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에이로쿠(永禄) 12년, 이세(伊勢) 평정
058 1569년 6월 하순
전혀 이세(伊勢) 침공의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 노부나가에게, 각국이 파견한 간자들은 주인에 대한 보고에 골치를 앓고 있었다.
행군을 위한 특별한 움직임은 전혀 없었으며, 돌발적으로 발생하는 사안에 대한 대책 이외에는 이렇다 할 지시조차 내리지 않았다.
틈만 나면 소규모의 씨름(角力) 대회를 주최하고, 그 자신도 출장하여 겨루면서 땀을 흘렸다. 때때로 홀연히 모습을 감췄다 싶으면 며칠 동안 소식이 없었다.
(실제로는 시즈코의 마을로 가서 온천에서 유유자적하게 쉬고 있었다) 아무래도 24시간 감시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새어나오는 노부나가의 행동을 돌아보면, 아무래도 그냥 노는 데 정신이 팔린 걸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덕분에 간자들은 '노부나가는 매일 변화없이, 틈만 나면 놀고 있습니다'라고밖에 보고를 올릴 수 없었다.
당연히, 그런 보고를 반복해서 듣는 고용주들은 간자의 태만을 의심하고, 결국에는 격노하여 간자들을 심하게 질책한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고하면 질책당하기에, 간자들은 영주들이 바라는 정보를 얻으려고 무리를 하다가 포박당하거나, 보고 내용을 사실이 아니라 고용주가 원하는 방향으로 각색하고, 나아가서는 완전히 날조하는데 이르렀다.
그 결과 복수의 경로에서 올라오는 정보는 정합성이 없는 지리멸렬한 것이 되어, 간자들을 더욱 질책한다는 악순환에 빠져들어 사방이 꽉 막힌 상태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실제로 당초에 간자들이 보고한 내용은 사실을 담고 있었다. 노부나가는 바둑이나 장기 같은 놀이에 힘을 쏟고 있었다.
전국 시대, 바둑이나 장기는 규칙이 통일되지 않고 몇 가지 유파가 존재하고 있었다.
노부나가는 그것들을 연구하고 통합하여 새로운 노부나가 독자적인 규칙을 제정, 오와리 바둑(尾張囲碁), 오와리 장기(尾張将棋)라는 규정서를 만들어 퍼뜨렸다.
그 때 시즈코로부터도 조언을 들었다.
시즈코가 현대에 있을 때는 마을의 노인 상대로 바둑이나 장기 상대를 했었기에 대략적인 규칙은 파악하고 있었다.
끊임없이 이어져 낭비를 없애고 세련된 현대의 규칙과, 거칠면서도 특색이 있는 전국시대의 규칙을 통합하여, 거기서 노부나가에 의해 합리적이라고 판단된 규칙을 취사선택했다는 배경이 존재했다.
주위에서 보면 여흥에 열을 올리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노부나가는 이러한 놀이들에 가능성을 보고 있었다.
그것은 '상상력'을 단련하는 것이었다. 노부나가는 지금까지를 되돌아보며, 유능한 인재는 '상상력'이 풍부하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이 '상상력'을 단련하는 것은 보통 노력으로는 되지 않는다. 간단하게 '상상력'을 손에 넣을 수 있다면, 이 세상은 유능한 인재로 넘치게 된다.
어떻게 해야 할까, 라고 생각했던 노부나가가 착안한 것이 놀이였다.
그는 바둑이나 장기 등의 놀이를 이용하여 부하들의 '상상력'을 강화하려고 생각했다.
놀이라면 자신에게 주어진 책무에 긴장하지 않고 본인이 즐길 수 있다.
또 외부에는 힘만 쓸 줄 아는 무식한 무사가 아니라, 예능을 진흥하는 문화인으로 보이게 된다는 것도 이유 중 하나였다.
사실, 노부나가가 놀이에 힘을 쏟는 이유를 어떤 간자도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다.
그것은 퍼뜨릴 대상을 자신의 신하로 한정시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노부나가는 상인이나 백성에게까지 직접 정한 규정서와 기구를 배포하고, 게다가 누구나 참가할 수 있는 놀이 대회를 빈번하게 주최하여, 우승자에게는 장려금과 함께 명인의 명예를 주었다.
"상대가 누구이든 전력을 다하라. 그것이 상대에 대해 경의를 표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승산이 없다고 해서 상대를 멸시하지 마라. 그것은 지금까지의 노력을 무위로 돌리는 행위이다. 그런 어리석은 자가 있다면 앞으로 나와라. 내가 직접 철권제재(鉄拳制裁)를 내려주마!"
놀이대회를 개최할 때, 노부나가는 모두에게 들으라는 듯이 말했다.
결코 영주로서의 위엄을 무너뜨리지 않고, 그러나 의젓하고 개명적(開明的)인 문화인처럼 행동했다.
"신분의 귀천은 따지지 않는다. 재주 있다 생각하는 자는 앞으로 나서라"
그런 놀이 붐에 휩싸인 오와리에, 다양한 가축을 찾아 여행을 떠났던 미츠오들이 돌아왔다.
하지만 그는 가축 이외에, 시즈코들의 예상 밖의 것을 가지고 돌아왔다.
거북한 분위기가 방을 지배했다.
미츠오는 확실히 류큐(琉球) 재래종의 돼지를 원종으로 하는 아구를 가지고 돌아왔다. 뭘 했는지 모르지만 류큐 국의 왕으로부터 하사품까지 받아왔다.
산양도 입수했으니 그는 대성공을 거두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와 동행했던 큐지로(九次郎)도 맹종죽(孟宗竹)이나 작물의 씨앗을 입수하여, 이쪽도 목적을 달성했다.
류큐 국으로부터의 하사품에 놀라기는 했지만 문제시할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런데…… 이쪽 분은 누구신가요?"
문제는 갔을 때보다 사람이 두 명 추가된 점이다.
한 명은 화려한 옷을 입은, 보기에도 어린 소녀였다. 그리고, 또 한 명은 30대가 되기 직전의 여성으로 태도를 볼 때 그녀의 시녀로 생각되었다.
처음에는 노예라도 사들인건가 하고 엄청나게 실례되는 생각을 한 시즈코였으나, 들어보니 나이가 8세라는 소녀는 행동에 기품이 느껴져, 아무리 봐도 백성처럼은 보이지 않았다.
"이야기하자면 길어집니다만"
"긴 이야기 따위 필요없다. 간결하게 요점만 말해라"
미츠오의 말을 아시미츠가 용서없이 잘라버렸다.
"류큐에 가서 술내기(음주량을 겨루는 대회)를 하고 사츠마(薩摩)에 돌아왔더니 붙잡혀서, 석방을 걸고 술내기를 해서 이겼더니, 어떻게 된 건지 공녀님을 아내로, 라는 말을 들어서 곤란한 상황입니다"
판단하기 곤란한 내용이었다. 애초에 술내기를 한 이유를 전혀 알 수 없었다.
"미츠오…… 너 알콜에 강하다고 해서, 술내기를 해서 어린애를 받겠다고 생각한 건 아니겠지?"
"아저씨, 암만 그래도 그건 아니지―"
"잠깐 기다려 주십시오. 어째서 제가 그런 생각을 했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엄청난 오해입니다"
"그럼, 어째서 술내기를……? 너는 알콜 분해능력만큼은 명예 러시아인의 칭호를 받았잖나"
"저쪽이 제의해 온 거라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 애초에 붙잡힌 제게 그런 승부의 결정권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아니, 승부를 유리하게 끌어가려고 생각했다던가?"
