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에이로쿠(永禄) 11년, 상락(上洛)
042 1568년 1월 초순
전국시대의 무사들의 정월 풍경은 현대인의 그것과 별로 다르지 않다.
친척이나 동료들과 함께 정월의 첫 참배에 가거나 술을 마시거나 하며 정월을 만끽한다.
다른 구석을 들어보면, 주군에게 인사를 드리기 위해 등성하는 것. 그리고, 그것이 끝나면 중신이나 다른 가신들에게 인사하러 가는 것이다.
시즈코의 마을에 있는 케이지와 나가요시도 예외가 아니라, 일시적으로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사이조만은 집으로 가는 게 아니라 아타고곤겐(愛宕権現, ※역주: 일본의 신 중 하나)에게 참배하러 가기를 원했다.
사이조가 젊었을 때부터 아타고곤겐의 독실한 신자인 것을 알고 있는 시즈코는 아무 것도 묻지 않고 그것을 수락했다.
그리고 시즈코는 세 명에게 어느 정도의 준비금과 먹을 것을 건네주었다. 가는 길에 곤란한 일이 있을 경우를 위해서라고 생각한 것인데, 정작 세 명은 과한 배려에 곤혹스러워했다.
시즈코로부터의 배려를 사양할까 생각했던 세 명이었으나, 최종적으로 '시즈코니까'라는 걸로 납득하고 감사히 받기로 했다.
한편 시즈코는 작년과 별로 다르지 않아, 마을 사람들과 정월의 연회를 열고, 이틀째에 주군인 노부나가에게 인사하기 위해 등성여, 그대로 술자리에 참가한다.
금년에는 'NO 음주'를 결심하고 있었기에, 술을 마시고 추태를 보이는 일은 없었다.
저번과 달리 다소 말을 걸어오는 인물들도 늘어났지만, 오다 가신들 중에서는 아직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시즈코였다.
그렇다고는 해도 본인은 이름을 팔 생각이 없었기에, 무명 상태로도 딱히 곤란한 점은 없었다. 필요한 권한이나 재료 등은 아야를 통해서 손에 넣을 수 있으니, 생활에 딱히 곤란한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술자리에 참가하였으면서도 한 방울도 마시지 않고 귀가길에 오른 시즈코는, 집이 조용한 것에 약간 쓸쓸함을 느꼈다.
그 쓸쓸함을 달래려고, 시즈코는 마지에 다양한 기구를 기억해내어 스케치했다. 조류는 다방면에 걸쳐서, 조리 기구나 토목공사 도구 및 농기구, 측정 도구 등이다.
기구의 스케치를 하고 있는 이유는 조금 복잡하다.
첫 해, 둘째 해와는 달리 시즈코는 생활에 어느 정도 여유를 가지기 시작했다. 여유가 생기면, 지금까지 바빠서 불편하다고 느낄 여유가 없었던 것들이 눈에 띈다.
특히 눈에 띈 것이 일용품이었다. 전국시대는 무기에 철광류를 소비하고 있었기에, 생활도구가 극히 빈약하다.
약한데다가 사이즈가 통일되어 있지 않다. 이래서는 지금은 괜찮아도 천하통일 후에 곤란해질 것은 확실하다. 따라서 일용품류를 재현할 필요가 있다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실은 돌가마를 만든 것도, 오븐 레인지의 대용품을 재현하기 위해서라는 생각으로 만든 것이 이유 중 하나였다.
시즈코는 기억나는 모든 일용품을 스케치했다. 이 때, 단위는 MKS(※역주: 미터법) 단위를 기준으로 했다.
원래는 이 이야기와 동시에 오다 영토에 일제히 MKS 단위 계열을 도입하려고 했으나, 대규모의 규격 통일에 의한 장인들의 혼란이 문제시되었다.
의논한 결과, 시험적으로 하나의 마을에서 도입을 한다는 형태로 결정이 났다.
어떤 이유로 새로운 마을의 구상을 하고 있던 시즈코는 마침 잘됐다고 생각, 계획에 편승하는 형태로 생활도구 계열의 대장장이, 길쌈 장인, 이미 도자기는 유통시키고 있었지만 도자기 장인, 대나무나 목재를 가공할 수 있는 목공 장인을 모집했다.
메인은 대장장이로, 길쌈 장인을 포함한 다른 장인들은 미안하지만 덤이었다.
대장장이는 크게 나누면, 화승총 등 무구를 만드는 도공 대장장이와 농기구 등을 만드는 생활 대장장이의 두 종류가 있다.
도공 대장장이는 각지의 영주들이 데리고 있지만, 생활 대장장이에 관해서는 도공 대장장이보다 아래 급으로 취급되고 있었다.
다만, 에도 시대가 되자 도공 대장장이와 생활 대장장이는 입장이 뒤바뀌어, 먹고살기 위해 도공 대장장이는 생활 대장장이에게 가르침을 청하게 된다.
하지만 지금은 전국시대, 따라서 생활 대장장이는 적지 않을까 하고 시즈코는 우려했다. 하지만 그 걱정은 필요없었다.
겨우 이틀만에 어느 직종이고 규정 인원수를 채웠던 것이다. 당연하다. 지금의 오다 영토는 돈과 물품이 넘치는 장소인 것이다.
