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에이로쿠(永禄) 12년, 이세(伊勢) 평정
059 1569년 7월 중순
7월, 포르투갈 선교사 프로이스는 로렌초를 데리고 기후를 방문했다.
방문의 이유는 쿄에서 일어나고 있는 선교사 추방의 움직임을 막기 위해, 그리고 노부나가에게 자신의 보호를 요청하기 위해서였다.
처음에는 선교사 추방 운동의 주도자인 니치죠(日乗)와 프로이스 등 선교사들을 니치쵸로부터 필사적으로 지키는 와다 코레마사(和田惟政) 사이에 서신이 오갔다.
텐쇼(天正) 원년을 기점으로 정치판에서 사라지는 니치죠이지만, 이 때의 그는 노부나가의 심복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는 그 탁월한 수완을, 노부나가의 쿄 지배의 만반을 기하기 위해 유감없이 발휘했다. 게다가 궁궐 안의 각종 사정에 정통해 있었기에 조정과의 창구도 담당하고 있었다.
노부나가의 외교 정책의 일익을 담당하는 니치죠는, 일관적으로 선교사를 배척하는 움직임을 보였다.
'선교사가 있는 곳에는 소란이 일어나 파멸한다'며 노부나가에게 진언한 것을 볼 때, 그는 무엇인가를 알고 선교사에 대한 위기감을 느낀 것이리라.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가 무엇을 보고 무엇을 알게 되었는지는 기록에 남아있지 않다.
기독교(キリスト教)를 증오하고 있는 니치죠와 와다 코레마사의 대화에 진전은 거의 없었으며, 거꾸로 악화되기만 하는 상황이었다.
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프로이스는 노부나가에게 보호를 요청할 것을 결의했던 것이다.
그는 우선 한밤중인 4시에 오우미(近江) 국으로 출발하여, 사카모토(坂本)에서 로렌초와 합류했다.
그 때, 로렌초는 니치죠의 서신을 지참하고 와다 코레마사가 있는 코시미즈(越水) 성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코레마사는 니치죠의 서신을 본 후, 그걸 바닥에 집어던졌다는 이야기가 남아 있다.
그로부터 추측하건대, 니치죠의 서신은 그에게 좋지 않은 내용이었으리라.
로렌초로부터 프로이스가 미노로 향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코레마사는 노부나가의 가신들 앞으로 한 통, 기후에 있는 여관 주인 앞으로 한 통, 총 두 통의 편지를 로렌초에게 건네주었다.
이 두 통의 서신을 가지고 로렌초는 프로이스와 합류하여, 배로 사카모토에서 아사즈마(朝妻)로 향했다.
아사즈마에 도착해서 하룻밤을 묵고, 다음 날 육로로 오우미 국에서 미노 국으로 들어가, 기후에 있는 코레마사가 추천한 여관에 묵었다.
바로 움직이지 않은 것은 사쿠마 노부모리(佐久間信盛)와 시바타 카츠이에(柴田勝家)가 쿄에서 기후로 돌아오지 않았고, 또 히데요시가 오와리에 있기 때문이었다.
시간이 남게 된 프로이스는 로렌초와 함께 기후의 성 주변 마을(城下街)을 산책했다.
여기저기에서 떠들썩한 소리가 들리며, 마치 바빌론의 혼잡함의 양상을 띠고 있다고 그는 느꼈다.
기후의 성 주변 마을은 낙시낙좌(楽市楽座) 정책 덕분에, 방문한 사람들이 풍요로움을 실감할 수 있을 정도로 번화했다.
낙시낙좌는 영지(領国) 경제 진흥 정책으로서, 노부나가가 실시하기 전에 이마가와 요시모토(今川義元)나 사이토 도우산(斎藤道三), 롯카쿠 죠테이(六角承禎) 등이 실시했다.
하지만 그들은 부분적으로밖에 도입하지 않아, 본격적으로 도입한 것은 노부나가가 처음이다.
그는 에이로쿠 10년(1567년)에 기후 성 아래의 카노우 시장(加納市場)을 낙시(楽市)로 삼아, 이듬해에 낙좌령(楽座令)을 발표했다. 이에 의해 노부나가는 상거래의 기득권익을 배제했다.
무로마치(室町) 말기로부터의 기득권익의 폐해는 눈에 띄기 시작하고 있었다.
상인이 장사를 시작할 경우, 우선 시장을 관장하는 사원에 납입금을 낼 필요가 있었다. 이 납입금에 의해 영업권을 취득했던 것이다.
납입금을 내지 않았을 경우, 무장 집단이 장사 도구나 가게를 파괴, 경우에 따라서는 상인이나 그 가족에게까지 행패를 부렸다.
또 조합(座)도 생산에서 판매의 독점권을 가지고, 이 조합에 가입하는 경우에도 권리주(株)라는 이름의 회원권이 필요했다.
물론, 이것을 취득하지 않고 장사를 할 경우, 역시 무장 집단이 행패를 부렸다.
이 폐해를 없애기 위해, 노부나가는 낙시낙좌를 시행함과 함께, 행패를 부리는 자들을 철저히 단속했다.
거기에 노부나가는 관문(関所)도 정리했다.
이 관문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오해가 많기 때문에, 우선 관문에 대해 설명한다.
먼저 에도 시대로부터의 관문과, 에도 시대 이전(무로마치~아즈치 모모야마(安土桃山) 시대)의 관문은 역할이 다르다.
에도 시대의 관문은 요지(要地)에 설치되어, 거기서 '미분아라타메(身分改め)'라는 여행 허가증(신분증명서)과, 관문을 통과하기 위한 관문 허가증(関所手形)의 검열, 위험물의 반입, 반출이 없는지 검사하는 화물 검사 등, 말하자면 현대의 입국 수속에 가까운 일을 했다.
참고로 에도 시대에 여성의 관문 통과가 대단히 어려운 이유는, 인질인 다이묘의 처자가 도망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 때문에, 에도에서 여성이 홀로 여행하는 것은 확실히 관문에서 차단되었다. 부모형제 동반이나, 남성을 포함하는 그룹 여행, 남성 고용인 등이 없으면 안 되었다.
참고로 여성에게는 통상적인 허가증 외에, 관문 여성 허가증(御関所女手形)이라는 것이 특별히 필요했다.
이것을 입수하려면, 우선 번(藩)의 담당자나 명주(名主, ※역주: 정장(町長)이나 촌장(村長))에게 증명서를 발급받는다.
다음으로 그걸 가지고 마치부쿄(町奉行, ※역주: 이 경우 동사무소나 뭐 그런 기관을 말하는 듯)에서 허가를 신청한다.
마지막으로 막부(幕府) 오루스이(御留守居, ※역주: 현대에서 말하는 영사 같은 직책)에게 필요 서류를 제출하면 간신히 관문 여성 허가증이 발행되었다.