아저씨들(미츠오, 아시미츠, 고로)의 대화를 들으면서, 그녀를 어떻게 해야 할지 시즈코는 팔짱을 끼고 고민했다.
이윽고 생각하는 것을 포기하고, 아시미츠와 고로의 태클에 곤란한 표정으로 반론하고 있는 미츠오에게 이렇게 말했다.
"제 2의 부부생활을 즐겨 주세요"
끼어들면 쓸데없는 소동에 말려든다. 그걸 이해한 시즈코는 시선을 회피했다.
미츠오는 울 것 같은 얼굴로 아시미츠를 보았다. 순간, 그도 또한 미츠오의 시선에서 도망쳤다.
고로, 나가요시, 케이지, 사이조는 말할 필요도 없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아니, 저한테 말씀하셔도…… 시마즈(島津) 가문에서 정식으로 처로 삼아달라고 한 거잖아요. 그러면 포기하고 부부가 되세요"
"그렇다미츠오두번째인생이다힘내라"
"맞아맞아아저씨"
엄청나게 성의없는 태도로 억양없이 말하는 아시미츠와 고로.
자기 편이 없음을 이해한 미츠오는,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한숨을 쉬었다.
가엾지만 포기하게 할 수밖에 없다. 애초에 정식으로 처로서 출가해 온 그녀를 그냥 돌려보내면 시마즈 가문의 체면을 뭉개는 것이 된다. 그렇게 되면, 아무리 미츠오가 시마즈 가문의 호감을 샀다 해도 그냥 넘어갈 수 없게 된다.
"……일단 소개하지요. 그녀는 츠루히메(鶴姫), 그리고 시녀 분은 시바(芝) 씨입니다"
소개받은 두 사람이 깊이 고개를 숙였다.
결국 미츠오의 장가 소동으로 금후의 방침을 의논할 기회를 놓친 일동은, 천천히 이야기를 중단했다.
미츠오에게는 미안하지만, 그는 아구를 늘리는 일에 전념하게 하기로 했다.
문제를 뒤로 미룬 것 뿐이지만, 지금의 미츠오에게는 그 편이 좋았는지, 바쁜 일도 웃는 얼굴로 받아들였다.
낙농의 문제가 해결된 시즈코는, 어떤 것의 양식에 착수했다.
시즈코의 양식, 그것은 자라였다.
작년에 노부나가가 유일하게 호의적인 평가를 내린 것과, 밭에 서식하는 우렁이가 이유였다.
현대 일본에서도 왕우렁이(ジャンボタニシ)라는 이름으로 해충으로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애플 스네일(apple snail, スクミリンゴガイ)이라는 우렁이가 있다.
다행히 왕우렁이는 1981년에 대만에서 일본으로 식용을 목적으로 인위적으로 수입된 후에 야생화되어 수전(水田) 작물에 가해성을 나타낸 침입유해동물(侵入有害動物)이다.
즉, 전국시대에 왕우렁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우렁이 자체는 존재했으며, 간 디스토마의 중간 숙주인 쇄쨈물우렁이(マメタニシ) 등은 있지만, 기본적으로 진흙탕 밑바닥에 축적된 쓰레기 등을 먹는 고마운 생물이다.
기본적으로는 유익한 동물이지만 어떻게 된 것인지 오와리에서는 수전이나 용수로에 우렁이가 대량 발생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전국시대에 고무장화 같은 것을 바랄 수도 없으니, 논밭에서 작업할 때 다리를 물리는 우렁이는 농민들의 공통의 적이기도 했다.
식용으로 할 수도 있지만, 전술한 대로 기생충이 있을 가능성이 있기에 처리에 애를 먹고 있었다. 그래서 시즈코는 잡식성인 자라의 먹이로서 이용할 수 없을지 생각한 셈이다.
왕우렁이의 구제에 자라가 방류되어 효과를 본 실적이 있으므로 우렁이는 자라의 먹이로 쓸 수 있다.
현대 일본에서는 자라는 대단히 가치가 높은 것이기에, 논밭에 방류한 자라를 생각없는 사람들이 훔쳐갔다는 사례가 있다.
하지만 전국시대에서는 야생의 자라가 여기저기 서식하고 있다. 다소 포획해도 아무 문제도 없다.
뭣보다 오와리의 지배자인 노부나가로부터 시즈코는 어느 정도의 벌채나 포획의 자유가 허용되어 있다. 근처 강에서 자라나 뱀장어를 포획해서 집으로 가지고 가도 아무도 뭐라 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고지식하게도 사람이 살고 있으면 먼저 상의하고, 포획한 숫자를 보고해서 너무 많이 잡지 않았는지 확인한 다음에 돌아갔다.
그 덕분에 그녀는 근처 마을과도 일정한 교류가 있었으며, 또한 '잘 알 수 없는 것을 긁어모으는 좀 이상한 높은 분' 취급을 받고 있었다.
"자라의 쌍을 20조 확보!
부화장이 필요없어졌으니, 뭔가에 온천의 폐탕(廃湯)을 쓸 수 없을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 자라라면 최적이네. 우렁이 따윈 썩어날 정도로 잡을 수 있으니까"
양계(養鶏)가 오와리, 미노 전토에 퍼진 이상, 시즈코가 특별 부화장을 유지하여 병아리를 계속 생산할 의미는 별로 없어졌다.
쓰지 않는 건 아깝다고 생각한 결과, 폐탕을 이용하여 자라의 양식을 하자고 생각한 것이다.
마침 자라의 산란 시기(6월에서 9월)이라는 것도 이유였다.
양식지(養殖池)는 자라가 도망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바닥을 파내려 한층 깊게 하고, 자라가 일광욕을 할 장소로서 양식지 중앙 부근에 바위터도 만들었다.
그 후에는 기슭 부분까지 진흙을 쌓아올리고 수초를 덮어 자라가 숨을 장소를 확보한다. 자라는 대단히 겁이 많은 동물이라 숨을 장소가 없으면 스트레스를 받는다.
이 스트레스가 장기간 계속되면 자라는 서로 잡아먹어 죽어버린다. 따라서 자라가 숨을 장소를 만드느 것은 자라의 양식장을 만드는 데 있어 중요했다.
마지막으로 산란장인 모래밭, 그리고 그 자리로 이어지는 입구를 설치하면 대략적인 설비는 완성이다.
부화기도 닭처럼 세세한 환경은 필요없고, 흙과 분무기가 있으면 문제없다. 대나무로 만든 분무기가 완성된 지금, 자라의 양식에는 아무 지장도 없다.
치구지(稚亀池, ※역주: 어린 자라를 두는 못)와 육성지(養成池, ※역주: 자라를 키우는 못)의 사이즈를 볼 때, 허용량은 2만 마리 정도라고 추측되었다. 다만 허용량을 오버해도 대책은 있다.
휴경하는 밭에 물을 넣고 지붕을 설치해서 비가 직접 들어가지 않게 하고, 또 울타리 등을 설치해서 자라가 도망치지 않게 한다.
이렇게 하면 그 뒤에는 적당이 먹이를 주는 것만으로 충분히 성장한다. 게다가 부산물로서 논밭에 영양분이 보충된다.
"자라라…… 작년에 먹은 그거지?"
