 일으켰다. 몸을 비틀어 일어나더니, 도망치기 위해 바다로 뛰어들었다. 차가운 바다에 뛰어들어서 도망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기에, 시즈코는 당황해서 바다 쪽을 보았다.

뛰어든 남자가 허공을 날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알 수 없어 시즈코가 주위를 둘러보자, 범고래의 등지느러미가 남자의 주위에 집중되어 있는 것을 깨달았다.

허공을 날았던 남자의 몸이 수면에 내팽개쳐졌다. 틈을 주지 않고 남자의 몸이 다시 허공을 날았다. 남자가 허공을 날 때 범고래의 등지느러미가 보이는 것을 보니 꼬리나 몸 전체를 활용하여 내던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범고래가 쳐올리는 힘은 강력하여, 100kg짜리 바다사자(アシカ)를 수면에서 20m 이상 날려보낼 수도 있다.

일설에는 꼬리로 사냥감을 수면 위로 집어던지는 행위는 새끼에게 사냥을 배우게 하기 위해서라고 하는데, 현대에도 확실한 이유는 판명되지 않았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설령 범고래가 장난으로 쳐올렸다고 해도, 인간에게는 생명의 위기에 처하는 위험한 공격이라는 것이다.


5번 정도 날려지는 것을 보고 있자, 시즈코 근처에 범고래들이 몰려들었다. 물기둥을 뿜고 있는 것을 보고, 시즈코는 범고래들이 어서 고래 혓바닥을 내놓으라고 재촉하고 있는 것을 깨달았다.


"주지스님, 주지스님. 범고래들이 굉장히 화가 나 있어요. 얼른 신사를 재개하죠"


겁에 질려 있는 주지를 재촉하여 신사를 재개했다. 혼란스러웠던 것인지 이것저것 빼먹은 주지였으나, 지금은 그런 걸 따질 틈은 없었다.

모두 끝나자 시즈코는 운반차를 기울여 고래의 혓바닥을 바다로 떨어뜨렸다. 즉시 범고래들이 모여들어 고래의 혓바닥을 차례차례 뜯어먹었다.

남자를 가지고 놀고 있던 범고래들도 고래 혓바닥을 확인했는지, 마지막으로 남자를 꼬리로 날려버린 후에 쏜살같이 고래 혓바닥이 있는 곳까지 왔다.

무리 중에는 범고래의 새끼가 있는지, 어른들에 섞여 열심히 고래의 혓바닥을 먹고 있었다.


"후우, 간신히 항구가 부서지지 않고 끝났네. 주지스님, 돌아가죠"


남자가 쓰던 작은 칼을 주워들고, 슬슬 주저앉을 듯한 주지와 함께 돌아갔다.


(음―, 직접적인 살상 행위에 나섰다, 라는 건 위험인물로 보이고 있다고 생각해도 되려나. 아무래도 궁금하지만, 어차피 저 남자는 신분을 알려주는 물건을 가지고 있지 않겠지. 생각할 수 있는 건 타케다(武田). 하지만 지금도 침묵하고 있는 호죠(北条)도 수상하려나. 우에스기(上杉)는 암살 따윌 했다간 가신들의 결속이 산산조각날테니 그런 건 실행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도 좋으려나)


작은 칼의 제작자를 확인하면 흉기의 출처를 어느 정도는 특정할 수 있지만, 그것도 미묘한 부분이다. 살고 있는 장소에서 구입했는지, 아니면 임무 도중에 손에 넣었는지 시즈코는 판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다지 기대하진 못하겠네, 라고 생각하면서 시즈코는 작은 칼을 집어넣었다. 주지를 데리고 신사에 참가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와서는 그들의 곤혹스러운 표정을 일별했다.


"우발적인 문제가 일어났지만, 어찌어찌 신사는 마쳤습니다. 해신님의 사자는 고래의 해체를 허락하셨으니, 잘 부탁드립니다"


시즈코가 무사히 신사가 끝났음을 고하자, 그들은 휴 하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다소의 문제는 있었으나, 올해의 첫 포경의 신사는 완료되었다. 그 후에 남자가 어떻게 되었는진 알 수 없었다. 범고래가 몇 번인가 던져올리다 싫증난 이후에 어디로 흘러갔는지 알 수 없었다.

찾을 필요성도 느끼지 못한 시즈코는 그대로 내버려두기로 했다. 그보다도 항구 마을의 경비대(警備衆)가 날듯 달려와서 바닥에 머리를 조아리는(土下座) 것을 진정시키는 쪽이 보통 일이 아니었다.


"정말로 면목이 없습니다"


"자, 자, 사람은 누구나 실패는 있는 법이에요. 이번 사건으로 배를 가를 필요는 없어요. 그보다 실패를 어떻게 만회할지를 생각해 주세요"


"예, 옛―! 시즈코 님의 관대함(寛恕)에 감사드립니다"


"(그렇게 울 것 까지야) 아직 추운 날이 계속되고 있는데, 건강에 주의하면서 직무를 수행해 주세요"


한번 더 깊이 고개를 숙인 후 경비대원들은 떠나갔다. 자객보다도 경비대에 대응하는 것에 피곤해진 시즈코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돌로 원호해준 건 고마웠어요. 하지만 설마 여기에 있을 줄은 몰랐어요"


시즈코는 이마에 손을 짚으며, 자객에게 돌을 던진 인물인 케이지, 그리고 쿄에서 만났던 연하의 소년 쪽을 돌아보았다.


"우연이야. 그보다 돌을 던진 건 이 녀석 쪽이 빨랐으니, 인사는 이 녀석에게 해줘"


"나는 대단한 일을 한 건 아니야. 게다가 전에 쿄에서 신세를 졌으니까"


히죽 웃으며 케이지는 엄지손가락으로 연하의 소년을 가리켰다. 소년도 지지 않겠다는 듯 밝은 미소를 떠올리고 있었다.

두 사람의 사이가 묘하게 좋은 것에 시즈코는 고개를 갸웃했다. 듣자하니 유곽(花街)에서 만나서 의기투합, 그대로 함께 떠들썩하게 놀았다는 것이다. 조금 안 좋은 예감이 들었을 때, 시즈코의 어깨에 척 하니 손을 올리는 사람이 있었다.

돌아보자 생근 하고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띤 코토(琴)가 그곳에 있었다.


"시즈코 님, 그 두 사람의 계산, 지불해 주시겠나요"


그녀는 왼손의 엄지손가락과 검지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만들며 말했다. 기세좋게 케이지 쪽을 돌아보자, 두 사람 다 시즈코에게 양 손을 모아 합장하고 있었다.


"……얼마인가요"


이런 일로 호위대가 끌려가서 감옥에 쳐넣어지는 것은 수치다, 라고 생각한 시즈코는 대금을 대신 내주기로 했다. 코토는 생긋 웃으며 청구하는 금액을 제시했다.


"……얼마나 놀면 그만한 금액이 되는 건가요"


"두분 모두 그야말로 즐겁게 노셨으니까요, 최상급의 접대를 해드리지 않는다면 저희들의 수치입니다"


"노린 거군요"


"시즈코 님이 말씀하시는 의미를 모르겠습니다"


눈을 가늘게 뜨고 노려보는 시즈코의 말을 코토는 유유히 받아넘겼다. 이 이상 추궁해도 무의미하다고 판단한 시즈코는, 무거운 한숨을 쉬면서 지갑을 꺼냈다.


