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에이로쿠(永禄) 9년, 오와리(尾張) 국의 농업 개혁



013 1566년 4월 상순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오고, 그리고 새해가 밝았다. 그리고 계절은 돌고 돌아 4월 상순, 시즈코가 이 시대로 온 지 거의 1년이 지났다.

여전히 원래의 시대로 돌아갈 방법은 알 수 없었다. 애초에 어떤 원리나 방법으로 타임 슬립했는지, 그녀 자신조차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몇 가지 현대의 기술품을 가지고 왔지만, 현재 그녀가 그걸 쓰는 일은 없었다.

편리하지만 대용품이 없는 상태에서 망가지면 답이 없다.


지식을 얻기 위해 스마트폰을 활용하고, 태양광 충전기가 달린 핸들 발전식 LED 라이트를 써서 충전한다.

평소 쓰는 것은 그 정도로, 달리 있는 도구는 기본적으로 대용품을 만든 후에 활용하고 있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결국 시즈코에게만 부담이 갈 뿐으로, 마을사람들은 아무 작업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핸들 발전으로 스마트폰을 충전하면서 시즈코는 지금까지의 일을 떠올렸다.


가을 무렵에 노부나가에게 수확량 증가를 선언한 시즈코. 그걸 받아들였는지, 노부나가는 엄청난 말을 했다.

그것은 50명의 농민을 보내는 대신, 25가마니의 쌀을 수확하라는 명령이다.

그리고 모자라는 분량은 한 가마니당 두 명을 죽인다는 협박섞인 말까지 했다.


그 주저없음을 보고 시즈코는 역시 전국시대라고 강하게 인식하게 되었다.

현대의 감각이나 논리 따위 길바닥에 굴러다니는 돌멩이 수준이라고 이해했다.


겨울에 들어서고 조금 지났을 무렵, 노부나가는 약속한 농민 50명을 시즈코의 마을로 보냈다.

거기에 가족이 붙어 있었기에 상당한 대인원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한 군대에서 끌려온 것이 아니라, 시즈코가 오기 전의 이 마을처럼 수확이 제대로 되지 않은 지역에서 끌려왔다.

정든 땅을 억지로 버리게 되고 이 땅으로 이주당했으니 그 스트레스는 상당한 것이리라.

하지만 그 사정을 참작해 줄 여유 따윈 없었다.


촌장이 시즈코라는 걸 알고 놀라는 입식자들이었지만, 반발하는 목소리 따윈 나오지 않았다.

아마도 반발하던 순종하던 그들이 갈 길은 하나 밖에 없다고 이해하고 있는 것이리라.

즉, 시즈코를 따라서 약속한 25가마니를 넘는 수확을 달성하는 것 이외에 살아남을 방법은 없는 것이다, 라고.


새해가 밝은 후 본격적인 작업에 착수했다. 라고는 해도, 처음에는 밭이나 논의 정비다.

1월 중순에 농작물용의 2ha, 사탕수수용의 1ha, 고구마용의 1ha, 논 8ha의 정비를 마쳤다.

이것은 사전에 시즈코가 마을사람들과 함께 준비했던 덕분이었다.


2월 하순, 못자리 준비에 착수할 필요가 있었지만, 당시에는 볍씨를 적당히 뿌리는 것이 상식이었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마을사람들은 못자리의 필요성을 이해하지 못하여, 결과적으로 그걸 가르치는 데 며칠을 소비했다.

모판을 심기 한 달 이상 전에 준비해야 흙이 최적의 상태가 되는 것이지만, 역시 농민들은 반신반의한다는 느낌이었다.


3월 하순, 볍씨에 대해 염수선(塩水選)을 했다. 역시 여기에서도 입식자들의 대부분은 괴이쩍다는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애초에 꽉 찬 볍씨를 고르는 것 자체가 전국시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비중 1.16의 소금물을 만들고, 떠오른 볍씨를 제거하는 작업은 단순했다.