하지만 관문 여성 허가증이 있으면 무사 통과, 라는 것은 아니었다.
에도 시대에는 전국에 53개소의 관문이 있었으며, 그 중에 중요한 관문은 22개소였다.
그 중에 17개소에는 히토미온나(人見女)나 아라타메우바(改姥)라고 불리는 여성 전용의 검사관이 있었다.
그녀들은 2인 1조로 검사를 하여, 어느 한 쪽이라도 부결시키면 아무리 관문 여성 허가증이 있어도 관문을 통과하는 것은 용납되지 않았다.
이 검사에서 탈락한 여성은, 다시 에도로 돌아가 막부 오루스이로부터 새로운 증명서를 발급받아 다시 관문으로 간다는 까마득한 노력을 강요받았다.
15일이 지나 겨우 관문을 지났다, 라는 기록이 남아있을 정도로 여성의 관문 통과는 힘들었던 것이다.
게다가 시대극 등에서 관문은 하나라고 생각되기 쉬운데, 가장 중요한 관문이라 불린 '하코네(箱根) 관문'은 본 관문 이외에 다섯 개의 뒤쪽 관문(裏関所)이라는 게 있어, 본 관문을 포함한 그것들 전부가 울타리로 연결되어 있었다.
이것들을 우회하려면 엄청난 노력을 필요로 하고, 발각되면 문답무용으로 사형이라는 중죄였기 때문에, 어지간히 뒤가 구린 사정이 없는 한 시간이 걸려도 관문을 통과하는 쪽이 안전했다.
그에 반해 에도 시대 이전의 관문은, 막부가 아니라 그 땅을 다스리는 영주가 멋대로 설치한 것이었다.
그리고 반입하는 물건들에 대해 통일된 관문세(関銭)가 없고 영주마다 다 제각각이었다.
본래, 관문세는 다음 관문까지의 안전 보장에 대한 보호비(警固料, 대가)였다.
하지만 언제부터인지 영주들은 조세의 하나로서 관문의 숫자를 늘렸고, 결국에는 겨우 15km 거리(이세(伊勢)의 쿠와나(桑名)에서 히나가(日永))에 60개나 되는 관문이 만들어진 곳도 생겼다.
오사카(大坂)와 교토(京都)를 잇는 요도(淀) 강의 운송로(問, ※역주: 확실하지 않음)에는, 한 때 백 개 이상의 관문이 설치되어 다종다양한 관문세가 부과되었다.
이에 의해 운송업자나 상인들의 이동 비용이 크게 뛰어, 물류의 동맥경화가 발생했다.
이 막부, 공가, 종교 세력에 의한 관문의 난립을 막고, 쓸데없는 관문을 폐지한 것이 노부나가였다.
그는 우선 오와리, 미노의 관문을 정리하고, 상락을 이룬 후에는 키나이(畿内)의 관문을 정리하였으며, 이세 국에서 노부나가의 영향 아래 있는 지역의 관문을 정리했다.
다만 이 관문 정리, 물리적으로 관문을 없앤 것처럼 들리지만 실은 그렇지는 않다.
관문 폐지 정책은, 국방, 유통 루트, 운송비용이나 운송시간 등 다양한 점을 고려하여, 필요한 장소에서만 교통세를 걷고, 불필요한 장소에서는 교통세를 걷지 않도록 한 것 뿐이다.
게다가 그는 적 세력의 관문에 대해 생트집에 가까운 이유를 대며 억지로 교통세를 폐지시켰다.
이것은 적 세력의 자금원을 빼앗는 동시에, 자신의 영토로 상인이나 상품이 원활하게 흘러들어오게 만들기 위함이었다.
즉 노부나가는 기득권익을 배제, 또는 파괴하고 다닌 게 아니라, 원래 있던 기득권익을 오다 가문이 '독점'할 수 있게 만든 것에 불과하다.
게다가 낙시낙좌는 시장 개방처럼 들리지만, 기후의 경우에는 전쟁으로 황폐해진 성 주변 마을 부흥의 의미가 강했다.
그래도 상인들에게는 고마운 일이라, '오다 영지에서는 누구든 자유롭게 장사할 수 있다'는 말만으로 상인들이 기후로 앞다투어 몰려들었다.
물론, 뭘 해도 되는 자유가 아니라 명확한 규칙이 있었다.
상인들은 각종 세금 면제, 책무 파기, 각종 노역이 면제되는 대신, 후려치기(押し買い), 행패, 싸움, 말싸움, 불법 점거, 불법자를 시장 안으로 들이는 행위를 하지 않는 것을 엄격히 지켜야 했다.
또, 각종 세금 면제라고는 해도, 오다 가문의 공공 서비스를 받으려면 세금을 낼 필요가 있었고, 가게를 열 때는 최저한이기는 하나 보증금을 낼 필요가 있어, 다른 나라의 시장보다 낮다고는 해도 상거래에는 일정한 세금이 부과되었다.
(기후는 물건이 넘치고, 그걸 노리고 사람들이 모여들고, 그리고 이 땅에서 돈을 쓴다. 오다 님의 정책은 훌륭하군. 우리 나라에도 도입할 수 없을지 검토가 필요하겠다)
수도에서 떨어진 지역이 번영하는 데는 뭔가 이유가 있을거라 생각한 그는, 이 방법을 자신의 나라에도 응용할 수 없을지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에 잠길 시간은 많지 않았다. 우선 눈 앞의 적을 어떻게 하는 것이 선결과제였다.
프로이스는 시바타나 삿사와 회담을 하고, 기후를 돌아보며 히데요시가 오와리에서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시바타와 만났을 때, 프로이스는 노부나가와 만날 수는 있었지만 그 자리에서 회담을 가질 수는 없었다.
그리고 기후에 도착한 지 며칠 후, 간신히 오와리에서 히데요시가 돌아왔기 때문에 그들은 즉시 행동에 나섰다.
그 덕분인지 히데요시와 회담의 자리를 마련할 수 있었다.
히데요시는 협의 후, 프로이스들이 지참한 초안(草案)을 노부나가에게 건넸다. 노부나가는 내용을 확인한 후, 서기(右筆)를 불러들여 조정과 요시아키(義昭)에게 선교사들을 비호하는 내용의 편지를 쓰게 했다.
그 후, 천하포무(天下布武) 도장이 찍힌, 선교사들을 비호하는 내용의 편지를 히데요시에게 주었고, 히데요시는 다시 프로이스들을 위해서 코레마사와 니치죠에게 프로이스를 비호하는 내용의 편지를 써서 두 통 다 프로이스에게 건넸다.
"이번에는 정말 감사드립니다"
편지의 답례를 하기 위해, 프로이스는 시바타에게 노부나가와의 회담을 청했다. 노부나가도 이래저래 생각이 있었는지, 시바타로부터 이야기를 듣자마자 그들을 거관으로 초대했다.
