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에이로쿠(永禄) 10년, 천하포무(天下布武)



024 1567년 1월 상순



1년의 계획은 새해 첫날에 세워야 한다(一年の計は元旦にあり)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전국시대의 정월(正月)은 중요한 이벤트이다.

그리고 정월에 나오는 떡(餅)은 뗄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있었다.

원래 떡은 신에게 바치는 신성한 음식으로서 경사나 축제에는 빠질 수 없는 것이다.

아무리 가난한 백성이라도, 정월에는 반드시 떡을 준비하는 것이 상식이었다.


시즈코도 당연하지만 정월의 준비를 하기 위해, 연말부터 이것저것 모으기에 여념이 없었다.

정월의 준비를 할 때 특히 중요한 아이템이 '카도마츠(門松, ※역주: 문 앞에 장식하는 소나무), 시메카자리(しめ飾り, ※역주: 문 앞에 장식으로 치는 금줄), 카가미모치(鏡餅, ※역주: 둥근 거울 같은 모양으로 빚은 떡)이다.

애초에 설날(元旦)은 '세덕신(歳徳神)'이라고 하는, 집집마다 신년의 행복을 전해주기 위해 높은 산에서 내려오는 신을 맞이하기 위한 날이기도 하다.

따라서 카도마츠는 신년에 세덕신이 내려올 때를 위한 표식이며, 또한 집에 맞아들이기 위한 그릇(依り代).

시메카자리는 세덕신을 맞이하기 위해 깨끗이 정화된 장소인 것을 나타내는 청정함, 신성함의 표시.

카가미모치는 집에 맞이하는 세덕신에 바치는 공물이며, 또한 그릇(거처)이라는 의미가 있다.

일반적으로 좋게 치는 것은 12월 28일까지로, 그 이후의 날은 피해야 한다고 한다.


그 이외에도 할 일은 있었다. 설날을 축하할 연회의 준비이다.

작년과 달리, 금년에는 니사쿠의 마을 사람들, 그리고 입식한 사람들도 있기 때문에 대연회에 가까웠다.

그런저런 이유로, 조금 정신없는 느낌으로 정월을 맞이했다.


설날.

이 날 만큼은 평소에는 추위로 잘 나오지 않는 마을 사람들도 해가 뜨기도 전에 일어났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은 광장에 모여, 모닥불을 피우며 일출을 기다렸다.

몇 시간 후, 해가 뜨는 것과 동시에 모두 합장하고 1년 동안 평화롭게 살 수 있도록 기원했다.


그것이 끝나면 다음에는 떡찧기이다.

절구와 절굿공이를 준비하고, 찹쌀을 밑준비하여 찐 후, 쌀알의 형태가 사라질 때까지 찧는다.

아무래도 사람 수가 사람 수다보니, 여러 개의 절구와 절굿공이가 필요했다.


떡찧기가 시작되고 조금 지났을 때, 니사쿠의 마을 사람들이 마을에 도착했다.

신년의 인사를 나눈 후, 그들은 시즈코에게 선물을 건넸다.

니사쿠는 며칠 전, 큰 멧돼지를 세 마리나 잡았던 것이다. 정말로 운이 좋았다, 고 말하는 그는 그 일부를 가져왔던 것이다.


어떻게 요리할까 하고 생각한 결과, 멧돼지 전골(ぼたん鍋)을 만들기로 했다.

하지만 옛부터 냄비는 가장 기본적인 취사도구이며, 동시에 신성한 것으로 취급되었기에, 냄비에 직접 젓가락을 대어 더럽히는 건 언어도단이었다.

하지만 '같은 솥의 밥을 먹는다'라는 속담도 있듯이, 같은 것을 둘러싸고 먹는 것은 연대감을 높이는 방법이기도 했다.

결국, '냄비'가 아니라 '이로리'를 둘러싸는 요리라는 것으로 얼버무렸다. 그리고 만약을 위해 요리를 덜어갈 때 쓰는 젓가락을 준비해 두기로 했다.


멧돼지 요리와는 별도로, 시즈코는 정월에 흔히 먹는 떡을 주체로 한 국물요리, 소위 말하는 떡국(雑煮, ※역주: 일본 떡국을 말하는데, 한자 그대로 한국의 떡국과는 달리 '잡탕'에 가깝다)을 준비했다.

떡국이라는 말은 무로마치(室町) 시대에 쓰인 '영록가기(鈴鹿家記, 스즈카카키)'에 처음 나온다.