하지만 이걸로 씨담그기에 필요한 볍씨가 모였기에, 합격한 볍씨를 강물을 담은 통에 넣어 가급적 수온이 오르지 않도록 그늘진 장소에 안치했다.

볍씨에 충분히 물을 흡수하게 하여 한번에 발아시키기 위해서라고 설명했지만, 역시 입식자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적산 온도의 조정, 이라고 말해도 모르겠지-)


하지만 이것만으로 끝이 아니다. 시즈코는 다른 작업도 해야 했다.

먼저 가을이 끝나기 전에 무환자 나무의 열매를 수확하여 비누가루를 만드는 작업이다.

물론, 이걸 필요로 하는 것은 당분간은 시즈코 뿐이었기에, 수확한 후에는 거의 그녀가 혼자서 작업했다.


다음으로 계란 산업을 하기 위해 닭을 늘릴 필요가 생겼다. 처음에는 닭끼리 교배시켜 유정란을 만들어 부화시키는 것을 반복했다.

하지만 닭은 해체하는 정도밖에 할 줄 모르는 시즈코였기에, 병아리가 추위로 죽거나 크게 자라지 못하거나 했다.

게다가 암, 수를 구별하는 데 1개월 정도 기다릴 필요가 있어, 그 때까지는 공통의 먹이를 준비할 필요가 있다.

현대에서도 병아리의 성별을 판별하는 기술은 국가 자격으로, 양계 분야에서 중요시되고 있다. 그 자격의 유용함을 뼈저리게 깨달은 시즈코였다.

물론, 시즈코는 그런 국가 자격을 갖는 기술자는 아니었기에, 몇 마리나 되는 병아리를 죽게 하거나 솎아내거나 하면서도 시행착오를 거듭하여 수를 불려 나갔다.

죽게 하거나 솎아낸 병아리나 영계에 가까운 닭은 모두 퇴비에 섞었다.

절대로 그냥 버리거나 하지 않는다.


다행히도 반년 정도로 수컷을 7마리, 암컷을 20마리까지 불려서 당분간 필요한 숫자를 갖출 수 있었다.

지금부터 유정란을 만드는 조와 무정란을 만드는 조로 나누어 사육한다.

유정란을 만드는 조는 수컷 한 마리 당 암컷 다섯 마리를 두 조, 무정란을 만드는 조는 암컷 10마리로 했다.


닭의 모이는 야채 부스러기나 생선 뼈나 조개껍질 등을 가루로 만든 것을 섞은 사료로 통일했다.

왜냐하면 산란은 어떤 종류의 닭이라도 2년이면 페이스가 떨어진다, 라는 얘기를 전에 들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2년 동안 먹이를 통일해두는 편이 편할 거라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물론, 갓 태어난 병아리 때는 부드러운 먹이를 주지만.


야채의 재배 방법도 마을사람들이 보기에는 기묘한 방법이었지만, 이쪽은 조금 이해를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태반의 공정은 마을사람들이 보기에는 영문모를 작업으로 의문시되는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퇴비를 잘 섞은 2ha 넓이의 경작지를, 한 변 50미터의 사이즈로 나누었다.

따라서 경작지가 8등분되어, 봄 야채와 가을 야채의 이어짓기와, 그 경작지들을 1년마다 순환시키는 돌려짓기를 할 환경이 완성되었다.

먼저 두 경작지를 한 쌍으로 간주하여, 각각 A-1, A-2, B-1, B-2, C-1, C-2, D-1, D-2라고 번호를 붙였다.

봄에는 A-1에 옥수수, A-2에 부추, B-1에 호박, B-2에 가지, C-1에 토마토, C-2에 무, D-1과 D-2에 양계장을 설치했다.

물론, 모두 전국시대의 재배방법은 아니고 시즈코가 알고 있는 현대의 재배방법으로지만.

가을에는 수확하고, 그 후에 가을 야채로서 A-1에 파, A-2에 양상추, B-1에 토란, B-2에 소송채(小松菜), C-1에 킨토키(金時) 당근 (※역주: 특정 품종명으로 보임), C-2에 순무, D-1과 D-2은 여전히 양계장을 계속하기로 했다.