"여기 있어요"


"매번 감사합니다. 또 이용해 주십시오"


"이런 건 두번은 사양이에요"


시즈코의 불평에 킥 웃은 후, 코토는 시즈코의 귀에 입을 가져갔다.


"(조심하십시오. 저 어린애(童子)는 우에스기 가문의 근시(近習)인 요로쿠(与六)입니다. 목적이 무엇인지까지는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그 말만 하고 코토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떠나갔다. 생각지도 못한 소년의 정체에 머리가 아파졌으나, 지금 그 말을 하면 더 큰 혼란이 발생할 거라고 생각하고 시즈코는 입을 다물었다.


"나 참, 둘 다 나중에 출세하면 갚아줘요. 그럼 돌아가죠"


"아, 잠깐 기다려줘"


전원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려 했으나, 그것을 소년, 훗날의 나오에 카네츠구(直江兼続)인 요로쿠가 제지했다. 안 좋은 예감이 들었지만, 지금 상태에서 그의 말을 무시하는 것은 무리가 있었기에 발을 멈추었다.


"안 좋은 예감이 드는데, 일단 이야기는 들어볼게"


"아까 노자가 다 떨어졌어. 눈 때문에 집에 돌아갈 수 없으니, 당분간 신세지고 싶어"


"너는 무슨 말을 하는 걸까. 노자가 없으면 일하면 되잖아. 이 근처에는 숙식이 포함된 노동 정도는 모집하고 있거든"


머리가 아파졌다. 설령 그가 나오에 카네츠구가 아니더라도, 간단하게 숙식 포함 노동을 시킬 수는 없다. 하지만 그를 거절하여 그게 켄신(謙信)에게 전해져 나쁜 인상을 주게 되어버리면 큰 문제다.

노부나가가 켄신과 신겐(信玄)에 대해 직접 대결을 피하고 회유하는 정책을 항상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그 정책을 박살내버릴 수는 없다. 지나치게 어렵게 생각한 시즈코는 신음소리를 내면서 생각했다.


"시즛치가 있는 곳이 아니라, 내가 있는 곳에 당분간 머물러. 그거라면 문제없겠지?"


고민하고 있는 시즈코에게 케이지가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다. 케이지는 작은 암자(庵)에서 머무르고 있다. 그곳에서 시즈코의 저택으로 이동하려면 반드시 사람들의 눈에 띈다.

전원에게 이야기하여 혼란을 초래하기보다, 일부러 빈틈 하나를 만들어 케이지에게만 이야기해두는 쪽이 효율적이라고 시즈코는 결론지었다.


"……그럼 그걸로. 제대로 '대응'하면 아까 빌려준 돈은 없던 걸로 해줄게요. 실패하면 두 배로 받을 거에요"


"좋았어! 꼬마야, 조금 좁지만 내 암자에서 묵어라"


"신세지는 입장이니 장소에 불평하거나 하진 않아. 눈이 녹을 때까지 신세 좀 지겠어"


두 사람은 굳은 악수를 교환했다. 막역(莫逆)한 친구라고 말하듯 사이가 좋아진 두 사람이었으나, 시즈코에게는 머리가 아파지는 얘기였다.


"어이쿠, 잊고 있었군. 내 이름은 요로쿠, 우에스기 가문의 근시야. 지금부터 잘 부탁해, 핫핫핫핫!"


지금부터 어떻게 이야기를 진행할지 계획을 세우고 있던 시즈코였으나, 카네츠구의 말 한 마디에 그 계획은 기초부터 산산조각으로 분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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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

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겐키(元亀) 2년 히에이 산(比叡山) 엔랴쿠지(延暦寺)


085 1571년 12월 하순



노부나가와 시즈코가 환담을 나누고 있을 무렵, 케이지(慶次)들도 따분함을 주체하지 못해 빙 둘러앉아 담소하고 있었다. 도중에 나가요시(長可)도 끼어들어 한층 더 시끌벅적해졌다.

유일하게 란마루(蘭丸)만은 안절부절 못하며, 수시로 노부나가와 시즈코가 사라진 맹장지 저편으로 시선을 돌리고 있었다.


"야, 란(蘭). 아까부터 두리번두리번 정신사납다"


보다 못해, 라기보다는 진심으로 번거로워하고 있는 나가요시가 약간 눈을 가늘게 뜨며 란마루를 노려보았다.


"혀, 형님은 신경쓰이지 않으시는 겁니까! 사람을 물리고 여자와 밀회라니, 저는 도무지 진정할 수가 없습니다!"


"네가 하고 있는 건 헛추측(邪推)이다. 그런 쪽으로의 걱정은 해봤자 소용없어. 거기에 방해되니까 딴데로 가라"


란마루의 필사적인 호소도 누구네 집 개가 짖냐는 듯, 나가요시는 왼손으로 귀를 파면서 오른손 검지를 란마루에게 보이고는 좌우로 움직이며 손사래를 쳤다.


"주군의 명령이시다. 우리는 그에 따를 뿐. 따르지 못한다면, 너는 소성을 맡을 수 없지"


얕보는 태도에 란마루는 크게 화를 냈지만, 호리(堀)가 그를 다독였다. 작게 한숨을 쉰 후, 호리는 나가요시에게 사과했다.


"미안하군. 란마루는 주군께서 시즈코 님을 중용하시는 것이 마음에 안 드는 것이다. 어린애(童)의 비뚤어짐(僻み)이라 생각하고 흘려들어 주게"


"그럴 거라고 생각했어. 갑자기 소성으로 임명되어서, 어른(一人前)이 된 기분으로 주제넘게 말참견을 하게 된 거겠지. 마음에 들지 않는 이유도 시즈코가 여자라서 그런 걸테고. 아―, 못쓰겠네, 꼬맹이(餓鬼)의 질투는 보기 흉하다고"


나가요시도 완전히 똑같은 말을 했던 것을 알고 있는 케이지와 사이조(才蔵)는 나가요시에게 뜨뜻미지근한 시선을 보냈다.


"그, 그런 이유가 아닙니다! 저는 주군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 뿐입니다!"


"그럼 주군의 명령에는 따라야지"


"크윽!"


나가요시와 란마루가 싸움, 아니 나가요시가 일방적으로 란마루를 놀리고 있을 무렵, 노부나가와 시즈코는 국책(国策)을 의논하고 있었다.


"……그런 이유로, 저는 중국(唐)을 공격하는 것은 불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내용은 천하통일 후의 해외 정책이라는, 어떤 의미에서는 성급한 이야기였다.

해외까지 시야에 넣은 의논이 가능한 것도, 시즈코가 가져온, 전국시대에는 어울리지 않는 정확한 측량에 의한 정밀한 세계지도가 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노부나가는 일본이 얼마나 작고 벽지(僻地)에 있는지, 또 유럽이 무서울 정도로 멀리 있으며, 그 까마득한 땅으로부터 일본까지 손을 뻗쳐오는 남만인(南蛮人)들의 수완을 정확하게 이해했다.


"남만인들이 귀중햐게 여기는 향신료의 산지를 무시하면서까지 세계의 끝에 있는 호주(豪州)로 방향을 잡는 것의 이점을 말하라"


"우선은 이쪽을 보아 주십시오"


노부나가의 질문에 시즈코는 세계지도에 부속된 자료집에서 요약한 한 장의 종이를 꺼냈다. 그것에는 호주에 잠자고 있는 금, 은, 구리, 철 등의 지하자원에 관한 매장량이 적혀 있었다.