하지만 에도(江戸) 시대가 될 때까지 쌀은 비싼 물건이며, 동시에 세금이었기에 일반 서민은 떡 대신 토란(里芋)을 먹었다.

무가 사회에서는 연회에서 가장 먼저 먹는 길한 음식이다. 떡국을 먹지 않으면 연회가 시작되지 않는다고 할 정도로, 우선 떡국이 대접되었다.

하지만 쌀 이외의 작물로 밭농사(定畑)나 화전(焼畑)을 하던 지역에서는, 정초의 3일 동안 떡을 신불에게 바치거나 먹는 것을 금기로 하는 풍습이 있다.

이것은 쌀이 자신들의 토지에서 나지 않는 바깥에서 온 식품이었기 때문에, 신불에게 바칠 음식으로는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떡국에는 호쾌한 이야기가 하나 있다.

무로마치 시대에 정식 일본 요리(本膳料理)의 전채로서 나온 국물이 발단이 된, 떡, 참마, 토란, 콩 등 몸에 좋다고 하는 것들을 넣는 것이 관습이었다. 지역에 따라서는 해산물 등도 넣은 예도 있다.

그것이 에도 시대에 들어서면서 떡을 간단히 구할 수 있게 되자, (홋카이도(北海道)와 오키나와(沖縄)를 제외한) 전국에서 정월은 떡국으로 축하한다는 풍습이 퍼졌다.

그 때, 떡국(雑煮)이라는 말은 '뭐든지 잡다하게 넣고 끓인다'고 해석되어, 본래의 떡국처럼 몸에 좋은 재료 이외의 것까지 사용되게 되었다.

오늘날, 떡국이 지역에 따라 맛이 전혀 다른 것은, 이 오해에 의해 생겨난 게 아닐까 하는 설이 있다.


떡찧기 등이 끝난 후, 전원 마을의 공민관 같은 건물에 모였다.


"어흠,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시즈코는 새해가 되어 세덕신을 맞이할 때의 인삿말을 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마을 사람들도 시즈코를 따라 인삿말을 했다.

이것은 신에 대한 감사의 말을 사람들끼리 나누는 것에 의해, 진심으로 세덕신을 맞이하는 것을 기뻐한다는 의미가 있다.


"에―, 올해도 무사히 신년을 맞이한 것, 기쁘게 생각합니다. 여러가지 일이 있었지만, 오늘부터 3일 동안 먹고 마시며 새해의 영기를 비축합시다! 그럼, 잘 먹겠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의외로 분위기를 잘 타는 마을 사람들이 큰 소리로 그렇게 말한 순간, 정월을 축하하는 연회는 시작되었다.




떡국이나 멧돼지 전골 등, 평소 먹을 수 없는 요리에 마을 사람들은 입맛을 다셨다.

그걸 상석에서 보면서 니사쿠나 그 가족들, 다이이치 등과 무난한 대화를 나누고 있던 시즈코였는데, 연회의 중반 쯤에 손님이 왔다.

맞이한 것은 아야이기에 본인이 직접 연회장에 들어오지는 않았지만, 아무래도 노부나가로부터의 파발이라고 했다.

기다리게 하는 것도 미안하다고 생각한 시즈코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 복도로 나오자마자 밖의 추위에 몸을 떨었다.


"으―추워…… 아, 맞다. 파발로 온 사람도 추울테니, 차를 준비해 줘"


"차……라고 하시면, 뽕나무 잎을 말린 그건가요?"


뽕나무 잎을 물로 씻은 후 가볍게 찐다. 그리고 다 찐 잎을 짜서 3mm 정도로 잘게 썰어 햇볕에 완전히 건조될 때까지 말린다.

그것만으로 만들어지는 뽕나무 잎 차는, 다양한 효능을 숨기고 있는 건강에 좋은 차이다.


"응, 그거. 미지근한 물에 우린 걸 큼직한 그릇에, 뜨거운 물에 우린 걸 작은 그릇에 담아줘"


"두 개인가요. 그건……"


"자, 자, 지금은 내 말대로 해 줘. 이유는 나중에 설명할테니까"


이상하게 생각한 아야이지만, 나중에 이유를 설명해주겠다고 하기에 지금은 솔직히 따르기로 했다.

그걸 본 후, 시즈코는 파발로 온 사람이 있는 장소로 향했다.

입구에서 밖으로 나가자 더욱 추위가 몸에 스며들었다. 오랜 시간 밖에 있는 건 힘들 것이다.