"신경쓰지 말도록"
노부나가는 미소를 지으며 그렇게 대답했다. 프로이스는 다시 한 번 감사의 표시로 머리를 숙인 후, 문득 주위를 보고 위화감을 느꼈다.
노부나가의 지혜주머니인 두건재상(시즈코)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항상 노부나가와 함께 행동한다고 생각했는데, 잘 생각해보면 노부나가가 쿄에 있을 때 그가 없었던 경우가 많았던 것을 프로이스는 기억해냈다.
"영주님, 시식회의 준비가 되었습니다"
"응?
오오, 그랬지. 프로이스여, 오늘은 요리의 시식회를 할 예정인데, 그대도 어떠한가"
"괜찮으십니까"
"상관없다. 쿄의 요리는 아니지만, 기후의 요리를 즐기고 가도록 하라"
"감사합니다. 그럼 함께 하도록 하겠습니다"
프로이스의 말에 만족한 노부나가는, 즐거운 듯한 미소를 지으며 몇 번인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그가 미소를 지은 이유는 프로이스의 대답에 만족해서가 아니라, 어떤 꿍꿍이가 성공했기 때문이었다.
"시작하라!"
노부나가의 호령과 함께 입구의 맹장지가 조용히 열렸다.
선두에는 프로이스와 알현했을 때의 복장을 한 시즈코, 그 위에 소성들 두 명이 각각 상(お膳ぜん, 1인분의 식기와 음식을 얹은 상)을 들고 들어왔다.
시즈코를 본 프로이스는 자기도 모르게 그녀 쪽으로 고개를 돌렸으나, 시즈코는 신경쓰지 않고 노부나가의 앞에 앉아서 상을 조용히 내려놓았다.
"첫번째 요리는 닭껍질과 파의 볶음밥입니다. 닭껍질과 파와 밥, 그리고 물에 푼 계란을 섞어 볶기만 한 단순한 요리입니다. 나무 숟가락으로 떠서 드셔 주십시오"
노부나가로부터 약간 옆으로 이동한 후, 시즈코는 헛기침을 하고는 요리의 설명을 했다.
"이 나무 숟가락으로 먹는 것이구나…… 음, 맛있다. 비빈 밥을 볶기만 해도 이렇게 맛이 달라질 줄이야"
깊이갸 얕은 나무 숟가락으로 먹는 노부나가를 보고, 프로이스와 로렌초도 그것을 흉내내어 먹었다.
입 안에 넣은 순간, 밥알이 떠다니는 듯한 식감에 프로이스는 놀랐다. 이어서 간장의 좋은 향기, 닭껍질의 오득거리는 식감 등 씹을 때마다 새로운 맛과 향에 눈이 핑핑 돌았다.
"맛있군"
대단히 평범한 표현이지만, 프로이스는 그 이외에 명확한 표현이 떠오르지 않았다.
"흠, 닭껍질을 볶기만 한 것이 아니구나. 껍질의 기름이 거의 없는데, 밥이 기름을 먹고 끈적거리는 것이 없다"
장난꾸러기 같은 미소를 띤 노부나가가 볶음밥을 먹으면서 질문을 던졌다.
"혜안이 놀라우십니다. 닭껍질은 볶으면 많은 기름이 나옵니다. 원래는 버리는 부분이나, 이 기름에 파와 마늘(大蒜), 생강을 넣어 향을 배게 하면, 독특하고 향기로운 풍미를 더해주는 기름, 계유(鶏油)라는 것이 만들어집니다. 아까의 볶음밥은, 그 계유를 사용하여 조리하였습니다"
"과연. 원래는 버리는 기름을, 밥에 풍미를 더하는 기름으로 변화시킨 것이냐. 실로 훌륭한 역전의 발상이로다"
노부나가는 기분좋게 시즈코를 칭찬했다. 말로는 하지 않았지만 프로이스도 같은 생각이었다.
남은 걸로 만들었다, 고 말하면 듣기에는 나쁘지만, 남은 것으로 이 정도로 훌륭한 요리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대체 얼마나 있을까.
새삼스레 두건재상의 지혜, 그리고 발상력에 놀란 프로이스였다.
"마음에 드셨다니 다행입니다. 그럼, 다음 요리로 넘어가겠습니다"
시즈코는 가볍게 손뼉을 쳤다. 이번에는 소성이 세 명, 새로운 요리를 얹은 상을 날라왔다.
상이 노부나가의 앞에 놓여지자, 가볍게 헛기침을 한 후 시즈코는 요리의 설명을 했다.
"두 번째는 닭고기 감자조림입니다. 닭다리살, 감자, 양파, 시라타키(しらたき, ※역주: 전골 따위에 쓰이는 실 모양의 아주 가는 곤약)를 설탕, 미림, 술, 간장, 맛국물로 만든 조림국물로 시간을 들여 조렸습니다"
"감자……? 그 관상용의 감자 말씀입니까?"
감자, 라는 말에 프로이스는 눈살을 찌푸렸다.
유럽에 감자가 전래된 것은 16세기이지만, 식품으로서의 지위를 획득한 것은 18세기 중반이다.
유럽에서 처음으로 감자를 식품으로 생각한 인물은 프로이센 왕 프리드리히 2세이다.
프리드리히 2세는 감자가 추위에 강하고 밟아도 괜찮으며 수확량은 밀의 세 배, 필요할 때에 수확할 수 있다는 점이 부국강병을 추진하는 데 있어 안성맞춤인 작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1756년에 감자령을 발표하여 영민들에게 감자 재배를 추천했다.
유럽에서 감자가 식품으로서 받아들여질 때까지, 감자는 관상용의 꽃으로 취급되었다.
동시에 '성경에 나와 있지 않는 작물'로서 '악마의 식물' 취급도 받았다.
토마토가 전래되었을 때, 유럽에서 식용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것도 같은 이유이다.
그래서 프로이스에게는 감자는 악마의 식물이며, 식용으로 쓸 수 있는 재료라고는 털끝만큼도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감자는 싹이나 녹색으로 변한 부분을 섭취하면 복통이나 구토를 일으킵니다만, 제거하면 사실 식용으로 이용할 수 있습니다"
감자는 가지 과로 분류되며, 싹이나 녹색으로 변한 부분에는 천연 독소의 일종인 솔라닌(solanine)이나 챠코닌(chaconine, 카코닌이라고도 한다)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이것을 섭취하면 두통, 구토, 설사, 식욕감퇴 등이 일어난다.
당시의 유럽은 감자에 대한 레시피가 엉망진창이라, 이 솔라닌을 섭취하게 되는 레시피가 아무렇지도 않게 돌아다녀, 중독을 일으키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월터 로리(Sir Walter Raleigh)가 감자를 엘리자베스 여왕에서 헌상했을 때, 요리사가 잘못해서 잎사귀와 줄기를 조리했기 때문에 여왕이 식중독을 일으킨 일화도 있다.