다른 나라보다 장사나 일을 시작하기 좋은 환경이기에, 필연적으로 장인들이나 상인들이 유입되기 쉽다.
물론, 그 반대로 장인들이나 상인들이 다른 나라로 유출되는 일도 벌어지고 있지만 미미한 숫자에 그치고 있다.
따라서 오다 가문이 장인을 모집하고 있다, 라고 하면 장인들이 쇄도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너무나 숫자가 많았기 때문에, 선발 시험을 실시해서 규정 인원수까지 줄여야 했지만, 덕분에 실력이 좋은 장인들을 다수 보유할 수 있었다.
명목상으로는 오다 가문 소속의 기술집단이지만, 실제로는 시즈코 휘하의 기술자 집단이었다
일부러 시즈코가 기술자 집단을 거느린데는 이유가 있다.
시즈코에게서 농업 기술의 계승을 받은 백성들은, 지금까지 경험해 본 적이 없을 정도의 수확물을 얻을 수 있었다.
처음에는 기뻐했지만, 그 상식을 벗어난 수확량이 큰 문제로 변했다. 그것은 수확량에 걸맞는 저장 시설이 갖춰져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대량의 작물을 한번에 손에 넣은 백성들은 가족의 소비 및 만일을 위한 비축을 아득히 뛰어넘는 양을 감당하지 못했다.
상인에게 팔면 가격을 후려칠 것은 뻔했다. 애초에 멋대로 파는 건 노부나가와의 계약상 불가능하다.
몰래 판 사실을 들키면 어떤 벌이 내려질지 모른다. 고민하다못해 시즈코에게 하소연한 것이다.
하지만 하소연받은 시즈코도 곤란한 상황이었다.
비교적 보존이 쉬운 곡물류라면 그렇다치고, 야채 등 상하는 게 빠른 작물에 대해서는 매매 허가가 떨어질 때까지 최소한 며칠은 필요하므로, 그 동안에 작물이 못쓰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고는 해도 이제와서 모든 양을 소비로 돌린다는 것도 무리한 얘기다. 고민한 결과, 그들에게 원래는 예정되지 않았던 가공, 보존, 저장의 지혜를 전해주기로 했다.
어째서 예정되지 않았냐고 하면, 보존식이라는 건 각 가정에서 전해지면서 거기에서 독자성이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통일할 생각은 시즈코에겐 없었다. 오히려 그녀는 각 가정의 독자적인 맛내기를 권장할 방침이었다.
어쨌든 급피치로 간소한 저장시설을 만들고, 저장용으로 가공한 작물을 보존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저장용의 도구류가 부족해졌다.
이것만큼은 시즈코의 지식으로 어떻게 되는 일이 아니라서, 출입하는 상인들이나 노부나가에게 부탁해 모을 수밖에 없었다.
최종적으로 1할 가까운 야채를 파기하게 되었지만, 어찌어찌 모든 공정을 해낼 수 있었다.
마을사람들은 안심하고 가슴을 쓸어내렸지만, 그에 반해 시즈코의 안색은 좋지 않았다.
그녀는 이 사건으로 깨달았던 것이다. 노부나가들에게 부탁하면 어떻게 된다, 라고 잔뜩 방심하고 있었던 자신을.
이 일을 크게 반성하여, 다음에는 이런 일이 없도록 기구류를 충분히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하지만 전쟁이 많은 전국시대에는, 생활에 관련된 기구를 만드는 장인이 적어서 확보하는 것이 굉장히 어려웠다.
그래서 시즈코는 생각했다. 사람이 적다면 모아서 마을을 만들어 버리자. 내친 김에 MKS 단위계를 퍼뜨리자, 라고.
미터, 킬로그램, 초에는 하나같이 원기(原器)가 필요하다.
우선 미터의 원기인데 이것은 시즈코의 현대 물품 중에서 스테인리스 제의 자, 대나무 자가 존재하고 있었기에 그것을 원기로 삼기로 했다.
초의 원기에는 원자시계가 최고지만, 전국시대에는 원자를 관측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결국에는 해시계를 일용품으로서 사용하여, 그걸로 시간 감각을 익히게 하기로 했다.
골치아팠던 것이 킬로그램의 원기다.
하지만 무게의 원기는 분량을 속인다는 부정을 없애는 의미에서도 중요하다.
어떡할까 하고 고민했는데, 문득 시즈코는 에도 시대에 킬로그램의 원기가 있었던 것을 떠올렸다.
그것은 저울로 재는 것으로, 기본이 되는 무게가 필요했다. 1그램의 무게를 가진 것이 없나 하고 그녀는 생각했다.
가까이 있던 것이 그 문제를 해소해 주었다. 현대의 화폐이다.
시즈코의 시대에는 1엔 동전이 1그랩, 500엔 동전이 7그램이라고 법률로 정해져 있다. 밀리그램 단위의 오차는 있지만, 그것은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어쨌든 재료가 모였기에 1엔 동전으로 그램의 원기를, 그램을 여러 개 모아서 킬로그램의 원기를 제조했다.
그램은 그렇다치고 킬로그램 쪽은 오차가 있지만, 그것도 세세하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완벽하게 재현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뭣보다 지금은 완벽함보다 단위계를 퍼뜨리는 쪽이 중요하니까.
그리하여 원기에서 기구를 복제시켜, 기술 마을의 사람들에게 MKS 단위계를 침투시키고 있을 무렵, 시즈코의 마을을 수상한 남자가 한 명 방문했다.