오스트레일리아라고 하면 농업국가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실은 방대한 천연자원을 가진 자원국이기도 하다.

특히 알루미늄의 원료가 되는 보크사이트의 매장량은 세계 제일을 자랑하며, 장소에 따라서는 땅 위에 광맥이 노출되어 있어 노천 채굴이 가능하다.

본토(本島)와 태즈매니아(Tasmania) 섬이 발견된 것은 1642년 무렵이나, 당시의 유럽인들은 오스트레일리아를 발견해도 가볍고 가격이 나가는 향신료를 캘 수 없다면 불모의 땅이라고 간주했다.


"항해 기술이나 수송 기술이 발달하지 않은 지금에야 향신료는 귀중하게 여겨집니다만, 언젠가는 대량생산에 의해 수요와 공급이 맞아떨어져 가치가 내려갑니다. 하지만 지하자원은 산출되는 토지를 지배하지 않으면 얻을 수 없습니다"


가볍게 요리에 쓸 수 있게 하고 싶다는 것이 후추 재배의 계기였으나, 노부나가가 해외로 눈을 돌리기 시작하니 시즈코의 취미(道楽)가 순식간에 중요한 의미를 가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향신료의 산지 확대와, 대량 생산에 의한 가치의 저하를 증명한 것이었다.

지금에야 유럽인들은 향신료를 전략 물자로서 중요시하고 있으나, 언젠가는 공업화에 필수적인 금속 자원으로 바뀌어가는 것을 나타내듯, 오와리(尾張)에서의 후추 생산을 성공시켰다.

그 결과, 험한 바다를 넘어 해외로 진출하지 않아도, 수고만 들이면 일본도 향신료의 산지가 될 수 있는 것이 증명되었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했던 노부나가도, 시즈코로부터 헌상된 후추를 유럽 상인들이 비싸게 매입한 것에 의해 간신히 시즈코의 의견이 올바르다는 것을 이해했다.


"또, 대륙의 동부와 남부는 비옥한 곡창지대입니다. 자연재해도 적기 떄문에, 방대한 양의 식량을 생산할 수 있습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동남부 산악지대는 강설지대(降雪地帯)이지만, 그 이외의 동부와 남부는 비교적 온난한 기후에 비옥한 곡창지대이다.

대륙 전체에서 보면 얼마 안 되는 땅이지만, 생산량은 일본의 총생산량을 웃돈다.

현대의 오스트레일리아는 물 부족으로 고민하고 있으나, 그냥 풀어놓는(野放図) 축산을 중시한 것에 따른 폐해이며, 계획적으로 농업을 운영하면 문제되지 않는다.


"쌀은 어떠냐"


"충분히 재배 가능합니다"


그다지 알려져있지는 않으나, 오스트레일리아에서도 쌀은 재배되고 있다.

쌀 재배 뿐만 아니라, 벼농사(稲作), 곡식 농사(穀作), 콩과(マメ科)의 목초(牧草) 재배와 방목(放牧)을 로테이션으로 하는 것으로 제한된 땅에서 정말로 많은 산물을 얻을 수 있다.

일본과 달리 자연재해가 적고, 그러면서 사계절에 가까운 계절감이 있기에, 오스트레일리아는 벼농사에 적합하다고 할 수 있다.


"선주민(先住民)이 있습니다만, 그들의 성지(聖地)를 침범하지 않는 한 우호적입니다. 그들의 성지는 불모의 황야 부분에 있기에, 저희들이 신경쓸 일은 없습니다"


오스트레일리아에는 선주민족인 애버리지니(Aborigine)이 있다. 하지만 그들은 성지 울루루(Uluru, 영국의 탐험가가 에이어즈락(Ayers Rock)이라고 이름붙였다)에 침입하지 않으면 우호적인 태도로 접해온다.

설령 피부색이나 외모가 다르더라도 그렇다. 그런 이유로 영국인 입식자(入植者)들은 처음에는 그들과 다툼을 일으키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입식자인 영국의 유형수(流刑囚)들은 점차 오만한 태도를 취하게 되어, 이윽고 스포츠 헌팅이라고 칭하고 많은 애버리지니를 학살하기에 이르렀다.

사우스 웨일즈 주의 도서관에는, 당시의 영국인 입식자들이 애버리지니의 학살을 스포츠 감각으로 즐겼던 것을 나타내는 일기장이 남아있다.

1600년 무렵에는 100만명, 700개 이상의 부족이 있었던 애버리지니는 1937년까지 백인에 의해 학살당하여, 태즈매니아 섬의 애버리지니는 절멸, 오스트레일리아 본토는 수만 명 정도로까지 줄어들었다.

그 이후에도 오만한 백호주의(白豪主義)에 의한 강제 동화 정책이 실시되어, 1970년까지 많은 애버리지니들이 강제적으로 그들의 문화를 버리게 되었다.


"저로서는 그들과 우호적으로 접하는 편이 이득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유는 몇 가지가 있습니다만, 역시 가장 큰 이유는 그들과 다툴 의미가 없다는 점입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깊이 관여하는 것은 금물이며…… 너무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적당한 관계가 가장 좋다고 생각합니다"


조직적인 스포츠 헌팅, 물가에 독을 풀거나, 애버리지니를 외딴 섬에 내버려두어 굶어죽게 하거나 하는 짓을 한 영국 입식자들이지만, 시즈코에게는 백인지상주의 같은 사고는 티끌만큼도 없다.

물론, 속셈(下心)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한 부족이라고는 해도 선주민족과의 커넥션을 얻게 되면, 다른 부족과 대화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시즈코가 원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비옥한 곡창지대에서의 농산물과 지하자원이다. 타국의 침략을 막기 위해 독립국으로서의 체재를 갖출 필요는 있지만, 그것에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시즈코는 생각하고 있었다.


"남만인의 침략을 용납하지 않기 위해서는 군사력도 필요한가"


"호주는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대륙입니다. 나라를 만드는 데는 10년, 20년은 보는 게 좋겠지요"


"그야말로 모든 것을 처음부터 만든다는 것이구나. 시간이 아무리 많아도 부족하다"


어깨를 움츠린 노부나가는, 말과는 달리 즐거운 듯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백성조차 없는 장소에 나라를 세우려면 방대한 노력을 필요로 하지만, 그것은 동시에 자신이 꿈꾸는 이상적인 국가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우선은 눈 앞의 적을 처리하지 않으면, 호주에서의 국가 수립 같은 건 그림의 떡이지"


"옛. 우선은 타케다(武田)이겠죠. 하지만 이쪽은 문제없습니다. 현재까지는 타케다는 제 계획(棋譜) 대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든든하구나. 나는 네 계책을 따라 타케다와 일을 벌이지 않는 태도를 유지하겠다. 속이 검은 너구리(※역주: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도 타케다와 표면적으로 대립하지 말라고 서신을 보냈다. 지금쯤 너구리놈은 꽤나 부루퉁해 있겠지"


"……대답은 삼가겠습니다. 타케다 다음은 우에스기(上杉)…… 라고는 해도 사도(佐渡)의 금광(金山)이 목적이므로, 우에스기에 대해서는 유화(宥和) 정책으로 문제없겠지요. 타케다는 오다의 이름을 일본 전역에 떨치기 위한 산제물(生け贄)이니 멸망시켜야 합니다만"


"타케다가 산제물이냐. 다른 사람이 들으면 놀라 자빠질 발언이구나"


말과는 달리 노부나가는 대답하게 웃었다. 그는 시즈코에게 설명을 듣고, 이미 타케다와 전쟁을 해도 이길 수 있는 계획이 서 있었다. 하지만, 그걸 전면에 드러내면 타케다가 경계하여 움직이지 않게 될 가능성이 있다.