"감자에 맛이 잘 배어 있군. 게다가 따끈따끈하고 식감도 좋다. 하지만 감자가 아니라 토란(里芋)으로도 대용할 수 있을 것 같구나. 고로에서 토란이 대용품이 될 수 있는지 연구하라고 명해두거라"
"알겠습니다"
노부나가와 시즈코의 대화를 들으면서도, 프로이스는 감자를 앞에 두고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1분 가까이 망설인 후, 그는 큰맘먹고 감자를 입 안에 넣었다.
처음에는 눈물을 글썽이며 싫은 표정을 짓고 있던 프로이스였으나, 점차 얼굴이 부드러워졌다.
"……맛있군. 감자는 쓰고 흙냄새가 나서 도저히 먹을 수 있는 게 아니라고 들었는데, 요리의 방법을 바꾸는 것만으로 이렇게 맛있어지는 것인가"
처음의 혐오감도 잊고, 프로이스는 닭고기 감자조림을 차례차례 입에 넣어 순식간에 깨끗이 비웠다.
"이 국물에 섞여 있는…… 그, 간장입니까?
이게 대단히 좋은 맛을 끌어내주고 있군요"
"우리 나라에서 개발된 간장이 마음에 든다니 다행이군"
간장의 기원은 여러 가지가 있으며, 게다가 초기에는 타마리쇼유(たまり醤油)였다.
17세기에는 일본 국외에 수출되었던 점을 볼 때, 그 때 이미 본격적인 간장이 발명되어 양산된 것은 틀림없다.
하지만 타마리쇼유에서 본격적인 간장으로 전환된 시기를 기록한 문헌은 유감이지만 존재하지 않는다.
즉, 노부나가의 시대에는 간장은 어딘가 일부에서만 쓰였던가, 아니면 시즈코가 일고 있는 현대의 제법이 아닌 방법으로 간장으로서 제조되었던가 둘 중 하나이다.
그렇기에 노부나가는, 그의 마음에 든 간장을 자신의 이름과 함께 역사에 새기기 위해, 일부러 '우리 나라에서 개발했다'고 단언한 것이다.
따라서 본래의 간장이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어도, 이미 오다 상표가 붙은 간장이 조정, 쇼군, 동맹국에 뿌려지고 있었기에, 역사에 이름이 나올 일은 없어졌다.
참고로, 또 하나 마음에 드는 조미료인 '맛국물 된장(だし入り味噌)'도, 노부나가는 같은 수법으로 퍼뜨리고 있었다.
이야기를 되돌리자.
노부나가는 소성을 부르더니, 가열 처리된 간장을 병입하여 프로이스에게 건네도록 명했다.
이 때, 도기(陶器)로 된 병(콘프라병(コンプラ瓶))에 담겨져 역청(歴青)으로 밀봉된 간장병 중, 한 병이 포르투갈로 전해져 추기경이자 뒷날의 포르투갈 왕이 되는 엔리케의 손에 들어갔다.
이후, 그는 죽을 때까지 간장을 각별히 사랑하여, 친족은 물론이고 포르투갈의 대귀족, 성직자, 관료에 이르기까지 간장을 선물하는 열광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이다.
"세 번째 음식을 소개하겠습니다"
상에는 큰 접시 하나에 치킨카츠(※역주: 치킨까스)가 올려져 있었다.
그 옆에 토마토 케첩, 간 무와 섞은 폰즈, 타르타르 소스의 세 종류가 들어 있는 작은 접시들이 곁들여져 있었다.
"닭가리살에 튀김옷을 입혀 기름으로 튀겨낸 카츠(カツ)라는 요리입니다. 술, 물, 간장으로 맛을 낸 후에 밀가루, 물에 푼 계란, 빵가루 순서대로 옷을 입혀 튀겼습니다. 위에 얹는 것은 토마토로 만든 토마토 케첩, 간 무에 폰즈를 부은 것, 그리고 타르타르 소스입니다"
"카츠(勝つ, ※역주: 일본어로 이기다라는 뜻)인가. 참으로 좋은 이름이다"
"나약한 자신(치킨(chicken), ※역주: 영어로 겁장이라는 뜻)에게 이긴다(勝つ)라는 해석도 가능합니다"
"후하하하핫! 실로 좋은 뜻이다. 마음에 들었노라"
기분좋게 웃은 후, 노부나가는 세 종류의 소스로 치킨카츠를 먹으며 비교했다.
프로이스들은 노부나가보다 한 발 늦는 모양새로 먹으며 비교했다.
"위에 얹는 것으로 이렇게 맛이 달라지다니 신선하군요"
"튀김옷의 식감이 기분좋습니다"
세 가지 음식 모두 프로이스와 로렌초에게 호평이었기에 시즈코는 내심 안도했다.
실은 시식회를 한다는 것은 새빨간 거짓말로, 자신들의 요리로 프로이스 등 선교사들을 놀래키는 것이 노부나가의 목적이었다.
특히 노부나가는 간장을 선전하겠다는 의욕이 강해서, 시즈코에게 남만인이 잘 먹지 못하는 식재료를 쓴 간장 요리를 만들어라, 는 지시를 내릴 정도였다.
감자가 혐오되는 것에 착안한 시즈코는, 메인이 감자로 보이기 쉽도록, 그러면서 맛의 조정이 쉬운 닭고기 감자조림을 내기로 했다.
"이상으로 요리의 시식회를 종료하겠습니다. 이어서 과자의 시식회로 넘어가겠습니다"
시즈코의 말과 함께 과자를 얹은 상이 운반되었다.
하지만 소성들이 운반해온 상은, 아까 요리를 얹은 상보다 한층 더 컸다.
그 이유는 소서가 달린 커피컵, 그리고 비교적 큼직한 2단 상자(重箱)가 상에 올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뭐냐, 이 시커먼 액체는"
커피컵에 담겨 있는 검은 액체에 노부나가는 고개를 갸웃하며 시즈코에게 질문을 던졌다.
"우선 상자의 뚜껑을 열어 주십시오. 그 안에는 세 종류의 과자가 들어 있습니다"
시키는대로 노부나가들은 상자의 뚜껑을 열었다. 안을 보고 노부나가는 감탄을 발하고, 그에 반해 프로이스는 얼굴의 근육을 경직시켰다.
"상단의 왼쪽부터 순서대로 콘페이토(金平糖), 벌꿀을 바른 팬케이크, 산딸기 찹쌀떡(大福). 하단에는 왼쪽부터 순서대로 미타라시 경단(みたらし団子), 팥(餡) 도넛, 양갱(羊羹)입니다. 검은 액체는 콩(大豆) 커피라는 음료입니다"
"콩… 커피?"