그 남자는 딱 봐도 수상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헷헷헤, 시즈코 님. 안녕하십니까"
손을 주물럭대며 안부를 묻는 남자의 이름은 큐지로(久治郎).
이래뵈도 노부나가에게 시즈코의 마을의 출입을 허가받은 상인 중 한 명이다.
성은 불명, 태생은 오우미(近江)였지만 성인식과 동시에 행상이 되어 각지를 떠돌아다니고 있었다고 들었다.
실제 연령은 20대 초반이지만 겉보기에는 30대 후반으로 보이는데다, 정수리는 물론이고 뒤통수까지 대단히 위험한 레벨로 머리숱이 적은 덕분에, 겉보기의 수상함은 출입하는 상인들 중에서 넘버원이다.
다만 오우미 상인이니만큼 장사 수완도 출입하는 상인들 중에서 넘버원이다.
특히 물건을 '팔 곳'에 대한 후각이 날카롭기 떄문에, 노부나가에게서 같은 물건을 사들이고 있는 다른 상인들보다 빨리, 그리고 비싸게 팔아치우고 있다.
그런 빈틈없는 면도 노부나가가 마음에 들어하는 이유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오늘은 어떤 용건이신가요"
"잠깐 봐 주셨으면 하는 상품이 있어서 말입니다…… 어이"
시즈코의 말에 히죽히죽 수상한 미소로 대답한 후, 큐지로는 뒤에 있던 남자에게 짧게 말했다.
남자는 짧게 대답한 후, 두 개의 나무상자 중 왼쪽에 있는 것을 시즈코의 앞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남자는 큐지로의 뒤쪽으로 물러났다.
호위대인 케이지가 경계하면서 상자를 열었다.
"뭐야 이게?"
내용물을 확인한 케이지가 얼빠진 목소리를 냈다. 무리도 아니다. 나무 상자에 들어있던 것은 크기가 다양한 돌 뿐이었다.
케이지의 목소리에 반응하여 사이조와 나가요시도 안을 보았다. 돌멩이가 들어있는 것을 보고 사이조는 고개를 갸웃하고, 나가요시는 큐지로에게 삿대질을 하며 고함치고 있었다.
그런 세 명의 반응을 보고도 큐지로는 안색 하나 바꾸지 않고 여전히 수상한 미소를 띄우고 있었다.
"자, 다들 거기까지. 나한테도 보여줄래?"
그렇게 말하면서 세 명을 밀어내고 나무 상자 안을 확인했다. 손에 들고 자세히 보니, 하얀 것이 반점처럼 섞여 있었다.
완전히 백색의 돌도 있었지만, 연질의 돌인지 꽤나 물렀다. 돌이라기보다 암석으로 보인 그것을 손에 들어보면서, 시즈코는 큐지로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 암석, 어디서 구했지요?"
"헷헷헤, 원래는 상품의 출처는 비밀입니다만, 다름아닌 시즈코 님의 질문이시니 대답하겠습니다. 그것은 우에스기(上杉)나 유자(遊佐) 영토 방면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과연. 좋아요, 그쪽이 원하는 가격에 사들이죠"
암석을 나무 상자에 되돌려놓으며 시즈코는 그렇게 말했다. 돌멩이를 사들인다는 말에 놀란 세 명이었지만, 본인이 결정한 이상 쓸데없는 참견은 하지 않았다.
"과연 시즈코 님. 이게 무엇인지 알아주신 것 같군요. 뭐, 저도 시즈코 님께 배운 입장이니 잘난 척 말할 수는 없지만 말입니다. 헤헷"
"뭐 진짜라고는 생각하지만, 일단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다음 번은 기다려 줘요"
"괜찮습니다. 외부인이긴 하나 잘 아는 녀석이 있어서 확인했습니다만……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뭐, 그 녀석은 '입막음'을 해 두었습니다만. 어이쿠, 이건 상관없는 얘기였군요"
"그리요…… 아야 짱, 돈을 가져와 줄래?"
그가 말하는 '입막음'은 '시체가 되는 것'이라고 시즈코는 이해했다.
이 암석이 시즈코가 예상한 대로의 암석이라면, 용도를 알고 있는 외부인이 파내게 되면 장사의 방해가 될 거라고 그는 생각한 것이리라.
"(어이 시즈코, 이 돌멩이에 그렇게 가치가 있는 거야?)"
궁금해진 나가요시가 시즈코에게 귓속말을 했다. 다른 두 명도 궁금했는지, 두 사람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나중에 얘기할께. 일단 이 암석이 내가 알고 있는 것과 같다면 쓸모가 있어. 아마도, 그는 이걸로 내가 뭔가를 만들 것을 계산에 넣고 있다고 생각해)"
"(……저 야비한 놈. 알았어, 일단 나중에 듣지)"
"상의는 끝나셨습니까? 그럼 이번에는 이쪽을…… 분명히 시즈코 님도 마음에 드실 거라……… 생각합니다"
나가요시가 시즈코에게서 떨어진 순간, 큐지로는 히죽히죽 웃으면서 남자에게 짧게 말했다.
남자는 시즈코의 앞에 있는 나무 상자를 옆으로 밀어내더니, 다른 하나의 나무 상자를 시즈코의 앞에 내려놓았다.