'코우슈(甲州) 병사 한 명은 오와리 병사 5명에 필적한다'. 노부나가에게는 어떻게든 그 말을 뒤집을 필요가 있었다. 평소에도 전쟁시에도, 병사의 이미지는 중요하기 때문이다.

강병의 이미지가 붙는 것만으로 쓸데없는 전쟁을 회피할 수 있으며, 동시에 적에게 보이지 않는 압력을 줄 수 있다.


"앞서도 말했으나 네게 우선적으로 자금(金子)을 주겠다. 충분히 준비하여, 마음껏 이름을 날려라"


"옛!"


노부나가의 말에 시즈코는 깊이 머리를 숙였다.




시즈코 군 중에 유일하게 시식회(試食会)에 참가하지 않은 아시미츠(足満)는 신사(神社)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대나무숲에서 대나무를 모으고 있었다.

지금까지 대나무를 필요로하지 않았던 아시미츠였으나, 바이오 코크스를 만들 수 있다면 대나무는 좋은 원료가 된다. 하지만, 수분을 빼는 데 시간이 걸리기에, 시간이 날 때마다 벌채하여 건조시키고 있었다.

가장 적합한 원료는 메밀껍질(そば殻)로, 알갱이의 굵기나 수분량이 거의 이상적이다. 건조나 분쇄 가공은 필요없고, 메밀껍질을 그대로 바이오 코크스 제조에 투입할 수 있다.

아직 메밀껍질은 중요시되고 있지 않다. 용도로서는 토양 만들기(土作り)에 이용되거나, 베개의 소재로 쓰이는 정도로, 그것들도 꼭 메밀껍질이 아니면 안 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메밀껍질은 바이오 코크스의 원료로서는 이상적인 소재라 할 수 있다.

그렇다고는 해도, 메밀껍질만으로는 불안하기에, 아시미츠는 다양한 재료로 바이오 코크스를 제조할 수 있도록 연구를 계속하고 있었다.


"사람을 고용할까. 아니, 벌채에 시간이 걸리지. 나라면 칼로 금방 할 수 있지만, 다른 자들은 나타(鉈)라도 준비할 필요가 있으니 번거롭군"


아시미츠가 허리에 차고 있는 칼(太刀), 분류적으로는 대태도(大太刀)에 속하는 칼은, 현대 과학과 전통 기술이 융합되어 탄생한 걸작이었다.

실전을 위해 칼날이 두꺼운 칼날이 불룩하게(蛤刃) 되어 있는 아시미츠의 칼은, 참격 능력(斬撃能力)이라면 어떠한 명도(名刀)라도 추종을 불허한다. 손질이 조금 번거로운 점을 제외하면, 지고(至高)의 무기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또, 그가 손에 장비하고 있는 토시(小手)에도 같은 기술이 사용되었다.


당연하지만 대나무를 베는 것 정도는 아시미츠에게는 식은 죽 먹기다. 한번 휘두를 때마다 한 그루, 나란히 있을 경우에는 몇 그루의 대나무를 한꺼번에 벌채할 수 있다.

오해되기 쉬운데, 일본도는 다루기가 어려워서, 초짜(素人)가 명도를 휘둘러도 금방 못쓰게 된다. 마찬가지로 달인이라고 해도 무딘 칼을 쓰면 금방 칼날의 이빨이 빠진다.

탁월한 실력을 가진 자가 명품을 다루어야 처음으로 일본도는 진가를 발휘한다. 그 정도로 일본도를 다루는 데는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것이다.


(※역자 코멘트: '천재만이 다룰 수 있는 최고의 검(=무기)'이라는 전형적인 일본인의 무기에 대한 허상적 클리셰로군요)


"흡!"


적당한 사이즈로 보인 대나무를, 아시미츠는 기합과 함께 뿌리 부분을 절단했다. 조금 지나 중력을 따라 쓰러진 대나무를 치운 후, 뿌리 쪽을 허리에 찬 나타로 십자로 쪼갰다.

이것은 절단면에 물이 고여서 모기가 생기는 것을 막는 것과 동시에 빨리 썩게 하기 위한 조치였다.


"이 정도면 되겠지. 경트럭이라도 있으면 한번에 옮길 수 있는데, 그건 너무 많은 걸 바라는 거겠지"


아시미츠는 지금과 마찬가지로, 일본도로 대나무를 벌채했던 때를 떠올렸다. 당시에는 시즈코의 시대였기 때문에, 칼로 하는 벌채는 이래저래 수고가 들어갔지만, 벌채 후의 운반은 대단히 편했다.

적당한 사이즈로 잘라서 경트럭에 싣고, 짐칸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밧줄로 묶으면 고생없이 운반할 수 있었다.


(광차(トロッコ) 같은 게 있다면…… 아니, 관두자. 운반되는 모습이 대단히 우스꽝스럽겠군)


대나무와 함께 자신이 광차로 운반되는 모습을 상상한 아시미츠였으나, 즉시 그것을 머리 속에서 털어냈다. 바이오 코크스용과는 다른 용도로 필요한 청죽(青竹)을 짊어진 아시미츠는 한 발자국 앞으로 내딛었다.

그러나 그 발은 즉시 멎었다. 그와 동시에 어딘가로부터 화살이 날아와 아시미츠의 바로 옆의 땅바닥에 꽂혔다.

바로 주위를 둘러보았으나, 사수(射手)를 찾을 수는 없었다. 한숨과 함께 땅바닥에 꽂힌 화살을 뽑았다.

화살의 중앙 부근에 종이가 묶여 있었다. 소위 말하는 화살편지(矢文)라는 것이었다. 편지를 한번 본 후, 아시미츠는 대나무를 짊어지고 신사로 돌아갔다.


"어라, 시간이 꽤 걸리셨는데 무슨 일이 있으셨나요"


신사에 돌아가자 아저씨즈(s) 중 한 명인 미츠오(みつお)가 생선을 해체하며 말을 걸어왔다. 다른 한 명인 고로(五郎)는 필사적으로 불의 세기를 조정하고 있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 츠루히메(鶴姫)와 시녀인 시바(柴)가 있었다.


"적당한 청죽을 찾다보니 시간이 걸렸다. 이쪽도 준비를 시작하지"


"잘 부탁합니다"


미츠오의 말에 아시미츠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운반해온 청죽에 가지치기(대나무 가지를 잘라내는 행위)를 한 후, 적당한 길이로 잘랐다. 다음으로 대나무 마디를 1번 밑으로 전부 뚫었다.

여기까지가 아시미츠의 작업이었다. 필요한 처리를 마친 아시미츠는, 그 걸음으로 고로가 조정하고 있는 모닥불에 다가가더니, 아까 날아온 화살편지를 던져넣었다.

순식간에 편지째로 화살에 불이 붙었지만, 아시미츠는 별로 신경쓰지 않고 다시 미츠오가 있는 곳으로 갔다.