"그렇겠지. 물어뜯는 거북이라…… 그건 악식(悪食) 종류라고 생각했는데, 몸에 스며드는 맛이었지"
"뭔가 바닥이 두꺼운 흙냄비를 대량으로 굽고 있었으니, 본격적으로 늘리려는 거겠지"
시즈코의 작업 풍경을 뒤에서 바라보고 있던 케이지, 사이조, 나가요시 등 세 명. 그들은 이미 자라를 먹는 것 밖에 머릿속에 없었다.
"……머리가 아프네"
하지만 그들이 하는 말은 영 틀린 말은 아니다.
자라는 아미노산, 칼슘, 비타민의 보고(宝庫)로, 게다가 피를 맑게 해주는 효과가 뛰어나다. 오늘날에는 고급 요리로서 일반적으로는 친숙하지 않은 식재료이지만, 에도 시대에는 서민도 먹는 값싼 식재료였다.
하지만 여우나 너구리처럼, 지역에 따라 자라는 요괴 취급받기도 했다.
그리고 자라는 내장이나 피에 기생충이 있다. 따라서 생혈(生血)은 충분히 주의할 필요가 있었다.
"생혈은 소주로 희석해서 정력제로 만드는 것도 방법이겠네. 증류기도 팩티스 덕분에 모양새가 갖춰질 것 같고, 기생충이 무서우니까 내장은 음식물 쓰레기 퇴비로 돌릴까. 남은 고기는 식용, 토별갑(土鼈甲)은 한방약으로 판매하자"
자라의 등껍질을 건조시킨 것을 토별갑(土鼈甲)이라고 한다. 이것을 가루로 만든 것은 한방약으로 취급되어, 정력제나 건강식품의 원재료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도저히 쓸 수 없는 부분은 깊은 구덩이를 파고 생석회와 함께 묻어버리는 것으로 병해충의 확산을 방지하기로 했다.
"하아…… 뒤에서 떠들고 있는 트리오를 위해서 한번 더 자라를 낚아올까"
자라의 맛에 대해 뜨거운 토론을 벌이고 있는 세 사람을 뜨뜻미지근한 눈으로 보면서 시즈코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자라의 산란기는 6월에서 9월로, 1회의 산란에서 10개에서 50개 정도를 낳는다. 평균적으로 한 마리의 암컷이 30개 정도 산란한다는 계산이 되는데, 이것만큼은 개체에 따라 다르다.
번식기는 4월에서 6월이기에, 6월에 포획한 암컷은 이미 교미가 끝난 상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짝이 되도록 수컷도 포획한 이유는, 내년 이후에 수컷이 모자라지 않게 하기 위함과, 번식 육성의 경험을 쌓기 위해서이다.
자라는 생식이 가능해질 때까지 5~6년 걸린다. 즉, 이번에 포획한 짝은 수년간 번식용으로 일해줘야 하게 된다.
운이 좋았는지, 그로부터 얼마 후 사육중인 암컷들이 1회째의 산란을 마쳤다.
환경이 갑작스레 바뀐 영향인지 평균 산란수는 20개로, 알의 합계는 350개 정도였다.
하지만 시즌 중에 2회에서 3회 산란하기 때문에, 1회째의 숫자가 적다고 신경쓸 필요는 없다.
태어난 알은 재빨리 회수할 필요가 있다. 아무리 방조(防鳥), 방수(防獣) 네트를 쳐 놓았다고는 해도 방심은 그물이다. 실제로 알을 노리고 몇 마리 새들이 여기저기 앉아 있었다.
새들 뿐만이 아니다. 뱀이나 소형 포유류도 알을 노리는 경우가 있다. 다행히 비트만 등 대형 육식동물이 영역으로서 경계하고 있기 때문에, 소형 포유류는 거의 다가오지 못했다.
구렁이나 살무사로 대표되는, 사람 사는 마을에도 나타나는 뱀에도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지만, 마을 주위는 담벼락과 해자로 둘러싸여 있어 덤불과 접촉하고 있지 않기에 들어오는 절대수가 적다. 또, 그 난관을 빠져나온 소소의 뱀도 배고픈 병사들의 간식으로 사라졌다.
회수를 마친 알들은 우선 유정란(有精卵)인지 무정란(無精卵)인지 판별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지식이 있으면 간단히 판별 가능하다. 태어난 후 1, 2일이 지나면, 유정란일 경우 알껍질 윗부분이 하얗게 변한다.
이 변색은 '극(極)'이라고 하며, 이게 없으면 무정란이라고 구별할 수 있다.
무정란이나 뭔가의 요인으로 손상된 알을 제외하고, 남은 것은 약 3백 개 정도가 되었다.
알에 나타난 '극'을 위로 하여 직사광선을 피해 보관한다. 닭 부화 환경에서의 경험이 있었던 덕분에, 30도 전후의 부화장을 만드는 데 고생은 하지 않았다.
다만 자라는 습도가 높지 않으면 부화하지 않기 때문에, 부화용의 나무통에 물이끼를 깐다. 직접 알을 적시면 질식사하므로, 주위에 잇는 물이끼를 적셔 습도를 올린다.
온천의 폐탕으로 어느 정도 습도가 유지되고 있기에, 온도와 습도에 관해서는 큰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다.
이후에는 아침과 저녁으로 물을 분무해 주고, 60일 정도 열심히 관리하면 부화, 할지도 모른다.
"잘 되면 9할 정도는 부화하려나. 그렇다고는 해도 이건 첫 시도니까, 그렇게 간단히 될지 모르겠지만…… 뭐, 안 되는 이유를 생각하기보다 어떻게 하면 될지를 생각하는 쪽이 건설적이겠지"
자라의 양식은 순조로웠다. 어디까지나 '자라의 양식'에 대해서는, 이었지만.
문제가 있다고 하면, 시즈코가 새로 시작한 자라의 양식으로 출입하는 상인들의 눈빛이 변한 것과, 노부나가를 필두로 자라를 먹고싶다는 이야기가 나왔다는 점이다.
추측이지만 상인들은 한방약으로서 팔 수 있는 토별갑을, 노부나가는 자라 요리를 목적으로 하고 있는 것이리라.
큐지로 같은 경우에는 감출 생각은 아예 없는지 평소 이상으로 수상한 웃음을 띠며 상담을 해 왔다.
6월 하순.
포획한 자라 중, 암컷은 산란을 고려해서 양식장에 방류하고 수컷만을 식용으로 쓰기로 했다.
며칠 정도 깨끗한 물에 넣어 진흙을 뺀 후, 자라의 조리에 착수했다.
하지만 자라의 조리법 같은 건 모르는 시즈코는, 아시미츠와 미츠오에게 맡기기로 했다.
아시미츠는 전국시대로 돌아온 후 야생의 자라를 낚아서 먹었다. 또 미츠오는 자라 전골을 만들어 본 적이 있어, 조리 방법을 알고 있다고 했다.
"전골을 먹고 남은 맛국물을 쓴 잡탕밥이 절품이니, 무정란을 써서 잡탕밥으로 만들죠"
"흠, 계란에 비하면 작은데 9인분에 9개면 충분한가?"
"너무 많은 알을 넣으면 맛이 흐려지니 이 정도가 딱 좋다고 생각합니다"
"등껍질과 뼈와 다시마의 준비 다 됐어요. 물만이 아니라 술도 넣어서 끓이는 건가요?"