"시즈코 님이시군요. 영주님으로부터의 명령을 전해드리겠습니다"


바로 곁에 말과 함께 서 있던 갑옷을 입은 무사가, 시즈코를 발견하자마자 그렇게 말을 걸었다.

추위를 억지로 참고 있는 것인지, 그 몸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내일, 영주님께서 위로의 연회를 여십니다. 그 때, 시즈코 님도 참가하시라고 하십니다"


"네"


"그 때, 크로스보우라는 활을 가지고 오라고 하십니다"


"어, 아, 네…… (나, 크로스보우를 영주님께 보여드렸던가?)"


조금 의문으로 생각한 시즈코였지만, 어딘가에서 보여줬겠지라고 생각하고 금방 의식에서 밀어냈다.

그리고 참가하겠다는 뜻을 파발로 온 사람에게 전한 후, 시즈코는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 추위에 몸이 얼어붙으시는 것 같으시겠죠. 따뜻한 차를 준비했으니, 드시고 가세요"


"아, 아니…… 죄송합니다"


억지로 참고 있어도 추위는 뼈에 사무치는지, 파발로 온 사람은 작게 고개를 숙였다.

시즈코가 그를 현관까지 안내하려고 했지만, 그보다 먼저 아야가 차를 가지고 밖으로 나왔다.

지시받은 대로, 미지근한 물로 우린 차를 그릇 같은 용기에, 김이 날 정도로 뜨거운 차를 작은 용기에 담아서 가지고 왔다.


"우선 목을 축이시죠. 이쪽의 큰 그릇에 있는 차를 드세요"


"네? 네에……"


어딘가 납득이 가지 않는 얼굴을 하면서도 파발로 온 사람은 들은 대로 큰 그릇의 차를 마셨다.

처음에는 조금씩 마시던 그도, 미지근한 물이라 마시기 편하다고 알게 된 순간, 급하게 그릇을 비웠다.

말에 타는 건 체력이 필요하려나, 라고 막연하게 생각한 시즈코였다.


"그럼, 다음에 이쪽의 뜨거운 차를 드세요"


"감사합니다…… 앗뜨뜨……"


이번에는 김이 날 정도로, 겉보기에도 뜨거운 차를 건넸다.

하지만 추위로 손이 얼어붙어있던 파발로 온 사람에게는, 손을 덥힐 수 있는 좋은 열원이었다.


(이시다 미츠나리(石田三成)의 삼헌차(三献茶)는, 에도 시대의 창작이라고는 하지만, 접대의 배려로서는 우수하지)


아무래도 세 잔이나 마실 여유는 없다고 생각해서 두 잔으로 했지만, 그래도 파발로 온 사람에게는 고마웠다.

추위로 몸이 얼어붙는 가운데, 한 잔의 뜨거운 물이 얼마나 고마운지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감동한 파발로 온 사람은 자세를 바로하고, 시즈코를 향해 깊이 머리를 숙였다.


"잘 마셨습니다. 시즈코 님의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아, 아뇨"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한번 더 머리를 숙인 후, 파발로 온 사람은 재빠르게 말에 올라타 달려갔다.




설날의 연회는 크게 북적였고, 해가 지기 직전까지 연회는 계속되었다.

시즈코의 마을의 남자들도, 니사쿠의 마을의 남자들도 다들 취해 쓰러져 있었기에, 자연스럽게 니사쿠의 마을 사람들은 시즈코의 마을에 묵게 되었다.

뭣보다, 그 날은 남녀 관계없이 취해 쓰러진 사람이 많았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연회장에서 쓰러져 잤지만.


한편, 시즈코는 아침부터 목욕하여 몸을 씻어, 가능한 한 정갈한 차림새를 하였다.

위로의 연회라고 하면 러프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을 것처럼 생각되지만, 무가 사회에서의 연회는 상당히 딱딱한 부류에 속한다.

확실히 말하면 사교계의 파티에 가깝다고 생각해도 된다. 그 나름대로의 매너를 지키지 않으면, 연회를 연 사람의 체면을 구기게 되어 버리는 것이다.


(추워―…… 이로리 방에 틀어박히고 싶어……)


추위에 떨면서도 도중에 아무 일도 없이 시즈코는 노부나가가 있는 코마키(小牧) 산성(山城)에 도착했다.

이번에는 사전에 갈아입었기에, 성 안에서 갈아입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당장 연회장으로 이동하지는 않았다. 상하관계가 엄격한 무가 사회이므로, 노부나가에게 새해 인사를 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그 인사를 하는 건 시즈코 혼자가 아니다. 노부나가를 직접 섬기는 무장, 그리고 그 무장을 섬기는 무사들도 또한, 노부나가에게 새해 인사를 할 예정이었다.