다가와서 갑자기 화살을 던져넣은 것에 고개를 갸웃한 고로였으나, 아시미츠가 기괴한 행동을 하는 건 항상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불을 조정하는 작업에 집중했다.


"생선을 망지(網脂, ※역주: 소나 돼지의 내장 주변에 붙어있는 그물 모양의 지방. 한글로는 적당한 단어가 검색되지 않았음)로 감싸 대나무에 넣고, 그 후에는 대나무를 굽기만 하면 민물고기의 청죽구이(青竹焼き)가 만들어집니다"


"다음에는 청죽으로 지은 밥이군. 그 사이에 돼지국(豚汁)이 만들어지면 완벽하다"


"돼지가 아니라 멧돼지입니다만"


"어-이, 아저씨랑 아시미츠 씨. 불 준비가 다 됐어-"


"아저씨가 아니라 미츠오입니다"


항상 하는 말을 주고받으며 세 사람은 요리를 계속했다. 기본적으로 밑준비를 한 후에 대나무째로 굽는 요리가 많았기에, 대나무를 조리용으로 가공하는데 많은 시간이 들었다.


"이제 남은 건 굽는 것 뿐이다. 미츠오는 부인을 돌봐주기라도 해라"


준비가 끝나고 대나무를 굽기 시작했을 무렵, 아시미츠는 미츠오에게 말했다. 고로도 같은 의견인지, 휘파람을 불며 미츠오를 힐끗 보았다.


"뭡니까, 기분나쁘게요. 또 뭔가 꾸미고 있는 건 아니겠죠?"


"호~, 끝까지 시치미를 뗄 셈이냐. 그래서…… 부인은 몇개월째냐"


아시미츠의 지적에 미츠오의 표정이 굳었다. 당황해서 고로 쪽을 쳐다보자, 그는 미츠오의 표정을 보고 히죽거리며 웃고 있었다.

모두 알려졌다는 것을 이해한 미츠오는, 몸을 작게 움츠리고 머뭇거리며 물었다.


"……언제 눈치채셨나요?"


"처음부터다. 네놈의 태도는 뻔하지. 평소와 달리 묘하게 부인을 신경쓰고 있으면 누구든 눈치채지. 하여간, 뭐~가 어린애니까, 냐. 할 건 빠짐없이 다 했구만"


"아니, 저도 말이죠. 아무래도 나이 차이가…… 라고 생각했습니다만 그, 이런저런 사정이 있어서, 말이죠"


수치심이 들었는지, 미츠오는 얼굴을 손으로 감싸고 몸을 흔들었다. 아시미츠는 미츠오의 어깨를 가볍게 치고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솔직해져라, 미츠오"


"아니 잠깐 기다려 주세요. 아시미츠 씨라면 아시겠죠. (이 시대의 사람들은) 아이를 낳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걸 말입니다"


시대 운운하면 고로가 수상쩍게 생각하므로, 그 부분만 목소리를 작게 하며 미츠오는 반론했다. 그러나, 아시미츠는 말하지 않아도 된다는 듯 어깨를 움츠렸다.


"창피해할 필요는 없다. 남자는 다들, 젊은 여자를 좋아하니까"


"그 말투는, 제가 지조(節操)없는 남자라는 걸로 들리잖습니까"


"아니냐?"


"전력으로 부정하겠습니다. 아니, 딱히 츠루히메 씨가 싫은 건 아니거든요?

매사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멋지고, 공주님(姫君)이면서도 오만한 구석도 없고, 정말 멋진 옛 야마토 나데시코(大和撫子)라고 할까요. 축산은 지저분하고 냄새나고 중노동인데, 싫은 표정 없이 도와주고…… 아니 뭡니까"


필사적으로 변명하고 있다고 생각하던 미츠오였으나, 아시미츠와 고로는 배가 다 부르다는 듯한 태도였다. 고로의 경우 이마에 손을 대고 보라는 듯 대놓고 한숨을 쉬었다.


"들으셨습니까 고로 씨. 이게 전설의 '미츠오의 자랑질(惚気)'이지요"


"알고 있답니다 아시미츠 씨. 분명히 오다 나으리께서 딸을 측실로 받아달라고 했을 때 아저씨가 성대하게 자랑질을 해서 없었던 일이 된 사건 말이군요"


"그렇지요 고로 씨. 오다 나으리를 앞에 두고 반 각(刻) 가까이 자랑질을 한 그겁니다. 정말 뜨겁지 뭐에요"


"그러네요 아시미츠 씨. 저는 벌써 더위 떄문에 땀으로 범벅이에요"


아주머니들이 우물가에서 수다를 떠는 것(井戸端会議)처럼 아시미츠와 고로는 땅바닥에 쭈그려앉아 소근소근 이야기했다. 미츠오는 머리를 감싸쥐고 눈 앞의 두 사람을 어떻게 할지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게 되었으니 미츠오, 너는 부인을 아껴주고 와라"


"맞아, 아저씨. 이대로는 대나무가 아저씨의 자랑질에 타버리겠어"


하지만 두 사람에게 무슨 말을 해도 쇠귀에 경읽기이고, 들을 생각이 없다는 것을 이해했다. 성대하게 한숨을 쉰 후, 아시미츠와 고로에게 "요리를 부탁합니다"라고 중얼거리고 츠루히메가 있는 곳으로 발을 옮겼다.


"요리는 이제 끝난 건가요, 미츠오 님"


옅게 미소지으며 츠로이메는 미츠오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아까까지 앉아있던 장소에서 비켜서 거기에 미츠오가 앉게 하려고 생각한 츠루히메였으나, 그녀가 몸을 일으키려고 할 때 미츠오는 어깨에 손을 얹어서 멈추게 했다.


"안 됩니다, 좀 더 몸을 아껴 주세요. 저는 괜찮습니다"


츠루히메가 뭐라고 말하기 전에 미츠오는 그녀의 옆에 앉았다. 아까까지 불가에 있었기에 겨울바람의 추위에 뼈가 조금 시렸다.

하지만 미츠오는 결코 표정에 드러내지 않고, 츠루히메의 어깨에 캐시미어(cashmere) 숄(stole)을 걸쳐주었다. 정성껏 키운 캐시미어 산양으로부터 얻은 털을, 시즈코의 기술자 마을에 가져가서 짠 명품이다.


(정확히는 캐시미어는 아니지만, 귀찮으니 캐시미어라고 해두죠. 하지만, 시즈코 씨는 굉장하네요. 그만한 사람들을 종이 한 장으로 움직일 수 있으니 말입니다)


미츠오 개인이 털을 가져가도 틀림없이 문전박대당할 것이 뻔하다. 사실, 시즈코로부터 받은 편지를 보여주기 전에는 쌀쌀맞은 반응을 보였다.

캐시미어 산양의 털에서 실을 만들고, 그것들을 지정한 색으로 염색한다. 세부적인 면에서 차이는 있으나, 비단(絹)이나 목면(木綿)과 마찬가지로 손으로 짜면 원하는 제품은 완성된다.

말로 하는 건 쉽지만, 그 차이를 정확히 구별해야 하기 때문에, 막대한 노력을 필요로 한다. 장인들의 입장에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수상한 사람이 가져온 것 따위 얽히고 싶지 않은 것이 본심이었다.


(하지만, 시즈코 씨의 편지를 보여주자 태도가 확 바뀌었죠. 그건 굉장한 태도변화였습니다)


"왜 그러시나요, 미츠오 님?"