세 명은 척척 움직였다.
이번에 자라 전골과 잡탕밥을 먹는 인물은, 노부나가가 이런저런 이유로 파견해 온 히데요시와 타케나카 형제.
항상 시식을 맡는 케이지, 사이조, 나가요시, 아야, 미츠오의 처인 츠루히메, 시녀인 시바까지 도합 9명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자라 전골은 밑처리부터 시간이 꽤 걸린다. 전원이 모이기 몇 시간 전부터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
"항상 흐르는 깨끗한 물에 사는 자라는 몰라도, 진흙 속에서 양식하고 있으니까요. 냄새 대책으로 술과 생강을 넣어서 끓이는 겁니다"
"과연. 조리용으로 쓰는 청주와 미림은 음양주(吟醸酒)에서 깎여나간 부분으로 담궜으니까 싸게 먹혀서 좋았는데, 탁주였으면 어떤 맛이 되었을까요?"
"상상에 맡기지요"
자라 용으로 만든 흙냄비에 말린 다시마와 얇게 썬 토생강(土生姜)을 깔고, 그 위에 해체한 자라 고기와 쿠죠 파(九条葱, ※역주: 일본에서 품종개량된 파의 일종)를 비스듬히 썬 것을 얹은 후 조리용 술을 붓는다.
"어라, 뚜껑은 안 덮나요?"
"원래는 끓어넘치게 하는 편이 냄새가 잘 빠지므로 뚜껑을 안 덮는 것인데, 아영할 때는 강한 냄새가 퍼지는 건 좋지 않았기에 일부러 뚜껑을 덮었던 겁니다"
여기서부터 아시미츠는 약 20분 동안, 떫은 맛을 제거하고 끓이는 데 전념했다.
이 떫은 맛 제거와, 밑처리 단계에서 등껍질에 끓는 물을 부어 표면에 있는 얇은 껍질을 제거해서 버리지 않으면 진흙냄새나는 전골이 되어버려 식용으로 쓸 수 없다.
아무래도 큰 냄비에 9인분의 자라를 넣었기 때문에 냄비가 새하얗게 물들 정도로 떫은 액체의 양이 많았다.
팍팍 떫은 액체를 제거해가며, 미츠오는 끓임 상태를 보면서 맛을 조절하고, 시즈코는 손님 맞을 준비를 했다.
자라에 불이 들어가면 제철 야채나 표고버섯을 넣고, 간장과 미림으로 맛을 내어 끓인다. 모두 끝나면 국물과 함께 1인분의 흙냄비로 나눠담는다.
다시마와 카츠오부시에 간장과 식초에 유자를 짠 즙을 더해서 하룻밤 재운 것을 꺼내, 소쿠리(笊)로 고형물을 걸러낸다.
현대의 폰즈(ポン酢)를 가능한 한 재현한 것이 이것이다. 이것에 생강을 갈아넣어 깊은 접시에 담는다.
전날부터의 작업을 제외해도 조리 개시로부터 3시간 이상이 지나 있었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시즈코가 그렇게 말함과 동시에 입구를 조용히 열었다.
흙냄비에 뚜껑이 닫혀 있음에도 불구하고 새어나오는 그윽한 향기가 실내를 가득 채웠다. 우선은 생강과 간장의 향기, 이어서 도미(鯛)의 우시오지루(潮汁)를 닮은 어패류의 맛을 방불케하는 냄새가 전원의 식욕을 자극했다.
그것은 평소에 과묵한 태도인 타케나카 한베에조차, 자기도 모르게 침을 삼키며 자라 전골을 응시할 정도였다.
시즈코가 히데요시, 타케나카 형제의 앞에, 아시미츠가 케이지 등 네 명의 앞에, 미츠오가 츠루히메와 시바의 앞에 자라의 양식에 맞춰 조달한 특제 화로에 얹은 흙냄비를 놓았다.
상차림이 끝나자 시즈코, 그 뒤에 미츠오와 아시미츠가 앉았다.
"오와리 명물이 되기를 바라며 만든 자라 전골입니다. 앞접시에 있는 폰즈에 찍어 드셔 주세요. 고기를 다 먹은 후에는 그 국물로 잡탕밥을 만들것이므로, 국물은 남겨놓아 주세요. 그럼, 드셔 주세요"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맨 먼저 케이지가 젓가락을 댔다.
익숙한 손놀림으로 흙냄비에서 자라를 집어올리더니, 폰즈도 찍지 않고 그대로 입에 넣었다.
"크으~~~, 맛있다! 전에 먹었던 자라도 맛있었지만, 이건 더 맛있어!"
자라의 고기는 닭이나 오리(合鴨, ※역주: 청둥오리와 집오리의 잡종)와도 다른 식감이었다.
굳이 말하면 탄력이 강한 닭가슴살이라고 표현하는 쪽이 가깝게 느껴진다.
닭가슴살같은 치밀한 육질이면서 탱글탱글한 탄력이 있어, 씹으면 안에서 지방의 맛이 흘러나온다.
라면 스프로 대표되는 닭껍질 스프의 상탕(上湯)을 끓이면서 잡미를 제거해 깨끗하게 만든 것 같은 모순을 실현하는 자라의 독특한 맛이 고기를 매혹적인 맛으로 승화시켰다.
다른 짐승고기나 생선과도 다른 자라이기에 가능한 맛이 혀에 스며들었다.
천천히 씹어서 우선 고기의 맛을 즐기고, 이어서 스프와 지방과 육즙이 혀 위에서 얽히는 것을 즐기고, 마지막으로 목구멍을 넘어갈 때의 파와 생강의 향기가 약간 남은 냄새를 지우며 입 속에는 맛의 잔재만이 남는다.
고기를 두 입 정도 먹었을 뿐인 케이지였으나, 이미 자라 전골의 매력에 마음을 빼앗겨버렸다.
"폰즈인지 뭔지에 찍지 않아도 대단히 맛있는데, 폰즈와 함께 먹으면 맛의 윤곽이 선명하게 느껴지는군"
엠페러(등껍질 가장자리에 있는 부드러운 부분)에 폰즈를 찍어서 사이조는 그것을 입 속에 넣었다.
농후하고 깊은 맛이 넘치는 스프와 폰즈의 신맛이, 그 자체는 강한 맛을 가지지 않는 나타데코코(nata de coco) 같은 식감과 입 안에서 녹아내리는 젤라틴질과 합쳐져 안카케(餡かけ) 처럼 혀에 길게 남는 맛을 즐길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꿀꺽 하고 목젖을 울리며 그 두 개가 목구멍을 넘어갈 때, 폰즈의 신맛과 자라의 단맛이 깊은 맛이 되어 목구멍에 긴 여운을 남겼다.
마치 요리 프로그램의 나레이터처럼 그럴듯한 해설을 말하면서 케이지와 사이조는 자라 전골을 먹었다.
그에 이끌리듯이 다른 사람들도 젓가락을 들고 자라를 입에 넣었다.
거북의 발인 것이 명백한 고기조각에 주저한 사람도 있었으나, 뜻을 굳히고 한 입 물자마자 눈빛이 변했다.
냄비에 직접 젓가락을 넣는 것에 대한 혐오감도 잊고 다들 자라 전골을 정신없이 먹어댔다.
입 가득 고기를 물로 넘치는 육즙을 즐기고, 다음으로 자라의 스프를 머금은 두터운 표고버섯, 투둑하고 기분좋은 식감과 함께 표고버섯의 맛이 더해진 스프를 뿜어냈다.