아까의 나무 상자와는 달리, 장방형의 모양을 가진 나무 상자였다. 케이지가 시즈코를 뒤로 물러서게 한 후, 아까와 마찬가지로 경계하면서 나무 상자를 열었다.
이번에도 뭔지 잘 알 수 없었던 케이지는 눈썹을 찌푸렸다. 그의 뒤에서 나무 상자를 본 시즈코는 약간 얼굴이 굳었다.
"시즈코 님, 돈을 가져왔습니다"
"……큐지로 씨, 이 쪽도 사겠어요"
아야에게서 억지로 돈이 든 견고한 나무 상자를 빼앗더니, 시즈코는 그것을 그의 앞에 놔두고 이렇게 말했다.
"원하는만큼 가져가도 좋습니다"
의외로 큐지로는 시즈코의 "원하는만큼 가져가라"는 말에 대해, 이마를 탁탁 친 후, 그가 본래 생각하고 있던 가격만큼만 나무 상자에서 꺼내갔다.
"헷헷헤, 보통의 상인이라면 통째로 가져가겠지만, 이 큐지로는 그런 천박한 짓은 안 합니다"
아무리 봐도 그렇게 기특한 생각을 하고 있지 않는 수상쩍은 미소를 지으며, 큐지로는 돈을 받고는 나무 상자의 뚜껑을 닫았다.
"죄송합니다. 이후에도 다른 상담(商談)이 있기에, 저는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그럼 시즈코 님, 달리 뭔가 필요하시면 부디 이 큐지로를 찾아주시기 바랍니다"
마지막까지 수상쩍은 미소를 띄우고 큐지로는 남자와 함께 나갔다.
마을 입구에 있는 문을 지나 시즈코의 마을이 눈으로 보이지 않게 되었을 무렵, 큐지로의 곁에 있던 남자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큐지로 님, 정말 괜찮으십니까. 저만큼 큰 돈은 그리 흔하게……"
"아아? 바보같은 소리 하지 마라. 그건 나를 시험한 것일게다"
남자의 말에 큐지로는 멍청한 소리를 들었다는 얼굴로 대답했다.
"저 큰 돈을 전부 가지고 가봐라. 나는 저 여자가 벌이는 신규 사업에서 빠지게 됐을 거다. 그리고 억지로 파고들면 오다 나으리께 찍히게 되겠지. 욕심을 부려서 그 결과 짭짤한 얘기에서 빠지게 되는 건 사양이다. 그런 멍청한 짓을 하는 건 사카이(堺) 놈들로 충분해"
"네, 네에……"
"알겠냐, 장사는 그 자리에서 사고파는 것 뿐만이 아니다. 때로는 자신의 이득과 손해를 생각하지 않고 상대를 배불려 줄 필요도 있지. 그 때의 투자가 나중에 큰 돈이 되어서 내 품에 굴러들어오는 거다. 요는 손해를 보고 이득을 취해라, 라는 게야"
"그렇습니까"
"그렇습니까라니…… 아이고―, 너는 정말 내 아들이냐. 조금은 장사의 기본을 이해해라. 오늘부터 오우미 상인의 장사 10계명, 그리고 산포요시(※역주: 三方よし, 판매자에게 좋고 구매자에게 좋고 세상 사람에게 좋고(즉 Win-Win)는 에도 시대 상인의 중요한 경제 이념으로, 판매자·구매자·사회(三方)에게 모두 좋은 것이라는 의미의 표현이다 - 출처: 네이버 일한사전)를 복창해 둬라, 이 얼간아!"
큐지로는 노성에 움찔하는 아들을 한번 쳐다본 후, 성큼성큼 큰 걸음으로 걷기 시작했다.
그 자리에 남겨진 아들은, 머리로 이해가 된 후에는 서둘러 큐지로의 뒤를 쫓았다.
한편, 암석과 '어떤 것'을 산 시즈코는, 암석을 한 손에 들면서 케이지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건 말야, 도석(陶石)이라는 광석이야"
"도석……?"
"그래, 도자기를 만들 때의 원료. 오와리, 미노에서는 구할 수 없고, 다른 나라도 아직 발굴하지 않았으니 귀중한 거야"
도석은 단독으로 도자기의 원료가 되는 백색 연질의 암석이다. 하지만 도석은 오와리, 미노 국내에서 구할 수 없다.
가까운 곳에는 도석광맥(이시카와(石川) 현의 핫토리(服部), 카와이(河合) 도석이나 기후 현의 키요미(清見), 이사이(伊西), ・시부쿠사(渋草) 도석 등)이 있다.
하지만 하나같이 타국의 영토이기에 마음대로 파러 갈 수는 없다.
애초에 도석 자체가 에도 시대부터 발굴되었기에, 전국시대에는 일단 볼 수 없다.
게다가 비금속이라고는 해도 광석을 파려면 사람이 많이 필요하다.
그렇다고는 해도 갱도를 파지 않고, 지표에서 소용돌이치듯 파내가는 노천채굴이라는 수법을 쓰기 때문에, 보통의 광산보다는 드는 비용이 적다.
노천 파내기는 광상이 지표에 가깝고 대량으로 매장되어 있는 경우가 많은 도석 채굴에 적합하다.
하지만 도저히 피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 타국에서 광석을 파는 것 같은 요란한 활동을 하며, 그 토지의 지배자에게 반드시 들키게 된다.