분할해놓고 1년마다 토지를 순환시키므로, 그것들을 알기 쉽게 하기 위해 푯말을 준비했다.

봄이 올 때마다 이 푯말을 돌려박아, 지금 무엇을 재배하고 있는지 알기 쉽게 하여 순환 오류를 피할 수 있다.

푯말은 의외로 마을사람들에게도 호평이었다. 듣자 하니 '재배하고 있는 게 뭔지 알기 쉽다'고 했다.


예상외였던 것은 입식자 중에 양잠(養蚕)을 해봤던 사람이 몇 명 있었던 것이다.

당장 시즈코는 양잠을 하기 위한 환경을 갖추었다.

아무래도 마을 안에서는 할 수 없었기에 양잠 장소를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장소에 설치했다.

뽕나무 잎이 필요했는데, 다행히도 조금 먼 곳이긴 하지만 뽕나무가 조금 자생하고 있었다.

그래서 시즈코는 양잠장 부근의 나무를 전부 뽕나무로 교체하기로 했다.

현재로는 뽕밭, 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열매나 목재도 이용할 수 있다.

다행히 뽕나무는 성장이 빠르기 때문에, 몇 년만 지나면 뽕나무 열매와 누에의 먹이가 되는 잎을 얻을 수 있으리라.

육성도 자연에 맡긴다고 할지 그냥 방치할 뿐으로, 할 일은 매년 묘목을 심는 것 뿐이다.


또 하나 예상외의 일에 시즈코는 생각이 미쳤다.

집을 지을 때 남은 목재를 보고, 꿀을 따기 위한 벌통을 만들 수 없을까 생각했던 것이다.

서양꿀벌은 없지만, 일본꿀벌은 옛부터 일본에 있기에 그것으로 꿀을 채취하기로 했다.

시즈코의 할아버지 친구가 고안해낸 꿀을 따는 것을 중시한 형태의 벌통을 기억에서 끄집어내 만들어냈다.

한 단의 높이를 대략 120mm 정도로 하고, 그것들을 네 개 겹치는 것에 의해 수확물을 채취하기 쉽고, 또 여왕벌을 발견하기 쉬운 구조였다.

하지만 시즈코는 양봉가의 일을 책이나 견학으로는 알고 있어도, 자세한 부분까지는 알지 못했다.

애초에 여왕벌이 수중에 없었기에, 설치해도 벌이 벌집을 만들어 줄지 어떨지는 거의 운에 맡기는 것에 가까웠다. 즉, 놔두기만 하고 나머지는 운을 하늘에 맡길 뿐이었다.

설치 장소는 자생하는 유채꽃이 많이 피어 있는 장소로 했다. 합계 5군데에 설치하고, 그 뒤로는 정기적으로 보러 와서 벌통에 일본 꿀벌이 살게 되었는지 확인하는 정도다.

편한 반면, 벌꿀의 채취량이 불안정하다는 단점이 있다. 그렇다곤 해도 시즈코는 단지 생각난 김에 했을 뿐으로, 벌꿀을 대량으로 얻지 못해도 딱히 문제는 없었다.

그런 생각이었기에, 전국시대에 벌꿀이 어떻게 취급되었는지 완전히 잊고 있던 그녀였다.


사탕수수는 작년 여름에 모로서 다시 심은 것과, 봄부터 심었던 것을 전부 모로 사용하여 추가적인 양산 체제를 갖췄다.

마을사람들이 보기에는 뭘 심었는지 알 수 없었기에 역시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설탕은 이 시대에 꽤나 귀중한 조미료. 그렇다면 설탕을 대량으로 생산해서 그걸 영주님께 헌상하는 것으로 이 마을 사람들은 징병을 피할 수 있어. 그리고 소금 같은 조미료도 우선적으로 융통받을 수 있고)


고구마 쪽도 금년에는 처음부터 대량으로 모심기를 햇다. 하지만 고구마 다음에 밭을 놀려두는 것도 아까운 이야기였다.