생각에 잠겨있는 미츠오를 츠루히메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상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아니, 별 거 아닙니다. 나는 행복한 사람이구나, 라고 생각한 것 뿐입니다.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친우(親友)가 두 명이나 있고, 이렇게 사랑스러운 부인이 곁에 있으니까요"


말하면서 츠루히메의 어깨를 감싸안고 미츠오는 그녀를 자신 쪽으로 끌어당겼다. 몇 년 동안 함께 지내며 알게 된 것인데, 츠루히메는 공주님으로 대우받기보다 한 개인으로서 대우받는 것을 선호했다.

그것은 전국시대, 여성은 정치의 도구나 약탈품이라는 취급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츠루히메는 갓난아기 때, 몸이 약했기에 친족에게 함부로 다루어졌다.

그 때의 정신적 트라우마가, 츠루히메에게 입장이 아니라 그녀 자신에게 가치를 인정해주기를 바라는 심리가 생겨났다.


"괜찮습니다. 소첩은 어디로도 가지 않습니다. 미츠오 님을 남기고 죽지도 않습니다. 돌을 씹어먹더라도 살아남아 보이겠습니다"


미츠오의 마음 속의 말을 헤아린 츠루히메는, 미츠오의 손에 자신의 손을 덮었다. 순간 놀란 미츠오였으나 즉시 미소를 떠올리면서 어깨를 안은 팔에 약간 힘을 주었다.


"죄송합니다. 당신에게 그녀를 겹치는 듯한 말을 해버려서. 이래서는 언제까지고 몹쓸 남편이군요"


"그렇지 않습니다. 미츠오 님은 소첩에겐 과분할 정도의 남편이십니다"


츠루히메는 미츠오의 어깨에 머리를 얹었다. 표정은 정말로 행복해 보였으며 한 점의 흐림도 느껴지지 않았다. 미츠오는 어깨를 감싸안았던 팔을 풀더니 츠루히메의 머리에 손을 얹고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설탕을 뱉을 정도로 달콤하구만"


"보고 있는 이쪽이 다 부끄럽네요"


"놀리지 마세요. 모처럼의 분위기를 다 잡쳤잖습니까"


아시미츠와 고로의 놀림에 미츠오는 한숨을 섞어 말했다.




혼간지(本願寺)의 요청에 응한 카이(甲斐) 국(国)의 타케다 신겐(武田信玄)은 이 무렵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에는 오다 가문을 뭉개버릴 계획이 서 있었으며, 그의 생각대로 각국이 움직이고 있었다.

모두 자신의 뜻대로 진행되고 있는 정세 속에서, 단 하나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는 존재가 있었다.

그의 생각에서 벗어난 인물, 그것은 시즈코였다.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는다기보다, 이쪽을 하늘에서 내려다보며 앞서가고 있는 듯 느껴졌다. 애초에 같은 무대에 서 있지 않고 마음대로 농락당하고 있는 느낌마저 들었다.


(고노에(近衛) 가문의 딸은 동향을 읽을 수 없군. 어린 계집에 한 명이 무엇을 할 수 있겠냐고 하면 그 뿐이지만, 뭔가가 걸린다)


겨우 여자아이 한 명에게 자신이 그리는 악보(譜面)가 뒤집힐 거라 생각되지는 않았으나, 오랜 세월 동안 전장에서 길러진 감과 경험이 시즈코에게 주의하라고 경종을 울렸다.

따라서 안심하기 위해서 정보를 모으고 있으나, 이게 생각처럼 모이질 않았다. 표면적(外枠)인 정보는 모여도 중요한 부분의 정보가 구멍이 뻥 뚫린 듯 빠져 있었다.

중요한 직책을 맡거나 비장의 기술을 독점하고 있는 건가 싶더니, 기술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후에는 노부나가에 아까운 기색도 없이 넘겼다.

그야말로 오리무중(五里霧中)이었으며,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 신겐은 짜증이 나고 있었다.


시점을 바꿔보자고 생각하여, 신겐은 시즈코가 아닌 주위의 무장들로부터 정보를 얻으려고 햇다. 그러나, 그것도 잘 되지 않았다.

먼저 케이지는 가신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행동만 눈에 띄었다. 아무 연락도 없이 며칠 집을 비웠나 싶더니, 돌아와서도 시종 먹고 마시기만 할 뿐이었다.

신겐을 포함한 타케다 가문 가신들도 믿을 수 없었던 것은, 시즈코가 노부나가에게 불려가 성으로 가고 있을 때, 케이지는 정을 통한 여자와 항구 마을을 산책하고 있었다는 정보였다.

호위대(馬廻衆)이면서 전혀 그 책무를 수행하지 않고, 경호를 받아야 할 시즈코 자신이 그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체 어떻게 되어먹은 주종관계냐면서 신겐 이하 타케다 가문 가신들이 머리를 감싸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 밖의 인물들도 접촉해 보았으나, 사이조는 시즈코에게서 거의 떨어지지 않는데다, 나가요시와 마찬가지로 기본적으로 회유에 응하지 않았다. 자신에게 유리한 이야기와 입장이 난처해질 이야기 어느 쪽도 마찬가지로 들으려 하지 않았다.

나가요시에 이르러서는 역린(逆鱗)이 어디인지 알 수 없어, 그때까지 웃고 있다가 돌연 표변(豹変)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상대를 죽였다.

그 두 사람보다 더 이야기를 듣지 않는 것이 아시미츠였다. 왜냐하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자신의 내면에 파고들려는 자는 예외없이 죽였다.


(이색적인 자들만 모인 무장들을 제어할 수 있는 이유를 모르겠다. 그만큼 자기 주장이 강한 자들을, 어떤 수법으로 부리고 있는 것이냐)


시즈코에게는 부하들에게 포상으로 나누어줄 수 있는 봉토(知行地)가 없다.

또, 노부나가로부터도 봉토가 주어지는 기색도 없었다. 그렇기에, 전국시대 초기(初期)의 사고방식이 강한 타케다 가문으로서는 시즈코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시즈코를 이해하려면, 노부나가의 행동을 이해해야 한다.

오다 가문은 다른 가문과 달리 가신들에게 주는 것은 봉토가 아니라 지위와 금전(金銭)이다. 소위 말하는 화폐경제를 권장하고, 고용도 금전 거래로 하고 있었다. 그것을 가장 많이 실천하고 있는 것이 시즈코였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주위가 따라오지 않는다. 물건을 생산하는 봉토보다, 생산물을 살 수 있는 금전을 받는 쪽이 '이득이다'라고 생각하게 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토지를 개발하여, 다양한 산업을 일으키고 발전시켜, 시장에 물건이 넘치는 상태를 만든다. 그렇게 얻어진 돈을 일단 모아서, 가신들에게 뿌려 호화로운 생활을 할 수 있게 한다.

가신들은 받은 돈으로 물품을 구입하고 생활하며 사치도 즐긴다.

그러면 자연을 상대로 토지를 경작하며 운에 좌우되는 수확을 기다리기보다, 안정적으로 지급되는 임금(賃金)을 받는 쪽이 마음이 편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고정관념을 버리고 새로운 눈으로 보면 이해할 수도 있겠지만, 할아버지 대부터 집안 소동이나 가신들끼리의 다툼이 많았던 신겐에게는 시즈코의 속셈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좋다. 전력으로 오다에 대해 조사해라"


지금 이상으로 정보 수집이 필요하다고 느낀 신겐은, 가신들에게 호령을 내렸다.