노부나가가 상락하기 전에 쓸데없는 짓을 해서 그의 계획에 영향을 주는 것은 문제이다.
어쩔까 하고 고민하고 있던 무렵, 그 이야기를 들은 큐지로가 그쪽까지 가서 광산을 팠던 것이리라.
"용케 영주의 눈길을 끌지 않았군…… 저 자식"
"이건 철이나 구리, 은, 금과 다른 계통이니까. 즉, 제대로 가공하지 않으면 쇼우조 군이 말한 것처럼 '근처에 떨어져 있는 돌멩이'거든. 쓸모없는 걸 상인이 파내더라도 아마도 신경쓰지 않은게 아닐까. 그리고 뇌물이라도 줬을지도"
어느 쪽이든, 이것이 진짜 도석이라면 일본에서 도자기를 만들 수 있다.
본래의 역사에서는 도자기는 에도 시대 초기에 사가(佐賀) 현 아리타쵸(有田町) 동부의 이즈미 산(泉山)에서 백자광(白磁鉱)이 발견되고, 그것을 써서 자기를 생산한 아리타야키(有田焼)가 시초이다. 그 때 만들어진 도자기는 백색 단일색의 도자기였다.
8세기에 도자기의 기술을 완성시킨 중국이 만드는 도자기를 동경한 일본인에게, 백색뿐인 단색 도자기는 수요가 없어, 곧장 그림 문양과 장식이 있는 도자기가 생산되었다.
순식간에 백색 뿐인 단색 도자기는 밀려나고, 장인의 손으로 다양한 모양이 그려진 일본 그릇이 생산되었다.
도자기를 생산하는 이유는 단순히 한 번 도자기 굽는 걸 해보고 싶다, 는 별거 아닌 이유였다.
노부나가는 무력만을 믿는 원숭이가 아니라 문화인으로서의 깊은 교양을 가진 사람이다, 라고 어필하는데 쓸 수 있다, 라는 생각도 있지만 대부분은 단지 '만들어 보고 싶다'는 참으로 시즈코다운 이유였다.
"뭐어 쓸 수 있게 가공한 후, 장인들한테 만들게 해볼까. 나도 하나 만들어 보겠지만"
"호오, 시즛치는 도예의 취미도 있는 거야?"
"그런 고상한 취미는 없어. 단지 딱 좋은 기회니까, 한 번 체험해 볼까? 하고.
뭐 우선은 점토로 가공해야 되지만 말야. 아야 짱, 나무 통이랑 세토(瀬戸)의 흙을 수배해 줘―"
"알겠습니다. 세토의 흙이란, 세토의 도자기 장인들이 쓰고 있는 흙 말인가요?"
"응, 그걸로 부탁해. 도석 쪽은 나무 통이 갖춰진 후에 작업할 거니까 지금은 됐어. 이쪽의 나무 통은 내 방으로 옮겨 놓을게. 피곤하니까 내용물을 확인하는 건 나중에 하지 뭐"
그렇게 말하며 시즈코는 다른 하나의 나무통 쪽을 들어올렸다.
의외로 무거운 듯 묵직한 무게를 손에 느꼈지만, 간신히 표정에 드러내지 않고 평상심을 유지한 채 방을 나섰다.
"아, 다들 적당히 해산해도 좋아. 이제 사람이랑 만날 예정도 없으니까"
나가기 직전, 시즈코는 그렇게 말하면서 그들의 안색을 살폈다.
딱히 시즈코의 행동을 수상쩍게 생각하는 기색은 없었다. 그것에 시즈코는 내심 안심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럼"
이번에야말로 방을 나서서 시즈코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방으로 돌아간 그녀는 나무 상자를 방의 한복판에 놓고는 방의 문단속을 확실히 했다.
사람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는 것을 확인한 시즈코는, 다시 방의 한복판에 놓여진 나무 상자를 마주했다.
살짝 뚜껑을 들어올리고 안쪽을 확인했다. 내용물이 변할 리는 없기에, 그녀의 예상대로의 물건이 나무 상자 안에 떡 하니 버티고 있었다.
(……어째서 쿠지로 씨가 이걸……?
아니, 애초에 어째서 내가 가지고 있던 것 이외의 현대 물품이 이 시대에 떨어져 있는 거야……?)
나무 상자 안에 있는 것, 그것은 화학섬유로 만들어진 검은 스포츠 백이었다.
스포츠 백은 상당히 대형 사이즈인듯, 80cm 정도의 길이였다.
게다가 그냥 스포츠 백이 아니었다. 주인이 오랫동안 애용한 걸 알 수 있을 정도로 가방은 낡았고, 그리고 진흙투성이였다.
하지만 그러한 마음을 지워버리는 것처럼, 엄청난 양의 핏자국이 가방에 배어 있었다.
가방의 주인의 피에 의한 핏자국일지, 아니면 다른 누군가의 것인지는 모른다. 시즈코는 떨리는 손으로 스포츠 백의 지퍼를 열었다.
대량의 작은 비닐봉투와 묘목 같은 것들이 조금, 그리고 일기장 같은 것이 들어 있었다.
비닐봉투에 들어있는 것이나 묘목이 신경쓰인 시즈코였지만, 우선은 일기를 읽어보기로 했다.