커피라는 단어에 노부나가는 물론이고 프로이스나 로렌초도 고개를 갸웃했다.
프로이스가 커피를 모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커피는 17세기 전반에 베네치아 상인을 통해 유럽에 퍼지기 전에는 희한한 음료 취급이었다.
그 때문에, 식물학자나 의학자 이외의 사람들에게는 그 존재가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았던 것이다.
반대로 이슬람 세계에서 커피는, 9세기의 콩의 조리법이 기술될 정도로 옛부터 즐겨 마셨다.
"네. 콩을 볶아서 열을 식힌 후, 달인 콩을 갑니다. 그 간 콩을 천으로 감싸, 끓는 물을 부어 여과한 것이 콩 커피입니다"
커피 대용품의 하나이기에, 본래의 커피와 비교하면 부족한 느낌은 들지만, 카페인지 없고 가볍게 마실 수 있으면서 시원한 쓴맛과 풍부한 깊은 맛, 콩의 독특한 향기가 있다.
게다가 콩의 영양가가 높게 평가되어, 콩 커피는 건강식품으로 취급된 적도 있다.
"쓰군…… 하지만 과자를 먹은 후에 마시면, 이 쓴맛이 중독될 것 같다"
"시원한 쓴맛이, 과자로 달아진 입을 씻어주는군요"
"단 팥, 그리고 신맛이 강한 산딸리, 양쪽이 섞여서 뭐라 할 수 없는 맛이 입 안에 퍼져나갑니다"
노부나가, 프로이스, 로렌초 세 명은 과자와 콩 커피가 대단히 마음에 든 모양으로, 요리를 세 가지나 시식한 후임에도 여섯 가지의 과자를 순식간에 먹어치웠다.
"맛있었다. 하지만 벌꿀의 양이 조금 부족한 느낌이다"
맛이 진한 것, 염분이 강한 것, 그리고 단 것을 좋아하는 노부나가는, 벌꿀의 양이 부족하다고 느꼈다.
"그게 적정량입니다"
하지만 그 말이 반드시 나올 거라 생각하고 있던 시즈코는 즉시 노부나가에게 반론했다.
"조금이라면 문제없지 않겠느냐?"
"안 됩니다"
"식후에 운동을 열심히 하면―――"
"자중해 주십시오"
"……어쩔 수 없지"
"이해해 주시니 다행입니다. 과도한 단맛의 섭취는 건강을 해치므로, 부디 주의해 주십시오 (……내가 모르는 데서 잔뜩 바를 것 같은 느낌은 들지만)"
자세를 바로한 시즈코는, 한번 세 사람을 둘러본 후, 깊이 고개를 숙이고 이렇게 말했다.
"이것으로 소생의 시식회는 종료하겠습니다. 여러분, 함께 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노부나가와 프로이스의 회담은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끝났다. 프로이스는 노부나가의 전송을 받으며 로렌초와 함께 기후의 여관으로 돌아왔다.
"지금부터 오다 님을 중심으로 이 나라는 변화해 가겠군요"
"네. 저희들이 생각지도 못한 일을 차례차례 실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두건재상 님이 요리에도 해박하다니 의외의 발견입니다. 그는 뛰어난 무인이자, 교양이 높은 문화인이기도 한 것이겠죠"
프로이스는 즐거운 듯 말했다. 그에게는 뭐든지 신의 인도인 것이다.
따라서 프로이스는 시즈코 같은 이단아와 만나는 것도, 신이 자신에게 시련을 주고 있다고 생각했다.
좋게 말하면 대단히 긍정적, 나쁘게 말하면 뭐든지 신을 맹신하는 사고방식이다.
"언젠가 이 나라가 오다 님에게 지배되는 날에는, 그를 우리 조국으로 초대하고 싶군요. 저러한 영지(叡智)의 소유주라면 분명히 대답을 들을 수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그것은……?"
로렌초의 말에 프로이스는 생긋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뱃사람이 두려워하는 피를 토하는 병(괴혈병)과, 우리 조국이나 주변국을 덮치는 검은 병(흑사병)입니다. 모두 우리 교회의 권위를 실추시킨 질병들…… 하지만 그라면 뭔가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 그건 아무래도 무리인 게"
"아니오, 그는 콘페이토를 본 것만으로, 똑같은 과자인 콘페이토(金平糖)를 만들었습니다. 뭔가 우리들은 알 수 없는, 그러면서 핵심에 접근하는 뭔가를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로렌초는 반신반의했지만, 프로이스는 시즈코가 무언가 알고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현자에 필적하는 영지를 가진 인간이 여행을 떠나는 것을 누구 하나 말리지 않는다는 건 있을 수 없다.
분명히 무언가를 알아냈지만, 당시의 권력자에게 위협으로 간주되어 추방된 것일거라고 프로이스는 생각했다.
"우선 오다 님께 오늘의 건에 대해 선물을 보내지요. 서두를 필요는 없습니다. 서서히 그에게 다가가면, 자연스레 두건재상과 연줄을 가지게 될 수 있습니다"
그 후, 프로이스는 노부나가에 어떤 것을 보내는데, 그는 즉시 '그것'은 감당이 안된다는 것을 이해하고 시즈코에게 몽땅 떠넘겼다.
"크다!"
나가요시가 절규에 가까운 고함을 질렀다. 물론, 놀라고 있는 것은 그뿐이 아니라 케이지나 사이조도 멍한 표정이었다. 아야에 이르러서는 실신할 듯한 상태였다.
"오오…… 이거 또 꽤나 신기한 게 왔네"
노부나가의 하사품인 거대한 우리(檻), 그 안에 있는 동물은 시즈코에게 신기하게 보였다.
그녀의 눈 앞에 있는 우리는 한 변이 2m 이상, 높이는 너끈하게 사람 키의 두 배는 되었다. 그 안에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은 한 마리의 독수리였다.
일본에서는 흰죽지참수리(大鷲), 검둥수리(犬鷲), 흰꼬리수리(尾白鷲)의 세 종류를 볼 수 있지만, 흰죽지참수리는 홋카이도(北海道)로 연어를 찾아서, 흰꼬리수리는 겨울철에 북일본으로 날아오기(겨울 철새) 때문에, 전국시대의 사람들이 검둥수리 이외의 독수리를 볼 일은 일단 없다.
여담이지만, 일본의 매사냥은 주로 새매(鷂)와 참매(大鷹)의 두 종류가 사용되는데, 작은 새에게는 소형의 새매를, 꿩이나 오리, 토끼에는 중형의 참매가 사용되었다.
"주위를 바쁘게 둘러보고 있는데, 낯선 땅에서 경계심이 강해진 걸가?
일단 생고기 먹을래?"
생고기를 보여준 순간, 독수리의 표정이 변했다. 명백하게 사냥감을 노리는 표정이지만, 케이지(cage)가 방해되어 노릴 수 없었다.