"아하핫, 꽤나 유쾌한 상황이 되었구나"


노키자루(軒猿)로부터 돌라온 시즈코에 대한 보고를 듣고, 켄신(謙信)은 호쾌하게 웃었다. 간자들의 정보를 듣고 얼굴을 찡그렸던 신겐과는 정반대의 반응이었다.


"웃을 일이 아니옵니다, 영주님(お実城様). 오다는 착착 적을 없애가고 있습니다"


카게츠나(景綱)가 헛기침을 하며 쓴소리를 했다. 그가 머리아파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한때는 존망의 위기에 섰던 노부나가였으나, 현재는 거꾸로 포위망에 참가했던 영주(国人)들을 쳐부수기 시작했다.

롯카쿠(六角) 씨는 멸망, 아자이(浅井) 씨는 대부분의 지성(支城)이 함락되었고, 아사쿠라(朝倉) 씨는 카네가사키 성(金ヶ崎城)까지 함락된 상태다. 엔랴쿠지(延暦寺)는 사카모토(坂本)에 있는 미츠히데(光秀)가 눈을 번득이고 있어, 재기(再興)할 기색조차 없었다.

혼간지는 이시야마(石山) 혼간지까지는 함락되지 않았으나, 잇코잇키슈(一向一揆衆)가 몇 번인가 오다 군을 공격했지만 지나치게 산발적이라 효과는 별로 없었다.


"어쩔 수 없지 않느냐. 그렇게 반(反) 오다를 외쳐놓고는 아직까지도 정리가 되지 않았으니 말이다. 이걸 어떻게 웃지 않겠느냐"


"……그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손만 빨고 있어서는 이야기가 되지 않겠지요"


카게츠나의 말에 켄신은 씩 웃었다. 그도 이대로 노부나가가 포위망을 깨부술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카이의 괴물(巨獣), 타케다가 움직이면 오다 군은 한 주먹 거리도 되지 않겠지요. 그들의 강함은, 칼날을 맞대어본 우리들이 잘 알고 있으니까요"


타케다와 우에스기(上杉), 그리고 호죠(北条)는 때로는 동맹을 맺고, 때로는 전쟁을 벌이는 관계다. 타케다나 호죠의 강함은 뼈저리게 알고 있다.

타케다의 전쟁을 모르는 오다 군은 10분의 1에 불과한 타케다 군에게 박살날 것이 눈에 선했다.


"과연 그럴까?"


하지만, 켄신은 카게츠나의 생각에 의문을 품었다. 반대로 말하면 너무 잘 알고 있기에 놓치고 있는 맹점이 있는게 아닐까, 라고 그는 최근들어 생각하게 되었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타케다 군과의 전쟁을 너무나 가까이 느끼고 있었기에, 변화나 기회를 놓치고 있을 가능성이 있었다.


"우리들은 타케다와 몇 번이나 싸웠다. 그렇기에야말로 잘못 생각하고 있다고 생각될 때가 있다. 어쩌면, 오다 군은 우리들은 생각지도 못한 맹점을 찔러서 타케다 군을 격파할지도 모른다"


"설마, 그럴 리가요"


말하면서도 카게츠나는 완전히 부정하지 못했다. 노부나가는 악운(悪運)이라고도 할 수 있는 강운(強運)으로, 본래는 멸망당했어야 할 오다 포위망을 무너뜨리고, 많은 피해를 입으면서도 살아남았다.

이번에도 설마, 라고 생각되는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카게츠나는 생각해버렸다.


"물론, 대단히 쉽게 패하는 경우도 있겠지. 하지만, 오다 님은 악운을 가진 분이다. 거기에 시즈코 님의 존재도 있지. 그녀가 가만히 있을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과연 그만한 힘이 있을까요"


"있을지도 모르고,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최근의 그녀는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고 노키자루가 말하고 있다. 만약, 그녀가 진심으로 타케다와의 싸움을 생각하고 있다면, 우리들은 그 결말을 예상할 수 없게 되지"


매사에 비할 데 없는 성과를 보여온 시즈코가, 유독 군사(軍事)에 관련해서만은 손대지 않는 것에 켄신은 위화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만한 영지(叡智)의 소유주가 군사에 대해서는 어둡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고 켄신은 생각했다.


"어느 쪽이든, 오다가 크게 움직일 떄, 그 기점(起点)은 시즈코 님이 되겠지. 타케다도 호죠도 시즈코 님의 존재는 이미 알고 있겠지만, 이후에는 그녀의 정보를 얼마나 모을 수 있는지가 승부의 열쇠가 될 것이다"


"옛, 노키자루에게는 사소한 것이라도 보고를 올리도록 명하겠습니다"


"'그들'을 쓸 수 있다면 금방 접촉할 수는 있겠지만, 억지로 밀어붙이다간 기회를 놓치지"


켄신은 시즈코가 쿄(京)에 있을 때, 그녀에게 접근하게 시킨 2인조를 떠올렸다. 기후(岐阜)나 오와리(尾張)에서 우연을 가장해 만나게 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주위에 쓸데없는 경계심을 품게 할 위험도 있다.


"그게…… 저……"


켄신의 말을 들은 카게츠나가, 보기드물게 우물거리는 태도를 취했다.


"왜 그러느냐, '그들'에게 뭔가 문제라도 생겼느냐?"


"……저, 말입니다. 그 녀석이 '시즈코 님을 구경하고 오겠다'고 말하고, 오와리로 가 버렸습니다. 며칠 전에"


"―――――――풉, 푸하하핫!

그거 참 유쾌한 이야기로다. 그 녀석은 시즈코 님을 보고 뭔가 심금을 울리는 것을 느꼈던 것이겠지. 내버려 두어라. 놔두면 알아서 불쑥 돌아오겠지"


처음에는 눈을 동그랗게 뜬 켄신이었으나, 곧 표정을 풀고 크게 웃었다. 그런 켄신을 보고 카게츠나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시식회는 대성황으로 끝났다. 도중에 시바타(柴田)와 히데요시(秀吉)의 싸움을 중재하기 위해 술을 사용한 후, 즉석의 연회(宴会)가 되어버린 점을 모른척 한다면, 말이지만.


12월도 후반에 접어들어, 큰 싸움도 없었기에 정월(正月) 준비에 들어간 시즈코에게 큐지로(久治郎)가 찾아왔다. 뭔가 주문했었던가, 라고 고개를 갸웃하는 시즈코에게 큐지로는 어떤 것을 보여주었다.


"잊으셨습니까, 시즈코 님. 꽤나 예전이지만, 남만인(南蛮人)에게 이것을 받도록 명하시지 않으셨습니까"


항상 그렇듯 속에 다른 꿍꿍이가 있는 듯 히죽히죽 웃는 얼굴로 큐지로가 보인 것, 그것은 새장이었다. 새장 뿐만이 아니라, 짐승을 넣는 소형의 우리(檻) 몇 개가 발 밑에 있었다.

그제서야 시즈코는 큐지로가 무엇을 가져왔는지에 생각이 미쳤다. 잊고 있었던 것을 사과한 후 그를 응접실로 안내하려 했다.