남의 일기를 멋대로 읽는 것은 조금 꺼려졌던 그녀였지만, 꺼림칙한 마음보다도 소유주의 정보를 알고 싶은 마음 쪽이 강했다. 마지막 부분의 정보부터 보려고 시즈코는 뒤쪽부터 읽었다.
"6월 15일
드디어 딸이 이 집에서 나갔다. 아니, 나갔다는 건 올바르지 않다. 정확하게는 결혼하여 새로운 가족에게 갔다, 겠지.
하지만 뭐 결혼식에서는 기습을 받았어. 애초에 그 녀석이 유치원 때, 그 녀석을 위해 만든 옷을 가지고 나오다니 비겁해. 울지 않기로 결심했는데 크게 울어 버렸어. 그리고 진정되었을 때 그 녀석이 말했어. 엄마는 어린 시절에 돌아가셨지만, 아빠가 엄마 몫까지 애정을 쏟아주었기에 나는 외롭지 않았어요. 나는 아빠의 딸인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해요. 라고 말야…… 그래서 또 크게 울었어, 나. 어떡하지. 마누라 사진이 짠물 투성이가 되어 버렸어. 그 녀석의 결혼 사진을 마누라한테 보여줄 수 없잖아"
"8월 1일
딸이나 사위가 집에 자주 온다. 쓸쓸하지 않은 반면, 그 녀석들에게 너무 마음을 쓰게 한 걸까?
좀 떨떠름해서 마음먹고 이야기를 꺼내 봤다. 역시 내가 혼자서 외롭지 않은지 신경쓰고 있던 모양이다.
사위는 같이 살자고 권했지만 나는 거절했다. 일단 뭣보다도 딸 부부가 두 사람의 가정을 만들지 않으면 의미가 없어.
인터넷에서는 자주 같이 살 생각을 해서 돌봄을 받으려고 부심하는 부모가 있는 모양이지만, 나는 그런 거지같은 놈들과 똑같아지고 싶지 않아.
그래서 딸하고 사위에게 말했다. 같이 살자는 말은 굉장히 기쁘다. 하지만, 딸아, 네 가족은 네 옆에 있는 사람이지, 내가 아니다. 서방, 이런 영감을 신경써줘서 고맙네. 하지만 나보다 딸에게 신경을 써 주게.
괜찮아, 아직 노망들 나이는 아니다. 그리고 요즘, 가정 텃밭을 가꾸고 있는 덕분인지, 뱃살이 조금 줄어든 것 같아.
그렇게 말했더니 둘 다 웃으면서도 울어주었다. 그게 웃다가 나온 눈물이라고 아빠는 생각하겠다, 딸아"
"8월 7일
어지간한 과일이라면 심을 수 있지 않을까? 라고 생각될 정도로 넓은 마당의 유효 활용을 생각했다.
옛날에 딸이 넓은 마당의 이유를 물었었는데, 그 때는 주차장이 있었으면 좋겠어서라고 거짓말을 했었다. 응, 사실은 마누라랑 같이 가정 텃밭을 일구거나 꽃을 키우거나 하면서 같이 나이를 먹자고 생각했었다.
첫 단계에서 소용없어졌지만.
그렇군…… 마누라가 좋아했던 꽃, 딸과 사위가 좋아하는 먹거리를 키워 볼까"
"8월 8일
이쪽에서 전화할 일은 없으니 긴장했다. 하지만 어째서 사위가 받은 거지? 라고 생각했지만 마침 잘 됐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남자가 남자가 좋아하는 걸 물어본다는 게 얼핏 보면 위험하지 않을까. 뭐, 가정 텃밭에서 뭘 키울지 고민되서, 가족이 좋아하는 거라도 키워보려고 생각해서, 라고 말하면 되려나"
"8월 10일
사위는 젊은데도 야채를 좋아하는 건가, 조금 의외다. 회사의 신입들은 대부분 고기라고 대답하는데…….
뭐 괜찮겠지, 분명히 부장이 아는 사람 중에 농업의 프로가 있다고 말한 적 있으니, 내일에라도 소개해달라고 부탁해보자.
어디보자 딸이 좋아하는 게 시금치랑 배추, 귤이랑 수박, 그리고 쌀이군. 그리고 사위가 소송채, 백화두(白花豆), 백설콩, 감자, 레몬, 매실장아찌인가…….
내가 말하긴 뭐하지만 두 사람 다 정말로 젊은이 맞아? 뭔가 시골 할아버지랑 할머니 같은 취향이네.
과일과 야채가 섞여 있으니 빨리 연락하는 편이 좋으려나. 일단 부장에게 전화해보자"
"8월 13일
부장의 수완과 빠른 행동에는 매번 질린다. 전화한 다음 날에는 유급휴가 신청을 했다니 대체 뭐야…….
아니 뭐 괜찮지만 말야. 하지만 시골은 굉장하네, 전화하고 며칠만에 물건이 모이다니. 무섭다, 시골 네트워크.
분명히 F1종이 아니라 고정종이라고 했는데…… 애초에 F1종이라는 게 뭐지? 씨앗에 뭔가 차이라도 있는 건가?
F1이라니 설마 F1 레이서 같은 거? 뭔가 잘 모르겠어. 나중에 구글에서 검색해보자"
"8월 14일
내가 사는 곳도 시골이라고 생각햇는데, 지정된 장소는 더 시골이었다. 버스가 한 시간에 한 대 오는건가 하고 생각했는데, 하루에 한 대였을 때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어.