충분히 맛을 느낀 시점에서 비스듬하게 썰린 쿠죠 파를 입에 넣었다.
스프를 머금어 부드러운, 그러나 약간 매운 맛을 남긴 아삭아삭한 식감이 기분좋게 느껴졌다.
자라를 주역으로 하고 조역을 확고하게 배치한 전골이 연주하는 다중주. 압도적이 맛에 다들 말수가 적어지고 오직 맛을 느끼는 데 열중했다.
순식간에 비워진 자라 전골이었으나, 그 후에 스프를 사용한 잡탕밥이 기다리고 있었다.
물로 대충 씻은 밥을 넣고, 국물이 탁해지지 않도록 주의하며 한번 더 끓였다. 마지막으로 물에 푼 알을 넣고 화력 조정을 위해 넣은 숯을 꺼내면 끝이다.
"자라 잡탕밥입니다. 나무 숟가락으로 작은 접시에 덜어서 드세요. 취향에 따라 간장이나 폰즈를 뿌려 드셔도 맛있을거라 생각합니다"
다양한 신분의 인물들이 한 자리에 모여 있었기에, 원래는 이런저런 예의범절이 있지만, 시즈코는 일부러 무시하기로 했다.
아니나다를까, 다들 신경쓰지 않고 나무 숟가락으로 작은 그릇에 덜어서 자라 잡탕밥을 입에 퍼넣었다.
땀을 흘리면서도 정신없이 자라 전골과 잡탕밥을 먹어치운 아홉 명이었다.
히데요시의 목적은 노부나가를 대신하여 시즈코의 자라 양식을 시찰하는 것과, 갑작스레 나타난 츠루히메의 취급에 대해서였다.
미츠오에게는 단순히 어린애라도, 히데요시나 타케나카가 볼 때는 타국의 공녀가 멋대로 가신에게 시집오는 일은 국방상의 문제가 된다.
평소라면 미츠오에게는 엄한 벌이 주어지겠지만, 시즈코가 낙농이라는 신규 사업을 시작하는 데 있어 그를 중요 인물로 간주하고 있는 관계로 그게 어려웠다.
"아시다시피 오다 가문과 시마즈 가문에는 연결고리가 없습니다. 그 시마즈 가문의 공녀께서, 저희 나라의 가신과 혼인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그냥 못본체 할 수는 없습니다. 저희들로서는 곱게 사츠마로 돌아가 주시기를 바랍니다"
히데요시들에게는, 츠루히메가 사츠마 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제일이다. 하지만, "네, 그렇군요"라고 츠루히메가 고개를 세로저을리가 없다.
입장상으로는 츠루히메가 불리한 것은 자명하지만, 히데요시는 다투다가 자포자기한 츠루히메가 오다 영토의 정보를 타국에 팔아넘기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이 있었기에 그녀에게 강하게 나갈 수 없었다.
"키노시타(木下) 님께서 우려하시는 바는 이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시마즈 가로 돌아가지도 않을 것이고, 하물며 시마즈 가를 위해 일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물론, 입으로 말해도 신용을 얻을 수 없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 이해하고 있습니다"
"예, 그렇지요. 사츠마와 오와리의 위치를 생각해보면, 당신들이 간단히 시마츠 가문과 연락을 할 수 없는 것은 이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나라를 지키는 사람으로서는, 그 말씀만으로는 안심할 수가 없습니다"
이야기는 평행선이었다.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설전에 종지부가 찍히는 것은 일단 있을 수 없다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뭔가 말하고 싶은 표정을 하고 있는 미츠오였지만, 그에게는 이 대화가 시작되기 전에 한 마디도 말해서는 안 된다, 고 경고했다.
틀림없이 그는 현대 감각으로 츠루히메를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 인식의 차이는, 이 대화에서는 너무 위험하다. 최악의 경우, 미츠오도 공범자로 의심받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뒷배경이 없는 미츠오는, 잘못하면 참수될 가능성도 있다.
"……흠, 이야기는 평행선이군. 거기서 내게 한 가지 생각이 있는데, 어떠할까?"
침묵하고 있던 아시미츠가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상황을 타개할 기회를 바랬는지, 전원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우선 미츠오와 츠루히메는 부부가 되게 하지만, 행동을 감시할 사람을 두도록 하지. 얼마나 감시자를 둘 지는 비밀이다. 만약 감시역이 누군가 조사하거나, 시마즈 가문에 오다 영토의 정보를 유출하거나, 허가 없이 물건을 보낸 경우에는 그에 걸맞는 벌을 받는 것으로. 반대로 말하면, 감시자의 보고가 '문제없음'이라면, 이쪽은 당신들에게 극력 간섭하지 않도록 하지…… 어떻겠나?"
결론으로서는 나쁘지 않다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뭐라 해도 츠루히메가 문제 행동을 일으키지 않고 보통 부부 생활을 하면 그녀의 바람대로 미츠오의 처가 될 수 있다.
그것도 오다 가문에게 공인된 부부이다.
"저는 문제없습니다"
"이쪽도 일단 영주님께 확인할 필요는 있지만, 아마도 문제없다고 생각합니다"
예상대로 양쪽은 아시미츠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노부나가는 자신이 마개조한 오우신 신사(櫻信之社)에 참배했다.
하지만 참배자는 그만이 아니라, 노부나가의 정실인 노히메도 함께였다. 라고는 해도, 그녀는 오기는 했지만 배례할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노부나가의 참배 이후가 본론, 이라는 태도였다.
"하여튼 주군께서는 배례에 시간을 너무 들이십니다. 지금부터 재미있는 일이 벌어질 터인데 애태우는 것이 능숙하시군요"
"……대답은 보류하지. 그보다 오늘은 대체 무슨 용건이냐"
노히메가 의미도 없이 신사에 참배하러 올 사람이 아닌 것을 노부나가가 제일 잘 이해하고 있다.
"후훗, 이번에는 죽은 이와의 회담입니다"
"죽은 이……?"
"자자, 함께 가시죠. 결코 나쁜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렇게 말해도 노부나가는 따라가는 것 이외에 선택지는 없었다.
여기서 물러나면 노히메에게 무슨 소리를 들을지 알 수 없고, 섣불리 영적인 무언가를 겁냈다고 하면 체면에 관계된다.
결과적으로 노히메의 의도대로 움직이고 있는 자신에게 약간 짜증을 내면서 노히메와 함께 걸었다.
폐전(幣殿, 배전(拝殿)과 본전(本殿)을 잇는 부분)에 들어가, 더욱 안쪽에 있는 본전에 도착했다.
폐전이나 본전은 신역(神域)이나 금족지(禁足地)로 인식되고 있어, 타국의 간자라도 그렇게 쉽게는 숨어들지 못한다.
신앙심이 옅은 현대인이라면 몰라도, 전국시대에는 설령 파락호라고 해도 신불(神仏)에 대한 두려움을 품고 있었다.
즉, 타인에게 알리고 싶지 않은 비밀스러운 대화를 나누는 데 신사의 본전은 딱 맞는 장소이다.
"운수소관(運否天賦)에 목숨이 좌우되는 사람에게 신불의 분노를 사는 것은 무엇보다 두려운 일. 그렇기에 비밀의 대화에는 안성맞춤이지요"
그렇게 말하며 노히메는 입구를 거침없이 열어젖힌 후, 본전에 경외심이고 뭐고 없는 태도로 들어갔다.