그래서 시즈코는 가을부터 유채를 키우기로 했다. 유채로부터는 유채 기름을 얻을 수 있고, 월동하는 일본 꿀벌의 먹이로도 쓸 수 있으니 일석이조라고 생각했다.

본래는 채(菜), 즉 잎사귀 야체로서 이용되고 있었다.

고사기(古事記)에는 키비(吉備)의 푸성귀로서, 만엽집(万葉集)에서는 사노(佐野)의 줄기로 등장한다.

식물 기름을 얻을 목적으로 재배되기 시작한 것은 에도(江戸) 시대부터로, 주로 등잔불 기름의 원료로서 이용된 생활에 밀착된 기름이었다.


그리고 잊어서는 안 될 것이 콩(大豆)의 생산이었다.

된장, 간장의 원료이며, 기름의 원료이며, 생약이기도 하고, 그리고 식용이기도 한 만능의 존재다.

하지만 콩의 육성은 일단 어렵다고 알려져 있다.

특히 질소 비료가 대량으로 필요한데다, 다른 작물과 어울리지 못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전국시대에 질소 비료 따위 구할 수 있을 리도 없기에, 닭똥을 사용한 퇴비를 만들 수밖에 없다.

해충 대책도 생각해야 하기에 머리가 아픈 일 투성이였다.

그래서 시즈코가 생각한 것은 컴패니언 플랜츠(※역주: Companion Plants)라는 재배 방법이다.

이것은 공영(共栄) 작물이라고 불리는 농학, 원예학 상의 개념이다.

콩과 옥수수의 경우, 옥수수의 해충은 콩의 냄새를 싫어하고, 그리고 콩의 해충은 옥수수의 해충이 천적이라 먹혀 버린다.

그야말로 농약을 쓰지 않고 해충 대책을 세울 수 있는 우수한 기술이다.

다만 경험적인 부분이 대부분이라, 현대에서도 과학적으로 해명된 예는 적다.

시즈코는 이 기술을 도입하여 100a 중에 콩을 50a, 남은 50a에 옥수수를 심기로 했다.


마지막으로 매운 양파인데, 이것은 가을에 뿌리고 다음 해 여름에 수확하는 타입이었다.

그리고 아직 양산체제는 아니라서, 전부 씨앗을 얻기 위해 사용되었다.

식용으로서 재배하려면 내년까지 기다릴 필요가 있었다.

고대 이집트로부터 만성 피로나 근육 피로 등 피로에도 잘 듣는 식품으로서 사랑받아왔다.

매일 양파를 먹으면, 그것만으로도 간단히 지치지 않는 체력이 붙는 것이다.

또 비타민 B1의 흡수를 높일 수 있으므로, 콩이나 닭의 간과의 상성이 좋다.


하지만 시즈코가 진두지휘를 하는 것은 여기까지다.

백성들의 주식인 잡곡 등의 재배는 마을사람들의 판단에 맡기기로 했다.

대화하고, 귀를 기울이고, 승인하고, 맡겨주지 않으면 사람은 자라지 않는다, 라는 것이다.

따라서 시즈코는 하나에서 열까지 모든 것을 관리하지는 않는다.

어디까지나 선두에 서는 것은 목표량이 있으며 세금이기도 한 쌀 재배, 농지 개량, 구획 정리, 용수(用水)의 정비 등, 중요한 인프라 정비나 농업 정비 뿐이다.


할 일이 가득이라 매일 악전고투했지만, 나름대로 충실한 나날들이라고 시즈코는 생각하고 있었다.

가끔 모습을 드러내는 노부나가의 어려운 과제가 없다면, 말이지만.

하지만 그런 건 신경쓰지 않고 노부나가는 또다시 어려운 과제를 시즈코에게 떠넘겼다.




"으~음, 5개 설치했는데 3개 밖에 벌집이 안 생겼네"


벌통을 보며 시즈코는 중얼거렸다.