묘목이라는 녀석을 받아야 하기에 출장갈 때 쓰던 스포츠 백을 가져왔는데…… 괜찮으려나.
역시라고 할지 소개받은 농업의 프로는 고집쟁이 영감이라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내게는 비밀병기가 있었다.
나는 인사한 후에, 살짝 어떤 것을 그 할아버지에게 내밀었다. 부장에게서 '그 할아버지는 민채당(民菜堂)의 밤양갱(栗羊羹)을 좋아한다'라고 들었었다.
예상대로, 할아버지의 태도가 확 바뀌었다. 효과 죽이는데!"
"8월 15일
버스 문제로 그 할아버지 집에서 하룻밤 묵었다. 오랜만에 맛있는 술을 마셨다고 할아버지는 기뻐했다.
받아든 씨앗과 묘목을 확인했다. 씨앗은 시금치, 배추, 소송채, 백화두, 백설콩, 감자, 오크라(okra), 수박. 묘목은 귤과 레몬과 매실. 예정 외의 품종이 매실장아찌용의 텐진(天神) 적자소라는 것과 풋거름용의 귀리 씨앗이군. 그리고 맥주 마실 때 좋다고 억지로 쥐어준 땅콩.
쌀은 토모호나미(ともほなみ)라고 하는 모양인데 너무 마이너해서 모르겠다. 애초에 쌀은 코시히카리(コシヒカリ)라던가 아키타 코마치(あきたこまち) 정도밖에 모르지만.
그리고 다른 하나는 뭐라는 이름이더라…… 분명히 어려운 한자를 쓴 것 같은데…… 뭐 됐다.
어이쿠, 꽃도 확인이다. 제충국, 해바라기, 코스모스, 알로에벨라, 나무 알로에, 섬게선인장(金鯱), 프렌치 마리골드, 스트렐리치아, 마가렛, 로리에(월계수)…… 좋아, 전부 있군.
그런데 내 마누라지만 어째서 이 라인업인거지……? 갓난아기 때부터 알고 지낸 사이지만, 아직도 이해할 수 없어.
이렇게 써놓고 보니 숫자가 많군. 뭐 이만큼 숫자가 많으면 우울할 일도 없겠지.
묘목은 타올이나 종이로 싸서 상하지 않게 하고, 남은 공간에 씨앗을 넣었다.
모는 크지만 씨앗은 몇백개가 되던간에 한 알 한 알이 작으니까 컴팩트하네. 모보다 자리를 차지하지 않아.
의외로 많이 들어가서 좀 더 여유가 있었다. 하지만 그걸 말한 것은 실수였다.
할아버지가 갑자기 집에 돌아갔나 했더니, 바로 종이봉투를 한 손에 들고 돌아왔다. 뭡니까 그거, 라고 묻자 스낵파인의 모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아무래도 할아버지는 지인에게서 모를 받은 모양인데, 키울 생각이 별로 없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나에게 떠넘기려는 속셈이었던 듯 하다. 뭐 괜찮겠지, 무리라면 그걸로 좋으니. 할아버지에게 인사를 하고 집을 나섰다. 버스가 흔들려서 졸음이 오기 시작하니 오늘 일기는 여기서 끝. 굿나잇"
그 이후로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다음에 쓰인 문자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르게 꽤나 난잡하게 적혀 있었다.
"??월 ??일
여긴 어디야! 이상하다…… 나는 버스 안에서 자고 있었을 뿐인데…… 어째서 삼림 투성이인 장소에 있는 거야!
서, 설마 버스의 운전수가 나를 어딘가에 버리고……?
아니, 그럴 리는 없을 거다. 그런 짓을 해도 운전수에게 아무 이득도 없고, 뭣보다 짐이 무사하다. 하지만 어디야 여기……?
일단 일본…… 이지?
그리고 지금 깨달은 건데, 나는 칼집을 손에 쥐고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나는 칼집 같은 걸 짐에 넣은 기억이 없는데……?"
(칼집……? 분명히 영주님은 노파에게서 '검'이 '때의 서출'을 불러온다고 들었다고 하셨는데…… 뭔가 관계가 있는 걸까?)
계속 읽어보면 뭔가 알 수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한 시즈코는 다시 일기에 시선을 옮겼다.
"??월 ??일
코스프레 강도? 그도 아니면 묻지마살인범?
뭔지 모르겠지만 일본도를 들고 상투를 튼 남자들에게 쫓겨다녔다. 시대극의 코스프레인지 뭔지라면 다른 데서 해줘. 그렇게 생각하고 무시하려고 했더니 갑자기 공격해왔다.
농담도 뭣도 아니라고 깨닫고 나는 필사적으로 도망쳤지만, 상대쪽이 유리했던 듯 금방 따라잡혔다.
살해당한다!
라고 생각했는데 남자들 중 한 명이 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동료들과 뭔가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들려오는 단어가 굉장히 무서웠지만, 나는 작심하고 물어보았다.
너희들 설마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혹시 호모? 라고. 내 말을 이해하지 못했는지 남자들은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속옷? 훈도시(褌)? 를 벗는 걸 보니 내 안 좋은 예감은 맞아떨어졌다.