"어디보자…… 고기를 주는 사람을 주인으로 인식하도록 조교되어 있습니다. 대단히 사람을 잘 따르는 아이입니다. 부디 귀여워해 주십시오…… 라니 정말인가 이거"
같이 전달된 설명서를 읽었지만 쉽게 믿을 수 없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독수리가 배고픈 것은 틀림없다고 생각한 시즈코는, 집오리의 고기를 우리 안으로 던져넣었다.
순간, 앉아 있던 나무 봉에서 눈에도 보이지 않는 속도로 독수리가 날아내렸다. 고기를 발로 움켜쥐고 주위에 방해자가 없는 것을 확인한 후, 고기를 쪼기 시작했다.
쪼고 있다기보다, 고기를 잡아뜯고 있다고 표현하는 쪽이 올바르지만.
기세좋은 호쾌한 식사 광경이었지만, 그건 상당히 오랫동안 먹이를 주지 않았다는 것이라고 시즈코는 이해했다.
"그야 일본에서는 짐승고기 같은 건 쉽게 손에 들어오지 않겠지 (……이 애도 비트만이랑 마찬가지로 인간의 사정으로 태어난 고향에서 억지로 끌려나온 아이인가)"
독수리는 새끼 때 서식지에서 이동되어, 배 위에서 조교되며 일본의 큐슈(九州)로 왔다.
처음에는 헌상받은 영주들도 기뻐했지만, 성장함에 따라서 식사량은 증가. 드디어 인부 한 명을 3개월은 고용할 수 있는 돈으로 살 수 있는 식량을 겨우 한 달만에 소비하는데 이르렀다.
이렇게 되면 영주는 주머니 사정을 무시할 수 없게되어, 결국 선교사들에게 독수리를 돌려주게 되었다. 다른 다이묘들도 같은 결과가 되어, 결국 선교사들도 독수리를 감당하지 못하게 되었다.
헌상품으로서의 이용가치가 없다고 판단한 선교사들은, 쿄의 프로이스에게 헌상품으로 쓰라고 떠넘겼다.
떠넘겨진 프로이스도 처음에는 취급에 골머리를 썩었지만, 매사냥을 좋아하는 노부나가라면 독수리를 기뻐할 거라 생각하고, 한 가닥 희망을 걸고 그에게 헌상했다.
하지만 노부나가는 자신에게는 감당이 안 된다고 판단하고, 시즈코에게 하사품 명목으로 떠넘긴 셈이다.
프로이스도 모르지만, 실은 시즈코에게 하사된 독수리보다 더 대형의 독수리가 한 마리 있었다.
하지만 반년 전, 주인이 쇠로 된 우리에서 나무로 된 우리로 독수리를 옮겼다.
그로부터 며칠 후의 밤, 대형의 독수리는 나무로 된 우리를 박살내고 유유자적하게 도망쳤다고 한다.
"우리 집은 비트만들이 있으니까 고기는 잔뜩 있지. 이제와서 독수리가 한 마리 늘어나도 큰 차이는 없네"
노부나가는 닭, 집오리, 거위(鵞鳥), 그리고 최근에는 집오리와 청둥오리의 교잡종(合鴨)과 메추리 양식까지 손을 뻗쳤다.
고쵸슈(五鳥衆)이라는 새 양식 전문의 직업을 신설한 것만 봐도 그의 의욕을 엿볼 수 있다.
이 고쵸슈란 양식 기술의 규격 통일은 물론이고, 생태의 관찰 및 연구, 양식의 기술을 범용화하거나 간략화하는 연구, 효율이 좋은 양식 방법의 연구, 깃털 하나에 이르기까지 낭비없는 이용 방법의 연구 등, 다종다양한 연구가 기본적인 역할이다.
노부나가는 '완전히 터득하지 않으면 내용을 이해할 수 없는 양식 기술은 무가치'하다고 생각하여, 새 양식에 관해서는 철저한 규격 통일과 범용화, 합리화를 추구했다.
정월에 배포된 '식사 12개조'의 영향도 있어, 계란 산업은 오와리, 미노의 백성들 사이에서 순식간에 퍼져나가, 지금은 일대 산업으로까지 발전했다.
'그럼, 이 애를 팔에 태워 볼 건데…… 누구 도전하고 싶은 사람 있어?"
순간, 전원이 손을 내저으며 거부했다. 하지만 그들의 반응은 지극히 정상이다.
우리에 있는 독수리는 참매와 비교하면 어른과 갓난애 정도의 차이가 있었다. 발톱 길이는 눈으로 보기에 15cm 이상, 전장은 무려 1미터 가까이 되었으니까.
다소 무섭기는 했지만, 독수리를 팔에 태워보고 싶은 욕구가 있었던 시즈코는, 자신의 팔에 굵은 밧줄을 감고, 그 위에 사슴 가죽으로 만든 장갑을 꼈다.
준비가 끝나자 시즈코는 우리 속에 있는 독수리에게 고개를 돌렸다. 독수리를 잘 관찰한 그녀는, 우리 속에 있는 독수리를 본 적이 있는 것을 깨달았다.
"이거…… 부채머리 독수리(オウギワシ)?"
정수리에 있는 검은 부채 모양의 도가머리(冠羽), 얼굴 주위에 있는 복슬복슬한 털, 보기에 전장 1m에 가깝고, 발톱 길이는 20cm에 가까운 등, 부채머리 독수리의 특징과 하나같이 일치하고 있었다.
전장을 볼 때 대형의 암컷 개체임을 추측할 수 있었다. 수컷보다 암컷 쪽이 대형화하는 맹금류이기 때문이다.
"혹시 네이티브 아메리칸(Native American)한테서 받은 걸까?"
네이티브 아메리칸은 중앙 아메리카에서 남아메리카에 서식하는 부채머리 독수리를 잡아서 길들이고, 장식용으로 도가머리를 사용했다.
또, 살아있는 부채머리 독수리를 키우고 있던 사람은 동료들로부터 대단히 존경받았다고 한다.
(설마 이 이상가는 크기의 독수리라니…… 멸종한 그 독수리는 아니겠지)
말도 안 돼, 라며 시즈코는 자신의 생각을 부정했다. 하지만 역사에 기록되어 있는 날짜에 멸종했다는 근거는 없다.
단지 멸종했을 거라고 추측한 것에 지나지 않으며, 그 때문에 소수나마 살아남아 있을 가능성은 부정할 수 없었다.
"(뭐 지금은 부채머리 독수리에 집중하자) 자 여기, 여기에 타는 거야. 오― 그래그래…… 착하다 착해"
자신의 팔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부채머리 독수리가 타기를 기다렸다. 잠시 후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부채머리 독수리는 우리에서 나와 시즈코의 팔에 올라탔다.
아무래도 악력 100kg 이상으로 움켜쥐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10kg 가까운 무게가 시즈코의 팔에 가해졌다.