"……묘한 연극은 필요없다, 고 했을 텐데"
본전 안은 깨끗했다. 그 방의 중심에, 아시미츠가 정장 차림으로 앉아 있었다.
"주군, 소개하지요. 이 신사의 관리인이며, 그리고 죽은 이입니다"
"뭣…… 무슨 의미냐"
"호홋, 성급함은 손해라고 하지요. 우선 앉아 주십시오. 재미있는 이야기는 그 이후입니다"
노부나가는 그 말대로 적당한 장소에 앉았다. 노히메가 이런 태도로 나올 때는 얌전히 말을 듣는 편이 이야기가 빠르게 진행된다는 경험에 의해 나온 반응이었다.
솔직히 앉은 노부나가에게 만족스러운 듯한 미소를 지은 노히메는, 약간 과장되게 팔을 펼치며 말했다.
"그럼 주군, 기억하고 계신지요. 몇 년 전, 쿄에서 일어난 대사건…… 니죠 궁궐 습격 사변(에이로쿠 사변)을"
"음, 기억하고 있다. 내가 쫓아낸 미요시 3인방과, 제일 먼저 항복해 온 마츠나가(松永)가 당시의 쇼군을 해친 사변 아니냐? 그게 어쨌다는…것…?"
거기까지 말한 노부나가는 지금까지의 정보를 정리했다. 하나씩 천천히 조합해가자, 어느 하나의 가설에 도달했다.
그걸 확인하는 듯, 노부나가는 아시미츠의 얼굴을 천천히 관찰했다. 이윽고 가설이 옳다는 것을 이해한 그는, 무거운 한숨을 쉬었다.
"……그래서 죽은 이, 라는 것인가"
스스로 말해놓고도 바보같다고 노부나가는 생각했다. 아니면 헛소리를 내뱉는 사기꾼 종류던가.
하지만 노히메가 그 정도의 거짓을 꿰뚫어볼 수 없는 어리석은 여자가 아닌 것은 노부나가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그 눈…… 틀림없다. 내가 예전에 배알했을 때와 같군. 살아 계셨는가…… 아시카가(足利) 좌근위중장(左近衛中将) 참의(参議) 종3위(従三位) 정이대장군(征夷大将軍) 미나모토노아손(源朝臣) 요시테루(義輝) 님"
에이로쿠 2년(1559년 3월 10일)에, 겨우 오와리를 통일해가고 있던 노부나가는 백 명 정도의 군세를 이끌고 상락했다.
이것은 노부나가의 의사가 아니라, 쇼군의 초빙을 받아 배알하러 갔다고 하는 편이 옳다.
무로마치 막부 쇼군의 권위는 요시테루의 수완에 의해 유지되고 있었기에, 노부나가는 요시테루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금품을 바쳤다.
당시, 요시테루는 오와리 수호(守護) 시바(斯波) 가문의 저택을 개수한 니죠 저택에 살고 있었다. 그곳에 노부나가가 출사(出仕)하는 것은 참으로 기묘한 운명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어쨌든 당시의 노부나가의 재력으로는 돈을 바치는 것이 한계였다. 그 댓가로서 오와리를 지배하는 것을 허락받았다.
쇼군 가문의 승인을 대의명분으로 삼은 노부나가는 귀국한 후, 오와리 통일의 마무리에 들어갔다.
"오다 님의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그 때, 그 장소에서, 그 남자는 죽었지. 이곳에 있는 것은, 그 남자의 찌거기라 할 수 있는 존재다"
"하지만 너는 말을 못하는 시체가 아니라, 말을 할 수 있는 죽은 이. 그렇다면, 네가 가진 힘을 내 주군을 위해 써 주어야겠다"
"……그건 상관없다. 하지만 하나만 진언하지. 최신예의 병기를 개발해도, 언젠가 현물을 도둑맞아 복제되는 게 뻔하다. 나로서는 병기 개발보다, 간접적으로 상대를 무력화, 쇠퇴시키는 전략을 노리는 편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건 결코 과장이 아니다.
화승총도 처음에는 두 자루였지만, 겨우 수십년 만에 일본은 세계 유수의 화승총 보유국가가 되었다.
병기 개발은 숨바꼭질이다. 아무리 극비 사항으로 하더라도 비밀이라는 것은 반드시 새어나간다.
전장에서 사용하는 이상 파손되거나 손실되고 노획될 수 있다. 도둑맞은 정보를 바탕으로 어느 정도 떨어지는 복제품 같은 병기가 만들어진다.
시험 제작해서 시험 사용하고 세련되게 다듬어져, 최종적으로는 동등하거나 그 이상의 물건이 만들어지는 것이 예상사이다.
새로운 살육병기의 개발은, 그것을 뛰어넘은 살육병기가 개발되는 효시가 되는 것이다.
"호오, 그렇다면 어떠한 방법으로 해결할 것이냐?"
"……흠, 겨우 이야기가 이해되었다. 그럼…… 아시미츠여, 너는 어떻게 적을 쓰러뜨릴 것이냐?
가상적의 예를 들 거라면, 이세(伊勢)의 키타바타케(北畠) 가문을 들어보아라"
말 그대로 간신히 머리로 이해한 노부나가가 평소의 태도를 되찾았다.
"첫번째는 이미 진행중이다. 수하의 간자를 써서, 이세에서 마진(麻疹, ※역주: 홍역)을 의도적으로 유행시켰다. 오다 님도 노히메 님도, 시즈코로부터 자세히 들었겠지. 마진에 대한 치료방법을…… 하지만 그것을 알고 있는 것은 극소수이다"
"과연. 놈들은 마진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지. 그걸 약점으로 삼아 공격해 들어간다는 이야기인가"
"그 다음에는 논밭을 망가뜨린다. 그렇다고는 해도 불타우는 것이 아니다. 밭의 흙을 파괴하여 의도적인 흉년을 일으킨다"
"밭의 흙을 파괴한다고?"
"이건 시즈코가 잘 알고 있지만, 작물이 훌륭하게 성장하려면 흙의 상태가 대단히 중요하지. 그 애가 쌀의 육모(育苗)를 백성들로부터 분리시켜, 다 자랐을 때 나눠주는 방식을 취한 건 그 흙 때문이다"
작물을 키우려면 그냥 흙에 씨앗을 뿌리면 되는 것은 아니다.
토양 만들기라는 말도 있는 것처럼, 키울 작물에 최적화된 토양 분석을 해야 한다.
자주 거론되는 토양pH(※역주: 토양 산도)도 작물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예를 들면 쌀은 육모중에는 ph가 5.0이나 5.5가 최적이라고 한다.
하지만 수전(水田)에서 키울 때는 ph는 6.0에서 6.5로 약산성이 최적이 된다.
그 밖에도 보수성(保水性)이 높고, 배수가 잘 되며, 통기성이 좋고, 보비력(保肥力, ※역주: 땅이 비옥함을 유지하는 힘)이 있을 것 등, 농업에서 흙을 만드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작업이다.
이 토양 만들기의 성패에 따라 작물의 수확이 크게 좌우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애초에 시즈코가 쌀의 육모를 백성들에게서 분리시킨 것은, 토양 만들기 뿐만 아니라 우량 개체를 선별하기 위해서와, 백성들이 잘못해서 볍씨를 먹어도 영향이 없도록 하기 위함이다.