그, 그만둬 나는 그런 취미는 없어! 라고 정조의 위기?에 빠진 순간, 남자 한 명이 대나무가 쪼개지듯 두 토막이 났다.
강도 뒤에 어떤 남자가 서 있었다. 그 때는 진짜로 신이 나타났다, 고 생각했어. 그 녀석은 순식간에 도적들을 참살했다. 나는 한심하게도 눈 앞의 처참한 광경에 거품을 물고 기절했다"
"??월 ??일
강도?를 벤 남자는 어째서인지 나를 간호해주었다. 일단 살았습니다, 라고 감사를 했다.
그 후에 남자가 어째서 나를 도왔는지 이유를 물었다. 나는 별볼일없는 아저씨고, 뛰어난 재능도 없다.
말하긴 뭐하지만 가방끈도 길지 않다. 돈도 없고, 남에게 자랑할 만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래서 남자의 이야기를 처음에는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몇 가지 정황 증거가 그의 말을 부정할 수 없게 했다.
머리가 나쁜 나라도 그건 알 수 있다. 정말 믿을 수 없다…… 평범하게 살아온 내가, 설마 SF영화의 주인공처럼 되어 있다니"
"??월 ??일
이 쪽으로 온 지 3일째, 나는 도와준 남자와 함께 행동하고 있다.
하지만 현대에서도 전국시대에서도 돈은 중요하구나. 돈이 없으면 아무 것도 못 한다.
나중에 이 짐은 꽤나 거추장스럽다는 걸 알았다. 할아버지에게는 미안하지만, 이 씨앗과 묘목은 가방째로 상인에게 팔아야겠다.
하지만 이 가방, 너덜너덜해서 사 줄지 불안했는데…… 역시 보기좋게 예상은 적중했다.
수상쩍은 상인이 사들이기까지, 마음이 꺾일 정도로 거절당했다.
하지만 수상쩍은 상인은 내 물건에 흥미를 보이며, 상당한 가격으로 사들여주었다. 가방을 한 번도 열지 않았는데 어째서 산 걸까 의문이었다. 하지만 묻는 것도 뭐하다고 생각해서 말없이 팔기로 했다.
가방 안에 있는 마누라와 딸의 사진, 지갑과 휴대전화, 그리고 만에 하나를 위해 사탕깡통만 가져간다.
이 일기도 같이 놓아눈다. 괜히 가지고 있다가 눈에 띄고 싶지 않으니까"
거기서 일기는 끊겨 있었다. 아마도 거기까지 쓰고 가방 안에 넣었던 것이리라.
그렇게 생각한 시즈코였는데, 페이지를 펄럭펄럭 넘기자 뭔가 쓰여있는 페이지를 발견했다.
"이 일기장을 읽은 사람에게 부탁한다. 이 안에 들어 있는 씨앗이나 묘목을 키워주지 않겠나.
멋대로인 부탁인 건 알고 있다. 무리라면 버려도 좋다.
하지만, 이 녀석을 키울 수 있다고 생각하면…… 부탁한다"
"후우―……"
크게 숨을 내쉬고 시즈코는 노트를 가방 안에 넣었다.
나무 상자의 뚜껑을 덮고는 그녀는 드러누웠다. 이런저런 정보가 한꺼번에 머리에 들어와서 피곤해진 것이다.
(일기에 쓰여 있는 내용이 사실이라면, 나 외에 타임 슬립한 사람이 두 명이나 있어. 노파의 말을 빌리면, 전원이 '때의 서출'인걸까)
적어도 가방의 주인은 때의 서출이다. 노트나 연필류를 사용하고 있으니 확실하다고 해도 좋다.
하지만 이 남성에게 현실을 알려준 남자, 이쪽이 상당히 애매했다.
남성에게 전국시대에 대해서, 타임 슬립에 대해서 알려주고 있는 걸 보면 이쪽 남자도 때의 서출이라고 생각해도 좋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뭔가가 걸린다. 그 남자에 관해서는 단순한 타임 슬리퍼와는 선을 긋는 듯한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명확한 증거가 있는 건 아니지만, 기묘한 느낌이 드는 것이었다.
(……그런가. 사람을 주저없이 벨 수 있는 감각과, 전국시대의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게 이상한 거야)
현대에서 사람을 베면 경찰에 체포되어, 법률에 의거해 처벌을 받는다.
살인귀인가 하고 생각했지만, 그거라면 노트의 주인을 도울 이유가 없다.
(이 남자는 요주의 인물이네. 높은 전투 능력을 가진데다, 전국시대의 지식이 있다고 하면…… 성가신 인물이 되겠어)
성가신 인물이 적인지 아군인지 모르는 상태는 대단히 위험하다.
동료가 되어 준다면 좋다. 하지만 적대한다고 하면 제일 먼저 죽일 필요가 있다.
역사를 알고 있기에 무서운 게 아니다. 역사를 알고 있으니, 눈 앞의 위험에 대해 회피 행동을 취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되었을 때, 기존의 역사 내용을 바꾸거나, 또는 없었던 일이 된다. 그게 오다 진영에 중대한 영향을 끼칠 가능성도 완전하게는 부정할 수 없다.
(일단 남자의 정보는 최우선 사항이네. 정보를 모아야지……)
자신과 같은 때의 서출, 그 인물이 적인지 아군인지 모르는 불안이 시즈코의 마음을 묵직하게 짓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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