"(분명히 TV 같은데서, 매사냥꾼은 상을 줬었지) 자, 상으로 고기를 줄게"
오랜만의 고기였는지, 부채머리 독수리는 정신없이 집오리의 고기를 뜯어먹었다.
"(아마도 오랫동안 고기를 주지 않으면 주인이라고 인정하지 않겠지) 좋아, 네가 살 헛간을 만들어야겠네. 철제 우리는 좁을테니까"
시즈코는 부채머리 독수리가, 편지의 내용대로 단순히 고기를 주는 사람을 주인으로 인정할 거라고는 생각되자 않았다.
인간에게 아양을 부리지 않고, 다른 개체와 무리짓지도 않고, 다만 평생 하나의 반려와 살아간다. 그런 고고한 삶이 맹금류의 매력이다. 그 맹금류와 신뢰 관계를 맺지 않으면 주인이라고 인정받지 못할 것이다.
매사냥도 마찬가지다. 매사냥꾼과 매 사이에 굳건한 신뢰관계가 있기에 매사냥이 가능한 것이다.
"뭐, 당분간은 철제 우리로 참아줘"
시즈코의 말을 이해했는지, 부채머리 독수리는 한번 높게 울었다.
시즈코가 정식으로 키우고 있는 동물은, 비트만 등의 회색 늑대와 노부나가에게서 하사받은 부채머리 독수리다. 하지만 그녀의 주위에 있는 동물들은 그 두 종류 뿐만이 아니다.
시즈코의 거주지 일대는 지금도 개간이 계속되고 있지만, 주로 인프라 정비이며 규모는 작다.
인구 밀도도 낮고, 축력(畜力) 개간은 규모에 따라서는 몇 년이 걸리므로, 아직 사람 손에 닿지 않은 자연이 많이 남아있는 상태였다. 그곳에 다종다양한 야생동물들이 눌러앉아 살기 시작했다.
그 중에 몇 가지 종류가 시즈코와 관계되었다.
우선 농업과 떼려 해도 뗄 수 없는 관계인 까마귀다. 일본에는 좁은부리 까마귀(ハシボソガラス)와 큰부리 까마귀(ハシブトガラス)가 많고, 현대 일본에서는 대형의 조류로 분류되는 큰부리 까마귀가 도시에서 자주 보인다.
여담이지만 좁은부리 까마귀과 큰부리 까마귀에는 큰 차이가 몇 가지 있다.
우선 좁은부리 까마귀는 단독이나 페어 행동이 많고, 그에 대해 큰부리 까마귀는 무리로 행동하는 경우가 않다.
또 좁은부리 까마귀는 땅 위를 걷는 경우가 많지만, 큰부리 까마귀는 먹을 때와 목욕할 때 이외에는 항상 높은 곳에 있다.
이것은 좁은부리 까마귀가 트인 장소에서 서식하는 것에 대해, 큰부리 까마귀가 밀림 속에서 서식했던 것이 이유라고 한다.
좁은부리 까마귀는 큰부리 까마귀보다 작아서 자주 먹이를 빼앗기거나 하지만, 그 대신 그들은 창의력이나 학습 능력이 대단히 높다.
현대 일본에서 횡단보도에 호두를 떨어뜨려 자동차를 이용해 껍질을 깨거나, 새전함(賽銭箱)에서 돈을 훔쳐 비둘기 먹이를 자동판매기에서 구입하거나 하는 까마귀는 대부분 좁은부리 까마귀다.
물론, 큰부리 까마귀가 저능하다는 것은 아니며, 큰부리 까마귀 역시 영리함을 보이는 다양한 일화를 가지고 있다.
동물 계열을 좋아하는 큰부리 까마귀와 달리, 주로 식물계의 먹이를 좋아하는 좁은부리 까마귀가 시즈코의 거주지 주변을 영역으로 삼은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처음에는 농작물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좁은부리 까마귀를 쫓아내던 시즈코였으나, 얼마 후 그녀는 좁은부리 까마귀를 쫓아내는 것을 그만두었다.
결코 좁은부리 까마귀를 쫓아내는 것을 포기해서가 아니다. 거기에는 좁은부리 까마귀의 놀랄만한 전략이 있었다.
농작물을 노리면 시즈코가 대책을 세울 거라고 그들은 생각하고, 먹이를 농작물에서 밭의 해충으로 바꾸었다.
잡식성인 좁은부리 까마귀는 곤충이나 개구리 등도 먹는다. 농작물에서 해충으로 주식을 변경해도 아무 문제 없었다.
이렇게 자신들은 적이 아니다, 라고 시즈코에게 계속 어필하여 그녀의 적개심을 없애가는 것이다.
이 작전은 대성공을 거두어, 보기좋게 좁은부리 까마귀의 집단은 시즈코의 거주지 근처에 영역을 가지는 데 성공했다.
대략 30마리의 무리는, 야채 부스러기는 솎아낸 농작물, 해충 등의 피해를 입은 작물에 한정할 경우 실컷 먹을 수 있었다.
시즈코와 야생동물의 공생관계는 딱히 좁은부리 까마귀에 한정되지 않았다.
혼모로코를 양식하고 있는 지역에는 일본 수달이 자리를 잡고, 양식장 밖의 강으로 도망친 혼모로코나 주위에 사는 개구리를 먹이로 삼고 있었다.
그리고 시즈코가 표고버섯을 재배하고 있는 산에는 2, 3쌍의 참수리가 언제부터인지 자리를 잡았다.
그들은 여름이 끝날 무렵부터 초겨울까지는 연어를 노리고 홋카이도로, 그 이외의 계절에는 혼모로코가 주목적, 때로는 어촌에서 버리는 생선을 받으러 갔다.
양잠업이 활발한 지역이나 곡물을 보관하는 구획에는 언제부터인가 무수한 일본 고양이들이 자리를 잡았다.
그걸 알게 되자마자, 시즈코는 즉시 '고양이를 목줄로 묶어놓지 말 것'이라는 금지령이 쓰여진 나무 팻말을 세웠다.
귀중한 애완동물인 고양이를 가능한 한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목줄을 묶어놓는 주인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금지령을 내리자 처음에는 고양이 주인들로부터 불만이 터져나왔지만, 고양이를 풀어 키울 것을 엄명한 시기를 경계로 쥐에 의한 피해가 눈에 띄게 격감했다.
이 결과를 눈으로 본 고양이 주인들은, 고양이를 목줄로 묶는 것은 쥐를 구축한다는 고양이 본래의 역할을 방해하는 것임을 이해하고, 시즈코에게 항의했던 것을 사과했다.
인간과 동물이 공존하는 환경은 대소를 가리지 않고 많은 생물들이 살게 된다. 그리고 그 안에서 순환 사이클이 생기고, 생태 피라미드가 완성된다.