"백성들은 깨닫지 못하지. 자신들의 발 밑에 있는 흙에 수작이 부려져 있다는 것을. 이것은 기근의 영향만큼 장기적이지는 않기에, 싸움을 시작할 해에 시행하는 것이 좋겠지"
기근의 영향이란, 흉작이 일어나면 수확량이 줄기 때문에 식량의 가격이 올라간다.
먹을 것을 얻는 것이 어려워지면, 사람들은 적은 식량을 두고 싸운다.
한편, 백성들도 먹을 것이 줄어들기에, 최악의 경우 볍씨까지 먹어버린다.
그 때문에, 이듬해는 더욱 수확량이 감소해 버린다.
이 악순환에 빠져들면 식량은 만성적으로 부족해지고, 살기 위해서는 타국에서 약탈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게 된다.
전국시대, 아니, 근대에 이르기까지 세계의 모든 전쟁은, 기근에 의한 부(負)의 사이클에서 발생한 식량 부족을 메우기 위한 식량 쟁탈이 그 시작인 것이다.
"그럼, 잊고 있었는데 내 조건을 말하지. 그렇다고는 해도 대단한 것은 아니다. 그 애를 데리고 행군할 경우, 잡병들에게 약탈을 시키지 말도록. 그 애는 전장에서 약탈이 일어나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런 추한 쓰레기들의 악의를 보일 필요는 없다. 알고 있다고는 해도, 실제로 보지 않는 편이 좋은 경우도 있지"
"시즈코를 데려가지 않았을 경우에는?"
"그 경우에는 상관하지 않겠다. 쓰레기놈들에게 좋을대로 하게 하라"
아시미츠의 조건은 대단히 알기 쉬웠다.
그는 시즈코가 관여되는 일에는 참견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아무 상관도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자신은 비정하다고 할 수 있는 수단을 취하는 경우가 많았다.
"호홋, 과연 아시미츠. 너는 정말로 시즈코가 소중한 것이구나"
"그 애에게는 목숨과, 그리고 마음을 구원받았다. 나는 이미 죽은 자이지만, 이 몸이 썩어 문드러질 때까지, 그 애를 위해 이 몸을 쓰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노히메의 약간 놀리는 듯한 말에, 아시미츠는 지극히 진지하게 대답했다.
7월 상순, 시즈코는 창고에서 도자기 항아리를 꺼내 집으로 옮겼다. 안에 들어있는 것은 흑설탕으로 만든 흑당매실주(黒糖梅酒)였다.
시즈코가 매실주를 만든 이유는, 술을 즐긴다기보다 약용주(薬用酒)로서의 성격이 강하다.
매실주에는 피로회복, 혈류(血流)의 개선, 위장의 상태 개선을 통한 식욕 증진, 흑설탕이나 매실에 원래 포함되어 있는 비타민, 미네랄, 칼슘 섭취 등의 효과가 있다.
"뭐 매실장아찌를 만들고 남은 것으로 만들었으니 맛은 좋지 않을지도 모르겠네"
매실장아찌를 담글 때 빠질 수 없는 적자소(赤紫蘇)는 2개월 정도면 수확할 수 있기에 대량으로 준비했지만, 매실에 비해 적자소가 부족하여, 매실만 조금 남아버렸다.
이 때 담근 매실장아찌의 일부가 노부나가에게 헌상되었고, 다시 노부나가는 우에스기 켄신(上杉謙信)에게 보냈다.
시즈코는 몰랐지만 그녀가 만든 매실장아찌는, 진중(陣中)의 술안주는 매실장아찌, 라는 켄신이 대단히 마음에 들어하여 감사장을 보냈을 정도의 품질이었다.
그 매실장아찌의 비결은 벌꿀을 섞어 마일드하게 마무리한 것에 있다.
전국시대의 매실장아찌라고 하면, 염장(塩蔵)되어 바싹 마른, 대단히 짠 것이다.
한편, 시즈코가 담근 그것은 소금을 줄이고 살균 작용이 강한 벌꿀을 넣어서, 수분을 남긴 상태에서의 저장을 가능하게 했다.
물론 두툼하고 부드러운 매실 과육에 짠맛과 신맛, 단맛이 자아내는 부드러운 맛의 조화에는 매실장아찌에 일가견이 있는 켄신조차 저항할 수 없었다.
그 소문이 순식간에 퍼져나가, 시즈코의 매실장아찌는 눈 깜짝할 사이에 무장들 사이에서 인기 상품이 되었다.
"금년에는 얼마나 만들면 되려나. 일단 배달되는 매실을 순차적으로 매실장아찌로 만들고는 있지만 아무래도 양이 너무 많아……"
백화충제국(白花虫除菊)을 사용한 모기향을 만들고 있는 관계로, 매실장아찌를 만드는 레시피를 적어서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싶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매실장아찌는 군수품인 점, 그리고 적자소의 취급이 어렵다는 것 때문에 간단히 외부에 위탁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집에 돌아온 시즈코는 흑당매실주의 완성도를 확인했는데, 술맛을 모르는 그녀에게는 단순히 흑설탕 특유의 냄새가 난다는 정도밖에 알 수 없었다.
케이지에게 마시게 해보니 반응은 좋았지만 "많이 마실 술은 아니다"라는 평가를 받았다. 술을 많이 마시는 쪽이 좀 그런게 아닌가 하고 생각했지만, 그건 굳이 지적하지 않은 시즈코였다.
휴식중인 병사들에게도 시음시켜보았으나, 케이지와 마찬가지로 미묘한 평가들 뿐이고 좋은 평가는 받지 못했다.
그 결과, 시즈코는 매실주를 술이 아니라 약탕이라는 형태로 취급하기로 생각했다.
매실주는 식전에 좋다고 한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식전주(食前酒)라는 개념이 없기에 모양새가 좋지 않다고 생각한 시즈코는 매실주를 '매약탕(梅薬湯)'이라는 별명을 붙이고 술이 아니라 약이라는 인상을 전면에 강하게 내세웠다.
실제로 매실주를 뜨거운 물로 희석한 것은 적정량을 마시면 몸에 좋고, 겨울에는 알코올의 효과로 몸이 따뜻해진다.
매일 마시면 매실주에 중독되는 것을 걱정하여, 시즈코는 여름에만 2, 3일에 한 번, 그 이외에는 1주일에 1, 2회 정도로 하려고 생각했다.
현대라면 몸이 안 좋아져도 병원에 다니면 충분하지만, 의료 시설이 충분치 않은 전국시대에서는 몸이 안 좋아지기 전에 예방할 필요가 있다.
완벽한 몸 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항상 완벽에 가까운 상태를 유지하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나 혼자서 마시기에는…… 아, 맞다"
매실주의 처리방법을 생각하던 시즈코는, 얼마 전에 노히메에게서 어떤 의뢰가 왔던 것을 떠올렸다.
내용은 '오이치(お市)의 산후의 회복이 썩 좋지 않구나. 뭔가 좋은 것은 없느냐?'라는 것이었다.
편지 내용을 볼 때 챠챠(茶々)의 출산인가 하고 생각한 시즈코는, 매실주가 영양보급에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원래는 매실주 등의 알코올을 산후에 섭취하면 모유에 알코올이 포함되는 영향이 발생하지만, 전국시대에는 유모가 아기의 육아를 담당하기에 문제되지 않는다.