"아뇨아뇨, 바쁘신 것 같으니, 대금만 받으면 저는 실례하겠습니다"


하지만 큐지로는 이마를 탁탁 치며 사양했다. 정월을 앞두고 있으니 장사 이야기가 많은 걸까, 라고 생각한 시즈코는 깊게 생각하지 않고 그의 말을 따라 아야에게 대금을 가져오도록 명했다.


"그럼, 저는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뭔가 필요하시면, 꼭 저를 불러 주십쇼"


약속한 금액에 조금 더해 건네주자, 그는 아주 기분좋게 떠나갔다. 그와 교차하듯 비트만들이 시즈코에게 달려왔다.

시즈코가 있는 곳에 오면 평소에는 어리광을 부리지만, 이번에는 즉시 새로운 동물들의 냄새를 느꼈는지 우리에 대해 낮은 울음소리를 내며 경계하고 있었다.


"워워, 괜찮아. 그리고 이건 중요한 동물이니까 다치게 하면 안 돼"


비트만들을 쭉 쓰다듬어준 후, 시즈코는 아야(彩)와 쇼우(蕭)와 함께 셋이서 우리를 집 안으로 운반했다. 처음 보는 동물들에 두 사람은 질겁했지만, 실은 시즈코도 직접 보는 건 처음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시즈코가 유럽 상인으로부터 구입한 동물은, 시즈코의 시대에는 멸종해버린 동물들이기 때문이다.


먼저 남획(乱獲)에 의해 19세기에 멸종한 큰바다쇠오리(オオウミガラス)였다. 외모가 펭귄을 닮았지만 대형의 바다새로 분류된다.

전장이 80cm 이상으로, 바다쇠오리(ウミスズメ) 종류 중에서 가장 큰 몸을 가진다. 남극에 있는 펭귄과 닮았는데, 본래는 큰바다쇠오리가 펭귄이라고 불렸었다.

하지만 멸종해버린 지금, 남극 펭귄이 펭귄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인간에 대해 경계심이 별로 없고, 오히려 스스로 인간에게 다가올 정도로 호기심이 왕성하다. 먹이를 주려고 우리에서 내보내자, 경계심 없이 시즈코에게 다가왔다.

펭귄과 꼭 닮아서 귀엽다고 생각했으나, 환경의 변화가 스트레스를 주는 것을 고려하여 지나치게 귀여워히지 않는 정도로 억제하고 먹이를 주었다.


큰바다쇠오리의 체크 겸 먹이주기를 마치자, 다음에는 마찬가지로 남획에 의해 19세기에 멸종한 바다밍크(ウミベミンク)였다.

큰바다쇠오리와 다른 점은, 큰바다쇠오리는 식용으로 포획되었으나, 바다밍크는 모피(毛皮)를 목적으로 포획되었다.

아메리카 원주민들도 모피와 고기를 노리고 바다밍크 사냥을 했으나, 유럽으로부터의 입식자들이 더욱 열심히 모피의 수요를 채우려고 남획을 거듭했다.


이쪽은 경계심이 강하여 적의를 노골적으로 드러냈으나, 바다밍크가 특별히 경계심이 강한 것이 아니라 밍크 종류는 전반적으로 그런 경향이 있다.

모습을 보니 배고플 거라 짐작한 시즈코는, 남아있던 생선을 우리에 던져넣었다. 그 순간, 바다밍크는 생선으로 쇄도하여 순식간에 먹어치웠다.

배가 불러서 만족했는지, 그대로 드러누워 잠을 자기 시작했다. 대답한 건지 아니면 멍청한 건지 고민되는 부분이었으나, 얌전해졌으니 됐다고 생각하고 그들도 큰바다쇠오리와 마찬가지로 사육지(飼育地)로 운반했다.


마지막이 멸종 동물 중 가장 유명한 새인 나그네비둘기(リョコウバト)다. 조류 중에서도 가장 개체수가 많아, 일설에는 50억에서 60억 마리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나그네비둘기도 앞서의 두 종과 마찬가지로, 유럽이나 미국인에 의한 남획이 원인으로 20세기 초반에 멸종했다.

나그네비둘기의 고기는 대단히 맛있다고 하여, 도시에서도 비싼 가격으로 거래되었다. 그에 더해 미국은 화약의 원료인 초석(硝石), 유황(硫黄), 목탄(木炭)을 쉽게 입수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

그 때문에, 그 그림자로 대낮을 어둡게 할 정도의 무리를 짓는 그들을 향해 총을 쏘면 나그네비둘기와 납탄이 같이 떨어져 내렸다.

그 후에는 탄을 재활용하여 계속 쏘면, 화약을 소비하는 것만으로 나그네비둘기를 사냥할 수 있었다.


막대한 숫자를 자랑하던 나그네비둘기였으나, 번식력은 약하여 얼마 안 되는 개체만으로는 번식하지 못하고, 또 숫자가 많았던 점 때문에 보호하자는 목소리가 나오기 어려워서, 그러는 동안 새끼(ヒナ)까지 계속 남획되었다.

19세기 말, 그 때까지 하늘을 뒤덮을 정도로 있었던 나그네비둘기의 모습이 사라지자 그제서야 보호에 나섰으나, 이미 기울어진 저울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

거기에 숫자가 줄어든 것 때문에 나그네비둘기의 가치가 올라가고, 그에 따라 밀렵자들이 끊이지 않아, 20세기 초에 야생종(野生種)이 사냥꾼의 총에 맞아 떨어지는 것으로 야생종의 나그네비둘기가 멸종되었다.

동물원에서 약간이나마 사육되었던 나그네비둘기였으나, 야생종이 멸종된 지 수십년 후, 마지막 개체가 노쇠하여 죽게 되어 나그네비둘기라는 종은 멸종되었다.


"일본도 그렇지만, 앞뒤 생각 안 하고 사냥하는 건 어떻게 안 되나"


개체수가 많은 것이 꼭 좋지는 않다. 한 마리가 줄어들어봤자, 라는 심리가 작용하여 쉽게 사냥당하게 된다.

예전에 일본에는 하늘을 뒤덮을 정도로 따오기(トキ)가 있었으며, 에도(江戸) 시대에는 따오기가 너무 많아서 논밭이 황폐화되어 버렸기에, 백성들이 윗사람들에게 따오기의 수렵 허가를 탄원했던 기록도 있다.

하지만 메이지(明治) 시대에 들어선 후 겨우 100년도 되지 않아 멸종해 버렸다.

깃털 목적의 사냥, 환경의 급격한 변화, 농약에 의한 수은중독 등, 다양한 요인이 겹쳐 21세기 초에 일본 고유종인 따오기는 멸종되었다. 현재 남아있는 따오기는 중국의 따오기 뿐이다.


"일본의 도토리로도 괜찮으……려나?"


잘게 부순 도토리 열매를 줘봤는데, 나그네비둘기는 딱히 신경쓰지 않고 먹이에 달려들었다.


나그네비둘기의 먹이는 나무열매나 씨앗으로, 먹이가 풍부한 지역을 찾아 이동했다. 도토리 외에도 초목(草木)의 씨앗이나 열매, 작은 곤충에 지렁이 등도 먹는다.

아메리카 대륙의 기후는 다종다양했기에, 먹이가 풍부한 지역을 따라 이동하는 것이 가능했다.


"……일단은 생태 관찰이라도 할까"


아주 약간 나그네비둘기의 고기가 궁금해진 시즈코였으나, 큰 돈을 내고 구입한 나그네비둘기를 쓸데없이 줄이고 싶지 않았기에 자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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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