덕분에 알현실 앞에는 장사진이 늘어서 있었다.


(……맨 뒤는 이쪽, 이라는 간판이라도 들면 재미있을지도)


이벤트 개최전이구나, 라고 불성실한 생각을 하면서 시즈코도 줄을 섰다.

줄을 선 순간, 소리를 들었는지 앞에 있던 무사 한 명이 돌아보았고, 그리고 경악의 표정을 떠올렸다.

처음에는 뭔가 하고 생각한 시즈코였지만, 즉시 그가 무엇에 놀랐는지 이해했다.

키 차이이다. 무사의 키는 시즈코의 가슴 언저리밖에 되지 않아서, 아무리 봐도 150 초반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그래도 큰 편으로, 앞을 잘 보니 더 키가 작은 무사가 제법 보였다.


(뭐…… 당시에는 평균 140cm 정도였으니까)


새삼스레 자신이 크다는 걸 이해했지만, 이해했다고 해서 키가 줄어들 리 없다.

결국, 알현실에 들어갈 때까지 시즈코는 무사들로부터 곡마단의 동물처럼 구경당했다.

그리고 줄을 서길 수십분, 간신히 자기 차례가 왔다.

라고는 해도 특이한 말 따윈 선택하지 않고, 앞 사람과 비슷한 무난한 인사를 했다.


인사가 끝나면 연회장으로 이동이다.

미리 자리가 정해져 있는지, 하인 같은 사람에게 그녀는 장소를 안내받았다.

하지만 앉은 후 좀 지났을 때, 안내받은 것은 자신 뿐이라는 걸 시즈코는 깨달았다.

다른 사람은 처음부터 자신의 장소를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으―음…… 이 자리…… 뭔가 안 좋은 예감이 들어……)


그녀의 안 좋은 예감은 10분 정도 후에 적중하게 된다.




시즈코는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처음부터 자신의 자리가, 노부나가의 자리에서 묘하게 가까운 것을 깨달아야 했다고 늦게나마 그녀는 후회했다.

눈만 움직여서 시즈코는 주위를 보았다. 옆에는 오다 노부나가의 가신 중에서도 가장 무용으로 이름난, '공격의 산자(攻めの三左)'라고 불리는 모리 요시나리가 앉아 있었다.

반대쪽을 보자, 거기에 앉아있던 것은 후에 오다 사천왕의 일각을 담당하는 타키카와 카즈마스(滝川一益)가, 어딘가 복잡해 보이는 표정을 하고 앉아 있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는, 지금은 그다지 좋은 대접을 받고 있지 못하지만, 후에 오다 사천왕의 한 명으로, 오다 가문 제일의 맹장이라고 불리게 되는 시바타 카츠이에(柴田勝家)가 있었다.

그리고 노부나가에게 상당히 가까운 위치에는 2대에 걸쳐서 노부나가의 인척이 되며, 오다 사천왕, 오다 오대장(五大将)의 한 사람이며, 시바타 카츠이에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맹장인 니와 나가히데(丹羽長秀)가 앉아 있었다.

후에 오다 사천왕에 들어가는 아케치 미츠히데(明智光秀)는, 에이로쿠(永禄) 11년(1568년)부터 에이로쿠 12년(1569년) 사이에 오다 가문의 가신이 되었다고 하기에, 현재는 이 자리에 없었다.

훗날의 토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되는 키노시타 토우키치로(木下藤吉郎)도 역시 노부나가의 자리에서 가까운 위치에 있었다.

즉, 시즈코의 주위에는 쟁쟁한 멤버가 앉아있는 것이다.


(위장이…… 위장약이 필요해……!)


무장들이 내뿜는 위압감으로 위장에 구멍이 뚫릴 것 같다고 생각한 시즈코였지만, 이제와서 자리를 바꿔 달라고도 못하고, 그냥 말없이 견딜 수밖에 없었다.

본심을 말하면 그녀는 이런 자리는 어려워서, 설령 참가해도 구석에서 눈에 띄지 않게 지내는 쪽이다.

추가하자면 추운 날에 외출 따위 하고 싶지 않은 니트 기질이 있지만.


(우우…… 오늘은 빨리 끝나지 않으려나―)


그런 그녀의 바람과는 반대로, 그로부터 수십분 지나도 연회는 시작조차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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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