내부는 보기좋게 텅 비어, 여왕벌이 집을 지은 듯한 흔적은 없었다.


5개 정도 설치한 것 중에, 처음에는 4개에 벌집이 지어졌다.

하지만 도중에 한 마리의 여왕벌은 벌통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만들다 만 벌통을 버리고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다.

일본 꿀벌은 신경질적이기에, 다소의 환경 변화조차 싫어하여 벌집을 버린다.

인간에게는 알 수 없는 작은 변화를 알아챈 여왕벌이 벌집을 버린 것이리라.

시즈코는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고민해봤자 억울하기만 할 뿐이므로.


"할 수 없지. 아차, 슬슬 해가 지네. 어서 돌아가야지"


하늘을 올려다보자 이미 해가 저물고 있었다.

숲 속에서는 해가 지는 것이 빠르므로, 서두르지 않으면 컴컴해져서 아무 것도 안 보이게 된다.

마지막 벌통을 원래대로 돌려놓고, 시즈코는 마을로 돌아가는 길을 달렸다.


"비트만이 있으면 어두워도 돌아갈 수 있는데…… 지금 신부를 찾으러 나가 있으니"


늑대인 비트만은 발정기가 가까워졌을 무렵 신부를 찾기 위해 마을을 나갔다.

솔직히 돌아올지 어쩔지는 미묘했지만, 그래도 시즈코는 웃는 얼굴로 보내주었다.


"뭐 혹시 돌아오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지"


원래 야생동물이었으니까 그대로 어딘가로 가도 어쩔 수 없다.

그렇게 생각했을 때, 조금 앞쪽에서 부스럭부스럭하고 작은 소리가 들렸다.

반사적으로 작은 동물이 나올 거라고 생각한 그녀는, 그걸 피하기 위해 가볍게 점프했다.


"!?"


하지만 나온 것은 작은 동물도 대형의 동물도 아닌, 굵은 나무 막대기였다.

이미 점프하고 있던 시즈코는 자세를 바꿀 수 없었다.

그 나무 막대기에 발목을 맞고 공중에서 균형을 잃었다.

어깨부터 떨어져 몇 번인가 땅바닥을 구른 후, 등부터 나무 줄기에 격돌했다.


"커헉!"


충격으로 단번에 폐의 공기가 밀려나온 시즈코는, 산소 결핍으로 정신을 잃을 지경이었다.


"헤헤헤, 여자다"


"여자는 비싸게 팔리겠는데. 게다가 미인이야"


"이런 곳에 혼자라니…… 덮쳐달라고 말하는 거나 마찬가지지"


하지만 그 전에 들려온 천박한 음성이 시즈코의 의식을 억지로 깨웠다.

아픈 어깨를 손으로 붙잡고 그녀는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도적으로 보이는 남자가 다섯 명 있었다. 들고 있는 것은 창이나 칼, 농기구인 낫 등이었다.


(싸움터에서 도망친 아시가루(足軽)……?) (※역주: 시대에 따라 조금 다른데, 전국시대에는 용병이나 강제징병된 병사를 말한다. 여기서는 용병의 개념으로 쓰인 듯)


그렇게 생각했지만 방어구 등을 몸에 걸치지 않은 것을 보니, 전쟁에 말려든 농민들이라고 생각되었다.


"웃차, 소리내지 말라고"


시즈코가 뭔가 말하기 전에, 도적 한 명이 손에 들고 있던 창을 시즈코의 목젖에 들이댔다.

소란을 피우면 이대로 찌른다, 말로 하지 않아도 그런 뜻인 것을 알 수 있었다.


"헤헤, 한동안 궁했었으니, 실컷 즐긴 다음에 팔아치울까"


들고 있던 칼을 칼집에 넣고 도적 한 명이 히죽히죽 웃으며 시즈코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코가 막힐 듯한 냄새를 풍기는 도적이 시즈코의 옷을 벗기려고 손을 뻗은 순간.


바사삭 하고 수풀을 헤치는 소리와 함께, 그 남자의 모습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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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