뜨거운 물 또는 찬물로 희석해서 저녁식사 후에 한 잔 마시면 좋다, 라는 메모를 첨부해 합계 다섯 항아리를 노히메에게 보냈다.
다섯 개로 한 이유는, 노히메 자신도 마시고 싶다고 말할 것을 고려한 것이었다.
"뭐, 술이니까 그렇게까지 마음에 들지 않겠지. 아, 맞다. 슬슬 스낵파인이 수확 시기려나"
1년 반에 걸쳐 키운 스낵파인이 수확 시기가 된 것을 시즈코는 떠올렸다.
파인애플은 심은 후 수확까지 1년에서 1년 반, 늦은 포기는 2년 가까운 시간을 필요로 한다. 이번에는 오와리 지방의 날씨가 좋았던 덕분에, 1년 4개월 정도에 수확이 가능해졌다.
참고로 이것은 스낵파인의 재배기간으로, 파인애플의 품종에 따라서는 심은 후 열매를 맺기까지 3년을 필요로 하는 품종도 있다.
"흡아(吸芽) 같은게 있으면 늘릴 수 있으니, 그런 것도 체크해야지"
파인애플은 한 번 열매를 맺은 포기는 다시 열매를 맺지 않게 된다.
그럼 어떻게 포기를 늘리느냐 하면, 크라운(冠芽)이라고 불리는 상부의 잎 부분을 사용한 꺾꽂이 싹(挿し芽), 열매를 맺는 줄기 아래의 이파리 부분에서 자라는 '흡아', 열매를 맺는 줄기에서 자라는 '곁순(えい芽)', 지하경(地下茎)에서 자라는 '괴경순(塊茎芽)'을 채취하여 이것을 재배하여 숫자를 늘리는 것이다.
다만 품종에 따라서는 흡아를 남겨놓으면 다음 열매를 맺는 경우도 있다.
"으―음, 역시 없네. 현대에서도 일반 농가는 모종을 얻는 데 고생하니까. 역시 토막(輪切り) 증식법(増殖法)에 도전할 수밖에 없나"
괴경순은 모종에 적합하지 않고, 흡아나 곁순은 반드시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다.
모종을 늘린다는 이유로 크라운을 회수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그래서는 모종이 전혀 늘지 않는다.
운에 맡기는 흡아나 곁순으로는 이후에도 모종을 입수하는 데 불안을 남기게 된다. 그래서 일반농가에서는 익숙하지 않은 '토막 증식법'을 시즈코는 채용하기로 했다.
원래 열매를 맺은 후의 파인애플은 밭에 끼워넣는(漉き込まれる, ※역주: 무슨 뜻인지 정확히 알 수 없음) 형태로 파기된다.
하지만 골드 배럴처럼, 품종의 특성에 따라 모종이 되는 크라운, 곁순, 흡아의 발생 숫자가 극단적으로 적은 종류도 있다. 그러한 품종의 모종을 늘리는 방법이 토막 증식법이다.
(※역주: 파인애플 관련한 용어 및 파기에 관한 표현은 검색해도 걸리지 않는 내용이 많아 정확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토막 증식법은, 열매를 맺은 후에 파기되는 파인애플의 모경(母茎)을 회수하여 잎사귀와 뿌리를 잘라낸 후, 2cm에서 4cm로 토막친다.
이것을 살균제에 담가 살균하고, 토막친 모경을 연화재배(伏せ込み, ※역주: 정확하지 않을 수 있음)하여 싹을 키운다. 그 후에는 성장한 삭을 채모하여 가식(仮植, ※역주: 임시로 심음)하여 모종으로서 사용하면 된다.
이 방법을 쓰면 한 포기에서 모종을 4, 5개, 적절한 온도와 시비(施肥)의 관리가 이루어지면 한 포기에서 10개 이상의 모종을 얻는 것도 꿈은 아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전국시대에 완전한 온도 관리는 불가능하므로, 한 포기로 모종을 몇 개나 만들 수 있을지는 신만이 아시는 일이다.
"뭐, 포기는 적으니까 오늘은 수확만 하자. 으―음, 파인애플은 오랜만이네. 게다가 비싼 스낵파인…… 이건 맛이 기대되네"
"호오. 여전히 그런 걸 몰래 먹는 것이 네 취미이냐?"
순간, 시즈코는 파인애플을 껴안은 채로 움직임이 멎었다.
녹슨 기계처럼 머리만 움직여 뒤를 보니, 짓궂은 장난이 성공했다고 말하는 듯한 표정의 노부나가와, 파인애플을 흥미깊게 보고 있는 사키히사가 있었다.
"……저어, 별 상관 없는 일을 여쭙겠는데, 어째서 고노에 님께서 이곳에……?"
"내가 초대했다. 뭔가 문제라도 있느냐?"
"아뇨, 전혀 없습니다. 하지만 호위를 대동하지 않으시는 건 좀 위험한 게 아닐까…… 해서"
"신경쓸 것 없다. 겨우 간자 따위가 내 목을 취하는 것 따위 천 년은 이르다. 그래서, 그 삐죽삐죽한 흉악한 몰골의 그것은 무엇이냐"
"(아, 이건 넘어가주지 않는 거구나)어흠…… 그, 이것은 남만의 과일로 파인애플이라고 합니다. 한자로 쓰면 봉황(鳳凰)의 봉(鳳)에 배 이(梨) 자를 써서 봉리(鳳梨)라고 부릅니다"
파인애플은 일본에 전래된 시기가 19세기 초로, 대만이 17세기였던 것에 비하면 상당히 늦다.
게다가 도쿄의 오가사와라 제도(小笠原諸島)의 치치지마(父島) 섬에서 재배된 기록은 있지만, 동시에 남만 무역으로 나가사키(長崎)에 도입된 기록도 남아 있다.
참고로 스낵파인의 원산지는 대만이며, 대만에서는 대만4호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파인애플로서는 파인애플 과의 보골 종에 속한다.
"호오, 그래서?"
그렇게 중얼거리며 노부나가가 좌우의 주먹을 맞대기 시작했다. 자세한 설명은 필요없다, 는 사인이었다.
"그…… 이렇게 잡아뜯어서 먹을 수 있습니다"
스낵파인의 특징은 일반적은 파인애플보다 작고, 과육 사이의 틈이 크며, 신맛이 적고, 단맛이 강하며, 향기가 강하고, 중심 부분이 부드럽고 달기 때문에 그대로 먹을 수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소과(小果)를 손으로 뜯어먹는 것이 가능하다는 점 때문에 스낵(간식) 감각으로 먹는 파인애플이라는 것을 줄여서 스낵파인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달군. 하지만 강한 단맛 속에 적당한 신맛이 있구나"
"단맛과 신맛의 조화, 그윽한 향기, 이건 좋은 과일이군요"
두 사람은 감상을 늘어놓으며 스낵파인의 소과를 뜯어먹었다.
결국, 시즈코의 손에 남은 것은 크라운 뿐이었던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취미번역 > 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카테고리의 다른 글
060 - 1569년 8월 하순 (13) | 2018.06.17 |
---|---|
059 - 1569년 7월 중순 (12) | 2018.06.14 |
057 - 1569년 5월 상순 (9) | 2018.06.12 |
056 - 1569년 5월 상순 (14) | 2018.06.10 |
055 - 1569년 3월 상순 (9) | 2018.06.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