따라서 시즈코 주위에 다양한 야생동물들이 모여드는 것은 자명한 이치였다.
"그렇다고 해도 들개까지는 필요없거든"
하지만 야생동물 중에는 불청객도 있다. 그 중에서 가장 문제시되고 있는 동물이 들개였다.
족제비도 들개와 마찬가지로 해수(害獣)이지만, 족제비는 대형의 맹금류가 서식하는 지역에는 살지 않는다.
사슴은 현대 일본이라면 농작물을 어지럽히는 해수이지만, 시즈코의 거주지 주변에는 많은 육식동물들이 서식하는 관계로, 해수라기보다 산의 환경을 파괴하는 문제동물 취급이었다.
"아마, 이 근처라고 생각하는데"
시즈코는 카이저들을 데리고 들개가 침입한 구역으로 이동했다.
카이저들로서는 영역에 침입한 들개는 본보기의 의미도 담아 처치하고 싶었지만, 시즈코는 설령 들개라고 해도 쓸데없이 피를 흘리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영역의 지배는 시즈코에게 필요한 일이었다. 이걸 게을리하면 비트만들이 안심하지 못한다.
그래서 그녀는 재빨리, 하지만 정확하게 들개의 무리를 통솔하는 리더를 처치하기로 했다.
이것을 하는 것으로 시즈코는 믿음직하다고 비트만들이 생각하게 되고, 또한 들개의 무리를 굴복시킬 수 있는 것이다.
희생이 없는 것이 가장 좋지만, 싸우지 않으면 영역을 잃는다. 그리고 들개에게 영역을 빼앗긴다는 것은, 주위가 막대한 피해를 입게 된다.
비트만들의 주인으로서, 시즈코는 영역을 지켜낼 책무를 다하지 않으면 안된다.
하지만 강자의 논리를 들개에게 들이대며 리더를 죽이는 이상, 그 희생을 헛되이 하지 않는 것이 최소한의 예의이다.
리더는 정중하게 매장하고, 남은 들개들은 진드기나 벼룩의 제거, 각종 건강진단 후, 훈련을 거쳐 경비견이나 전령견으로 쓰고 있었다.
"자, 이 주변일 텐데…… 어라?"
컴파운드 보우를 들고 주위를 경계하자 들개 무리가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그들은 이쪽에 의식을 향하지 않고 나무 밑에 있는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이었다. 시즈코들의 냄새를 감지하자, 들개들은 경계와 위협의 울음소리를 냈다.
다른 들개들보다 한층 크게 짖는, 들개들에게 호위받고 있는 개가 리더라는 것을 시즈코는 눈치챘다. 화살을 통에서 꺼내는 동시에, 주위의 풀숲에서 들개가 차례차례 나타났다.
하지만 시즈코에게 공포는 없었다. 바로 곁에 있는 듬직한 호위들을 쓰다듬고는, 화살을 재면서 짧게 말했다.
"카이저, 쾨니히, 앞뒤의 경계를 부탁해. 아델하이트, 릿터, 루츠는 좌우의 경계. 한번에 끝내자"
순간, 카이저들이 사납게 포효했다.
시즈코는 다섯 마리의 회색 늑대, 그에 대해 들개는 30마리 가까이 거느리고 있었다. 숫자의 차이는 압도적으로 불리했지만, 카이저들은 대형견을 뛰어넘는 체구인데다, 뭣보다 투쟁심의 차이가 있었다.
그 기세에 말려든 들개들은 머리를 낮추고 귀를 머리 쪽으로 내렸다. 그것을 본 리더가 두려워하는 들개들을 독려하려고 주위의 들개들에게 짖어대기 시작했다.
(시선을 돌렸다!)
리더의 의식이 시즈코에게서 수하들로 옮겨간 순간을 그녀는 놓치지 않았다. 재고 있던 화살을 리더의 머리통을 향해 쏘았다.
화살을 쏘는 소리를 리더가 감지했지만, 아무래도 시즈코에게 눈을 뗀 상태에서 초속 100m를 넘는 컴파운드 보우의 화살에는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머리를 관통당한 리더는 피를 흘리며 땅바닥에 쓰러졌다. 약간 경련한 후, 신음 소리 하나 내지 못하고 절명했다.
그 이후의 일은 간단했다. 무리의 리더가 죽자 들개들은 저항의 의지를 잃고, 그 자리에 드러누워 시즈코에게 복종의 포즈를 취했다.
"루츠, 아야 짱한테 편지를 전해줘. 아델하이트와 릿터는 들개를 정렬. 카이저랑 쾨니히는 일단 주위의 경계를 부탁해"
개피리가 없어도 시즈코의 말을 이해했는지, 카이저들의 각자의 역할을 수행했다.
루츠는 편지를 아야에게 전하기 위해 달려갔고, 아델하이트와 릿터는 울음소리를 내며 들개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시즈코는 절명한 리더에게 합장한 후, 들개들이 흥미를 보이던 장소로 향했다. 나무 아래까지 이동하자, 들개들이 흥미를 보인 것이 뭔지 이해했다.
"……올빼미?"
나무 아래에 있던 것은 올빼미의 새끼였다. 하지만 털은 지저분했고 움직임도 느릿하여, 보기에도 쇠약해져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게다가 울음소리가 나무 위에서도 들려, 적어도 올빼미 새끼가 두 마리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무를 올라가서 둥지를 확인해보니, 이쪽에도 쇠약사 직전의 새끼가 한 마리 있었다.
부모의 흔적을 찾을 수 없는 것을 보니, 뭔가의 이유로 부모가 새끼를 포기했던지, 아니면 상처나 병으로 죽었던지 둘 중 하나이리라.
"할 수 없지. 봐 버린 이상, 모른 척 할 수도 없으니까"
새끼를 둥지째 안고 나무에서 내려온 후, 땅바닥에 있던 새끼를 둥지 안에 넣었다.
두 마리 다 성체의 깃털이 나 있는 것을 보니, 생후 2개월 정도라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분명히 올빼미는 생후 3개월이면 어른에 손색없는 모습이 되지만…… 그런 것 치고는 큰 것 같네"
애기털이 남아 있는 것을 보면, 새끼가 생후 2개월 정도인 것은 틀림없다.
하지만 어미새에게서 먹이를 받지 못했던 점을 고려해도, 올빼미 새끼 치고는 큰 것이다.
그리고 큰 것은 떨어져 있던 새끼 뿐만이 아니라 둥지 안에 있던 새끼도 그에 지지 않을 만큼 컸다.
(……우리 집에 오는 건 대형의 맹금류 뿐인가?)
왠지 지겨운 예감이 들면서도, 시즈코는 올빼미 새끼 두 마리를 집으로 가지고 돌아가서 그들을 위한 헛간을 지었다. 물론, 그들이 단순한 올빼미가 아닌 것을 시즈코는 후에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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